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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개 순교성지 3 (십자가의 길)

작성자namaria|작성시간16.09.03|조회수259 목록 댓글 10

     

 

복자 이성례 마리아는 한국의 교회사에서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 루도비코의 사촌누이인 이 멜라니아의 조카딸이고, 김대건 신부님의 할머니가 이존창의 딸인데, 그의 집안은 하느님을 믿으면서 세상적인 부귀영화는 모두 남김없이 빼앗겼지만, 하느님께서 그의 집안에 한국 최초로 두 분의 사제를 허락하신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기해박해 당시 사형선고를 받은 교우들은 서소문 밖에서 처형되었는데, 설날 대목장을 앞두고 처형을 중지해 달라는 상인들의 요청으로, 갑자기 당고개로 형장이 바뀌게 되어 1839년 음력

12월 27일에 일곱 분이, 다음 날에 세 분이 이곳에서 처형되며 10분의 순교자가 탄생되었다.

따라서 성지에는 순교자와 관련하여 남겨진 유물이 전혀 없는 상태여서, 순교자들과 관련하여 기록된 것을 토대로 한 분 한 분마다 스토리를 만들어 가며 성지가 조성되었다.

 

성당 내부의 십자가의 길과 옥외에 비치된 십자가의 길은 같은 내용의 주제로 완성되었는데, 성당 안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고, 옥외 하늘 마당의 십자가는 점토를 구워서 만든 테라코타 형식으로 만들어져 함께 비교하며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

14처로 조성된 십자가의 길은 자식을 둔 어머니로서 이성례 마리아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라가는 모습으로 재현되어 있어, 어찌보면 이성례 마리아의 일생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그림에서 빛과 어두움을 사용한 것은 불안과 고통 그리고 죽음까지도, 또한 그 안에 있는 빛은 그런 상황에서도 이들을 계속 비춰주고 계신다는 것.

심화백은 십자가를 그릴 때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빛은 언제나 우리를 떠나지 않고 계신다는 것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제1처 : 하느님이시면서도 아주 힘없는 모습으로 붙들리신 예수님의 모습이 하느님께 순종

하시는 나약한 모습과, 이성례 마리아 역시 자식을 지켜줄 수 없는 어머니로서 죽음으로

내 몰렸을 때 아주 나약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리고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나약한

예수님의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2처 :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짊어져야할 십자가를 안고 계시고, 그런 예수님을 이성례

마리아는 예수님과 함께 가며 예수님의 팔을 꼭 붙잡고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길을 갈 수가 없으니까...

 

  

제3처 : 예수님께서 힘이 드시어 쓰러지시고, 이성례 마리아 역시 남편 최경환 프란치스코가 감옥에서 순교하고, 막내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되고 나머지 네 명의 아이들이 눈에

밟혀 잠시 배교하였지만, 신학생의 부모라는 이유로 다시 감옥으로 들어왔을 때 무너진

예수님 위에 그녀의 모성도 같이 무너집니다.

 

    

제4처 : 회오리 바람처럼 피어나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며, 예수님과 이성례 마리아 역시

그 길이 너무도 두렵고 불안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보여드린다는 것이 너무도 죄스러워 안타까운 심정이고, 성모님 역시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해줄 것이 하나도 없어 애가 끓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뒤쪽의 감옥에는 이성례 마리아와 아이들이 있고, 그들 역시 서로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안타까운 모습이 예수님과 성모님이 겪으셨던 고통의 모습과 너무도 많이

닮아 있습니다.

 

    

제5처 : 하느님이면서도 가장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시몬에게 당신을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하시고, 시몬도 예수님의 손을 잡아 드립니다.

이성례 마리아 역시 감옥에서 순교할 때 어린 아들에게 형이(최양업신부) 올 때까지

동생들을 잘 보살피고 있으라고 부탁하는 모습입니다.

 

     

제6처 : 예수님께서 베로니카에게 나를 잊지 말라고 당신의 모습을 새겨주십니다.

이성례 마리야 역시 자신의 목칼을 둘째아들 야고보에게 안겨주면서 엄마를 기억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엄마를 상징하는 목칼을 보며 엄마를 기억하라는 것은 그 기억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제7처 : 예수님께서 점점 힘이 드시어 두 번째 쓰러지십니다. 이성례 마리아 역시 첫 번째

아들과 막내와 작별할 때도 힘이 들었지만, 감옥에 다시 들어와 죽기 전 둘째 아들

야고보의 머리를 땋아 주면서 이제 다시는 감옥에 찾아오지 말라는 말을 하며 이별할 때

두 번째로 쓰러집니다.

 

    

제8처 : 예수님께서 남아있는 네 명의 아이들을 안고 계십니다. 이성례 마리아에게 남겨진

아이들을 걱정하지 말고 나에게 맡겨라하시며 아이들을 안아주시면서 이성례 마리아와

여인들을 위로하십니다. 자식을 키우면서 힘든 것들 혼자 감내하지 말고 나에게 맡기라

하십니다.

 

 

   

제9처 : 예수님께서 완전히 쓰러지셨습니다. 고개조차 들 수 없습니다.

이성례 마리아 역시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완전히 이별한 상황에서 그녀 역시 머리조차

들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쓰러집니다.

 

   

제10처 : 예수님께서 옷이 다 벗기어지십니다. 그때 하늘에서 옷을 내려주시어 예수님을

감싸 주십니다. 이성례 마리아 역시 아이들과도 완전한 이별 그리고 세상적인 것과 완전히

헤어졌을 때 하느님의 옷(최양업신부님의 영대)으로 하느님께 그대로 봉헌됩니다.

 

  

제11처 : 지금까지 회오리바람처럼 죽음의 두려움이 맴돌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육체적

고통이 칼끝처럼 못이 살 속에 파고듭니다. 이성례 마리아 역시 목칼을 받고 죽음에 이르는

상태입니다.

 

   

제12처 : 예수님께서 완전히 돌아가시며 “다 이루었다.” 하실 때 어둠이 거치고 빛이

어둠을 몰아내며 예수님 역시 평화로운 모습을 보이십니다.

이성례 마리아 역시 순교 할 때 아이들이 엄마의 순교를 기뻐하며 동저고리를 벗어

던집니다. 이때 아이들과 다함께 만나는 것으로, 죽었을 때 암흑이 아닌 평화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제13처 :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안으신 성모님의 모습은 감실입니다.

아들 예수님께서 처음 탄생하셨을 때 처음으로 안아주셨던 분도 성모님이시고, 돌아가셨을

때 안아주시던 분도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감실입니다.

 

     

제14처 : 무덤은 구유를 의미하고 죽음은 새로운 탄생을 의미합니다. 새롭게 탄생하신

예수님은 쪼개어진 빵으로 미사 때 매일 우리에게 오시고, 입으셨던 수의는 제의로 다시

우리에게 오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새로운 탄생으로 성당 제대 중앙의 십자가로 연결이 됩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구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의미하며,

제대는 쪼개진 성채로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그 곳에 계시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당고개 순교성지에서 만난 복자 이성례 마리아의 순교자의 삶과 그녀의 영성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우리 신앙은 배반하지 않는 신앙이 아니라 ‘배반을 딛고 일어서는’ 신앙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말했던

시몬 베드로였지만 부활을 목격한 후 진정한 교회의 반석이 되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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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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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namaria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9.06 꼭 한번 순례오세요. 감사합니다.
  • 작성자참나리 | 작성시간 16.09.04 감동의 글 주일 선물로 잘 받아 읽었네요.^^
  • 답댓글 작성자namaria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9.06 참나리님, 감사합니다.
  • 작성자하늘인연 | 작성시간 16.09.04 고맙습니다~ 나 마리아님!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듯 잘 보았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namaria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9.06 십자가의 길에 대한 묵상글은 많이 보았는데,
    이성례 마리아와 함께 하는 십자가의 길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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