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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과와 설교

20181227 / 창 39:1-6 / 범사에 형통하는 요셉

작성자천성교회|작성시간18.12.27|조회수1,185 목록 댓글 0

범사에 형통하는 요셉

39:1-6

첨부파일 새벽몌배20181227.hwp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39:1-6 / [보디발의 집에서 일하는 요셉]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셉을 애굽으로 끌고 가 바로의 신하인 보디발에게 팔아 넘겼다. 보디발은 바로의 경호실장이었다. 2) 여호와께서는 요셉과 늘 함께 하셨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일마다 행운이 따르도록 그를 도와주셨다. 요셉은 그 애굽 사람 보디발의 집에서 함께 살았다. 3) 애굽 사람인 요셉의 주인은 여호와께서 늘 요셉과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그가 하는 일마다 언제나 행운이 따르도록 하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4) 보디발은 요셉이 무척 마음에 들어 집안일뿐만 아니라 재산까지도 관리하는 가장 가까운 종으로 삼았다. 5) 그 뒤로부터 여호와께서는 요셉을 보시고 요셉의 주인인 그 애굽 사람 보디발의 가족들에게 복을 내리셨고, 또한 그의 집안에 있는 재산이든 들녘에 있는 가축 떼이든간에 복을 내려 주어 불어나게 하셨다. 6) 요셉의 주인은 이렇게 자기 재산을 모두 요셉에게 맡겨 그가 관리하도록 하고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다만 자기가 먹는 음식에 관해서만 말을 할뿐이었다. 요셉은 아주 잘생긴 청년이었다.

 

1-6절은 요셉의 형통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39장의 첫 시작인 1절은 보디발이 요셉을 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사고 파는 물건으로 전락해 버린 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1-3) 요셉의 인생이 사람의 손에 좌지우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요셉의 인생을 주관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요셉 이야기의 본질입니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요셉은 앞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될 것입니다. 요셉은 지금 육신의 아버지 야곱이 보호 할 수 없는 곳에 있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요셉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요셉이 형통하였다는 표현이 39장에 자주 등장합니다. 성경의 기록대로 요셉의 삶은 분명 형통했는데, 요셉의 인생을 자세히 보면 그리 형통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린 때는 17세였습니다. 바로가 요셉을 총리로 임명한 것은 그의 나이 30세였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복이 확인되기까지 13년의 시간이 걸린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주신 형통은 성공해야 하고, 빨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을 받기 위해서 지나치게 성급하고 조급한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봅니다. 요셉의 형통을 보면 요셉은 함께 자란 형들에게 노예로 팔렸습니다. 비관해야 할 만한 삶의 상황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의 삶을 비관적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눈을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무려 13년 동안 고정시키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요셉이 형통한 비결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4-6) 보디발은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았고,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습니다(3). 요셉은 아마도 보디발의 집에 있는 노예들 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서 성실히 일했을 것입니다. 요셉이 총무가 된 후 부터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게 됩니다(5). 그 결과 보디발이 모든 소유를 다 요셉에게 위탁합니다(6). 4절에 요셉이 주인을 섬기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요셉은 무엇을 하든지 주인의 이익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또 주인의 이익이 더 많아지도록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 섬기매라는 표현을 통해 더 확실해 집니다. 그 결과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도 경험했지만, 보디발의 은혜도 경험했습니다(4).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에 먼저는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동시에 사람을 섬기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요셉은 이 과정을 13년 동안 밟아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적용: 오늘날 예수님을 섬기고, 사람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이 필요합니다. 혹 주님만 섬기고 주님에게만 은혜를 받는 그리스도인은 아니십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입니다. ,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그랬습니다.

 

< 설 교 >

내가 어찌 하나님께 죄 지으랴

39:1-10

오늘 본문의 주인공 요셉은 가히 신화적인 존재요 전설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히브리 소수 부족에서 태어나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강대한 부국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110세로 죽기까지 애굽왕 바로 다음 가는 막강한 권세와 바로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애굽을 지배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바로로부터 부여받은 지위와 권력이 어떤 것인지는 창세기 41장에 기록된 다음의 몇 구절만 봐도 설명이 필요 없이 분명합니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40-44). 요셉의 죽음에 대한 기록은 창세기의 제일 끝에 다음과 같이 짤막한 한 구절로 남아있습니다: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반면 요셉의 아버지 야곱의 죽음에 관해서는 보다 길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그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50:1-3). 여기서 시신을 향으로 처리하고 70일간 애곡하였다는 것은 그 신분이 바로나 그에 버금가는 애굽의 최고위 인사의 신분에 비할 수 있는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자 요셉은 바로의 허락을 받아 아버지 야곱이 유언한 대로 그의 시신을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49:30) 선조들의 묘실에 장사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다녀오는 그 길에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50:7)들이 동행했다고 했습니다.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한 창50:9의 기록은 그 장례행렬이 얼마나 장관을 이루었을지 능히 짐작하게 합니다. 그만큼 요셉의 위세는 절대적인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셉의 그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대성할 수 있게 했었는지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셉은 지혜롭고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지혜와 능력은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어 7년간의 기근에 대비하여 혹심한 기근 중에도 온 국민을 굶기지 않고 먹여 살리면서도 왕의 재산을 더욱 튼튼히 한 일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총리가 된 요셉은 풍년이 들어 토지 소출이 심히 많았던(41:47) 7년 동안 애굽 온 땅을 순찰하며(41:45-46) 각 성읍마다 흉년에 대비해 곡물을 충분히 저장하게 했습니다. 41:49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쌓아 둔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바로의 꿈을 해석한 요셉의 말과 같이 애굽 땅에 7년간의 풍년이 그치고 7년간의 흉년이 시작되며 온 땅에 기근이 들고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자 요셉은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과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온 각국 백성에게 곡식을 팔았습니다(41:53-56). 요셉은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그 돈으로 바로의 궁을 채웠습니다(47:14). 흉년이 계속되자 돈으로 산 곡물도 다 떨어지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곡물을 살 돈도 다 떨어지게 되었습니다(47:15). 그러자 요셉은 곡물을 팔아 거두어들인 돈으로 백성들의 가축을 사들였습니다(47:16). 다시 돈이 생긴 백성들은 그 돈으로 곡물을 사 먹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47:17). 그러나 흉년은 계속되었고 또 다시 백성들에게 먹을 것이 떨어지고 그들에게 남은 것은 몸과 토지뿐”(47:18)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의 소유로 만들고(47:20), 백성들은 소작인으로 삼아 그들에게 종자를 주고 땅에 뿌리게 하여(47:23) 추수의 5분의 1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5분의 4는 백성들이 가져서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온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게 했습니다(47:24, 26). 그러자 애굽의 백성들은 요셉을 향해 말하기를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했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그 극심했던 흉년과 기근 속에서 애굽의 모든 백성을 먹여 살렸으며 애굽의 모든 땅을 바로의 소유로 만드는 지혜와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지혜와 능력의 사람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정직하고 곧은 사람이었습니다. 지혜 있고 유능한 사람이 정직함을 갖출 때 나라에 유익을 주지, 그렇지 않으면 유익은커녕 오히려 큰 해악을 끼칠 수 있습니다. 요셉은 곧고 정직한 사람이었으며 그리고 유능했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를 신뢰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애굽에 팔려 가서 처음 모시게 된 사람이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입니다. 오늘 본문 4-6절에 보면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집과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했으며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요셉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게 되었을 때에도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고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게 했으며 간수장은 요셉의 손에 맡긴 것은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39:22-23).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절대적 신뢰를 얻을 수 있게 한 것이나 애굽의 총리로서 바로의 총애와 온 백성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지혜와 능력뿐 아니라 요셉의 곧은 성품과 정직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거기에 그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지혜와 정직 이상의 것이 있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였습니다. 그의 삶을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믿음이었습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을 섬기고 있을 때 요셉은 유능하고 정직했을 뿐 아니라 젊고 그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다고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6). 그런데 이렇게 잘난 청년 요셉을 그냥 놔두지 못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보디발의 아내였습니다. 그 여인은 오로지 요셉과 동침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요셉에게 추파를 던지며 그를 유혹했습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동침하기를) 청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에 응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녀와 함께 있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부정한 일을 저지를 기회가 주어질 가능성조차 남기지 않으려는 그의 반듯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자기의 끈질긴 유혹과 간청에도 요셉이 꿈쩍하지 않자 아주 대담한 시도를 감행했습니다. 어느 날 집에 사람들은 하나도 없고 일하러 들어간 요셉만 있을 때 그녀는 요셉의 옷을 잡고 자기와 동침해줄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여인의 손에 잡힌 자기의 옷을 벗어던지고 밖으로 도망쳐 나갔습니다. 그러자 자존심이 크게 상했으며 실망과 분노로 가득 찼고 더 이상 요셉에게서 원하는 바를 얻어낼 수 없겠다고 판단한 그녀는 복수심에 불타올라 집 사람들과 자기 남편에게까지 히브리 녀석 하나가 나타나 집안사람 모두를 우습게 여기고 심지어는 안주인인 자기를 희롱하려 했다고 떠들며 요셉을 모함한 것입니다. 자초지종을 모르는 보디발은 아내의 말만 듣고는 크게 노하여 요셉을 잡아 옥에 가두고 말았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뿌리치기 쉽지 않았을 여주인의 그 집요한 유혹을 요셉이 끝까지 물리칠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그 힘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의 믿음에 있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본문 8-9절에서 요셉이 한 말 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셉의 확고한 생각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를 그토록 신뢰하는 주인의 신뢰를 배신하는 것은 큰 악이라는 생각입니다. 둘째는, 그것은 인간적으로 큰 악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9) 말한 것입니다. 요셉은 주인의 아내와의 동침을 주인에 대한 인간적 배신행위로서 볼 뿐 아니라, 그것을 근본적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죄로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홀로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국 땅에 붙잡혀와 아는 이 없이 살고 있었던 몸이지만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면서도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의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늘 살아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여럿 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무고로 옥에 갇힌 요셉은 거기서 바로의 고위 측근관원이었던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두 관원장이 같은 날 밤 서로 다른 꿈을 꾸었습니다. 요셉이 훗날 바로의 궁에 불려 들어가게 되고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는 계기는 바로 이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줌으로써 마련되었던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이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하며 수심에 차 있을 때 요셉이 한 말이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나이까?”였습니다(40:1-8). 그 당시 애굽에서는 꿈해석학을 상당히 정교하게 발전시켜 놓았었습니다. 그런데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는 요셉의 말은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이겠습니까? 꿈은 인간적인 기술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꿈을 바로 해석하는 일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은사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모든 사건들은 오직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 사건들을 꿈으로 계시해 주신 이들만이 해석할 능력을 받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는 말 밑바닥에는 역사와 모든 사건들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모든 계시와 참 지식의 주인도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통찰과 확신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가 한 가지 기이한 꿈을 꾸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해석해주는 자가 없어 번민하고 있을 때 그 꿈을 해석하도록 바로의 궁으로 불려갔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말하자 요셉은 답하기를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답을 하시리이다”(41:16) 했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꿈의 바른 해석뿐 아니라 마음의 참된 평안을 주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었습니다.

 

애굽뿐 아니라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극심해지자 아버지 야곱의 명령에 따라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얻으러 애굽에 오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처음에는 자기가 형들이 팔아넘긴 아우 요셉임을 형들에게 알리지 않고 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그 사실을 밝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망연자실하며 아우의 보복을 두려워할지 모르는 형들을 안심시키며 요셉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45:5-8)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삶의 여정과 의미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안에서 찾는 요셉을 보는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자 요셉의 형들은 다시 한 번 두려움에 휩싸였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에는 아버지 때문에 자기들을 해치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마당에는 요셉이 옛 원한과 미움이 되살아나서 자기들에게 복수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자신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 달라고 거듭하여 비는 형들에게 울면서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이다”(50:19-20). 여기서도 우리는 자신의 삶과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요셉의 깊은 경외와 신뢰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항상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속에서 보고 그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 즉 언제 어디서든 누가 보든 말든 매사에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며 사는 믿음을 지닌 요셉이었다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 앞에서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한 그의 대답은 너무나 당연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어찌 하나님께 죄 지으랴하는 믿음과 다짐으로 항상 자신의 마음을 지켰기에 요셉은 그의 여주인의 줄기차고 거센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어찌 하나님께 죄 지으랴”,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항상 우리의 마음을 지키기 위한 신앙의 좌우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되려고 하면 온갖 더러운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부패한 정치판에서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내가 어찌 하나님께 죄 지으랴하는 믿음을 앞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사업을 하다보면 청탁과 뇌물과 탈세와 온갖 부정한 거래를 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 할지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어찌 하나님께 죄 지으랴하는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앞집 여자도 바람나고 뒷집 여자도 놀아나며 젊은이나 어른들이나 온통 불륜의 유혹에 빠져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사회라 할지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어찌 하나님께 죄 지으랴하는 이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이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요셉처럼 들어 쓰실 것입니다. 요셉은 스스로 높아지려는 야망을 가지고 애굽의 총리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한 것은 내가 어찌 하나님께 죄 지으랴하는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고 한 것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요셉을 그의 아버지와 온 형제 가족들을 다 살리시며 온 애굽을 구원하시는 위대한 도구로 쓰신 것입니다. 우리도 언제 어디서나 누가 보거나 안 보거나 매사에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힘씀으로써 하나님께 쓰임 받아 애굽의 7년 흉년같은 세월을 살고 있는 이 나라를 살리는 도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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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통에 이르는 길

 

(39:1-41:57)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1. 야곱은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통해 요셉을 낳았는데, 늘그막에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다른 아들들보다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이 요셉이 17세가 되었을 때 형들의 잘못을 일일이 아버지에게 일러바치는데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는 등 아버지의 편애로 인해 형들의 미움을 샀습니다. 게다가 요셉이 꿈을 꾸고 그 꿈을 형들에게 이야기해 주는데 더욱 격분하게 되었습니다. 형들을 격분하게 만든 요셉의 꿈은 이렇습니다.

(37:7)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요셉의 이러한 꿈 얘기를 듣고 형들이 “(37:8) 네가 우리의 왕이라도 될 성싶으냐? 정말로, 네가 우리를 다스릴 참이냐?” 면서 요셉을 더욱 더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 요셉은 또 다른 꿈을 꾸고, 그것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합니다. “들어 보셔요. 또 꿈을 꾸었어요. 이번에는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나에게 절을 했어요.” 해와 달은 부모님을, 열 한 개의 별은 형제들을 의미하는데 그 해와 달과 별들이 요셉에게 절한다는 것입니다. 이 꿈 얘기를 듣고 이번에는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꾸짖었습니다. “네가 꾼 그 꿈이 무엇이냐? 그래, 나하고 너의 어머니하고 너의 형들이 함께 너에게로 가서, 땅에 엎드려서, 너에게 절을 할 것이란 말이냐?” 이러한 일로 형들은 시기 끝에 결국 기회를 타서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집은 애굽 왕 바로의 친위대장인 보디발이었습니다. 비록 노예로 팔려갔지만 대단한 권력의 측근 가정에 가게 된 것입니다.

 

2. 39-40장은 요셉의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입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노예로 사들여 그를 눈여겨보았는데 능력과 재능이 탁월한 것 외에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을 보고 보디발은 처음에 어떤 신적(神的)인 축복과 가호가 요셉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그는 요셉이 믿는 하나님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 총무, 다시 말해 집 전체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장(執事長)으로 삼았습니다. 그때로부터 하나님께서 요셉을 위하여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해서 그곳에서 일할 때 그 야곱으로 인해 라반의 집이 축복을 받았던 것과 같았습니다.

(30:27)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

야곱으로 인해 라반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야곱이 비록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 집으로 피신한 몸이지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에서 약속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창세기28:13-15입니다.

(28:13-15)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야곱은 하나님께서 그의 조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는 축복을 계승받았기 때문에 라반이 그 야곱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요셉으로 인해 애굽의 친위대장 보디발 가정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 역시 요셉의 증조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어떤 말씀이 요셉과 직접 관련이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을 낳으리라는 약속을 받았지만 100세가 가까워오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말씀하십니다. “(15:1)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에 아브라함이 “(15:2) 주 하나님이시어,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며 자신의 충실한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시 이렇게 약속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15:4-5)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는 이 땅을 너에게 주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하나님이다.” 고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은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 땅을 나에게 주실 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암소와 암염소와 수양을 3년 된 것으로 각각 한 마리씩 나에게 가져오고 또 산비둘기 한 마리와 집비둘기 새끼 한 마리를 가져다 제물을 드리고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예배를 받으시고 하나님께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예언적 축복을 하십니다.

(15:13-14)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여기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사백 년 동안 섬기게 될 것이라는 예언적 축복의 말씀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을 이방, 애굽에 보내 사백 년 동안 지내게 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애굽에 보내기 위해 섭리하신 것이 바로 요셉에게 꿈을 꾸게 하시고 그 꿈을 이루어 야곱의 70명 가족들을 애굽 고센 땅으로 이주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훗날 요셉의 형들이 대흉년에 식량을 구하러 애굽에 갔다가 자신들이 노예로 팔아먹은 동생 요셉이 애굽 총리가 되어 자신들 앞에 서있는 것을 보고 동생 요셉 앞에 엎드려 절하며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요셉이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창세기45:4-10입니다.

(45:4-10)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고하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내게로 지체말고 내려오사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있어서 나와 가깝게 하소서.

그러므로 요셉을 애굽으로 데려가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기 위해 요셉에게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성취하게 하셔서 아브라함의 자손 야곱의 70명 가족들을 애굽으로 이주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과 섭리 가운데 있는 요셉이기 때문에 애굽의 친위대장 보디발은 그 가정이 범사에 형통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약속된 자손이 되신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아브라함과 더불어 약속된 축복을 받게 되는 약속의 자손들입니다. 갈라디아서3:6-9입니다.

(3:6-9)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범사에 형통하는 삶이 되도록 요셉처럼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이 함께 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 요셉의 형통에 이르는 길에는 형들의 시기, 질투와 그리고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가는 사건 등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형통에 이르기 위해 넘어야 할 큰 장애물 하나가 요셉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에게 팔린 지 약 10년 후, 요셉이 27세가 되던 때였습니다. 당시 요셉은 몸매가 좋고 미남이었습니다. 하루는 주인 어른의 아내가 눈짓을 하며 함께 잠자리에 들자며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거절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이 집안의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고 아무것도 간섭하는 일이 없으니 이 집에는 나만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주인은 나에게 아무것도 금하지 않았지만 당신만은 금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그의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감히 이런 악한 짓을 하여 하나님께 범죄할 수 있겠습니까?’ 단호한 요셉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보디발의 아내는 안주인이라는 특권을 악용해서 온갖 유혹과 협박으로 날마다 집요하게 치근거렸지만 요셉은 한사코 거절하며 그녀와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이 자기 업무를 수행하려고 그 집에 들어갔는데 그때 그 집 종들은 거기에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가 요셉의 옷을 붙들고 나와 함께 잠자리에 들자며 또 치근댑니다. 마치 순결한 성도의 영혼을 사냥하기 위해 우는 사자처럼 달려드는 사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붙잡힌 자기 옷을 그 여자의 손에 버려둔 채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가버렸습니다. 안주인에게도 복종할 의무가 있는 요셉의 처지에서 유혹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녀로부터 도망치는 것만이 최선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 여자는 요셉이 옷을 자기 손에 버려 둔 채 밖으로 달아나는 것을 보고 소리쳐 집안에 종들을 불러 말합니다. ‘이것 좀 보아라. 주인이 데리고 온 이 히브리 사람이 나를 희롱하였다. 그가 나를 겁탈하려고 내 방에 들어왔으나 내가 소리를 지르자 그의 옷을 내 곁에 벗어 든 채 달아나고 말았다.’ 성적 욕망으로 불타오르던 보디발 아내는 자신의 과감한 유혹이 실패로 끝나게 되자 여자로서 느꼈던 치욕적인 부끄러움이 불타는 증오심으로 돌변하여 요셉을 모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기가 붙잡았던 요셉의 겉옷을 마치 대단한 증거물을 확보한 것인 양 소리친 것입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아내는 교활하게도 자기 남편이 돌아오자 마치 요셉에게 강간 미수를 당한 것처럼 얘기를 꾸며 말합니다. 결국 보디발은 그 말을 듣고 대단히 화가 나서 요셉을 잡아 감옥에 처넣었는데 그 곳은 궁중 죄수들을 가두는 곳이었습니다. 원래 애굽 법에 따르면 종의 신분으로 상전의 처를 강간하고자 한 자는 즉결처형이었습니다. 그러나 보디발이 요셉을 감옥에 넣은 것은 평소 요셉의 성실한 품행과 자기 가정에 끼친 공로, 즉 요셉으로 인해 복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보디발은 품행이 나쁜 아내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즉결 처형되지 아니하고 투옥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요셉은 종의 신분에서 죄수의 신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를 한결같이 사랑하셔서, 간수장의 눈에 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간수장은 감옥 안에 있는 죄수를 모두 요셉에게 맡기고, 감옥의 모든 일을 맡기고,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신 것입니다.

(39:21-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죄수의 신분으로 투옥되었지만 그 사건으로 점점 요셉의 꿈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투옥된 사실 자체만으로 볼 때 요셉의 꿈이 거품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감옥에서 두 사람의 죄수를 만나게 섭리하십니다. 요셉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옥중 죄수들을 도맡아 책임지는 직책을 맡게 되었을 때 그곳에서 두 궁중 대신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왕의 모든 음료의 유해 여부를 확인하며 감독하는 감독관 대신, 이름하여 술 맡은 자와 왕의 모든 음식에 대해 감독하는 대신, 떡 굽는 자가 같이 투옥된 것이었습니다. 이 두 직책은 왕이 특별히 신임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바로 왕의 최측근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감옥에서 각각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이들을 살펴보는 중에 그 두 사람이 근심이 가득해보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오늘은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그들이 요셉에게 대답합니다. ‘우리가 꿈을 꾸었는데, 해몽할 사람이 없어서 그러네.’ 요셉이 해몽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나에게 말씀하여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자 술 맡은 자가 이렇게 꿈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꿈에 보니, 나의 앞에 포도나무가 있고, 그 나무에는 가지가 셋이 있는데, 거기에서 싹이 나더니, 곧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다. 바로의 잔이 나의 손에 들려 있기에, 내가 포도를 따다가, 바로의 잔에 그 즙을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올렸지.’ 이에 요셉이 그의 꿈을 이렇게 해몽합니다. “가지 셋은 사흘을 말합니다. 앞으로 사흘이 되면, 바로께서 당신을 불러내서, 직책을 되돌려 주실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전날 술잔을 받들어 올린 것처럼, 바로의 손에 술잔을 올리게 될 것입니다. 당신께서 잘 되시는 날에, 저를 기억하여 주시고, 저를 따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로에게 나의 사정을 말씀드려서, 나도 이 감옥에서 풀려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 사는 땅에서 강제로 끌려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내가 이런 구덩이 감옥에 들어올 만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떡 맡은 자가 그 해몽을 듣고 보니 좋아서, 요셉에게 자기 꿈을 말합니다. ‘나도 한 꿈을 꾸었는데, 나는 빵이 담긴 바구니 세 개를 머리에 이고 있었어. 제일 위에 있는 바구니에는, 바로에게 드릴 온갖 구운 빵이 있었는데, 새들이, 내가 이고 있는 바구니 안에서 그것들을 먹었어.’ 요셉이 그의 꿈을 해몽합니다. “바구니 셋은 사흘을 말합니다. 앞으로 사흘이 되면, 바로께서 당신을 불러내서, 목을 베고 나무에 매다실 터인데, 새들이 당신의 주검을 쪼아 먹을 것입니다.” 이 날로부터 사흘째 되는 날이 바로 왕의 생일인데, 왕은 신하들을 다 불러 모으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때 감옥에 있던 술 맡은 자떡 맡은 자가 신하들이 모인 자리에 불려 나갔는데 술 맡은 자는 그 직책이 회복되어, 잔에 술을 따라서 바로의 손에 올리게 되었고, ‘떡 맡은 자는 교수형에 처형되었습니다. 과연 요셉이 그들에게 해몽하여 준 대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술 맡은 자는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요셉의 부탁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40) 요셉은 자신이 감옥에서 나가기 위한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이 바로 그 술 맡는 자가 그 직책이 회복되어 복귀되어가는 것이었는데 정작 당사자는 형편이 바뀌자 요셉이라는 사람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4. 그러나 요셉은 술 맡은 자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지라도 하나님의 기억 속에는 뚜렷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49:14-16)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이 아브라함의 자손된 것과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바를 항상 기억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술 맡은 자가 복직되어 가고 만 이 년 후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온 지 13년이 되어 그의 나이 30세가 되는 때였습니다. 30세라는 나이는 거룩한 하나님 성전에 봉사할 수 있는 최저 연령입니다. 이스라엘 레위 지파 중 30세 이상이 되는 자라야만 성전에서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4:3) 곧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회막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역사에 참가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4:23)

일반 백성들의 군 입대 가능 나이 20세보다 10세나 높은 나이입니다. 이는 성전 봉사가 단순히 젊은 힘이나 패기에 의하지 않고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성숙함과 신중함이 요구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어린 나이에 충신이 되어 장군으로 쓰임받았지만, 그리고 일찍이 사울 왕을 대신할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전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실질적인 왕이 된 것은 30세가 되어서였습니다.

(삼하5:4) 다윗이 삼십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년을 다스렸으되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30세에 비로소 공생애(公生涯)를 시작하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레위 지파가 30세부터 성전 봉사할 수 있다는 규례에 따라 대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셨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5: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요셉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그가 30세가 될 때까지 하나님께서 여러 환경과 시험을 통해 연단하시고 훈련하신 것입니다. 친위대장 보디발 가정에서 그 가정의 집사장으로 가정 경제와 행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받은 유혹을 통해 종으로서 상전의 신뢰를 저버리지 아니하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성결함을 지키므로 아름다운 신앙인격을 단련받았습니다.

(39:8-9)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처에게 이르되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요셉이 보디발이나 세상의 안목만을 두려워했다면, 그는 오히려 은밀한 가운데 이 죄의 쾌락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은밀한 것까지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90:8;23:24;2:16) 단호하게 끈질긴 유혹과 시험을 물리쳤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지만 그곳에서 간수장 이상 가는 교도소 행정과 법 집행까지도 배우고 익히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요셉이 30세가 되었을 때, 애굽 왕 바로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바로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아브라함의 자손을 애굽으로 이주시켜 400년 동안 번성케 하기 위해’, 그 때가 되고 요셉이 나이 30세가 되자 그를 들어 쓰시고자 바로 왕에 꿈을 꾸게 하신 것입니다. 바로 왕이 두 번에 걸쳐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 첫 번째 꿈은 이렇습니다.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잘생기고, 살이 찐 암소 일곱 마리가 강에서 올라와서, 갈밭에서 풀을 뜯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뒤를 이어서, 흉측하고 야윈 다른 암소 일곱 마리가 강에서 올라와서, 먼저 올라온 소들과 함께 강가에 섰습니다. 그 흉측하고 야윈 암소들이, 잘생기고 살이 찐 암소들을 잡아먹는 것입니다.” 바로는 잠에서 깨어났다 이내 다시 잠들어, 또 꿈을 꾸었습니다. “이삭 일곱 개가 보입니다. 토실토실하고 잘 여문 이삭 일곱 개가 나오는데, 그것들은 모두 한 줄기에서 나와서 자란 것들입니다. 그 뒤를 이어서, 또 다른 이삭 일곱 개가 피어 나오는데, 열풍이 불어서, 야위고 마른 것들입니다. 그 야윈 이삭이, 토실토실하게 잘 여문 이삭 일곱 개를 삼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꿈을 꾸고 나서 마음이 뒤숭숭하여, 애굽의 마술사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들이고, 그가 꾼 꿈을 해몽토록 했지만 그 꿈을 해몽하여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에 술 맡은 자가 그제서야 생각이 났습니다. 자신이 2년 감옥에 있을 때 꿈을 꾸고 그 꿈을 해석한 히브리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해몽한대로 자신은 복직되고 떡 맡은 자는 처형되었었다는 사실을 바로 왕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바로가 곧장 요셉을 감옥에서 왕궁으로 불러냈습니다. 그리고 요셉에게 꿈 해몽을 요구합니다. 요셉이 바로 왕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왕께서 기뻐하실 대답은, 하나님이 해주실 것입니다.” 그런 후 바로 왕으로부터 꿈 얘기를 듣고 이렇게 해석합니다. “왕께서 두 번 꾸신 꿈의 내용은 다 같은 것입니다. 임금님께서 장차 하셔야 할 일을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 좋은 암소 일곱 마리는 일곱 해를 말하고, 잘 여문 이삭 일곱 개도 일곱 해를 말하는 것입니다. 두 꿈이 다 같은 내용입니다. 뒤따라 나온 야위고 흉측한 암소 일곱 마리나, 열풍에 말라 버린 쓸모 없는 이삭 일곱 개도, 역시 일곱 해를 말합니다. 이것들은 흉년 일곱 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제가 왕께 말씀드린 바와 같이, 왕께서 앞으로 하셔야 할 일을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입니다. 앞으로 올 일곱 해 동안에는, 온 애굽 땅에 큰 풍년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곧 이어서, 일곱 해 동안 흉년이 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애굽 땅에 언제 풍년이 있었더냐는 듯이, 지나간 일을 다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기근이 이 땅을 황폐하게 할 것입니다. 풍년이 든 다음에 오는 흉년은 너무나도 심하여서, 애굽 땅에서는, 아무도 그 전에 풍년이 든 일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왕께서 같은 꿈을 두 번이나 거듭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시기로 이미 결정하시고, 그 일을 꼭 그대로 하시겠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왕께서는, 명철하고 슬기로운 사람을 책임자로 세우셔서,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왕께서는 전국에 관리들을 임명하셔서, 풍년이 계속되는 일곱 해 동안에, 애굽 땅에서 거둔 것의 오분의 일을 해마다 받아들이도록 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앞으로 올 풍년에, 그 관리들은 온갖 먹을거리를 거두어들이고, 왕의 권한 아래, 각 성읍에 곡식을 갈무리하도록 하십시오. 이 먹을거리는, 애굽 땅에서 일곱 해 동안 이어갈 흉년에 대비해서, 그 때에 이 나라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갈무리해 두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면, 기근이 이 나라를 망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의 꿈을 기가 막히게 해석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완벽한 대비책까지 마련해준 것입니다. 이를 모두 듣고 바로 왕이 감탄해마지 아니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을, 이 사람 말고, 어디에서 또 찾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너에게 이 모든 것을 알리셨는데, 너처럼 명철하고 슬기로운 사람이 어디에 또 있겠느냐? 네가 나의 집을 다스리는 책임자가 되어라. 나의 모든 백성은 너의 명령을 따를 것이다. 내가 너보다 높다는 것은,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뿐이다. 내가 너를 온 이집트 땅의 총리로 세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바로 왕은 자신의 손가락에 끼고 있는 옥새 반지를 빼서 요셉의 손가락에 끼우고, 고운 모시 옷을 입히고, 금목걸이를 목에다 걸어 주어 애굽의 총리로 세웠습니다. 요셉은 17세 어린나이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노예생활과 감옥생활 13년 만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형통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노예로 팔려가는 고난의 길, 숱한 죄의 유혹 등은 요셉을 더 큰 그릇으로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투옥되기도 했지만 그 길은 애굽 왕 앞으로 더 가까이 보내려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요셉이 이처럼 형통에 이르게 된 데는, 그의 선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이 요셉을 통해 이루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그와 함께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에 대한 꿈을 간직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3:7)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3:9)고 했습니다.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서도 요셉과 같이 거룩한 믿음과 생활, 그리고 변함없는 믿음으로 마침내 형통에 이르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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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

창세기 39:1~39:6

본문에는 요셉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비참한 노예로 전락한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자 노예인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주인 보디발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요셉 때문에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는 요셉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왜 고난이 오는가?

 

요셉은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요셉을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에 사용하시기로 작정하셨으며, 그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 모든 것 때문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마침내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요셉이 바로의 시위대장인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고 구덩이에 던져졌다가 팔려갈 때 얼마나 두렵고 절망했겠습니까? 또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은 얼마나 막막하고 고통스러운 것이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믿음 좋고 의로운 요셉이 왜 이렇게 심한 고난을 당해야 했을까요?

요셉이 이런 일을 당하게 된 것은 요셉이 죄를 지었거나 실수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왜 그가 이런 고난을 당하게 되었을까요? 대답은 하나님께서 선하신 뜻을 따라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 요셉을 애굽에 파송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가 큰 민족으로 번성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요셉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애굽으로 보내졌는데,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만드시기 위해서 계획하신 일을 착착 진행시켜나가고 계셨습니다. 요셉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노예로 팔려가고 고난을 당하는 일 역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께서 왜 그에게 그런 일들을 당하게 하시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미리 이 모든 것은 네가 애굽의 총리가 되기 위한 과정이다.”라고 한 마디만 해주셨더라면 요셉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그런 설명을 해주시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졸지에 고난의 밑바닥에 던져졌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그를 애굽의 총리로 만드시는 과정이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가운데서도 흔들림 없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몰랐으나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이 모든 것을 이겨냈습니다. 의롭고 경건한 요셉, 하나님께서 꿈을 주시고 귀하게 사용하시기로 작정하신 요셉이 이렇게 고난을 당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가운데 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요셉을 연단하시고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믿음으로 사는 당신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있습니까? 그 고난은 하나님께서 선하신 섭리 가운데서 당신을 연단하시고 준비시키시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신하는 것이 관건이다.

 

요셉이 영문을 알지 못한 채 당한 고난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이렇게 알 수 없는 고난을 당할 때, 그것을 이기는 비결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되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소망을 가지게 되며, 끝까지 승리할 수 있게 됩니다. 요셉은 그가 왜 그런 고난을 당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치 않고 믿었습니다. 이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는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좋은 일만이 아니라, 때로는 너무나도 불행하고 힘든 일들이 닥쳐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이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런 일을 당하게 하시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치 않고 믿는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내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통하여 나를 선하게 인도하고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선하게 이끌어 가셨던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큰 용기와 위로와 소망을 줍니다. 요셉처럼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는 성도는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노예 요셉

요셉은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던 아들이었는데, 졸지에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요셉이 이 노예 생활을 순순히 받아들여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이렇게 노예 생활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노예가 될 수 없노라고 하면서 반항하거나 거부하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요셉도 낙심하고 두려워하며 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자기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잡았을 때 요셉의 마음은 안정되었고 놀라운 평안이 그의 마음에 채워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현실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요셉은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위로하시고 격려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그는 오히려 기뻐하며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소망이 솟아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꿈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비록 노예의 신분이었지만 비굴하거나 눈가림만 하지 않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에게 맡겨진 일을 누구보다 잘 해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요셉에게 지혜와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그 결과 요셉은 점점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요셉의 모습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2)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들은 일이 잘되고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이 최고인줄 압니다. 그러나 일이 잘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것 자체도 근본적인 문제는 될 수 없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일이 잘되고 있다 해도, 아무리 돈을 잘 벌고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결코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 당신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애굽에 노예로 팔려온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오늘 당신이 어떤 문제를 만나고 있다 하더라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형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것을 요셉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가 하나님을 떠나거나 잊은 적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집에서 어렸을 때부터 늘 하나님을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하나님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그 결과 요셉은 의롭고 정직한 사람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사모하며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당신도 늘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하나님을 기억하며 기도하십시오.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을 따로 내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첫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삶을 온전히 책임져주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을 보십시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14:21) 그러므로 하나님 백성은 무엇보다 먼저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품었다고 해서 세상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요셉이 그렇게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마도 더 천하고 비참한 처지로 떨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은 무엇보다 먼저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일들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산다면 세상이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복이 근원이 된 요셉

요셉은 자신이 노예 신세가 된 것을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비록 노예였으나 기쁨과 확신과 담대함과 평안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요셉은 자기가 맡은 일마다 훌륭하게 감당해냈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모습을 보고 그의 주인 보디발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3) 이방인이며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보디발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며 모든 일에 그를 형통케 하심을 알게 된 보디발은 그에게 자기 집의 모든 소유를 맡겼습니다.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4) 이렇게 요셉이 보디발의 집을 관리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5-6)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위하여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요셉 때문에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오늘 우리 모두가 이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 때문에 당신의 가족들이 복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 때문에 당신의 직장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이 속해 있는 곳과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내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요셉처럼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도록 하십시오. 때로는 믿음 지키는 것 때문에 고난과 불편과 손해를 당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 지키는 일에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어려움을 당하여도 하나님께서 그 선하신 섭리 가운데 당신을 인도하고 계심을 조금도 의심치 마십시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어려움 가운데서 당신의 믿음을 증명해보이기 바랍니다.

 

복 받는 비결

 

무엇보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묵상하며 기도하기를 쉬지 마십시오.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이 일을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이 당신을 능력 있고 지혜롭게 만들 것입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119:97-100) 성경은 복 받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28:1-2)

이렇게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보십시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28:3-14) 오늘 이 모든 축복이 당신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마음을 다하여 말씀을 사랑하며 묵상하십시오. 그래야 이 말씀을 지켜 순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하나님만 온전히 신뢰하며 최선을 다하십시오. 우리에게 닥쳐오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벗어난 것이 없습니다.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기를 쉬지 마십시오. 그리고 순종하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시며 형통하게 하실 것입니다. 당신 때문에 가족과 교회와 직장과 나라가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한 사람

(39:1~3,19~23)

여러분, 혹시 로자 파크스(Rosa Parks, 1913~2005)라는 분을 아십니까? 그는 미국 의회에서 현대 민권 운동의 어머니라고 칭송한 분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아주 평범한 흑인 여성에 불과합니다. 그녀는 1955121일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서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 기사의 지시에 불응했습니다. 그로 인해 경찰에 체포되었고 직장에서 쫓겨납니다. 이 사건은 382일 동안 버스 보이콧으로 이어졌고, 유명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참여하면서 흑인 인권신장을 위한 민권 운동의 시초가 됐습니다. 평범한 한 사람으로 인해 미국의 역사가 바뀐 겁니다. 오바마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것은 거슬러 올라가면 로자 파크스의 공로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상기해야 되는 중요한 사실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한 사람의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입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현대인 한 사람이 평생 동안 만나는 사람은 평균 1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영향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의 변화에 큰 몫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과연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먼저 나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을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그리스도인에게 기대되는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자신도 행복하고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었던 사람이 등장합니다. 누구죠? 요셉! 그 자신도 복된 인생이었고,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축복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가정이 변화되고, 민족이 변화되고, 나라가 변화되고, 더 나아가 만민이 변화됐습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이런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 요셉 같은 한 사람이 되리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1] 한 사람의 중요성 : 축복의 통로 vs. 저주의 통로

먼저 성경적으로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축복의 통로가 되기도 하고 저주의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Social Being)로 늘 사람들과 만나고 뒤섞이며 살아갑니다. 누구나 그 과정 속에서 서로에게 축복이 되기도 하고 혹은 저주가 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복덩이가 되든지 아니면 애물단지가 되든지 합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죠. 아담은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그로 인해 인류가 번성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전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함으로 어떻게 됐습니까? 그로 인해 모든 사람이 원죄를 안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죄의 삯인 영원한 사망에 처하게 됩니다. 이런 사실은 싫든 좋든 아담과의 혈연관계로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런 비극의 고리를 끊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5:19 “한 사람(=아담)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예수님)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믿는 사람은 의인으로 인정되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아담 한 사람과 예수님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성경에 보면 많은 사례들이 등장합니다.

여호수아 7장 보면, 아간의 이야기가 나오죠.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에 나서 첫 성 여리고에서 큰 승리를 거둡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경고한 말씀이 뭐죠? 전리품을 개인적으로 취하지 말라는 겁니다. 광야 생활 하던 그들에게 시험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간이 몰래 시날 산 외투(명품 모피코트)와 금덩어리 은덩어리를 숨겨둡니다. 그 후 아이 성을 정복할 때 이스라엘이 어이없이 패합니다. 여리고 성에 비하면 정말 작은 성이었는데 말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아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겁니다. 아간 한 사람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가 저주를 받았던 것이죠. 7:1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요나서 1장을 보면, 요나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사명을 주십니다. 그러나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가던 중 어떤 일이 생깁니까? 배 밑층에 들어가 잠을 자고 있는데 난리가 났습니다. 큰 폭풍이 일어나며 배가 난파 직전에 이르게 됩니다. 배에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요나 때문에 죽을 지경이 된 겁니다.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결국 요나가 자수합니다. 1: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요나의 말대로 바다에 던졌을 때 신기하게도 광풍이 가라앉고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멀쩡히 살아가다 주변 사람들이 내 인생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집안에도 보면, 이런 애물단지가 하나씩 있습니다. 그 한 사람 때문이 집안 전체가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집안뿐 아니라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이런 일들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줄을 잘 서야 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축복을 전달하는 사람 옆에 붙어야지, 엉뚱하게 하나님에게 저주받고 아간 같은 사람이나 요나 같은 사람 옆에 붙으면 함께 망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 자신부터 남에게 축복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축복의 통로입니다. 사도행전 27장을 보면, 바울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축복을 받는 사건이 나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체포되어 로마로 호송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보기에 항해가 어려울 것 같아서 호송관인 백부장에게 쉬었다 가자고 건의합니다. 하지만 선장과 선주가 고집을 부리고 항해를 강행하다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납니다. 배가 깨지고 난파되어 죽을 지경이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선장과 군인들, 승객들 앞에서 담대히 증거합니다. 27:23~24 “23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바울도 목석이 아닌데, 풍랑 가운데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밤새 철야기도를 했겠죠.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습니다. 배는 파선되겠지만 승객들의 생명은 안전하다! 그렇게 해 주시는 이유가 바울이 로마 황제 앞에 가서 재판을 받으며 복음을 증거해야 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조금도 걱정하지 말고 안심하라는 말씀입니다. 바울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구합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숫자가 몇 명이었습니까? 276명이나 됐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따를 모델이 바로 이겁니다. 나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그런 사명을 주셨습니다. 12:2~3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큰 축복을 주실 텐데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자기 혼자 복을 받고 그치는 게 아닙니다. 복이 될지라! 축복의 통로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 모델이 바로 본문에 나오는 요셉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가운데 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2] 요셉의 생애 : 하나님이 함께 한 인생

 

하나님의 임재 :

요셉의 생애 기록이 창세기 37~50장에 걸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 못지않게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인물입니다. 성경은 그의 생애를 한 마디로 뭐라고 표현합니까?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다! 그가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결국 큰 축복을 받은 승리의 인생이 된 요인은 하나님이 그의 인생 가운데 항상 임재해 주셨던 겁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늘 함께 해 주시면 다 된 것이죠.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로 사랑을 가득 받았는데, 형들의 미움을 받아 노예상인에게 넘겨집니다. 하루 아침에 애굽으로 가서 노예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바로 왕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갑니다. 그곳에서의 삶을 2절은 뭐라고 묘사합니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이 표현은 계속 나옵니다. 요셉의 생애를 묘사하는 중요한 표현입니다.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그를 보디발이 인정하고 나중에 가정 총무를 시킵니다. 그러데 안주인이 그에게 추파를 던졌고, 그것을 거절한 죄 아닌 죄 때문에 미움을 받고 모함으로 감옥에 갇힙니다. 그곳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십니다.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비록 감옥에서 고생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았습니다.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이처럼 요셉의 생애 가운데 이런 저런 일들이 벌어졌지만, 항상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심으로 결국은 모든 게 잘 됩니다. 우리 인생이 그런 겁니다. 한 가지 한 가지에 일희일비할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잘되는 방향인가? 잘못되는 방향인가? 이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면,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면 잘 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7장 스데반의 설교 가운데 요셉의 생애를 간단히 정리한 내용이 나오는데, 뭐라고 했나요? 7:9~10 “9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서(God was with him) 10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여기서 여러 조상은 야곱의 아들들, 즉 요셉의 형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나중에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시조가 되고, 이스라엘의 조상이 됩니다. 요셉이 이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팔려가고 온갖 시련을 다 겪었지만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까? “ ...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 ”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고 도와주셨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파란만장한 생애였지만 결국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애굽의 총리가 되고 승리하는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의 인생 승리는 그의 개인적인 장점이나 노력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고 도와주신 결과임을 성경은 누누이 강조합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위대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위대하신 겁니다. 인간이 제아무리 잘 나고, 아등바등하면서 살아도 절대주권자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고 도와주지 않으면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 :

그런데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함께 해 주시려고 해도 인간 편에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사는 신실한 삶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요셉에 위대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위대한 게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이 하나님 앞에서 늘 신실하게 살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픽션인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습니다. 신나게 달리다 보니까 과속을 했습니다. 교통순경이 불러 세웁니다. 그리고 좋게 타이릅니다. “아니, 아실만한 분들이 왜 과속을 합니까? 조심해서 가세요! 큰 사고 납니다!” 이렇게 봐 주면 겸손하게 인사하고 가면 되는데, 한 사람이 우쭐대며 말합니다. “, 우리는 괜찮아요! 예수님이 함께 타고 계시거든요!” 그러자 교통순경이 정색을 하며 말합니다. “, 그래요? 그러면 할 수 없이 스티커를 끊어야겠네요. 정원 초과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신다는 게 자신은 전혀 변화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살지도 않고, 자신에게 필요할 때만 이익을 챙기는 수단이 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요셉은 항상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당연한 거죠.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그가 어떻게 대응합니까? 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하나님께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라틴어로 코람 데오’(Coram Deo)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신전의식(神前意識)으로 사는 모습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살았기 때문에 어떤 삶을 살았나요? 성결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성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꼭 같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은 굳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때때로 시련이 닥쳐와도 인내하며 기도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립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까 책임져 주시겠지 하고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시겠거니 이렇게 믿는 겁니다.

 

[3] 요셉 한 사람의 영향력 : 가정, 민족, 나라, 만민을 살린 위인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았던 요셉! 그는 축복의 사람이 됩니다. 무엇보다 본인이 행복합니다. 고난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의 위로가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놀라운 승리와 축복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 축복이 이웃에게 퍼져나갑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그 주변이 복을 받습니다. 그가 있는 곳마다 축복의 현장이 됩니다. 요셉은 복덩이요 축복의 통로입니다. 보디발의 집이 어떻게 되나요?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그가 감옥에 갔지만 그곳에서도 동일하게 축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20~22.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그가 감옥에 가니까, 감옥이 있는 사람들이 요셉 때문에 다 복을 받아요. 그가 감옥에서 만난 술 맡은 관원장이 소개해서 바로 왕을 만나죠. 남에게 축복의 통로 역할을 하다 보면 남을 통해서 축복을 되받는 경우도 생깁니다. 주고받는 겁니다. 바로 왕을 만나서 총리가 된 후에는 어떻게 됐죠? 그가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잘 치리하니까 애굽 사람들이 풍족한 삶을 살았어요. 더 나아가 주변 각국 백성들이 요셉 때문에 흉년 중에도 죽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41:44~45 “44 ...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45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바로 왕이 총리로 임명한 후 유력한 집안과 결혼하게 하고, 그의 이름을 새로 지어줬습니다. 귀화 시키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에게 큰 사명을 부여하고 기대감을 표시한 겁니다. 그의 이름 사브낫바네아세상의 구원자혹은 생명의 부양자라는 뜻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된 후 애굽의 토지제도와 조세 제도를 정비합니다. 국유화하고 세금을 거둡니다. 얼른 생각하면 바로 왕만 좋게 한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려다 보면 백성들을 위한 것입니다. 고대에 소작을 하면 절반은 바칩니다. 그런 시대에 20%만 세금으로 바치게 한 것은 탁월한 위민정책입니다. 47:24~25 “24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서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25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한 가지가 있죠. 히브리 민족이 애굽으로 이민가게 된 겁니다. 그것은 애굽에서 큰 민족으로 번성케 한 후 다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기근 중에 애굽에 양식 사러 갔다가 총리가 되어 있는 요셉을 만납니다. 그리고 요셉의 초청을 받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애굽 이민을 떠나기 전 불안한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뭐라고 응답하십니까? 46:3~4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이렇게 해서 야곱과 그의 일족이 애굽으로 이민 갑니다. 만일 가나안 땅에 계속 있었다면 큰 민족이 되기 힘들었을 겁니다. 애굽에서 400년 있었기 때문에 70명이었던 이스라엘이 수백만 명의 큰 민족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함께 하는 한 사람 요셉 때문에 본인도 복을 받고 이웃도 복을 받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지난 주간 인도 캘커타에 다녀왔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그곳에는 우리교회 파송선교사 로수길 변상이 선교사 부부가 사역하고 있습니다. 로수길(Sukrit Roy) 목사는 인도인으로 30여 년 전 한국에서 유학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한국 여성 변상이 선교사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들이 인도에 돌아간 지 25주년이 됐습니다. 제가 십수 년 전 그들의 신혼 살림하던 곳을 들러본 적이 있습니다. 화장실도 없는 움막 같은 데서 반은 살림집 반은 교회당으로 사용하면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은 미약했지만 25년 동안 신학교를 세우고 사역자들을 양성해왔는데, 금년에 21회 졸업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리고 130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 외에 학교와 병원 등을 건축했고, 현재는 선교센터를 건축 중입니다. 앞으로 방송국, 고아원, 양로원, 의과대학 설립 등 많은 계획을 갖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다시 보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한 사람을 통해 이렇게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됩니다. 승리합니다. 나도 살고, 가정도 살립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면 직장도 사회도 나라도 변화됩니다. 세계도 변화됩니다. 하나님이 위대하시기에 충분히 가능합니다. 특별히 자녀들을 요셉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으로 키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분도 자녀들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한 사람이 됨으로 행복한 인생, 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존귀한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되자

39:1-6

영국의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인 <브린트 갓 탤런트>가 있습니다. 여기에 출연한 37살의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휴대폰을 판매하는 직장에 근무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불룩 나온 배와 비뚤어진 치아, 그리고 별로 훈남 스타일이 아닌 외모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노래를 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왕따를 당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고, 중병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친구들이 놀려도 노래를 하는 시간은 행복했습니다. 비록 음악을 공부하지는 못했지만 그 마음속에는 노래를 부르고 싶은 열망이 가득했습니다. 드디어 숨은 노래 실력자를 선발하는 영국의 노래 경연대회에 나옵니다. 그의 외모를 본 심사위원들은 별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무슨 노래를 부를 것인가 묻자 오페라를 부르겠다고 합니다. 드디어 그의 노래가 울려 퍼지자 관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합니다. 심사위원들도 믿기 어렵다는 흥분된 반응을 보입니다. 그가 바로 폴 포츠입니다. 그는 첫 번째 오디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난 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비로소 폴 포츠임을 알았다.” 내가 누구인가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고, 전 세계를 돌면서 희망을 전하는 전도사가 됐습니다.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야구의 재미는 바로 9회 말 역전에 있습니다.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9회말 투 스트라이크 쓰리볼 상황에서 극적인 홈런으로 승부가 역전될 때 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합니다. 우리 인생도 역전의 드라마가 펼쳐질 때 엄청난 감동이 밀려옵니다. 오늘 우리는 인생의 놀라운 역전을 이룬 한 주인공을 만납니다.

그는 불행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절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시련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본받아야 할 중요한 신앙의 모델이요, 인생 모델이요, 인생역전의 성공 모델입니다.

요셉이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을 함께 배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셉의 삶은 한 마디로 고난의 연속입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편애 속에 형들로부터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됩니다. 이복 형들로부터 왕따를 당합니다. 멀리서 양을 치고 있는 형들에게 안부를 전하라는 부모님의 심부름을 갔다가 어려움에 빠집니다. 꿈쟁이 요셉이 온다고 비아냥거리던 형들은 동생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를 죽여서 구덩이에 던지고 악한 짐승에게 물려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자고 모의를 합니다. 맏형인 르우벤의 제안으로 목숨만은 살려줍니다. 결국은 물이 없는 구덩이에 던져집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도 밑바닥 구덩이에 던져질 때가 있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수고의 땀도 흘리며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원치 않는 순간에 구덩이에 헌신짝처럼 내동이 쳐집니다.

왜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켜주신다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그런 아픔과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내가 붙잡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내려놓으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힘으로 내 지식으로 내 능력으로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도 할 수 있다는 교만함을 보이기도 합니다.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했던 어리석은 모습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고난은 자신의 연약함을 보게 합니다. 고난은 자신의 교만을 깨뜨리는 망치와 같습니다. 고난은 내가 붙잡고 있는 세상의 줄을 놓게 만듭니다. 고난은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우리를 떠나게 하려는 하나님의 아이디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30년간 애굽에서 살고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학정에 시달리게 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애굽의 삶이 진절머리가 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편안히 먹고 잘 살았다면 결코 그곳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혹독하게 일을 시키고, 핍박을 하고, 심지어 태어나는 사내아이들까지 죽게 만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약속의 땅,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놀라운 계획이 숨겨져 있습니다.

밑바닥의 고난은 우리를 잘못된 자리에서 떠나게 합니다. 우리가 붙잡고 있는 세상의 썩은 줄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움켜쥐고 있는 손을 활짝 펴게 만듭니다.

전에 아프리카에서 원숭이 잡는 법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원주민들이 원숭이를 잡기위해 해질 무렵에 조롱박에 구멍을 뚫어서 나무에 매달아 놓습니다. 그 속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바나나, 땅콩 같은 것을 넣어둡니다. 밤이 되면 원숭이가 나타나 손을 펴서 조롱박 속에 집어넣습니다. 그 안에 있는 음식을 덥썩 집고 나면 손이 빠지지 않습니다. 원숭이는 밤새도록 손을 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도 손이 빠지지 않습니다. 동이 트고 기진맥진해 있는 원숭이를 원주민이 나타나 잡습니다. 손에 붙잡고 있는 것을 놓기만 하면 도망칠 수 있을 텐데 욕심 때문에 끝까지 쥐고 있다가 붙잡히게 됩니다. 이것이 어쩌면 우리 인생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허탄한 것을 붙잡고 끝까지 몸부림치다가 결국은 모든 것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대나무가 자신의 속을 비워내야 세상을 울리는 피리가 되듯이 우리 안에 쌓여 있는 욕심과 정욕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를 붙잡고 있는 나쁜 습관과 버릇, 잘못된 생각과 거짓, 불의와 교만함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시기와 질투, 방탕함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큰 손은 빈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욕심으로 가득찬 내 손을 펼 때 하나님께서 더 풍성하게 채워주십니다.

밑바닥의 고난은 우리를 정결하게 만듭니다. 세상의 줄을 놓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붙잡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고난에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단련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더 놀라운 역사를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밑바닥의 고난은 새로운 희망의 출발점입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 그 옆에 도사 같은 사람이 말했습니다. “조용히 물 밑을 보라. 뭐가 보이는가?” “바닥이 보입니다.” “바닥까지 내려가서 힘껏 치고 올라오너라.”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사람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누군가가 구해주던지 아니면 정신을 차리고 바닥으로 내려가 바닥을 박차고 다시 올라오는 것입니다.

바닥은 절망의 자리, 포기의 자리, 실패의 자리가 아닙니다. 바닥은 다시 새로운 미래를 향해 솟구쳐 오를 수 있는 기회요 축복의 자리입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자리입니다.

로마서 828절 말씀처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멘!

 

때로는 우리에게 주어진 밑바닥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바닥 속에 주님의 놀라운 뜻이 있음을 헤아리는 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파송의 찬양으로 부르는 찬송가 620여기에 모인 우리’ 2절 가사를 보면 이렇습니다.

주님이 뜻하신 일 헤아리기 어렵더라도 언제나 주 뜻 안에 내가 있음을 아노라

우리는 내가 가는 인생의 여정을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원치 않는 일이 벌어져 고난의 밑바닥으로 떨어질지라도 나의 모든 삶의 주님의 뜻 안에 있음을 믿으십시오. 함께 고백해 볼까요? “나의 모든 삶은 주님의 뜻 안에 있다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이 여러분의 인생의 바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 생각대로,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원망 불평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분명 다릅니다. 내가 수고하고, 애를 쓰고, 최선을 다했지만 여전히 바닥에 머물고 있다면 그 자리가 바로 은혜의 자리요, 축복의 자리임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인생을 살기를 원하시는지요. 내가 처한 현실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문제를 대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지금 밑바닥에 던져져 있다면 오히려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함께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붙잡으십시오. 그리고 내일을 향한 꿈을 꾸십시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최선의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고난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둘째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39장에 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표현이 네 번이나 반복됩니다. 2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3절에도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21절에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23절에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요셉이 형통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위대한 꿈을 꾸어서가 아닙니다. 그가 남보다 탁월한 지혜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의 인생은 언제나 잡초와 같은 인생입니다. 인신매매를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별 볼일 없는 변방의 인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요셉과 동행하십니다. 하나님이 요셉의 삶에 간섭하시고, 그의 꿈까지도 지켜주십니다. 요셉은 잡초같은 인생위에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입니다. 우리들이 어디에 있느냐? 환경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환경을 보면 요셉은 원망불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손가락질을 하며 해도 너무 하십니다라고 소리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비록 하나님 앞에 믿음을 지킴으로 감옥에 갔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자신에 꿈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루실 것을 믿음으로 기대합니다. 요셉은 다시 바닥으로 추락했지만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 바닥은 바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기회임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꿈을 새롭게 그려보는 기회로 삼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변하지 않습니다. 비록 믿음을 지키다가 감옥에 갔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또 다른 축복의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드라마를 펼쳐가는 무대가 됩니다. 요셉은 감옥에 갔지만 특별한 감옥에 갑니다. 그곳은 폭력배나 소인배들이 가는 곳이 아닙니다. 왕과 관련된 일로 잘못을 저질러 잡혀온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당시에 애굽의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감옥입니다. 요셉은 여기서 특별한 정치와 외교와 경제에 관한 개인교습을 받습니다. 그는 돈 한푼들이지 않고 당시 최고의 실력자들로부터 개인레슨을 받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외면하거나 버리시지 않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와 동행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숨결을 깨닫고 사는 자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낙심하거나 염려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누가 고발하리요? 하나님이 의롭다 하신 자를 누가 정죄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끊을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와 항상 동행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숨결을 깨닫고 주님과 동행하는 자는 어떤 밑바닥의 고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항상 바라보고, 주님과 동행하는 자는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역전인생의 주인공으로 우뚝 설 수 있습니다.

 

셋째로, 사명을 붙잡고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셉은 가장 힘든 밑바닥의 고난을 통과했지만 결코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바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붙잡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가지고 사는 자는 어디서나 최선을 다합니다. 적당히 일하지 않습니다. 사명자의 특징은 성실함과 책임감입니다.

달라스 신학교의 총장이었던 찰스 스윈돌 목사님은 요셉의 특징을 한마디로 “Integrity and Forgiveness” 라고 말합니다. "성실함과 용서가 요셉의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디서나 최선을 다합니다.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 보디발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합니다. 얼마나 원망과 분노가 많았을까요? 그런데도 요셉은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보디발이 보기에도 하나님이 함께하는 자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는 형통하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요셉이 손을 대는 곳마다 복이 임합니다. 보디발의 집과 밭까지도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요셉처럼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잘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비록 과정은 힘들고 어렵지만 결국은 해피엔딩, 하나님의 사람은 복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성공 이전의 요셉은 삶은 성실함입니다.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된 이후의 삶은 용서의 삶입니다. 저는 창세기를 읽으면서 가장 멋진 부분이 바로 여기라고 생각합니다. 흉년이 들자 야곱이 아들들을 보내서 곡식을 사러 보냅니다. 형들을 본 요셉은 금방 알아챕니다. 막내 베냐민을 보기위해 형들을 애먹입니다. 두 번째 형들이 왔을 때 요셉은 자신의 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신분을 밝힙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45:5)

두려워 떨고 있는 형들을 향해서 요셉은 말합니다. 나를 애굽에 인신매매를 했다고 근심하지 마십시오. 한탄하며 후회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형들보다 먼저 보내신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고백입니까?

요셉은 과거에 매인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우리는 종종 과거의 나쁜 기억이나 상처에 매여서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불행한 인생으로 빠져듭니다. 그러나 사명을 깨달고 사는 자는 과거에 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밑바닥의 고난과 상처를 생명을 살리는 축복의 통로로 삼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용서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는 과정임을 깨닫습니다. 진정한 용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전 남아공의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는 억울하게 27년간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서 나오는 순간 그 얼굴은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했습니다. 원망과 분노가 없었습니다. 결국 진정한 용서의 사람이 되었던 그는 대통령이 되었고, 흑인과 백인을 하나로 묶어서 남아공을 새롭게 만드는 위대한 지도자가 됐습니다.

몇 년 전에 미국 샌디애고에서 훈련 중이던 전투기가 고장으로 주택을 덮쳤습니다. 안타깝게도 재미동포인 윤동윤 씨의 집이었습니다. 그의 아내와 두 딸, 그리고 서울에서 잠시 와 있던 장모님이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억울한 죽음입니까? 이게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윤동윤씨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전투기 조종사는 사고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분노와 증오의 말을 쏟아내리라 기대했는데 뜻 밖에도 탈출한 조종사를 용서하고 기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더 이상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말라고 오히려 위로했습니다. 그의 말에 모든 미국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감명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후원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돈을 자신을 위해 쓰지않고 아내가 생전에 도왔던 어린이 재단과 기독교 단체에 후원금을 보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미국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엄청난 슬픔을 당한 피해자였지만 가해자를 용서하고 기도함으로 미국 사회에 하나님의 샬롬을 선포하는 믿음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진정한 용서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를 이룹니다. 하나님의 평화를 선포하는 통로가 됩니다. 용서의 삶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축복의 삶입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으로부터 갚을 수 없는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주님 앞에서 용서받지 못할 죄를 범하는 결과가 됩니다.

하나님은 밑바닥의 고통의 삶 속에서도 역전의 인생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누가 요셉처럼 역전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고난 속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깨닫고 사는 자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과거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사명을 붙잡고 사는 자입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믿음으로 도전하는 자는 아름답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모험의 발걸음을 떼는 자는 위대합니다. 앞으로도 어떤 밑바닥의 고난이 안개 같은 미래 속에서 우리를 기다릴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가야합니다. 사명을 포기하는 인생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셉처럼 후회 없는 인생의 후반전을 향하여, 내 인생 역전을 꿈꾸며 도전하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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