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常識/자료

長篇 漢詩-바3部

작성자淸潭|작성시간26.06.08|조회수42 목록 댓글 4

長篇 漢詩-바3部

 

번암집 제7권 / 시(詩)○망미록 하(望美錄下)

여관에서 무료하기에 장난삼아 풍속을 기록하는 문체로 척주 사실을 갖추어 기록하다〔旅館無聊 戲用記俗體 以備陟州事實〕

 

날마다 조각배에 운명을 맡기니 / 日日扁舟載死生

가련해라 삶의 터전이 바다로구나 / 可憐家計是滄瀛

순박한 백성들은 치도곤이 두려워서 / 淳氓酷怕朱紅棍

맛난 것은 가장 먼저 진영에 올리누나 / 雋味先將納鎭營

이상은 어부를 읊은 것이다.

 

다양한 관청 패문이 해마다 더해지는데 / 名色官牌逐歲加

감영(監營)이 점퇴하니 고을 아전은 책망하네 / 營關點退府差訶

법으로 정해진 상공이야 마련이 어렵지 않으나 / 上供惟正非難辦

인정채가 많은 것이 무엇보다 어렵다네 / 最是人情債物多

이상은 인정채(人情債)를 읊은 것이다.

 

남쪽 나루와 북쪽 나루에 살면서 / 家住南津與北津

생선 들고 미역 이고 성안에서 파네 / 携魚戴藿賣城

백발에도 오히려 양쪽 귀를 뚫고서 / 白頭猶自穿雙耳

청옥(靑玉)을 매달아 남부끄럽지 않게 꾸몄네 / 懸得靑瑤不愧人

이상은 나루의 여인을 읊은 것이다.

 

골짜기에 황장목이 마처럼 울창한데 / 跨峽黃腸鬱似麻

대놓고 도벌하는 일이 근자에 있었다네 / 公然偸斧近來加

가련하다 관리가 어찌 막을 수 있을까 / 可憐官吏禁何得

이런 사람 모두가 재상가에서 시킨 것을 / 盡是人從宰相家

이상은 금산(禁山)을 읊은 것이다.

 

훈련청 문을 열어 푸른 잔디로 에워싸니 / 訓鍊廳開繞碧莎

호미 잡던 농부로서 사부가 된 이 많도다 / 把鋤人化射夫多

다들 말하길 고을의 운수가 매우 형통하여 / 爭言邑運亨通甚

이백 년 이래로 두 번 무과가 있었다 하네 / 二百年來兩武科

이상은 사부(射夫)를 읊은 것이다.

 

맑은 밤 죽서루에 달빛이 새로운데 / 淸夜西樓月色新

교방의 가무가 바야흐로 무르익누나 / 敎坊歌舞正氛氤

좋은 자리에 마지막으로 온 사람 참 곱더니 / 芳筵末至春嬌甚

알고 보니 금당을 가까이 모시는 사람이로다 / 認是琴堂近侍人

이상은 습악(習樂)을 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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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7권 / 시(詩)○망미록 하(望美錄下)

병아잡영〔屛衙雜詠〕

 

우로에 젖은 정원 훤초에 기쁜 얼굴 펴지더니 / 雨露庭萱喜色開

사면령 새로 내려 쫓겨났던 신하가 돌아왔네 / 鵲書新放逐臣廻

색동옷 소매 위로 교인이 눈물을 떨구노니 / 斑袖上鮫人淚

헌수의 술잔 높이 들고서 북대를 바라보네 / 獻壽杯高望北臺

 

두 번째〔其二〕

대숲 속으로 술동이 옮기니 바로 별당인데 / 竹裏移樽是別堂

천륜의 즐거운 일인 데다 날씨도 참 좋아라 / 天倫樂事又辰良

아리따운 여인들이 노란 국화를 따 와서는 / 嬌娥摘得黃花至

금향로 향해 웃으며 향 가루 삼아 뿌리누나 / 笑向金爐作屑香

 

세 번째〔其三〕

식사 뒤에 화당에다 촛불 환히 밝히고서 / 飯後華堂燭焰開

저포놀이하며 출중한 재주 자랑하누나 / 摴蒱誇說衆中才

노루 새끼는 내기판 소리에 익숙해졌는지 / 獐兒慣聽呼盧響

잔디밭 곁에서 한가롭게 자며 두려워 않네 / 眠傍晴莎穩不猜

 

네 번째〔其四〕

대자리 위에 술병 두어도 단정히 기울지 않아라 / 簟上安壺整不欹

화려한 집에 가을 고요하니 아가투호할 때로다 / 畫堂秋靜雅歌時

색동옷 입은 아봉이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 斑衣阿鳳嬌癡甚

겹주렴 속에서 불러내매 화살 더디 주워 오네 / 呼出重簾拾矢遲

 

다섯 번째〔其五〕

작렬하는 여름 볕이 숲 언덕에 가득한데 / 炎炎夏日滿林丘

찬 대자리에 제호 마시니 가을 기운이 도네 / 氷簟醍醐一氣秋

저녁 무렵에 동헌에서 군령판을 쓰노니 / 薄暮公堂書令板

내일 아침엔 범성루에서 더위를 피하리라 / 明朝避暑泛星樓

 

여섯 번째〔其六〕

양쪽 기슭에 핀 국화 그림자 거꾸로 비치는데 / 夾岸黃花影倒開

자리 옆의 가을 강물은 누대를 휘감아 흐르네 / 席邊秋水繞亭臺

맑은 노래 거문고 소리 늘어짐이 오히려 싫어 / 淸歌寶瑟猶嫌慢

기생 아이에게 특별히 명하여 검무를 재촉하네 / 別飭兒姬劍舞催

 

일곱 번째〔其七〕

홀로 멀리 견여 타고 국화꽃을 쫓아가니 / 肩輿孤迥躡寒花

소나무 속 이름난 절로 오솔길 비껴 있네 / 松檜名藍細路斜

비단 무늬 봉우리는 맑은 경치 빚어내고 / 錦纈峯巒生霽景

골짝 문 안개 속엔 피리 소리 울려 퍼지네 / 聲吹散洞門霞

 

여덟 번째〔其八〕

동생과 누이가 쓸쓸히 이역에 떨어져 살아 / 弟妹蕭條隔異方

끊임없는 슬픔과 기쁨에 둘 다 늙어 가더니 / 悲歡袞袞兩頹光

십 년 만에 하늘이 빌려준 중당의 촛불이 / 十年天借中堂燭

오늘 밤 귀밑머리 백발을 함께 비추어 주네 / 同照今宵鬢上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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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7권 / 시(詩)○망미록 하(望美錄下)

준희루십육영. 군위 남 사군 태보 을 위해 짓다〔畯喜樓十六詠 爲軍威南使君 泰普 作〕

 

안개 언덕 이슬비에 땅이 윤택해지고 / 煙坡微雨土膏流

들판 강가 창포잎은 비로소 싹이 트네 / 野水菖蒲葉始抽

봄날 파종을 권농관이 권할 것도 없어라 / 春種不須田畯勸

사군은 종일토록 높은 누대에 기대었도다 / 使君終日倚高樓

이상은 ‘매탄의 봄 밭갈이〔梅灘春耕〕’를 읊은 것이다.

 

연기 오르는 농가에서 기장밥 더디 지으니 / 煙火田家炊黍遲

살구나무 울타리 곁에 정오 닭이 우는 때로다 / 杏花籬畔午雞時

촌 아낙이 들밥 차려 서쪽 밭으로 내가는데 / 村婆向西疇去

늙은 개는 앞서가고 어린아이는 뒤따르네 / 老犬前行後稚兒

이상은 ‘추동의 한낮 들밥〔楸洞午〕‘을 읊은 것이다.

 

이곳에 연연하여 양수의 동쪽 서쪽에 사노니 / 依依家住瀼西東

석양에 나무꾼 피리 소리가 초나라 풍경 속에 들리네 / 落日樵笳楚色中

문밖 봄날 진창길은 작은 외나무다리로 이어지고 / 門外春泥連細

시골 늙은이는 지팡이 짚고 아이들을 걱정하네 / 野翁扶杖念兒童

이상은 ‘백전의 저녁 나무꾼〔柏田夕樵〕’을 읊은 것이다.

 

백성들이 즐거워하며 우물 파고 밭을 가니 / 煕煕鑿井與耕田

풍속에는 상고의 순박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네 / 民俗猶全上古天

가을걷이 뒤에 두 동이 술의 연향을 마치니 / 我稼旣收朋酒罷

가을 깊어 남은 일이라곤 통발 손질뿐이로다 / 秋深餘事理魚筌

이상은 ‘율림의 가을 고기잡이〔栗林秋漁〕’를 읊은 것이다.

 

봄 밭두둑에 비 그치자 처음으로 물이 붇고 / 春畦雨歇水初肥

맑고 밝은 그림 누각은 석양 속에 떠 있도다 / 畫閣澄明泛夕暉

방울 소리며 거문고 소리는 너무도 쓸쓸한데 / 鈴舌琴徽渾寂寂

사군은 말을 잊고 해오라기는 나는 걸 잊었네 / 使君忘語鷺忘飛

이상은 ‘무논에 거니는 해오라기〔水田行鷺〕’를 읊은 것이다.

 

대나무 문은 한가롭고 풀빛 짙은데 / 看竹門閒草色稠

연무 낀 동쪽 비탈에 몇 줄 소 떼가 있네 / 東陂煙薄數行牛

삼춘 농사에 밭 가는 일을 감당하더니 / 耕幹當三春事

남기 나무 풍광 속에 한가로이 쉬는구나 / 嵐樹光中自在休

이상은 ‘연무 낀 비탈에 흩어져 있는 소〔煙陂散牛〕’를 읊은 것이다.

 

가을 객사 쓸쓸한 가운데 깊이 정좌하거니 / 秋館蕭蕭宴坐深

새로 심은 대나무는 따로 숲을 이루었도다 / 新栽幽竹別成林

무단히도 들 학들이 한가히 서로 희롱하며 / 無端野鶴閒相攪

서리 가지를 뒤집어 땅에 가득 그늘 지우네 / 翻動霜梢滿地陰

이상은 ‘섬돌에 어리는 대나무 그림자〔暎堦竹陰〕‘를 읊은 것이다.

 

굽은 못은 가을 맞아 새로 간 거울처럼 맑고 / 廻塘秋淨鏡新磨

그림배는 물결에 넘실대며 이슬에 젖어 있네 / 畫舫溶溶濕露華

객이 이르자 그윽한 향이 먼저 코를 찔러오니 / 客至暗香先鼻觀

주렴 발 걷지 않아도 지레 연꽃인 줄 알겠어라 / 未開簾箔聖知荷

이상은 ‘주렴에 스며드는 연꽃 향기〔入簾荷香〕’를 읊은 것이다.

 

소나무 사이 성긴 별들이 달이 뜨길 재촉하여 / 松際稀星生白催

빙륜이 가을 하늘을 굴러 푸른 산에 찾아왔네 / 氷輪秋輾碧山來

겹난간 너머로 허명한 세계가 홀연 펼쳐지니 / 重欄忽作虛明界

열두 겹 누런 비단 주렴을 마음껏 열어젖히네 / 十二緗簾盡意開

이상은 ‘높은 산봉우리에서 토해 낸 달〔天嶽吐月〕’을 읊은 것이다.

 

금탕의 형세가 산하에 웅장하여라 / 金湯形勢壯山河

나는 새 너머로 아득히 일만 성첩(城堞)이 비끼었네 / 鳥外蒼茫萬雉斜

남쪽 지방에 백 년 동안 병화가 그쳤거니 / 南國百年兵氣歇

고을 누대가 한가히 적성의 노을을 거느렸도다 / 郡樓閒領赤城霞

이상은 ‘가암에 깃든 노을〔架巖棲霞〕’을 읊은 것이다.

 

하늘 위 기성의 정기가 아득히 반짝이고 / 天上箕精一渺茫

남계의 매화는 옛 사당 곁에서 늙어 가누나 / 南溪梅老古祠傍

외로운 꽃을 봄바람에 감히 꺾지 못함은 / 孤英不敢臨風折

선생의 자취 향이 스미어 있을까 해서라오 / 恐是先生杖屨香

이상은 ‘남계에 핀 이른 매화〔南溪早梅〕’를 읊은 것이다.

 

찬 연무 속 울창한 산엔 고을 성곽이 깊이 자리하고 / 寒煙疎翠郡城深

십 리 뻗은 소나무 숲에는 푸른 강물이 흘러가네 / 十里行松帶碧潯

산수 빼어난 고을의 서리 눈을 이겨 낸 나무가 / 山水縣中霜雪榦

예로부터 본디 독서하기 좋은 숲을 이룬다오 / 古來元是讀書林

이상은 ‘서곤의 저녁 무렵 소나무〔西崑晩松〕’를 읊은 것이다.

 

모옥이 숲에 깃들어 일만 잎사귀에 덮였는데 / 茅屋棲林萬葉紆

어둠 속에 희미하게 등불 하나 켜져 있네 / 暝中依約一燈孤

누대에 숨은 관리라도 외려 할 일 많아라 / 樓臺隱吏猶多事

낮에는 농부 독려하고 밤엔 선비 독려하네 / 晝課耕夫夜課儒

이상은 ‘양정의 독서하는 등불〔羊亭書燈〕’을 읊은 것이다.

 

아전 물러간 가을 뜰에 푸른 봉우리 마주하니 / 秋庭吏散對靑峯

주렴 밖 이내 낀 소나무는 생동하는 그림일레 / 簾外松嵐活畫濃

외로운 새와 돌아오는 스님이 산사로 다가오니 / 獨鳥歸僧蕭寺近

흰 구름도 두 끼 식사 종소리를 가두기 어려워라 / 白雲難鎖二時鍾

이상은 ‘마정에 울리는 식사 종소리〔馬井飯鍾〕’를 읊은 것이다.

 

소와 양이 다 돌아오자 울타리에 어둠 내리고 / 牛羊歸盡暝生籬

고목 선 마을 빈터엔 작은 불빛 서서히 켜지네 / 老樹村墟細火遲

짐작건대 농가에서 밭 가는 일이 다급한지라 / 斟酌農家耘事急

한밤에 쌀을 찧어 새벽밥 지을 준비하리라 / 夜來舂米備晨炊

이상은 ‘백하의 쌀 찧는 불빛〔白下舂火〕‘을 읊은 것이다.

 

거친 덤불에 피운 봄 불이 구름 놀에 비치는데 / 荒榛春燒烘雲霞

호미 쟁기 들고 별빛 아래 높은 언덕 올라가네 / 鋤耒侵星上絶阿

명부께서 고을에 부임한 뒤로 부세를 줄이시니 / 明府到官輕賦稅

밭 일구는 연기가 지난해보다 날로 많아졌다네 / 煙日比去年多

이상은 ‘적안의 화전 연기〔赤岸菑煙〕‘를 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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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8권 / 시(詩)○재필록(載筆錄)

원산가〔元山歌〕

 

원산의 수려한 풍광이 용산과 비슷하여라 / 元山佳麗似龍山

길가 수많은 집에 버들이 한가히 늘어졌네 / 夾路千家垂柳閒

울 밖에서 노 젓는 소리가 저물녘 들리더니 / 籬外櫓聲乘薄暮

어선들이 큰 바다 한가득 항구로 돌아오네 / 捕魚船大洋還

 

두 번째〔其二〕

마을 앞 큰 바다는 영남으로 통하거니 / 村前瀛海嶺南通

쌀 실은 돛배에 부는 바람 모두 다 순풍일레 / 載米雲帆盡順風

흉년이면 임금님 은혜로 널리 서로 구제하니 / 荒歲君恩交濟廣

번화함이 오래도록 옛 시절과 다름없어라 / 繁華長與舊時同

 

세 번째〔其三〕

푸른 바닷빛은 우거진 평원으로 이어지고 / 蒼蒼海色際平蕪

십 리에 펼쳐진 인가는 도읍처럼 모였는데 / 十里人煙聚似都

하고많은 집 문 앞에 늘어선 버드나무에는 / 多少門前楊柳樹

대상인이 타고 온 제주마가 매여 있네 / 豪商來繫濟州駒

 

네 번째〔其四〕

물고기 잡는 이익은 관북이 으뜸이요 / 魚族利爲關北最

면화 실은 짐바리는 영남에서 많이 오네 / 綿花駄自嶠南多

때를 살펴 사 두었다 때에 따라 파노라니 / 乘時買取隨時賣

이익의 절반이 원산 부호가에 떨어지네 / 半是元山留富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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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8권 / 시(詩)○재필록(載筆錄)

함흥의 노기 가련은 나이가 84세로,

〈출사표〉를 노래로 부르고 고인의 시편을 외는데 한 글자도 틀리지 않는다. 간혹 담소를 나누어 보면 조리가 분명해서 사람으로 하여금 족히 자신을 경계하고 반성하게 하니, 사대부들이 여협이라고 칭찬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가련을 칭찬하고 아끼는 것은 그에게 남다른 감회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응당 가련과 나만이 알 뿐이다〔咸興老妓可憐年八十有四 唱出師表 誦古人詩什不錯字 間以譚諧皆理勝 足令人警省 薦紳士以女俠稱之固也 然余所以賞愛可憐 蓋有所感者存焉 此則當憐與余知之爾〕

 

봄 별 반짝이는 외로운 객관에 한참을 앉았더니 / 春星孤館坐迢迢

종소리 그치고 번잡한 거리 마침내 적막해졌네 / 鍾罷街塵遂寂寥

비장하게 부르는 그대의 〈출사표〉 한 곡조여 / 悲壯出師歌一闋

팔순에도 호탕한 기운이 다 사라지진 않았구려 / 八旬豪氣未全消

 

두 번째〔其二〕

사귀는 세태를 천고 전에 적공이 잘 알았고 / 交情千古翟公知

전씨 두씨 권문의 다툼에 만사가 변했건만 / 田竇朱門萬事移

가련한 백발의 여인이 홀로 여기에 있어 / 獨有可憐頭白女

한평생 옛 마음의 기약을 그대로 간직하였네 / 百年猶自舊心期

 

세 번째〔其三〕

대궐의 조정 양반들 바둑판처럼 다투어서 / 靑瑣朝班似奕棋

장주 되었다 나비 되었다 때때로 바뀌었지 / 莊周蝴蝶各隨時

아득해라 천보 때의 화려했던 사연들이여 / 茫茫天寶繁華事

동성의 부로들만이 오직 아노라 / 惟許東城父老知

 

네 번째〔其四〕

변방의 바람은 칼날처럼 매서웁고 / 關塞風頭似劍

수주 북으로 가는 길에 눈보라 거세어라 / 愁州北去雪茫茫

객수에 〈상림곡〉 짓는 것도 게으르거니 / 羈懷懶作常林曲

노파의 타이르는 긴 말도 기다리지 않네 / 不待阿婆警戒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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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8권 / 시(詩)○재필록(載筆錄)

시중대〔侍中臺〕

 

바다를 들이마실 듯한 높은 누대의 형세 / 高臺勢飮海

마치 인두 자루를 꽂아 놓은 것 같네 / 如揷熨斗柄

푸른 절벽이 높다랗게 장벽을 이루니 / 蒼壁嶪成障

층층 파도가 감히 함부로 범하지 못하누나 / 層濤不敢橫

늙고 커다란 천만 그루 소나무가 / 老大萬千松

이리저리 땅을 나누어 흩어져 자라고 / 落落分地

우람한 비석이 그 위에 세워져 있나니 / 碑其上有

우러러 읽으매 엄숙하고 경건하도다 / 仰讀頗肅敬

아득한 옛날 윤 시중께서는 / 伊昔尹侍中

초목조차 그 이름을 알고 있었네 / 草木知名姓

군사를 이끌고 호랑이 굴을 치니 / 提兵擣虎穴

살기가 온 천하에 진동하였지 / 殺氣天宇竟

시중의 행차가 이 누대에 이르러 / 樹羽臨此臺

백일 아래 풍악 소리 울려 퍼지니 / 白日笳鼓競

포부와 기상은 어룡을 굴복시켰고 / 意氣魚龍伏

공훈과 업적은 기린각에 성대했도다 / 勳業麒麟盛

하지만 본디 서생인 나는 / 而我本書生

북쪽 변방에서 잘못 명을 받드니 / 北塞謬膺命

격문은 그런대로 지을 수 있어도 / 飛檄猶可草

긴 밧줄은 끝내 청할 수 없었네 / 長纓不曾請

말을 내려 누대에 올라 굽어보는데 / 下馬一登眺

녹로검이 봄 술잔에 비치는도다 / 鹿盧春酒暎

고깃배는 점점이 포구로 돌아오고 / 漁點點還

하늘과 물은 맑기가 거울 같아라 / 天水澄如鏡

큰 전복을 따 오라 분부를 하니 / 分付摘大鰒

군령처럼 명령을 따르는도다 / 趨命如軍令

이번 유람도 넉넉히 즐거웁거니 / 玆遊亦足樂

상쾌한 마음을 창 비낀 채 읊조리노라 / 快意橫槊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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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8권 / 시(詩)○재필록(載筆錄)

이몽서가 지난해 봄에 종성부 관아로 근친을 왔다가 곧이어 부모님을 병구완하느라 지체하게 되었다. 지금 적막한 변방에서 시름겨운 가운데 나를 만나 밤을 이어 가며 허심탄회하게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간혹 달빛 아래 뇌천각을 걸어 올라 문장과 세도를 논하기도 하였는데, 그 기쁨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시가 없을 수 없기에, 이 시를 지어 후세 사람들이 쇠락한 세상에도 이런 기이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하고자 한다〔李夢瑞於前年春省覲鍾城府衙 旋以湯憂淹滯 至今遇余於絶漠憂愁之中 相與劇談連夜 或步月登雷天閣 談文章談世道 其喜可知 不可無詩 草此 使後之人知缺界有奇事也〕

 

종산에 봄이 다하도록 눈 봉우리 드높은데 / 鍾山春盡雪崔嵬

그대 돌아가기 전에 내가 또 찾아왔네 / 君未歸時我亦來

병환 근심 두 해 동안 센 머리 가련해라 / 憂病二年憐髮改

만리타향 술자리에서 비로소 얼굴 펴네 / 杯樽萬里始顔開

관문 느릅나무에 말을 매니 별은 저물고 / 關楡繫馬天星暮

비파 들고 누대 오르니 달은 금세 흘러가네 / 寶瑟登樓夜月催

천고라 고적과 두보의 모임 어제 같은데 / 千古隔晨高杜會

뇌천각이 취대만 못할 것도 없어라 / 未須雷閣讓吹臺

 

두 번째〔其二〕

지난해 꽃 필 무렵 그윽한 복숭아 거리에서 / 去歲花開桃巷幽

말 타고 수주로 떠나는 그대를 전송하였지 / 送君驅馬向愁州

병구완하느라 변방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 刀圭日月淹窮髮

하목의 문장으로 백두산을 진동했어라 / 霞鶩文章動白頭

천 리 밖 변경 술자리에서 친구를 상봉하여 / 塞酒人逢千里席

한창 봄날 오경 누대에서 검가를 부르노라 / 劍歌春峭五更樓

경서를 강론하는 궁궐에는 인재가 급하거늘 / 橫經漢殿才良急

어인 일로 주남에서 머무르게 허락하였나 / 何事周南也許留

 

세 번째〔其三〕

새벽 북소리 들려오도록 등불 심지 자주 갈며 / 曉鼓傳聲燭跋頻

옥 술잔에 술 마시매 봄날처럼 후끈하네 / 靑絲携酒暖生春

먼 변방에서 벗을 만나 오늘 밤 길이 즐기노니 / 相逢絶塞永今夕

양관 너머에 친구 없다는 말을 믿지 않노라 / 未信陽關無故人

칼 한 자루 행장은 고국을 떠나는 것 같은데 / 孤劍行裝同去國

백운의 회포를 부모님 그리는 마음에 견주네 / 白雲懷抱較思親

육신에 매인 덧없는 삶엔 이별과 만남이 많아 / 浮生形役多離合

날이 새면 군악을 울리며 슬해를 따라가리라 / 明發鐃笳瑟海遵

 

네 번째〔其四〕

한 조각 이 마음을 고검은 알리라 / 一片心肝古劍知

문장과 도의가 평생의 기약이라는 걸 / 文章道義百年期

변방 하늘 사흘 밤을 규수(奎宿)가 모였으니 / 塞天三夜奎躔合

둥근 천막에 사는 오랑캐 몇 놈을 경동시켰으리라 / 驚動穹廬幾箇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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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8권 / 시(詩)○재필록(載筆錄)

고이도대렵가〔古珥島大獵歌〕

 

고이도라 완연히 화이(華夷)의 경계 / 珥島宛一夷夏閾

두만강 물결조차 삼키지 못하였네 / 豆滿江波不得

갈대숲 무성하고 높이는 몇 장 / 葭葦冥冥長數丈

꿩 토끼 사슴들의 소굴이 되었어라 / 雉麋鹿成窟宅

평사가 호령 내려 사냥을 약속하니 / 評事出號期大獵

훈융진에서 밤을 묵고 새벽에 모였도다 / 夜宿訓戎晨結束

단장한 앞선 기생도 하나의 장관 / 紅粧前導亦一奇

날아갈 듯 말을 몰며 웃는 건아들 / 飛騰策馬笑健兒

비구름처럼 모여든 일백 량 수레 / 雲屯雨集車百兩

청유를 둘러치니 참으로 성대하네 / 環擁靑油太淋漓

수토끼가 못 당할 듯 쏜살같이 도망가니 / 雄逸出迅莫當

용맹한 장교가 바람처럼 말을 달려 / 勇校躍馬風火馳

철봉으로 내리치자 피가 소매 적시더니 / 鐵棍追擊血漬袂

막사 앞에 꿇어앉아 두 손으로 올리도다 / 跪獻幕前雙手持

모래벌판에 암담히 살육 소리 가득한데 / 沙磧黯淡殺聲集

굴과 둥지 소탕함에 너무도 주저 없네 / 蕩穴擣巢殊不遲

궁한 짐승들 흩어져서 낭패스런 형세인데 / 窮獸流離勢狼狽

뭔가를 아는 듯이 저쪽 경계로 달아나니 / 走越彼界如有知

오랑캐 놈들 늘어서서 교묘하게 맞이하여 / 胡雛簇列巧相迎

짐승들을 치고 차서 남김없이 다 잡누나 / 或搏或蹴無所遺

강 사이로 서로 부르며 묻고자 하여도 / 隔江相呼欲有問

어이하랴 언어가 다 오랑캐 말인 것을 / 其奈語言皆侏離

두 나라가 화친하여 뽕나무를 안 다투니 / 兩國和親不爭桑

버들 꺾어 울타리를 쳐도 누가 감히 침범하랴 / 樊圃折柳誰敢爲

아 북방의 날랜 기병이여 강건함을 자랑 마라 / 嗚呼北方驍騎不用誇身强

토끼나 쫓고 여우나 사냥하며 부질없이 늙어 가노니 / 逐獵狐空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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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8권 / 시(詩)○재필록(載筆錄)

광성원가. 이몽서가 있는 종산 여사(旅舍)에 장난삼아 부치다〔匡城怨歌 戲寄李夢瑞鍾山旅几〕

 

얼음 녹고 옥이 녹는 사랑스런 봄날이건만 / 氷銷玉鑠可憐春

한 맺힌 여린 마음은 응어리가 풀리지 않네 / 恨入柔腸結未伸

거울에 비친 고운 얼굴은 본래 마찬가진데 / 鏡裏蛾眉元一種

그대의 애증이 완전히 같지 않아 괴이하구려 / 怪君憎愛未全均

 

두 번째〔其二〕

삼생의 원업으로 황혼에 짝하더니 / 三生冤業偶黃昏

기러기 떠난 봄 진흙에 발자국만 남았구려 / 鴻去春泥落爪痕

본디 오얏꽃은 오얏 열매를 탐하거늘 / 自是李花貪結子

누가 고이 뿌리로 돌아가게 보냈는지 모르겠네 / 不知誰送好歸根

 

세 번째〔其三〕

어둠 속에 신음하다 새벽 단장 그만두고 / 幽呻暗喟廢晨粧

연약한 이 몸 그대로 인해 길이 병들었네 / 弱質緣君一病長

만약 오늘 아침 내가 바로 죽어 버린다면 / 若使今朝儂便死

정녕 박정한 낭군 마음을 쾌하게 만들겠지 / 定應心快薄情郞

 

네 번째〔其四〕

봄 규방에서 바라보는 종산의 고운 흰 눈빛이 / 鍾山雪色艶春閨

솜인 듯 소금인 듯 눈이 쉬 어지러우리라 / 似絮如鹽眼易迷

즐거운 그대가 시름하는 내 고통을 어찌 알리오 / 樂處焉知愁處苦

웃음은 듣고 울음은 듣지 않는 그대가 원망스럽구려 / 恨君聞笑不聞啼

 

다섯 번째〔其五〕

나의 집 밖에는 두만강이 흐르는데 / 儂家門外豆江流

강물은 종성의 성곽 위 누대로 이어지네 / 江接鍾城城上樓

파랑새는 오지 않고 강에 해만 저물어 / 靑鳥不來江日暮

시름에 찬 달빛이 꽃 물가에 가득하네 / 玉蟾愁恨滿芳洲

 

여섯 번째〔其六〕

둥근 부채 모양으로 월륜을 재단하여 / 團團扇樣月輪裁

원망스런 사람이 구업 써서 보내왔네 / 題得冤家口業來

바람 아직 안 뜨거워 상자 속에 보관하니 / 藏在篋中風未熱

육화가 어인 일로 제멋대로 시샘하나 / 六花何事浪相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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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8권 / 시(詩)○재필록(載筆錄)

영소당가〔永嘯堂歌〕

 

그대는 여진 족속이 살던 옛 소굴을 보지 못하였나 / 君不見女眞種落舊巢穴

백두산의 아래 큰 바다 삭막한 곳에 / 白山之下滄海瑟

우람한 말에 큰 활 들고 무력을 과시하며 / 高馬大弓誇力勢

우리 변경을 노략질하여 소굴로 삼았다네 / 攘我邊鄙作甌脫

강한 그놈들을 치는 일로 걸핏하면 소란 일고 / 撞搪倔强動成訌

조석으로 투항 배반 반복하니 섬멸키 어려웠네 / 朝降夕叛難劓滅

우리 영릉께서 신무하시어 / 恭惟英陵神且武

군대를 정돈하여 출동케 하시니 / 命將出師整部伍

군중의 대장이 누구이던가 / 借問軍中大將誰

김종서 공의 용맹이 고금에 으뜸이라 / 金公宗瑞勇冠古

여진이 투항하여 성덕에 귀순하니 / 女眞面縛歸聖德

요기가 제거되어 상서로운 해가 솟았네 / 掃除氛懸瑞旭

성대한 종성이라 절도사의 고을 / 磊落鍾城節度府

변경 오랑캐에게 위엄을 보이고자 / 要以威重示邊土

화려한 관사를 우뚝하게 건립하니 / 特起華館鬱穹崇

하늘같이 높은 좌탑이 가운데 차지했네 / 如天坐榻當其中

좌탑 뒤의 병풍에는 일월이 그려져 있고 / 榻後屛風畫日月

금권자 두른 참모들은 곰처럼 벌여 있었네 / 金圈將佐羅羆熊

만 마리 소를 구워 큰 쟁반에 쌓아 두고 / 萬牛作炙堆大盤

날마다 잔치 여니 의기가 웅장했지 / 日日開宴意氣雄

비단 적상포를 입고 편안히 앉아 / 赤霜錦袍坐晏如

먼 창공을 나는 화살을 웃으며 바라보았지 / 笑看飛鏃來遠空

여진은 무릎으로 기며 감히 못 쳐다보았거니 / 女眞膝行莫敢視

엄숙한 음성 우렁차서 화산 숭산과 나란했네 / 威聲赫赫齊華嵩

지금 공이 떠나신 지 삼백 년인데 / 今公死三百歲

여진은 떠나가서 중원의 황제가 되었네 / 女眞去作中原帝

해마다 폐백 올리는 걸 상책으로 삼으니 / 皮幣年年作上策

절도부엔 할 일 없어 그저 즐길 뿐이로다 / 節度無事但歡樂

나 역시 청유막으로 붓을 싣고 와서 / 我亦靑油載筆至

금 투구를 마지못해 서생 갓으로 바꾸었네 / 金兜强換書生幘

인재 키우느라 왕왕 백전을 개최하고 / 育才往往開白戰

무예 견주려고 때로 과녁 준비 명하노라 / 較藝時時命粉鵠

거나한 술자리에 기생이 가무를 올리거니 / 酒闌靑蛾獻歌舞

화당의 등불에는 무지갯빛 성대하네 / 華堂燭樹虹光矗

태평성대의 행락이 비록 즐겁다 하나 / 太平遨遊雖云樂

변경을 개척한 고인 업적을 생각지 않을쏘냐 / 得不慨念古人開邊績

아아 고인은 변경을 개척하였는데 / 嗚呼古人開邊

지금 사람들은 방비도 못 하거니 / 今人不綢繆

영소당이 흐린 비 오는 저녁에 쓸려 갈까 두렵구나 / 吾恐永嘯堂漂陰雨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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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8권 / 시(詩)○재필록(載筆錄)

시축에 쓰인 제공들의 시운에 다시 차하여 써서 주다〔復次軸中諸公韻 書贈〕

 

서울의 경박한 습속도 말로 하기 어려워라 / 秦京薄俗也難陳

좋게 하는 세속의 말들 진실하지 않으니라 / 然諾悠悠不是眞

돈 없이도 교제를 맺을 수 있다고 한다면 / 若道無金交可結

그대가 어떻게 파직된 사람이 되었으랴 / 如何君作罷官人

 

두 번째〔其二〕

어두운 길을 말 몰아 구절양장에 넘어지며 / 冥途策馬躓羊腸

초가집에 돌아오니 푸른 바다가 빛나도다 / 茅屋歸來碧海光

주문에는 토악하는 일이 없다고 들었나니 / 聞說朱門無吐握

어부들과 어울려 살아도 무방하리라 / 不妨蹤跡混漁郞

 

세 번째〔其三〕

봄 군영에 꽃이 피니 외진 변방 곱디곱고 / 春營花發艶窮荒

화각으로 그대 맞이하니 화창한 낮 길고 기네 / 畫閣招邀晴晝長

책을 읽거나 투호하거나 아니 될 게 무에 있나 / 散帙投壺無不可

지금 변경에는 뽕잎 다투는 일이 드물다네 / 卽今邊塞少爭桑

 

네 번째〔其四〕

농수 골골 흐르는데 나의 말은 상하였고 / 隴水嗚嗚余馬傷

유정 너머 비낀 해는 이별 자리에 져 가누나 / 柳亭斜日曖離場

관문에 뜬 별이 깊은 밤에 아련히 꿈만 같거니 / 關星後夜依依夢

가절이라 성루에는 등 걸린 나무가 길게 섰구나 / 佳節城樓火樹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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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8권 / 시(詩)○재필록(載筆錄)

원수대에서 놀다가 돌아오는 길에 말에서 떨어져 발을 다쳤다. 장난삼아 장가를 짓다〔遊元帥臺歸 墜馬傷足 戲作長歌〕

 

봄 군영에 낮은 길고 일 없어 한가하니 / 春營晝永無一事

서기 홀로 노래 부르다 절로 잠들었네 / 書記獨謠還自睡

느지막이 말을 타고 수행원들 거느린 채 / 日晩騎馬擁賓從

원수대에 높이 올라 아스라이 굽어보네 / 元帥高臺臨無地

성대히 차려진 장막에는 기녀들 성장(盛粧)하고 / 帷帳甚設珠翠盛

상서로운 바람 서서히 불어 깃발 펄럭이네 / 祥徐動葳蕤幟

북명이라 만 리 바다가 파도 없이 잔잔하니 / 北溟萬里正無波

곤붕은 귀 늘어뜨리고 피리 소리를 듣누나 / 鵾鵬帖耳聞笳吹

고운 춤사위 맑은 노래가 다하지도 않았거늘 / 妙舞淸歌樂未央

변방 해는 느릿느릿 봉우리 위로 떨어지네 / 塞日冉冉峯頭墜

돌아올 제 관도는 활줄처럼 곧디곧고 / 歸時官道如弦直

구슬 장식 단 조랑말이 전후로 시위하네 / 細馬明璫前後侍

풍악 소리 날아올라 성곽으로 퍼져 가니 / 笙簫飛聲殷城郭

천 명 만 명 구경꾼들 몰려와서 구경하네 / 觀者千人萬人至

홍질발을 호기롭게 높이 타고 돌아오매 / 意氣高坐紅叱撥

준마 발굽 그리 쉽게 삐끗할 줄 알았으랴 / 那意霜蹄蹶容易

순식간에 떨어져 몸이 땅에 나뒹구니 / 頃刻墜地身翻然

악정이 당을 내려오던 일을 탄식할 만하여라 / 樂正下堂事堪喟

돌아와 청유막 닫아걸고 자리에 누워 / 歸來掩却靑油幕

밤새도록 신음하며 잠들지 못하였네 / 終夜呻痛不成寐

인생사 좋은 일엔 마가 항상 끼는 법 / 人生好事魔輒隨

한나절 만에 희비가 어찌 그리 달라지나 / 半日哀樂何其異

세상에 과시하고 아첨하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 寄語世上夸毗子

부디 일에 임해서는 너무 신나게 여기지 말지니라 / 愼勿臨事多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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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8권 / 시(詩)○재필록(載筆錄)

웅성 목어당의 연회에서 술을 마시다 방수 허령 응명에게 시를 써서 주다〔雄城牧禦堂宴飮 書贈防帥許令應明〕

 

무예도 능하고 문장도 겸한 영재인지라 / 英才能武又兼文

한나라 장수 명성이 말갈까지 알려졌네 / 漢將名聲靺鞨聞

나라 지키는 큰 책임이 방어사에 맡겨지니 / 鎖鑰寄隆防禦使

성명한 임금께서 은혜로운 교서 내리셨네 / 璽書恩重聖明君

정기는 한낮에 원문의 장식으로 변하였고 / 旌旗晝變轅門彩

봄날 성첩에는 북쪽 사막 구름이 휘감았네 / 樓堞春縈朔漠雲

여사로 풍악 울려 멀리서 온 객을 만류하니 / 餘事管絃留遠客

태평시절 행락이라 기녀 치마폭에 취하노라 / 太平行樂醉紅裙

당시에 사군(使君)이 성첩(城堞)과 관아(官衙)를 지은 공으로 성은(聖恩)을 입고 승자(陞資)되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두 번째〔其二〕

웅성의 고요한 낮에 극문이 열리니 / 雄城晝靜戟門開

좋은 날 우리가 축하 제비 따라왔네 / 勝日吾隨賀燕來

기근 뒤에 백성들 소생함은 천제의 공력이요 / 饉後閭閻皆帝力

불난 뒤에 누각이 세워짐은 그대의 재주로다 / 燼餘樓閣見君才

남은 꽃잎 난간에 드니 향기로운 술 출렁이고 / 殘花入檻香醪

눈보라가 주렴 휘감으니 춤 소매가 돌아가네 / 急雪縈簾舞袖回

어진 사군이 성대한 연회로 나를 맞이하여 / 賢主逢迎高宴會

망향대에 오르지 못하도록 만들고 마는구려 / 令人不上望鄕臺

 

세 번째〔其三〕

태평시절 야경꾼은 봄 군영에 누웠고 / 昇平刁斗春營

장백산 높은 마루엔 일월이 빛나누나 / 長白山高日月明

방어사도 환란을 대비할 줄 아는지라 / 防帥也知陰雨策

화평할 때 오히려 북방 성곽 일으켰네 / 平時猶起朔方城

서로 만나 의기투합 무릎에 칼 비껴 두고 / 相逢意氣劍橫膝

누대에서 담소하매 술잔에는 꽃이 가득 / 一笑樓臺花滿觥

나같이 썩은 선비는 보국하기 어렵거니 / 吾輩腐儒難報國

붓 던지고 병법 논하는 그대가 부럽다오 / 羨君投筆事談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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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8권 / 시(詩)○재필록(載筆錄)

희우 십운을 응제하였는데, 을해년(1755, 영조31) 4월이었다. 당시에 나는 좌부승지로 은대에 입직하고 있었다〔喜雨十韻應製 乙亥四月也 時余以左副承旨直銀臺〕

 

부들 싹과 뽕잎이 황혼에 다보록함을 보고 / 蒲芽桑葉晩英英

만물 적시는 공력 깊은지라 하늘을 우러르네 / 潤物功深仰太淸

지작관 기와 젖어들자 경치 먼저 뒤바뀌고 / 鵲瓦霑先改色

봉황지에 생기 도니 빗소리 가장 잘 들리네 / 鳳凰池活最聞聲

지금 맞은 이 경사가 종사에 관계되거니와 / 時丁休慶關宗社

하늘이 좋은 징조로 성명에 답한 것이라네 / 天以嘉徵答聖明

근자에 성상께서 수고로이 소의간식하심은 / 近日廈氈勞

심한 가뭄이 밭두둑의 봄 농사 해쳤기 때문이라 / 亢陽疇畝損春耕

상신일 기곡제를 올리니 황류가 정갈하였고 / 上辛祈穀黃流潔

정오에 궐문에 이르시니 자극이 평온하였지 / 亭午臨門紫極平

기쁜 우렛소리가 사해에 울림을 보노라니 / 試看歡雷騰海域

이 모두가 도성을 흠뻑 적신 단비 때문이라 / 摠爲甘霈滿王城

이어진 밭두둑엔 보리 이삭이 곱게 패며 / 連畦麥縷姸姸吐

둘러친 언덕에는 샘물이 펑펑 솟으리라 / 匝壠泉源的的生

낙숫물 소리 멀리 쌍궐의 누수에 이어지고 / 簷滴遙連雙闕漏

태평가는 상림 꾀꼬리 소리에 먼저 징험하네 / 衢歌先驗上林鶯

일천 촌락의 농사에 무슨 걱정 있으리오 / 千村農務愁何有

새벽까지 임금님께선 기뻐 잠 못 드셨도다 / 五夜宸眠喜不成

완연하게 남훈의 금곡 소리 울려 퍼지는데 / 宛爾南薰琴曲裏

시종신이 시를 지어 새로 갠 날을 노래하네 / 侍臣詞什畫新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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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9권 / 시(詩)○이주록(伊州錄)

이천잡영. 풍속을 기록하는 문체를 쓰다〔伊州雜詠 用記俗體〕

 

성대의 문치 사백 년 이래 / 聖代文治四百載

천하의 예악이 심심산골까지 교화했네 / 寰區禮樂化深山

매년 향약을 거행하여 풍속이 성대하니 / 每年鄕約村風盛

조정의 교조 반포를 기다릴 것도 없어라 / 不待朝廷敎詔頒

 

두 번째〔其二〕

이천은 가난한 고을이라 보배 삼을 것 없지만 / 伊是貧州無以寶

흔하디흔한 물건이 곧은 빗돌이라네 / 等閒長物矗貞珉

해마다 수령 모두 비석 다듬는 일을 벌이니 / 年年地主皆碑役

관가에는 이로우나 백성에겐 병폐라네 / 利在官家害在民

 

세 번째〔其三〕

지난봄 상정법으로 소생의 혜택 입었으나 / 前春詳定澤蘇枯

괴이하게도 이천만이 홀로 혜택 못 받았네 / 恠事伊州獨向隅

고을 살림과 백성 곤궁은 전혀 고려 아니 한 채 / 官計民窮都不管

다만 얼마의 돈을 구획하였을 뿐이었네 / 但能區劃幾靑蚨

상정법(詳定法)을 개정하여 천사백 꿰미의 돈을 부과하여 매년 감영(監營)에 납부토록 하고 이를 ‘구획전(區劃錢)’이라고 불렀다.

 

네 번째〔其四〕

험준한 골짝 깊고 깊어 해서를 굽어보니 / 巖峒深深控海西

녹림의 호걸을 은연중 끌어들이네 / 綠林豪客暗相提

수령이 토포관을 겸직한 이후로는 / 自從討捕官兼後

밤에도 마을 소를 안심하고 둑에 풀어 두네 / 暝裏村牛穩放堤

 

다섯 번째〔其五〕

다섯 면을 더 개간해 화전을 일구었는데 / 五面加耕山火粟

호조에 예속시키니 일이 참 처량하네 / 戶曹句屬事堪唏

공연히 훈련도감의 별장이 이르러서는 / 公然別將都監至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고 의기양양 돌아가네 / 浚得民膏意氣歸

 

여섯 번째〔其六〕

관동의 민력이 삼 진상에 고갈되는데 / 關東民力竭蔘供

반은 어딘가로 새 버리고 반만이 진상되네 / 半泄虛無半九重

수의가 약재로 쓸 것을 재촉하니 어이하랴 / 無奈首醫催引用

감영 관문이 날아 내려 먼저 진봉하라 독촉하네 / 營關飛下督先封

 

일곱 번째〔其七〕

유안에 이름이 적힌 자가 겨우 십여 명 / 儒案題名劣十餘

능히 스스로 농사지으며 간간이 공부하건만 / 自能農業間能書

해마다 방목에 이름이 들지 못하더니 / 科場闕却年年榜

학교 앞에다 연못 파지 않은 것을 탓하누나 / 咎在黌前不鑿瀦

고을 사람들의 말이 이와 같기에 장난으로 언급하였다.

 

여덟 번째〔其八〕

사슴과 백성이 한마을에 살고 / 麋鹿人民共一村

백운이며 웅이에는 풍진(風塵) 적어서 / 白雲熊耳少塵喧

도원이 왕토라는 걸 비로소 깨닫건만 / 桃源始覺皆王土

진상을 재촉할 땐 아전이 문을 두드리네 / 進上催時吏打門

 

아홉 번째〔其九〕

열두 온탕의 증기가 하늘로 솟는데 / 溫湯十二氣蒸空

백옥으로 된 부용은 세조의 공이로다 / 白玉芙蓉世祖功

평생토록 산승이 옛 덕을 추모하여 / 沒世山僧懷舊德

지금도 허물어진 행궁을 받들어 쓴다오 / 至今供掃廢行宮

 

열 번째〔其十〕

시골 백성들이 생계를 신마에 의지하매 / 村氓生理仰新麻

환곡 요역 다 마치고 넉넉하다 여겼거늘 / 勘糴完徭準擬多

관청마다 두루 하는 토색질 참 원통해라 / 痛甚各廳求乞遍

관노와 가짜 어사가 가장 어지럽히도다 / 官奴假使最紛挐

 

열한 번째〔其十一〕

귀리 추수가 겨우 스무 곡을 채우면서 / 耳麥秋收纔廿斛

버젓이 부잣집 노인네라 불리누나 / 居然稱號富家翁

조정에서 새로 동지 공명첩을 파는데 / 朝廷新賣同知帖

관지에 이름 쓰며 억지로 동을 요구하네 / 官旨抄名勒索銅

 

열두 번째〔其十二〕

칠월이면 산봉 새 꿀이 방울져 흐르는데 / 七月山蜂溜新

향기로운 둥근 벌집은 바퀴만큼 크다네 / 生香圈蠟大如輪

간악한 백성들은 문득 관납을 피하려고 / 奸氓輒擬逃官納

바위굴에 숨겨 두고 이웃에도 말 안 하네 / 藏得巖窠不泄鄰

 

열세 번째〔其十三〕

가을에는 풍헌의 권세가 가볍지 않아 / 風憲秋來權不輕

민가를 일일이 적간하여 보고하는데 / 煙家一一摘奸呈

해방에게 번거로이 점퇴될까 두려워서 / 恐被該房煩點退

몰래 남는 호를 인정으로 삼는도다 / 暗將餘戶作人情

 

열네 번째〔其十四〕

전립에 금으로 새긴 용 자가 또렷한데 / 氈笠金鐫勇字明

군뢰들의 풍채는 너무도 사납구나 / 軍牢身手劇生獰

관가는 부디 자주 기찰을 말지어다 / 官家愼勿頻譏察

붉은 포승 휘날릴 때 뇌물이 횡행하니 / 彤索揚時赤仄行

 

열다섯 번째〔其十五〕

산꼭대기 뽕 따는 곳 하늘 높이 가까웁고 / 山頂採桑高近天

산촌이라 어렵사리 잠든 누에 보호하네 / 山家辛苦護蠶眠

실 짜기 마치기도 전에 공삼을 재촉하니 / 機絲未了公蔘急

송도 상인의 돈을 미리 전당(典當)해 쓰누나 / 預當松都賈客錢

 

열여섯 번째〔其十六〕

흉년과 염병이 서로 해마다 이어져서 / 凶荒癘疫互連年

쓸쓸한 마을에 밥 짓는 연기 드물더니 / 閭井蕭條少起煙

백발의 유민들이 새로이 의기하여 / 頭白遺氓新義起

가을 오자 산천에 기도하며 제사 올리네 / 秋來祈禱祭山川

 

열일곱 번째〔其十七〕

식년마다 승호하여 도감에 편입하니 / 式年陞戶入都監

안주하려는 인정상 견디기 힘들어라 / 安土人情苦不堪

패자 내려 불려 가매 계책이 다급하니 / 牌子招來謀計急

갑자기 앉은뱅이 되고 벙어리도 되누나 / 忽然成又成喑

 

열여덟 번째〔其十八〕

가죽신에 띠 두른 군관이 군령판 받들어 / 帶軍官令板擎

내일 아침 좌품을 두 손으로 올렸는데 / 明朝坐稟手雙呈

사군이 문득 권정례를 허락하니 / 使君輒許權停例

산빛 물소리조차 맘에 가득 기쁘구나 / 滿意山光與水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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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9권 / 시(詩)○이주록(伊州錄)

이 전부 세익 에 대한 만사〔李典簿 世翼 輓〕

 

약봉(藥峯) 아래 사문의 모임 / 藥下斯文會

규성이 초당을 휘감았네 / 奎星帶草堂

당시 성대했던 뛰어난 준걸들 / 當時盛才俊

그대가 누구보다 가장 빛났었지 / 夫子最聲光

무성한 난초는 향기 머금었고 / 藹藹蘭含馥

영롱한 옥은 문장을 함축했네 / 英英玉蘊章

침상을 잇대고 면려했던 말들 / 聯床期勉語

대부분 요순 세상 만들자는 말이었지 / 多在挽虞唐

 

두 번째〔其二〕

벼슬은 종친부에 그쳤으나 / 宦拙宗親府

재주 높고 명조의 자손이라네 / 才高名祖孫

이런 분이 끝내 굶어 죽으니 / 斯人竟餓殺

세도를 어찌 다시 논하랴 / 世道更堪論

뒤꼍의 풀은 삼춘에 저물어 가고 / 背草三春暮

풍성의 검은 만고에 원통하여라 / 豐鋩萬古冤

자욱하게 안개 낀 이 세상에도 / 棼棼霧蓋底

맑은 그 기운은 길이 남으리라 / 淸氣可長存

 

세 번째〔其三〕

쓸쓸한 약산 노인의 집에 / 蕭條藥老宅

노인은 가고 섬돌에 풀이 돋았네 / 人去草生墀

그대 올 때마다 맞이해 담소 나누면 / 每到邀君話

예와 다름없어 그래도 좋았었지 / 猶憐似昔時

궁궐 종소리는 처마 가에 떨어지고 / 禁鍾簷際落

산에 걸린 해는 회나무 곁으로 더디 지는데 / 山景檜邊遲

한참 동안 일을 상의하다 보면 / 更僕商量事

흉금의 기약을 우리 둘은 절로 알았네 / 襟期兩自知

 

네 번째〔其四〕

우리의 도가 지금 어떠한가 / 吾道今何似

그대 같은 분이 또 세상 떠났으니 / 如君又蓋棺

읽다 남은 책은 짧은 삶에 묻혀 버리고 / 殘書泥短局

빼어난 기상은 미관말직에 그쳤구려 / 奇氣了微官

팔월이라 충강에는 물이 불었는데 / 八月忠江大

외로운 배의 흰 상여 끈은 차기도 하네 / 孤舟素

상자 속에 담긴 〈유수곡〉은 / 匣中流水曲

거문고 줄이 끊어져 탈 수가 없구려 / 絃斷不堪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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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9권 / 시(詩)○이주록(伊州錄)

준천가〔濬川歌〕

 

하늘에 은하수가 있어 / 天有銀河水

구만리 아득히 문채 환히 빛나며 돌고 / 文采昭回九萬里

땅에는 청위수가 있어 / 地有淸渭水

장안을 꿰뚫고서 쉼 없이 흘러가네 / 貫穿長安流不已

웅장한 산천으로 둘러싸인 한양은 / 漢陽包絡大山川

좌우로 종묘와 사직을 모신 만년의 터전 / 左祖右社萬年址

뭇 물줄기가 서북쪽에서 발원하여 / 衆水發源西北隅

한 폭 흰 비단을 깐 듯 왕성 안을 흐르도다 / 一道鋪練王城裏

다섯 칸 쇠사슬 문이 동쪽을 틀어막고서 / 五間鐵鎖束其東

수량의 많고 적음에 따라 수문을 여닫도다 / 開閉惟視衰盛水

국초에 나라를 다스리는 데 크게 힘을 쏟아 / 國初陶勻大費力

열두 무지개다리를 맑은 하늘로 일으켰네 / 虹橋十二晴空起

수도를 정한 이래로 사백 년 동안 / 邇來定鼎四百載

무너진 모래 휩쓸려 내리길 멈추지 않아 / 崩沙塌下無時止

장마 한 번 지난 뒤엔 한층 더 막혀 / 一經潦過增一閼

물고랑이 이따금씩 평지처럼 되었네 / 厥坎往往平地似

때로 육칠월에는 도성의 번화가조차 / 有時莊嶽六七月

지상으로 물이 차서 무릎까지 잠겼다네 / 地上水高深沒膝

조정의 논의도 분분하여 제각각이었지만 / 廟議紛紛苦不齊

성상의 신속한 결단에 실수가 없으셨네 / 聖斷揮霍無遺失

부고의 돈과 비단을 무수히 쓰고 / 府庫金帛散不計

일만 장정은 쏜살같이 과감히 달려갔네 / 萬夫勇趨如箭疾

연장 들고 기세등등 바로 바닥 다다르니 / 畚鍤騰騰直到底

옛 연월 새겨진 표석이 거듭 나왔도다 / 標刻重出舊年月

모래 옮겨 쌓은 언덕 높이가 일만 장이요 / 移沙作阜高萬丈

큰 수레와 작은 배가 서로서로 부대끼네 / 大車小舟相磨

임금님께선 순시하며 피곤한 줄 모르시고 / 鸞輿臨視不知疲

옛 물길 흐르는 물은 어찌 그리 순탄한가 / 水順舊軌何秩秩

양편의 십 리 물가 곧기가 시위 같고 / 兩岸十里如弦直

삼영에서 쌓은 돌은 흠결이 전혀 없네 / 三營築石無虧缺

맑은 물결 일렁이매 버들엔 그늘지고 / 澄波演漾蔭楊柳

너른 기운 청명하여 성궐을 비추누나 / 灝氣虛明照城闕

어찌 백성들만 빠져 죽길 면하였겠나 / 豈徒邦人免墊溺

응당 땅의 기운도 잘 소통되었으리라 / 惟應地氣善疎洩

하우는 하천을 뚫고 우리 임금께선 준설하시니 / 夏禹鑿之我后濬

사업은 규모가 달라도 공적은 똑같도다 / 事有大小功則一

성대한 세상의 정사를 짐작할 만하여라 / 聖世爲政可反三

도처마다 소통되고 잘 흘러가기도 하네 / 隨處疎通兼導達

아름다워라 넘실대는 물결 끊이지 아니하듯 / 美哉洋洋若不斷

반석 위의 종묘사직이 편안하고 화평하리로다 / 磐泰宗祊寧且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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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9권 / 시(詩)○이주록(伊州錄)

후둔전가〔後屯田歌〕

 

정축년(1757, 영조33) 가을 나는 명릉 회장관(明陵會葬官)으로 도성에 달려갔다. 상께서 특별히 사대(賜對)하시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으시니, 백성들이 둔전의 세금이 과중함을 견디지 못해 안주할 수 없는 상황을 아뢰었다. 이에 상께서 열 줄의 윤음(綸音)을 내리시어 호조(戶曹)의 장관(長官)을 엄하게 추고하도록 하고, 감관(監官)의 명칭을 혁파하게 하였으며, 본부(本府)에 명하여 그 세금을 거두어 향청(餉廳)에 들이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 세액(稅額)은 최초에 정한 것에 의거하여 감히 더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것을 어기는 경우에는 처벌을 받게 하였다. 명이 내린 날에 백성들이 모두 기뻐 날뛰면서 서로 알리니, 달아났던 백성들이 사방에서 돌아와 개간하는 땅이 더욱 늘어났다. 공자께서 “덕의 유행이 역마(驛馬)로 명령을 전달하는 것보다 빠르다.〔德之流行 速於置郵而傳命〕”라고 하셨는데, 내가 이 일을 통해 성인께서 나를 속이지 않으셨다는 것을 더욱 믿게 되었다.

 

이천의 백성들 이전엔 둔전으로 괴롭더니 / 伊民昔以屯田苦

이천의 백성들 지금은 둔전으로 즐거워라 / 伊民今以屯田樂

둔전이 전후로 어찌 다름이 있으랴만 / 屯田豈伊前後殊

이전 세금 과중하고 지금 세금 가볍다네 / 昔稅苦重今稅薄

태수가 아뢰자 성명하신 임금님 놀라시어 / 太守陳之聖主驚

윤음의 글자마다 따스한 봄이 생동하였네 / 絲綸字字陽春生

탁지의 신하를 추궁하라 명하시고서 / 旣命何問度支臣

이어서 감관이란 명칭도 혁파하셨지 / 因之革去監官名

그 세금은 세월 흘러도 감히 더할 수 없고 / 其稅有經不敢加

더한 자는 일정한 형벌 결코 피할 수 없네 / 加者判不逃常刑

교서가 내리자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어서 / 王言一下千人集

지팡이 짚고 들으며 모두 눈물 흘렸다네 / 扶杖聽之皆涕泣

마침내 형과 숙부에게 이 일을 알려 주니 / 遂告而兄與而叔

다시 옛 터전에 돌아와서 생업에 안주했네 / 重還故土安其業

상제는 높이 거처하니 무슨 힘을 썼겠는가 / 上帝高居力何有

서로 이끌고 관아 뜰에서 태수를 칭송하네 / 提官庭頌太守

태수는 명을 받들었을 뿐 간여가 없었으니 / 太守奉令無所與

은혜로운 정사는 밝은 덕을 밝히신 임금님 공덕이로다 / 惠政惟我明明后

백성들이여 힘을 다해 둔전을 경작하여 / 民乎盡力理屯田

가을 오면 추수하고 봄 술을 만들어서 / 秋來收穫爲春酒

남자들은 앞에서 여자들은 뒤에서 절하며 / 男拜于前女拜後

멀리서 우리 임금님 만수무강을 축원하세 / 遙獻吾王萬萬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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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9권 / 시(詩)○이주록(伊州錄)

광복행〔廣福行〕

 

이천이라 북쪽에 산수가 특별한 곳 / 伊州之北山水別

무엇보다 광복동이 빼어나다 칭송받네 / 最是廣福稱奇絶

광복동의 형세가 참으로 괴이하거니 / 廣福之形吁可恠

하늘이 이 경치를 무심히 만들었겠나 / 此物天豈無心設

거령이 쪼개어 삼면의 봉우리를 만들고서 / 巨靈擘作三面峙

날카로운 검과 예리한 창을 삼엄히 세웠다네 / 快劍利戟森相列

중간에 열린 들판은 광대하여 사물을 포용하니 / 中開野勢廓有容

벼며 삼이며 콩이며 보리가 성대하게 자라나네 / 禾麻菽麥頗鬱鬱

크게 둘러친 벽이 살짝 트여 골짝 입구 통하는데 / 大環微缺洞門通

뭇 물길이 모여들어 우렛소리 찢어지네 / 衆水會作雷霆裂

펼쳐지면 못이 되고 화가 나면 폭포 되니 / 演者爲潭怒爲瀑

흰 바위가 그 물 받아 밝기가 눈과 같네 / 素石受之明如雪

바위 위에 맑은 시를 새긴 분은 누구인가 / 石上淸詩刻者誰

사원 선생께서 커다란 붓을 드셨도다 / 士元先生拈大筆

고을 사람들 봄가을로 경승지 가려 놀며 / 州人揀勝春與秋

앞에서 부르고 뒤에서 응수하길 쉼이 없어라 / 前呼後應無時休

너희들은 그저 놀며 즐길 줄만 아니 / 汝等但知遊賞樂

콩잎 먹는 사람이 사물을 대해 어찌 능히 도모하랴 / 遇物那能藿食謀

경내에 보장이 될 만한 곳 하고많건만 / 吾觀域內多保障

험준하기로는 여기보다 나은 곳 없네 / 險阻無如此地尤

중문을 설치하고 격탁을 엄히 한다면 / 若設重門嚴擊柝

나는 새도 못 넘거늘 더구나 도적이랴 / 飛鳥不踰況暴客

천하의 기화를 사람들이 차지하지 않고서 / 天下奇貨人不居

어찌 그리 적막하게 한구석에 버려두는고 / 棄置一隅何寂寞

만물이 기회를 만남은 때가 있는 법이지만 / 萬物遭逢會有時

예로부터 재목이 크면 알아보기 어렵다네 / 古來材大未易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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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9권 / 시(詩)○이주록(伊州錄)

웅이탄가〔熊耳灘歌〕

 

평생토록 무릉도원을 듣기만 하더니 / 百年耳聞桃花源

세상 밖에서 진정 웅이촌을 보았어라 / 世外眞見熊耳村

일백 굽이 푸른 산에 일만 겹 구름 / 靑山百曲雲萬疊

집들은 달팽이 같고 사람은 원숭이 같네 / 村屋如蝸人似猿

칠팔월이면 서리가 벌써 내리기에 / 七月八月霜已至

생업은 농사짓는 걸 주로 삼지 않는도다 / 生業不以西疇事

집집마다 자식 키우듯 꿀벌을 키우나니 / 家家養蜂如養子

향기로운 꿀이 눈 녹듯 흘러 사람을 도취시키네 / 香蜜溜雪令人醉

봉황대가 그 가운데 가장 험준한데 / 鳳凰之臺最險絶

깊은 가을이면 잣 열매가 어지러이 떨어지네 / 深秋柏子紛紛墜

한밤중에 머리 감고 산신령께 제사하면 / 中夜沐髮祭山靈

집 뒤에서 가끔씩 삼이 땅에서 나니 / 屋後往往蔘在地

약은 사람 많이 캐고 어수룩한 사람 적게 캐지만 / 黠者多採矇者少

산을 나가 삼 팔기가 어찌 쉬우랴 / 出山貿遷何容易

때로 가려주에서 환곡을 받을 때면 / 有時受糴佳麗洲

도호부 호적에 성명이 걸려 있다 하며 / 道是府籍懸姓字

산세를 고이 가져다 관가에다 납부하곤 / 好將山稅納官家

돌아와서 처자식과 두 발 뻗고 잠잔다네 / 歸來妻子與穩睡

도망친 자들의 소굴이라 누가 함부로 의심하나 / 阿誰浪疑淵藪萃

성인께서 위에 계시니 사람들 스스로 다스리네 / 聖人在上人自治

다만 바라건대 관가는 돈만 밝히지 말고 / 但願官門不愛錢

백성들이 태평세상에서 살아가게 해 주기를 / 使民生老羲皇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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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9권 / 시(詩)○이주록(伊州錄)

준천가〔濬川歌〕

 

하늘에 은하수가 있어 / 天有銀河水

구만리 아득히 문채 환히 빛나며 돌고 / 文采昭回九萬里

땅에는 청위수가 있어 / 地有淸渭水

장안을 꿰뚫고서 쉼 없이 흘러가네 / 貫穿長安流不已

웅장한 산천으로 둘러싸인 한양은 / 漢陽包絡大山川

좌우로 종묘와 사직을 모신 만년의 터전 / 左祖右社萬年址

뭇 물줄기가 서북쪽에서 발원하여 / 衆水發源西北隅

한 폭 흰 비단을 깐 듯 왕성 안을 흐르도다 / 一道鋪練王城裏

다섯 칸 쇠사슬 문이 동쪽을 틀어막고서 / 五間鐵鎖束其東

수량의 많고 적음에 따라 수문을 여닫도다 / 開閉惟視衰盛水

국초에 나라를 다스리는 데 크게 힘을 쏟아 / 國初陶勻大費力

열두 무지개다리를 맑은 하늘로 일으켰네 / 虹橋十二晴空起

수도를 정한 이래로 사백 년 동안 / 邇來定鼎四百載

무너진 모래 휩쓸려 내리길 멈추지 않아 / 崩沙塌下無時止

장마 한 번 지난 뒤엔 한층 더 막혀 / 一經潦過增一閼

물고랑이 이따금씩 평지처럼 되었네 / 厥坎往往平地似

때로 육칠월에는 도성의 번화가조차 / 有時莊嶽六七月

지상으로 물이 차서 무릎까지 잠겼다네 / 地上水高深沒膝

조정의 논의도 분분하여 제각각이었지만 / 廟議紛紛苦不齊

성상의 신속한 결단에 실수가 없으셨네 / 聖斷揮霍無遺失

부고의 돈과 비단을 무수히 쓰고 / 府庫金帛散不計

일만 장정은 쏜살같이 과감히 달려갔네 / 萬夫勇趨如箭疾

연장 들고 기세등등 바로 바닥 다다르니 / 畚鍤騰騰直到底

옛 연월 새겨진 표석이 거듭 나왔도다 / 標刻重出舊年月

모래 옮겨 쌓은 언덕 높이가 일만 장이요 / 移沙作阜高萬丈

큰 수레와 작은 배가 서로서로 부대끼네 / 大車小舟相磨

임금님께선 순시하며 피곤한 줄 모르시고 / 鸞輿臨視不知疲

옛 물길 흐르는 물은 어찌 그리 순탄한가 / 水順舊軌何秩秩

양편의 십 리 물가 곧기가 시위 같고 / 兩岸十里如弦直

삼영에서 쌓은 돌은 흠결이 전혀 없네 / 三營築石無虧缺

맑은 물결 일렁이매 버들엔 그늘지고 / 澄波演漾蔭楊柳

너른 기운 청명하여 성궐을 비추누나 / 灝氣虛明照城闕

어찌 백성들만 빠져 죽길 면하였겠나 / 豈徒邦人免墊溺

응당 땅의 기운도 잘 소통되었으리라 / 惟應地氣善疎洩

하우는 하천을 뚫고 우리 임금께선 준설하시니 / 夏禹鑿之我后濬

사업은 규모가 달라도 공적은 똑같도다 / 事有大小功則一

성대한 세상의 정사를 짐작할 만하여라 / 聖世爲政可反三

도처마다 소통되고 잘 흘러가기도 하네 / 隨處疎通兼導達

아름다워라 넘실대는 물결 끊이지 아니하듯 / 美哉洋洋若不斷

반석 위의 종묘사직이 편안하고 화평하리로다 / 磐泰宗祊寧且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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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0권 / 시(詩)

만월대 노래〔滿月臺歌〕

 

높은 누대에서 노래 한 곡을 부르고 / 高臺歌一曲

노래가 끝나자 술 한잔을 마시네 / 歌竟酒一杯

세간의 만사야 말할 만한 것이 있으랴 / 世間萬事何足道

제왕의 거처가 재가 되어 버렸네 / 帝王之居成塵灰

옛날 신위 떨친 왕 태조가 / 伊昔神威王太祖

삼척을 한 번 휘두르니 부상이 열렸지 / 三尺一揮扶桑開

신숭의 아래에 도성을 크게 만드니 / 神崧之下大其城

하늘가엔 만월대가 높고 높았네 / 天畔峨峨滿月臺

곤룡포에 옥대하고 남면을 하니 / 衮衣玉帶正南面

운룡풍호가 빈번하게 어울렸네 / 雲龍風虎紛交廻

천년 대국 신라의 임금이 / 新羅大國千年主

대낮에 면박하고 만월대 앞으로 왔었네 / 白日面縛臺前來

대 앞에서 사배하고 공손히 예물을 바치니 / 臺前四拜恭奉幣

왕이 포박 풀어 주고 집으로 돌려보냈지 / 王命解縛歸邸第

후백자남이 만세를 부르니 / 侯伯子男呼萬歲

대동의 일월이 끝없이 밝았네 / 大東日月光無際

압록강이 조종하고 조령이 평정되니 / 鴨水朝宗鳥嶺剗

삼국을 통일하여 만세를 기약했지 / 統三爲一期萬世

흥망의 역사는 반복함을 어찌할거나 / 興亡滚滚可奈何

오백 년 영광이 흘러가는 물과 같았네 / 五百年光如水逝

종거를 남으로 옮기니 저잣거리가 텅 비었고 / 鍾南遷市朝空

황량한 만월대엔 쓸쓸히 가을 풀만 우거졌네 / 荒臺寂寂秋草翳

선죽교는 무너져 푸른 피가 말랐고 / 善竹橋傾碧血乾

추운 현절릉엔 수은 바다가 말랐네 / 顯節陵寒銀海閉

자손들이 만약 대대로 덕을 닦았다면 / 子孫若能世修德

패업이 어찌 하늘의 버림을 받았으랴 / 霸業寧爲天所廢

우리 조정 바야흐로 한낮의 해 같으니 / 聖朝方如日亭午

어찌 이를 생각하여 포상에 묶지 않으랴 / 曷不念此苞桑繫

흥하고 쇠하는 것 모두 자초하는 것이니 / 一興一替皆自作

주고 뺏는 것이 하늘에 달렸다고 말하지 마소 / 勿謂與奪由上帝

 

두문동 노래〔杜門洞歌〕

그윽하게 우리 동네가 깊고 / 幽幽我洞邃

적막하게 우리 문이 닫혔네 / 寂寂我門閉

문 앞에 큰길이 있으니 / 門前有大路

한강 물 굽이까지 달려간다 하네 / 云走漢水汭

한강의 위, 삼각산의 아래에 / 漢水之上三角下

새 대궐이 크게 솟으니 어찌 그리 높은가 / 新闕大起何迢遞

그 아래에 천만 가옥이 형성되니 / 其下千家復萬家

의관들이 남으로 가 대궐에 절을 하네 / 衣冠南去拜玉砌

성인이 위에 계셔 일월처럼 찬란한데 / 聖人在上日月華

물고기 떼처럼 뒤섞여 권세를 다투네 / 魚鱗雜襲爭權勢

내가 높은 벼슬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요 / 我非惡簪笏

내가 흥망성쇠에 어두운 것도 아니라네 / 我非昧興替

인생은 모름지기 내가 좋은 것 따라야 하니 / 人生且須從吾好

손잡고 한 수레 타며 세월을 보낼 뿐이네 / 携手同車聊卒歲

어찌 도성 안 주문에 살던 때가 없었으랴만 / 豈無朱門入天衢

내 문을 닫고 밧줄로 지도리를 삼는 지금만 못하다네 / 不如閉却吾門繩爲樞

평생토록 문안 깊숙한 곳에서 나오지 않으면서 / 百年門深不出脚

자손들 나눠 보내 상인(商人)으로 만들었네 / 分遣子孫爲賈客

이제 와서 두문동은 보이지 않거늘 / 不見至今杜門洞

청산에는 해마다 봄 고사리가 푸르다네 / 靑山歲歲春薇綠

 

박연빙폭 노래〔朴淵氷瀑行〕

세인들은 그저 장엄한 폭포를 말하지만 / 世人但言飛瀑壯

지금 와 보고 기이한 얼음 폭포에 환호하네 / 今我來叫氷瀑奇

공중에 깎아 놓은 듯한 절벽이 천만 장이라 / 空中削壁千萬仞

아래로 드리운 폭포 얼음 심히 위태롭네 / 懸氷下垂太劇危

누가 만 곡의 수은을 가져다가 / 誰將萬斛銀汞來

벼랑 가운데를 녹여서 한번 흐르게 하랴 / 鎔注崖心一淋漓

연나라 하늘의 한 줄기 무지개처럼 밝아 / 皎如燕天一道虹

역수를 거꾸로 꽂은 듯 빛이 아롱지네 / 倒揷易水光陸離

또 적지의 눈빛 나는 용이 / 又如赤池雪色龍

공중에 곧게 솟아 노여운 갈기를 펼친 듯하네 / 直立天半張怒鬐

쏟아지는 폭포야 유람객이면 다 볼 수 있겠지만 / 飛瀑遊人皆可見

추운 날 얼음 폭포는 본 사람이 누구인가 / 氷瀑天寒見者誰

눈병으로 흐릿하여 깨끗하게 못 보는데 / 病眼眩晃不定睛

해의 밝은 빛이 와서 쏘아 주네 / 白日照耀來射之

관인이 내 마음을 즐겁게 해 주려고 / 官人欲以娛我心

큰 솥에 물 끓여서 연지를 붓네 / 煎出大釜灌臙脂

올려다보니 천연적인 것보다는 못하지만 / 仰觀雖似遜天然

또한 잠시나마 기이한 자태를 더할 만하네 / 片時亦足添異姿

한참 앉았노라니 은은하게 읊는 소리 들리는데 / 坐久隱隱聞吟嘯

늙은 교룡이 몸을 감추고 이곳에 누워 있었네 / 老蛟藏用在玆

벼락과 우레가 하룻밤 새 몰아치는 / 霹靂雷霆在一夜

봄철 얼음 녹을 때 와 보라고 청하는 듯 / 請看春來氷坼時

 

대흥산성 노래〔大興山城歌〕

높고 높은 대흥산 하늘에 닿을 듯한데 / 大興山高高接天

한나절을 오르고 올라 마침내 정상에 섰네 / 半日登登始登巓

많은 꿩들 춤추며 날아 산맥을 가르고 / 百雉翔舞裂山脈

둘러싼 구름 노을은 연이어 흐르네 / 包絡雲霞勢連延

명릉 시대 유 장군이 / 明陵之世柳將軍

손수 삽을 들고 사졸들의 앞장을 섰지 / 操鍤身爲士卒先

높이 나는 새조차 넘으려다 도로 떨어지는 곳 / 高鳥欲過還自墮

망루 가에서 별을 딸 수도 있을 듯하네 / 可以摘星樓櫓邊

하늘가 뭇 봉우리 모두 작은 주름이요 / 天端衆峯皆小皺

넓디넓은 먼 바다는 어찌 그리 푸른가 / 一泓遠海何蒼然

옛사람들 축성할 때 참으로 고심하였으리 / 古人築斯良苦心

내 와서 둘러보니 형세가 완벽하네 / 我來周覽體勢全

그 안은 천만 병사 수용할 만하고 / 其中可容千萬甲

서쪽 고을 연합하여 물자 조달도 가능하네 / 轉輸況有西郡聯

만 골짜기 시내는 늘 우렛소리를 내고 / 萬壑川奔常吼雷

천 그루 노목은 나이조차 알 수 없네 / 千章木老不知年

박연폭포 거센 물살과 만나는 곳이라 / 朴淵沸水會處

성가퀴엔 왕왕 용의 기운 서려 있네 / 粉堞往往龍氣纏

절 문이 높게 열려 우뚝하게 이웃하니 / 寺門高開相接

상방의 승려가 수백 수천에 가깝네 / 上方僧指幾百千

땔감과 물 넉넉하고 이처럼 험준하며 / 薪饒水積險如此

샛길은 몰래 청석령과 이어졌네 / 間路暗與靑石連

나라에서 성을 지킬 적임자를 보낸다면 / 國之守城如得人

치우가 있다 한들 어찌 감히 나서랴 / 縱有蚩尤那敢前

송경의 옥백과 자녀들이 / 松京玉帛與子女

시내를 막아 주는 제방처럼 다급할 때 의지할 수 있네 / 緩急恃如防制川

중군이 고건을 멘 채 길가에서 맞는데 / 中軍櫜鞬迎道左

너희는 병법서를 읽을 수 있느냐 / 汝輩能讀兵將編

시험 삼아 포수에게 대포를 쏘아 보게 하니 / 試令砲人放大砲

암벽 머리 메아리가 종이도 뚫을 듯하네 / 巖額應聲如紙穿

애석한 건, 이곳이 길목을 차단하는 요충이 아니라서 / 但恨地非當路塞

오랑캐 기마가 연기처럼 빠져나갈까 염려되네 / 恐敎胡騎走如煙

만약 한양이 포위되어 위급해지면 / 若使漢陽被圍急

이 성이 금성탕지처럼 견고한들 무슨 소용이리 / 此城安用金湯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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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1권 / 시(詩)○정원록(貞元錄)

강성오 침이 온양에서 와서, 제군과 함께 운자를 가려 뽑다〔姜誠吾忱至自溫陽同諸君拈韻〕

 

대가 가자 어김없이 국화가 피더니 / 君歸證新菊

그대가 오니 국화가 시들어 버렸네 / 君到菊花衰

한바탕 웃고 나서 꽃 앞에 앉아 / 一笑花前坐

달빛 아래서 맑은 술을 마시네 / 淸樽月下持

역사의 서찰에서 깊은 정이 느껴지고 / 情深驛使札

바닷가 시에서 표일한 기상이 넘치네 / 氣逸海天詩

오면서 고을 관사에 인사드렸을 때 / 郡閣來時拜

우리 형이 응당 내 생각을 하셨으리 / 吾兄應我思

당시에 삼종형(三從兄) 도공(道恭) 씨가 마침 온양(溫陽)의 수령으로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두 번째〔二疊〕

깊은 가을에 그대를 보낼 때는 / 高秋送之子

아름다운 풀들이 말 머리에서 시들었지 / 芳草馬前衰

거문고 갑을 조용히 닫아 둔 채 / 琴匣愔愔閉

고운 꽃을 따고 따서 지니네 / 瓊華采采持

호서의 달이 몇 번이나 차는 동안 / 屢圓湖外月

시사의 시축엔 빠진 곳이 많았었지 / 多缺社中詩

한 해가 저물 무렵 찾아 준 정성은 / 歲晩來珍重

떨어져 지낼 때의 그리움 때문이리 / 應緣兩地思

 

세 번째〔三疊〕

공문서 너는 어찌 그리 복잡한가 / 簿牒爾何攪

내 머리카락이 점점 쇠어 가는구나 / 鬢毛吾轉衰

조정에서 돌아오면 발을 문득 내리고 / 朝歸簾便下

졸다가 일어나면 책을 늘 펼치지 / 睡起卷常持

약은 학은 때로 문을 엿보고 / 鶴黠時窺閤

고운 산은 능히 시 속으로 들어오네 / 山嬌解入詩

인재와 세도를 걱정하느라 / 人才與世道

세모에도 생각이 가득도 하네 / 歲暮浩盈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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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1권 / 시(詩)○정원록(貞元錄)

심경현이 밤에 와서 벗들과 운자를 뽑아 시험 삼아 짓다〔沈景玄夜至同諸益拈韻以試〕

 

삼청동에 물시계가 저녁을 알리니 / 仙漏三淸暮

깃들려는 까마귀 원림으로 돌아가네 / 棲鴉苑樹還

성대에 호조 판서를 외람되이 차지하여 / 明時叨地部

종일토록 임금의 존안을 모시게 되네 / 終日侍天顔

동성끼리 응하지 않는다면 / 不有同聲應

복야의 한가로움 이루기 어렵네 / 難成卜夜閑

누가 대장부의 기상을 / 誰令丈夫氣

공문서 사이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던가 / 銷盡簿書間

 

두 번째〔二疊〕

사해에 운이 창성하는 시기를 맞아 / 薄海昌辰際

유궁에 구갑이 돌아왔네 / 遺宮舊甲還

구준에는 봉황 일산(日傘)이 비치는데 / 衢樽涵鳳蓋

화축이 용안 주변에 가득했네 / 華祝繞龍顔

시종은 화려하게 꽃을 꽂고 / 侍從簪花爛

한가로이 노래하고 비파를 탔네 / 歌謠拊瑟閑

태평 시대에 나서 늘그막에까지 / 昇平生且老

대궐에서 기쁘게 즐기고 있다네 / 歡樂玉階間

 

세 번째〔三疊〕

운대에 참된 아취가 있어 / 雲臺有眞契

읊조리다가 문득 돌아가길 잊었네 / 吟嘯輒忘還

늙은 내가 속된 객이 아니니 / 老我非塵客

주인은 웃는 얼굴 많아졌네 / 主人多笑顔

따라온 구름은 기운이 엷어졌고 / 隨身雲氣淡

꿈속에 든 바위틈 샘은 한가롭네 / 繞夢石泉閑

골짜기의 말쑥한 의취가 / 丘壑蕭然意

아스라이 시야에 들어오네 / 蒼蒼眺望間

 

네 번째〔四疊〕

초승달이 나를 그리워하는 듯 / 初月應相戀

기약이나 한 것처럼 갔다가 돌아왔네 / 如期往復還

찬 날씨에 번번이 병에 잘 걸렸는데 / 寒天每善病

작은 술자리에 비로소 얼굴이 펴지네 / 小酒始開顔

우물가 낙엽에 가을이 다 간 것에 놀랐는데 / 井葉驚秋盡

거리의 먼지는 밤이 되자 줄어드네 / 街塵入夜閑

무단히 철벌레 울음소리가 / 無端候蟲語

작은 병풍 사이에서 들렸다 말다 하네 / 斷續小屛間

경현이 괴로이 읊기를 그치지 않아 놀리느라 언급하였다.

다섯 번째.

경현에게 독촉하다〔五疊 督景玄〕

능숙한 일인데도 오히려 재촉을 받으니 / 能事猶相促

그대는 아마 돌아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리라 / 君應悔不還

우는 소리가 입속에서 구슬프고 / 鳴聲悲口吻

기름진 광채가 얼굴에서 사라져 가네 / 腴潤損容顔

높은 촛대 유난히 빨리 타는 게 얄미우니 / 高燭偏憎短

동호는 한가롭게 내버려 두었네 / 彤毫一任閑

이웃의 닭은 너무도 망녕되어 / 隣鷄太顚妄

제멋대로 횃대에서 울어 대누나 / 隨意唱塒間

 

여섯 번째.

경현이 시를 제출하여 기뻐하다〔六疊 喜景玄詩出〕

그대 시는 고아한 풍치가 많으니 / 君詩多雅度

시단에 고풍이 돌아왔네 / 壇古風還

한 해는 마음속 보배에서 저물어 가고 / 歲晏懷中寶

가을은 거울 속 얼굴에서 생겨나네 / 秋生鏡裏顔

명성이 우리 시사에서 중하건만 / 聲名吾社重

운월은 약봉에서 한가롭네 / 雲月藥峯閑

술 마신 뒤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 酒後尋常態

대자리를 흥건하게 적셔 놓는 거라네 / 淋漓簟席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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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1권 / 시(詩)○정원록(貞元錄)

밤에 모여서 운자를 뽑다. 내가 약원 제조의 직임을 막 벗었을 때였다〔夜集拈韻時余纔解藥院提擧〕

 

우뚝한 내원이 대궐의 곁에 있다 보니 / 內院岧傍九天

제조의 반열은 임금의 화로 앞에 가까웠네 / 提調班近御爐前

몸은 옥패를 흔들며 낮에 세 번 달려가 / 身搖玉佩趨三晝

손으로 금광을 받들고 만세를 축원했네 / 手奉金光祝萬年

대전 섬돌에서 익숙하게 길 밝힐 촛불을 찾고 / 殿陛慣尋行路燭

대궐 문에서 때로 이경의 쪽잠을 청했지 / 閤門時假二更眠

사직을 하였지만 마음은 여전히 매여 있어 / 縱蒙恩解心猶繫

이불 속에서 멀리 새벽 파루에 놀라네 / 衾裏遙驚曉漏傳

 

두 번째〔二疊〕

쓸쓸한 초가집에 날이 쉬이 저무니 / 白屋蕭蕭易暮天

드문 별 아래 천천히 지팡이에 기대었네 / 一徐倚數星前

강호는 아득하니 늙어 가는 것을 탄식하고 / 江湖緬邈嗟垂老

경세의 뜻 어긋나니 내심 가는 해를 아쉬워하네 / 經濟差池暗惜年

관청의 일은 가을 이후에 점점 많아지는데 / 府牒漸多秋後事

성은 덕분에 새로 새벽잠을 잘 수 있네 / 君恩新借曉來眠

맑은 시는 그저 한가한 시름을 달래려는 것이니 / 淸詩秪爲閑愁遣

만전에 베껴서 함부로 전하지 마소 / 寫罷蠻牋莫浪傳

 

세 번째〔三疊〕

어둠 속 하늘엔 잠두봉 봉화가 걷혔는데 / 蠶岳烽收暝裏天

작은 병풍 앞에서 기거가 편안하네 / 興居安穩小屛前

궁중에선 새해 맞아 새로 달력을 반포하고 / 宮中瑞莢頒新曆

누대 위 연리지는 지난해를 생각하게 하네 / 樓上連枝憶去年

새벽 눈은 깃든 새의 잠을 방해하는 듯하니 / 曉雪欲猜棲鳥夢

밤 추위는 응당 늙은 닭의 잠을 줄이겠지 / 夜寒應損老鷄眠

남산에서 유(兪)와 조(趙)가 주정을 부린 일은 / 兪狂趙醉終南事

한가로이 영리한 종을 통해 소식을 들었네 / 消息閑憑黠僕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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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2권 / 시(詩)○관서록(關西錄)

강주를 출발하며 〈발진주〉 시의 운자를 사용하다〔發江州用發秦州韻〕

 

오늘날 사람은 몸이 편안하길 좋아하나 / 今人愛身逸

고인은 변방의 대책을 중시하였네 / 古人重邊謀

늙고 병든 몸 억지로 변방으로 나오니 / 衰病出塞

이 나라 영토가 강주에서 끝이 나네 / 疆域盡江州

주민은 농사를 생업으로 삼는데 / 居民業畊鑿

건장한 아이는 방추에 지치네 / 健兒罷防秋

강의 근원은 큰 못에서 발원하니 / 江源大澤發

그 빛이 참으로 그윽하기도 하네 / 其色正幽幽

사군은 폐해져서 다스려지지 않는데 / 四郡廢不治

신령스러운 아삼()이 거친 들판에서 생산되네 / 靈産荒疇

이 물건은 귀신이 숨겨 둔 것인데 / 此物鬼神秘

집집마다 가혹한 할당에 괴로워하네 / 家家困誅求

다행스러운 건 나라에 근심거리가 없어 / 所幸國無恐

변경까지 수레와 배 통하는 걸세 / 關塞通車舟

처음에는 나랏일에 급급하였는데 / 始因急王事

마침내 대단한 유람을 실컷 하였네 / 遂得窮壯遊

오랑캐 산에는 흰 안개가 걸쳐 있고 / 胡山橫白霧

검푸르게 짙은 숲 속 나무들이 빽빽하네 / 慘慘林木稠

미인이 술잔을 따라 올리지만 / 美人進叵羅

변경의 근심은 해소할 길이 없네 / 未可解邊憂

한여름에도 기후가 이상하여 / 朱夏氣候異

얼음과 눈 눈부신 빛은 사라지지 않네 / 氷雪爛不收

주전에 정해진 일정이 있는지라 / 廚傳有程期

빗속에서도 머물러 있기 어렵네 / 天雨亦難留

우뚝하게 솟은 세검정 위에서 / 岧兀洗劍亭

자꾸만 멍하니 돌아보게 되네 / 惘然屢回頭

군악 울리며 번갈아 맞이하고 전송하니 / 笳角遞迎送

위수가 수레 앞에서 흘러가네 / 渭水車前流

산속 샛길이 저처럼 험하고 / 山蹊險如此

바위 형세는 천고에 떠 있는 듯하네 / 石勢千古浮

길이 생각하노니, 삼한의 강역에 / 永言三韓域

상서로운 기운이 영원히 가득하기를 / 休氣鬱悠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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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2권 / 시(詩)○관서록(關西錄)

백상루〔百祥樓〕

 

수나라 당나라와 전쟁한 지 이천 년 / 隋唐戰伐二千年

여전히 이 누대가 하늘 높이 솟았네 / 尙有玆樓高近天

상선이 몰려오니 어느 고을에 비라도 내리는가 / 商舶驅來何郡雨

절도사가 새로 상선에 대해 세금을 걷었기 때문에 다른 경내에 정박할 수 없다고 한다.

성가퀴가 만 가구의 연기를 감싸고 있네 / 女墻廻護萬家煙

외성(外城)을 신축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은하수는 장강의 밖에 있지 않은데 / 星河不在長江外

초목은 옛 성 가에서 우는 듯하네 / 草木如鳴古堞邊

참으로 대궐에 문후를 여쭈지 못하였으니 / 最是玉宸違問候

오경까지 촛대 밝혀 잠들지 못하겠네 / 五更銀燭可能眠

이날 내원(內院)에 숙직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두 번째〔其二〕

절도사의 군영은 북방에서 으뜸이니 / 節度營開雄朔方

이름난 누대 고각 소리 푸른 하늘에 울리네 / 名樓鼓角殷蒼茫

황금이 한번 흩어지니 강물이 새로 나고 / 黃金一散江流折

당시에 청천(淸川)을 준설하느라 부고(府庫)의 재물이 바닥났다고 한다.

백조가 멀리 가로지르니 들판 형세가 유장하네 / 白鳥遙橫野勢長

남한에서 사세가 궁해도 하늘은 막막했고 / 南漢事窮天漠漠

닫힌 을지의 사당에는 풀만 쓸쓸하네 / 乙支祠掩草荒荒

백 년토록 오로지 의춘의 장수만 있어 / 百年惟有宜春帥

수려한 산하에 광채를 덮었다네 / 盤鬱山河被耿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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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2권 / 시(詩)○관서록(關西錄)

1년 정유년(1777) 8월 6일에 상이 경희궁에서 창덕궁으로 도로 옮기셨다. 천신이 당시에 예조 판서였는데, 상께서 효명전에 나아가 선대왕의 우주를 받들어 창경궁의 문정전으로 가도록 명하셨다. 도중에 눈물을 금할 길이 없어 삼가 절구 다섯 수를 지어 대략 궁검의 아픔을 부쳐 본다〔元年丁酉八月六日上自慶熙宮還御昌德宮賤臣時爲大宗伯上命詣孝明殿奉先大王虞主陪往昌慶之文政殿路中不勝抆涕謹以五絶略寓弓劍之痛〕

 

운향의 소식은 아득도 하니 / 雲鄕消息一茫茫

인간 세상 어느 곳에서 어상을 받들까 / 何處人間捧御床

그나마 외로운 신하가 죽지 않아서 / 猶幸孤臣能不死

다시 선왕을 뵙는 듯 예를 주관하네 / 周旋如復見先王

 

두 번째〔其二〕

빈 전각에 어슴푸레 저녁 어둠이 생겨나니 / 蒼蒼虛殿晩陰生

분주한 중관의 구레나룻이 밝아 보이네 / 趨走中官鬢雪明

적막함 속에 먼지만 신탑으로 내려앉으니 / 寂寂遊塵神榻下

중엄 외판을 누구를 위해 바칠까 / 中嚴外辦爲誰呈

 

세 번째〔其三〕

새벽에 연로의 푸른 이끼를 쓰니 / 輦路平明掃碧苔

우모는 옛날 그대로 두 줄로 펼쳐졌네 / 羽旄依舊兩行開

남은 백성들 울면서 난여의 길을 바라보며 / 遺民泣望鑾輿道

혹시 우리 임금님 다시 살아 오실까 하네 / 倘是吾王更起來

 

네 번째〔其四〕

종묘 다리 앞 수양버들 늘어지니 / 宗廟橋前楊柳垂

그 아래로 금여가 짐짓 더디게 지나네 / 金輿低過故遅遅

유명 간의 효심은 응당 차이가 없으리니 / 幽明孝思應無間

아직도 생전에 부복하실 때가 기억나네 / 尙憶當年俯伏時

 

다섯 번째〔其五〕

출발할 때 아쉬운 듯 한낮의 해가 더딘데 / 淸蹕依依午景舒

온 성의 남녀노소가 상여를 부여잡네 / 滿城髫白擁神輿

하늘에서 보신다면 희비가 교차하시리니 / 白雲臨睨應悲喜

이들 모두가 생전에 길러 주시던 백성들이네 / 摠是當時赤子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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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3권 / 시(詩)○함인록 상(含忍錄上)

통주곡〔通州曲〕 계유(5월 14일). 맑음. 통주(通州)에서 묵다

 

번화하고 장려한 곳이 통주이니 / 繁華壯麗是通州

명하를 끌어들여 어구에 연결했네 / 句引明河接御溝

버들 늘어진 긴 강기슭의 일만 가호가 / 垂柳長干一萬戶

영롱하게 모두 그림 속에 떠 있는 듯하네 / 瓏瓏都在畫中浮

 

두 번째〔其二〕

산동의 조운선이 만 척이나 펼쳐 있고 / 山東漕稅萬帆開

푸르디푸른 갈석산이 오른쪽에서 끼고 오네 / 碣石蒼蒼右夾來

청작과 황룡이 시야에 어지러운데 / 靑雀黃龍迷一望

푸른 버들 선 둑 가에는 거울 빛이 감도네 / 綠楊堤畔鏡光廻

 

세 번째〔其三〕

첫 번째 배가 석양 속을 가로지르니 / 第一船橫夕照間

포씨 집 재주 있는 자제가 활짝 웃네 / 鮑家才子笑開顔

서호 굽이에 익숙히 살았기 때문인지 / 緣慣住西湖曲

도리어 서호가 평범한 듯 말하네 / 還說西湖似等閑

 

영조관(領漕官)의 배가 모래언덕에 정박했다. 조각한 창, 푸른 발이 바라보면 그림처럼 보이는데 세 사신이 배에서 내려 걸어서 그 속으로 들어갔다. 영조관이 나와서 기쁘게 영접하였는데, 그 사위인 소년 포자경(鮑紫卿)은 더욱 정성이 넘쳤다.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통주의 점사를 방문하여 한참 동안 필담을 하다가, 어두워지고서야 작별을 하였다. 포는 서호(西湖) 사람으로, 서호의 절경에 대해 물으니, 이곳에서 생장하였기 때문에 별달리 기이한 것이 있는 줄은 모르겠다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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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3권 / 시(詩)○함인록 상(含忍錄上)

용만에서의 잡영〔龍灣雜詠〕 을미(4월 5일). 맑음. 의주(義州)에서 묵다. 신축(4월 11일)까지 의주에서 머물다

 

의주성 날씨는 몹시도 흐릿한데 / 灣城風日苦陰陰

사월에도 먼지 모래가 먼 봉우리에 가득하네 / 四月塵沙漲遠岑

늘그막에 또 요동 변방으로 수레를 모니 / 垂老又脂遼塞

근년에 탁지의 금을 완전히 소비했네 / 比年全瘦度支金

밀수꾼은 화이의 구분을 상관하지 않으니 / 潛商不管華夷限

어린 기생도 만주어와 한어를 분간할 줄 안다네 / 小妓能分滿漢音

외로운 나그네는 홀연 시국을 떠올리며 / 時事忽關孤客念

살구꽃 핀 뜰 가에서 한번 읊조리네 / 杏花庭畔一沈吟

 

두 번째〔其二〕

노정은 삼분의 일도 못 마쳤는데 / 征路三分未一分

사신은 머리에 백설이 분분하네 / 行人鬢上雪紛紛

때로 핀 꽃이 외로운 웃음을 짓게 하고 / 有時花發供孤笑

정오인데도 하늘은 초저녁처럼 어둡네 / 亭午天迷似薄曛

봄 뒤의 사냥몰이 산불이 문으로 보이고 / 春後獵燒當戶見

보름 전날 순찰하는 소리가 강 너머에서 들리네 / 望前巡唱隔江聞

이 마음은 나라에 있으니 집안일을 물으랴 / 此心在國家何問

고향 산천이 저녁 구름에 막혀도 아랑곳 않네 / 遮莫鄕園礙暮雲

 

세 번째〔其三〕

먼 변방의 기후가 서울과 다르니 / 窮邊氣候異京師

무단히 잠깐 사이에 추위와 더위가 바뀌네 / 寒燠無端造次移

오랑캐 땅이 겨우 강 하나로 나뉘니 / 胡地纔分江一帶

나그네 시름은 어쩌면 천 줄기 비와 같으리 / 客愁爭似雨千絲

외로운 성에서 적적하게 현등절을 맞는데 / 孤城寂寂懸燈節

성문이 닫힐 즈음 희미한 고각 소리 들리네 / 殘角嗚嗚閉戶時

어찌하면 사행을 잠시라도 지체하지 않아 / 那得星軺無暫滯

우리 성군께 심려를 끼쳐 드리지 않을 수 있을까 / 免敎貽我聖君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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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3권 / 시(詩)○함인록 상(含忍錄上)

통주곡〔通州曲〕 계유(5월 14일). 맑음. 통주(通州)에서 묵다

 

번화하고 장려한 곳이 통주이니 / 繁華壯麗是通州

명하를 끌어들여 어구에 연결했네 / 句引明河接御溝

버들 늘어진 긴 강기슭의 일만 가호가 / 垂柳長干一萬戶

영롱하게 모두 그림 속에 떠 있는 듯하네 / 瓏瓏都在畫中浮

 

두 번째〔其二〕

산동의 조운선이 만 척이나 펼쳐 있고 / 山東漕稅萬帆開

푸르디푸른 갈석산이 오른쪽에서 끼고 오네 / 碣石蒼蒼右夾來

청작과 황룡이 시야에 어지러운데 / 靑雀黃龍迷一望

푸른 버들 선 둑 가에는 거울 빛이 감도네 / 綠楊堤畔鏡光廻

 

세 번째〔其三〕

첫 번째 배가 석양 속을 가로지르니 / 第一船橫夕照間

포씨 집 재주 있는 자제가 활짝 웃네 / 鮑家才子笑開顔

서호 굽이에 익숙히 살았기 때문인지 / 緣慣住西湖曲

도리어 서호가 평범한 듯 말하네 / 還說西湖似等閑

영조관(領漕官)의 배가 모래언덕에 정박했다. 조각한 창, 푸른 발이 바라보면 그림처럼 보이는데 세 사신이 배에서 내려 걸어서 그 속으로 들어갔다. 영조관이 나와서 기쁘게 영접하였는데, 그 사위인 소년 포자경(鮑紫卿)은 더욱 정성이 넘쳤다.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통주의 점사를 방문하여 한참 동안 필담을 하다가, 어두워지고서야 작별을 하였다. 포는 서호(西湖) 사람으로, 서호의 절경에 대해 물으니, 이곳에서 생장하였기 때문에 별달리 기이한 것이 있는 줄은 모르겠다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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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3권 / 시(詩)○함인록 상(含忍錄上)

연경 잡영〔燕京雜詠〕

 

서산은 아스라하고 노하는 긴데 / 西山縹潞河長

번화한 황제 마을은 즐거움이 다하지 않네 / 帝里繁華樂未央

상인의 수레는 붉은 준마가 끌고 / 商貨車騰紅叱撥

왕가의 지붕 기와는 푸른 원앙이 덮었네 / 王門瓦覆碧

군대가 설령을 정벌하자 커다란 비를 세웠고 / 師班雪嶺碑千尺

천단에 제사 마치자 만방에 비가 내리네 / 祭罷天壇雨萬方

고금의 모든 책을 사고에서 간행하니 / 今古全書刊四庫

무영전의 상아 찌 향기가 은은하네 / 武英牙軸細聞香

금천(金川)을 평정하자마자 태학의 뜰 앞에 대첩비(大捷碑)를 세웠고, 또 날이 가물어 친히 기우제를 지내자 비가 내렸다. 그러므로 경련(頸聯)에서 언급한 것이다.

두 번째〔其二〕

대추 잎 처마에 늘어져 온 관이 그윽한데 / 棗葉垂簷一館深

정양문 안의 옥하관 물가에 있네 / 正陽門內玉河潯

책 때문에 잠 설쳐 삼경까지 깨어 있고 / 書排客睡侵三鼓

수레에 실은 이름난 샘물은 십금에 샀네 / 車載名泉買十金

남쪽 선비들은 가련하게 우어를 규제당하고 / 南士可憐禁偶語

‘금(禁)’ 자는 평성(平聲)이다.

통관은 태반이 청심환을 요청하네 / 通官多半乞淸心

노니는 물고기들 유리 어항에 갇혔으니 / 遊魚鎖在琉璃盌

물상과 인정이 모두 갇히었구나 / 物象人情兩滯淫

오랑캐 황제가 바야흐로 엄한 법으로 신민들을 다스리므로, 남방에서 입사(入仕)한 한인(漢人)들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처럼 불안해하였다. 그래서 제5구에서 언급하였다. 통역하는 사람들이 마침 유리 어항에 오색의 붕어를 담아서 바쳤으므로, 결구에서 언급하였다.

세 번째〔其三〕

통주의 흰 돌로 큰길을 만드니 / 通州素石築康莊

동문까지 곧게 흰 비단 그림자가 기네 / 直抵東門練影長

화수와 헌원이 탁록에서 다투었고 / 禍首軒轅爭涿鹿

이전의 협사는 함양으로 들어갔네 / 前塵俠士入咸陽

더위 피해 원명원으로 봄에 거둥하시어 / 圓明避暑春移仗

불국에 영험을 빌며 밤에 향을 태우네 / 佛國祈靈夜爇香

왕성한 운수 백 년 만에 여직이 차지하니 / 旺運百年歸女直

새벽 창에 부질없이 녹로검의 빛이 비치네 / 曉窓空射轆轤光

네 번째〔其四〕

해가 비친 붉은 투구는 피처럼 선명한데 / 日照紅兜似血鮮

금천을 소멸시킨 건 전에 없던 용맹이네 / 金川掃滅勇無前

성 모퉁이의 곰을 걸어 둔 별관엔 기운이 엄숙하고 / 城隅氣肅懸熊館

갑문 입구엔 코끼리를 씻기는 시내의 물결이 거세네 / 閘口波騰浴象川

약소국은 가련하게도 오래도록 갈을 섬기니 / 弱國可憐長事葛

슬픈 노래는 옛날에 연을 칭했던 것을 믿지 못하네 / 悲歌不信古稱燕

오묘한 이치는 아득하니 누구를 통해 헤아릴까 / 玄機窈窅憑誰測

동해로 돌아갈 사람은 밤마다 하늘을 살피네 / 東海歸人夜看天

청나라 황제가 사냥을 하여 곰을 잡아서 돌아왔는데, 무게가 몇백 근은 되었다. 전체를 바짝 말려 별관(別館)에 웅크려 두었는데, 보는 이들이 모두 뒤로 물러섰다. 그래서 제3구에서 언급한 것이다.

다섯 번째〔其五〕

수많은 기정이 황제의 거처를 호위하고 / 百隊旗亭拱帝居

유리의 성가는 차거를 뛰어넘네 / 琉璃聲價軼硨

유리(琉璃)는 창(廠) 이름이다.

비록 사해에 동문의 교화가 없다고 해도 / 雖無四海同文化

그래도 천년토록 다른 형태의 책들이 모이네 / 猶市千年異樣書

무지개 기운 비껴서 삼시의 달과 이어지니 / 虹氣斜連三市月

운황이 멀리 칠향거에 스며드네 / 芸黃遠沁七香車

월나라 사람에게 장보가 끝내 무슨 소용이랴 / 越人章甫終何用

변하여 기방의 이유에 저장되었네 / 兌作箕邦二酉儲

여섯 번째〔其六〕

정북향의 신령스러운 언덕이 만 구역을 통솔하니 / 直北神皐統萬區

오색찬란한 아름다운 기운이 다투듯 서려 있네 / 榮光休氣競盤紆

그저 천지에 응해 분주히 협력하여 / 祇應天地紛同力

이미 원명 시대부터 이곳에 도읍을 정하였네 / 已自元明此定都

남황색 깃발 펼쳐 천만 부대를 구별하고 / 旗擺藍黃千部別

금벽빛 누대는 구룡이 떠받든 듯하네 / 樓搖金碧九龍扶

법장사의 높은 탑에 두 눈이 어질하니 / 法莊高塔雙眸眩

완연히 한 폭의 황주 그림을 대하는 듯하네 / 宛對皇州一幅圖

일곱 번째〔其七〕

녹수 청운을 멀리까지 바라보고 / 綠樹靑雲眼目初

유람 위해 때로 태평거를 빌리네 / 遊觀時借太平車

백성들 풍속은 시장에서 황금 부처를 팔고 / 民風市賣黃金佛

황제의 뜻으로 못에는 금붕어를 기르네 / 皇旨陂藏紫鬣魚

남쪽의 연꽃은 병란을 겪은 뒤에도 향기롭고 / 南內荷香灰劫後

서쪽에서 온 산맥은 태항산 자락일세 / 西來山脈太行餘

누대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내 땅이 아니니 / 樓臺信美非吾土

꿈에 부상의 해 뜨는 곳으로 찾아가네 / 夢入扶桑出日墟

여덟 번째〔其八〕

만 리 길 와서 노니는 것 도리어 기이한데 / 萬里來遊還一奇

웅도라서 작은 고려와는 같지 않네 / 雄都不似小高麗

군대는 종일토록 겹겹으로 성을 호위하고 / 軍容盡日層城護

보기는 한밤중까지 늘어선 상점에서 알겠네 / 寶氣中宵列肆知

회흘의 새로운 화장을 누가 닮을 수 있나 / 回紇新粧誰得似

서양의 기이한 악보를 자연스레 불어 대네 / 西洋異譜自然吹

진부한 선비가 어찌 흥망에 대해 논하랴만 / 腐儒何與興亡事

취한 채 서대에 올라 눈물을 쏟는구나 / 醉上西臺涕泗垂

회흘(回紇)의 여자가 바야흐로 청나라 황제의 총희가 되었으므로, 편내에서 언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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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4권 / 시(詩)○함인록 하(含忍錄下)

유주의 노래〔幽州曲〕

 

금천을 진압하고 요동으로 돌아온 뒤 / 掃罷金川返舊遼

가을 오니 답답해져 허리춤의 검이 우네 / 秋來鬱鬱劍鳴腰

새벽에 눈 내리는 숲에서 범 사냥하니 / 平明獵虎中林雪

사나이의 무료함을 조금 달랠 만하구나 / 差可男兒慰寂寥

 

두 번째〔其二〕

가죽신에 짧은 상의 모두가 군장이요 / 輕靴短服摠軍裝

땋은 머리 한 가닥이 뒤통수에 달렸어라 / 辮髮單條頂後揚

적적한 유생의 관 어디에 쓰겠는가 / 寂寂儒冠安用是

만나는 사람마다 무령왕을 얘기하네 / 逢人每說武靈王

 

세 번째〔其三〕

준마를 채찍질해 골짜기를 벗어나니 / 駿馬鳴鞭出狹斜

어디보다 번화한 심양성의 시가지네 / 瀋陽城市最繁華

붉은 모자 꾸미는 데 아낌없이 돈을 들여 / 天銀不惜紅兜飾

귀한 실을 사서 붙여 남들에게 과시하네 / 自買珍絲向客誇

 

네 번째〔其四〕

의기를 중시하는 협객들과 교제하여 / 意氣邊頭結客多

등불 아래 마주하니 흰 칼날이 번뜩이네 / 寒燈相對劍增波

평생토록 글자라곤 읽을 줄을 모르고 / 平生不辨書中字

형경이 노래했던 〈역수가〉를 알 뿐이네 / 但識荊卿易水歌

 

다섯 번째〔其五〕

큰 도시에 사는 데다 가진 돈도 적지 않아 / 家住名都不少錢

취해서 한번 웃고 예쁜 기생 불러오네 / 醉中一笑買嬋娟

누대에서 부르는 황화곡을 듣노라니 / 樓頭聽奏黃花曲

인간 세상 부귀영화 부러울 게 없어라 / 不羨人間萬戶權

 

여섯 번째〔其六〕

천금으로 말을 사고 백금으로 개를 사니 / 千金買馬百金獒

세상에 이 정도로 호사하는 이 없을 터 / 人世無如此事豪

토끼 노루 끝까지 추격하여 피 마시며 / 窮逐獐仍飮血

누린내가 몸에 배도 상관하지 않도다 / 不關身上染腥臊

 

일곱 번째〔其七〕

유주의 예쁜 여인 나부를 능가하니 / 幽州冶女勝羅敷

열여덟 방년에다 지아비도 아직 없네 / 二九芳年未有夫

웃으면서 협객에게 꽃을 주며 묻는데 / 笑折花枝問俠少

사내놈의 훤한 얼굴 여인보다 아름답네 / 丰茸得似女顔無

 

여덟 번째〔其八〕

조선의 변방 장수 모두가 애송이라 / 朝鮮邊帥摠嬰孩

붉은 모자 눈에 띄면 사색이 되곤 하네 / 乍見紅兜色死灰

폐사군에 들어가서 인삼을 몰래 캐선 / 採得人蔘廢四郡

배를 타고 취해서 압록강을 건너오네 / 乘舟醉過鴨江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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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4권 / 시(詩)○함인록 하(含忍錄下)

용만곡〔龍灣曲〕

 

이백 년 전 선조께서 머물었던 행궁에는 / 宣祖行宮二百年

흙 계단과 갈대 자리 그대로 남았어라 / 土階蘆箔尙依然

군민들이 울면서 하늘 같은 덕 말하니 / 軍民泣說如天德

전세 없어 한가로이 경작할 수 있어서네 / 春日閑耕無稅田

 

두 번째〔其二〕

용만의 장사들은 비장한 노래 아나 / 龍灣壯士解悲歌

평생 이름 못 날리니 무슨 소용 있겠는가 / 生不成名奈若何

십 년간 기발 되어 머리가 다 세고서 / 十年騎撥鬢如雪

먼 변방의 첨사 자리 근근이 얻는구나 / 纔得窮邊僉使窠

 

세 번째〔其三〕

외로운 백마성엔 저물녘 호가(胡笳) 소리 / 白馬孤城咽暮笳

백 년 된 늙은 나무 쓰러질 듯 기울었네 / 百年雲木老橫斜

우리나라 조정에서 임 원수를 잃은 뒤론 / 朝廷自失林元帥

오랑캐가 조선을 다신 겁을 내지 않네 / 不復胡兒畏漢家

 

네 번째〔其四〕

사람 없는 위화도에 초목들만 무성하니 / 威化場空草樹齊

봄이 오자 사슴들이 무리지어 새끼 치네 / 春來麋鹿暗生麑

순행 행차 의주성을 넘어가지 못하건만 / 巡旌未度灣城曲

사냥꾼은 압록강을 건너 먼저 모여드네 / 獵卒先屯鴨水西

 

다섯 번째〔其五〕

춤추는 기녀 몸짓 흰 눈처럼 가볍고 / 舞妓腰肢白雪輕

풍성한 연석에는 달이 가득 비쳐 드네 / 華筵對酒月盈盈

부윤은 기뻐 웃고 사신은 취했는데 / 使君歡笑行人醉

할 일 없는 순라군이 오경을 알리도다 / 無事巡軍報五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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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4권 / 시(詩)○함인록 하(含忍錄下)

동선령을 노래하다〔洞仙嶺歌〕 갑신(윤6월 26일). 맑음. 서흥(瑞興)에서 묵다

 

서북 지방 요새가 셀 수 없이 많지마는 / 西塞關防定無數

동선령의 험준함은 예로부터 유명했지 / 洞仙之險稱自古

이어진 봉우리가 하늘 높이 솟구치고 / 峯巒連連近靑天

가운데가 우묵 패여 선경이 열렸어라 / 其中窈然開洞府

천 길의 나무 늙어 저절로 쓰러지고 / 千章木老還自僵

초목들로 뒤덮여서 대낮에도 어둑어둑 / 蒙絡不知山日午

골짜기에 어지러이 폭포수가 떨어지니 / 百谷紛紛送飛流

봉우리에 메아리쳐 비바람 소리 같네 / 千巖響答如風雨

신선이 오지 않아 생학은 멀어지고 / 洞仙不來笙鶴遠

한낮에도 자욱하게 운무에 덮였어라 / 白日澒洞留雲霧

서쪽으로 용만까지 육백 리 거리인데 / 西去龍灣六百里

우 임금의 도끼 써서 수레 길을 열었지만 / 禹斧鑿開冠蓋路

사나운 호랑이가 수시로 출현하여 / 有時猛虎行且坐

숲 속에서 노하여서 우레처럼 포효하여 / 中林吼哮風霆怒

행인들이 자유롭게 오고 가지 못하고 / 行人不敢掉臂去

무리지어 넘느라고 고충이 실로 많네 / 前呼後應多辛苦

산 정상엔 새겨 놓은 그림이 산뜻하니 / 仰看山頂刻畫新

성을 쌓은 사람은 조호신이라 하네 / 築城者誰趙虎臣

활짝 열린 성문은 무지개 모양이요 / 城門呀然落彩虹

별도로 건물 지어 기와를 덮었어라 / 別開廨宇瓦鱗鱗

우후를 옮겨 와서 지키려고 하였지만 / 鎭守欲令虞候移

실제로는 인접한 정방성에 의지하네 / 聲勢實藉定方隣

앞사람이 성 쌓느라 꽤나 힘을 들였건만 / 前人經營頗費力

뒷사람이 비웃으며 그대로 버려두어 / 後人譏笑一棄擲

성과 해자 황폐해져 산안개가 자욱하고 / 城池蕪穢煙嵐積

우물 부엌 무너진 채 이끼에 덮여 있네 / 井竈夷毁苔蘚碧

작은 성이 급할 때에 큰 도움은 못 되어도 / 孤城未必緩急須

평상시에 대비하면 없기보단 나을 텐데 / 陰雨綢繆亦勝無

예로부터 고려에선 가지가지 계획들이 / 從古高麗百千事

사흘이면 끝났으니 이래서야 되겠는가 / 只可三日胡爲乎

때마침 절도사의 경내가 평화로워 / 好是昇平節度府

피리 불고 북을 치며 한껏 흥을 돋우도다 / 吹笙擊鼓事歡娛

‘고려공사(高麗公事) 삼 일’이라는 속담이 있으므로 시편에 언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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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4권 / 시(詩)○함인록 하(含忍錄下)

기마탄〔棄馬歎〕

 

만 리 길에 나와 함께 온갖 고생 하였으니 / 同我辛苦萬里途

짐승이라 해도 어찌 정이 들지 않았으랴 / 馬雖畜物情豈無

비가 내려 진흙탕인 계주의 저녁 길을 / 天雨泥海薊州夕

네가 끄는 수레 타고 급히 달려갔었노라 / 駕汝行軒急馳驅

갑자기 나 때문에 네가 병이 나 버려서 / 一朝汝病由我作

절구 찧듯 절뚝이며 가다가 서곤 하여 / 足蹇如舂行且立

일행들과 닭이 미처 울기 전에 길 떠나도 / 衆中先於鷄唱發

삼경이 되어서야 숙소에 들어갔지 / 宿處始趁三更入

발에 침을 놓았지만 상처가 더 심해져 / 馬夫針蹄蹄益傷

데려올 때 비틀대며 제대로 못 걷더니 / 運來十步九欹仄

오늘 날이 밝고 보니 억지로도 할 수 없어 / 及至今朝强不得

길에 뻗어 채찍에도 꿈쩍을 하지 않네 / 鞭之不起道側

마부를 남겨 두어 치료하게 하려 해도 / 欲使留治待差復

갑군이 규정 들어 안 된다고 반대하니 / 甲軍不許從人落

우리 일정 너 때문에 지체할 수가 없어 / 我行不可爲汝住

결국은 야박하게 널 버리고 가려 한다 / 畢竟棄置如不惜

마부가 굴레 풀고 꼬리를 자르더니 / 馬夫脫羈兼割尾

너를 보며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는데 / 對汝良久淚橫臆

주인 잃은 슬픔으로 네 표정은 아득하고 / 汝容依依失主悲

자꾸 뒤를 돌아보는 내 마음은 참담하다 / 我心慘慘回頭數

먼 나라에 함께 왔다 혼자 돌아가는데 / 異域同來不同歸

더구나 사생의 소식조차 모르리라 / 況乃死生無消息

바라는 건 호인이 너의 병을 치료하여 / 但願胡人療汝病

봄풀 자란 평야에서 길러 주는 것뿐이다 / 善養平郊春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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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4권 / 시(詩)○함인록 하(含忍錄下)

용만곡〔龍灣曲〕

 

이백 년 전 선조께서 머물었던 행궁에는 / 宣祖行宮二百年

흙 계단과 갈대 자리 그대로 남았어라 / 土階蘆箔尙依然

군민들이 울면서 하늘 같은 덕 말하니 / 軍民泣說如天德

전세 없어 한가로이 경작할 수 있어서네 / 春日閑耕無稅田

두 번째〔其二〕

용만의 장사들은 비장한 노래 아나 / 龍灣壯士解悲歌

평생 이름 못 날리니 무슨 소용 있겠는가 / 生不成名奈若何

십 년간 기발 되어 머리가 다 세고서 / 十年騎撥鬢如雪

먼 변방의 첨사 자리 근근이 얻는구나 / 纔得窮邊僉使窠

세 번째〔其三〕

외로운 백마성엔 저물녘 호가(胡笳) 소리 / 白馬孤城咽暮笳

백 년 된 늙은 나무 쓰러질 듯 기울었네 / 百年雲木老橫斜

우리나라 조정에서 임 원수를 잃은 뒤론 / 朝廷自失林元帥

오랑캐가 조선을 다신 겁을 내지 않네 / 不復胡兒畏漢家

네 번째〔其四〕

사람 없는 위화도에 초목들만 무성하니 / 威化場空草樹齊

봄이 오자 사슴들이 무리지어 새끼 치네 / 春來麋鹿暗生麑

순행 행차 의주성을 넘어가지 못하건만 / 巡旌未度灣城曲

사냥꾼은 압록강을 건너 먼저 모여드네 / 獵卒先屯鴨水西

다섯 번째〔其五〕

춤추는 기녀 몸짓 흰 눈처럼 가볍고 / 舞妓腰肢白雪輕

풍성한 연석에는 달이 가득 비쳐 드네 / 華筵對酒月盈盈

부윤은 기뻐 웃고 사신은 취했는데 / 使君歡笑行人醉

할 일 없는 순라군이 오경을 알리도다 / 無事巡軍報五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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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4권 / 시(詩)○함인록 하(含忍錄下)

유주의 노래〔幽州曲〕

 

금천을 진압하고 요동으로 돌아온 뒤 / 掃罷金川返舊遼

가을 오니 답답해져 허리춤의 검이 우네 / 秋來鬱鬱劍鳴腰

새벽에 눈 내리는 숲에서 범 사냥하니 / 平明獵虎中林雪

사나이의 무료함을 조금 달랠 만하구나 / 差可男兒慰寂寥

 

두 번째〔其二〕

가죽신에 짧은 상의 모두가 군장이요 / 輕靴短服摠軍裝

땋은 머리 한 가닥이 뒤통수에 달렸어라 / 辮髮單條頂後揚

적적한 유생의 관 어디에 쓰겠는가 / 寂寂儒冠安用是

만나는 사람마다 무령왕을 얘기하네 / 逢人每說武靈王

 

세 번째〔其三〕

준마를 채찍질해 골짜기를 벗어나니 / 駿馬鳴鞭出狹斜

어디보다 번화한 심양성의 시가지네 / 瀋陽城市最繁華

붉은 모자 꾸미는 데 아낌없이 돈을 들여 / 天銀不惜紅兜飾

귀한 실을 사서 붙여 남들에게 과시하네 / 自買珍絲向客誇

 

네 번째〔其四〕

의기를 중시하는 협객들과 교제하여 / 意氣邊頭結客多

등불 아래 마주하니 흰 칼날이 번뜩이네 / 寒燈相對劍增波

평생토록 글자라곤 읽을 줄을 모르고 / 平生不辨書中字

형경이 노래했던 〈역수가〉를 알 뿐이네 / 但識荊卿易水歌

 

다섯 번째〔其五〕

큰 도시에 사는 데다 가진 돈도 적지 않아 / 家住名都不少錢

취해서 한번 웃고 예쁜 기생 불러오네 / 醉中一笑買嬋娟

누대에서 부르는 황화곡을 듣노라니 / 樓頭聽奏黃花曲

인간 세상 부귀영화 부러울 게 없어라 / 不羨人間萬戶權

 

여섯 번째〔其六〕

천금으로 말을 사고 백금으로 개를 사니 / 千金買馬百金獒

세상에 이 정도로 호사하는 이 없을 터 / 人世無如此事豪

토끼 노루 끝까지 추격하여 피 마시며 / 窮逐獐仍飮血

누린내가 몸에 배도 상관하지 않도다 / 不關身上染腥臊

 

일곱 번째〔其七〕

유주의 예쁜 여인 나부를 능가하니 / 幽州冶女勝羅敷

열여덟 방년에다 지아비도 아직 없네 / 二九芳年未有夫

웃으면서 협객에게 꽃을 주며 묻는데 / 笑折花枝問俠少

사내놈의 훤한 얼굴 여인보다 아름답네 / 丰茸得似女顔無

 

여덟 번째〔其八〕

조선의 변방 장수 모두가 애송이라 / 朝鮮邊帥摠嬰孩

붉은 모자 눈에 띄면 사색이 되곤 하네 / 乍見紅兜色死灰

폐사군에 들어가서 인삼을 몰래 캐선 / 採得人蔘廢四郡

배를 타고 취해서 압록강을 건너오네 / 乘舟醉過鴨江回

 

번암집 제15권 / 시(詩)

또 망천의 12운에 차운하다〔又次輞川十二韻〕

 

지초 캐는 골짝에는 정적이 돌고 / 漠漠採芝谷

차조를 심은 밭은 깊고 깊으니 / 深深種秫田

우연하게 율리로 돌아왔을 뿐 / 偶成歸栗里

평천장을 꾸미려고 한 건 아니네 / 非爲飾平泉

벼슬살이하느라고 다 늙었는데 / 簪笏行將老

산림에선 참선하는 승려와 같네 / 山林定似禪

사슴들은 현포의 꽃잎을 먹고 / 鹿含玄圃蘂

물고기는 녹색 연못 밑에 노는데 / 魚負綠塘蓮

산굽이에 솥 걸고서 기장밥 짓고 / 黍飯炊巖曲

노송나무 근처에서 화전(花煎) 부치네 / 花糕檜邊

농부는 한 골짝만 있으면 그뿐 / 田公專壑一

소부는 천금을 다 흩어 버렸지 / 疏傅散金千

상해는 지켜보니 어떠하던가 / 桑海看何似

부침은 우연이니 웃어넘길 뿐 / 升沈笑適然

빽빽한 솔가지에 달이 비추고 / 松深穿素月

엉킨 등라 사이로 먼 하늘 드네 / 蘿合漏遙天

폭포에는 물이 튀어 안개 피는데 / 瀑沫跳成霧

부엌에선 남모르게 단약을 굽네 / 丹廚密惹煙

몇 사람과 어울려서 시나 읊으며 / 嘯歌同數子

제현에게 좋은 정치 일임하노라 / 致澤付諸賢

환로에서 항룡 되어 부끄러우니 / 宦業慙龍亢

초의는 학이 검게 물든 듯하네 / 初衣似鶴玄

예로부터 내 마음과 일치하는 건 / 古來會心者

오로지 망천 시에 있을 뿐이네 / 惟有輞川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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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6권 / 시(詩)

알릉곡〔謁陵曲〕

 

영릉의 상로의 감회 저물녘에 처창한데 / 寧陵霜露晩凄凄

석마는 지금도 북을 향해 울부짖는 듯 / 石馬常如向北嘶

친히 행하시는 남한산성의 군사 훈련 / 南漢城頭親習戰

신손은 회계의 시절을 잊지 않았으니까 / 神孫不忘會稽棲

두 번째〔其二〕

태평성대 맞이하여 성군의 백성 모두가 / 昇平煙月聖人氓

해를 향해 기우는 해바라기의 마음이라 / 摠是葵情向日傾

들이든 산이든 앞다퉈 기쁘게 우러르나니 / 被野彌山爭覩快

임금님 한번 웃으심에 팔방이 영화로워라 / 天顔一笑八方榮

세 번째〔其三〕

주황색 고습에 보라색 행전 졸라매고 / 朱黃袴褶紫行纏

엄중히 어마 호위하니 햇빛도 산뜻해라 / 齊擁天駒日色鮮

앞장서서 인도하는 서른여섯 별감들 / 爭道別監三十六

한 몸 장식하는 데에 백금은 들였겠네 / 一身裝束百金捐

네 번째〔其四〕

마름꽃 끝에서 가을바람 살랑살랑 일어나니 / 蘋末西風細細吹

광릉에 막 해가 뜨며 붉은 깃발들 펄럭펄럭 / 廣陵初日滿紅旗

하늘 멀리 은은히 들리는 균천의 음악 소리 / 遙空隱隱勻天樂

임금님 행차가 도착하시기 직전임을 알겠도다 / 已識鑾輿未到時

다섯 번째〔其五〕

양안 사이에 늘어선 용주 일만여 척 / 兩岸龍舟萬軸餘

창파가 힘을 합쳐 임금님 행차 모시더니 / 滄波同力捧鑾輿

아침나절 순조롭게 도강(渡江)의 공 이룬 뒤엔 / 終朝利涉功成後

무수히 내 낀 물결들 각자 가고 싶은 대로 / 無限煙濤任所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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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6권 / 시(詩)

사술의 매화를 생각하며 우스개로 장가를 지어 사술에게 부치다〔憶士述梅花戲草長歌寄士述〕

 

예로부터 매화에 푹 빠진 이는 누구일까 / 從古癖梅者誰子

이전에는 임포요 그 뒤엔 홍리라 하리 / 前有林逋後弘履

홍리는 매화가 없으면 기필코 길러서 키워 내고 / 履也無梅苦蓄梅

매화가 방 안을 못 채우면 마음이 불안하다나요 / 梅不滿室心不已

특사를 급히 파견하여 옮겨 오게 하는가 하면 / 爲送健步移得來

장난 편지 위조해서 꼼짝없이 바치게 하기도 / 戲折僞簡箝致之

탐부가 오이를 먹을 때면 맵거나 달거나 안 가리고 / 貪夫喫瓜辛甘齊

주당이 술을 마실 때면 청주나 탁주나 다 좋은 법 / 酒人傾壺淸濁宜

조비연과 양 귀비 등 미녀가 교태를 부리는 속에 / 飛燕玉環嬌相倚

추녀 무염을 끼워 준다면 너무도 기괴한 일이건만 / 間以無鹽事尤奇

홍리는 웃음을 머금고서 좋고 좋다 말하면서 / 履也含笑曰好好

모두 거두어 함께 기르며 내버리는 일이 없이 / 俱收竝蓄無所遺

외투를 벗어서 덮어 주어 추위를 몰아내는가 하면 / 爲脫狐裘遮辟寒

비단을 아끼지 않고 늘어뜨려 장막으로 삼았나니 / 不惜雲紗持作帷

그윽한 안방을 의연히 군옥의 관부로 만들고는 / 洞房依然群玉府

날마다 시사의 붕우를 불러다 노닐며 즐겼다오 / 日邀社朋遊且嬉

노부도 이런 일엔 흥취가 얕지 않은지라 / 老夫於此興不淺

꽃이 피어 멋진 모임 이뤄지기만 기다리며 / 直待花發爲佳期

동쪽 이웃의 죽엽주도 갖추어 놓고 / 且具東隣竹葉酒

고인의 매화시도 미리 점검하였나니 / 預檢古人梅花詩

동문의 필마로 창졸간에 돌아와서도 / 東門匹馬何倉卒

삼횡월락의 정경을 항상 생각했더라오 / 參橫月落長相思

듣자 하니 꽃 핀 것이 벌써 흐드러져서 / 聞道花開已爛漫

제적 지역의 향기요 빙옥의 자태라는데 / 狄之香氷玉姿

빙옥의 자태는 누가 평하며 향기는 누가 맡을꼬 / 玉姿誰評香誰

유의 코는 막히고 오의 눈은 색맹일 것인데 / 兪鼻全塞吳眼癡

더군다나 여와도 그만 나를 지금 찾아와서 / 況乃餘窩訪我至

매화 옆에 술병 들고 마시는 이도 없으리니 / 梅傍一壺無人持

매화도 응당 풀이 죽어 있겠지만 / 梅亦應怊悵

나도 때로 탄식하며 아쉬워할밖에 / 我亦時歎惜

매형에게 말 전하노니 때에 순응해 힘 기르며 / 寄語梅兄爲遵養

내가 뒷날 나귀 타고 수각에 가는 날 기다리기를 / 待我他時一驢臨水閣

그런 뒤에야 매형도 웃고 나도 웃으면서 / 然後梅笑吾亦笑

봄 귀신의 기쁜 소식 저버리지 않으리라 / 不負東皇喜消息

수각(水閣)은 동(洞)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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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6권 / 시(詩)

세모행〔歲暮行〕

 

소년 시절에 세밑을 만날 때면 / 少年値歲暮

한 살 먹는 게 아쉬워서 즐겁지 않았는데 / 惜添一齒心不樂

늙어 갈수록 세밑을 만날 때면 / 老去値歲暮

별수 없지 하며 한 해 버린 셈 친다 할까 / 置之無奈如棄擲

열흘을 명덕산에 높이 누워 있노라니 / 一旬高明德山

사립문도 안 보이게 자욱이 내리는 눈 / 雨雪漠漠掩松關

부로는 두메에 거하여 문후도 중단하고 / 父老奧居休問候

붕우도 잠시 왔다가 곧바로 돌아간다네 / 朋友暫訪旋歸還

바람 맞은 솔은 대낮에 덜그럭 갈기들이 뒤엉기고 / 風松晝紛鬐鬣

얼어붙은 샘은 한밤에 조르륵 옥구슬이 구르는 듯 / 氷泉夜墜鳴瑤環

이런 때엔 웅얼거리며 백발을 아쉬워하고 / 此時沈吟歎白髮

이런 때엔 앉았다 섰다 대궐을 그리워한다오 / 此時行坐戀丹闕

물어보세 이해가 며칠이나 남았는지 / 借問此歲餘幾日

십오 일 지나면 바로 정월 초하루인데 / 日過三五是元日

관복 입고 조정의 반열 따르기도 어려운 몸 / 簪珮難隨大庭班

매화는 종남산 골방을 고수하라고 충고하네 / 梅花敎守終南室

해는 서로 치달리고 물은 동으로 흐르는 법 / 白日西馳水東流

예로부터 이러한데 이 몸이 무얼 근심하랴 / 古來如此我何愁

산골 아궁이 한밤중에 장작불을 지피면서 / 山廚榾燒中夜

술 데워 권하노니 그대여 잠시 머무시라 / 暖酒勸君君且留

공연히 격호하며 한 곡조 노래할 것 있소 / 莫謾擊壺歌一曲

위대한 우리의 도 길이 유유할 텐데 뭘 / 大哉吾道長悠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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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6권 / 시(詩)

붓을 달려 김생 지규의 병풍에 쓰다〔走筆書金生之奎屛〕

 

그대는 평양에 거주하는 객 / 君是箕城客

평양에서 오는 길 머나멀건만 / 箕城道路長

어떻게 서리와 눈을 무릅쓰고 / 如何冒霜雪

푸른 산 별장을 다시금 찾아왔나 / 重訪碧山莊

두 번째〔其二〕

세상길은 분분히 쟁탈전을 벌이면서 / 世路紛傾奪

멋대로 평론하며 진정성이 전혀 없는데 / 雌黃苦少眞

성심으로 날 좋아하는 이가 있으니 / 誠心好我者

그는 바로 기성 사는 사람이라오 / 惟有箕城人

세 번째〔其三〕

말이 없으니 빌려줄 수가 있나 / 無馬艱貰馬

양식이 없으니 싸 줄 수가 있나 / 無糧艱聚糧

서로 만난 것을 좋아할 따름이요 / 但爲相逢喜

여행길 먼 것은 알지도 못한다네 / 不知行路長

네 번째〔其四〕

나의 오두막에는 아무것도 없고 / 吾廬無所有

덩그러니 책상 하나 놓여 있을 뿐 / 寂寂一書床

그대가 와서 옥빛이 자리를 비췄는데 / 君來玉映座

그대가 가면 달빛이 들보에 걸리겠지 / 君去月懸樑

다섯 번째〔其五〕

푸르고 푸른 명덕산에 들어와서 / 蒼蒼明德山

물과 구름 사이에 집을 얽어 놓고는 / 結屋水雲間

나는 지금 늙어서 세상일 모두 사양하는데 / 吾方老謝事

그대 역시 담박해서 돌아갈 줄을 모르누나 / 君亦澹忘還

여섯 번째〔其六〕

일만 나무에 바람 소리 울리는 속에 / 風聲萬木裏

섣달그믐 지새우는 그대 그리고 나 / 守歲君與我

주방이 썰렁해서 대접할 것은 없고 / 貧廚無供具

담담히 앉아 등잔불만 마주할 따름 / 淸坐對燈火

일곱 번째〔其七〕

신정이라 달이 아직 차지 않은 때 / 新正月未滿

고향에 돌아가는 그대 떠나보내노니 / 送爾歸故園

가다가 정월 대보름 둥근달을 만나면 / 行逢上元月

연명헌에서의 추억을 응당 떠올리리라 / 應憶戀明軒

여덟 번째〔其八〕

나는 문옹의 교화가 모자라지만 / 我乏文翁化

그대는 정녕코 직하의 학사이니 / 君爲稷下生

돌아가 기자의 〈홍범〉을 강론하고 / 歸歟講箕範

여사로 정전에서 밭갈이하시기를 / 餘事井田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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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6권 / 시(詩)

침랑 이원성에 대한 만사〔李寢郞源誠挽〕

 

우리 도가 장차 어떻게 되려고 / 吾道欲何似

인재가 지금 씻은 듯이 없는지 / 人才方渺然

초야의 여러 의론을 종합해 보면 / 徵諸草野論

이군의 훌륭함을 알 수 있었다네 / 有是李君賢

예악으로 몸가짐을 엄밀히 하고 / 禮樂持身密

지란으로 만든 띠가 선명했나니 / 芝蘭製珮鮮

도성 남방 오래된 세가의 전통을 / 南坊舊喬木

봄기운 애연히 전할 수 있었다네 / 春意藹能傳

 

두 번째〔其二〕

지봉에게 아마도 속 깊은 생각이 있어서 / 芝峯應有鬼

친히 보듬고 이 기린아를 내려보냈겠지 / 親抱送麟兒

겸금의 값이 나가는 귀중한 보물이요 / 價以兼金重

가문을 지탱할 만한 한 그루 나무였어라 / 家惟一木支

재액의 운세에서 양의 기운이 돋았나니 / 微陽百六運

시로 장원한 것쯤이야 여사일 뿐이었다오 / 餘事狀元詩

노부가 그대를 고대했던 그 뜻을 / 老子相須意

당시에 그대도 혹 알 수 있었으리 / 當時爾或知

 

세 번째〔其三〕

결백하여 홍진의 생각을 여의었고 / 耿介離塵想

종용하여 도의 자질에 가까웠으니 / 從容近道資

조물이 그에게 햇수를 더 빌려줬더라면 / 以年如或假

얼마나 발전할지 헤아릴 수가 있었으랴 / 其進能涯

그대 말고 내가 누구를 의지하리오 / 微爾吾誰仗

지금에 와선 일이 비통해할 만하네 / 於今事可悲

산야의 사람이 글을 안고 눈물 흘리니 / 山阿抱書泣

싸라기눈이 자욱하게 장막을 채우누나 / 霜霰浩盈帷

 

네 번째〔其四〕

도성에서 동쪽으로 십오 리 떨어진 곳 / 東城十五里

그대가 찾아와서 내 얼굴이 환해졌지 / 君到我顔愉

앉은 자리 온윤한 것이 옥과 같았고 / 坐處溫如玉

읊을 때 침방울 속에 구슬이 보였지 / 吟時唾見珠

첫추위가 어쩌면 병의 빌미 됐을지도 / 初寒應汝病

인생 만사 그만 막다른 길이 되었구나 / 萬事是窮途

어버이 눈물을 그래도 닦아 주려 하는 / 願拭高堂淚

하늘의 마음이 두 아이 속에 보이네 / 天心見二雛

군이 나를 명덕산(明德山) 속으로 찾아와서 시 한 편을 읊고 돌아갔는데, 그 뒤에 바로 병이 들어 마침내 일어나지 못했으므로 시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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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6권 / 시(詩)

임인년(1782, 정조6) 1월에

내가 병조 판서의 신분으로 집권층의 무함을 받았으므로, 소장을 올려 해면을 허락받고 삼포에 있는 김씨의 누정으로 나갔는데, 이때 생질인 이유경이 따라왔다. 이에 당시의 일을 술회하며 시를 지어 주인에게 사례하고 아울러 유경에게도 보여 주다〔壬寅正月余以大司馬被用事者讒誣陳章蒙解出三浦金氏亭甥子李儒慶從述懷賦詩以謝主人兼示阿慶〕

 

더디고 더디게 대궐을 하직하고 / 遲遲謝城闕

아득한 심정으로 한강 변의 삼포로 / 莽莽出江浦

대궐을 어찌 그리워하지 않으랴만 / 城闕豈不懷

근래에 시호가 많으니 어떡하오 / 邇來多市虎

이 몸이 그래도 미천한 신분이 아닌지라 / 我有不貲軀

거주할 데를 찾지 못해 마음이 조마조마 / 蹙蹙迷所住

명덕산의 내 별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 非無明德莊

형세를 감안하면 실로 두렵고 겁날 따름 / 便宜實恐懼

말을 듣자 하니 하목정이란 곳이 / 聞說霞鶩亭

아스라이 화령(花嶺) 촌을 굽어본다고 / 縹臨花塢

긴 강물이 높다란 다락 보듬은 가운데 / 長江抱飛棟

호연한 기운이 온몸을 흥건히 적셔 주고 / 灝氣流巾屨

백사장은 밝기가 달빛처럼 환해서 / 平沙明如月

예부터 역노가 있을 수 없었다네 / 古來無

주인이 그동안 나를 후하게 대하면서 / 主人於我厚

누차 고맙게도 초청 편지를 보냈는데 / 屢邀煩尺素

이때 나를 따라온 자가 그 누구였던가 / 從我者其誰

우리 유경이 기꺼이 동행해 주었다오 / 阿慶與同赴

봄날의 엷은 얼음 완전히 깨지지 않아 / 春氷未全坼

대현의 길도 얼마나 가기 어렵던지 / 艱哉大峴路

화령은 참으로 쉽게 알 수 있었나니 / 花嶺誠易知

구름이 모인 듯 은행나무 우뚝했으니까 / 靄靄銀杏樹

나를 위해 정원을 깨끗이 쓸어 놓고 / 階庭爲我掃

나를 위해 대자리 정갈히 깔아 주고 / 莞簟爲我鋪

기쁜 얼굴로 한방을 함께 썼나니 / 歡然共一室

누가 손이고 주인인지도 몰랐어라 / 不知賓與主

그대는 참으로 호오가 남다른 사람 / 君誠異好惡

나는 실로 아첨할 줄을 모르는 것을 / 我實少媚

태어나 어려서부터 고서를 읽었을 뿐 / 生少讀古書

이끗과 작록은 내가 힘쓴 게 아니요 / 利祿非所務

목표라면 백성이 잘사는 데에 두고 / 所期在致澤

나의 재주 없는 것은 걱정도 안 했다오 / 不恤無才具

옳은 길 고수하며 독자적으로 행했으니 / 直道以獨立

어떻게 권세가의 노여움을 면했으리오 / 那免權貴怒

죽더라도 내 좋아하는 것을 따르리니 / 雖死從吾好

서책 안고 끝까지 이렇게 살아가리라 / 抱書以終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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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6권 / 시(詩)

영종대왕의 기신에 눈물을 훔치며 쓰다〔英宗大王忌辰抆淚以書〕

 

신성하신 삼황이 재현하셨으니 / 神聖三皇再

종묘사직 만세토록 이어지리라 / 宗祧萬歲仍

왕도가 탕평함이 없지 않았건만 / 非無王道蕩

항상 전전긍긍하며 신중히 하셨어라 / 長見小心兢

해와 달을 춘대에 걸어 놓으시고 / 日月春臺麗

뇌정으로 밤 도깨비 혼내 주시며 / 雷霆夜魅懲

나라를 통치하신 오십 년의 공적을 / 治功五十載

신의 붓으로 그려 내기 어렵나이다 / 臣筆畫難能

천신(賤臣)이 이제 막 실록의 편찬을 끝냈으므로 이렇게 말하였다.

 

두 번째〔其二〕

신의 생애가 완고함이 또한 심해서 / 有生頑亦甚

눈물 흘리지 않을 일이 없습니다만 / 無事不潸然

탕약 사발을 어떻게 좇아 올려 드리며 / 藥盌何從進

왕의 교서를 어떻게 다시 엮으리이까 / 雲章那更編

재주가 미천함은 횃불과 같다고 할 것인데 / 才微應似

성상의 은혜가 막대함은 실로 하늘과 같습니다 / 恩大實如天

교릉 너머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 目斷喬陵外

신의 마음 한강 가에서 재가 됩니다 / 心灰漢水邊

 

세 번째〔其三〕

지금도 기억나네 관서에서 돌아와 납절했을 때 / 尙憶西關來納節

사알에게 얼른 데려와 알현케 하라고 하셨지요 / 促令司謁引登筵

성상께서 해 넘겨 돌아온 것을 유독 기뻐하시어 / 聖心偏喜經年返

한밤중 선실(宣室)에서 담소하는 은혜 삼가 받들었지요 / 笑語恭承半夜宣

우매하고 완고한 처세가 부끄럽지 않겠습니까마는 / 人世冥頑那不愧

강호에서 쪼고 마시며 그런대로 잘 살고 있습니다 / 江湖飮啄苟能全

외로운 신하가 이날 흘리는 천 가닥 눈물을 / 孤臣是日千行淚

옆에서 신명이 위에서 하늘이 지켜보고 있나이다 / 傍有神明上有天

 

번암집 제17권 / 시(詩)○희년록 상(稀年錄上)

사도 장헌세자의 개장에 즈음한 만사〔思悼莊獻世子改葬輓〕

 

을묘년(1735, 영조11) 정월의 일을 공경히 생각건대 / 恭惟乙卯月之正

이극문이 열리며 백일잔치가 열렸었네 / 貳極門開百祿呈

밤을 이어 빛나는 서성(瑞星)을 모두 우러러보고 / 連夜有星皆仰視

팔방에 환호하는 소리 없는 날이 없었지요 / 八方無日不歡聲

하늘이 친히 보듬어서 이 땅에 보내셨으리니 / 維皇親抱應相送

젖을 겨우 떼자마자 어른처럼 의젓했다오 / 阿保纔離儼若成

다투어 말하길 계가 훌륭해 우를 계승해서 / 爭道啓賢能繼禹

만년토록 온 누리에 태평 시대 오리라 했네 / 萬年寰海占昇平

 

두 번째〔其二〕

원단에 대리하기 위해 동위를 열었나니 / 元春代理敞銅闈

서기 어린 고릉 위에 아침 햇빛 찬란해라 / 瑞氣觚稜上早暉

심결을 조석으로 응당 주고받는 관계이니 / 心訣晨昏應授受

종묘는 반석 위에 갈수록 더욱 빛나리라 / 宗祧磐石轉光輝

천안이 옆에서 보며 끝없이 기뻐하고 / 天顔傍視歡無極

일표가 새로 임하매 위엄 있고 의젓해라 / 日表新臨儼有威

한곳에서 빈대하며 이성을 자주 뵙는 일은 / 賓對一堂頻二聖

예로부터 역사적으로 대단히 희귀하였다오 / 古來靑史事全稀

세자가 대리(代理)하는 일로 하례를 받던 날 대조(大朝)가 협실(夾室)에 거둥하여 그 광경을 굽어보았다.

 

세 번째〔其三〕

눈물지으며 생각건대 당년의 성유가 길었는데 / 泣憶當年聖諭長

소신이 명을 받들고서 세자궁에 달려갔었지 / 小臣承命詣春坊

뜰 한복판에서 도승지를 인접하고 나서 / 庭心引接知申事

석양 무렵 바위 위에 처량하게 앉아 계셨지 / 石上蒼涼坐夕陽

공경히 휘언을 받들건대 모두 손억하는 말씀 / 恭奉徽言皆遜抑

상세히 명의에 입각하여 함께 상의했더랬지 / 細將明義與商量

전일에 종용히 모신 적이 없지 않았지만 / 非無前日從容侍

이때에 한 분 원량(元良)임을 참으로 알았다오 / 到此眞知一有良

 

네 번째〔其四〕

덕합(德閤)에서 동틀 녘에 강연을 마치자 / 德閤凌晨已講筵

대조가 칭찬하시고 진신 사이에도 전해졌지 / 大朝稱譽搢紳傳

인자한 명성이 탕천의 길에 끊이지 않았고 / 仁聲不盡湯泉路

성상의 훈계도 《자성편》으로 항상 온화하였다오 / 至敎常溫自省編

간흉이 남몰래 모함을 했으니 이 일을 어찌하랴 / 奈有奸凶謀暗地

성주가 자비롭게 처분할 여지도 없지 않았건마는 / 非無聖主作慈天

최마를 입고 날마다 궁문 밖에 엎드려 계실 때 / 縗麻日伏宮門外

미신의 피눈물 흘리는 그 심정을 누가 알았으랴 / 誰識微臣涕血漣

 

다섯 번째〔其五〕

죽포의 슬픈 울음소리 구의에 감돌고 / 竹浦哀鳴繞九嶷

육룡이 오신 곳에 저녁 구름 드리웠네 / 六龍來處暮雲垂

송백은 종천의 눈물을 빠짐없이 흩뿌리고 / 杉松遍灑終天淚

창해도 땅에 사무친 비애를 씻기 어려워라 / 滄海難澆徹地悲

효친의 그 생각이 실로 국민을 감동시켰나니 / 孝思實爲黎庶感

애수에 젖은 그 모습을 어찌 시신만 알았으랴 / 慽容奚但侍臣知

노심초사하며 보낸 이십팔 년의 세월이여 / 憧憧廿八年光內

자나 깨나 임금님은 다짐함이 있었느니라 / 寤寐宸誠有所期

 

여섯 번째〔其六〕

수원의 길상한 기운이 날로 피어올랐나니 / 隋城佳氣日英英

명당으로는 삼한에서 겨룰 곳이 없었어라 / 吉地三韓莫與京

연이 맑은 하늘에 꽂혀 꽃잎을 활짝 벌리고 / 蓮揷晴空開朶迥

용이 큰 들판에 서려 구슬을 밝게 품었도다 / 龍盤大野抱珠明

인정이 비처럼 운다 한들 장차 어떻게 미치리오 / 人情雨泣將何及

성의를 하늘이 알아주어 일이 마침내 이루어졌네 / 誠意天知事竟成

복을 구함이 정직해서 복을 받을 수 있으리니 / 求福不回能受福

봄날이 오면 과질이 언덕에 가득 돋아나리라 / 春來瓜滿原生

 

일곱 번째〔其七〕

동궁의 온궁 행차 그때의 일이 아련하나니 / 春宮溫幸事依依

나룻배 석양에 도착한 것이 아직도 기억나네 / 尙憶津帆到晩暉

눈에 가득한 강물은 예전 그대로 흐르는데 / 滿眼江流猶自在

재실이 또 남으로 돌아가니 마음 아파라 / 傷心梓室又南歸

하늘 나직한 도성의 아침 경치 희미하더니 / 天低京闕迷晨望

길 익숙한 산성에선 저녁 안개가 걷혔도다 / 路熟山城斂夕霏

뇌사의 옛 신하가 지금도 죽지 않아서 / 雷肆舊臣今不死

명정 한 글자마다 눈물 줄줄 흘립니다 / 銘旌一字淚千揮

천신(賤臣)에게 광중(壙中)의 명정(銘旌)을 쓰라고 명하셨기에 이렇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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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9권 / 시(詩)○희년록 하(稀年錄下)

입추〔立秋〕

 

내가 늙어 찌는 더위에 시달리면서 / 吾老困炎熱

가을 기운 이르기만 날로 기다렸으니 / 日待秋氣至

입추를 맞아 어찌 기쁘지 않으랴만 / 秋至豈不喜

쉽게 가는 세월은 또 어떻게 하나 / 將奈徂歲易

금년은 비가 전혀 오지 않다가 / 今年雨極無

유월에야 비로소 주룩주룩 쏟아져서 / 六月始霈然

농사짓는 집은 모두 애처롭게도 / 田家儘可矜

웃자란 모를 가까스로 옮겨 심었으니 / 老秧權宜遷

억조창생이 그나마 바라는 것은 / 億兆所倖望

단지 서리가 뒤늦게 내리는 것 / 只在霜候退

내가 어찌 나의 몸뚱이만 생각하여 / 吾何爲吾身

늦더위를 참지 못할 것처럼 여기는가 / 晩暑如不耐

내 몸뚱이는 작고 민천은 크니 / 身小民天大

나의 욕심이 그동안 잘못되었도다 / 吾願向來錯

정말 벼농사가 제대로 되기만 한다면 / 誠使禾稼成

더위에 쪄 죽는다 해도 나는 만족하리라 / 熱死吾亦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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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9권 / 시(詩)○희년록 하(稀年錄下)

백치행〔白雉行〕

 

성상 즉위 이십일 년 되는 봄날에 / 聖上二十一年春

함흥 사람이 궐하에 와서 엎드리며 / 闕下來伏咸興人

온몸이 새하얀 백치를 손으로 바쳤는데 / 手奉白雉全身白

백설 같은 흰색으로 티끌 한 점 없었다네 / 白雪之白無纖塵

월상 이후로 몇천 년이 지나도록 / 越裳之後幾千載

이름만 들었지 실물은 보지 못한지라 / 是物聞名不見眞

구경하러 천 사람 만 사람이 모여들어 / 觀者千人萬人集

기이한 보배라고 서로들 감탄하였다네 / 相與咨嗟曰奇珍

성상의 시대에 예악으로 정치를 하여 / 聖代禮樂以爲治

천지간에 화기가 항상 넘쳐흘렀나니 / 兩間和氣常氳氤

성왕(成王)의 성시라도 어찌 이와 같았으랴 / 成周盛時何如此

은혜가 고루 공중과 물속 동식물에 끼쳤어라 / 恩被飛潛動植均

너는 본디 태산의 정령으로 이름이 났으니 / 爾本名爲岱岳精

올 때 응당 태양의 수레를 뒤따랐을 것이요 / 來時應逐扶桑輪

함흥은 더구나 왕자(王者)가 일어난 지역이니 / 咸興況是龍興地

하늘이 이를 통해 정녕히 교시한 듯도 하네 / 天賜以此如諄諄

승정원에서 이를 보고 들어가 왕에게 보고하니 / 銀臺見之入告后

왕이 이르기를 아, 그대 승정원의 신하들이여 / 后曰嗟汝銀臺臣

과인이 무슨 덕으로 이 꿩이 나오게 했겠는가 / 寡人何德以致此

태연히 여기며 신명을 속일 수는 없는 일이다 / 晏然不可欺明神

외물은 부질없고 실제의 덕이 귀중한 것 / 外物徒爾實德貴

백치는 날짐승 종류에 지나지 않는데 / 白雉不過飛禽倫

근래의 습속이 어찌나 기이함을 좋아하는지 / 近俗如何太好奇

왕년에는 관동에서 기린이 나왔다 했더니라 / 去歲云有關東麟

조정에 백치가 있어도 하찮게 보신 것은 / 廷有白雉視若無

성스럽고 인자한 세종과 성종이셨나니 / 世宗成宗聖且仁

측근의 신하들이여 다시는 언급하지 말라 / 臣哉隣哉勿復言

아조께서 행하신 것을 나는 준행하리로다 / 我祖攸行我是遵

백치는 반환하여 그의 양식으로 내주고 / 白雉還爾給爾糧

함흥에 돌아가서 주민들에게 말하게 하라 / 歸語沛多少民

임금님은 기이한 물건 귀하게 여기지 않고 / 不貴異物卽我心

순진한 풍속으로 되돌아오길 바라더라고 / 願見風俗回眞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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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9권 / 시(詩)○희년록 하(稀年錄下)

옛 창의궁을 지나가면서 감회를 읊다〔過彰義舊宮感吟〕

 

궁궐 숲엔 여전히 붉게 물든 채색 구름 / 宮林猶帶彩雲紅

구오의 용의 광채가 해동을 비추누나 / 九五龍光照海東

빛나고 빛나도다, 오십 년 사이의 일이여 / 煕煕五十年間事

공덕과 교화의 맹아가 여기에서 싹텄느니 / 功化權輿在此中

 

두 번째〔其二〕

붉은 대문 굳게 닫힌 채 황혼을 향하는데 / 朱門深鎖向黃昏

백관의 패옥 소리 대신 새들만 재잘거리네 / 劍珮無聲鳥雀喧

오직 정원 아래 영산홍 나무만이 / 惟有杜鵑庭下樹

눈물 적신 옛날의 자취 그대로일세 / 猶霑玉淚舊時痕

영조대왕이 여기에 임어하여 매양 섬돌 앞의 영산홍 나무를 가리키면서 “내가 왕년에 여기에서 친상을 당하여 이 나무 아래에서 울부짖으며 통곡하였다.”라고 하였으며, 그 뒤에 이 나무를 볼 때마다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눈물을 금치 못하면서 소리가 새 나가지 않게 목소리를 줄이곤 하였는데, 당시 보령(寶齡)이 이미 팔순이었다.

 

세 번째〔其三〕

궁궐 담장이 경희궁과 가까이 붙어 있어서 / 宮墻近接慶

느릅나무 그늘 속으로 가마가 왕래했었지 / 枌樹陰中步輦通

당일의 시종신을 누가 기억이나 할까 / 當日侍臣誰記取

흰머리로 텅 빈 거리 종종걸음 지나가네 / 白頭趨過巷門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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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 제19권 / 시(詩)○희년록 하(稀年錄下)

단양으로 돌아가는 오경삼을 전송하며〔送吳景參還丹山〕

 

야윈 말 비리비리하고 장맛비 몰려오는데 / 羸馬蕭蕭暑雨侵

산 나귀는 솔 그늘에서 또 잘 기다려 줄는지 / 山驢能復待松陰

지금 속인은 모두들 있을 처소를 아는데 / 如今俗子皆知處

군은 오직 단애가 깊지 않을까 걱정일세 / 恐丹崖便不深

군이 일찍이 사슴을 기르면서 그 이름을 산 나귀[山驢]라고 하였다.

 

두 번째〔其二〕

엄숙한 대궐 섬돌에서 임금님 알현하던 날 / 肅穆天墀舞蹈辰

은자의 옷 벗어던지고 굳이 조복 갖춰 입자 / 蘿衣脫下强簪紳

육경 반열 옛 벗들이 놀라서 서로 돌아보며 / 卿班舊友驚相顧

《황정》이 그동안 독서인을 그르쳤다 말하였네 / 道是黃庭誤讀人

 

세 번째〔其三〕

안기생(安期生) 선인이 책망하며 군이 떠남을 조소했는데 / 安期指點笑君行

지금 나무숲 우거진 서울에 몸을 드러냈으니 / 現在身呈綠樹京

많이 걱정되네 삼청의 선궁(仙宮)도 양부처럼 / 多恐三淸如兩府

신선 명부에서 옛날의 이름 남겨 두지 않을까 봐 / 不留瑤籍舊時名

총부(摠府)와 금부(禁府)의 선생안(先生案)에서 모두 군의 이름 위에 ‘선(仙)’ 자를 써넣었다가 지금 비로소 지워 버렸다고 한다.

 

네 번째〔其四〕

일찍이 말하길 나귀 타고 곡구에 자주 갔더랬는데 / 曾說靑驢谷口頻

바위 구름이 영상처럼 옥호춘 술병을 둘렀더라고 / 巖雲映帶玉壺春

유감일세 참동의 비결 빌려 쓰지 못한 채 / 恨君不借參同訣

정자진의 풍류의 기회 잃어버리고 말았으니 / 坐失風流鄭子眞

 

다섯 번째〔其五〕

번옹이 매미 허물 벗듯 승상 인끈 집어던졌나니 / 樊翁相印蛻如蟬

하늘에 치닫는 너희 서강의 물결 우습구나야 / 笑爾西江浪拍天

수운정 위의 달님에게 돌아가서 말해 주오 / 歸語水雲亭上月

모년에 분화한다는 옛 맹약 굳건하다고 / 暮年分華已盟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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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집 제1권 / 시(詩)

숨어 살다가 우연히 진나라와 당나라 사람들이 한적을 읊은 시 네 수를 얻어 자리의 오른쪽에 내걸고, 뒤이어 차운하여 스스로 근심을 풀어 보다〔幽居中偶得晉唐人閑適詩四首揭諸座右仍次其韻聊以自遣〕

 

일찍이 나는 먼 유람에 뜻을 두어 / 夙余志遠遊

말에게 꼴 먹이고 마구를 정리해서 / 秣馬整

속세의 허물에서 벗어나 / 脫略塵世累

호탕하게 운해에서 노닐 생각이었지 / 浩蕩雲海想

현포와 창주 / 玄圃與滄洲

길 있다면 가기를 꺼려하지 않겠지만 / 有路非憚往

선경은 끝내 어렴풋할 뿐 / 仙區竟怳惚

만고토록 가시덤불만 자랐구려 / 萬古荊棘長

형문 아래 돌아오니 / 歸來衡門下

오묘나마 편안하고 넓어서 / 五畝安且廣

이 집이면 그런대로 삶 마칠 수 있으리니 / 持此聊卒歲

초야가 괴롭다고 탄식일랑 말아야지 / 莫歎困草莽

이상은 도연명의 시를 차운하였다.

 

집 지으며 사치하지 않고자 하였기에 / 架屋不願侈

나무와 돌이면 쉽게 지을 수 있었나니 / 木石易經營

자그마한 집이 텃밭에 임했는데 / 小堂臨圃

깨끗해서 그윽한 정에 딱 맞도다 / 蕭灑愜幽情

아름다운 꽃들은 여러 식물에 섞여 있고 / 佳卉雜凡植

푸른 나무들이 정원에 가득 자라는데 / 蔥籠滿園生

궁벽한 마을이라 들르는 사람 없으니 / 窮巷無人過

빈 뜰에 매미만 모여 우누나 / 空庭集蟬鳴

사립 닫고 도가서를 읽다가 / 閉戶看道書

지팡이 짚고 때로 홀로 거닐며 / 杖策時獨行

세상 생각 끊은 지 벌써 오래되었으니 / 世念絶已久

누가 영욕을 분별하려는가 / 誰辨辱與榮

이상은 위응물의 시를 차운하였다.

 

구하려 들면 늘 부족하고 / 有求恒不足

다툼 없으면 항상 스스로 기쁘나니 / 無競恒自悅

몸뚱어리 원래 흙과 나무로 / 形骸元土木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다 죽는다오 / 天地有生滅

아 백 살밖에 못 사는 사람들이 / 嗟哉百歲人

기쁨과 근심 번갈아 느끼고 드러내며 / 憂樂交感發

이 삶을 아등바등 애쓰면서 / 營營勞此生

갈수록 쉴 줄을 모르누나 / 去去不知歇

나는 북창의 바람 사랑하고 / 吾愛北窓風

또 남헌의 달님 아끼면서 / 且愛南軒月

경관 만나면 마음이 흥겨우니 / 遇境卽陶然

어찌 굳이 아름다운 절기 물을 손가 / 何必問佳節

이상은 맹호연의 시를 차운하였다.

 

울타리는 동과 서로 나뉘고 / 籬落分東西

벼와 기장은 밭두둑에 연이었는데 / 禾黍連隴阡

곳곳마다 농가가 들려오니 / 處處聞村謳

서로 논에서 김을 매려 하는구나 / 相將耘水田

호미 메고 별을 보며 돌아오는데 / 荷鉏帶星廻

귀로에 저녁 소리개 모여드나니 / 歸路集暮鳶

올 여름은 때맞춘 비 풍족하기에 / 今夏時雨足

또 풍년 들길 바란다오 / 庶幾且有年

뽕잎 벌써 드물어졌으니 / 桑柘葉已稀

발에 가득 누에들 잠들었구나 / 滿箔蠶就眠

노력하며 한 해의 수확 기대하나니 / 努力望歲功

힘쓰며 고달파도 서글픔은 없다오 / 勤苦無戚然

이상은 유자후의 시를 차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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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집 제1권 / 시(詩)

우거하며 장맛비 속에서 회포를 서술하다〔寓居霖雨中述懷〕

 

우리 집은 두 줄기의 강물 입구로 / 我家兩河口

집을 지어 여러 세대 전해 왔는데 / 堂構傳累世

방이 있어 몸 가리기 족했고 / 有屋足庇躬

몸소 힘써 한 해 한 해 먹고살았다오 / 食力聊卒歲

밭두둑 사이에서 졸박함 기르면서 / 養拙畎畝間

풍운의 제회 뜻을 접고 / 絶意風雲際

어머님의 기쁨 즐겁게 받들며 / 怡然奉慈歡

형제간의 화목을 즐거워했나니 / 湛樂聯棠棣

더구나 일가친척 가까워서 / 況復宗黨近

조석으로 서로 노닐었음에서랴 / 朝夕相游詣

천기는 날마다 재촉해서 / 天機日相催

세상일에 변화가 많았으니 / 世事多變遞

어찌 고향 연연하여 / 豈不戀鄕里

멀리 떠나 몸 가벼이 할 계책 세우지 않았으리오 / 遠擧輕身計

전해 듣자니 예로부터 낭주 땅은 / 傳聞古朗州

산수가 아름다운 곳 많다는데 / 山水多佳麗

귤주처럼 전토는 기름지고 / 橘州饒田土

회남처럼 소나무와 계수나무가 있다지 / 淮南有松桂

어찌 길이 멀다 꺼리랴 / 寧憚道里遙

외진 곳 좋아하니 돌아갈 생각 치달려서 / 喜僻歸意銳

겨울이라 십이월에 / 玄冬十二月

수레 몰아 한강 물굽이 건넜으니 / 驅車渡漢汭

날리는 눈에 온통 아득하고 / 飛雪浩茫茫

추운 해는 빛이 구름에 가렸지 / 寒日光陰翳

꽁꽁 얼어 물가는 보이지 않고 / 層氷不見畔

한 줄기 길은 가는 명주 같아서 / 一路如練細

우리 집 종들 모두 다리 덜덜 떨었고 / 我僕皆戰股

우리 말은 자주 거꾸러졌지 / 我馬頻顚蹶

저녁이라 외로운 주막에 묵었는데 / 暮投孤店宿

허름한 집은 닫을 문도 없으니 / 破屋無關閉

밤은 춥고 옷은 얇아 / 夜寒衣裳薄

매서운 바람이 두 소매로 들었지 / 嚴風入兩袂

새벽에 일어나 앞사람 뒤따랐으니 / 晨起逐前侶

얼어붙은 시내는 건너기 어려웠고 / 凍川難可厲

고생스레 앞을 향해 나갔으니 / 辛苦向前去

가고 가며 지체할 수 없었지 / 行行不能滯

처량해라 백마강 나루여 / 凄凉白馬津

옛 자취 찾아 백제를 조문하니 / 訪古弔百濟

적막해라 나부산의 집이여 / 寂寞羅浮宅

세월 오래되어 가시덤불로 덮였구나 / 歲久荊棘蔽

골육지친 만나는 곳에서 / 骨肉逢迎地

서로 바라보며 눈물만 뿌렸으니 / 相視但揮涕

어지러워라 상란 뒤에 / 紛紜喪亂後

가업은 실오라기처럼 남았어도 / 舊業存如綴

뜰 앞에 지나던 옛 가르침이여 / 趨庭昔佩訓

험한 일 겪으며 함께 힘쓰고 격려했지 / 履險共勉勵

갈 길 아직 아득하기에 / 行邁尙迢迢

잡았던 손 놓고 다시 멀리 떠나며 / 分手更遠逝

부소산 길에서 고삐 만지다가 / 按轡扶蘇道

안장에 걸터앉아 문득 눈물 흘렸지 / 據鞍忽流睇

울쑥불쑥 백옥 같은 봉우리여 / 嶙白玉峰

천만 개가 차례로 섰기에 / 萬千立次第

처음 보자마자 기뻐서 / 欣欣識面初

문득 마음에 딱 맞음을 깨달았다오 / 便覺心機契

황혼이라 국사암에서 / 黃昏國師巖

잠시 여관 빌려 쉬었으니 / 暫借賓館

누대는 길목을 훤히 비추고 / 樓臺照通衢

건물들은 솜씨 좋게 꾸며졌는데 / 棟宇多巧制

수많은 살대와 큰대 서 있고 / 千梃立篠

밭두둑에 혜란이 무성하였지 / 百畦滋蘭蕙

주인은 내가 궁한 걸 딱하게 여겨 / 主人憐我窮

유달리 정답게 대접하면서 / 慇懃出凡例

세든 집에서 행장 풀게 하고 / 僦屋頓行李

기장으로 밥해서 노복들을 먹였지 / 炊黍飯僕隷

순박한 풍속 기쁘게 보았으며 / 喜見淳朴俗

서로 접대하며 폐하지 않기를 기약하고 / 相待期勿替

마음 굳혀 언덕 하나 골랐는데 / 意卜一丘

거북점이나 시초점은 치지 않았지 / 不復問龜筮

세상의 변고 매우 다단해서 / 世故劇多端

좋은 일도 혹 그르치게 되기에 / 好事行或泥

허겁지겁 남쪽 향하던 수레 철수하니 / 蒼黃撤南轅

슬프도다 초심이 어그러짐이여 / 怊悵初心戾

삼천리를 오고 갔는데 / 三千往來程

결국 육신만 헛고생 하였구나 / 剩得筋骸敝

답답하여라 뜻에 맞지 않음이여 / 鬱鬱意無適

흔들거리는 배 묶어 두지 않았구나 / 搖搖船不繫

내 삶은 오래도록 세상을 버렸기에 / 吾生久棄世

부평초 같은 자취가 뿌리내리지 못했으니 / 萍迹無根蔕

어찌하면 묵묵히 앉아서 / 焉能坐默默

오래오래 쓴 나물을 맛볼 수 있을까 / 久受

양홍은 오회로 들어갔고 / 梁鴻入吳會

유안은 요동의 계주에서 객지생활했건만 / 幼安客遼薊

이 방도를 누가 그르다 하는가 / 此道孰云非

천추에 지혜롭다 일컬어졌지 / 千秋稱智慧

감히 거취를 함께하여 / 敢望去就竝

부디 고상한 풍모 잇기를 바랐기에 / 庶幾高風繼

태항산 골짜기 찾아가서 / 欲尋大行曲

소상강에서 배 젓고자 하나니 / 擬鼓瀟湘

시원스레 나의 행차 출발함에 / 飄然啓我行

호탕함을 누가 따를까나 / 浩蕩誰能逮

호서지방의 여덟아홉 군현들이 / 湖右八九郡

바닷가에 바둑돌처럼 늘어섰구나 / 碁置列海裔

푸른 댕댕이 덩굴만 산뜻한데 / 靑蘿特瀟灑

바람과 달은 참으로 짝이 없어라 / 風月眞無儷

여러 물줄기가 문 하나를 다투는데 / 衆水爭一門

뭇 산들이 멀리 전송하는 형세로다 / 群山送遠勢

귤과 유자는 제나라 동산에서 익어 가고 / 橘柚登齊苑

마와 모시는 오나라 세금과 통하는데 / 麻枲通吳稅

현자와 호걸들 예로부터 간간이 나오고 / 賢豪昔間出

유풍은 문예를 숭상하기에 / 遺俗尙文藝

우뚝해라 옛 사당이여 / 巋然古祠屋

향불에 규폐를 받드누나 / 香火奉圭幣

도리어 이곳에 이웃을 택하려는 뜻으로 / 還將擇鄰意

길이 복과 은혜 구하니 / 永言徼福惠

연하는 본래의 뜻과 맞아서 / 煙霞愜素情

갈매기랑 백로와 새로운 약속 맺노라 / 鷗鷺成新誓

몇 칸짜리 집 지을 걸 기약하노니 / 期營數畝宅

벽에 가득 도서들로 채우며 / 滿壁圖書揭

솔과 대를 집 둘레에 심고서 / 松筠繞屋樹

벼와 삼밭 때맞춰 김매리라 / 禾麻隨時

맑은 바람에 연꽃 향내 맡고 / 淸風挹荷香

밝은 달에 학 울음 듣노라면 / 明月聽鶴唳

배 속은 명아주나 콩잎으로 충분하고 / 充足藜藿

몸통 가릴 옷은 연잎으로 만들면 되니 / 掩有荷製

도도하게 동쪽 창가에서 취하여 / 兀兀東窓醉

온 세상을 흘겨보리라 / 天地入睥睨

몸뚱어리 또한 흙과 나무로 / 形骸亦土木

떨쳐 버리면 매미허물 같은 것 / 擺落猶蟬蛻

야성이란 본래 거칠고 호방하니 / 野性本疎曠

어찌 거북이가 꼬리 끄는 걸 꺼리랴 / 肯嫌龜尾曳

임시거처에 날이 더워지고 / 僑居適炎熱

장맛비는 오래도록 개지 않아 / 淫霖久不霽

종일토록 바람과 습기로 괴로운데 / 盡日困風濕

밤새도록 모기 떼가 무누나 / 終宵嘬蚊蚋

방장 안에서 뒹굴대자니 / 宛轉方丈內

답답하여 마음이 울적해지지만 / 鬱悒心佗

예로부터 장부의 뜻 / 從來丈夫志

어찌 연하고 무른 걸 배우랴 / 焉能學軟脆

안분음 한 곡조로 / 一曲安分吟

금강게를 대체하노라 / 用替金剛偈

………………………………………………………..

 

병산집 제1권 / 시(詩)

자형 홍구이씨 중기 가 평양 판윤으로 나가는 것을 전송하다〔送兄洪九以氏 重箕 出判箕城〕

 

천추에 아름다운 옛 서경이여 / 千秋佳麗舊西京

풍요로움으로 지금까지 이름 날렸지 / 富庶如今尙擅名

인재는 난관 속에서 구별되나니 / 利器當從盤錯別

소 잡는 칼 쓰는 곳에 선정의 명성 펼치리 / 牛刀試處播治聲

 

둘째 수〔其二〕

관문 너머 풍광은 변새와 접하는데 / 關外風煙接塞垣

펄럭대는 조개가 서문으로 나가누나 / 翩翩皁盖出西門

한 동이 술 다 마시자 해가 저무는데 / 一樽酒盡斜陽暮

외떨어진 기러기는 이별의 넋 괴로워라 / 斷雁離鴻惱別魂

 

셋째 수〔其三〕

대동강 봄물 맑아 물결 이는데 / 浿江春水淥生漪

언덕의 버드나무 가지가 한들거리겠지 / 岸柳輕搖細細絲

멀리 생각건대 가는 길에 풍광 정녕 좋을 테니 / 遙想風光行正好

사또의 다섯 마리 말 꾸물대지 마시게 / 使君五馬莫遲遲

 

넷째 수〔其四〕

미인은 사람을 현혹해 참으로 본성 해치고 / 珠翠眩人儘伐性

생황가락은 귀에 삼삼하지만 모두 음란한 소리니 / 笙歌喧耳摠哇音

가장 아름답구나 부벽루 앞의 물이여 / 最憐浮碧樓前水

한 줌 맑은 물로 마음 씻을 수 있으리라 / 一勺淸波可洗心

 

다섯째 수〔其五〕

단약을 짓지 못한 채 세월만 잔뜩 흘러 / 丹藥無成歲月多

문 걸고 한가로이 병든 유마거사 되었으니 / 閉門閑作病維摩

혹시라도 형님께서 영지를 구해 보내서 / 憑兄儻得靈芝惠

묵은 병 치료하고 일어나면 얼마나 다행일까 / 何幸刀圭起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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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집 제1권 / 시(詩)

대전에 올린 설날 축하시〔大殿延祥詩〕 일등으로 활을 하사받았다.

 

새벽에 은 자물쇠로 궁궐을 여니 / 銀鑰平明闢掖垣

옥같이 맑은 금방이 아침 햇살에 비치누나 / 玉淸金牓映朝暾

삼원 모두 들어맞으니 저울 같은 정치요 / 三元摠協衡璣政

일기 비로소 펼쳐지니 조화옹 자취로다 / 一氣初宣造化痕

구휼 논하고 형벌 줄이는 일은 전대의 미덕이며 / 議貸省刑前代美

꽃 장식 나누고 폭죽 터뜨리는 일은 유사가 있구나 / 頒幡爆竹有司存

우리 임금 성덕으로 부지런히 만물이 자라는데 / 吾王聖德勤資始

특별히 영재들 맞이하여 날마다 토론하시리 / 別是延英日討論

 

둘째 수〔其二〕

대궐에 의장이 빽빽하고 / 紫闈仙仗簇

관원들 엄숙히 조회하네 / 星佩儼朝天

깃발 그림자는 희미하게 부서지고 / 旗影微微碎

궁궐의 향이 은은하게 전해지네 / 宮香細細傳

소소 아홉 번 연주하니 모두 진선진미하고 / 九成韶盡美

명협의 한 잎사귀 막 산뜻한데 / 一葉莢初鮮

물시계가 새로운 시각 알리니 / 晝漏添新刻

이제부터 자주 경연에 납시리라 / 從今數御筵

 

셋째 수〔其三〕

동풍이 새벽마다 상림원으로 불어오니 / 東風曉入上林中

매화 꽃송이 봄 다투어 붉은 꽃망울 터뜨릴 듯 / 梅萼爭春欲放紅

태평성대에 도리어 징조가 있다고 하니 / 咸道太平還有象

환희와 기쁨 만방이 서로 함께 나누리라 / 歡娛推與萬方同

 

넷째 수〔其四〕

이슬 젖은 금경 우뚝하니 / 露浥金莖直

구름 깊은 대궐에 봉황 한 쌍이로다 / 雲深鳳闕雙

옥함 속의 옥찰 받드니 / 瑤函擎玉札

한마디 말로 나라 흥성하길 바라네 / 一語仰興邦

……………………………………………………………….

 

병산집 제1권 / 시(詩)

대전에 올린 설날 축하시〔大殿延祥詩〕

 

단정히 서서 문무백관이 시간 되길 기다리는데 / 鵠立千官待漏時

동방에서 상서로운 해님이 더디더디 떠오르네 / 東方瑞旭出遲遲

폭죽소리가 섣달 그믐날이 지났음을 전하고 / 聲傳爆竹除殘臘

부드러운 버들에 바람 불어 잔가지 한들거리네 / 風轉柔楊弄細枝

가난 구휼하라는 조서 어진 교화에 흡족하니 / 漢札恤貧仁化洽

기쁨 띤 임금의 눈썹 근신들이 알았도다 / 堯眉帶喜近臣知

미천한 재주라 설날의 축하시 부끄러워 / 微才愧乏三元頌

다만 스스로 만세 외치며 옥 계단에 절하노라 / 惟自呼嵩拜玉墀

 

둘째 수〔其二〕

따스한 교화가 동쪽 땅에 행해지니 / 化日行東陸

현도에 한 해가 돌아왔구나 / 玄都歲律廻

꽃 심어 화승 두루 나누어 갖고 / 裁花頒勝遍

진휼 논해 마초 작성 서두른다오 / 議賑草麻催

소전에 추위 겨우 물러가면 / 小殿寒纔退

경연이 날마다 자주 열리리라 / 講筵日數開

소소 아홉 번 연주하자 / 簫韶成九奏

봉황이 이른다고 다투어 칭송한다오 / 爭頌鳳凰來

 

셋째 수〔其三〕

봄날이 은택 펼치자 / 靑陽布惠澤

전각에 조풍이 일어나네 / 殿角生條風

목탁 쳐서 새 법령 반포함에 / 木舌頒新令

모두가 자라나는 공력에 흠뻑 젖노라 / 咸濡發育功

……………………………………………………..

 

병산집 제1권 / 시(詩)

문곡 김 상국수항 천장 만사〔文谷金相國 壽恒 遷葬輓〕

 

일찍이 당고전 읽다가 / 嘗讀黨錮傳

책 덮고 눈물 쏟았는데 / 掩卷涕滂沱

그로부터 천년 뒤 / 歸來千載下

이런 재앙 어찌 이리 많은가 / 此禍何其多

뜨거운 불길이 곤륜산 옥 태우듯 / 烈火焚崑玉

세찬 바람이 푸른 가지 꺾듯 했기에 / 疾風摧碧柯

버려두고 다시 말하지 말아야 하니 / 置之勿復道

아 이치 어찌 이러한가 / 嗟嗟理則那

 

둘째 수〔其二〕

대대로 재상 지낸 집안으로 / 蟬聯相國門

서간에서부터 말하겠으니 / 請從西磵說

노중련처럼 동해에 빠져 죽으려 했고 / 魯連蹈東海

소무처럼 눈 쌓인 굴속에 억류되었지 / 蘇武拘雪窟

혼자서 윤리와 강상 부축했고 / 隻手扶倫綱

맑은 풍모로 난향과 눈 뿌렸는데 / 淸風灑蘭雪

같은 시기에 형제가 계셔 / 同時有伯仲

만고에 한 쌍의 절개 빛났도다 / 萬古炳雙節

 

셋째 수〔其三〕

공께서는 가문에 걸맞은 자제로 / 公是稱家子

자부하며 스스로 구차하지 않았으니 / 負許自不苟

학문은 성리학의 심오함을 궁구했고 / 學究關閩奧

문장은 사마천의 뒤를 이었지 / 詞薄龍門後

눈으로는 기북에 명마 없도록 만들었고 / 眼空冀北群

가슴에는 운몽택 아홉 개를 삼킨 듯하여 / 胸呑雲夢九

맑은 시절에 고상한 걸음 내딛어 / 淸時騁高武

명성이 태산북두로 드높았다오 / 聲名仰山斗

 

넷째 수〔其四〕

임금님 조정에서 모범이 되신 날 / 羽儀王庭日

상서로운 세상에 문장 빛내셨으니 / 瑞世輝文章

청포의 자리에 엎드렸고 / 伏君靑蒲席

백옥당에 거처하였지 / 倚君白玉堂

육구연의 글처럼 개절하였고 / 陸九辭剴切

가의의 말처럼 강개하였으니 / 賈傅語慨慷

삼대를 만회할 뜻 / 挽回三代志

절실하여 잊을 수가 없다오 / 烱烱不能忘

 

다섯째 수〔其五〕

지난 현종 말기에 / 在昔先朝末

공은 마침 상경에 올라 / 公時作上卿

밤늦도록 유음 받들고 / 半夜承遺音

익실에서 전쟁을 준비했지 / 翼室干戈迎

태양이 함지에서 목욕하여 / 羲輪浴咸池

바닷가가 환해진 걸 보았으니 / 薄海瞻昭明

온 힘 다해 첫 정치 보좌하여 / 竭力輔初政

나라 운수 형통하기를 길이 기약했다오 / 永期邦運亨

 

여섯째 수〔其六〕

뜬 구름이 궁궐 덮자 / 浮雲蔽紫闥

해님은 빛을 잃었으니 / 白日無光輝

하늘 남쪽 귀퉁이로 떠나가서 / 去去天南陬

모래섬 안에서 향초 뜯었지 / 中洲採芳菲

적벽의 달빛에 임금 그렸고 / 懷君赤壁月

채석의 낚시터에서 시 지었으니 / 賦詩采石磯

초야에서 지은 백 편의 시 / 百篇江海作

찬연하기 구슬 같았지 / 燦然若珠璣

 

일곱째 수〔其七〕

붉은 까치가 임금님 조서 물고 옴에 / 丹鵲啣天書

붉은 신 신고 동쪽 비 맞고 돌아올 제 / 赤舃旋東雨

조정에서 재상으로 사마가 삼으니 / 中原相司馬

팔도의 백성들이 안도하였지 / 八域民安堵

평생에 은거하려는 뜻 품었지만 / 平生五湖志

밝은 임금께 보답코자 기다리려 하였지 / 欲待報明主

지금 풍패동에는 / 至今風珮洞

연기에 덮인 달이 찬 물결에 갇혔으리 / 煙月鎖寒滸

 

여덟째 수〔其八〕

푸른 물결은 오열하고 / 碧波鳴嗚咽

비바람으로 대낮에도 캄캄하더니 / 風雨晝冥冥

억울하게 연못가에 빠졌던 혼 / 鬱沒澤畔魂

어디에서 지금 홀로 깨었는가 / 何處今獨醒

신마 타고 한가하게 노닐다가 / 神馬跨汗漫

바람 타고 대궐로 들어오자 / 乘風入彤庭

용루의 꿈과 들어맞았으니 / 髣髴龍樓夢

임금께선 단청에 올릴 걸 생각하셨지 / 君王憶丹靑

 

아홉째 수〔其九〕

일찍이 책상 아래에서 절 올리고 / 早從床下拜

온화한 담소 자주 받들었으니 / 頻承笑語溫

어찌 우매한 나를 위한 때문이었으랴 / 豈以顓蒙故

다만 집안 교분 돈독했음을 생각하셨으리 / 特念故誼敦

덕성스런 목소리 날로 멀어지겠지만 / 德音日以遠

사모하고 우러름은 끝내 잊지 않으리라 / 景仰終不諼

청문 너머 슬피 바라보니 / 悵望靑門外

가을 언덕에 하얀 이슬 잦구나 / 秋原白露繁

………………………………………………………………

 

병산집 제1권 / 시(詩)

신 병사유 만사〔申兵使 輓〕

 

시와 예로 명성 높은 집안의 뛰어난 전략가로 / 詩禮家聲龍虎鞱

평생의 의기가 물처럼 도도했는데 / 生平意氣水滔滔

연연산에 이름 새길 장한 뜻 이제는 글렀으니 / 銘燕壯志今寥廓

갑 속의 여덟 자 칼에 먼지만 쌓이겠네 / 匣裏塵生尺八刀

 

둘째 수〔其二〕

호아기에 구리 기둥으로 파도 잔잔해졌으니 / 虎牙銅柱海波平

전후로 덥고 거친 땅에 안찰사로 나갔었지 / 前後炎荒按節行

남방에서는 지금도 부임한 병사를 노래하니 / 江漢至今歌出牧

천추세월 주작기에 높은 이름 걸렸다오 / 千秋朱雀繫高名

 

셋째 수〔其三〕

나그네 만류하여 산재에서 벽라를 마주하고 / 留客山齋對

감자밭에 빗소리 지나가는 걸 사랑스레 들었지 / 愛聽甘蔗雨聲過

가슴 아픈 건 신 거꾸로 신고 맞이하던 곳에는 / 傷心倒逢迎地

큰 나무에 슬픈 바람이 저물녘이라 많았지 / 大樹悲風日暮多

 

넷째 수〔其四〕

호랑이 사냥하던 남전에서 세월만 보냈지만 / 射虎藍田歲月遲

임금께서 바야흐로 무장을 생각하셨지 / 聖朝方起聽鼙思

하늘이 왜 그리 빨리 빼앗아갔나 묻기 어렵나니 / 天之奪速終難問

변방에 사신 보낼 때를 기다리지 않았구나 / 不待雲中遣使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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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집 제1권 / 시(詩)

세자궁에서 설날을 맞아 올린 시〔世子宮延祥詩〕

 

천도는 음이 있고 다시 양이 있으니 / 天道有陰復有陽

내 마음 여기에 증험해서 소장을 삼가네 / 吾心驗此謹消長

봄은 사시의 시작으로 천덕을 펼치고 / 春爲四首敷天德

사람은 삼재 체득해 일취월장 힘쓰도다 / 人體三才勖月將

학문에 힘 기울여 마침내 중단 없으면 / 典學終敎無間斷

공업에 미루어 햇빛처럼 빛나는 영광 볼 수 있으리 / 推工可見日輝光

미천한 신하가 동룡문 아래에서 절 올리니 / 微臣拜獻銅龍下

다만 팔방에 인이 깊이 넘치길 축원하나이다 / 只祝深仁洽八方

 

둘째 수〔其二〕

우뚝해라 삼양의 태괘여 / 矯矯三陽泰

금궁에 설날을 알리나니 / 金宮報歲初

저무는 겨울은 그믐 따라 다하고 / 窮陰隨臘盡

조화의 햇살은 봄을 맞아 펼쳐지네 / 化旭入春舒

고각에 시계소리 드물어지는데 / 高閣稀聞漏

이연에 강경소리 잦나니 / 离筵數講書

새로워지는 공부로 장차 장성하면 / 新工方撫壯

세자의 학문 날로 넉넉해지리 / 睿學日紆餘

 

셋째 수〔其三〕

이연에서 매일매일 강경할 때마다 / 离筵日日講書時

질문에 답하느라 신하들 늘 늦게 나오네 / 備問群僚出每遲

시강원에 들어와 버들 옆에서 정오인 줄 알았으니 / 歸院柳邊聞午漏

희미한 처마 그림자가 궁궐의 섬돌로 오르네 / 微微簷影上彤墀

 

넷째 수〔其四〕

닭이 울자 태자 수레 준비하여 / 雞鳴備鶴駕

새벽별 따라 문안 인사 올리니 / 問寢趁晨星

화락한 기운이 봄빛 따라 / 和氣隨春色

대궐에 푸른 봄 일찌감치 알리네 / 禁林早報靑

……………………………………………………………………...

長篇 漢詩-바3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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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시메온 | 작성시간 26.06.08 오늘도 수고가 많으셨으며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잘 활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巨邨 | 작성시간 26.06.08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沙岩 | 작성시간 26.06.08 오늘도 좋은 자료 잘 가져 가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 작성자謙虛 | 작성시간 26.06.08 長篇 漢詩 많은 자료를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한 주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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