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책임
애 4:11-16
11 여호와께서 그의 분을 내시며 그의 맹렬한 진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지르사 그 터를 사르셨도다
12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13 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14 그들이 거리 거리에서 맹인 같이 방황함이여 그들의 옷들이 피에 더러워졌으므로 아무도 만질 수 없도다
15 사람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기를 저리 가라 부정하다, 저리 가라, 저리 가라, 만지지 말라 하였음이여 그들이 도망하여 방황할 때에 이방인들이 말하기를 그들이 다시는 여기서 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16 여호와께서 노하여 그들을 흩으시고 다시는 돌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으며 장로들을 대접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애 4:11-16 / 여호와께서 분통을 터뜨리셔서 마구 화를 내셔서 시온에 불을 지르셨다. 그 기초까지 태워 버리셨다. 12) 세상 임금들도 믿지 못하였다. 땅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원수들이, 적들이 예루살렘 성문으로 쳐들어갈 줄은 정말 몰랐어라. 13) 그 예언자들의 죄가 그렇게 될 줄이야. 그 제사장들의 허물이 그렇게 될 줄이야. 저 종교 귀족들이 바르게 살려고 올바르게 살려고 몸부림 치는 이들의 그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저들이 마구 살해한 까닭이다. 14) 저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온 몸에 피투성이가된 채 앞못보는 이들처럼 길거리를 헤매었다. 하여 어느 누구도 그 더러운 옷을 차마 만질 수 없었다. 15) 사람들이 저들에게 소리 질렀다. `물러서라, 물러나거라. 우리를 건드리지 말아라. 어서 없어지거라, 멀리 사라지거라.' 이렇듯 저들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돌며 방황하였다. 누구 하나 저들을 반겨 주는 이 없었다. 16) 여호와께서 얼굴을 돌리셨다. 외면하셨다.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아예 저들을 쫓아버리셨다. 우리 제사장들에게 우리 예언자들에게 관심조차 갖지 않으셨다.
이스라엘의 패망을 몰고 온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곧 언급되겠지만(4:17) 이스라엘의 타락과 심판이란 열매가 맺힌 일에는 분명 백성들의 어리석음이라는 원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타락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잘못된 영적 지도는 이스라엘을 심판과 패망으로 이끌었습니다. 글쓴이는 본문에서 종교 지도자들을 집중적으로 책망합니다.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11-13) 예루살렘은 천연의 요새로서 침략을 막을 수 있는 최적의 지형을 갖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성안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이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 요소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은 절대 멸망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함락당했습니다. 대적들이 성전을 파괴하고 성읍을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 나라에게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그 성을 대적에게 붙이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타락을 이끈 사람들은 여호와 신앙을 지탱하는 두 축인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거짓 계시로써 백성들을 미혹했습니다. 타락한 제사장들은 재물을 탐하며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제사를 드리도록 부추겼습니다.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죄를 고발하고 지적하는 의인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왕하 24:4; 대하 24:20-22). 글쓴이는 이스라엘의 타락과 패망이란 열매가 맺히는 일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합니다.
여호와께서 노하여(14-16) 종교 지도자들의 죄에 분노한 하나님은 그들을 흩으십니다. 이는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죄에 대한 공의로운 반응입니다. 지도자들에게 임하는 심판은 방황입니다. 지도자들은 예루살렘 성읍에서 쫓겨나고 거리를 방황하게 됩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쫓겨나고, 가나안 땅에서도 쫓겨나 마침내 이방 땅에까지 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조차 그들을 배척합니다. 지도자들이 받을 심판에 관한 내용은 나오지만, 회복을 암시하는 구절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는 종교 지도자들의 죄악이 대단히 무겁다는 것에 관한 암시입니다.
적용: 어느 분야든지 지도자의 역할은 큽니다. 지도자 한 사람의 실수와 타락은 개인의 일탈로 끝나지 않고 여러 사람의 멸망이 됩니다.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특히 영혼 인도의 책임을 맡은 지도자를 위해 기도합시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여 대한민국의 4강 신화를 이룩한 박항서 감독은 지금 베트남에서 신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베트남 축구 역사상 첫 AFC 주관 대회 결승 진출. 통일 베트남의 첫 아시안 게임 축구 4강 진출. 그리고 2018 AFF 스즈키 컵 우승. 17경기 연속 A매치 무패 달성. 이렇게 박항서 감독의 위상을 드높인 베트남 축구의 발전은 감독의 파파 리더십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처음 감독으로 와서 베트남어는 한마디도 못 했던 박항서 감독이 선수들과 교감을 위해 선택한 것은 모든 선수에게 먼저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고, 따뜻하게 포옹하며 끌어안았습니다. “우리 팀이 패했을 때 나는 선수들을 더 안아주고 등을 토닥거렸습니다. 내가 그런 행동을 하자 선수들도 점점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박항서 감독의 아버지 같은 따뜻한 마음과 접촉이 ‘파파 리더십’이란 단어가 생겨난 이유입니다.
< 설 교 >
모이자, 하나되자, 기도하자
애 4:10-17 / 김삼환 목사
신앙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믿고 하나님이 이 모든 만물을 다스리신다라는 것을 믿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 때 신앙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삽니다. 우리가 확실히 믿는 분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믿음 그 믿음과는 다른 믿음 즉, 우리를 창조하신 우리 모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내 길을 인도하시는 그 분에 대한 믿음을 가지려 살아가는 것이 성도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믿음을 부정하고 믿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식은 신앙이 될 수가 없습니다. 지식으로 문제를 다 풀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우리 지식은 위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식이 있어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넘어가지 않습니다. 모든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지식이 전부라는 생각을 갖지 않고 하나님이 전부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보면 인간의 모든 삶은 지식이나 물질이나 권력이나 인간의 힘으로 다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늘 경험하는 것입니다. 저는 농민의 아들이니까 농사를 지어보면 노력으로만 안 됩니다. 힘으로만 안 됩니다.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적당한 때에 비도 주시고 햇빛도 적당하게 주시고 홍수도 없게 하시고 태풍도 없게 하시고 다 도와주셔야 됩니다. 다 되어도 마지막 가격도 잘 받도록 도와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지난해에도 저희 지역에 우박이 떨어져 사과 농사 1년 준비 다 한 것이 우박이 상처를 내니까 과수원이 다 망해 버렸습니다. 잘 되어도 한번만 날씨가 나빠지면 수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서리 한번만 와도, 서리가 조금만 일찍 와도 다 거두지 못하는 것을 늘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사업도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됩니다. ‘사업’ 한순간에 넘어질 수 있습니다. ‘정치’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됩니다. ‘자녀’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됩니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볼 때는 부모들이 왜 저렇게 밖에 못 사냐 하지만 살아보면 얼마나 가정의 생활이 어려운지 건강하게 사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살아보지도 않고 사는 것을 비판하면 안 됩니다. “자녀를 저렇게 기르냐.” 길러보세요. 자녀들이 마음대로 잘 기를 수 있나. 한마디도 안 듣습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길러보지도 않고 큰 소리 치면 안 됩니다. 세상만사가 다 어렵습니다. 목회를 안 하시는 교수들이 보면 “목회 저렇게 하냐” 목회해 보세요.
어렵습니다. 교회에는 별의별 성격을 가지고 별의별 문제를 가지고 온 분도 30%인데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막상 만나보면 한 사람 문제 해결하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목회는 저절로 설교만 하면 되는 줄 아는데 주일날 예배시간에만 설교하는 것이지 항상 내려가 있습니다. 항상 어려운 문제와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도와주시면 할 수가 없습니다. 좋은 교인을 만들고 좋은 교회를 만드는 것은 목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성도를 감동하시고 은혜 주셔야 하지 주의 종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정이나 사업이나 모두 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됩니다. 애국가에 있는 대로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제가 우리나라 대통령 취임식을 여러 번 참석해 봤습니다. 참석해 보면 느끼는 것이 ‘저렇게 이야기하면 될까.’ 신앙을 가지고 들어 보면 ‘아니다’라는 것을 늘 느꼈습니다. 제가 미국대통령 취임식에 보면 우리보다 백배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취임사를 그렇게 안 합니다. 신앙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지난날에 대해서 수많은 감사를 하고 국민들에게 모두 고마움을 전하고 저를 도와달라고 합니다. 국민들에게 모두 힘을 주고 용기를 줍니다. ‘내가 뭘 하겠다’라는 말은 거의 안 합니다. 우리는 전부 ‘내가 하겠습니다.’ ‘내가 꼭 반드시 하겠습니다.’ ‘틀림없이 하겠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합니다. 합니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면 자기 혼자 사는 것도 어렵습니다.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한 생명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머리 털 하나도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나라를 마음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미국의 유명한 포드 대통령(제럴드 포드, 제38대 미국 대통령)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저를 도와주시면 저도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일하겠습니다.” 이것이 대통령 취임사입니다. 레이건 대통령도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 클린턴 대통령도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 연설 중간에는 신앙의 말을 하고 마지막은 다 “하나님 저를 도와 주세요라“고 매듭짓는 것입니다. “나를 계속 도와주세요.” 하나님이 안 도와주시면 안된다라는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 가운데도 큰 소리 치는 분이 있었습니다. 미국 대통령 취임사 가운데 윌리엄 해리슨이라는 분이 취임사를 했는데 8445개의 단어를 가지고 취임사를 했습니다. 얼마나 길지요? 폭우 속에서 취임사만 1시간 45분을 읽었습니다.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지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두 장엄하게 말했지만 그는 취임사를 끝내고 폐렴에 걸려서 한 달 만에 죽었습니다. 대통령 마음대로 안 됩니다.
자기 생명도 자기 마음대로 안 됩니다. 이 모든 것을 잡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정치를 하든 사업 하든 공무원이든 가정을 지키든 무엇을 하든 다 좋은데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됩니다. 우리가 끝까지 잘 갈 수 있다면, 끝까지 잘 가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믿음으로 살아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경주하는 경주자가 다 달려가도 끝에 1미터만 남겨두고 넘어져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50년, 60년 승리했다고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잘 달려갈 수 있는 길,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내 길을 인도하실 이는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월드컵 축구에도 보세요. 1분 남겨두고 지는 것입니다. 90분 다 해도 후반부 연장전에 마지막 호루라기 부는 순간에 골을 넣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만 져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인생을 다 달려가도 끝까지 승리해야 되는데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지켜주실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믿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우리의 일생을 다 달려가도록 인도하실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개척하고 초기에 교인들은 내 눈에 다 있습니다. 또 그때 모두 열심히 했으니까 내가 교인들을 부모같이 사랑합니다. 어떤 부부는 대기업의 임원이고 잘 살고 사람이 너무 착합니다. ‘세상에 저렇게 좋은 교인이 있나.’ ‘저분은 우리 교회 장로 시켜야지’ 점찍어 놓고 기도합니다. 너무 착합니다. 처가 살림도 챙겨줍니다. 처남도 서울대 공부시킵니다. 어떻게 저렇게 잘할 수 있을까? 집도 좋은 집이고, 그러나 50대 되어서 그 착한 분이 도박에 빠졌습니다. 어느 정도 빠졌느냐 하면 집의 재산은 물론 다 끝내고 처남의 친구한테까지 빌리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담임 선생님한테 사기 치고 빌리고 물불을 안 가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도박에 빠지니까 막무가내입니다. 교인이 착해도 늘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도박을 이겨야 신앙입니다. 도박에 빠지면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든 죄에 안 빠지려고 믿는 것인데, 빠졌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죄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 도박과 불의에서, 악에서 건져주신 하나님, 교회에 나오면서도 예수님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고 도박판에 무엇 때문에 기대합니까? 무엇을 따겠다고 매달립니까? 다 잃어버리니까 이미 중독이 되니까 눈을 감아도 도박장밖에 안 보이니까 거기에 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도박에 빠진 사람이 300만이나 되는 것입니다. 무서운 저주가 아닙니까? 어떤 분도 그렇게 착한 부부인데, 가문도 좋고 가정도 좋고 부인도 미스코리아처럼 너무 잘 만났지만 주식에 빠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 날려버리고 아이들도 다 끝나고 부인도 다 안 되고 자기 생명을 그만 끊어버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식해도 됩니다. 그러나 그냥 하세요. 벌어도 좋고 안 벌어도 좋고 그렇게 부담 없이 하세요. 그러나 주식에 대한 신앙을 갖지 마세요. 주식을 믿지는 마세요. 그러니까 믿지 말라고 주가가 오르락 내리락 하지 않습니까? 이런 이야기는 한도 끝도 없습니다. 너무 우리의 좋은 가정들이 무너지고 파괴되는 것은 신앙을 갖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착한 것 좋습니다. 그러나 착해서 세상 못 이깁니다. 승리할 수 없습니다. 가정 생활, 처가에 잘해 주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믿음 가지고 있어야 끝까지 갑니다. 가다가 넘어진다라는 것입니다. 이런 함정에 걸린다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오는 것은 누구인들 안 오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잘 될 때도 하나님을 잘 믿어야 되고 어려울 때도 잘 믿어야 되고 환란을 당했다고 금방 생명을 끊어서는 안 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 앞에 나오면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 회복하시고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택한 백성에게도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읽어드린 이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에 붙잡혀 가서 바벨론이 망하고 페르시아가 세계를 지배할 때입니다. 이 때에 참 기적 같은 은혜가 주어졌는데 B.C 480년경인데 에스더라고 유대인 여자가 임금님의 중전으로 기적같이 간택된 것입니다. 임금님이 결혼하려고 하면 처녀들은 한 달 동안 결혼을 못합니다. 누가 될지 모르니까 다 준비하고 있어야 됩니다. 그때 많은 처녀들이 준비를 하고 임금님 중전이 되려고 했는데 에스더가 된 것입니다. 에스더는 부모도 없습니다. 자기 사촌 오빠 모르드개하고 같이 있었는데 된 것입니다. 유대인인 것을 감추고 중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중전이 된 다음 자기 오빠와 같이 있을 수는 없으니까 궁궐 문을 지키게 했습니다. 늘 궁궐을 드나드니까 그 때 눈으로라도 인사라도 하려고 오빠를 거기에 세워 놨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 아주 교만한 하만이라고 하는 총리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교만한지 전부 무릎을 꿇어야 되는데 모르드개가 그에게 꿇지 않으니까 미워해서 죽이려고 하다가 보니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고 힘이 워낙 넘쳐서 유대인을 다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금님에게 가서 도장을 받아서 모든 페르시아에 사는 유대인들을 다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온 유대인들이 다 울고 곡성이 진동하지만 에스더는 이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더에게 알리는 길은 자기밖에 없으니까 머리를 늘어뜨리고 험한 옷을 입고 문지기로 서 있을 때에 에스더가 오빠를 보고 왜 저렇게 되었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몰라서 사람을 보내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너는 궁궐에 있으니까 이것을 모르지 우리는 다 죽게 되었다. 하만이 나만 죽이려는 게 아니라 유대인을 다 죽이려고 한다. 내가 지금 사는 길은 너 밖에 없다. 네가 임금님에게 나아가서 너가 말해야 우리가 살지 다른 길은 일체 없다.” 그러나 에스더가 말하기를 참 좋은 방법이지만 내가 지금 임금님에게 갈 수가 없다는 거예요. 임금님이 나한테 안 온지가 한 달이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임금님이 안 오는데 내가 임금님에게 가면 국법으로 죽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갈 수가 없습니다. 길이 없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까 모르드개가 말하는 것입니다. “너가 안 가면 우리는 다 죽는다. 그런데 우리만 죽으면 너는 살 줄 아냐? 너도 숨기지만 언젠가는 너도 유대인이라는 것이 드러날 수 있어. 너 혼자는 못 살 거야. 이때를 위해서 네가 중전이 됐는지 어떻게 아느냐. 하나님이 이 민족을 구원하려고 너를 세웠는지 어떻게 아냐. 너 혼자 그렇게 있을 거냐. 신앙을 가져라.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라. 될 거다. 임금님이 너 안 죽인다. 될 것이다. 국법을 어기고 임금님 앞에 나아가라.”
그 때 에스더가 말합니다. “하겠습니다. 나가겠습니다. 그 대신 기도 해 주세요. 기도 하면 길이 열립니다. 삼일 동안 수산성에 모여서 기도해 주세요. 그러면 내가 나가겠습니다.” 그때 온 나라가 모여서 기도하고 삼일 만에 에스더가 임금님 앞으로 갑니다. 궁궐 어전으로 갑니다. 살짝 가는데, 임금님의 사랑이 식었는지 뭔가 문제가 있어서인지 임금님이 안 나옵니다. 그런데 임금님이 보더니만 “중전이 어떻게 여기에 오셨냐”고 너무 반가워하는 것입니다. 그 때 중전이 임금님이 너무 좋아서 뭐가 할 말씀이 뭐냐고 그러니까 “내일 저녁에 시간이 있으시면 저에게 오십시오. 하만 국무총리하고 같이 오세요. 제가 음식을 맛있게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말도 믿음의 말을 해야 됩니다. 만약에 에스더가 임금님에게 “왜 안 왔냐고, 바람났냐고, 어디에 문제 있냐고, 내가 싫으냐고, 싫으면 말을 해야지, 나는 외로워 죽겠습니다.” 이렇게 한번 말해 보세요, 뭐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에스더가 아주 지혜롭게 신앙의 말을 합니다. “내일 저녁에 오시면 제가 음식대접을 해드리겠습니다.” 이래서 이 문제를 풀어가지고 하만은 오히려 모르드개를 달려고 했던 장대 위에 달려서 죽고 온 이스라엘은 구원을 얻은 그 날을 부림절이라고 해서 오늘까지 유대인이 지키고 있습니다. 이 절기가 바로 오늘 이 말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개인이나 교회나 국가가 어려움을 만날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면 개인의 문제를 풀어주시고, 교회 문제도 모여서 기도하면 교회 문제를 풀어주시고, 민족의 문제도 언제나 모여서 기도하면 국가의 문제를 풀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수산성에 모였을 때 이 나라 전체의 위기에서 건져주시고, 요나서에 보면 니느웨 성도 어려움을 당할 때 모든 분들이 모여서 회개할 때 하나님이 그 민족을 회복하여 주시고 용서하여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모여서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6.25사변의 폐허에서 회복을 시켜 주시고 기적같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일본에서도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의 선물로 놀라운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그 때의 상태는 싸매어졌지만 지금 보이지 않는 내과에 병이 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암이 꽉 찼습니다. 온 나라가 정신적으로 병들었습니다. 가정이 병들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온 나라가 자살하고 이렇게 온 나라에 가정이 무너지고 청소년부터 탈선하고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병들 수가 있느냐? 말입니다. 온나라에 우상이 가득하고 미신을 섬기고 사회가 갈등으로 너도 나도 모두 서로가 미워하고 죽이는 판국이니 이렇게 해서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모여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모이자, 하나 되자, 기도하자. 모이는 것 하나만 해도 놀라운데 하나 되고 모이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을 살리신 하나님이 이 민족을 살려주실 줄로 믿습니다. 어려움은 선민에게도 있고 성자에게도 있습니다. 제일 잘 믿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도, 이삭, 야곱, 요셉, 모세에게도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개인적인 어려움이 많습니다. 어려움은 다 있습니다.
사도 바울 같이 성령 충만하고 기도 많이 한 분이 없지만, 바울 같이 어려운 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하나님이 함께 하는 주의 종이지만 수없이 매 맞고 감옥에 갇히고 발가벗겨서 39번을 5번이나 맞고 산을 넘어서 강도도 많이 만나고 얼마나 공갈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고 바울 죽이려고 몇 십 명이 지키고 있고 이런 위험 바다에서 풍랑 속에 배가 길을 잃고 일주야를 고생도 했다라는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을 다 당했지만 바울이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언제나 주님이 바울 곁에 서 계시므로 기도하면 도와주십니다. 여러분 어려움 당할 때 하나님이 곁에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길이 열립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기도하는 민족을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에 있기 전에 해양연사 교회에 있었지 않습니까? 미사리에서 1970년부터 80년까지 목회를 했습니다. 거기는 연사공장입니다. 교회 옆에 공장이 있었는데 우리 교인중 많은 분들이 연사공장에서 일을 했습니
다. 작업 중에 실이 하나만 딱 끊어져도 기계가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실 찾는데 몇 시간 걸립니다. 못 찾으면 나중에는 직원마다 면도칼을 가지고 있는데, 그 칼로 실을 다 끊어 버립니다. 그 실들을 다 버리고 거기에서 마지막 끈을 하나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 끈을 하나만 찾으면 기계가 다시 돌아갑니다. 오늘 우리가 어려움 당할 때 하나님 앞에 끈을 찾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기도하니까 임금님에게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간단한 데서 문제가 풀어지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국법을 무시하고 왔지만 아내니까 임금님이 “왜 왔냐”고 하면서 문제가 풀어지지 않습니까? 간단한 데서 풀어지는 것입니다. 굉장한 데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가정에 큰 병이 걸려도 누가 와서 뭐 먹고 나았다는 말 한마디 들으면서 풀어지는 것입니다. 병이 낫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국가의 문제나 개인의 문제나 캄캄한 어려움이 있을 때 조그마한 불빛만 있으면 해결됩니다. 제가 어려서 문학전집을 하나 읽었는데 일본책이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 다 덮였는데 그 때 흙더미 속에서 며칠 동안 있었던 한 사람이 조그마한 불빛이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믿음을 갖고 기다려서 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 왜 나옵니까? 끈 찾으러 나오는 것입니다. 굉장한 거 찾는 게 아닙니다. 조그마한 끈이 나의 길을 인도하고 회복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왜 나옵니까? 조그마한 불빛 보는 것입니다. 큰 빛 보는 게 아닙니다. 조그마한 불빛 보면서 우리의 길이 열리는 줄로 믿습니다. 기도 해 보세요. 끈이 보입니다.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면 끈이 보입니다. 끈 찾으러 교회 나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그 끈을 못 찾습니다. 아무리 찾으려고 그래도 찾을 수 없는데 그 가느다란 끈을 기도하면서 찾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분에게 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조그마한 일에 화내는 것이 아닙니다. 조그마한 것을 가지고 집착에 빠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모이는 목적도 국가적인 일로 모이는 것입니다. 거국적인 3.1운동이 있을 때에 교회가 모였습니다. 나라에 위기가 있을 때에 교회가 모여서 나라를 건져내는 것입니다. 교인은 교회가 언론에 공격받았다고 해서 그러한 이유로 교회가 안모입니다. 다른 종교와 다릅니다. 조그마한 기분 나쁜 것 가지고 뭉치고 일어나는데 기독교는 그러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인류를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모이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교인은 기도를 해도 나라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민족의 앞날을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불러주셨습니까? 좋은 일 하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 보면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고 했습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좋은 일을 위하여!
이번에 미국의 대기업들이 6주 동안 세상을 향하여 돈을 내고 기부하는데 운동을 펼쳤는데 40대 재벌이 1,250억불을 내놨습니다. 앞으로 계속 모으면 천억 갈지 모릅니다. 몇 백조가 한순간에 몰려듭니다. 서로 내놓은 것입니다. 재벌들이 자기 재산의 반을 내어 놓았습니다. 여러분, 재벌이라도 사람이 20조 갖는 재벌이 좀처럼 없는데 1,250억불을 내놨으니 얼마나 많이 내어 놓았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돈을 버는 것도 좋은 목적을 가지고 벌어야 됩니다. 신앙을 가지고 벌어야 됩니다. 내 자식에게만 돈을 물려주고 나만 먹고 살려고 하면 그게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는 삶입니다. 나는 우리나라 재벌들을 인정합니다. 우리나라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보면 우리 재벌들이 저런 식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대형 마트가 생기면 동네슈퍼가 다 죽지 않습니까? 구멍가게 일반 서민시장도 살아야 될 것이 아닙니까? 대기업이 뭐 그런 것까지 다 합니까? 콩나물, 생선장사까지 다 뛰어들고? 대기업이면 대기업답게 해야지. 막걸리 장사도 또 한다고 그러는데, 무슨 막걸리를 대기업이 합니까? 미국 보세요. 코카콜라면 코카콜라만 하는 것이지 다른 것 을 안 합니다. 하나만 가지고도 세계 최고의 기업을 만들었지 않습니까? 천개만개의 서민들의 것을(다 가져가면 어떡합니까?) 그리고 돈 벌면 많이 내 놓아야죠. 물론 사회 기여한다고 해도 미국 사람들에 비하면 1/10을 못 따라가지 않습니까? 우리는 억지로 언론이 말하면 조금 내놓어 놓는데, 그러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 나라의 모든 기업만이 아닙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 혼자만 잘되려고 그러면 안 됩니다. 개척교회, 어려운 교회들을 다 생각해야 합니다. 저녁 예배는 주변의 어려운 교회에 모두 가서 예배드리고 헌금도 해 주고 도와주고 여름성경학교도 도와주고 그렇게 하세요. “나는 큰 교회 나간다” 이런 자만을 갖고 살면 안 됩니다. 다 서로 생각해야 됩니다. 이 땅에 내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잠깐 왔다 살다가는 세상에 좋은 일 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나라를 생각하고 모여야죠. 이 민족의 앞날을 서로 사랑하고 기도하고, 그래야 이 나라가 잘 될 줄로 믿습니다. 이 나라가 깊이 병들었습니다. 좋은 꿈을 갖고 좋은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데 말도 보면 너무 말이 험합니다. 욕공화국이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애들부터 어른, 선생님들까지 그렇게 욕을 하니 애들이 다 본받고 있고, 인터넷에도 욕해서 얼마나 연예인도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반성도 안 하고 어떻게 그렇게 욕을 합니까? 온 나라가 욕 천지입니다. 더러운 말을 왜 그렇게 합니까? 악한 말을 왜 그렇게 합니까? 좋은 말을 하세요. 선한 말을 하세요. 나는 어제도 연속극 잠깐 보는데 우리나라 연속극에 나오는데 부인이 남편을 욕하면서 때리는 것입니다. 온 국민이 보는데 남자들이 요새 나가서도 맞고 집에서도 맞고 그러면 어떻게 삽니까? 왜 남자들을 자꾸 욕하고 때리게 만듭니까? 그게 뭐 그렇게 이 문화를 좋은 문화로 만들어야지 방송국이 왜 남자를 자꾸 욕하고 그럽니까? 오늘 이것을 우리가 고쳐야 합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될 것 아닙니까?
기도하면 도와주십니다. 아브라함을 조카 롯을 위해 기도하니까 조카 롯을 건졌습니다. 모세는 미리암이 문둥병 들렸을 때 기도하니까 나았습니다. 저도 부족하지만 나한테 기도 받고 수많은 분이 암이 낫고 수많은 장로님 가정들도 아이들 못 낳아서 아이를 낳고 수많은 장로님들도 다 은혜 받은 것은 기도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도 성도들이 기도하니 감옥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서로 서로 기도해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기도해 주자. 축복해 주자. 사랑해 주자. 할렐루야! 모이자. 모여서 기도하고 말씀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말씀의 권능이 나타납니다. 헬런 켈러는 3중고의 고통을 겪은 사람입니다. 20세기에 최고의 위대한 인물 헬런 켈러는 건강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이분이 “내가 만일 삼일만 하나님께서 눈을 뜨게 해 주신다면” 그러면 첫날은 내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습니다. 만나고 싶습니다. 내 친구를 만나서 그 얼굴 보고 싶습니다.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니 안타깝습니까? 둘째 날은 해가 뜨는 것을 한번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람 걸어다니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숲을 보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셋째 날은 일어나서 해 뜨는 것을 보고 종일 모두 이렇게 사람 살아가는 세상을 보고 난 다음 마지막 저녁은 극장에 가서 희극을 보고 마음껏 웃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축복받은 이 민족, 축복받은 성도 여러분! 감사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 만나서 칭찬해 주세요. 사랑한다고 해 주세요. 짧은 세상이지 않습니까? 하루 이 숲을 거닐고 이 숲이 얼마나 좋습니까? 해가 아침에 떠오르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뜨거운 뙤약볕에 오늘 나갔다가 밖에 못 나오고 병들어 있는 누워 있는 분이 몇 백만입니까? 걷지 못하는 분들이, 병원에 있는 분들이 수도 없이 밖으로 못 나오는 데 여러분이 더운 볕에 걷는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사랑하는 사람 보는 게 얼마나 감사합니까. 저도 그 전에는 집에 늦게 퇴근했지만, 몇 년 전부터는 항상 9시 전에 들어갑니다. 그전에는 12시 전후에 갈 때가 많았습니다. 이제는 다 두고 일찍 들어갑니다. 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집사람이 혼자 있으니까 내가 가서 말동무하고 대화해야지 집에 가서 말도 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말을 하려고 안 하는 겁니까? 칭찬해 주고 “여보, 당신 참 예쁩니다.” 칭찬 놔뒀다가 어디에 써먹으려고 합니까? 그래서 반찬 같이 만들어서 먹고 즐겁게 살아야 될 것 아닙니까? 감사함으로 살아야 될 것 아닙니까? 밥 먹으면서 좋은 이야기해야 될 것 아닙니까? “감사하다, 맛있다.” 이 헬런 켈러 보세요. 모두 반가운 사람 만나서 반갑다며 (감사하고 싶다지 않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이 누리는 혜택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저에게 기도 받는 사람 가운데 어떤 분이 있는지 아십니까? 혀암 걸려서 혀 자르는 분이 있습니다. “목사님, 오늘 저의 혀가 마지막입니다.” 또 어떤 분인지 아십니까? “오늘 눈 실명됩니다.” 이분 수술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도저히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 부목사님 출신도 실명됐습니다. 그 이후로 못 보는 것입니다. 나한테 와도 내 음성 듣고 “목사님, 목사님” 이러지 얼마나 많습니까? 보는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서울을 감사해야 됩니다. 해 뜨는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여름이 오는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여름이 많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여름 몇 번 올 것 같습니까? 겨울은 겨울대로 감사하고 눈 보고 감사하고 모든 만물이 전부 잎이 무성한 여름이 한철밖에 없지 않습니까? 모든 나무들 우거진 이 자연 보고 너무 아름답다, 감사하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이번에 미국 집회에 가서도 그랬습니다. 여러분 미국에 사는 것을 감사하세요. 미국에서 짜증내면 어디를 가야 됩니까? 250만원 들여야 미국 오는데 그 좋은 맨해튼, 허드슨강 보고도 기뻐할 줄 모르는 여러분, 어디에 가십니까? 도무지 현대인들은 내게 주어진 축복을 모르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입만 열면 불평하고 불만하고 (그러면 되겠습니까?). 우리나라 같은 나라가 없습니다. 북한은 지금 어떤 곳에서 살아갑니까? 그런데 북한 사람 제일 잘 웃습니다. 저런 지옥 같은 데서 웃는데, 이 천국 같은 데서 안 웃으면 어디 가서 웃으려 합니까? 웃으며 살기를 바랍니다. 감사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나라 를 사랑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좋은 말하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노래하며 이 은혜를 노래하며 집에서도 가정 천국이 이루어지고 나라와 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는 감사의 백성, 은혜의 백성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거룩 주의 날입니다. 우리 아버지 전에 나아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의 갈 길을 평생 동안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 나와 이 예배를 드립니다. 주여 끝까지 함께 하여 주옵시고 믿음을 가지고 살게 하여 주옵시고 지식이 전부인 줄 알고 권력이 전부인 줄 알고 사는 교만한 분이 한 사람도 없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