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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2

녹취문: 성탄과 업로드의 복 다운로드의 복_태승철 (에베소서 4:25~32)

작성자제로원|작성시간22.12.26|조회수69 목록 댓글 0

www.everyday01.com 십자가(0,1)복음방송

 

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성탄과 업로드의 복 다운로드의 복>의 줄거리 :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성탄의 사건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기적 같고 신비한 두 가지 복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복을 누리는 사람이 바로 새사람을 입은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성탄이 가져다 준 두 가지 복을 모두 누리는 참 교인이 실생활에서 사람들 대하는 모습을 그림 그리십니다. 성탄의 감사와 기쁨 속에 아무쪼록 이 그림에 오버랩 되는 나 자신의 새사람 된 모습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탄과 업로드의 복 다운로드의 복

 

(에베소서 4:25~32)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오늘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절입니다. 본문은 성탄 자체에 관한 말씀은 아닙니다만 성탄이 없었다면 일어날 수 없었던 일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성탄을 축하하는 인사를 합니다. 성탄절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날인데, 우리가 서로를 축하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의 탄생은 예수님에게 좋은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서로 성탄을 축하하는 인사를 함이 마땅합니다. 본문을 보면 이러한 성탄의 의미가 무척 특이한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앞서 보았던 8절에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에 의해 사로잡혀서 마음이 땅에 묶여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의 사건을 통해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어 하늘로 가셨고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9~10절을 보면 직접적인 성탄의 언급이 이어집니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다는 것이 곧 성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께서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심으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셨습니다. 올라가시려고 내려오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심으로써 이루어진 일은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란 성탄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관계하는 모든 대상은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사건이든 문제든 충만하게 하실 수 있는 계기가 되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땅에 오셨고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복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업로드의 복 다운로드의 복’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가 하늘로 올라가심으로써 우리의 마음이 천국으로 업로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천국에 계신 하나님의 생각을 이 땅에 있는 내 몸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24절을 보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천국으로 업로드 하는 복과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내 몸에 다운로드 하는 복이 원활하게 이루어져 24시간 유지하는 사람이 바로 새사람을 입은 자입니다.

새사람이 있으면 옛사람도 있습니다. 옛사람이란 나의 마음을 하늘로 업로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생각을 다운로드 하지도 않은 채 마음과 몸과 세상이 한 평면 위에서 움직이는 상태입니다. 22절을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라고 하였던 바와 같습니다.

 

새사람과 옛사람의 차이에 대해 좀 더 생각해봅니다. 21절을 보면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라고 하였습니다. 진리가 예수님 안에 있고, 그 진리를 담고 계신 예수님에게서 듣고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 새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진리라는 표현은 맥락에 따라 조금씩 의미가 다를 수 있습니다만 본문에서 말하는 진리란 ‘하늘에서 정해놓은 것을 이 땅에서 해야만 되는 말과 행동’입니다. 이 진리가 바로 예수님 안에 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이 땅을 내려다보고 계시며 우리 각 사람이 말하고 행동해야 될 일에 대해 뜻과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삶에 적용되어야 하는 진리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뜻과 생각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진리는 예수님 안에 내려와 모여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듣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정하신 뜻과 생각이 비로소 나의 말과 행동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리를 아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이로부터 어떻게 해야 예수님 안에 들어갈 수 있느냐가 중요해집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가야만 예수님 안에 모여 있는 나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듣고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성탄을 통해 이 땅에 오셨고, 다시 그리스도 연쇄 과정을 통해 하늘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업로드의 길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내려올 수 있는 다운로드의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업로드와 다운로드는 컴퓨터 용어입니다. 작은 시스템에 있는 파일을 큰 시스템으로 올리거나, 반대로 큰 시스템에 있는 파일을 작은 시스템에 내려받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서 내 컴퓨터에 있는 파일을 서버에 올리고, 또 서버에 있는 파일을 내 컴퓨터에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마치 예수님의 그리스도 연쇄 과정을 통해 우리 마음이 하늘로 가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내려오는 모습과 닮았습니다.

컴퓨터의 업로드와 다운로드는 인터넷 연결이 유지될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은 하늘에 대한 흐름이 유지되어야만 합니다. 그럴 때 나의 마음이 계속해서 하늘로 업로드 되고, 예수님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성령님을 통해 다운로드 됩니다. 그리스도 연쇄 과정이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 이르신 과정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음이 천국에 업로드 되는 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천국에 업로드 되면 예수님께로 옮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과 생각은 성령님을 통해서 이 땅에 있는 내 몸으로 내려오는 다운로드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탄을 통하여 이 땅에 오셨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심으로써 이 업로드와 다운로드의 길을 만드셨습니다. 우리 마음이 예수님 안에 들어가면 하늘로 업로드가 이루어지고, 예수님께 담겨있는 하나님의 생각이 성령님을 통해서 내 몸으로 다운로드 됩니다. 이로부터 나의 말과 행동은 예수님 안에 담겨져 있던 아버지 하나님의 생각대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탄을 축하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성탄을 통해 업로드와 다운로드의 축복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셨기 때문입니다.

 

새사람은 업로드의 복이 끊임없이 유지되는 가운데 이어서 다운로드의 복이 덧붙여지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한편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 때 반드시 나타나야 하는 현상에 대한 몇 가지 언급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다루지 못하는 내용은 십자가 온라인교회 모임을 통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25절을 보면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천국 업로드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의 다운로드의 축복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때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37절에서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흔히 이 말씀을 ‘예, 아니오.’ 외에 다른 말을 늘어놓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해석하지만 이것은 큰 오해입니다. 실질적으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예, 아니오.’로만 대화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사장님이 새로 만든 상품에 대한 의견을 묻는데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고 생각해서 ‘예’라는 대답만 할 수는 없습니다. 또 회사의 자금을 위해 은행에서 자금을 빌릴지 회의하는 상황에서 ‘아니오.’라고 대답만 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신 이유는 판단은 내가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함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객관적 사실을 인식하는 것뿐입니다. 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나의 판단에 의해서 나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에서 ‘예, 아니오.’라는 말 외에 다른 생각과 말들은 다 악에서 나오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악이란 바로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의 상태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새사람과 옛사람의 차이는 소망의 상태에서 생겨납니다. 소망은 어떤 대상을 향하여 마음의 흐름을 유지하는 상태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그것을 가질 때 마음이 채워질 수 있으리라는 욕구가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소망을 염두에 둘 때 예수님께서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고 말씀하신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겠다, 내가 어디를 가야겠다, 누구를 만나서 따져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악인 이유는 나의 마음이 천국으로 업로드 되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나의 마음이 소망하는 대상이 세상에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천국에 업로드 되었다면 본래 내가 해야 되는 말과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생각은 예수님께 모여 있습니다. 나의 마음이 천국에 업로드 되었다면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예수님 안에 담겨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생각을 내게로 보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때 성령을 통해 아버지의 뜻과 생각을 받아서 사셨듯이, 내 몸을 통해 아버지의 뜻과 생각이 이루어지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아니면 나에게서 나오는 모든 말과 행동은 거짓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지금 누구를 만나고 있든지 해야 될 말과 행동은 본래 하늘에서 진리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악한 상태라서 마음의 업로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예수님 안에 모여 있는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다운로드 될 수도 없습니다. 마음이 하늘을 소망하지 않고 땅을 소망하는 중에 마음은 몸과 달라붙어서 제멋대로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이러한 말과 행동은 악이고 모두 거짓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순간에 정해놓으신 것과 다른 말과 행동을 하고 있으니 다 거짓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러한 거짓말을 힘주어 강조하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화를 내며 살아갑니다.

 

이어지는 26~27절을 보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분을 낸다는 것은 겉으로 화내는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 분이 치밀어 오르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어떤 충격이나 자극을 받으면 분노가 치밀어 오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은 분노를 표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것은 하루 일과가 끝나기 전에 그 분을 다 삭여서 없애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못마땅한 사람이나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분노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뿜어내는 죄를 짓는다면 마귀에게 마음을 장악할 틈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분을 내는 모든 상황을 종합하여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일입니다. 이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분노가 곧 그리스도 연쇄 과정을 벗어난 증거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분노가 생기는 이유는 스스로에게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진리의 기준은 언제나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 이르신 그리스도 연쇄 과정이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연쇄 과정을 따라 마음이 하늘로 업로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과 행동을 합니다. 그러한 말과 행동이 나에게 피해를 주거나 못마땅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혹은 교회의 분위기를 망치는 식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도 분노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민수기 20장을 보면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쳐서 물이 나오게 한 므리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잠깐 물이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배반하는 모습을 보였고 모세와 아론은 이러한 백성들을 보고 분노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말씀하시는데, 분노한 모세는 10절에서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라고 말하며 반석을 두 번 칩니다. 이것은 우리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분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분을 표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에 분을 내게 하는 사람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화를 내기에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나 상황이 있을지라도 마음을 그쪽으로 향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마음이 땅에서 수평이동을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하늘로 업로드는 중단되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의 다운로드도 중단되고 맙니다. 사도 바울은 26절에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고 한 것은 땅의 일에 대해서 분노를 유지해서는 하늘과의 연결이 끊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준은 그리스도 연쇄 과정입니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땅을 떠나서 하늘로 업로드 되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나에게 적용되어야 할 기준이지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라고 주는 기준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이 기준에 못 미치는 것에 대해서 분노한다면 그로 인해 마음은 하늘로 업로드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기준을 강요하면서 마음이 땅에 반응하는 결과가 빚어집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마음의 하늘 업로드는 끝나고 마귀에 의해 장악되기 시작합니다. 분노를 삭이지 못함으로 인해서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를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의 모습이 재현되고 마는 것입니다.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되는지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뜻과 생각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생각은 주님 안에 모여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늘로 업로드 되어서 주님께로 가면 주님은 성령을 보내주셔서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다운로드 하게 해주십니다. 그럴 때 비로소 나를 화나게끔 하는 사람 앞에서 진리를 따라 말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하늘로 업로드 되지 못하고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을 붙잡고 받아들인다면 합당한 이유에서 화를 내는 것 같아도 하늘과의 연결은 끊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가 침투해 들어와서 마음을 사로잡아 끌고 가게 됩니다. 화를 계기로 내 마음의 평강이 깨지고 균형이 조각나고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화를 낸다고 해서 상황 자체는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내 마음은 지옥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성탄을 통해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신 이유는 이 세상의 기준에서 무엇인가 큰일을 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이 땅을 빠져나가시는 별세의 과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보좌 우편에 이르심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천국에 도달할 수 있는 업로드의 길을 여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축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도달할 때 끊임없이 하나님을 직면하여 하나님께로 마음이 흘러가는 소망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소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기쁨이 주어집니다. 하늘에서 온전히 하나님을 가지고 직면하는 상황에 비할 바 아니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소망만으로도 충분히 하나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소망 안에서 하나님으로 배부르고 기쁠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마음이 하늘에 업로드 될 때 성령께서는 예수님 안에 모여 있는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내 몸으로 다운로드 시켜주십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진리 안에 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에 거짓이 없고, 나를 자극하고 충동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분노로 반응하지 않게 됩니다. 마음이 하늘에 업로드 되고 있기에 나를 분노하게 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가지신 뜻과 생각을 다운로드 받아서 그 사람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은 진정한 진리를 말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업로드의 복과 다운로드의 복이 활성화되는 새사람의 모습으로 다시 한번 우리 자신 각자를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이 낮은 땅으로 보내주셔서 우리에게 두 가지 복을 이루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마음이 천국으로 업로드 되는 복과 천국에 계신 아버지의 뜻과 생각을 땅에서 다운로드 받는 복을 24시간 원활하게 누리는 새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럼으로써 주님이 이 땅에 오심에 보답하는 생을 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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