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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2

녹취문: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라가자_태승철 (누가복음 13장 18절~21절)

작성자제로원|작성시간21.01.01|조회수91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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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라가자>의 줄거리:

예수님의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가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도, '하나님 나라의 성장과 확장'이라는 말도, 식상할 정도로 들은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구체적이고 실제로 어떤 상황을 뜻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고, 관심은 없고, 오해만 남은 것이 현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 적합한 구호가 바로 '개인들이여 깨어 일어나라'는 것이지요.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라가자

(누가복음 13장 18절~21절)

 

18.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라가자>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라가자’

하나님 나라의 실질적인 성장과 확장이 1년 동안 삶 속에서 얼마나 이루어졌는가를 확인해 보자는 의도에서 이러한 제목을 붙여보았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에 있는 천국이 이 땅에 내려온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드러나게 되는지를 비유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이라는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 땅으로 확장을 시도합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채소밭에 심긴 겨자씨와 같고,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하는 누룩과 같다는 내용입니다.

겨자씨는 그 자체로는 지극히 작지만 성장하면 커다란 나무처럼 무려 3~5미터나 자라납니다. 채소인데도 불구하고 아파트 2층 높이까지 자라는 것입니다. 가장 작다고 여겨지는 씨가 웬만한 나무보다도 더 자라나게 되는 성장이 겨자씨 비유의 요점입니다. 누룩 또한 양은 굉장히 적으나 22리터나 되는 밀가루 반죽 속에 들어가게 되면 전부 부풀게 하는 파급효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겨자씨 비유는 하나님 나라가 크게 성장하는 것을 말한다면 누룩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파급효과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 비유가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살펴보기에 앞서 하나님 나라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가 성장하고 확장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며 내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부터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는 말 그대로 천국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6장 1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주시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곧 천국이 이 땅에 임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 땅에 임함을 통해 확장됩니다. 우리가 천국이 확장되고 천국이 성장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천국을 천국답게 하는 특징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합니다. 그 천국의 특징이 이 땅에서도 펼쳐진다면 천국이 확장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천국의 확장됨을 이 땅에서 확인할 수 없다면 아무리 천국의 확장을 이야기하더라도 실제로 확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펼쳐져 있는 천국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천국 안에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영이시고 빛이신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 2~3절을 보면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육체의 감각기관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듯이 사도 요한은 성령께서 감각기관이 되어주심으로 천국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느낀 것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고자 하였는데 어찌나 아름다운지 요한은 자신이 알고 있는 보석빛으로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천국의 특징은 살아있는 개별적 존재들 안에 하나님께서 가득히 들어와 계신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구성원 각자가 하나님으로 채워져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변화산 사건에서 드러난 바 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절을 보면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에서의 모습으로 변하신 예수님이 마치 하얀 발광체로 보였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너무 너무 아름다운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황홀경에 빠져서 그 자리에서 천막을 치고 살기를 소원하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스스로를 드러내신 것이 아니라 천국의 특징을 드러내고 계셨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천국의 특징은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 또한 하나님으로 채워져 있었기에 예수님과 같은 발광체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앞서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묘사할 때에 각종 보석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천국의 특징이 왜 하얀 빛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일까요? 이러한 모습은 언뜻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실은 공통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감의 삼원색인 빨강 파랑 노랑을 합치면 검정색이 됩니다. 그런데 빛은 삼원색인 빨강 파랑 초록색을 합치면 하얀색이 됩니다. 사도 요한이 보았던 모든 보석 빛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모습을 상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특징입니다. 천사들 또한 하얀 발광체로 묘사됩니다. 마태복음 28장 3절을 보면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천사들 또한 천국의 특징을 그대로 따라서 하나님으로 채워져 있기에 하얀 발광체와 같이 보였던 것입니다.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 천국의 특징을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 현장을 떠올려봅니다. 사도행전 6장 15절을 보면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천사 또한 빛이신 하나님이 안에 들어와 계시기에 광채가 나는 존재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얼굴이 천사와 같았다는 것은 스데반 집사님 안에도 하나님이 들어와 계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마치 하나님 나라의 유행과도 같습니다. 천국이 확장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르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유행은 빛이신 하나님으로 마음을 채우는 것입니다.

요새 우리나라의 케이팝이 온 세계로 퍼져나가며 유행하고 있습니다. 온 세계 사람들이 케이팝을 따라 부르고 춤을 추며 케이팝의 영향력이 확장되어 갑니다. 천국의 확장 또한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의 특징이 유행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입니다. 이 땅에 살지만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르겠다고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천사들도 예수님도 모세도 엘리야도 영이시고 빛이신 하나님으로 마음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나도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라서 영이시고 빛이신 하나님으로 마음을 채우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르려고 할 때 천국은 확장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으로 채워져서 천국이 확장된 사람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구약의 성전이 이러한 사람의 마음구조를 아주 적합하게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성전을 보면 가장 안쪽으로부터 지성소가 있고 성소가 있으며 번제단이 있었습니다.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상징하는 법궤가 존재했습니다. 이는 곧 마음의 지성소가 하나님으로만 채워져야 함을 상징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을 채울 수 있으리라 믿어지는 대상의 이름을 붙잡습니다. 지성소가 의미하는 바는 마음을 하나님으로 채울 수 있다고 믿고 그 이름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소에는 분향단과 떡상과 금촛대가 있었습니다. 분향단이 뜻하는 것은 기도입니다. 사람은 마음에서 붙잡은 이름을 추구하게 됩니다. 실제 존재를 얻기 위해 구하고 찾고 두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추구함은 바로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떡상은 만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이름만을 추구할 때에 하나님으로 마음의 배가 부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금촛대는 밝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게 되면 스데반 집사님처럼, 빌립보 감옥에 갇혔던 사도 바울처럼, 변화산의 예수님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빛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 성전의 모습을 갖추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을 통해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성장과 확장을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를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겨자씨 비유는 내 안에서 하나님 나라가 성장되는 것을 말합니다. 누룩 비유는 내 안에서 커진 하나님 나라가 나의 삶의 영역에 일으키는 파급효과를 말합니다.

 

이제 겨자씨와 누룩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비유를 통해 무엇이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의 특징을 생기게 하며,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르게 해주고,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기운이 파급효과를 일으키게 하는가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겨자씨와 누룩에 해당되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연쇄 사건을 일으키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나’라는 채소밭에 예수님이라는 겨자씨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나’라는 밀가루 반죽에 예수님이라는 누룩이 들어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럴 때 삶에서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며 파급효과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으니 그리스도 연쇄 사건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앞서 우리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장면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베드로의 고백에 다급하게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을 연이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1절에서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행하신 연쇄 사건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승천하시고 보좌 우편에 앉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채소밭에 심겨진 겨자씨처럼 받아들이고 밀가루 반죽에 들어간 누룩처럼 받아들인다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 연쇄 사건의 과정마다 단계마다 나와 예수님을 동일시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처하신 상황과 나를 동일시함으로써 겨자씨이자 누룩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버림당하신 예수님과 나를 동일시하여 세상 것을 좋아하는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나를 동일시하여 내가 세상에 대해 죽었음을 고백할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부활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되풀이하는 중에 일어나는 일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받아들여서 하나님의 빛을 나타내는 사람이 되는 하나님 나라의 유행이 나에게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라서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일이 일어나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주제로 말씀을 나눌 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비유와 연관하여 형성되어 있는 오해의 군을 바로 잡아야만 합니다. 겨자씨가 나무처럼 무성하게 성장한다는 것과 누룩이 가루 서 말을 크게 부풀리는 확장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기독교의 외형적인 성장이나 인간 세상 안으로 기독교의 문화적 확장으로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혹은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리라는 말씀과 연관하여 기독교가 전파되는 공간적인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를 하나의 조직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해입니다.

기독교 인구가 20억이 넘을지라도 단 한 사람도 천국의 유행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으로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기독교 인구가 얼마가 되던 천국은 확장된 것이 아닙니다. 처음 팔레스타인 땅에서 예수님과 열두 제자로 시작된 기독교가 이제는 20억이 넘는 세계 최고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웃기는 일입니다.

출애굽을 한 육십만 장정 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선민이라는 집단에 포함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남자만 육십만 명이었는데 그중에 두 명만 들어갔으니 그 나머지 남자와 가족들 또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약 250만 명으로 추산되는 선민 집단에서 고작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이들의 가족들 정도만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의 성장 또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종교라는 조직이 비대해진 것이지 결코 하나님 나라가 성장하고 확장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하나님 나라의 유행이 퍼져나감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천국 안에 있는 모든 존재는 하나님만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나님만으로 채워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유행입니다. 세계에 개신교인 10억과 가톨릭 12억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이들 중에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라 마음을 하나님만으로 채운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열두 제자로 시작된 기독교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백이십 문도로 이어지고 초대교회로 발전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복음을 받아들였던 사람들을 삼천 명이라고 해보자면 이제는 20억이 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0억 중에 정말로 마음을 하나님으로만 채운 사람이 삼천 명이나 될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는 줄어든 셈입니다.

출애굽을 한 250만 명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의 가족들과 당시에 20세 이하의 아이들 정도만 가나안에 들어간 것과 같은 상황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합쳐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20억이 넘는 인구 중에서 고작 삼사천 명 정도가 하나님으로 마음을 채우고 있다면 기독교는 외형적으로는 커졌을지 몰라도 하나님 나라는 오히려 줄어든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 현장의 모습, 빌립보 감옥의 사도 바울의 모습, 베드로 사도의 모습을 향해서 가고 있는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정말로 하나님만으로 채워지고자 하는 사람이 세계에 몇 명이나 될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으로 채워지기 위하여 날마다 그리스도 연쇄 사건을 따르며 예수님을 겨자씨와 누룩으로 받아들여서 예수님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과정을 유일한 생의 사명으로 알고 십자가 생활화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이러한 사람들이 극히 적기에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라서 마음을 하나님으로만 채우고자 하는 만큼 하나님 나라는 확장됩니다. 세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다면 세 사람만큼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는 것입니다.

저도 교회라는 이름을 앞세우며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목말라 했던 목사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목회는 결코 사람을 끌어모으고 수를 늘리기 위한 것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마음을 하나님으로 채우고자 하는 한 사람에 의해서 확장되어 갑니다. 예수님이 수만 명을 놓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수만 명이라는 무리를 향해 전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에게 전하시는 말씀입니다. 수만 명을 놓고도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시며 사람의 마음을 길가 밭, 돌 밭, 가시 밭, 옥토로 분류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결코 집단을 향한 것이 아니라 개인을 향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라 하나님만으로 채우려 하고 채워질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럴 수 없다면 하나님 나라는 확장될 수 없습니다.

 

지금 기독교는 수많은 종파의 개신교와 가톨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성이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와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교의 지도자들이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비난하시기를 마태복음 23장 13절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개신교와 가톨릭이 이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개신교라는 조직, 가톨릭이라는 조직을 앞세우고 조직에 대한 충성과 봉사를 강요합니다. 조직의 확대를 하나님 나라의 확대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기를 치는 것이고 거짓말입니다. 어느 지역의 예배당이 아무리 커져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는 무관합니다.

반대로 예배당 조직에 속하지 않았더라도 혼자 그리스도 연쇄 사건과 나를 동일시함을 매일 반복하는 중에 내 마음이 하나님으로 채워지게 되었거나 채워지는 중이라면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 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 조직에 소속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기입니다. 각자가 하늘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라서 하나님만으로 마음을 채울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늘의 소속감을 가진 사람들 전체가 교회가 되는 것이지, 결코 조직의 소속감을 갖는다고 해서 교회에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란 개별적으로 하늘에 대한 소속감을 갖는 자들 전체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이 땅의 조직은 결코 소속감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늘에 소속되었으면 교회에도 저절로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직에 대한 소속감이 하늘 소속감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조직은 이 땅에만 존재합니다. 천국에 가면 교회 조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교회 조직에 대한 소속감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땅에 속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많은 목회자들이 땅에 있는 교회 조직에 대한 소속감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성장이고 확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를 수 있어야만 합니다. 케이팝이 호주에서 유행한다면 호주에서 확장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라 마음을 하나님만으로 채울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럴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는 확장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조직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고자 할 때 하나님 나라의 유행은 막힐 수밖에 없습니다. 땅을 탈출해서 승천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늘로 가야만 될 사람들을 땅에 있는 교회라는 조직에 묶었으니 하나님 나라가 성장하고 확장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기본 전제를 이해할 때에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가 얼마나 복된 말씀인지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내 안에서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파급효과는 퍼져나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마치면서 “개인들이여 깨어 일어나라!”라는 구호를 외쳐보고자 합니다. 교회는 여러분의 소속이 아닙니다. 하늘이 여러분의 소속이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여러분의 소속입니다. 하늘에 소속되었다면 여러분은 저절로 교회 안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늘에 소속된 사람들의 모임과 만남이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마치 외국에 나가 있다가 한국 사람을 마주했을 때 반가움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이 땅에 있는 교회는 이와 같은 반가움의 모임이 되어야 하지 소속감을 느끼는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짜 교회에 소속되고 싶으시다면 하늘의 소속감을 갖고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마음을 하나님 한 분만으로 채우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유행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르는 자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 나라는 확장됩니다. 모든 진리와 모든 은혜와 모든 구원은 여러분 개인에게서 끝나고 완결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십자가 생활화를 하면서 하늘나라 소속감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유행을 따라 하나님만으로 마음을 채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인들이여 깨어 일어나라!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개인으로서 일어나서 하늘에 계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소속되기 위하여 날마다 그리스도 연쇄 사건 속의 주님을 단계 단계마다 동일시하며 따라가게 해주시옵소서. 그럼으로써 나 한 사람만이라도 천국이 성장되고 확장되는 역사를 경험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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