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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내게서 갖는 예수님 한 분의 의미>의 줄거리 :
천사는 나보다 위대합니다. 지구와 그 가운데 있는 영웅들과 위인들과 다양한 종교와 나라와 민족과 모든 단체 기업 조직 등은 나보다 위대합니다. 우주는 나보다 크고 위대합니다. 나는 티끌이고 벌레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모든 천사와 이 지구와 온 우주보다 위대합니다. 그런데 놀랍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나와 개별적으로 연합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과 연합한 벌레 같은 나는 이제 모든 천사와 지구와 우주보다 위대합니다.
내게서 갖는 예수님 한 분의 의미
(히브리서 1:4~14)
4.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6.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
7.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8.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9.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하였고
10.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12.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은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13.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
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이 본문을 읽을 때 염두에 두면 이해하기 좋을 것 같아서 말씀을 드립니다. 본문은 세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4~9절까지는 천사와 예수님을 비교해서 예수님의 탁월성이 이야기됩니다. 10~12절까지는 세상 만물과 예수님을 비교해서 예수님의 영원하심의 탁월성이 이야기됩니다. 13~14절에서는 그러한 예수님이 우리 개인을 위해 갖고 계시는 의미를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히브리서는 시작부터 유대 종교를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들을 예수님과 비교해서 열등하다는 것을 설득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득이 등장한 이유는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로마 정부의 핍박 아래에서 유대 출신 그리스도인들의 배교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의 기록 시기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교회가 시작된 뒤로 30년 남짓 한 세월이 흐른 때입니다. 당시 그리스도 교회는 여전히 유대 종교에 비해서 미약한 조직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마 황제의 박해가 가중됨에 따라 유대 출신 그리스도인 중에는 유대 종교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에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 종교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 중에서 몇 가지 예를 들며 그 모든 종교적 요소가 예수님 한 분의 탁월함에 비할 바가 아님을 가르쳐줍니다.
4~9절에서는 천사와 예수님이 비교됩니다. 천사는 유대 종교에서 하나님 다음으로 위대한 존재로 추앙받고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천사 숭배를 주요 내용으로 삼은 유대 종교의 탁월함을 깨부수고자 합니다. 쉽게 말해 천사조차 예수님의 탁월함에 비하자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10~12절에서는 해와 달과 별과 지구를 포함하는 우주의 삼라만상이 언급됩니다. 우주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합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차원에서 지구에 대해서조차 완전하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지구는커녕 한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조차 왕이나 황제조차도 완전하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범위를 넓혀 지구와 해와 달이 포함된 우주와 비교할지라도 예수님 한 분의 크기를 당해낼 수 없다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13~14절에서는 결론이 제시됩니다. 세상에는 나보다 위대한 존재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천사는 나보다 위대합니다. 영웅과 위인들도 나보다 위대합니다. 다양한 종교들이 있고, 나라와 민족이 있고, 단체와 기업과 조직들도 나보다 위대합니다. 해와 달과 별이 속한 우주는 무한히 크고 위대합니다. 우주는 고사하고 지구 위의 대한민국 안에서만 보더라도 나는 너무 미약해서 벌레나 티끌 같은 존재로 여겨질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보다 훨씬 위대한 천사보다 더 위대하십니다. 예수님은 나보다 훨씬 크고 위대한 모든 나라와 모든 조직과 모든 기업과 모든 종교보다 더 위대하십니다. 예수님은 나 같은 것은 티끌에도 속하지 못할 정도로 무한히 큰 우주보다도 더 크고 위대하십니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티끌 같고 벌레 같은 내가 예수님과 개별적으로 연합할 수 있도록 초청받았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이 지구 위에 존재하는 생활 현장에서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나는 홀로 예수님과 연합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본의 아니게 천사보다 위대하고 지구 위에 있는 미국보다 위대하고 중국보다 위대하고 일본보다 위대하고 지구 전체보다 위대합니다. 나는 티끌 같은 존재이지만 내가 연합한 예수님이 지구 전체보다 위대하시고 우주 전체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람들은 예수님 한 분과 연합한 나의 위대함을 알지 못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 모든 천사는 이 연합의 위대함을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탄과 귀신들조차도 아는 사실입니다. 티끌만도 못하고 벌레만도 못한 내가 예수님과 연합할 때 우주보다 지구 위에 있는 어떤 나라나 단체나 종교보다도 더 위대하다는 사실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알고 계시고 천사들이 알고 있습니다. 사탄과 귀신들도 아는 사실이지만 세상 사람들만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과 개별적으로 연합함이 나를 위대하게 한다면 반대의 경우도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영웅이나 위인으로 추앙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지도자나 권세들이 있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와 대가들이 있습니다. 재벌 회장도 있고 인기 연예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연합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모두 하찮은 존재들일 뿐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과 연합한 사람의 위대함을 깨닫지 못하듯이 예수님과 연합하지 못한 사람의 하찮음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과 천사들은 이들의 하찮음을 알고 있습니다. 마귀와 귀신들조차 이들의 하찮음을 압니다.
이로부터 우리가 사는 동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 수 있습니다. 지구에 있는 200여 개의 모든 나라보다 위대하시고, 지구와 해와 달을 포함한 우주보다 크신 예수님과 날마다 연합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되는 일입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우리의 생활 현장 속에서 예수님과의 연합은 항상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일을 빼놓는다면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것은 대단한 일일 수 없습니다. 이 지구 위에서 몸을 움직여서 하게 되는 모든 일은 성령님께 넘겨드려서 제삼자의 일로 여겨질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그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개별적인 연합을 통한 위대함의 참여가 내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과의 연합이 견고하고 깊어질수록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지구와 우주, 모든 나라와 모든 종교와 몸이 살아있기에 만나게 되는 모든 문제가 사소한 것들로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위대하심이 나에게 전이될수록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육체로 세상을 만납니다. 육체를 통해 우주 속에 있는 지구에 속해있고, 다시 지구 속의 나라들에 속해있습니다. 미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중국에서 무슨 일어나고, 우리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연합하게 되면 이렇게 육체로 만나는 세상일들은 모두 하찮고 사소한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위대함이 전이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과 연합한 사람은 지구 위에 존재하는 조직으로써의 기독교 종교 전체보다도 훨씬 더 큽니다. 이것은 개신교나 가톨릭을 포함하는 기독교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닙니다.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의 모든 종교를 합친 것보다도 예수님과 연합한 나 한 사람이 더 큽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바로 이러한 이야기를 위해서 유대 종교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천사 숭배에 대한 내용을 깨부수고 있습니다. 또한 천하 만물보다도 예수님이 더 탁월하심을 이야기하면서 천하 만물이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중단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하물며 지구 위에 존재하는 한낱 유대 종교로 돌아가기 위해 예수님을 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4절을 보면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더욱 아름다운 이름’이란 예수님의 이름에 담겨있는 실제 내용이 천사들과 비교할 수 없이 위대하심을 가리킵니다. 말씀드린 대로 유대인들은 천사를 하나님 다음으로 위대한 존재로 알고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2장 18절에서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천사들을 그룹, 스랍 등으로 언급하고, 가브리엘이나 미가엘처럼 직접 이름을 언급하는 경우도 있으며, 에베소서 1장 21절에서는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으로 언급하였습니다. 이러한 언급대로 천사는 실제로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유대 종교와 다르게 천사를 숭배의 대상으로 언급하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는 이유는 예수님과의 연합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연합한다는 것은 삼위 하나님 중에 한 위격이신 예수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할 때 삼중의 연합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과 연합을 출발로 해서 하나님과 연합을 이루게 되고 성령님과 연합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합의 상태에서 하나님이 나를 관계하시고, 예수님이 나를 관계하시고, 성령님이 나를 관계하실 때 하늘의 천군 천사들이 필요한 대로 동원됩니다. 그렇기에 내가 따로 천사들과 관계를 이룰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사장님이 분기마다 각 부서의 부장들에게 결과를 보고 받습니다. 부장들은 자기 부서의 실적과 계획을 사장님에게 보고할 것입니다. 이때 부장 밑에 있는 과장이나 계장이나 대리나 평사원들의 세부적인 활동 사항을 따로 보고하지는 않습니다. 사장님도 부장의 보고를 받을 때 어떤 직원이 무슨 활동을 하는지 개별적 관심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한 부서에서 어떤 직원이 일을 잘해서 큰 성과를 올렸더라도 사장님의 입장에서는 그 부서가 성과를 올린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와 삼위 하나님의 관계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관계하시고, 예수님이 나와 관계하시고, 성령님이 나와 관계하실 때 필요한 일을 천사들에게 시키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천사를 관계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위하여 천사들을 동원하고 있다. 그러니 너는 내가 동원하는 천사들을 보지 말고 나를 보라.’고 말씀하고 계신 셈입니다. 예수님과 성령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삼위 하나님과 삼중의 연합을 이루는 일과 관련해서 천사들은 동원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장님이 부장들의 보고를 받고 부서를 평가하는 것처럼, 삼위 하나님과 연합했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신경 써야지, 천사들의 하는 일은 염두에 둘 바가 아닙니다.
이어서 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의 위대함을 ‘아들’이라는 표현을 통해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들이란 아버지의 위대함이 옮겨가는 존재입니다.
가장 위대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위대한 분 옆에 있으면 그 위대함이 옮겨가게 됩니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그 사람의 마음이 가장 위대하신 하나님을 직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직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것이 불행해지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위대하신 이유는 가장 위대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나를 이끄시고 중재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에서 모세나 천사를 위대하게 여기는 이유 또한 이들의 중재자의 역할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모세나 여호수아 대제사장 아론 등이 바로 이러한 중재자의 역할이 언급됩니다. 중재자의 위대함이란 결국 최종적으로 위대하신 하나님께 나를 얼마나 가까이 이끌어 갈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각 중재자마다 최종적으로 위대하신 하나님과의 거리가 있습니다. 자신의 자리까지 나를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자기가 선 자리보다 더 가까운 곳으로 끌어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점에 있어서는 모세나 여호수아나 아론이나 천사들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재자의 역할을 하지만 자기가 서 있는 자리보다 더 가까운 곳으로 나를 끌고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끌고 가시는 자리는 독생자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바로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가 하나 되는 자리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할 때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위대하심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위대하심에 나를 연결해 주심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직접 만나게 되면 점차적으로 인격적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좋게 여기고 귀중하게 여기는 모든 가치가 너무나 사소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혹은 사람들이 큰 위기나 문제로 여기는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과 연합해서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고백을 쉬지 않을 뿐인데 모든 세상일이 점점 더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 여겨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예수님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며 이 지구에서도 극히 제한된 영역인 종교로 돌아갈 이유가 없음을 강조합니다.
한편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접할 때 ‘다른 종교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지 않지만 그래도 개신교나 천주교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으니 해당 사항이 없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예수님의 위대함은 지구를 포함한 우주보다도 큽니다. 이러한 예수님과 개별적으로 연합할 수 있는데도 사람들이 예배당을 다니고 성당을 다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마약에 중독되듯이 예배당 출석에 중독된 사람은 예배당에 나가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불안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렇게 예수님보다 더 작은 예배당에 의존하는 상태에서는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을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예배당 출석을 잘해도 예수님을 믿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주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의존할 수 있으면 됩니다. 지구 위에서 극히 제한적인 종교에 의존하고, 그 종교 중에서도 한 지역의 예배당이나 성당을 의존하는 상태는 결코 예수님을 믿는 것일 수 없습니다. 우주보다 더 크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종교나 예배당에 대한 의존은 불필요합니다.
오늘날 지구상에 개신교 인구는 7~8억 명, 가톨릭 인구는 12억 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이를 합치면 기독교 인구는 20억 명에 이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활 현장에서 예수님과 개별적으로 연합한 사람은 이 지구에 있는 모든 기독교인보다 더 큰 사람입니다. 정말로 위대하신 예수님과 연합한 사람은 개신교 전체, 가톨릭 전체, 다른 모든 종교 전체를 사소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설령 태양과 달이 하늘에서 떨어지더라도 사소한 일로 여길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한 분의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못 박혀 죽으신 십자가에서 나를 부르고 계십니다. ‘나와 십자가에서 연합하여 눈에 보이는 세상에 대해 죽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상에 대한 죽음은 곧 세상의 의미가 제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연합한다면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의미는 제로가 됩니다.
11절을 보면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우주 만물은 영원하지 않으나 예수님께서는 영원하시리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과 연합하면 죽음이라는 개념조차 없어집니다. 내 의식 속에서 죽음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게 됩니다.
예수님과 연합할 때 우리의 마음은 영원과 연결됩니다. 육체가 살아있는 동안은 하나님이 세상에서 이루고 싶어 하시는 뜻을 이루는 기간일 뿐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몸이 죽는다는 것은 원래 영원 속에 소속된 나의 옷을 벗는 사건입니다. 신령한 몸을 입고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의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세상은 일시적이지만 예수님과 연합한 나는 영원하기에 이 세상보다 위대합니다. 지옥에 가는 사람들도 영원하긴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영원은 영생이 아닌 영멸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입니다. 몸을 움직이는 삶은 제삼자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성령님에 의한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뜻과 힘이 조금이라도 가해진다면 하나님께서 매일매일 정해놓으신 뜻과 생각의 선로에서 탈선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과 뜻과 힘은 오직 십자가 예수님께로 다 보내질 수 있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내 몸으로 입고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다 쏟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위대한 일에 관여합시다. 위대함에 전이됩시다. 이 세상의 사소한 일들에 관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위대함에 비교하자면 몸이 병들어 죽는 것은 사소한 일입니다. 몸으로 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칭송받는 것도 사소한 일입니다. 골목길에서 쓸쓸히 죽어갈지라도 사소한 일입니다. 모든 사람이 통곡하는 대단한 장례식도 사소한 일입니다. 이 지구 위에는 예수님 한 분과 연합하여 내게 전이되는 위대함에 비해 사소하지 않은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십자가 예수님을 보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일인칭의 영역에서 ‘나는 예수님의 몸을 입은 자’라는 자아의식을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자아의식을 가졌다면 나 한 사람이 지구 위에 있는 개신교 전체보다 더 위대합니다. 나 한 사람이 대한민국 전체보다 더 위대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우성을 치며 재벌들을 칭송하며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연합하지 않은 상태의 재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님이 아시고 예수님이 아시며 성령님이 아십니다. 천사들도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마귀와 귀신들조차 알고 있습니다. 지구 위에 사는 사람들만 모르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과 연합한 사람에게 있어서 재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과 연합했다면 스스로 그것을 느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위대함에 전이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물이 끓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하듯이 위대함의 전이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꾸준한 인내로써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몸을 입은 자로서의 의식을 유지해 나간다면 우주보다 크신 예수님의 위대하심이 나의 인격에 전이될 것입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아무것도 아닌 것들임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갖는 예수님 한 분의 의미가 얼마나 큰지 결코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를 이렇게 위대한 예수님과의 연합을 허락하셨고 그 의미를 알게 하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이 선택해 주시는 주권과 은총임을 알고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위대하심이 내게 전이되어서 삶의 현장에서 그 위대하심이 증거로 나타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