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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2

녹취문: 세상 터 잡은 교회, 천국 터 잡은 교회_태승철 (계 2:1~11)

작성자제로원|작성시간23.12.07|조회수65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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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세상 터 잡은 교회, 천국 터 잡은 교회>의 줄거리 :

에베소 교회와 서머나 교회가 대조를 이룹니다. 눈에 보이게 교리와 조직을 갖추고 세상에서 자리 잡는 대신 처음 사랑을 잃은 에베소 교회. 처음 사랑을 지키면서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터전을 잃어버린 서머나 교회. 선민이지만 출애굽 때의 처음 사랑을 잃은 유대인이 만든 것이 유대 종교입니다. 그리고 그런 유대 종교가 이제 서머나 교회 교인들을 박해합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에베소 교회가 그 유대 종교의 전철을 답습합니다.

 

세상 터 잡은 교회, 천국 터 잡은 교회

 

(요한계시록 2:1~11)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본문에는 일곱 교회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이 등장합니다. 그중에서 오늘은 에베소 교회와 서머나 교회를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세상에서 터전을 잡았습니다. 반면 서머나 교회는 세상에서 터전을 잡지 못하고 천국에 터전을 잡았습니다. 이 두 교회의 대조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으므로 돌이켜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리라는 경고를 받습니다. 한편 서머나 교회는 칭찬과 더불어 위로와 격려를 받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에 언급되는 일곱 교회 중에서 예수님의 책망을 받지 않았던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 두 곳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먼저 에베소 교회와 서머나 교회에 주시는 예수님 말씀의 핵심 취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 내용은 예수님을 묘사하는 내용에서 드러납니다. 1절을 보면 에베소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모습이 묘사되기를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라고 하셨고, 한편 8절을 보면 서머나 교회에 대해 예수님의 모습이 묘사되기를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라는 표현에서 예수님의 관심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항상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교회를 떠나지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일곱 별을 붙잡으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교회를 붙잡고 계시기에 이 세상에서 교회가 존립하고 지탱되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흔히 예배당 조직을 교회로 오해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자체 내의 조직이 있기 때문에 존립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것은 예배당 조직이 교회를 대체한 상황입니다. 인간이 만든 조직으로 교회가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의 내용은 이러한 생각과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이 세상에 있는 교회에서 떠날 때가 없으며, 또한 이러한 관심 속에서 일곱 교회에 사자를 파송하십니다. 이 말은 교회를 이 땅에 있게 하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조직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보내시는 사자란 교회를 위한 사역자를 가리킵니다.

결국 예배당 조직의 근간은 건물이 아닌 사람입니다. 목사 부목사 전도사 장로 교사 같은 사역자들을 통해 교회의 조직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진짜 예수님의 교회는 사람들 눈에 보이는 조직체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로 상징되는 사자를 교회에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진짜 예수님의 교회는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조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갖고 계신 관심으로부터 일꾼을 보내신다는 의미입니다. 일꾼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보이지 않는 조직에 의해 교회는 이 세상에 존립합니다. 이처럼 에베소 교회에 대한 편지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란 우리의 관심이 눈에 보이는 교회의 조직에 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 조직은 눈에 보이지 않게 주님이 만들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와 관련하여 서머나 교회에 대한 말씀을 보면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이며 마지막이라’는 표현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 속에서는 처음이며 마지막이라는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영원하신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이 시간과 공간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처음과 마지막을 언급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간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처음 단계가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에 대한 말씀은 그 첫 단계에서 우리가 관심해야 될 것이 세상일이 아닌 예수님임을 가르쳐줍니다. 마지막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일의 마지막 단계에서도 우리가 관심해야 할 일은 어떤 일의 결과나 여파나 파장이 아닙니다. 시간 속에서 사는 교인들이 관심할 것은 처음에도 마지막에도 예수님뿐입니다. 교인이라면 이 세상일의 시작이든 끝이든 혹은 중간 과정이든 그리스도 연쇄 과정 속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서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을 사귐을 갖는 일에만 관심을 둘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에서 죽음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세계를 빠져나감을 의미합니다. 다만 시간과 공간을 빠져나가 물리적 세계에서 없어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은 이제부터 시간과 공간 바깥에서의 삶이 시작됨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죽으신 예수님과 함께 시간과 공간을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시간과 공간 밖에 계신 하나님을 우리의 일로 삼게 됩니다.

에베소 교회와 서머나 교회에 대한 말씀을 정리해 봅니다. 에베소 교회에 대한 말씀은 이 땅에서 눈에 보이는 것으로 교회라는 조직을 만들지 말라는 요청입니다. 그리고 서머나 교회에 대한 말씀은 우리가 교인으로서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시작부터 끝까지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할 일은 죽으신 예수님과 더불어 세상 바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교인의 궁극적 관심은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게 조직된 교회가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 안에서 눈에 보이는 조직화된 교회를 바라본다면 우리 마음에서는 처음이며 마지막이신 예수님을 관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3절을 보면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내용만을 보자면 에베소 교회가 잘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에베소 교회가 교리와 이론적인 체계를 만드는 일에 수고하고 인내했음을 의미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교회가 이 땅에서 어떤 단체냐는 정체성을 교리와 이론을 체계화함으로써 규정해 놓았습니다.

물론 교리와 이론의 체계화에는 이점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에베소 교회는 거짓 가르침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여 거짓 사도들을 가려내고 악한 자들을 쫓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것의 진위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을 정도로 교리와 이론을 체계화시켜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교리와 이론을 울타리 삼아서 교회가 존립하고 유지될 수 있도록 든든히 지켜나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많은 수고와 인내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로부터 에베소 교회는 교리와 이론 위에 세워지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교리와 이론을 갖춘 체계적인 종교의 조직으로 변해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조직을 존립시키고 유지하고 확장시키기 위해 교인들에게 노력과 헌신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조직화 된 교회에 속한 교인들의 관심은 하나님이 아니라 교회라는 단체를 강화시키고 확장시키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조직에 대한 관심이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대체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중대한 오류가 발생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실제로 대면하는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음에도, 조직화 된 교회 안으로 들어와 노력하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을, 마치 하나님의 관계 안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4절의 책망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으로 전달되었던 복음의 내용은 사상이나 교훈이나 철학을 배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연쇄 과정 속 예수님에 대한 증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지금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마음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게 되면 마음은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 안에 자리하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은 있음을 의식하고 좋음을 욕구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이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보좌 우편에 머물고 있다면 있음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좋음을 욕구할 수 있는 대상 또한 하나님뿐이십니다.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욕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처음 사랑의 내용입니다.

처음 예수님에 대해 증언을 들은 사람들은 교회 조직 같은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오직 마음이 그리스도 연쇄 과정 속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아버지만을 유일한 너의 자리에 모시고, 유일한 당신으로 상대하는 가운데 아버지와 사귐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복음을 접한 자들의 처음 사랑이었습니다. 시간과 공간 바깥에 계시는 하나님과 실제로 연결이 되고, 하나님과 실제로 사귐을 갖는 것이야말로 처음 사랑의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교리와 이론에 집중하는 동안 이 처음 사랑을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5절을 보면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라고 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떨어져 나간 시점은 눈에 보이도록 교회를 조직화하고, 그 교회를 위하여 교인들에게 노력, 수고, 헌신, 봉사를 요구하게 된 때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실제 시간과 공간 바깥에 계신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 땅에 존재하는 조직화 된 교회를 위하게 되었고, 그 요구에 부응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하는 조직화 된 교회의 요구에 부응하려고 하니, 시간과 공간 바깥으로 나가서 실제 살아계신 하나님과 교제하고 사랑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예배당을 중심으로 탄탄하게 조직화 되었고 이론적으로 체계를 갖춤으로써 이단과 사이비를 척결할 수 있을 만큼 확고한 기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파로 믿음의 핵심인 처음 사랑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시간과 공간 바깥에 계신 하나님과의 실제 사귐과 교제가 끊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모든 교인에게서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은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조직화 된 교회에 대한 관계에서 열심과 열성을 내는 것이 살아계신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이라고 여기며 스스로 기만하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5절 하반절을 보면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촛대에 비유된 이유는 당시 기준에서 촛불은 어둠을 밝히는 탁월한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구성하는 교인 각자가 자기가 처한 생활 현장에서 하늘의 기운을 받는 촛불이 될 수 있어야 함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가 일곱 금 촛대로 비유되었던 것입니다. ‘촛대를 옮긴다’는 것은 처음 사랑을 버리고 오직 조직화 된 교회를 위하여 마음을 다 쏟고 있는 한 예수님의 교회로 인정받을 수 없으며 통째로 버려지리라는 경고입니다.

 

한편 서머나 교회는 예수님께 칭찬을 들은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유대인들에게 탄압받던 교회였습니다. 9절을 보면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유대인은 선민을 의미합니다. ‘자칭 선민’이라는 자들이 사탄의 집단으로 전락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때 하나님과 가졌던 처음 사랑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윗 시대 이후로 예수님 때까지 천 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이스라엘이 처음 사랑을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선민 각자가 개별적으로 성전의 번제단을 기억함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관계는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민들은 끝내 하나님과 개인적 관계를 이루지 못했고 선민 전체가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바깥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버림받은 선민 유대인은 드디어 유대 종교를 완성시켰습니다.

예수님께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예수님 바깥으로 버림받던 순간에 유대 종교는 가장 온전한 체계를 갖춘 종교의 형태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유대인들의 전철을 밟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교인 각자는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합니다. 조직화 된 교회에 대한 관계를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연결로 대체해 버린 교인들의 모든 교회는 유대 종교와 같은 종교가 될 뿐입니다. 유대 종교가 구원이신 예수님 바깥으로 버림받은 것처럼 통째로 버림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한편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는 말씀은 에베소 교회와 서머나 교회의 차이점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교리와 이론을 바탕으로 교회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이 땅에서 체계화된 조직으로 자리 잡는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반면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궁핍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과 황제 숭배를 요구하는 로마 당국으로부터 핍박을 받았던 서머나 교회는 궁핍에 처해있었고, 에베소 교회처럼 눈에 보이는 확고한 체계를 갖춘 조직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서머나 교회를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서머나 교회와 관련하여 묘사된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다시 8절을 보면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라고 하셨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나심’이란 이 세상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머나 교인들은 예수님과 연합하여 시간과 공간 바깥으로 나가 하나님께로 가는 것을 주된 일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에게는 시간과 공간의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이들은 실제로 부요한 자들이었습니다. 만약 이 세상에 마음이 남아있다면 마음의 빈자리를 세상으로 채우려 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마음의 궁핍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물질적 궁핍을 경험하던 서머나 교인들의 마음은 궁핍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환난과 궁핍을 겪으며 어떠한 터전도 잡지 못했지만, 마음에서는 하늘로 올라가는 일만을 주된 업무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실제로 부요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서머나 교회는 눈에 보이는 체계화된 모습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의 사자를 보내셔서 지탱하시고 유지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교인들 각자의 마음이 예수님 안에 들어가서 실제로 시간과 공간 바깥으로 빠져나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상태야말로, 예수님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의 사자를 보내셔서 이 땅에서 교회를 존립시켜 나가시는 형식이고 모습입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으로는 체계화된 교회 조직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난과 궁핍 속에서도 교인 각자의 마음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서 처음 사랑을 유지합니다.

‘부요함’은 처음 사랑이 유지될 때 나타납니다. 그리스도 연쇄 과정에 대한 증언을 처음 들을 때 마음이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서 아버지와 사귐을 가져야겠다는 처음 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처음 사랑이 시작된 이후로 백 번, 천 번, 만 번의 사랑이 지속됩니다. 처음 사랑 위에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점점 쌓여가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시작으로 하나님 아버지와의 사귐과 교제를 끊임없이 쌓아 올리는 사람 전체가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눈에 보이도록 조직화 되고 체계화되지 않더라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자들을 보내심으로써 땅에서 지탱되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에베소 교회와 연관하여 7절을 보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조직화 된 교회는 사람의 마음을 시간과 공간 안에 머무르게 하는 큰 요인 중에 큰 역할을 담당합니다. 세상에서 터전을 잡은 조직화 된 예배당에 출석하고 조직의 회원이 되어 관계하는 동안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실질적인 관계는 대체되고 상실되며 제거됩니다. ‘생명’이란 실제로 하나님을 먹고 마시고 마음이 하나님으로 부요해진 상태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실질적 관계가 제거되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는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이 땅에 머물게 하는 것이라면 잘라내야만 합니다. 그 대상은 배우자나 자녀나 부모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조직화 된 교회일 수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조직을 염려하며 수고한다고 해서 교회가 지켜지지 않습니다.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눈에 보이는 조직에만 관심을 가졌던 대한민국 개신계의 상황을 보면 그 여파가 분명합니다. 눈에 보이는 조직에 대한 관심이 크면 클수록 교회는 이 땅에서 사라집니다. 교계 지도자들은 조직을 만들고 교인들에게 조직에 대한 헌신을 요구하지 않았던 시기가 없습니다.

조직이 있는 한 조직을 강화하기를 원했고, 조직이 있는 한 조직을 위한 강한 헌신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 반대로 나타났습니다. 대한민국의 개신교뿐만이 아닙니다. 유럽을 보면 오히려 이슬람에 먹히고 있고, 남미의 천주교는 온갖 성인을 모시고 섬기는 귀신 집단이 되었습니다. 조직을 위해서 헌신을 요구하는 동안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처음 사랑을 버리게 됩니다. 하나님과 실제로 만남을 이루는 교제와 사귐은 배제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부르는 기독교라는 종교는 썩어버리고 촛대는 옮겨지고 말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이 세상에 터전을 두지 않고, 오직 마음이 처음이며 마지막인 예수님만을 관심하고자 했습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을 따라 시간과 공간의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만을 추구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이들은 진정으로 부요한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각자가 하나님을 추구하여 부요한 마음을 갖게 된 자들 전체를 교회로 붙잡아 이끌어 가십니다. 눈에 보이는 조직 대신에 예수님 오른손에 있는 사자들에 의해 붙잡힌 교회는 오히려 확장되고 든든히 서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에베소 교회와 서머나 교회에 보내신 메시지의 핵심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핵심을 놓치지 않고 붙잡음으로써 나 한 사람부터 진정한 교회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 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정말 교회 안에 속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보이지 않게 조직화해 가시는 교회를 믿고 나는 오로지 처음이며 마지막인,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만을 관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처음 사랑을 이어가며 사랑을 익혀가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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