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사사기-3

녹취문: 나를 자랑삼는 자는 반드시 죽이자_태승철 (삿 11:29~40)

작성자제로원|작성시간26.06.11|조회수77 목록 댓글 0

www.everyday01.com - 십자가(0,1)복음방송

 

십자가 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 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나를 자랑삼는 자는 반드시 죽이자>의 줄거리 :

나를 자랑삼는 사람은 꼭 죽여야 합니다. 나를 무시하고 경멸하는 사람은 용납해야 합니다. 그래서 칭찬에 취하지 말고 경멸에 긁히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이미 하나님 마주보기를 중단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가벼움을 보세요. 같이 있는 것이 자기 체면과 위상에 손실이 간다고 입다를 경멸하고 무시하며 추방하던 사람들. 자기들이 필요하게 되자 입다를 다시 부릅니다. 그리고 입다가 공로를 세우면 경멸하던 같은 입으로 입다를 칭찬하고 자랑하고 자부심 거리로 삼습니다. 내 주변 사람들의 이러한 가벼움에 휘둘리지 맙시다.

 

나를 자랑삼는 자는 반드시 죽이자

 

(사사기 11:29~40)

 

29.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의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의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32.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33.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34.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본문 중심으로 <나를 자랑삼는 자는 반드시 죽이자>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본문은 요단강 동편 지역을 침략한 암몬 자손과의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사사 입다가 무남독녀를 번제로 바치는 사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전쟁은 무남독녀를 번제로 바치는 사건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에 불과합니다. 입다는 암몬 자손과의 전투를 시작하기 직전에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서원을 합니다. 서원의 내용은 암몬 자손과의 전쟁을 이기게 해주시면 집으로 돌아올 때 제일 먼저 나오는 사람을 여호와께 번제로 바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에 이겨 집으로 돌아가면 가족이든 종이든 누군가는 먼저 나올 것입니다. 입다는 전투에 돌입하기 직전에 그렇게 제일 먼저 나온 사람을 무조건 번제로 드리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고 결국 11장 마지막에 입다는 무남독녀를 번제로 드리고 맙니다. 11장 전체를 보면 사사 입다가 왜 이렇게 언밸런스한 태도를 보이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습니다.

일찍이 입다는 자신을 창녀의 아들이라고 혐오하고 경멸하던 형제들과 길르앗 장로들에 의해 국외로 추방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해 원망하거나 앙갚음의 심정을 갖지 않았습니다. 쉽게 말해 뒤끝이 없었던 것입니다. 암몬 자손에 대해서도 자비를 보일 필요 없이 철저하게 괴멸시키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입다는 가능하면 전쟁을 피하고 대적들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담판을 시도했습니다. 이처럼 대적에 관대하던 입다가 정작 자기의 외동딸은 죽여서 번제로 바치고 맙니다. 너무나도 언밸런스한 태도가 눈에 띕니다.

입다의 외동딸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입다의 딸은 아버지가 군대 장관이 되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입다가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딸뿐만이 아니라 입다의 가족 누구라도 나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오히려 딸이 맨발로 뛰어나와 아버지를 환영하면서 눈물로 끌어안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그러지 않고 집안에서 딴짓을 하고 있다면 몽둥이찜질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암몬 자손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왔는데, 집안사람들이 자신을 영접하지 않을 확률이 몇 퍼센트나 될까요? 상식적으로 그런 확률은 없습니다. 누구라도 나오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입다는 어떻게 감히 사람을 죽여 여호와께 번제로 바치겠다는 맹세를 했던 것일까요?

 

입다의 서원을 두고 벌어진 오해가 심각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오해는 30절에 대한 부분입니다.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이라고 했습니다. 이 부분을 입다가 전쟁의 승리를 하나님께 간절히 요구했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입다는 이방 땅 돕에 살면서 잡류의 지도자로서 세월을 보낼 때 많은 다툼과 전쟁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전쟁에서도 승리를 소원하며 하나님께 힘을 간구한 적은 없었습니다. 입다가 하나님이 아닌 전쟁의 승리를 마주하며 산 사람이었다면 자기를 경멸하고 모욕한 자들에게 마음의 긁힘을 당했을 것입니다. 입다는 늘 하나님을 마주 보고 있었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따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입다에게 전쟁을 위임하시고 그의 손에 대적들을 넘기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이라는 단서는 전쟁을 이기고 싶은 소원과 간절함으로 한 기도가 아닙니다.

흔히 입다의 서원은 헌신의 각오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치우쳐서 분별력을 잃은 상태에서 하게 된 서원이라고 이해를 합니다. 특히, 인신 제사를 염두에 두고 번제를 언급한 것은 입다가 돕 땅에 머무는 동안 이방인들이 인신 제사를 드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오해입니다. 인신 제사라는 말을 붙이니까 이상하게 여겨지지만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것과 같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의미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한다면 입다의 서원은 다르게 보입니다.

입다는 하나님이 암몬 자손을 넘겨주셔서 승리할 것은 정해져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번제를 맹세한 것일까요? 번제는 나 자신을 죽이는 일입니다.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대신하여 희생 제물에 안수하여 나와 동일시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대상은 주로 소나 양이었습니다. 그 희생 제물의 각을 떠서 번제단에서 불사를 때 희생 제물과 나의 동일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를 통해 본문에 기록된 입다의 심리상태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입다에게 있어서 전쟁의 승리는 정해진 것이었기에 입다의 마음에서 승리는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전쟁이 승리했을 경우에 다음 단계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를 죽여야만 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임을 알았습니다. 번제는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제사가 아닙니다. 번제는 자기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자기를 부인하여 죽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자기를 죽이는 이유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마주 보는 상황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번제의 특성을 염두에 두면 입다가 전투를 시작하기 직전에 자기의 어떤 모습을 보았기에 죽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더라도 흠 없는 수소나 양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안에서 제일 먼저 나와 영접하는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한 것에 대한 이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입다가 자기의 어떤 모습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느냐는 것입니다. 번제라는 말 자체가 그런 이해를 하도록 우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입다는 승리 후에 왜 자기를 죽여야 한다고 여겼던 것일까요?

 

입다는 암몬 자손과의 전쟁에서 승리가 가져올 파장이 어마어마할 것을 알았습니다. 돕 땅에서 잡류를 이끌고 싸움에서 이겼을 때와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그동안 창녀의 아들이라고 경멸하며 추방했던 조국 이스라엘은 이제 입다를 군대 장관으로 초청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전 국민이 입다가 지도자가 되어 암몬과 전쟁을 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입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 때문에 암몬 자손을 자기 손에 넘겨주실 것에 대해서는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승리는 정해진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승리가 잡류를 이끌면서 싸울 때와는 전혀 다른 파장을 가져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입다는 전투에 투입되기 직전에 이 전쟁이 이제까지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제까지 입다는 잡류를 이끌고 이방 땅에서의 작은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조국의 명운을 건 암몬 자손과의 전쟁에서의 승리는 상황이 다릅니다. 기드온이 미디안 대군을 격파했을 때와 같이 백성들의 추앙과 존경과 경배의 반응이 불처럼 일어나게 만들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은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입다는 이 점을 깨닫고 두려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입다는 암몬 자손과의 전투에 투입되기 직전에 자신과의 전쟁을 먼저 치르고 있었습니다. 상황을 보자면 전쟁에만 몰입해도 될까 말까 합니다. 그러나 입다는 전쟁에 몰입하는 대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먼저 치르고 매듭을 짓고자 결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늘 마주 보고 살았던 입다는 어떤 상대로부터도 마음의 긁힘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창녀의 아들이라며 경멸하고 무시한 사람들이 있었고, 이제는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침략해 들어오는 암몬 자손들이 있습니다. 입다는 하나님을 마주 보고 있었기에 이들의 경멸이 마음에 긁힘이 되지 않았고, 암몬 자손의 침입이 피해 의식이나 손해 의식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창녀의 아들이라고 평생 무시당하던 입다가 이제 조국의 영웅이 될 것이 불을 보듯 자명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입다는 이러한 상황에서 깜짝 놀랍니다. 암몬 자손과의 전쟁의 승리를 자기 공로로 삼고 싶어 하는 마음속 욕구를 발견한 것입니다. 이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입다는 평생 무시와 경멸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자기를 경멸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영웅으로 추앙하는 말이 들려오게 될 것입니다. 입다를 자랑삼고, 칭찬거리로 삼고, 자부심 거리로 삼을 것이 분명한 상황이 예측됩니다. 입다는 자신의 마음에서 이러한 상황을 잡아당기려고 하는 욕구가 있음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투에 몰입해야 되는 상황에서 난데없이 번제를 드리겠다고 맹세한 것입니다.

굳이 번제를 드려야 한다면 전쟁터에 나가기 전이나 군대를 끌고 출발하기 전에 집에서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입다는 갑자기 전투를 시작하기 직전에 자기 속에 숨어 있는 욕구를 보며 기겁을 하고 경기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입다가 자기의 욕구를 깨닫고 경기를 일으키는 상황에서 쫓기듯이 한 일이 바로 번제에 대한 서원이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이루시는 성과와 공로를 사람들은 나의 것으로 알고 나를 자랑하고, 나를 칭찬하고, 나를 자부심 거리로 삼을 것입니다. 제 안에 그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잡아당기려는 욕구를 봅니다. 이러한 나를 죽여야만 합니다.’라는 심정으로 번제를 서원한 것입니다.

입다에게 하나님은 마주 보고 있는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나에게 암몬 자손을 넘기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이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의 칭찬과 자랑거리가 되고 자부심의 근거가 되는 상황을 잡아당기려는 욕구를 보면서 경기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번제의 서원을 합니다. ‘이런 나를 반드시 죽이겠습니다!’라고 맹세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입다는 왜 사람을 번제로 바칠 것을 맹세한 것일까요?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입다가 전쟁을 이기고 돌아온다고 해서 환영하여 춤추며 달려 나올 소나 양은 없습니다. 가장 먼저 자기를 자랑거리로 삼고, 자기를 칭찬거리로 삼고, 자기를 자부심 거리로 삼을 자는 가족입니다. 입다의 가족은 다른 누구보다도 입다를 가장 크게 걱정하고 염려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입다가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맨발로 뛰어나와 환영하고 영접할 자들이 가족임을 알았습니다.

입다는 전쟁의 승리를 자기 것으로 삼고 싶어 하는 마음의 욕구가 있음을 알고 자기를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죽이기 위하여 무엇을 희생 제물로 삼을지 생각합니다. 나를 자랑거리로 삼는 자, 나를 칭찬거리로 삼는 자, 나를 자부심 거리로 삼는 그 사람을 번제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어떻게 칭찬하고, 어떻게 자랑거리로 삼고, 어떻게 자부심 거리로 삼든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공로요, 하나님이 나의 자랑이고, 하나님이 나의 자부심의 근거가 되심을 놓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 것입니다.

 

입다는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기드온과는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처음에 기드온이 하나님을 마주 보는 상황에서는 왕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계속해서 미디안 대군을 격파한 기드온의 공로를 이야기합니다. 기드온을 자랑거리로 삼고, 자부심 거리로 삼고, 칭찬거리로 삼아 말을 합니다. 그러는 동안 기드온은 서서히 자기 속에 있는 욕구에 빠져듭니다. 입다처럼 번제를 드리며 죽이지 않음으로써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칭찬과 자랑삼음과 자부심 삼음에 먹혀서 취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칠십 명의 아들이 몰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입다의 경우는 외동딸 하나를 잃었지만 이스라엘 사람 전체를 살립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스라엘을 암몬 자손에게서 구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입다의 딸은 죽음을 앞두고 깨닫습니다. 아버지가 왜 전투 직전에 이런 맹세를 하셨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입다의 딸은 아버지의 개선을 기뻐하며 북 치며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나 입다는 그러한 딸을 보고 옷을 찢으며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라고 탄식합니다. 입다의 딸은 죽기에 앞서 그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아! 전쟁의 승리로 인해 아버지를 칭찬거리로 삼는 자들이 아버지로 하여금 하나님을 잃게 하는 자들이 될 수 있구나. 그 첫 번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었구나.’라고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아버지의 맹세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36절을 보면 딸의 심정이 잘 드러납니다.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입다의 딸이 춤을 추며 나왔던 이유는 아버지를 위해서였습니다. 그 순간에는 여호와 하나님보다 아버지가 더 먼저 보였던 것입니다. 입다의 딸은 옷을 찢으며 괴로워하는 아버지를 보고서야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라고 깨달았던 것입니다.

입다가 가족들을 걸고 이러한 맹세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평소에도 하나님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입다는 돕 땅에 살면서 잡류를 이끌고 싸움을 할 때마다 승리하여 돌아오면 가족들에게 ‘이 승리는 내가 마주 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내 손에 넘기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가족들이 자기를 자랑할 때마다 입다는 하나님이 시퍼렇게 자기를 보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승리를 자기 몫으로 돌리는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계속해서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암몬과의 싸움은 이제까지의 싸움과는 의미가 달랐습니다. 입다의 가족들은 입다가 창녀의 아들이라는 출신 때문에 그동안 얼마나 무시 당했는지를 잘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입다가 이번 싸움으로 조국 이스라엘에서 명예를 되찾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입다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입다는 이제까지 이방 땅에서 승리할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에 의한 승리임을 가족들에게 누누이 말해왔습니다. 그렇기에 가족들에 대해서도 자기의 의도가 충분히 전해졌으리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승리의 소식을 들었을 때 모두가 모여서 자신의 공로를 기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공로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자랑하기를 바랐습니다. 자기의 가족들이라면 그럴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맹세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입다와 같을 수는 없었습니다. 입다의 승리 소식을 들은 외동딸이 뛰어나오면서 ‘아빠가 승리했다! 아빠가 조국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아빠가 조국의 자부심 거리가 되었다!’라고 외치며 나와서 춤을 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입다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이것은 우리가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못 박혀 죽는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번제로 드려지셨고, 나는 그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만 합니다. 여기에 담긴 특별한 영적인 의미는 내 마음이 세상에 대해 죽고 하나님을 향해서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있음만이 존재감의 이유가 되고, 하나님의 좋으심만이 만족감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사회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에는 인간 사회에서 가장 무력하고 가장 낮은 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회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어떤 이유에서든지 나를 무시하고 경멸하고, 모욕하고, 나의 무능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혀 꼼짝 못 하는 일을 돕는 자들입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영이신 하나님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존재감이 너무 작아서 그들의 나를 향한 모욕과 무시함과 비난이 긁힘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 정도로 하나님의 존재감이 커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못 박힌 자이기 때문에 무능함은 당연합니다. 못 박힌 자이기 때문에 낮음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입다가 보였듯이 나를 경멸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대한 태도를 갖게 됩니다.

나는 죽어야 하는 자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으로 당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 가시려면 나는 죽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 뜻과 계획이 조금이라도 나타나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멈춰버립니다. 그런데 나를 무능하다 하고 나를 멸시하고 내가 없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내가 십자가에서 죽는 일을 돕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본의 아니게 내가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돕고 있으므로 나무랄 필요는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셔서 어떤 업적과 성과가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나를 칭찬하고 나를 자랑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나를 십자가에서 내려오도록 강력하게 유혹하는 자들입니다. 본의 아니게 유혹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나로 인한 업적과 공로로 인해 사람들이 칭찬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내가 겉으로는 거부를 해도 그들의 칭찬과 그들의 자랑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잠식해 버리고 맙니다. 그렇기에 입다처럼 나를 죽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자랑하고 칭찬하고 자부심 거리로 삼는 것을 은근히 좋아하는 속에 숨어 있는 욕구 덩어리를 번제로 죽여야만 합니다. 그럴 수 없다면 칭찬 앞에 자랑 앞에 자부심 거리로 여기는 그 앞에서 견뎌낼 자가 없습니다.

기드온의 집안이 멸문지화의 종지부를 찍은 이유는 입다 같은 태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이 잘될 때 성과와 업적을 기반으로 나를 자랑삼는 자를 반드시 나와 동일시하여 번제물로 여김으로써 죽여야 합니다. 여기에 입다의 딸이 번제물로 드려진 의미가 있습니다. 입다의 딸은 두 달의 말미를 요청하여 애곡하고 번제로 드려집니다. 두 달이라는 기간은 온 이스라엘이 이 사건에 주의를 집중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딸을 번제로 드리는 입다의 맹세를 주목했던 것입니다. 입다의 딸이 번제로 들여질 때 입다가 이룬 암몬 자손과의 전쟁의 승리와 업적에 대하여 입다를 칭찬하고, 입다를 자랑삼고, 입다를 자부심 거리로 삼았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이 외동딸과 함께 죽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암몬과의 전쟁의 승리에서 입다와 입다를 자랑거리로 삼은 모든 사람이 다 죽어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암몬 자손과의 전쟁에서 승리의 주인공으로 두드러지게 됩니다.

 

본문은 굉장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면 나의 공로나 성과로 여겨질 수 있는 일들이 생깁니다. 그럴 때마다 그 공로와 업적과 성과에 근거하여 나를 자랑거리로 삼고 칭찬거리로 삼는 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자랑거리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내가 욕구 덩어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를 자랑거리로 삼는 그 사람과 욕구 덩어리인 나를 일치시켜 십자가에서 죽여야만 합니다. 나를 자랑삼는 자, 나를 칭찬거리로 여기는 자, 나를 자부심의 근거로 삼는 자, 이 모든 자들을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반드시 죽이시기 바랍니다. 욕구 덩어리인 나 자신과 함께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이는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언제나 하나님만이 홀로 돋보이시는 삶을 위하여 입다처럼 나를 경멸하고 무시하는 자들에게 마음이 긁히지 않게 하시고, 나를 자랑삼는 자들을 내 마음에서 반드시 죽이게 해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아버지께로 가는 일을 평생 은퇴 없는 직업으로 삼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