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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십자가 증언석이 만드는 천국 마니아>의 줄거리:
예수님은 당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천명하십니다. 그리고 본문은 이 빛을 '증언'과 연관을 짓습니다. 참으로 절묘합니다. 왜냐면 증언이 바로 빛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오실 때의 출발점인 천국, 세상을 탈출할 때의 목표점인 천국. 이 천국의 증인으로 세상을 사시다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 증언을 듣는 모두가 천국 마니아가 됩니다.
십자가 증언석이 만드는 천국 마니아
(요한복음 8:12~30)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3.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십자가 증언석이 만드는 천국 마니아>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십자가 증언석이 만드는 천국 마니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하신 일은 증언입니다. 십자가는 세상에 대해 죽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하신 증언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증언에 따르자면 우리가 의식으로 관여해야 될 대상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몰랐기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이를 증언하셔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 의식을 끄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해 의식을 켜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마음의 목마름을 영원토록 없애주는 진정한 생수의 강을 선포하신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배경에는 초막절 기간에 제사장이 번제단에 실로암 연못의 물을 붓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행사를 염두에 두고 생수의 강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한편 오늘 본문에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또한 초막절 행사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성전에는 네 개의 뜰이 있었습니다. 맨 안쪽부터 살펴보자면 번제단이 놓여있는 제사장의 뜰이 있고, 그 바깥에는 유대인 남자의 뜰이 있고, 다시 바깥에는 유대인 여자의 뜰이 있고, 마지막으로 이방인의 뜰이 있었습니다. 초막절 행사 중에 유대인 여자의 뜰에서 네 개의 황금 촛대에 불을 붙였다고 합니다. 출애굽 이후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네 개의 황금 촛대에 불을 붙이는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예루살렘 성전이 온 세상의 빛이 됨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의식이 여인의 뜰에서 이루어진 이유는 이방세계를 대표하는 이방인의 뜰과 인접해있는 곳이 여인의 뜰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성전이 온 세상에 빛을 비추는 곳이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행사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행사를 염두에 두시고 12절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시자 바리새인들은 반박합니다. 13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증언이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증언은 증인이 하는 말입니다. 빛과 증언이라는 말의 연결이 절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4절을 보면 반박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스스로를 규정하셨습니다. 이 증언에 대해 바리새인들은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라고 반박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지만 적어도 세상의 빛이라는 말에 담겨있는 의미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주석들을 보아도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증언으로 판단한 바리새인들의 이해만큼 정확한 해석은 없는 것 같습니다.
증언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가려진 사실을 이미 보고 듣고 아는 사람이 말로써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듯 말로 표현함으로써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재판정에서 증인은 사건현장을 재현함으로써 증언을 합니다. 판사나 배심원들은 그 사건을 직접 보지 못했으나 증인의 증언을 통해 사건현장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편의점에서 강도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사건을 목격한 증인이 “내가 보니 검은색 재킷을 입은 젊은이 둘이 마스크를 쓰고 편의점 주인을 윽박질러 돈을 갈취하였다.”라고 하면 그 상황을 직접 보지 못한 판사나 배심원이 증인의 말을 통해서 사건을 알게 됩니다. 증언이 이루어지기 전의 판사와 배심원의 의식은 사건에 대해 어둠 속에 묻힌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증인이 말로써 사건 현장을 재현하면 비로소 판사와 배심원들의 의식에 사건을 볼 수 있는 빛이 생깁니다. 증인이 판사와 배심원들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바리새인들이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라고 했던 말에 담겨있는 의미를 풀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 당신은 지금 스스로를 세상의 빛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도대체 당신이 왜 세상의 빛인가? 당신이 세상의 빛이고자 한다면 세상이 보지 못하는 특정한 사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증언함으로써 세상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야 빛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바리새인들이 보고 있지 못한 것이 무엇이라는 말이냐? 당신만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우리가 당신으로부터 무엇을 새롭게 볼 수 있다는 것이냐? 당신은 우리가 모르는 것을 보았다고 스스로를 빛이라 규정하지만 우리는 당신으로부터 알게 된 것이 없다. 그러므로 당신의 증언은 참되지 않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러한 의도로 말했기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는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출발점으로 삼아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천국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탈출하여 떠나시는 목표점이기도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몰랐던 것은 바로 이 천국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으로 그 천국을 알게 해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우리가 읽지 않은 21절을 보면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앞서 나온 말씀을 다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에서 이 세상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 세상을 탈출하여 천국으로 가십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께서 머무신 기간에 하신 일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여 알 수 없는 천국에 대한 증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증언을 위하여 이 세상에 머무셨던 것입니다.
증인이 법정에 출두한 이유는 증언을 위해서입니다. 법정에 있는 사람들은 판사로부터 배심원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모르는 자기만 보았던 사건을 증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증인이 증언을 마치고 나면 곧바로 자리를 떠나서 법정을 나가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이와 똑같습니다.
세상은 천국을 모르지만 예수님은 천국에 계시던 분으로서 천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천국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은 천국을 증언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법정에 출두한 증인이 할 일은 증언뿐입니다. 다른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은 그토록 좋은 천국에 대한 증언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증언을 마친 증인이 법정을 빠져나가듯이 천국에 대한 증언을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빠져나가셨습니다.
천국은 예수님이 오신 출발점이자 세상을 탈출하시는 목표점이었습니다. 십자가 사건까지의 기간은 결코 세상에서 성공하거나 번영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기간이 아니라 이 천국을 증언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천국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증언을 통해 천국을 실제로 경험한 것처럼 의식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를 세상의 빛으로 규정하셨습니다. 천국을 보게 하는 증인으로서 세상의 빛이셨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빛이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증언”이라는 말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이 세상에 대해서 우리의 의식과 마음이 살아있을 필요가 없다는 증언입니다. 이 세상은 천국과 달리 의식을 집중하여 마음의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대상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바로 예수님의 증언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증언은 바로 예수님과 똑같이 세상에 대해서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을 쓰고 손과 발이 못 박히고 배는 창에 찔리고 채찍을 맞은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대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천국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우리나라 70년대를 떠올려봅니다. 제 친한 친구의 외삼촌이 미국에서 교수로 계셨습니다. 이분이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에 들릅니다. 외삼촌이 미국에서 올 때는 선물을 가져옵니다. 그러면 이 친구는 외삼촌이 준 선물이나 엽서를 저에게도 보여줍니다. 저는 그 선물이나 엽서를 통해서 미국의 끝자락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70년대는 미국이 전성기였기에 그 끝자락을 접하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우리나라보다 앞서있고 살기 좋은 별천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갇혀있던 저의 의식이 미국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미국에서 온 손님은 미국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해주는 빛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온 사람은 미국의 증인이 됩니다. 70년대 한국에 갇혀 살던 의식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좋은 곳이라는 빛을 주면서 보게 합니다. 실제로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미국으로 이민가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이 세상에 의식이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주시고자 하셨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 외에는 상관할 줄 모르는 세상에 갇힌 사람들에게 천국이라는 세계를 보게 하시는 빛이셨습니다. 사람들은 육체로 3차원의 세상을 사는 동안 4차원의 천국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4차원의 세계인 천국에 계시던 예수님께서 오셔서 증인이 되셨습니다. 말과 행동을 증언으로 삼아 우리의 의식이 천국을 접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신 것은 지금 마음을 천국으로 보내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죽은 다음에나 갈 곳이라고 믿으며 사는 동안 천국을 잊고 사는 것은 천국을 의식하는 삶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국을 의식하는 것은 지금 이루어져야 합니다.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에 세상 사람들은 승진을 의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증언을 들었다면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천국을 의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삶의 현장에서 천국은 의식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일을 하셨기에 스스로를 세상의 빛으로 규정하셨던 것입니다.
천국을 의식할 때에는 두 가지 일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에서 이 땅에 오셨고 다시 이 땅을 탈출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과 같은 방향을 취하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선을 따라가는 동안에 천국을 보게 되면서 천국 마니아가 됩니다.
죽은 다음에 천국에 갈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 마니아들은 지금 천국을 누리고자 합니다. 부자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돈 마니아입니다. 입만 열면 돈 노래를 부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천국 마니아입니다. 입만 열면 천국을 노래합니다. 예수 따름은 천국을 바라보기이고 천국을 향해 가는 것이고 천국 마니아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할 때는 반드시 천국을 의식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은 세상을 탈출하게 됩니다. 이 세상 탈출과 천국 바라보기를 놓치지 않을 때만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부를지라도 의식에서 천국을 놓친다면 예수님을 부르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예수님 따름은 천국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제가 카투사로 복무할 때에 김 병장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미국 마니아입니다. 당시는 70년대 말이었는데 미군부대 내에서 한국문화는 다 시시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분은 미군들에게 부탁하여 PX에서 미군 물품을 구입하였습니다. 근무가 끝나면 자유시간이 있었는데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다닙니다. 모자, 재킷, 청바지, 선글라스, 부츠까지 카우보이 스타일로 맞추어서 입습니다. 온몸에 미국이 주렁주렁 열매 맺는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카투사들을 봐도 미국에 대한 동경은 어떤 식으로든 표출되기 마련이었습니다. 미군부대에서 배운 영어로 인사를 하고 영어로만 말하려고 합니다. 김 병장님에게 있어서 한국에 파견 나온 미군들은 미국을 보게 하는 빛이었습니다. 미군들을 통하여 미국을 보면서 미국 마니아가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는 우리 또한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오셨고 천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만 합니다. 십자가를 보면서 세상에 대한 의식이 죽고 마음의 목마름이 죽음으로써 천국 노래를 부르는 천국 마니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천국의 증인이시자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고 믿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23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예수님의 상태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상태입니다. 예수님의 증언을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천국을 보게 됩니다.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은 천국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천국 마니아가 되어서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천국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됩니다.
그렇다면 천국 마니아의 삶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12절을 다시 보면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국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로 살아갑니다. 천국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는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대로 영적인 음행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없어서 생긴 마음의 목마름으로 다른 대상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음행이 일어나는 이유는 하나님 이외에 세상에서 만나는 대상들이 마음에서 좋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좋게 느껴지지만 이것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어둡기 때문에 천국을 못 보면 세상은 반드시 좋게 느껴집니다.
원효대사의 해골 물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원효대사가 당나라 유학을 가던 길에 해가 지자 피곤한 몸을 누이기 위해 한 동굴을 찾아 들어가게 됩니다. 잠을 자던 중에 목이 말랐는데 손을 더듬어보니 바가지에 물이 담겨있어서 이것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잘 자고 일어나서 아침을 맞이했는데 자기가 들어간 동굴은 무덤이었고 바가지에 담긴 물은 해골에 고인 물이었습니다. 어둠 때문에 일어난 착각이고 오해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삶 전체는 천국을 보여주는 증언이었습니다. 천국이 있음을 알았다면 이 세상에 대해서는 십자가에서 죽은 자로 대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않아서 천국을 못 보면 세상의 진실도 볼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7~9절에서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증언을 통해 천국을 보게 되면 이 세상 것들에 목말라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알게 됩니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돈으로 마음의 목마름을 채우고자 합니다. 그러나 돈은 전혀 마음에 담을 만한 대상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깨닫고 마음에 돈을 담는 것이 마치 배설물을 담는 것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돈이 본래 더러운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담지 않으면 본래의 용도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치들이 모두 이와 같습니다. 다 나름의 용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좋아해서 마음에 담으면 배설물과 다름없게 됩니다. 예수님의 증언을 통하여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천국을 의식으로 보게 된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기에 마음에서 구역질이 납니다. “내가 왜 이런 것들을 마음에 담으려고 했을까?”라고 여기게 됩니다.
배설물을 손에 움켜쥐고 먹으려고 한다는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와 같은 일이 우리의 마음에서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가치들은 마음에 담기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건강, 돈, 승진, 합격, 흑자 등의 것들에 침을 흘리며 원했습니다. 어두움에 묻혀서 진실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천국을 보자 진실이 보이게 됩니다. 그것을 가지려 했던 것 자체가 생각만 해도 구역질 나는 짓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천국을 못 보는 상태에서는 세상의 가치들이 잠결에 마신 해골 물처럼 달고 맛있고 향기롭고 좋은 것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주님은 천국 증언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증언은 빛이 되는 것입니다. 증언은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만질 수 없어서 알 수 없었던 어떤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로써 재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증언의 내용을 보면서 “이것이 사실이구나! 이런 일이 있었구나!”라고 깨닫게 될 때 그동안 가려져 있던 사실에 대해 빛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스스로를 빛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전혀 알 수 없는 천국에 대해 증언하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바리새인들은 천국에 대해 교리적으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천국은 죽음 다음으로 미루어진 천국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유대인들 중에서도 하나님에 대해 전문가라고 자타가 공인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미루어진 천국에 대해서밖에 알지 못했기에 삶에서는 돈과 명예를 그토록 좋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천국을 보지 못하기에 세상의 가치가 맛있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돈도 명예도 마음에 담을 대상은 아닙니다. 천국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구역질이 나는 대상들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을 탈출하신 과정은 바로 법정에 출두한 증인의 역할을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천국의 마니아가 됩니다. 천국 마니아들은 날마다 의식으로 십자가를 붙잡고 예수님께서 천국을 향해 가셨다는 사실을 알고 예수님을 보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볼 때 무슨 문제에 사로잡혀있다가도 천국을 향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세상에서 탈출하시고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라는 그림을 그리며 의식에서 예수님을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천국을 의식하는 동안 입만 열면 천국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12절 하반부에서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천국 마니아가 될 때 우리의 생명이시자 우리 마음의 유일한 채움이 되실 수 있는 하나님 아버지를 드디어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으로 하여금 천국을 보게 하시는 빛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라서 천국을 보는 자들의 마음을 채우실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의 빛이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을 볼 때 증인으로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증인이신 이유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천국에서 오셔서 세상을 탈출하실 때까지 천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가를 증언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머리 둘 곳 하나 없이 사실 수 있었던 이유는 천국의 좋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이 세상은 좋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왕궁도 좋게 여기시지 않았기에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직 가장 좋은 천국을 증언하셨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동선을 기억함으로써 천국을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적 현실로 삼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천국 마니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세상을 살지만 더 이상 세상을 과제로 삼지 않게 하여주시옵소서. 동선 상의 주님을 바라보며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한 의식의 불이 꺼지고 오직 천국을 향해서만 의식의 불이 켜짐으로 입만 열면 천국 노래가 나오는 천국 마니아로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