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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2

녹취문: 실제 하나님 말씀에 찔려 쪼개지기_태승철 (히 4:12~13)

작성자제로원|작성시간23.06.12|조회수155 목록 댓글 0

 

www.everyday01.com 십자가(0,1)복음방송

 

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실제 하나님 말씀에 찔려 쪼개지기>의 줄거리 :

하나님의 안식은 하나님만을 유일한 상대자로 마주하는 상태입니다. 이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힘쓰는 일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키는 일입니다. 믿음과 결부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날선 검과 같아서 나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찌르고 쪼갭니다. 그렇게 각이 떠지듯 나누어지면 이제 내 영인 마음은 자유롭게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따라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게 됩니다.

 

실제 하나님 말씀에 찔려 쪼개지기

 

(히브리서 4:12~13)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본문의 말씀은 너무나 자주 듣고 외웠던 유명한 말씀입니다. 다만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가 찔려 쪼개지는 경험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분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찔린다고 하니 ‘양심이 찔리다’와 같은 표현을 떠올리실 수도 있겠지만 이 말씀은 그야말로 칼에 찔리고 쪼개지는 상황을 일컫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특이한 느낌이 듭니다. 본문의 ‘하나님의 말씀은…’이라고 시작되는 12~13절은 갑자기 맥락과 이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본문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4장의 전체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4장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잘 드러나는 구절이 1~2절입니다. 1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는 말씀을 듣고 믿는다는 고백까지 했는데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믿는다고 말하고 종교 생활을 잘할지라도 들은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킨다는 것은 들은 말씀을 나의 현실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없다면 이 땅에서는 복지의 삶이 이루어질 수 없고, 육체가 죽은 뒤에 천국에 가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11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2절의 문제 제기에 대한 대답으로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본문 12~13절이 이어지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언급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안식에 들어가는 일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힘쓰라고 했는데 그 일이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씀과 관계하여 힘쓰는 일이 하나님의 안식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또 ‘말씀과 관계해서 힘쓴다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본문은 바로 그 내용에 대한 대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감이란 내 마음이 하나님을 유일한 상대자로 마주하는 상태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 이외의 다른 대상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 상태입니다.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 죽고 오직 하나님 한 분께만 신경을 쓰는 상태가 안식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만을 신경 쓸 수 있으면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시고 이끌어 가시는 세상은 내가 신경 써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이는 마치 유능한 남편을 둔 아내가 남편의 일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에게만 신경 쓸 수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지으시고 그 세상을 이끌어 가십니다. 사람의 머리털까지 세시며 이끌어 가시고,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것까지 주관하십니다.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 한 분을 상대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을 알 필요도 없습니다. 안식은 실제로 들어가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안식에 들어가면 이 땅의 삶도 복지가 됩니다. 약속의 땅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또 죽은 뒤에는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12절에서 힘써야 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소개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곧 영적 사실들에 대한 증언입니다. 성경은 사상이나 철학이나 교리나 이론을 담은 책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가 사상처럼 보이고 이론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핵심은 증언입니다.

2절에서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켜야 함이 언급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활력이 있다는 것은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킬 때 내 안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내 안에 들어온 하나님의 말씀은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게 작용합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내 안에 들어온 말씀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예리한 날 선 검이 내 안에서 제멋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닿는 모든 것들이 베이고 찔려 쪼개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하나님의 말씀이란 영적인 사실들에 대한 증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결부란 증언된 영적인 사실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증언이란 결국 삼위일체 하나님과 천국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삼위일체를 이루고 계시며 천국이 존재한다는 것은 말씀이 담고 있는 영적 사실의 핵심입니다. 이를 믿음과 결부시킨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기억 속에 담아둔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압니다. 전지전능하심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압니다. 이 세상을 이끌어 가시는 유일한 주관자이심을 압니다.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알고, 성령님이 하나님의 손이라는 사실도 압니다. 다만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증언은 단순히 우리 기억 속에 넣어두는 정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주관하고 계심은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이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현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내가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눈과 코와 입으로부터 시작해서 세포까지 주관하고 계심이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현실감으로써의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이 내 몸을 장갑 삼으신다는 현실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주관하시고, 나의 세포까지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현실입니다. 나는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이 세상에 대해 죽었다는 사실이 현실입니다. 내 몸은 성령님이 장갑으로 끼시고 움직이셔야 한다는 사실이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있는 영적 사실들의 증언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영적 사실들이 내 안에서 현실이 됩니다. 믿음과 결부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론이나 교리가 아닌 나의 현실이고, 천국은 이론이 아닌 나의 현실이 됩니다. 이렇게 현실이 된 영적 사실들이 내 안에 들어오면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내 안에서 무엇인가를 찔러 쪼갭니다.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찔러 쪼개는지를 생각해 봄을 통해 영적 사실들을 믿음과 결부시켰는지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몸이 있고 영인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이 영인 이유는 영이신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고, 예수님의 몸을 입고 하나님께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사람의 마음은 공백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이로부터 있음을 느끼는 의식 작용과 좋음을 느껴서 채워지고자 하는 욕구 작용이 발생합니다. 육체와 마음이 합쳐지면 지정의라고 하는 혼의 작용이 일어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영인 마음이 육체를 입고 있음을 의식하고 좋음을 욕구하는 과정에서 생각과 감정과 의지라는 혼의 작용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영과 혼과 육이 그야말로 혼연일체가 되어 있어서 어디까지가 영이고 어디까지가 혼이고 어디까지가 육인지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구분을 할 수 없는 유착 상태의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유일한 상대자로 마주하는 안식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힘써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있는 영적인 사실들을 늘 의식함으로써 현실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럴 때 현실이 된 영적 사실들이 내 마음 안에서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은 것이 현실이고, 하나님 아버지가 이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만이 유일한 있음이고 유일한 좋음이시라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바라는 일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월급이 오르고 승진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현실로 가진 사람은 직장에 있을 때도 오직 하나님만을 많이 가지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이 내 생각과 말과 행동을 장악하셔야 한다는 것이 현실이기에 나의 주체성을 드러내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 관계된 모든 내용들이 내 마음에서 현실이 되면, 현실이 된 영적 사실들이 날 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내 안에서 움직이며 혼연일체가 된 가운데 육체와 영과 혼을 정확하게 찔러 쪼개기 시작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성경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라는 표현은 구약의 제사를 연상시킵니다.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 양을 잡으면 제사장들은 예리한 칼로 각을 떴습니다. 양 한 마리를 여러 조각으로 잘랐던 것입니다. 이처럼 내 마음에서 현실이 된 영적 사실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있던 영과 혼과 육을 쪼개서 갈라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고 완전히 분리를 시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영적 사실들은 믿음과 결부시킴으로써 현실이 됩니다. 증언된 영적 사실들을 믿을 때 내 마음에 닿아서 현실이 됩니다. 가정에 있든 직장에 있든 실제 생활 현장 속에서 믿음을 가지고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모든 사람은 세상 것을 좋다고 여기는 상황에서도 나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있음이시고 유일한 좋음이시라는 영적 사실을 현실로 느낍니다. 이렇게 현실이 된 영적인 사실들은 내가 따로 무엇을 하지 않아도 내 속에서 자발적으로 움직입니다. 영과 혼과 육이 혼연일체가 되어서 구분할 수 없게 된 유착 상태를 파고들어서 찌르고 쪼개고 갈라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내면에서 이러한 역할을 한다니 참으로 굉장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 사실들에 대한 증언입니다. 이 영적 사실들을 믿음으로써 현실이 됩니다. 나의 현실이 된 영적 사실들을 의식으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늘 염두에 둘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는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세상에 대해 죽은 자라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있음과 좋음과 주체성을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성령이 나를 장갑 삼으신다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이 믿음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들을 믿음과 결부시킴으로써 영적 사실들이 현실이 되면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내 안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제사장이 양의 각을 뜨듯이 육과 영은 분리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나의 현실이 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육체는 육체대로, 영은 영대로, 혼은 혼대로 구원받게 됩니다. 영의 구원, 혼의 구원, 육의 구원이 일어나게 됩니다.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라는 말씀에서 관절과 골수는 육체를 가리킵니다. 굳이 관절과 골수라고 구체적으로 언급된 이유는 영과 혼과 육이 혼연일체가 된 상태에서 영과 혼에 미치는 육의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육체에 의해 영과 혼이 사로잡힌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영인 마음은 공백을 채우기 위해 있음을 의식하고 좋음을 욕구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육체와 붙어있는 상태에서는 육체로 만나는 것들로부터 있음을 의식하고 좋음을 욕구하게 되면서 육체의 죽음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육체와 떨어지면 더 이상 마음을 채울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육체가 영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나게 강력합니다. 육체와 영이 붙어서 세상에서 있음을 의식하고 좋음을 추구하는 동안에는 혼으로 표현할 수 있는 생각과 감정과 의지도 육체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 육체에 사로잡힌 상태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 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하였습니다. 아담의 유전 죄를 타고난 모든 인간은 영인 마음이 육체에 붙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나옵니다. 육체로 접하는 대상은 오직 세상이기에 모든 생각과 감정과 의지도 오류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뻐해도 오류이고 슬퍼해도 오류입니다. 기뻐하지 않아야 할 일로 기뻐하고, 슬퍼하지 않아야 할 일로 슬퍼합니다. 따라서 생각과 의지도 그릇될 수밖에 없습니다. 육체의 영향력이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골로새서 2장 11절에서 그리스도의 할례를 언급합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라고 하였던 바와 같습니다. 영인 마음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삶 전체가 오류투성이가 됩니다. 영과 혼과 육의 혼연일체의 상태는 오류입니다. 더러움의 옹달샘이자, 그릇됨의 옹달샘이고, 죄악의 옹달샘입니다.

그러나 영적 사실들을 나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다면 이러한 상황은 바뀝니다. 내 안에 들어와서 현실이 된 영적 사실들이 혼연일체가 된 영과 혼과 육으로부터 분리합니다. 관절을 찔러 쪼개면 힘을 쓸 수 없듯이 육의 몸이 힘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골수는 가장 깊숙한 출발점으로써 육의 몸이 영과 혼에 대해 갖는 영향력의 출발점을 상징합니다. 믿음과 결부시킨 하나님의 말씀은 현실이 된 영적 사실입니다. 이러한 영적 사실들이 근원까지 파고들어서 육의 영향력을 죽이게 됩니다. 그 결과 영은 육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하나님의 안식으로 들어갈 수 있는 준비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힘입니다. 나는 아무리 힘써도 마음이 하나님의 안식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내가 힘쓸 수 있는 한계는 명확합니다. 예수님과 하나님과 성령님에 얽힌 영적 사실들을 믿는 것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이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일한 있음이시고 유일한 좋음이시고 유일한 주체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생각과 뜻이 외출 나오신 분으로 내 몸을 장갑 삼으십니다. 이렇듯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삼위일체를 이루고 계시며, 천국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는 것은 영적 사실들입니다. 그리고 말씀은 이러한 영적 사실들에 대한 증언입니다. 증언된 영적 사실들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힘쓸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이고 전부입니다.

 

우리는 이 영적 사실들을 내 현실로 유지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방법은 지속적으로 의식하는 것뿐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실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내가 지속적으로 의식하는 사실들이 현실이 됩니다. 2장 1장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유념하라 함은 생각을 머물게 하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실들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의식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아프리카는 사실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아프리카를 현실로 느끼지 못합니다. 아프리카에 유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에 생각을 두지 않고 의식하지 않습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은 사실로 존재하지만 나의 현실은 아닙니다. 천국이 그래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 예수님이 그래서는 안 됩니다. 내가 생각하고 신경 쓰고 있는 것들이 언제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이라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이 내 현실이 될 수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이 유일한 있음이고 유일한 좋음이라고 알고 있어도 그것은 정보를 기억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정보를 의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유념하지 않으면 현실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합니다. 영적 사실들을 기억하고 의식하고 유념함으로써 현실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현실이 되게 하는 일만 힘쓰면 하나님의 말씀은 스스로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현실이고, 하나님의 유일한 있음과 유일한 좋음과 유일한 주체성이 현실이고, 성령이 실제로 나의 몸을 장갑 삼으심이 현실임을 계속 의식하고 있는 동안에 영과 혼과 육이 분리됩니다. 그러면서 영인 마음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몸을 입게 됩니다. 예수님의 몸을 입었기에 예수님의 몸이 올라가신 하늘로 올라가 머물게 됩니다. 이로부터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완전히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12절 하반절을 보면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생각과 뜻이란 곧 혼의 작용입니다. 이어서 13절을 보면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영적인 사실들이 내 안에서 현실이 되는 믿음을 유지할 때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로 언급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영은 하나님의 안식에 도착하게 되고, 이 땅에서 생각하고 뜻하는 일들은 내 속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의 불꽃 같은 눈앞에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생각과 일들을 하지 않게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도 놀랐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 예전에는 습관대로 육과 영이 합쳐져 있는 상태에서 생각하고 뜻하는 혼의 작용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현실이 된 영적 사실들이 내 안에 들어오자 이래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생겨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만물이 숨겨질 수 없는 하나님의 눈앞에서 나를 이끌어 갑니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뜻이 하나도 하나님의 뜻과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게 됩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 있는 동안에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내 몸을 움직여 가는 복지의 삶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땅에서는 내 뜻과 생각이 하나님의 뜻과 생각과 일치하면서 복지가 이루어지고, 하늘에서는 마음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서 하나님만을 상대하는 평강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 사실들에 대한 증언입니다. 이 증언을 듣고 영적 사실들을 삶의 현장에서 실제로 염두에 두고 의식함으로써 현실이 되면 하늘에서는 안식에 들어가고 땅에서는 복지를 살게 됩니다. 복지는 암탉이 알을 품듯이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뜻과 생각이 이 땅에서 부화되는 삶입니다. 이러한 삶의 내용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과 천국이라는 영적 사실들에 대해서 현실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기억하고 의식하는 것뿐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십자가에서 죽은 자입니다. 이것을 기억함으로써 현실이 되게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무엇을 추구하고 향하고 소망해야 합니까? 유일한 있음이시고 유일한 좋음이신 하나님을 추구하고 향하고 소망해야 합니다. 이 현실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몸이 당하고 있는 모든 상황은 하나님이 유일한 주체로써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이것을 인정함으로써 현실이 되게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영적 사실들이 현실이 되어 유지될 수 있다면 내 마음에서 어떤 날 선 검보다도 예리하게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영과 혼과 육이 구분되지 않도록 혼연일체가 되어있는 상태는 죄악의 덩어리입니다. 오류의 덩어리입니다. 악의 근원인 상태입니다. 나의 현실이 된 영적 사실들은 육으로부터 영을 분리시킴으로 이러한 상태에서 살지 않게 해줍니다.

우리는 영적 증언을 핵심으로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있는 영적 사실들을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기억하고 의식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으로써 현실이 된 영적 사실들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고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 하늘에서는 안식이, 땅에서는 복지가 이루어지게끔 해나갈 것입니다. 이것을 꼭 경험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놀라운 은총은 돈 한 푼 드는 일이 아닙니다. 행동 하나 해야 될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내 마음에서 의식하고 믿음으로 영적 사실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일입니다. 이 말씀대로 순종하여 정말로 찔리고 쪼개짐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고, 하늘에서는 안식에 도달하고 땅에서는 복지의 삶을 사는 기적들을 경험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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