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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

(시92:1-15) “젊은 늙은이, 늙은 젊은이”

작성자플레로쓰데|작성시간14.04.19|조회수229 목록 댓글 1

                                 (시92:1-15) “젊은 늙은이, 늙은 젊은이”



1-3.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4.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5.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6. 어리석은 자도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7. 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8. 여호와여 주는 영원토록 지존하시니이다

9.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이다 정녕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니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흩어지리이다

10.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

11. 내 원수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일어나 나를 치는 행악자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귀로 들었도다

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13.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14.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15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오늘 시편 92편 말씀중심으로 “젊은 늙은이, 늙은 젊은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1967년 캐나다에 리키 캘런트라는 어린이가 있었습니다. 11살에 사망했어요. 11살에 사망할 때 이 어린아이의 신체상의 나이는 90세였다고 합니다. 전신에 노쇠현상이 만연하고 동맥경화, 탈모, 근육의 이완, 주름살, 관절의 급격한 노화 등으로 병명이 프로제리아입니다. 수백만 명중에 한 명이 걸리는 그런 아주 불행한 병에 걸려서 90세라는 신체상의 나이를 안고 11살에 죽었습니다. 

또 워너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어요. 이 프로제리아 병 말고도 조로하는 병중에 워너 증후군이 있는데, 멕시코의 과달라하라 도시에 16세 되는 수지 로페즈 소녀도 머리가 빠지고, 몇 가닥 남은 머리는 흰머리가 되어버리고, 그리고 손발의 관절이 노인처럼 딱딱하고 울퉁불퉁해지고, 온 몸의 피부를 노인성 각질이 덮어버리고 16살에 죽고 말았습니다. 이 워너 증후군 같은 경우는 8번 염색체에 이상이 있어서 그렇게 됐다고 해요. 


반면에 사람들은 그런 예를 많이 들더라고요. 나이가 굉장히 많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젊은이 못지않은 왕성한 삶의 열정과 에너지를 가지고 활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몇 가지 적어왔어요. 예를 들어 미켈란젤로가 불후의 명작인 "천지창조"를 성당천장에 그릴 때 80세 후반이었다고 해요. 그리고 처칠 수상이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책을 썼을 때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는데 그때가 82세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단군일백오십대손"이라는 그림을 보셨어요? 우리나라 현대 미술을 주도한 장우성화백이 그린 그림이에요. 아주 멋진 젊은 여성이 배꼽티에 선글라스를 끼고 휴대폰을 귀에 대고 통화를 하면서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입니다. 90세 나이에 장우성화백이 젊은 세대의 제스처가 마음에 잡히고 눈에 들어올 만큼 마음 자체가 젊었다는 이야기들도 합니다. 


오늘 이 시편 92편의 이야기는 악인과 의인을 비교해요. 여러 가지 면에서 악인은 풀 같은 반면에, 의인은 성전에 심겨진 종려나무나 백향목 같다고 합니다. 

악인의 흥왕은 순간에 지나지 않으며, 반면에 의인은 늙어도 진액이 마르지 아니하고 빛이 청청하며 결실을 한다고 대비를 시킵니다. 

악인은 패망하고 흩어지는 반면에 의인은 여호와의 정직함이 나타나고 여호와가 바위가 되어주시는 은총을 받는다고 악인과 의인을 비교를 합니다. 

그런데 전체적인 비유의 특징은 시간성이에요. 

의인은 영원하다고 하는 것에 포인트를 맞추고 7절에 “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라고 하고 8절은 “여호와여 주는 영원토록 지존하시니이다.”라고 여호와의 영원하심을 마치 의인이 뿌리내린 터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14절에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라고 하는데 '결실과 진액이 풍족한 것과 빛이 청청함'은 늙음에 대한 반대 개념들입니다. ‘늙었다’라는 것은 '진액이 마른다'는 뜻이에요. 말라 죽잖아요. 온 몸에 수분이 줄어듭니다. 피부에도 수분이 빠져나가서 각질이 생깁니다. 

‘결실한다.’는 것은 젊었을 때 애기를 낳지 않습니까. 그리고 주로 젊었을 때 활동하고 돈을 벌지요. '빛이 청청하다.'라는 게 다 젊음을 노래하는 개념들이죠. 늙음과는 반대예요. 그런데 의인은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의 지속성과 영원성을 염두에 두고, 몸이 아무리 늙어도 의인이 결실을 하는 이유는 뭐냐? 마치 2000년을 살수도 있는 백향목과 같이 하나님의 성전에 심기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성전에 뿌리를 내렸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일생의 힘을 다한 사람을 말합니다. 성전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 아닙니까? 그곳에 심기었다는 것은 마음이 그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에 다 가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 이후에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어주신 그분에게, 마음이 다 가있어서 사람을 나무로 비유할 때 그 마음의 뿌리가 하나님께로 가 있을 경우에 늙어도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해서 끊임없이 결실을 하는 반면에 하나님께 마음을 두지 않는 악인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젊은 늙은이와 늙은 젊은이를 다시 한 번 이야기하면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늙는 것은 3~4살만 돼도 늙어버려요. 늙는 것이 뭐겠어요? 늙음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닫힘과 마름입니다. 닫혀버린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여자들이 늙었다는 증거가 뭡니까? 폐경이 되어버려요. 닫혀버려요. 진액이 말라버리는 거죠. 그러면 애기를 못 낳죠. 늙어가는 증거입니다. 말라버리는 거예요. 애기 때는 신체 구성의 70%가 물이었다가 늙어가면서 55%까지 줄어든다는 거예요. 결국 말라죽는 것이죠. 닫힘과 마름, 이게 바로 늙음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의인이 늙지를 않는다는 것이에요. 무슨 뜻일까요? 반면에 악인은 닫혀버려요. 빨리 늙어요. 아무리 흥왕해 보이지만 순식간에 망해버린다는 뜻이에요. 왜 그렇게 조로해버리고 말까요? 왜 그렇게 의인은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할까요? 몸은 늙어 가는데 젊다는 것이에요.  

이 시편 92편을 쓴 기자의 관점이 뭡니까? 늙음과 젊음을 이야기하는 관점이 뭐예요? 

닫힘과 마름이에요. 무엇에 대해 닫혔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생각에 대해 닫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라고 합니다. 

주의 생각을 늘 받고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주의 생각대로 움직였더니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라고 합니다. 엄청난 일들을 행하시는데 도저히 그 생각의 깊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에 마음의 뿌리를 두고 사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부수적으로 다가오는 은혜라고 할까요? 요청이라고 할까요? 

사업상의 일이든지 자식문제, 배우자의 문제 등 어떤 문제든지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에서 문제가 주어지거나 직장에서 문제가 주어지면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의인들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마음을 온통 다 두고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내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생각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임재 하셔서 지금 지켜보고 계시니까, 하나님의 생각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데,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친밀하다 보면 하나님의 생각이 내게 전달이 되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얼마나 깊은지 헤아릴 수가 없다는 것이에요. 이게 열려있는 거예요. 


이 말을 우리 다시 한 번 쉽게 이야기를 해볼까요? 제가 집을 오르락내리락 하기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거나 타거나 타면, 그 시간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어린아이들을 그래도 잠깐이지만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에요. 한 번 말을 걸어보면 애들이 어떻게 그렇게 똑똑한지 몰라요. 저보다 말을 더 잘해요. 딱딱 떨어지게 말을 합니다. 이 상황이 한편으로는 신기하고 놀랍고 좋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염려도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이 있죠? 

이 말을 제가 나름대로 교육학적이고 심리학적인 단편적인 지식들을 종합해서 요즘 말로 다시 이해를 하면 이런 거예요. 교육학적이고 심리학적 차원에서 아이들이 정보를 수용하는 양은, 아무리 머리가 안 좋은 애도 똑같다는 겁니다. 

소위 그릇이 작다고 하는 경우는 하루에 5개씩 정보를 수용한다고 하면, 그릇이 큰 아이와 작은 아이의 차이는, 작은 아이는 예를 들어 간장 종지 같은 애가 있고, 대접 같은 애가 있고 그리고 큰 찬합 같은 애가 있다고 합시다. 간장 종지 같은 애는 5개의 정보가 들어오면 꽉 차요. 꽉 찬다는 것은 자체 안에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functional하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대접 같은 애는 10개 정도 차야 꽉 찬다는 것이에요. 그래야 움직일 수 있어요. 생각이 돌아갈 수 있어요. 찬합 같은 애는 5개, 10개의 정보가 들어와서 너무 엉성하게 퍼져 있어서 똑같이 수용하고 있지만 생각이 돌아가지 않아요. 간장 종지 같은 애는 5개만 들어와도 오밀조밀하게 딱딱 조여져 있기 때문에 기능하기 시작합니다. 벌써 세상의 가치를 다 인식해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10년 된 토요타 캠리 똥차를 놓고 애들이 빙빙 돌아가면서 ‘어, 이거 어디 차야? 처음 보는데.’라고 하더라는 거예요. 벌써 그 가치관이 우뚝 섰어요. 가치관이 섰다는 것은 뭘 말하는지 아십니까? 자기들 나름대로 생각이 돌아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대기만성이라는 말은 딴 말이 아니라, 수용되는 정보의 양은 똑같은데 그게 전체적으로 생각이 돌아가려면, 간장 종지 같은 아이가 5개면 돌아가도, 찬합 같은 애는 100개가 들어와야 그 때부터 돌아가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간장 종지 같은 애는 5개가 들어와서 그 아이가 생각하고 할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는데 벌써 꽉 차버렸어요. 더 수용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닫혀버렸다는 거예요. 늙어버렸다는 것이에요. 육체적으로 프로제리아 병이 있고, 워너 증후군이 있는 것처럼 정신적으로 병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어른들이 몇 살 되지 않은 아이가 똑똑하게 이야기하면 막 신기해하고 대단해하고 그래요. 이게 워너 증후군이고 프로제리아 병이라는 것을 모르는 거예요. 이미 닫혀버렸어요. 그 아이는 벌써 외제차가 눈에 들어올 정도가 됐어요. 초등학교 1학년도 안 된 아이들이. 

그 정도로 이 세속의 가치가 완벽하게 들어가 버리고 그런 가치 기준을 따라서 생각이 돌아가기 시작했다고 하면, 그 아이는 이미 다 만들어졌고 더 이상 새로운 가치가 형성되거나 불가능해진 거예요. 다 만들어졌어요. 벌써. 프로제리아 병에 걸린 것이에요. 


여러분! 믿음이라는 게 뭐예요? 주님의 십자가에서 내가 죽는 겁니다. 늙으면 어떻게 되냐면 경험이 경험의 퇴적층이 쌓여요. 경험의 퇴적층이 쌓인다는 것은 내 생애에 있었던 사건들이 화석화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나이가 들면서 어떻게 되냐면, 점점 더 화석화 된 사건들이 화석이 돼서 내게 남겨진 지식들의 세계 안에 갇혀버려요. 그러므로 믿음은 이 세상이 내게 가르쳐준 가치와 이 세상이 내게 허락한 지식과 경험들의 한계를 넘어서, 오늘 5절의 말씀처럼 깊고, 깊고 깊어서 대기, 너무 너무 커서 그 분의 생각의 바운드리가 너무 커서 우리로서는 도저히 가닥을 잡을 수 없는, 그 하나님이 그렇게 깊은 생각을 갖고 넓은 생각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임재하실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주어진 상황이 ‘좋다. 나쁘다.’라고 아예 폐쇄적으로 결론적으로 매듭을 짓지 않습니까? 벌써 당신은 늙은 거예요. 그런데 상황이 주어졌어요. 예를 들어 사업의 자산이 절반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건 아니다.’라고 매듭을 짓잖아요? 당신은 늙은 거예요. 이미 닫혀버린 거예요. 결론을 내려 버렸어요. 

그러나 젊다는 건 뭡니까? 열려있는 거예요. 도대체 내가 가닥을 잡을 수 없을 만큼 넓은 바운드리, 무한한 바운드리를 갖고 계시는 하나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열려있는 것이에요. 이게 바로 젊은이입니다. 그리고 이 젊은이 몸은 늙어가지만 끊임없이 십자가를 붙잡고 내 경험세계의 한계를 죽여 가며, 제로로 만들어 가면서 그 무한하신 하나님의 생각의 바운드리 안으로 들어가서, 나로서는 가닥을 못 잡을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섭리와 하루하루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의 바다 안에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 이 자가 바로 성전에 심긴 백향목이고 종려나무라는 것입니다. 


자, 대기만성, 은근히 나는 자랑이 생겨요. 참 우리 아이가 덜 떨어졌어요. 너무 늦어요. 그런데 수학 문제를 풀게 해보면 바보는 아니에요. 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서 너무 늦어요. 나는 오히려 마음에 자랑이 있어요. 한쪽으로 기대가 돼요. 대기만성이다. 이 말을 하기가 좀 곤란한 게 벌써 우리나라 애들이 80~90% 이상은 다 4살만 되면 똑똑해요. 애들이 너무 똑똑해요. 그래서 말하기가 미안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 빨리 늙어버릴 정도로 애들이 빨리 똑똑해지잖아요.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빨리 갖잖아요. 그러면 빨리 자기의 지식의 한계를 비워버릴 수 있는 십자가 복음을 가리키세요. 그러면 돼요. 우리 아이는 아직도 멀었어요. 십자가 복음을 가르칠 수 있는 타이밍이. 뭔가 자기가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스스로 파악이 되어야만 십자가 복음을 가르쳐도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죽어야 되겠다.’ 이 ‘나’가 형성이 안됐으니까. 그러나 빨리 여문 아이들은 그릇이 작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 그릇이 작다는 것이 무슨 걱정입니까? 끊임없이 십자가로 자기 자신을 비울 수 있는 아이가 된다면, 그때 그때 필요한 일에 의해서 하나님의 지시를 받을 때에는 찬합 같이 클 필요가 없어요. 간장 종지 같으면 돼요. 그 일에 대해서 끊임없이 작은 일에서까지도, 하나님의 임재를 기억하며 그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그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성전에 심긴 백향목이 될 수 있으면, 그릇이 작아서 3살 때 완벽하게 조로한 아이가 됐다고 해도,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면 되잖아요. 십자가로 자기를 제로로 만들면 되는 거예요. 그럼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대기가 만성인 것은 맞다 하더라도, 대기가 대 역사를 이루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소기가 빨리 차서 빨리 똑똑해져서 빨리 복음을 깨닫기만 한다면, 작게 생각하며 순간순간을 쪼개서 하나님의 지시만을 따라가려고 마음을 갖게 되기만 한다면, 그 아이의 생애가 큰 생애가 되지 않겠어요? 왜냐하면 5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라고 나옵니다. 


내 생각으로 닫혀버리면 4살이어도 늙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이야기가 아니라 심리학자들의 이야기예요. 캐나다 심리학자가 7살이 되면 완벽한 늙은이가 된다는 거예요. 요즘 아이들이TV를 보면서 매스컴을 통해서 이 세상의 어른들의 가치관을 그대로 수용해버립니다. 가치관이 수용 됐다는 것은 자기세계가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완전히 늙어버린다는 것이에요. 그러나 대안이 있잖아요.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가르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어린 늙은이들을 다시 어린아이로. 누구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 늙어가는 장년들은 하나님 앞에서 정말 어린 늙은이로. 다시 말해서 몸이 늙어서 늙은이죠. 그러나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내 경험세계, 내 지식세계, 이 세상에서 배운 가치관, 지금의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판단력, 다 십자가에 걸어 제로로 만들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열어두면 진액이 마르지 않게 그 깊고 깊은 하나님의 생각, 80평생 아무리 학 박사라도 다 잡을 수 없을 만큼 무한하신 하나님의 생각이 진액이 마르지 않는 것처럼, 내게로 들어오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결실을 하는 겁니다. 


미켈란젤로가 80세 후반에 천지창조를 그렸고, 처칠이 82세에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장우성화백이 90살에 신세대 여성 단군일백오십대손을 그렸다. 이런 게 문제겠습니까? 80살 된 모세가 하나님의 진액을 받아들일 때에 40년 동안 출애굽의 대 역사를 이루어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예요. 몸이 늙는 것이 뭐가 중요해요?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을 수 있다면 하나님의 진액이, 하나님의 깊은 생각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오면 하나님의 크신 일들이 나타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주님의 십자가가 영원한 불노초예요. 주님의 십자가에서 끊임없이 나의 경험세계와 나의 지식세계를 죽은 것으로 인정하고 내 가치판단의 기준들을 죽은 것으로 인정해 드릴 때, 나는 영원한 젊은이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고, 끊임없는 결실과 끊임없는 진액의 풍성함이 내 삶에 계속 나타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젊은 늙은이로 살았고 또 폐쇄적이고 말라버린 상태에서 이 세상 내적으로만 우리의 삶을 추진하며 살았습니다. 이제 이 세상의 한계를 넘어서 우리에게로 다가오신 하나님께 마음을 열기 위하여,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어린아이로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하루 종일 어린 아이가 되어서 내 옆에 계신 하나님아버지로부터 들리는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복된 삶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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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플레로쓰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8.11 주님의 십자가가 영원한 불노초가 되어서 언제나 어린아이로 아버지를 온전히 누리는 복된 삶을 주신 것을 감사찬양드립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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