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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2

녹취문: (S) 세상 졸업만이 이윤이 남는 장사다_태승철 (누가복음 19장 11절~27절)

작성자제로원|작성시간21.02.22|조회수120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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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세상 졸업만이 이윤이 남는 장사다>의 줄거리: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 이 둘 사이에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인간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졸업과 이윤, 이 두 단어로 줄여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은 세상 졸업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수님 따라 세상 졸업의 과정을 날마다 반복하는 동안에 엄청난 이윤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졸업만이 이윤이 남는 장사다

(누가복음 19장 11절~27절)

 

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4.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세상 졸업만이 이윤이 남는 장사다>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세상 졸업만이 이윤이 남는 장사다’

본문은 은 열 므나의 비유로 알려져 있는 말씀입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기위해 먼 나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떠나기 전에 종 열 명에게 한 므나씩 나눠주며 장사를 맡겼습니다. 이윽고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온 귀인은 종들에게 나눠준 한 므나에 대한 결산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왕위를 받지 못하도록 모의를 해서 뒤로 사자를 보낸 사람들에 대해 벌을 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세상에는 세상을 졸업한 상태에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을 졸업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마음 채움을 통한 기쁨과 만족이 필수적인 존재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세상을 졸업했다는 것은 더 이상 마음 채움을 위해 세상에서 시도하거나 기대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통째로 졸업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이수해야만 하는 과목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결혼 한 사람은 배우자를 졸업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배우자로부터 계속해서 마음 채움을 기대하는 상태는 F학점을 받은 것이고 세상을 졸업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엊그제 남자 집사님과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아내에게 그렇게까지 마음이 의존되어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사셨다고 합니다. 또 어떤 분께서는 여가활동에 마음이 단단히 붙잡혀 있음을 고민으로 털어놓으시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마음 채움을 통한 기쁨과 만족을 위해서 이 세상의 대상들에게 의존하는 것은 세상을 졸업하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세상을 졸업하여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 마음 채움이 유지되는 가운데 여가활동에 참여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여가활동을 통해서 마음의 허함을 극복하고 채움을 시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졸업하지 못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몸이 죽기 전에 마음은 세상을 졸업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차피 몸이 죽으면 세상과 이별하게 되는데 굳이 사는 동안 세상을 졸업하려고 애써야 될 이유가 있느냐?”라고 질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꼭 기억하셔야 할 것은 이 세상에서 마음 채움을 기대하는 중에 몸이 죽는 것은 세상을 떠나는 것이지만 졸업을 한 것은 아닙니다. 학교를 떠날 때 졸업을 해서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퇴학을 당해서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퇴학은 학교를 졸업할 정당한 기회의 박탈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을 통해 마음을 채우려는 시도를 계속하는 중에 몸이 죽는다는 것은 정식으로 졸업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졸업이 아닌 퇴학을 당한 것이기에 퇴학당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세상에서 퇴학당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바로 지옥입니다. 반면 세상 졸업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천국입니다. 이렇게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타나기에 세상 졸업의 문제는 무척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세상 졸업과 관련하여 열 므나의 비유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은화인 므나는 달란트의 육십 분의 일에 해당하는 화폐였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는 차등적 배분이 이루어졌습니다만 열 므나의 비유는 동일한 배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달란트 비유와의 차이점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이 비유에 담겨있는 의미를 충실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세상 졸업이 엄청난 이윤을 발생시키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을 살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도 들어갈 수 없음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11절에서 누가는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시게 된 경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의 집에 방문하셨고 10절에서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이에 더해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0절의 말씀을 염두에 두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이 내용을 다 설명 드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므로 말씀드리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십자가온라인교회 모임에서 추가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 보면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제자들과 추종자들의 생각을 바꾸어주시려고 열 므나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에 대해서는 앞서 두 가지를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지금 ‘나’라는 현상 안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17장 21절에서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좀 다르게 말하자면 고깃덩어리 몸을 가지고 살면서 만나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두 번째는 시간과 공간과 우주가 커튼처럼 가리고 있다가 드러나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 때에 우주라는 틀 자체가 깨지고 사라질 때 임하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고깃덩어리 육체를 통하여 접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산에서 하늘나라에서의 모습으로 변하신 예수님은 몸에서 영화로운 빛이 나는 발광체와 같은 모습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는 우리의 몸 또한 고깃덩어리인 육체 대신에 예수님과 같이 영화로운 몸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우리의 마음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과 추종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 예수님의 재림 때에나 일어날 일들이 바로 일어나리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는 성경에 기록된 종말에 대한 내용대로 시간과 공간의 세상이 없어질 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맞이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는 영화로운 몸으로 맞이해야 될 나라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나 추종자들은 이스라엘이 이방민족들 위에 우뚝 서는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예수님께서는 임금이 되셔서 태평성대를 이루시는 것으로 임하리라 여겼던 것입니다.

이러한 착각을 바로 잡아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본문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외부적인 변화와 함께 임하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세상을 탈출하여 승천하신 이후에 하나님 아버지의 정하신 때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탈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의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는 바로 세상에 대한 졸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서 살다 죽을 것입니다. 인생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와 맞물려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그 당시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다윗 왕국을 재현하고 태평성대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존재하는 인간 세상에서 어떤 보람찬 일을 업적으로 남기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세상을 졸업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어린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이유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이고, 중학교에 입학하는 이유는 중학교를 졸업하기 위함입니다. 중학교가 좋다고 천년만년 머무르고자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학교도 마찬가지고 박사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졸업을 위한 입학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도 세상을 졸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상을 빠져나가는 일은 세상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마치 이혼이 결혼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을 빠져나가고 세상을 졸업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멋지게 가정을 꾸리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괄목할만한 성과를 남기려고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 사람들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이유는 세상을 졸업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만드신 길을 따라 걸으며 날마다 세상을 졸업하는 것이 우리가 태어난 이유입니다.

 

본문을 보면 귀인이 열 명의 종에게 한 므나씩을 나누어줍니다. 그리고 한 므나를 받은 종들에게는 각기 나가서 장사를 하라고 지시합니다. 귀인의 말대로 행해서 이윤을 남긴 종들은 칭찬과 상급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마지막 종은 한 므나를 수건에 싸두었습니다. 주인은 이것을 악하게 여겨서 한 므나를 빼앗고 쫓아버립니다.

한편 이 비유 속에는 귀인의 왕위 계승을 방해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 비유는 실제 있었던 사건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헤롯 대왕의 죽음 이후에 다스리던 영토는 세 아들에게 분할되게 됩니다. 그중에서 유대와 사마리아를 지배하도록 배분받은 아켈라오(Herod Archelaus)가 로마 황제에게 왕위를 받고자 하였습니다. 이때 아켈라오의 행위가 너무 완악했기에 유대인들은 오십 명의 결사단을 만들어서 로마 황제에게 먼저 가서 왕위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모의를 했는데 이 모의는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아켈라오는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 유대인 팔천 명을 학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참사가 있었음을 염두에 두시고 비유 속에 포함시키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 안의 세상에서 이루어질 태평성대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곧 세상을 졸업하지 못한 증거이며,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 뒤에 나타날 예수님의 나라를 원치 않는다는 의미가 됩니다. 한 므나를 감춰두고 주인의 뜻대로 쓰지 않았던 악한 종과 똑같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곧 주인으로부터 받은 한 므나와 같습니다. 한 므나를 가지고 장사를 하는 것이 바로 세상 졸업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 그리고 아내 사라가 한 므나였습니다. 또 백세에 얻은 독자 이삭 또한 한 므나였습니다. 이들은 기쁨과 만족을 기대할 대상이 아닌 밑천으로 삼아 장사를 해야 할 한 므나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과 그리고 아내도 아들도 졸업해야만 했습니다. 졸업하는 것이 장사였고 장사에는 이윤이 따라오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고자 했을 때에 아들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정식으로 접수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에게도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배우자를 졸업해야 합니다. 배우자라는 한 므나를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배우자가 지켜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내 마음의 채움 거리가 되어주셔서 내 안으로 들어오실 것입니다. 배우자를 소중히 여기고 아까워하던 값어치만큼 하나님을 버는 이윤을 남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계속해서 모든 과목을 이수해 나가야 합니다. 배우자를 졸업하고, 자녀를 졸업하고, 돈을 졸업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이라는 과목에서 F학점을 맞은 채로 졸업을 못하고 몸이 죽으면서 퇴학을 당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18장 25절에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 나타나게 될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을 졸업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몸이 죽을 때까지 혹은 몸은 살아있어도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아직 돈을 졸업하지 못했다면 돈이라는 과목에서 F학점이 나온 것이고 세상을 졸업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풀어보자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대단한 변화가 일어나고 태평성대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것은 세상을 졸업하지 않고 끝까지 낙제생으로 머물려고 하는 것과 같다. 내가 재림할 때에 임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는 시간과 공간 자체가 없어지면서 나타나게 될 것이고, 고깃덩어리의 육체로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롭게 변형된 몸으로만 접할 수 있는 나라이다. 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가 예루살렘으로 가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고 승천하여 세상을 졸업한 그 길을 따라서 날마다 세상을 졸업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너희가 바라는 외부적 변화를 통해 임하게 되는 하나님 나라에는 들어갈 수 없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졸업을 잘하고 계십니까? 제가 요즘 말씀을 나누는 분들과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졸업이 안 되는 것을 괴로워하는 분이 계시고, 졸업해야 된다는 생각을 적용도 못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말씀은 듣지만 세상을 졸업해야 된다는 의식자체가 삶에 적용이 안 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결혼해서 20년 30년을 살았으면 배우자라는 과목을 졸업할 때도 되었습니다. 자녀도 10년 20년을 키워봤으면 자녀가 정말 마음의 채움 거리가 되느냐에 대해서 느끼신 바가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녀라는 과목에 대해 졸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졸업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벌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녀는 하나님이라는 이윤을 남기기 위한 장사 밑천입니다. 이 자녀를 어떻게 투자하고 사용해야 할까요? 그 방법은 바로 자녀에게 기쁨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고 자녀를 졸업하는 것입니다. 자녀 졸업증이 있어야 자녀를 소중히 여기던 값어치만큼 하나님을 벌 수 있습니다. 배우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자에게 기쁨을 기대한 값어치만큼을 졸업함으로써 하나님을 벌어들이는 것입니다. 졸업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세상을 졸업하고 하나님을 벌었는지 보실 것입니다. 배우자를 밑천으로 주셨으니 배우자의 값어치만큼 하나님을 벌었는지, 자녀를 밑천으로 주셨으니 자녀의 값어치만큼 하나님을 벌었는지를 보실 것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분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결혼이라는 고민 자체를 졸업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미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를 졸업해야만 한다면, 결혼하지 않은 분들은 결혼 그 자체를 졸업하면 됩니다. “결혼을 해야 행복하고 기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한다면 여전히 결혼을 졸업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은 졸업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세상 졸업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음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음으로써만 세상의 대상들로 기쁨과 만족을 기대하는 마음이 죽을 수 있고 세상을 졸업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서 졸업한 세상의 값어치만큼 하나님을 버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번다면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벌어들인 종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에 대해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인정함으로써 자녀에 대해 졸업을 합니다. 그러면 자녀의 값어치만큼 하나님을 얻게 되고, 하나님을 얻은 만큼 일으키시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주신 이유는 그것을 붙잡고 그것으로부터 기쁨과 만족을 얻으며 행복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졸업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세상을 통째로 졸업하는 것이고, 세상을 통째로 졸업하려면 주어진 과목들을 하나씩 이수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도 배우자와 자녀와 부모와 형제자매들을 마주할 것입니다. 돈도 마주해야 하며 취미생활과 여가활동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몸으로 만나는 모든 것들이 졸업해야 될 것들임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상을 졸업하기입니다. 세상을 졸업함으로써 하나님을 버는 이윤을 남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세상을 떠나기 위함입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능력만 있으면 1년 만에 졸업할 수도 있습니다. 칭찬을 받으면 받았지 뭐라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도 가능한 빨리 졸업하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끝까지 세상을 졸업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야말로 세상 졸업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퇴학당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퇴학당한 사람이 갈 곳은 지옥입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이 주시려는 구원을 멸망이나 죄에서의 구원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죄가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기쁨을 기대하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거짓말하고 남의 것을 탐하는 것은 죄의 결과일 뿐입니다. 그런 죄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세상에서 기쁨과 만족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태어난 자들의 과제는 세상을 졸업하는 것이고 세상을 탈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세상을 졸업할 때에 하나님이라는 엄청난 이윤이 남습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만 진정한 세상 졸업은 이루어지게 됩니다. 결혼해서 배우자에게 기쁨을 얻어 보려고 하였으나 하다하다 안 되니 포기하는 것은 졸업이 아닙니다. 배우자에 대해 낙제점을 받았을 뿐입니다. 세상을 졸업하는 방식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세상을 졸업하면 마음은 하나님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채워짐이 바로 이윤입니다.

 

이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이윤을 위하여 세상에서 주어진 것들은 반드시 졸업해야 하며 떠나보내야 하고 없애야 하고 사용되어야 합니다. 배우자, 자녀, 부모형제, 돈, 몸, 권력, 명예, 취미와 여가활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상 것들이 주어진 이유는 졸업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으로부터 기쁨과 만족을 찾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오늘 본문의 비유를 통해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 시간과 공간 속에서 기뻐하고 만족할 생각을 뿌리째 뽑아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주님의 십자가 생활화를 통하여 이 세상에서 나의 마음을 끄는 모든 것들에 대해 날마다 졸업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상에서 좋은 시간, 기쁜 시간, 만족의 시간을 조금도 기대하지 않게 하시고 세상을 통째로 졸업한 사람으로서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이윤을 남기며 하루하루를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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