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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왕과 재벌이 보면 벌벌 떠는 자들>의 줄거리 :
이 세상에서 권력을 쥐고, 부를 이룬 사람들을 보면서 벌벌 떠는 자들이 있습니다. 소위 왕과 재벌은 바벨론 음녀의 기운을 받아 세상적인 성공과 번영 신화의 주인공이 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정말 세상에서 무서운 것이 없지요. 그런데 이들을 정말 근원적인 두려움 안에 가두어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서는 바벨론 음녀와 그 음기가 발본색원되기 때문입니다.
왕과 재벌이 보면 벌벌 떠는 자들
(요한계시록 18:1~24)
1.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5.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7.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10.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11.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그릇이요 값진 나무와 구리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14.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15.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16.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17.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18.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쳐 이르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하며
19.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지금 우리는 교회력으로 사순절 기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기간입니다. 다만 우리는 일 년 내내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리의 목숨 줄처럼 붙잡고 사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일 년 내내 사순절의 의미대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다른 부분들에 비해 그 내용을 비교적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좀 길지만 1~20절까지를 읽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왕과 재벌이 보면 벌벌 떠는 자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들이 보지 않기에 망정이지 바벨론 음녀의 멸망을 보게 되면 벌벌 떨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 음녀가 망하는 것을 결코 바라보지 못한 채 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벨론 음녀는 세상적인 성공과 번영의 신화 혹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성공과 번영의 신화라는 개념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무시무시한 열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이 열망의 성분을 조사해 보면 자격지심과 박탈감과 열등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상적인 성공과 번영의 신화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괄목할 만한 획기적 업적을 이루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6.25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신화를 이룬 대한민국,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의 성공 신화, 카카오톡이 단기간에 이룬 성공 신화, 단기간에 이룬 동남아시아의 고도성장의 신화 같은 식으로 쓰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다 바벨론 음녀의 음기에 사로잡힌 세상에서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온 세상은 성공과 번영 신화의 주인공이 되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열망이 바벨론 음녀의 음기에 사로잡힌 상태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은 성공과 번영의 신화라고 정의할 수 있는 바벨론 음녀가 멸망한다는 내용의 계시입니다. 말씀드렸듯이 모든 사람이 세상적인 성공과 번영 신화의 주인공이 되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 신화를 현실로 이룬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왕들과 상인들입니다. 상인이라고 표현되었지만 상업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어, 수없이 많은 부를 축적한 자들로서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재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벨론 음녀의 멸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성공과 번영 신화의 주인공들이 망한다는 것일까요? 혹은 욥이 모든 재산을 잃었듯이 그들이 획득한 이 세상 가치들이 없어지는 상황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러한 의미가 아닙니다. 본문은 성공과 번영 신화의 주인공인 왕들과 재벌들이, 바벨론 음녀의 망함을 바라보며 두려워하게 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공과 번영 신화의 왕이나 재벌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도 계속 있을 것입니다. 바벨론 음녀도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는 멸망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말하는 바벨론 음녀의 멸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고, 성공과 번영 신화의 주인공들이 바벨론 음녀가 멸망하는 것을 보며 벌벌 떤다는 것은 대체 어떤 상황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9~10절을 보면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 음녀와 더불어 음행하여 성공과 번영 신화에 이른 왕들이 바벨론 음녀가 멸망하는 모습을 보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또 15절 이하에서도 이와 비슷한 묘사가 이어집니다. 바벨론 음녀와 더불어 치부한 재벌들과, 항해하는 모든 선장과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바벨론 음녀의 멸망하는 모습을 보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사실 성공과 번영 신화의 주인공들이 망하고 흥하는 이야기는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역사에는 흥망성쇠의 이야기가 반복되어 왔습니다. 앞에서도 바벨론 음녀가 일곱 머리 달린 짐승에 올라탄 장면을 묘사하며, 일곱 머리는 왕들인데 그중 다섯 머리는 망했다고 했습니다. 이미 과거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지금 하나가 있고 앞으로 하나가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말하는 바벨론 음녀의 멸망이란,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성공과 번영 신화의 주인공들의 흥망성쇠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시대에 바벨론 음녀의 멸망은 있었으며,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는 바벨론 음녀의 역사도 계속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 역사하는 중에 바벨론 음녀가 망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왕들과 재벌로 상징되는 성공과 번영 신화의 주인공들은 벌벌 떨면서 그 장면을 보리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4절을 보면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대로 바벨론 음녀가 망하는 자리는 바로 하나님 백성의 마음입니다.
이어서 6절을 보면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으로써 갚아주라는 말씀이 반복하여 등장합니다. 바벨론 음녀는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계속 활동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 안에서는 본문이 이야기하는 대로 바벨론 음녀의 멸망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본문을 착각하지 않도록 이러한 의미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을 단순히 이 세상적인 성공과 번영을 이룬 왕들이나 부자들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서 망할 것이라는 식으로 본다면 잘못된 이해입니다. 왕이나 부자들이 이 세상의 성공과 번영을 잃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 여긴다면 오히려 믿음을 의심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3절을 보면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성공과 번영은 반드시 사치와 호화로움으로 표현됩니다. 사치할 필요가 없고 호화롭기를 원치 않는다면 굳이 성공과 번영을 열망할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개중에는 성공과 번영을 전혀 열망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을 갖게 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절대 사치와 호화로움으로 성공과 번영을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라는 말씀은 상인들이 사치를 세력으로 삼아 부를 얻었다는 뜻입니다. 바벨론 음녀의 음기가 들어오게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사치와 호화로움을 동경하게 됩니다. 사치스럽고 호화롭기 위하여 성공과 번영을 원하는 것입니다. 바벨론 음녀는 모든 사람들이 사치를 원하는 마음을 갖고 있음을 알고 그 마음을 공략하기 위해 광고하고 선전합니다. 그 광고는 굉장히 사치스럽고 호화롭게 포장을 합니다. 그 물건을 사야만 내 욕구가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을 갖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인들이 사치의 세력을 이용해서 치부하였다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계시록의 내용을 이해할 때 ‘잘 먹고 잘살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구나! 속이 다 시원하다.’라고 생각한다면 믿음을 의심해 봐야 합니다. 애초에 천국과 하나님을 진짜 좋음이라고 실감하는 상태에서는, 이 세상의 사치스러운 품목을 동경하는 마음 상태 자체가 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성공과 번영 신화를 이룬 주인공들에게서 세상의 사치품목들을 제거하는 것은 심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사치품들을 제거하셨다면 그것은 심판이 아니라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것들을 잃어버리는 자들에게는 분명히 마음의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가지 못하는 이유가 제거된 것이기에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성공과 번영을 이루어 사치하고 호화롭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나옵니다. 1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라고 하셨습니다.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은 당시 최고의 사치품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러한 품목들을 없애셨다면 그것은 심판이 아닙니다. 따라서 본문을 이해함에 있어서 단순히 왕들과 부자들의 사치품이 제거되고 호화로운 생활이 끝나버릴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의 믿음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사치와 호화로움을 가능하게 해주는 품목들이란, 마음이 하늘로 가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족쇄입니다. 족쇄를 좋아하고 있기에 그 답답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것들이 없어지는 것은 왕들이나 부자들에게 내리는 심판일 수 없습니다. 이것들을 좋아하는 마음이 악한 것이고 음란한 것이지, 그 품목들 자체를 제거하는 것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제거한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그것들을 바라고 소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7장 26~27절에서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홍수가 일어나기까지 사람들이 이전과 다름없이 살았던 것처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바벨론 음녀의 활동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바벨론 음녀의 활동이 없어지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 장소는 바로 하나님 백성이 된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한편 본문 4~8절을 보면 ‘갚아주라’는 말씀이 반복됩니다. 심지어 갑절로 갚아주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갑절로 갚아주라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그동안 내가 바벨론 음녀의 음기를 받아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성공과 번영 신화의 주인공이 되기 위하여 애쓰며 살았던 세월이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이로부터 무엇을 갚아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상적인 성공과 번영의 신화는 음녀입니다. 그 음녀가 내게 음기를 뿜어대는 바람에 바보 같고 어리석게 살았습니다. 그것을 깨달았다면 이제 음녀의 활동을 없앰으로써 원수를 갚아주라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우주 만물 중에 가장 값비싼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우주 만물을 다 팔아도 여러분 한 사람의 마음 값을 치를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름 있는 재벌들의 재산은 어마어마합니다. 그리고 미국이나 중국 혹은 인도의 재벌들의 재산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재벌들의 재산을 다 모아도 여러분의 마음 하나의 값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의 마음이란 무한한 우주 전체를 말씀으로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모셔 들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값은 하나님의 값을 따라갑니다. 그런데 마음이 바벨론 음녀가 뿜어대는 음기를 받아들이게 되면, 세상적인 성공과 번영의 신화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치품과 호화로운 생활에 마음이 달라붙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자체가 하나님 값에 준하는 여러분의 마음 값을 똥값으로 내동댕이치는 것과 마찬가지인 무서운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마음의 값어치에 대한 이해 없이 성경을 잘못 해석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이 세상 것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심판은 이 세상 것이 없어지는 쪽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만약 이 세상 것이 없어지게 하셨다면 그 의도는 심판이 아닌 사랑입니다. 세상 것에 마음이 붙어 있다가 마음이 찢어져 나오는 고통이 있어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 것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서 마땅히 제거되어야 할 암 덩어리와 같습니다. 수술로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것을 잃어버렸다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돈에 붙어 있고, 권력에 붙어 있고, 이 세상의 사치 품목들에 붙어있는 상황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호화롭게 여기는 일들에 붙어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제거하는 것은 영혼의 관점에서 보면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것이지 심판이 아닙니다. 이것을 심판으로 바라본다면 내가 세상의 성공과 번영을 이루지 못했을 뿐 여전히 그것들을 좋아하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못 먹는 호박에 말뚝 박는 심정으로 내가 못 갖는 것들을 가진 자들이 망하니까 속이 시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바벨론 음녀에게 멸망을 가져다주는 장본인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서는 바벨론 음녀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일이 일어나야만 합니다. 이러한 의미를 염두에 두고 본문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들이 이 세상 것을 많이 가지고 사치하며 호화롭게 살고 있다면 그대로 끝까지 살다 죽는 것이 진짜 심판입니다. 그러한 삶이란 하나님 값에 준하는 마음을 오물 구덩이에 내동댕이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다시 1절을 보면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공과 번영을 이룬 자들을 영광스럽게 봅니다. 그런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라는 말씀이 의미하는 대로 세상은 근본적으로 음지입니다. 세상적인 영광 따위는 영광 수준에도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음지이고 어두워서 온갖 더러운 영이 다 모여드는 곳일 뿐입니다.
바벨론 음녀는 성공과 번영의 신화입니다. 이 바벨론 음녀의 음기를 받았다면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나도 세상 것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제 그 마음은 온갖 더러운 귀신들이 모여서 들끓는 집합 장소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저주를 퍼부으셨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7~2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바리새인들처럼 거룩하게 사는 사람은 달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서 원하는 것은 결국 세상 사람들의 인정과 돈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바벨론 음녀의 음기와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제목에서 ‘왕과 재벌이 보면 벌벌 떠는 자들’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서 ‘보면’이라는 단서를 붙였습니다. 사실 계층적 구분이 명확하기 때문에 요즘 같은 세상에도 저 같은 사람이 재벌 회장을 만나거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만날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본문에 기록된 바벨론 음녀가 망하는 것을 보면서 무서워 벌벌 떤다는 이야기와 같은 일은 언제나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재벌가의 집사가 있는데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전하는 사람이라고 해보겠습니다. 그럴 때 재벌가의 모든 사람은 그 집사를 보면서 벌벌 떨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바벨론 음녀의 음기를 받아서 성공과 번영 신화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열망을 가진 자들 중에는, 그 신화를 실화로 만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본문 7절에서 여왕으로 상징됩니다.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라고 하였던 바와 같습니다. 이들의 마음은 사치할 수 있고 호화로울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사치하면 할수록, 호화로움을 누리면 누릴수록 그 내부의 더러움은 점점 더 풍성해집니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그러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 곁에 하나님의 백성이 있다면 어떨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볼 때 자기들 존재의 자부심과 자긍심의 근거가 되는 사치품과 호화로움 자체가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기분 나쁘게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자면 벌벌 떨고 있는 상태입니다. 20절을 보면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육체로 대하는 관계 안에서는 ‘저 사람은 건방지고 시답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사치와 호화로움을 가지고도 삶에 찌들어 있는데, 저 사람은 그것들 없이도 어떻게 얼굴이 저렇게 활짝 펼 수 있는가? 기분이 나쁘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내부의 영적인 반응을 보면 이 사람을 계속 두고 보다가는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음에 대해 두려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왕들과 재벌들을 벌벌 떨게 하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들이 나를 만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들이 나를 만났다면 벌벌 떨 것입니다. 사치할 품목이 하나 없고, 호화로울 재료가 하나 없어도, 너무나 즐거워하고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며, 기가 죽고 벌벌 떠는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왕들과 재벌들이 나를 보면서 ‘내가 가진 사치와 호화로움의 품목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저 사람은 그것들이 하나도 없는데도 밝고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데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자문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성공과 번영 신화인 바벨론 음녀는 모든 시대에 역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이 바벨론 음녀의 음기에 사로잡혀 성공과 번영을 열망하며, 사치스럽고 호화롭게 살 것을 꿈꾸며 추구할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인 내 속에서는 바벨론 음녀가 멸망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더 이상 이 세상을 향한 성공과 번영 신화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 인한 즐거움을, 바벨론 음녀의 음기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 퍼트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죽임당한 어린 양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바벨론 음녀는 멸망하고 질식하고 괴멸당하며 발본색원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세도가들과 재벌들이 가장 무서워할 사람들로 이 세상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도가와 재벌들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