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편: 제1곡
단테는 지옥을 벗어나 연옥을 둘러싼 맑은 대기 앞에 나온다. 멀리 푸른 하늘을 우러러 태초의 족속 외엔 아무도 본 일이 없는 네 개의 별을 보고 거기 또 연옥의 섬지기 카토를 만난다. 카토는 단테가 어떻게 해서 이곳까지 왔는지를 듣고 정죄산에 오르기를 허락하나, 산에 오르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일러준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가 바닷가로 가니 베르길리우스가 카토가 명한 대로 이슬로 단테의 얼굴을 씻어주고 갈대로 그에게 둘러준다.
한결 좋은 물 위를 지치고자 이제야말로
내 재주의 쪽배는 돛을 올렸나니,
내 뒤에 그리도 참혹한 바다를 버려 둔 채 (연옥편 제1곡 1-3, p336)
☑ 그다지도 끔찍했던 바다, 즉 지옥의 바다를 뒤로 하고 그보다는 나은 연옥을 여행하자. ‘이제 내 시재(詩才)의 쪽배를 올리고’. ‘내 재주[詩才]’라는 말은 자만하는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우리에게 주어진 특유한 재능을 뜻한다. 사람은 각자 특유의 자질을 부여받았다. 그런 까닭에 ‘배’라는 말을 피하고, 굳이 ‘쪽배’라고 표현한 것이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36
나는 사람의 넋이 씻기어지고 하늘에
오르기에 알맞게 되는 바 저
둘째 왕국을 노래하려 하노라. (연옥편 제1곡 4-6, p273)
☑ 이것이 바로 연옥의 정의다. … 하늘이 보이는 감옥[獄]이라는 점에서 예로부터 전해오는 저승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연옥에는 혼이 씻길 수 있는 희망이 있다. 어쩌면 천국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희망이 있다는 점이 지옥과는 완전히 다르다. 지옥은 원칙적으로 출구가 없는 곳이다. 연옥은 그 자체로는 큰 기쁨이 없는 곳이지만, 아득히 멀리 상공이 보이고 혼을 정화해 하늘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물론 이는 가능성일 뿐이고, 연옥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구원받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299
이 사람은 아직 마지막인 저녁을 못 보았어도
그 미욱한 탓으로 그것에 접근하였었나니
하마터면 그만 맴돌 뻔 하였더니라.
내 말하였음같이 저를 구하고자 저에게
나는 보냄을 받았나니, 내 몸소 나서 온
이 길밖에 딴 길이 없었나니라,
저에게 나는 죄스런 온 가지 백성을 보여 주었고
이제는 그대의 보호 밑에 스스로를
씻는 저 혼들을 보이려 하노라. (연옥편 제1곡 58-66, p275)
☑ 베르길리우스는 카토에게 사연을 말한다. 단테는 아직 죽은 것이 아니어도 그의 죄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고, 그런 그를 구하고자 베르길리우스는 베아트리체로부터 보냄을 받았고 단테의 구원을 위하여 지옥을 보여주었고 이제는 죄를 씻고 있는 연옥의 혼들을 보여주려 가고 있다고.
그럼 이이의 온 것을 그대 기뻐하시라.
자유를 찾으며 가는 사람이어니, 그 소중함은 그것을
위하여 목숨을 거부하는 자가 아는도다. (연옥편 제1곡 70-72, p276)
☑ 연옥의 수호 임무를 맡고있는 사람은 ‘그 모습이 도타운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한 노인’이었으며 그는 소 카토(BC95-BC46)을 가리킨다. 카토는 자살을 했지만 자살한 자들이 가는 지옥의 일곱 번째 계곡에 떨어지지 않고 연옥의 파수꾼이 된 까닭은 그가 자유를 갈망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은 연옥의 산을 오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옥에 가지는 않았다. 그래서 베르길리우스가 카토에게 단테를 지나가게 해 달라고 요청할 때 단테에 대해 ‘그가 찾아와 자유를 청하나니, 무릇 그 지극한 소중함은 그것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자만이 아는도다.’(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사수했던 분이라면 아시겠지요.)라고 한 말은 유명하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42
그러나 네 말대로 하늘의 아씨가 너를
일으켜 이끄신다면 아첨할 것도 없이
너 그를 통하여 내게 청함으로써 넉넉하리라.
그럼 가거라. 그리고 이 사람에게 말쑥한 갈대로
띠를 둘러 주고 그 얼굴을 씻어 주어
온갖 때 묻은 것을 그이에게서 떨어주라. (연옥편 제1곡 91-96, p276)
☑ 카토는 베르길리우스로부터 사연을 듣고 정죄산에 오르기를 허락한다. 단테에게 겸손의 띠를 둘러주고 그 얼굴을 씻어 지옥에서 묻는 때를 씻어주라고 한다.
새벽은 조과(朝課)때 어둠을 제 앞에 물리쳐
지워 버렸으므로 멀찍이 바다가
잔주름 잡히는 것을 나는 알아보았노라. (연옥편 제1곡 115-117, p277)
☑ 지옥은 지하의 닫힌 장소이며 게다가 계층까지 있어 시계가 가로 막혔기 때문에 아득한 조망이나 전망은 없다. 그에 비해 연옥은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있다. 그리고 그 전망 끝으로 광활한 바다의 일렁임이 보인다고 한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04
제2곡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바닷가에서 해뜨기를 기다릴 때 보니 멀리서 한 천사가 연옥으로 갈 영혼들을 배에 싣고 왔다. 많은 영혼들을 거기 내려놓고 천사는 떠나는데 그들 중 카셀라는 단테의 친구였다. 그가 아름다운 노래로 사랑을 읆조리매 모두가 다 듣고 기버 마지아니하였다. 끝으로 카토가 나서서 훈시를 내린다.
“자아, 땅에 무릎을 꿇어라. 보라,
하느님의 천사로구나, 손을 모을지니
너는 이제부터 이러한 시종들을 보리라.
보라, 그는 사람의 재주가 역겨워서
이토록 멀고 먼 두 언덕 사이를 그 날개밖엔
노도 돛대도 아쉬워 않는구나. (연옥편 제2곡 28-33, p282)
☑ 지옥과는 달리 멀리 펼쳐진 풍경 속에서 뱃머리에 선 천사가 날갯짓을 하며 바다 위의 배를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에게 앞으로는 하느님의 사자(시종)로서 이러한 천사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32
보라, 그 얼마나 하늘로 날개를 치올리며
썩어질 터럭같이 바뀌지 않는 영원한
깃으로 바람을 움켜 끌어당기는지.“ (연옥편 제2곡 34-36, p282)
☑ 천사가 저 세상 로마의 테베레 강을 거슬러 정죄산의 해안에 영혼들을 배에 싣고 온다.
나의 숨쉼에서 아직도 내가 살아 있는 줄을
알아챈 영혼들은 소스라쳐
놀라면서 새파랗게 질려 있더라. (연옥편 제2곡 67-69, p284)
☑ 영혼이 ‘새파랗게 질리다’는 글자 그대로는 ‘핏기를 잃었다’는 것이며, 경이와 불안을 느꼈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죽은 자들의 영혼이 단테가 자기들과 달리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그가 살아 있음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이 묘사로 연옥은 죽은 자들의 세계임이 명확해 진다. 죽음은 호흡의 유무에 달려 있다는 말이 된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297-298
이 무슨 게으름이며 어찌하여 서 있는고
너의 앞에 하느님이 안 보이도록 하는
때꼽을 벗기러 산으로 치달아 오르라. (연옥편 제2곡 121-123, p286)
☑ 단테 생각에 사후는 종교적 도덕 혹은 신에 대한 도덕에 따라 삼분되어 있다. 성스러운 행위를 한 사람은 천국으로, 신을 모독한 악한 자는 지옥으로 가지만, 세상 대부분의 사람은 중간자이므로 사후에는 정죄를 위한 수련의 장이 마련되는데, 그곳이 바로 연옥이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48
새로 온 저 무리는 노래를 그치고 마치
어디로 가는 바를 모르는 사람 모양
낭떠러지를 향하여 가는 것을 나는 보았노라. (연옥편 제2곡 130-132, p287)
제3곡
베르길리우스와 단테가 연옥의 성산(聖山) 밑에 다다랐다. 거기 높다란 바위가 있어 오를 수 없을 때, 왼편에서 오는 영혼들의 무리에게 길을 묻는다. 그들은 파문을 당한 이들의 혼이었다. 그들의 하나인 만프레디 왕이 단테에게 자신이 임종할 때 귀종(歸宗)한 얘기를 한다.
위(位) 셋 안에 체(體) 하나를 지니신
그지없으신 그 길을 우리의 이성이
능히 거쳐가기를 바라는 자는 미치광이로다.
사람의 종낙아, 그저 QUIA에 만족하라.
모든 것을 너희가 볼 수 있었던들
마리아가 아기를 낳을 것도 없었으리라. (연옥편 제3곡 34-39, p290)
☑ 삼위일체의 신비는 인간의 지식으로는 알 수가 없다. 사람은 그저 사실로 받아들일 뿐. 인간이 삼위일체의 신비를 머리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구지 탄생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눈웃음 지으며 말하되, “나는 만프레디
황후 콘스탄차의 손자이니라. 그러기에
‘네게 부탁하노니, 너 돌아가거든
내 예쁜 딸―시칠리아와 아라곤의
자랑스런 어미한테 가라. 그리고
다른 풍문이 있거든 그에게 진실을 전하라.
물고를 낸 두 번 칼질에 내 몸이
빠개진 다음 기꺼이 용서해 주시는
그이에게 울며 나는 몸을 맡겨더니라.
내 죄악은 징그러운 것이었어도
끝없으신 선(善)은 한껏 팔을 벌려
그에게 돌아오는 모든 이를 받아들이시나니라. (연옥편 제3곡 112-123, p293)
☑ 만프레디는 나폴리와 시칠리의 왕이었으나 교회와 적대관계에 있다가 파문을 당하고 1266년 전사한다. 만프레디는 파문을 받고 죽은 자신이 지옥에 버림받은 줄로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거든 죽기 전에 회개하여 연옥에 있음을 딸에게 알려달라고 말한다.
제4곡
좁고 험한 바윗길을 거쳐 두 시인은 어느 높은 데에 올랐다. 길잡이가 단테에게 어찌하여 여기서는 해가 왼쪽으로 뜨는지 그 까닭을 가르쳐 준다. 다름 커다란 바위에 가까이 가서 그 뒤에서 교만하였던 혼들을 본다. 단테는 그들 중 하나인 벨라콰와 대화를 한다. 그리고 나머지 다른 혼들을 본다.
이에 그가 나에게 이 산은 아래서
처음에만 항시 험할 뿐 위로
오를수록 수고가 덜하다 이르느니라.
그러기에 이 산이 너한테 재미있어 보여
치오르기가 흡사 배를 저어 흐름 위에
떠내려가듯 네게 수월하여질 제면
그 때 너는 이 길의 마지막에 있으리라. (연옥편 제4곡 88-94, p300)
☑ 연옥의 길은 처음에는 힘들지만 참고 오르다 보면 배가 물결의 흐름을 따라 거침없이 나아가듯 길이 편해진다. 즉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게 ‘위로 올라갈수록 점차 어려움이 줄어드는 산이다’라고 가르쳐 준다.
지옥은 가면 갈수록 깊어지고 지옥으로부터의 탈출은 불가능하다. 한편 연옥에서는 산을 오른다. 지옥과는 반대되는 경사이다. 그리고 오를수록 편해진다. 현세에 사는 우리도 열심히 노력하면 할수록 일이 쉬워지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연옥은 노력하면 그 효과가 나타나는 곳임을 의미한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38
그는 “형제여, 위로 가면 무슨 소용인고?
문 위에 앉은 하느님의 날개달린 천사께서 내가
고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을.
내가 마지막까지 착한 한숨을 끌었기에
살아서 하였던 그만큼 문 밖에서 먼저 맴돌아야
할 것을 하늘이 내게 마련하였나니,
은총 안에 사는 마음으로부터 솟아나는
기도가 우선 나를 도와주지 않는 한 천국에서
들어주지 않는 딴 기도가 무슨 쓸 데 있으랴?“ (연옥편 제4곡 127-135, P303)
☑ 연옥에서는 ‘하느님의 은총 안에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한 마음으로 올리는 기도’가 우리를 도와준다면 그 영혼은 정해진 시간보다 빨리 하늘에 오를 수 있다고 말한다. … 현세에 사는 사람이 진정으로 올리는 기도가 있으면 연옥의 영혼은 그만큼 구원에 가까워질 수 있다. 천국에 있는 혼이 하느님에게 기도를 올리면 효과는 보다 크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40
제5곡
태만한 자들의 처소를 떠나서 두 시인은 다시 오르다가 시편을 노래하며 오는 한 무리를 만난다. 이들은 비명에 죽기 직전까지 회개를 미루다가 억지 죽음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로서 단테에게 기도를 청한다. 여기서 단테와 이야기하는 혼들은 야코프 델 카세로, 부온콘테 다 몬테펠트로, 그리고 비참한 결혼을 말하는 톨로메이 피아이다.
그들이 오며 외치되, 타고난 몸뚱이를
그냥 지니고 흥겹게 걸어가는 영혼이여,
잠시 발걸음을 고요히 하라.
일찍이 우리 중에 누구를 본 적이 있어
그의 소식을 저 고장에 그대 전할 수 있는지 살펴보라.
아, 어찌 가기만 하느뇨, 어찌하여 멎지 않느뇨? (연옥편 제5곡 46-51, P307)
☑ 영혼들은 단테를 보고 자신들의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해달라고 간청한다.
우리도 한때는 모두 폭력 때문에 죽어서
최후의 시각까지 죄인들이었더니, 그 때
하늘의 빛이 우리를 깨우치게 하여
스스로 뉘우치고 용서해 주며 당신을
뵈옵고 싶은 원으로 우리를 애타게 하신
그 하느님과 화해(和解)된 몸들로 세상을 나섰느니라.“ (연옥편 제5곡 52-57, P307)
☑ '폭력 때문에 죽어서‘란 뜻을 채 이루지 못하고 전쟁에서 죽었거나 첩자나 배신자 때문에 죄 없이 살해당한 것을 뜻한다. 권력자가 제멋대로 법을 휘두르던 시대에는 왕이 명령을 내려 죽이는 일도 흔히 있었다. 정직 결백하게 왕에게 바른 말을 간한 사람이 갑자기 살해당하기도 한다. 그들이 비록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졌다 하더라도 갑작스럽게 살해당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죽음에 대한 채비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따라서 마지막 고해나 기도도 올릴 수 없고, 게다가 상대를 원망한 채로 죽어 갔을 지도 모르니 그런 의미에서는 온전한 신앙을 성취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은 지옥에 가야 하는가? 그리스도교는 이렇게 죽은 사람들을 어떻게 처우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겼다. 죽은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었다 해도 죽는 순간 신앙을 가진 자로서 적합한 행동을 하지 못했으면 지옥에 가야만 하는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의견을 말했지만 그로 인해 부정한 자들에게 살해당한 사람이 지옥에 가도 괜찮을까?
이러한 시각으로 본다면 연옥편 제4곡과 제5곡은 단테가 연옥이 필요하다고 느낀 이유를 사례를 들어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후세계에는 지옥과 천국 외에 연옥이 있으며, 지옥에 떨어질 만큼 악하지 않고, 천국에 갈만큼은 훌륭하지 않는 사람들, 요컨대 그런 의미에서 보통사람인 대부분 그러한 무리에 속할 우리에게도 사후에 직면하게 될 장소로 열려있다는 사실이 단테가 주는 일종의 안도감일 것이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44
나는 몬테펠트로 내기 부온콘테이로다.
이마 드리우고 이 자들 틈에 내가 가기는
조반나도 다른 이들도 나를 돌보지 않음에서니라. (연옥편 제5곡 88-90, p308)
☑ 부온콘테는 기벨리노 당의 지도자로 1289년 캄팔디노 전쟁에서 죽었다. 그는 아내인 조반나를 비롯한 세상 사람들이 그를 기억해주지 않아 아직 연옥에 머물러 있다고 말한다.
내 그에게 “그 무슨 폭력, 무슨 운명이었기에
캄팔디노 밖에서 너는 방황하게 되어
네 무덤조차 모를 지경이 되었는고?“
그가 대답하되, “오호, 아펜니노 수도원의
꼭대기에서 생겨나서 아르키아노라
이름하는 물이 카센티노 산록을 지나는데
그 이름이 스러지는 그 자리에 나는
목이 뚫린 채 맨발로 도망치고 피를
땅바닥에 흘리면서 다다랐더니라.
거기 시력은 흐려졌고 말은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며 끊어졌나니, 그 자리에
쓰러진 채 내 몸뚱이만 남게 되었나니라.
정말이지 하느님의 천사가 나를 거두었고
지옥의 사자는 ‘오, 천상의 너 어찌하여 내게서
앗아가느뇨, 한 방울 눈물 때문에 저를
내게서 빼앗아 영원한 몫을 너는 가져 가나,
나는 남은 한 쪽을 달리 조처하리라‘라고
외쳤으니, 그대 산 사람들에게 이를 전해 다오. (연옥편 제5곡 91-108, p308-309)
☑ 그는 한 방울의 눈물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에 인도되어 연옥에 오게 되었다. 죽을 때 회개하는 영혼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볼 수 있다.
둘째 영혼에 잇달아서 셋째가 말하되,
“언제 세상으로 돌아가서 그대오랜 나그네길을 쉬게 되거든
나 피아를 생각해 주소서.
시에나가 나를 냈고 마램마는 나를
망쳤는데, 이 일이야말로 약혼때 제 보석을
내게 가락지로 해 준 그이가 알리다.“ (연옥편 제5곡 130-136, p310)
☑ 피아라는 여인의 영혼이 단테에게 지상에 돌아가거든 자신을 위하여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시에나 출신인 그녀는 정부(情婦)와 눈이 맞은 남편에 의해 마램마에서 살해되었다.
제6곡
비명에 죽은 자들의 영혼들을 떠난 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에게 기도의 가치에 대하여 묻는다. 같은 만토바 출신이던 소르멜로가 베르길리우스를 기쁘게 맞아주는 것을 보고 단테는 문득 고향 생각이 불현듯 일어나게 되고, 반역과 불화 속에 있는 이탈리아 인들을 개탄한다.
제7곡
소르델로는 자기와 얘기하는 이가 베르길리우스인 것을 알자 정중한 예를 올린다. 베르길리우스가 그에게 길을 물으니 대답하되, 연옥은 법이 있어 낮에만 갈 수 있다고 한다. 마침내 인도를 받아 어디를 가니 아름답기 그지없는 곳에서 ‘살베, 레지나’의 노래가 들리는데 거기 있는 자들은 모두 군왕, 제후의 영혼들이었다.
함이 아니라 아니함 때문에 나는 네가
보고파 하는 높은 태양을 잃었노라.
그리고 내가 이를 안 것도 너무 늦었었노라.
아픔보다는 다만 어둠 때문에 슬픈
고장이 아래에 있나니, 거기선 통곡이
저주가 아닌 한숨으로 들리느니라.
거기 나는 인간의 죄악이 채 벗겨지기 전에
죽음의 이빨에 씹힌 죄 없는
어린이들과 함께 있노라.
거기 나는 세 가지 거룩한 덕을 입지는
못했어도 악습이 없으면서 다른 덕들을
알고 그 모두를 지킨 자들과 함께 있노라. (연옥편 제7곡 25-36, p323)
☑ 베르길리우스는 소르델로에게 자신은 죄를 범해서가 아니라 믿어야할 하느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는 죽은 뒤에야 하느님을 알았기에 림보에 있다. 림보의 영혼들은 갖가지 덕은 갖추었어도 신(信)·망(望)·애(愛) 삼덕을 알지 못했다.
그이 대답하되, “이는 어찌된 까닭인고? 밤에 오르려
하는 자는 남한테 방해를 받음인가?
아니면 그러한 힘이 없다 함인가?
이에 착한 소르델로는 손가락으로 땅을
그으며 이르더라. “알게 되리라. 해가 진 다음이면
이 금 하나도 그대는 못 넘어서리니,
다른 무엇보다도 밤의 어둠이
위로 올라감을 막는 것, 그것이
힘을 앗아 그 의지를 꺾음이니라. (연옥편 제7곡 49-57, p324)
☑ 이 세상의 밤은 하느님에게 다가가는 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죄로 기우는 때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연옥에서는 밤의 어둠이 사람의 힘을 빼앗아 의지를 약화시킨다. 따라서 연옥에서는 밤에 움직이면 안 된다.
우리는 하루 종일 온갖 일들에 마음을 빼앗겨 하느님을 생각할 수 없다. 밤에야말로 하느님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밤은 아름다운 상상을 할 수 있는 시간이므로 밤에야말로 사섹의 능력이 커지고 사색의 의지도 강해진다. 그러한 시간엔 우리의 마음도 천국을 향한 방향으로 조금은 가까워진다. 그러나 동시에 밤에는 나쁜 마음이 일거나 사악한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현세를 사는 우리의 마음에는 양극성이 있다.
단테의 지옥과 연옥은 모두 현세 자체를 깊게 생각하게 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지옥편에서는 이 세상에서 절망하면 그것이 곧 지옥임을 배웠는데, 밤이 가지는 양면성 중에서 밤의 어둠 속에서 자신의 의지가 약해지고 능력을 빼앗길 때는 살아 있으되 연옥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46-347
제8곡
연옥의 해가 질 무렵 군왕 제후들의 영혼들이 만도(晩禱)의 송가를 부른다. 녹의(綠衣)의 천사 둘이 골짜기를 지키려 내려온다. 소르델로는 두 시인을 계곡으로 인도한다. 군왕의 계곡에서 단테는 니노를 만나 이야기한다. 거기 뱀을 천사들이 쫓은 뒤 그는 또 쿠라도와 얘기하고 그의 예언을 듣는다.
때는 이미 정든 벗들과 이별을 고하는 날,
배 떠난 사람들이 생각을 거듭하며
마음이 바야흐로 구슬퍼지는 그러한 때,
죽어가는 해를 울음 울듯 멀리서
종소리가 들리노라면, 첫길 나선 순례자가
사랑에 아파하는 그러한 때일러라. (연옥편 제8곡 1-6, p330)
☑ 이 얼마나 멋진 시적 표현인가!
그리고 또 이글거리는 두 자루 칼을 들고
두 천사가 높은 데서 쫓아 내려오는데
그 칼끝이 부러지고 이지러진 것을 내 보았노라. (연옥편 제8곡 25-27, p331)
☑ 천사는 천상적 존재자의 사자에 불과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불의 검은 계율을 어기는 자를 벌하거나 추방하기 위한 것이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48
꽃다운 인사가 우리들 사이에 침묵할 수
없었나니, 그이 “그대 멀고 먼 물을 건너서
산기슭에 오신 지 얼마나 되는고“하고 물으시매
나는 말했노라, “슬픈 고장 속에서 오늘 아침
내 왔노니, 이렇듯 가며 딴 삶을 얻으려는
몸이어도 아직은 첫 삶에 있노라.“ (연옥편 제8곡 55-58, p332)
☑ 니노는 단테가 다른 연옥 영혼들과 마찬가지로 테베레의 하구로부터 천사의 배를 타고 온 줄로 알고 묻는다. 단테는 오늘 아침 지옥을 거쳐 왔노라고 한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는 하나, 아직은 살아있는 몸이라고 말한다.
하나는 베르길리우스에게 또 하나는 거기 앉았던 이에게
“쿠라도여, 일어서서 하느님이 사랑으로
뜻하신 바를 보러 오라“고 외치며 돌아서니라.
다음엔 내게 돌이켜 “건너야 할 여울도 없이
첫 번 그의 뜻을 간직하신 ‘그이’로부터
그대에게 주어진 각별한 은총에 의하여 비노니,
그대 넓은 물결의 저쪽에 닿을 제면
나의 조반나에게 말하여 죄없는 아들에게
대답을 주시는 그리로 나를 위해 기도하게 하라. (연옥편 제8곡 64-72, p332-333)
☑ 니노는 단테에게 자신의 딸 조반나에게 말하여 자신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를 드려달라고 청한다.
☑ 세상은 하나가 아니며 현실에 살아 있는 세계와 이를 초월하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49
조그마한 골짜기에 막힘이 없는 그쪽에
한 마리 뱀이 있었는데, 정녕코 그것은
이브에게 쓰거운 밥을 주었을 놈일레라.
매끄럽게 몸을 다루는 짐승답게
흉물스러운 띠는 꽃과 풀 사이로 날름대며
쉴 새 없이 머리와 등을 꿈틀거리며 오더라.
하늘의 매들이 처음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내
보지 못했기에 말할 길 없거니와
누구나 다 움직이고 있는 것을 내 잘 보았노라.
푸른 날개에 대기가 찢기는 것을 느끼자
배암은 도망치니 천사들도 몸을 돌려
나란히 있던 자리로 높이 날아가니라. (연옥편 제8편 97-108, p334)
☑ 단테는 뱀이 다가오는 것을 본다. 천사가 날아와 그것을 쫓아버린다.
제9곡
군왕의 계곡에서 단테는 잠이 깊이 들었다. 꿈에 보매 독수리 한 마리가 나타나 자기를 채 가는 것 같았다. 펄쩍 깨어보니 곁에는 베르길리우스 뿐이다. 루차가 단테를 연옥문 앞에 데려다 놓는다. 연옥의 문지기인 성 베드로의 안내로 드디어 연옥 안으로 들어섰다.
문득 하늘에 금빛 나래 지닌 독수리
한 마리가 떠 있어 그 죽지를 펴고 금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내 꿈에 본 양하더라. (연옥편 제9편 19-21, p340)
나는 스스로 헤아리되, “아마도 이 새는 항시
여기서만 나래를 퍼덕이고 정녕코 딴 데서는
발로 무엇을 집어올리기를 꺼리나 보다.“
다음 순간 그것은 잠시 빙글 돌더니
번개처럼 무섭게 내리박혀 나를
움켜잡고 불꽃에까지 오르는 것만 같더라.
거기서 그도 나도 타 버리는 줄 알았나니
꿈에 보인 불길이 어찌나 호되던지
드디어 잠을 깨게 되었느니라. (연옥편 제9곡 19-33, p340)
그리로 우리가 갔었는데, 그 첫 층계의
한 대리석이 어찌나 닦여지고 맑던지
그 안에 내가 있는 양 나를 바라보았노라. (연옥편 제9곡 94-96, p343)
☑ 연옥문의 첫 번째 계단에서는 자신의 얼굴이 잘 보인다. 그곳에서 제대로 반성을 한 후, 다음 계단으로 향한다. 결코 수월하게 오를 수 있는 계단이 아니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84
암자(暗紫)보다 진하게 물들여진 둘째 층은
껄끄럽고 구워진 돌로 되었는데
가로 세로 금이 간 것이고, (연옥편 제9곡 97-99, p344)
☑ 두 번째 계단은 어둡고 매우 짙은 색에 거칠거칠한 자연석이고 게다가 타서 눌어붙은 것 같은 돌로 되어 있다. 이것은 속죄의 고행을 상징한 색깔이라 일컬어진다.
바위는 매우 거칠거칠한 화산암 같은 것으로, 앞의 대리석과는 완전히 다르다. 첫 번째 계단에서 거울처럼 닦인 돌에 자기를 비춰 반성하고, 두 번째 계단에서는 거칠고 금이 간 돌에 무릎을 꿇고 상처가 나도록 고통스럽고 힘겨운 속죄의 기도를 올린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84-385
위에 얹힌 셋째 층은 활활 타는
반암(斑岩)인 양 핏줄에서 용솟음치는
피와 같이 보이더라. (연옥편 제9곡 100-102, p344)
☑ 세 번째 계단은 불길이 타오르듯 벌겋게 이글거린다. 이것은 분명 사랑으로 고양된 마음의 표현이다. 사랑으로 고양된 마음은 동시에 희망이기도 하다. 희망은 보통 녹색으로 표현되는데, 여기에서는 불길처럼 이글거리는 것이 사랑과 희망을 나타낸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85
그 위에 하느님의 천사가 두 발바닥을
디디고 내게는 금강석만 같이
보이던 문지방에 앉아 있더라. (연옥편 제9편 103-105, p344)
☑ 불에 타서 빨갛게 빛난다. 그것은 가장 단단하고 귀중한 돌인 금강석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연옥문으로 들어가 가장 먼저 깊이 반성하고, 고행을 행하고, 정화의 불로 깨끗해지면, 이윽고 천사가 앉아있는 가장 단단한 돌 위에 오르며,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생겨난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86
섬돌 셋을 거쳐서 오르신 내 길잡이는
나를 이끌고 간곡하기 그지없이 말씀하시되,
“그가 자물쇠를 열도록 겸손히 빌어라.”
거룩한 발밑에 맡기듯 몸을 던져
자비가 내 앞에 열려지기를 빌었는데,
그러나 이에 앞서 나는 세 번 가슴을 두드렸노라. (연옥편 제9곡 106-111, p344)
☑ 연옥문의 세 계단을 올라가서 천사 앞에 무릎을 꿇고 ‘세 번 가슴을 친다’. 즉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라고 말하며 세 번 자신의 가슴을 친다. 이것은 가톨릭 미사의 전통 혀태이다. ‘세 번 가슴을 친다’는 말은 ‘생각, 말, 행위’로 인해 스스로 범한 죄를 부끄럽게 여기고 고백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일컬어진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81
일곱 P를 칼끝으로 내 이마에
그으시고는 그이 “안에 들어가거든 너
이 상처를 씻어라“하고 말씀하더라. (연옥편 제9곡 112-114, p344)
☑ P는 라틴어의 '죄(peccantum)'라는 단어 철자의 맨 첫 글자를 따서 죄를 상징한다. 이것은 깨끗이 씻어내야 할 일곱 가지 죄의 상징이다. 연옥에 일곱 개 권역으로 나뉜 산에 해당하는 일곱 개의 죄를 분명히 인식시키고자 천사는 칼끝으로 내 이마에 긋고 말하는 것이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81-382
이것들을 베드로한테서 내 받았으니 그는
나에게 이르되, 내 발밑에 사람들이 엎드리거든
그릇 열망정 잠가 두진 말라 했느니라.“ (연옥편 제9곡 127-129, p345)
☑ 그런데 연옥문은 무거운 죄인에게도 열린다. 하느님, 성 베드로, 교회는 모두 죄인에게 될 수 있는 한 문을 열어주어 그들이 죄를 정화하기를 원한다고 볼 수 있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87-388
거룩한 문의 문짝을 밀고 나서 그이
이르되, “들어들 가라, 허나 너희에게 알리노니
뒤돌아보는 자는 밖으로 되돌아가기 마련이니라.“ (연옥편 제9곡 130-132, p345)
☑ 뒤를 돌아보는 자는 문 밖으로 다시 쫓겨나고 만다.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자신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가를 생각한다. 그래서 뒤를 돌아다본다. 그러나 그런 방식의 반성으로는 ‘밖으로 되돌아가게 되리니’, 즉 표면적인 반성뿐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반성이란, 첫 번째 계단에서 새하얀 대리석 안에 자기를 비추어 보는 것, 즉 ‘자기 자신’을 비추어 보는 것으로 자기가 했던 일을 단순히 돌이켜 보는 역사에 대한 집착과는 다르다. 진정으로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과거를 끊어 내야 한다. 종교는 과거로부터 해방되는 미래의 행복, 현재에 대한 미래의 승리인 것이다. 하느님이 앞길을 보여줄 때는 과거에 얽매어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88
제10곡
좁고 굽은 길을 거쳐서 시인들은 연옥의 첫 지점에 도달한다. 깎아지른 두렁이 흰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성모 마리아, 춤추는 다윗 등 겸손의 표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멀리 영혼들이 무거운 돌짐을 지고 오는데, 그들은 교만한 죄를 지었던 자들의 영혼이었다.
내가 “스승이여, 내 보기에 우리 쪽으로 움실거리는
저것들이 사람들인 성싶지 않사옵고 내
보아도 얼떨떨하여 모르겠나이다“라 말하매
그이는 내게 “저들 고통의 육중한 짐이
저들을 땅으로 꾸부러뜨리기에 처음엔
내 눈도 이와 같이 씨름질을 했느니라. (연옥편 제10곡 112-117, p352)
☑ 나도 그것이 사람인지 아닌지 분간하지 못했느니라.
그러나 저기를 자세히 살펴보라, 그리고
저 바위를 업고 오는 자를 보고 분간하라.
너는 곧 저마다 그 눌리는 꼴을 알아볼 수 있으리라.“ (연옥편 제10곡 118-120, p352)
☑ 세상에서 자기를 높이려던 자가 지금 바위를 짊어지고 땅에 구부리고 간다.
오, 마음의 눈은 병들었으면서도
물러서는 발걸음엔 믿음을 지니고 있는
오만한 그리스도인들, 가엾으며 느려빠진 자들아,
우리는 거침없이 심판으로 날아갈
천사 같은 나비의 모양을 하기 위하여
태어난 벌레들임을 알지 못하느냐?
형체마다 다 갖추지 못한 버러지같이
완전하지 못한 벌레 같은 너희거늘
어찌하여 너희 마음이 높이만 들떴겠느냐. (연옥편 제10곡 121-129, p352-353)
☑ 완전치 못한 세상 사람들에게 오만의 죄를 경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