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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2

녹취문: 미성년자는 복지 출입금지_태승철 (마가복음 5:35~43)

작성자제로원|작성시간20.04.25|조회수66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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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미성년자는 복지 출입금지>의 줄거리:

하늘로 올라간 마음에는 배부름과 평강이 있고 땅에 남아있는 몸 연관성의 영역 안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역사하는 상황이 복지의 삶입니다. 그런데 이 복지의 삶에는 미성년자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이처럼 됨이 영적 성년이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미성년자는 복지 출입금지

(마가복음 5:35~43)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미성년자는 복지 출입금지>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미성년자는 복지 출입금지

본문에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가 예수님에 의해 다시 살아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제는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아 온 여인이 고침 받은 사건을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모임자제 거리두기 접촉주의 구호가 신앙적으로도 반성과 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코로나19라는 재난을 지구 전체에 내리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태에서 얻어지는 값진 교훈을 허투로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코로나192019년에 발견되어서 19라는 번호가 붙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19라는 숫자에는 특별한 의미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성년과 미성년을 나누는 기준이 되는 나이입니다. 물론 코로나19와 성년이 되는 나이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19라는 숫자가 신앙적으로도 성년과 미성년은 존재할 수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열두 살 된 소녀가 다시 살아난 사건은 마태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가는 이 사건을 기록하며 특별히 이 소녀가 열두 살이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열두 살은 유대사회에서 여자가 성년식을 치르는 나이였습니다. 만으로 열두 살 육 개월 이후로는 결혼이 가능한 연령으로 인정해주었던 것입니다. 물론 유대의 결혼풍습을 생각해보자면 정혼 후 1년 뒤에 결혼을 하게 됨으로 바로 결혼이 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만 성년식을 할 수 있는 나이라는 점이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성년이 만19세부터입니다. 한편 영적인 의미에서도 미성년자와 성년의 구분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제목에서 미성년자는 복지 출입금지라고 하였습니다. 이 제목을 보시고 예수님의 말씀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183절에서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목이 결코 예수님의 말씀과 상반되는 내용은 아닙니다. 마태복음의 말씀에는 어린아이가 부모만을 마음에 담는 것처럼 하나님만을 마음에 모실 수 있는 신앙적 성숙을 이루어야만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신앙적 성숙이란 곧 신앙적 성년이 되는 것과 동일합니다. 이 말씀을 오늘 제목과 연관하여 재해석해본다면 너희가 참다운 의미에서 성년이 될 수 없다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는 예수님과의 만남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는 성년식을 치를 수 있는 나이가 강조된 본문 말씀에도 적용됩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도 마음이 미성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결단코 천국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은 영적으로 참다운 성년이 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은 생물학적으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예수님 또한 이 사실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야이로가 예수님께 찾아왔을 때에 집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딸이 죽었음을 알립니다. 이때에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으로 가시는데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이렇게 지나간 시간을 생각해보면 소녀의 죽음은 명확했습니다. 그랬기에 예수님이 아이가 잔다고 하셨을 때에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소녀가 죽었음을 아셨을 텐데 굳이 잔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서 일반적으로 퍼져있는 오해를 하나 바로잡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소녀를 살리실 계획이 명확하셨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문제시하신 삶과 죽음은 단순히 육체에만 귀속된 일이 아니었음을 염두에 두어야만 합니다.

육체가 살아있을지라도 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없다면 그것은 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시자 주권자로써 참새 한 마리도 주관하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계획 바깥에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끝난 사람을 예수님께서 억지로 살리셨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 새로운 삶의 계획을 만드셔야 했던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시점은 다 계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소녀가 잔다고 하신 이유는 소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아직 존재함을 분명히 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죽고 예수님에 의해 다시 살아나서 살게 될 하나님 속에 있는 계획된 부분이 복지의 삶을 상징합니다. 죽기까지의 삶이 미성년의 삶이었다면 예수님에 의해 살아나게 된 후의 삶은 성년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사건은 그 자체로써 하나의 설교가 됩니다. 예수님은 물론이고 이후에 사도들도 이와 같은 의미에서 죽은 사람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결코 하나님의 계획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담 때부터 계획된 일이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정확할 것입니다.

 

한편 이 사건은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치유된 사건과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소녀가 열두 살이었던 것을 생각해보자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소녀가 태어날 때부터 고통을 당한 셈입니다. 지난 시간에 여인의 믿음을 통해 예수님의 의식적인 결재 단계가 없이 예수님의 능력이 빨려 들어가게 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 삼위일체를 이루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이라는 댐에 고여 있는 상황에서 이 여인은 수도관을 대었던 셈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물동이 하나 들고 와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가는 형식이었다면 이 여인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접촉과 연결을 이루었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그렇게 삼위일체 하나님과 접촉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혈루증으로 말미암아 다른 어떤 대상과도 접촉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첫 번째 접촉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고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연결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의 사건은 이 접촉이 한 순간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밀착으로 지속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접촉은 한 순간 붙었다 떨어지는 것이라면 밀착은 접촉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상태입니다. 우리에게서도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밀착은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세상과의 접촉을 통해 일어나는 감염은 중단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가족과 접촉시킬 때에 감염이 일어납니다. 또 마음을 사업이나 회사에서의 승진과 접촉시킬 때에 감염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세상에 대한 감염이 일어나지 않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첫 번째 대상으로 접촉할 때에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에 대한 접촉은 밀착으로 이어져 나갈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열두 살 소녀가 죽음에서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건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남자는 열세 살, 여자는 열두 살에 성년식을 한다고 합니다. 남자의 성년식을 계명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르 미츠바라고 하고 여자의 성년식을 계명의 딸이라는 뜻의 바트 미츠바라고 합니다. 미성년인 아이들은 열두 살까지는 부모에 의존하는 삶을 살다가 성년식을 하기 일 년 전부터 집중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외우는 교육을 받습니다. 시험을 보기 전에 암기를 하듯이 하나님의 계명을 외웁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또한 하나님이 인격체로써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것은 곧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소통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성년식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쉽게 말해 미성년의 삶이 부모의 말을 들어야만하던 삶이었다면 성년의 삶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의존하던 모든 대상으로부터의 독립이 성년의 자격입니다.

결혼을 해야 한다면 소통의 기준이 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누구도 아닌 하나님과의 소통 속에서 어떤 상대와 결혼을 할지 정하라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고자 할 때에도 소통의 기준은 하나님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소통하며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의 성년식의 의미입니다. 물론 성년식을 한다고 해서 법적인 미성년자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의 의존성을 끊고 독립하되 철저하게 하나님께만 의존된 독립자로 살아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당시의 유대사회에서는 20살이 되면 군대에 가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형들은 군대에 가 있었고 그로부터 추산해보면 다윗의 나이가 많아봐야 15살이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학생에 불과한 나이입니다. 다만 유대사회에서는 이미 성년식을 치른 나이였습니다. 이 다윗이 혼자 들판에서 집안의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성년식을 치렀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격체로써 함께 계신다는 하나의 조건을 가지고 양을 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양을 치다 사자나 곰을 만날 때에 부모나 형제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하나의 조건으로 이겨나가야만 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마주 했을 때에도 이러한 관점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1736절을 보면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조건 외에는 주어진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단 하나의 조건 하에서 사자와 곰으로부터 양을 구했듯이 성년으로써 하나님과 함께하며 골리앗을 마주하겠다는 의지를 사울 왕에게 전달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태도는 골리앗과 마주했을 때에도 잘 드러납니다. 45절을 보면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고 하였습니다. 골리앗이 의지하는 조건이 무기였다면 다윗이 의지하는 조건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성년이 된 이스라엘 남자는 많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을 조건으로 삼은 영적인 성년은 다윗뿐이었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염려하여 칼과 갑옷을 주었지만 다윗에게는 맞지도 않았고 쓸 수도 없었습니다. 다윗은 늘 쓰던 물맷돌을 준비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하나의 조건하에서 골리앗과 마주했고 돌 하나로 골리앗을 죽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성년식이 치러졌을 때에 나타나는 삶의 특징입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딸이 열두 살이 되었으니 성년식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회당장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교육시키고 있었겠지만 문자적으로 말씀을 암기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딸이 죽게 되었고 예수님께서는 그 소녀를 살리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십니다. 모든 말씀의 총화이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며 현장에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길입니다.

야이로의 딸이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바라보고 의존한 대상은 부모였습니다. 그러나 죽음에서 깨어나 처음으로 마주한 대상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영적인 성년식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까지 부모를 의지하고 살았던 것처럼 이제는 예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밀착된 삶을 살아야 함을 본문은 전하고 있습니다.

어떤 삶의 조건이라도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유일한 조건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영적인 성년입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게 주어진 조건을 돈이나 능력이나 학벌이나 신분이나 집안이나 건강이나 직위에서 찾고자 한다면 영적으로 미성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영적 미성년의 상태에서는 하나님과 밀착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유대인이 성년식에서 말씀을 외우는 것처럼 우리가 영적인 성년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의지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 이르셨습니다. 이 예수님과 연합하여 마음을 드림으로써 주님이 밀착되는 것과 덩달아 나도 하나님과 밀착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이루었던 특이한 방식의 접촉을 통한 일체되심의 참여가 이제 지속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끊임없이 바라봄으로써 말씀이신 예수님을 기억함으로써 삶의 현장에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밀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유일한 삶의 조건이 되신 상태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힘으로 모든 문제와 과제를 해나가는 영적인 성년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의 삶에 주어진 단 하나의 조건은 살아계신 하나님뿐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영적인 성년입니다. 삶에서 무슨 문제를 만나든 나의 유일한 조건은 살아계신 하나님뿐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믿어야 될 것은 나의 능력도 아니며 돈이나 자격증도 아닙니다. 아무리 자격증을 따고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사람의 하는 일이 내 뜻대로 되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성년으로써 하나님만이 유일한 조건이심을 믿으며 하나님과 밀착된 상태에서 모든 문제를 대처해 나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의존해야할 대상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존할 조건이 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이 상태가 진정으로 성년이 된 모습입니다. 하나님만이 주어진 삶의 유일한 조건이시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면 대통령이든 대학총장이든 재벌이든 미성년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미성년의 상태에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삶에서 하나님과 밀착될 수 없다면 죽어서도 천국은 불가능하며 살아서 복지를 누릴 수도 없음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주님 따라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으로 채워져 배부름을 느끼며, 몸으로 살아가는 삶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나타나는 삶이 복지입니다. 이러한 삶은 오직 영적인 성년에게서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삶의 조건을 하나님 한 분만으로 한정짓고 결정하고 영구히 붙박아 버리는 사람만이 진정한 성년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삶에 어떤 상황이 주어지든 살아계신 하나님 한 분만이 유일한 조건임을 깨닫는 성년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 오늘도 말씀의 총화이신 주님을 기억하고 십자가 주님을 바라봄으로써 유일한 조건이 되시는 하나님과 밀착하는 역사가 지속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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