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박씨 아저씨
송유옹
지금은 원두막이 무엇인지 생소해서 모습 조차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원두막이란 말만 들어도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 오를 만큼의 아름다운 추억을 지닌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눈물이 날 만큼 슬픈 사연을 지닌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린 나는 이런 추억의 경험들을 한꺼번에 지니고 살고 있으니
애늙은이였나 보다.
6월처럼
나뭇잎은 점점 넓어져 바람소리 시원하지만 햇볕은 짱짱해서 그늘막이 그리워지면,
영락없이 필요한 것이 얕으막하지만 시원한 원두막이다.
지금은 농막이라며 패널로 별장처럼 지어서 울긋불긋 칠하여,
멀리서 보면 예쁜 비둘기 장인가 한다.
그 때에 비하면 조용한 산속에 지어놓은 팬션임에 틀림없다.
그때의 원두막은
틀어지고 비뚤어진 잡목 서까래에 흔했던
지푸라기 이엉 얼기설기 엮은 용마루에
바람에 지붕 날아가지 말라고 흙 몇 삽 떠서 던져놓고, 잡초 뽑아 뿌리째 던져 덮으면 지붕공사는 끝이었다.
마루바닥도 왕골 멍석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고급이고, 그저 가마니 거적대기 두어 장 타서 펼쳐 놓으면 지금의10평짜리 임대 아파트 부럽지 않은 고대광실이었다.
그렇게 함부로 지어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풀은 지붕 위에서 들꽃도 피우고 이듬 해에는 새싹을 틔우니
얼마나 멋진 전원주택이랴!
아무리 멋진 팬션같은 컬러풀한 농막이라도 어찌 이 자연의 원두막을 흉내라도 낼 수 있으랴?
물론 모든 원두막이 이러하지는 않았다.
그 때도 주인네의 미적 안목과 솜씨와 정성에 따라
원두막은 달랐다.
말라 비뚤어진 꼬부랑나무 네 귀퉁이에 기둥 세우고 지푸라기 썩은새 보다 조금 싱싱한 것 새끼줄로 엮어서 척 던져 덮어 놓으면
여름철 흙집 시원한 것은 누구나 아는 이치라.,
수박 밭, 참외 밭에
어느 놈이 서리하러 오는가 지킨다며
마누라 시켜 막걸리 한 주전자, 김치 한 보시기 내다 달라며
무슨 큰 벼슬이나 하는 것처럼 헛기침하며 거들먹 댄다.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보이면 불러들여 막걸리 내기 장기두다가,
술 취해서 가마니 마루바닥에 대자로 코 골며 단침을 흘리면서 잠이 든다.
박첨지 술 취하기만을 기다리며 기회를 노리던 촌 악동 놈들이 맘 푹놓고 망 보는 놈들도 없이 달라붙어
잘 익은 참외 수박만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코대고 냄새맡아 단내나는 것만 골라 따다가도
혹시나 박첨지 깰까 급한 마음에 아무거나 걸리면 그냥 따서 런닝구 가슴속에 집어 넣는다.
박첨지는 꿈 속에서 세상 모르고 건너 동네 주막네의 분 냄새에 빠져 입가에 단침을 질질흘리며 헤맨다.
그래도 서방이라고 원두막 지키는 박첨지가 굴찍할까 봐, 씨하고 남겨둔 작년 옥수수하고 감자 몇개 쪄서 내온 마누라는
서방 화상이 기가막혀 가져 온 소쿠리를 그냥 들고 내려가 버린다.
썩은 지붕에 비라도 내려서 눅눅하면 냄새 고약해 닭조차 먹지도 않는 노래기가 온 몸을 운동장 삼아 놀아도,
막걸리 사발에 맹꽁이 배가 된 골마리를 내 놓고
벅벅 긁으며 별 뜰 때까지
온 밭의 수박 참외 서리되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잔다.
술이 깨어서야 눈을 뜬 박첨지는
이놈의 여편네가 밥 먹으라 깨우지도 않고, 서방 뒤졌나 구부다 보지도 않는다고 혼자 구시렁거리며 언덕 길을 더듬어 내려 오다가
듬성듬성 이빨빠진 참외 밭에 오줌을 누면서 하늘을 바라본다.
별빛이 초롱초롱하고 개똥벌레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소싯적 마누라와 원두막에서 연애하던 생각에
힘 없는 오줌발만 나무라며 불꺼진 고샅에 접어드니
누렁이만 맨발로 뛰어 나와 앞 뒤로 반긴다.
이것이 원두막이었는데!
어디 그것 뿐이랴?
갑돌이와 갑순이가 물레 방앗간에서만 연애한 줄 알지만
별빛 초롱한 원두막은 라운지 멋진 야경의 오성급 호텔의 스위트 룸이었는데!
비오는 날
황순원의 소나기 촌놈 머슴아와 창백하게 아팠던 도시 계집애의 덜 익은 풋풋한 사랑 얘기도 전설처럼 흘러 내려서
소나기 낙수 소리에 슬프고도 예쁜 가락의 본거지가 원두막이었는데!
어디,
울긋불긋 주막집 갈보같이 화장한 농막과 비교하리오!
비 오는 날
입 맞춰 주던 못 생긴 복순이가 그래도 그리운 원두막인데!
박첨지는 마누라 다녀간 줄은 꿈에도 모르고 하루종일 원두막 지키느라고 심심해서 혼났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마누라 눈치만 슬쩍슬쩍 본다.
그러고 보니 사내놈
다 그놈이 그놈이다!
나도 풋 호박전 두어장 부쳐들고
호로병 옆구리에 차고
원두막이나 찾아 나설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