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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과와 설교

20160415 / 사도행전 16:35-40 / 바울과 실라가 풀려남

작성자천성교회|작성시간16.04.13|조회수301 목록 댓글 0

바울과 실라가 풀려남

사도행전 16:35-40

첨부파일 새벽예배20160415.hwp

35 날이 새매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36 간수가 그 말대로 바울에게 말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거늘

37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그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38 부하들이 이 말을 상관들에게 보고하니 그들이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39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16:35-40 / 다음날 아침 치안관들은 경비병을 보내어 `두 사람을 석방하라'고 통고하였다. 36) 간수가 바울에게 두 사람이 다 자유의 몸이 되었음을 알렸다. 37 그러자 바울이 말하였다. `, 안 되오. 이대로는 안 됩니다. 그들은 로마 시민인 우리를 재판도 하기 전에 군중 앞에서 채찍으로 때리고 감옥에까지 처넣었소. 그런데 이제 와서 슬그머니 우리를 내보내려 하다니, 이것으로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하시오? 그들이 직접 와서 우리를 내보내라고 하시오.' 38) 경비병들의 보고를 들은 치안관들은 바울과 실라가 로마 시민이라는 말에 그만 가슴이 내려앉았다. 자기들의 목숨이 달아나지나 않을까 하여 겁이 덜컥 났던 것이다. 39) 그래서 그들은 곧 감옥으로 달려가 두 사람에게 머리를 숙이며 이 도시를 떠나 달라고 빌었다. 40) 바울과 실라는 루디아의 집으로 돌아가 신도들에게 한번 더 설교를 한 후에 그곳을 떠났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고난에 빠질 때도 있지만 그 고난에는 하나님이 설계하신 놀라운 반전 드라마가 숨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놓으라(35-36) 바울과 실라가 체포되고 투옥된 바로 다음날 상관들은 사람을 보내서 바울과 실라를 석방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 바로 다음날 이런 명령을 내린 걸까요? 무엇보다 큰 이유는 바울과 실라에게 뚜렷한 죄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귀신들린 소녀로부터 귀신을 쫓아낸 것은 누가 봐도 잘했다고 칭찬해줄 일이었습니다. 잠시 군중들의 소동으로 판단력을 잃고 바울과 실라를 옥에 가뒀지만, 정작 가두어야 할 사람은 귀신들린 여종을 이용해서 돈을 갈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풀어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37-39) 바울은 로마 사람인 우리를” “우리라는 표현은 바울 뿐 아니라, 실라도 로마 시민권자임을 말해줍니다(37). 이들은 바울과 실라가 유대인인줄로 알고 있었는데, 로마 시민이라는 말에 깜짝 놀랍니다(20-21). 로마의 시민을 정식 재판도 하지 않고, 때리고 옥에 가둔것은 불법을 저지른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울과 실라가 무죄함을 인정받는 공식적인 절차를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자 관리들이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38). 로마 시민을 정당한 재판 없이 때리고 옥에 가둔 것은 로마제국을 얕잡아 본 행위로 여겨서 처벌 받아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위기감을 느낀 관리들은 바울과 실라를 찾아가서 옥에서 데리고 나오며 떠나기를 청합니다. “권하여”, “청하여라는 말이 두 번 나올 정도로 이 사건을 여기서 마무리 짓기 위해서 바울에게 간청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39).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위로하고(40)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나와서 자신들이 매 맞은 상처와 고통을 돌보지도 않고 루디아의 집으로 향합니다. 자신들이 투옥된 것으로 마음 고생하며 힘들어 했을 형제들을 만나고 위로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 부분은 루디아의 집을 중심으로 빌립보에서 가정 교회가 이루어 졌음을 말해 줍니다. 사도행전 1장은 마가 가정의 다락방에서 시작되고, 마지막 28장은 바울이 머무른 자기 셋집으로 이야기를 끝맺고 있습니다. 이는 초대 교회의 시작이 대부분 가정교회 형태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적 용 :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반전 드라마가 있음을 믿고 계십니까? 또한,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교회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까?

 

스코틀랜드의 제이니라는 유명한 학자는 학생들 앞에서 매우 행복해 보였습니다. 학생들은 교수가 날마다 천국을 구경하고 오는 줄 착각할 정도로 기쁨 충만했습니다. 그는 날마다 자신이 행복한 이유를 마치 성 위에 깃발이 걸려 있으면 지금 성안에 임금님이 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듯이, 성도들에게 있어서 기쁨이 있다는 것은 곧 그 사람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설 교 >

빌립보 성의 기쁨(사도행전 16:30-34)

빌립보는 그리스 북동쪽에 위치한 도시로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빌립이 그곳을 정복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은 성입니다. 빌립보를 방문했을 때 받은 첫인상은 아름답고 평화로우며 고요하다는 느낌을 주는 작은 도시였습니다. 당시 이 지역은 농업과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으로, 이곳에서 약 40리 떨어진 네압볼리라는 항구도시를 통해 아시아에 갈 수 있었습니다. 빌립보는 환경적으로 좋은 요소들이 많이 있었지만, 복음이 전파됨으로 말미암아 과거에 갖지 못했던 하나님의 은혜와 특별한 기쁨을 경험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빌립보는 유럽에 처음으로 복음이 들어감으로 최초의 교회가 생긴 곳이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능력이 나타남으로 진정한 영적 기쁨을 누린 성이 된 것입니다. 본문 사도행전 16장에 나타난 빌립보성에서 일어난 일들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행하신 빌립보성의 기쁨이 우리 모두의 기쁨이 되기를 바라며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루디아의 마음을 여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 지역(터키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하려 했는데, 어느 날 밤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서 와서 우리를 도우라”(16:9)는 청함을 받고 바울 일행의 전도 방향을 유럽지역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아시아 드로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면 네압볼리에 이르게 되고, 네압볼리에서 약 40리 떨어진 곳이 빌립보입니다. 바울 일행은 네압볼리를 지나 빌립보에 머물게 되었고 그곳을 유럽 전도를 위한 복음의 전초기지로 삼았습니다.

유대인 법에는 회당을 구성하려면 남성 세대주 10명이 있어야한다는 규정이 있었는데, 정족수가 되지 않을 경우 일반적으로 회당 대신 야외나 강가 또는 바다 근처에 기도처를 마련하고 랍비들의 강론을 듣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였습니다. 빌립보는 유대인의 숫자가 적었기 때문에 바울이 안식일에 처음으로 빌립보에 들어갔을 때에는 회당 대신 강가 기도처를 찾았습니다. 유대 율법에는 여자들에게 율법을 가르쳐주느니 차라리 율법을 태워버리라는 속담이 있듯이 랍비들은 여성을 경시하였고 율법 가르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개의치 아니하고 안식일에 강가에 모여 있는 여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중 루디아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루디아라는 이름은 고대 아시아 지역의 루디아 왕국 영토였던 지방에서 살던 사람이란 뜻으로 루디아 출신의 여인이라는 의미입니다. 루디아는 자주색 염료로 유명한 두아디라 시에서 옷감 장사를 하다가 사업 확장을 위해 빌립보로 온 성공적인 여성 사업가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고향 두아디라 시에서 유대교의 가르침을 받아 이미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사도 바울의 말을 듣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녀의 마음을 열어 주셔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으며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담대하게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었고, 가족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으로 사도 바울로부터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아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습니다. 루디아는 사도 바울 일행을 자신의 집에 강권적으로 모셔 머물게 하며 복음 전도 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와 섬김의 본을 보였습니다. 루디아의 회심을 통해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는 역사가 일어남으로 유럽에서 최초의 그리스도인이 탄생하였고 최초의 교회가 설립되었으며, 사도 바울이 선교 여행을 다닐 때마다 항상 힘이 되어 준 최초의 후원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상인이고 미망인으로 사회적 대우도 받지 못하는 비참한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녀로 하여금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에서 최초의 여성 동역자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한 사람의 진실한 변화는 자신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를 구원받게 하는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담대히 복음을 증거할 때 그 뒤에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고, 한 사람의 회심을 통하여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것입니다. 루디아의 회심을 통하여 빌립보성에 하나님의 큰 사랑과 기쁨을 주신 것처럼, 우리의 심령이 진정으로 회심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세워 하나님 나라를 위해 크게 쓰시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귀신들려 점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을 내쫓아 주셨습니다.

빌립보에는 귀신의 영이 들려서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여종이 있었습니다. 여종은 점을 쳐서 사람의 앞날을 알아 맞히며 돈을 벌었지만 대부분의 수익금을 모두 주인들에게 상납하고 있었고, 주인들은 여종의 병을 악용하여 자신들의 물질적 이익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지금도 용한 점장이가 있다면 그들은 모두 귀신들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여종은 바울 일행을 보았을 때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사람”(16:17)이라고 매일 쫓아다니면서 외쳤습니다.

바울은 복음이나 하나님의 이름이 사탄의 종에 의해 퍼져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한순간 진리를 말한다 할지라도 다음 순간에는 거짓말을 할 수 있으며,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진리의 차이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여러 날 일행을 쫓아다니며 괴롭게 한 여종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주었고 그녀는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은 하나님이 복음 전도자들에게 주신 능력 가운데 하나로 이 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믿음과 기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715-18절을 보면 예수님이 귀신 들린 아이를 고쳐 주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예수의 이름이 선포될 때 모든 귀신들이 쫓겨나고 멸해지는 능력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는 보혜사 성령이 이 일을 수행하고 있는데, 은사를 받은 사람은 성령이 주신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계시지 않는 곳에는 귀신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으며,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믿음의 기도를 드릴 때 사탄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바울과 실라가 갇혀 있는 옥문을 여셨습니다.

귀신들린 여종을 통해서 돈을 벌던 주인들은 수입원이 끊어지자 바울 일행을 향해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16:21)고 하며 로마 정부에서 인정하지 않은 불법 종교를 포교하고 백성들을 미혹하는 불순한 사람이라고 고발했습니다. 일행 4명 중 헬라 사람이었던 디모데와 누가를 제외한 바울과 실라는 붙잡혀서 발가벗겨져 심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그때를 연상하며 쓴 고린도후서 1123-25을 보면 복음을 위하여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했습니다.

이것으로 바울의 빌립보 전도는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또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두 사람은 옥에 갇혔을 때 불만하거나 불평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원수들을 심판해달라고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옥에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하며 찬양했습니다. 이들이 찬송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옥토를 뒤흔드시고 모든 옥문을 여시며 죄수들의 사슬을 풀어주셨습니다. 바울과 실라 뿐만 아니라 옥에 갇혀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유를 찾을 수 있었지만 바울의 영적 지도력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인해서 한 사람도 도망하지 않고 모두 그 자리에 남아있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난이 주어지거나 어려움을 당할 때에 세상이나 사람을 원망하지 마시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난 중의 기도와 찬송은 하나님의 이적을 부르는 소리이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는 말씀처럼 교회나 가정 그리고 개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이끌어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겠습니다.

■ 「아라비안나이트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것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세 왕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왕자들은 동방의 시장을 샅샅이 돌아다니면서 희귀한 물건들을 구해왔습니다. 첫 번째 왕자는 긴 통을 구해왔는데, 이 통을 들여다보면 세계 어디든지 다 볼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왕자는 담요를 구해왔는데, 담요를 타면 어디든지 순식간에 날아갈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왕자는 사과를 구해왔는데, 사과를 먹으면 아무리 큰 중병일지라도 깨끗이 낫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첫째 왕자가 긴 통을 들여다보니 어떤 나라에 사랑스런 공주가 중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세 왕자가 담요를 타고 쏜살같이 날아가 보니 정말로 공주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셋째 왕자가 사과를 공주에게 먹여주었더니 공주는 금방 힘을 얻고 회생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에서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이라는 긴 통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인생의 질고로 고통하고 아파하며 영혼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그대로 놔두시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실은 사랑의 담요를 세상 곳곳에 보내셨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미군들은 유럽에서 전쟁을 하다가 복음이 들어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까지 교회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은 세계 구석구석 사람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사랑의 담요인 교회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이라는 사과를 먹은 사람들은 어떤 질병이나 고통, 영육 간에 주어지는 고난과 아픔 속에서 해방되고 회복되고 치유되는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복음의 능력입니다.

 

4. 하나님은 간수와 그 가정에 구원을 허락하셨습니다.

옥을 지키던 간수는 죄수들이 모두 도망한 것으로 생각하고 차라리 자결을 결심했습니다. 죄수가 도망하면 그들의 형량만큼의 댓가를 간수가 치루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간수에게 모든 사람이 그대로 있음을 알려 자결을 만류하고 진정으로 그를 하나님께 인도하고자 했습니다. 이때 간수는 신적인 경외심과 경이로움을 느끼며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는 영적인 구원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말하며 간수와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안에 속죄의 기쁨과 하나님을 믿음으로 오는 영생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세례를 받은 후, 바울과 실라를 자신의 집으로 초청하여 그들의 상처를 씻겨주고 음식을 대접하며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와 온 집안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진정한 영적 기쁨과 주님의 사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복음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요 환희이며 축복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간수와 그 가정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세상 어떤 것을 가지는 것보다 궁극적인 기쁨과 환희를 얻게 된 것이며 큰 영적인 기쁨을 누렸다는 것입니다. 수가성 여인이 다른 어떤 것으로도 궁극적인 기쁨을 얻지 못했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심으로 근원적인 만족과 해갈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지나가다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옆을 지나가던 사람이 돈 뭉치를 던져 주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유명 대학의 박사학위증을 던져 주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지나가다가 장관임명장을 주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무 것도 소용없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이 지나가다 줄을 던져 그를 물속에서 끄집어냈습니다.

그것이 곧 구원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얻게 되는 것은 생명입니다. 우리는 힘든 세상을 허우적거리며 살면서 어떤 사람은 돈에, 어떤 사람은 학식과 지식에, 어떤 사람은 명예와 신분에 목매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영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구원을 통해서입니다. 구원을 받으면 주님의 영원한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살아 활동함으로 끊임없는 힘과 사랑과 은혜를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할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누리며 세상에서 필요한 것까지도 얻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반면 이것이 뒤바뀌어져서 물속에 빠져 죽으면서도 궁극적인 것을 해결하지 못한 채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소멸해 가는 세상 것이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고 정신없이 살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잃어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단테(Dante)가 쓴 신곡(神曲)을 보면 천국과 지옥에 대한 여러 가지 현상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옥문에 들어서면 이곳에 들어가는 사람은 희망을 버리라고 쓰여 있습니다. 지옥은 아무 희망이 없는 절망이요, 끝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인생에서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이며 우선으로 추구해야 할 최고 가치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으실 뿐만 아니라 주님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빌립보성에 기쁨으로 임했던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모든 분들의 삶과 가정에 임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복음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변화가 생기며, 귀신을 내쫓을 수 있고, 옥문이 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통한인생의 기쁨을 누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묶어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풀어주시고 멸해주시어 예수님 안에서 자유로운 몸과 영혼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성령이 주시는 힘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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