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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과와 설교

20190820 / 고후 8:1-9 / 헌금, 사랑의 표시

작성자천성교회|작성시간19.08.20|조회수153 목록 댓글 0

헌금, 사랑의 표시

첨부파일 20190820.hwp


고후 8:1-9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6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8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8:1-9 / [헌금의 원칙] 이제 나는 하나님께서 마게도냐에 있는 여러 교회에 어떻게 은총을 베푸셨는지 여러분에게 알리려고 합니다. 2) 그들은 많은 어려움과 역경을 당하고 극도의 빈곤을 겪으면서도 기쁨에 넘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쓰라고 돈을 내놓았습니다. 3) 그것도 자기네 힘이 미치는 한도내에서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자진해서 내놓았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4)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믿음의 식구들을 돕는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돈을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간청하였습니다. 5) 무엇보다도 훌륭한 일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그들이 협력을 해준 사실입니다. 그들은 먼저 그들 자신을 주께 바치고 우리에게도 헌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켜 무엇을 지시하든지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6) 그들의 이러한 열성을 보고 우리는 디도에게 여러분을 찾아가라고 권하였습니다. 처음 여러분에게 헌금을 권한 디도가 다시 여러분을 방문하여 이 일을 완성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7) 여러분은 여러 방면에 걸쳐 지도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돈독한 신앙이 있고, 훌륭한 설교자도 많이 있습니다. 많은 지식과 뜨거운 열정과 우리를 향한 열렬한 사랑도 있습니다. 이제 나는 여러분이 즐거운 마음으로 구제하는 일에 앞장 서기를 바랍니다. 8) 그렇다고 여러분에게 명령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헌금을 해야 한다고 강요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열심으로 구제하고 있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리고자 할 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헌금을 해서 남을 도울 수 있다면 여러분의 사랑이 단순히 말에 그치지 않는 참된 것임을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9)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사랑과 은총이 풍성하신 분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 부요하신 주께서 여러분을 도우려고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이 가난하게 되심으로써 여러분이 부요하게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의 가난 문제는 자체 힘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바울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바울은 이전에도 예루살렘의 형편을 알고 도왔습니다. 이번에도 이방인 마게도냐 교회에게 협조를 의뢰하여 구제금을 준비합니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 헌금한 마게도냐 교회의 헌신(1-5) 바울은 형제들이라고 부르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마게도냐 교인들은 큰 환난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쁨이 넘치고,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풍성한 연보를 했다는 것입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은 결코 구원에 해로운 것이 아니었고 도리어 유익한 것이며,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다고 했습니다(2). 어느 누구의 강요에 의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능력 이상으로 자원하여 한 것입니다(4).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에게 마음을 엽니다. 또한 마게도냐 신자들의 신앙적인 경제관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헌신과 청지기적인 사고에 기초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제 마게도냐 교회들을 모범으로 삼아 고린도 교회가 오래 전에 시작한 연보의 계획을 마침내 성취하도록 권면했습니다. 성도가 남을 위하여 연보하면 그 연보를 받는 사람에게만 유익한 것이 아니라, 연보한 자신에게도 유익하므로 연보를 가리켜 은혜라고 함이 합당합니다.

 

그리스도의 모본(6-9) 바울은 디도를 고린도 교회에 보내서 이미 시작한 헌금을 마저 끝내도록 권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여러 면에서 뛰어 납니다.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풍성했습니다(7). 그러므로 바울은 이 일을 내가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모본이 되고 있는 이들을 소개하여 너희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가를 알아보려 한다고 했습니다(8). 그리고 바울은 가장 큰 모범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고 하셨습니다(9). 이는 그리스도께서는 부요하나, 우리를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으며 그의 가난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입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형제이며 복음의 빚을 진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도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조건 사랑과 은혜를 베푸신 것처럼 그 은혜를 입은 우리들이 이에 감사하여 타인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지극히 마땅합니다.

 

적용: 받은 은혜를 감사할 때 당신에게도 기쁨이 있다고 했는데, 오늘날 당신은 받은 은혜를 어떻게 갚으면서 살고 있나요?

 

교회에서 봉사를 할 때 은혜로 하지 않으면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도록 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이 해야 합니다.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에 걸렸을 때 엘리사가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했을 때 나아만이 할 일은 순종하여 몸을 씻는 일이었고, 병을 낫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몫이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하실 일과 자신이 할 일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할 일을 하나님께 맡기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 설 교 >

8: 풍성한 헌금

8-9장은 헌금에 대한 교훈이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해소되었을 때, 사도 바울은 그들이 작정했던 헌금을 실행할 것을 권하였다.

 

[1-2]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마게도냐 교회들은 빌립보 교회나 데살로니가 교회 등을 가리킨다. 사도 바울은 본절에서와 4, 6, 7절에서 은혜라는 말을 헌금의 의미로 계속 사용하면서 헌금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증거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헌금하는 은혜를 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금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헌금할 수 없을 것이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환난의 많은 시련과 극한 가난 속에서 넘치는 기쁨으로 풍성한 헌금을 하였다. 넘치는 기쁨은 믿음 충만, 은혜 충만, 성령 충만한 데서 나온다. 기쁨은 성령의 열매들 중 하나이다. 또 풍성한 헌금은 반드시 평안과 부요함 가운데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환난과 극한 가난 속에 있을지라도 믿음과 성령의 충만과 기쁨을 가진 성도는 누구든지 풍성한 헌금을 할 수 있을 것이다.

 

[3-4]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마게도냐 교회들은 헌금을 하되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하였다. 힘대로 헌금하는 것도 귀한 일인데, 힘에 지나도록 했으니 참으로 귀한 일이다. 그것은 자원하는 마음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며 억지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 헌금의 용도는 성도를 섬기는 일을 위해서이었다. 성도를 섬기는 일은 가난하고 어려운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는 것, 즉 구제하는 일이다. 또 마게도냐 교인들은 이런 구제 헌금에 참여하겠다고 사도 바울에게 간절히 구하였다. 그들은 헌금을 짐스럽게 생각하여 회피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헌금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소원하였던 것이다.

 

[5-6]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우리가 그렇게 바라서가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이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그가]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케 하라 하였노라.

마게도냐 교인들의 헌금은 바울의 요청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라는 말은 우리가 그렇게 바라서가 아니라는 뜻이다. 마게도냐 교인들은 먼저 자신을 주님께 드렸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도 바울의 전도 사역에 협력하고자 하였다. 그리스도인의 선행은 그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에서 비롯된다. 전도와 구제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필요한 물질을 바치는 헌금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다.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들의 행위를 통하여 고린도 교회를 권면하고 있다. 고린도 교회는 디도를 통해 헌금을 시작했었다. 바울은 이제 디도에게 그가 시작한 헌금을 마치게 하라고 권면한다. 그들이 헌금하기로 결심하고 소원한 것을 실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헌금하기로 작정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실행하여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께 약속하고 실행치 않는 것은 죄가 된다. 작정한 결심대로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7-8]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로라.

고린도 교회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간절함과 바울 일행을 사랑함 등의 모든 일에 풍성하였다. 바울은 그들이 이 은혜 곧 헌금하는 일에 있어서도 풍성하기를 권한다. 헌금은 하나님의 주시는 선한 열매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헌금하는 일에도 풍성한 자가 되어야 한다. 풍성한 헌금은 믿음의 풍성한 열매이다. 바울은 풍성한 헌금을 명령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마게도냐 교인들의 간절함을 들어 권면하는 것이며 이 일을 통하여 고린도 교인들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형제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한다(요일 3:18). 우리의 형제 사랑의 진실성은 구제와 선행을 통해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9]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영광스런 아들이시며 부요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출생하셨고 죄인들 가운데서 자라셨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수치와 고통과 저주의 죽음을 죽으셨다. 그가 자신을 낮추셔서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하신 것은 우리의 대속(代贖)을 위함이셨고 우리에게 완전한 의()와 영원한 생명과 부활과 천국의 영광을 주시기 위함이셨다. 그는 우리를 죄와 사망과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여 의와 영생과 천국의 영광으로 인도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살며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풍성한 구제 헌금을 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0-12]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1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고린도 교인들은 1년 전에 행하기를 시작하고 원하기도 하였던 그 작정 헌금을 실행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헌금을 하되 있는 대로 하고 없는 것을 무리하게 만들어 할 것은 없다. 빚을 내서 십일조를 하거나 다른 헌금들을 할 필요는 없다. 할 마음만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있는 대로 받으실 것이며,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실 것이다.

 

[13-15]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기록한 것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헌금은 어떤 사람들을 어렵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평안케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들의 유여한 것으로 다른 사람들의 부족을 보충하는 것뿐이다. 얼마 후에는 반대로 지금 유여한 자가 어려운 자가 되고 지금 어려운 자가 유여한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서로의 부족을 보충함으로써 성도들의 생활을 평균케 만드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서로 도우며 세상을 살게 하셨다.

 

[16-19]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저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또 저와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서[복음 안에서]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이뿐 아니라 저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입어 우리의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복음 사역에 있어서 함께 일하는 사역자들이 같은 간절함을 가진다는 것은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지 모른다. 그것이야말로 충성된 마음이기 때문이다. 바울에게는 그런 동일한 마음을 가진 디도가 있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복음 사역에 있어서 같은 간절한 마음을 가진 일꾼들이 필요하다. 바울은 디도 외에 또 한 형제를 보내었는데, 그는 여러 교회의 택함을 입어 바울 일행이 맡은 헌금의 일로 그들과 동행하는 자이었다. 바울은 그를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라고 소개했다. 한 교회에서 칭찬 받는 자가 되는 것도 귀한데,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이니 얼마나 귀한 일인가! 칭찬 듣는다는 말은 비교적 흠과 점이 없는 인격이라는 말이니 이런 자가 하나님의 일에 적합하다. 직분자는 교회에서 칭찬 듣는 자이어야 한다.

 

[20-21]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교회가 모은 거액의 헌금을 가지고 목적지에 전달하려 함에 있어서 매우 조심하였다. 그것은 아무도 그들을 비난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양심적으로 행하려 했을 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흠 없이, 정직하게 행하려 했다. 이것은 헌금을 취급하는 모든 일꾼들에게 요구되는 정신이다. 헌금을 취급하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깨끗하게 행할 뿐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그러해야 한다. 헌금은 깨끗하고 정확하게 처리됨으로써 아무에게도 비난할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

 

[22-24] 또 저희와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가 여러 가지 일에 그 간절한 것을 여러 번 시험하였거니와 이제 저가 너희를 크게 믿으므로 더욱 간절하니라.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partner)[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를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저희에게 보이라.

세 번째 사람이 있었는데, 바울은 그의 간절함과 부지런함을 여러 번 시험하였고 확인했다. 교회의 일꾼들은 이런 시험에 통과된 자이어야 좋다. 우리의 열심은 일시적이어서는 안 된다. 참된 믿음과 충성은 여러 시험과 환난을 통과한 후에 증거된다. 디도는 바울의 마음을 이해하며 고린도 교회를 위해 파송되어 필요한 일들을 처리할 동료요 동역자이었고, 그 외의 형제들은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었고 그리스도의 영광이었다. 교회의 충성된 일꾼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결과이며 그들의 진실과 충성과 사랑은 주 예수의 영광을 반영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그 사역자들을 사랑으로 영접하기를 바란다. 성도들은 서로 사랑해야 하고 특히 주께서 세우신 교회의 일꾼들을 존경하고 사랑으로 영접해야 한다. 그것은 곧 주님을 존경하고 사랑으로 영접하는 것이다.

 

 

본장은 헌금에 대하여 교훈한다. 첫째로,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으면 결코 헌금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로, 헌금의 용도는 성도를 섬기는 일을 위해서, 즉 물질적 어려움이 있는 교인들을 구제를 위해서이다. 거기에는 전도자들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면, 헌금의 용도는 전도와 구제를 위해서이다.

셋째로, 헌금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간절히 소원할 만한 일이다.

넷째로, 헌금은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할 때 가능하다. 우리가 하나님께 거룩하게 드리는 우리의 몸 속에는 우리의 돈과 재물도 포함된다.

다섯째로, 하나님 앞에서 작정한 헌금은 실행되어야 한다.

여섯째로, 헌금은 풍성하게 해야 한다. 구약성경은 우리에게 소득의 십분의 일을 헌금하라고 명하지만 신약성경은 그 이상을 교훈한다.

일곱째로, 헌금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한다.

여덟째로, 헌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은혜에 근거한다. 부요하신 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고 그로 인해 우리는 큰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즐거이 헌금할 수 있다.

아홉째로, 헌금은 할 마음만 있으면 내게 있는 정도대로 받으신다.

열째로, 헌금은 교회 안의 성도들을 평균케 하는 것이다.

열한째로, 헌금은 깨끗하고 정확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열두째로, 헌금은 교회에서 칭찬 듣는 자들에 의해 관리되어야 한다.

 

주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의 성육신의 은혜를 기억하고 풍성한 헌금을 할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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