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주목받는 커뮤니케이터인 “케리”와 그의 아내 “크리스”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고 변화되도록 가르치고 양육하는 것에 전심전력하는 가운데, “내 생애 마지막 한 달”을 썼습니다. 책 속에서 그들은, “내일이 없는 듯 흥청망청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신앙을 가지고도 오늘이 없는 듯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 사람들은 오늘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기보다는 ‘언젠가’가게 될 하늘만 생각한다. 우리는 기적을 베풀어달라고 기도하면서도 기적을 행하실 그분의 능력을 자주 질식시킨다. 이런 것들은 우리를 믿음으로 이끌어가거나 관점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우리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한 하나님이 우리 삶에서 행하시는 일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 우리는 유턴을 하고 문제 대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춰야 한다”라고 합니다. 이는, 인생이란 기회는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월은 참으로 빠르게 흐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한 시간도, 한 순간도, 헛되게 보내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신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면서, 매순간마다 행복한 삶을 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행복을 나중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누려야 합니다. 참된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 33: 29을 보시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라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 안에서 영원한 행복, 참된 행복을 누리며,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야 합니다. 본문은 모세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인간의 왜소함이 대조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데, 사람은 들의 꽃과 같습니다. 모세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드는 꽃과 같은 우리가, 영원하신 하나님께 접붙임을 받아야 인생의 진정한 희락과 영생을 소유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티끌로 돌아가는 짧은 인생 속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인생의 허무를 극복해야하며, 또 삶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알려줍니다. 그래서, 모세는 본문 12절에서,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이것은, 속히 지나가는 인생을 허송세월 속에서 보내지 않고, 매일매일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의 지난 삶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정말 값진 날을 보냈다고 할 수 있는 날 수가 진정 얼마나 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모두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세상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게 되면, 우리의 삶은 밝고,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으로 바뀌게 됩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이 성도된 우리의 삶 가운데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2 - 13절을 보시면,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합니다. 사람의 지혜는, 자기의 날을 계수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본문 12절에서 모세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이를 보면, 사람이 인생을 지혜롭게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 날을 계수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의 년수는 기껏 칠십이요 강건해야 팔십입니다. 본문에서 모세가 구하는 지혜는, 세상의 지혜가 아닙니다. 본문 앞의 7절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사람들이 놀라기도 하고 소멸되기에, 사람의 모든 날이 하나님의 분노 중에 지나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죽으신 것을 믿는 겁니다. 이어 본문 13절을 보시면,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라며, 하나님께서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요청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면,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모세는, 본문 후반부에서,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돌아오시기를 간구하는 상반절의 의미를 한층 더 강화해서 간구하는 겁니다. 한편, 모세가 이스라엘을 “주의 종”으로 호칭한 것은, 고대 근동에서 종은 주인의 뜻에 절대 복종해야 하며, 주인은 종의 생계와 안전을 보장해야 했기에, 모세가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스라엘이 지금은 비록,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지만 앞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절대 복종할 것이란 사실과 더불어 이러한 자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생명을 지켜 안전을 보장해 달라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살아갈 인생의 실체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계시와 그들에게 허락하신 특별한 상황 아래에서 주어진 신앙적 경험을 통해서만, 인생의 실체에 대해 바로 알게 되는 겁니다. 모세가 이렇게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지를 알고, 그분을 겸손히 의지하는 지혜를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모세의 기도는 삶의 지혜를 위한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선물입니다. 본문 앞의 9절 후반부를 보시면,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순식간”은, 외마디 신음으로, “한 숨”과도 같습니다. 짤막한 한 마디의 음성, 금방 귀에서 사라져버리는 한 마디의 음성이, 한 번 내쉬는 숨처럼 빨리지나가는 덧없는 인생을 표현합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이 순식간이다”는 말에 동의하고, 실감할 겁니다. 이와 함께, 인생에 대해, “아니 벌써”라는 표현도 쓸 겁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우리의 신앙은 시작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믿음과 열심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또,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4 - 15절을 보시면,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인자하심이,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가 됩니다.
본문 14절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향해,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우리를 만족케 하사”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어디서든지 항상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가난한 자도, 부자도, 귀한 자도, 천한 자도 모두가 “우리를 만족케 하사”라며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자나 천한 자가 “우리를 만족케 하사”라고 부르짖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만, 부한 자와 귀한 자가 “우리를 만족케 하사”라고 부르짖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가난하고 천한 자들이 볼 때, 늘 만족을 누리며 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인생은 스스로는 만족에 이를 수 없다는 겁니다. 또, 부함이나 귀함으로도, 진정한 만족에 이를 수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사람은 아무리 만족할 만한 조건 가운데 있다고 해도, 영혼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그는 만족에 이를 수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로만 참된 만족에 이를 수 있습니다. 본문의 시작에서, “아침”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일반적으로 어둠이 사라지고 광명한 태양이 떠오르는 것처럼, 그 자체가 희망과 새로운 출발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내포된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자”는, “조건 없는 사랑, 언약에 성실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맛볼 때, 우리의 삶에 만족이 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오 하나님, 주님 안에서 참 쉼을 얻기까지 제 마음은 그 어디서도 만족을 얻지 못하였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기에, 본문은 “아침에 주의 인자로 충만히 채우소서”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이렇듯 우리가 매일 아침마다 주의 인자를 충만히 경험할 때, 비록 수고와 슬픔 뿐이며, 날아가는 것 같은 인생 속에서도, 평생 주의 위로하심으로 즐겁고 기쁜 날들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여,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늘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도록, 아침에는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채워 주시고, 저녁에는 주님의 은총으로 우리를 보호하여 주옵소서”라며, 기도해야 합니다. 아침에는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채워 주시고, 저녁에는 주님의 은총으로 우리를 보호하여 주실 때, 우리는 평생토록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어 본문 15절에서 모세는, 우리를 고생시킨 날수대로 그리고 또 어려움을 당한 년 수대로 기쁘게 해 달라고 합니다. 이는, 문자 그대로 그들이 당한 곤고와 화만큼의 날과 년수대로, 기쁨을 달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모세가 본문에서 기도 하는 것은, 지금까지 화만 당하였지만, 앞으로 이제 남은 인생동안은, 이러한 고난과 슬픔이 종식되고, 기쁨과 소망, 위로의 나날을 보낼 수 있게 해달라는 겁니다. 사실, 모세와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수고와 슬픔 속에서 지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430년이란 길고 긴 시간동안, 노예 생활 속에서 애굽 사람들의 혹독한 압제를 견디며 살아야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심으로, 애굽에서 나올 수 있었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셨지만, 그들이 가는 광야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하나님의 충만한 인자하심으로, 위로를 주시며 안식을 달라고 간구하는 겁니다. 여러분, 성도된 우리도 이러한, 하나님의 충만한 인자하심을 믿고, 더욱 더 하나님께 기도하심으로, 하나님의 충만한 인자하심 가운데 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6 - 17절을 보시면,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우리의 손이 행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은총을 내려주셔야 견고하게 됩니다.
본문 16절을 보시면,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께서 행하신 일”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원하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시는 등 그들에게 보여주셨던 “구원과 권능”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권능을 다시 행하심으로, 이스라엘에게 구원과 축복을 베풀어 달라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다시 함께하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어, 본문 17절을 보시면,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여기서 모세는, “견고하게 하소서”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견고하게 되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총을 내리셔야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총을 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의 “은총”은, “아름다움” 또는, “즐겁게 하는 것”이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견고케 해달라”는 것은, “헛되지 않게 해 달라”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는 길은, 하나님과 연합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 안에 늘 머물며 한 순간도 하나님에게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섬기며, 맡기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는, 자신의 힘, 자신의 능력, 욕망으로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하늘의 지혜로 살아야 행복한 삶,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순식간이고, 제한적이며, 무지합니다. 여기에는, 예외도 없고, 특별한 존재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소서”라고 기도하며, 모세와 같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심으로, 하나님의 은총으로 견고한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