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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2

녹취문: 출가 외계인의 즐거운 시댁 생활_태승철 (요한복음 17:20~26)

작성자제로원|작성시간22.02.14|조회수47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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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출가 외계인의 즐거운 시댁생활>의 줄거리:

유교의 영향으로 남녀 차등이 극심하던 조선 시대에 여자는 일단 시집가면 더는 친정 식구가 아니었습니다. '출가외인이다', '그 집안 귀신이 되어라'. 이 모두 다 시집가는 딸에게 아버지가 당부하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 믿음은 예수님만 달랑 빼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천국 가족 관계의 덩어리이신 예수님 믿음은 출가 외계인이 되는 겁니다.

 

출가 외계인의 즐거운 시댁 생활

(요한복음 17:20~26)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오늘 말씀 중심으로 <출가 외계인의 즐거운 시댁 생활>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출가 외계인의 즐거운 시댁 생활”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는 말을 잘 아실 것입니다.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남녀차별이 심하던 조선시대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는 말입니다. 아버지가 시집가는 딸에게 “너는 이제 출가외인이다. 그러므로 시댁에서 죽어 그 집 귀신이 되라.”고 당부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이와 닮은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는 예수님만 따로 떼내어 간단하고 깔끔하게 믿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천국 가족관계가 뭉쳐있는 관계의 덩어리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에 기록된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반복해서 강조되고 있는 내용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1절을 보면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는 말씀이 예수님께는 왜 중요했던 것일까요? 이것이 오늘 말씀의 제목과 연관이 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께서는 천국 가족관계의 덩어리이셨습니다. 이러하신 예수님과 연합해서 안다는 것은 마치 신랑과 신부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각각 시댁과 처가의 관계의 덩어리입니다. 결혼을 하면서 배우자만 그가 속한 관계의 덩어리로부터 칼로 자르듯이 빼내 올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과의 연합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고 연합하여 알게 되는 상황에서 결코 천국 가족관계의 덩어리로부터 예수님만을 빼내어 믿을 수 없고 연합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십자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출가외인이라는 말과 접목시켜 보자면 출가 외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친정과의 관계가 모두 끊어지기에 출가외인이라고 불렀듯이, 세상에서 맺은 모든 관계가 십자가를 통해 끊어지는 출가 외계인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십자가로 완전히 끊어진 상태에서만 예수님이 맺고 계신 천국 가족관계의 덩어리에 합류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아버지는 시집가는 딸에게 “네가 시집을 가면 이제 출가외인이다. 네가 이제까지 태어나서 자라온 집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시댁 사람이 되고 죽어서도 시댁 귀신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천국이 시댁이라면 이 세상은 친정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제 이 세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예수님을 믿고 연합하여 천국 가족관계에 합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두 가지 핵심을 갖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제자들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기를 간구하시는 내용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음은 인격의 핵심인 의식과 마음이 세상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이 점에 대해서 단호해야 합니다. 세상을 결정적으로 잘라낼 수 없다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온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연합해서 예수님이 관계를 맺고 계신 천국으로 시집을 간 사람이 갖게 되는 모든 기쁨과 평강을 누릴 수 없습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세상으로부터는 출가외인이어야만 합니다. 천국을 이 세상이 아닌 외계로 비유하자면 출가 외계인이 되어야만 합니다. 두 번째는 제자들이 천국에 속하기를 간구하시는 내용입니다. 제자들이 정말로 천국을 시댁으로 생각해서 천국의 가족이 되기를 간구하셨던 것입니다. 천국의 가족으로 천국에 머무는 양상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체되심에 참여함으로 사위일체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기 위해 세상에서 출가하여 천국으로 떠나기 위해서는 십자가 예수님이 내 마음속에서 영광을 받으셔야만 합니다.

정리해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을 변화산의 예수님처럼 좋게 느껴야만 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부럽게 느껴질 정도로 세상과 단절이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세상을 끊는 칼과 같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한 마지막 기도의 첫 번째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상을 끊고 하늘로 올라가서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님과 신랑이신 예수님과 더불어 온전히 천국의 가족으로 연합하는 사위일체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의 두 번째 핵심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천국에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출가 외계인이라는 말로 표현해 본 것입니다.

 

20절을 보면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었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전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에 관한 말을 듣고 믿게 되는 사람들에게도 제자들에게 일어났던 일이 똑같이 일어나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예수님을 말로 전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결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과 결혼한 것처럼 나의 말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과 결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은 예수님에 관한 말을 전할 수도 없습니다. 말을 전할 자격이 없는 상태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들의 말 속에서는 예수님과 연관된 사건들이 재현되는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법정에서 증인은 증언을 합니다. 증인 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한 사건을 증언함으로써 사건을 재현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역할 또한 이와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건과 부활과 승천과 보좌 우편에 이르신 과정을 증언함으로써 재현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들은 전해지는 말씀 안에서 재현되는 사건 안에 계신 예수님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전해진 예수님에 대해 듣고 결혼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전해진 말들은 곧 예수님에 대한 사실입니다. 이 사실 속에 들어계신 예수님과 연합함으로써 결혼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에 대한 말을 들을 때에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상황이 어떠하냐가 아닙니다. 내 상황을 떠나서 예수님의 상황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속에 계신 예수님을 보면 예수님은 천국의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임을 보게 됩니다. 또 보내지신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는 분임을 보게 됩니다. 또 세상을 떠나신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셨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연관된 사실을 보는 것입니다.

나와 연관된 상황에 예수님을 연결하며 보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사실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을 객관적으로 분리해서 예수님에 대한 사실들을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천국과 아버지가 함께 묶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본문 21절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는 바가 오늘 제목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만을 독립적으로 바라보고 믿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아버지와의 연관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한 집안의 장남이 결혼을 하려고 선을 보게 되었습니다. 선을 보는 자리마다 “나는 부모님을 모셔야 됩니다.”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이와 마찬가지이셨습니다.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에 비유하자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시아버지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연합하여 결혼을 하면 시아버지인 하나님을 모시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자 한다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모시기 위하여 이 세상이라는 친정을 완전히 떠나서 시댁으로 들어가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 21절에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고 26절에서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라고 간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토록 반복하여 강조하시는 이유는 예수님이라는 신랑이 계속해서 신부에게 퇴짜를 맞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랑은 사실을 말하지만 신부가 그 사실을 싫어할 수 있습니다. “나는 장남이기 때문에 부모님을 모셔야 됩니다. 그러니 결혼하면 시부모님과 평생 같이 살아야 합니다.”라고 하는데 신부 될 사람이 시부모 모시기를 꺼려하면 결혼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이와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이 세상의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문제를 떠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시아버지로 모시고 출가 외계인이 되어야 나와 결혼할 수 있고 나를 믿을 수 있고 나와 연합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싫어합니다. 그렇기에 실제로 예수를 제대로 믿는 사람이 적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붙잡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시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팔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 관심의 대상인 세상을 떠나는 출가 외계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출가 외계인이 되기를 두려워하여 거절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와의 연결은 떼려야 뗄 수 없기에 그 관계를 자꾸 드러내면서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는 사람은 천국에 계신 아버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없다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없다고 여기실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여자가 시집을 가면 친정을 끊어야 했듯이 예수님과 만나 연합하려면 세상을 끊어야만 합니다. 시아버지로 비유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계시는 천국으로 가야만 합니다. 세상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은 예수님 믿기의 제일 어려운 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천국 가족관계에서 삼위일체 되심의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제자들에 의해서 예수님을 소개받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결혼해야 될 사람들입니다. 결혼해야 될 예수님은 천국에서 삼위일체를 이루고 계십니다. 이 삼위일체를 흐트러뜨리고 예수님만 빼내서 이 세상에서 능력 있는 남편으로 모시고 살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과 결혼하고자 한다면 시아버지가 계시는 시댁으로 들어가듯이 반드시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되었을 때 이루어지는 일들에 대해 17장 전체를 통하여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의식과 마음이 예수님과 연합하면 천국이라는 시댁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시아버지로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시아버지로 만나면 의식에서 하나님이 첫 번째 존재감의 대상이 되십니다. 며느리가 음식을 만들 때 남편보다도 시부모님의 입맛을 고려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내가 예수님과 결혼했다는 자아의식을 갖고 있으면 제일 먼저 만나는 존재감의 대상은 시아버지인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그 시아버지는 천지의 창조주요 주권자이십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는 것은 곧 연합함입니다. 예수님과 연합을 결혼에 비유하여 설명드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연합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해 죽고 출가 외계인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러한 출가 외계인이라는 자아의식을 갖게 되면 세상이 아닌 천국 시댁에 계신 시아버지인 하나님께서 존재감의 첫 번째 대상이 되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시아버지들은 며느리에게 말도 못할 부담감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연합함으로 출가 외계인이 되어서 천국 시댁에 속한 며느리에게는 하나님은 결코 부담감의 대상이 아닙니다. 의식에서 하나님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은 즐거운 시댁 생활의 시작입니다.

출가 외계인이 되어서 친정인 세상을 떠나 시댁인 천국에 속하게 된 증거는 의식과 마음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 보이고 무엇이 들리더라도 의식은 언제나 아버지의 존재감이 첫 번째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마음에서는 아버지의 좋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따라서 내가 출가 외계인으로 천국 시댁에 속했는가를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날씨가 흐려도 그저 흐린 것이 아닙니다. 의식에서 하나님의 존재감을 첫 번째로 느끼는 며느리라면 “아버지께서 날씨를 흐리게 하셨구나.”라고 보게 됩니다. 또한 마음은 의식이 느끼는 존재감의 대상을 간과하거나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이전에는 날씨가 흐리면 찝찝하다고 여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출가 외계인의 마음이 되면 날씨가 마음에 직접 좋고 나쁨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시집간 사람으로서 천국 시댁에 들어가서 하나님 아버지를 시아버지로 느낀다면 의식이 하나님의 존재감을 먼저 느끼기에 마음 또한 하나님을 넘어서 날씨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문제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돈 문제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돈 문제에 대해서 출가 외계인이 되는 것입니다. 출가 외계인이 된 사람은 천국 시댁에서 시아버지인 하나님을 첫 번째 존재감의 대상으로 느낍니다. 의식이 하나님을 느끼고 있기에 마음이 아버지 하나님을 피해서 돈 문제로 좋고 나쁨을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의식이 느끼는 존재에 마음 또한 걸리게 됩니다. 있다는 것으로 느껴야만 좋고 나쁨 또한 뒤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육체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접하고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출가 외계인으로 천국 시댁에 들어간 사람은 빛이시고 영이신 하나님을 시아버지의 존재감을 느끼기 때문에 마음에서 세상의 상황에 따라 좋고 나쁨을 느낄 틈새가 없습니다.

의식과 마음이 예수님과 연합하여 하늘에 올라간 사람은 빛이시고 영이신 하나님의 존재감을 먼저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날씨도 주관하심을 알고 있기에 날씨가 흐려도 좋고 맑아도 좋습니다. 돈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주권자이시기에 돈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습니다. 이것이 즐거운 시댁 생활의 주된 내용입니다.

 

세상에서는 아내가 아무리 설득을 해도 남편이 듣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의견은 무시한 채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아버지의 결정만 따르고자 한다면 파파보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역사상 가장 완벽한 파파보이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의 의식과 마음은 예수님과 연합하여 출가 외계인이 되어 천국에 왔지만 몸은 여전히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파파보이 신랑 안에 갇혀 있으면서 예수님과 결혼한 우리는 파파며느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세상과는 다르게 오직 시아버지인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데 기차가 레일 위로 달리듯이 견고한 평강이 주어집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15장 10절에서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시아버지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갈 때에는 기쁨이 주어집니다. 그 기쁨이 나를 감싸서 이 세상의 삶이 에덴이 되게 하십니다. 출가 외계인이 된 천국 며느리의 삶은 하늘에 계신 시아버지 하나님의 생각만을 받아서 사는 삶입니다. 파파며느리가 될 때에 평강이 유지되고 시아버지의 기쁨이 넘쳐나고 그 기쁨 가운데 삶은 에덴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출가 외계인으로서 이 세상을 사는 파파며느리들의 삶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내용을 간구하십니다.

 

17장 전체는 예수님의 간구입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예수님의 간구의 내용이 그대로 우리의 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예수님과 연합한 자아의식을 가지고 간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간구하신 것을 우리도 간구해야 합니다. 이 간구의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주기도문의 내용을 다른 말로 언급해주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기도의 핵심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예수님과 연합하여 아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에게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이 변화산의 예수님과 똑같이 사랑스럽고 좋아할 대상이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 자체가 부러운 일이 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상태입니다. 우리 안에서 십자가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실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세상에 속하지 않는 출가 외계인이 됩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 이르신 그리스도 연쇄과정을 통하여 나의 의식과 마음이 천국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 가족관계의 덩어리이신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이함으로써 세상이 아닌 외계인 천국의 시댁에 속하게 되는 출가 외계인의 새로운 소속감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시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존재감이 느껴지는 대로 마음은 기쁨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삶 또한 파파보이이신 예수님의 신부답게 파파며느리로 살게 됩니다. 시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고 출렁거리며 우리의 삶이 에덴으로 바뀌어 가는 출가 외계인의 즐거운 시댁 생활이 되어갈 것입니다.

출가 외계인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즐거운 시댁 생활은 하늘에 속함입니다. 이 두 가지 핵심의 간구가 여러분 각자에게 이루어짐으로써 오늘도 출가 외계인의 즐거운 시댁 생활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의식과 마음이 완전히 세상과 절연되기를 그토록 간절히 반복하여 간구하셨습니다. 이 주님의 간구가 나의 간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심으로 이 간구가 이루어져서 온전한 출가 외계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외계인답게 온전히 시댁인 천국에 속하여 천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기쁨과 은혜를 함께 누리는 파파며느리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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