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끝난 수학여행
송유옹
어떤 이에게는 평범한 예삿일이 다른 누구에겐가는 예사적이지 않은 비범한 일이 될수도 있다.
오늘 하루는
예전에 수술한 후 회복 훈련삼아 타 보았던 휠체어를 타면서
아마 언젠가는 그럴 것이다 라고 생각해 왔던 장래를 앞당겨 실천해 본,
친구들에게는 힘든 날 이었지만 내게는 어쩌면 귀하고 고마운 날이었다.
그것도 또한 여러 친구들의 아낌없는 조력에 우정의 고마움과 귀함을 새삼느낀 그런 날이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곧 그러리라 고는 생각했지만 실제로 심각하게 대비하지는 않았던 날이 오늘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었는데…
모든 기능은
도구나 인간이나 내구연한이 다하면 노회하는 거라고 억지부리며 견강부회 하였었다.
어릴 적부터 굳건히 땅을 딛을 수 없던 다리는 나이가 들면서는 근육이 퇴회되며 근력이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내가 세상 사람이 되면서 가장 잘 한 선택이 무엇이었나 하는 질문에 나는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내 차를 구입하여 다니고자 하는 곳을 맘대로 다니는 것이라고 자신있게 대답을 했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면서 사방팔방을 돌아다녀 보면서 그래도 갈 수 없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먼발치에서 머리로만 걸어가야 하는 길과 곳이 있다는 것도 알았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는 장거리 여행의 피로를 느끼면서 점점 가능성의 한계를 느껴가고 있었다.
개인의 체력차를 인정하면서 그래도 체력에는 웬만큼 자신있다고 억지를 부렸지만 억지는 억지일 수 밖에 없다고 느껴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러한 조건때문에 젊었을 때도 나의 여행취향은
격의없이 말 잘 통하는 두어명이 여유있게 느적느적 방랑하듯 유람하는 것이었다.
여럿이 몰려 다니면서 시간에 쫓기듯하는 주마간산의 여행은 내가 다른 이들의 보조에 맞추지 못하고 여행의 신경을 그쪽으로 많이 써야하는 낭비적 여행은 싫어했다.
그렇다고 여럿이 전혀 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행가는 과정을 즐기며 차창을 스치는 풍경을 사진도 찍고 글감도 얻고 힐링하는 감성의 담금질을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차 보다는 내 차로 쉬엄쉬엄 다니는 것을 즐겨했다.
그럴수록 차로 갈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것도 얼마나 감지덕지냐 하면서 욕심을 버려야 했다.
그러면서 걱정되었던 것이 나이의 한계가 되어지면 휠체어에 의지할 수 밖에 없으리라고 각오하고는 있었다.
문제는 나 스스로는 감수하여야 겠지만 다른 이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너무 싫은 것이다.
그전에 마감한다면 그렇지 않겠지만하고 나를 심리적 정신적 발달단계의 임상으로 냉정하게 관찰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것은 퇴폐적 또는 패배적 사고가 아닌 내게는 지극히 명백한 현실적 관찰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한 현실이 점점 가깝다는 것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냉정한 현재의 심정이고 거역할수 없는 현상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나는 건강과 삶에대한 자포자기가 아닌 현실이어서 지쳐가는 삶에 대한 투정적 부정이 아닌
그 동안의 세월에 지쳐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것에 대한 위로를 원하지도 않고 또한 스스로에 대한 거부도 하지 않고있다.
이것이 지금까지 현실적 솔직한 고백이다.
이번 나들이는 지금까지의 어떤 여행보다도 색다른 경험이었고 너무 고마운 여행이었다.
예전에 못 느낀 것들을 익혀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8시 반에 출발하였다.
출발지는 친구 병원앞 목저지는 예산의 예당지와 수덕사였다.
예당지는 가보지 못했지만
수덕사는 예전에 태안반도 여행하면서 잠시 들러 본 적은 있었다.
그래서 여럿이 여행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중고등학교 동기모임의 나들이를 갈까말까 망서리고 있었다.
내심으로는 후련하게 한번 바람이라도 쐬고올까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친구들한테 불편함을 주면 어떠나 하면서 망서렸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다니러 온 친구로부터 오랜만에 보고 싶다며 친구들끼리 목마를 만들어 태우고라도 함께 갈 수 있으니 어릴적 우정을 다시 다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자는 소리에 아니 갈 수 없었다.
이건 늙은이들의 야유회가 아니었다.
나는 현지 상황을 보고 적당히 대처하리라 마음먹고 출발지인 회장 친구의 병원앞으로 나갔다.
적당히 얼굴들만 보고 돌아올까하는 생각도 하면서..
그런데 정형외과를 하는 친구가 병원 휠체어를 하나 가지고 가자한다!
어찌 그런 의견을..
그러면 누군가가 붙어있어야 하는데 그 불편함이란 지나 나나 고생일텐데 하니
출렁다리도 있고 호숫가 테크들도 있고 전망대도 있지만 서로 교대하며 협력하면 된다는 것이다.
30명이나 되는데! 하면서.
고맙기도하고 미안하기도 하면서도 돌아올 수가 없어서 함께 떠났다.
가는 도중 여로의 차창에는 녹음이 가득하였고
새로 모내기한 논들과 아직 모내기 전에 물만 가득하게 받아두어 금방이라도 개구리가 소리를 내며 뛰어다닐 그런 풍경들!
저렇게 높은 곳에서 무얼 먹고 살까 싶은 산 꼭대기로 난 작은 길 끝에 있는 집,
올망졸망 몇집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는 시골들!
내가 보고싶어하는 모습들이 그곳에 있었다.
나는 여정의 풍경을 즐기는 편이라 눈에 익지않은 그러나 많이 보아왔던 풍경들을 보며 그 안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꿈으로 살까 생각하며 창 밖에 흐르는 내 시상의 소재들이 될 모습들을 핸드폰에 열심히 담았다.
예당호에 도착하여
남는 것은 그리고 우리네 유산은 사진밖에 없다며 인공폭포앞에서는 순서를 기다리면서 까지 사진에 기록했고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유산 남기기에 여념들이 없었다.
이 순간 가장 청춘의 모습으로 폼을 잡아가면서.
출렁다리를 건너 데크를 돌면서 벌써 여름인 하늘을 피해서 그늘에 축 늘어져 흙장난하는 닭들처럼 군데군데 그늘을 찾아들고 모여서 객적은 농담이나 하며.,
길고 덜컹거리는 다리와 데크를 밀어서 건네준 친구는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다.
길고 경사가 높은 전망대가는 경사로를 여기까지 왔으니 꼭 올라가 전경을 보고가야 한다며
23층의 전망대가는 길을 예당호 도착부터 수덕사까지 뒤에서 밀어주는 약사친구,
앞에서 끌고가는 황소가 된 교장친구,
목발을 겨드랑이에 끼고 따라와 주는 영국 박사친구,
학교 다닐 때 업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니 이제라도 업고 올라가자고 떼쓰는 중앙의 고급공무원 연금받는 농부친구,
운동이 부족한데 힘쓸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며 덜컹거리는 길을 밀어주는 장군이 꿈이었던 금융계 짱이었던 사돈친구,
이쁜 글 쓰라며 저도 휠체어를 밀겠다며 한쪽씩 나누어 힘을 보태는 초등학교적 부터의 붕알 친구..
옆에서 뒤에서 우스게 소리들을 후렴하듯이 거드는 친구들,
앞에서 뒷걸음으로 사진을 찍어가는 미국백악관 태권도 감독,
진짜 사진작가로 오늘 불티나게 잘 팔린
미국 작가친구!
나를 나름 멋지게 찍으면 퓰리처상 작품을 만들었을 텐데! ㅎㅎ
이렇게 여러 친구들의 고마움의 빚으로 또 하늘에 감사의 기도를 적어야 할 친구들의 배려로
하늘처럼 높은 전망대에 함께 오를 수 있었다.
산속 길을 따라 수덕사에 도착하여 입구에 있는 미술관 갤러리의 개인전 작품들을 보고 점심먹은 산채비빔밥집 평상에서 동동주와 도토리묵으로 무사귀환의 고시래기원을 하며
술상을 제대로 벌릴 수 있는 엄마 품같은 우리의 밥집으로 모여서 본격적인 뒷풀이를 하였다.
오는 길에 잠깐 목을 축였던 맥주와 영인이가 가져온 양주. 포도주,
목포 인수가 보내 준 궁중주(이름은 잊었지만), 소주, 우리의 대포 군산 막걸리!
늘펀하게 앉아 퓨전 잔을 기울이며..
나는 이 기회에 무사귀환을 축하하며 오늘의 감사에 대한 말로 밖에 할 수 없는 감사의 말씀을 친구들에게 진심을 실어 올렸다.
벌써 군산 중고등학교에서 인연을 맺은 친구들은 53년,
반백년 지기들이다.
간혹 보이지 않는 먼저 간 친구들은 그리움의 객체로만 남고 아직 남아진 우리들은 그때의 치기들을 이제 달관의 주체로 어른인 영감으로 남겨진 값을 해야하는 지킴이가 되어 줄 것이다.
오늘 나는 한번도 친구들 하고 함께 가지 못했던 수학여행을 친구들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허연 숨을 강바람에 날리며 친구들이 너무 든든하고 우정에 감사드리지만
아침에 밥 먹고 똥도 안누고 나와서 짐이 무거웠을텐데 부려버리지 않고 끝까지 챙기느라 고생들 많으셨어.
그대신 운동량 부족해서 자꾸 근육 빠진다고 운동할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던 친구!
다음 기회에도 또 영광의 자리를 만들어 드릴게!
꼭 건강들 하시게.
고마워!
친구들 덕분에 좋은 수학여행 이었어.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시메온 작성시간 26.06.07 나에게는 그러한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 왔지만
그 현실이 눈앞에 닥치면 할 말이 없겠지요.
이제는 말없이 포기할 줄 알고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이제는 나에게 닥친 현실도 겸허하게
받아드리는 마음도 가져야 하겠지요.
그래도 옛날 친구들이 손발이 되어주고
몸을 부딪치며 함께 해주어 고맙기도 합니다.
많은 세월이 지나고 반 백 년 지기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함께 했으니
영원토록 기억에 남으리라 생각되네요.
잘 감상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새우는집 머슴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7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