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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땅에 살 동안 천국 속 내 구역 짓기>의 줄거리 :
어린 양 예수님의 재림이 일어나고 백 보좌 심판이 끝나면 천국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제공받은 하나님의 아들들 전체가 신령한 몸을 입고 어우러질 것입니다. 이 어우러짐이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 그런데 이 새 예루살렘 성은 땅에서 사는 동안 천국을 들락거리면서 내 할당 부분을 지어야 합니다. 천국 속 내 영역을 짓는 것입니다. 짓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땅에 살 동안 천국 속 내 구역 짓기
(요한계시록 21:18~27)
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25.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제목은 우리가 땅에서 사는 동안에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허락받게 될 천국의 내 영역을 짓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본문은 단순히 사도 요한이 계시받은 새 예루살렘 성의 모습을 인간의 언어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18~21절까지는 새 예루살렘 성에서 특별히 성곽의 내용이 자세히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앞서 본 바와 같이 기초석에는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고, 그 기초석은 다시 열두 보석으로 꾸며졌다는 묘사가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열두 보석 위에 성곽을 쌓은 것입니다. 그리고 성곽에는 열두 문이 있는데 그 문들은 진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한편 23~27절부터는 다소 이상한 느낌이 드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23절을 보면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천국과 새 예루살렘 성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린 양이 등불이 되신다는 언급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밝은 태양 아래에서 플래시나 촛불은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묘사하는 모습이 쉽게 상상되지 않습니다.
또 이상한 점은 24절에서도 이어집니다.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앞서서 우리는 천년 왕국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이 임하면서 백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이야기도 살펴보았습니다. 이어서 심판이 끝난 상태에서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이 제공되리라는 것까지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24절의 내용을 보면 이야기가 다시 천년 왕국을 사는 쪽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허락받은 천국에 새 예루살렘 성이 있다는 것은 실제 건물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새 예루살렘 성이란 백 보좌 심판을 통과해서, 천국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허락받은 사람들의 어우러진 모습을 비유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곽이 벽옥으로 쌓였다는 이야기도, 어우러질 때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께 어떤 소중한 의미를 갖느냐는 것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25절에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와서 무슨 낮과 밤이 이야기되고, 천국에 성문이 있어서 들락거린다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인지 의아합니다. 새 예루살렘 성이란 천국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허락받은 사람들의 어우러짐이라고 했는데, 성문을 들락거린다는 것은 실제로 성이 있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성문 바깥으로 나가서 천국에서 일하다가 다시 성문 안으로 들어오기라도 한다는 것일까요?
앞서 만국은 ‘한 사람의 나라’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 사람의 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관계 전체가 나라입니다. ‘왕들’이란 관계를 해 나갈 때 이 세상에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어린 양과 연합함으로써 실시간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간다는 뜻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24절에서는 그 만국과 왕들이 언급되며 성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묘사됩니다.
언뜻 생각하면 이 땅에서 천년 왕국을 살던 사람들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모습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제까지 진행되어 온 과정을 보면 순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공생애를 살면서 어린 양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하다가 백 보좌 심판까지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간 상태까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새삼스레 왕들이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나올 이유가 없습니다.
또 이어서 27절을 보면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또 다시 들어가는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이미 심판까지 끝났는데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과 거짓말이 언급되며, 그러한 자는 들어가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미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서 어우러져 살게 될 상황이 언급되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모든 성도가 신령한 몸을 입고 어우러지는 모습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7절의 말씀을 보면 다시 새 예루살렘 성을 이 땅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계시록에서 보여주는 일은 미래에 일어날 일입니다. 다만 이 미래는 내 인생이라는 수평면상에서의 앞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 있는 미래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위로 향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년 뒤에는 이 땅에서 잘 살아야지.’라는 마음가짐으로는 만날 수 없는 미래입니다. 마음이 지금 하늘로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미래입니다.
그런데 23~27절을 보면 그렇게 위로 보내서 만나게 되는 미래의 새 예루살렘 성을 현재에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다시 23절을 보면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라고 하였던 바와 같습니다. 만국은 이 땅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천국은 하나님 아버지가 주권적으로 다스리고 계시는 곳이기 때문에 만국이 언급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소 혼란스럽지만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부분을 놓친다면 요한계시록 전체의 의미를 놓칠 수 있습니다.
다시 23절로 돌아가 봅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 예루살렘을 성을 보여주시면서 모든 시대 사람들의 현재 삶을 새 예루살렘 성과 연결시켜 주십니다. 지금 내가 어린 양과 더불어 열심히 살고 있으면, 미래에 가게 될 천국과 새 예루살렘 성을 보여주신 후에, 그것을 다시 현재로 연결시켜 주고 계신 것입니다.
앞서 우리는 새 예루살렘 성이 정입방형의 형태로 묘사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16절을 보면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이 가로 세로 높이가 동일한 만 이천 스다디온이라고 언급되는데 우리식으로 환산하면 2,200km입니다. 남한의 길이가 400km 정도 된다고 본다면 5배나 되는 엄청난 규모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조차도 우주의 규모에 비하면 크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정입방형의 각 변의 길이가 만 이천 스다디온이라는 것은 실제 수치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조화와 균형을 뜻합니다. 머리털 하나만큼 뺄 수도 없고 더할 수도 없는 완벽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8~21절까지는 성곽에 대한 묘사가 이어집니다. 성곽을 벽옥으로 쌓았다고 했는데 열두 사도가 기초석이 되어서 열두 보석으로 지어졌다고 했습니다. 벽옥이란 하나님께서 성도를 바라보실 때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물처럼 여기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보물들의 기초석은 열두 사도가 의미하는 대로, 어린 양의 증언을 받아들인 자들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에 대한 증언을 받아들여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과 연합하는 자들을 마치 벽옥 같은 보물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리 같고 정금 같은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묘사가 이어집니다. 유리 같음이란 투명성을 의미하고, 정금이란 영원성을 의미합니다. 우리 마음이 어린 양을 담게 되면 하나님과 연합할 때 빛이시고 영이신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와 교통하심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영원히 투명해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에 이어서 23~27절에서는 새 예루살렘 성이 현재로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등불이 된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새 예루살렘 성에 올라간다는 것은, 모든 성도가 백 보좌 심판 이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인 천국에서 어우러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럴 때 나의 영역이 있습니다. 지금 살아있는 동안에 새 예루살렘 성과 연관된 삶을 통하여 내 영역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내 영역을 짓는 방법이란 마음이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 가운데 거하고, 이 땅에서 몸은 공생애를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온통 어둠이 깔려 있습니다. 사람들이 몸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은 어둠 속에서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새 예루살렘 성이 있게 될 천국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 가운데 머물게 됩니다. 그럴 때 몸은 어둠이 깔려 있는 세상에서 예수님이 공생애를 사셨던 것처럼 어린 양의 공생애를 내 몸이 대신 살게 됩니다. 이것이 어린 양의 등불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등불은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이냐를 비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린 양의 등불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안에 머물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하늘에서 영광의 빛 안에 있고, 몸은 이 땅에서 어린 양 등불을 따라 말하고 행동합니다. 이것이 하루하루 천국의 새 예루살렘 성에서 내 영역을 만들어 내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앞서 성곽을 벽옥으로 쌓았다고 했습니다. 내 마음이 날마다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안에 있고, 몸으로는 이 땅에서 어린 양 등불을 따라 말하고 행동합니다. 새 예루살렘 성을 전체 성도의 어우러짐이라고 볼 때 이것이 내게 할당된 부분을 채워나가는 일이 됩니다.
여러분은 하늘에서 각자의 영역을 날마다 만들어 가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면 여러분의 이름에 할당된 영역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상 속에 있는 내 이름으로 할당된 영역을 땅에서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24절의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라고 했습니다. 만국이란 곧 내 몸으로 맺는 관계의 나라입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의 영광 속에 머물고 내 몸이 어린 양 등불의 빛을 따라 말하고 행동하게 될 때, 내가 관계하는 사람들과의 모든 영역이 빛 가운데로 다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진다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나를 알아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왕의 위치란 이 땅에서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데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창조주요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의식 속에 내 존재가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 이 땅에서 왕 노릇하는 자의 영광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식 속에서 존재감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의식 속에서 존재감이 특별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와 연합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으로 존재감을 느끼는 유일한 대상은 바로 독생자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꼭 껴안고, 놓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나의 존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광입니다.
땅에서 어린 양을 꼭 껴안고 절대로 놓지 않고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해 죽고 연합함으로써 아버지 마음에 나의 존재감이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 성에는 바로 이 존재감이 느껴지는 자들만 들어가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에 지어지는 새 예루살렘 성과 연관하여 지금 들어갈 것을 요청합니다.
이어서 25절을 보면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성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도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의 마음이 천국으로 들어간다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백 보좌 심판이 끝난 뒤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모두가 다 천국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고 있는데, 천국 안에서 들어가고 나간다는 이야기는 의미가 없습니다. 천국 안에서도 성안과 성 바깥이 구분되는 상황은 있을 수 없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모든 성도의 어우러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예수님과 하나님을 중심으로 어우러져 살기 위해서는 지금 하나님의 구상 속에 있는 큰 계획 속의 어우러짐에 내 영역이 확보되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마음은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리고 몸은 어둠이 짙게 깔린 세상에서, 어린 양 등불이 비춰주시는 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다시금 이 상황을 만국이 빛 가운데 거하고, 왕들이 영광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만국이 빛 가운데 거한다는 것은, 내가 관계하는 모든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행동할 때 빛 안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은 영광의 빛 안에 있고, 몸은 어린 양 등불의 빛 안에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하늘로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 있는 성들은 밤이면 문을 닫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상 속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에서, 내 영역을 확보하기 위하여 마음이 들어갈 때는 언제 어디서든지 내 마음이 하늘로 올라감에 대해서 닫혀있는 문은 없습니다. 그 문들이 진주로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진주는 당시에 보화 중에서도 최고의 보화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3장 45~46절에서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의 가치를 진주에 비유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이해에서 문이 진주라는 말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무실을 보면 넓은 홀에서 직원들이 자기만의 칸을 만들어서 일을 합니다. 그러나 임원이나 간부들은 자기만의 명패가 붙은 방을 갖습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명패에 쓰인 사람과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천국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만나게 될 분은 하나님입니다. 문이 진주로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 자체가 그렇게 귀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날마다 가족을 만납니다. 친구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회사에서 사장님도 만나고 정치인들이라면 대통령을 만나기도 할 것입니다. 가족을 만나든, 회장님을 만나든, 대통령을 만나든 어떤 만남도 하나님과의 만남에 비교하자면 나무나 돌 조각의 가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날마다 하늘로 올라가서 이룰 수 있는 하나님과의 만남은 진주로 비유할 수 있는 값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문이 진주로 되어 있다는 것의 의미가 이와 같습니다.
이 진주와 같은 만남을 사모하여 내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면, 새 예루살렘 성안에서 내 영역은 하나님이 그림 그리신 대로 확보됩니다. 그리고 내 몸이 죽어서 백 보좌 심판을 거쳐 신령한 몸을 입게 되면, 그 영역이 나의 영역으로 할당되는 것입니다.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다고 했습니다. 그저 벽옥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초석을 이야기하고 벽옥으로 쌓음이 이야기 된 것은 결국 일종의 공사를 하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사도 요한은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해 우리 몸이 죽고 백 보좌 심판을 거쳐서 신령한 몸을 입고 들어가게 될 미래의 일로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지금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열두 문이 있고 그 문들이 동서남북으로 세 개씩 포진되어 있는 모습은, 지금 동서남북이라고 하는 성도의 연대가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에서 내 영역 쌓기를 하는 일입니다.
26절을 보면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라고 하였습니다. 24절의 말씀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27절을 보면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속된 것이나 가증한 것이나 거짓말 하는 것은, 내 마음이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안에 머물지 못하고, 땅에서는 어린 양 등불을 따라 내 몸이 말하고 행동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증상들을 세 가지로 축약한 것입니다.
속된 것이란 내 마음의 존재감과 관련이 있습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안에 거할 때는 오직 하나님의 존재감만을 느낍니다. 땅에 살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존재감만을 느낄 정도로 마음이 하나님의 영광 빛 안에 들어가 있어야 천국에서도 내 영역이 확보됩니다. 벽옥으로 성곽을 쌓고, 정금과 맑은 유리로 새 예루살렘 성이 지어지는 전체 구성 안에 내 영역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마음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이 세상 것들이 영광을 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눈앞에 자녀가 있으면 자녀에게 영광의 빛이 비치면서 자녀의 존재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속된 것입니다. 내 마음에 하나님의 존재감이 없다면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지 않은 것이고, 그러면 새 예루살렘 성안에서 내 영역을 구축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배우자의 존재감을 느낍니다. 사장님의 존재감을 느낍니다. 돈 문제의 존재감을 느낍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속된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새 예루살렘 성에서 하나님이 점선으로 그려놓으신 내 영역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몸이 죽은 후에 올라가서 있을 곳도 없고 결국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천국에는 하나님이 내 이름으로 할당하신 영역이 있습니다. 날마다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서 할당된 영역에 성곽을 쌓는 공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점선으로 그려놓으신 영역을 공사하면서 내 영역으로 만드는 일을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해야 합니다. 그것이 마음은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존재감만을 느끼고, 땅에서는 어린 양 등불을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몸이 어디 있느냐는 상관없습니다. 직장에 있든, 가정에 있든, 시장에 있든, 동호회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디든 상관없이 내가 어린 양 등불을 따라 말하고 행동하면 됩니다.
우리가 시장에 가서 해야 될 생각은 장을 잘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시장에 가는 목적은 시장에서 천국의 내 영역을 짓는 것입니다. 가정에 있는 동안에 가족들이 화목하게 잘 지내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아내가 남편 앞에서 남편의 존재감을 가지면 속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이 아내의 존재감을 가지면 속된 것입니다. 배우자의 존재감을 느끼는 동안에 마음이 하늘에 올라가서 내 영역을 만들 수 없습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 나가는 목적은 월급 받고, 승진하고, 보너스 받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에서 속되지 않는 것이 목적입니다.
내 마음은 하나님의 존재감만을 느끼고, 어린 양 등불을 따름으로써 직장에 있는 동안에 천국의 내 영역을 점선에서 실선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영역을 확보해야 내가 들어갈 곳이 있습니다. 이것은 참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묘사까지 끝난 이후에, 다시 삶을 살아야 되는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습니다.
가증한 것이란 영광의 빛의 두 가지 내용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서 속된 것이 존재감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감 말고는 다른 존재감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장님을 마주할 때도 하나님의 존재감을 느끼면서 사장님을 대하는 것이 옳습니다. 배우자를 마주할 때도 하나님의 존재감을 느끼면서 배우자를 대하는 것이 옳습니다. 돈 문제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존재감을 먼저 충만하게 느낀 뒤에 돈 문제를 대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보고 나면 사장님도 돈 문제도 속된 일이 되지 않습니다.
한편 가증한 일이란 하나님이 아닌 좋아하는 것들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다른 것을 좋아하는 것이란 우상숭배나 영적으로 음행하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하늘에 올라가서 백 보좌 심판이 끝난 뒤에 신령한 몸을 입고 머물 곳을 만들 수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크든 작든 이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어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갖게 되면 그것은 가증한 일이 됩니다.
‘무엇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의 바람과 염원과 소원과 희망과 꿈 등의 간절함은 하나님만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간절함이야말로 내 마음이 영광의 빛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빛을 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간절함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일이 좀 잘 됐으면 좋겠네.’라고 하다가도 깜짝 놀라서 ‘아니 나는 하나님을 더 가졌으면 좋겠다. 하나님과 더 친해졌으면 좋겠다.’라는 소원을 갖는다면 하늘에서는 내 영역이 그만큼 확보됩니다. 이렇게 날마다 천국에서 내 영역을 지어가는 것입니다.
거짓말하는 자는 어린 양 등불을 따라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자입니다. 어린 양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어떤 생각을 하시면 예수님께서는 그 생각을 다 빨아들이십니다. 우리는 나만의 특수한 환경과 조건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만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어린 양만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계십니다. 이 세상 어떤 전문가도 내가 맞닥뜨리고 있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어린 양 등불을 따라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모든 것은 거짓말이 됩니다.
어린 양 등불을 따르려면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감만 느끼고 하나님의 좋음만을 소망하게 되면 이 땅에서 어린 양 등불은 저절로 켜집니다. 하나님의 존재감을 충만히 느끼고 하나님의 좋음만을 소망하는 가운데, 떠오르는 생각과 말과 행동은 다 어린 양 등불에 의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세상 것의 존재감을 느끼고, 세상 것이 좋다고 여기는 가운데 나오는 모든 말과 행동은 아무리 하나님께 묻는다고 해봐야 다 거짓말입니다. 그렇게 산다면 죽어서 혹시 하나님이 천국으로 불러주신다고 할지라도 내가 머물 영역이 없기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파트를 좋아하는데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내가 머물 아파트는 없는 셈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내 아파트를 짓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사람들을 위해 점선으로 아파트의 설계도를 만들어 두셨습니다. 우리는 그 점선을 실선으로 바꿔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사를 가려면 몇 날을 들락거리면서 청소도 하고 인테리어도 한 후에 짐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그런 것처럼 지금은 천국에서 내게 할당된 영역의 인테리어를 하는 기간입니다. 하나님은 구상을 해두셨습니다. 이제 우리 마음이 하늘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존재감을 느끼고 하나님을 좋아하는 영광의 빛 아래에 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이 땅에서는 어린 양 등불을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하루하루를 살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날마다 천국에 출석해서 인테리어 공사를 해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직장생활을 하든지 가정생활을 하든지 천국에서 내 영역의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사는 목적은 얼마나 성공하느냐, 얼마나 잘 사느냐가 아니라, 하늘 영역의 인테리어 공사를 해나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천국에 올라가서 여러분이 거하게 될 영역을 굳건히 표시하고 인테리어 공사를 하다가 잠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마음은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안에 머물게 하시고, 땅에서 내 몸은 어린 양 등불을 따라 말하고 행동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럼으로써 하나님이 기쁨으로 표시해 놓으신 내 영역을 날마다 올라가 확인하고 줄 긋고 인테리어를 하는 인생으로 살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