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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과와 설교

20200421 / 막 11:27-33 / 예수님의 권위

작성자천성교회|작성시간20.04.20|조회수691 목록 댓글 0

예수님의 권위

11:27-33

첨부파일 20200421.hwp


27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28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31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32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는지라

33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1:27-33 / [권위에 대한 질문;21:23-27,20:1-8] 일행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 예수께서 성전뜰을 거닐고 계실 때에 대제사장과 율법학자와 장로들이 와서 28) `무슨 권한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 누가 당신에게 장사치들을 쫓아낼 권한을 주었소?' 하고 따졌다. 2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내 질문에 대답하면 나도 말해주겠다. 30) 침례 요한을 하나님이 보내셨느냐, 아니면 사람이 보냈느냐?' 31) 그들은 자기들끼리 `만일 하나님이 그를 보내셨다고 대답하면, 그런데 왜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고 32) 또 만일 하나님이 보낸 것이 아니라고 하면 요한을 예언자로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 큰 소동을 일으킬 것이오' 하고 서로 의논하다가 33) `우리들은 대답하지 않겠소' 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러면 나도 너희 질문에 대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성전을 정결케 하시고 성전을 거닐고 계시는 주님과 산헤드린공회의 세 부류인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이 만나면서 예수님의 행위에 대한 권세의 출처로 묻고 답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27-30) 산헤드린공회를 대표하는 세 부류의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은 복음서 후반에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민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몰라서 물어보는 질문이 아니고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의 대답에 대하여 공격하고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종교적으로 매장시키려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어떠한 대답을 하셔도 그들은 그것을 이용해서 예수님을 공격하고 넘어지게 할 것입니다. 이미 그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이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혜롭게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하는 반문을 하면서 예수님의 권세가 하늘로부터 온 것임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31-32) 이러한 예수님의 역 질문은 산헤드린공회를 대표하는 세 부류의 종교지도자들 간에 논쟁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권세가 하늘로 부터라고 하는 참 진리를 분별함으로 참 신앙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들이 속한 단체나 자신들에게 무엇이 유익된 것인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가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 때에도 하늘로부터 온 권세임을 알았음에도 요한을 거절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7:30). 그들은 진실로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두려워했던 것이고 하늘의 것을 사모했던 것이 아니고 땅의 것을 더 사모하며 지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나도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33) 예수님의 참 지혜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더 이상 산헤드린 종교지도자들에게 자신의 권세의 출처를 밝히지 않으시더라도 이미 그들이 세례요한을 통하여 결론을 내린 요한의 권세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을 통하여 예수님의 권세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복이 없는 사람은 그것을 말씀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이셔도 들을 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적용: 우리에게 예배와 말씀묵상을 통하여 전하여지는 말씀의 권위와 출처가 하나님께 있음을 믿으며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느 대형 교회에서 한 자매가 자신의 결혼식의 하객들에게 153 감사 노트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첫 페이지에는 자신의 감사 내용을 일일이 친필로 써서 나누어 줬는데 그녀의 인생은 이미 감사의 싹으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요즈음 감탄과 감사가 메말라 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감탄은 마음속 깊이 탄복하는 것이지만 감사는 느낌 과 말씀언변에 쏘올 ’, 사례할 입니다. 속에 있는 탄복이 화살로 과녁에 쏘아 박히듯 감사로 표현해야 합니다. 153 감사 노트는 하루 한 말씀, 5가지 감사, 3가지 표현하기 입니다. 진정한 감탄과 감사는 예배하는 곳에서 공급받아야 합니다.


< 설 교 >

누구의 권위인가?

이종철 목사

 

예수님의 권위

이스라엘의 지도층을 대표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과 장로들이 예수님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런 일이라 함은 앞의 14절에서 18절의 성전 정화 사건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있는 장사치들을 몰아내고 상을 뒤엎은 일을 가지고 어떤 자격으로 이런 일을 했는지 물은 것입니다. 이들이 생각하기에 예수님은 변변한 학파나 랍비 출신이 아닙니다. 출신이나 혈통도 잘 알 수 없으며, 성도 예루살렘이 아닌 변방의 갈릴리 출신입니다. 도무지 어떤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사람의 권위를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주님은 이 질문에 즉답하기보다는 먼저 세례 요한은 무슨 근거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역으로 물었습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지도층들은 알지 못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실은 대답하기가 곤혹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즉 하나님의 권위와 뜻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인정하면 세례 받지 않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긴 결과가 됩니다. 또 요한의 세례가 하늘이 아니라 인간적인 뜻과 의지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한다면 백성들의 반감을 살 것을 우려했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요한의 세례를 받으며 이 운동에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비겁합니다. 어느 쪽 대답도 불리하다고 생각하여 모른다고 한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다면 자신도 자기 권위의 근거에 대해서 대답할 수 없다고 하면서 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지혜롭게 위기 상황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스스로의 행동을 감추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 장면은 이스라엘 지도층이 가진 완악함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권위가 어디로부터 나오는지 이미 밝히셨습니다. 하늘로부터 온 권위로 세례를 베풀었던 요한이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증거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1:11)는 음성이 만천하에 들렸습니다. 성전 정화를 하신 이유도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할 성전이 장사치의 소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세상의 권위나 정당성을 따지기 전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이 이런 일을 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 열정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요한복음에서는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2:16)는 말씀을 전함으로 그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성전정화 사건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하늘로부터 온 권위를 의지하여 하셨습니다. 개인의 위대한 각성이나 통찰에서 행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뜻하셨고, 하나님이 명령하셨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그것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받으셨던 무슨 권위로 이 일을 하느냐는 질문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주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맡은 직분의 근거가 사람으로부터인지 하늘로부터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으로부터라고 한다면 그 일은 상황에 따라 쉽게 바뀔 수 있는 임의적인 것이요, 확신할 수 없는 우연한 것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하늘로부터라고 한다면 그것은 매우 무거운 것이요, 절대적인 확신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목회직은 겉으로 보면 사람이 결정한 것처럼 보입니다. 목회를 여러 직업의 일종으로 선택했습니다. 신학교를 자기 돈 주고 다닙니다. 목회자라는 사람들이 머리에 안수를 하여 목사로 세웠습니다. 성도들이 청빙하여 교회의 담임목사로 세웁니다. 또한 사람들이 원하면 그 자리에서 내어 쫓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목회자라는 권위는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세우셨다고 믿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고전12:28) 하나님이 세우셨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하나님이 세우셨기에 그 권위의 근거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로 세우심을 받은 자나,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목회자를 세우는 성도들이나 모두 그 일을 사람의 감정이나 이익을 좇아서 행할 것이 아니라 매우 무겁게 대하여야 할 것입니다.

집사나 장로나 교사 등 교회의 여러 직분도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확신과 무게를 가지고 사역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세상 속에서 다양한 직업과 사역들로 하나님으로부터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천직(天職)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늘이 준 직업이나 직분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의 권위가 하늘로부터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자기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사랑과 확신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서 이 일을 택한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사명으로 나를 이 일로 부르셨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직분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부모로서의 막중한 책임감과 권위와 사랑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권위

자신의 권위의 근거에 대하여 가장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으로 사도 바울을 들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사도로 세우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확신을 가지고 밝힙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서신서의 서문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대표적으로 로마서 11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1:1). 갈라디아서 11절입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갈라디아서 115절에서는 하나님이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어떤 인간적인 권위나 결단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처럼 자신의 사도직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에 대한 의심과 도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선교 역사를 열어간 대 사도였지만 당시에는 볼품없는 작은 사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리새인 출신으로서 율법 교육을 받은 대단한 인물이었을지 모르지만 교회 안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를 직접 대면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임명한 열두 제자나 사도에 들지 못했습니다. 또 초대교회를 이끌었던 베드로나 야고보와 같은 대사도로부터 임명되거나 추천을 받은 그런 사도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3년 후에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났고, 이때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사도로 임명되었습니다. 본인에게는 대단한 사건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객관성이 없는 한낱 체험에 불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바울의 사도권을 공격했습니다. 정식 사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에 보면 예루살렘 사도들이 써준 추천장을 들고 다니는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고후3:1) 바울은 이런 추천장을 들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열두 사도와 같이 유력한 사도들이 있었지만 바울은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갈라디아서 26절입니다.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고린도후서 1211절에서는 이렇게까지 고백합니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왜 그랬을까요? 권위는 학벌이나 외모로부터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며 실제 누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사도됨의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후12:12) 말이나 외모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능력과 열정입니다. 능력과 열정은 그 권위가 하늘로부터 왔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고백합니다. 자기를 종으로 세우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자신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충성된 종이라는 것입니다. 권위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는 그런 점에서 존엄합니다. 왕의 사신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는 권위가 있습니다. 자기의 깨달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도 이런 권위의식이 필요합니다. 거드름 피우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에 확신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자기 권위를 잃어버리니 싼 값에 자기를 팔아버리고, 비굴해지고, 열정이 없습니다. 확신이 없습니다. 하늘로부터 온 권위를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카리스마입니다. 원래는 은사 또는 선물이라는 뜻이지만 요즘은 어떤 능력이나 무게감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아우라(고고한 분위기)라는 말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범접할 수 없는 무게입니다. 이 위엄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기도 하고 무릎 꿇게도 합니다.

동양에서는 이런 사람을 대장부라 칭합니다. 맹자등문공편에 나오는 대장부의 정의입니다. “천하라는 넓은 거처에 살며, 천하의 올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큰 도리를 행하며, 지지를 얻으면 사람들과 함께 그 도리를 행하고, 지지를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리를 행한다. 부귀의 유혹도 그 마음을 더럽게 할 수 없으며, 가난의 어려움도 그의 마음을 바꾸어 놓지 못하며, 위세나 무력도 그 마음을 굽히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일컬어 대장부라고 한다.” 예수님이 대장부셨고, 사도 바울이 또한 대장부였습니다. 이들이 대장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기라는 존재가 또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하늘로부터 주어졌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의 권위

선지자들 또한 하나님의 권위로 선포했던 사람들입니다. 선지자들이 늘 했던 말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이 말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로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하나님 말씀으로 들었을까요? 예수님 시대의 지도층이 깨닫지 못했듯이 이스라엘 백성 또한 그렇지 않았습니다. 정작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는 외면했고, 나중에 그것이 정말 하나님 말씀이었음을 깨닫고는 그 선지자의 말을 거룩한 성경으로 인정했던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였습니다.

우상숭배 금지와 윤리적인 각성을 촉구하는 종교적, 도덕적 선포에서는 저항은 있었지만 혼란은 덜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의 정치적인 설교에서는 혼란이 극심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의 심령을 향하거나 단순히 도덕적 각성만을 촉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회 역사를 향한 말씀이기에 정치적일 때가 많았습니다. 이때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이익에 따라 하나님 말씀을 판단하고, 이 결과 하나님 말씀은 한쪽 편을 지지하는 것으로 격하 될 때가 많았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노선으로 따지면 중립 노선에 가까웠습니다. 아람과 북 이스라엘 동맹군이 유다를 쳐들어왔을 당시 유다의 아하스 왕은 앗수르에 원병을 청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이사야 선지자는 어리석은 계약을 맺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할 것을 촉구합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7:9) 시대가 바뀌어 앗수르가 위협이 되자 이번에는 애굽에 원병을 청하려 하였습니다. 이때도 이사야 선지자는 애굽의 말과 마병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촉구합니다.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30:15) 이사야가 제시한 길은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이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중립에 대한 요구로 비추어졌습니다. 친 앗수르파나 친 애굽파는 동맹을 맺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강변하지 않았을까요? 이들은 거짓 선지자로 낙인찍히고 결국 이사야의 노선이 옳았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을 통한 이스라엘의 심판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며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외쳤습니다. 이에 반대하여 하나님이 바벨론의 침공으로부터 구원할 것이라고 외쳤던 선지자도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친 바벨론파로 다른 선지자는 애국주의 세력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결과는 예레미야의 말이 옳았음이 증명되었고 다른 선지자들은 거짓 선지자로 판명되었습니다.

바벨론 포로기 말기에 나타났던 제2이사야 선지자는 바벨론에서 해방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후 바벨론을 무너뜨리게 될 페르시아를 지지하는 발언을 합니다. 이는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발언이었습니다. 때문에 제2이사야는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40장에서 55장에 이르는 제2이사야서에는 모두 4개의 고난 받는 종에 대한 예언이 나오는데 일차적으로 이 고난은 제2이사야 선지자가 당했던 고난이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은 유다 포로민들에게 매우 위험한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라고 외쳤지만 세상은 그것을 정치적으로 해석을 하였습니다.

문제는 우리들입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권위에 의거해서 말씀을 전했지만 우리는 어떻게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인지 깨달을 수 있습니까? 사실 혼란스러운 것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우리 마음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결과적으로 역사적 성취로 확인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바른 이성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바로 역사의 그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참된 선지자의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그것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시대적 상황을 판단해볼 능력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문제는 우리 마음이 복잡하고 탐욕과 정치적 이해관계로 얽혀 있어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성경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교리적으로는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은 성경 66권으로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셔서 역사하십니다. 계시가 66권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은 이제 성경 66권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기에 충분하다는 의미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사람에게서 왔는지 판단하는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에 근거하고 있으면 우리는 그 말씀의 권위가 하나님께 있다고 규정합니다.

지난 주간에는 가톨릭 한 신부가 시국미사에서 한 발언이 문제가 되어 소란스러웠습니다. 반민주 대 종북 논쟁으로 비화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한 뉴스 앵커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신부가 가난한 아이에게 빵을 주면 훌륭하다는 칭찬을 듣지만, 그가 왜 가난한 것인지 사회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면 빨갱이라 비난을 듣게 된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이웃을 돕자는 말을 하면 설교가 은혜로웠다고 하지만 이들이 가난하게 된 사회현실과 구조를 지적하면 설교가 정치적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정치적이 아닌 게 어디 있습니까?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도 어김없이 정치적 논쟁에 휘말렸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 이해에 비추어서 판단하지 말고 성경이 우리에게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정의, 평화, 생명, 사랑, 화해, 통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정신에 기초해서 오늘 우리 한국사회의 문제들을 보면 하나님의 뜻이 명확히 보일 것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를 가지고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권위는 덧없고 흔들립니다. 하나님의 권위로 일하는 사람은 굳건한 반석처럼 흔들림이 없습니다. 또한 우리 귀와 눈이 열려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순종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례 요한의 운동과 그 메시지를 따랐던 사람들이 있고 거부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분으로 알며 그분을 예배하고 찬양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에 그 권위를 의심하고 끝내는 죽이기까지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편입니까? 노골적으로야 예수님을 죽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순간순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고 이 세대의 정신을 따라 산다면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서서히 죽어갈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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