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고] 전광식 전 총장의 한동훈 예찬론과 현실 왜곡, 고신 개혁주의 신학은 죽었는가?고명길 목사 (고신애국지도자연합 전문위원장
작성자차상기작성시간26.06.16조회수2 목록 댓글 0[언론기고]
전광식 전 총장의 한동훈 예찬론과 현실 왜곡, 고신 개혁주의 신학은 죽었는가?
고명길 목사 (고신애국지도자연합 전문위원장)
최근 전광식 전 고신대학교 총장이 발표한 「현 나라 상황에 대한 일곱 가지 단상」을 읽으며 깊은 충격과 비통함을 금할 수 없었다. 차별금지법과 낙태 허용, 문화 마르크스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한국교회의 경각심을 촉구한 부분은 일정 부분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글 전체를 관통하는 정치 인식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자유보수의 가치를 훼손한 정치인에 대한 과도한 찬양, 선거 공정성 논란에 대한 침묵, 그리고 애국 시민들을 향한 ‘극우’ 프레임은 개혁주의 정치신학의 관점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이다. 고신대학교 총장을 지낸 신학자의 현실 인식이 이토록 일면적이고 모순될 수 있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안타까움을 느끼며, 그의 글이 고신 내에 아무런 비판 없이 수용되지 않도록 몇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들을 짚고자 한다.
1. 한동훈의 겉모습에 매료된 전 총장의 5가지 극찬과 그 허구성
전 총장은 글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여 한동훈 씨를 향해 눈이 멀어버린 듯한 찬사를 쏟았다. 전 총장이 예찬한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한 씨가 「호위 인사들을 대동하지 않고 홀로 뛰며」 대중 속으로 들어갔다고 찬양했다.
둘째, 「의상이나 모습에서 권위적인 요소를 싹 뺐으며」 새로운 정치인의 패러다임을 보여주었다고 치켜세웠다.
셋째, 「탁월한 설교자처럼 조리 있고 핵심을 던지는 연설을 했으며」 대중을 설득하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넷째, 자신의 행보를 「시시각각 SNS에 올렸다」는 점을 들며 세련되고 신선한 선거 기술을 극찬했다.
다섯째, 결과적으로 그가 「보수의 중도 확장 가능성을 실증한 셈」이며, 「신선하고 품격 있는 운동」으로 선거를 이끌었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비평: 정상적인 정치인이라면 이 같은 평가가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배신과 파괴의 아이콘인 한동훈을 이토록 예찬하는 것은 분별없는 관점이 아닐 수 없다. 정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이 과연 권위 없는 의상, SNS 활용 능력, 세련된 말장난과 같은 마케팅 기술에 있어야 한단 말인가. 한동훈은 결코 '품격 있는 정치인'이 아니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잔인하게 구속 수사하며 보수 진영을 궤멸 직전까지 몰고 갔던 시절을 자신의 "화양연화"라고 당당하게 표현했던 인물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행보 속에서 자신을 친동생처럼 애지중지했던 윤 대통령의 등에 비수를 꽂아 배신했던 사실을 자유우파 국민이라면 다 알고 있다. 윤 대통령의 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며 좌파들에게 대통령 탄핵의 결정적 명분을 제공했고, 소위 국민의힘 당원게시판 사건에서는 대통령 부부를 향한 야만적인 공작과 분열의 중심에 서서 보수 내부를 철저히 파괴했다.
특히 한동훈을 예찬한다는 말은, 그가 앞장서서 배신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이 잘못되었고 탄핵이 정당했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만 가능한 논리다. 전 총장은 참으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국가 통치권자의 계엄 선포는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며, 이에 대한 탄핵 결정을 밀어붙인 배후에는 우리법연구회가 장악한 사법부의 왜곡된 칼날이 전제되어 있음을 신학자라는 이가 정녕 모른단 말인가? 지금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체제를 전면 부정하고 인민민주주의를 구축하려는 반국가세력들에 의해 전방위적인 국가 찬탈이 자행되는 절체절명의 시기이다. 이 거대한 체제 전쟁의 한가운데서 내부를 파괴한 한동훈을 품격이라 극찬하는 행태는 지독한 윤리의 마비인가, 아니면 신학의 부재인가?
성경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6)고 말씀한다. 배신과 파괴라는 악한 열매를 명백히 맺은 자를 단지 겉포장이 신선하다는 이유로 예찬하는 것은 신학자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역사적 분별력과 영적 분별력마저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2. 국가 근간이 흔들리는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철저한 외면
전 총장은 「이번 선거결과를 정직하게 말하면 야당이 이긴 게 아니라… 온건 보수의 합리성과 중도 확장성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며 선거 결과를 전적으로 '중도 확장'의 성과로 결론지어 말했다.
비평: 전 전 총장 글에서 가장 경악스러운 부분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선거 공정성 문제에 대한 완전한 외면과 침묵이다. 거대 담론인 차별금지법과 문화 마르크스주의는 경계하자면서도, 현재 자유우파 진영의 가장 뜨거운 화두이자 자유민주주의의 생명줄인 선거 신뢰성 문제에는 눈을 감았다. 사전투표의 취약성, 관리 부실 등 구체적인 부정선거 의혹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음에도, 선거 제도의 오염 가능성을 철저히 뭉갠 채 아전인수격 표 계산만 늘어놓는 것은 지식인의 비겁한 직무유기이다. 선거의 정의가 무너지면 차별금지법을 막을 의회 권력도 존재할 수 없음을 왜 모르는가.
3. 선거 정의를 위한 잠실 2030 청년 운동을 향한 비하와 모독
전 총장은 군중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우파 인사를 향해 「갑자기 생뚱맞게 군중 앞에서 핸드마이크를 잡고 재선거를 떠드는 모습이 애처로울 정도로 추해 보인 건 나만의 생각이었을까?」라며 조롱 섞인 어조로 말했다.
비평: 이 대목에서는 신학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일말의 온정이나 시대적 안목도 찾아볼 수 없다. 지금 잠실 거리와 광장에는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를 외치는 수많은 2030 청년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 청년들이 화염병을 들고 폭력을 선동하는가, 아니면 체제 전복을 꾀하는가. 아니다. 그들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두 손을 들고 밤새 "싱 할렐루야"를 찬양하며 나라의 공의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있다. 대한민국 미래를 걱정하는 청년들과 애국 시민들의 처절한 재선거 절규를 '생뚱맞고 추한 짓'으로 매도하는 태도는 오만의 극치이며, 피 끓는 청년 세대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모독이다.
4. 아스팔트 애국 시민들을 향한 무분별한 ‘극우’ 프레임 남용
전 총장은 우파 애국 운동을 향해 「우리 사회에 횡행하고 있는 우파의 극단논리」가 판을 치고 있으며, 이러한 「극우 목소리가 강해질수록 반비례적으로 좌파 권력의 인기는 치솟아 올랐다」고 애국 시민들을 정죄했다.
비평: 정치학적으로 극우(Far-right)는 폭력, 전체주의, 인종주의, 정치적 테러를 수반하는 파시즘 사상을 뜻한다. 나라가 좌경화되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태극기를 흔들고 기도의 제단을 쌓는 노년층이 극우란 말인가, 나라를 위해 눈물 흘리는 목회자들과 잠실의 청년들이 극우란 말인가. 정당한 정체성 투쟁을 벌이는 시민들을 향해 함부로 ‘극우’ 낙인을 찍는 행위는 보수 진영의 손발을 묶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자해 행위이자, 우파를 궤멸시키려는 좌파의 프레임을 무비판적으로 대변하는 이적행위에 불과하다.
5. 진리보다 표 계산을 앞세운 세속적 중도 확장론
전 총장은 「보수세력의 강화를 위해서는 앞서 말한 바처럼 이번에 한 씨가 보여준 것처럼 중도층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비평: 그의 논리를 지배하는 것은 오직 "중도를 확보해야 선거에서 이긴다"는 세속적 실용주의다. 그러나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진리와 거짓의 중간지대를 탐색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머뭇거리는 백성들에게 중도적 타협이 아닌 양자택일을 촉구했다. 오늘날 보수가 겪는 위기는 지나친 우경화 때문이 아니라 가치와 진리의 붕괴 때문이다. 중도 확보는 정치적 전략일 수는 있어도 결코 신학적 원리가 될 수 없으며, 가치의 희석을 통해 얻은 눈앞의 승리는 결국 모래성에 불과하다.
6. 좌파 진영의 언어 전술과 프레임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오류
전 총장은 「우파인사들은 자기 열심으로 좌파의 교묘한 전략에 이용당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하고…」라며 도리어 애국 시민들을 훈계조로 말했다.
비평: 참으로 적반하장이다. 오히려 아스팔트 우파를 향해 "극우", "극단"이라 쏟아낸 그의 낙인들이야말로 보수 진영을 갈라치기 위해 좌파 언론과 정치권이 만들어낸 교묘한 프레임과 정확히 일치한다. 진리의 파수꾼이어야 할 신학자가 좌파의 언어 전술에 그대로 놀아나 내부를 공격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앵무새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고신 교단의 장래를 생각할 때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
7. 불의와 타협하는 실용주의로의 고신정신 변질
전 총장은 「전면적 투쟁과 함께… 각개격파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 앞에서 한 씨 같은 온건 우파정치인들을 좋게 말했어도… 그들에게도 기독교적 가치의 합리성을 전하고 제시하여…」 온건 우파를 통해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비평: 우리 고신의 선배들이 목숨 바쳐 지킨 신사참배 저항 정신은 권력과 대중의 흐름을 거스르는 ‘타협 없는 원칙주의’였다. 당대 세속 권력의 눈에 주기철, 한상동 목사는 사회 안정을 해치고 타협할 줄 모르는 ‘극단주의자’로 보였을 것이다. 만약 전 전 총장의 논리대로라면, 그 시대에도 "지혜롭게 중도를 지키며 일본 권력과 타협해 교회를 보존하자"는 실용주의와 각개격파가 정답이었을 것이다. 현실 권력의 눈치를 보며 진리를 적당히 포장해 타협하려는 태도는 고신정신과 개혁주의 신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태도이다.
맺는 말
오늘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세련된 정치공학이나 한동훈식 이미지 마케팅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예언자적 용기이다. 중도 확장이라는 이름으로 불의와 배신을 덮는 신학이 아니라, 손해를 보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신앙이다. 고신의 선배들은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죽었다. 우리가 기념해야 할 것은 그들의 이름이 아니라 그들의 서슬 퍼런 진리주의 정신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룟 유다처럼 주군을 배신한 한동훈을 예찬한 것은 전 총장의 거대한 과오이자 실수였다. 지금 이 시국은 단순한 정권 다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근간을 통째로 허물어뜨리려는 반국가세력과의 치열한 체제 전쟁기다. 전 총장은 눈앞의 얄팍한 이미지 정치와 가짜 품격에 박수 치는 행태를 당장 멈추어야 한다. 정치는 짧지만 진리는 영원하다. 민심은 변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는다. 개혁주의 신학은 결코 현실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체제 파괴 세력의 프레임에 동조하는 얄팍한 신학이 아니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고신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학교 후배이자 총장을 지낸 전 전 총장은 오직 변치 않는 말씀의 거울 앞에 서서 준엄한 공의의 길, 고신의 본래 정신으로 속히 돌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