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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2

녹취문: 살아생전 영생에 최적화된 인격_태승철 (요한복음 3:13~15)

작성자제로원|작성시간21.10.14|조회수47 목록 댓글 0

www.everyday01.com 십자가(0,1)복음방송

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살아생전 영생에 최적화된 인격>의 줄거리:

하나님이 주신 독생자를 믿어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기존의 인격이 유지되는 가운데 몸이 죽은 뒤에 영생을 덧붙인다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몸이 살아 있는 동안 인격 자체가 영생에 최적화 된다는 뜻입니다. 이미 지금부터 그렇게 최적화 된 상태에서 영생을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예수님 받아 가지면 됩니다.

 

살아생전 영생에 최적화된 인격

(요한복음 3:13~15)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 말씀 중심으로 <살아생전 영생에 최적화된 인격>이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 합니다.

 

“살아생전 영생에 최적화된 인격”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에 인격이 영생에 최적화된다는 의미입니다. 민수기 21장을 보면 모세가 장대에 구리뱀을 매단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길이 험난하고 애굽에서 먹던 고기나 부추와 마늘이 없음을 불평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불뱀을 보내서 육체에 독이 퍼지게 만드셨습니다. 그러자 불뱀에 물려 죽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잘못을 고했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아 높이 들게 하셨습니다. 장대의 구리뱀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불뱀의 독으로부터 해독되어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거듭남,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산 사람만 들어가는 천국과 연결하여 이 사건을 언급하십니다.

 

13절을 보면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예수님 외에는 하늘에 있었던 사람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꼭대기인 하늘에 계셨던 적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신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장대의 구리뱀을 든 것처럼 십자가에 매달릴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장대의 구리뱀을 바라보았던 사람들이 불뱀의 독에서 나아 죽음을 면할 수 있었던 것처럼,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밝히십니다.

이 말씀을 거듭남과 연관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기존의 인격이 죽고 영생을 사는 인격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리고 영생에 최적화된 인격으로 거듭남은 이 땅에서 살아생전에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인격이 영생에 최적화되었다면 이미 영생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하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영생이 주어지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인격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부터 존재합니다. 하지만 영생은 덧붙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기 이전부터 유지되어온 기존의 인격 상태에 영생을 덧붙여주시지는 않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들의 기존의 인격은 예수님과 함께 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생에 최적화된 인격으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기존의 인격에 덧붙여진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인격이 죽고 몸이 살아있는 동안부터 아예 영생에 최적화된 인격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게 될 경우 이미 영생에 최적화된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 무속에서 죽지 않고 깊은 산속에서 사는 산신령처럼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살면서 인격이 영생의 인격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13절을 생각해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라는 말씀은 예수님만이 하늘에 계셨던 적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거듭남의 이야기에 이 말씀이 이어지는 이유는 예수님만이 우리가 믿어야 하고 십자가에 연합해야 하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생에 최적화된 인격은 예수님이 계셨던 적이 있는 천국으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몸이 살아있는 동안에 영원한 천국으로부터 다시 태어난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흔히 영생을 얻는다는 표현을 쓰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생은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적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영생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대로 죽지 않는 불사신적 인격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천국은 죽은 뒤에 들어갈 곳이 아닙니다. 천국으로부터 다시 태어나 세상으로 나와 살아야 하는 곳입니다. 천국으로부터 태어난 사람이 아니면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천국으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영생에 최적화된 인격이고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봄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는 하나님만을 좋아하는 인격이 됩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나의 죽음을 이루어주셨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장대의 구리뱀을 언급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반드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임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나면 부활하신 예수님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죽고 새로 태어난 마음은 공백의 상태이기 때문에 채움거리로 좋은 것을 붙잡게 됩니다. 그런데 부활의 자리에서 좋은 것을 찾을 수 있는 길은 외통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 이르신 외통수 길을 따라가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나의 의식이 십자가를 망각하지 않고 붙잡고 있는 한 나는 세상에 대해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승천하신 외통수 길을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만을 좋음으로 선택하여 붙잡고 채움을 열망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지정의가 활성화되면서 인격이 탄생하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탄생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마음 채움을 위해 선택한 좋음의 대상이 인격의 어머니이자 자궁이 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좋아한다면 하나님은 인격이 태어나는 자궁이 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다만 인간이 하나님 아버지를 유일한 좋음의 대상으로 모실 수 있는 방법은 십자가의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뿐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인정할 때에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 안에 들어가 부활과 승천과 보좌 우편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유일하게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만을 열망하게 되고 이 땅에 남아있는 지정의의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인격이 태어나는 과정입니다.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이고 영으로부터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태어난 인격은 영생적 인격이 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영생은 기존의 인격에 덧붙이거나 덧씌워질 수 없습니다. 인격 자체가 산신령처럼 영생적 인격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생적 인격의 형식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마음 채움을 위해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열망은 지정의 즉 생각과 감정과 의지의 기능을 움직이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격의 탄생입니다. 다만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 있는 것들을 좋아하면서 그 열망이 지정의를 깨우며 나타나는 인격입니다. 이 인격은 세상으로부터 태어났기에 영생의 최적화된 인격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지옥의 삶에 최적화된 인격입니다.

한편 살아있는 동안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셨던 적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와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심을 통하여 하늘까지 가는 길이 되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서 세상에 대해 죽었음을 인정하는 자들은 예수님 안에서 부활과 승천과 보좌 우편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마음이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을 소원하고 하나님을 유일한 좋음으로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열망하고 소원하고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에 의해서 일깨워진 지정의의 인격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생에 최적화된 영생적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기존의 인격에 영생이 덧입혀지는 것이 아니라는 예를 하나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돈을 많이 벌면 마음이 채워질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돈에 대한 열망에 의해 생각과 감정과 의지와 말과 행동이 일깨워지고 활성화됩니다. 돈으로부터 태어난 인격을 가지고 있으니 돈의 자녀입니다. 그러던 중 이 사람이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인격이 유지됩니다. 목사님이 “예수님을 잘 믿으면 돈 많이 벌고 잘 살 수 있다.”라는 소리를 희망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되기 위하여 봉사하고 충성하고 헌금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기존의 인격에 영생이 덧입혀지기를 바랐지만 영생은 덧입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돈으로부터 일깨워진 인격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했습니다. 돈이 아닌 하나님을 좋아하는 인격으로 일깨워졌을 때 그 인격이 영생적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영생적 인격의 반대 상태는 세상적 인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이 세상 것들을 좋아하여 태어난 인격을 가지고 사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몸이 죽으면 어떠한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살아있을 동안에는 몸을 통해 세상을 접할 수 있었지만 이제 몸이 없으니 마음은 세상과 단절됩니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더 이상 마음채움거리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태어난 인격은 천국과 무관하기에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지옥은 마음을 채울 대상이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물론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 크기로 지음 받았기에 세상에서도 마음 채움 거리를 찾을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마음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은 사탄에게 속아서 가지게 된 거짓된 희망입니다. 돈을 벌면 마음이 채워질 수 있다, 건강하면 마음이 채워질 수 있다, 승진하고 합격하면 마음이 채워질 수 있다고 여기지만 전부 사탄에게 속은 것입니다. 거짓 희망에 속아서 평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은 이러한 거짓 희망조차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옥에 대해 묘사하시기를 마가복음 9장 49절에서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이러한 묘사에서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연상합니다. 다만 지옥이 이러한 고통을 주는 장치가 없이 텅 빈 곳이라도 가장 괴로운 장소인 이유는 마음의 채움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육체가 부글부글 끓는 가마 속에 던져지거나 이글이글 타는 불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마음에서 더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사람에게 가장 괴로운 상태는 비어있는 마음을 채울 대상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거짓으로라도 마음을 채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없을 때 살아있는 몸으로 불 속에 뛰어드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상태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상태입니다. 반면에 영생이 이루어지는 천국은 영원토록 하나님 아버지로 마음을 온전히 채울 수 있는 곳입니다. 지옥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면 천국의 기쁨이 어떠한 것인지를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장대의 구리뱀을 들었던 사건으로 돌아가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바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 있었습니다. 광야는 세상에서 좋다고 여기는 것들이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지금이야 땅속의 유전이라도 찾을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3500년 전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광야는 마음채움거리가 없는 장소였습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중에 먹었던 음식조차 없는 곳이었고 애굽의 바로나 귀족들이 누리던 호사를 바라볼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러한 광야로 이끄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내려다보실 때는 이 세상 전체가 광야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의 좋음을 기준으로 볼 때 이 세상은 광야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 세상은 좋은 것으로 가득해 보입니다. 그러나 천국의 입장에서 세상을 볼 때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천국의 좋음을 알고 계신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 천군천사들이 볼 때 세상은 광야입니다. 그리고 변화산에서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셨을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내려왔을 때도 이 세상은 좋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광야입니다.

이러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뱀에 물리게 됩니다. 불뱀은 사탄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사탄의 독이 인격 속에 퍼지게 되자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 세상에서 너무나 좋은 것들이 많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모습은 변화산 사건과 대조적입니다. 변화산에서 베드로는 마치 빛의 덩어리처럼 변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셨던 삼일 외에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삼위일체 되심이 중단된 적이 없으셨습니다. 변화산에서의 모습은 하나님 아버지의 빛이 예수님을 투과해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투과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빛을 보자마자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능력으로 얻고 싶었던 것들을 모두 망각 속으로 던져버리게 됩니다. 그렇기에 심지어 산중에서 초막을 짓고 살자는 제안까지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좋음의 특징입니다. 아버지의 좋으심을 직접 쐬게 되면 이 세상은 광야로 변하게 됩니다. 돈, 건강, 승진, 합격, 명예, 권력 등의 세상의 모든 가치들이 모두 광야의 모래알처럼 여겨지게 됩니다. 반대로 불뱀인 사탄의 독이 퍼진 인격의 상태에서는 세상의 가치들이 꿀처럼 맛있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 독은 해독되어야 합니다. 장대의 구리뱀을 보았을 때 해독되었던 것처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고 그 예수님이 나 때문에 죽었음을 믿을 때 사탄의 독은 해독됩니다. 그리고 의식으로 십자가를 계속해서 붙잡는 동안 유일하게 좋으신 하나님을 향하고 오직 하나님으로 마음을 채우고 싶어 하는 열망이 생기게 됩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사탄의 독이 해독되면 하나님만을 좋음으로 열망하게 됩니다. 아직 이 세상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하나님에 대한 열망에 의해서 일깨워지고 살아나고 활성화됩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바로 그러한 인격 상태가 된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장대의 구리뱀을 바라봄의 의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봄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음에서는 여전히 돈이 좋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건강했으면 좋겠고, 권력도 있으면 좋겠고, 안정적으로 살았으면 좋겠고, 외모도 준수하면 좋겠습니다. 이때 내가 사탄인 불뱀에 물려 독이 펴져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장대의 구리뱀을 바라보는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천국에서 아버지의 좋음을 쐬고 있는 존재들이 바라보는 이 세상은 모래알투성이의 광야입니다. 그 모래알들이 갑자기 산해진미로 보이고 돈으로 보이고 건강으로 보이고 세상의 축복으로 보인다면 불뱀의 독이 퍼진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은 모래알을 끌어안고 내 것이 되게 하겠다고 난리를 치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돈이나 권력 같은 대상에 대한 것뿐만이 아닙니다. 태어난 외모에 대해서조차 사탄의 독은 퍼질 수 있습니다. 외모가 남들보다 조금 더 낫다고 생각해서 나도 모르게 만족한다면 고작 그것 때문에 영생에 최적화된 인격이 될 수가 없습니다. 아직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불뱀의 독으로부터 해독이 안 된 상태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외모는 자긍심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영생을 잃어버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가 되시는 길에는 타협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가치들을 광야의 모래알로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사탄의 독이 퍼져서 광야의 모래알들이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상태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깨뜨려버릴 수 있어야만 합니다. 하늘에 계셨던 적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일 때 마음은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만이 유일하게 좋은 분이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좋으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순교의 순간에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살아있는 동안에 그렇게 천국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데반 집사님이 평생 그렇게 천국을 느꼈던 것은 아닙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예수님을 믿은 이후로 하나님의 좋으심을 믿음으로 느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변화산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신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을 보면 보좌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삶, 사도 바울의 삶, 사도 베드로의 삶을 통해서 증언되는바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신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 세상은 좋은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기처럼 되라고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총독자리에 올라도 왕의 자리에 있어도 그것은 사막의 모래로 쌓은 성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실제로 좋은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계셨던 적이 있는 유일한 분이시기에 천국의 좋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경험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구유에 태어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까지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셨던 것은 그만치 세상이 좋은 곳이 아니라는 역설입니다. 천국의 좋음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는 말구유가 왕궁보다 못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인간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은 제일 깨끗한 곳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좋으심을 통해 활성화된 인격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하신 예수님의 인격과 모든 행적이 천국의 좋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의 좋음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셨다는 것은 이 세상에 그만큼 좋아서 가지고 싶어 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믿음만 가져도 천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가를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계셨던 적이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우리를 그 좋은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게 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천국의 좋음을 통하여 일깨워진 인격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갖지 않으셨습니다. 이 세상이 광야 같은 곳임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불뱀에 물려서 모래알을 맛있고 좋게 여기는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세상 것이 좋게 여겨진다면 십자가를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오직 불뱀에 물렸음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장대의 구리뱀을 바라볼 수 있듯이, “내가 불뱀에 물린 인격이구나. 이 인격은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라고 인정하는 사람만이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세상이 좋게 여겨진다면 불뱀에 물린 인격입니다. 이러한 인격 전체가 통째로 죽어야 함을 인정할 때에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봄으로써만 하늘에 계셨던 적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신 예수님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영생에 최적화된 인격이 될 수 있습니다. 산신령처럼 미리 이 세상에서 영생적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좋음을 자궁으로 삼아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에 들어갈 사람으로 천국으로부터 나와서 오늘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영생적 인격을 가지고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듭남이란 기존의 인격에 영생을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영생에 최적화된 영생적 인격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정말 주님은 제 품안으로 넝쿨째 굴러들어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주님만이 이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보물임을 깨닫게 해주셨사오니, 오늘도 하루종일 의식이 십자가 예수님을 잊지 않음으로써 영생적 인격이 되게 하시고 하늘로부터 나와서 이 땅을 사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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