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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2

녹취문: (S) 반복할수록 안 좋은 기도_태승철 (마태복음 26:39)

작성자제로원|작성시간20.05.18|조회수41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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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반복할수록 안 좋은 기도>의 줄거리: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잡히시던 날 밤 마지막으로 드리신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우리가 많이 반복할수록 그만큼 우리 자신이나 하나님과 예수님 모두에게 안 좋습니다. 혹시 이점에 주목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 기도는 예수님 생애 동안 단 한 번 드려진 기도라는 사실 말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반복할수록 안 좋은 기도

(마태복음 26:39)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오늘 말씀 중심으로 <반복할수록 안 좋은 기도>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반복할수록 안 좋은 기도

오늘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하신 기도의 내용에 집중하여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따라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기를 좋아합니다그러나 이러한 기도는 예수님과 같은 마음가짐이 될 수 없다면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기도라고 말씀드렸습니다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나의 뜻과 하나님의 뜻에는 차이가 있습니다오늘 어떤 문제를 마주했을 때에 사람들은 과거에서 그 원인을 찾고자 합니다지금까지 어떻게 살았기에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과거의 실수나 잘못 혹은 억울한 일을 당한 것에서 원치 않는 현재 상황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여깁니다그리고 지금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뿐입니다설령 지금의 상황이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이어지게 되었을지라도지금 처해있는 이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요셉은 형들에게 배신을 당해 팔리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이역만리 타향인 애굽땅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노예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이러한 상황에서 요셉이 한 일은 형들의 배신에 치를 떨며 분노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요셉은 먼저 이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고자 했고 그 뜻대로 행동하고자 하였습니다하나님 뜻 찾기를 매일같이 반복하는 동안 요셉은 노예임에도 불구하고 보디발 집안의 살림을 책임지는 집사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한편 요셉은 또 다른 흉계에 빠지게 됩니다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탐하여 유혹하였으나 거절당하자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그러나 이때에도 요셉은 억울한 일을 당한 것에 분통을 터뜨리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다만 감옥이라는 상황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습니다그리고 그 결과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감옥에서 나와 총리자리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우리 삶에 요셉의 마음가짐을 적용해보도록 하겠습니다자녀가 취직을 위해 1년간 준비를 하기로 했는데, 6개월간을 빈둥거리며 게임만 하며 노는 모습만 보였습니다이 상태에서 자녀가 해야 하는 일이란 무엇일까요허송세월한 6개월을 되찾기 위해 두 배로 열심히 준비를 해야 할까요그렇지 않습니다먼저 오늘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물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매일 매일 하나님의 뜻만을 찾으며 살 때에 인생은 최고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코로나19 사태로 온 나라가 신음하고 있습니다가까운 곳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면 걱정과 근심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마스크를 사고 또 부족할까봐 모아놓기 위해 전전긍긍할 것입니다그러나 신앙인이라면 이 상황에서도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설령 확진자로 판명이 되었어도 마찬가지입니다주변에서는 별소리가 다 나올 것입니다저 사람은 하나님이 버리셨다는 말이 나오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은 아닌지 두려워질 것입니다그러나 코로나19 확진이 아니라 어떤 병에 걸릴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저주하신 것도 아니고 버리신 것도 아닙니다마음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주님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주님을 따라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수 있다는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그럴 때에 어떤 불행한 일이 주어지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최고의 삶이 될 수 있습니다.

혹은 십자가를 몰라서 이러한 일들을 저주로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십자가를 전해줄 수 있어야만 합니다십자가를 붙잡으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또 내 마음은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은 이처럼 중요합니다그렇기에 그동안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의 귀감으로 여겨져 왔습니다그러나 이 기도를 문자대로 반복하는 것이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될 수 없습니다.

먼저 이 기도의 특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겟네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는 예수님의 대표적 기도로 알려져 있습니다만예수님의 생애 동안 이러한 기도를 하신 적은 달리 없었습니다요한복음 5장 19절을 보면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이 말씀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일체되심을 나타냅니다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마음에 일하시는 대로 예수님은 몸으로 이 땅에서 행하셨습니다평생 동안 하나님과 뜻이 분리되거나 부딪히는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나 사건을 마주하였을 때에 먼저 나의 생각이나 바람을 갖게 됩니다이때에 신앙인이라면 아참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물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그리고 아무렴 내 뜻보다는 하나님을 뜻대로 되는 것이 좋으리라는 생각까지도 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이 기도하신대로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따라해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사람이나 사건을 마주하셨을 때에 이러한 과정을 거치시지는 않으셨습니다예수님의 마음에서는 마주한 사람이나 사건보다 항상 하나님 아버지가 밀착되어 계셨기 때문입니다간단히 말해 하나님 아버지만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시며 합당한 뜻을 발동하십니다하나님과 밀착되어 계시던 예수님은 그 뜻을 그대로 전달받아 말씀하시고 행동하셨습니다그렇기에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드릴 기회는 없으셨습니다평생을 예수님 자신의 뜻대로 사셨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해를 놓고 보면 우리가 문자대로 따라하는 겟세마네 기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드러납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는 나의 소원을 꼭 들어주세요.’라는 기도보다는 훨씬 훌륭한 기도일 것입니다주여 삼창을 외치고 소원을 이루어달라고 소리치며 기도하는 것은 신앙도 아니고 기도도 아닙니다종교인으로써 하나님을 우상시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문자대로 따라하는 기도가 온전한 것은 아닙니다이러한 기도는 다소 신앙적 성숙함을 느끼게 하지만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이 예수님의 상황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성립할 수가 없는 기도입니다많이 반복할수록 불신앙이 마음을 점령할 뿐입니다.

일단 내 뜻이 생겼다는 상황 자체가 하나님 아버지와 교통할 수 없는 불신앙의 상황임을 알아야 합니다내 뜻이 생겨났다는 것은 마음이 육체로 만나는 세상에 대해 접촉하여 나타나는 반응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사신 적은 없었습니다예수님의 마음은 육체로 만나는 세상과 접촉하지 않고 언제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밀착을 이루고 계셨습니다그렇기에 예수님에게는 언제나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주어질 수 있었고 그 뜻을 따라 행동하실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할 때에는 먼저 존재했던 내 뜻을 포기하겠다는 전제가 포함됩니다얼핏 훌륭한 신앙적 자세로 여겨지지만 일단 세상과 마음이 밀착되고 말았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그리고 이 기도가 반복된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과의 밀착이 반복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좀 더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저의 뜻이 생길 때마다 아버지의 뜻 앞에서 포기하겠습니다이렇게 훌륭한 신앙적 자세를 보일 수 있으니 제 마음이 해야 될 일과 사건과 대상들에 먼저 접촉하는 것만큼은 인정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기도하는 셈입니다.

그러나 말씀드렸듯이 이러한 마음가짐은 예수님의 기도에서 찾아볼 수가 없는 모습입니다우리의 마음이 세상에 먼저 접촉하게 되는 이유는 세상에서 기쁨과 만족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몸으로 만나는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마음이 기쁘고 만족하리라 믿는 것입니다다만 문제가 해결되는 방식에 있어서 내 방식보다는 하나님 방식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하나님 뜻대로 하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전 설교에서 다른 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내게 기쁨과 만족이 되리라 믿어지는 대상이 바로 다른 신입니다문제의 해결을 다른 신으로 섬기며 하나님을 동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돈 문제가 생겼습니다마음이 돈 문제에 밀착하자 내 뜻이 생겨납니다그런데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 돈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하나님께 맡겨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이것은 얼핏 신앙적인 태도로 보이지만 그 저변에는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기쁨과 만족이 생길 수 있다는 불신앙이 존재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힘을 빌려서 무화과나무에 결실이 맺히기를 기도하지 않았습니다오히려 하박국 3장 17~18절을 보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하나님의 뜻대로 돈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면 적어도 나의 무력함을 인정하는 것은 될 수 있어도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만족하겠다는 고백은 될 수 없습니다마음이 하나님과의 밀착을 이루기는커녕 거리가 벌어지고 돈 문제의 해결이라는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상태입니다그러므로 우리가 겟세마네 기도를 문자대로 따라하는 것은 위험한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반복하면 할수록 하나님과의 밀착을 이루지 않겠다는 고백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문제의 해결입니다그렇기에 하나님과 온전한 밀착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그러나 하나님과의 의리가 있으니까 하나님의 뜻대로는 하겠으니 너무 기분나빠하지는 마시옵소서.”라는 고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이것이 우리의 마음가짐이라면 이러한 기도를 지속해야만 하겠습니까정말로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과 밀착을 이루고자 한다면 먼저 내 뜻이 생기는 것을 문제시 할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 계십니다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께 드려질 때에 예수님의 동선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밀착을 이루게 됩니다이것을 약속하신 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위험한 기도를 왜 하신 것일까요이 기도가 우리에게 위험할 수 있다고 해서 예수님이 틀리셨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우리는 예수님이 처하신 상황을 생각해야만 합니다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구세주이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도였습니다우리가 따라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닙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의 기도는 앞으로 일어나게 될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습니다십자가형은 로마의 극형이었습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른 죄수들과 달리 십자가를 지실 어떠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으셨습니다그럼에도 십자가를 지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자리를 인류의 저주가 임하는 자리로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예수님께서는 저주 가운데로 내려오셔서 모든 저주를 받아 죽으시고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써만 인류의 구원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 저주의 내용은 바로 하나님과의 밀착상태가 끊어진 상태입니다하나님과의 밀착이 끊어진다는 것은 곧 마음을 채울 방법이 사라짐을 의미합니다인간은 어떠한 환난 가운데서도 살려고 몸부림치지만마음이 채워지지 않음을 느낄 때에 죽음을 소원하게 됩니다하나님과의 밀착이 끊어진다는 것은 이처럼 무서운 저주의 상태입니다그러나 사탄의 거짓말에 대한 믿음 때문에 타락한 인간들은 이러한 저주가 무섭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어도 세상의 가치를 통해 기쁠 수 있고만족할 수 있고채워질 수 있다는 마귀의 거짓말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마음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한 가정의 아빠가 해외로 출장을 가게 되자 엄마와 아이가 환송하러 공항에 나가게 되었습니다아이는 탑승수속 직전까지 아빠와 함께 즐겁게 놀았습니다그런데 어느덧 시간이 되자 아빠는 아이와 엄마를 떠나갑니다아이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상황이 갑자기 너무도 무섭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아빠가 영원히 없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예수님이 처해계셨던 상황이 이와 같았습니다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삼위일체로 영원 전부터 하나이셨습니다그런데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 사건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와 떨어지셔야만 했습니다예수님의 마음을 온전히 채우시던 분은 하나님이셨기에 하나님과의 떨어짐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셨습니다하나님 아버지와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의 원대로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시고 공감하고 계셨습니다그래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인류가 놓인 저주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그러나 공항에서 아이가 해외여행을 가는 아빠를 잃을까 두려워하듯이 예수님께서는 잠시라도 하나님과 떨어지시는 것을 죽는 것보다 괴로워하셨습니다이것이 주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면서 이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우리가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따라할 때에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밀착상태가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이미 하나님과 분리되고 격리되어서 내 뜻이라는 것이 생겨났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당당하게 심지어 마치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도 된다는 듯이 여깁니다내 지혜보다는 하나님의 지혜로 하는 편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더 합당할 것이니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겠다는 통보를 하듯이 합니다.

설령 세상의 관점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했으니 신앙적으로는 훌륭한 결단을 내렸다고 여깁니다애초에 세상의 문제에 대해 내 뜻이 생겨난 것이 문제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가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인류의 구원을 위한 것이지만 하나님 아버지와 떨어지는 것을 죽는 것보다 괴롭게 여기셨습니다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밀착을 이루고 싶어 하십니다결코 예수님처럼 단 삼일이라도 우리를 떼어놓으시려고 하시지 않습니다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과 같이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예수님이 말씀하신 나의 원대로는 하나님 아버지와 떨어지는 것을 싫어하시는 간절한 마음이었습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아셨기에 땀에서 핏방울이 떨어지는 괴로움을 견디시며 받아들이셨던 것입니다누가 감히 이 기도를 따라할 수 있겠습니까?

 

한편 놀랍게도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와 비슷한 기도의 내용을 사도들의 기도로부터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이로부터 올바른 신앙 하에서 겟세마네의 기도와 같은 심정으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때가 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3~24절을 보면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고 하였습니다이 기도를 보면 예수님의 기도와 일치하는 성향들이 보입니다바울은 당장 몸이 죽어서 영혼이 주님을 따라 아버지 품에 안기는 것을 제일 좋게 여겼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십자가를 지셨던 것처럼 바울의 몸을 통해 이루어져야 될 하나님의 뜻이 남아있기에 살아가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겟세마네 기도를 따라할 수 있는 상황이 있다면 오직 바울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질 때입니다. “지금이라도 죽어 아버지 품에 안기는 것이 소원입니다그러나 아직도 하나님이 나의 육체를 통해 이루어 가실 십자가 복음 사역이 남아있음을 압니다그렇기에 당장이라도 죽어서 하나님께로 가고자하는 저의 소원대로 하지마시고더 살려두시고자 하는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이것만이 우리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따라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일 것입니다이렇게 기도할 자신이 없으면 세상의 문제에 대해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반복하는 일은 중단되어야만 합니다.

내 것내 일내가 맺는 관계내가 관련된 상황과 사건들에 대해 마음이 접촉하여 걱정하거나 근심하거나 혹은 좋아하거나 기뻐한다면 마음에서 세상의 가치가 다른 신이 된 것입니다마음이 세상의 가치들과 접촉하여 반응을 일으키려 할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기억해야만 합니다그러한 마음을 가진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고백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럴 때에 저주의 자리인 십자가로 내려오신 주님께서는 나를 만나주실 것입니다그리고 내 마음을 가지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보좌 우편까지 가셔서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실 것입니다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의 마음은 주님 안에서 하나님과 밀착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내 마음은 주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그럴 때에 더 이상 세상의 가치들을 문제로 여기지 않게 됩니다하나님과 밀착을 이루는 동안에 마음은 온전한 기쁨과 만족으로 채워져 바랄 것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관계된 일들에 대해 하나님의 뜻이 알려지게 됩니다.

 

이처럼 내 뜻이 생겨날 수 없는 상황을 십자가 생활화로 만들어내면 하나님과의 밀착은 이루어집니다그리고 세상에 대한 나의 지정의는 하나님의 생각과 감정과 뜻이 표현되는 장갑이자 가면으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내 뜻이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유지될 수 있도록 사도 바울처럼 십자가 생활화를 해나갈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주님께서는 하나님과 떨어지는 것을 그토록 싫어하셨습니다그럼에도 하나님의 뜻을 받드시기 위하여 저주의 자리로 내려오셔서 십자가 사건을 이루셨습니다오늘도 그 십자가 생활화를 함으로써 내 뜻이 생겨날 수 없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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