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마음지기

48. 신곡-연옥편(21곡-33곡)

작성자마음지기|작성시간16.04.19|조회수1,193 목록 댓글 2

제21곡


라틴 시인 스타티우스는 이미 정죄를 끝낸 몸으로 천국에 오르려는 찰나에 두 시인을 만나 정중히 그들에게 인사하고 아까 소리 났던 지진과 영광의 노래를 설명한다. 두 시인중 그 하나가 평생 사숙하던 베르길리우스임을 알고 더욱 기뻐마지아니한다.


어느 영혼이 저의 깨끗함을 느껴서

일어나거나 위로 오르려 움직이면

여기가 울리고 이런 고함이 따르는 것이니라.


깨끗함을 증명하는 것은 의지 하나뿐인데

이것이 영혼을 깨워 온전히 자유롭게 하여

그 벗을 갈게 하고 그를 기쁘게 해 주느니라. (연옥편 제21곡 58-63, p442)

☑ 자기의 죄를 참회하고 완전히 씻었을 때 천국에 오르려는 의지가 생긴다. 마침내 죄를 씻는 연옥의 영혼들을 떠나서 행복을 누리는 천국의 혼들과 벗하며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슬기로운 길잡이 “이제야 여기 너를 붙들어 맨

그물과 그것이 어떻게 풀려지며 여기 땅이

울리는 까닭과 너희들이 즐거워하는 바를 알겠도다. (연옥편 제21곡 76-78, p443)



제22곡


스타티우스와 함께 두 시인이 여섯째 둘레로 가는 사다리를 거쳐 올라간다. 베르길리우스한테 질문을 받은 스타티우스가, 자기는 낭비의 죄를 지었다는 것과 아울러 회개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하여 보니 그 한가운데에 나무가 있어 거기서 절제의 예화가 들려온다.


그대의 묻는 말에서 나 밝히 알겠도다.

아마도 내가 저쪽 둘레에 있었다 하여

저 세상에서 욕심쟁이였을 줄로 믿는가 보다.


욕심이란 나에게서 엄청나게 떨어져

있었고 되려 그 대중 없었음을 수천의 달이

벌하고 있는 줄 이제 알으시라.


나 만일 그대가 사람의 본성이라도 꾸짖는 듯

오, 황금의 저주받은 갈증이여, 너 어찌 사람의

욕심을 못 다스리느뇨‘라 외친


그 대목을 알아듣고 나의 마음먹던 바를

바로잡지 않았더라면 나동그라지며

처참한 드잡이를 치를 뻔했노라.


그즈음 나는 내 손들이 활개를 펴고 낭비하기에

치우쳐 있음을 깨닫고, 다른 죄들과 같이

이 죄를 뉘우쳤노라. (연옥편 제22곡 31-45, p449-450)

☑ 스타티우스는 낭비의 죄에 빠졌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내가 그리스 인들을 테베의 강물에로 시를

읊으며 끌고 가기 전에 나 세례를 받았으되

무서움 때문에 숨은 기독교인이 되어


오랫동안 이교인인 체 꾸몄노라.

이 미지근함이야말로 나를 사백 년 넘도록

넷째 둘레를 돌아다니게 했느니라. (연옥편 제22곡 88-91, p451)

☑ 스타티우스는 그의 시 ‘테바이스’ 제9권을 끝내기 전에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으나 박해를 두려워해 이교인처럼 지냈다. 이 미지근함의 죄로 연옥에서 벌을 받는다.



제23곡


해골같이 말라빠진 백성이 시편을 노래하며 세 시인들을 지나친다. 세상에서 폭식, 폭음으로 살다가 여기서 기갈로 죄를 씻는 영혼들이다. 그들 중 하나인 포레세 도나티가 단테를 알아보고 그와 이야기한다. 그는 피렌체의 여성들을 통박한다.



문득 울며 노래하며 ‘LABIA MEA, DOMINE'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한꺼번에

기쁨과 아픔을 해산하는 모양일레라. (연옥편 제23곡 10-12, p457)

☑ 죄를 씻는 영혼들이 신앙을 기뻐하고 고통을 아파하며 ‘주님, 제 입술을 열어 주소서’(시편 51,17)을 부르며 지나간다.


“오, 자애로우신 아버지여, 저 듣는 바가 무엇이

오니까“라고 나 시작하니, 그이 ”그림자들이

저들 짐의 매듭을 풀며 가나 보다.“ (연옥편 제23곡 13-15, p457)

☑ 살아 폭식의 죄를 지는 무리들이 죄를 씻으며 지나간다.


울며 노래하는 이 사람들은 모두가 다

양이 넘도록 잘 먹기를 일삼은 탓으로

주림과 목마름으로 여기서 몸을 씻나니라. (연옥편 제23곡 64-66, p459)


너 어찌하여 이 위에 오게 되었느냐.

차라리 때가 때를 메꾸는 저 아래

낮은 데서 너를 만날 줄 믿었더니……. “ (연옥편 제23곡 82-84, p460)

☑ 임종에 이르러 회개한 자는 세상에서 누렸던 세월만큼 연옥문 밖에서 보내게 된다


이러자 그는 내게 “나의 넬라가 재빠르게도

나를 끌어당겨서 고난의 달가운

쑥을 마시게 하였나니, 그는 쏟아지는 눈물과


경건한 기도와 그 한숨으로써 저

기다림의 언덕에서 나를 빼내었고

다른 둘레들에서 나를 구해냈나니라.


끔찍이 내가 사랑하던 나의 홀어미된 그녀는

좋은 일을 할 적에 더욱 외로울수록

더한 귀여움과 사랑을 하느님에게서 받나니, (연옥편 제23곡 85-93, p460)

☑ 포레세의 처 조반나의 한숨과 기도로 연옥문 밖을 바로 거쳐서 문 안으로 바로 들어왔고 또 다른 둘레들도 빨리 지나온 것이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영혼들은 도움을 받는다.



제24곡


포레세가 제 동료들인 대식가들 중 몇몇 혼을 단테에게 소개한다. 그 가운데에 시인 보나준타와 교황 마르티누스 4세가 있다. 베르길리우스와 단테는 다시 나아가 탐식의 예를 메아리하는 둘째 나무를 본다.



이야기는 발걸음을, 걸음은 이야기를

늦추지 않고 다만 우리가 말하며 힘차게

걷는 품이 순풍에 밀리는 배와 같더라. (연옥편 제24곡 1-3, p464)

☑ 절묘한 이 표현


이는(하고 손가락질하며) 보나준타,

루카의 보나준타이로다. 그리고 저기 저

남들보다 몹시 쪼글쪼글한 얼굴은


성교회(聖敎會)를 그 팔에 안아 보았나니

투르 사람으로 지금은 대제(大齊)로써 볼세나의

뱀장어와 베르나차 술의 속죄를 하느니라. (연옥편 제24곡 19-24, p466)

☑ 시인 보나준타와 교황 마르티누스 4세가 생전의 탐식에 대한 속죄를 하고 있다. 마르티누스 4세는 뱀장어를 베르난차(정제된 백포도주)에 넣어 취하게 한 다음 구워 먹었다고 한다.


나는 우발딘의 달라 필라와 목장(牧杖)으로써

많은 백성을 치던 보니파티우스가 굶주림을

못 이겨 쓸데없이 이빨만 놀리는 것을 보았노라.


나는 메세로 마르케세를 보았는데, 그는 일찍이

포를리에서 과히 목이 마르지도 않으면서

마시고 또 마시면서도 배부른 줄을 몰랐느니라. (연옥편 제24곡 28-33, p466)

☑ 피사의 대주교 루지에리의 아버지인 메세로 마르케세와 라벤나의 대주교 보니파티우스가 탐식의 벌을 받고 있다. 교회의 직위와 천국하고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제25곡


여섯째와 일곱 째 둘레 사이를 오르면서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에게 묻는다. 이 곳 영혼들이 음식이 필요 없는데도 어찌하여 여윌수 있느냐고. 베르길리우스는 스타티우스에게 대답을 청하여, 그는 생식의 작용, 영혼과 육체의 결합, 그리고 사후 영혼의 상태를 말한다. 마침내 일곱 째 환(環)에 닿자 색정의 죄를 씻는 혼들을 본다.



내 길잡이가 이르시되, “여기서는 눈의

고삐를 꽉 틀어잡아야 하나니

까딱 하다간 헛디딜 수 있기 때문이니라. (연옥편 제25곡 118-120, p478)

☑ 사음(邪淫)은 눈으로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지극한 자비의 주이시여’하고

엄청난 불더미 한가운데에서의 노랫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나는 사뭇 돌아보니라.


불길 속을 다니는 영혼들을 보았는데

끊임없이 나는 눈을 번갈아 주면서

그들도 보고 내 발목도 보았느니라.


그 성가가 다 끝날 그 때에 그들은 높은 소리로

“나 남자를 모르노라”라 고함지르매

이 때부터 낮은 성가가 다시 이어지더라.


그것도 끝나자 다시 “디아나가 숲속에

숨어 비너스의 독을 맛본 엘리체를

게서 쫓아 내니라“하고 소리치더라.


이런 다음 저들은 노래로 되돌아가서

덕과 혼인이 명령하는 그대로 깨끗하였던

지어미와 지아비들에 대하여 소리 높이더라.


통틀어 도가니 속에 타는 그 동안을

한결같이 저들은 이 모양을 하리라 믿노니

끝장의 상처를 다시 깁기에는


이런 다스림과 이런 입맛이 알맞음일레라. (연옥편 제25곡 121-139, p478-479)


☑ 연옥은 정죄계라고도 불리는, 죄를 깨끗이 씻어내는 장소인데, 세례가 물로써 원죄로부터의 정화를 완수하는 데 반해 연옥은 불로써 자신의 죄를 정화한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54



제26곡


해는 벌써 기울려 하는데 세 시인은 일곱째 둘레로 접어든다. 영혼들이 단테가 살아있는 몸임을 알고 신분을 밝히라고 묻자 시인은 성모 마리아의 은혜로 산 채 연옥에 들어섰음을 말한다. 다음 구이도와 아르날도의 혼이 시인과 이야기한다.



너 이렇듯 넓으신 특은을 입어

그리스도가 그 집단의 원장이신

수도원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면


그를 향해 ‘주기도문’ 한 번만 날 위해 외어 다오.

다만 이미 죄지을 힘조차 우리에게 없는

이 세계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만. (연옥편 제26곡 127-132, p487)

☑ 구이도의 영혼은 자신을 위해 ‘주기도문’을 바쳐달라고 단테에게 부탁한다.


나는 아르노, 울며 노래하며 나는 가노라.

흘러간 어리석음을 생각하며 슬퍼하고

앞에 올 기쁨을 바라 즐겨 마지않노라.


이 사다리 꼭대기까지 너를 데려다 준

그 힘을 믿고 나 이제 네게 청하노니

때때로 내 아픔을 기억해 다오. (연옥편 제26곡 142-147, p487)

☑ 아르노의 영혼이 역시 단테에게 기도를 청한다. 연옥 영혼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들의 기도인 것이다.



제27곡


순결함의 천사가 시인들을 인도하여 불길 속을 뚫고 나아가게 한다. 단테는 처음에 꺼려했으나 베아트리체를 부르는 베르길리우스의 소리에 불 속으로 뛰어든다. 이윽고 세 시인이 층층대에서 밤을 세우는데, 단테는 예언적 환상을 꿈에 본다.



말하니라, “아들아, 순간과 영원의

불을 너는 다 보았고 이제 나로서도

더는 아지 못할 데로 온 것이로다. (연옥편 제27곡 127-129, p495)

☑ 순간, 즉 한정이 있는 불은 연옥 정죄의 불이며 때가 익으면 그친다. 영원의 불은 지옥의 각고로 영원토록 그치지 않는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인도하여 현세적 행복에까지 인도할 수 있어도 그 이상의 영원한 행복에까지 인도할 능력이 없다. 이는 신앙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천계(베아트리체)에 의하지 않고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제28곡


드디어 시인은 지상 낙원으로 들어가 그 곳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그지없이 맑은 물가에 걸음을 멈추고 보매 거기 한 예쁜 여인이 꽃을 따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시인이 부르매 맞은편 언덕에 와서 그에게 가지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은 제 탓으로 여기 잠깐 머물렀으니

제 잘못 때문에 그는 조촐한 웃음과 즐거운

놀이를 울음과 괴로움으로 바꿔 버렸느니라. (연옥편 제28곡 94-96, p501)

☑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명을 거슬러 낙원을 쫓겨나 눈물과 노동으로 살게 된다.


이 쪽이 레테, 저 쪽은 에우노에라

불리는데, 이쪽과 저쪽을

다 맛보지 않고는 효험이 없는 노릇이니 (연옥편 제28곡 130-132, p503)

☑ 죄를 씻고 덕행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천국의 복을 노릇을 누릴 수 없다.



제29곡


마텔다가 노래하며 강둑을 거닐고 있을 때 시인도 따라 걷는다. 이 때 문득 숲속에서 빛과 노래가 쏟아져 나온다. 일곱 촛대가 나타나고 구약을 대표하는 스물 네 장로가 흰 옷을 입고 나아오고 4복음을 상징하는 짐승들이 수레를 끌고 나온다. 향주삼덕(向主三德)의 처녀들은 수레의 오른쪽, 사추덕(四樞德)의 처녀들은 왼쪽에서 춤을 춘다.



영원한 정복(淨福)의 하고많은 첫 과실들을 맛보며

황홀해하고 더욱 더 즐겁고자

마음을 태우며 가고 있을 제,


우리들 앞 푸른 나뭇가지 밑에 있는

공기가 마치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고

그 흐뭇한 소리는 어느덧 노래같이 들리더라. (연옥편 제29곡 31-36, P507)

☑ 천상의 행복이 마지막 열매라면 지상 낙원의 아름다움은 그 첫 열매가 된다. 단테는 베아트트리체 만나고자 나아간다.


나의 얘기하는 이 아름다운 하늘 밑에

백합의 화관을 쓴 스물 네 장로들이

둘씩 둘씩 오고 있더라.


그들이 모두 노래하되, “아담의 딸들 중에

그대 복되시도다. 또한 당신의 그

아름다우심이야 끝없이 복되리니.“ (연옥편 제29곡 82-85, p509)

☑ 스물 네 장로들이 성모님을 찬미한다.



제30곡


장로 하나의 소리에 베아트리체가 천사들의 꽃구름을 타고 새하얀 너울에 초록색 망토를 두르고 새빨간 망토를 두르고 새빨간 옷을 입고 내려온다. (베르길리우스는 물러간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허물을 꾸짖고 자기의 그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새하얀 너울 위를 감람으로 질끈 매고

초록색 웃옷 아래 타오르는 불꽃의

빛깔을 입은 여인이 내 앞에 나타나니라. (연옥편 제30곡 31-33, p517)


☑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음전한 여인이 하얀 베일 위에 올리브를 두르고, 초록빛 웃옷에 안에 타오르는 듯한 불꽃 빛깔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이 사람이 바로 베아트리체이다. 새빨간 옷에 초록빛 웃옷, 그리고 하얀 베일. 이는 두말할 필요없이 세 가지 대신덕(對神德)을 암시하는 의상이다. 흰색은 신앙, 초록색은 희망, 붉은 색은 사랑을 나타낸다. 여기서부터 베아트리체가 단테를 인도한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17


마치 어린이가 무섭거나 무엇에 괴로워할 때

어머니한테로 달려드는 것같이

그저 미더운 생각에서만 왼편을 바라보고


베르길리우스에게 “떨리지 않는 피란

한 방울도 저에겐 없나이다. 그 옛날의 불꽃의

흔적을 지금에야 아나이다“라고 말하였더니


베르길리우스, 더 없이 인자로운 아버지이신

베르길리우스, 몸바쳐 나를 구하신 베르길리우스는

스스로 우리를 떠나 물러가시니라. (연옥편 제30곡 43-51, p517-518)


☑ 베아트리체를 만나게 해 준 베르길리우스에게 단테가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자 한다. 베아트리체를 만나 너무도 기쁜 단테가 예전부터 품었던 뜨거운 열망이 이뤄졌다고 베르길리우스에게 감사 인사를 하려고 돌아보았으나, 베르길리우스는 자신의 한계인 그곳에 다다르자 사라져 버린다. 베르길리우스의 길안내는 여기에서 끝난다. 그가 안내할 수 있는 한계는 그곳까지이며 연옥 제31곡 이후는 베르길리우스에게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천국에 매우 가깝게 다가갔다.

천국에 있는 사람은 연옥으로 내려올 수 있다. 그것은 연옥의 이정표가 천국으로 향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베르길리우스는 ‘이 세상의 지혜’였다. 단테는 ‘학식있는 베르길리우스’라고 말했는데, ‘이 세상의 지혜’로 길을 안내한다는 말은 곧 ‘학문’으로 길을 이끄는 것, ‘법’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다. 이제부터 앞길은 ‘신앙’이 길을 이끌어 준다. 베아트리체가 몸에 두른 흰색, 초록색, 빨간색 의상은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세 가지 대신덕을 나타내며, 그러한 덕을 가진 사람만이 길을 안내할 수 있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18. 391


“나를 자세히 보라. 진정 나는 틀림없는

베아트리체로다. 너 어찌 감히 이 산엘 왔느냐.

행복한 사람만이 여기 사는 줄을 몰랐더냐?“ (연옥편 제30곡 73-75, p519)


이 사람은 그 젊은 시절에 무던히도

강인했기에 그가 타고난 온갖 성품이

그이 안에 놀랄 만한 징조가 남겼었거늘,


나쁜 씨가 뿌려지고 묵혀 둔 땅이란

그 땅의 힘이 날로 줄기차 갈수록

그만큼 나쁘게 덧거칠어 가는구나. (연옥편 제30곡 115-120, p520)

☑ 일체의 덕과 재능이 단테에게 있었지만 그 재능을 좋은 곳에다 쓰지 못하였기에 그 죄가 커졌다. 나쁘게 쓰는 재능은 오히려 화가 될 뿐이다.


얼마 동안 나는 나의 맵시로 그를 부축하였고

젊디젊은 눈을 그에게 보여 주면서

옳은 방향으로 나와 함께 그를 인도했노라. (연옥편 제30곡 121-123, p520)

☑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죽을 때까지는 베아트리체의 영향으로 옳은 길을 걸었다.


나의 둘째 시절의 문지방에 이르러

내가 세상살이를 바꾸었을 제 이 사람은

나를 떠나 다른 이에게 몸을 바쳤느니라. (연옥편 제30곡 124-126, p520)

☑ 베아트리체가 25세가 되어 죽자 단테는 다른 여인에게 마음을 기울이고 타락적 생애를 보낸다.


내가 육신으로부터 영혼으로 올라왔을 제

아름다움과 덕이 내게는 커지게 되었어도

저에게는 그것이 값지지도 탐탁하지도 않게 되어


저는 진실되지 못한 길로 발을 옮겼고,

아무런 약속도 채워 주지 못하는

행복을 겉치레하는 허깨비를 따랐느니라.


꿈이나 다른 길로 저를 다시 불러내고자

영감을 빌었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으니

이런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저이었도다.


어처구니없이 굴러떨어진 저이었기에

멸망의 족속들을 보여 줌이 없이는 저의

구원을 위한 그 어떤 방법도 이미 끊어져 버렸었나니


이 까닭에 나는 죽은 자들의 문을 두드리고

저를 여기까지 바래다 줄 그 어른께

울면서 나의 청을 드렸던 것이니라.


눈물을 흘려서 뉘우쳐야 하는 자가

아무런 댓가도 치르지 않고 거저 레테를

건너고 이러한 물을 맛본다는 것은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깨뜨림일 것이니라.“ (연옥편 제30곡 127-145, p521)

☑ 단테의 저서 『신생』에 따르면 그는 여러 번 꿈에 베아트리체를 보고 마음을 가다듬었으나 그것이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단테를 그 빗나간 길에서 구해내기 위해서는 다만 무서운 악의 벌받는 모습을 그에게 보여 주어 그의 회개를 재촉하는 길밖에 없었다.



제31곡


베아트리체의 꾸지람을 듣고 시인이 허물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한다. 마델다가 그를 이끌어 레테의 냇물 속에 잠근 다음 사추덕의 네 아씨들이 그를 베아트리체한테로 데리고 간다. 베아트리체는 시인에게 자기를 밝힌다.



“오, 거룩한 흐름 저쪽에 있는 너

말하라, 말해 보라, 이게 참말이 아닌가.

이렇듯한 꾸짖음에 너의 고백이 따라야 마땅하니라.“ (연옥편 제31곡 1-3, p524)


울음이 터지면서 내 말하되, “그대의

모습이 가려지기가 무섭게 눈앞의 것들이

그 거짓 쾌락으로 내 발길을 돌려 놓았도다.“ (연옥편 제31곡 34-36, p525)


이에 그이 “너 입을 다물거나

거짓 고백을 한다 해도 네 죄가 뻔하기는 매일반이니

이렇다신 심판관이 알고 계시느니라.


그러나 죄의 고백이 죄지은 자의 볼에서

튀어 나오기만 하면 우리들 법정에선

바퀴가 칼날을 거스려 거꾸로 도느니라. (연옥편 31곡 37-42, p525)

☑ 천상의 법정에서는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기만 하면 정의의 심판도 자비로 둔해진다.


그러나 내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 지극한 기쁨이

네게서 스러진 것이라면 그 뒤 네 마음을 반하게

만든 것은 어느 썩어질 것이었단 말이냐. (연옥편 제31곡 32-34, p526)


눈을 흘리는 것들의 첫 화살에 너는

벌떡 일어나 이미 그런 것들 따위가 아닌

나의 뒤를 좇았어야 했을 것을,


계집아이나 그다지 별로 소용이 없는 다른 헛된 것의

화살을 기다려 네 날개를 떨어뜨리지

말아야 했을 너였던 것을. (연옥편 제31곡 355-60, p526)

☑ 베아트리체의 죽음으로 세상의 덧없음을 깨닫고 이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그의 혼을 좇아 천상의 일을 사모해야 했다. 하지만 단테는 그렇지 못했다.



제32곡


시인은 베아트리체를 뚫어지듯 보고 있었다. 천사들의 노래에 발맞춰 숲을 걸어갈 때 베아트리체가 내려온다. 마텔다 및 스타티우스와 함께 단테는 어떤 나무 밑에 와서 잠이 든다. 잠이 든 뒤에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를 의미하는 상징을 본다.



너는 잠시 이곳의 숲에서 살다가

그리스도가 로마인으로 계시는 저 로마의

시민으로 나와 더불어 끝없이 살리라.


그럼 옳지 않게 사는 저 세상에 도움이

되기 위하여 이제 눈을 수레로 주라. 그리고

저기로 돌아가거든 본 바를 적어 두라.“ (연옥편 제32곡 100-105, p535)

☑ 너는 잠시 이 낙원에서 지내다가 영원한 천상의 성도(聖都)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리고 하늘에서는 애끓는 마음에서 솟아나듯

한 소리가 나와 이렇게 말하더라.

“오, 나의 쪽배여, 짐을 잘못 실었구나.”


또 다음엔 바퀴와 바퀴 사이로 땅이

벌어지는 양하더니 용 한 마리가 거기서 나와

꼬리로 수레를 쿡 지르는 것을 보았노라.


침을 움츠려 넣는 말벌처럼

그놈은 독스런 꼬랑지를 스르르 뽑더니

수레 밑 한 쪽을 뚝 떼어서 꾸무룩꾸무룩 가 버리니라. (연옥편 제32곡 127-135, p536)


☑ 이는 단테가 잠에서 깨어나 본 장면이므로 역사적 사건의 상징이나 예표(豫表)일 것이다. 중세 가톨릭 신자인 단테의 입장에서 본다면, 만일 그것이 과거의 상징이라면 무함마드일 것이고 예표하면 루터가 된다. 연옥도 끝으로 갈수록 수월하게 지날 수 없게 된다. 마성적인 초월적 존재가 길을 위협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용은 「요한묵시록」(12,3)에서는 악마인데, 위에서 말한 둘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현세에 있는 자이면서도 현세에 없는 자처럼 행동한다. 절대적 초월자를 거역하는 자는 단테의 여로를 방해하려고 연옥에서도 저항을 그치지 않는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58



제33곡


일곱 아씨가 번갈아 노래하기를 그치자 베아트리체·마텔다·스타티우스·단테와 함께 나무 밑을 떠난다. 베아트리체는 가지 가지 예언을 들려준다. 드디어 에우노에 강에 도달하여 거기서 마텔다의 인도로 물을 마시고 시인은 말쑥하게 된 몸으로 별로 오르게 된다.



또한 너희들의 길이 하느님의 길에서

멀리 있음이 높고 빠른 하늘이 땅과 아주

동떨어지는 것과 같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니라. (연옥편 제33곡 88-90, p543)


☑ 우리는 ‘길’로써 하늘과 이어진다. 이상, 사랑, 길잡이 등을 상징하는 별은 하늘로 향하는 길을 상징한다. 별의 세계야말로 신의 세계로 향하는 길이다. 그리고 단테에게는 인간의 행위에서 ‘말’로 표현되는 ‘관념’의 철학적, 신학적 사색이야말로 신의 세계에 이르는 길이라는 사상이 있다. 단테에게 학문적 추상세계는 신앙세계와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관념이야말로 하느님에 이르는 길, 별과 같은 것이었다. 다만, 거기에 신앙이 더해지지 않고서는 길을 잘못 들게 된다. 우리는 인간의 행위인 학문을 통해 사랑은 무엇이며 희망은 무엇인가 하는 관념을 깊이 파고들 수 있다. 그 위에 그러한 지성을 고양시키는 신앙의 은혜가 있어야 할 것이다. 단테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러한 지성 위의 빛이야말로 별빛과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19-320


더없이 거룩한 물에서 내 돌아오매

새로 돋아난 잎사귀로 새로워진 새 나무인 양

나는 다시 살아나서 별에게로라도

솟구쳐 오를 만큼 맑고 맑아졌노라. (연옥편 제33곡 142-145, p545)

☑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아 진정으로 깨끗해지는 법을 배우면 연옥에서 벗어나 별을 향해 다가갈 수 있다. 별은 천국과 연옥을 연결하는 동경의 불꽃이다. 단테는 지옥·연옥·천국 세계를 노래했다. 이 장에서 언급했듯이 현세 역시 의식 측면에서 보자면 천국, 지옥, 연옥과 같은 곳에 있다. 그 중에서 천국은 오로지 ‘길’ 그 자체이다. 별은 천국의 ‘길’의 상징이다.

-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강의, p319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참나리 | 작성시간 16.04.20 좋은 자료 주시어 고마운 마음으로 가져갑니다.^^
  • 작성자명금당 | 작성시간 16.04.20 배가 나와서 연옥가야 되는거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요즘 마음지기님 때문에 제2의사순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