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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篇 漢詩-사1部.

작성자淸潭|작성시간26.06.13|조회수27 목록 댓글 3

長篇 漢詩-사1部.

 

사가시집 제1권 / 사언시류(四言詩類) / 서거정(徐居正)

백운(白雲)은 효자(孝子)가 어버이를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장 좌사대부(張左司大夫)가 조선(朝鮮)에 사명(使命)을 받들고 왔는데, 그의 대부인(大夫人)이 생존하여 칠순 나이에도 아직 건강하다고 한다. 4월 9일이 바로 대부인의 생신이라 어버이를 생각하여 마지않아서, 근심스러운 표정이 말과 기색에 드러났다. 대저 왕사(王事)에 노고하여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은 충성이요, 자모(慈母)의 은혜를 생각하여 잊지 않는 것은 효도인데, 오직 충성하고 효도하여 사은(私恩)과 공의(公義)가 여기에서 둘 다 온전하게 되었는지라, 그것을 아름답게 여겨 이 시를 지어서 그의 떠나는 길에 노자로 주는 바이다.

 

저 흰 구름을 바라보노라니 / 望彼白雲

곧 날며 곧 떨쳐 오르누나 / 載飛載揚

나에게 훤초가 있어 / 我有萱草

북당에 심어 놓았건만 / 言樹之堂

왕사를 소홀히 할 수 없기에 / 王事靡盬

어머니를 봉양하지 못하노라 / 有母不將

어머니를 봉양하지 못한지라 / 有母不將

어이 이리도 내 마음이 상한고 / 胡然我心傷

 

저 흰 구름을 바라보아라 / 望彼白雲

저 머나먼 중국을 향하여 / 于彼神京

나에게는 어머니가 계시어 / 我有天只

나 홀로 떠난 걸 염려하시니 / 念我獨行

어찌 돌아가고프지 않으랴만 / 豈不懷歸

왕사에는 규정이 있나니 / 王事有程

모쪼록 부지런히 수행하여 / 庶幾勤止

내 어머니를 욕되게 말아야지 / 無忝我所生

 

저 흰 구름을 바라보노라니 / 望彼白雲

또한 저문 봄이 되었구나 / 曰亦暮春

사월이라 초여름 들어 / 四月維夏

초구일이 생신이기에 / 九日其辰

어머니 생신 생각하여 / 言念初度

나는 내 어머니 생각하거니 / 我思我親

나의 여러 형제들도 / 我有兄弟

원행한 나를 능히 생각하리라 / 能念我遠人

 

무성한 그 숲속에 / 有蔚其林

날아 앉은 건 까마귀로다 / 有集維烏

울음소리는 까악까악하는데 / 其鳴啞啞

누가 네게 반포를 가르쳤던고 / 誰敎汝反哺

나의 행역 떠나온 뒤로 / 我行于邁

세월이 유수처럼 흘렀는지라 / 歲月其徂

나는 짐짓 저 민둥산에 올라가서 / 我姑陟彼岵兮

우리 어머니를 바라보노라 / 瞻望倚閭

 

의지할 곳은 어머니뿐이요 / 靡怙匪母

아껴야 할 것은 날이거니 / 靡愛匪日

어서 내 고향에 돌아가서 / 言旋言歸

어머님께 축수를 드려야겠네 / 稱我壽爵

어머님이 이르길 아 내 자식이 행역 나가 / 母曰嗟余子行役

왕명을 이에 받드나니 / 王命是將

모자가 서로 만나고 나면 / 曰旣覯止

즐거움이 끝없으리라 하시리 / 其樂未央

 

장중은 효도하고 우애하여 / 張仲孝友

훌륭한 명성과 덕을 지녔는데 / 令聞令德

진실로 우리 좌사대부가 / 允也左司

장중의 효우를 이었도다 / 以嗣以續

효자 가문에 충신 구함은 / 求忠於孝

천자가 명을 내린 것이니 / 天子之錫

천자가 명을 내린 것이라 / 天子之錫

장후를 이에 본받으리로다 / 維張侯是式

 

백운(白雲) 6장(章)이니, 장마다 8구(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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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권 / 시류(詩類)

몽도원도(夢桃源圖)에 쓰다. 귀공자(貴公子)를 위해서 짓다. 10수

 

무릉이라 그 어디가 이 도원이란 말인가 / 武陵何處是桃源

그 동문을 찾아 올라갈 방도가 없네그려 / 無術躋攀款洞門

말 달려 분쟁하던 때가 어느 연대였던고 / 馳馬分爭幾年代

계잠 농사 짓고 살며 자손이 이미 나왔네 / 鷄蠶生長已兒孫

온 경내엔 꽃이 피어 봄이 항상 존재하고 / 一川花合春長在

사방 절벽엔 구름 짙어 길이 안 보이누나 / 四壁雲深路不分

본래 어부는 흔히 일 만들길 좋아한 거라 / 自是漁郞多好事

그 안의 소식을 끝내 들어보기 어렵구려 / 此中消息了難聞

 

물방울 뚝뚝 동룡의 누각에 밤은 깊어라 / 水滴銅龍漏刻長

화려한 집에 누워 졸 제 북두는 처량한데 / 畫堂高睡斗凄涼

풍류 회포가 선경 흥취를 저버리지 않아서 / 雅懷不負丹丘興

별천지를 처음으로 옥베개 곁에 옮겨오니 / 異境初移玉枕傍

대나무 집은 쓸쓸해라 깊은 골이 고요하고 / 竹屋蕭疎深洞靜

복사꽃은 보일락 말락 반 시내가 향기롭네 / 桃花掩映半溪香

꿈 깨고 나니 선경의 물색이 그대로인 걸 / 覺來物色依然是

신선이 아득한 데 막혀 있다고 누가 말했나 / 誰道神仙隔渺茫

 

우연히 세상 피한 게 이게 바로 신선일세 / 偶然逃世是神仙

오솔길을 따라 은밀히 별천지를 통하였네 / 細逕潛通小有天

돌길 뚫고 잔교 놓아라 어느 시대 집인고 / 鑿石架巖何代室

꽃 따고 열매 먹은 지도 햇수를 모르겠구려 / 採花食實不知年

이곳은 희황 시대라 화기 어린 삼춘이요 / 羲皇日月三春裏

바깥의 한진 세상은 전쟁이 끝없었는데 / 漢晉乾坤百戰邊

천고에 지령이 이곳을 누설 않고 숨겼으니 / 千古地靈藏不洩

꿈이나 의거하여 세간에 전할 뿐이고말고 / 要憑淸夢世間傳

 

산 찾는대서 굳이 근원을 찾을 것 없어라 / 尋山不必强尋源

축지술로 선경 끌어오니 자연의 봄이로세 / 縮地煙霞自在春

꽃은 바위틈에 숨었고 문은 반쯤 닫혔고 / 花隱巖門半掩

배는 물가에 가로대었고 물은 편평하구나 / 舟橫浦水平分

영지 캐서 시험삼아 상산 노인을 짝할 뿐 / 採芝試伴商山老

수은 고아 상계 진인을 탐한 건 아니로다 / 鍊汞非貪上界眞

인간과의 소식 끊긴 걸 괴이케 생각 마소 / 莫怪人間音問隔

진 나라 피한 게 원래 풍진을 피한 거라네 / 避秦元是避風塵

 

진작부터 신선 믿어 고상한 생각 맑았기에 / 夙信天人雅想淸

무릉의 봄꿈이 더욱 분명하게 펼쳐졌네 / 武陵春夢轉分明

얽히고설킨 동 어귀는 천 굽이의 길이요 / 縈紆洞口千回路

뜻밖에 만난 은자는 한번 웃으며 맞누나 / 邂逅山冠一笑迎

옥 섬돌 붉은 담장은 자주 가리켜 보이고 / 玉砌丹墻頻指點

자갈밭 띳지붕은 또 가로 세로로 연하였네 / 石田茅屋且縱橫

모시고 놀던 이는 모두 걸출한 유선들이라 / 陪遊盡是儒仙傑

당시에 그림 속 다녔던 일을 기억할 테지 / 記得當時畫裏行

 

신통한 솜씨 펼치는 고개지를 힘입어 / 賴是神工顧凱之

붓끝에서 도리어 선경의 생각 일으켰으니 / 筆端還有洞中思

신선은 흐릿해라 하늘이 드러내길 아끼고 / 玉仙恍惚天慳露

비단폭엔 삼라만상의 지축을 옮겨놓았네 / 綃幅森羅地軸移

원근의 봉우리들은 숨었다 보였다 하고 / 遠近峯巒相隱映

높고 낮은 꽃나무들은 정히 번성하여라 / 高低花木正紛披

분향하고 서책 가운데 조용히 앉았으니 / 焚香靜坐圖書裏

문득 밝은 창 아래 거허한 때가 생각나네 / 却憶晴窓蘧

 

조물은 분분하게 소아처럼 장난을 하니 / 造物紛紛戲小兒

정신의 변화를 아득하여 알기 어려워라 / 精神變化渺難知

한단침 가에서는 황량의 밥이 익었고 / 邯鄲枕上黃粱熟

화서향 안에는 밝은 해가 더디었었지 / 華胥鄕中白日遲

나비가 나는 것은 흔히 순서를 취함이요 / 胡蝶悠揚多取次

마우는 절로 희이임을 상상하게 하누나 / 馬牛因想自希夷

몇 사람이나 꿈에 도원동을 들어갔던고 / 幾人夢到桃源洞

매화와 대가 천추에 일단의 기사로구려 / 梅竹千秋一段奇

 

화려한 집에 족자 하나 높직이 걸렸으니 / 垂垂一簇畫堂高

의장 계획이 극도로 세밀히 표현되었네 / 意匠經營細入毫

기문은 팽택의 절묘함보다 월등하거니 / 作記遠過彭澤妙

시는 퇴지 같은 문호가 짓도록 해야겠네 / 題詩須倩退之豪

그림 펴니 뜻밖에 새로운 생각은 일지만 / 披圖不覺生新想

어찌 붓 밑에 파도를 몰아칠 수 있으랴 / 入筆何曾捲怒濤

만일 고상한 놀이를 모시고 함께한다면 / 若使淸游陪杖屨

응당 이 신세도 신선의 무리에 속하련만 / 也應身世屬仙曹

 

인간은 기름과 불이 서로 태우는 격인데 / 人間膏火日相煎

신선 경계는 아득해라 어드메에 있는고 / 仙洞迢迢若箇邊

시험하자면 어찌 옥 먹는 법이야 없으랴만 / 欲試豈無飧玉法

돌아가려도 산 살 돈이 없는 게 걱정일세 / 縱歸苦乏買山錢

두보가 찾았던 청정반은 찾지를 못하고 / 未尋杜甫靑精飯

창려의 옥정련만 부질없이 생각하누나 / 空憶昌黎玉井蓮

도규를 빌려서 만일 얻을 수만 있다면 / 乞得刀圭如可得

난학을 타고 신선들을 찾아가고 싶어라 / 願乘鸞鶴訪群仙

 

귀밑머리 세월은 당당하게 흘러가는데 / 頭邊歲月去堂堂

동화문을 분주하여라 뭐가 그리 바쁜고 / 犇走東華有底忙

좋은 꿈은 명환길에 장구하지 못하기에 / 好夢不長名宦路

돌아가고픈 맘이 먼저 수운향에 있다오 / 歸情先在水雲鄕

조용히 현빈을 기름은 안심하는 약이요 / 靜中玄牝安心藥

한가함 속의 황정경은 늙음 막는 방법이니 / 閑裏黃庭却老方

조만간에 전답과 살 집을 마련하거든 / 早晩求田仍問舍

한 상앗대 봄물에 목란 노를 저으련다 / 一篙春水鼓蘭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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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권 / 시류(詩類)

박인수(朴仁叟) 팽년(彭年) 학사(學士)가 부쳐준 조춘(早春) 시에 차운(次韻)하다. 3수

 

항아리의 탁주는 향기를 한창 풍기는데 / 瓦盆濁酒釀氤氳

새벽에 남은 추위 겁나 문 닫고 앉아서 / 曉怯餘寒尙閉門

새 시에 화답하려고 언 붓을 녹이노라니 / 欲和新詩呵凍筆

대숲에 덜 녹은 눈이 반은 아직 남았네 / 竹林殘雪半猶存

 

한 화로 향 연기는 가늘게 피어 퍼지는데 / 一爐香縷細氤氳

버들 빛은 봄을 갖고 금문을 들어오누나 / 柳色將春入禁門

해가 화전에 오를 제 늦게야 출사하여라 / 日上花磚衙赴晩

옹졸함으로 도가 지금 보존됨을 알아야지 / 須知用拙道今存

 

원림의 바람과 햇빛이 하도 화창한지라 / 園林風日好絪氳

청산에 이를 잡으며 문 닫고 있노라니 / 捫蝨靑山爲掩門

향 연기는 발을 감돌고 긴 대는 고요한데 / 香縷縈簾脩竹靜

《중용》 일부를 인하여 도심이 보존되누나 / 中庸一部道心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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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권 / 시류(詩類)

이청보(李淸甫) 개(塏) 학사(學士)의 시에 차운하다. 3수

 

수척한 몰골이 거울 속에 더 수척해졌어라 / 瘦骨新添鏡中

고달픈 인생 허둥지둥 또 봄바람을 만났네 / 勞生草草又春風

술은 해갈을 시키나 되레 술버릇을 만들고 / 酒能解渴還成癖

시는 회포를 풀지만 끝내 곤궁하게 되는 걸 / 詩縱攄懷竟坐窮

매류는 무심하여 못생긴 손을 압도하건만 / 梅柳無情欺醜客

천지는 도량 있어 한가한 노인을 포용하네 / 乾坤有量著閑翁

문장 가운데 각로의 명성이 가장 크거니 / 文章閣老聲名大

날로 몇 통의 시편 보내준 데 감사하노라 / 多謝詩篇日幾筒

 

작은 창 앞에 앉았는 유유한 이 신세여 / 悠悠身世小窓中

짧은 머리는 성기어 흩날릴 거리도 없네 / 短髮蕭疎不滿風

산중의 범 잡는 건 진정 나쁘지 않지만 / 射虎山中良不惡

길 위에 나귀 탄 이는 흔히 곤궁하다오 / 騎驢陌上亦多窮

황량한 소나무 오솔길은 도원량이요 / 荒涼松逕陶元亮

낙백해도 매화 같기는 육방옹이로다 / 落魄梅花陸放翁

세상에 쓸모없는 재주임을 깨닫겠으니 / 漸覺疎才乖世用

봄 강에 돌아가 낚시통이나 물어보련다 / 春江歸問釣魚筒

 

세월은 언뜻언뜻 꿈속처럼 흐르는 가운데 / 光陰倏忽夢魂中

일찍 일어나니 서창의 새벽바람 무서워라 / 早起書窓怯曉風

파리한 말 해진 갖옷은 장로의 흥취이고 / 羸馬弊裘張老興

남은 술 식은 불고기는 소릉의 궁함일세 / 殘杯冷炙少陵窮

한 봄은 내내 고달픈 채 시 동무도 없었고 / 一春疎憊無詩伴

만사는 불운하여라 이미 병든 늙은이로세 / 萬事蹉跎已病翁

문득 바라는 것은 고향으로 일찍 돌아가 / 却望故山歸計早

기필코 부지런히 연통이나 마시는 거라오 / 且須勤作灌蓮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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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권 / 시류(詩類)

희우정야연도(喜雨亭夜宴圖)에 대한 시. 제공(諸公)의 운에 차하다.

 

세종(世宗)께서 일찍이 희우정(喜雨亭)에 주필(駐蹕)하시어, 한림원(翰林院)의 시종(侍從) 제신(諸臣)에게 술을 내리시고, 여러 공자(公子)에게 명하여 연석(宴席)에 같이 참여하게 하였다. 이때 문종(文宗)께서는 동궁(東宮)에 계셨는데, 동정귤(洞庭橘) 한 쟁반을 내리면서 쟁반 겉에 쓰기를, “전단의 향기는 유독 코에만 향기롭고, 기름진 고기는 유독 입에만 맛날 뿐인데, 이 동정귤은 코에도 향기롭고 입에도 감미로운 것이 가장 사랑스럽다.〔檀栴偏宜於鼻 脂膏偏宜於口 最愛洞庭橘 香鼻又甘口〕”고 하였으므로, 신하들이 모두 상(上)께서 내려 주심을 영광스럽게 여겨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써서 세상에 전하는 바이다.

 

도성 서쪽에 주필하시매 서연이 감쌌는데 / 駐蹕城西擁瑞煙

당시의 시종신들은 모두가 유선이었기에 / 當時侍從盡儒仙

청담에 미사여구로 공자들을 모시었고 / 淸談玉屑陪公子

높은 흥취 좋은 술로 화려한 자리 열었네 / 雅興金樽敞綺筵

좋은 달은 기약 있어 자리 가득 비춰주고 / 好月有期來滿座

긴 강물은 끝이 없어 먼 하늘에 닿았어라 / 長江無際去連天

동궁께서 귤 내림은 더욱 새로운 은총이라 / 靑宮賜橘尤新寵

비단 폭에 그림 전해서 후세에 빛내노라 / 綃幅傳神耀後傳

 

빛도 영롱한 향기로운 감귤 동정춘이여 / 玲瓏香橘洞庭春

우로 같은 은총 깊어 빛깔 또한 새롭구려 / 雨露恩涵色轉新

몸이 명군 양신의 태평성대를 만났는지라 / 身際風雲逢聖代

어조의 자리 열어 문신을 중히 대접하네 / 筵開魚藻重詞臣

육적이 자모 위해 품었단 말 들었거니와 / 曾聞陸績懷慈母

동파가 세군에게 준 데에 다시 비기련다 / 更擬東坡遺細君

이날의 광영이야 무엇이 이만할 수 있으랴 / 此日光榮誰得似

가시를 당장 지으니 붓이 신들린 듯하구려 / 歌詩立進筆如神

 

긴 바람이 부는 아래 달빛이 서릿빛 같아 / 長風吹下月如霜

호숫가의 새로운 정자가 십분 서늘하니 / 湖上新亭十分涼

그림자 밟아 소로의 흥취를 따르고 싶고 / 踏影欲追蘇老興

술잔 멈춰 미친 적선처럼 묻고도 싶어라 / 停杯爲問謫仙狂

바람 이슬의 맑은 밤은 은하수의 속이요 / 風露淸宵銀漢裏

산과 강하의 온 대지는 옥호의 곁이로다 / 山河大地玉壺傍

몸이 선경에 있는 걸 남들은 알지 못하리 / 身在蓬瀛人不識

어로의 향 연기가 의관을 엄습해오누나 / 衣巾來襲御爐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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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권 / 시류(詩類)

홍 동년 일휴(洪同年日休)가 공부(工部)의 절구(絶句) 여섯 수의 운(韻)을 사용하여 시를 지어서 나에게 보여주므로, 여기에 차운하다.

 

울타리 대는 깨끗하기 씻은 듯하고 / 籬竹淨如洗

못의 연은 진흙 밖에 높이 나왔는데 / 池荷高出泥

작은 창 아래서 잠을 막 깨고 나니 / 小窓初睡覺

띠지붕 위에서 낮닭이 울어대누나 / 茅屋午時鷄

 

매화 열매는 노랗게 막 익어가고 / 梅子黃初熟

연꽃은 붉은빛이 점점 많아지는데 / 荷花紅漸多

명아주 지팡이 짚고 때로 산보하니 / 杖藜時步

시 짓는 흥취가 정히 어떻겠는가 / 詩興定如何

 

죽순은 담장 모서리를 뚫고 나오고 / 小筍穿墻角

찬 샘물은 돌부리를 씻어 흐르는데 / 寒泉漱石根

두어 꾀꼬리는 버들골목에서 울고 / 數鶯啼柳巷

개 한 마리는 주막에서 짖어대누나 / 一犬吠花村

 

검은 구름은 땅 위에 널리 깔리고 / 黑雲遮地面

소낙비는 산 허리에 죽죽 내리는데 / 白雨映山腰

처마의 제비는 저들끼리 지저귀고 / 簷燕自相語

연못의 고기는 수시로 뛰곤 하누나 / 池魚時復跳

 

벽려 넝쿨은 교묘하게 벽을 뚫고 / 薜荔巧穿壁

포도 넝쿨은 처마 가득 나직한데 / 葡萄低滿簷

작은 창엔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 矮窓風細細

외로운 걸상엔 초승달이 비치누나 / 孤榻月纖纖

 

울타리 막아서 밭 토란 보호하고 / 揷籬防隴芋

물 끌어다가 정원의 꽃에 대도다 / 引水灌園花

땅이 후미져 수레와 말은 드물고 / 地僻少輪鞅

담장 너머 두세 집이 있을 뿐이네 / 隔墻三兩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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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권 / 시류(詩類)

여섯 수에 재차 화답하다.

 

대 뿌리는 공교히 돌을 얽어매고 / 竹根工絡石

채소 싹은 교묘히 진흙을 뚫누나 / 蔬甲巧穿泥

휘장 걷어 제비를 왕래하게 하고 / 卷幔通飛燕

창은 열어 싸우는 닭을 구경하네 / 開窓看鬪鷄

 

묵은 정원은 차지한 땅이 조그만데 / 荒園占地少

고요한 나무는 뜰을 온통 차지했네 / 幽樹得庭多

홀로 앉은 이 몸은 부쳐 삶 같거니 / 獨坐身如寄

덧없는 인생 늙어감을 어찌할거나 / 浮生老奈何

 

밭두둑 지어 부추 뿌리 옮겨 심고 / 開畦移薤本

물은 가두어 꽃 뿌리를 적셔주네 / 貯水灌花根

궁벽한 집에 세상사 거리낌 없으니 / 窮巷無塵鞅

그윽한 살이가 후미진 마을 같구나 / 幽居類僻村

 

죽순은 송아지의 뿔같이 나오고 / 筍抽黃犢角

버들은 소만의 허리처럼 춤추네 / 柳舞小蠻腰

나무 까치는 바람 살펴 지저귀고 / 枝鵲占風語

못 개구리는 비를 맞으며 뛰누나 / 池蛙得雨跳

 

구름 보며 때론 지팡이 기대 서고 / 看雲時倚杖

대를 사랑하여 처마도 혹 도는데 / 愛竹或巡簷

주렴 장막엔 실바람이 일어나고 / 簾幕微風動

못 둑엔 가랑비가 조용히 내리네 / 池塘小雨纖

 

천천히 걸어서 향기로운 풀을 찾고 / 緩步尋芳草

한가히 읊으며 떨어진 꽃을 세기도 / 閑吟數落花

시를 요구한 이는 속된 이가 없고 / 乞詩無俗客

술을 보내준 이는 이웃집이 있구나 / 送酒有鄰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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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산거사시(山居四時)를 두고 제현(諸賢)의 운을 사용하여 지어서 귀공자(貴公子)의 정사(精舍)에 쓰다. 5수

 

하늘 나직한 척오에 푸른 산이 있으니 / 天低尺五有靑山

이 산은 무릉도원과 백중의 형세로다 / 山與桃源伯仲間

산수 좋은 이곳을 어느 해에 처음 잡았던고 / 泉石何年初卜地

고상한 이의 많은 여가에 문득 웃음 지었네 / 風雲多暇便開顔

떨어진 꽃 흐르는 물엔 맘이 먼저 이르고 / 落花流水心先到

겹친 봉우리 가벼운 놀은 꿈에 나타났으리 / 疊嶂輕霞夢自關

좋을시고 남여 타고 날마다 내왕하면서 / 好是籃輿日來往

시 이루어 천지의 신비를 차츰 파헤치네 / 詩成取次破天慳

 

두 산의 푸른빛은 조용한 사립을 둘러싸고 / 兩山靑送繞閑扉

자갈길 푸른 이끼엔 거마의 흔적도 드문데 / 石徑蒼苔車馬稀

가랑비는 실실 내려 푸른 죽순이 자라고 / 小雨絲絲靑筍長

갠 바람은 화창하여 난초가 아름다워라 / 光風泛泛紫蘭猗

비둘기 우는 깊은 숲엔 꽃이 처음 만발하고 / 錦鳩深樹花初遍

제비 나는 못둑 위엔 버들개지도 나는구나 / 晴燕池塘絮又飛

고요함 속에 때로 약초밭을 찾기도 하고 / 靜裏有時尋藥圃

정원 안에는 마음껏 영지도 심었네그려 / 園中滿意種仙芝

 

겹겹의 푸른 연잎이 아득하게 덮여 있어라 / 芙蓉積翠冪濛籠

사람이 삼신산 몇째 봉우리에 있는 것일까 / 人在蓬瀛第幾重

주렴 밖엔 더위 재촉하는 초여름 비가 오고 / 簾幕暑催梅子雨

의관엔 향기 스며라 연꽃 바람이 불어오네 / 衣巾香濕藕花風

읊기 좋은 뜨락의 대는 단란하게 푸르고 / 供吟階竹檀欒碧

눈에 환한 석류꽃은 자유자재로 붉구나 / 照眼山榴自在紅

세상 경시하거니 어찌 벼슬에 뜻을 두랴 / 翫世何曾管簪紱

북창 아래 편히 누우니 귀밑이 선선하네 / 北窓高枕鬢醒鬆

 

오랜 비에 오동에서 깊은 가을 느끼니 / 梧桐老雨覺秋深

산수 찾아 나설 마음이 절로 일어나누나 / 攪起登山臨水心

궁중에서 내린 회는 남쪽 시내 생선이요 / 鱠下宮盤南澗玉

손에게 나눠준 향기는 동정의 황금일세 / 香分客袖洞庭金

황화의 고아한 흥취는 모자에 바람이 불고 / 黃花雅興風吹帽

귀안의 고상한 정은 거문고 가득 달빛일세 / 歸雁高情月滿琴

못난 나는 전부터 시골 흥취가 많았거니 / 渺我從來多野興

짚신에 베버선 신고 찾아가고만 싶어라 / 芒鞋布襪擬相尋

 

송창 아래 온종일 먼 조수 소리 들을 제 / 松窓終日遠潮喧

다만 매화를 불러서 이웃으로 삼으노니 / 只喚梅花作比鄰

산란한 산구름은 차가워서 얼 지경이요 / 淰淰山雲寒欲凍

다스운 등불은 훈훈하기가 봄만 같은데 / 溫溫燈火盎如春

얼음샘은 으리으리해 은세계와 헷갈리고 / 氷泉鑿落迷銀界

눈 덮인 숲은 들쭉날쭉 옥 먼지를 쏟는 듯하네 / 雪樹槎牙糝玉塵

포단에 편히 앉아 등걸불 지피고 있으면 / 坐穩團蒲燒榾

안심이 곧 약이라 심신 수양이 넉넉하리 / 安心是藥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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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홍 동년 일휴(洪同年日休)가 공부(工部)의 절구(絶句) 여섯 수의

운(韻)을 사용하여 시를 지어서 나에게 보여주므로, 여기에 차운하다.

 

울타리 대는 깨끗하기 씻은 듯하고 / 籬竹淨如洗

못의 연은 진흙 밖에 높이 나왔는데 / 池荷高出泥

작은 창 아래서 잠을 막 깨고 나니 / 小窓初睡覺

띠지붕 위에서 낮닭이 울어대누나 / 茅屋午時鷄

 

매화 열매는 노랗게 막 익어가고 / 梅子黃初熟

연꽃은 붉은빛이 점점 많아지는데 / 荷花紅漸多

명아주 지팡이 짚고 때로 산보하니 / 杖藜時步

시 짓는 흥취가 정히 어떻겠는가 / 詩興定如何

 

죽순은 담장 모서리를 뚫고 나오고 / 小筍穿墻角

찬 샘물은 돌부리를 씻어 흐르는데 / 寒泉漱石根

두어 꾀꼬리는 버들골목에서 울고 / 數鶯啼柳巷

개 한 마리는 주막에서 짖어대누나 / 一犬吠花村

 

검은 구름은 땅 위에 널리 깔리고 / 黑雲遮地面

소낙비는 산 허리에 죽죽 내리는데 / 白雨映山腰

처마의 제비는 저들끼리 지저귀고 / 簷燕自相語

연못의 고기는 수시로 뛰곤 하누나 / 池魚時復跳

 

벽려 넝쿨은 교묘하게 벽을 뚫고 / 薜荔巧穿壁

포도 넝쿨은 처마 가득 나직한데 / 葡萄低滿簷

작은 창엔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 矮窓風細細

외로운 걸상엔 초승달이 비치누나 / 孤榻月纖纖

 

울타리 막아서 밭 토란 보호하고 / 揷籬防隴芋

물 끌어다가 정원의 꽃에 대도다 / 引水灌園花

땅이 후미져 수레와 말은 드물고 / 地僻少輪鞅

담장 너머 두세 집이 있을 뿐이네 / 隔墻三兩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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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권 / 시류(詩類) / 서거정(徐居正)

여섯 수에 재차 화답하다.

 

대 뿌리는 공교히 돌을 얽어매고 / 竹根工絡石

채소 싹은 교묘히 진흙을 뚫누나 / 蔬甲巧穿泥

휘장 걷어 제비를 왕래하게 하고 / 卷幔通飛燕

창은 열어 싸우는 닭을 구경하네 / 開窓看鬪鷄

 

묵은 정원은 차지한 땅이 조그만데 / 荒園占地少

고요한 나무는 뜰을 온통 차지했네 / 幽樹得庭多

홀로 앉은 이 몸은 부쳐 삶 같거니 / 獨坐身如寄

덧없는 인생 늙어감을 어찌할거나 / 浮生老奈何

 

밭두둑 지어 부추 뿌리 옮겨 심고 / 開畦移薤本

물은 가두어 꽃 뿌리를 적셔주네 / 貯水灌花根

궁벽한 집에 세상사 거리낌 없으니 / 窮巷無塵鞅

그윽한 살이가 후미진 마을 같구나 / 幽居類僻村

 

죽순은 송아지의 뿔같이 나오고 / 筍抽黃犢角

버들은 소만의 허리처럼 춤추네 / 柳舞小蠻腰

나무 까치는 바람 살펴 지저귀고 / 枝鵲占風語

못 개구리는 비를 맞으며 뛰누나 / 池蛙得雨跳

 

구름 보며 때론 지팡이 기대 서고 / 看雲時倚杖

대를 사랑하여 처마도 혹 도는데 / 愛竹或巡簷

주렴 장막엔 실바람이 일어나고 / 簾幕微風動

못 둑엔 가랑비가 조용히 내리네 / 池塘小雨纖

 

천천히 걸어서 향기로운 풀을 찾고 / 緩步尋芳草

한가히 읊으며 떨어진 꽃을 세기도 / 閑吟數落花

시를 요구한 이는 속된 이가 없고 / 乞詩無俗客

술을 보내준 이는 이웃집이 있구나 / 送酒有鄰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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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권 / 시류(詩類)

산거사시(山居四時)를 두고 제현(諸賢)의 운을 사용하여 지어서 귀공자(貴公子)의 정사(精舍)에 쓰다. 5수

 

하늘 나직한 척오에 푸른 산이 있으니 / 天低尺五有靑山

이 산은 무릉도원과 백중의 형세로다 / 山與桃源伯仲間

산수 좋은 이곳을 어느 해에 처음 잡았던고 / 泉石何年初卜地

고상한 이의 많은 여가에 문득 웃음 지었네 / 風雲多暇便開顔

떨어진 꽃 흐르는 물엔 맘이 먼저 이르고 / 落花流水心先到

겹친 봉우리 가벼운 놀은 꿈에 나타났으리 / 疊嶂輕霞夢自關

좋을시고 남여 타고 날마다 내왕하면서 / 好是籃輿日來往

시 이루어 천지의 신비를 차츰 파헤치네 / 詩成取次破天慳

 

두 산의 푸른빛은 조용한 사립을 둘러싸고 / 兩山靑送繞閑扉

자갈길 푸른 이끼엔 거마의 흔적도 드문데 / 石徑蒼苔車馬稀

가랑비는 실실 내려 푸른 죽순이 자라고 / 小雨絲絲靑筍長

갠 바람은 화창하여 난초가 아름다워라 / 光風泛泛紫蘭猗

비둘기 우는 깊은 숲엔 꽃이 처음 만발하고 / 錦鳩深樹花初遍

제비 나는 못둑 위엔 버들개지도 나는구나 / 晴燕池塘絮又飛

고요함 속에 때로 약초밭을 찾기도 하고 / 靜裏有時尋藥圃

정원 안에는 마음껏 영지도 심었네그려 / 園中滿意種仙芝

 

겹겹의 푸른 연잎이 아득하게 덮여 있어라 / 芙蓉積翠冪濛籠

사람이 삼신산 몇째 봉우리에 있는 것일까 / 人在蓬瀛第幾重

주렴 밖엔 더위 재촉하는 초여름 비가 오고 / 簾幕暑催梅子雨

의관엔 향기 스며라 연꽃 바람이 불어오네 / 衣巾香濕藕花風

읊기 좋은 뜨락의 대는 단란하게 푸르고 / 供吟階竹檀欒碧

눈에 환한 석류꽃은 자유자재로 붉구나 / 照眼山榴自在紅

세상 경시하거니 어찌 벼슬에 뜻을 두랴 / 翫世何曾管簪紱

북창 아래 편히 누우니 귀밑이 선선하네 / 北窓高枕鬢醒鬆

 

오랜 비에 오동에서 깊은 가을 느끼니 / 梧桐老雨覺秋深

산수 찾아 나설 마음이 절로 일어나누나 / 攪起登山臨水心

궁중에서 내린 회는 남쪽 시내 생선이요 / 鱠下宮盤南澗玉

손에게 나눠준 향기는 동정의 황금일세 / 香分客袖洞庭金

황화의 고아한 흥취는 모자에 바람이 불고 / 黃花雅興風吹帽

귀안의 고상한 정은 거문고 가득 달빛일세 / 歸雁高情月滿琴

못난 나는 전부터 시골 흥취가 많았거니 / 渺我從來多野興

짚신에 베버선 신고 찾아가고만 싶어라 / 芒鞋布襪擬相尋

 

송창 아래 온종일 먼 조수 소리 들을 제 / 松窓終日遠潮喧

다만 매화를 불러서 이웃으로 삼으노니 / 只喚梅花作比鄰

산란한 산구름은 차가워서 얼 지경이요 / 淰淰山雲寒欲凍

다스운 등불은 훈훈하기가 봄만 같은데 / 溫溫燈火盎如春

얼음샘은 으리으리해 은세계와 헷갈리고 / 氷泉鑿落迷銀界

눈 덮인 숲은 들쭉날쭉 옥 먼지를 쏟는 듯하네 / 雪樹槎牙糝玉塵

포단에 편히 앉아 등걸불 지피고 있으면 / 坐穩團蒲燒榾

안심이 곧 약이라 심신 수양이 넉넉하리 / 安心是藥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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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권 / 시류(詩類)

재차 화답하여 다섯 수를 짓다.

 

고관이 무엇 때문에 청산을 그리워하는고 / 金章何故戀靑山

부귀는 한번 웃는 사이에 부칠 뿐이라서 / 富貴唯餘一笑間

좋이 산중에 들어가 대은을 이루었나니 / 好向山中成大隱

응당 선약 먹고 청춘을 길이 머물게 하리 / 會須大藥駐童顔

구지산의 백학은 아침에 산마루에서 놀고 / 山白鶴朝遊嶺

함곡관의 청우는 밤에 관문을 지나갔었지 / 函谷靑牛夜渡關

행락하는 지상선은 간 곳마다 승지이거니 / 行樂地仙隨處勝

땅의 신령이 사람에게 아낄 것 없고말고 / 坤靈不必爲人慳

 

추운 봄의 경물들은 깊은 사립을 옹호하고 / 春寒景物護深扉

원학 앞에는 인간의 일이 드물기만 한데 / 猿鶴前頭俗事稀

버들 둑엔 빗물 젖어 버들가지가 묵직하고 / 雨濕柳堤千縷重

대밭은 연기를 띠어 대나무마다 아름다워라 / 煙拖竹塢萬竿猗

엷게 푸른 한 못은 갈매기랑 함께 깨끗하고 / 一池淺碧鷗兼淨

집 가득 남은 꽃잎은 제비랑 어울려 나는데 / 滿院殘紅燕共飛

정원을 산보하다 때로 지팡이 짚고 섰노라면 / 步園中時倚杖

돌더렁밭 곳곳에 삼지가 쭉쭉 빼어났으리 / 石田處處秀三芝

 

선봉은 보일락 말락 서연이 둘러쌌는데 / 仙峯隱映瑞煙籠

골짝 안에는 분명히 별궁이 보이네그려 / 洞裏分明見別宮

산 가득한 꽃향기 속에 비는 때로 내리고 / 花氣滿山時作雨

땅 뒤덮은 솔 그늘엔 바람이 쉬 일어나네 / 松陰拂地易爲風

향기는 좋은 술에 어려라 연통은 푸르고 / 香凝美酒荷筒碧

맛은 경장에 들어라 여지 열매는 붉구려 / 味入瓊漿子紅

날 저물어 산새들이 울면서 다 흩어지자 / 日暮山禽啼散盡

난간 기대니 시 생각이 더욱 산란해지네 / 凭闌詩思轉鬆鬆

 

동화문의 뿌연 먼지는 만 길이나 깊지만 / 塵土東華萬丈深

고상한 이는 일생을 산수의 마음이라오 / 高人丘壑百年心

순채는 이슬을 띠어 유달리 눈보다 희고 / 蓴絲帶露專欺雪

국화는 서리를 맞아 황금을 만들 줄 아네 / 菊蘂經霜解作金

귀뚜라미는 혜화에 울어 베개맡에 들리고 / 蛩泣蕙花連竹枕

학은 솔방울을 건드려 거문고에 떨어지네 / 鶴翻松子落瑤琴

청산이 진로 찾는 길을 방애하지 않고 / 靑山不礙尋眞路

잠시 우리들의 한번 심방 길을 허락했구려 / 暫許吾曹去一尋

 

갈옷 입고 한가히 졸 제 고요하기도 해라 / 擁褐閑眠靜不喧

고상한 종적 아득하여 절로 이웃이 없네 / 高蹤邈邈自無鄰

눈 온 밤에 차 끓이면 창문이 온통 훤하고 / 雪宵煮茗窓渾曙

높은 집에선 단약 고아 솥이 훈훈하여라 / 雲閣燒丹鼎已春

다순 잣나무의 맘은 곧아 추위를 능멸하고 / 𤉦柏心貞凌歲暮

찬 매화의 낯은 파리해 풍진을 초탈하였네 / 寒梅面瘦離風塵

때로는 문전에 두 사람의 아객이 있어 / 門前時有雙鵝客

황정경과 바꾸면 필법이 신묘하기도 하지 / 博得黃庭妙入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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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권 / 시류(詩類)

문경현(聞慶縣) 팔영(八詠)

 

영남의 수많은 나그네들에게 / 嶺南多少客

꺾어주어 이젠 남은 게 없으련만 / 折贈已無餘

화창한 춘풍이 불어줌을 힘입어 / 倚被春風拂

긴 가지는 아직 그대로 남았구나 / 長條故自如

창 밖의 오동나무〔窓外梧桐〕

실바람이 한 잎새를 떨어뜨릴 제 / 微風吹一葉

조각달은 성긴 가지에 걸려 있네 / 缺月掛疎枝

갑자기 이 삼경 밤 비 오는 가운데 / 忽此三更雨

고향 생각을 어찌 견딘단 말인가 / 那堪萬里愁

푸른 절벽의 빨간 단풍〔蒼壁丹楓〕

단풍잎이 푸른 절벽을 장식하니 / 赤葉藏靑壁

강산이 별천지 중에 으뜸이로다 / 江山擅別區

내가 온 때가 마침 늦은 가을이라 / 我來適秋晩

이런 경치는 일찍이 못 보았었네 / 佳致見曾無

그늘진 절벽에 쌓인 눈〔陰崖積雪〕

깊은 겨울엔 얼음이 골짝에 가득고 / 冬深氷滿壑

봄 중간엔 물이 계곡에서 나오나니 / 春半水生溪

자연 형태는 때를 따라 달라지는데 / 物態隨時異

인정은 늙으면서 헷갈리려 하누나 / 人情老欲迷

오정의 종루〔烏井鐘樓〕

객창에서 시름겨워 잠 못 이룰 제 / 旅窓愁不寐

외로운 베개맡에 달빛만 비추는데 / 孤枕月低佪

어느 곳이 그 한산사란 말인가 / 何處寒山寺

종소리가 한밤중에 들려오누나 / 疎鐘半夜來

용담 폭포(龍潭瀑布)

옥홍은 용이 꿈틀대듯 드리우고 / 玉虹垂蝘蜒

백설 가루는 청신하게 뿌려대네 / 白雪洒淸新

날고 잠기는 술법은 물을 것 없이 / 莫問飛潛術

변화의 신통함을 꼭 알아야 하리 / 須知變化神

주흘의 영사〔主屹靈祠〕

험준한 산은 하늘 끝에 닿았고 / 孱顔倚天末

절벽은 구름 위에 솟았네그려 / 絶壁入雲中

만물을 적셔준 자취는 없지만 / 潤物雖無跡

절로 구름 일으킨 공은 있고말고 / 興雲自有功

관갑의 잔도〔串岬棧道〕

굽이굽이 양장판 같은 길에다 / 屈曲羊腸路

구불구불 조도가 기괴도 하여라 / 逶迤鳥道奇

봉우리 하나하나 다 빼어났으니 / 峯巒一一勝

말일랑 더디 가도록 맡겨 두련다 / 遮莫馬行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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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권 / 시류(詩類)

띳집의 탄식〔茅屋嘆〕

 

선생의 띳집은 산기슭에 의지해 있는데 / 先生茅屋依山前

삼 년을 띠 못 이어 지붕이 뚫린 지 오래라 / 三年不茅屋已穿

어젯밤엔 지붕 위에 비바람이 몰아쳐서 / 昨夜屋上雨兼風

날리는 쑥처럼 예전 띠까지 다 날아가니 / 舊茅亦盡隨飛蓬

비가 많이 새는 곳은 동이로 퍼붓듯하고 / 大漏雨勢如翻盆

조금 새는 곳도 빗줄기가 대통만 한지라 / 小漏雨脚如垂筒

방 안에선 비를 피하재도 마른 곳이 없어 / 屋中走避無乾處

주룩주룩 맞고 앉아 그대로 밤을 새우고 / 坐此浪浪空達曙

아이 불러 띠 엮어서 잠깐 때우게 했더니 / 呼兒編茅俄補瘡

띠가 엷어 또다시 바람에 날아가 버리네 / 茅薄又爲風取去

선생은 하늘 우러러 공연히 탄식하노니 / 先生仰天空嘆噓

어찌 그대 거처할 만한 큰 집이 없으랴 / 豈無廈屋庇君居

산 남쪽엔 재목이 하 빽빽이 들어섰거니 / 山南屋材多於織

한 번 취해다가 고대광실을 짓는다면 / 一取可使成渠渠

아무리 거센 비바람인들 그대를 어찌하랴 / 風雨縱惡迺君何

종전의 띳집은 참으로 한 거적일 뿐이리 / 從前茅屋眞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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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권 / 시류(詩類)

미인도(美人圖)

 

동녘 바람 화창하여 천기가 새로워져서 / 東風駘蕩天氣新

화려한 휘장 새에 봄기운이 일어나니 / 繡圍綺幕生靑春

굽은 난간엔 황금 실을 나직이 떨쳐대고 / 曲欄低拂萬金縷

담장 모퉁이엔 섬세한 홍우를 떨구누나 / 墻角廉纖落紅雨

자줏빛 담요 비단 휘장 점점 다스워지고 / 紫漸暖錦帳溫

박산로의 향 연기는 갠 하늘에 은은한데 / 博山香霧晴氤氳

미인은 아무 말 없이 춘정에 한껏 젖어 / 美人淡蕩春思多

거울에 얼굴 비추어라 슬픔을 어이할꼬 / 靑銅對照悲乃何

동방에서 새벽에 일어나 머리를 단장하니 / 洞房曉起競梳

자태는 유연하고 살갗은 하도 섬세한데 / 意態輕盈肌肉細

머리 위의 비녀엔 금화를 새겨 단장하고 / 頭上寶釵金鈿粧

허리 사이엔 쌍패와 소합향을 찼구려 / 腰間雙佩蘇合香

아랑은 백설같이 새하얀 섬섬옥수로 / 阿娘纖指白雪柔

산호의 갈고리에 주렴을 높직이 걸고 / 珠簾高掛珊瑚鉤

상사의 시름을 비파에 몽땅 실어 타누나 / 琵瑟彈盡相思愁

미인들 높은 쪽머리는 꽃에 눌려 나직해라 / 阿姝高髻壓花低

삼삼오오 짝을 지어 꽃길을 찾아들 제 / 三三五五尋芳蹊

걸음걸음 비단 버선에서 사향이 풍기고 / 羅襪步步生香臍

아이는 옷자락 당기며 말을 한창 배우는데 / 阿兒牽衣學語聲

튼튼하긴 송아지요 귀엽긴 꾀꼬리 같네 / 健如黃犢嬌如

멀리 보니 담장 밖엔 준마가 울어대는데 / 遙看墻外駿馬嘶

금빛 아로새긴 안장에 비단의 장니로다 / 雕鞍鑿落錦

오릉의 영귀한 자는 소년들이 제일인데 / 五陵榮貴最少年

풍류가 화려하기로 천하에 앞서고말고 / 風流端麗天下先

봄놀이여 봄놀이여 즐기고 또 즐기자꾸나 / 春遊春遊樂復樂

말 전하노니 풍광을 헛되이 보내지 마소 / 傳語風光莫虛擲

어찌하면 긴 노끈으로 세월을 잡아매어 / 安得長繩繫羲娥

청춘의 꽃 같은 얼굴을 길이 보전할꼬 / 英華鎭長顔如花

그대는 못 보았나 해진 모자 둔한 나귀 두릉의 곤궁함을 / 君不見破帽蹇驢杜陵酸

곡강의 당일에 눈만 공연히 썰렁했었네 / 曲江當日眼空寒

나는 그림 보고 핍진한 전신에 멍해져서 / 我今見圖恍傳神

세 번을 외쳐 나도 몰래 진진을 부르다가 / 三叫不覺呼眞眞

애오라지 짧은 노래로 미인을 노래하노라 / 聊復短歌歌麗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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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2권 / 시류(詩類)

사명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마 급사(司馬給事)를 보내다. 40운(韻).

사마 급사의 이름은 순(恂)이다.

 

천자가 새로 등극하고 나서 / 龍飛新御極

역서를 다시 반포하는 봄이라 / 鳳曆更頒春

일월은 온 누리에 널리 비치고 / 日月輿圖廣

산하는 비 이슬을 고루 입누나 / 山河雨露均

주아에는 길사가 많았거니와 / 士多周雅吉

송조에서는 진유가 나왔었네 / 儒出宋朝眞

위대하여라 선현의 후예이며 / 偉矣先賢後

태평성대의 걸출한 신하로세 / 然聖代臣

남긴 명성은 응당 끝없을 테지만 / 餘芳應未艾

선세의 덕행은 서로 인습하였네 / 世德自相因

청전이 있음은 본디 알았거니와 / 固識靑氈在

조행의 순수함도 잘 알았고말고 / 深知素履純

명성은 금방에 진동하였고 / 聲名金榜動

두터운 은총은 금포에 새로웠네 / 寵渥錦袍新

대궐에 처음 통적함으로부터 / 紫闥初通籍

훌륭한 명성을 일찍 몸에 지녀 / 靑雲早致身

도남하는 붕새 날개는 신속했고 / 圖南鵬翮逸

공북의 준마 발굽은 앞을 다퉜네 / 空北驥蹄駪

화정에 외로이 나는 새매인 양 / 華頂孤飛隼

인간에 홀로 뿔 달린 기린인 양 / 人間獨角麟

풍채는 흡사 옥수를 보는 듯하고 / 風標瞻玉樹

굳은 절조는 푸른 대나무 같아서 / 霜節比蒼筠

여론은 추앙한 지 이미 오래이고 / 物議推崇久

임금은 자주로 은총을 내리었네 / 天心眷注頻

일찍이 추과의 급사가 된 이후로 / 秋科常給事

조정에서 엄연히 큰 띠 드리우고 / 朝陛儼垂紳

화개라 하늘은 항상 가깝거니와 / 華蓋天常近

봉래라 지위는 더욱 친근하였네 / 蓬萊地益親

용후로서 왕의 고명을 기초하여 / 龍喉演綸

계설향이 성신에까지 풍겼는데 / 鷄舌上星辰

대궐에서 밝은 조서를 반포할 제 / 鳳闕頒明詔

반열 중에 준걸한 사람 선발하니 / 鵷行得俊人

아관박대 차림에 지궤를 받들고 / 峩冠捧芝

부절을 받아 대궐에서 내려오니 / 受節下楓宸

연산 길목엔 눈보라가 몰아치고 / 風雪燕山路

압록강 가엔 뿌연 물결 아득했지 / 煙波鴨水濱

수레에 기름쳐 탄탄대로 지나서 / 膏車經坦蕩

말 재촉해라 험한 산이 얼마던고 / 叱馭幾嶙

동으로 바다에 다다른 먼 데까지 / 于海東漸遠

윤택한 여섯 고삐로 자문을 했네 / 如濡六轡詢

우리나라는 문헌을 숭상하기에 / 吾邦尙文獻

옛 풍속이 스스로 순진하거니와 / 舊俗自眞淳

예의는 중하의 것을 생각하기에 / 禮義思中夏

의관은 태평성대를 상상케 하네 / 衣冠想盛辰

두 별이 바야흐로 상을 움직이니 / 二星方動象

쌍벽이 기꺼이 자리를 같이했네 / 雙璧喜同茵

온화함은 의형에 드러나거니와 / 醞藉儀刑著

기거동작은 법도를 따르는도다 / 周旋法度循

독현의 마음은 왕사를 튼튼히 하고 / 獨賢心靡盬

전대하는 기백은 더욱 떨치는구려 / 專對氣尤振

나같이 비루한들 어찌 꺼렸으랴 / 鄙拙何嫌陋

높은 인품을 모실 수 있게 했기에 / 淸芬得拜塵

도랑의 부평초도 올릴 만했으니 / 渚蘋誠可薦

물가의 채초야 응당 차고말고 / 汀茝佩應

한 번만 보아도 도가 있음을 알아 / 目擊知存道

심복이 되어 순주를 마신 듯하네 / 心孚若飮醇

담론은 진진하여 점입가경이요 / 談濃通蔗境

시는 좋아라 생강처럼 매콤한데 / 詩好逼薑辛

노호로써 애오라지 보답하노니 / 魯縞聊還報

월금은 꼭 진귀한 바 아니고말고 / 越金非所珍

버들 둑엔 노란 가지가 드리우고 / 柳堤金

찬 시내엔 옥 비늘이 헤엄을 쳐라 / 氷澗玉生鱗

좋은 계절 봄이 방금 이르렀는데 / 佳節春方

가는 수레는 다시 출발을 하여라 / 征車駕復轔

기린은 예전 굴혈로 되돌아가고 / 麒麟還舊穴

조악은 푸른 하늘로 올라가누나 / 鵰鶚上靑旻

가거든 반드시 황제 은총 받아서 / 去必承皇眷

장차 응당 국정을 손에 쥐게 되리 / 行當秉國鈞

붉은 줄은 가락이 맑고 높거니와 / 朱絃且淸越

큰 그릇은 본디 꼬불꼬불하나니 / 大器自輪囷

뛰어난 업적은 종정에 돌아가고 / 異業歸鐘鼎

화려한 공훈은 옥돌에 새겨지리 / 華勳勒玉珉

나는 궁벽한 고장에서 생장하여 / 顧余生僻陋

항상 진취 못 함을 부끄럽게 여겨 / 常愧獨逡巡

변로할 마음은 비록 간절하지만 / 變魯心雖切

관주하고픈 뜻을 펴지 못했는데 / 觀周志未伸

이 작별의 한을 어이 감당하리요 / 奉別那堪恨

시를 써서 홀로 서글퍼할 뿐이네 / 題詩獨悵神

강산은 문득 아스라이 멀어져라 / 江山忽迢遞

꿈속은 정히 마냥 어수선하겠지 / 魂夢正紛繽

오늘 출정한 깃발 되돌아가거든 / 此日回征旆

언제나 황제의 문을 알현할런고 / 何時謁帝閽

민요는 응당 채집하여 드릴 테니 / 民謠應採獻

왕업은 정히 잘 다스려지고말고 / 王業定𦇯

아뢰어다오 우리 동번의 나라는 / 爲報東藩國

지극한 인을 천추에 우러른다고 / 千秋仰至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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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3권 / 시류(詩類)

팔준도행(八駿圖行)

 

방성이 빛을 발하여 정영을 축적한 끝에 / 房星垂耀儲精英

신령한 용이 정액을 남겨 용매가 나왔네 / 靈虯委生龍媒

용매는 세간에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서 / 龍媒世間不常有

급난한 때에 얻은 게 참으로 웅재거니와 / 得之急難眞雄才

또한 태평성대를 기다려서 나온 경우는 / 時然後出應明時

한 시대에 감회하여 풍운을 부리느니라 / 感會一代隨風雲

들으니 옛날 진양에선 천과를 휘둘러서 / 聞昔晉陽揮天戈

손수 은하수 쏟아 수 나라 요기를 씻되 / 手注銀潢洗隋氛

사방으로 경영하여 전쟁을 일삼아서 / 經營四方事弓刀

흉적들을 제거하여 천하를 숙청할 제 / 剗除群孼淸寰區

필사의 계책으로 수많은 전쟁을 벌여 / 搶攘百戰出萬死

잠깐 새의 성패에 험난함도 많았는데 / 俯仰成敗紛崎嶇

이때 포공 악공만 공을 이룬 게 아니라 / 功成不獨褒與鄂

하늘이 육준으로 큰 계략을 펴게 했다네 / 天使六駿伸雄圖

또 들으니 촉한 선주가 중흥하고자 보검을 차고 / 又聞蜀先中興提寶劍

정의의 깃발 지휘하여 한실을 부지할 제 / 指揮義旗扶漢基

단계에서의 생사는 아 한순간이었어라 / 檀溪死生吁一瞥

맹수들이 입을 벌리고 급히 쫓아왔으니 / 猛獸呀來相追

임기응변은 남양의 용뿐만이 아니라 / 應機不獨南陽龍

하늘이 적로 시켜 신통하게 부지했다네 / 天使的盧神扶持

천심이 있는 곳엔 사물 또한 앎이 있어 / 天心所在物亦知

창졸간에 주인을 보익한 공이 많은 건데 / 倉卒羽翼功能多

그 후로는 아득히 몇천 년을 내려오면서 / 爾後茫茫幾千載

다시는 형하에서 용마가 나오질 않았네 / 霜蹄無復來滎河

고려 운세 이미 쇠하여 병록이 궁할 제 / 麗運旣衰丙鹿窮

조계의 공업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매 / 操鷄功業隨煙煤

곡령의 푸른 솔은 스스로 가을빛을 띠고 / 鵠嶺靑松自秋色

풍진이 가득 차서 엉기어 걷히지 않는지라 / 風塵澒洞凝不開

상제가 삼한 백성의 고통을 슬피 여기어 / 帝眷三韓哀昏墊

천지를 바로잡아 시대를 구제하려 하였네 / 頓整乾坤思濟時

아 성조께서는 참으로 하늘이 낸 분이라 / 於皇聖祖眞天人

당당한 신무에 영웅의 자질을 갖추시어 / 堂堂神武英雄姿

남북으로 정벌하여 운예에 보답하면서 / 南征北討答雲霓

흉적을 소탕하여 백성들을 구해내고자 / 欲掃攙搶醫瘡痍

수년 동안 전쟁으로 옥체를 수고롭히며 / 干戈數載勞玉體

상설을 무릅써라 그 얼마나 어려웠던고 / 蒙茸霜雪幾艱難

당시의 심복들은 모두가 영웅호걸로 / 當時駕馭皆豪英

힘을 다해 분주하느라 참으로 애썼거니와 / 奔走宣力誠間關

또 신마가 있어 시기에 응하여 나타나서 / 又有神駿來應期

바람 번개가 몰아치듯 잘도 달리었었네 / 風驅電擊神權奇

한번 홍건적이 송경을 함락함으로부터 / 一自紅寇陷松京

적의 형세 신속하여 왜 그리 만연했던고 / 賊勢烈何逶迤

승여가 떠돌아서 문득 남으로 파천하니 / 乘輿播落俄南遷

오묘의 궁궐엔 찬 연기만 썰렁했는데 / 五廟宮闕生寒煙

한 화살로 성에 먼저 올라 모호를 뽑고 / 一箭先登拔蝥弧

궁한 오랑캐들을 쭉정이처럼 소탕하였네 / 掃盡窮醜如粃糠

왜적들 또한 방자하게 자주 침범해오다 / 島夷跌宕屢竊發

바람 돛이 바다 하늘 꽉 메워 쳐들어와선 / 風帆蓋海連天長

서슬 시퍼런 창칼로 어지러이 교전하여 / 霜雪戟爛交加

남쪽 고을 곳곳마다 고려가 나오던 때에 / 南州處處生枯藜

운봉의 대첩은 산으로 새알 누르듯 하여 / 雲峯一捷壓如卵

예리한 칼로 사나운 고래를 다 쳐죽였네 / 快劍斷盡生鯨鯢

평안도의 적은 이미 파죽지세로 몰아내고 / 策鞭關賊已破竹

고삐 잡고 되놈들을 수염 뽑듯 물리쳐라 / 攬轡胡孼如摘髭

위세는 고죽에서 개선하는 데 장하였고 / 勢壯孤竹凱歌旋

공은 요양에서 의기를 되돌림에 높았네 / 功高遼陽回義旗

두류산에서 적진 격파한 재간은 둘도 없고 / 頭流破陣才無雙

토동에서 위세 떨친 명성은 제일이었지 / 兎洞奮威名第一

수많은 전쟁터에 말을 달려 드나들 적에 / 馳驅出入百戰場

향하는 곳마다 만 리가 온통 텅 비었어라 / 所向萬里皆空闊

삼한의 억년 이래 뛰어난 공훈 이루면서 / 三韓億載成奇勳

범마의 떼를 모조리 씻어 텅 비게 하였네 / 洗盡凡馬群俱空

아 우리 왕께서는 거듭 선왕의 뜻을 이어 / 猗歟我王重繼述

전쟁으로 대업 이룬 전공을 생각하시어 / 汗馬大業思前功

운대의 여러 훈신을 산하에 맹세했는데 / 雲臺諸勳誓山河

유독 준마만 화상 없어 못 전함을 한하시와 / 獨恨龍種傳無形

훌륭한 화가 조씨 한씨를 명하여 불러서 / 命召良工曹與韓

뛰어난 골격을 본떠서 단청에 옮겨 놓았네 / 貌得天骨移丹靑

여덟 필의 준마가 한 명주폭에 늘어서서 / 八匹森列一綃幅

발굽 모으고 자태 뽐내며 긴 바람 일으켜라 / 攢蹄顧影生長風

갈기 살은 울퉁불퉁 붉은 땀을 흘리고 / 肉磊磈汗流赭

용처럼 나는 기세는 기러기를 초월하네 / 龍騰逸氣超溟鴻

푸른 털은 바람 일으키고 갈기는 가지런한데 / 綠雲捎蕭龍鬐截

기린 같은 건장한 발은 창공을 능가하고 / 游麟踆足凌蒼穹

사자 같은 갈기 떨쳐 나는 듯 달리려 하고 / 獅黃振鬣欲騰踏

표범 같은 깎은 귀로 교만하게 울어대기도 / 玄豹批耳將驕嘶

빛난 건 서리 능가하는 백설 같은 털이요 / 照耀凌霜白雪毛

뒤집힌 건 바람 쫓는 옥 같은 발굽이로다 / 翻動追風碧玉蹄

눈빛은 반짝반짝 번갯불이 번득이듯하고 / 目光迅閃發電赭

장쾌한 기세는 구름을 가르는 송골매 같네 / 氣稜快壯橫雲鶻

괴이도 하여라 그 당시의 천태만상이 / 異哉當時千萬狀

하나하나 어슴푸레 지척에 있는 듯하여 / 一一咫尺來恍惚

정신은 상쾌하여 한창 싸우는 것 같고 / 精神颯爽猶酣戰

의기는 종횡무진해 스스로 마지못하누나 / 意氣縱橫不自已

지금 생각난 건 당시에 풍운이 제회하여 / 至今思入風雲會

아득한 사막 벌판에 천 리를 개척했음일세 / 煙沙漠漠開千里

아 자고로 영웅은 세상에 흔히 나오지 않거니와 / 嗚呼古今英雄不世出

하늘이 신물을 낸 것도 공연한 일이 아니라 / 天生神物非徒爾

요컨대 천재에 그를 알아줄 이를 만나서 / 要令千載遇知己

사람과 합심하여 공을 이룰 수 있게 했는데 / 與人一心功可終

공 이루고는 만고에 그림으로 돌아갔으니 / 功成萬古歸圖畫

공신에 책록된 영웅들에게 안 부끄러우리 / 不愧帶礪諸英雄

정호의 용 수염을 끝내 부여잡지 못했고 / 鼎湖龍髥終莫攀

팔준마도 변화하여 선왕을 따라갔는지라 / 八駿變化隨鳴鑾

준마의 뛰어난 모습은 다시 볼 수가 없고 / 英姿駿骨不復見

공연히 준마의 초상만 인간에 남아 있어 / 空有遺像留人間

신이 지금 곧 팔준도의 노래를 지으려고 / 臣今欲賦八駿歌

이 그림 마주하니 심신이 확 통하는구나 / 對此一圖融心神

나는 용이 구오에 올라 하늘을 다스려라 / 龍飛馭天撫九五

마상에서 천하 얻기가 얼마나 어려웠던고 / 馬上國家何艱辛

공업은 혁혁하여 한당 시대를 초월했고 / 功業赫然超漢唐

인물의 제회 또한 모두 범상치 않았도다 / 人物際會俱非常

원하건대 이 팔준도를 성상께 바치오니 / 願將獻此八駿圖

구중궁궐 용상 뒤의 단의에 게시하여 / 丹九重揭座隅

천대 만대 또 억만대를 전하여 가면서 / 傳之萬葉又萬葉

왕업이 후삭처럼 어려움을 경계했으면 / 王業艱難戒朽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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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3권 / 시류(詩類)

연아(演雅). 기중(幾仲)에게 주다. 4수

 

한림의 호기는 긴 무지개를 토해내는 듯 / 翰林豪氣吐長虹

붕새가 하늘을 날아 만 리를 가는 듯하네 / 鵬擧雲霄萬里通

매는 해동에서 나와 빠른 날개를 보겠고 / 鷹出海東看逸翮

말은 기북이 텅 비어라 준마가 나왔도다 / 馬空冀北有神

문장은 일찍이 오색의 봉황을 삼키었고 / 文章五色曾呑鳳

신묘한 기예는 삼 년 만에 이를 꿰뚫었네 / 妙藝三年已貫蟲

사귀는 도리는 감히 겸과 궐에 비할쏜가 / 交道敢同

용문의 고풍 접한 걸 다행으로 여기노라 / 龍門自幸揖高風

 

달팽이 뿔 위의 천지에 내 집은 널찍한데 / 蝸角乾坤蕩我廬

길이 관단마 타고 두꺼비를 채찍질하네 / 長騎款段策蟾

기러기 도량 꾀하듯 마음은 원대치 못하고 / 雁謀粱稻心非遠

이가 속옷에 숨듯이 계책 또한 허술하지만 / 蝨處衣褌計亦疎

역사 편찬에 인봉이나 기록하고 싶을 뿐 / 擬向史編紀麟鳳

어찌 《이아》에 충어의 주석이나 낼까보냐 / 何從爾雅註蟲魚

검려의 짧은 기량은 도리어 가소로우나 / 黔驢短技還堪笑

연작의 당 이루어져 하례를 할 만하구려 / 燕雀堂成賀可攄

 

마려의 행적 더딘 걸 괴이케 여기지 마소 / 莫怪磨驢行跡遲

끝내는 자벌레의 굽힘도 펼 때가 있다네 / 終然屈有伸時

개미가 큰 나무 흔들 힘은 원래 없거니와 / 蚍蜉撼樹元無力

난봉이 오동에 서식할 바탕은 본디 있었지 / 鸞鳳棲梧本有姿

천하에 어찌 말에게 뿔 나는 일이 있으랴 / 天下何生馬角異

세간에선 행여 범의 수염을 뽑지 말지어다 / 世間莫虎鬚危

십 년간 시 때문에 파리해진 쇠한 나그네가 / 十年詩瘦龍鍾客

거울 보고 귀밑털 흰 것에 새로이 놀랐네 / 鏡裏新驚鶴鬢絲

 

거북 창자가 세상과 어긋남은 진작 알지만 / 早信龜腸與世違

고기가 아니거니 누가 내 속을 알아줄꼬 / 非魚誰復我相知

마음은 늙은 준마처럼 천 리를 생각하고 / 心如老驥思千里

몸은 외론 뱁새처럼 한 가지만 지키노라 / 身似孤鷦守一枝

해내의 문장으로는 앵무부가 제일이고 / 海內文章鸚鵡賦

인간에 회자된 것은 자고사가 그것일세 / 人間膾炙鷓鴣詞

학과 오리의 길고 짧음은 본래 다르나니 / 鶴長鳧短從來異

헛된 명성으로 호피를 빌리고 싶지 않네 / 不欲虛名假虎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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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4권 / 시류(詩類)

송경(松京)에서 옛일을 생각하면서 영천경(永川卿)을 보내다. 7수

 

옛 나라의 번화함을 생각하면 아득하여라 / 故國繁華思黯然

왕손이 유람하자면 흥취가 절로 당기겠네 / 王孫遊眺興相牽

임진 가의 길은 손바닥처럼 편평할 게고 / 臨津路出平如掌

송악에 사람 오르면 하늘 오르기 같으리 / 松岳人躋去似天

명승지 만날 때마다 자주 말을 멈추고 / 勝地名區頻駐馬

무너진 담장 깊은 숲엔 두견새나 울겠지 / 壞垣深樹屬啼鵑

부로들을 만나서 의당 먼저 물어볼 것은 / 相逢父老宜先問

조선이 창업하던 예전 그 해를 언급하리 / 語及朝鮮徙鼎年

 

삼국 통일 공업이 오백 년을 내려오는 동안 / 一三功業半千春

치란의 분분함 속에 전쟁이 그 몇 번이던가 / 治亂紛紛幾戰塵

천명 받은 진인이 위대한 한을 일으킬 제 / 歷數眞人興大漢

군더더기 위성은 다 망한 진을 이었었지 / 閏餘僞姓續亡秦

한성으로 옮겨온 인물은 다 호화로웠는데 / 南遷人物豪華盡

북쪽 송경의 산천엔 왕기가 사라져버렸네 / 北望山河王氣淪

목청전에 들어가서 비조를 참알하거든 / 去謁穆淸參鼻祖

영령이 계신 듯이 어용이 한층 새로우리 / 英靈如在御容新

 

가을바람에 벼 기장이 고궁에 가득했어라 / 禾黍秋風滿故宮

그 옛날 유람했던 일이 흡사 꿈만 같구려 / 昔時登眺夢魂中

청교역의 푸른 버들은 맘을 상하게 하고 / 靑郊楊柳傷心碧

자하동의 붉은 연하는 뜻에 만족했었지 / 紫洞煙霞滿意紅

다시는 금대의 가무를 볼 수 없으려니와 / 無復金臺貯歌舞

가련한 건 영웅이 다 땅속에 묻힌 거로세 / 可憐黃壤蓋英雄

소년 시절엔 자주 왕래하길 안 아꼈으니 / 少年不惜頻來往

소매 속의 서도부가 그중에 제일이었지 / 袖裏西都賦最工

 

옛날에 부소갑을 유쾌히 한 번 올라 봤는데 / 憶昔扶蘇快一登

일생에 감개한 마음 누굴 위해 더하는지 원 / 百年憾慨爲誰增

격구장에 지는 해는 붉은 나무에 묻히고 / 毬庭日落埋紅樹

연로엔 봄이 와서 등 넝쿨이 길게 자랐지 / 輦路春回長碧藤

낡은 집엔 사람 없어 귀신이 나올 것 같고 / 老屋無人陰是鬼

여러 왕릉은 불타서 중 머리보다 민둥했네 / 諸陵有燒禿於僧

장단 물로도 전조의 한을 씻을 수 없어라 / 長湍不洗前朝恨

술자리 빌려 술이나 끝없이 마셔야겠네 / 須借樽前酒似

 

오관산 빛은 구름 위에 솟아 가지런한데 / 五冠山色入雲齊

젊은 날에 중 찾아 몇 켤레 신 닳았던고 / 少日尋僧幾

황량한 옛 절터엔 세 길의 홀만 남았고 / 古寺荒涼三丈笏

흙다리는 무너져 한 덩이 진흙뿐이었네 / 土橋零落一丸泥

왕랑은 고상한 가락으로 봉소를 불었고 / 王郞高調吹蕭鳳

효자의 여풍은 목계 새긴 것이 남았다오 / 孝子餘風刻木鷄

서쪽 누각의 밝은 달은 응당 나를 기억하리 / 明月西樓應憶我

지는 꽃 흐르는 물이 사람을 헷갈리게 했지 / 落花流水使人迷

 

절벽의 폭포는 고금에 뛰어난 경관인데 / 懸崖飛瀑古今奇

어느 시대에 박씨 성이 이름을 남겼던고 / 何代留名朴姓兒

은하수는 멀리 하늘로부터 떨어져 내리고 / 銀漢遠從天上落

무지개는 높이 북두성 새에 꽂혀 드리우네 / 玉虹高揷斗間垂

신선을 배워서 학 타고 승천하고 싶은데 / 欲學仙曹騎鶴去

도사가 용 타고 갔단 소식만 괜히 들었지 / 空聞術士勅龍歸

이 길에 응당 사람 놀래킬 시구가 있으리니 / 此行應有驚人句

원하건대 서응을 위해 악시를 씻어주게나 / 願爲徐凝洗惡詩

 

성 동쪽에서 놀고 또 산 서쪽에서 놀자면 / 城東遊了又山西

하고많은 누대들이 시야에 아득하리라 / 多少樓臺望眼迷

천수문 앞에는 시냇물이 역력하고요 / 天水門前川歷歷

탁타교 밑에는 푸른 풀이 무성하겠지 / 橐駝橋下草萋萋

황량한 사당에 이르면 비석엔 글자가 없고 / 荒祠下馬碑無字

옛 역사의 누각에 오르면 판제는 남았으리 / 古驛登樓板有題

거듭 놀면 내 흥취 죽면처럼 농후할 텐데 / 我興重遊濃似粥

어찌하면 돌아가 그대를 붙좇는단 말인가 / 若爲歸去忝攀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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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4권 / 시류(詩類)

영물(詠物) 43수

 

1.매화(梅花)

맑고 고운 빛 볼수록 기이하기만 하여라 / 淸艶看看抵死奇

곧은 마음은 달만이 알아주길 허락하네 / 貞心只許月相知

창을 임해선 비낀 그림자를 묘사해내고 / 臨窓描出橫斜影

눈을 띠고는 청수한 자태를 맞이하나니 / 帶雪招邀淡瘦姿

은은한 향기는 콧구멍에 맡기도 좋거니와 / 好借暗香通鼻觀

맑은 기운은 시 생각에 넣기도 넉넉하여라 / 剩分淸氣入詩脾

무단히 나부산의 꿈이나 이루지만 말고 / 等閑莫作羅浮夢

옥젓대 가져다 때로 실컷 불어나 보잔다 / 玉笛時拈滿意吹

 

2.행화(杏花)

살구꽃 소식이 다시 한 번 새로워졌어라 / 杏花消息一番新

가지에 붙은 꽃망울 날 다습자 활짝 피누나 / 蓓蕾黏枝暖始繁

널리 펼쳐진 붉은 송이는 햇빛에 연달으고 / 漠漠紅雲連白日

곱고 향기론 흰 꽃잎은 봄기운을 일으키네 / 鮮鮮香雪起靑春

남은 추위는 뼈에 사무쳐 소름이 이는데 / 餘寒砭骨膚生粟

이슬비는 뺨에 젖어 눈물 자국을 띠었네 / 細雨霑淚帶痕

다시 달 밝고 성긴 그림자 가득할 때 기다려 / 更待月明疎影滿

좋은 자리에서 실컷 취해 부축하게 하련다 / 勝筵扶醉倩傍人

 

3.장미(薔薇)

한 해의 봄놀이가 장미꽃 계절에 이르니 / 一年春事到薔薇

시렁 가득 활짝 피어 스스로 지탱을 못하네 / 滿架離披不自持

몇 번이나 맑은 향기는 나비를 번거롭혔나 / 幾陣淸香煩蝶使

너무나 요염한 빛은 거위 새끼를 능가하는군 / 十分濃艶妬鵝兒

물가에 비친 그림자에 맘이 먼저 설레지만 / 水邊照影心先惱

빗속에 활짝 핀 자태는 완상키 점점 좋아라 / 雨裏繁開賞漸宜

무르녹은 동녘 바람이 끝없이 불어올 제 / 爛東風吹不盡

한쪽 뜰에 말없이 서서 시를 재촉하는구나 / 半庭無語要催詩

 

4.작약(芍藥)

양주의 진기한 품으로 광릉의 여린 싹을 / 揚州奇品廣陵芽

뜰 가에 두루 심어 화려함을 다투게 하네 / 遍種庭除鬪麗華

아주 좋은 맛은 정녕스레 나비와 통하고 / 至味丁寧通蝶使

강렬한 향기는 진중히 벌을 끌어오누나 / 狂香珍重接蜂衙

바람 앞과 비 온 뒤엔 둘도 없이 요염해라 / 風前雨後無雙艶

천상과 인간 통틀어 제일가는 꽃이고말고 / 天上人間第一花

고금 사신들의 끼친 풍류가 남아 있으니 / 今古詞臣餘韻在

머물러 취하여 읊조리는 것도 무방하겠네 / 不妨留醉費吟哦

 

5.모란(牧丹)

동풍의 꽃 소식은 차츰 시들어가는데 / 東風花信欲闌珊

차례로 완상하여 모란꽃에 이르렀네 / 次第尋探到牧丹

깊이 자다가 차례로 깨나는 경국지색은 / 熟睡第酲傾國色

풍류 높은 저택에서 선반을 주관하는데 / 風流甲觀領仙班

좋은 명성은 요위의 집에 대대로 전하지만 / 芳名姚魏傳家有

명화인 황서도 핍진하게 묘사하긴 어렵지 / 妙筆黃徐換骨難

우물이 사람에게 애석한 맘 들게 하여라 / 尤物坐令人愛惜

난교로 곧장 가는 봄을 더 잇고만 싶구나 / 鸞膠直欲續春殘

 

6.이화(梨花)

배꽃은 하도 담담하여 요화에 가까워서 / 梨花淡淡襯瑤華

쌓인 눈과 빛 겨루매 등차가 거의 없어라 / 晴雪爭暉强等差

달빛과 섞여서는 온통 은세계를 만들고 / 渾月摠成銀色界

구름을 타고는 곧장 옥황 집에 이르렀네 / 乘雲直到玉皇家

청춘은 한이 많아 미인 넋이 수척해지고 / 靑春有恨瓊魂瘦

깊은 집엔 사람 없이 흰 소매만 비꼈도다 / 深院無人縞袂斜

다시 침수향 찧어서 한 심지 사르노라니 / 更搗水沈薰一炷

뛰어난 향기가 멀리 소아거를 엄습하누나 / 天香遠襲素娥車

 

7.해당(海棠)

하룻밤 갠 바람에 해당나무 간들거리더니 / 一夜光風嫋海棠

꽃 활짝 피어 묵묵히 궁장을 기대 서 있네 / 花開脈脈倚宮墻

햇볕 날 땐 기력 시들어 봄잠에 빠졌다가 / 日烘氣力饒春睡

비 오자 정신 차려 일어나 늦단장을 하누나 / 雨借精神起晩粧

화려함에 관심 둠은 도시 흥미일 뿐이요 / 濃艶關心都是味

풍류만을 즐기거니 향기는 바랄 것 없네 / 風流適意不須香

두릉은 참으로 해당에 대한 정회가 없어 / 杜陵可是無情思

소선에게 남겨주어 발양하게 했던 것일까 / 留與蘇仙爲發揚

 

8.산다화(山茶花)

추운 겨울에 화기 넘쳐 홀로 꽃망울 맺어 / 歲寒和氣獨胚胎

뭇 꽃보다 뒤늦게야 꼭 절반을 피웠는데 / 却殿群芳恰半開

격조는 절로 높아 서리 온 뒤에 나타나고 / 調格自高霜始見

풍류는 짝할 자 없어 눈과 함께 어울리네 / 風流無伴雪同來

꽃 자태에 몹시 끌려 천 바퀴나 순행하고 / 苦牽花惱巡千

향기 시들까 두려워 꿈은 얼마나 깼던고 / 生怕香殘夢幾廻

화당의 병풍에서 본 것이 몹시 생각난다 / 苦憶畫堂屛上看

두어 가지 비낀 그림자 홍매와 나란했었지 / 數枝斜影竝紅梅

 

9.자미(紫薇)

사신의 읊조림은 시호에게 의지하련만 / 詞臣吟賞倚詩豪

귀공자 풍류라 가치가 갑절이나 높다오 / 公子風流價倍高

종자는 성원에서 나와 의젓함을 더하고 / 種出星垣增偃蹇

꽃은 궁양처럼 피어 요염함을 자랑하네 / 花開宮樣詫嬌嬈

꽃술은 터지기도 전에 향기 먼저 풍기고 / 檀心未吐香先聞

화려한 꽃 막 피자 그림자 점차 겹치누나 / 錦萼初繁影漸交

별도로 한 그루 있어 서액의 저물녘이면 / 別有一枝西掖暮

해마다 적막하게 우리들을 마주하는구나 / 年年寂寞對吾曹

 

10.도미(荼䕷) 국속(國俗)에 이것을 옥매(玉梅)라고 한다.

매화가 한번 가고 미처 초혼도 하기 전에 / 梅花一去未招魂

문득 도미를 보니 매화 골격이 남아 있네 / 忽見荼䕷骨格存

은은한 향기 보내온 뜻은 알 만하거니와 / 遞送暗香知有意

만나 보니 담담한 자태는 수줍기만 해라 / 相逢淡質欲無言

긴 가지는 달 진 뒤의 황혼 그림자 이루고 / 長條月落黃昏影

높은 시렁엔 늦은 봄 흰 눈 흔적이 보이네 / 高架春殘白雪痕

한하지 마소 동성에 비바람 얄궂게 몰아쳐 / 莫恨東城風雨惡

술잔에 꽃잎 팔랑팔랑 날아들어 오는 걸 / 飛來片片入芳樽

 

11.동백(冬白)

화신이 다사하여 조물주 권한을 훔쳐다가 / 花神多事竊洪鈞

특별히 세밑에 꽃을 새로이 피우는구려 / 別遣花開歲暮新

꽃망울은 오로지 찬 기운 좋아라 의지하고 / 妙萼全憑寒氣好

고상한 자태는 뭇 꽃들의 추종을 불허하네 / 高標不許衆芳鄰

푸른 새는 가지 위의 눈을 다 털어버리고 / 翠禽拂盡枝邊雪

갈고는 세밑의 봄을 마지막 재촉하여라 / 羯鼓催殘臘底春

천지의 중간에 풍류 운치가 워낙 하찮아 / 天地中間少風韻

그림에 옮겨 놓으니 생기가 절로 감도누나 / 移來畫上欲精神

 

12.규화(葵花)

맑고 화창한 좋은 시절 작은 담장 동쪽에 / 淸和佳節小墻東

흰 꽃 붉은 꽃에 자주색 홍색도 섞였는데 / 白白朱朱間紫紅

남은 봄을 내기하여라 사람 술잔이 있고 / 孤注餘春人盞在

나비가 오래 머물러라 꽃 방은 텅 비었네 / 留連戲蝶錦房空

외론 충성은 절로 해를 향하는 뜻 있거니 / 孤忠自有傾陽意

어찌 발 보호하는 공 한 기능만 논할쏜가 / 一技寧論衛足功

불변의 성정은 사물 따라 변하지 않나니 / 恒性不曾隨物變

구구한 도리 따위는 겉만 꾸밀 뿐이고말고 / 區區桃李謾嬌容

 

13.국화(菊花)

백로 내리고 국화 핀 또 한 해의 가을이라 / 白露黃花又一秋

동쪽 울타리 고상한 흥취를 걷잡기 어렵네 / 東籬雅興浩難收

아침 내내 따 보았자 한 움큼도 안 차지만 / 終朝採得不盈掬

구일에 꽂고 돌아올 땐 머리에 가득하겠지 / 九日揷歸須滿頭

삼경의 맑은 바람은 이제는 아득하지만 / 三徑淸風今渺渺

남산의 좋은 기운은 석양에 유유하여라 / 南山佳氣晩悠悠

꽃 먹고 이슬 마심은 다 부질없는 일이니 / 飧英飯水渾閑事

국화꽃 딸 땐 큰 술잔 가득함도 겸해야지 / 掇取時兼太白浮

 

14.사계화(四季花)

천박하고 화려한 꽃 별안간 피고지고 하여라 / 浪蘂浮英瞥眼催

네가 사계절을 차지하여 피는 게 가련하구나 / 怜渠占得四時開

모란꽃은 봄 한 철의 약속만 있을 뿐이요 / 牧丹謾有三春約

무궁화는 단 하루만 화려할 뿐이로다 / 木槿空爲一日媒

절서는 유유한데 꽃이 그 몇 번이나 피던고 / 節序悠悠花幾度

풍류는 끊임없어 백번 천번을 완상하나니 / 風流袞袞賞千回

문장 반마의 향기를 훈자하는 솜씨로써 / 文章班馬薰香手

서로 마주해 시 읊어 탈태를 하고 싶어라 / 相對吟詩欲奪胎

 

15.백일홍(百日紅)

후원에다 진중히 백일홍을 심어 가꾸어 / 後園珍重爲栽培

무수한 꽃들이 자유자재로 활짝 피었네 / 無數繁英自在開

나비는 수시로 향기를 마시고 떠나는데 / 粉蝶有時香

난새는 어느 날 밤에 씨를 물고 왔던고 / 靑鸞何夕子銜來

빨간 빛깔은 백 일을 내내 지탱하거니와 / 猩紅百日垂垂盡

갈고는 두세 가지를 자꾸만 재촉하누나 / 羯鼓三枝故故催

거센 바람에 당부하노니 열심히 보호하여 / 說與狂風勤護惜

이끼 사이에 거꾸러져 떨어지게 말지어다 / 休敎顚倒落莓苔

 

16.삼색도(三色桃)

사물 이치란 끝내 가지런히 할 수 없거니와 / 物理參差竟莫齊

한 가지에 세 빛깔은 누가 단서를 만들었나 / 一枝三色孰端倪

앞뒤에서 서로 피어 깊고 얕음이 있는데 / 開因前後有深淺

꽃은 절로 희고 붉어 높낮이를 겨루누나 / 花自白紅爭仰低

화려한 꽃잎 떨어져라 용 비늘이 부서진 듯 / 錦萼擺殘龍碎甲

뛰어난 향기 불어대라 사향 배꼽을 태운 듯 / 天香吹盡麝然臍

해마다 춘풍의 면목을 여전히 갖추는지라 / 年年依舊春風面

은자의 옛길 찾고픈 맘을 불러일으키네 / 喚起幽人訪故蹊

 

17.금전화(金錢花)

천지의 용광로가 새로운 걸 주조해 내니 / 天地洪爐鑄出新

미인에게 던져주어 기이함을 팔게도 하네 / 擲來花步衒奇珍

손의 웃음 얻으려거니 어찌 값을 논하랴 / 賭將客笑何論直

봄 경치를 사자면 꿰미도 안 따지고말고 / 買取春光不計緡

궁항에서 필 땐 빈민 구제를 생각게 하지만 / 窮巷開時思濟乏

금문에서 흩는 곳엔 바로 신명과 통한다오 / 金門排處是通神

사물이 유용한 게 되레 무용하게 된다면 / 物如有用還無用

세상에 온통 거짓과 진실이 혼동되리라 / 世上滔滔混

 

18.옥잠화(玉簪花)

고야 선인의 부드러운 골격 빙설 같아라 / 姑射仙人雪骨柔

우뚝한 쪽머리에 옥소두를 비껴 꽂았네 / 雲鬟斜揷玉搔頭

서풍이 살살 불어와 가을 풍광은 하 좋고 / 金風剪剪秋光好

휘영청 밝은 달 아래 밤 기운은 경쾌한데 / 璧月輝輝夜氣浮

백화향 반혼향은 꿈속에 은은히 들어오고 / 百和返魂香入夢

자리 가득 석 줄 행렬은 모두가 우물일세 / 三行滿坐物皆尤

꿈속에 나비를 따라 꽃 사이를 헤쳐가면 / 夢隨蝴蝶穿花去

한량없는 풍류를 끝없이 즐겨도 보련만 / 無限風流未罷休

 

19.연화(蓮花)

맑고 얕은 작은 못엔 찬 물이 담겼는데 / 盆池淸淺貯寒塘

연꽃 송이송이마다 유달리도 향기로워라 / 柄柄荷花到死香

맑게 선 푸른 줄기는 석양풍에 흔들리고 / 濃綠晩風搖淨植

붉은 꽃은 갠 날에 맑은 광채 물에 잠겼네 / 膩紅晴日澄光

넋은 낙포로 돌아가라 물결 타는 버선인 듯 / 魂歸洛浦凌波襪

목욕 끝낸 양 귀비 화장 모습 물에 비친 듯 / 浴罷楊妃照水粧

후일에 열 길이나 크게 피기를 기다려서 / 待得他年開十丈

차고 단 맛을 손과 함께 나누어 맛보련다 / 冷甛分與客同嘗

 

20.척촉화(躑躅花)

철쭉꽃은 하 빨갛게 피눈물 흔적 있어라 / 躑躅紅酣血淚痕

학림사에 응당 예전의 넋이 돌아왔으리 / 鶴林應復舊時魂

산 남쪽 산 북쪽은 서로 마주해 비치고 / 山南山北映相似

봄비 봄바람 속엔 꽃들이 한창 피는데 / 春雨春風開正繁

꽃 소식 지기 전에 푸른 절벽이 연달아라 / 香信未銷連翠壁

무수한 봄의 풍광은 붉은 꽃과 막히었네 / 韶光無數隔紅雲

해마다 두견화 피면 서글프기 그지없어라 / 年年花發堪惆悵

촉제의 일천 소리가 원통함을 호소함일세 / 蜀魄千聲政訴寃

 

21.거상화(拒霜花)

서풍이 기러기를 불어 새벽에 날아갈 제 / 西風吹鴈曉來過

붉은 먹으로 한 점 찍은 듯 빨갛게 피었네 / 滴露硏朱點一窠

서자가 가슴 우두고 요염한 취태 부린 듯 / 西子捧心矜醉艶

미녀가 서리 능가한 꽃으로 탈바꿈한 듯 / 靑娥換骨傲霜華

맑고 찬 그림자는 가을 계수나무와 나누고 / 影分淸冷三秋桂

향기는 요염한 국화의 계절까지 이르나니 / 香到嬌嬈九日花

부용꽃을 가지고 애써 구별하지 말지어다 / 莫把芙蓉强分別

참신한 붉은 꽃이 절로 일가를 이뤘고말고 / 斬新紅蘂自成家

 

22.치자화(梔子花)

담복이 어느 해에 옛 가지를 떠나왔던고 / 薝蔔何年辭故枝

딴 집에 옮겨 놓으니 그대로 무성하구나 / 移來別院故依依

육판으로 형성된 꽃 종류는 흔치 않거니와 / 花開六出無多種

천층으로 겹친 잎은 또 하나의 기이함일세 / 葉鬪千層又一奇

향내는 선승의 참선 석상에 실컷 풍기고 / 香鼻飽參禪老味

좋은 명성은 두릉의 시에 몽땅 들어갔네 / 芳名都入杜陵詩

완상하는 마음이 동풍과 서로 막히어서 / 賞心正與東風隔

꽃 피고 열매 맺은 때에야 보게 되었구나 / 看到初開結子時

 

23.죽(竹)

한 집에 푸른 옥 일만 장대가 길기도 해라 / 一軒蒼玉萬竿脩

갑옷과 칼날 창창하게 형세 서로 빽빽하네 / 甲刃摐摐勢自稠

붉은 죽순은 반쯤 자라 안개비에 묻히고 / 紫籜半均霏細霧

높은 대 끝은 간들간들 가을을 움직이네 / 粉梢危拂動高秋

봉률이 궁상에 조화됨을 한가로이 듣고 / 閑聞鳳律宮商合

깊은 골짝의 용 울음도 시험 삼아 듣노라 / 試聽龍吟洞壑幽

굳은 절개 곧은 맘은 덕에 짝해야거니와 / 勁節貞心宜配德

종유한 이는 더구나 양구가 있었음에랴 / 同遊況復有羊裘

 

24.난(蘭)

연중 내내 유정한 자태 지킴을 존경하노니 / 崇宗終歲守幽貞

눈길에 수레 돌려라 덕의 향기를 알겠네 / 雪徑回輿認德香

훈도됨이 방에 듦과 같음을 알아야 하련만 / 要識薰陶同入室

좋은 경사 전하여 일찍이 뜰에도 자랐었지 / 爲傳嘉慶早生庭

거문고 잡은 당일엔 공자가 상심했거니와 / 操琴當日傷尼聖

꿰어 찬 건 그 어느 때 초경에 들어갔던고 / 佩何年入楚經

빛과 향이 되레 궁벽함을 몹시 사랑하노니 / 酷愛色香還是僻

외물로 그 심령을 거리끼게 하지 말지어다 / 休敎外物累心靈

 

25.파초(芭蕉)

신령한 싹 길러 내니 부채 그림자 길어라 / 養得靈苗扇影長

푸른 잎에 바람 부니 향기가 살살 풍기네 / 風吹微綠細生香

잎은 능히 말고 펴라 어찌 막힌 적 있던가 / 葉能舒卷何曾礙

더구나 속은 절로 텅 비어 상도가 있음에랴 / 心自通靈況有常

뚝뚝 밤비 소리 들림은 이미 기뻐했지만 / 已喜丁東留夜雨

가을 서리에 떨어지는 건 견디기 어려워라 / 不堪零落顫秋霜

십 년 동안 맘속의 무한한 강남의 흥취를 / 十年無限江南興

서창의 한 가지 서늘한 자미에 부치노라 / 寄與西窓一味涼

 

26.훤(萱)

당 북쪽에서 생장한 지 그 몇 해이던고 / 生從堂北幾春秋

비와 이슬에 젖어 자유자재로 자라누나 / 雨露霑濡得自由

약보에선 예전에 성정 기른다고 들었는데 / 藥譜舊聞能養性

풀이름은 지금 망우초라 한 게 기쁘구려 / 草名今喜是忘憂

영맥에 물 후북이 주면 꽃이 일찍 피고요 / 水澆靈脈花開早

떨기를 잘 보호하면 잎도 촘촘히 나오네 / 欄護幽叢葉出稠

합환초 얻자마자 공효 이미 신묘하여라 / 纔得合歡功已妙

나군 서대 따위는 다 부끄러워할 뿐이리 / 羅裙書帶摠含羞

 

27.회(檜)

자욱한 연무 속에 옥처럼 영롱한 것이 / 細煙蒼霧玉玲瓏

지절도 당당하여라 기가 절로 웅장한데 / 志節堂堂氣自雄

뿌리는 용사처럼 땅속 깊이 서려 있고 / 根作龍蛇盤厚地

넋은 천둥을 따라 창공에 높이 솟았네 / 魂隨霹靂上靑空

둥근 일산은 뜨락의 달빛 아래 드리우고 / 圓幢自偃空庭月

맑은 소리는 때로 한밤중 바람에 들리네 / 虛籟時聞半夜風

높은 재목이 세상에 많이 쓰임을 믿겠어라 / 自信高材多世用

추운 겨울에 고고하게 홀로 우뚝 서 있누나 / 高孤獨立歲寒中

 

28.만년송(萬年松)

한 난간 푸르름을 우뚝한 솔에 의지하여라 / 一軒蒼翠倚

몸과 맘이 눈서리 견딘 게 그 몇 해이던고 / 霜雪心顔閱幾齡

용의 몸통 같은 줄기는 육척을 부지하였고 / 斡露龍身扶六尺

봉의 꼬리 같은 가지는 천층을 우뚝 솟았네 / 枝掀鳳尾矗千層

은하를 능가할 장한 뜻 스스로 과시하거니 / 自多壯志凌高漢

뜨락에 섰는 기이한 자태를 누가 굽힐쏜가 / 誰屈奇姿在半庭

깊은 땅에 뿌리박고 우로를 흠뻑 입어서 / 得地深根承雨露

변함없이 고고하게 사시사철을 푸르구나 / 高孤不改四時靑

 

29.오동(梧桐)

어느 해에 역산 남쪽에서 옮겨왔던고 / 何年移自嶧山陽

새로운 가지가 나서 백척이나 자랐네 / 生長孫枝百尺長

낙엽은 바람에 날려 옥 섬돌을 두드리고 / 落葉隨風敲玉砌

그림자는 달 아래 우물 난간을 지나누나 / 濃陰得月度銀牀

정원에 첫 서리 내려 가을은 저물어가고 / 新霜院落秋光老

기나긴 밤 창 앞엔 비 올 기미가 서늘하네 / 永夜軒窓雨氣涼

긴 장대로 흔들어 다 떨어뜨리지 말라 / 莫遣琅玕搖落盡

남겨두어 난봉이 모이기를 기다리련다 / 會須留與集鸞鳳

 

30.양류(楊柳)

궁중의 흰 매화 지고 눈이 점점 녹을 제 / 玉謝宮梅雪漸澌

동풍이 버들에 불어 금실 꼬아 드리우네 / 東風吹柳撚金垂

푸른 그늘은 꾀꼬리 소리를 막지 않지만 / 綠陰不礙流

푸른 실은 늘 준마의 울음을 재촉하누나 / 碧縷頻催駿馬嘶

못가에 해 길어라 버들개지는 날아 다하고 / 池館日長飛絮盡

동산에 비 개자 가지는 졸다 더디 일어나네 / 園林雨歇起眠遲

해마다 고상한 풍류를 챙기는 마당에 / 年年管領風流地

사람이 꺾어 증별했단 건 못 믿겠도다 / 未信人間贈別離

 

31.단풍(丹楓)

하룻밤 새에 서원의 찬 이슬 맞고 시들어 / 一夜西園玉露彫

가을 경치 가져와 숲 끝이 빨갛게 물들어라 / 紅扶秋色上林梢

맑게 아침 햇살 받으면 비단보다 더 붉고 / 淨兼朝日紅於錦

시름겨이 저녁놀 대하면 빨갛게 타오르네 / 愁對殘霞爛欲燒

돌길에 수레 멈추면 시가 정히 이뤄지건만 / 石逕停車詩正就

옥산이 지팡이 짚은 건 그려내기 어려워라 / 玉山扶杖畫難消

생각난다 일찍이 강 머리서 손 보낼 적에 / 憶曾送客江頭路

무단한 서릿바람에 기러기 높이 날던 것이 / 剗地霜風雁正高

 

32.포도(葡萄)

무성한 넝쿨에 무너진 시렁 다시 붙들어주니 / 枝蔓離披倒復扶

검은 구름 땅에 내려라 용 수염이 어둑하네 / 黑雲垂地暗龍鬚

청풍은 시렁에 가득해 가을은 저물어가는데 / 淸風滿架秋將晩

처마의 나직한 햇볕엔 그늘이 이미 펼쳐졌네 / 白日低簷蔭已敷

잎새 밑에는 마유가 주렁주렁 드리워졌고 / 葉底纍纍垂馬乳

쟁반 안에는 여주가 하나하나 굴러다니네 / 盤中一一走驪珠

언제나 강호의 포도를 두루 얻어 모아서 / 何時乞遍江湖種

술 빚어 일천 잔으로 낙노를 압도해볼꼬 / 釀酒千鍾倒酪奴

 

33.석류(石榴)

분재한 석류 오월에 핀 꽃 보기도 좋아라 / 喜見磁盆五月花

가을이면 좋은 열매가 번화를 독차지하네 / 秋來佳實擅繁華

쭈글쭈글한 꽃잎은 불이 훨훨 타듯 환하고 / 金房皺盡明如燒

촘촘히 박힌 씨알은 불에 달군 모래 같아라 / 玉粒排殘火點砂

쪼개노라니 손톱엔 서리 가득함이 놀랍고 / 劈破忽驚霜滿爪

씹어 먹으니 치아엔 눈이 번득임을 알겠네 / 嚼來猶認雪翻牙

그대에 의해 문원의 소갈병도 풀겠거니와 / 憑君頓解文園渴

당년에 한의 떼 타고 온 것도 기억나누나 / 記憶當年逐漢査

 

34.정자(棖子)

정원의 정자 나무는 손으로 붙잡을 만하고 / 刺樹中庭手可攀

청색 황색 반반의 열매는 막 동실동실한데 / 靑黃一半子初圓

열매의 향기 압도할 제 향 연기 자욱하고 / 金丸香壓煙初重

껍질엔 찬 기운 생겨라 이슬이 덜 말랐네 / 玉殼寒生露未乾

괜히 물성을 말하면서 형회를 구별하지만 / 謾言物性荊淮別

응당 좋은 명성은 귤과 유자의 중간이라오 / 應有芳名橘柚間

인간엔 예로부터 맛을 겸한 게 없거니와 / 人間自古無兼味

너는 끝내 신맛 하나만 가진 게 우습구나 / 笑汝生來只一酸

 

35.시자()

가을이라 서리 맞은 감 반쯤 불그레한데 / 秋來霜半傳紅

일만 덩이가 똑같이 둥근 게 의아스럽네 / 却訝勻圓萬顆同

주조가 쫀 나머지에 붉은 알은 익어가고 / 朱鳥啄餘卵熟

촉룡이 촛불 비추어 화주는 타는 듯하네 / 燭龍銜照火珠烘

새벽 별 반짝일 때 밝은 빛은 막 동하고 / 曙星垂耀明初動

벌꿀과 단맛 나뉘어 맛은 정히 조화롭네 / 崖蜜分甛味正融

소반 가운데 온갖 과실들이 무안할레라 / 百果盤中少顔色

칠절을 겸하여 신의 공력 독차지했으니 / 能兼七絶擅神功

 

36.화합(華鴿)

수놓은 비단 휘장은 구슬 창에 비치는데 / 圍羅幕映珠

촘촘한 우리에서 비노를 풀어 내놓았네 / 閑放飛奴出細籠

화려한 등은 꽃처럼 밝아 햇빛에 번득이고 / 錦背花明翻晝景

방울 소리는 거센 바람에 창공을 울리누나 / 金鈴風緊響雲空

친구에게 서신 전함은 은정이 참 좋은데 / 傳書故舊恩情好

뜰에서 먹이 주워 먹는 본성은 똑같구나 / 得食庭除意趣同

집닭과 같은 부류로 간주하지 말지어다 / 莫把家鷄一樣看

특이한 색채가 분명히 무리에 뛰어나거니 / 分明異彩出群中

 

37.금계(錦鷄)

연못에 봄이 와서 푸른 물결이 출렁거리면 / 春入芳塘漾綠漪

수많은 금계들이 화창한 햇볕을 즐기어라 / 錦鷄無數弄晴暉

맑은 물결 위에선 둘둘이 서로 날아 비치고 / 波明兩兩飛相照

다스운 모래톱에선 쌍쌍이 물가를 따르네 / 沙暖雙雙水政依

연꽃을 건드릴 땐 하얀 부리가 향긋해지고 / 戲動小荷香玉觜

떨어진 꽃잎은 화려한 날개를 시샘도 하지 / 吹來落蘂妬花衣

날개의 화려한 문채를 스스로 과시하건만 / 自多羽翼文章異

거위 오리 틈새에선 봐주는 이가 드물구나 / 鵝鴨池邊省見稀

 

38.여학(唳鶴)

부구공의 흰 학은 눈이 번쩍 뜨이는데 / 浮丘霜鶴眼增明

정원의 솔에 평온히 부쳐 있길 허락하였네 / 許寄庭松穩不驚

달 밝은 솔 가지에선 찬 그림자 번득이고 / 月在高枝翻冷影

이슬 맺힌 솔잎에선 울음소리 급하여라 / 露團疎葉警寒聲

화표주에 돌아와선 천년의 말을 남겼고 / 歸來華表千年語

구지산에 올라서는 한밤중에 울어댔었지 / 去上山半夜鳴

높이 날고픈 마음은 끝내 다하지 않는지라 / 霄漢高心終不盡

뜰 가득한 닭 오리는 시샘만 부릴 뿐이로다 / 滿庭鷄鶩浪猜情

 

39.면사(眠麝)

미친 듯 닫는 성질 쉬 길들길 어찌 뜻했으랴 / 何意奔狂性易馴

푸른 초원 몽땅 차지해 잠자리로 삼았구나 / 碧蕪占斷睡成茵

꿈이면 문소의 편안하고 한가한 곳을 찾고 / 夢尋文沼安閑地

먹는 건 화창한 봄 주 나라 쑥에 의탁하네 / 食托周苹自在春

포수가 산에 가득해도 화 당할 염려 없어라 / 强弩遍山非買禍

훈향이 배에 가득해 짐짓 사람 의지하누나 / 薰香滿肚故依人

옛날 나귀에서 떨어져 신선 된 이 있었으니 / 他時騎倒尋仙去

이게 바로 오백 년 이후 그의 화신이로구나 / 五百年來一化身

 

40.가산(假山)

혼돈 상태가 어느 해에 또 개벽을 했던고 / 混沌何年又闢開

뜰 가득 높은 산이 문득 무더기를 이뤘는데 / 滿庭喬岳忽成堆

총각 머리 모양 만 점은 층층으로 보이고 / 鴉鬟萬點層層見

거북 등의 뭇 산들은 은은히 눈에 들오네 / 鰲背群山隱隱來

남기는 윤택한 푸른 절벽에 연하려 하고 / 嵐氣欲連靑壁潤

햇빛은 둘러친 옥병풍을 나직이 비추누나 / 日光低傍玉屛回

이 사이에 응당 버려진 전지가 있으리니 / 此間應有閑田地

여기에 띳집 지어 낚시터를 굽어보고파라 / 擬結茅廬俯釣臺

 

41.괴석(怪石)

바위 덩이 가팔라서 형세 절로 완고하여라 / 雲骨巉巖勢自頑

천년에 생장한 건 얼룩얼룩한 이끼뿐일세 / 千年生長蘚痕班

용 비늘은 밤에 무젖어 비를 이룰 듯하고 / 龍鱗夜濕將成雨

거북 등엔 가을 깊어 문득 산이 보이누나 / 鰲背秋高忽見山

향 이슬은 움직이는 선장에 생기려 하고 / 香霧欲生仙掌動

푸른 연기는 멀금한 칼끝에 끊이질 않네 / 靑煙不斷劍

기괴한 돌이 청주의 공물 중에 들었으니 / 怪奇曾入靑州貢

쪼개낼 적엔 귀신의 아낀 마음 놀래켰으리 / 劈取應驚鬼物慳

 

42.유리석(瑠璃石)

천연의 고아한 바탕은 조물주의 작품이라 / 古質天然造化工

인공으로 연마 없이도 견고하고 윤택하네 / 堅溫曾不費磨礱

깨끗한 빛은 윤택한 대에 비유되거니와 / 淸光自比琅玕潤

기묘한 품질은 두툼한 호박과 똑같으리 / 妙品應同琥珀濃

달빛 아랜 선장의 이슬이 차갑게 어리고 / 夜月寒凝金沆瀣

봄볕엔 투명한 그림자 옥처럼 영롱해라 / 春光影透玉玲瓏

본바탕이 한 점 하자 없음을 자신하는데 / 生來自信無瑕玷

때로는 집안 가득 무지개를 뱉기도 하네 / 滿院時時氣吐虹

 

43.차거분(𤥭)

자개로 수놓은 향 그릇 새긴 채색 산뜻해라 / 繡甲香盆鈿綵新

강비가 끝내 진기한 걸 아끼지 않았구려 / 江妃終不惜奇珍

좋은 구슬 울어 다하여 뱃속은 텅 비었고 / 美珠泣盡曾虛腹

몰래 던진 명월주는 사람에게 가까워졌네 / 明月潛投已近人

한 물은 용백국에서 근원이 나누어졌고 / 一水分源龍伯國

온갖 꽃들은 학림의 봄에 매몰되었도다 / 百花埋沒鶴林春

옥난간에 두고 잠시 완상이나 할 뿐이요 / 玉欄暫爾供淸翫

선생이 참으로 보배를 아껴서가 아니라네 / 不是先生愛寶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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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4권 / 시류(詩類)

하일(夏日) 4수

 

늙은 소나무 가지에 두건을 걸고 / 掛巾老松枝

솔 사이의 그늘에 옷 벗고 앉아서 / 坐松間陰

손을 내저어 시인들을 사절하고 / 揮手謝時人

귀 기울여 흐르는 물소리 듣노라 / 側耳聽潺湲

 

두 발은 흡사 옻칠처럼 새까만데 / 兩足黑如漆

푸른 짚신은 한 짝만을 신은 채로 / 一隻靑草

푸른 잔디 위에 벌렁 드러누워서 / 偃臥藉碧蕪

소리 높여 노래하니 백석이 진동하네 / 高歌動白石

 

계집종은 질동이를 옆구리에 끼고 / 女奴提瓦盆

솔 밑의 샘에 달려가 물을 길어다 / 走汲松下泉

노란 기장 일어 새로 밥 지으면서 / 新炊淅黃黍

나의 똥똥한 배를 보고 웃는구나 / 笑我腹便便

 

쟁반 가운데 푸르고 푸른 오이는 / 靑靑盤中瓜

저 서산에서 따서 보내온 것인데 / 摘送自西山

한번 씹어서 답답한 창자 씻어라 / 一嚼沃煩腸

어찌 신선의 단약을 사모하리요 / 何慕仙人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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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4권 / 시류(詩類)

명비원(明妃怨) 3수

 

한 나라는 되놈 다스리는 데에 실책하였고 / 漢家失策御胡戎

재차 화공의 손에서 미인을 또 그르쳤도다 / 再誤蛾眉畫手中

가련도 해라 궁비가 처음 변새를 나갈 적에 / 可惜宮妃初出塞

춘풍에 젖은 시름겨운 귀밑을 차마 봤으랴 / 忍看愁鬢濕春風

 

변새의 모래 바람에 눈발 어지러이 날릴 제 / 塞上風沙雪亂飛

가련하여라 아직도 한궁의 의복을 입은 채 / 可憐猶著漢宮衣

시름겨울 땐 억지로 비파 타며 눈물 흘리고 / 愁時强撥琵琶泣

다시 융왕께 사냥 마치고 돌아가길 고했네 / 復戎王罷獵歸

 

겹겹의 담요 장막 밖엔 눈이 아직 안 갰는데 / 氈幕重重雪不晴

선우는 싸우러 나가서 삼경의 밤이 되었네 / 單于出戰夜三更

호한의 은혜 깊고 얕은 걸랑 말하지 말고 / 莫胡漢恩深淺

시름 속의 악부 소리나 시험 삼아 들어보자 / 試聽愁中樂府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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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4권 / 시류(詩類)

촌가(村家)에서 춘일(春日)의 즉사를 읊다. 4수

 

물들인 듯한 봄 산은 연기 위에 우뚝 솟고 / 春山如染矗靑煙

한 물줄기는 파랗게 밭을 안고 흐르는데 / 一水粼粼綠護田

가랑비 뒤에 지팡이 짚고 동산을 산책하니 / 瘦策巡園微雨後

지는 꽃은 눈 같고 버들개지는 솜 같구나 / 落花如雪柳如綿

 

작은 못의 봄풀은 향긋한 내음을 풍기고 / 小池春草已生香

날 막 갠 띳집엔 제비 소리가 끊임없어라 / 茅屋新晴燕語長

손은 또 오지 않고 봄은 이미 가버렸는데 / 客又不來春已去

한 쌍의 나비가 동쪽 담장을 넘어가누나 / 一雙飛蝶過東墻

 

푸른 대에서 나온 죽순은 창을 벌여 세운 듯 / 綠篁抽筍森森戟

붉은 고사리의 내민 움은 소아의 주먹 같네 / 紫蕨成芽小小拳

숲 속의 몽근 모랫길을 천천히 걸어 나가니 / 踏出細沙林下路

푸른 산 흰 돌 밑에 맑은 샘물이 고여 있구나 / 靑山白石貯淸泉

 

운애 자욱한 꽃마을을 두루 돌아 다니노라니 / 行遍花村靄靄間

두견새는 온종일 봄 산이 찢길 듯 울어대네 / 杜鵑終日磔春山

완상하는 마음이 시름과 서로 짝을 이루어 / 賞心政値愁相伴

저물녘에 돌아와서는 문도 닫지 못하노라 / 薄暮歸來未掩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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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4권 / 시류(詩類)

하일(夏日) 4수

 

늙은 소나무 가지에 두건을 걸고 / 掛巾老松枝

솔 사이의 그늘에 옷 벗고 앉아서 / 坐松間陰

손을 내저어 시인들을 사절하고 / 揮手謝時人

귀 기울여 흐르는 물소리 듣노라 / 側耳聽潺湲

 

두 발은 흡사 옻칠처럼 새까만데 / 兩足黑如漆

푸른 짚신은 한 짝만을 신은 채로 / 一隻靑草

푸른 잔디 위에 벌렁 드러누워서 / 偃臥藉碧蕪

소리 높여 노래하니 백석이 진동하네 / 高歌動白石

 

계집종은 질동이를 옆구리에 끼고 / 女奴提瓦盆

솔 밑의 샘에 달려가 물을 길어다 / 走汲松下泉

노란 기장 일어 새로 밥 지으면서 / 新炊淅黃黍

나의 똥똥한 배를 보고 웃는구나 / 笑我腹便便

 

쟁반 가운데 푸르고 푸른 오이는 / 靑靑盤中瓜

저 서산에서 따서 보내온 것인데 / 摘送自西山

한번 씹어서 답답한 창자 씻어라 / 一嚼沃煩腸

어찌 신선의 단약을 사모하리요 / 何慕仙人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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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4권 / 시류(詩類)

권 승지(權承旨) 남(擥) 에게 주는 영친시(榮親詩) 70운(韻)

 

화산은 능히 덕을 널리 심어서 / 花山能種德

난초밭에 향기가 오래 전해 왔으니 / 蘭久傳芳

시조가 처음으로 가문을 열었고 / 鼻祖初開構

후손이 또 이를 널리 발양하였네 / 耳孫又發揚

국옹은 덕망이 존대하였고 / 菊翁尊德望

양로는 문장이 우뚝했으며 / 陽老仰文章

학사는 대대로 전한 인장 같았고 / 學士傳家印

시중은 대대로 당을 착용했었네 / 侍中累葉璫

가업을 전한 공은 원대하거니와 / 箕裘功遠大

시례의 교훈은 찬란하기도 해라 / 詩禮訓昭煌

만석꾼의 가문은 모두 근신했고 / 萬石門皆謹

삼괴당은 뒤에 반드시 창성했지 / 三槐後必昌

지재가 훌륭한 아들로 태어나서 / 止齋傳令緖

높은 인망은 조정을 압도하였고 / 雅望倒嵓廊

젊은 나이로 일찍 재상이 되었고 / 黑髮爲相早

백미의 뛰어난 아이를 두었는데 / 白眉有兒良

아이가 친히 신성한 군주 만나서 / 親逢神聖主

서로 이어 장원랑이 되었으니 / 相繼壯元郞

천상에서는 규벽이 굽어 임하고 / 天上臨奎壁

인간에서는 봉황을 보는 듯하네 / 人間覩鳳凰

가업은 대대로 전한 게 있거니와 / 靑氈徠有自

더구나 깨끗한 행실을 드러냄이랴 / 素履況能彰

기북에 텅 빈 건 준마의 발굽이요 / 空北霜蹄駿

남쪽 도모함엔 뛰어난 날개로다 / 圖南逸翮翔

구름은 만리의 길에 생겨나고 / 雲生萬里路

칼은 십 년 연마한 끝을 뽑아라 / 劍出十年

간선을 입어 어사대에 등용되고 / 選登烏府

명성 드날리어 옥당에 올랐으니 / 蜚英上玉堂

경악에서는 성상과 친근하였고 / 經帷親袞冕

학술은 많은 서책을 탐독했기에 / 學術富縑緗

경륜의 솜씨는 자자히 알려졌고 / 藉藉絲綸手

문장 솜씨 또한 무리에 뛰어나서 / 披披錦繡腸

웅걸한 문장은 가마를 뒤따르고 / 雄文追賈馬

청아한 시율은 소황을 압도하네 / 淸律倒蘇黃

회포는 북두성처럼 높이 트이고 / 星斗襟懷豁

기세는 강하와 같이 왕성하여라 / 江河氣勢汪

지위가 깨끗하니 사람은 옥 같고 / 地淸人似玉

명성이 중하니 덕은 규장 같구려 / 名重德如璋

굳은 절조는 천년 묵은 잣나무요 / 勁節千年柏

곧은 맘은 백번 단련한 무쇠로다 / 貞心百鍊鋼

시국 걱정은 비분강개함을 더하고 / 憂時增慷慨

뜻을 분발해 의기도 더욱 당당하네 / 奮志益軒昻

국운이 위험한 때가 많았기에 / 國步多危險

인정이 절로 소란스러웠지만 / 人情自擾

순수한 충정은 밝은 태양 같았고 / 精忠明皎日

중대한 의리는 추상처럼 늠름했네 / 大義凜秋霜

원성께서 주실을 보존하고 / 元聖存周室

천인이 진양에서 일어날 제 / 天人起晉陽

날개와 비늘에 능히 일찍 붙었고 / 翼鱗能早附

간담을 이미 먼저 맛보아서 / 肝膽已先嘗

젓가락 빌려서 모의를 담론하고 / 借論謀議

산가지 놀리어 은밀히 찬양했네 / 運籌密贊揚

천지간에 태양의 바퀴를 붙들어 / 乾坤扶日轂

은하수 끌어다 병갑을 씻고 나니 / 兵甲洗天潢

공훈 업적은 기린각에 돌아가고 / 勳業歸麟閣

훌륭한 명성은 반열에 떨치어라 / 聲名振鷺行

기상엔 공을 기록할 만하거니와 / 旂常功可紀

대려의 맹세 또한 잊기 어려우리 / 帶礪誓難忘

옥 섬돌엔 왕의 은총이 얽혀 있고 / 玉陛紆宸眷

승정원엔 훌륭한 명망 있었으니 / 銀臺有令望

용후로서 태양을 가까이 뫼시고 / 龍喉身近日

계설향은 항상 입에 머금었었지 / 鷄舌口含香

빛깔은 관복의 중후함에 빛나고 / 色映簪袍重

소리는 패옥이 쟁글쟁글 울려라 / 聲聞玉佩鏘

성상의 위엄이 지척에 임하시니 / 天威臨咫尺

지위가 보통 자리와 다르고말고 / 地位異尋常

왕명 출납엔 용이 오직 진실했고 / 出納龍惟允

갱가 부를 땐 고요가 양언했으니 / 賡歌皐曰颺

친히 요 임금의 일월에 의탁하여 / 親依堯日月

위하여 순 임금의 의상을 지었네 / 爲補舜衣裳

군신간의 만남이 지금 이러하니 / 際遇今如此

높이 오르는 걸 한량할 수 없도다 / 騰揚不可量

예악 문명은 한 시대에 빛나고 / 文明熙一代

효도의 정사는 삼강을 중히 여겨 / 孝理重三綱

본디 영친의 전례가 있어온 터라 / 自有榮親典

잔치 내리는 영광을 넉넉히 했네 / 優加錫宴光

백마는 모두 은총을 내린 것인데 / 白麻皆荷寵

더구나 황갑의 장원을 했음에랴 / 黃甲況魁場

이제 모친의 생신을 만나서 / 萱室逢初度

채색옷 입고 축수잔 올리려 하매 / 采衣獻壽觴

특별한 은총을 대궐에서 내리니 / 殊恩從北闕

성대한 일 동방에 우뚝하구려 / 盛事聳東方

장막들은 비단으로 둘러싸이고 / 幕圍羅綺

누양 갖춘 높은 관원들 모이었네 / 簪紳蔟鏤

공훈은 다 위곽과 다름없고 / 功勳皆衛霍

문벌은 모두 김장과 똑같도다 / 家閥盡金張

자리는 왕실의 귀함을 압도하고 / 坐壓璿源貴

가문은 대궐의 상서와 연했기에 / 門連玉禁祥

궁중 음식이 끊임없이 내려오고 / 天廚來絡繹

선약의 진귀한 물품이 전해졌네 / 仙藥動琳琅

갈고 소리에 봄 기운은 광대하고 / 羯鼓靑春蕩

곤현 소리에 백일은 하 길었으니 / 鵾絃白日長

십천의 좋은 술은 맛이 농후하고 / 十千濃美酒

이팔 청춘 미인들은 열을 지어서 / 二八列鮮粧

요염한 춤사위엔 향기론 소매 날리고 / 舞艶飄香袖

노랫소리는 높아라 목이 터질 듯하네 / 歌高咽細

밝은 꽃은 화려한 자리에 번득이고 / 明花翻繡座

푸른 버들은 새긴 담장을 스치어라 / 綠楊拂雕墻

좋은 경치에 시절 또한 태평한데 / 好景時還泰

좋은 날은 또 강일을 만났는지라 / 佳辰日在剛

모친의 안색 기뻐하여 웃으시니 / 慈顔忻載笑

경복이 절로 다함이 없으리로다 / 慶福自無疆

남해의 시를 얼마나 읊조렸던고 / 幾詠南

대낮의 금의환향을 자랑할 만하네 / 堪誇晝錦鄕

은총의 영광이 어찌 끝이 있으랴 / 龍光能紀極

연회의 즐거움도 다함이 없었지 / 燕喜未渠央

아들은 의당 이렇게 낳아야 하리 / 生子宜如此

가문 일으키기에 넉넉하고말고 / 興門是足當

미담은 부로들에게 널리 전하고 / 美談喧父老

화기는 도성 거리에 흘러넘쳐라 / 和氣溢康莊

덕택은 먼 후손들에게 미칠 게고 / 澤及雲仍遠

명성은 간책에 자상히 전해지리 / 聲傳簡策詳

아 내 인생은 비루하고 졸렬하여 / 吾生嗟鄙拙

외업을 까마득히 실추시켰으니 / 外業墮微茫

어찌 택상에 비길 수 있으리요 / 宅相何曾擬

가경도 지켜낼 겨를이 없는걸 / 家經恐未遑

양운의 문장은 구마를 전하였고 / 楊書傳舅馬

채옹의 경사는 생양에 모였는데 / 蔡慶集甥羊

이런 도리 저버림이 부끄러워라 / 此道慙辜負

선현들과 어찌 오르내릴 수 있으랴 / 先賢頡頏

먼 친척이지만 친함은 지극하고 / 葭莩親已至

형제의 의리는 더욱 두터운지라 / 棣萼義彌臧

하례의 자리 끝에 외람히 참여하니 / 末席叨參賀

남몰래 속으로 마음이 상하누나 / 中情有傷

위양의 시는 아득하기만 하고요 / 渭陽吟渺渺

척기의 눈물만 줄줄 흐르는구려 / 陟屺淚浪浪

어느 곳엔 구름만 공연히 하얀고 / 何處雲空白

다른 산엔 회나무만 유독 푸르구나 / 他山檜獨蒼

색동저고리를 어찌 다시 입으랴 / 身那復著

모친이 지은 옷을 쟁여만 놓았네 / 手線悵空藏

적막한 것은 반고의 역사요 / 寂寞班姑史

처량한 것은 맹모의 교육이로다 / 凄涼孟母防

공은 참으로 입현을 실행했는데 / 如公眞立顯

나만 홀로 머뭇거림이 부끄럽네 / 愧我獨徊徨

본래부터 품은 뜻이 충효뿐이라 / 宿抱維忠孝

요순 임금 만들기를 기약했거니 / 相期致帝王

화목한 형제들이 누가 낫고 못하랴 / 壎篪誰伯仲

요순 시대 현신들을 다시 보리니 / 黼黻見唐虞

끝내 충효의 한 마음 변치 말아서 / 終始心無改

조정의 우뚝한 동량을 이루게나 / 明堂作棟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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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광릉(廣陵)의 촌사(村舍)에서 자다. 3수

 

세어보니 친구들은 다 공후에 이르렀는데 / 故人皆數到公侯

녹록한 공명 내 신세는 거울 보기 부끄럽네 / 碌碌功名照鏡羞

부귀는 뜻밖에 오는 거라 모두 외물이지만 / 富貴儻來皆外物

청산은 가는 곳마다 은거할 만한 곳이로세 / 靑山行處是菟裘

 

당년에 토지 사느라 재물만 허비했을 뿐 / 當年虛費買田貲

두어 이랑을 지금껏 버려둔 채 안 일구고 / 數頃如今廢不菑

이웃 사람에게 내주어 주인이 바뀌었으니 / 乞與鄰人飜作主

아득한 봄바람에 이 슬픔을 어쩐단 말인가 / 春風漠漠若爲悲

 

두어 집 울타리에 봄 연기는 다사로운데 / 數家籬落暖春煙

그 누가 송아지 몰아 묵정밭을 가는고 / 叱犢何人理廢田

십 년 동안 창주의 띳집만 그려왔던 터라 / 十載滄洲茅屋趣

여기에 오니 그 생각이 또 유연해지누나 / 此來情思又悠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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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성화중(成和仲)의 난파춘일잡영(鑾坡春日雜詠) 시에 차운하다. 5수

 

주렴 장막 깊은 곳에 해는 더디기만 한데 / 簾幕深深白日遲

복사꽃은 수줍고 살구꽃은 바보만 같거니 / 桃花嬌小杏花癡

옥당에서 강하던 입에 차 한잔 마시고 나면 / 玉堂講舌初霑茗

오사모 쓰고 처마 돌며 시 얻기 딱 좋으리 / 烏帽巡簷恰得詩

 

동룡의 물방울 뚝뚝 낮 시각은 하 더딘데 / 水滴銅龍晝漏遲

바람 맞은 실버들은 어리석기 그지없어라 / 因風柳線不勝癡

중관이 퇴청명 내려 장관이 나가고 나면 / 中官宣罷長官出

갠 처마를 향해 서서 좋은 시를 찾는구려 / 立向晴簷覓好詩

 

화전을 날마다 올라서 퇴청 더디하여라 / 花磚日上退歸遲

청반에 낀 늙고 어리석은 내가 부끄럽네 / 忝跡淸班愧老癡

버들빛 꽃의 광채에 봄이 정히 좋은지라 / 柳色花光春政好

굽은 누각 서편에 서서 시를 곰곰이 찾네 / 曲樓西畔立尋詩

 

나귀 타고 동남으로 행로는 하 더디어라 / 驢子東南行路遲

곁사람은 손뼉치며 내 어리석음 비웃지만 / 傍人拍手笑渠癡

버들 매화 감상함은 평상적인 일이거니 / 問柳探梅等閑事

강산이 모두가 내 금낭시에 들었고말고 / 江山都在錦囊詩

 

문사 구전을 내 더디 한 게 후회스러워라 / 問舍求田悔我遲

십 년을 되레 명리의 어리석은 자가 되었네 / 十年飜作利名癡

봄바람은 힘이 있어 내 흥취를 끌어내니 / 春風有力挽吾興

두어 봉우리 청산이 바로 백 수의 시로세 / 數朶靑山百首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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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수찬(修撰) 성화중(成和仲) 간(侃) 을 곡(哭)하다. 4수

 

성화중의 죽음을 통곡하노니 / 痛哭成和仲

이렇게 관 뚜껑 덮을 줄 어찌 알았으랴 / 那知此蓋棺

문장은 운명의 통달함을 미워하고 / 文章憎命達

수복은 신명의 아낌을 입었도다 / 壽福被神慳

서책 천 권은 이제 그만이로다 / 已矣書千卷

어느덧 한 봉분의 흙이 되었네 / 居然土一丸

구천에서 아 일어나지 못하니 / 九泉嗚不起

슬픈 눈물이 절로 줄줄 흐르누나 / 哀淚自

 

질탕한 풍류 그대만 한 이 적은데 / 跌蕩如君少

친구 중에는 나와 유독 친했었지 / 交遊我獨親

세속 정태는 씻어버린 게 많았고 / 世情多抹

옛 도는 오히려 열심히 닦았었네 / 古道尙勤辛

어찌 남아의 뜻이 아니었던가만 / 豈不男兒志

허깨비 같은 몸이야 어찌할쏜가 / 其於夢幻身

평생에 하 많은 계책이 있었건만 / 生平多少策

기나긴 밤은 끝내 새벽도 없으리 / 厚夜竟無晨

 

대장정의 기약은 이미 원대했건만 / 長途期已遠

큰 그릇을 끝내 못 쓰게 되었구려 / 大器竟無施

염려하던 말들은 아직도 쟁쟁한데 / 耿耿言猶在

아득하여라 일은 또 글러버렸네 / 茫茫事又非

북당 앞에는 백발의 모친이요 / 堂前白頭母

슬하에는 황구의 어린애로다 / 膝下黃口兒

이 한을 슬퍼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 此恨何嗟及

말하자면 또한 비통할 뿐이로다 / 言之亦可悲

 

덧없는 인생은 부쳐 삶과 같아라 / 浮生如寄爾

친구들이 날로 처량해져만 가네 / 故友日凄其

산양의 젓대 소리를 차마 들으랴 / 忍聽山陽笛

달 지는 때만 읊조릴 뿐이로다 / 空吟月落時

먼지는 업후의 서가에 엉겨 붙고 / 塵凝鄴侯架

바람은 동생의 휘장을 흔드누나 / 風攪董生帷

이제는 그만이로다 저 아양곡을 / 已矣峨洋曲

앞으로는 누가 다시 알아주리요 / 從今誰復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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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여강(驪江)으로 가는 김 상사(金上舍)를 보내다. 5수

 

귀공자는 훌륭한 풍채에 기개도 뛰어나서 / 公子魁梧氣出群

묘령에 진사가 되어 높은 공훈 세웠는데 / 妙齡蓮榜策高勳

오거서는 크나큰 가슴속에 가득 실었고 / 五車磊落胸中載

삼협은 무너져 붓 밑에 거센 파도 이뤘네 / 三峽崩騰筆下奔

귀공자의 풍류가 적을 줄 누가 알았으랴 / 誰知紈綺風流少

형에 가득 고도가 존재함을 진작 믿었네 / 已信充古道存

그대는 지금 다시 출처를 홀로 결단했으니 / 出處君今還自斷

세상의 시끄러운 풍조를 붙좇을 수 있으랴 / 可能於世逐囂紛

 

평생에 고인의 행적 본받기를 자부했으니 / 生平自許古人期

지절이 당당하여 자못 스스로 비범했었지 / 志節堂堂頗自奇

뜻밖에 오는 관록은 내 소관이 아니지만 / 軒冕倘來非我事

전원으로 갈 일이야 다시 무얼 의심하랴 / 田園將去復奚疑

양자의 한 구획 집 그 밖에 무얼 바라리요 / 一區揚子餘何望

소군의 두 이랑은 후회해도 이미 늦었네 / 二頃蘇君悔已遲

널따란 여강 가을바람에 뱃놀이 하면서 / 孤棹秋風驪水闊

거문고 서책으로 나도 애써 불러주었으면 / 琴書有意苦招携

 

부러워라 그대는 지금 나이도 한창때이니 / 多君今復富春秋

한가히 뜻 기르면 도가 또한 넉넉해지리 / 養志居閑道亦優

진작부터 명성 있어 친구들도 많았거니 / 已有聲名喜追逐

그런 재학으로 오래 막혀 있으려 할쏜가 / 肯將才術久淹留

푸른 솔 노란 국화는 지금 완상할 일이요 / 碧松黃菊今時事

흰 홀에 붉은 도포는 후일 도모할 것일세 / 白笏紅袍後日謀

진중하여 소년 시절을 스스로 아껴야 하네 / 珍重少年當自惜

남아의 공업이 어찌 아득하기만 하겠는가 / 男兒功業豈悠悠

 

십 년 동안 분주하다 두 귀밑이 희어졌으니 / 十載馳驅兩鬢華

먼지는 모자에 가득 서리는 신에 가득하네 / 黃塵滿帽霜滿靴

고원에 가고픈 생각은 술보다 농후한데 / 故園歸思濃於酒

쇠퇴한 말세의 인정은 엷기가 깁 같아라 / 末路人情薄似紗

불우한 공명은 아직 이러할 뿐이려니와 / 蹭蹬功名聊復爾

자꾸만 흐르는 세월은 장차 어찌할거나 / 侵尋歲月欲如何

어젯밤에 분명히 강호의 꿈을 꾸었는데 / 分明昨夜江湖夢

우뚝한 청산에 백조의 물결이 그대로더군 / 偃蹇靑山白鳥波

 

새로 불은 여강 물은 포돗빛처럼 푸른데 / 驪江新漲碧葡萄

소년 시절 풍류 즐길 땐 거룻배가 있었지 / 少日風流有小

이백은 절 안에서 삼 일 동안을 취했었고 / 李白寺中三日醉

원룡은 누대 위에 백층 호기가 있었다네 / 元龍樓上百層豪

두승이 무엇이길래 몸을 길이 얽매는고 / 斗升何者身長絆

꿈속에선 여전히 어조를 찾아 헤매는걸 / 魚鳥依然夢獨勞

어느 날에나 그대 찾아 내 또한 돌아가서 / 何日尋君亦歸去

한 잔 술 함께 들고서 자라회를 쳐볼거나 / 一盃同擧斫雙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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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신상(申相) 댁에서 소장(所藏)하고 있는 강경우(姜景愚)의 그림 십이도(十二圖)에 쓰다.

 

동정호의 가을 달〔洞庭秋月〕

긴 숲에 보일락말락 까마귀는 깃들려 하고 / 長林隱映欲棲鴉

열두 봉우리 꼭대기엔 달빛이 물결 같은데 / 十二峯頭月似波

고요한 밤 누각 기대 무한한 생각에 젖을 제 / 夜靜倚樓無限思

노 젓는 한 소리가 갈대꽃 너머서 들려오네 / 一聲柔櫓隔蘆花

봄날에 비석을 구경하다.〔春日看碑〕

일찍이 소년 시절 산사에서 글을 읽을 때 / 少年山寺讀書時

옛 비갈의 유부사를 손으로 문질렀는데 / 古碣摩幼婦辭

갑자기 그림을 보니 아마도 이게 꿈인가 / 忽見畫圖疑是夢

산 가득 꽃과 새들이 아직도 그리워지네 / 滿山花鳥故依依

비바람 몰아치는 산곽〔風雨山郭〕

십 년 동안 동화문의 뿌연 먼지만 밟느라 / 十載東華踏軟紅

강호에 돌아갈 꿈은 아득한 데 떨어졌는데 / 江湖歸思墮

그림 속에 갑자기 시가의 경치가 보여라 / 畫中忽見詩家景

수많은 누대들 연기 비 자욱한 속이로다 / 多少樓臺煙雨中

깊은 산에서 사슴을 벗 삼다.〔深山友鹿〕

그대의 집은 아득히 흰 구름 낀 숲에 있어 / 君家杳在白雲林

청산의 우뚝한 마음을 서로 마주하는구나 / 相對靑山偃蹇心

도만 있다면 미록과 벗함이 왜 해로우랴 / 道在何妨友麋鹿

산을 더 깊이 못 들어감을 염려할 뿐이지 / 入山猶恐不深深

추사일에 취하여 헤어지다.〔秋社醉散〕

사옹에서 진한 막걸리를 처음 맛보아라 / 社甕初嘗綠潑

계돈 갖추어 온 마을에 웃음꽃이 피었네 / 鷄豚同里笑談開

석양엔 잔뜩 취해 모두 부축하여 가는데 / 日斜酩酊皆扶醉

나귀 등을 배처럼 평온히 타고 돌아가네 / 驢背如船穩跨回

가을 교외의 지는 해〔秋郊落日〕

아득한 가을 하늘엔 기러기 그림자 잠기고 / 秋空渺渺雁飛涵

송아지 노는 방죽 앞엔 물이 쪽빛 같은데 / 黃犢陂前水似藍

저문 날에 외로운 배는 어드메 나그네인지 / 日暮孤舟何處客

서풍에 돌아가는 흥이 강남에 가득하구나 / 西風歸興滿江南

저문 날에 고기를 잡다.〔日暮捕魚〕

푸른 봄 강물은 몇 상앗대쯤이나 벌창한지 / 綠漲春江水幾篙

어부는 제 맘대로 가벼운 배를 띄우누나 / 漁郞隨意泛輕

그림 속에서 나의 강동 흥취를 일으켜라 / 畫中起我江東興

머리 납작한 방어의 꿈만 유독 수고롭네 / 縮頸細鱗夢獨勞

거문고를 타서 학을 춤추게 하다.〔彈琴舞鶴〕

달 비친 숲에 이슬 맞은 한 장의 거문고여 / 月林衣露一張琴

흐르는 물 높은 산이 다 태고의 마음일세 / 流水高山太古心

흰 소매 검은 치마가 어느 곳 나그네인지 / 縞袂玄裳何處客

온종일 춤을 추어라 이게 바로 지음일세 / 婆娑終日是知音

돛을 걸고 바다로 나가다.〔張帆出海〕

먼 산봉우리 공중에 떠서 산 빛은 흔들리고 / 遠岫浮空嶽色搖

상선 돛대 바람 받아라 바다 조수 밀려드네 / 商帆初飽海生潮

그대에게 시험 삼아 강남의 일을 묻노니 / 憑君問訊江南事

시의 값과 물건 값이 어느 게 더 높던가 / 詩價何如物價高

저문 해의 첫눈〔歲暮新雪〕

산봉우리의 흰 눈이 흡사 만층의 옥 같아 / 白雪峯巒玉萬層

흥이 나서 내 일찍이 누구를 방문했더니 / 興來傾蓋訪吾曾

문 닫고 반듯이 누운 이가 그 누구였던고 / 閉門僵臥何如者

손이야 싫다건 말건 불러도 대답 없었네 / 客至從嗔喚不應

관산의 나그네가 갠 창 아래서 매화를 완상하다.〔關山行旅 晴窓賞梅〕

해진 갖옷 파리한 말에 길은 양장판인데 / 弊裘羸馬路羊腸

나그네 바삐 달려라 무슨 일이 바쁜 건지 / 客子驅馳有底忙

그 며칠이나 동합의 노인을 따라 놀면서 / 幾日來從東閤老

처마 돌며 웃음 찾아 매화 향기 맡았던고 / 巡簷索笑看梅香

버들 그늘에서는 바둑 구경을 하고, 들 나루터에서는 배를 서로 다투다.〔柳陰看碁 野渡爭舟〕

들 나루터엔 춘풍에 배를 잡아 매지 않아 / 野渡春風不繫船

손들이 와서 온종일 서로 앞을 다투누나 / 客來終日競爭先

온 사해가 도도히 나루 잃은 자들뿐이니 / 滔滔四海迷津者

선인의 도끼 자루 썩은 해를 누가 봤으랴 / 誰見仙人爛柯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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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충청 찰방(忠淸察訪)으로 나가는 김기백(金耆伯) 숭로(崇老) 을 보내다. 4수

 

그대 같은 큰 뜻을 세상이 알지 못하여 / 磊落如君世不知

푸른 적삼 십 년에 벼슬이 아직도 낮구려 / 靑衫十載宦猶卑

가시나무는 끝내 난새가 깃들 곳 아니니 / 鸞棲枳棘終非地

봉황이 오동에 앉을 때가 절로 있을 걸세 / 鳳集梧桐自有時

장성한 때에 공명을 의당 격려해야 하네 / 壯歲功名宜激厲

끝없는 세월은 그 얼마나 바삐 달리던가 / 長途歲月幾奔馳

인생의 만남은 아 정해진 기약이 없기에 / 人生會合嗟無定

해마다 작별시 짓기가 서글프기만 하네 / 惆悵年年作別詩

 

나같이 못난 사람은 높은 반열에 참예하고 / 如吾短拙忝高班

큰 재주가 작은 벼슬에 굴함이 한스럽네 / 却恨奇才屈小官

도필리가 장상이 되는 데 무어 해로우랴 / 刀筆何妨爲將相

시서는 끝내 선비를 저버리지 않는다네 / 詩書終不負衣冠

공명이란 필경에 계륵 같은 것이거니와 / 功名畢竟同鷄肋

세상일은 일찍이 서간 같음을 알았었지 / 世事曾知似鼠肝

아무쪼록 태평성대에 절조를 잘 보전하게 / 且向明時宜盡節

장차 그대의 성명이 조정을 진동할 걸세 / 會敎名姓動朝端

 

그 옛날에 금강 남쪽을 두루 유람했기에 / 昔年遊遍錦江南

술 취한 속의 강산 꿈이 정히 무르녹아라 / 醉裏江山夢正酣

나는 듯한 역마 타고 그대는 또 떠나는데 / 馹騎如飛君又去

직무에 얽매인 나는 어이 견딘단 말인가 / 卯申空縛我何堪

풍류 뛰어난 공자는 오사모를 걸쳐 쓰고 / 風流公子烏紗帽

가무 잘하는 미인은 모시 적삼을 입으리 / 歌舞佳人白紵衫

생각하건대 낭관이 행락하는 곳에는 / 憶得郞官行樂處

누대 십 리에 푸른 남기가 자욱하겠지 / 樓臺十里間靑嵐

 

머리에 점차 흰머리 듬성해짐을 보건대 / 頭顱漸見白刁騷

높은 벼슬은 사람에게 또한 수고로운 걸세 / 名宦於人亦自勞

늙어갈수록 은정은 골육같이 깊어가고 / 老去恩情深骨肉

종래에 사귀는 정은 겉치레를 버렸었지 / 生來交道去皮毛

풍운 같은 변태는 우리들의 일이 아니요 / 風雲變態非吾事

천지처럼 소활함이 바로 우리 무리일세 / 天地迂疎是我曹

만일 서산을 만나거든 말 좀 전해 주게나 / 若見瑞山煩寄語

서쪽 바라보며 머리 긁기 감당 못 하겠네 / 不堪西望首頻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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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일본(日本)의 승(僧) 해운(海雲)을 보내다. 5수

 

해운이 무슨 일로 푸른 산을 나왔던고 / 海雲何事出靑山

온 게 본디 무심했기에 감도 절로 한가롭네 / 來本無心去自閑

외로운 종적은 남북이 따로 있지 않길래 / 不是孤蹤有南北

긴 바람이 불어 보내고 또 불어 돌아가네 / 長風吹送又吹還

 

푸른 눈의 고승이 일본으로부터 왔으니 / 碧眼高僧自日邦

능히 한 입에 서강의 물을 삼키다마다 / 能容一口吸西江

서로 만나선 자신도 모르게 껄껄 웃고 / 相逢不覺呵呵笑

눈 가득한 창 아래 등잔 앞에 마주 앉았네 / 坐對靑燈雪滿窓

 

아득한 바닷물은 은하수에 연닿았는데 / 茫茫海水接銀河

병석 갖고 돌아가니 달 속의 한 떼로다 / 甁錫歸來月一査

응당 봄바람이 불면 일이 많아질 터이니 / 也識春風多事在

고향 산에 작은 매화들이 두루 피겠구려 / 故山開遍小梅花

 

외로운 섬 하나가 삼신산 가까이 있으니 / 一環孤島近壺蓬

절 집은 산중의 그 몇 겹째에나 있는고 / 寺在山中第幾重

강호를 두루 유람하고 다시 선정에 들어 / 歷遍江湖還入定

막 목욕한 빨간 아침 해를 앉아서 보겠네 / 坐看朝日浴初紅

 

돌아보니 동녘 바다 파도 없이 고요해라 / 回首東溟靜不波

왕래하는 사신의 배들이 베짜는 북 같네 / 使船來往正如梭

성덕이 원근에 차별 없음을 알아야 하리 / 須知聖德無遐邇

만리 밖의 일본을 한집처럼 여겨주누나 / 萬里搏桑作一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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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김문량(金文良), 한자순(韓子順), 임자심(任子深)이 예원(藝苑)에서 교수(校讐)를 하는데, 문량이 장난삼아 율시(律詩) 한 수를 지어서 좌상(座上)에 보이므로, 여러 군자(君子)들이 그 운(韻)에 의거하여 받들어 수답하다. 6수

 

한낮의 전각에 남훈은 서늘함 보내오고 / 殿閣南薰午送涼

긴긴 날 궁전의 누수는 뚝뚝 떨어지는데 / 日長宮漏響丁當

장구가 동한으로 돌아감은 부끄럽지만 / 多慚章句歸東漢

다행히 시편은 성당 시대를 배우는구려 / 賴有詩篇學盛唐

귀범 마도는 창졸간에 이룰 바 아니지만 / 龜範馬圖非造次

흐르는 세월 속엔 한가함도 바쁨도 있나니 / 烏飛兎走也閑忙

만리 멀리 밝게 보는 맘속의 《주역》 있어 / 明明萬里心中易

장차 반드시 경륜으로 우리 님께 보답하리 / 會必經綸報我皇

 

수교하는 석거각은 바람도 서늘하여라 / 石渠讐校可風涼

문묵의 허명 입은 내가 있을 곳 아니고말고 / 文墨虛名我謬當

함장과 구의로는 궐리를 스승으로 받들고 / 函丈摳衣師闕里

모자와 읍양으로는 요순 시대를 생각하네 / 茅茨揖讓想虞唐

간원에선 진작 초고 불태운 게 부끄럽고 / 諫院自慙焚草早

한림원에선 창 부수기 바빴던 게 부끄럽네 / 鑾坡曾愧斲窓忙

모를레라 누가 조서를 초하는 솜씨가 되어 / 不知誰是絲綸手

우리 임금 곤룡포에 보불 문장을 수놓을꼬 / 黼黻終敎袞我皇

 

대궐 종소리 울리자 새벽빛은 서늘한데 / 鳳闕鐘聲曙色涼

꽃들은 쟁글쟁글 검패 소리를 맞이하네 / 花迎劍佩響郞當

대책은 한의 의서에 왜 그리 부끄러운지 / 誼舒對策何慙漢

시련으로는 혹 당의 가두와도 흡사하다오 / 賈杜詩聯或似唐

주각은 아침에 급히 초하길 재촉했는데 / 註脚朝修催草急

사두는 밤에 내려서 옷 걸치기 바쁘구려 / 詞頭夜下攬衣忙

재주 없이 오랫동안 금마문에 적을 두고 / 不才久忝金閨籍

붓 들고 오랜 시간 성상을 가까이 뫼셨네 / 珥筆多時近玉皇

 

중서성에 승핍된지 덥던 날이 서늘해졌네 / 承乏薇垣燠已涼

거친 재주가 엄선한 자리에 어찌 맞으랴 / 疎才妙選豈相當

축하 시는 송의 경력에 왜 그리 부끄러운지 / 賀詩慶曆何慙宋

비난의 논변은 당의 양성에 부끄럽고말고 / 譏論陽城可愧唐

청석으로 외람히 상의 큰 은총 입었으니 / 靑席叨承君寵極

조낭으로 의당 다시 상서를 바삐 해야지 / 皁囊宜復上書忙

퇴청하면 소매 가득 향 연기 진동하여라 / 朝回滿袖香煙動

지척에서 성상을 우러러 뵈었기 때문일세 / 咫尺重瞳覩聖皇

 

사문은 그만이로다 오래도록 쓸쓸했거니 / 斯文已矣久凄涼

방안의 명성을 누가 감히 당할 수 있으랴 / 榜眼聲名孰敢當

깊은 경지의 필법은 응당 진을 잇겠지만 / 筆或入神應繼晉

뜻에 만족한 시는 완벽히 당을 따라잡네 / 詩如得意酷追唐

백발로 조삼을 입어라 공명은 늦었으나 / 皁衫白髮功名晩

황권과 청편 속에 세월은 바쁘기만 하네 / 黃卷靑篇歲月忙

내 어찌 곤직에 한 글자나 기운 적 있으랴 / 袞職吾何一字補

헌황을 만난 신세가 스스로 부끄럽구려 / 自慙身世際軒皇

 

찌는 더위에 일찍이 서늘함을 얻지 못해 / 炎蒸曾不借微涼

취하여 혼혼히 자 봐도 감당할 수 없었네 / 醉睡昏昏不可當

의당 청삼 입은 궁한 두보를 쳐줘야 하고 / 須數靑衫窮杜甫

백발의 늙은 풍당을 부끄러워 말아야지 / 休慙白髮老馮唐

바람 불고 구름 감은 끝없는 일이거니와 / 風流雲往無窮事

하루하루 보내는 덴 무슨 바쁠 게 있으랴 / 暮鼓朝鐘有底忙

한 줄기 청풍이 불어오는 북창 아래선 / 一線淸風北窓下

혹 때로 한가한 맛이 희황에 이른다오 / 或時閑味到羲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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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또 앞의 운을 사용하다. 4수

 

남들은 다 득세하는데 나 혼자만 쓸쓸해라 / 人皆炎熱我凄涼

벼슬길 막힘이여 세상과 안 맞음을 알다마다 / 拙宦知非與世當

두보는 일생 동안 직설을 희망했거니와 / 杜甫一生希稷卨

퇴지는 온 사해를 요순 시대에 비겼었지 / 退之四海擬虞唐

시서는 진작 등잔 밑에서 고학을 했는데 / 詩書早約靑燈苦

세월은 백발을 찾아 바삐바삐 가는구려 / 歲月相尋白髮忙

문필에 종사한 소신이 무슨 사업을 하랴 / 鉛槧小臣何事業

성명께선 지금 다시 삼황을 앞지르거늘 / 聖明今復軼三皇

 

신세가 내 홀로 외로움을 혐의치 않음은 / 身世休嫌獨踽涼

다행히 자네와 지기지우가 됐기 때문일세 / 知音幸與子相當

천지 같은 큰 도량은 저산을 용납해 주고 / 乾坤大度容樗散

형제 같은 깊은 정은 체당에 비길 만하네 / 兄弟深情比棣唐

술자리 십 년에 우리는 함께 늙어가는데 / 樽酒十年俱老大

공명을 얻기 위해 온 세상은 분주하누나 / 功名一世亦犇忙

같은 날 홍패 받아 깊은 은혜 입었으니 / 紅牌同日承恩重

남산의 만수로 우리 임금을 축복하세나 / 萬壽南山祝我皇

 

남풍이 솔솔 불어와 한 누각이 서늘한지라 / 南風細細一樓涼

오사모 반쯤 젖혀 쓰니 상쾌하기 그지없네 / 半頂烏紗足快當

오궤는 예나 지금이나 그 하나만 비기건만 / 烏几一憑今與古

찌 붙인 만축 서적은 한당 시대를 겸했네 / 牙籤萬軸漢兼唐

긴긴 날 대궐 나무엔 꾀꼬리 소리 예쁘고 / 日長禁樹鸚啼滑

비 그친 궁궐 담장엔 제비 소리 바쁘구려 / 雨歇宮墻燕語忙

녹록한 공명 속에 백발만 드리웠으니 / 碌碌功名空白首

제발 취향에 들어 희황이나 찾고 싶네 / 醉鄕渾欲訪羲皇

 

분분한 말세라서 덕이 어찌 그리도 엷은고 / 紛紛叔季德何涼

유항의 형세는 아예 당적할 수 없고말고 / 劉項元來勢莫當

문헌은 고증할 만해라 기송이 남아 있고 / 文獻足徵存杞宋

전모는 본받을 만해라 당우 시대에 있네 / 典謨可法有虞唐

손조의 전쟁 때에는 산하가 찢길 듯했고 / 孫曹戰伐山河裂

유마의 병기들은 천둥 벼락처럼 바빴었지 / 劉馬干戈霹靂忙

구구한 당송이야 어찌 말할 거나 있으랴 / 唐宋區區何足說

우리 성조는 지금 다시 삼황보다 앞서는걸 / 聖朝今復邁三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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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방 사문(方斯文) 문중(文仲) 이 부쳐온 시에 차운하다. 5수

 

그대 같은 재기는 두남의 일인자이건만 / 才氣如君擅斗南

백발에 아직껏 청삼 입은 게 가련하구려 / 可憐白髮尙靑衫

궁달이 모두 천명임을 이제야 알았노니 / 方知窮達皆由命

공명은 잠깐에 이룬다는 걸 믿을 만하네 / 可信功名自立談

사문의 원로로 인물은 의당 존재하건만 / 耆舊斯文人物在

만년이라 높이 오를 시기는 늦어만 가네 / 蜚騰晩節歲時淹

나 같은 자가 요행수로 현로를 막은 터라 / 如余僥倖防賢路

중서성의 수년 출사가 마냥 부끄럽구려 / 數載薇垣面可慙

 

조물주의 득실 조화는 자연의 이치이기에 / 造物乘除理自然

예부터 현인 달사도 애처롭기 그지없었네 / 古來賢達亦堪憐

파선의 풍월은 황주에 간 뒤에 알려졌고 / 坡仙風月黃州後

이부의 문장은 조주의 해변에 드러났지 / 吏部文章潮海邊

바다 붕새가 구만 리 오름은 다시 보겠지만 / 更見溟鵬搏九萬

마판 준마가 삼천 리에 뜻 둠은 진작 알았네 / 曾知櫪驥志三千

부침 속의 지난 일들이 모두 꿈만 같아라 / 浮沈往事渾如夢

회상하니 공명 좇다가 사십이 되었네그려 / 回首功名四十年

 

남아로서 한창 비분강개한 소년 시절엔 / 男兒慷慨少年時

지절이 당당하여 꽤나 스스로 자부했으니 / 志節堂堂頗自奇

한전엔 방삭의 독을 몇 번이나 올렸던고 / 漢殿幾書方朔牘

야랑에선 한림의 시를 일찍이 읊었었지 / 夜郞曾詠翰林詩

천지는 광대하건만 지기지우는 드문데 / 乾坤納納知音少

신세는 유유하여 행로가 더디기만 하여라 / 身世悠悠行路遲

그대의 호기가 아직 줄지 않은 걸 보니 / 豪氣看君曾不減

우리 도가 닳고 물들지 않았음을 알겠네 / 更知吾道不磷緇

 

무지개 같은 간담을 우뚝하게 뱉어내면 / 虹霓肝膽吐崢嶸

춘풍의 온화한 기운이 온 좌석을 압도하네 / 和氣春風四座傾

이미 문장은 있어 대아를 추급했거니 / 已有文章追大雅

의당 성자도 한 시대 명성을 얻어야지 / 宜敎姓字占時名

수는 이광처럼 기박해 봉함은 늦었지만 / 數奇李廣封雖晩

때는 평진을 만나 도를 행할 만하고말고 / 時遇平津道可行

영광되이 잠시의 접견을 받은 바 있으니 / 自幸龍門叨半面

시단에서 우리 끝내 종유하길 바라노라 / 詩壇終欲歃銅盟

 

가죽신 오사모 차림에 동분서주하노라니 / 烏靴紗帽走奔忙

동화문의 뿌연 먼지가 만 길이나 높아라 / 塵土東華萬丈長

문장은 가마를 따르고픈 뜻이 있지만 / 有意文章追賈馬

부귀는 김장에 의탁할 마음이 없다오 / 無心富貴托金張

산림의 만년 흥취는 죽보다도 농후한데 / 山林晩興濃於粥

문호엔 새그물 쳐라 서리같이 썰렁하네 / 門戶張羅冷似霜

다행히 사문께서 내 졸렬함 용납했어라 / 賴有斯文容我拙

일생을 시와 술로써 스스로 미치는 것을 / 一生詩酒自顚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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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재차 화답하다. 5수

 

공명은 일찍이 남쪽 바다를 도모했으나 / 功名早歲已圖南

백발토록 불우하여 한 조삼을 걸쳤지만 / 白首蹉跎一皁衫

시속과 어긋난대서 장한 뜻을 등지지 않고 / 不爲乖時違壯志

흔연히 좌중 놀래키며 웅담을 토로한다네 / 欣逢驚座縱雄談

북궐에 상서하고 시인은 떠나가는데 / 上書北闕詩人去

동계에 집을 짓고 야로는 오래 머무네 / 卜築東溪野老淹

성왕 시대 인재 등용은 공론에 달렸나니 / 聖代登庸公論在

세한의 높은 절조로 다시 뭐가 부끄러우랴 / 歲寒高節復何慙

 

성상의 모습 거듭 뵙길 꿈에도 연연했어라 / 重瞻黼袞夢依然

불우한 중년의 일은 가련하기 그지없었네 / 蹭蹬中年事可憐

만리라 푸른 구름은 하늘 위에 떠가는데 / 萬里靑雲霄漢上

두어 가닥 흰 눈빛은 귀밑 수염 가이로다 / 數莖白雪鬢鬚邊

한림은 스스로 술 삼백 잔을 사랑했었고 / 翰林自愛杯三百

이부는 일찍이 팔천 리 길을 놀랐었다네 / 吏部曾驚路八千

사문의 골육 같은 지기지우가 예 있으니 / 骨肉斯文知己在

이제부턴 우리 서로 망년교를 맺자꾸나 / 從今交契可忘年

 

비분강개 뛰어남은 이도 한때의 일이라 / 慷慨昻藏此一時

천지간의 인물들은 대단히 기괴하였네 / 乾坤人物大奇奇

시국 상심하던 가부는 자주 눈물 흘렸고 / 傷時賈傅頻流涕

나라 떠나던 종원은 시를 폐하지 않았네 / 去國宗元不廢詩

항아리 술로는 천 일을 취할 수 있거니와 / 樽酒可供千日醉

공명은 십 년이나 더딘 걸 스스로 믿노라 / 功名自信十年遲

정녕코 자라 낚을 뜻 저버리지 않았으니 / 丁寧不負釣鰲志

바닷가에 긴 낚싯대 굵은 낚싯줄이로다 / 海上長竿一巨緇

 

흔염하는 호기가 우뚝하게 돋보여라 / 掀髥豪氣聳崢嶸

인물과 풍류가 한 시대를 압도하누나 / 人物風流一代傾

한산한 관직 정건은 아 이미 늙었지만 / 官冷鄭虔嗟已老

재주 높은 유신은 일찍 명성이 높았네 / 才高庾信早聞名

인생의 영욕은 한단몽과 같을 뿐이건만 / 人生榮辱邯鄲夢

관로의 어려움은 촉도를 걷기와 같다오 / 宦路艱危蜀道行

예부터 교정은 영리에 담박해야 하나니 / 自古交情分淡利

그대 따라서 깊은 맹세를 맺을 만하구려 / 從君可是結深盟

 

하루하루 지내면서 무슨 바쁠 게 있으랴만 / 暮鼓朝鐘有底忙

청운은 멀리 가고 갈 길은 멀기만 하여라 / 靑雲去去道途長

생전에 흥취 푸는 데는 시가 일천 수인데 / 生前遣興詩千首

죽은 뒤의 명성은 종이 반 장에 적히겠지 / 身後流芳紙半張

단약 고아 먹고 끝내 신선은 이루려니와 / 九轉鍊丹終可熟

십 년 동안 칼 갈아 서슬은 절로 멀금하네 / 十年磨劍自生霜

고금 영웅들의 무궁한 일을 살펴보건대 / 英雄今古無窮事

광부가 늙을수록 미친 게 가소롭기만 하네 / 只哂狂夫老更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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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세 번째 화답하다. 5수

 

유랑하는 신세라 동서남북을 분주하다 보니 / 轉蓬踪跡走東南

매일 장취로 적삼은 절반이나 술에 젖었네 / 長醉淋漓酒半衫

백일에 닭 소리 들을 땐 잠깐 졸음을 깨고 / 白日聽鷄醒小睡

청산에 이 더듬으면 청담도 할 만하다오 / 靑山捫蝨可淸談

정절은 끝내 소나무 국화로 돌아갔거니와 / 松菊終然歸靖節

문장은 강엄의 꿈을 다시 꿀 수가 없구려 / 文章無復夢江淹

소년 시절에 세운 뜻이 당당히 남아 있으니 / 早年立志堂堂在

천지를 쳐다보고 굽어보매 조금도 안 부끄럽네 / 俯仰乾坤不小慙

 

세태와 교정이 백에 하나도 맞지 않아라 / 世態交情百不然

기괴한 모습 썰렁한 말을 누가 동정하리요 / 奇姿冷語復誰憐

서생은 항상 시편 속에 골몰하거니와 / 書生汨沒詩篇裏

호걸은 의기의 주변에 교유를 하나니 / 豪傑交遊意氣邊

좌상의 미인들은 모두가 이팔청춘이요 / 座上佳人皆二八

문전의 식객들은 절로 삼천이나 되거늘 / 門前食客自三千

아 나는 일찍부터 유관으로 그르침 입어 / 嗟予早被儒冠誤

녹록하여 소장년 시절에 이룬 것이 없네 / 碌碌無成少壯年

 

평생에 오활 진부하여 이미 때를 어겼으니 / 生平迂腐已違時

영웅의 뛰어난 골상이 몹시도 결핍되었네 / 苦乏英雄骨相奇

동자도 도리어 천인책을 올렸었는데 / 董子天人還有策

소릉의 충의로 시가 없을 수 있겠는가 / 少陵忠義可無詩

공명의 만족함 알거니 뭐 서두를 것 있으랴 / 功名知足何須早

부귀는 끝내 더딘 것을 한탄하지 않는다오 / 富貴到頭不恨遲

어느 날에나 속세의 일을 다 잊어버리고 / 何日盡消塵世事

창 앞에 가부좌하여 고승을 배워볼거나 / 小窓趺坐學高緇

 

아득한 풍진 속에 세월은 쌓여만 가거니 / 漠漠風塵歲月嶸

좋은 술을 다시 날마다 서로 마셔야겠네 / 芳樽宜復日相傾

허둥지둥 백년 동안은 눈앞의 일들이요 / 蒼黃百歲眼前事

천추에 적막한 건 죽은 뒤의 이름이라오 / 寂寞千秋身後名

헛된 명성 《고사전》에 적힘은 필요치 않고 / 不用虛聲高士傳

여인행의 봄 흥취만 공연히 남았네그려 / 空餘春興麗人行

어느 때나 한 거룻배로 강남의 달빛 아래 / 何時一艇江南月

광대한 강물의 백조와의 맹세를 지킬꼬 / 浩蕩相尋白鳥盟

 

하루 종일 텅 빈 배로 바쁘게 분주하다가 / 卯申空腹走忙忙

백발이 어느덧 만 길이나 자랐네그려 / 白髮居然萬丈長

텅 빈 재주 쓸모없어 스스로 가소롭거니 / 自哂有才空濩落

일에 대하여 과대포장하는 게 가능하랴 / 可能於事極鋪張

마골을 몰아 달리니 세상이 텅 비었고 / 驅馳馬骨空塵土

쓸쓸한 여우 갖옷은 눈서리에 해졌네 / 零落狐裘弊雪霜

백세에 미친 노래 부르며 통음한 이들 중에 / 百世狂歌痛飮裏

결코 나처럼 거칠고 미친 사람은 없었으리 / 斷無人似我麤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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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재차 화답하다. 3수

 

뿌연 먼지가 만 길이나 드높아서 / 紅塵高萬丈

대낮에도 양 사립 꼭 닫고 있노니 / 白日掩雙扉

방탕도 해라 이 뉘 집의 자식인고 / 落魄誰家子

으레 수레에 거꾸러져 돌아온다네 / 尋常倒載歸

 

백발은 늙은이를 꺼리지 않거니와 / 白髮休嫌老

청운도 내 몸에 가져올 수 있나니 / 靑雲可致身

은근한 정리로 한 말 술만 가지면 / 慇懃一斗酒

새봄의 흥취를 위로할 만하고말고 / 自可慰新春

 

술을 좋아한 이는 도원량이었고 / 愛酒陶元亮

시를 잘한 이는 이 한림이었으니 / 能詩李翰林

처량한 것은 지금 세상의 일이요 / 凄涼今世事

적막한 것은 고인의 마음이로다 / 寂寞古人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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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세 번째 화답하다. 3수

 

대궐 출입은 부끄럽기 그지없고 / 多慚通紫闥

재상 관서에 찾아갈 기분도 없네 / 無興到黃扉

신세가 아직도 이와 같거니 / 身世猶如此

전원으로 돌아가야 하고말고 / 田園可賦歸

 

공명이야 세상에 보탬이 되랴만 / 功名何補世

문필은 내 몸을 숨겨 둘 만하구려 / 文墨可藏身

세상맛은 소금물처럼 무미한데 / 世味如鹽水

내 마음 아는 건 국미춘뿐일세 / 知心麴米春

 

나가고 숨는 덴 출처가 헷갈리고 / 行藏迷出處

조시는 산림과 멀리 격해 있으니 / 朝市隔山林

내 장차 반드시 벼슬 버리고 가서 / 會必投簪去

속히 세속의 마음을 떨쳐버리려네 / 翛然遣世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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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네 번째 화답하다. 3수

 

파란 풀은 황우의 언덕에 무성하고 / 碧草黃牛壟

청산엔 백판 사립의 초가집이로다 / 靑山白板扉

나의 초가집이 그 어드메 있느뇨 / 吾廬何處是

말을 타고 석양이면 돌아간다네 / 敲鐙日斜歸

 

황금은 능히 선골을 만들어주고 / 黃金能換骨

백일은 몸을 가볍게 할 수 있나니 / 白日可輕身

내 무릉도원을 찾아가고 싶어라 / 擬訪桃源去

그곳은 연기 노을 절로 봄이겠지 / 煙霞自在春

 

성긴 별들은 초려를 뚫어 비추고 / 疎星穿草屋

희미한 달빛은 바람 숲을 비추니 / 纖月落風林

다시 언약건대 맑은 밤에 모여서 / 更約淸宵會

거문고와 술로 옛정을 나누세나 / 琴樽話舊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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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밀양(密陽)의 덕민정(德民亭)에서 권 길창(權吉昌)의 시에 차운하다. 5수

 

들 넓고 하늘 나직해 손바닥처럼 편평하고 / 野闊天低掌樣平

봄 강물 한 수면은 오리 머리처럼 파란데 / 春江一面鴨頭明

연기는 화려한 꽃 천 그루에 짙게 끼어라 / 煙濃錦繡花千樹

비는 아름다운 대 그 몇 그루나 씻었는고 / 雨洗琅玕竹幾莖

제비는 떨어진 버들개지 맞기에 익숙하고 / 玄鳥慣迎飛絮落

백구는 가로질러 가는 배를 한가히 보내네 / 白鷗閑送去舟橫

고금에 향기론 풀과 갠 냇물에 얽힌 한이 / 古今芳草晴川恨

반드시 황학루만 홀로 유명할 게 아니로다 / 不必黃樓獨擅名

이는 봄 경치를 읊은 것이다.

 

층층의 산봉 둘러선 안에 긴 둑은 편평한데 / 層顚勢壓大堤平

주렴 걷으니 청산이 그림처럼 아름다워라 / 簾捲靑山活畫明

연못에 실바람 부니 연잎은 일산을 쳐든 듯 / 菡風微擎舊蓋

물풀들은 물 넉넉해 새 줄기가 쑥쑥 자라네 / 菰蒲水足長新莖

모래톱을 빙 두른 나무숲은 하늘에 연했고 / 洲環列樹兼天去

골짝은 맑은 강물을 묶어 눈앞에 비끼었네 / 峽束澄江剗地橫

동이 술 마시며 구경하는 흥취 그지없어라 / 樽酒未窮登覽興

모르겠다 이 몸 밖에 다시 명성을 무엇하랴 / 不知身外更何名

이는 여름 경치를 읊은 것이다.

 

가을바람 소슬한 천원에 초목은 편평하고 / 蕭瑟川原草樹平

누대의 화려한 단청이 그 사이에 분명한데 / 樓臺紅碧間分明

빗소리는 먼저 삼상의 잎을 따라 들리고 / 雨聲先傍三湘葉

가을빛은 길이 구원의 줄기에 머물렀네 / 秋色長留九

물 줄어든 남쪽 여울엔 고기가 내려가려 하고 / 水減南灘魚欲下

구름 깊은 북쪽 고개엔 기럭이 비껴 나누나 / 雲深北嶺雁初橫

예전에 송옥이 흔들려 떨어짐 슬퍼했거니 / 從來宋玉悲搖落

벼슬살이 객지 시름을 쉬 이름 못 붙이겠네 / 宦興羈愁未易名

이는 가을 경치를 읊은 것이다.

 

긴 하늘 흐리어라 겨울 구름은 편평한데 / 長空淰淰凍雲平

명사십리 강 언덕엔 갠 눈이 환히 빛나니 / 十里江皐霽雪明

인간 세상도 선경과 헷갈릴 수 있거니와 / 人世亦能迷玉界

신선 되려고 금경을 구할 필요도 없겠네 / 神仙不必要金莖

일만 골짝 솔바람은 차가운 소리 웅장하고 / 松風萬壑寒聲壯

일천 숲 달빛 아랜 매화 그림자 비껴 있네 / 梅月千林瘦影橫

이러한 강산으로 응당 돌아가야 하거늘 / 如此江山可歸去

미관말직으로 공명 추구함이 부끄러워라 / 靑衫烏帽愧功名

이는 겨울 경치를 읊은 것이다.

 

형체가 평생을 스스로 이리저리 떠돌면서 / 形骸放浪自生平

통음하고 미쳐 노래하길 사명에 비겼으니 / 痛飮狂歌擬四明

취해선 눈 흐려 우물에 떨어지는가 하면 / 醉認眼花空落井

귀밑털은 자꾸만 희어감을 시름겨이 보네 / 愁看鬢雪欲添莖

하얀 치아에 이팔청춘 미인들이 모이고 / 靑蛾皓齒佳人會

호화로운 유람선들을 좋은 날에 띄워라 / 錦纜牙檣勝日橫

남쪽 지방의 번화함이 응당 제일이련만 / 南國繁華應第一

쇠퇴하여 이름만 더럽힘이 되레 부끄럽네 / 還慚落魄汚時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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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김이수(金)가 북경(北京)에 가서 서적을 많이 사 왔으므로, 시(詩)로써 서적을 빌려 달라 하면서 겸하여 희롱하는 뜻을 서술하다. 4수

 

내 젊어서 열심히 삼여에 글을 읽었지만 / 早年辛苦事三餘

곤직 기운 건 한 글자도 없음이 부끄럽네 / 補袞今慙一字無

가소로워라 네 가지 어리석음 안 끊어져 / 自笑四般癡不絶

남에게 때로 다시 서책 빌려 보려는 것이 / 向人時復借看書

 

연래엔 서책을 자주 보다가 싫증이 났는데 / 年來編簡數斯疎

어찌 구구하게 오거서를 쌓아둘 것 있으랴 / 何用區區貯五車

늙어가매 정신 수양할 물건이 통 없는데 / 老去神無物在

정 많은 황내만 나를 저버리지 않는구려 / 情深黃嬭不辜余

 

만 권의 서책이 책상 가득히 쌓이었으니 / 萬軸牙籤滿案堆

어느 누가 능히 자물쇠를 열 줄 알았던고 / 何人能解鎖魚開

한 병 술 마련하여 그대 집에 보내는 건 / 一鴟解辨君家送

좋은 책 있음을 알고 자주 빌리려는 걸세 / 知有奇書得得來

 

서림에서 십 년 동안 조용히 글을 읽었지만 / 書林牢落十年燈

공명 좇는 공부를 나는 능히 못 했는지라 / 馳騁功夫我不能

옆 사람이 굶는 내 모습 많이도 비웃누나 / 贏被傍人笑空腹

당시에 기설은 무슨 책을 읽은 적 있던가 / 當時夔卨讀何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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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윤 찰방(尹察訪) 예경(禮卿) 의 임정(林亭)을 방문했더니, 술자리를 베풀고 바둑을 함께 두면서 다정하게 추대해 주므로, 크게 취하여 돌아와서 그 명일에 두어 절구(絶句)를 읊어 기록하여 부치다. 4수

 

휴직하는 즐거움을 그 누가 믿을꼬 / 誰信休官樂

한가하니 지경도 더욱 그윽해지네 / 居閑地轉幽

속세의 풍진과 서로 멀리 떨어져 / 風塵相隔絶

산수 사이에 우유자적할 만하니 / 山水可優游

한 판의 바둑으론 세월을 보내고 / 一局碁消日

석 잔의 술로는 시름을 씻어내며 / 三盃酒洗愁

의관도 내 뜻대로 자유로이 하거니 / 衣冠已隨意

고관대작을 다시 무엇하러 구하랴 / 簪紱復何求

 

임정 좋은 곳을 무척 사랑하기에 / 酷愛林亭好

공무 여가에 위하여 한번 찾노라니 / 公餘爲一尋

그윽한 오솔길엔 돌이 비껴 나오고 / 幽蹊斜出石

땅속의 물은 굽게 숲으로 통하는데 / 暗水曲通林

산 빛은 흡사 그림처럼 선명하고 / 山色明如畫

솔바람은 거문고를 연주한 듯했지 / 松聲奏似琴

애오라지 거짓 없는 면목 가지고 / 聊將眞面目

서로 대해 마음을 자세히 논했었네 / 相對細論心

 

큰 재주가 그대만 한 이 드물건만 / 才大如君少

어이해 운수 또한 기박하단 말인가 / 胡然數復奇

공명이란 얻고 잃는 게 많거니와 / 功名多得喪

세상일은 절로 성하고 패하나니 / 世事自成虧

도가 있거늘 어찌 굴함을 탄식하랴 / 道在何嗟屈

때가 오리니 더딤은 한할 것 없네 / 時來不恨遲

간절히 당부하니 스스로 아끼게나 / 慇懃當自惜

반드시 좋은 명성이 뒤따를 걸세 / 必有盛名隨

 

예전부터 산림의 정취가 있었건만 / 夙有山林趣

번연히 이록에 얽매임을 당하여 / 飜爲利祿

십 년 동안 벼슬길에 골몰타 보니 / 十年空汨沒

만사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었네 / 萬事復依違

백조와의 맹세는 아직 남아 있고 / 白鳥盟猶在

청산에 갈 언약도 안 글렀는지라 / 靑山約未非

장래의 일은 내 스스로 결단하여 / 從今吾自斷

이미 귀거래사를 초해 놓았다네 / 已草去來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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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초추(初秋) 3수

 

서풍이 땅을 말아오니 또 한 가을이어라 / 捲地西風又一秋

빙반이랑 수점 생각은 유유하기만 하네 / 氷盤水簟思悠悠

고요한 동산 숲엔 매미 소리가 목이 메이고 / 園林寂靜蟬聲咽

처량한 처마 장막엔 제비 꿈이 시름겹네 / 簷幕凄涼燕夢愁

이백은 회포 있어 공연히 달에게 물었는데 / 李白有懷空問月

중선은 어느 곳에서 홀로 누각에 올랐던고 / 仲宣何處獨登樓

일생에 나는 스스로 시서 속에 신고하여 / 一生自分詩書苦

근면으로 해를 마쳐 잠시도 쉬질 못하네 / 矻矻窮年未暫休

 

뜻 잃은 나그네는 가을을 느끼기 쉬운데 / 忽忽羈懷易感秋

병든 나머지에 신세가 더욱 유유하구나 / 病餘身世轉悠悠

어느 때나 오솔길 내어 삼익을 이룰꼬 / 何時開逕成三益

오늘 이 시를 쓴 것을 사수시에 비기노라 / 此日題詩擬四愁

베개맡의 귀뚜라미는 긴 밤을 슬피 울고 / 欹枕蛩聲悲永夜

술잔 드니 달빛은 높은 누각에 가득하네 / 擧杯月色滿高樓

인생이 어찌하면 기심을 잊을 수 있을꼬 / 人生那得忘機者

이 몸이 죽기 전에는 일이 끊임없으리 / 未蓋棺前事不休

 

연래엔 두 귀밑 쇠한 데에 이미 놀랐는데 / 年來雙鬢已驚秋

세상일에 뜻 얻지 못해 다시 허망하여라 / 世事蹉跎復繆悠

꿈속에 고향 집 가니 산 빛은 좋더니만 / 夢裏還家山色好

등잔 앞에 손 대하니 빗소리는 시름겹네 / 燈前對客雨聲愁

객지 벼슬살이에 삼간집이야 왜 없으랴 / 宦遊豈乏三間屋

호기는 아직도 백척의 누각에 남았다오 / 豪氣猶餘百尺樓

고금에 몇 사람이나 출처를 기필했던고 / 今古幾人能出處

맹세코 이젠 산림에 돌아가 편히 쉬련다 / 誓將林下便歸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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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정자문(鄭子文)에게 준 시운(詩韻)을 사용하여 이 주부(李主簿) 근(覲) 에게 부치다. 4수

 

사문의 후배들 줄줄이 이어진 게 기뻐라 / 斯文後輩喜繩繩

이제는 시가의 두소릉을 다시 보겠구려 / 今見詩家杜少陵

팔차 압도한 기세에 생각은 더욱 건장하고 / 勢壓八叉思愈健

칠보보다 높은 재주에 기백은 한층 더하네 / 才高七步氣尤增

우뚝한 자네는 닭 무리 떠난 학과 같은데 / 軒昻子似離鷄鶴

우둔한 나는 준마 꼬리의 파리와 같지만 / 癡鈍吾如附驥蠅

일생을 통음하며 미쳐 노래하는 가운데 / 百歲狂歌痛飮裏

안한하기론 고승에게도 부끄럽지 않다네 / 安閑獨不愧高僧

 

타관살이 벼슬할 마음은 깁보다 엷은데 / 宦情羈思薄於紗

연래엔 수척한 몸에 병이 점점 더해지네 / 瘦骨年來病漸加

자미의 시엔 몸이 물에 뜬 인형 같다 했는데 / 子美有詩身泛梗

강엄은 붓에 꽃피는 꿈을 다시 꾸지 못하네 / 江淹無夢筆生花

반평생을 영락하여 문필에만 종사했으니 / 半生零落唯鉛槧

장년에 드날린 고관대작들에 부끄러워라 / 壯歲蜚騰愧纛牙

이 한 마음은 만사를 전혀 관여하지 않고 / 萬事一心渾不管

긴긴 날 창 앞에서 가부좌나 배우고 있네 / 小窓長日學趺跏

 

성대에 임금 보좌하기 어려움이 부끄러워 / 明時袞職愧難諧

날마다 장안에서 잔뜩 취해 돌아오곤 하니 / 每日長安盡醉回

처세엔 떠나야 할 두 가지를 알지 못했기에 / 處世不知二宜去

남에겐 세 가지 열지 못함을 스스로 말하네 / 逢人自說三不開

세월은 눈앞을 스쳐 점차로 다해 가는데 / 光陰過眼垂垂盡

슬픔과 즐거움은 맘속에 속속 찾아오누나 / 悲樂關心續續來

생애를 점검하며 때론 홀로 웃기도 하는데 / 點檢生涯時獨笑

한 동이 막걸리에 흥취가 절로 유유하구려 / 一樽濁酒興悠哉

 

고요함 속의 일거리는 채소밭 가꾸기인데 / 靜裏功夫課菜畦

때로는 서책을 애써 옆에 끼기도 한다오 / 有時編簡費提携

읊조린 시는 혹 나빠도 고쳐줄 손은 없는데 / 詩成或惡砭無客

졸렬한 생계는 영위 못해 아내의 핀잔을 듣네 / 計拙何營諫有妻

세상일엔 일찍이 문을 대해 고기를 씹었고 / 世事對門曾嚼肉

인심엔 뜨거움에 놀라 냉채도 불어 먹는다오 / 人心懲熱復吹

자갈밭과 띳집이 바로 여생의 흥취이기에 / 石田茅屋餘年興

글 지어 하늘에 고하며 머리 자주 조아리네 / 牋告天公首屢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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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다시 앞의 운을 사용하여 자문(子文)에게 부치다. 4수

 

분분한 세상일이 헝클어진 노끈 같으니 / 世事紛紛亂似繩

오이 심기 알맞은 그 어느 땅이 동릉인고 / 宜瓜何地是東陵

생전의 장한 뜻은 가난해도 안 저버렸는데 / 生前壯志貧無負

술 취한 속의 풍치는 늙을수록 더해만 가네 / 醉裏風情老益增

신세는 백조와의 맹세 저버린 지 오래지만 / 身世久盟白鳥

공명엔 의당 청승이 앉은 걸 거울삼아야지 / 功名宜鑑止靑蠅

향 피우고 종일토록 포단에 앉았노라니 / 蒲團終日焚香坐

머리털 수염 있는 것만 중이 아닐 뿐일세 / 只有頭鬚不是僧

 

실바람이 불어와 창의 깁을 뚫고 들오니 / 小風吹動透窓紗

처량한 회포가 늙을수록 더해만 가는데 / 惻惻幽懷老轉加

서린에선 편지 보내 달 완상차 오라 하고 / 折簡西鄰來賞月

북리에선 지팡이 끌고 꽃구경을 하자 하네 / 扶北里倩看花

다만 막걸리로 창자 적실 줄만 알 뿐이요 / 但知白酒輸肝膽

황금일랑 입 사이에 올리지도 않고말고 / 不使黃金掛齒牙

어느 날에나 덧없는 세상일을 다 버리고 / 何日盡抛浮世事

선탑에서 빈사로 중이랑 가부좌나 해 볼꼬 / 鬢絲禪榻伴僧跏

 

거칠고 촌스러운 태도에 익살스러운 말투로 / 疎狂野態語詼諧

먼지 속에 분주한 게 그 몇 날이었던고 / 奔走紅塵日幾回

젊을 때엔 시로 인해 헛된 명예가 과했지만 / 早歲因詩虛譽過

늘그막엔 술에 의지해 좋은 회포를 푼다오 / 殘年仗酒好懷開

전원엔 갈 약속 있어 끝내 가야 하거니와 / 田園有約終須去

헌면은 우연히 오는 거라 마음이 없다네 / 軒冕無心是儻來

소란스러운 세상일을 떨어버리기 어려우니 / 世事擾膠難抖

술 취한 속의 풍월은 역시 아름답기만 하네 / 醉鄕風月亦佳哉

 

말세의 인심은 예의염치가 전혀 없는데 / 人心末路盡町畦

내가 태어났던 섭제에 지금 이르렀으니 / 初度吾今在攝提

삼경의 문에 기다리는 어린애는 예뻐라 / 三逕候門憐稚子

작은 녹봉으론 가난한 아내를 위로하네 / 一官持祿慰貧妻

두릉은 삼십 년간 경화의 불고기를 먹었고 / 杜陵卅載京華炙

한유는 삼 년 동안 태학의 부추를 먹었었지 / 韓愈三年太學

나는 요순 임금 만들 좋은 꾀가 없는지라 / 自顧致君無好術

고요의 조아림에 갱가의 밝음만 상상하네 / 賡歌明復想皐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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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이 주부(李主簿)가 화답해 왔으므로 다시 차운하다. 8수

 

세월이 구슬 고리처럼 자꾸만 흘러가니 / 光陰流轉似環繩

늘그막엔 유유히 무릉만 생각하는데 / 晩節悠悠憶武陵

병은 절로 깊어서 한가할수록 효험이 있고 / 病骨自深閑愈驗

세상과의 인연 얕음은 늙을수록 더해지네 / 世緣終淺老尤增

일생은 치마 속의 이와 같음이 우스워라 / 一生可笑處裙蝨

백년은 참으로 종이 뚫는 파리와 똑같네 / 百歲眞同攢紙蠅

책 상자와 차 솥 곁에 홀로 앉았노라니 / 經匣茶鐺成獨坐

나의 전신은 바로 소승의 중이었으리 / 前身我是小乘僧

 

어젯밤 가을바람이 창문 깁을 불어 들오니 / 秋風昨夜入

새 시름이 갑절이나 더함을 문득 깨달았네 / 斗覺新愁一倍加

거울 속엔 이미 흰 귀밑털이 더해졌지만 / 明鏡已能添白鬢

막걸리는 응당 국화 철을 안 저버릴레라 / 濁醪應不負黃花

세태가 얼굴 피로케 함을 진작 알았거니 / 曾知世態勞顔面

어찌 다시 용졸한 말을 입으로 지껄이랴 / 那復庸談置頰牙

부러워라 산승은 아무 일도 관여치 않고 / 羨殺山僧無管事

나가서는 행각하고 들앉으면 가부좌함이 / 動時行脚靜時跏

 

아정한 문장 적적하여 못 이룬 지 오래여라 / 大雅寥寥久不諧

이미 거꾸러진 거센 물결 만회키 어렵구려 / 狂瀾旣倒挽難回

문재는 전과 같거늘 내게서야 뭘 취하랴만 / 文材依舊吾何取

시운은 지금 와서 자네가 다시 열었네그려 / 詩運如今子復開

서치의 가문 명성은 아 이미 저버렸는데 / 徐穉家聲嗟已負

한림의 호기는 아직 그대로 전해오누나 / 翰林豪氣尙傳來

서로 만나서 하염없이 담론하는 곳에 / 相逢袞袞論談地

뱉어 낸 무지개 또한 장대하기도 해라 / 膽裏虹霓亦壯哉

 

금년엔 좋은 비가 채소밭에 넉넉히 내리니 / 今年好雨足蔬畦

흥겨워서 술동이를 날마다 휴대할 만하네 / 有興壺樽日可提

도필 갖고 속리 되는 건 감당치 못하지만 / 刀筆不堪爲俗吏

조강 먹으며 못난 아내와는 다시 마주하네 / 糟糠猶復對微妻

박복한 상은 고기 못 먹을 걸 진작 알거니 / 薄相曾知非食肉

마른 창자는 부추로 채우는 것만 기쁘다오 / 枯腸但喜得撑

일생의 출처를 내가 능히 결단하거니 / 一生行止吾能斷

곡식 갖고 누구에게 애써 점을 치리요 / 握粟何人强卜稽

 

세상일은 헝클어진 노끈처럼 분잡하여 / 世故紛如擾似繩

언덕이 골짝 되고 골짝이 언덕도 되누나 / 岸能爲谷谷爲陵

우경은 저술을 하여 공명이 엷어졌고 / 虞卿著述功名薄

가부는 때를 상심해 강개를 더하였지 / 賈傅傷時慷慨增

애꾸눈 말을 타고 못에 임할 수 있으랴 / 可是臨池騎瞎馬

칼 뽑아서 파리를 쫓을 것도 없고말고 / 不須拔劍逐飛蠅

곤히 자고 굶다 죽 먹다 함이 삼생의 일이니 / 困眠飢粥三生事

초연히 머리털 달린 중임을 스스로 믿노라 / 自信翛然有髮僧

 

인생살이 본래 엷기가 정히 깁 같았으니 / 人生薄薄正如紗

굳이 지금에 불우해진 것만은 아니라오 / 不必如今轗軻加

흐르는 세월엔 점차 흰 머리털을 보겠고 / 歲月漸看頭上雪

풍광 구경엔 때로 눈이 어른어른해지네 / 風光時眩眼中花

백년에 이두 같은 광염은 볼 수 없지만 / 光焰百年無李杜

천재에 기아의 아양 소리는 듣겠네그려 / 峨洋千載有期牙

홍진 속에 호목으로 무슨 일을 이루랴 / 紅塵蒿目成何事

소지하고 향 피우고 가부좌나 해야겠네 / 掃地焚香擬結跏

 

내 지금 만사를 못 이룬 걸 탄식하노니 / 萬事吾今嘆不諧

친구들도 적막하여 머리 거듭 돌리노라 / 故人寂寞首重回

어느 때나 신무문에 관을 걸 수 있을꼬 / 何時神武冠能掛

만년에는 향산에 향화사도 만들고 싶네 / 晩歲香山社欲開

이백의 한 잔엔 사람과 그림자와 달이요 / 李白一盃人影月

연명은 삼경의 전원으로 돌아갔었지 / 淵明三逕去歸來

녹담 금쇄는 소년 시절의 꿈이었는데 / 綠金鎖少年夢

여생에 이것 이루긴 이미 글러버렸네 / 料理殘年已矣哉

 

기심 못 없앤 게 한수의 밭에 부끄러워라 / 未息機心愧漢畦

연래엔 세상일이 귀를 자주 끌리게 하네 / 年來世事耳頻提

산에 오른 안석은 기녀 데리기 알맞았고 / 登山安石宜携妓

안석 기댄 유마도 역시 아내를 좋아했지 / 隱几維摩亦喜妻

날마다 태창에서 사들인 건 오직 쌀인데 / 日糶太倉唯有米

때로 숙취 깨려면 부추가 없을 수 있으랴 / 時消殘醉可無

일생 백년 보내기가 참으로 이러하거니 / 浮沈百歲眞如此

술잔과 함께 익살이나 하는 게 합당하지 / 合與鴟夷共滑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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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의령(宜寧)에 부임하는 윤 동경(尹同庚) 자영(子濚) 을 보내다.

 

현령 되는 걸 남은 좌천이라 하는데 / 爲縣人稱屈

어버이 생각해 그대 홀로 내려가네 / 思親子獨歸

가련하기는 율양 위와 같으련만 / 酸寒溧陽尉

문채는 노래자의 옷에 빛나겠지 / 文彩老萊衣

재주는 복잡한 사무에 응당 쓸 게고 / 盤錯才應試

평번으로 받드는 것도 어김 없으리 / 平反奉不違

후일에 인물을 논하게 되거든 / 他時人物論

충과 효 둘 다 혁혁히 빛날 걸세 / 忠孝兩輝輝

 

남방에 군량 운반할 일이 있어 / 南方庚運在

부절 가지고 네 사람이 가는구려 / 仗節四人歸

머나멀어라 강산이 격해 있으니 / 迢遞江山隔

처량하여라 소식 듣기 드물겠네 / 凄涼信字稀

중년이라 친구는 점점 적어지고 / 中年交契少

말로라 세상 인정도 그릇되는데 / 末路世情非

또 떠나는 그대를 보내려고 보니 / 又送君歸去

나는 날고파도 못 낢이 한이로세 / 飜身恨不飛

 

동년들 모두 머리털은 희었지만 / 同年俱髮白

먼 길 이별에 마음은 아직 붉구려 / 遠別尙心丹

나의 신세는 새장에 갇힌 학인데 / 身世吾樊鶴

그대 공명은 가시나무 난새로세 / 功名子枳鸞

그럴수록 원대한 꿈 열심히 키우고 / 還須勤遠大

굳이 어렵다는 말은 할 필요 없네 / 不必說艱難

지금 남쪽 고을 멀리 내려가거든 / 去去南州遠

그 몇 달이나 서로 그리워할런고 / 相思月幾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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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병중(病中)에 회포를 서술하여 임자심(任子深)에게 부치다. 6수

 

퇴지는 진작에 양성론을 지었었는데 / 退之已有陽城論

석개는 일찍이 경력시가 없었네그려 / 石介曾無慶曆詩

두 해 동안 방현한 게 부끄럽지 않겠는가 / 二載妨賢能不愧

피리 불어 남의 기롱받기에 꼭 맞고말고 / 吹竽祗足取人譏

 

흰머리에 푸른 도포를 입은 두 습유는 / 白髮靑衫杜拾遺

평생에 간쟁할 자질이 몹시 부족했는데 / 生平苦乏諫諍姿

부질없이 직설만 기대함이 가소로워라 / 堪笑徒然希稷卨

구구한 충의를 누가 알아서 허여할꼬 / 區區忠義許誰知

 

오랫동안 문필 종사를 사업으로 삼아서 / 鉛槧久爲事業

조석 끼니에 소금 부추를 감수해 왔는데 / 鹽自分度晨昏

두로 사십에 이르도록 이러한 지경이라 / 頭顱四十猶如此

만사를 한번 취하는 데에 맡겨버렸다오 / 萬事從敎醉一

 

석양에 말 타고 천천히 집에 와서 밥 먹고 / 騎馬棲鷄退食遲

대울타리 오동 보고 공연히 시만 쓰노니 / 尋梧埤竹謾題詩

일생에 옆 사람의 조소를 실컷 받으면서 / 一生贏被傍人笑

식은 고기 남은 술잔도 절로 아랑곳 않네 / 冷炙殘杯自不知

 

거년엔 작약꽃이 막 고울 때 구경했는데 / 去年紅藥看初艶

금년엔 노란 국화가 또 피기 시작하여 / 今歲黃花又向開

두 차례 가을바람이 모자 가득 불어라 / 兩度西風吹滿帽

유유한 이 신세는 술이나 마실 뿐이로세 / 悠悠身世只銜杯

 

한유는 궁귀 보냈지만 궁귀는 안 떠났고 / 韓愈送窮窮不去

종원은 기교 빌었으나 기교를 못 이뤘지 / 宗元乞巧巧無成

십 년 동안 청산에 돌아갈 약속 저버리고 / 十年辜負靑山約

도리어 조복 입어 반평생을 그르쳐버렸네 / 還有簪袍誤半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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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윤 찰방(尹察訪)이 화답하므로 다시 차운하다. 4수

 

그대의 산수에 대한 정취를 알거니 / 知君丘壑趣

그윽하게 사는 걸 진작 좋아했었지 / 早愛卜居幽

옛날엔 도원량이었는데 / 昔日陶元亮

지금은 마소유가 되었네 / 今時馬少游

푸른 도포는 사람을 그르쳤거니와 / 靑衫能誤物

백발은 시름이 많음을 절로 알겠네 / 白髮自知愁

즐거운 땅이 모두 명교에 있나니 / 樂地皆名敎

세속 밖의 외도는 구하지 않으리 / 外身道不求

 

바위 앞 오솔길을 내 익히 알거니 / 慣識巖前路

어찌 속객이 찾아가길 용납하리요 / 寧容俗客尋

무심한 구름은 봉우리서 나오고 / 無心雲出岫

뜻있는 새는 숲을 알고 돌아가네 / 有意鳥知林

고상한 흥취는 산이 문에 당함이요 / 雅興山當戶

높은 정회는 달 가득한 거문고로세 / 高情月滿琴

뿌연 먼지가 지척을 흐리게 하니 / 紅塵迷咫尺

세상 도피한 마음을 그 누가 알랴 / 誰解遁時心

 

한가히 사는 낙을 위하여 말하노니 / 爲說閑居樂

산중엔 일마다 진기하기만 하네 / 山中事事奇

절벽의 꽃은 절로 피고 지고 하는데 / 巖花自開落

처마의 달은 몇 번이나 차고 기우는고 / 簷月幾盈虧

깊숙한 숲에선 매미가 급히 울고 / 深樹鳴蟬急

넓은 하늘엔 가는 새가 더디어라 / 長天去鳥遲

친구들로는 우리 무리가 있으니 / 交遊吾輩在

흥이 나거든 자주 서로 만나세나 / 有興數相隨

 

거취는 그대가 능히 결단했거니와 / 仕止君能斷

공명엔 나도 얽매이지 않는다오 / 功名我不

인정은 사물을 인해서 바뀌어가고 / 人情因物改

세상일은 마음과 서로 어긋나네 / 世事與心違

밝은 태양은 절로 조석이 있고 / 白日自朝暮

푸른 산은 옳고 그름이 없나니 / 靑山無是非

내 장차 전답과 가옥을 마련하여 / 行當問田舍

기꺼이 그대와 함께 돌아가련다 / 甘與子同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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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윤 찰방(尹察訪)이 화답하므로 다시 차운하다. 4수

 

그대의 산수에 대한 정취를 알거니 / 知君丘壑趣

그윽하게 사는 걸 진작 좋아했었지 / 早愛卜居幽

옛날엔 도원량이었는데 / 昔日陶元亮

지금은 마소유가 되었네 / 今時馬少游

푸른 도포는 사람을 그르쳤거니와 / 靑衫能誤物

백발은 시름이 많음을 절로 알겠네 / 白髮自知愁

즐거운 땅이 모두 명교에 있나니 / 樂地皆名敎

세속 밖의 외도는 구하지 않으리 / 外身道不求

 

바위 앞 오솔길을 내 익히 알거니 / 慣識巖前路

어찌 속객이 찾아가길 용납하리요 / 寧容俗客尋

무심한 구름은 봉우리서 나오고 / 無心雲出岫

뜻있는 새는 숲을 알고 돌아가네 / 有意鳥知林

고상한 흥취는 산이 문에 당함이요 / 雅興山當戶

높은 정회는 달 가득한 거문고로세 / 高情月滿琴

뿌연 먼지가 지척을 흐리게 하니 / 紅塵迷咫尺

세상 도피한 마음을 그 누가 알랴 / 誰解遁時心

 

한가히 사는 낙을 위하여 말하노니 / 爲說閑居樂

산중엔 일마다 진기하기만 하네 / 山中事事奇

절벽의 꽃은 절로 피고 지고 하는데 / 巖花自開落

처마의 달은 몇 번이나 차고 기우는고 / 簷月幾盈虧

깊숙한 숲에선 매미가 급히 울고 / 深樹鳴蟬急

넓은 하늘엔 가는 새가 더디어라 / 長天去鳥遲

친구들로는 우리 무리가 있으니 / 交遊吾輩在

흥이 나거든 자주 서로 만나세나 / 有興數相隨

 

거취는 그대가 능히 결단했거니와 / 仕止君能斷

공명엔 나도 얽매이지 않는다오 / 功名我不

인정은 사물을 인해서 바뀌어가고 / 人情因物改

세상일은 마음과 서로 어긋나네 / 世事與心違

밝은 태양은 절로 조석이 있고 / 白日自朝暮

푸른 산은 옳고 그름이 없나니 / 靑山無是非

내 장차 전답과 가옥을 마련하여 / 行當問田舍

기꺼이 그대와 함께 돌아가련다 / 甘與子同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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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시집 제5권 / 시류(詩類)

구일(九日)에 일찍 일어나 회포를 써서 장난삼아 지평(持平) 정자문(鄭子文)에게 주다. 4수

 

세월이 공같이 빨라 번쩍번쩍 지나가니 / 歲月跳丸瞥眼過

좋은 명절 만날 때마다 어찌한단 말인가 / 每逢佳節可如何

오늘 아침에 이미 높은 산 오를 흥취 있어 / 今朝已有登高興

웃으며 국화 꺾어서 모자 깁에 꽂았다오 / 笑折黃花揷帽紗

 

백대의 깊은 곳엔 늠름한 서릿발 날리고 / 柏臺深處凜飛霜

맑고 깨끗한 정회는 철석 같은 간장일세 / 氷雪情懷鐵石腸

남쪽 이웃 늙은 사간을 조소하지 말게나 / 莫笑南鄰老司諫

용산에서 모자 떨구어 중양 놀이 했다네 / 龍山落帽作重陽

 

목지는 세속 사람과 담소하길 바랐었고 / 牧之塵世須開口

두보는 옆 사람이 관을 바르게 해 주었지 / 杜甫傍人爲整冠

괴이하여라 깨끗한 풍도의 어진 어사는 / 怪底淸風賢御史

시 짓느라 술잔이 마를 겨를이 없네그려 / 詩成無暇酒盃乾

 

쓸쓸한 귀밑은 이미 오늘 백발을 더했는데 / 蓬鬢已添今日白

국화는 거년의 노란 꽃을 다시 피우는구려 / 菊花猶發去年黃

시호는 고 자 쓰기를 필요로 하지 않거니 / 詩豪不要題

술동이 앞에서 주정이나 실컷 부려야겠네 / 剩作樽前逞酒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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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篇 漢詩-사1部.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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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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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沙岩 | 작성시간 26.06.13 오늘도 좋은 자료 잘 가져 가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 작성자謙虛 | 작성시간 26.06.13 長篇 漢詩 좋은 자료들을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주말 휴일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시메온 | 작성시간 26.06.13 귀중하게 여기면서
    좋은 지침이 됨을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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