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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설교

녹취문: 제 8복, 의 위해 박해 받음의 복, 천국과 상_태승철 (마 5:10-12)

작성자제로원|작성시간22.08.12|조회수106 목록 댓글 0

제 8복, 의 위해 박해 받음의 복, 천국과 상

(마 5:10-12)

  

인터넷 신년 사경회 지금 8복을 하고 있는 중에 오늘은 마지막 여덟 번째 복에 관한 내용을 우리가 함께 살펴보며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마태복음 5장 10절부터 12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마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의를 위해서 박해 받는 자의 복, 천국과 큰 상에 관한 내용을 우리가 함께 나눕니다. 

천국이 복입니다.

요번에도 첫 번째 복처럼 천국이 복으로 주어집니다. 처음에는 마태복음 5장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그리고 오늘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그 의를 위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님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게 될 경우 왜냐하면 예수님이 의의 총화시니까, 우리가 의를 얻는다 할 때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의로워지니까 같은 동의어로 쓰십니다.

 

의를 위해 핍박 받는 것과 주님을 위해 핍박받는 것 그렇게 할 경우에 천국이 주어진다! 

말씀드렸듯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라,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라 두 번째서부터 일곱 번째까지 여섯 개의 복이 미래형으로 쓰여 있는 반면에 이 첫 번째와 여덟 번째 복, 천국의 복은 현재형으로 쓰여서 천국이 지금 너희 것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그러면 우선 우리가 핍박받는 자의 복으로서의 천국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받게 되는 천국 그 첫 번째 복과 이거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를 알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천국이라고 했지만 똑같은 의미로 반복하지는 않으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심령이 가난한 자와 의를 위해 핍박받는 자가 달리 표현되고 있듯이.

   

그러면 도대체 천국이라고 하는 상황, 말로 천국 천국 하는데 죽어서만 가는 게 아니다. 살아 있을 때도 천국을 누리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데 도대체 그 상황이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상황 주님이 말씀하시잖아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도대체 어떤 상황을 말하는 것이고 지금 내가 천국을 들어간다는 것은 천국이 내 것이 된다고 하는 것은 뭘 말하는 것이냐? 

비유적으로 여러분, 그림을 한번 마음속에 우리가 그려봅니다.

그 왜 헬스클럽 같은 데 가면 휘트니스 센터 같은 데 가면 이 허리 운동할 때 쓰는 큰 플라스틱 공이 있잖아요? 아주 부드러운 재질로 만들어서 그 위에 허리를 대고 이렇게 누우면 찌그러지기는 하지만 결코 터지지 않는 큰 공이 있어요.

그런 공을 무겁지 않으니까 바닥에 하나 대고 그리고 그 위에 하나는 얹어 놨다고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면 공과 공이 마주치는 것은 한 점 그걸 우리가 뭐라고 그러냐면 붙어있는 점이라고 그래서 接點이라고 그래요. 큰 공 두 개를 이렇게 바닥에 하나를 놓고 하나를 들고 그 위에 올려놓으면 접점이 생겨서 두 개가 붙게 됩니다.

 

내가 사는 삶, 이 지구 위에서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삶이 밑에 있는 공이라면 천국은 위에 놓여 있는 공과 같은 거예요. 접점이 생긴 겁니다. 그 접점이 뭐냐 하면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삶과 십자가 복음 사건을 일으키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그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일생이 바로 천국과 이 땅에 접점을 이루신 거예요. 

주님이 오시기 전에는 구약에서는 천국이라고 하는 개념이 명확하지를 않았습니다. 또 이생의 삶이 끝나고 저 세상의 삶에 대해서는 많은 무지한 채로 남겨 두고 있었던 것이에요. 지금 살고 있는 이 현실에 천국이 큰 관계가 없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이 천국을 등에 업고 오시면서 주님이라고 하는 한 육신을 입은 그 한 인간을 접점으로 해서 이 세상이 천국과 맞닿아 있게 된 겁니다. 그게 바로 천국이 가까웠다, 천국이 지금 인접해 있는 거예요. 옆에 있는 겁니다.

   

그러면 천국을 어떻게 관계하며 사느냐?

예수님을 믿는다는 게 여러분 뭡니까?

말씀드렸듯이 크레도 신경 '나는 믿는다' 라는 것을 라틴어로 「크레도(credo)」라고 그랬잖아요? 크레도가 무슨 뜻입니까? '심장을 드린다' 라는 뜻입니다. 크레도가 믿음의 신조인데 믿음이라는 게 뭐냐 하면 심장을 드리는 겁니다. 마음을 드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께 마음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누구라구요? 천국과 내 삶 이 세상의 나의 삶에 접점입니다. 그러니까 내 삶에서 내가 마음을 예수님께 다 드렸더니 그 마음이 예수님이라는 접점을 통해서 천국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들에게 일어났던 일이 愉快함을 너희가 얻게 될 것이다.

유쾌함이라는 게 뭐예요?

하늘로 호흡한다. 위를 향해서 호흡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하늘의 분위기 안에 감추어져 버려서 하늘의 공기를 호흡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예를 들면 마음이라는 게 이렇잖아요?

지금 나는 한국에 있습니다. 내가 한국에서 살고 있는 상황은 걱정 없이 안정적인 상황이라고 해요. 누가 봐도 걱정할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딸아이가 멀리 미국에 유학을 가 있습니다. 학교 기숙사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만 딸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 아니면 딸아이가 다니고 있는 도시에 총기 사건이 생겼어요. 엊그제 보니까 미국 투산이라고 하는 곳에서 또 여섯 명이 죽고 열두 명이 다치고 하는 이런 총기 사건이 일어났더라구요? 그 투산이라는 곳에 총기 사건이 나서 난리가 났는데 길거리에서 총기 사고가 일어났으니까 내 딸이 그 투산에 있는 어느 대학을 다니고 있다 그러면 나는 지금 한국에 있고 한국의 내 가정의 형편이 안정적이지만 왜 그렇게 불안합니까?

마음이 그쪽에 가있기 때문에 그래요.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딸에게로 가있기 때문에 딸의 상황에 따라서 내 마음은 엄청나게 불안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마음은 바다 건너서 딸에게로 들여보내졌기 때문에.  

그러면 이 상황을 거꾸로 얘기할 수도 있어요.

나는 지금 어렵습니다. 그러나 딸아이는 아주 안정되게 외국에서 생활을 잘 해내고 있어요. 그러면 마음이 딸아이에게 보내졌을 때 비록 이 땅의 현실이 어렵지만 거기서 위로를 받고 마음에 평강을 느끼고 감사하면서 이 내 몸의 현실의 어려움 속에도 거할 수가 있는 거예요. 

바로 이 천국이 예수님이 접점이 되어주셔서 이 땅에 접해 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몸이 이 땅에 처해 있는 상황은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예수님께 마음을 다 드렸더니 그 예수님을 접점으로 해서 내 마음이 천국으로 들어갔을 때 지금 내 몸이 놓여 있는 이 현실이 어떤 것이든지 아무리 불안하고 경제적인 위협이 있고 일이 안 되고 사고가 나고 혹시 이런다 할지라도 뭐 초대교회 교부들이나 아니면 사도들의 실지 생활을 보면 박해나 사고 그리고 고충이 끊이지 않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그들이 평강을 누렸던 것은 지금 내 마음이 천국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천국이 지금 활성화돼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이 가난하다는 게 뭐라고 그랬습니까? 여러분?

이 세상의 일에 대해서 이 세상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이나 사람에 대해서 이 세상의 무슨 물건에 대해서 사물에 대해서 지불할 마음이 없는 거예요. 돈을 쓸 수 없을 때 가난하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세상에 대해서 지불할 마음을 쓸 수 없을 때 마음이 가난한 거예요.  

마음이 가난해서 그 마음 다 어디 써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세상에 대해서 가난한 거지요. 세상에 대해 인색한 거지요. 그래서 마음을 예수님께 다 드려요. 그러면 천국이 내 것이 된다는 겁니다. 천국 안으로 너희 마음이 지금 들어가게 된다는 겁니다. 현재형 단어로 천국이 너희 것이다, 너희 마음이 지금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자, 그러면 이 3절에 마음이 가난한 자, 마음을 지불하지 않고 다 모아둔 것을 예수님께 몽땅 드렸더니 하늘에 들어가서 지금 내가 이 현재 지구 위의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하나님 보좌 옆에서 안식과 평화를 누린다 그러면 오늘 핍박을 받는 자의 복으로서의 천국 이야기는 뭡니까? 

이 이야기는 이제 제 몸이 마음이 가난해서 이 땅에서 지불하지 않고 다 모아둬서 하늘로 갔습니다. 그렇잖아요? 일부는 이 세상 사업에 있고 마음의 절반은 천국에 가고 그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천국에 올라갔는데 몸은 여전히 이 세상에 남아 있어요. 그럴 때 마음이 천국에 있는 상태에서 이 세상에 남아 있는 내 몸에 의해서 삶이 계속되는 상태 이게 바로 오늘 마지막 복의 언급이 이 상태에요.

 

첫째 절은 천국에 들어간 것을 말하는 것이고 두 번째 절은 천국에 들어간 사람으로서 이 땅에서 그 사람의 몸이 삶을 영위해가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償」이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너희가 핍박을 받으면 박해를 받으면 나로 인해서 온갖 거짓말로 너희를 해를 끼치려고 애를 쓰게 되면 그때 그런 일을 당할 때 즐거워하고 기뻐하라. 왜냐하면 하늘의 상이 크다. 모든 선지자들이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그게 무슨 얘기입니까?

상이 크다는 게 뭐예요?

상이 주어진다는 것은 일단 내가 소속된 소속의 단체나 소속의 나라나 소속의 조직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그 조직에서 내가 속한 나라에서 내가 속한 단체에서 내게 상을 주는 거예요. 내가 속한 소속에 공헌하고 소속에 뭔가 큰일을 했을 경우에 잘했을 때 상을 주는 거 아닙니까?

연말에 보니까 연예대상 받고 그러더만요. 그런데 KBS에서 연예대상 줄 때 SBS 드라마에서 잘한 주인공에게 준 게 아니지 않습니까? KBS에 소속된 사람에게 주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런 것처럼 상이라고 하는 게 천국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상이 마련된다. 다시 말하면 이 땅에서 아직 몸이 죽지 않아서 살고 있는데 그 사는 모습 속에서 천국 소속인 것이 確證된다 이겁니다. 아! 너는 그야말로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이 확증된다.

 

그런데 요번에 천국은 앞의 3절의 천국과 다른 것이 상을 받는다. 그 사람이 소속이 되어서 이게 3절입니다. 천국의 소속이 된 게. 그 소속원의 신분으로서 이 땅의 삶을 천국사람답게 살았다. 그러니까 상이 주어지는 천국이라는 거예요. 천국은 천국이되 상 얘기가 보태지는 겁니다. 

왜 여러분 천국이 지금 우리가 복으로서 현재형으로 주어집니까?

천국이 지금 접해져 있어요. 내 가족의 상황과 내 사업의 상황이 지금 내 삶에 일부가 되어 있는 것처럼 천국이 내 이 세상의 삶에 예수님을 접점으로 해서 접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예수님께 드리고 들어가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마음이 들어간 상태에서 이 땅에서 천국의 원리를 따라서 살았습니다. 잘살 때 상이 주어진다는 거지요.

 

여러분 이런 거예요. 사도 바울이 경주자의 비유를 들기도 했습니다마는 우리가 잘 아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선수 중에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지금 2010년도의 선수로 뽑힌 사람이 있어요. 2010년도에 각 분야 그러니까 메이저리그 야구 아닙니까? 야구에서 타자면 타자 투수면 투수 아니면 수비면 수비 각 분야에서 올해의 선수를 뽑는데 타자 부분에서 2010년 올해의 선수로 뽑힌 사람이 누구냐 하면 28살의 추신수라고 하는 대한민국 선수입니다. 아직도 한국 국적이에요. 요번에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을 하는 바람에 병역을 면제 받았어요. 지금 난리 났습니다. 연봉이 천만 불의 단위로 이야기 되고 있어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소속이거든요? 잘 팔리니까 장기 계약을 안 하려고 그래요. 

이 경우를 잘 보면 천국에 마음이 들어간 사람이 이 땅에 사는데 상이 주어진다는 게 무슨 얘기인가 우리가 좀 더 실감할 수 있다는 거예요. 

추신수 선수의 연봉이 3년 2천만불 얘기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그리고 올해의 선수로 뽑히고. 왜냐하면 한 게임에 타점을 일곱 개 그 사람 때문에 7점이 이루어졌고 한 게임에 홈런을 연달아 세 개를 쳤고 그래서 일들이 되었거든요? 그러면 메이저리그라고 하는 미국의 큰 50개 주에 속해 있는 모든 야구 단체를 관할하는 조직이 있습니다. 그 메이저리그에서 상을 받는 거예요.

연봉 최고의 선수로 그야말로 호가를 누리는 겁니다. 올해의 선수로 메이저리그라는 조직에서 뽑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메이저리그에서 그렇게 막 천만 불의 사나이가 되고 올해의 타자 부문에 일등이 되고 MVP가 되는 이 모든 일이 메이저리그 조직 안에서 일어나는 거지만 추신수 선수가 그걸 위해서 한 일은 야구장에서 야구 방망이로 공을 후려친 거밖에 없어요. 야구장에서 공을 후려쳐야 메이저리그라는 조직에서 그렇게 상을 받게 됩니다. 메이저리그 조직 안에 들어와서 로비를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냥 야구장에서 야구 방망이를 휘둘러 댄 거예요. 그런데 빵빵 맞아서 홈런이 한 게임에 세 개가 나오고 칠 때마다 점수가 나서 자기 팀에 일곱 점을 안겨주고 그래서 MVP로 뽑혔습니다. MVP로 뽑힌 건 메이저리그 조직 안에서 뽑힌 거고 이 사람이 활동한 건 야구장에서 활동한 거예요.

그러나 지금 내가 야구 게임을 하는 것이 지금 현재 메이저리그 조직위원회의 기록카드에 기록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상을 받는다는 게 죽은 다음에 들어갈 천국에서 있을 일로 생각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지금 야구장이라고 하는 내 이 세상의 삶에서 천국의 시민답게 잘 살아가면 지금 내 삶에 접해 있는 천국에서는 record가 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을 해봐요. 천국에서는 눈물이 없다고 그러잖아요? 눈물이 없다고 그러는데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면 모든 눈에서 눈물을 씻겨주시겠다는 거 아닙니까? 울 일이 없는 게 천국이지요. 맞지요.  

그런데 울 일이 있을 거 같아요. 연말 시상식 때에 연예대상 연기대상 보면 상 받는 사람들이 감격해서 거의 절반 이상은 울어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더만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분명히 이전의 눈물과는 다른 눈물이 있는 거 같아요.  

어떨 때 우느냐?

하나님 보좌 앞에서 기록카드에 여러분의 이름과 함께 상이 적힐 때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감동과 감격과 감사가 생기면서 눈물이 나는 거 같아요.  

그게 현실적으로 있어질 거예요. 정말 천국이 마음에 들어가 있고 그리고 이 땅에서 내 몸이 추신수 선수가 야구장에서 뛰듯이 아버지로서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아니면 독신으로서 직장인으로서 교회 일원으로서 교회로서 아무개 목사로서 집사님으로 장로님으로 살고 있는 이 동안에 하나님으로부터 천국이 지금 상이 기록되고 있다고 그러면 그 상이 확정될 때마다 내 마음에 감격이 일어나고 눈물이 일어날 거 같아요.  

같아요 라고 말을 쓰는 것은 다 경험해보자 이겁니다. 제가 그렇게 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기도 곤란하고. 상이라고 하는데 제 입으로 얘기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다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상 받을 때의 감격, 아니 KBS에서 연예대상도 아니고 연기 신인상을 받아도 울고불고 난리인데 지금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천국시민으로서 천국의 마음이 있는 사람으로서 마음을 천국에 둔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이 예뻐서 하나님이 보좌에서 상을 결정하시는데 내가 어떻게 마음에 눈물과 감격이 없겠습니까? 이게 지금 통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누가 알리요 라고 그러잖아요. 성령께서 아시지요. 성령께서 내 마음에 그런 감동을 주시지요.  

그래서 지금 내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돈이 없어 고민스럽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기도하는 거예요. 십자가 붙잡은 기도밖에 없어요. 돈 기도, 건강 기도, 자녀 기도, 노후 기도, 성공 기도, 형통 기도가 아니라 십자가 기도.

 

<주님! 십자가를 통하여 이 세상에 지불되고 있는 모든 마음을 다 거두어들이게 해주세요. 모든 지불되고 있는 거래처를 다 십자가에서 끊게 해주세요. 그리고 내 마음 다 모아서 주님을 접점으로 삼아 붙어 있는 천국 안으로 들어가게 해주세요.> 

그러니까 돈 때문에 괴롭지 않습니까? 일이 잘 안 돼서 괴롭지 않습니까? 그럴 때 무조건 그 일을 기도하지 말고 그 일에서 빠져나와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겁니다. 이렇게 기도해서 들어가서 마음이 천국에 머물면서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쓸어주시고 위로해주세요. 옆으로 불러 주신 거니까.

 

'파라칼레오' 위로라는 말 아닙니까? 그래서 용기를 얻고 이 몸이 살아갈 때 어! 하나님의 역사도 나타나고 천국시민으로서의 삶이 나타납니다. 이때 갑자기 상아 나타나요. 현실적으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보일 수도 있고 내 마음에 아! 어쩌자고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평강을 주실까 감격과 감동이 일어나면서 눈물이 날 때가 있어요. 

사도 바울이 매 맞고 찢기고 피 흘리면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노래하고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그 감동이 어디서 왔겠어요?

뭔가 지금 상이 주어지고 있는 거예요. 연예대상에서 상 받고 마이크 앞에서 울고 있는 것처럼 감옥에서 지금 천국의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것이 알려진 거예요. 천군천사들이 모여 있고 하늘의 정말 회의석상에서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지금 상을 줘야 되겠다고 결정하신 것이 지금 전해지고 있을 때 감사와 찬송이 감옥에서 나온 거지요.

 

그러면 어떨 때 그러한 상이 주어지고 천국을 소유한 자로 확증이 주어집니까?

그게 좀 이상하다는 거예요.

추신수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상을 받으려면 타율이 높으면 돼요. 박지성 선수가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상을 받으려면 골 수가 많으면 돼요. 연예인들이 연예대상에서 연기대상에서 상을 받으려면 연기를 잘하면 돼요. 우리가 그 감동스러운 프리미어리그 상과 메이저리그 상과 어느 방송국의 연예대상이든 아니면 영화제 대종상이든 어떤 상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상을 지금 내가 받고 느낄 수 있으려면 뭘 잘해야 되냐? 

좀 어이가 없어요. 핍박을 받아야 된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박해를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박해를 받을 때 즐거워하고 기뻐하라는 거예요. 연예대상의 후보에 지명되고 수상이 확정되었을 때 얼마나 기뻐하고 즐거워합니까? 그런 것처럼 이 세상에서 나에게 핍박이 주어지고 박해가 주어지고 온갖 거짓말로 나를 해치려 하게 되는 이런 일이 일어나거든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런 시상식에서의 상과 같은 상이 너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결정하셨으니까. 

좀 답답합니다. 박해 같은 것이 없는 상황이 복 받은 상황 아닙니까? 그런데 박해 받는 걸 기뻐하라 하십니다.

 

여러분!

실제적인 박해의 현실. 내 잘못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 박해가 주어지는 것은 여기 해당하지 않아요. 다시 말하면 십자가에 달린 주님과 연합해서 그 연합 상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제가 그랬거든요? 십자가 휠체어다. 두 다리가 불편하신 소아마비에 걸리신 장애인 같은 경우에 평생 휠체어에서 24시간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것처럼 십자가 휠체어를 타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십자가에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과는 다르게 사는 겁니다. 

벌써 마음이 세상에 가난하다는 것부터가 문제에요. 마음이 가난한 자가 세상에는 없어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르면서 마음이 가난한 자는 세상에 없다는 거예요. 돈은 가난하지만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건강은 가난할 수는 있지만 지식으로는 가난할 수는 있지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예수님 밖에서는 없습니다.

왜? 자식에게 마음 쓰고 아내에게 마음 쓰고 남편에게 마음 쓰고 내 건강에 마음 쓰고 교회 일에 마음 쓰고 뭐에 마음 쓰고 뭐에 마음 쓰고 마음을 얼마나 지불들 하고 삽니까? 마음을 많이 많이 지불해요. 다들 마음에 부자들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 세상에서 마음이 쫄쫄 가난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됩니다. 이게 바로 의를 위해 사는 거예요. 왜냐하면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의의 사건이니까. 그 의를 위함은 주님의 십자가와 연합하는 것이지요. 그럴 때 박해가 주어진다는 겁니다. 

왜? 삶의 방식이 다르니까. 박해받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역방향으로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요즘 시대에 옛날 초대교회 시절을 생각하면 그런 식의 박해가 없지요. 누가 사자의 밥이 되게 하고 누가 화형을 시킵니까? 그런 사람 없어요. 그리고 굴속에 들어가 살아야 되는 게 아니에요. 지하실에 일부러 멋지게 하려고 교회를 그렇게 건축한 것 말고는 굴속에서 예배드리는 교회가 어디 있어요?

 

기껏 우리가 예를 들 수 있다는 것은 군대 갔을 때 주일에도 초코파이 때문에 교회 가는 게 아니라 성수주일 하려고 교회에 간다. 또 어떤 부대는 교회를 못 가게 하는 상관들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갔다. 박해 상황이라는 게 뭐 이런 정도…

또 며느리로 시집왔는데 불교 집안으로 시집왔다. 니가 들어오고 나서 집안이 다 안 된다. 교회가지 마라. 이런 정도의 이야기가 예로 들 수 있는 이야기지만 보편적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후의 초대교회가 겪는 상황과 같은 박해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박해가 뭡니까?

좀 더 뜻을 엄밀히 살펴보면 내가 갖고 있는 삶의 원칙대로 살아가는데 그 삶의 원칙을 자꾸 무너뜨리고 망가뜨리고 해치는 힘이 박해 아닙니까? 나는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도록 하는 게 박해 아니에요?

나는 예수 믿어야 살겠다 하는데 예수 믿지 말라고 합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주님과 함께 연합한 자로 살겠다 그러는데 이 세상은 문밖에 나가기만 하고 눈을 휘둘러 보기만 해도 압력으로 다가옵니다. 뭘 한 게 아니고 세상 사람들이 나를 뭐 몽둥이를 쥐고 때린 것도 아니지만 주님의 십자가에 매달려서 이 세상에 지불되는 모든 마음을 다 거둬들이고 오직 하늘나라 하나님 보좌 앞으로만 주님을 통해 십자가를 통해서 다 보낸다. 그리고 내 몸이 살아 있는 이 현실 속에서 당장 부닥치는 가족의 일이나 사업의 일이나 이런 모든 것들을 다윗이 말한 대로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께 마음이 도망가는 바람에 내 마음이 없어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이 이 세상의 일을 살아가시고 하나님의 마음이 이끄시는 대로 받으면서만 살아가는 삶.

 

아무도 이렇게 안 사니까 바로 옆에 있는 김과장을 보기만 해도 김과장이 열심히 스펙을 올리기 위해서 영어공부를 하고 사장님에게 찾아가서 명절 구정 때 드릴 선물을 미리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 나는 이래도 되나? 입사동긴데… 이렇게 살다가 저 친구한테 처지는 건 아닌가? 그리고 날마다 자기계발서를 읽습니다. 긍정의 힘을 읽고. 김과장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난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긍정적으로 살아갑니다.

 

나는 맨날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습니다. 아니, 이래가지고 되나? 사도 바울의 말대로 날마다 죽기만 해가지고 무슨 일이 일어나겠나?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주시는데 하나님은 이 세상 아버지들처럼 주시는 게 아니더라 이겁니다. 세상 아버지들은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자식에게 막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세상 것이 다 하나님 것인데도 그렇게 안 주세요.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받는 게 내 마음에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기준은 자꾸 나를 실패자 loser로 취급해버리려고 합니다.

이 모든 게 박해 상황 아니냐구요?

 

십자가에 매달려서 날마다 죽으면서 제로 원의 원리로 이 세상에 대해서 내 마음이 제로다 라고 사는 게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날마다 죽는다고 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은 왜 나왔겠습니까?

마음이 천국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이 몸을 갖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부딪치는 사람마다 더군다나 사도 바울 때는 예수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이 사람한테 전도하고 저 사람한테 전도하고 전도하고 전도하다 보면 내게서 나가는 것도 있지만 그들에게서 오는 것도 있어요.

하루 종일 전도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피곤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간 것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서 들어온 것도 있어요. 천국에서 어느새 미끄러져 내려왔고 십자가에서 떨어져 나왔더라 이겁니다. 또 다시 세상에 대해 죽는 거예요. 십자가 붙잡고 세상에 대해 죽고 또 다시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거예요.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살아간다는 것 그게 바로 마음을 하나님께 하나님 보좌 앞으로 올려 드리는 것이고 천국이 내 것이 되는 것이고 또 그런 상태에서 내가 마음을 없앤 이 세상 삶의 장소에 하나님의 마음이 내려오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 가실 것입니다.

 

우리 어제 뭐라고 그랬어요? 「하나님 이기세요!」

정말 상황은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이거 꼴이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상황은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왜? 내 마음은 하나님께 올라갔어요. 주님의 십자가에서 그 일에 대해 죽었으니까.

그런데 그 일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세상 기준으로 볼 때 뻥뻥 터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답답해요. 하나님의 물레방아는 천천히 돌아간다고 누가 그랬습니다마는 그게 답답하지요.

그럴 때 하나님이 이기세요! 하나님이 이기세요! 하면서 이 세상 기준으로 볼 때 도저히 견디기 힘든 상황 그런 상황을 다 수용하고 갑니다.

이게 바로 의를 위해 핍박받는 겁니다. 의를 위해 주님의 십자가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이게 의를 위한 거지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데 삶의 모습이 쉽지 않아요. 그리고 나의 삶의 모습 삶의 원칙을 십자가 붙잡고 가려는 복음적 삶의 스타일을 이 세상 사람들이 한마디도 안 해도 너는 잘못된 거야. 너 그거 그만둬야 돼. 계속 지적하며 사는 겁니다.

 

예를 들어 옆집 아이가 어느 학원에 등록했다는 말만 들어도 박해가 되는 거예요. 어이구! 내가 이렇게 멍청하게 주님의 십자가에 매달려가지고 자식의 일을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해야지 하고 있어서 될 일이냐? 저 엄마는 벌써 다 정보를 뒤져서 어느 학원이 제일 좋다는 정보를 캐치해가지고 자식을 그 학원에 보내고 있는데.

벌써 박해로 나타나고 있는 거예요. 흔들리는 겁니다.

이게 바로 마귀가 사탄이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닌다는 사도 베드로의 말씀인 것이지요.  

사람만 박해하는 게 아니에요. 공중 권세 잡은 이 세상에서 마귀가 끊임없이 우리를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만들고 천국에서 끌어 내리려고 합니다. 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몸으로 보고 듣고 하는 것들을 마음에 계속 이어주려고 하면서.

 

여러분!

그래서 이 핍박을 받는 자에게 상이 크다는 얘기를 우리가 박지성 선수 주변의 이야기를 예를 들어서 해보면서 이야기를 마쳐요.

영국 프리미어리그에 속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고 하는 팀에 속해 있어요. 동양 사람으로 유일한 한 사람이지요. 동양 사람으로 어떻게 지내냐 업신여기며 따돌림을 당하는 건 아닌가 걱정을 하고 있는데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 신문 기사가 났는데 그 박지성 선수와 아주 가깝게 지내는 몇 선수를 꼽아서 신문에 기사가 나왔더라구요.

아, 고맙더라구요. 혼자 외로울 것 같은데 외국 생활을 해봤으니까 또.  

그런데 그 중에 테베스 라고 하는 선수가 있어요. 여러분 관심 있는 분들은 다 아실 거예요. 아르헨티나 출신 선수인데 이 테베스 선수가 잘 지내다가 아주 유명한 골잡이입니다. 월드컵 때도 우리가 그 모습을 봤고 지금은 맨체스터 시티(맨시티)라고 하는 곳에 이적을 해 갔습니다. 그러니까 맨유의 박지성 선수와 동료로 같이 있다가 맨시티로 이적을 해 갔어요. 

그런데 언젠가 보니까 한 2개월 전인가 그 맨유팀과 테베스가 새롭게 이적해간 맨시티 두 팀이 시합이 붙었더라구요. 제가 시합을 보지는 못했습니다마는 기사가 나왔는데 그 테베스를 맨유의 선수들이 다 테베스의 옛날 동료 아닙니까? 세명 네명이 집중적으로 마크를 하고 태클을 걸고 난리가 난 사진이 보여지는 거예요.  

이 상황을 가만히 생각하면 오늘 본문과 딱 맞아 떨어지는 거예요.

 

자, 핍박이 왜 주어집니까?

먼저 핍박이 주어지는 이유는 맨유에 있다가 팀을 바꾸었기 때문에 그래요. 요한복음에서 주님께서 뭐라고 그러십니까?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9)

우리가 천국 팀으로 팀을 바꾼 거예요.

 

그런데 핍박이 클수록 좋아해라. 무슨 말입니까?

이 테베스에게 세 명, 네 명이 집중적으로 태클을 걸고 들어오는 이유가 뭐예요? 골잡이거든요. 기가 막힌 골잡이거든요. 이 사람을 막지 않으면 안 되겠거든요. 그러니까 집중적으로 막는다는 것은 집중적으로 박해와 태클이 들어온다는 것은 상대방이 그만큼 위협적이라는 거예요. 그럴수록 위협적이고 그럴수록 맨시티의 감독은 테베스를 좋아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너무 실력이 있어서 겁나서 네 명의 수비수를 몰고 다니면 다른 데 구멍이 생기니까 다른 선수가 넣으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창이 큰 거예요.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에 골을 넣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돈이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마음에 평화를 유지합니다.

5복이 없습니다. 그런데 5복 있는 사람보다 마음의 평강을 더 유지하고 더 감사하고 더 기뻐합니다. 이건 아주 대형 골이 난 겁니다. 결승골이 난 겁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게 쉽지가 않은 거예요. 실제로 나는 마음이 천국에 있어 평강하지만... 

그러니까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고통을 느낀다고 하는 것과는 별개의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이 세상 전체가 나에게 압력으로 다가오지만 또 이 세상일이 잘 안 될 수도 있지만 내 마음은 사도 바울이 매 맞고 노래하는 것처럼 평강을 유지하는 겁니다. 또 사도들이 공의회에서 매 맞고 나올 때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당하는 자로 합당히 여기심을 기뻐하며 나왔다 그랬잖아요.(행5:41) 태클을 당한 거예요.

 

그런데 이런 선수가 있어요. 기독교인이라고 이름은 하는데 아무도 태클을 안 걸어요. 그냥 공 몰고 오면 수비수가 몸짓만 해도 다른 곳으로 공을 차버려요. 걱정할 게 없어요.

심지어는 요즘 교회 현실, 우리 교인들. 저나 여러분이나 신앙 형태가 어떠냐? 자살골을 넣는 거예요. 교회가 세상에 대해서 2:0으로 졌는데 왜 졌냐? 자살골이에요. 박해로 진 게 아니라 아예 자살골로 졌어요.

자살골이 뭡니까?

이 세상의 5복을 쫓아가는 거예요. 새 복 8복 안에서 사는 게 아니라 5복을 쫓아가는 거예요. 자살골을 넣는 거예요.  

자살골을 넣고 있는데 세상이 왜 박해를 합니까? 세상과 똑같은 목적과 세상과 똑같은 원리를 가지고 교회에서 설교하고 있고 그 설교를 듣고 살고 있는데 왜 세상이 박해를 합니까? 막을 필요가 없어요.

자기들끼리 하프라인을 넘어오지 않은 채 자기 골문에 자살골을 넣고 있는데 가만히 손 놓고 있으면 되는데 뭐하러 막아요? 태클을 들어올 필요가 없고 박해를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느끼지 못하는 거예요. 중압감을 느끼지 못하는 겁니다.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천국으로 마음이 들어갑니다. 그리고 어찌 하든지 세상을 살아가게 될 때 천국에서 주님의 십자가에서 딱 머무르는 거예요. 거기서 더 내려오면 안 돼요. 주님의 십자가가 경계선이고 접점입니다. 거기서 마음이 내려와 버리면 안 돼요. 내려와서 사업장에 가면 안 돼요. 내가 안 가면 내 삶의 모든 장소에 하나님의 마음과 뜻과 섭리가 가실 것입니다. 

그것이 혹시 내 뜻대로 아니면 세상에서 바라는 대로 세상의 기준대로 되지 않아서 답답할지라도 아멘으로 참고 하늘의 평강을 유지해갈 수 있다면 상이 주어질 것이에요.

이렇게 살아갈 때 사람들과 너무 다른 삶이 뚜렷이 구분되면 될수록 하늘에서 상이 클 것입니다. 그때 연예대상 받은 배우들이 우는 것처럼 우세요.

상 받아 우는 복이 일년내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8복으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접해 있는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씨름하며 기도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리고 마음이 천국에 머물고 십자가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 내 몸의 삶이 어떠한 세상의 저항 속에서도 천국에 골을 넣으며 사는 자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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