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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과와 설교

20191017 / 왕상 14:1-9 / 아히야 선지자를 찾아나선 자

작성자천성교회|작성시간19.10.17|조회수458 목록 댓글 0

아히야 선지자를 찾아나선 자

왕상 14:1-9

첨부파일 20191017.hwp


1 그 때에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든지라

2 여로보암이 자기 아내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일어나 변장하여 사람들이 그대가 여로보암의 아내임을 알지 못하게 하고 실로로 가라 거기 선지자 아히야가 있나니 그는 이전에 내가 이 백성의 왕이 될 것을 내게 말한 사람이니라

3 그대의 손에 떡 열 개와 과자와 꿀 한 병을 가지고 그에게로 가라 그가 그대에게 이 아이가 어떻게 될지를 알게 하리라

4 여로보암의 아내가 그대로 하여 일어나 실로로 가서 아히야의 집에 이르니 아히야는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더라

5 여호와께서 아히야에게 이르시되 여로보암의 아내가 자기 아들이 병 들었으므로 네게 물으러 오나니 너는 이러이러하게 대답하라 그가 들어올 때에 다른 사람인 체함이니라

6 그가 문으로 들어올 때에 아히야가 그 발소리를 듣고 말하되 여로보암의 아내여 들어오라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체하느냐 내가 명령을 받아 흉한 일을 네게 전하리니

7 가서 여로보암에게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너를 백성 중에서 들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게 하고

8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내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따르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

9 네 이전 사람들보다도 더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 만들어 나를 노엽게 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

왕상 14:1-9 / [병든 여로보암의 아들] 그 즈음에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어 눕게 되었다. 2) 그러자 여로보암이 아내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실로의 성소에 가서 예언자 아히야를 만나 보시오. 그는 일찍이 내가 이 백성의 왕이 될 것이라고 예고해 준 사람이오. 당신은 보통 농부의 아내처럼 변장하여 아무도 당신이 왕비인 줄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고 가시오. 3) 그리고 농부의 아내처럼 떡 열 덩이와 과자 몇 개와 꿀 한 병을 선물로 가지고 가서 우리의 병든 아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물어 보시오. 그 예언자가 당신에게 대답해 줄 것이오.' 4) 이리하여 왕의 아내는 보통 농부의 아내처럼 변장을 하고 실로에 있는 아히야의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예언자는 나이가 많아서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어두워져 있었다. 5) [아히야의 예언과 왕자의 죽음]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아히야에게 여로보암의 아내가 변장하고 찾아올 것과 그의 병든 아들에 관해 물을 때 답할 것까지 미리 일러주셨다. 6) 아히야는 보지는 못하였으나 귀는 밝았다. 왕의 아내가 문에 들어서자 아히야가 이미 그 발소리를 알아듣고 불호령을 하였다. `부인은 어서 들어오시오. 당신은 어째서 변장을 하고 왔소? 당신에게 흉한 소식을 전하려고 내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소. 7)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가서 전하시오. `내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너를 높여 왕으로 삼았다. 8) 내가 다윗의 자손에게서 이스라엘을 빼앗아 네게 맡겨 주었다. 그러나 너는 내게 나의 종 다윗처럼 충성을 바치지 않았다. 그는 변함없이 내게 충성하였다. 그는 내가 명령한 대로 살았고, 내가 기뻐할 일만 하였다. 9) 그러나 너는 솔로몬과 사울보다도 더 악한 행동을 하였다. 너는 나를 버리고 우상을 만들어 섬겼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면서 나를 모욕하였다.

 

여로보암의 아들이 병이 들었습니다. 이에 여로보암은 아내를 변장시키어 선지자 아히야에게 보냅니다.

 

 

여로보암과 선지자 아히야(1-3) 솔로몬 시대 때에 도망자였던 여로보암(왕상 11:40)이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왕상 11:29-39; 12:20). 그는 하나님의 은혜(왕상 11:37-38)를 저버리고 금송아지를 만들고(32; 왕상 12:28)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기까지 하였습니다(왕상 12:31). 이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절기와 비슷하게 절기를 만들고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여로보암의 집에 징계를 내리십니다(왕상 13:33-34). 그 징계의 시작이 아들 아비야의 병듦이었습니다. 이에 여로보암은 아내를 변장하여 선지자 아히야에게 보냅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장면입니다. 여로보암은 제단을 만들고 수많은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았지만 자기가 세운 수많은 제사장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가짜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여튼 여로보암은 자신이 세운 성소의 제사장이 아닌 자신이 왕이 될 것을 예언한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에게 자신의 아내를 평범한 여인으로 변장하여 가난한 농가의 여인들이 선지자에게 드리는 작은 선물을 보냅니다. 선지자를 속이기 위한 여로보암의 철저한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운 선지자 아히야(4-9) 여로보암의 아내는 선지자 아히야를 속이기 위하여 철저히 준비하고 선지자에게로 갑니다. 선지자는 나이가 많아 육체의 눈은 어두웠지만, 하나님께서 미리 여러보암의 계획을 알려주셨습니다. 여러보암의 아내가 들어오자 선지자 아히야는 어찌 변장하고 나를 찾아왔느냐지적하고 내가 받은 흉한 명령을 전하리라 했습니다. 여로보암은 다윗의 길을 따라야만 했는데, 황금 송아지를 만든 출애굽기 32장의 길을 따랐습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히 여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여로보암에게 네 이전 사람들보다도 더 악을 행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모든 왕들에게 신앙적 모범이 되는 반면에 여로보암은 우상 숭배의 대표적인 인물이 됩니다(왕상 15:34; 16:26, 30).

 

적용: 당신이 어제 한 일 가운에 하나님이 기뻐하셨던 일이 무엇입니까? 당신이 오늘 계획한 일 가운데 하나님이 싫어하실 일이 있지 않은지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슬프고 마귀는 웃고 있다이런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주님! 저는 주님만을 사랑하며 주님만 순종하며 살고 싶어요.’ 때로는 이런 고백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잘난 맛에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잘못을 인정할 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랑은 알지만 용서할 줄 모릅니다. 저도 용서를 몰랐습니다. 용서하기도 싫었습니다. 아니 용서를 하지 않고도 복음을 전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회개와 용서의 삶을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나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하는 삶을 살 때에 죄를 알게 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설 교 >

절박한 문제 앞에선 여로보암

열왕기상 14:1-20

중국 당나라의 제2대 황제였던 태종은 어느 날, 측근들을 모아 놓고, ‘창업’(나라를 세우는 일)수성’(나라를 지키는 일) 중에 어느 것이 어려운지 물었습니다. 그 때, 위징이라는 신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일단 천하를 얻고 나면 기분이 해이해져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나라를 망치므로 수성이 어렵습니다여기에서 수성창업보다 어렵다는 말이 유래되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날 우리들에게도 많은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신앙인들에게 고난의 때보다 행복의 때를 지키는 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고난의 때는 자신의 신앙을 하나님 앞에 세우고자 발버둥을 치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영적으로 민감하고 겸손해 있으며 늘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충만합니다. 그러나 성공의 때에는 마음이 해이해지고 기도의 절박성도 사라지고 예배의 은혜도 많이 사라집니다. 모든 것이 풍족하기 때문에 영성보다는 육성의 삶을 더 추구합니다. 그래서 잠언서 30:8~9절을 보면 지혜자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고난과 실패와 넘어짐은 때로는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단초가 됩니다. 그러므로 절박한 문제를 만났을 대 불평하고 원망하기 보다는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 나가나는 영적 눈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를 부르고 계시며 절박한 문제를 통해서 나와 만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절박한 문제 앞에선 여로보암입니다. 우리는 13장에서 유다에 온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의 제단 곁에 서서 분향하는 여로보암의 우상숭배의 죄에 대해서 무섭게 책망하고 앞으로 임할 심판에 대해서 예언했습니다. 하나님은 여로보암이 하나님께 드리는 벧엘의 분향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떠나 자기 방식대로 예배하고 자기 원하는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여로보암에게 벧엘의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 선지자를 잡으라고 명령하던 손이 말라 다시는 거두지 못하는 심판의 징조를 경험하게 했습니다. 그는 유다에서 온 선지자의 경고를 생생하게 듣고 하나님이 얼마나 자신의 우상숭배의 죄를 향해 분노하고 있는지를 잘 알았습니다.

무엇보다 유다에서 온 선지자가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벧엘에 있던 늙은 거짓 선지자에게 속아서 떡과 물을 얻어먹다가 길에 사자를 만나 죽임 당하는 사건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에서 온 선지자의 말씀이 참이라는 사실과 그가 선포한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도 확고하게 징표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벧엘의 거짓 선지자는 이 모든 정황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참된 예언임을 보고서 죽을 때까지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항하여 외쳐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열상13:32)이라고 유다에서 온 참선지자의 선포한 내용을 이제는 자신이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3장의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33절에 보면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오늘 14장의 말씀은 이러한 여로보암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서 여로보암과 그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비참하게 멸절 되리라는 예언과 함께 여로보암의 죽음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든지라여기서 그 때에란 유다에서 올라온 선지자가 그의 죄악을 책망하고 표적을 들어 회개를 촉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 금송아지를 섬기도록 했을 때를 말합니다. 이 때 하나님은 도무지 완악하여 회개하지 않는 여로보암의 아들이 중병에 걸리는 절박한 문제 앞에 서게 했습니다. 신명기 28:22절에 보면 질병은 불순종에 대한 징벌들 중의 하나로 봅니다.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하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여로보암의 죄로 인해서 아들이 당하는 고난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여로보암이 하나님을 떠나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의 질병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올 기회를 주시기고자 아들의 중병이라는 절박한 문제를 주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절박한 인생의 문제를 만나면 대부분 그것을 새로운 기회의 문으로 보지 않습니다. 절박한 문제를 불행의 통로로 생각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새로운 영적 시각을 가지고 인생의 고난의 문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1~2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의 파도가 밀려왔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통치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면서 죽을 정도로 심한 중노동을 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살해하라는 명령까지 내렸습니다. 이때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고난의 환경, 내 힘으로 해결 할 수 없는 절박한 문제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다루심임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나아와서 부르짖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적 개입입니다.

우리가 삶의 문제를 만날 때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편에서 해석하는 영적 눈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죄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죄로 인해 심판받아 죽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절박한 인생의 문제는 하나님 앞으로 나와서 하나님과 관계성을 회복하자는 하나님의 은혜의 음성인 것입니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고 아무리 징조를 주어도 깨닫지 못하니까 가장 실제적인 삶의 문제를 만지시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신 것입니다.

C.S 루이스가 말했던 것처럼 고난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확성기와 같은 것입니다. 절박한 문제가 왔을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절박한 문제를 직면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나약함과 한계성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해결해 달라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절박한 문제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의 문인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여로보암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마지막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이 때 여로보암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2~3절을 보겠습니다. “여로보암이 자기 아내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일어나 변장하여 사람들이 그대가 여로보암의 아내임을 알지 못하게 하고 실로로 가라 거기 선지자 아히야가 있나니 그는 이전에 내가 이 백성의 왕이 될 것을 내게 말한 사람이니라 / 그대의 손에 떡 열 개와 과자와 꿀 한 병을 가지고 그에게로 가라 그가 그대에게 이 아이가 어떻게 될지를 알게 하리라

자신의 지혜롭고 총명한 후계자로서 모든 백성의 지지를 받았던(14:13) ‘아비야가 중병에 걸리자 여로보암은 일국의 왕으로서 모든 의학적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낳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백약이 무효일정도로 아들의 병색은 차도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아들의 질병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북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아히야 선지자를 기억해 내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아히야 선지자를 생각하거나 찾이 않았습니다. 여로보암은 왕이 되고 난 후부터 곧바로 자신을 왕이 되게 하신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9절을 보겠습니다. “네 이전 사람들보다도 더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 만들어 나를 노엽게 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 여로보암은 자신의 왕권강화를 위해서 걸림돌이 되는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단 한 번도 하나님의 뜻을 묻거나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자 자신에게 왕이 되리라고 예언했던 아히야 선지자를 찾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계획과 뜻을 따라 나라를 마음대로 좌지우지 했습니다.

그러나 절박한 인생의 문제를 만나자 그의 마음 속에 작은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아히야 선지자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에게 왕이 되리라고 예언했던 아히야 선지자를 찾아가면 무슨 희망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된 것입니다. 아마 아들의 질병이 아니었다면 여로보암은 결코 아히야를 생각해 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사랑하는 아들의 질병은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는 여로보암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기회였던 셈입니다. 오랫동안 아들의 질병이 고쳐지지 않음도 계속해서 그 병은 하나님께 나와야만 고칠 수 있는 병이라는 하나님의 개입하는 은총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마지막까지도 여로보암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아들의 질병을 통해서 다윗처럼 두 손들고 나아오기를 기대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울컥거리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상한 갈대도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에스겔18:32)고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악인들마져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심판에서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히야의 질병사건으로 여로보암에게 두 손을 벌리고 내게 오라는 이 손짓에 대해서 여로보암은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자기 아내를 평민으로 변장시켜서 아히야를 선지자를 찾아가 이 아이가 어떻게 될지를 물어보도록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여로보암은 자신의 우상숭배의 죄를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아히야 선지자를 찾아가면 책망 받을 것이 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왕으로서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곤혹스러웠습니다. 결국 자신이 찾아가지 못하고 아내를 변자시켜서 보낸 것입니다. 여로보암이 이제야 하나님을 인정하고 선지자를 찾아가는 것은 여론이나 종교 정책에 비추어 당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하면서도 자신이 처한 급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내를 변장시켜서라도 하나님을 찾는 행위는 변장만큼이나 기만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서 단지 나의 필요를 위해 하나님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절박한 문제를 주신 것은 하나님과 관계성을 회복하자는 하나님의 음성이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회개하지 않고 겉모습만 나오는 행위는 결코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울 왕과 똑같은 여로보암 왕의 모습을 봅니다. 사울은 마지막 블레셋과의 최후의 전쟁을 앞두고 심한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그 때서야 사울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회개하지 않고 단지 하나님을 전쟁을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찾았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다윗을 용서하고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주셨을까요? 나단 선지자의 책망 앞에서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죄를 범했습니다.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두 손들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절박한 문제는 하나님과 관계성을 회복하자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성 회복이 없이 절박한 문제만 풀고자 나오는 행위는 변장하는 신앙이요 기만적인 신앙입니다. 이런 모습으로는 결코 기회의 문을 열지 못합니다.

변장하고 찾아온 여로보암의 아내를 향해서 하나님은 아히야 선지자에게 어떤 음성을 주셨습니까? 4~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로보암의 아내가 그대로 하여 일어나 실로로 가서 아히야의 집에 이르니 아히야는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더라 / 여호와께서 아히야에게 이르시되 여로보암의 아내가 자기 아들이 병 들었으므로 네게 물으러 오나니 너는 이러이러하게 대답하라 그가 들어올 때에 다른 사람인 체함이니라 / 그가 문으로 들어올 때에 아히야가 그 발소리를 듣고 말하되 여로보암의 아내여 들어오라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체하느냐 내가 명령을 받아 흉한 일을 네게 전하리니

하나님은 속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변장한 여로보암의 아내도, 기만적인 여로보암의 마음도, 정치적 술수에 감춰진 그들의 욕심도 직시하고 계셨습니다. 아히야 선지자는 시력을 상실했지만 자신을 찾아온 사람의 신분과 그녀가 가져온 문제에 대해서는 계시를 통해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병든 아들의 생존 문제뿐 아니라 여로보암 왕가와 그가 통치하는 나라의 비극적인 운명까지 예언했습니다

10~12절까지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여로보암의 집에 재앙을 내려 여로보암에게 속한 사내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나 다 끊어 버리되 거름 더미를 쓸어 버림 같이 여로보암의 집을 말갛게 쓸어 버릴지라 /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가 성읍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니라 하셨나니 / 너는 일어나 네 집으로 가라 네 발이 성읍에 들어갈 때에 그 아이가 죽을지라

여로보암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도 여로보암을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여로보암의 후손을 끊어버리시고 거름더미를 쓸어버림같이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거름더미란 길바닥에 나뒹구는 똥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의 의미는 길에 굴러다니는 똥을 치워서 불에 태워 소각시키는 것처럼 여로보암 왕조를 멸절시키겠다는 뜻입니다. 심지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들이 심판받아 성에서 죽은즉 개가 먹고 들에서 죽은즉 공중의 새가 먹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가혹한 심판의 음성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회개의 기회를 이토록 완악하게 내팽개쳐 버린 여로보암의 죄는 무서운 파멸을 좌초했습니다. 그것은 혼자만의 죄만 지는 것이 아니라 여로보암의 죄는 그의 가족과 심지어 이스라엘 전 백성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이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그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하였음이니라 하니라지도자의 죄는 큰 것입니다. 지도자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까지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목회자의 죄가 공동체 전체를 무너지게 합니다. 부모의 죄는 자식의 삶까지도 파괴하는 악한 죄의 영향력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가 지도자가 되고 어른이 되고 높은 위치에 설수록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영적 지도자인 목회자의 죄가 공동체 전체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목양자의 이 삶이 얼마나 긴장되고 힘든 삶인지를 목회의 연륜이 한 해 한 해 쌓일수록 통감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를 위해서 여러분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악한 마귀의 공격 앞에서 승리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무엇보다 목자를 치면 양은 흩어진다고 했습니다. 사단은 항상 목자를 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자연스럽게 깨지고 흩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자의 위치가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 갈수록 심각하게 깨닫고 저의 위치에 두려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여로보암에게 수차 기회를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로보암에게 준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그 마지막 기회까지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완악하게 반응하는 것을 봅니다. 저는 누가복음 23장에 나오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면서 마지막 기회의 시간에 드렸던 강도의 회개를 기억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이 때 우리 주님은 그 마지막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드린 회개의 기도를 받으시고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용서하시고 그를 천국의 자녀로 받아 주셨습니다. 회개는 늦는 법이 없습니다. 살아있는 한 진솔한 회개는 하나님께 받아드려집니다. 이미 심판이 선언된 순간에도 회개할 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요나서 34절에 보면 요나가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는 그 긴박한 메시지를 듣고 니느웨 사람들이 선지자에게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위에 앉아 회개할 때 40일 후에 임할 심판도 변경됨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늦는 회개도 우리 인생을 살립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 반응해야 합니다. 진솔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심지어 죄로 인해서 심판이 시행되는 날자가 잡혔다 할지라도 회개하면 그 심판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절박한 문제를 만났습니까? ! 여기서 끝나는구나! 하는 그런 고난의 문제를 직면하고 있습니까? 살아있는 동안은 구원의 시간입니다. 내가 숨쉬가 있고 내 의지가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기회의 시간입니다. 하나님께 진솔하게 나아갈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면 주저하지 마십시오. 체면 보지 마십시오. 철판을 깔고 두 손들고 나아가십시오. 탕자가 얼마나 하나님 아버지께 방자히 행했습니까? 얼마나 함부로 살았습니까? 그러나 절박한 문제 앞에서 마침내 아버지 집을 생각했고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해 냈습니다. 그리고는 얼굴에 철판깔고 마침내 결단했습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일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15:18~19) 그렇습니다. 체면 생각할 필요없습니다. 두 손들고 회개하면 삽니다. 나의 중심을 하나님께 그대로 돌이키고 한 번만 봐주십시오. 한 번만 저를 더 받아주십시오! 용서를 구하면 삽니다. 아무리 여로보암이 아히야 선지자로부터 그 집안 사람이 다 끊어지고 거름더미처럼 쓸어버린다는 심판의 음성을 들었다 할지라도 그 때라도 회개하면 삽니다.

절박한 문제 앞에서 절망하지 맙시다. 남들이 다 당신의 인생은 끝났다 할지라도 숨이 붙어 있다면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읍시다. 하나님에게 너무 늦은 회개라도 회개는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절박한 문제가 기회요 은혜의 수단임을 다시 한 번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절박한 문제를 만나면 은혜의 시간을 주시는구나!’라고 영적인 눈을 뜨고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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