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ME 정보화 워크샵 교육’ 일정에 전주 ‘치명자산 성지’순례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내심 설레었다.
지난달 꾸리아 도보순례로 ‘신나무골’과 ‘한티 성지’를 다녀온 후 나는 한국의 성지를 순례하여 사진에 담아두고 싶은 소박한 바램을 가지고 있었다.
전주 시내에 위치한 ‘치명자산 성지’는 1801년 신유박해때 순교한 유항검 일가 일곱분이 합장된 묘소가 있는 곳이다. 묻히신 분은 호남의 첫 사도요 순교자인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부인 신희, 큰아들 유중철, 둘째 아들 유문석, 조카 유중성, 제수 이육희, 며느리 이순이 이렇게 일곱분이다. 치명 후 살아남은 노복과 친지들에 의해 김제군 재남리에 가매장 되었다가 1914년 4월19일 전동성당 초대 신부인 보두네 신부와 신도들이 이 곳에 모셨다.
치명자산 성지에 도착하니 몽마르뜨 광장이 우리를 맞는다. 산 정상까지는 차가 다닐 수 없어 누구든지 땀을 흘리며 바위산 비탈 200여m를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며 올라 가야 한다. 부산에서는 다섯 부부가 함께 왔는데 처음 이곳을 방문한 사람은 우리 부부와 한 형제뿐이다.
부산에 내려갈 시간까지 고려해야 하고, 또 성지 사진을 찍다 보니 십자가의 길은 하지 못하고 서둘러 걸음을 옮겨야 하는 것이 왠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십자가의 길을 하는 다른 순례객의 모습만 사진으로 찍었다.
이 성지는 1988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하여 1994년 5월9일 기념성당을 준공하였는데, 기도 꽃길이며 십자가의 길 곳곳 꽃 한 송이 돌맹이 하나에도 전주교구 교우들의 땀과 정성이 서려있는 듯했다. 이윽고 산상기념 성당이 우리를 맞는다.
해발 300m 산 정상 바위 암벽에 세워진 기념성당은 소박하고도 단정한 느낌을 준다.
성당 앞에 한가로이 누워있는 두 마리의 황구를 뒤로 하며 성전 안으로 들어갔다.
성전으로 들어가니 모자이크로 장식된 벽면이 눈에 들어 온다. 제대 앞 정면에는 예수,마리아, 요셉 성가정이 모자이크 되어있고 양 옆으로 요한과 루갈다의 기도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유중철 요한, 이순이 루갈다 부부!
일찍이 다블뤼 주교께서 “한국 순교사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진주”라고 하였던 동정부부이다.
두 사람이 동정부부가 되는 과정을 소설가 한수산의 순례기에서 인용하면
“그녀의 깊은 믿음은 세속의 즐거움을 버리고 그리스도만을 온전히 사랑하기 위하여 자신의 동정을 바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양반집 규수가 결혼을 하지 않고 동정을 지킨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이순이의 간곡한 뜻은 결국 주문모 신부에게까지 전해지고, 여기에서 주문모 신부가 떠올린 사람이 전라도의 사도인 유항검의 아들 유중철(요한)이었다.
유항검(아우구스띠노)은 1784년 권일신의 집에서 천주교와 만난 후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가성직 제도에 의해 신부의 권한을 위임받고 호남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하지만, 그 후 이 제도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주문모 신부를 입국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호남의 부호로서 “찹쌀 배미 쉰세 마지기”의 재산가였다. 손님접대와 명절 음식을 차리는 데 쓰이는 찹쌀벼를 심는 논이 쉰세 마지기였다는 것으로 미루어 그가 이러한 가세와 높은 덕망으로 많은 사람들과 교우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형식적으로는 결혼한 몸이지만 오누이처럼 살면서 동정을 지킬 것을 약속받고 주문모 신부는 두 사람을 결혼을 허락하게 된다. “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사랑으로 동정을 갈망했던 두 사람은 결혼을 한후 오누이처럼 지내는데, 루갈다가 옥중에서 남긴 편지에는 이들의 애틋한 사연이 유려한 필치로 남아 전하고 있다.
“식(?)이 이리 온 후 평일에 근심하던 일을 얻어 9월과 10월에 양인(兩人)이 발원맹서(發願盟誓)하여 4년을 지내면서, 사실상 남매(男妹)같더니, 중간에 유감(誘感:유혹)을 입어, 근 10여 차를 입어, 거의 하릴없더니, 성혈공로(聖血功勞)를 힘입어 능히 유감을 면하였습니다.
나의 일을 답답히 여기실까 이렇게 아뢰오니 이 수지(手紙:서한ㆍ편지)로써 나의 생명을 삼아 반기실지어다.”
<이순이 루갈다가 어머니에게 보낸 서한>
“정지(定志:뜻을 정한지)한 4년이라 염려를 부렸사오며, 저의 평생 행위를 살필진데, 구태여 애련(哀憐)할 일이 없고, 속태(俗態:세속 정신)에서 벗어나 족히 노성(老成:노련하고 원숙함. 어른스러움)하다 할만 하고, 흔근(欣謹:기쁘게 힘쓰다) 열애(熱愛) 성실(誠實)함은 항복(恒福:영원한 복)함이 되는지라.
적년(積年:지난 4년)에 원핟ㄴ 바, 뜻과 같이 이루오니, 심곡(心曲:애틋하고 간절한 마음속)을 말하온즉, 저도 또한 아시(兒時:어릴적 부터)부터 원한 바라.
우리의 만남은 두 사람의 소원을 천주께서 윤허허신 특별한 은총이라 피차에 감사함이 죽기로써 보은(報恩)이라.
둘이서 언약하기를, 가산(家産)과 소업(所業:집안의 모든 일)을 상속받는 날이되면, 서너쪽으로 나누어서 가난한 이 구제하고, 계씨(李氏:시동생)에게 후이 주어 양친을 부탁하고, 세상이 펴이거든 각각 떠나 살자 하고, 피차 상약(相約:서로 약속)을 저버리지 말자했다.
작년 납월(臘月:12月)이라, 유감(유혹)이 자심(滋甚)하여 마음의 두려움이 여리박빙(如履薄氷:살얼음판 위를 걷거나)이요 여림심연(如臨深淵:깊은 연못속에 있는 것)이라. 우러러 이길 바를 간구하옵더니, 주의 총우(寵祐)로 겨우겨우 면하여 아이(童貞)을 보존하여 피차의 유신(有信:신뢰감)함이 견여금석(堅如金石)이며, 신애지정(信愛之情:믿음과 신뢰의 정)은 중여태양(重如太陽:태양과 같이 중하게 되다)이라.
형매(兄媒:남매)로 언약하고 4년을 지내더니, 금춘(今春:금년 봄)에 잡혀서 사절(四節:사계절)에 입은 옷을 고치지 아니하고, 팔삭(八朔:여덟 달)을 수금(囚禁:죄인으로 잡히어)하여 죽기에 이르러 비로소 칼을 벗은지라. 배주(背主:천주를 배반)한 자 될까 하여 주야에 염려하고 한가지로 죽기를 수루청앙(垂淚請仰: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청) 하옵더니, 이 어찌 뜻한 바이니, 앞선 줄을 알았으랴. 더욱 총은이라! 세상에서는 다시 돌아보고 권면할 곳이 없어, 생각나니 천주시며, 향하느니 천당이라.
요안 오라버님께 향하는 정은 이제 죽기까지도 잊지 못하겠사옵니다. 세상에 누가 아니 항복되리오마는, 으뜸으로 심복(心腹:마음으로 복종하고)하고 좋아하는 바, 그 오라버님이요, 여자에게는 아가다이옵니다. 여기 요안은 남들은 남편이라 하나 나는 충우(忠友:진실한 벗)라 하니, 만일 득승천국(得昇天國:천국에 오름을 얻었으면) 하였으면 나를 잊지 않았을 것이나이다.
세상에서 나를 위한 마음이 지극하였으니 만복소(萬福所:천당)에 거(居:거처하게)하였을진대, 그런 중에 괴롭게 부치어 암암(暗暗:은연중에) 부르는 소리가 귀에 떠나지 않으리니, 평일(平日:전날에 했던) 언약을 저버리지 않으면 이번은 끊지 않을까 하나이다.”
<이순이 루갈다가 두 언니에게 보낸 서한>
요한은 루갈다에 앞서 순교하는 데 입었던 옷에다 ‘누이여, 천국에서 다시 보자’는 유언을 남기고 있다.
"집에서 기별하되 신체(身體:시체)를 내어다가 입었던 옷을 보니 기매(其妹:루갈다를 가리킴)에게 부쳤으되 “권면하고 위로하여 천국에 가 다시 보자”했다더라." <이순이 루갈다가 두 언니에게 보낸 서한>
서로를 누이요, 오라버니라 부르며 하느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을 순교로 바친 요한, 루갈다동정 부부의 삶을 잠시 묵상한 후 성전을 나와 위로 올라가니 1,000여명이 야외미사가 가능한 성당 옥상이다. 그 웅장한 모습에 잠시 멈춰 아래를 내려다 보니 전주 시내가 다 눈 에 들어 온다.
여기서 다시 양쪽으로 둥글게 올라간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유항검 일가 일곱분의 순교자들을 합장한 무덤이 나타난다. 호남의 부호였던 유항검 아우구스티노는 1784년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가성직 제도에 의해 신부의 권한을 위임 받아 호남지역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하였다. 하지만 가성직제도가 교리에 어긋나며 독성죄가 됨을 깨닫고 북경 주교에게 편지를 내게 하고 주문모 신부를 입국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가 터지자 대역부도의 죄로 능지처참형을 받고 1801년 10월24일 참수되니 그의 나이 46세때였다.
가문이 멸문되고 양반으로서의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목숨마저 버리며 애타게 찾은 하느님은 그분들에게 무엇이었을까? 마지 못해 기도하고 긴가 민가하는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나로서는 그분들의 뜨거운 믿음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새삼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무덤 뒤로는 예수 마리아 바위가 보인다. 자세히 보면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이 보인다는 말에 눈을 찡그리며 쳐다보아도 예수님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더니 옆에 계신 분이 신심이 깊은 사람에게만 보인다 하여 함께 웃었다.
좀더 올라가니 십자가와 성모님 모습의 바위가 나타났다. 앞의 예수님의 모습과 같은 바위인데, 앞면에서 보면 예수님이 기도하는 모습이고, 뒷면에서 보면 성모님이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의 형국을 가진 바위다. 전주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바위 옆에 서서 율리안나와 사진도 찍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사진을 찍다 보니 시간이 지체되어 다른 일행은 다 내려가고 우리만 남은 모양이다.
서둘러 내려가니 올라 올 때보다 길이 가팔라 힘이 든다. 율리안나의 손을 잡고 쭉 내려오다 보니 오른편에 웬 무덤들이 있어 길을 멈추고 쳐다보니 전주교구 성직자 묘지이다.갑자기 숙연해 진다.
평생을 하느님을 위해 몸바치시고 이제는 영원한 휴식을 취하는 곳.
정갈하게 단장된 묘지를 향해 잠시 묵념을 하고 내려오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다.
우연한 기회에 방문한 전주 치명자산 성지는 200년전 우리 선조의 신앙을 되새겨보며 그동안 나태해진 나의 신앙을 반성해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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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마음지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10.18 치명자산 성지는 가보신 분들이 많더군요...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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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작은연못 작성시간 11.10.18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내용과 사진 감사합니다. 꼭 가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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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마음지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10.18 시간내어서 꼭 가보세요...저는 대구 한티 성지와 더불어 마음에 남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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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희망 작성시간 11.10.19 마음에 와닿는 글과 사진에 다음 방문시 꼭 국내 성지순례를 다녀오고싶은 마음이 들어서
기쁩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마음지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10.19 우리 나라에도 가볼만한 좋은 성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