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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2

녹취문: 천년 왕국 살다 잠든 사이 벌어지는 일_태승철 (계 20:7~10)

작성자제로원|작성시간24.03.09|조회수45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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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천년 왕국 살다 잠든 사이 벌어지는 일>의 줄거리 :

하늘로 충만, 충만, 충만한 천년 왕국의 왕 노릇이 끝나고 몸이 죽으면 시간과 공간 밖으로 나가 하늘 아버지 품에서 잠이 듭니다. 그랬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깨어나 새로운 신령한 몸을 입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맞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내가 천년 왕국을 살다가 예수님 재림 때까지 잠들어 있는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천년 왕국 살다 잠든 사이 벌어지는 일

 

(요한계시록 20:7~10)

 

7.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9.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길지 않은 본문입니다만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배경 설명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현재 2024년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은 언젠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본문을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예수님의 재림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을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석한다면 본문은 이미 사천 년 전에 죽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씀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의 재림 자체는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열두 제자가 사도로 활동하던 때도, 중세 시대에도, 지금 우리에게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재림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모든 사람은 육체의 죽음에 이어서 재림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죽는 순간에 이어서 재림의 사건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죽는 순간의 의식 상태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죽을 때의 의식 상태가 무척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42~44절에서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고 본문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죽게 되었다면 육체의 죽음을 의식할 것입니다. 그리고 죽을 때의 영적인 상황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있음, 하나님의 좋음, 하나님의 주체성에 대한 실감이 충만한 상태로 살았다면 공생애의 천년 왕국을 산 것입니다. 천년 왕국의 1,000은 충만함을 상징하는 숫자인 10을 세 번 곱한 숫자입니다. 충만의 세제곱으로 충만한 공생애가 천년 왕국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한 사람이 천년 왕국을 살다가 죽었을 때 일어나는 일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을 때의 의식 상태를 가지고 예수님의 재림 때에 깨어날 것입니다. 사천 년 전에 죽은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믿음의 조상으로서 삶을 시작했기에, 충만 세제곱의 천년 왕국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 의식 상태에서 예수님의 재림 때에 깨어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동시에 눈이 번쩍 뜨이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럴 때 모든 사람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라는 공통적 의문을 갖게 됩니다.

 

공생애의 천년 왕국을 살다가 죽으면, 죽을 때의 의식 상태로 예수님의 재림을 맞닥뜨릴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심으로써 죽은 상태에서 깨어나게 되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잠깐 사이에 아브라함에게는 사천 년이 흘렀습니다. 사도 베드로나 사도 바울에게는 이천 년이 흘렀습니다. 잠들어 있는 동안에 무수히 많은 일들이 일어난 셈입니다.

한 사람의 삶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한 사람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과 결합하는 십자가 생활화를 결심하는 정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실패와 착오를 거듭하면서도 십자가 생활을 이어 나가면서 예수님과 결혼함으로 드디어 온전한 결합을 이루게 됩니다. 그로부터 공생애의 삶이 시작됩니다. 이렇게 정혼과 온전한 결합을 이룰 때까지 그 사람과 함께 사는 동시대인들에게는 삼대 칠중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중세 시대에도 삼대 칠중 재앙은 임했으며, 지금도 삼대 칠중 재앙은 임하고 있습니다. 어린 양과 정혼하여 온전한 결합을 이룰 때까지의 과정을 겪는, 하나님의 예정 아래에서 아들 된 자들이 사는 동안에 삼대 칠중 재앙은 계속 임하게 됩니다.

그렇게 온전한 결합을 이루게 되면, 바다짐승과 666표를 나눠주는 땅짐승의 역사가 공생애를 사는 사람의 천년 왕국 안에서는 중단됩니다. 이제 그 사람이 살다가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공생애의 천년 왕국을 살다가 죽은 이 사람은 예수님 재림 때 깨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깨어나서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지?’라고 궁금해할 것입니다. 본문은 바로 그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본문은 한 사람의 입장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특히 공생애의 천년 왕국을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공생애가 끝나는 죽음을 맞이해서 시간과 공간 바깥으로 나가 아버지 품에서 잠을 자다가, 예수님의 재림 때 깨어나서 신령한 몸을 입고 부활할 것입니다. 공생애의 천년 왕국에서 왕 노릇을 한 사람의 입장에서, 죽는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가 깨어난 그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대로 한 사람이 공생애의 천년 왕국을 살 때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 어떤 사람은 어린 양과 정혼하여 온전한 결합을 이루어 가는 중에 삼대 칠중 재앙이 임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예 정혼조차 못 한 상황일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공생애의 천년 왕국을 사는 중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죽어서 잠들어 있는 동안 이러한 복합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이야기는 어린 양과 정혼하고 결혼까지 이루어, 공생애를 사는 사람들과의 사이에 내 주변에는 삼대 칠중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나는 성도로서 십자가 생활화를 반복하며 어린 양과의 결합을 온전히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공생애를 살게 됩니다. 그럴 때 사탄은 물러가게 됩니다. 사탄이 무저갱에 갇혔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이 지구 전체에서 사탄의 역사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 삶에서 사탄의 역사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무저갱의 감금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여전히 사탄이 역사하고 있는 중입니다.

 

여기서 궁금증이 하나 생깁니다. 내가 공생애의 천년 왕국을 사는 동안에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내 쪽에서부터 내가 관계하는 사람들 쪽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만나실 때 하나님의 주권이 예수님을 통해 바리새인에게 흘러갔던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이 흘러간다고 해서 바리새인들이 모두 공생애를 사는 사람으로 변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공생애를 사는 동안에 내 가족들과의 관계의 통로를 통하여 내게 임하는 하나님의 주권은 흘러갑니다. 이 관계 안에는 마귀가 끼어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만나실 때도 마귀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역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죽고 난 후에는 어떨까요? 내 가족들이 공생애를 살만큼 어린 양 예수님과의 온전한 결합을 이룬 자들이 아닌 경우라면 걱정이 생깁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나의 나라 안에 관계로 얽혀있던 사람들에게는, 천년 왕국 속에서 내게 임한 하나님의 주권이 흘러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죽은 다음에는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의문이 생깁니다.

이로부터 등장하는 말씀이 7절입니다.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라고 하였습니다. 천 년이 찼다는 것은 내가 공생애를 다 살고 몸이 죽게 된 상황을 가리킵니다. 내가 천년 왕국을 사는 동안에 관계를 가졌던 모든 사람이 천년 왕국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있음과 좋음과 주체성을 충만의 세제곱으로 실감하며 살던 사람들이 아니기에, 내가 없어지면 사탄의 역사는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그동안 나와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의 영역에 사탄의 공략이 시작됩니다.

 

이어서 8절을 보면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한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나타나는 일입니다. 내 입장에서 볼 때 아직 천년 왕국을 못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입니다. 정혼했으나 아직 온전한 결합까지 못 가는 사람들은 아직도 삼대 칠중 재앙이 임하고 있는 가운데, 십자가 생활화에 박차를 가하여 완전한 결합으로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미 공생애를 살고 죽은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일이 일어납니다. 이 지구 위에는 어린 양이 인을 떼시면서 시작된 역사가 사람마다 영적인 발전의 단계를 따라 계속 적용되고 있습니다. 내가 죽은 이후에도 주변 사람들에게는 삼대 칠중 재앙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 재림 때까지 계속해서 반복될 일입니다.

나 한 사람이 공생애를 살면 마귀의 역사는 끝이 납니다. 그런데 내가 죽으면 그 이후에 마귀의 역사가 잠깐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입장에서는 몸이 죽었다가 예수님의 재림 때 다시 깨어나는 것은 순간처럼 여겨질 것이지만, 그 사이에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마귀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3절에서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라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이와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이천 년 전에 죽은 사도 베드로의 입장에서 보자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가 잠시로 느껴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잠시 일어났던 일이란 포괄적으로 공생애를 살던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사탄이 곡과 마곡의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앞서 16장에서 아마겟돈 전쟁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본문에서는 사탄이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인다고 했습니다. 아마겟돈 전쟁과는 또 다른 전쟁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이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에스겔서 38장과 39장을 보면 곡과 관련하여 로스, 메섹, 두발의 세 왕이 언급됩니다. 마곡에 대해서는 곡으로 언급되는 세 왕이 통치하는 지역의 지명입니다. 본문의 곡과 마곡이란 왕과 그들이 통치하는 영역의 구분 없이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의 집결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탄이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인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것은 내가 공생애를 살다 죽었는데 예수님 재림 때 깨어나기 직전까지의 상황을 포괄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 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싸움입니다. 이 싸움은 총과 대포로 이루어지는 싸움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전쟁이 존재합니다. 총과 대포로 싸우는 무력 전쟁이 있습니다. 지식 전쟁도 있고, 돈 전쟁도 있고, 오일 전쟁이 있고, 스포츠 경기도 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싸움은 논쟁이며, 심심할 때 치는 화투(花鬪)조차도 그 한자를 보면 꽃들의 전쟁입니다.

한편 곡과 마곡의 전쟁은 ‘실감의 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천년 왕국을 살 동안 그 사람 속에는 하나님의 있음과 좋음에 대한 실감이 충만합니다. 또 하나님이 이 세상을 향한 유일한 주체성이라는 사실에 대한 실감이 충만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말과 행동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뜻으로 충만했습니다. 한편 사탄은 그렇게 천년 왕국을 살던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사람과 관계하던 주변 사람들을 이 세상 실감이 충만한 자들로 겹겹이 둘러싸이게 만듭니다. 그리고 실감 싸움을 시킵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하나님의 큰 날에’ 일어나는 전쟁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큰 날’이란 한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있음이 이 세상의 모든 있음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순간을 가리킵니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제일 크게 보이는 순간이 하나님의 큰 날입니다. 하나님의 있음이 최고가 되는 날, 하나님의 좋음이 최고로 강하게 실감 되는 날, 이 세상에 대해서 하나님의 주체성이 내 주체성을 죽일 정도로 실감 되는 그날입니다. 마귀는 그러한 일을 막기 위하여 왕들을 모은다고 했습니다. 아마겟돈 전쟁에서 왕들이란 내 마음에서 하나님의 있음을 대적할 만큼 강력한 존재감의 대상들입니다. 그 대상은 남편, 아내, 부모, 자녀를 비롯한 가족일 수도 있으며, 애인일 수도 있고, 돈이나 건강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대상들은 마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해서 있음과 좋음을 실감하게 함으로 왕입니다. 그러한 대상들로 하여금 내 마음을 짓눌러서 하나님의 있음과 좋음과 주체성에 대한 실감을 없어지게 하는 것이 아마겟돈 전쟁이었습니다.

한편 곡과 마곡의 전쟁은 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한 것입니다. 한 사람이 천년 왕국을 살다가 죽으면, 그 사람이 관계하던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 대신 세상 것들을 실감하는 자들이 둘러싸게 만듭니다. 그리고 세상 것들에 대한 실감을 대세로 삼아 천년 왕국을 살던 자의 기억을 지워버리고자 합니다. 천년 왕국으로 살던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다르게 보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실감하면서 말하고 행동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죽고 나면 마귀는 그 주변 사람들에게서 이 사람의 기억을 지워버리고자 합니다. 그래서 천년 왕국의 왕 노릇 하며 살았던 흔적을 완전히 없애려는 전쟁을 일으킵니다. 내가 관계하던 사람들 주변으로 세상만을 실감하는 자들을 다 모아서, 하나님을 실감하며 살던 자의 기억을 지워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온전히 어린 양 예수님과 결합하여 공생애의 천년 왕국을 살게 되면 주변에도 상응하는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여러분 주변의 사람들이 천년 왕국을 살고 싶어 하지 않더라도 여러분에 대해서 ‘저 사람은 다르다.’라는 기억을 갖게 됩니다. 세상 실감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사탄에게 그러한 기억 자체는 위험 신호입니다. 사탄은 많은 사람을 모아서 세상 실감의 홍수를 이루고 대세를 이루어서 그 기억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싸움을 합니다.

내가 공생애의 천년 왕국을 사는 동안 관계하는 사람 중에는, 직접 관계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간접적으로 관계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천년 왕국을 향해 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9절을 보면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천년 왕국을 살다 죽으면 사탄이 다시 놓인다고 하니 염려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상황을 보면 천년 왕국을 사는 성도가 있고, 천년 왕국을 향해 가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러한 성도들이 진과 성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나는 전혀 모르는 현장에서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탄의 역사는 세상 실감을 대세로 삼아 나타납니다. 세상 실감의 무게로, 세상 실감의 흐름으로, 세상 실감의 홍수로 천년 왕국을 살던 자들의 흔적을 뒤덮어 버리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미 성도들은 하나님 실감의 진영을 이루고, 하나님 실감의 성을 쌓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실감하는 자들의 진영과 성은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곡과 마곡을 모아 무수히 많은 수를 이루며 공격하는 사탄의 진영을 부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사시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죽음을 통해 예수님에게서 일어난 천년 왕국은 끝났기에 마귀는 좋아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시는 동안에 열두 제자의 영적인 상태는 형편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귀는 예수님 때문에 열두 제자에게 힘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그야말로 ‘얼씨구나 잘 됐구나!’ 싶어서 예수님의 추종자들을 공격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열두 제자들, 마가 다락방의 백이십 문도, 또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오백여 형제들을 공략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는 그토록 형편없었던 제자들이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끝나자 열두 제자에게서 열두 개의 공생애가 생겨납니다.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의 수만큼 공생애가 생겨납니다. 이러한 모습은 진영이고 성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귀도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던 제자들의 영적 꼬락서니는 봐줄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의 공생애 나라에 대해서는 꼼짝 못 하고 무저갱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이 돌아가셔서 얼씨구나 하고 공세를 펼치려고 하는데, 공생애가 제자 수만큼 생기고 초대교회 성도들의 수만큼 생겨났음을 보게 됩니다. 그 증거가 초대교회의 유무상통으로 나타납니다. 천국을 얼마나 실감하고, 하나님의 있음과 좋음을 얼마나 강력하게 실감했는지 있는 자들이 없는 자들에게 무상으로 돈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마음이 땅에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마귀의 힘은 불에 타 없어지는 것처럼 완전히 무력화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교회를 이루어야만 합니다.

 

결국 실감의 싸움에서 우리가 진영과 성을 이루는 것은 공생애를 이어가는 과정입니다. 제가 강릉에 있고, 여러분의 얼굴 한 번 못 보고, 온 세계 각처에 흩어져 있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실감으로 진영을 이루고 성을 쌓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뒷자리에서, 열두 사도가 돌아가신 뒷자리에서, 일곱 집사님이 돌아가신 뒷자리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돌아가신 뒷자리가 우리의 자리입니다. 예수님 한 사람의 공생애가 끝났을 때 열두 개의 공생애가 생겼듯이, 우리의 공생애가 끝날 때 또 다른 공생애가 생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의 상황을 보면 공생애가 계승되는 연쇄의 줄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천년 왕국의 공생애를 살아가는 성도들도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거룩한 성도의 진영과 성을 이룰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삶에서 공생애를 이루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공생애를 이루며 살다가 그 공생애가 끝나면, 그 자리에는 반드시 다른 공생애들이 이어져갈 것입니다. 열두 공생애가 아니더라도 두 개의 공생애, 세 개의 공생애가 나올 수 있을 만큼 철저하게 실감으로 충만, 충만, 충만의 공생애를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뒷일은 우리가 책임질 것도 아니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어떻게 될지를 본문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본문을 대하며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농도 짙은 공생애를 살아내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뿐입니다.

이러한 공생애를 살다가 죽게 되면 우리는 곧바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죽을 때 의식 상태에서 재림을 맞이하고, 우리도 죽을 때 의식 상태에서 재림을 맞이할 것입니다. 다 천년 왕국을 살다가 재림을 맞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천년 왕국을 살다가 잠이 들면 의식 수준에서는 곧바로 깨어나는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 바깥으로 나가서 시간이 흐르지 않는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에 삼백 년이 흐르든, 오백 년이 흐르든, 설령 천년이 흐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지 궁금할 것입니다.

본문은 바로 그 사이에 일어난 일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탄은 곡과 마곡의 전쟁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실감하며 말하고 행동했던 삶의 흔적 자체를 지워버리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진영이 구축되고, 성도들의 성이 쌓임을 통하여 그 역사는 무산되어 버릴 것입니다. 오히려 더 하나님을 실감하는 공생애의 천년 왕국의 왕들이 여기저기에서 생겨남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마음에 꿈꿔보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내가 죽은 뒤에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다음 단락에서는 재림 때의 상황으로 우리의 관심과 주의를 이끌어 갑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누구나 죽음의 의식 상태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나의 죽음과 예수님의 재림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 사탄에 의한 곡과 마곡의 전쟁임을 알았습니다. 우리 삶의 유산으로써 또 다른 공생애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온전한 세제곱의 충만으로 이루어지는 천년 왕국을 살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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