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소화 데레사 / 안응렬 옮김 / 가톨릭출판사
1. 작가소개
- 지은이 : 성녀 소화 데레사
1873년 1월 2일 프랑스 북서부 지방의 알랑송에서 루이 마르탱과 젤리 게랭의 아홉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883년 알 수 없는 병으로 심하게 앓았는데, ‘승리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중 병이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 1886년 성탄절에 ‘크리스마스의 은총’을 체험한 후 예수님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삶을 자신의 소명으로 깨달았다.
1888년 4월 9일 리지외의 가르멜 여자 수도원에 입회하여, 9년 반 동안 지극히 평범한 수도 생활을 했다. 수도원의 규칙에 충실하고 자신에게 부여된 작은 직무들을 성실히 이행하다가 1897년 9월 30일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1925년 5월 17일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로 선포되며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1944년 5월 3일 잔 다르크 성녀에 이어 프랑스 제2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고, 1997년 6월 10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보편교회의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저서로는《마지막 말씀》, 《편지 모음집》 등이 있다.
- 옮긴이 : 안응렬
불문학자이며 한국불어불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31년 가톨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1937년 주한 프랑스 대사관 수석 보좌관으로 임명되었다. 1955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이후 주불 한국 대사관 참사관으로도 활동하였다. 2005년 향년 94세로 타계하였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인간의 대지》 등을 국내 최초로 번역했으며 달레 신부의《한국천주교회사》 등 다수의 가톨릭 서적을 번역했다. 또《한불사전》을 편찬해 196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훈장과 공로훈장을 받았다.
2. 간추림 또는 내 마음에 다가온 구절및 느낌
추천의 말
성녀께서 실천하신 작은 어린이처럼 완덕의 길로 나아가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겸손과 순수, 그리고 하느님의 절대적인 사랑 속에 자기 자신을 완전히 의탁하고, 가장 사랑하는 하느님께 착하고 귀여운 어린이와 같은 사랑을 보여 드리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아기 예수 데레사 성녀의 생활 전부였던 것이다. - 에드워드 리차드슨 신부(p11)
데레사 성녀가 태어나기 전
“태어난 이후 진정한 인생이 시작되는 지점까지 ‘소리 없이 이루어지는 은밀한 준비과정’보다 더 신비스러운 것은 없다. 사람은 열두 살이 되기 전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p13)
수도자 생활을 꿈꾸었으나 거절당한 두 사람, 35세의 시계공과 27세의 레이스 직공은 만나게 되었고, 짧은 약혼 기간을 거쳐 1858년 7월13일 알랑송의 노트르담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p17)
☞ 성녀 소화 데레사의 부모는 수도자가 되려고 했으나 거절을 당한 것이다.
이 가정에는 신앙심이 충만했다. 모든 일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찾고, 가정에서의 기도, 아침 미사, 잦은 영성체(얀세니즘이 위세를 떨쳤던 당시에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주일의 저녁 기도, 피정 등으로 늘 하느님을 공경했다. 전례 행사, 순례, 단식과 금육을 철저히 지키는 등 일상생활은 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p21)
☞ 성가정의 모범이다.
또한 신앙심은 행동으로 실천하여 부모에게 버림받아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 부랑자, 가난한 노인들을 거두어 보살폈다. 마르탱 부인은 밤잠을 설쳐가며 병든 하녀를 돌보았고, 마르탱씨는 사재를 털어 가난한 사람, 간질 환자와 임종 환자를 도왔다. 자녀들에게는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서도 그들의 인격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p22)
제1부 예수의 아녜스 원장 수녀에게 보낸 글
원장 수녀님께서 이 글을 쓰라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이 일에 전념하게 되면 마음이 산란해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예수님께서는 그저 순명만 하면 당신의 뜻에 맞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영원토록 불러야 할 노래인, ‘주님의 자비하심’을 찬양하는 이 한 가지 일만 할 생각입니다. (p44)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신 다음,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마르 3,13)라는 말씀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저의 성소와 제 일생의 신비와 특히 예수님께서 제 영혼에 주신 특별한 은혜의 의미가 포함된 말씀입니다. (p44)
예수님께서는 자격을 갖춘 듯 보이는 이를 부르지 않으시고 당신 뜻에 맞는 자를 부르시니, 바오로 사도께서도 “하느님께서는 …… ‘자비를 베풀려는 이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을 베풀려는 이에게 동정을 베푼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로마 9,15-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p44-45)
☞ 예수님께서는 자격을 갖춘 이가 아니라 당신 뜻에 맞는 자를 부르신다.
저는 하느님께서는 왜 어떤 영혼을 더 사랑하시며, 어째서 모든 영혼에게 똑같이 은총을 주시지 않는지 오랫동안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p45)
예를 들어 바오로 사도나 아우구스티노 성인처럼 당신을 거역했던 성인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후하게 베푸시고, 심지어 당신의 은혜를 받도록 강요하신 것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p45)
반면에 불쌍한 미개인(未開人)들 중에는 하느님의 이름조차 들어 보지도 못한 채 죽는 이가 왜 그렇게도 많은지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p45)
예수님께서는 이 신비를 제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분은 제 눈앞에 자연이란 책을 펼쳐 주셨고, 그분이 만드신 모든 꽃이 아름답다는 것과, 장미의 화려함이나 백합의 순결함 때문에 작은 오랑캐꽃의 향기나 들국화의 순박한 매력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작은 꽃들이 모두 장미가 되려 한다면 자연은 봄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더 이상 갖가지의 작은 꽃들로 꾸며지지 못하리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p46)
영혼의 세계도 예수님의 정원과 같은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장미나 백합에 견줄 수 있는 큰 성인들을 창조하신 한편, 오랑캐꽃이나 들국화처럼 하느님께서 발밑을 내려다보실 때 그분의 눈을 즐겁게 해드리는 작은 성인들도 창조하셨으니, 모두가 자신의 역할에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 완덕이란 하느님의 성의를 행하는데, 즉 그분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대로 되는 데 있습니다.(p46)
저는 주님의 사랑이 가장 숭고한 영혼에게 나타나는 것처럼 당신의 은총을 물리치지 않는 순박한 영혼에게도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p46)
그분은 아무것도 모르고 가냘픈 울음소리밖에 내지 못하는 갓난아이도 창조하셨고 오직 본능대로만 행동하는 가련한 미개인도 창조하시어 저들의 마음에까지 내려오셨으니, 이들이야말로 그 순박함으로 주님의 마음을 끄는 들꽃들입니다.(p47)
이렇게 아래로 내려오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하심을 보여 주십니다. 해가 삼나무나 작은 꽃을 지상에 유일한 것인 양 한결같이 비추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영혼 하나하나를 특별히 여겨 일일이 마음을 써 주시며, 자연에 사계절이 돌고 돌아 가장 보잘것없는 들국화까지도 때가 되면 꽃이 피는 것처럼 모든 것이 각 영혼에 맞도록 마련되어 있는 것입니다.(p47)
제가 쓰려는 것은 이른바 제 삶의 전기가 아니라, 주님께서 제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저의 생각입니다. (p47)
이제 저는 비바람으로 억세어진 꽃처럼 머리를 들고, 제 마음속에 시편 23장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시편 23,1-4) (p48)
만약 작은 꽃이 말을 할 수 있다면, 하느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를 조금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할 것입니다. 거짓으로 겸손한 체하며 자기는 보기가 흉하고 향기가 없다든가, 해 때문에 향기가 낡았다든가, 비바람으로 대가 부러졌다는 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p49)
☞ 성녀는 자신을 ‘작은 꽃’이라고 하느님 앞에 겸손하게 말한다.
이제부터 자신의 생애를 말하려는 이 꽃도, 예수님께 아무 대가 없이 받은 친절을 널리 알려야 하는 것을 기뻐하며, 주님의 눈에 들 만한 것은 자기에게 아무것도 없고, 자기 안에 있는 훌륭한 것은 모두 그분의 자비심만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p49)
☞ 겸손한 마음.
저는 부모님을 매우 사랑하였습니다. 또 감정을 잘 드러내는 성격이었으므로 부모님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애정을 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래 엄마의 편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방법은 때때로 유별난 것이었습니다. (p51)
“아기는 말할 수 없이 장난꾸러기고, 나를 만지러 와서는 ‘엄마! 난 엄마가 죽었으면 참 좋겠어!’하고 말한단다. 그래서 모두들 꾸중을 하면 그 애는 아주 놀란 표정으로 ‘그렇지만 난 엄마를 천국에 가게 하려고 그러는데 뭘! 엄마가 죽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는 거라고 했잖아.’라고 한단다. 아빠에게도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죽어라고 하더구나.” (p52)
☞ 성녀의 어머니의 편지는 참 재미있고도 따뜻하다. 그리고 참 글을 잘 쓴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섭리야. 아기가 땅에 굴러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을 수호천사가 지켜 주시고, 아기를 위해 내가 매일 기도하는 연옥의 영혼들이 아기를 보호해 주셨구나 하고 생각했지 ……. ”(p53)
☞ 자고 있는 성녀를 보고 미사를 갔다 온 어머니는 성녀가 누워있지 않고 의자 위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성녀를 지켜주신 하느님의 섭리에 감사드린다.
“아기는 내 얼굴을 그 조그만 손으로 쓰다듬고 끌어안는구나. 이 귀염둥이는 한시도 나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고 언제나 내 옆을 졸졸 따라다니며, 함께 뜰에 나가는 것도 무척 좋아하지. 내가 뜰에 없으면 혼자 남아 있기가 싫어서 울어 대는 통에 아기를 데려오고야 만단다.”(p53)
"저번에 데레사는 자기가 천국에 갈 수 있겠냐고 물어보았단다. 아주 얌전하게 굴면 갈 수가 있다고 대답했더니 이렇게 말하더구나. ‘응, 그런 얌전하게 굴지 않으면 지옥에 가겠네 …… , 그렇지만 좋은 방법이 있어, 엄마가 천국에 갈 때 같이 올라갈 거야. 엄마가 나를 꼭 껴안아 줄 텐데 하느님께서 어떻게 붙잡아 가실 수 있겠어?“ 엄마 품에 숨어 있기만 하면 하느님께서도 어떻게 하실 수 없으리라는 굳은 믿음을 데레사의 눈에서 똑똑히 보았단다 …… .” (p54)
☞ 이런 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린아이의 순진한 마음이 아닐까?
“ 조금이라도 잘못한 것이 있으면 모두에게 고백하지 않고선 못 견뎌하지. 어제는 실수로 벽지 한 귀퉁이를 찢고서 어찌나 걱정하는지 가엾을 정도였어. 그 일을 빨리 아빠에게 말씀드려야만 한다는 거였지. 네 시간이 지나 아빠가 돌아오셨을 때는, 모두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 애가 급히 마리에게 달려가서 ‘빨리 아빠한테 내가 벽지를 찢었다고 말해.’라고 하더구나. 그리고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단다. 그러나 그 어린 마음에는 자백을 하기만 하면 쉽게 용서를 받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지.” (p55)
☞ 너무 귀엽다.
저는 폴린 언니가 틀림없이 수녀가 될 거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러면 수녀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나도 수녀가 될 테야!’하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수녀가 되겠다고 생각한 첫 번째 추억들 중 하나이며 그 후 이 결심은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p56)
우리 둘은 마음이 대단히 잘 맞았습니다. 다만 제가 언니보다 성격이 더 괄괄하고 순진하지 못했습니다. 언니보다 세 살 반이나 더 어렸지만 저에게는 언니가 동갑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p59)
☞ 바로 위의 언니인 셀린언니에 대한 이야기다.
“셀린은 덕이 있단다. 태어나면서부터 티없는 영혼과 악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졌지. 데레사는 어린데도 너무 수선스러워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구나. 셀린보다 영리하긴 하지만 셀린보다 얌전하지 못하고, 더구나 말할 수 없이 고집이 세단다. 그 애가 한 번 ‘아니.’라고 하면 도무지 그 뜻을 꺾을 수가 없구나. 온종일 지하실에 가둬 놓아도 그 애는 ‘네.’하고 대답하기보다는 차라리 거기서 자 버릴 게다.” (p59)
☞ 엄마의 데레사에 대한 평가. 그런데 그 수선스러운 아기가 성녀가 되었다.
“그러나 아기는 다정한 마음을 가지고 있단다. 얼마나 상냥하고 솔직한지 몰라. 나를 쫓아와서 ‘엄마! 내가 셀린 언니를 한 번 떠밀고 한 번 때렸어. 그렇지만 다신 안 그럴 거야.’하고 자백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우스운지 모른단다.” (p59)
“자꾸만 버릇이 나빠지는 아기를 고쳐 줘야겠구나. 아기는 무슨 일이든 제 고집대로 되지 않으면 절망한 사람처럼 땅 위를 구르고 심할 때는 까무러치기까지 한단다. 보통 신경질을 부리는 게 아니지만, 무척 귀엽고 영리하기도 하지. 또 무엇이든 잘 기억한단다.” (p62)
☞ 엄마는 참 글을 재미있게 쓰시는것 같다.
원장 수녀님, 제가 얼마나 결점이 많은 아이였는지 아시겠지요! “잠드니 얌전하구나.”라는 말도 제게는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불이란 이불은 온통 걷어차고, 잠든 채 침대의 나무 난간을 주먹으로 두드려 댔답니다. 그러다가 아픔에 잠이 깨어 “엄마, 나 부딪혔어!” 하고 소리를 질렀지요. 엄마는 일어나서 제 이마에 정말 혹이 생기고 ‘부딪혔는지’ 보러 오셔야 했지요. 그리고 이불을 잘 덮어 준 다음 주무시러 가셨습니다. 그러나 금방 다시 이 ‘부딪히는’ 소동을 시작했기에 저를 침대에 붙들어 매야 할 지경이었어요. 저녁마다 셀린 언니는 이 괴팍한 동생이 다치지 않고 엄마도 깨우지 않도록 저를 끈으로 잡아매러 여러 번 오곤 하였습니다. (p62-63)
☞ 정말 못 말리는 데레사 아기였구나!
“아기는 그 나이로는 드물게 지혜로운 대답을 할 줄 안단다. 그런 것으로는 나이가 배나 많은 셀린을 능가하지. 언젠가 셀린이 ‘하느님께서 어떻게 그 조그만 제병 속에 계실까?” 하고 물으니까, 아기는 ’그게 뭐가 이상해? 하느님은 전능하시니까 그렇지!' 하고 대답하더구나. ‘전능이 무슨 뜻이야?’ 하니까, ‘하고자 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다 하신다는 뜻이지!’라고 대답했단다.“ (p68)
☞ 이 얼마나 순진하고 지혜로운가!
제가 ‘성녀’가 되려면 많은 고통을 당해야 하고 항상 가장 완전한 것을 찾아야 하며, 자기 자신을 잊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p69)
또한 성덕에는 층이 많으며,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에 응답하는 것, 적은 일을 하든 많은 일을 하든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희생 가운데서 선택하는 것 모두가 각 영혼에게 달린 자유로운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릴 때부터 하던 것처럼 “하느님, 저는 모두 선택합니다. 반쪽자리 성녀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 때문에 괴로움을 받는 것은 무섭지 않고, 오직 제 마음대로 하는 것, 그것이 겁날 뿐입니다. 저는 당신이 원하시는 것은 ‘모두 선택’하오니, 저의 의지를 받아 주소서!”하고 부르짖었습니다. (p69-70)
☞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 뜻대로 사는 것
산책하는 동안 우리는 자주 걸인을 만났습니다. 적선하는 것은 언제나 어린 저의 일이었는데, 참으로 기쁜 일이었습니다. (p73)
제2장 뷔소네의 우리 집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날, 아빠는 저를 팔에 안으시고 “가서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입 맞춰 드리렴.”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 말 없이 사랑하는 엄마의 이마에 입술을 갖다 대었습니다. (p78)
☞ 성녀가 4살 때 사랑하는 엄마가 돌아가셨다
원장 수녀님, 엄마가 돌아가시자 제 성격은 매우 달라졌습니다. 그렇게도 활발하고 마음에 있는 것을 솔직하게 드러내던 제가 수줍어지고 얌전해졌으며, 감정이 극도로 예민해졌습니다. 누가 조금 쳐다보기만 해도 금세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무도 저를 신경 쓰지 않고 있어야 마음이 편안했고, 낯선 사람들과 같이 있을 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p80)
아! 만일 하느님께서 당신의 어린 꽃에게 따뜻한 햇볕을 아낌없이 주지 않으셨다면, 이 꽃은 도저히 이 세상의 풍토를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꽃은 비바람을 이겨 내기에는 너무나 가냘파서, 온기며 단 이슬이며 봄바람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은혜가 저에게 부족했던 시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련의 눈(雪) 속에서도 그 은혜를 찾아내게 하셨습니다. (p80-81)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땅에서 주운 작은 나무 열매와 껍질로 약을 달이고, 작은 잔에 담아서 아빠에게 갖다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착한 아빠는 일하던 손을 멈추고 웃으시며 마시는 시늉을 하셨습니다. 잔을 제게 돌려주시기 전에 아빠는 조심스럽게 나머지를 버려도 좋을지 물으셨습니다. (p83)
☞ 얼마나 사이가 좋은 아빠와 딸의 모습인가!
아! 아빠가 당신의 작은 여왕에게 쏟아 주셨던 애정을 어떻게 다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이지 생각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었습니다. (p84)
첫영성체하는 날에는 무슨 은혜를 청하든 다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났습니다. 이 생각이 저를 위로해 주었고, 저는 겨우 여섯 살이었지만 속으로 ‘첫영성체하는 날에 그 가엾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나 첫영성체 날에 이 결심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통받는 당신의 지체인 그를 위해 당신께 기도드릴 생각을 제게 미리 넣어주셨으니, 이 기도를 분명히 들어주셨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p87)
신부님이 고해틀 문을 열었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 키가 너무 작아서 손을 올리는 나무 판까지 머리가 올라가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신부님은 저에게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하라는 대로 곧 일어나서 고해를 하고 강복을 받았습니다. (p91)
☞ 생각만 해도 귀여워서 웃음이 날 것만 같다.
이 순간에 아기 예수님의 눈물이 제 영혼을 깨끗하게 해 줄 것이라고 당신께서 말씀하셨으므로 크나큰 열정에 휩싸였습니다. 제게 해 주신 이 말씀이 특히 성모님께 대한 열심을 가지라는 것이었음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저는 성모님을 더욱 사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고해소를 나올 때 이제까지 그런 기쁨을 맛본 적이 없을 만큼 마음이 가볍고 좋았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큰 축일 때마다 고해성사를 했고 그런 후에야 비로소 축일다운 날로 느껴졌습니다. (p91-92)
☞ 적어도 대축일 마다 고해성사를 하는 것도 영혼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같다.
축일! 큰 축일은 드물었지만 주간마다 제 마음을 기쁘게 하는 날이 돌아왔으니 그것은 주일이었습니다. 주일이란 얼마나 기쁜 날인지요! 그것은 하느님의 축일이자 휴일이기도 했습니다. (p93)
주일에는 온 집안이 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아빠와 손을 잡고 미사 드리러 갈 때면 아주 즐거웠습니다. 주일에는 보통 날보다 훨씬 더 다정하게 저를 안아 주셨지요. (p93)
저는 강론도 잘 들었지만, 사실은 강론하는 신부님보다 아빠를 더 자주 쳐다보았습니다. 아빠의 아름다운 얼굴은 제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아빠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리실 때도 있었습니다. 또한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영원한 진리 속에 즐겨 잠기기도 하셨습니다. (p94)
그러나 아직도 아빠에게는 목적지까지 아득히 먼 길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빠의 눈앞에 아름다운 천국이 열리고, 하느님께서 당신의 인자하신 손으로 그 충실한 종의 눈물을 닦아 주실 때까지는 아직도 긴 세월이 흘러야만 했습니다. (p95)
성인들이 어떻게 기도하는지는 아빠를 보면 알 수 있었습니다. 기도가 끝나면 우리는 나이 순서대로 줄을 서서 아빠에게 저녁 인사를 드리고 키스를 받았습니다. 막내인 여왕이 제일 마지막에 인사를 드리면, 임금님은 저의 팔꿈치를 잡고 입을 맞춰 주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아빠,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크게 소리쳤습니다. (p97)
어린 데레사는 겨울마다 아팠는데, 그럴 때마다 폴린 언니는 어머니 같은 따뜻한 애정으로 돌봐 주었습니다. 언니는 큰 호의를 베풀어 저를 자신의 침대에 눕혀 주었고, 갖고 싶어 하는 것은 모두 주었습니다. (p99)
제 가장 깊은 비밀까지 알고 있고, 제 모든 의심을 풀어주는 사람도 폴린 언니였습니다. 하루는 하느님께서 천국의 모든 성인들에게 똑같은 영광을 주시지 않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고, 성인들이라고 모두가 행복한 것만은 아닌지 언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언니는 아빠의 큰 컵을 가져오라고 해서 그것을 제 작은 컵 옆에 놓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게 큰 컵과 작은 컵에 각각 물을 채우게 하고는 어느 것이 더 가득 찬 것 같은지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둘 다 똑같이 가득 차서 더 이상 물을 부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p100)
그러자 사랑하는 폴린 엄마는 하느님께서는 성인들에게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영광을 주시기 때문에 제일 작은 성인이라도 제일 큰 성인을 조금도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폴린 엄마는 제가 가장 숭고한 깊은 뜻까지도 알게 하셨고, 제 영혼에 필요한 양식을 주실 줄 아셨던 것입니다. (p100)
예수님의 거룩한 얼굴이 수난을 당하시는 동안 가려졌던 것처럼 그분의 충실한 종의 얼굴도 천국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더욱 빛낼 수 있도록 고통을 당하시는 동안 가려져야 했습니다. (p104)
☞ 시련은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통로이다.
제3장 고통스러운 세월(1881-1883)
당신은 슬픔에 잠겨 있던 저에게 ‘가르멜’의 생활을 설명해 주셨는데, 그 곳은 정말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당신이 이야기해 주신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가운데, 가르멜 여자 수도원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저를 숨겨주시려고 준비하신 사막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얼마나 절실히 그것을 깨달았던지 제 마음 속에는 조그만 의심조차 없을 정도였습니다. (p122)
그것은 어린아이의 막연한 꿈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폴린 언니를 위해 가르멜에 가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위해 가려는 것이었습니다. 가르멜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큰 슬픔을 느꼈지만, 곧이어 제 마음속에 커다란 평화를 주게 되었습니다. (p122)
곤자가의 마리아 원장 수녀님은 이 굉장한 비밀을 들으시고 제 성소에 대해서 믿으셨지만, 그래도 아홉 살짜리 청원자를 받을 수 없으니 열여섯 살이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p123-124)
당신이 어린 동생들보다 오히려 사촌들과 더 많이 대화 하셨던 것이 외숙모를 즐겁게 하기 위한 것임을 저는 몰랐습니다. 그곳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나는 폴린 언니를 영영 잃어버렸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괴로움 속에서 마음의 병이 들었고, 그 병이 지나치게 깊어져서 오래지 않아 육신의 병까지 들었습니다. (p126-127)
제가 걸린 병은, 폴린 언니가 우리 자매 중 제일 처음으로 가르멜에 들어간 것에 화가 난 마귀의 장난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마귀는 신앙심이 깊은 우리 집안에 의해 앞으로 받게 될 손해에 대해 앙갚음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p127)
☞ 성녀가 아홉 살때인 1882년 사랑하는 폴린 언니가 가르멜에 들어가게 된다.
마리 언니는, 레오니 언니와 셀린 언니와 함께 제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자기 아이의 생명을 비는 ‘어머니’와 같은 정성으로 성모님께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리하여 마리 언니는 마침내 원하던 바를 얻었습니다. (p137)
제가 나을 수 있는 길이 이 세상에는 없어서, 어린 저는 하늘의 모후께 눈을 들어,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간절히 빌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승리의 성모상에 있는 성모 마리아의 얼굴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이제껏 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분의 얼굴에는 말할 수 없는 인자함과 애정이 나타났습니다. (p138)
그 순간 제 모든 근심과 괴로움은 사라져 버리고 두 줄기 굵은 눈물이 눈시울을 적시며 빰으로 고요히 흘러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수한 즐거움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이었습니다. 저는 ‘아! 동정 마리아께서 나를 보고 웃으셨구나.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그러나 이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야겠다. 그렇게 하면 내 행복이 사라져 버릴 테니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눈을 떠보니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마리 언니가 보였습니다. (p138)
제게 감동을 주었던 것은 성모님의 ‘얼굴’뿐이었는데, 저를 의심하는 마음이나 사실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르멜 수녀들이 갖고 있는 것을 보고(제 병에 대한 괴로움이 벌써 시작되어) 저는 괜한 거짓말을 한 사람처럼 여겨졌습니다. 비밀을 지켰다면 아마 제 행복도 보존되었겠지요.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제 영혼의 이익을 위해서 이런 괴로움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마음속에 허영심이 스며들었을지도 모르는데, 도리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니 언제나 큰 두려움을 갖고 제 자신을 살펴보게 된 것입니다. 아! 제가 당한 괴로움은 천국에 가야만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p141)
제4장 첫영성체와 기숙 학교 시절(1883-1886)
저는 재밌게 놀 줄은 몰랐지만 독서를 무척 좋아했으므로 가르멜에 오지 않았다면 일생을 독서만 하며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p145)
제 손을 거쳐 간 책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제가 나쁜 영향을 받을 만한 책은 하나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p145)
하느님께서는 진실한 영광이란 없어지지 않는 것이고, 그것을 얻으려면 훌륭한 과업을 이루는 것보다 자신을 감추고 덕을 행하여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마태 6,3)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p145)
하느님께서는 위에서 쓴, 자신을 감추고 덕을 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또한 제 영광이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는 데 있지 않고 오직 큰 성녀가 되는데 있다는 것을 이해시켜 주셨습니다. (p146)
오직 하느님만이 제 약한 노력에 만족하시며 저를 당신에게로 끌어 올리시고, 당신 공로로 덮어 주시어 성녀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때 저는 성덕에 이르기 위해서는 많은 괴로움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는데, 하느님께서는 얼마 안 되어 그것을 시련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p147)
태양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허무하고 정신의 괴로움만 있을 뿐이며(코헬 1,2-3 참조)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재산은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 세상에서 가난한 마음을 갖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p148)
저는 아직 혼자서 몸단장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머리를 빗겨 줄 마리 언니가 없었기 때문에 부끄러워하면서도 화장실에 가서 수녀님에게 빗을 내밀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열한 살이 된, 다 큰 아이가 자기 머리도 빗을 줄 모르는 것을 보고는 웃으시면서 제 머리를 빗겨 주셨습니다. (p153)
마리 언니가 피숑 신부님의 편지를 가져왔을 때 저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모든 행복이 한꺼번에 밀려왔지요. 편지 중에도 저를 가장 즐겁게 했던 구절은 “내일 너와 폴린을 위해 미사를 드리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p156)
☞ 나는 신부님께서 미사를 드려주겠다는 말을 듣고도 마음 깊이 감흥을 받은 적이 없었던 것같다.
그러나 너무 자세한 일까지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밖에 내놓기 무섭게 향기를 잃는 물건이 있으며, 세상 말로 옮겨 놓자마자 그 은밀하고 신비로운 뜻을 잃어버리는 마음 속의 생각도 있기 때문입니다. (p156)
☞ 때로 너무 소중하여 마음 속에만 간직해야할 비밀도 있다.
그것은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숨겨진 만나를 주고 흰 돌도 주겠다. 그 돌에는 그것을 받는 사람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새 이름이 새겨져 있다.”(묵시 2,17)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아! 제 영혼에 주신 예수님의 첫 번째 입맞춤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p157)
그것은 사랑의 입맞춤이었으며, 저는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저를 당신께 영원히 바칩니다.” 이 사랑에는 아무런 요구도 싸움도 희생도 없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예수님과 어린 데레사는 서로 마주보고 서로 이해하였습니다. (p157)
그러나 그날은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둘이 아니었으니, 데레사는 물방울이 바닷물 속에 사라지는 것처럼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 혼자만 남아 계셨으니, 그분은 저의 스승님이자 임금님이었습니다. (p157)
어머니의 품에 뛰어들어 지켜 주시기를 청하는 어린아이처럼 성모 마리아께 말씀드리고, 그분께 저를 바치는데 온 마음을 쏟았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작은 꽃을 내려다보시고, 다시 한 번 방긋이 웃으셨습니다. 예전에 그 ‘미소’로 제가 아플 때 구해 주신 분이 성모님 아니었습니까? 당신의 작은 꽃인 저의 꽃받침 안으로 “샤론의 수선화, 골짜기의 나리꽃”(아가 2,1)인 예수님을 성모님께 내려놓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p159)
제 마음 속에는 괴로움을 받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과 함께, 예수님께서 제게 많은 십자가를 지우실 거라는 확신이 조금씩 생겼습니다. 그러자 평생에 가장 큰 은혜를 받은 것같은 위로가 가득히 느껴졌습니다. 괴로움이 제 마음을 끌어당겼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아직 잘 모르면서 그 매력에 황홀해지는 것이었습니다. (p161)
그때까지는 괴로움을 ‘사랑하지’ 못하고 괴로워했는데 그날부터는 정말 괴로움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 이외에서는 기쁨을 느끼고 싶지 않았습니다. (p161)
저는 무척 마음에 드는 장난을 생각해 냈는데 그것은 나무 밑에 죽어있는 새들을 묻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저를 도와서 작은 새들의 몸집에 알맞은 나무와 꽃을 심어서 아주 예쁜 묘지를 만들었습니다. (p164)
저는 배운 것의 뜻은 쉽게 기억했지만, 외우는 것은 매우 힘들어 했습니다. …… 어쩌다가 한 글자라도 잊어버리면 안절부절하며 괴로움으로 비참한 눈물이 솟아나서, 도맹 신부님이 어떻게 진정시켜야 할지 난감해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저를 굉장히 좋아하셔서(울 때만 빼고)저를 ‘꼬마 박사 ’라고 부르셨는데, 그것은 데레사라는 제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p165)
☞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저는 글씨를 예쁘게 쓰지 못했고 그저 평범하기만 한 철자법을 사용 했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끌만한 재주가 없었습니다. 바느질이나 자수, 그 밖의 일은 수녀님들의 도움 덕분에 꽤 잘했지만, 일감을 다루는 제 솜씨가 서툴러서 사람들이 저를 탐탁지 않아 하는 것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오히려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제 마음이 당신에게로만 향하기를 원하셨고, “현세의 즐거움이 저에게는 쓰디쓴 괴로움이 되게 해 주소서.”라고 한 저의 기도를 벌써 들어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제가 남의 칭찬에 전혀 무관심할 수는 없었을 것이므로 그것은 제게 꼭 필요한 은총이었습니다. (p166-167)
이 세상의 우정에서 ‘쓴맛’만 맛보게 하신 예수님께 얼마나 감사드리는지 모릅니다. 그런 무능함이 없는 마음으로는 날개를 잡혀서 잘리고야 말았을 테니, 그랬다면 어떻게 “날아가 쉴”(시편 55,7)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애정에 사로잡힌 마음이 어떻게 하느님과 가까워질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p168)
아! 저는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가 유혹에 너무나 약할 수 있음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p169)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루카 7,47)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보다도 저를 더 많이 용서해 주셨습니다. 저를 미리 용서해 주시어 나락으로 떨어질 것을 막아 주셨으니까요. 아!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p169)
만일 제 마음이 ‘철이 들 때부터 하느님께 들어 올림을 받지 않았다면,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의 단맛만을 보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사랑하는 원장 수녀님, 저는 하느님의 인자하심을 감사의 마음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p174)
'지혜서‘에도 “악이 그의 이성을 변질시키거나 거짓이 그의 영혼을 기만하지 못하도록 들어 올려진 것이다.”(지혜 4,11)라고 쓰여 있지 않습니까? 동정 마리아께서도 작은 꽃(소화)을 지켜 주셨고, 소화가 세상 사물과 접촉하여 더럽혀질 것을 바라지 않으셔서 활짝 피기 전에 그분의 동산으로 데려가신 것입니다. (p174)
☞ 성녀가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간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는 예수님께만 말할 줄 알았습니다. 사람들과의 대화는 그것이 신심에 대한 이야기일지라도 제 마음을 피곤하게 했습니다. 하느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직접 말씀드리는 것이 더 낫다고 느꼈습니다. (p176)
"인생은 네 집이 아니라 네 작은 배다!“ 저는 어렸을 때 이 말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 어린 시절에 느꼈던 열정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인생을 배에 비유한 이 구절은 귀양살이를 견디도록 제 마음을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됩니다. (p177)
☞ 라마르틴이 쓴 시 속의 한 구절.
‘지혜서’에도 “인생은 배가 높은 물결을 헤치고 갈 때와 같다. 한번 지나가면 자취도 찾을 수 없다.”(지혜 5,10 참조)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을 생각할 때 제 영혼은 무한 속으로 들어가서 벌써 영원한 곳에 다다른 것처럼 느껴집니다. 또한 예수님의 입맞춤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성모님께서 아빠, 엄마와 어린 네 천사‘와 함께 저를 마중 나오시는 것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마침내 저는 영원한 가정의 참된 삶을 영원히 누릴 것입니다. (p177)
☞ 잠시의 나그네살이를 거쳐 영원한 고향에서 산다는 것이 하느님의 계획인 것이다.
곧 떠나야 할 마리 언니의 곁을 한순간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마리 언니가 참아야 할 행동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요. 언니의 방 앞을 지날 때마다 방문을 열어 줄 때까지 두드리고는, 문이 열리면 온 마음을 다해 언니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앞으로 키스를 받지 못하게 될 때를 생각해서 간직해 두고 싶었던 것입니다. (p183-184)
☞ 큰 언니인 마리 언니도 가르멜에 가게 되었던 것이다.
제5장 크리스마스의 은총 이후(1886~1887)
셀린 언니가 제 작은 도움을 받고 좋아하거나 깜짝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면, 저는 눈물을 흘리며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또한 저는 감수성이 너무 예민해서 사람들을 힘들게 하곤 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어떤 사람에게 무심코 걱정을 시키게 되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처럼 울음을 터뜨려서 잘못을 더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잘못에 대한 걱정을 잊을 때쯤이면, 이번에는 운 것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주위에서 아무리 타일러도 이 결점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p191)
제가 어린아이에서 탈피하게 된 은혜, 한마디로 제가 완전한 회개의 은혜를 받은 것은 1886년 12월25일이었습니다. (p192)
하느님께서는 저를 영혼의 어부로 만드셨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그토록 생생하게 느껴 보지 못했던 희망, 즉 어부가 되어 일하고 싶은 강렬한 희망을 느꼈습니다. 한마디로 제 마음 안에 애덕(愛德)이 깃들고 기쁨을 심기 위해서는 자신을 잊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때부터 저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p194)
어느 주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우리 주 예수님의 사진을 보다가 거룩한 그분의 한쪽 손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피가 땅에 떨어지는데 그것을 서둘러 받으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제 마음은 쪼개지는 듯이 아팠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언제나 십자가 아래에 지키고 서서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하느님의 이슬을 받아, 그것을 영혼들 위에 쏟아 주기로 결심했습니다. (p195)
십자가 위 예수님의 “목마르다”(요한 19,28)라는 부르짖음이 쉴 새 없이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이 말씀은 제 마음속에 치열한 열정이 타오르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께 마실 것을 드리고 싶었고, 제 자신도 영혼의 갈증으로 목이 타는 것으로 느꼈습니다. 저를 이끈 것은 성직자들의 영혼이 아니라 죄인들의 영혼이었고, 영원한 불꽃에서 죄인들의 영혼을 빼내고 싶은 욕망에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p195)
저는 큰 죄인 한 사람이 무서운 죄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회개를 하지 않고 죽게 될 것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막고 싶어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했습니다. 그리고 제 힘으로는 아무 것도 못하는 것을 아는 만큼, 우리 주 예수님의 무한한 공로와 성교회의 보배를 하느님께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셀린 언니에게 제가 바라는 것을 위해 미사를 드려 달라고 청했습니다. 이것이 대죄인 프랑지니를 위해서라는 것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저 자신은 감히 청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셀린 언니에게도 비밀로 하려고 했지만, 언니가 너무나 다정하게 자꾸만 물어봤기 때문에 비밀을 이야기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제 비밀을 비웃기는커녕 자청해서 죄인의 회개를 도우려 했으므로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p196)
제 기도를 확실히 들어 허락하시리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느끼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죄인들을 위해 기도할 용기를 얻기 위해서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불행한 프랑지니를 용서해 주시리라는 것을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만일 그가 고백을 하지 않고 또 아무런 통회의 표시를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을 만큼 예수님의 무한한 인자하심을 믿습니다. 그러나 저를 위로해 주시기 위해 그가 통회했다는 표징 하나만 보여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 (p196)
제 기도는 글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사형이 집행된 다음날, 저는 〈라 크루아(십자가)〉신문을 집어 들었습니다. 부리나케 펼치니, 이게 웬일입니까? 아! 전 감격한 나머지 눈물이 나와서, 신문을 덮고 달아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프랑지니는 통회를 하지 않고 교수대에 올라가서 그 잔인한 구멍에 목을 들이밀려고 하다가, 갑자기 영감에 이끌려 몸을 돌이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부가 내미는 ‘십자가’를 빼앗아 들고 그 ‘거룩한 상처에 세 번 입을 맞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의 영혼은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루카 15,7)하신 하느님의 자애로운 심판을 받았습니다. (p197)
☞ 놀라운 체험이다. 그리고 미사의 은혜다.
이렇게 저는 하느님께 청한 표징을 받았고,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게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하신 충실한 은혜의 표지였습니다. 영혼의 목마름이 제 마음속에 스며든 것은 예수님의 상처에서 그 거룩한 피가 흐르는 것을 보았던 때가 아니었습니까? 그 영혼들의 죄를 씻어 주기 위해서 그들에게 이 깨끗한 피를 마시게 해 주고 싶었는데, 제 첫 번째 영혼은 그 거룩한 상처에 입을 맞춘 것입니다! 얼마나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대답입니까?(p197-198)
아! 더할 수 없는 이 은혜를 받은 뒤부터 영혼을 구하고자 하는 제 바람은 날로 커져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요한 4,7)하고 제게도 속삭이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p198)
그것은 진정한 사랑의 교환이었습니다. 즉 영혼들에게는 예수님의 피를 주고 예수님께는 거룩한 이슬로 생생해진 영혼들을 바쳤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저는 예수님의 목을 축여 드리는 것 같았는데, 예수님께 마실 것을 드릴수록 제 영혼의 목마름은 점점 더해 갔으니 하느님께서는 이 심한 갈증을 당p신의 가장 소중한 음료수처럼 제게 주셨던 것입니다.(p198)
☞ 성녀는 ‘영혼의 구원’을 위해 살았다.
오래전부터 저는 ≪준주성범≫을 ‘고운 곡식 가루 음식’처럼 먹으며 살아왔습니다. 복음에서 숨은 보배를 찾아내지 못했으므로, 이 책이 유일하게 제게 이익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준주성범≫의 모든 장을 거의 외우고 있었고, 그 책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p201)
☞ 성녀에게 가장 영향은 준 책을 들라면 ≪준주성범≫이라하겠다.
그분은 영성체를 통해 제가 감히 바랄 수 없을 만큼 당신을 자주 제게 주셨습니다. (p205)
제가 작고 약하기에 그분은 제게 몸을 굽히시고 당신 사랑의 비밀을 가만히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아! 만일 예수님을 연구하는 데 평생을 바친 학자들이, 고작 열네 살 된 아이가 그들의 학문으로도 알아내지 못했던 그분 사랑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을 봤다면 틀림없이 놀랐을 것입니다. 그 비밀을 알려면 영혼이 가난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까! (p207)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영적 찬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나에게 인도자는 내 마음속에 반짝이는 빛뿐이라네. 한낮의 햇빛보다도 더 밝은 이 빛은 나를 확실하게 인도하여, 내 속까지 잘 아는 그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는구나.” 그 기다리는 곳이란 곧 ‘가르멜’이었습니다. (p207)
마리 언니는 제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제가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원장 수녀님까지도 제가 가르멜에 들어오는데 시련을 겪게 하시고, 몇 번이나 저의 갈망을 늦추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p208)
셀린 언니는 제 싸움과 괴로움에 대해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됐고, 언니는 자신의 성소에 관한 것처럼 제 괴로움도 똑같이 한몫 받았습니다. 이처럼 셀린 언니의 반대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아빠에게는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몰랐습니다. (p210)
이미 언니 셋을 하느님께 바친 분에게, 어떻게 또 당신 여왕을 보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아! 이것을 말할 용기를 내기까지 얼마나 많이 마음속의 싸움을 겪었는지요! (p210)
저는 눈물을 흘리며 가르멜에 들어가고 싶은 소망을 고백했고, 들으시던 아빠도 함께 우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주님의 성소를 따르지 못하게 하는 말씀은 한마디도 안 하시고, 다만 그렇게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 사정을 잘 말씀드리니까, 곧고 소박하신 성격의 아빠는 즉시 제 소원이 자신의 것과 같음을 아시고, 하느님께서 당신 아이들을 요구하심으로써 큰 행복을 주셨다고 깊은 신심으로 말씀하셨습니다. (p211-212)
별로 높지 않은 담 가까이 가셔서 백합을 작게 만들어 놓은 것처럼 생긴 작은 흰 꽃을 가리키면서, 한 송이를 따서 제게 주셨습니다. 이어서 주님께서 얼마나 정성스럽게 꽃을 피우시고 오늘까지 보존하셨는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저는 저의 내력을 듣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작은 꽃과 작은 데레사를 위해 하시는 일은 그만큼 비숫한 점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 꽃을 소중한 유물처럼 받았습니다. (p212)
아빠가 꽃을 뿌리 하나 상하지 않게 온전히 뽑으신 것을 보고, 저는 그것이 처음 며칠 동안 물을 빨아들인 부드러운 이끼 속에 살기보다는 좀 더 기름진 다른 땅에서 더 오래 살도록 마련된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아빠는 제 생애의 첫걸음을 걸었던 띠뜻한 골짜기를 떠나 ‘가르멜’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허락하심으로써, 꽃에게 하신 행동과 같은 것을 저에게도 몇 분 전에 하셨던 것입니다. (p213)
저는 이 작은 흰 꽃을 ≪준주성범≫ 2권의 ‘예수님을 모든 것 위에 사랑함’이라고 쓰인 장에 넣었고, 아직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꽃줄기가 뿌리 근처에서 부러졌는데, 그것은 하느님께서 오래지 않아 당신 작은 꽃의 뿌리를 끊어서, 땅에서 시들게 내버려 두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이렇게 보여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p213)
영혼의 깊은 밤이었습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예수님처럼, 저는 지상에서도 천상에서도 위로를 받지 못해 고독했고, 하느님께서도 저를 버리신 것 같았습니다! 자연도 제 절절한 슬픔을 아는 듯, 그 사흘 동안은 햇살 한 가닥조차 구경할 수 없었고 비는 억수같이 쏟아졋습니다. (p215)
언제나 신기하게 느꼈던 일인데, 일생의 중대한 일을 겪을 때마다 자연은 제 영혼의 모상이 되었습니다. 제가 울 때는 하늘도 함께 울고, 제가 기뻐할 때는 태양도 기쁜 빛을 가득히 쏟아 주어,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습니다. (p216)
사랑하는 원장 수녀님, … 수도원의 총장 신부님이 제가 스물한 살이 되기 전에는 저를 들일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당신께 들었을 때, 저의 놀라움과 슬픔이 어떠했겠습니까.……, 이제까지 중에 가장 이겨 내기 힘든 이 반대는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p218)
눈물에 젖어 총장 신부님의 사무실을 나섰는데, 다행히 비가 폭포같이 쏟아져서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우산으로 가릴 수 있었습니다. (p219)
하느님께서 일을 하시는 데에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으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생명이 나게 하는 일은 도맡아 하시면서도, 영혼을 가꾸는 일은 사람의 손을 빌리고자 하십니다. 이는 마치 재주 있는 산지기에게 필요한 지식을 주셔서 귀하지만 약한 약초를 가꾸게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p222)
☞ 하느님을 사람을 영혼을 가꾸는 일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주교님께서는 우리를 뜰까지 배웅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제가 나이가 더 들어 보이게 하려고 머리를 올려 묶었다는 말을 아빠에게 들으시고 무척 재밌어하셨습니다.(그건 약간의 효과가 있었는데, 이후에 주교님께서 제 이야기를 하실 때에는 머리를 올려 묶었던 이야기를 빼놓지 않으셨습니다.) (p230-231)
레베로니 신부님은 주교관 정원 끝까지 우리를 배웅해 주시며 아빠에게 “딸이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려고 하는 만큼 그 아버지가 자기 아이를 하느님께 즐겁게 바치려는 일은 생전 처음 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p231)
제6장 로마로 떠나다(1887)
셀린 언니와 저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여행에서는 순례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류 사회의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아! 우리는 위축되고 어리둥절하기는커녕, 그 많은 작위와 ‘de' 표시가 우리에게는 한 줄기 사라질 연기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멀리서 보면 때때로 눈을 현혹시켰으나 가까이 가보니 ’빛나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p235)
저는 “세상 위대한 이름이 주는 영향에 개의치 말고, 많은 사람들과 친밀히 지내려고 하지 마라. 어느 누구와도 사사로운 정을 주고받는 데 관심을 두지 마라.”하신 ≪준주성범≫의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p235)
한 달 동안 거룩한 신부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분들이 자신들의 높은 지위로 인해 천사들보다 뛰어나다고 해도, 역시 연약한 인간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p237)
영혼을 구하는 소금을 보존하려는 우리의 사명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것이 ‘가르멜’의 사명입니다. 신부님들이 말과 특히 표양으로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동안,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이러한 ‘신부님들의 신부님’이 되는 것이 우리의 기도와 희생의 유일한 목적입니다. (p237)
이렇게 풍성하게 전개된 자연의 아름다움이 제 영혼에 얼마나 커다란 이익을 주었겠습니까! 제 영혼은 잠시 동안만 머무르는 귀양살이 땅에도 이러한 걸작품을 만들어 주신 하느님께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제 눈으로 모든 것을 다 볼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기차 안에 서서 거의 숨을 못 쉬고 있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앞에서 전개되는 또 다른 황홀한 풍경이 펼쳐져서, 기차 양쪽에 다 서고 싶었습니다. (P242)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신”(1코린 2,9) 제 마음을 엿본 지금, 저는 지푸라기 같은 작은 것에 애착을 가지는 그런 불행한 짓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P244)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영화로운 궁전을 마련해 주셨고, 거기서 우리는 어린아이로서 흰 제병 속에 숨어 계신 하느님이 아닌, 무한한 영광의 광채 속에 계시는 하느님 그대로를 뵐 것입니다! (P250)
저보다 더 신중한 셀린 언니는 안내자의 설명을 들었으므로, 십자 모양으로 조그만 돌을 깔아 놓은 자리가 순교자들이 싸우던 곳임을 기억하고 그곳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곧 찾아내어 그 거룩한 땅에 무릎을 꿇었을 때, 우리는 한마음이 되어 같은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어서 그리스도인들의 피로 붉게 물든 땅에 입술을 대었을 때, 제 가슴은 크게 뛰었습니다. 저도 예수님을 위해 순교자가 되고자 하는 은혜를 구했는데, 허락되었음이 마음속 깊이 느껴졌습니다. (P253)
저는 교황님을 뵙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습니다. 주교님의 회답은 오지 않았고, 원장 수녀님의 편지를 통해 주교님이 제 일에 큰 관심을 두시지 않았음을 알았기 때문에, 제 성소는 모두 교황님께 달려 있었습니다. 즉 제 유일한 희망은 교황님의 허락이었습니다. (P256)
그러나 이 허락을 얻으려면 여러 사람 앞에서 감히 교황님께 수도원 입회를 청해야만 했는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렸습니다. 알현 전에 제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는 하느님과 사랑하는 셀린 언니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셀린 언니가 모든 시련을 저와 함께 받던 일은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제 성소가 바로 언니의 것인 듯했습니다. (P257)
그날의 복음에는 아래와 같은 반가운 말씀이 있었습니다.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루카 12,32)라는 이 말씀을 들으며 저는 조금도 겁내지 않고, 곧 가르멜의 나라가 제 차지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P258)
저는 교황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발에 입 맞추어 드리자, 교황님께서 저에게 손을 내미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교황님의 손에 입 맞추는 대신에 제 손을 마주 잡고 눈물 맺힌 얼굴을 들어 교황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렇게 간청했습니다. “교황님, 큰 은혜를 청할 것이 있습니다……!” (P259-260)
그러자 교황님께서는 당신 얼굴이 제 얼굴에 거의 닿을 만큼 제게 머리를 숙이셨습니다. 그 검고 그윽하신 눈이 제게 멈추어 영혼 속까지 꿰뚫으시려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교황 성하, 성하의 금경축 기념으로 제가 열다섯 살에 가르멜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p260)
“아! 그래. 그럼 그분들이 하라는 대로 하거라.” 하고 교황님께서는 저를 다정하게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손으로 교황님의 무릎을 짚고, 마지막 힘을 다해서 이렇게 간청했습니다. “교황성하! 성하께서 좋다고 허락하시면, 모든 이가 다 따를 것입니다……!”(p261)
교황님께서는 저를 뚫어지게 들여다보시더니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시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좋아…… . 좋아…… .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들어가게 될 테지……!” (그분의 말씀이 어찌나 제 마음을 파고드는 듯하고 신념에 차 있던지 지금도 들리는 듯합니다.) (p261)
☞ 가르멜에 들어가기 위하여 교황님까지 만나기까지 하는 성녀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것은 예수님을 향한 열정이 아닐까!
저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수행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기 때문에, 마음속 깊이 큰 평화를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평화는, 아주 깊숙이 숨어 있었고, 제 마음에 꽉 찬 것은 슬픔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 마음에 계시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당신의 존재를 알려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날도 해가 비칠 기미도 없이, 이탈리아의 곱고 푸른 하늘은 검은 구름에 뒤덮여 저와 함께 울고 있었습니다. (p263)
아! 모든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제 여행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더 이상 여행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저는 그때 교황님의 마지막 말씀에서 위로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 말씀은 진실한 예언이 아니었습니까? (p263)
과연 모든 장해를 물리치고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시고, 당신 뜻을 좇도록 하셨습니다. (p263-264)
저는 얼마 전부터 저를 ‘장난감’으로 삼아달라고 아기 예수님께 저를 바쳤습니다. 어린아이들이 감히 손도 대지 못하고 들여다보기만 하는 비싼 장난감처럼 저를 다루지 마시고, 아무 가치도 없는 작은 공처럼 다루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땅에 던지거나, 발로 차거나, 구멍을 내거나, 구석에 처박아 두거나, 그러다 혹시 마음에 내키면 가슴에 꼭 껴안거나, 마음대로 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저는 ‘아기 예수님을 즐겁고 기쁘게 해 드리고, 아기 예수님께서 하고 싶으신 대로 맡겨 드리려고’ 했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제 기도를 듣고, 이를 허락하셨습니다. (p264)
☞ 예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귀여웠을까!
아! 저는 기쁨이란 우리를 둘러싼 물건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왕궁 안에서와 마찬가지로 감옥 안에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제가 가르멜에 들어와 안팎으로 시련을 겪으면서도, 생활에 필요한 온갖 것을 다 갖고 아빠의 집에서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살던 세속에서의 삶보다 더 행복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p267)
"잠들었지만 …… 마음은 깨어있는“(아가 5,2)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주셨습니다. 즉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마태 17,20) 가진 자에게는 그 작은 믿음을 굳게 해 주시기 위하여 기적을 내려 옮겨 주시지만, ‘당신께 가까운 이들과 당신 어머니께는 그들의 신앙을 시험하신 후에야 비로소’ 기적을 내리셨다는 것입니다. (p276)
라자로가 병이 들었다고 마르타와 마리아가 알렸는데도 예수님께서는 그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까?(요한 11,3-6 참조) 또 가나의 혼인 잔치에 갔을 때 성모님께서 주인을 도와 달라고 예수님께 청하셨는데도,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 하고 대답하지 않으셨습니까? (p276)
그러나 이러한 시험이 지난 뒤에는 얼마나 큰 보상이 있었습니까! 물은 술로 변하고, 라자로는 부활했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린 데레사에게도 이렇게 하셨으니, ‘오랫동안’ 시험하신 뒤에 저의 소원을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p276)
제가 극기라고 한 것은 고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고행이라고 할 만한 것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 고행을 하시는 훌륭한 분들과는 다르게 고행에 대해서는 아무런 매력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p278-279)
저는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귀여움을 받으면서, 아무런 고행도 할 필요가 없는 작은 새처럼 보살핌 받았던 것입니다. 제가 하는 극기하는 것은 그저 마음대로 하고 싶은 생각을 접고, 언제나 남을 도와줄 준비를 하며, 말대꾸를 하지 않고, 남몰래 선행을 베풀고, 앉을 때 등을 기대지 않는 등 사소한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작은 일들을 하면서 예수님의 약혼자가 될 준비를 하였습니다. (279)
제7장 가르멜 수녀원에서 생활을 시작하다(1888-1890)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마음에 내려오시자, 제 주위에는 흐느껴 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저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도원 문을 향하여 가라는 눈짓을 보자, 가슴이 어찌나 심하게 뛰는지 발을 옮겨 놓기가 힘들었습니다. 가슴이 이렇게 심하게 뛰다가 죽는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아! 그 순간은 직접 겪어 본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p283)
제 첫걸음은 장미보다 가시를 더 많이 만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괴로움은 두 팔을 벌리고 저를 맞이했고, 저는 그 품에 반갑게 뛰어들었습니다. (p284-285)
제가 수도원에서 하려고 한 것은 서원식을 하기 전 시험 기간 동안 예수님의 거룩한 발 아래에서 맹세한 것처럼 ‘영혼들을 구하고 특히 신부님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면 그에 맞는 방법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영혼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기에, 괴로움이 더하면 더할수록 괴로움에 끌리는 마음이 더해 갔습니다. (p285)
고해를 드리신 후, (피숑) 신부님께서는 제 영혼의 가장 큰 위안이 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위해 해 주신 모든 일들에 감사드리세요. 만일 하느님께서 당신을 버리시면 작은 천사는커녕 작은 악마가 될 테니까요.” (p286)
아! 저는 그 말을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인지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의 마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p286)
"남이 너를 몰라주고 남이 너를 하찮게 여기는 것을 오히려 더 좋아해야“(준주성범 1권2,3)하고, ”자기를 천하게 여기고 남에게 업신여김 받기를 원하는 것“(준주성범 2권12,9)만이 가장 현명하다는 것을 천상에 왕국을 가지신 분이 제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p290)
아! 제 얼굴도 예수님의 얼굴과 같이 남들이 보면 눈을 가리고, 이 세상 사람들에게 멸시만 받는 것이(이사 53,3 참조) 저의 소원이었습니다. 저는 괴로움을 당하고 잊혀지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p290)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을 본받으신 아빠는 타고난 괄괄한 성격을 조절하실 수 있게 되어, 마치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천성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셨습니다. 그분은 이 세상 사물로부터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며, 현세의 고난을 쉽게 극복함으로써 하느님의 충분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매일 성체를 조배하는 동안 아빠의 얼굴은 눈물에 젖었고 얼굴에는 하늘의 행복과 기쁨이 넘쳐흘렀습니다. (p291-292)
레오니 언니가 성모 방문 수녀회에서 나왔을 때도 아빠는 괴로워하지 않으셨고, 사랑하는 딸에게 성소를 내려 달라고 기도한 것을 하느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신 데 대해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딸을 찾으러 가시는 것에 오히려 기쁜 얼굴을 하셨습니다. (p292)
☞ 성녀의 아빠는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다.
얼마나 고운 예수님의 마음입니까! 당신의 어린 약혼자의 바람을 채워 주시려고 눈을 내려 주신 것입니다. 아무리 권세가 있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눈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p295)
확실한 것은 온 동네가 제 착복식 날 눈이 온 것을 조그만 기적으로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눈을 좋아하는 것이 특이한 취향이라고들 했습니다! 이로써 눈처럼 흰 백합을 사랑하시는 그분, 동정녀들의 정배이신 분의 ‘높으신 자애’가 더 밝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 (p295)
수련기가 다 끝났는데도, 원장 수녀님은 저에게 총장 신부님이 반대하실 것이니 서원을 할 생각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덟 달이나 더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 . 처음에는 이런 희생을 당하는 것이 몹시 힘들었지만, 곧 제 마음속에 빛이 비쳤습니다. (p299)
하루는 기도하는 중에 서원을 하고자 하는 제 간절한 소망에 크나큰 자애심이 섞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위로해 드리고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하여 저를 드렸으니, ‘제가 하고 싶은 대로’해 주시기를 청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신부는 혼인날 제대로 꾸며야만 하는데, 저는 이런 준비를 하나도 하고 있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p299)
가난이란 마음에 드는 물건뿐 아니라 필요한 것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데에도 있음을 생각하고 오히려 기뻤습니다. 그래서 ‘어둠 가운데’ 있으면서도, 마음 속은 환히 빛났습니다……..(p301)
저는 큰 덕행을 닦는 것은 어려워했으므로, 작은 덕행을 닦는 데 힘썼습니다. 그래서 자매들의 망토 정리하는 것을 잊었을 때 정리해 주는 등 최대한 그들의 일을 돕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P302-303)
가르멜에 들어오기 전부터 하던 유일한 작은 고행은 앉을 때 의자에 등을 기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사람들이 제게 많은 고행을 허락했다면 제 열정은 오래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청할 필요 없이 제게 허락된 고행은 제 자애심을 억누르는 것이었기에, 제게는 육체적 고행보다 더 유익했습니다. (P303)
제8장 서원은 사랑의 봉헌 행위입니다(1890-1895)
드디어 즐거운 제 결혼날이 됐습니다. 그날은 구름 한 점 없었지만, 그 전날 제 마음속에 이제껏 경험한 적이 없는 폭풍이 일었습니다. 한 번도 제 성소를 의심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시련은 몹시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밤에 일시경(一時經)을 마친 후 십자가의 길을 할 때, 갑자기 제 성소가 한낱 꿈이나 환상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p309)
가르멜의 생활이 무척 즐거웠지만, 마귀가 그 생활은 제게 전혀 맞지 않으며, 제가 부르심을 받지 않은 길로 나아감으로써 웃어른들을 속인다고 확신하게끔 저를 부추겼던 것입니다. 제게 성소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마음이 캄캄했습니다. (p309-310)
아! 그때 제 마음의 번민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만일 지도 수녀님께 이런 저의 두려움을 말씀드리면, 수녀님이 서원을 못하게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이런 당치 않은 생각만 봐도 이것이 마귀의 유혹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제 뜻을 따라 가르멜에 남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세상으로 돌아가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지도수녀님에게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제 마음의 상태를 고백했습니다…… .(p310)
다행히도 지도 수녀님은 제 마음을 저보다 더 자세히 꿰뚫어 보시고, 저를 완전히 안심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겸손한 행동으로 인해, 제가 감히 이 생각을 고백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마귀는 달아나 버렸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제 의심은 바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겸손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원장 수녀님께도 제 이상한 유혹을 고백했더니, 웃음으로 받아넘기셨습니다. (p310)
거룩하신 즈느비에브 수녀님이 하늘나라에 들어가시는 ‘바로 그 순간’에 제 심경은 갑자기 변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열정이 넘쳐흘렀습니다. 마치 즈느비에브 수녀님이 자신이 이미 누리고 있던 행복과 기쁨의 일부분을 제게 나누어 주신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분이 곧장 천국에 가셨으리라 확신하니까요……. (p317)
저는 그분의 눈시울에 눈물 한 방울이 맺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것을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흘리신 눈물’은 떨어지지 않아서, 안장하기 위해 그분을 성당에 모셔 놓았을 때에도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눈물을 거두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녁에 아무도 모르게 얇은 헝겊 조각을 갖고 가서, ‘성녀의 마지막 눈물’을 유물로 차지했습니다…… . 그 후 저는 이 눈물을 제 소원이 담긴 작은 주머니 속에 넣어 항상 지니고 있습니다. (p318)
저는 제 영혼을 빈터로 생각하고, 빈터가 되는 데 장해가 될 수도 있는 ‘쓰레기’를 치워 주시기를 성모님께 청합니다. (p322)
저는 절대로 두려움의 길을 걷지는 않습니다. 저는 언제나 행복하게 되는 방법과 고난을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낼 줄 압니다. 물론 이것이 예수님을 불쾌하게 해 드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분도 이 길로 나아가는 것을 격려해 주시니까요. (p323)
그 때에 저는 정신적으로 여러 가지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때로는 천국이라는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조차 했으니까요). 이런 마음속의 생각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고해소에 들어가자마자, 제 마음이 활짝 개는 것을 느꼈습니다. 신부님에게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제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듯 저를 이해하셨습니다…… . 제 마음을 저보다 신부님이 더 잘 읽으시는 책처럼 느껴졌습니다. (p324)
☞ 성인들도 때로는 천국에 대한 의심을 한다. 완전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신부님은 “당신은 잘못으로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습니다.”하고 말씀하시고,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하느님께서 제 영혼을 무척 흡족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하느님을 대신해서’ 단언한다고 하셨습니다. (p325)
‘저의 잘못이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다’는 말을 이전에는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 확언은 제 마음을 기쁨으로 넘치게 했고, 이 세상 귀양살이를 참고 견디게 했습니다 …… (p325)
어떠한 꾸지람도 당신께서 한 번 쓰다듬어 주시는 것보다 저를 감동시키지 못했습니다. 저는 무서우면 뒤로 물러나고, 사랑을 받으면 앞으로 걸어 나갈 뿐만 아니라, ‘날아가기’까지 하는 그런 성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p335)
그분은 제가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은 하나도 갖지 못하게 하셨으니, 완덕을 지향하는 바람뿐만 아니라, 경험하지 않아도 그것이 헛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싶어하는 바람을 들어주셨습니다. (p327)
'솔로몬이 그토록 수고를 들였던 자신의 사업을 돌아보고 모든 일이 헛되고 마음을 번거롭게 할 뿐임을 깨달은 것‘처럼, 저도 행복이란 자기를 감추고 피조물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을 때 생긴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습니다. (p328)
그리고 사랑이 없으면 모든 사업이, 즉 죽은 자를 부활시키거나 만인을 회개시키는 것처럼 아주 위대한 일까지도 쓸모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p329)
제가 가르멜에 들어온 뒤부터 셀린 언니에 대한 애정은 우애임과 동시에 어머니의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셀린 언니가 밤에 열리는 파티에 가기로 한 날, 저는 하도 걱정이 되어 눈물까지 줄줄 흘리며 “언니가 춤을 추지 못하게 해 주세요.”라고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정말 제 기도를 들어주셔서, 당신의 어린 약혼자가 그날 밤 춤을 추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필요한 상황에서는 아무 거리낌 없이 춤을 추던 언니였는데 말입니다). 언니는 거절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청을 받았지만, 상대편 남자는 도저히 언니를 춤추게 할 수 없었습니다. (p330)
아빠를 잃고 힘든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감사 기도를 하는 동안 예수님께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 아버지가 ‘곧장 천국으로’ 올라가셨는지를 제가 얼마나 알고 싶어 하는지 잘 아시지요. 저는 당신께서 제게 말씀이 아닌 어떤 표징 하나만이라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예수의 애매 수녀’가 셀린 언니의 가르멜 입회를 찬성하든가 적어도 반대하지 않는다면, ‘아버지는 당신과 함께 바로 천국으로 올라가셨다’는 대답으로 알겠습니다. (p332)
당시에 예수의 애매 수녀는 우리 자매 중에 벌써 셋이나 가르멜에 들어와 있는 것을 지나치다고 생각해서 한 사람 더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손에 쥐시고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기울이시는 하느님께서는, 이 자매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켜 주셨습니다. 영성체 후 기도를 바친 뒤 제일 처음 만난 이가 이 자매였는데, 다정한 얼굴로 저를 방으로 부르더니 눈물을 글썽거리며 셀린 언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 제 모든 소원을 모두 살펴 주시는 예수님께 얼마나 많은 감사를 드려야 하는지요…… .(p332)
제가 죽음과 괴로움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 둘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저를 끌어당기는 것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 저는 오랫동안 이 세 가지를 다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괴로움을 차지하였고, 그래서 천국의 언덕에 닿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작은 꽃이 봄이 다 가기 전에 꺾어지리라 생각했습니다. (p333)
☞ 성녀는 자신의 짧은 삶을 예견한 듯 하다
오늘날 저를 인도하는 것은 오직 하느님의 거룩한 뜻에 저를 모두 맡기는 것뿐이고, 다른 나침반이라고는 없습니다! 이제는 세상의 방해를 받지 않고 제 영혼이 하느님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만 열렬히 구할 뿐입니다. (p333)
☞ 자신을 오롯이 하느님께 맡기는 것, 영성의 끝이 아닐까!
저는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영적 찬가≫에 나오는 아래의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그윽한 술광에서 나는 마셨네. 그리고 밖으로 나오니 허허벌판이라 아는 것이 전혀 없네. 기르던 양 떼도 잃고 말았구나…… . 내 영혼이 모든 힘을 다하여 그를 섬겼네. 이제는 양 떼도 없고, 할 일이 아무것도 없으니, ‘이제는 오직 사랑하는 것만이 나의 일이구나.’” 또한 “내가 사랑을 맛본 뒤로 ‘사랑’은 ‘모든 것’에서 이익을 취할 줄 안다네. 내 영혼을 ‘사랑’으로 바꿀 만큼 위대한 일을 하도다.” (p333-334)
‘사랑’의 길이란 얼마나 기쁜 것입니까. 물론 우리는 그 길에서 넘어질 수도 있고, 신의를 저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서 이익을 취할 줄 아는’ 사랑은 예수님의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즉시 모두 태워 버리고, 마음에는 겸손하고 아늑한 평화만을 남겨 둡니다. (p334)
☞ 사랑의 길에서 넘어진다고 실의에 잠길 필요는 없다. 다시 일어나면 된다.
≪성경≫과 ≪준주성범≫이 저를 구원해 줍니다. 저는 책에서 단단하고 ‘깨끗한’ 양식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중에 제게 말을 건네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복음이어서, 제 가엾은 작은 영혼에 필요한 것은 모두 거기서 찾아냅니다. 또한 복음에서 언제나 새로운 빛과 신비롭고 숨겨진 뜻을 찾아냅니다…… .(p335)
저는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라는 것을 깨닫고, 또 경험으로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을 가르치는 데 책이나 학자를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학자 중의 ‘학자’이신 그분은 요한한 소리 없이 가르치십니다(준주성범 3권43,3). (p335)
저는 그분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은 없지만, 그분께서 제 안에 계신 것을 느낍니다. 예수님께서는 시시각각으로 저를 인도하시고, 제가 해야 할 말과 행동을 알려 주십니다. 그것이 작용을 할 때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빛을 보게 됩니다. 보통 이런 빛은 기도를 드릴 때가 아니라, 오히려 그날그날의 일을 해나가는 중에 보게 됩니다. (p335)
주님께서는 공의(公義)하신 분이라는 것을, 즉 우리의 약함을 잘 이해하시고, 우리 본성의 연약함을 잘 아심을 생각하면 얼마나 기쁩니까. 그러니 제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아! 탕자의 모든 잘못도 그렇게 인자하게 용서해 주시는 무한히 공의하신 하느님께서 ‘늘 당신과 함께 있는’(루카 15,31 참조) 저에게도 ‘공의하실’것이 아닙니까? (p336)
☞ 돌아온 탕자를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보며 우리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당신은 사랑을 풍부히 베풀고자 하시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당신 품에서 무한한 ‘사랑’을 받아들이는 대신, 피조물에게 달려가 그들의 보잘것없는 애정을 통해 행복을 구하려고 합니다…… . (p337)
하느님! 푸대접을 받은 당신의 사랑이 당신의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까? 만일, 당신의 ‘사랑’에 희생 제물로 자신을 바치는 영혼이 있다면, 당신은 곧 그 영혼들을 살라 버리시고, 당신 속에 품으신 무한한 애정의 물결을 억제하지 못함을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p337)
당신의 인자하신 사랑은 얼마나 더 영혼들을 사르고 싶으시겠습니까? 예수님! 저에게 이 행복한 희생을 하게 허락하시어, 당신의 작은 제물을 ‘하느님의 사랑’의 불로 태워 주십시오……! (p338)
'사랑‘의 ’불‘은 연옥의 불보다도 영혼을 더 거룩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쓸데없는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압니다. (p338)
아! 사랑의 길이란 얼마나 기쁩니까…… . 언제나 하느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 그 뜻을 이루는 데 제 모든 힘을 기울이기를 얼마나 바라는지요! (p339)
큰 사랑을 받은 것에 보답하는 길은 큰 사랑을 드리는 것뿐이다. (p343)
제2부 성심의 마리아 수녀에게 보낸 편지
제1장 나의 소명은 사랑(1897)
제가 위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세상에서 그런 위로를 받지 않는 것이 저에게는 오히려 위로가 됩니다. (p348)
우리를 하느님의 마음에 들게 해 주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는 것, 이 사랑만이 제가 탐내는 보물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p349)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이사 66,13) ”너희는 젖을 빨고 팔에 안겨 다니며 무릎 위에서 귀염을 받으리라.“(이사 66,12) 사랑하는 대모님! 이러한 말씀을 들었으니, 어떻게 사랑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p350)
아! 모든 영혼 가운데 가장 어린, 당신의 어린 데레사가 느끼는 것을 약하고 불완전한 모든 영혼들이 느낀다면, 사랑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지 못하겠다고 낙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위대한 행동을 바라시는 게 아니라, 다만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믿음과 감사의 정을 바라실 뿐이기 때문입니다. (p350)
☞ 어린아이처럼 엄마에게 온전히 맡기면 된다. 그것뿐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오직 이것뿐입니다. 그분께는 우리의 행동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p351)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요한 4,7)라고 말씀하셨을 때, 천지의 창조주가 가련한 피조물에게 청하신 것은 물이 아닌 ‘사랑’이었습니다. 그분은 사랑에 물마르셨던 것입니다. (p351)
저는 천국이 있으며, 그곳에는 저를 아이처럼 여기고 귀여워해 주는 영혼들이 가득한 것을 느끼고 믿게 됐습니다. (p357)
오직 사랑만이 교회의 모든 지체를 움직이게 한다는 것과, 사랑의 불이 꺼진다면 사도들은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못할 것이며, 순교자들은 피를 흘리려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 그리고 ‘사랑’은 모든 성소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모든 시간과 모든 것도 포함한다는 것…… , 즉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p362-363)
저는 미칠듯한 기쁨에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오, 제 사랑이신 예수님…… , 제 성소를 마침내 찾았습니다. 제 성소는 사랑입니다.”(p363)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제 자리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이 자리를 제게 주신 분은 바로 당신이십니다…… , ‘어머니이신 교회의 마음’속에서 저는 ‘사랑’이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되겠습니다…… , 이렇게 저의 꿈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p363)
저는 힘없고 약한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제가 ‘당신 사랑의 희생으로’ 저를 드릴 용기를 내는 것은, 제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깨끗하고 흠없는 제물만을 ‘강하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받아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완전한 희생이 필요했지만, ‘두려움의 법’을 ‘사랑의 법’이 물려받았고, 사랑은 약하고 불완전한 피조물인 저를 제물로 선택했습니다……, 이 선택은 ‘사랑할 만한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사랑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허무까지 내려가, 허무를 ‘불’로 바꾸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p364)
오! 예수님, 사랑은 사랑으로밖에 갚지 못한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그래서 당신의 ‘사랑’을 ‘사랑’으로 갚아, 제 마음을 위로할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세속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 너희는 영접을 받으며 영원한 집으로 들어갈 것이다.”(루카 16,9 참조) 주님, 이것이 당신께서 제자들에게 “세속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영리하다.”(루카 16,8참조)라고 말씀하신 후에 주신 교훈이었습니다. 빛의 아이인 저는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그리고 ‘모든 성소를 차지하고자 하는‘ 제 소원이 저를 불의 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소원들을 ’제 벗을 만드는데‘ 썼습니다…… . (p364)
제가 당신께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꽃을 던지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조그만 희생 하나, 눈길 한 가닥, 말 한마디 놓치지 않은 것 등 아주 작은 것들을 사랑을 증거하는 데 이용하는 것입니다…… . 저는 사랑으로 괴로움을 받고, 사랑으로 즐거움을 맛보고 싶습니다. (p367)
오, 저의 예수님!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어머니이신 교회를 사랑합니다. “깨끗한 사랑에서 나오는 아주 작은 행동이 다른 사업을 모두 모은 것보다도 교회에 유익하다.”라는 것을 기억합니다.(p368)
예수님,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데, 당신의 사랑을 차지하고 누리게 된다면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p369)
때때로 이 작은 새의 마음은 폭풍우에 시달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캄캄한 구름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때야말로 약하고 ‘가엾은 작은 새’에게는 오히려 가장 기쁜 순간입니다. (p370)
자신에게 믿어지지 않는, 보이지 않는 이 빛을 똑바로 쳐다보려고 남아있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예수님, 저는 지금까지 이 작은 새가 당신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을 보고 그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p370)
이 작은 새는 그대로 내어놓고 믿음으로써 더 큰 힘을 얻고,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마태 9,13) ‘그분’의 사랑을 더 가득히 받으리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p371)
그러나 ‘찬미 받는 태양’이 이 슬픈 지저귐을 못 들은 척 숨어 계시면, 이 작은 새는 젖은 채로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받게된 이 괴로움을 오히려 기뻐합니다…… .(p371)
오, 예수님! 당신의 ‘작은 새’가 약하고 작은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가 컸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그랬다면 절대로 당신 계신 곳으로 담대하게 나가지도 못할 것이며, 당신 앞에서 졸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 (p371-372)
☞ 예수님 앞에서 졸고 있는 성녀의 모습은 얼마나 귀여운가!
그는 선망의 목표인 이글이글 타는 태양을 향해서 독수리처럼 날아 올라가는 천사들과 성인들에게 기도합니다. 그러면 이 독수리들은 그들의 작은 동생을 불쌍히 여겨 그를 보호하고 지켜주며, 그를 잡아먹고 싶어하는 다른 독수리들을 쫓아 버립니다. (p372)
오, ‘거룩한 말씀’이시여, 저를 이끌어 주시는, 제가 사랑하는 독수리는 당신이십니다. 귀양살이 땅으로 내려오시어 영원히 행복한 성삼으로 끌어가시기 위해 괴로움을 받고 죽음을 원하시던 분도 당신이십니다. 이후에 당신의 거처가 될, 가까이하지 못할 ‘빛’으로 다시 올라가신 분도 당신이십니다…… .(p373)
흰 제병 모양 안에 숨어서, 아직도 눈물의 골짜기에 머물러 계신 분도 당신이십니다. 영원한 독수리시여, 당신의 거룩한 시선이 끊임없이 제게 생명을 주시지 않는다면 작은 새는 허무 속으로 다시 빠져 들어가게 될 것이기에, 작고 가엾은 저를 당신의 거룩한 영양분으로 기르려고 하십니다…… .(p373)
예수님, 저는 큰일을 하기에는 너무도 작으니…… , 저의 ‘맹목적인’것은 당신 ‘사랑’이 저를 희생으로 받아 주시기를 바라는 것분입니다. (p373)
오, 지극히 사랑하는 분, 당신께서 원하시는 때까지 당신의 작은 새는 힘도 날개도 없이, 줄곧 당신만을 똑바로 바라보며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는 당신의 거룩하신 눈길에 ‘홀리고’ 싶고, 당신 ‘사랑’의 먹이가 되고 싶습니다. (p374)
당신의 작은 새를 찾으러 오셔서 ‘사랑의 골짜기로 데려 가시고, 저를 희생으로 바친 사랑으로 이글이글 타는 구덩이에 영원히 담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p374)
오, 예수님! 모든 작은 영혼에게 당신의 닿을 수 없는 자애를 제가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당신께서 저보다 더 약하고 작은 영혼을 만나셨는데, 그 영혼이 당신의 무한한 인자하심을 굳게 믿어서 자신을 온전히 맡긴다면 당신께서는 큰 은혜를 넘치도록 내려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p374)
제3부 곤자가의 마리아 원장 수녀에게 보낸 글
원장 수녀님께서 저를 엄격하게 대해 주신 것을 마음속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작은 꽃에게 엄격한 훈육이라는 생명의 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소화는 이런 도움 없이는 뿌리를 내리지도 못할 만큼 너무 약했습니다. 이 은혜를 받게 해 주신 분도 원장 수녀님이십니다. (p381-382)
모든 사람들이 이 꽃에 몸을 낮추고 우러러보고 칭찬을 하더라도, 하느님의 눈에는 가엾은 작은 허무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음속에 느껴지는 진정한 기쁨에 조그마한 거짓의 기쁨도 더하지 못할 것입니다…… .(p382)
원장수녀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항상 성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 저를 성인들과 비교해 볼 때면, 구름을 찌르는 높은 산과 행인들의 발에 차이는 초라한 모래알 사이처럼 성인들과 저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늘 느낄 수 있습니다. (p384)
☞ 우리도 삶의 목표를 성인이 되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완덕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이루지 못할 소원을 내 마음에 생기게 하지는 않으실 거야. 그러므로 내가 아무리 조그맣더라도 성덕을 욕심낼 수 있겠지. 나를 크게 만드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 수많은 결점투성이인 나 그대로를 견뎌 나가야 할거야. 그러나 아주 곧고, 가깝고, 아주 새로운 작은 길을 통해 천국으로 올라가는 방법을 찾아내고 싶어. (p384-385)
주님께서 제가 바라는 엘리베이터로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며 《성경》을 찾아보았더니, “작은 이는 누구나 이리로 들어와라!”(잠언 9,4참조) 하시는 ‘영원한 지혜’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찾던 것을 발견한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그리고 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부르심에 대답한 ‘작은 이’에게 당신이 어떻게 하실 것인지 알고 싶어서 계속해서 찾아보았더니, 이런 말씀이 눈에 띄었습니다. (p385)
☞ 성녀와 ‘엘리베이터’는 어쩐지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이 시대에 이미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이사 66,13) ”너희는 젖을 빨고 팔에 안겨 다니며 무릎 위에서 귀염을 받으리라.“(이사 66,12) 아! 이보다 제 영혼을 더 기쁘게 하는 정답고 듣기 좋은 말씀은 없었습니다. 저를 하늘까지 들어 올려줄 에리베이터는, 오! 예수님, 당신 팔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저는 큰 사람이 될 필요가 없이 ‘작은’채로 있어야 하고, 오히려 점점 더 작아져야만 합니다. (p386)
주님, 당신은 제가 바라던 것 이상의 것을 주셨으니, 당신의 인자하심을 찬양하려고 합니다. “당신께서는 제 어릴 때부터 저를 가르쳐 오셨고, 저는 이제껏 당신의 기적들을 전하여 왔습니다.”(시편 71,17) 제게 있어서 나이가 들었을 때라는 것이 언제겠습니까? 주님의 눈에는 이천 년도 이십 년보다 길지 않고…… . 천 년도 지나간 어제와 같으시니(시편 90,4참조) 그때가 지금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p386)
저는 허영심을 가지기에는 ‘너무나 작고’, 또 저의 겸손을 보여 드리기 위해 아름다운 말을 쓰기에도 ‘너무나 어립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거룩한 어머니의 딸의 마음속에 큰 은혜를 베푸셨는데, 그중에도 가장 큰 은혜는 제가 ‘작고’ 무능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인정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p389)
어렸을 때에는 괴로움을 당하면 슬펐지만, 지금은 오히려 기쁨과 평화 속에서 괴로움을 당합니다. 저는 지금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 참으로 행복합니다. (p389-390)
지난해 사순 시기에 하느님께서는 제가 금식재를 완전히 지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금식재를 지킬 때 오히려 어느 때보다도 기운이 솟는 것을 느꼈는데, 이 기운은 부활 시기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성금요일에 예수님께서는 제가 머지않아 당신을 뵈러 천국으로 갈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 주셨습니다…… .(p390)
주님께서 인자하시고 자비하심을 이보다 더 깊게 깨달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분은 이 시련을 제가 견딜 수 있을 만한 때에 비로소 보내 주셨습니다. 좀 더 일찍 보내 주셨더라면, 근심에 빠져 버렸을 것입니다…… .(p398-399)
이제는 제가 천국으로 날아가는 것을 아무것도 막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사랑으로 인해 죽음에 이를 정도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 이외에는 더 큰 소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p399)
지금은 제가 아픈 것이 만약 하느님을 즐겁게 해 드리는 것이라면 평생 아프기를 간절히 바라고, 아픈 상태로 제 생명이 무척 오래 이어진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바라는 단 하나의 은혜는 사랑으로 인해서 부서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p400)
저는 오래 사는 것도 두렵지 않고 싸움도 피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 저의 하느님, 이 몸 피신하는 저의 바위, 저의 방패, 제 구원의 뿔, 저의 성채”(시편 18,3)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젊어서 죽기를 하느님께 청한 적은 없었으나,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기를 바라기는 했습니다. (p401)
"주님, 당신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저는 무엇이나 순종하겠습니다. 당신께서 바라신다면 슬픔으로 죽도록 괴로워하게 되는 것도 순종하겠습니다.“ (p404)
제 유일한 목적은 하느님의 뜻을 채우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그분을 위하여 저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p406)
괴로움을 아주 소중한 보물처럼 찾아다니면, 그것이 바로 큰 기쁨이 됩니다. (p407)
오래전부터 저는 이미 제 것이 아니고, 온전히 예수님께 바친 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는 저에게 당신이 하고 싶으신 대로 무엇이든지 하셔도 됩니다. (p407)
순명의 서원을 따를 때,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불안에서 해방됩니까! 순명에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수도자들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p407)
자신의 생각에 더 옳은 길로 보이는 곳으로 나아가 하느님의 뜻을 행하겠다는 구실 아래 어른들에게 순명하는 길에서 멀어지는 날이면, 영혼은 곧장 은총의 물이 없는 메마른 길에서 헤매게 됩니다. (p408)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에 힘을 써왔지만, 저의 사랑이 말로만 표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분을 사랑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마태 7,21)라고 하셨으니까요. 그분은 이를 여러 번 가르쳐 주셨으니, 복음서의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그런 말씀이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p409)
☞ 사랑은 말이 아닌 실천이 따라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원장 수녀님, 예수님의 이 말씀을 묵상하며 자매들에 대한 저의 사랑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 깨닫고,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제가 자매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p411)
참된 애덕은 다른 사람의 결점을 모두 참아 견디며, 그들의 약함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그들이 행하는 극히 조그만 덕행까지도 본보기로 삼는 것에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p411)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랑은 마음속 깊이 가두어 놓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마태 5,15)하고 말씀하셨지요. 이 들불은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비추고 즐겁게 해야 하는 애덕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p411)
☞ 사랑은 감추어 놓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것이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라고 명하셨을 때는, 아직 이 세상에 내려오시기 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아시는 만큼, 이웃을 그보다 더 사랑하라고 사람들에게 요구하실 수는 없으셨던 것입니다.(p411)
아! 주님, 당신께서는 할 수 없는 일을 명하시지 않는 분이심을 압니다. 당신께서는 제 약함과 불완전함을 저보다도 더 잘 아시며, 당신께서 ‘제 안에 계시어 자매들을 사랑하지’ 않으시면, 제가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것처럼 자매들을 사랑하지 못하리라는 것도 잘 아십니다. (p412)
오! 저에게 사랑하도록 하신 모든 이를 당신이 ‘제 마음속에서’ 사랑하고자 하신다는 것을 이 명령이 확실히 알려주기 때문에 이 명령을 사랑합니다! (p412)
제가 예수님과 일치하면 일치할수록 모든 자매들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p412)
☞ 예수님께서 그 자매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저는 제 마음의 싸움거리를 그렇게 많이 장만하여 주는 그 자매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대로 무엇이든지 도와주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에게 불쾌하게 대응하고 싶다는 유혹이 들 때면, 더욱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거나 더 좋은 화제로 이야기를 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준주성범≫에도 “다른 사람과 논쟁하여 공격하는 것보다는 그가 생각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더 낫다.”(3권44,1)는 말씀이 있으니까요. (p416)
변명을 하기 시작하면 분명히 제 마음의 평화를 잃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비난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제 덕이 굳세지는 못하니까 구원의 마지막 방법은 오직 도망가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실행에 옮겼습니다. …… 그러나 제 가슴이 어찌나 세게 뛰는지 멀리는 갈 수가 없어서, 계단에 걸터앉아 조용히 제 승리의 열매를 맛보았습니다. (p419)
☞ 얼마나 인간적인 성녀의 모습인가!
이제는 무엇에도 놀라지 않고, 저의 약함을 알아도 근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약함을 자랑으로 알고, 제게서 날마다 새로운 불완전함을 발견할 각오를 갖고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 준다.”(잠언 10,12)라는 말씀을 생각하고, 예수님께서 제 앞에 열어주신 이 풍부한 보물 창고에서 보배를 꺼냅니다. (p420)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는 것‘은 선뜻 행하기가 힘들어 보입니다. 꾸어 주느니 차라리 아예 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될 것입니다. 준 물건은 이미 자기 것이 아니니까요. (p429)
아! 예수님의 가르침은 얼마나 우리 본성의 감정과 어긋나는 것입니까! 은총의 도움 없이는, 그 교훈을 실행하기는커녕 이해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p429)
제2장 여러분이 내게 주신 것들(1896-1897)
하늘의 물건도 저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저에게 빌려주신 것이니, 도로 찾아가신다 해도 원망할 권리가 없습니다. (p432)
☞ 우리의 생명은 하느님의 것이다. 때가 되어 도로 찾아가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저는 영혼을 살지게 하고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게 해 주는 깊은 생각을 업신여기지는 않지만, 그것을 너무 중히 여기거나, 완덕 때문에 하느님께 좋은 생각을 많이 받게 된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함을 오래전에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생각이라도 훌륭한 행실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p434)
원장 수녀님, 당신은 예수님께서 그분 자녀들의 영혼 안에서 ‘큰일’을 이루고자 하실 때 예수님의 손이 사랑스럽게 잡는 귀중한 붓이고, 저는 잔손질을 하실 때 쓰이는 ‘아주 작은’ 붓입니다. (p436)
사랑이란 희생으로 자라는 것이므로, 영혼의 본성적인 만족을 물리치면 물리칠수록 애정은 더욱 강해지고 욕심을 초월하게 되는 것이지요. (p440)
제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당신께서 제게 맡기신 일이 어려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께 더욱 일치되려고 노력하는 것뿐이고, 다른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마태 6,33)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기대는 한 번도 어긋나지 않아서, 제가 맡은 하느님의 영혼에 양식을 줄 필요가 있을 때에는 하느님께서 언제든지 제 작은 손을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p442)
하느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선을 행한다는 것은, 한밤중에 햇빛이 비치게 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 (p443)
자신의 취미나 자신의 개인적 견해는 모두 잊어버려야 하고, 영혼들을 인도할 때는 자신의 길로 인도하려 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가르쳐 주신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p443)
아! 제 힘은 오직 기도와 희생에서 오는 것이고,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게 주신, 다른 사람이 저를 감히 이길 수 없게 하는 무기입니다. (p447)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기도를 많이 드립시다.“ (p449)
제게 있어서 기도는 하나의 열정이며, 하늘을 우러러보는 것, 기쁨을 맛보거나 시련을 당할 때에도 감사와 사랑을 부르짖는 것입니다. (p450)
저는 공동 기도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마태 18,20)라고 약속하셨으니까요. 그때는 자매들의 열심히 인해 저의 열심히 보충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혼자 있으면(고백하기가 부끄럽습니다) 묵주 기도를 하는 것이 고행의 띠를 매는 것보다도 힘이 듭니다.…… . 너무도 서툴게 외우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묵주기도의 오묘한 도리를 생각하려고 애쓰지만 잘 되지 않고, 정신을 가다듬지 못하고 맙니다…… . (p450)
저는 오랫동안 이토록 신심이 부족한 것을 괴로워했습니다. 제가 성모님을 그토록 사랑하니까,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문을 드리는 것도 쉬워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덜 괴로워합니다. 천상의 여왕님께서는 제 어머니시니, 제 성의를 보시고 그것으로 만족하시리라 생각하니까요. (p451)
☞ 성녀도 묵주기도를 분심없이 드리는 것을 힘들어 하셨구나. 참 솔직한 고백이다.
저는 하느님께서 아주 가까이 계시고, 제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저에게서 나온 말이 아닌 하느님께서 나온 말을 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p452)
친절한 말 한마디, 웃음 한 가닥으로 우울한 영혼을 활짝 피게 하는 때가 많습니다. (p458)
모든 사람에게(특히 그중 불친절한 자매에게) 친절함으로써 예수님을 즐겁게 해드리고, 복음에 있는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교훈을 따르려고 합니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자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루카 14,12-14) (p458)
아! 그런 세속적인 기쁨을 천년동안 누리게 해 준다고 해도 제 겸손한 애덕의 일을 행하는데 쓰는 단 10분과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p462)
괴로움 중에도, 싸움을 하면서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세상에서 구해 내셨음을 생각합니다. 그러면 세상의 온갖 행복을 초월하는 한순간의 행복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한순간의 행복도 이토록 큰데, 천국에서 “주님의 집에 살도록”(시편 23,6) 선택하심으로써,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크나큰 은혜를 하늘나라에서 끝없는 기쁨의 영원한 휴식을 누리며 볼 때에는 어떠하겠습니까? (p463)
어느 날은 빨래터에서 제 앞에 있던 어떤 자매가 빨래를 하며 더러운 물을 자꾸 제 얼굴에 튀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좀 얌전하게 빨래를 해야 한다는 것을 그 자매에게 깨닫게 하고 싶어서 얼굴을 닦으며 뒤로 물러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곧 하느님께서 이렇게 너그러이 주시는 보배를 밀쳐 버리려 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어, 제 싸움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더러운 물을 많이 받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애썼더니, 마침내 물을 뒤집어쓰는 것이 이전과는 다르게 기쁨으로 느껴져서, 이렇게 많은 보물을 주는 이 자리에 또 오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p465)
저는 ‘아주 작은‘ 것밖에는 하느님께 드리지 못하는 ’아주 작은 영혼‘입니다. 게다가 마음에 많은 평화를 주는 이런 자그마한 희생조차 자주 놓쳐 버립니다.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않습니다. 평화를 좀 덜 누리게 될 것을 참으며 다음에는 더 조심하려고 노력합니다. (p466)
그분은 제 길을 바꾸지 않은 채 시련을 주시어, 제가 누리는 모든 기쁨에 유익한 쓴맛이 섞이게 된 것입니다. (p466)
예수님께서 “나를 당신에게 끌어 주세요.”(아가 1,4) “정녕 당신의 향유 내음은 싱그럽습니다.”(아가 1,3)라고 쓰인 ‘아가서’의 말씀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p474)
오! 예수님, 그러니 “저를 이끌면서, 제가 사랑하는 영혼들도 이끌어 주소서!”하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를 이끄소서!”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주님, 어떤 영혼이 당신 향기에 사로잡히게 되면 혼자만 갈 수 없고, 그가 사랑하는 모든 영혼들도 뒤따라간다는 것도 깨닫습니다. 그것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로 이끄는 힘의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p474)
당신께서 저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당신을 사랑하려면 당신의 사랑을 빌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만 마음이 놓입니다. (p477)
저는 예수님께 당신 사랑의 불꽃 속으로 저를 인도하시고 제 안에서 살고 행동하시도록, 저를 당신께 강하게 일치시켜 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불이 제 마음을 태우면 태울수록 “저를 당신에게 끌어 주셔요.”라고 말할 것이고, 제게(제가 하느님의 열정을 멀리했더라면 저는 아무 소용없는 하찮은 쇠 조각일 것입니다.) 가까이 하는 영혼들도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사랑하는 이의 향기를 따라 빨리 달려갈 것’이라고 느낍니다. (p480-481)
복음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예수님 생애의 향기를 맡을 수 있고, 그래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제가 올라갈 곳은 첫 자리가 아니라 끝자리입니다. 저는 바리사이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에, 가득히 믿는 마음으로 세리의 겸손한 기도를 되뇝니다.(p482-3)
제가 비록 죄라는 죄는 모두 마음에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뉘우침으로 가득찬 가슴으로 예수님의 품으로 달려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께 돌아온 탕자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알고, 하느님께서 미리 자애를 베푸시어 제 영혼을 대죄에서 보호해 주셨음도 알기 때문입니다. (p483)
☞ 하느님의 비밀은 ‘돌아온 탕자’를 대하는 자애로우신 아버지의 마음과 십자가에서 뉘우치는 우도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예수님의 마음에서 다 드러난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더 두려워할 것인가?
데레사 성녀의 마지막 모습
7월6일 갑작스럽게 병세가 악화되었고, 8월5일까지 각혈이 지속되었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고, 마치 ‘간처럼 긴’ 핏덩이를 토해내며, 고열에 시달렸다. 드 코르니에르 박사는 데레사를 ‘임종 환자’로 규정하고, 살아날 확률은 2%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성녀는 ‘기쁨에 넘쳐’ 고해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그토록 바라던 병자성사를 요청했다. (p486)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말처럼 ‘사랑으로 죽는 것’은 데레사가 평생 갖고 있던 소망이었다. 예수의 아녜스 수녀가 기록한 대화 내용을 보자.
“지금 아주 가까이 와 있는 죽음이 두렵지 않니?”
“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두렵지 않네요!”
“그 도둑이 두렵지 않다고? 도둑은 벌써 문 앞에 와 있구나!”
“아니요, 문 앞이 아니라 이미 방 안에 들어와 있어요. 그런데 언니, 뭐라고 말씀하셨죠? 도둑을 두려워하는지 물으셨나요? 제가 그토록 사랑하는 누군가를 어떻게 두려워할 수 있죠?” (p487)
“이제 나의 소명을 이행할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처럼 좋으신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일, 내 작은 길을 많은 영혼들에게 보여주는 일, 이것이 나의 소명입니다.” (p489)
☞ 이 소명은 성녀가 선종한 후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따름으로써 이루어 진다. 나또한 작은 길을 따라 걷고 싶다.
“사랑하는 하느님께서 제게 힘을 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 제가 겪는 고통이 어떤지 아무도 모를 거예요. 직접 느껴 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죠.”(p491)
"신앙심을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은총인지! 내게 신앙심이 없었다면,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나 자신을 죽음에 내맡겨 버렸을 거예요…… .“ (p491)
"사랑하는 언니들, 죽음을 앞둔 가련한 병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우리 같은 병자들이 겪는 고통을 아무도 알 수 없겠죠. 아주 사소한 일에도 금방 인내심이 바닥나 버릴 정도랍니다……! 저도 예전에는 상상조차 못했으니까요.“ (p492)
그러나 데레사 성녀는 ‘아무런 가식이 없는’(데레사는 평소에도 거짓이나 그럴듯한 말로 꾸미는 것을 싫어했다.) 쾌활함으로 자신이 처한 비극적인 상황을 완화시키려 애썼다. 병실 분위기는 전혀 우울하지 않았다. “슬퍼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어요. 데레사는 찾아오는 사람들을 모두 웃게 할 정도로 명랑함을 잃지 않아서, 서로 그녀의 곁에 있고 싶어 했지요. …… 마지막 순간에도 웃으면서 죽어갈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언제나 쾌활하답니다.” (p492)
데레사의 쾌활함은 이제 곧 만나게 될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전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픈 내 모습을 보고 슬퍼하지 마세요. 언니, 좋으신 하느님께서 저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 주시는지 잘 아시잖아요. 저는 늘 기쁘고 행복하답니다.”(p493)
영성체를 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지만, 데레사는 실망하지 않았다. “성체를 모시는 것은 틀림없이 큰 은총이에요. 하지만 하느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해도 괜찮아요. 하느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이 은총이니까요.” (p495)
베리에르 신부에게는 이렇게 썼다. “내 영혼의 사랑하는 형제여, 제가 항구에 닿으면, 이 세상의 거친 바다에서 어떻게 항해해야 하는지 알려 드릴게요.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위험한 순간에 결코 혼자 내버려두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아는 어린아이처럼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자신을 맡기세요…… . 소박한 사랑과 신뢰의 길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랍니다.” (p495-496)
데레사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중병을 앓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치욕스러운 상황들도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자신의 나약함이나 울음, 성가시게 하는 몇몇 동료 수녀들에 대한 짜증 등). “오! 내가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죽음의 순간에도 하느님의 자비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어 얼마나 행복한지요!” (p497)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예요. 내가 얻게 될 영광스러운 것, 그것은 하늘에서 주는 무상의 선물로 내 것이 아니지요.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게 될 거예요…… .“ (p497)
“죽음을 두려워할까 봐 그게 두려워요…… . 하지만 그것 이외에는 두려울 것이 없어요. 장담해요! 삶에 대한 회한은 없어요. 오! 전혀요. 단지 이런 생각이 들 뿐이지요. …… 영혼과 육신의 신비스러운 분리, 그게 도대체 무엇일까요! 처음으로 그런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렇지만 좋으신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겠다는 마음은 늘 한결같아요.” (p499-500)
그날 저녁, 포콩 신부가 고해성사를 주려고 왔다. 신부는 병실을 나서면서 크게 감동받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영혼인지! 마치 은총으로 견진성사를 받은 이처럼 보였어요.” (p500-501)
데레사는 숨을 헐떡이며 성모상을 바라보았다. “오!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성모님께 기도드렸는지……! 하지만 죽음을 맞는 지금은 약간의 위로도 없고, 순전히 임종의 고통만 있을 뿐이네요…… .”
☞ 지극히 솔직하고 인간적인 모습
“사랑하는 언니들, 제가 큰 고통을 겪는다고 해도, 죽음을 맞는 순간에 제게서 행복의 징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조금도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우리 주님께서도 사랑으로 죽음을 맞으신 순교자셨지요. 그분께서도 죽음의 순간에 얼마나 큰 고통을 겪으셨는지 언니들도 잘 아시지 않나요……!” (p501-502)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께서는 번민과 고뇌 속에서 돌아가셨어요. 그렇지만 사랑으로 죽으간 가장 아름다운 본보기가 되셨지요. …… 사랑으로 죽는다는 것은 격정과 흥분 속에서 죽어 가는 게 아닙니다.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시련이 사랑으로 죽어간다는 것의 증거라고 생각해요.“ (p502)
예수의 아녜스 수녀는 데레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기록해 두었다.
“오, 하느님……! 저는 좋으신 하느님, 그분을 사랑합니다!”
“오, 좋으신 성모님, 제게 오셔서 저를 구해 주소서!”
“숨쉬기가 어렵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아무도 모를 거예요!” (p502)
"하느님의 크나큰 사랑에 제 한평생을 바쳤다는 것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데레사는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이렇게 되풀이했다. ”요! 그럼요,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요.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p504)
두 시간 가까이 병실을 지키고 있던 수녀들이 원장 수녀의 지시로 물러갔다. 데레사는 한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원장 수녀님! 이것이 임종의 고통인가요……? 저는 곧 죽는 것이 아닌가요……?“
“사랑하는 자매님, 임종의 고통이 맞아요.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몇 시간 더 늦추고 싶으신가 보군요.”
“그래요? 그렇다면……괜찮아요……! 오! 저도 고통의 시간을 줄이고 싶진 않으니까요…… .”
베개 위로 떨어뜨린 머리가 오른편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원장 수녀는 병실의 종을 울리라고 지시했고, 잠시 후 수녀들이 황급히 달려왔다. 곤자가의 마리아 원장 수녀가 “문들을 모두 여세요.”하고 말했다. 수녀들이 다시 침대 주위에 모여 무릎을 꿇었을 때, 데레사는 손에 쥔 십자가를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오! 저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 그리고 잠시 뒤에 말을 이었다. “나의 하느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 (p505-506)
☞ 갑자기 이 대목을 읽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바로 그때, 갑자기 눈에 생기가 돌았다. 데레사는 성모상 조금 위의 한 지점을 응시했다. 얼굴은 긴장했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도취 상태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모두가 사도 신경을 외는 동안 그렇게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눈을 감았고,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오후 7시 20분쯤 되었을 때였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입가에 신비스러운 미소를 지은 데레사의 모습은, 언니가 찍은 사진에 나와 있는 모습 그대로 너무나 아름다웠다. (p506)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가 서원식날 품에 지니고 있던 글
저로 하여금 당신만을 찾고 만나게 하시며, 피조물이 제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며, 저도 피조물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며, 오직 예수님만이 저의 ‘모든 것’이 되어 주소서……!(p510)
예수님, 저는 당신께 평화를, 그리고 사랑을, 당신 아닌 다른 한계가 없는 사랑만을…… 이미 제 자신은 없어지고 오직 예수님 당신 자체인 사랑만을 구합니다. (p510)
제가 절대로 수녀원의 짐이 되지 않게 하시고, 아무도 저로 인해 마음을 쓰지 않게 하시며, 제가 조그만 모래알처럼, 당신의 발아래 밟히는 사람처럼 생각되게 하소서. 당신의 거룩한 뜻이 제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지며, 당신께서 제 앞으로 가시어 제게 준비하신 자리에 이르게 하소서…… .“ (p511)
예수님, 제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다면 용서해 주소서. 저는 다만 당신을 기쁘게 하고 위로하기만을 원합니다. (p511)
인자하신 사랑에 바치는 봉헌 기도
오, 하느님! 복되신 하느님의 성삼(聖三)이여,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을 ‘사랑하게’하고, 땅위에 있는 영혼들을 구하고, 연옥에서 괴로움을 받는 영혼들을 구함으로써 성교회의 영광을 위해 일하기를 원합니다. (p512)
오, 하느님, 당신께서는 ‘많이 주시고자 하시면 그만큼 더 많이 원하게 하심’을 저는 압니다. 저는 마음속에 한없는 바람이 있음을 깨달으며, 당신께서 제 영혼을 차지하러 오시기를 굳은 믿음으로 청합니다. (p513)
당신의 마음을 거스르는 자유를 제게서 없애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혹시 제가 연약함으로 인해 어떤 죄에 떨어지거든, 곧 당신의 ‘거룩한 눈길’로 제 영혼을 정화시켜 주시며, 모든 것을 동화(同化)시키는 불처럼, 저의 모든 결점을 불살라 주십시오…… .(p514)
오, 하느님! 당신께서 제게 내려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리며, 특히 괴로움의 시간을 거쳐 저를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마지막 날에, 십자가를 드신 당신을 기쁘게 우러러 뵙겠습니다. 이 귀중한 십자가를 제 몫으로 주셨으니, 천국에서는 당신을 닮아 영화롭게 된 제 육신 위에 수난의 상처가 빛남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p514)
이 세상의 귀양에서 풀려나는 날, 본고향에 가서 당신을 뵙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천국을 얻기 위해 공로를 모을 생각이 아니라 ‘오직 당신 사랑’만을 위해, 당신을 즐겁게 해드리고 당신의 성심을 위로해 드리며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영혼들을 구하기 위해서만 일하고자 합니다. (p514)
제 목숨이 다하는 날, 저는 빈손으로 당신 앞에 나아가겠습니다. 주님, 제가 했던 행위로 저를 판단하시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저희의 모든 의로운 일이 당신 눈에는 결점투성이로 보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의로움’을 제 몸에 지니게 하시어, 당신의 ‘사랑’으로 영원히 당신을 차지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p515)
☞ 성녀에 대한 책중 ‘빈손’이란 책도 있다.
데레사가 성심의 마리아 수녀에게 보낸 편지
보잘것없고 가련한 제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을 보실 때, 하느님께서는 틀림없이 기뻐하실 거예요. 저는 하느님의 자비로우심을 절대적으로 믿고 기대하는 가련한 영혼입니다…… . (p521)
"진정으로 마음이 가난한 자, 그런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아주 멀리서 찾아야 합니다.“라고 시편 저자가 말했어요…… . 큰 영혼들 중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아주 멀리서’, 이 말은 ‘낮은 데서’, ‘비천함 속에서’, ‘무(無) 속에서’를 뜻하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번쩍거리는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머무르고, 우리의 보잘것없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되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머물러 있는 ‘먼 곳으로’ 친히 찾아 오셔서 우리를 사랑의 불꽃으로 변화시켜 주실 거예요. (p522)
3. 이 책을 읽고 앞으로 내 삶에서 실천할 것
- 성인들이 직접 쓴 글들을 읽으면 성인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책으로 엮어진 다른 성인들의 글들도 찾아 읽도록 하겠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soon2 작성시간 14.06.05 참으로 감명깊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이런 믿음을 쓸 정도였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요.
가련한 영혼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마음지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6.05 대단하면서도 작아지려는 믿음이 더욱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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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Nympha 작성시간 14.06.08 다 읽고 댓글 올리는걸 미루다 넘 늦어 버렸네요.
바쁘신중에도 매일 복음 말씀 올려주시고
영적도서도 간추려 올려주시느라 수고많으십니다.
감사드립니다.
신부님 도와 피정준비 마무리에도
애써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율리언니 병간호와 겹쳐 힘드셨죠^^
힘! 내세요. -
답댓글 작성자마음지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6.09 님파님...힘 내겠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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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Nympha 작성시간 14.06.09 마음지기 ^____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