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붕괴
왕하 25:8-17
8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열아홉째 해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9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10 시위대장에게 속한 갈대아 온 군대가 예루살렘 주위의 성벽을 헐었으며
11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들과 무리 중 남은 자는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모두 사로잡아 가고
12 시위대장이 그 땅의 비천한 자를 남겨 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13 갈대아 사람이 또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 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 바다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14 또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으며
15 시위대장이 또 불 옮기는 그릇들과 주발들 곧 금으로 만든 것이나 은으로 만든 것이나 모두 가져갔으며
16 또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받침들을 가져갔는데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를 헤아릴 수 없었으니
17 그 한 기둥은 높이가 열여덟 규빗이요 그 꼭대기에 놋 머리가 있어 높이가 세 규빗이요 그 머리에 둘린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라 다른 기둥의 장식과 그물도 이와 같았더라
왕하 25:8-17 / 느부갓네살왕 19년 5월 7일에 바벨론 왕이 가장 신임하는 경호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9) 성전과 왕궁과 화려한 집들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그러자 온 성안이 잿더미로 변하였다. 10) 바벨론 군대는 남아 있는 성벽조차도 모두 허물어 버렸다. 11) 느부사라단은 바벨론 군대에게 투항한 시민과 나머지 성안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붙잡아 포로로 끌어 갔다. 12) 그러나 농민들 중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들을 조금 남겨 두어 포도원과 농경지에서 일하게 하였다. 13) 바벨론 군대는 성전 앞에 서 있는 놋기둥 2개와 거대한 놋바다와 받침대를 모두 깨뜨려 그 놋쇠를 바벨론으로 실어 갔다. 14) 또한 가마솥과 부삽과 불집게와 숟가락과 제사드릴 때 쓰이는 청동기구들도 모두 가져갔다. 15) 그리고 화로와 접시와 금은으로 된 기구들도 모두 가져갔다. 16) 솔로몬왕은 두 기둥과 거대한 놋바다와 받침대를 만들 때 엄청나게 많은 놋쇠를 썼는데, 놋이 너무 많아 그 무게를 이루 다 측량할 수 없을 정도였다. 17) 그 두 기둥의 높이는 8미터였는데, 기둥 꼭대기에는 높이가 135센티미터 되는 기둥머리가 각각 얹혀 있었다. 그리고 기둥머리의 둘레에는 놋쇠로 만든 그물과 석류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본 단락은 예루살렘 성의 함락과 성전이 철저하게 약탈당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2차 침략 때에는 금과 은 그리고 기구들을 약탈당했으나 3차 때에는 남아 있던 놋기둥과 놋그릇까지 약탈당함으로서 성전은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이 파괴되다(8-12) 예루살렘 성은 느부갓네살의 신복 느부사라단에 의하여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느부사라단은 성전과 왕궁 그리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에 불사르고(9),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파괴하고(10), 성 중에 거주하는 자들을 잡아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정복국가가 피정복국의 유능한 인물을 포로로 잡아가는 것은 반란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함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과 왕궁과 성벽과 모든 집들이 허물어지고 불에 타버렸습니다. 이에 예루살렘 성은 폐허가 되어 ‘비천한 자의 도성’(12)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하여 택하신 하나님의 도성이었습니다(왕하 23:27). 그러나 그곳에도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자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비천한 자를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한 것은 식민지에 대한 경작정책과 땅에서 나는 것까지 수탈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성전의 기구들이 약탈되다(13-17) 느부갓네살은 이미 유다 1, 2차 침략 때에 유다의 금과 은과 보물을 가져갔습니다. 이번에는 나머지 금속으로 된 것까지 모두 수탈해 갔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 현관에 있던 히람이 만든 두 개의 기둥과 성전의 물두멍과 부속 기구들을 모두 가졌습니다. 그들이 수탈해 간 놋의 양은 양이 많아서 헤아릴 수조차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철저한 심판은 이사야와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했던 대로 성취되었습니다(사 20:6; 렘 27:19-22). 막대한 경비를 들여서 세운 성전이 불에 타고 성전 기구들은 약탈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자리 잡고 있던 성전(왕상 9:3)이 파멸된 이유는 성전 안에까지 우상을 세우고, 섬기는 죄악을 범하였기 때문입니다(왕하 21:5, 7).
적용: 솔로몬이 막대한 경비와 시간을 들여서 세운 예루살렘 성전이 일시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이 사건을 통하여 깨달은 것을 함께 나누어 봅시다.
모든 것을 잃고 절망에 빠진 남자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말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인생의 실패자로 추락한 것은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 남자에게는 형이 한 명 있었는데,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던 형은 유명한 알코올 중독자 심리치료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형은 동생과 달리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때문에 지금의 심리 치료 상담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절대 아버지처럼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 설 교 >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여호야긴
손재호 목사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배반한 여호야김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호야김을 이어서 왕이 된 여호야긴에 관한 말씀입니다. 여호야긴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로인해 자신과 어머니와 그의 신하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들까지 다 약탈을 당하고 파괴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8-9절을 보면 “여호야긴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 팔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느후스다라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여호야긴이 그 부친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야김이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될 때에 그의 나이가 십팔 세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석 달을 다스리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갑니다. 여호야긴도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를 심판하시는 것도 여호와의 말씀대로 됩니다. 오늘 본문 10-13절을 보면 “그 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그 신복들이 에워쌀 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도 그 성에 이르니 유다 왕 여호야긴이 그 모친과 신복과 방백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왕이 잡으니 때는 바벨론 왕 팔년이라. 저가 여호와의 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전의 금 기명을 다 훼파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루살렘을 포위하니 유다 왕 여호야긴과 그의 어머니와 신복과 방백들과 내시들이 바벨론 왕에게 항복을 합니다. 그리고 바벨론 왕이 솔로몬이 만든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다 파괴된 것은 아니고 바벨론에 노략당하여 간 것도 많습니다만 이렇게 파괴가 되었다고 기록하는 이유는 에스겔서에서 본 대로 여호와의 성전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갖 우상으로 더럽혔기 때문에 바벨론 왕을 통하여 파괴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을 누가 그렇게 하게 하신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전의 기명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다 부수어 버린 것입니다. 나중에는 성전까지도 다 파괴하여 버립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을 허물어 버리라고 하시면서 자신이 삼일 만에 짓겠다고 하시는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요 2:19).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하여 만든 성전이라도 우상이 가득하니 친히 부수어버리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의 몸으로 참된 성전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성전이십니다.
오늘 본문 14-17절을 보면 “저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방백과 모든 용사 합 일만 명과 모든 공장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빈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저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왕의 모친과 왕의 아내들과 내시와 나라에 권세 있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또 용사 칠천과 공장과 대장장이 일천 곧 다 강장하여 싸움에 능한 자들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아자비 맛다니야로 대신하여 왕을 삼고 그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과 그 모친과 백성의 지도자들과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갔습니다. 그로인해 비천한 자 외에는 남은 자가 없었습니다.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힘 있고 능력 있는 자들을 다 잡아 가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야긴의 아자비 곧 숙부 맛다니야로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이름을 고친 것은 느부갓네살의 봉신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것도 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22:1-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유다 왕의 집에 내려가서 거기서 이를 선언하여 이르기를 다윗의 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 너와 네 신하와 이 문들로 들어오는 네 백성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공평과 정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너희가 참으로 이 말을 준행하면 다윗의 위에 앉을 왕들과 신하들과 백성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집 문으로 들어오게 되리라마는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내가 나로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무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유다 왕의 집’이란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과 여호야긴이 다 해당이 됩니다. 그런데 이들이 다 다윗의 왕위에 앉을 일을 행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집이 망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예레미야 22:6-9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유다 왕의 집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내게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꼭대기 같으나 내가 정녕히 너로 광야와 거민이 없는 성을 만들 것이라. 내가 너 파멸할 자를 준비하리니 그들이 각기 손에 병기를 가지고 네 아름다운 백향목을 찍어 불에 던지리라. 여러 나라 사람이 이 성으로 지나며 피차 말하기를 여호와가 이 큰 성에 이같이 행함은 어찜인고 하겠고 대답하기는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연고라 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되면 이방인들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섬겼기에 이렇게 망했다고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방인들으로부터 조롱을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 교회도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세속화 되었습니다. 세상적인 성공을 추구합니다. 그로인해 재물과 온갖 세상의 우상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손가락질을 당하고 있습니다. 맛 잃은 소금처럼 버리워져 짓밟히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가 왕이 되어 살기 때문입니다. 곧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고 우상숭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호야긴과 유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죄악을 통해서 우리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며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로써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하는 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로 우리의 죄악을 깨닫고 회개하며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켜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레미야 22:21-22절을 보면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 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키울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 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을 인하여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평안할 때에 말씀하셨지만 그들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는 것은 어려서부터 습관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이런 모든 악으로 인하여 수치와 욕을 당하게 됩니다.
계속해서 예레미야 22:24-30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너 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의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 내가 너와 너를 낳은 어미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에 쫓아내리니 너희가 거기서 죽고 너희 마음에 돌아오기를 사모하는 땅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이 사람 고니야는 천한 파기냐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이냐 어찌하여 그와 그 자손이 쫓겨나서 알지 못하는 땅에 들어갔는고.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이 사람이 무자하겠고 그 평생에 형통치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고니야’가 바로 여호야긴입니다. 각주 2)번에 보면 예레미야 24:1절과 역대상 3:16절에서는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을 가리켜서 ‘여고냐’라고 하고 있고, 열왕기하 24:6절과 8절에서는 ‘여호야긴’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야긴이 여호와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빼어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줄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사로잡혀 가게 하시고 이 사람의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 동안 형통하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그에게 실제로 자식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역대상 3:17-18절에 보면 그에게는 자식이 일곱 명이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왕이 될 자식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가고 나서 바벨론 왕이 그의 숙부를 대신하여 왕으로 세운 것입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말씀대로 여호야긴과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심판의 끝에 항상 놀라운 약속에 대한 말씀이 주어집니다. 예레미야 23:1-4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목장의 양 무리를 멸하며 흩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양 무리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아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내 양 무리의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내어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축이 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예레미야의 말입니까? 여호와의 말씀입니까?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렇게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들이 목자입니다. 그런데 양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습니다. 양들을 흩어버리고, 몰아내고,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응하심으로 왕이 폐위가 되고 포로로 잡혀감으로 양들도 흩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양떼들을 다시 모아 오신다고 합니다. 그들 위에 목자를 두심으로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잃어버릴 일이 없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목자를 세우시는 것입니까? 이어지는 예레미야 23:5-8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방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거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키겠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말씀 때문에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가 오히려 다윗을 창조하신 다윗의 주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은 자기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이 아니라 북쪽 땅 곧 바벨론으로 쫓겨났던 곳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야긴 왕이 비록 악을 행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이러한 약속으로 인하여 여호야긴 왕이 고개를 들게 되는 일이 열왕기하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열왕기하 25:27-30절을 보면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지 삼십 칠년 곧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한 원년 십 이월 이십 칠일에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선히 말하고 그 위를 바벨론에 저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위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바꾸게 하고 그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고 저의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정수가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사로잡혀간 여호야긴을 옥에서 풀어내고 그의 머리를 들게 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여 주신다고 합니다. 죄수의 의복을 벗게 하고 일평생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고 그의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았다고 합니다. 죄를 지어 포로로 잡혀간 왕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일하심이 어떤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도 자기의 의로서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의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알게 하시고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4-5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자신들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여호와의 언약을 배반함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그 바벨론에서 다시 여호와의 말씀대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게 돌아온 자들 위에 다윗의 언약을 따른 선한 목자를 세워주신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언약대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면 이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원한 목자가 되시는데 어떤 목자가 되시는 것입니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입니다. 이 주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면 무엇을 인식하게 됩니까? 우리는 출애굽한 자들이 아닙니다. 제2의 출애굽이라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 악한 세대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구원 받은 자들은 이 세대가 악한 세대임을 압니다. 따라서 이 악한 세대를 사랑하다가 이 악한 세대에서 낭패와 실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구원함을 받은 자들은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 자기 몸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찬양하게 됩니다. 이것이 천하를 말씀대로 창조하시고 말씀대로 이끄시며 말씀대로 결론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이 악한 세대에서 주님의 십자가로 건지심을 받고 주님의 몸된 교회가 되었음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오직 우리 주님의 구속의 은혜 위에 굳게 서서 이 악한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게 하시고 오직 우리 주님께 두며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여호야긴과 같이 그 시대 유다 백성들과 같이 멸망의 자식들이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에 참여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세세토록 주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출처] 왕하24장 8-17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여호야긴-손재호 |작성자 상생
여호와의 성전
곽면근 목사
Ⅰ. 배반의 결과
1. 유다의 패망
바벨론이 여호야긴을 포로로 잡혀가는 대신에 유다의 왕으로 세운 사람이 20대 왕 시드기야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시드기야는 바벨론을 배반했는데 불행하게도 배반을 실패했고, 배반의 결과는 아주 혹독했습니다. 어차피 바벨론에 의해 왕이 되었으니 이미 바벨론의 속국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아직 국가라는 명분은 있었는데 잠시 배반을 했고 바벨론에 의해 침략을 받고 전쟁에서 패하여 왕이 사로잡혔으니 이제부터는 공식으로 나라가 패망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남은 것은 점령군의 강포한 행위와 패한 백성의 험난한 삶입니다. 8절에는 연도를 표현하는 기준이 달라졌습니다. 그 동안은 모두 유다의 왕의 통치가 기준이었는데 8절부터는 모든 기준이 바벨론 왕의 통치년도입니다. 본문에 보면 ‘나라가 망했다, 주권을 이양했다, 항복문서에 서명했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대신 사건을 표시하는 기준이 변한 것을 보고 나라가 망한 것을 파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는 것은 세 번에 걸쳐 일어납니다. 1차 포로는 24:2절에 기초합니다. 여호야김 삼년에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유다가 패하고 많은 사람이 포로로 잡혀가고 다니엘이 이때 잡혀갑니다. 이때가 주전 605년경입니다. 2차 포로는 24:8절 이하로 이때에 여러분이 잘 아시는 에스겔이 잡혀가고 이때가 주전 597년입니다. 그리고 3차 포로가 25장 이하이고, 이때가 주전 586년입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하나 있는데 이스라엘이 3차에 걸쳐서 포로로 잡혀가는데 반대로 유다로 귀환하는 것도 3차에 걸쳐서 일어납니다. 1차가 스룹바벨의 인도로 주전 538년에 돌아오고, 2차가 에스라의 인도로 주전 458년에 돌아오고, 3차가 느헤미야의 인도로 주전 432년에 돌아옵니다. 70년을 이해할 때 하나는 포로 귀환을 기준으로 삼아 1차 포로가 608년 영이고 1차 귀환이 538년으로 계산하는 방식과, 다른 하나는 성전을 기준으로 삼아 성전이 파괴된 것이 주전 586년이고, 학개와 스가랴 시대에 성전이 재건되는 것이 주전 516년으로 성전이 파괴되고 새로 지어지는데 70년이 경과된 것으로 계산합니다.
2. 배반의 결과
왕하 17장에서 북 왕국 이스라엘이 패망하고 25장에서 남 왕국 유다가 패망하는데 두 나라의 패망을 소개하는 본문에 유독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배반’입니다. 17:4절에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가 앗수르를 배반한 결과로 북 왕국이 망했습니다. 18:7절에 유다의 히스기야가 앗수르를 배반하였는데 화친을 위해 성전의 은금을 털어다 주기까지 했습니다. 24:1절에 여호야김이 바벨론을 배반한 결과로 유다의 1차 포로가 사건이 일어납니다. 24:20에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한 결과로 유다가 패망하고 3차 포로 사건이 일어납니다. 북 왕국이 앗수르를 배반했다가 앗수르에 의해 망했고, 남 왕국이 바벨론을 배반했다가 바벨론에 의해 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순종의 징계로 이스라엘을 패망케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한 것은 한 두 번이 아니고, 어제 오늘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앗수르처럼 행동하셨다면, 바벨론처럼 반응하셨다면, 즉 인간들이 배반자를 다루듯 이스라엘을 다루셨다면 이스라엘은 진작에 망했어야 합니다. 왕정시대는 고사하고, 사사시대는 고사하고, 아예 광야에서 몰살당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버리고, 떠나고,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기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배반자 다루듯이 보복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왕이요, 이스라엘의 책임자요, 이스라엘의 보호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열왕기는 이스라엘의 패역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돌보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통해 과연 누가 이스라엘의 왕이며, 과연 왕의 역할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오면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나름대로 자신들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여 가나안 족속을 살려두어 노역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왕정이 끝날 때에 더러는 바벨론으로 잡혀가고, 더러는 애굽으로 도망하고, 가나안에 남은 사람들은 포도원에서 노역을 했습니다. 자신들이 행한 대로 당하고 있음을 통해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지적합니다.
Ⅱ. 여호와의 성전
1. 여호와의 신앙
열왕기서는 나라가 패망한 것에 대해 독립을 잃었다는 것을 슬퍼하거나, 주권을 상실했다는 것을 애통해하거나, 영토를 빼앗긴 것을 탄식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나라가 패망한 것을 묘사할 때 한편으로는 조상들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후손들이 애굽으로 잡혀가고, 선조들이 갈대아 지역에서 나왔는데 후손들이 갈대아 지역으로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묘사해서 이스라엘의 어리석음 결과를 지적해 줍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의 대표, 이스라엘이 스스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택한 왕의 말로 즉 한 왕은 애굽으로 포로로 잡혀가고, 다른 왕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고, 또 다른 왕은 눈이 뽑혀지는 모습을 통해서 왕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왕이 백성을 위해 싸워주기를 바랬던 백성들이 기대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지적해 줍니다. 열왕기는 나라가 패망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생각이 얼마나 틀렸는지를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이 바로 성전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이 범죄 한 후 하나님께서 여호와를 알리시는 계시하신 내용이 창12장부터 호24장까지로 장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성취하신 내용이 여호와 신앙의 핵심, 여호와 신앙의 정석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는 부족함이 없고, 결함이 없습니다. 당연히 수정이 없고, 개선이 없고, 보완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사기에서 하나님께서 사사를 동원해 새로운 규정, 새로운 신앙, 새로운 종교 양식을 만드신 것이 없습니다. 예언자들이 등장해서 예언을 하지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수정하지 않습니다. 사무엘 시대에 성전이 없어서 여호와가 거주하기에 불편하신 적이 없고 이스라엘도 성전이 없어서 여호와께 간구하기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습니다.
2. 이스라엘의 신앙
왕정제도 자체가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왕을 자신들의 통치자로 세운 것이기에 왕정제도는 하나님을 버린 것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열왕기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신앙은 바른 모습이 아니라 모두 변질된 모습, 왜곡된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를 통하여 가르쳐준 여호와 신앙의 정석을 떠나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종교의 모습을 만든 것의 상징이 바로 성전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성전이 필요했다면 진작에 하나님이 세우셨을 것인데 하나님은 성전을 언급하지 않으셨고, 성전 없이도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섬기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왕정시대에, 왕이 여호와의 신앙, 여호와의 종교를 변질시킨 상징이 바로 성전입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성전을 지어놓고, 자신들이 의도한 성전의 기능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왕상 8장에서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 할 때 여덟 차례에 걸쳐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구원해달라’고 아주 멋진 기도를 했지만 이스라엘은 왕정 시대에 성전을 향하여 기도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왕이 병이들면 도리어 다른 신에게 찾아갔고, 이스라엘이 이방이 쳐들어오면 도리어 다른 이방나라에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성전을 사용한 것은 이방에게 조공을 드리기 위해 성전의 은금을 거두어간 것과, 다른 이방의 신들을 수입했을 때 그 신들을 모실 곳이 없으면 여호와의 성전에 둔 것 뿐입니다. 여호와의 성전은 본의 아니게 여러 신들이 모셔져있는 만신전이 되어버렸습니다.
3. 성전의 재건
여호와의 성전이 파괴되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교적인 관점에서 여호와 신앙의 중심, 여호와 종교의 중추인 성전이 무너졌다고 애통해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이 무너질 것도 예언하시고 70년이 지나면 성전이 재건될 것도 예언하셨지만 백성들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망은 여호와 성전의 재건이나 여호와 신앙의 회복아 아니라 오직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이 파괴됨으로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종교를 조롱하고, 왕정사 이후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성전회복이 아니라 여호와를 아는 마음을 회복하여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