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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지기

43.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작성자마음지기|작성시간15.10.21|조회수837 목록 댓글 9


 

C.S 루이스 / 김선형 옮김 / 홍성사


1. 작가소개


- 지은이 : C.S 루이스


지성적이며 논리적인 신학자로 개신교, 성공회, 로마 가톨릭 등 기독교 교파를 초월한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로 영국 3대 판타지 소설가로 꼽히는 유명한 작가이다. 그는 확고한 무신론자였다가 로마 가톨릭 신자이자 소설가인 톨킨과 다른 친구들의 영향으로 30세 때인 1929년 성공회 신앙을 받아들여 성공회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서 평생 신앙생활을 하였다.


1898년 11월 29일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9살 때 어머니 플로라 Flora 여사를 암으로 여읜 루이스는 기숙사가 딸린 학교들 몇 군데를 전전하다가, 커크패트릭이라는 가정 교사에게로 보내졌는데, 엄격한 이성주의적 무신론자였던 그에게서 엄밀한 논리적 사고 훈련을 받았으며, 본래 성공회 배경을 가졌던 루이스는 이 무렵 확고한 무신론자가 된다.


어린 루이스는 사람을 닮은 동물을 매우 좋아했고, 비트릭 포터 이야기에 빠지기도 했으며, 때로는 자신이 직접 동물 이야기를 상상해서 글로 쓰기도 하였다. 루이스는 형 워니와 함께 동물들이 다스리는 '복센 세계'를 창작하기도 했다. 그는 독서를 매우 좋아하였다. 루이스의 아버지 집에는 많은 책들이 있었는데, 루이스가 읽지 않은 책 한권 찾기는 풀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 어렵다고 하였다.

루이스가 십대 소년일 때, '노던니스'라는 스칸디나비아 고전 문학의 시나 전설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이러한 전설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루이스는 '기쁨'이라고까지 표현하였다. 루이스는 자연에 대한 애정도 컸다. 루이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은 곧 북쪽(the North) 이야기였고, 북쪽 이야기는 곧 자연의 아름다움이었다. 십대 때 쓴 글은 복센 이야기로부터 멀어졌고, 북유럽 신화나 자연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담은 서사시나 오페라 같은 다른 형식으로 쓰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커크패트릭에게 배우면서 그리스 문학과 신화에 점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논쟁과 추론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1916년 옥스포드 대학교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장학금을 받고, 이듬해 1차 세계대전에 영국군으로 자원입대하였다. 19번째 생일날 프랑스의 섬므 밸리의 최전선에 나가 참호전을 겪었으며, 서머셋 보병 연대 서드 배탈리온에서 장교로 복역하였다. 엉덩이에 영국군 포탄의 파편 조각이 박히는 부상을 입어 요양캠프에서 치료를 받다가 전쟁이 끝나자 다시 옥스퍼드로 돌아와 학업을 계속한다. 루이스는 장교훈련 기간 중 알게 된 패디라는 친구가 전사하자, 약속한 대로 그의 어머니 무어 부인을 자신이 평생 보살폈다.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 동아리인 잉클링스의 멤버였던 그는 1923년 옥스퍼드를 세 부문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잠시 철학을 강의했으며, 1925년부터 모들린 대학에서 30여 년간 영어와 문학을 가르친다. 1954년부터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문학 교수로 재직했는데, 이 무렵 『실락원 서문』 『사랑의 알레고리』 등 뛰어난 영문학 학술서적들을 여러 권 저술한다.


자신을 향한 하느님의 접근을 늘 의식하고 있던 루이스는, 1929년 어느 날 밤 마침내 신 앞에 항복하게 된다. 그런데 이 날의 회심은 '복음적 신앙'으로의 회심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유신론'으로의 회심이었고, 그로부터 2년 뒤인 1931년 어느 가을 밤, 옥스퍼드의 동료 교수이자 가톨릭 신자인 톨킨과 성서와 신화를 주제로 나누었던 긴 대화를 통해 마침내 기독교 신앙의 핵인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 루이스는 자신의 소명은 교회 밖(언저리)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교파에 국한되는 교리가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적으로 믿어 온 기독교의 정수―"순전한 기독교"―를, 전문 신학 용어가 아닌 현대인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생생한 언어로 표현해내고자 노력했고, 그러한 분투는 결국 그에게 "회의자를 위한 사도"라는 별명을 안겨준다.


루이스의 삶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루이스보다 열여섯 살 연하였던 조이 이다. 그는 여러 권의 시집과 소설들을 발표한 미국 작가로서, 애초 무신론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였으나 그의 저술들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기독교로 회심하게 되었다. 시인이며, 재치와 지성미를 갖춘 여인으로,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던 루이스는 58세에 그녀에게 영국 시민권을 얻게 해주기 위해 조이와 결혼을 한다. 이때 조이는 이미 불치의 골수암에 걸린 상태였음이 뒤늦게 알려지고, 죽음의 신이 연적이 된 상황에서 조이에 대한 루이스의 사랑은 급속히 깊어졌다. 1957년 3월 조이의 병실에서 성공회 혼인예식에 맞게 결혼식을 올렸으나 4년만에 결국 사별로 끝나고만 이 아름답고 가슴아픈 사랑 이야기는 훗날 연극으로 만들어졌고, 또 그 연극 대본을 기초로 하여 영화 '섀도랜드'가 제작된다.

루이스가 아내를 잃은 슬픔을 이기기 위해 일기 형식으로 적었던 글인 『헤아려 본 슬픔』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가명으로 출판된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던 같은 날, 루이스는 자택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나니아 연대기>>는 그의 유일한 판타지 소설이면서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종교를 넘어서서 보편성을 얻는 주제들로 전세계인의 공감을 얻는 흥미진진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나니아 연대기>> 중 <마지막 전투>는 이 연대기를 대표하여 카네기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다룬 『순전한 기독교』, '악마의 편지'라는 우화 기법을 통해 정작 인간의 삶과 본질을 새로운 각도로 보여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등이 있다


- 옮긴이 : 김선형


1969년 서울 출생이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논문 「Arthur Miller의 글에 나타나는 희망의 모색」으로 석사 학위를, 2006년 르네상스 영시를 전공하여 논문 「'내면의 낙원'과 『실낙원』의 정치성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종대학교 초빙 교수로 재직한 바 있으며, 2010년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1994년 아이작 아시모프의 『골드』를 첫 작품으로 번역문학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하여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와 『재즈』,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 여성 시인 실비아 플라스의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그리고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같은 멋진 작가들의 책을 번역하는 행운을 누렸다. 최근 역서로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카렐 차페크의 『도롱뇽과의 전쟁』,『내가 사랑했던 것』,『미 비포 유』등이 있다.



2. 간추림 또는 내 마음에 다가온 구절및 느낌 

 

악마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 인류가 빠지기 쉬운 두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 하나는 악마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악마를 믿되 불건전한 관심을 지나치게 많이 쏟는 것입니다. (p10)

☑ 악마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악마는 얼마나 기뻐하고 있을까!


이제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친숙한 일상에 눈이 팔려, 생소하기만 한 미지의 존재는 믿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P19-20)


실망감이란 삶의 모든 부분에서, 꿈으로만 간직해 왔던 야심을 힘겨운 실천으로 옮길 때 나타나는 표시인 게야. (P25)

☑ 실망감을 넘어설 때 비로소 꿈은 이루어진다. 실망감은 넘어야할 과정이다.


원수는 인간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인간 앞에 목표를 세워놓고서도 단순한 감정이나 습관을 이용해서 끌고 갈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지, ‘제 힘으로’ 해내도록 내버려 두겠다는 게야. (P25)

☑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원수’는 그리스도를 뜻한다. 그리스도는 악마쪽에서 보면 ‘원수’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내가 맡은 환자 중에는 아내나 아들의 ‘영혼’을 위해서는 열렬한 기도를 쏟아 놓다가도, 진짜 아내나 아들에게는 기도하던 그 자리에서 곧바로 욕설과 폭력을 서슴치 않는, 무척 길이 잘 든 인간이 있었다. (P30)

☑ 또한 이 책에서 '환자‘는 각각 악마들이 맡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런 이중적인 사람은 악마의 밥이다.


‘저녁 언제 먹느냐고 물었을 뿐인데 엄만 괜히 난리야’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상황이 어떤 것들인지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일단 이런 버릇을 잘 들여 놓기만 하면, 자기가 먼저 불쾌한 말을 해 놓고서도 상대가 언짢은 내색을 한다고 도리어 서운해 하는 유쾌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 (P32)

☑ 이 책은 상급 악마인 ‘스크루테이프’가 조카며 신참 악마인 ‘윔우드’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잊지 말거라. 인간들은 자신이 동물이며, 따라서 육체가 하는 짓들이 반드시 영혼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는 점을 노상 잊고 산다. (P35-36)

☑ 인간은 영혼과 육체를 지닌 동물이다. 사도 바오로가 말했듯 육은 영을 거슬러 행동할 때가 많다.


환자가 제 마음속만 줄창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의지로 감정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게 만들거라. 환자가 원수의 사랑을 구하려 하거든, 실제로 사랑을 구하는 대신 사랑의 감정을 저 혼자 꾸며 내려고 애를 쓰게 하는 한편, 제가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게 하란 말이지. 용기를 구하려 하거든 마치 용기가 불끈 솟아나는 것처럼 느끼려고 애쓰게 하고, 또 용서를 구하려 하거든 용서받은 것처럼 느끼려고 애쓰게 하거라. 제가 원하는 감정을 꾸며 내는 데 성공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기도의 성패를 평가하게 만들라구. (P36-37)

☑ 하느님은 없는 자아 도취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끈질기고 냉정하게 열심을 다함으로써 마침내 환자의 영혼을 안전하게 확보한다면, 그는 영원히 네 것이 될 것이다. 네가 원할 때마다 언제든지 들이킬 수 있는 슬잔, 절망과 공포와 당혹감이 철철 넘치는 산 술잔이 되는 것지. (P41)

☑ 성 이냐시오의 말씀대로 세상의 그리스도와 사탄의 전쟁터, 정신을 바로 차리지 않으면 언제 사탄에게 잡혀 먹힐지 모른다.


그 작자는 아주 공정하지가 못해. 자신이 못 마땅히 여기는 명분을 위해 살았던 사람들까지도 제 편으로 포섭해가는 경우가 자주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그 인간들이 그 명분을 선한 것으로 믿었으며 자신이 아는 한 최선의 길을 따랐다는 극악한 궤변을 내세우면서. (P43)

☑ 모든 사람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이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몫.


원수는 인간들이 현재 하는 일에 신경을 쓰기 바라지만, 우리 임무는 장차 일어날 일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지. (p46)

☑ 현재를 열심히 사는 것이 장차 다가올 미래인 것을.


원수가 의미하는 바는 뭐니뭐니해도 실제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현재의 걱정과 불안―을 인내로써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는 건 바로 이 부분에서 그렇게 해달라는 기도이고, “일용을 양식을 주시고”라는 것도 바로 이것을 매일 감당하기 위한 기도지. (p47)

☑ 매일 매일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을 인내로써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가 “주님의 기도”다.


따라서 네 임무는 환자가 현재의 두려움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라는 생각을 절대 못하게 하는 한편, 오로지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는 미래의 일들에만 줄창 매달려 있도록 조치하는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 일들이야말로 제 십자가라고 믿게 만들거라. (p47)

☑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


제일 좋은 방법은 매일 만나는 이웃들에게는 악의를 품게 하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미지의 사람들에게는 선의를 갖게 하는 것이지, 그러면 악의는 완전히 실제적인 게 되고, 선의는 주로 상상의 차원에 머무르게 되거든. (p49-50)

☑ 가까이 있는 이웃을 미워하는 사람이 어떻게 모르는 사람들에게 선할 수가 있을까! 그것이 바로 위선이며, 자아도취다. 악마가 제일 좋아하는 짓이다.


원수에 대한 극단적인 헌신만 빼 놓는다면, 극단적인 경향은 무조건 부추길 만하지. (p54)

☑ 극단적인 것은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무릇 악은 극단적인 것에 있다. 극좌나 극우처럼.


네가 경계해야 할 것은 환자가 현세의 일들을 원수에게 순종할 기회로 삼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세상을 목적으로 만들고 믿음을 수단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면 환자를 다 잡은 거나 마찬가지지. (p56)

☑ 믿음을 세상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치가, 종교인들!


세속적 명분이야 어떤 걸 추구하든지 상관없다. 집회, 팜플렛, 강령, 운동, 대의명분, 개혁운동 따위를 기도나 미사나 사랑보다 중요시하는 인간은 우리 밥이나 다름없어. (p57)

☑ 믿음을 자신 출세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인간들은 악마들의 밥이라는 거다


원수가 인간 영혼 하나를 제 것으로 확보하기 위해 꼭대기보다 골짜기에 더 의존한다는 걸 알면 아마 좀 놀랄 게다. 원수가 특히 아끼는 인간들은 그 누구보다 길고도 깊은 골짜기를 통과해야 했다. (p59-60)

☑ 하느님은 특히 아끼는 사람은 시련을 통하여 단련시키신다. 그러므로 시련에 넘어가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키워서 잡아먹을 가축이지만, 그 작자가 원하는 건 처음엔 종으로 불렀다가 결국 아들로 삼는 것이다. 우리는 빨아들이고 싶어 하지만 그는 내뿜고 싶어 하지. (p60)


우리는 비어 있어 채워져야 하지만 그는 충만해서 넘쳐흐른다. 우리의 전쟁 목적은 저 아래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다른 존재들을 모조리 삼켜 버리는 세상이지만, 원수가 바라는 건 원수 자신과 결합했으면서도 여전히 구별되는 존재들로 가득 찬 세상이야. … 피조물과 하나가 되면서도 그들의 모습은 그대로 지니게 하겠다니, 원. 그러니까 단순히 인간들을 싹 없애 버리거나 동화시켜 버리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게지. (p61)

☑ 단독자로서의 우리 하나 하나를 존중해 주시는 하느님.


원수는 피조물들이 제 힘으로 서게 내버려 둔다. 흥미는 다 사라지고 의무만 남았을 때에도 의지의 힘으로 감당해 낼 수 있게 하겠다는 속셈이지. 인간은 꼭대기에 있을 때보다 이렇게 골짜기에 처박혀 있을 때 오히려 그 작자가 원하는 종류의 피조물로 자라 가는 게야. 그러니 메마른 상태에서 올리는 기도야말로 원수를 가장 기쁘게 할 수 밖에. (p62)

☑ 인간은 시련 속에서 하느님의 뜻대로 성장해 간다


인간이 원수의 뜻을 따르고 싶은 갈망을 잃었더라도 그렇게 하겠다는 의도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면, 세상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원수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것 같고 왜 그가 자기를 버렸는지를 계속 의문이 생기는데도 여전히 순종한다면, 그때보다 더 우리의 대의가 위협받을 때는 없다. (p62-63)

☑ 극심한 시련 중에도 여전히 하느님께 순종한다면 악마는 패배할 수밖에 얻는 것이다. 많은 성인들이 그렇게 순종했다.


‘종교는 지나치지 않아야 좋은 것’이라고 믿게만 해 놓으면, 그의 영혼에 대해서는 마음 푹 놓아도 좋아. 중용을 지키는 종교란 우리한테 무교(無敎)나 마찬가지니까, 아니, 무교보다 훨씬 더 즐겁지. (p68)

☑ 미지근한 믿음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내가 맡았던 환자가 이곳 지옥에 도착했을 때처럼 네 환자도 이렇게 말하게 될걸. “이제보니 나는 해야 할 일도 하나 못 하고 좋아하는 일도 하나 못 한 채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 버렸구나.” (p86)

☑ 해야할 일, 좋아하는 일 하나 하지 못한 삶이란 얼마나 허망한가!


원수가 자아를 버리라는 건 아집으로 소리치고 주장하기를 그만두라는 뜻에 불과하다. 그래서 인간들이 아집을 버리고 나면 진짜 각자의 개성을 전부 돌려준다구. (p91)

☑ 아집을 버릴 때 본래 자신의 모습을 잧을 수 있다


그러니까 원수는 그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기 위해 설사 해롭지 않은 의지라 하더라도 기꺼이 포기하는 인간을 기뻐하는 반면, 그 밖에 다른 이유로 제 본질에서 벗어나 표류하는 인간을 아주 싫어한다. (p91)

☑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일치하려는 사람을 하느님은 기뻐하신다.


상상과 감정이 아무리 경건해도 의지와 연결되지 않는 한 해로울 게 없다. (p93)

☑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 상상과 감정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적극적인 습관은 반복할수록 강화되지만 수동적 습관은 반복할수록 약화되는 법이거든. 느끼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점점 더 행동할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결국에는 느낄 수도 없게 되지. (p93)

☑ 좋은 습관은 반복적으로 행동해야만 자기 것이 된다.


미덕이란 인간 스스로 그것을 가졌다고 의식하는 순간에 위력이 떨어지는 법인데, 겸손의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지. 환자의 심령이 진짜 가난해진 순간을 잘 포착해서 ‘세상에, 내가 이렇게 겸손해지다니!’ 하는 식의 만족감을 슬쩍 밀어넣거라. 그러면 거의 그 즉시 교만―자신이 겸손해졌다는 교만―이 고개를 들게야. (p94-95)

☑ 그냥 버려야한다.


인간이 계속 자기에 대한 생각에 갖히게 된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경멸을 출발점으로 하여 다른 인간들을 경멸하는 자리로 나아가며 우울함과 냉소주의와 잔인함으로 나아가게 된다면, 우리한테는 외려 이득이지. (p95-96)

☑ 자기 경멸과 타인에 대한 경멸, 우을함, 냉소주의, 잔인함 등은 자신을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너는 환자가 겸손의 진정한 목적을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겸손이란 자기 자신을 아예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성격에 대해 특정한 형태의 의견(즉, 낮은 평가)을 갖는 거라고 생각하게 만들라구. 환자도 물론 몇 가지 재능쯤은 가지고 있겠지. ‘겸손이란 내 재능의 가치를 내가 실제로 믿고 있는 수준보다 낮게 보려고 애쓰는 것’이라는 생각을 마음 속에 꼭꼭 박아 주거라. (P96)


정말 중요한 건 어떤 자질에 대한 진실보다 평가를 더 중요시하게 함으로써, 미덕의 싹이 나타나는 족족 거짓과 가식의 요소를 그 중심에 주입하는 것이지. 이 방법을 통해 수천 명에 이르는 인간들이 ‘겸손이란 아름다운 여자가 스스로 못난이라고 믿으려고 애쓰며, 명석한 남자가 스스로 멍청이라고 믿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P96)

☑ 자신을 멍청이라고 믿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겸손’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수가 때와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구하는 목적은 환자의 마음을 자신의 가치에 관한 문제들에서 떼어 놓는 것이고, 네 목적은 환자의 마음을 그런 문제들에 붙들어 놓는 것이다. 원수는 아무리 죄 문제라 하더라도 환자가 너무 깊이 천착하길 바라지 않지, 일단 회개했으면 빨리 관심을 밖으로 돌릴수록 좋아한다구. (p99)

☑ 하느님은 인간들이 자신을 비워 하느님으로 채우길 원하시는 것이다


인간은 시간 속에서 살고 있지만 원수는 그들을 위해 영원을 예비해 두었다. 그래서 인간의 주된 관심을 영원 그 자체와 이른바 현재라는 두 가지 시점 모두에게 집중시키려 들지. (p100-101)

☑ 구원은 현재 와있지만, 미래에 완성되는 것이다. 즉 이미 왔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닌 것이다.


원수는 인간이 계속 영원에 관심을 갖거나(이건 곧 원수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뜻이다) 현재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할 게다. 원수와 영원히 하나가 되는 일과 영원히 분리되는 일에 관해 깊이 생각하게 하거나, 그렇지 않을 때는 현재 들리는 양심의 소리에 따르거나 현재 주어진 십자가를 지거나 현재 주어지는 은혜를 받거나 현재의 즐거움에 감사드리게 하려 든단 말이지. 따라서 우리의 임무는 인간을 영원과 현재로부터 떠나게 만드는 것이다. (p101)


거의 모든 악은 미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감사는 과거를 바라보고 사랑은 현재를 바라보지만 두려움과 탐욕과 정욕과 야망은 앞을 바라보지. (p104)

☑ 과거와 현재가 쌓여 미래를 이루는 것, 현재에 충실한다면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원수의 이상형은 하루종일 후손의 행복을 위해 일한 다음(그 일이 자기의 소명이라면), 그 일에 관한 생각을 깨끗이 털고 결과를 하늘에 맡긴 채 그 순간에 필요한 인내와 감사의 마음으로 즉시 복귀하는 인간이다. (p105)

☑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인간이다


우리한테는 미래에 잔뜩 가위눌려 있는 인간, 이 땅에 금방이라도 천국이나 지옥이 임할 지 모른다는 환상에 사로잡힌 인간, 그래서 천국을 얻을 수 있다거나 지옥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을 불어넣기만 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원수의 계명을 깨뜨릴 준비가 되어있는 인간, 자기는 생전에 보지도 못할 계획의 성패 여부에 믿음을 거는 인간이 최고지. (p103)

☑ 자기들만 구원받겠다는, 종말론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이야말로 바로 사탄의 밥인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건 전인류가 무지개를 잡으려고 끝없이 쫓아가느라 지금 이 순간에는 정직하지도, 친절하지도, 행복하지도 못하게 사는 것이며, 인간들이 현재 제공되는 진정한 선물들을 미래의 제단에 몽땅 쌓아 놓고 한갓 땔감으로 다 태워버리는 것이다. (p103-104)

☑ 미래의 허망에 쫓겨 현재를 낭비하는 인간들 역시 사탄의 좋은 밥인 것을,.


환자가 무서운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들을 이겨낼 미덕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면, 그러면서 모든 의무와 모든 은혜와 모든 지식과 모든 쾌락의 유일한 거처인 현재에 몸담고 있다면, 이건 아주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니 즉시 공격을 감행해야 한다. (P104-105)

☑ 우리의 구원은 충실한 현재에서 온다.


인간들은 단순히 불행이 닥쳤다고 분노하는 게 아니라, 그 불행이 권리의 침해로 느껴질 때 분노한다. (P21)


제 마음대로 쓸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시간을 느닷없이 빼앗겨 버리는 것만큼 화내기 쉬운 상황은 없다. 뜻하지 않은 손님이 왔다거나(한적한 저녁시간을 보내길 고대했는데), 친구의 아내가 마구 수다를 떤다거나(친구와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하는 작은 일들이 환자의 절제심을 무너뜨리지. … 그가 화를 내는 이유는 자기 시간은 그야말로 자기 것인데도 도둑맞아 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137-138)

☑ 시간은 자기 것이 아닌데도 우리는 자기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시간 중에서 단 한 순간도 만들어 내거나 붙들어 둘 수 없다. 시간이란 순전히 주어진 것이지. 시간이 저희들 것이라면 해나 달도 저희들 소지픔이게? (P139)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은 어떤 경우에도 부추길 만한 가치가 있지. 인간들은 노상 제가 주인이라고 주장하는데, 천국에서 듣든 지옥에서 듣든 우습기 짝이 없는 소리다. 인간이 그런 우스운 소릴 계속 떠들게 하는 게 우리 일이다. (P140)

☑ 이 세상에 내 것이 어딘 있담! 아무 것도 없다.


'내 하느님‘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야. 실제로는 ’내 장화‘라는 말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뜻, 즉 ’나한테 특별 봉사를 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으며 설교단에서 얼마든지 이용해 먹을 수 있는, 내가 독점하고 있는 하느님‘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도록 교육할 수 있다구, (P141)

☑ 하느님은 내 ‘개인 소유’가 아니라구.


인간이 완전히 소유헸다는 의미에서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만 생각하면, 시도 때도 없이 웃음이 나오지 뭐냐. 종국에는 존재하는 모든 것, 특히나 모든 인간에 대해 원수나 우리 아버지 둘 중 한 편이 ‘내 것’을 주장하게 될 게다. (P141-142)

☑ 하느님의 것이 될 것인가, 사탄의 것이 될 것인가?


인간들도 결국엔 자기 시간, 자기 영혼, 자기 육체가 과연 누구 것인지 알게 되는 날이 올 테니까. 여하한 경우에도 저희들 것은 절대 될 수 없지. (P142)

☑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바등거리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우리는 기도와 성찬례 가운데 실제로 임재하는 원수를, 그저 있을 법하고 막연하며 그림자 같은 기괴한 인물, 낯선 언어를 쓰다가 오래 전에 죽은 인물로 대체해 놓고 있지. 그런 대상을 경배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 아니냐. 너는 이렇게 함으로써 피조물들의 찬양을 받는 창조주 대신 단순히 일개 도당의 갈채를 받았던 지도자, 후대에 분별력있는 역사가의 인정을 받게 된 뛰어난 인물에 불과한 존재를 금방 만들어 낼 수 있다. (p155)

☑ 창조주 하느님 대신에 그저 역사상 뛰어난 위인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으로…


우리가 바라는 바, 정말 간절히 바라는 바는 인간들이 기독교를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출세 수단으로 이용한다면야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지. (p155)

☑ 오늘날 기독교를 자신의 출세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기독교가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이유 때문에 믿으라는 것, 이게 바로 우리 수법이야. (p155-156)

☑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출세를 위해서 등등 …


인간들은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분과 영적 교제를 나누는 것이 진정한 기도’라는 겉보기에만 경건한 근거에 속아넘어가, 일용할 양식과 아픈 이웃을 위해 기도하라는 원수의 분명한 명령(그 작자 특유의 단조롭고 진부하고 재밋대가리 없는 방식으로 내린 명령)을 정면으로 거스를 때가 많단다. (p179)

☑ 착한 사마리아 사람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셨다. 이웃의 필요를 외면한 기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원수는 인간들이 자유롭게 미래에 기여하는 바를 미리 내다보고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한없는 현재’ 속에서 지금 보고 있는 것이거든. 어떤 사람이 무언가 하는 걸 지켜보는 것과 그 무언가를 하도록 강제로 시키는 것은 확실히 다른 일이다. (p182)

☑ 주님은 우리의 ‘현재’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음에 지켜보고 계시는 것이다. 선택도 결과도 다 우리의 몫이다.


풍요로움은 인간을 세상에 엮어 놓거든. 풍요로운 중년기를 보내는 인간은 ‘세상에서 내 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하지. 사실은 세상이 자기 속에서 자리를 찾은 것인데도 말이야. 갈수록 높아지는 명성, 넓어지는 교제권, ‘나는 중요인물’이라는 의식, 열중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의 가중한 압력 등은 ‘이 땅이야말로 편안히 안주할 수 있는 고향’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바다. (p188)

☑ 이 세상은 잠시 지나가는 곳인데도, 그걸 잊어버리는 사람은 이 세상을 편안하게 떠나갈 수가 없다.


비겁함은 그 어떤 것보다 순수하게 고통스러운 악덕이지. 미리 생각할 때도 끔찍스럽고, 막상 겪을 때도 끔찍스럽고, 나중에 뒤돌아볼 때도 끔찍스럽거든. …… 대부분의 악덕은 인간들이 드러내놓고 자랑하도록 만들었지만, 비겁함만큼은 그렇지 못 했거든. (p194)


인간은 단지 피로하다고 화를 내는 게 아니라, 피로한 상태에서 예기치 못한 요구를 받을 때 화를 내거든. (p201)

☑ 정말 그렇네. 피곤하여 그냥 있고 싶은 데 누가 뭔가를 요구를 하면 당연히 화가 나지!


모든 공포는 똑같은 경로를 거친다. 처음엔 악화로 치달으며 병목같이 좁다란 궁지로 밀려 들어가지만 막상 ‘끝장이다’하는 그 순간! 보란 듯이 병목에서 빠져나오면서 모든 게 갑자기 순조로워지는 거야. 이를 뽑을 때도 통증이 점점 심해지다가 한순간에 끝나 버리잖아. 꿈도 악몽으로 변하는 순간 깨게 되어있지. 사람도 죽고 죽으면 죽음을 넘어서게 되는 것야. 그동안 어떻게 이런 걸 의심할 수 있었을까? (p208-209)

☑ 우리도 죽으면 저 세상을 만나게 된다. 이 진리, 이 믿음.


인간의 눈에는 신들이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는 게야. 놈은 신을 만나기 직전까지만 해도 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 존재 자체까지 의심했다. 그런데 막상 신들을 만나는 순간, 자기가 처음부터 그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기 혼자라고 생각되었던 수많은 삶의 시간 시간마다 그들이 어떤 역할을 해주었는지도 깨닫게 되었단 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일일이 “당신은 누구시죠?”라고 묻는 게 아니라 “바로 당신이었군요.”라고 말할 수 있었던 거야. (p209-210)

☑ 우리는 죽은 후 삶의 시간 시간마다 임마누엘 하느님이 함께 하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 고통을 이 땅의 어떤 쾌락과도 바꾸려 들지 않을 게다. 네가 한때 유혹의 무기로 삼을 수 있었던 감각적, 정서적, 지적 즐거움은 물론, 미덕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도 이제 환자에게는 메스껍기 그지없는 유혹으로 보일 게야. 평생 사랑했던 여자가 죽은 줄만 알았더니 사실은 살아있을 뿐 아니라 지금 바로 문 앞에 와있다는 소식을 막 들은 남자한테, 시뻘건 연지를 덕지덕지 바른 창녀의 유혹이 어떻게 느껴지겠는가? 환자는 고통과 쾌락이 유한한 가치를 넘은 세계, 우리의 산수(算數)가 먹혀들지 않는 세계로 휩쓸려 들어간 게야. (p211)

☑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는 문임을 우리는 믿는다


나는 천사들의 존재를 믿으며, 그들 중 일부가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하느님의 적이 되었고, 따라서 인간의 적이 되었음을 믿는다. 이렇게 타락한 천사들을 우리는 ‘악마들’이라고 부른다. 악마들은 선한 천사들과 본질이 아예 다른 존재가 아니라, 그 본질이 부패한 존재들이다. 악인이 선인의 반대이듯이 악마는 천사의 반대이다. 악마들의 지도자 내지 독재자인 사탄은, 하느님과 반대되는 존재가 아니라, 미카엘과 반대되는 존재인 것이다. (p218)

☑ 여기서부터는 저자인 C.S루이스의 서문이다. 악마는 본질이 부패한 천사라는 것이다.


가장 큰 악은 카펫이 깔려 있으며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는 따뜻하고 깔끔한 사무실에서, 흰 셔츠를 차려 입고 손톱과 수염을 말쑥하게 깎은, 굳이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는 점잖은 사람들이 고안하고 명령(제안하고 제청받고 통과시키고 의사록에 기록)하는 것이다. (P222)

☑ 오늘날 진정한 악들은 명예와 권력을 쫓는 자들에서 볼 수 있다. 정확한 지적이다.


우리는 인간들의 삶 속에서도 같은 인간을 완전히 제 것으로 소화시키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지배의 열망을 보곤한다. 그들은 상대방의 지적인 삶과 정서적 삶 전체를 단지 자신의 연장선상에 두고자 한다. 즉, 자기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을 통해 자기의 증오심을 발산하며, 자기의 불만을 터뜨리고, 자기의 이기심을 충족시키려 드는 것이다. (P224)

☑ TV에 나오는 막장 드라마를 보라. 여기에 딱맞는 막장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악마의 삶을 고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새로운 각도로 조명하려는 것이다. (P226)



3. 이책에 대한 간략한 나의 느낌 또는 소개


책을 펼치며 순간 당혹감에 싸였다. 이 책은 어떻게 읽어야 되는 거야. 무엇을 말하는 것야. 천천히 밑줄을 그으며 읽으면서 ‘아이러니’의 맛을 조금씩 느껴갔다. 악마가 하는 말이 어쩌면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 잘 맞는지. 작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악마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악마의 시각으로 고찰한 것이다.


이냐시오 성인이 말씀하셨듯 인생은 사탄과 하느님의 전쟁터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악마의 전략을 알고 대처함도 현명한 노릇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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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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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쏭아가다 | 작성시간 15.10.23 저도 이 책이 있는데 다 읽지 못하였어요..
    책의 내용이 악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사람들에게 접근하는지 아들에서 알려주는 편지형식인것 같은데~~
    끝까지 읽어 보지 못했는데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악마가 좋아하는것 안하고 유도하는데로 따르지 않으면 되는데~~
    그게 어렵고 힘들고~~그래서 언제나 어디서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느님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중요한것 같아요..
  • 답댓글 작성자마음지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10.23 상급 악마인 삼촌이 초급 유혹자인 조카 악마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있더군요.. ^^*
  • 답댓글 작성자쏭아가다 | 작성시간 15.10.23 마음지기 ㅎㅎ 맞네요~~ 삼촌 조카사이네요..
    오래전에 읽다가 말아서 다시 잘 읽어볼게요^^
  • 작성자명금당 | 작성시간 15.10.22 오늘도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마음지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10.23 예, 매일 매일 악마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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