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마태복음-2

녹취문: 버려진 돌 예수께 관심하기_태승철 (마태복음 22:1~14)

작성자제로원|작성시간20.02.08|조회수102 목록 댓글 0

http://www.everyday01.com 십자가(0,1)복음방송


 


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버려진 돌 예수께 관심하기>의 줄거리:

인간세상으로부터 버려진 돌이신 예수님. 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이 버린 예수님을 나만은 관심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관심(關心)하기가 간단치 않습니다. 관심은 내 마음을 대상 안에 감금한다는 의미가 있고 그래서 버려지는 예수님과 운명을 끝까지 함께 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감금하기의 의미를 좀 더 살펴봅니다.


버려진 돌 예수께 관심하기

(마태복음 22:1~14)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버려진 돌 예수께 관심하기>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버려진 돌 예수께 관심하기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214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시편 118편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이 구절과 연관 지어 생각할 때에 그 의미를 정확하게 붙잡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 세상에서 버림받은 돌로써 예루살렘 성 바깥으로 내쳐지고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의 비유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여길 것인가에 대해 묻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 또한 비유로 가르쳐주시고 계십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우리는 예수님을 버린 돌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버린다는 것은 관심의 영역 밖으로 쫓아낸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세상 건축자들에 의해서 관심 밖으로 밀려난 예수님을 우리의 관심 속으로 모실 수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 관심을 갖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관심이라는 말이 참 재미있습니다. 관심은 관계할 관()에 마음 심()을 사용합니다. 관계할 관()을 풀어보자면 문 문()안에 실 사()가 들어있습니다. 이는 곧 옛날에 빗장으로 문을 걸어 잠근 모습을 따온 것입니다. 즉 관심은 어떤 대상에게 마음을 보내어 빠져나오지 못하게 감금하는 것입니다. 마음 전부는 아닐지라도 일정 부분은 항상 그 대상을 향해 있는 상태가 관심입니다.

예를 들어 바람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성을 만날 때에 모두 연애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를 이성으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연애의 대상으로써 관심해야만 합니다. 한 사람에게 마음을 준 상태를 감금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람둥이는 한 사람에게 마음을 감금하지 않습니다. 만나는 이성마다 연애의 대상으로 삼아 마음을 향할 때에 바람둥이가 됩니다. 이러한 의미를 염두에 두고 본문 말씀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65절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관심하라는 말씀은 마음을 오직 하나님께 감금하여 한 조각이라도 다른 대상을 향할 여지가 없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삶에서 많은 대상을 관심하며 살아갑니다. 살아가기 위해 돈과 건강이 필요합니다. 성공과 취직과 합격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신명기의 말씀을 따르자면 하나님을 믿고자 한다면 이 모든 일들에 전혀 관심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이라는 대상에 마음이 감금되었기 때문에 세상의 대상들을 향해 마음을 관심할 수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그렇게 살아가지는 못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육신을 입게 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예수님을 관심할 때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관심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관심해야 할 대상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 마음을 보내고 한 조각도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감금하는 것이 곧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씀을 통해 살펴보았듯이 이러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버려진 돌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엄청난 반전이 숨어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버려지신 예수님을 관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으셨기에 예수님께 마음을 보내고 감금한다면 세상의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관심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세상에서 버림받으신 예수님을 관심하면서 동시에 세상에 있는 대상들을 관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부모가 역적으로 몰리게 되면 그 자손들까지도 모두 역적취급을 받았던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역적취급을 받으시고 버림받으셨습니다. 그 예수님께 마음을 보내고 감금한다면 우리 또한 세상에서 역적취급을 받게 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관심했음을 증언하십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받으시고 천국에 받아들여주시게 됩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원리이자 오늘 말씀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의해 역적취급을 받은 나에 대해서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묻고 계십니다.

 

본문 2절을 보면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임금님의 아들은 잘 성장하여 아리따운 여인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아들의 모습을 보는 임금님의 마음은 무척 기뻤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그 기쁨에 동참하기를 바라며 잔치를 열게 되었습니다.

이 임금의 마음이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 기쁨에 동참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에서 버려진 돌이 되셨습니다.

아기의 돌잔치를 예로 들어 생각해보겠습니다. 아기가 돌이 되어 사람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인 사람들이 차려진 음식에만 관심이 있지 아이에게는 시선 한 번을 주지 않는다면 부모로써는 썩 기분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은 음식을 먹고 있을 뿐이지 부모의 기쁨에 동참한 것은 아닙니다. 돌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아기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만 합니다. 아기를 칭찬하고 축복하며 부모의 기쁨에 함께 참여할 때에 비로소 잔치는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실 때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이와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관심을 하는 것 이상의 다른 일을 기대하지 않으십니다. 본문의 비유에 대한 주석들을 보면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드렸듯이 하나님 아버지가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슨 일을 노력하여 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마태복음 317절에 잘 나타납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사랑하고 기뻐하시는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관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삶이 바쁘고 문제가 있을지라도 예수님께 마음을 보내 감금하라는 것입니다.

돌잔치에 갔으면 돌을 맞은 아기에게 관심을 주어야 합니다. 사업이나 취미 혹은 다른 사람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멈추고 아기에게 관심을 가질 때에 부모의 기쁨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의해 버림받아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예수님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마음을 드리며 관심해야만 합니다.

 

한편 왕의 잔치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의 핑계를 살펴보니 다음과 같습니다. 5절을 보면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라고 하였습니다. 밭일이나 사업은 인간 세상에서 주어진 모든 일들을 상징합니다. 세상일을 관심하는 동안 예수님을 관심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서도 쉽게 발견됩니다. 돈 문제로 신경 쓰는 동안 예수님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단순히 역사적으로 일어난 일회성의 사건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매순간 반복되어야만 하는 지금의 나의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아무리 급한 문제가 생기더라도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제 말씀에서 우리는 주인 코스프레를 한 끝에 진멸당한 악한 농부들의 비유를 살펴보았습니다. 세상의 주인은 사회의 엘리트 계층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삶에 대해 주인으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주인 코스프레에 불과합니다. 세상의 주인은 오직 창조주이신 하나님 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주인 코스프레를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습니다. 예수님과 세상 중에 하나를 관심의 대상으로 선택해야만 합니다. 마음에서 세상을 관심한다면 예수님을 관심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서 역적으로 취급받아 죽으셔야만 했던 예수님을 관심한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우리 또한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가 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더는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가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반전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게 되고 삶은 잔치가 됩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주인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관심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마음을 드리되 한 조각도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감금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마음은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게 되고 육체로 살아가는 삶의 현장은 잔치로 변하게 됩니다.

 

앞서 본 2142절에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갖는 의미가 깊습니다. 예수님이 인용하신 시편 118편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날이 갈수록 다윗의 인기가 높아지자 사울 왕은 질투하여 다윗을 쫓아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은 초대 왕인 사울을 중심으로 한 사회였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이스라엘 사회로부터 역적으로 몰려 쫓기고 있었고 결국 삶이 불가능한 광야나 이방나라 블레셋으로 피난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버려진 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버려진 돌 다윗을 왕으로 삼으시고 이스라엘의 최전성기를 건축해내십니다. 다윗은 예수님의 예표적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 또한 세상에서 버려진 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버려진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은 집을 짓는 기초석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관심할 때에 예수님은 우리 삶의 기초석이 되어주십니다. 내가 주인 코스프레를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 되셔서 건축하시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기초석으로 삼으셔서 이스라엘 왕국의 전성기를 건축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을 기초석으로 삼으셔서 우리의 삶을 건축해 가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시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 보내 감금되어야만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애를 건축하시고 삶의 현장을 잔치로 만드실 것입니다.

 

잔치는 주어지고 베풀어지는 대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12~13절을 보면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잔치에 참여할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은 잔치에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잔치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마음으로 예수님을 관심하는 자들만이 예복을 입은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관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사람은 입으로는 예수이름을 부를지라도 예수님이 모통이의 머릿돌이 되시는 삶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상에서 버려진 예수님께 마음을 드려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버려진 돌이 되셨기 때문에 예수님께 마음을 드린다면 세상에 마음을 줄 수 없음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예수님께 마음을 드리고 한 조각도 빠져나올 수 없게 감금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관심한다면 건강에 문제가 생겨도 관심할 수 없습니다. 돈 문제가 급해도 관심할 수 없습니다. 자녀에게 문제가 생겨도 마음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질 때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으셔서 삶의 모든 문제를 건축해 나가실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주어졌을 때에 선택해야만 합니다. 문제를 따라 간다면 잔치에 참여하지 않고 밭일과 사업을 위해 떠난 자들과 같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문제가 주어질 때마다 동시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떠올릴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십자가의 예수님께 감금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곧 믿음이고 예수님을 관심하기입니다. 마음이 한 조각도 빠져나올 수가 없으니 세상의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아 우리의 삶을 건축해 나가실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통해 건축되어 가는 과정은 마치 잔치와 같을 것입니다. 우리는 잔치에 참여한 하객의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버려진 돌이 되실 수도 있고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실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라고 묻고 계십니다. 우리의 대답은 하나님! 나는 예수님을 버리지 않고 마음을 드려 관심하고 감금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께 마음을 드리고 감금할 때에 예수님은 우리 삶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오락실에서 두더지잡기 게임을 하는 것처럼 삶의 문제들은 머리를 내밀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마음을 드리고 감금해야만 합니다. 예수님과 운명을 같이해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자가 되고 세상에 대해 죽은 자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 건축하시는 삶은 잔치로 변할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예수님을 관심함으로써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잔치에 기쁨으로 참여하는 노래가 나올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나의 마음을 빼앗는 세상의 모든 관심거리들 앞에서 십자가 예수님께 마음을 드리고 감금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이 건축하시는 생애가 되게 하시고 잔치에 참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