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가 떠오르다
왕하 6:1-7
1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2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그 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
3 그 하나가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가리라 하고
4 드디어 그들과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5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
6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7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왕하 6:1-7 / [강물 위로 떠오른 도끼] 엘리사가 길갈의 예언자 공동체에 머무를 때 학생들이 와서 불평하였다. `우리가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이는 이 방이 너무 좁습니다. 2) 그러므로 우리가 요단 강가로 내려가 재목을 베어 오겠습니다. 한 사람이 재목 하나씩만 베어와도 새 강의실을 하나 지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두 가보아라!' 하고 엘리사가 허락하였다. 3) 그러자 학생 한 명이 엘리사에게 `선생님도 저희들과 함께 가시지요' 하고 말하였다. 엘리사는 `같이 가자' 하고 4) 그들과 함께 갔다. 이리하여 그들이 모두 요단 강가로 내려가서 나무를 베었다. 5) 그런데 나무를 찍던 한 학생의 도끼가 갑자기 자루에서 빠져 강물 속으로 떨어졌다. 도끼를 잃은 학생이 엘리사에게로 와서 탄식하였다. `선생님, 빌려 온 도끼를 잃어버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6) `도끼가 빠진 곳이 어디냐?' 하고 엘리사가 물었다. 그 학생이 도끼가 떨어진 강물을 가리키자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서 물 속으로 집어 던졌다. 그러자 도끼가 물위로 떠올랐다. 7) 엘리사가 `네 도끼를 건져내어라.'하고 말하자 그가 손을 뻗쳐 도끼를 건져내었다.
엘리사와 그의 제자들은 그들 공동체 가족들이 늘어남에 따라 함께 거하는 공간 부족으로 새로운 처소를 준비하기 위해 요단으로 갑니다.
새로운 처소를 위하여(1-2) 엘리사의 사역이 확장됨에 따라 그를 따르는 제자들의 수도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사역의 확장은 축복된 일이지만, 거기에 수반되는 삶의 공간은 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요단으로 가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처소를 세우자고 합니다. 여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라는 것은 선지 생도들이 다 같이 협력하여 선지학교를 세우는데 동참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오늘도 성도들이 물심양면으로 서로 협력하여 신학교와 목회자, 선교사와 선교 기관들을 도와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사역이 끊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함께하는 선지자(3) 엘리사의 생도들이 새로운 사역의 공동체를 건설하는데 선지자도 함께 동참할 것을 청합니다. 이에 엘리사는 그들의 계획과 그 현장에도 함께 동행 할 것을 허락합니다. 여기에서 엘리사와 그의 생도들이 함께 거했던 곳은 일반적으로 ‘길갈’이라고 할 수 있는데(2:1; 4:38), 한 편에서는 ‘벧엘’(2:3)이나 ‘여리고’(2:5, 15)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요단 강변에는 숲과 나무들이 울창하여 버드나무, 포플라 나무, 석류나무 등 건축물의 목재를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렘 49:19; 50:44; 슥 11:1-3).
어디 빠졌느냐(4-7) 생도들이 나무를 자르는 벌목과정에서 한 생도의 쇠도끼가 강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생도는 엘리사를 찾아가서 빌려온 것임을 고하면서 탄식합니다. 이때 엘리사는 도끼가 빠진 곳이 어디인지를 물어보고, 그곳에 베어온 나뭇가지를 던져 도끼를 떠올리게 하고 물에 빠뜨린 본인이 직접 그것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쇠도끼를 빌려온 것입니다. 이는 생도들의 경제적인 삶이 자기 소유의 도끼 하나를 가질 수 없을 만큼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어려움을 당했을 때 선지자에게 찾아와 도움을 구한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 앞으로 나와 그 어려움을 솔직히 고백하며 도움을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잃어버린 현장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도끼를 물에 빠뜨린 생도에게 엘리사가 질문한 것은 “왜 그랬느냐”가 아니고 “어디 빠졌느냐”였습니다(6).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는 그 원인이 어디에서 시작되어졌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문제를 발생케 했던 본인이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쇠도끼를 물에 끌어올리는 것은 선지자의 몫이었지만, 그 도끼를 가져오는 것은 본인이 노력해야 할 몫입니다.
적용: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 먼저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돌을 옮기라”로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을 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먼저 가로막힌 돌을 옮기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생각은 눈에 드러나진 않지만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의 씨를 뿌리면 행동의 열매를 거두고, 행동의 씨앗은 습관의 싹을 틔워 인격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인격은 인생 전반을 바꿀 수 있는 요소이기에, 생각을 바꾸는 것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최소 단위이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삶 속에 가정이든 교회든 부흥이 일어나면 새로운 계획을 세우게 되고 새로운 일이 시작될 줄 믿습니다. 무슨 직분이든 무슨 일이든 하나님께서 맡겨만 주면 잘되고, 손만 대면 살아나고 부흥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 설 교 >
쇠도끼를 찾으라 / 김정호 목사
시간이 없다며 쩔쩔매는 이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리 바쁘게 사냐고?” 그의 대답은 “행복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많은 건물과 돈을 갖고도 악착같이 돈을 벌려는 이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냐고?” 그의 대답은 “행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많은 권력을 갖고도 만족 못 하는 정치인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큰 권력이 필요하냐고?” 그의 대답은 “행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도대체 “행복”이 어떤 것이기에 모두들 “행복” “행복”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나이 지긋하신 철학자에게 물었습니다. “행복”이 뭐냐고? 그의 대답은 “그걸 알기 위해서 평생 공부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였습니다. 많은 신도들로부터 추앙받는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그걸 알기 위해서 평생 기도했지만 아직도 응답이 없다“였습니다. 수십 개의 계열사 기업을 가진 대기업 회장에게 물었습니다. 행복이 뭐냐고? 그의 대답은 “그걸 알기 ㅡ위해서 평생 돈을 벌었지만 아직도 행복하지 않다”였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습니다. 행복 찾기를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해답을 찾지 못하고 돌아오던 길에 추운 거리에서 구걸하는 걸인을 만났습니다. 폐일언하고 물었습니다. “행복이 뭐냐고?” 그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오늘 저녁 먹을 끼니와 잠잘 곳만 있으면 행복한 것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도 않고 미래에 있지도 않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훔쳐올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 행복하기 위해서 나의 행복관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누구나 다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모두가 다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영원한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기쁨이며 행복입니다.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고난에 동참하면서 진정한 행복을 소유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잃어버린 도끼를 찾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행복한 삶을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넓혀라
본문 1~2절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그 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들을 어떻게 이끌어 나갔으며 이 선지 학교가 어떻게 발전되어 가고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선지 학교 생도들이 거주하는 곳이 좁다고 하였습니다. ‘좁으니’의 히브리어 ‘차르’는 고통을 겪다는 뜻입니다. 너무 좁아서 선지 학교 생도들이 고통을 겪었다는 뜻입니다. 어원적인 의미로 살펴볼 때 그 장소가 매우 비좁고 불편했던 처소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단으로 옮기자는 것입니다. 요단 강변에는 숲과 나무들이 울창하여 버드나무와 포플라 나무와 석류나무 등 건축물의 목재를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곳입니다. 선지자의 생도들 모두가 이 사역에 동참하여 협력해서 금방 선지 학교를 세울 수 잇다는 뜻입니다. 배움의 장소를 옮기는데 있어서 먼저 스승인 엘리사의 승인이 있어야 했음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선지 학교 생도들의 요구가 타당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승낙한 것입니다. 엘리사의 열려진 지도력을 보게 됩니다.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고집하는 권위적인 자세가 아닌 제자들과 대화하고 의견을 경청하는 소통하는 선지자의 존경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뭐가 좁으냐고 야단을 칠 수도 있었습니다. 건방지다고 설교를 할 수도 있었으나 제자들의 눈높이에서 제자들의 불편과 고통에 동참하는 선한 목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 암시의 창시자인 프랑스의 약사 에밀 쿠에는 자기 암시라는 방법을 사용해 인간의 잠재의식을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좋아지고 있다’를 매일 반복함으로써 자아상을 건강하게 만들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신념을 강화시켰습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이 자기암시를 스무 번만 반복해보십시오. ‘어떤 일에서 의지와 상상이 부딪히면 늘 상상이 승리한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일이건 원치 않는 일이건 상관없다.’ 에밀 쿠에의 말입니다. 영화 ‘카운슬러’의 금발의 여배우 카메론 디아즈는 한때 신문팔이를 하였으며 1990년 제47회 골든 글로브의 여우주연상의 미셸 파이프는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포장하는 일을 했습니다. 유명한 톰 크루즈는 한때 트럭 운전을 하였는데 그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자신의 ‘어려웠던 과거가 자랑스럽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던 과거를 지워버리고 싶고 숨기고 싶어 하지만 인생의 길은 밝은 봉우리와 어두운 골짜기가 함께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이제 좁은 우리의 삶을 넓은 요단으로 넓힙시다. 마음, 순종, 믿음, 생각, 배려, 범사를 넓힙시다. 좁고 답답하게 더 이상 머무르지 말고 이제 요단의 새 시대를 삽시다. 이 사순절 기간에 우리의 믿음과 사랑과 충성과 순교를 넓힙시다. 여러분의 건강과 경제와 범사가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잃어버렸던 쇠도끼를 찾은 것 같이 넓은 요단의 삶을 회복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함께 하라
본문 3~4절 “그 하나가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가리라 하고 드디어 그들과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선지 학교 생도들이 요단 강으로 가면서 엘리사에게 동행할 것을 요청했을 때 엘리사가 그들과 함께 요단에 가서 나무를 베었습니다. 제자들은 엘리사가 자기와 함께 동행함으로써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 줄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어떤 일을 착수함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어 주시는 분임을 믿고 모든 것을 의논하고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엘리사는 말과 행동이 신속하고 동일했을 뿐만 아니라 단순하고 직선적이 면모가 보입니다.
세상이 점점 더 신앙생활을 하기가 힘들게 바뀌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세상이 기독교인들에게 긍정적이고 호의적이었던 때를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원래 이 세상과 기독교는 함께할 수 없는 대적의 관계입니다. 세상과 기독교의 사이가 좋다는 것은 기독교가 세상과 타협하여 굴복했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기독교인 장로가 세 사람이나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분들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기가 더 수월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다른 종교들이 ‘종교차별’이라는 주장을 하는 바람에 기독교가 ‘역 차별’을 당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누구 때문에 신앙생활 하기가 쉬워질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환상은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누구에게나 이 세상에서의 신앙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밥 먹고 하는 일이 기도, 전도, 설교인 목회자들은 그래도 신앙생활 하기가 쉬울까요? 쉽지 않습니다. 수도원에서 의식주 걱정 없이 그야말로 ‘기도’하는 일만 전무하는 ‘수도사’들은 신앙생활 하기가 쉬울까요? 단언하건데 그들의 신앙생활 환경이 가장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누구의 신앙생활이 가장 쉬울까요? 이 세상에 살아있는 한 사탄 마귀는 끝까지 우리의 신앙생활을 방해할 것이기에 편하게 예수 믿을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한 가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환경을 초월한 믿음의 분량을 채우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분량만큼 우리를 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면 어떠한 환경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사명을 제대로 잘 감당할 있습니다. 선지 학교 학생들이 엘리사와 함께 할 때 요단으로 넓게 갈 수 있었고 잃어버리고 도끼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라면 불가능이 없습니다. 능력을 받게 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가족과 성도와 함께 하나 되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립시다. 분열과 갈등과 수많은 성벽을 넘어서 하나되어 화목과 능력의 삶을 삽시다. 함께 함으로 잃어버린 하나됨의 도끼를 찾아 행복한 153운동의 열매를 맺고 153개의 다양하고 풍성한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기적을 체험하라
본문 5~7절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선지 생도 중 한 사람이 나무를 찍다가 도끼를 물에 빠뜨린 것은 큰 나무를 무리하게 찍다가 생긴 일입니다.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라는 비관의 외침은 엘리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도끼를 물에 빠뜨린 생도는 너무 가난하여 도끼를 살 수 없어 이웃에게 구걸하다시피 애걸하면서 도끼를 빌려온 것입니다. 도끼를 주인에게 배상하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도끼를 빠뜨린 정확한 장소에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선지자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의 현세적인 필요들을 채워 주시고 명확하게 해결해 주시는 분이심을 보여 줍니다. 본절은 단순하고 사소한 사건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기적이 필요할 때 반드시 기적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고 늘 우리를 도우시는 친밀한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이 기원전 722년 앗수르에 의해 망하고 남유다는 기원전 598년 바벨론에 의해 망했습니다. 그 후 70년 만에 3차에 걸쳐 이스라엘로 귀환하기까지가 구약성서의 내용입니다. 로마의 속국이었던 이스라엘은 주후 70년에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해 완전히 망했고 유대인들은 다시 전 세계로 흩어졌습니다. 그 후 약 1900년 만에 1948년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다시 세워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에게 ‘구원자 메시야’란 다윗과 같은 위대한 영웅이 나타나 이스라엘의 옛 영화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한 연약한 젊은이는 그런 영웅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들은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고 그를 잔인하게 십자가에 매달아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여러 예언자들을 통해 메시야(저희 백성들을 구원할 구원자)를 보내주시겠다고 하셨고 그 예언이 ‘예수’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과 같은 ‘강한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힘없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구원’의 혜택이 이방인들에게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하늘로 가신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때 오실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죽인 예수가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였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회복 되었고 이제는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성경은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 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선민으로 먼저 선택되었지만 구원자 예수를 버린 까닭에 그들이 개만도 못하게 여겼던 이방인들이 먼저 예수를 믿고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메시야 되신 예수님을 믿고 전합시다. 쇠도끼가 떠오르는 것 같이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올리셨고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떠오르게 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고난에 동참하는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 기간에 우리의 신앙을 넓히고 하나님과 함께 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합시다. 잃어버린 쇠도끼와 같이 잃어버린 신앙과 사명을 다시 찾는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 드립니다.
잃어버린 도끼를 찾읍시다 / 피종진목사
본문에 보면 엘리사 선지자 시대에 영적인 부흥운동이 일어나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고 자원하는 생도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장소가 협소해서 그 학교를 증축하기 위해서 엘리사 제자들이 도끼를 들고 산에 나무를 베러 갔습니다. 그런데 생도 하나가 나무를 베다가 그만 도끼를 물에 빠트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무기가 없으면 전쟁을 못하듯이 나무를 베러 갔는데, 도끼를 물에 빠트렸으니까 어떻게 나무를 베서 그 장막을 넓힐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도끼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같습니다.
선지자의 생도가 도끼를 잃어버린 것은 우리 성도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하나님의 능력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 때 당시 나무를 벨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도끼 밖에 없었는데, 도끼를 잃어버렸으니 더 이상 나무를 벨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잃어버리면 더 이상 사명을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은
❶ 성령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이 능력을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사실은 나무를 찍는데, 손을 가지고 아무리 찍어봐야 나무가 안찍힙니다. 그리고 팔로 아무리 흔들어봐야 그 나무를 뽑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무능한 팔과 손이지만 그 팔과 손에 도끼가 들리면 그 힘에 의해서 나무를 찍을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힘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면 무엇이든지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우리 성도들이 한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내가 할 수 있다'고 자만해도 안되고, '나는 못합니다'라고 해도 안됩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은 주님께 대한 월권이고, 주님이 능력을 주셔서 시키는데 '나는 못합니다'라고 해도 주님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❷ 기도의 능력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시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또 손과 발에도 함께 주님께서 역사하여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자리가 하나님 앞에 복된 자리가 되고,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지는 시간이 되며,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제일 가까이 만나는 사람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 5:15,16에 보면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말씀했고, 야고보서 5:17,18에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❸ 말씀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자는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있고, 어떤 사탄의 궤휼도 능히 이길 수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의 능력이 있을 때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마 4:3,4).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거울로 삼고, 생명의 양식으로 삼아야 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 비추어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합니다. 국가의 법도 성경에 기초해서 제정될 때 하나님이 함께 해주십니다. 말씀이 우리 개인의 도덕 생활을 지배해야 됩니다. 이 말씀이 바로 우리의 영적 생활을 좌우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의 능력이 없으면 어떤 환상에 빠진다든지 감정에 치우치게 쉽고, 이단이나 사탄의 미혹에 넘어지기 쉽습니다. 요즘 성경은 잘 읽지 않고 예언기도 받기만 좋아하다가 이단에 빠지는 분이 많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에덴 동산에서 얼굴도 보고 음성도 들려주고 하나님이 인간과 대화를 했지만, 타락한 이후에는 두더지가 태양을 보면 죽듯이 인간이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뇌성 가운데 음성으로 나타내시고, 때로는 빽빽한 구름 속에도 나타내시고, 때로는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서 음성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기록한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음성으로 들려주시고, 혹은 예언자를 통해서 예언하게 하고, 그것을 전달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이 기록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스려주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1:3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중심으로 항상 능력을 힘입고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성경을 항상 읽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는 항상 교회가 든든히 서가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소유하십시다.
❹ 찬송의 능력입니다. 여러분들이 날마다 찬송할 때마다 하나님의 영감이 함께 하시고, 주의 성령이 역사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려울 때는 어려울 때 부르는 찬송을, 기쁠 때는 기쁠 때 부르는 찬송을, 감사할 때는 감사할 때 부르는 찬송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영적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는 마귀와 접전하는 찬송을 주셨습니다. 시험에 들었을 때는 '험한 시험 물속에서 나를 건져주시고'(찬송 463장) 이 찬송을 애절하게 불러보세요. 반드시 성령이 역사합니다. 우리는 항상 찬송 속에서 날마다 날마다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잃어버리면 마치 도끼를 잃어버린 엘리사 생도와 같습니다. 도끼없이 어떻게 나무를 벨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적을 이길 수 있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잃었던 능력을 찾아야 됩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것 중에 잃어버린 능력이 없는가? 은사를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첫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성령의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엄청난 축복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한 번 점검해보면서 잃었던 능력을 찾아 다 회복할 수 있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도끼를 잃어버린 이유입니다.
엘리사의 생도가 도끼를 왜 잃어 버렸을까요?
❶ 위험한 물가로 갔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도 많이 있을텐데 왜 위험한 물가에 가서 나무를 베려고 했을까요? 이 세상에는 안전한 길도 있고, 위험한 길도 있습니다. 교통의 위험뿐 아니라 인생의 교통 위험이 많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탈선되는 위험한 길을 가서는 안됩니다. 갈 곳에 가고, 가지 않을 곳은 가지 말아야 합니다. 할 말은 하고, 하지 말아야 될 말은 안해야 됩니다. 품어야 될 생각은 품고, 버려야 될 생각은 버려야 됩니다. 그리고 좋은 습관은 취하고, 나쁜 습관은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 위험한 물가를 헤매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성도의 길을 걸어야 됩니다. 사명의 길을 걸어야 됩니다. 의인의 길을 걸어야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길을 걸어야 됩니다. 항상 예수님을 앞세워야 됩니다. 주님이 기뻐할 수 있는 길을 걸어가야 됩니다. 마태복음 7:13,14에 보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❷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도끼 자루도 확인해보고, 도끼 날도 날카롭게 갈아서 한 두 번 찍어서 나무가 넘어지도록 해야 했습니다. 도끼 날이 무디어도 빠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준비가 있어야 됩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먼저 취사선택하는 그런 마음도 갖추어야 됩니다. 이 세상에서 게으른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N.D 콜멤버는 '태만은 살아있는 사람의 무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불신자보다 더 부지런해야 됩니다. 더 열심이 있어야 됩니다.
❸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이 도끼는 자기 것이 아니고 빌어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잃어버린 다음에 '아, 이 도끼는 빌어온 것인데'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남의 것을 귀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자기 의무도 다할 수 있습니다. 개인택시를 타보면 차도 깨끗하고, 운전도 조심해서 하는데, 매일 사람을 바꾸어가면서 교대로 운전하는 택시는 차내가 불결하고, 운전을 할 때도 조심성이 없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하나님께 받은 것을 귀중히 여길 줄 알아야 됩니다. 주님께 받은 이 구원을 항상 감사해야 됩니다. 여러분, 시간도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생명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건강도 여러분과 나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언젠가는 일할 수 없는 밤이 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것이 주님 앞에 귀하게 쓰여져야 됩니다.
우리가 제일 귀할 때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순간입니다. 제일 천할 때가 언제입니까? 마귀가 사용할 때입니다. 우리의 몸은 주님이 피로 값주고 사신 몸입니다. 생명의 부활을 약속받은 자입니다. 저 천국을 약속받은 자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십자가에 피흘려서 우리의 모든 죄와 형벌을 대신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3. 잃은 도끼를 어떻게 찾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❶ 엘리사와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가 가로되, 청컨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가리라 하고"(3절) 엘리사의 제자들은 엘리사에게 함께 가자고 청했습니다. 우리가 나무를 베러 가는데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그 말을 듣고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래서 잃은 도끼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가든지 주님과 함께 해야 됩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예배 드릴 때는 '늘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겠습니다.'라고 결심하고, 교회 문밖을 나가면 주님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러한 사람은 매우 위험합니다.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비록 연약하고 어리석고 미련하고 둔하여 실패해도 옆에 계신 주님이 도와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일으켜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새롭게 회복시켜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❷ 자기의 잘못을 뉘우쳤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가로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어온 것이니이다."(5절) 여기에 보면 도끼가 물에 빠졌을 때 그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고 당장에 외쳤습니다. '외쳤다'는 이 말은 뉘우쳤다는 말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자기의 잘못을 가리우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면 20마디 거짓말이 나온다고 합니다. 한마디 거짓말을 감추려고 하면 20마디 거짓말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주여,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주의 뜻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제가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그 음성을 들으시고 주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자기의 잘못을 숨기려고 하면 안됩니다. 솔직하게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고 주님 앞에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새롭게 은총을 입혀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우리는 자기의 부족함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것만큼 전진할 수가 있습니다. 어리석음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만큼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❸ 하나님의 이적으로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서 도끼로 떠오르게 하고"(6절)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졌을 때 도끼가 떠올랐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적입니다. 하나님의 이적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온갖 이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적을 믿지 못합니다. 여러분, 이적을 믿지 못한 사람이 있거든 그에게 '이적이 아닌 것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반문해보세요. 이 세상에 이적이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얀 쌀밥을 먹었는데, 머리로 가서는 까맣게 되고, 혈관이 빨갛게 되는 것은 이적입니다. 여러분, 꽃을 보세요. 처음에는 아주 작은 씨앗을 심었는데, 이것이 점점 자라서 노랗고 빨갛고 파랗고 분홍색 꽃이 되는 것도 이적입니다. 또 지구는 둥근데 물이 엎질러지지 않는 것도 이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중에 혹 도끼를 잃은 생도와 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위험한 물가로 갔거나 게으르고 무관심해서 하나님이 주신 능력 곧 성령의 능력과 기도의 능력, 말씀의 능력, 찬송의 능력을 잃은 분이 계십니까? 모든 문제의 해결사이신 주님께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이적을 믿음으로 잃었던 능력을 다 찾아 회복할 수 있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손을 내밀어 취하면 다시 찾을 수 있다 / 조상호 목사
작년에 거행된 베이징 올림픽에서 감동적인 일들이 많이 있었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매우 황당한 일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장대분실사건‘입니다. 장대높이뛰기 경기에 출전한 브라질의 ’파이아나 무러레‘의 장대가 없어지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무러레 선수의 장대가 하나도 아니고 무려 대여섯 개의 장대가 한꺼번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베이징 올림픽조직위원회가 출전 선수의 장비를 잘 보관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그 선수의 장대를 분실한 것입니다. 그 선수의 장대를 찾느라 여자장대높이뛰기 경기가 오랫동안 지연되었지만, 분실된 장대를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 선수는 다른 장대를 빌려 4m65cm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선수의 최고기록이 4m80cm이기 때문에 4m65cm가 힘든 기록은 아니었는데도 실패한 것입니다. 가정이지만 만약 그 선수가 4m80cm를 넘었다면 최소한 은메달을 딸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해 사람들은 더욱 안타까워했습니다. 4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위의 미흡한 준비로 말미암아 한선수의 4년간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입니다.
아마 이 자리에도 브라질의 ’파이아나 무러레‘선수와 같지는 않다 하더라도, 전혀 예상치 못한 황당한 분실을 경험한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물건이든지 다른 사람으로부터 빌려온 물건이든지, 예상치 못한 분실로 인해 어려움을 당한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한 마디로 요역한다면, 예상치 못한 분실로 인해 어려움을 당했다가 다시 찾은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당시의 북이스라엘은 폭군 아합 왕과 사악한 아내 이세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여호람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야훼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백성들은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오랫동안 기근이 계속되어 먹을 것이 없어 나라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그러한 암울한 상황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는 많은 제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시켰습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제자가 되겠다고 몰려드는 바람에, 함께 거할 곳이 비좁게 되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신학교에 너무 많은 학생들이 지원하는 바람에 강의실과 기숙사가 부족하게 되었다는 것과 비슷합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부족한 숙소를 짓기 위한 목재를 가져오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요단을 가게 됩니다. 요단에 도착한 제자들이 나무를 자르는 도중, 한 제자의 도끼가 요단강에 빠지게 됩니다. 그 때 엘리사 선지자는 한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도끼를 떠오르게 함으로 잃었던 도끼를 다시 찾아줍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많은 영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주전 800년 경 당시 철로 만든 도끼는 아주 소중한 물건이었습니다. 철로 만든 도구가 그렇게 흔하지 않던 시절이기 때문에 쇠도끼는 아무나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쇠도끼는 집을 짓기 위해 목재를 자른다든지, 난방을 위해 땔감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한 제자가 매우 중요한 그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이 도끼는 우리가 잃어버려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믿음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사명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의 능력일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최선을 다해 일하던 직장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힘들게 일구어놓은 사업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거액의 물질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어렵게 얻었던 신용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도끼는 다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잃었던 것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잃은 도끼를 찾을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정직하게 고백하라
첫째로 숨기지 말고 정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다같이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 여기에 보면 도끼를 물에 빠뜨린 제자는 그 사실을 ‘쉬쉬’ 하며 숨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많은 다른 제자들이 주위에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실수를 고백한다는 것은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또 엘리사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끼를 잃어버리자마자 곧바로 외쳤습니다. '외쳤다'는 것은 자기의 잘못을 사실 그대로 고백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실수하고 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숨기려고 하기보다,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잘못을 빨리 인정하지 않고 시간을 끌다보면 문제가 더 커지고, 자꾸 숨기다보면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이 점점 커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 미국의 ‘존슨 앤 존슨’ 회사는 50개국에 생산거점을 두고, 149개국에 베이비 로션, 유아용품, 의료기구 등을 판매하는 다국적 기업입니다. 그런데 1982년 9월 30일 시카고에서 이 회사 제품인 ‘타이레놀’을 먹은 소비자가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첫 번째 사고가 발생한 후 불과 48시간 내에 7명이 같은 이유로 사망하였는데, 놀랍게도 이들이 먹고 남은 타이레놀에서 청산가리가 발견된 것입니다. 누군가가 제품 안에 사람에게 치명적인 독극물 청산가리를 집어넣은 것입니다. 당시 이 사건은 회사를 뿌리 채 흔들 수 있는 어마어마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냥 덮어두었다가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당할지 모르고, 세상에 널리 알렸다가는 많은 소비자들이 존슨 앤 존슨 제품을 더 이상 찾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존슨 앤 존슨은 이를 감추거나 조용히 덮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또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리콜 조치를 취했습니다. 시카고 지역 제품만 리콜 하라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권고를 뛰어넘어 전국에서 약 3,000만 병, 1억 달러 어치의 타이레놀을 전량 수거했습니다. 그리고 “사건 원인이 규명되기 전까지는 타이레놀 제품을 절대로 복용하지 마십시오.”라는 문구를 넣어 대대적으로 알렸습니다. 또한 전국에 있는 의사, 병원, 도매상에게 주위를 환기시키는 편지 50만 통을 발송하였습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처음에는 시장점유율이 35%에서 7%까지 하락하여 어려움을 겪었지만, 놀랍게도 3년 만에 제자리를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사고 전보다 더 많은 소비자의 신뢰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존슨 앤 존슨은 1999년과 2000년 <월스트리트 저널>이 선정한 ‘미국의 존경받는 기업 1위’에 뽑혔다고 합니다.
우리가 존슨 앤 존슨의 기업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물론 잘못을 안 하는 것보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더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정직한 사람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허물을 자복하는 사람, 자신의 실수를 고백하는 사람, 자신의 죄악을 숨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숨기지 않고 고백하는 자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용서해주십니다. 잠언 28장 13절에서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요한일서 1장 8절과 9절에서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는 말씀입니까? 우리가 숨기면 숨길수록 더 어려움을 당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 우리의 실수를 고백하면 사죄의 은총을 경험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하는 비결이요, 우리가 이 땅에서 형통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떠한 실수를 범했습니까? 여러분들이 어떠한 죄악을 범했습니까? 본문에 등장하는 어떤 제자처럼, 하나님께 숨기지 말고 정직하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잃어버린 도끼를 찾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2. 부르짖어 기도하라
둘째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 쉽게 말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도끼는 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것을 빌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잃어버렸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여기 ‘빌렸다’는 말의 원어는 ‘솨울’인데, ‘구걸하다’ ‘애걸하여 빌리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그 쇠도끼를 쉽게 빌린 것이 아닙니다. 그는 도끼를 빌리기 위하여 별짓을 다해 구걸하다시피 얻어왔습니다. 그런데 실수로 그것을 강물에 빠뜨린 것입니다. 그 때 그가 어떻게 했습니까? 울기만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엘리사에게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그가 엘리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과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엘리사는 하나님을 대신한 선지자였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6장을 보면 신 광야 사건이 나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6장 2절과 3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야훼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장 8절과 9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이는 야훼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야훼를 향하여 함이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원망한 것은 모세에게 원망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원망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원망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세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선지자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도 모세와 같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역을 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래서 도끼를 잃어버린 제자가 엘리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잃은 것이 있다면 도끼를 잃어버린 제자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 옛날에 한 나무꾼이 강가에서 나무를 베다가 실수로 도끼를 강물에 빠뜨렸습니다. 나무꾼은 강가에 앉아 한탄하며 슬퍼했습니다. 그때 산신령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나무꾼으로부터 슬퍼하고 있는 이유를 듣고 나서 강물 속으로 들어가 금도끼를 들고 나오더니 “이것이 너의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나무꾼이 아니라고 대답하자, 산신령은 다시 물속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는 은도끼를 들고 나오더니 “이것이 너의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나무꾼은 그것도 자기 것이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산신령은 세 번째로 물속에 들어갔다가 드디어 나무꾼이 잃어버린 바로 그 도끼를 건져왔습니다. 그러자 나무꾼은 “그것이 바로 제가 잃어버린 도끼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산신령은 나무꾼의 정직함에 감동을 받아 쇠도끼와 함께 다른 금도끼와 은도끼까지 그에게 주었습니다. 이 나무꾼이 친구들에게 자기가 겪은 일을 얘기하자, 그중 한 친구가 같은 장소에 가서 일부러 도끼를 강물 속에 빠뜨렸습니다. 그리고 나무꾼처럼 우는 흉내를 냈습니다. 그러자 전과 마찬가지로 산신령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얘기를 다 듣고 나서 다시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금도끼를 들고 나오더니 “이것이 너의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예, 그렇고말고요. 제가 잃어버린 도끼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러자 산신령은 뻔뻔스럽게 거짓말하는 그에게 금도끼를 주기는 커녕 그가 강물에 빠뜨린 도끼마저 돌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엇을 교훈하고 있는 이야기입니까? 정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쇠도끼를 잃었으면 쇠도끼를 잃었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한국의 ‘종근당’이라는 제약회사를 아실 것입니다. 이 회사의 로고가 종입니다. 종이 회사의 상징입니다. 종이 그 회사의 상징이 된 이유가 있습니다. 옛날에 서대문 영천 시장은 콩나물 장수 아줌마들이 많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중 신앙심 깊은 한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새벽마다 콩나물 통을 머리에 이고 시장에 나가는 길에 꼭 교회에 들러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비록 돈이 없는 가난한 가정이었지만, 자식들만큼은 믿음으로 잘 성장하여 하나님의 귀한 일꾼이 되도록 새벽마다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결국 이 아주머니의 기도는 이루어졌고, 아들들은 훌륭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성장했습니다. 아들 중 하나가 훗날 큰 제약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매일 새벽 교회에 나가 간절하게 기도하던 일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의 자기가 있기까지 어머니가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간절한 기도한 덕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늘 잊지 않고 살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교회 종소리가 생각났습니다. 지금이야 사라졌지만, 옛날에는 교회에서 새벽마다 종을 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회의 새벽 종소리가 연상되도록 자신의 제약회사 이름을 ‘종근당’이라고 짓고, 심벌마크를 '종(鍾)'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마라의 쓴물 앞에서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지시하여 물에 던지게 함으로 쓴물을 단물로 바꾸는 기적을 체험한 줄로 믿습니다. 죽을 병에 걸린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심히 통곡하며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생명을 15년이나 연장 받았고, 해 그림자가 뒤로 10도나 물러가는 기적을 체험한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잃어버린 도끼가 무엇입니까? 도끼를 잃어버린 제자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모세처럼 히스기야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잃어버린 도끼를 찾는 두 번째 방법입니다.
3. 손을 내밀어 취하라
셋째로 손을 내밀어 취해야 합니다. 다같이 6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엘리사 선지자가 어떻게 했습니까? 나뭇가지를 하나 자른 후 물위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물속에 가라앉았던 도끼가 떠올랐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도끼가 무슨 나무토막도 아니고, 돌보다 더 무거운 쇠 덩어리인데 그 쇠도끼가 고무풍선처럼 떠올랐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상식적으로 볼 때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생긴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아무리 무거운 쇠 덩어리라도 물위로 떠오를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우리가 잃었던 것들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7절 말씀이 중요합니다. 7절을 보겠습니다.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엘리사선지자가 도끼를 잃어버린 제자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너는 그것을 집으라’ 이 말씀을 잘 보시면 엘리사선지자가 도끼를 집어 제자에게 준 것이 아니라, 손을 내밀어 물위에 떠오른 도끼를 집으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손으로 건져내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 흐르는 교훈과 일맥상통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하실 일과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알지 못하는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과 내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때를 따라 햇빛과 비를 적당하게 주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심고 물을 주고 가꾸고 거두는 일은 누가 해야 할입니까?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날마다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만나를 거두는 일은 누가 해야 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침 일찍이 밖에 나가서 필요한 분량만큼 거두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소년의 도시락밖에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남자만 5천명,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포함하면 2만명 이상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5병2어의 기적을 일으키는 일을 하셨고, 제자들에게는 남은 부스러기를 거두는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죽었던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무덤 밖으로 나오자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온 몸을 칭칭 감고 있는 천을 풀러주는 일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하실 일과 내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습니다. 목사가 설교준비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한다고 저절로 설교가 준비되는 것은 아닙니다. 설교준비를 기도했으면 열심히 설교를 준비해야 합니다. 학생이 학업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께 지혜와 총명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한다고 성적이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학업을 위해 기도했으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이것이 ‘손을 내밀어 취하라’는 의미입니다.
■ 존 밀러(John Miller)가 쓴 책 중에 <바보들은 항상 남의 탓만 한다>는 책이 한 때 베스트 셀러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존 밀러가 어느 음식점에서 체험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참 바쁜 점심시간에 본 밀러는 어느 음식점에 가서 몇 가지 음식과 코카콜라 라이트를 주문했는데, 제이콥이라는 직원이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 가게에는 펩시콜라밖에 없는데요, 펩시콜라도 괜찮으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존 밀러는 속으로 ‘코카콜라도 없다니, 펩시를 마시느니 안 마시는게 낫지?’라고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가벼운 미소와 함께 “그럼 됐습니다. 얼음물에 레몬 한 조각만 띄워 주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잠시 후, 존 밀러가 주문한 음식을 받아서 먹기 시작했을 때, 제이콥이 헉헉대면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서리가 하얗게 끼어 시원해 보이는 코카콜라 라이트 캔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존 밀러는 놀라면서 “고마워요. 아니 코카콜라가 없다면서 어디서 났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제이콥은 “길모퉁이 가게에 가서 사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돈은 누가 냈나요?” “제가 냈습니다. 손님!”
이것이 바로 손을 내밀어 취한다는 의미입니다. 제이콥은 작은 음식점의 말단 종업원에 불과했지만, 최선을 다해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 후 제이콥은 종업원에서 관리자로 승진을 했고, 나중에는 CEO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엘리사선지자를 통해서 하신 ‘손을 내밀어 취하라’는 이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학생의 공부를 대신해주시지 않습니다. 시험을 대신 봐주지 않습니다. 학생은 학생으로서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하시기 바랍니다. 직장인은 직장인으로서 최선을 다해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사업가는 사업가로서 최선을 다해 사업을 하고, 가정주부는 가정주부로서 최선을 다해 자녀를 양육하고 가정을 돌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무슨 도끼를 잃어버렸습니까? 믿음의 도끼입니까? 물질의 도끼입니까? 사명의 도끼입니까? 산용의 도끼입니까? 무슨 도끼를 잃어버렸습니까? 오늘 이 시간 믿음을 잃어버린 분들은 믿음의 도끼를 다시 찾고, 물질을 잃어버린 분들은 잃었던 물질의 도끼를 다시 찾고, 사명을 잃었던 분들은 잃었던 사명의 도끼를 다시 찾고, 신용을 잃었던 분들은 잃었던 신용의 도끼를 다시 찾는 귀한 방법을 배울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도끼를 잃어버린 제자처럼 숨기지 말고 정직하게 고백하고, 부르짖어 기도하고, 손을 내밀어 취함으로 말미암아, 잃었던 모든 도끼를 다시 찾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