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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과와 설교

20191031 / 왕상 17:17-24 /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엘리야

작성자천성교회|작성시간19.10.29|조회수1,474 목록 댓글 0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엘리야

왕상 17:17-24

첨부파일 20191031.hwp

17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19 엘리야가 그에게 그의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받아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20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21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23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왕상 17:17-24 / [과부의 아들을 살린 엘리야] 세 식구가 얼마간 걱정 없이 살았는데 어느 날 그 과부의 아들이 갑자기 병에 걸렸다. 병세가 점점 더 악화되더니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18) 그러자 엘리야를 먹여 살리던 과부가 이렇게 탄식하였다. `내 죄가 많아서 이 아들이 죽었습니다. 당신이 내 죄를 모두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고해 바쳤기 때문에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왜 이렇게 우리 집을 환난에 빠뜨려 놓으십니까?' 그 과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자기의 죄값으로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탄식하였다. 19) 엘리야는 `그 아이를 내게 주시오' 하고 말하였다. 엘리야는 과부의 품에서 숨이 떨어진 아이를 받아 안고 자기가 머무는 다락방으로 올라가 잠자리에 뉘었다. 그곳은 공기도 한층 시원하며 기도하기에도 알맞은 장소였다. 20) 엘리야는 거기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이 집의 주인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그의 외아들을 데려가시렵니까? 그 여인은 이토록 어려운 흉년에 나를 먹여 준 생명의 은인이 아닙니까!' 21) 그러고 나서 엘리야는 그 아이의 몸위에 엎드려 세 번 몸을 맞추고 이렇게 호소하였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이 어린아이를 다시 살려 주소서' 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아이를 다시 살려 주셨다. 23) 엘리야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그의 어머니에게 돌려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보시오, 당신의 아들이 살아났소!' 24) 그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인 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당신이 하는 말은 여호와께서 시키시는 말씀이므로 그 말씀이 진실한 것인 줄을 내가 이제 알았습니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집에 머무르는 중에 뜻하지 않은 일을 만나게 됩니다.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죽은 것입니다.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17-18) “이 일 후에라고 시작합니다. 원문에 보면 이 일들이라고 복수 형태로 나옵니다. 비가 오지 않는 3년의 세월을 엘리야는 훈련받으며 보낸 것입니다. 충분한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되는데, 다시금 여인의 아들이 죽게 되는 또 다른 훈련이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과부의 유일한 가족은 아들 하나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죽어버린 여인의 마음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여인이 너무 화가 나니까 엘리야에게 화를 퍼부어대기 시작합니다. 엘리야의 입장에서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엘리야가 과부의 아들을 죽였다는 단서는 전혀 없습니다. 엘리야를 만나기 전 이 과부는 나뭇가지를 주어 떡을 만들어 먹고 죽으려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 여인을 엘리야가 밀가루와 기름이 마르지 않는 기적으로 죽으려던 과부와 아들을 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엘리야는 크게 당황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심으로(19-23) 엘리야는 과부에게 아들을 달라했고 그리고 아이를 안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다락으로 올라갑니다(19). 엘리야는 아이를 안고 기도하면 이 아이가 살아날 것이다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을까요? 창세기부터 오늘 본문 열왕기상 17장까지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난 기록은 성경에서 여기가 최초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해도 뭔가 본 경험이 있어야 기도를 하고, 상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죽었다 살아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엘리야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한탄하며 하나님께 맡겨드렸을 것입니다. 엘리야가 이 문제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긴 것을 나타내는 말씀이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라는 표현입니다(21). 문제를 앞에 놓고 완전히 하나님께 엎드렸습니다. 바로 이때 아이의 혼이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납니다(23).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24) 본문의 핵심은 아들이 살아난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완전히 엎드려 문제를 붙잡고 기도하는 엘리야를 이 과부의 입을 통해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입니다.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라는 말씀입니다(24). 엘리야는 거듭된 훈련을 통해 이제야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단계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적용: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을 통해 이제야 하나님의 사람인줄 알겠다인정받는 단계까지 나아가고 계십니까?

 

지금 우리는 교회와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거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단순히 교훈적인 이야기나 신화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을 당당히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고백은 먼저 개인으로서, 교회 공동체로서 우리가 세상 사람과 구별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 설 교 >

통곡을 찬양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조성호 목사

왕상 17:17-24, 30:6-12

남편을 잃고 아들과 함께 외롭게 살아가던 이방 여인,

재산이라곤 한 줌의 밀가루와 기름 몇 방울뿐인 지독히도 가난한 여인,

이제 마지막 남은 그것으로 빵을 구워먹고 아들과 함께 죽고자 하는 극한 상황에 처한 여인 - 사르밧 과부가 그를 찾아온 낯선 이방인 남자, 엘리야에게 도움을 베풀었습니다.

물질로도 마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베풀 능력이나 여유가 전혀 없었던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를 도울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엘리야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음식을 만들어서, 우선 나에게 먼저 가지고 오시오. 그리하면, 그 뒤주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7:13)

참으로 무례하고, 아무런 보증도 없는 이 말씀을 그대로 믿고 따랐더니, 약속은 하나도 어김없이 다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았고 기름이 마르지 않았으며, 과부와 아들과 엘리야 모두가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엘리야와 사렙다 과부의 이야기를 통해 외롭고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복의 통로임을 알게 됩니다.

남에게 베푸는 것이 나도 살고 너도 사는 공생의 길, 진정한 살림의 길이며, 희생이야말로 가장 값비싼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사르밧 과부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 남을 도울 수 있다면,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남을 돕지 못할 사람, 남에게 도움이 되어주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여겨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을 받고 있던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에게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과부의 아들이 병이 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음먹고 죽으려 할 때는 기적적으로 살려주시더니, 살만하니까 다시 죽이십니까?

슬픔을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엘리야를 붙들고 탄식하고 원망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신 어른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렇게 저에게 오셔서 저의 죄를 기억나게 하시고 제 아들을 죽게 하십니까?” (18)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 자기 집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주목해서 보셨고,

그 결과 그녀의 죄가 하나님 앞에 드러났고, 자기 대신 아들을 죽이셨다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아들이 죽은 이유는 죄 많은 어미 때문이지만, 그것은 결국 엘리야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들을 죽이실 거라면 그 때 죽게 내버려 두실 일이지, 왜 살려 주더니 이제 와서 자식 죽는 꼴을 보게 만드냐는 것입니다.

죽이시려면 나를 죽이셔야지, 죽어야 할 이 몸은 살아있고 살아야 할 아이는 죽어버리고... 지은 죄가 얼마나 많기에...

 

여인의 한탄과 원망은 하나님에 대한 아주 잘못된 생각을 드러내는 말이었지만, 엘리야는 하나님을 굳이 변호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시체를 끌어안고 부르짖는 그 소리는 어미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엘리야 또한 지금 충격에 싸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남은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주면서까지 나를 살려준, 이 착하고 고마운 여인이 이런 고통을 겪게 하시는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한동안 침묵하던 엘리야가 마침내 여인에게 말합니다.

그 아이를 내게 달라.”(19)

어미에게서 아이를 받아 안은 엘리야는 자기 방으로 올라가 아이를 침상에 눕힙니다.

그리고 자신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놓습니다.

주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내가 머물고 있는 이 집의 과부에게 이렇게 재앙을 내리시어 그 아들을 죽게 하십니까?” (20)

그러나 그릿시내가에서 까마귀가 날라다 준 양식을 먹고, 이방 여인의 집에서 마르지 않고 끊이지 않는 양식의 기적을 체험한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지 않으시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몸 위에 세 번이나 엎드려서 몸과 몸을 맞춥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명을 불어넣으실 때, 하나님도 이런 동작을 하셨을까요? 엘리야는 아이와 몸을 맞댄 채, 성경 역사상 그 누구도 기도한 적이 없었던 기도를 드립니다.

주 나의 하나님, 제발 이 아이의 호흡이 되돌아오게 하여 주십시오.” (21)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누구도 드리지 않았던 기도를 엘리야가 드렸듯이, 이제까지 그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그 아이에게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 엘리야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 아이의 호흡을 되돌아오게 하여 주셔서 그 아이가 살아났다.”(22)

엘리야는 아이를 어미에게 되돌려주면서 말합니다.

보시오, 아들이 살아났습니다.”(23)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인이 말합니다.

이제 저는 어른이 하나님의 사람이시라는 것과 어른이 하시는 말씀은 참으로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24)

엘리야를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참 예언자로 인정하고 존경하는 말이고, 죽은 아이가 살아난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임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 기적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 것일까요?

죽은 아이가 다시 살아난 이 기적은 바알 숭배의 본거지인 시돈에서 일어났습니다.

바알은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는 죽었다가 비가 오는 우기 때 살아난다고 합니다.

신이라고 하면서도 자연 질서의 지배를 받는, 격조가 좀 떨어지는 신이었던 것이죠.

엘리야가 아합 왕 앞에서 예언한 이후 온 나라가 가뭄과 가난으로 고통 받고 있었지만,

물질의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하는 바알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스꽝스러운 바알을 이라 부르면서 그 앞에 절을 하고 제사를 드릴 정도로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도 않는 영적 가뭄과 말씀의 기갈의 상태였습니다.

그러므로 우상 숭배의 본거지에 살고 있는 가난한 과부가 움켜쥐고 있었던 마지막 한 줌의 밀가루와 비어있는 뒤주는 우상을 쫓다가 말씀의 양식이 다 떨어지고 바닥 나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살림살이를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였더니 양식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때에 회복되는 영적 건강상태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굶주린 사람에게 빵의 의미는 먹는 데 지장이 없는 사람의 그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양식이 다 떨어졌을 때 빵 한 덩어리는 물질적인 차원을 넘어 정신적인 의미로 해석되고 감사와 은혜의 차원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배가 부르면 밥은 밥일 뿐,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붙이기가 어려워집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이 그러하지 않습니까? 한 때 절실했던 것이 채워지고 그것이 계속되다 보면, 어느새 감격과 감사는 사라져 버리고, 은혜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 되고 맙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일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죽었던 자식이 엘리야의 기도를 통해 다시 살아난 기적은 육신의 배만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버리고 헛된 우상을 좇고 있는 이스라엘, 살아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 보시기엔 죽은 자식과도 다름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 생명은 단지 육의 양식으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님을, 생명은 어디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고, 생명의 주인이 누구이신지를, 어떻게 해야 생명을 바르게 누릴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병들어 죽은 아들을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어미의 마음은 영적으로 죽은 이스라엘을 붙잡고 울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망각하고 바알을 쫓아다니다가 굶어 죽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육의 양식은 물론이요, 영의 양식까지 주시고자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여인을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찾지 않아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 생명의 길을 보여주시고자 이방 여인의 외아들을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습니다.

과부의 아이 Kind 가 죽어 있듯이,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 Kinder 인 이스라엘이 죽어 있습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이 아이를, 이 백성들을 살리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때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을 받는 사람들 - 이방 여인 사르밧 과부와 예언자 엘리야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생명의 주 하나님을 찾을 때까지 찾고 응답하실 때까지 부르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1.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사르밧 과부의 모습을 봅니다.

그녀는 한탄하고 원망하면서 이런 말을 내 뱉습니다.

저의 죄를 기억나게 하시고 ...”

여인은 병든 아들을 간호하면서 비수같은 것이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을 찌르고 있음을 이미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죽은 아들을 가슴에 묻고 있으려니 그 고통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내가 죄를 졌으니 내가 벌을 받아야 하는데.....나 때문에 내 새끼가 ...... 사르밧 과부는 이처럼 산산히 부서지고 깨어진 심령을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쏟아 놓았던 것입니다.

아들을 품에 안은 채 엘리야를 붙들며 매달리는 가련한 여인에게 엘리야가 말합니다.

아들의 시신을 내게 주시오.” 아들을 내게 달라는 엘리야의 말을 듣자 그녀의 머리속엔 갑자기

여러 날 전 자기 집을 찾아와 마지막으로 남은 떡을 달라던 엘리야와 그 날 이후의 기적이 떠올랐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아주 희미한 빛 같은 것이 그녀의 칠흑 같이 어두운 영혼의 고통을 뚫고 들어오고 있음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냥 이대로는 보낼 수 없어서 가슴이 으스러지도록 부둥켜안고 있었던 아들의 시신을 엘리야에게 건네 줄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마지막 남은 떡을 엘리야에게 맡기듯이 말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이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았던 것입니다.

죽은 아들과 함께 자기 전체를 하나님께 던져버린 것이죠.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중에 사르밧 과부처럼 죽음과도 같은 고통 가운데 있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십니다.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가까이 와 계십니다.

깨어지고 짓밟힌 심령을, 하나님은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51:17)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와 꿇어 엎드리며 매어 달리는 인내와 믿음의 사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게 있는 모든 능력과 힘을 다 해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보았으나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를 안고 아파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혼자서 언제까지나 끌어안고만 있으려 하지 마십시오.

시체가 부패하듯이 문제를 마냥 끌어안고만 있으면 내 가슴이 썩어들어 갑니다.

그러면 문제를 안고 있는 내가 문제가 됩니다.

나를 괴롭히는 문제와 무거운 짐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과 맞대면하십시오

미련이 있더라도, 후회가 되더라도, 놓기 싫어도, 나 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이미 계획하고 준비하고 계신 하나님, 그 분께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가슴을 향해 나 전체를 던질 때, 그 때 비로소 우리는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이해할 수 없는 이 사건 앞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죽은 아이를 가슴에 꼭 껴안고 있는 엄마에게 아이를 달라고 합니다.

당신의 고통을 내가 떠맡겠다는 말입니다.

엘리야는 아이의 시신을 자기 품에 안습니다.

슬픔과 비극의 실체를 온 몸으로 끌어안는 것이죠.

말로만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죠.

그리고 시신을 자기 침상에 누이고 하나님께 왜 이러시냐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의 시체 위에 자신의 몸을 엎드려 포개었습니다.

엄마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아이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으로 여기는 행동이죠.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부르짖었습니다. 아이의 호흡 (, Odem)이 돌아오게 해 달라고.

성경은 아이가 병에 걸려 죽을 때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병은 매우 위중하여서 끝내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17). “seine Krankheit wurde so schwer, dass kein Odem mehr in ihm blieb.”

생명은 숨(Odem) 입니다. 숨이 흐르면 삽니다. 숨이 막히면 죽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에도 그 코에 생명의 기운(Odem)을 불어넣은 뒤에야 비로소 생명체가 되었습니다(2:7).

blies ihm den Odem des Lebens in seine Nase (1 Mo 2:7)

예언자 에스겔이 보았던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도 숨과 관련된 것입니다.

나 주 하나님이 이 뼈들에게 말한다. 내가 너희 속에 생기(Odem)를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에스겔 37:5)

So spricht Gott der Herr zu diesen Gebeinen : Siehe, ich will Odem in euch bringen, dass ihr wieder lebendig werdet. (Hes 37:5)

숨을 주관 하시는 분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엘리야는 아이에게 숨을 돌려주시기를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죽음과도 같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긴 여인의 신음소리와 타인의 고통도 죽음도 함께 나누려는 엘리야의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응답하셨습니다. 아이의 호흡이, 숨이 돌아왔습니다. 아이가 살아났습니다. 아이의 엄마, 사르밧 과부는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덩싱덩실 춤을 추며 찬양합니다. 이렇게 하여 아합왕 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와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만나의 기적을 체험하고, 죽은 아이의 숨을 돌아오게 하기까지 하나님이 계획하신 세 차례의 특별 훈련을 모두 마쳤습니다.

이제 바알의 무리들과 본격적인 싸움을 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여인 사르밧 과부와 엘리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살과 뼈는 있으나 숨이 없으면 생명체가 아니듯이 육적으로는 살아있는 것 같으나 영적으로는 죽어있는 이스라엘이 다시 회생하려면, 숨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이르는 길을 찾아서 막힌 숨통을 뚫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바알을 좇던 길을 돌이키고 모든 죄와 악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회개하면서 사르밧 과부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엘리야처럼 숨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매달리는 일 뿐입니다. 그러면 다시 살려주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30편은 죽음과도 같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매달림으로써, 다시 숨통을 터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의 고백입니다.

6-7절 말씀, “내가 편히 지낼 때에는 \"이제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겠지\" 하였지만, , 태산보다 더 든든하게 은총으로 나를 지켜 주시던 주께서 나를 외면하시자마자 나는 그만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30:6-7).

잘 나갈 때는 내 곁에 그렇게도 꾸역꾸역 모여들더니, 어려움에 처하자 모두 다 떠나버리고, 하나님조차 나를 버린 것만 같은 깊은 절망의 때, 그 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찾고 그 분 앞에 나가 엎드려 기도합니다. 8-10절 말씀, “주님, 내가 주님께 부르짖었고, 주님께 은혜를 간구하였습니다. 내가 죽은들 주님께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내가 죽어 구덩이에 던져지는 것이 주님께 무슨 유익이 되갰습니까? 한 줌의 티끌이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한 줌의 흙이 주의 진리를 전파할 수 있습니까?

주님, 귀를 기울이시고 들어 주십시오.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 주님께서 나를 돕는 분이 되어 주십시오” (30: 8-10).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11-12절 말씀,

주님께서는 내 통곡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나에게서 슬픔의 상복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옷을 갈아입히셨기에 내 영혼이 잠잠할 수 없어서,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 나의 하나님, 내가 영원토록 주께 감사를 드리렵니다” (30:11-12)

이 시편 시인의 기도와 고백과 찬양이 이해할 수 없고 고통스러운 일이 많은 세상을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으로 이겨나가면서, 통곡을 찬양으로 바꾸어 주시는 주님 오시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여러분들에게 희망의 말씀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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