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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과와 설교

20200905 / 겔 3:1-15 / 말씀선포의 명령

작성자이윤형원로목사|작성시간20.09.04|조회수877 목록 댓글 0

말씀선포의 명령

3:1-15

1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4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5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6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그들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할 나라들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으리라

7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8 보라 내가 그들의 얼굴을 마주보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마주보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9 네 이마를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두려워하지 말며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라 하시니라

10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11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12 때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리시는데 내가 내 뒤에서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니 찬송할지어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의 처소로부터 나오는도다 하니

13 이는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와 생물 곁의 바퀴 소리라 크게 울리는 소리더라

14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가니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시키시더라

15 이에 내가 델아빕에 이르러 그 사로잡힌 백성 곧 그발 강 가에 거주하는 자들에게 나아가 그 중에서 두려워 떨며 칠 일을 지내니라

3:1-15 / 주께서 또 내게 말씀하셨다. `너 사람아, 이 두루마리를 받아 먹어라!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서 전하여라!' 2-3) 주께서는 내게 그 두루마리를 내어 주시면서 다시 말씀하셨다. `너 사람아, 이 두루마리로 양식을 삼고 네 배를 그것으로 가득히 채워라!' 그래서 내가 그 두루마리를 먹으니 입에 그것이 꿀처럼 달았다. 4) 주께서 또 내게 말씀하셨다. `너 사람아, 이제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서 내가 네게 당부한 모든 말을 일러주어라. 5) 나는 너를 말이 다른 어떤 이방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너의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낸다. 6) 네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쓰는 다른 민족들에게 내가 너를 보낸다면 오히려 그들이 네 말을 들을 것이다. 7)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나를 전혀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각은 반항에 차 있고 그들의 마음은 굳게 닫혀있다. 8) 그러나 나는 네 마음도 그들에 못지않게 굳고 강하게 만들어 놓겠다. 9) 나는 네 이마를 차돌보다 더 단단하게 만들어서 금강석처럼 강한 사람이 되게 하겠다. 그러니 너는 이 반항하는 백성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아라!' 10) 주께서 내게 계속 말씀하셨다. `너 사람아, 똑똑히 듣고 내가 하는 모든 말을 네 마음에 새겨라. 11) 그리고 네 백성 가운데 포로로 끌려온 저 사람들에게 가서 그들이 듣거나 듣지 않거나 상관하지 말고 나 여호와가 네게 이르는 말을 전하여라.' 12-14) 그때에 하나님의 영이 나를 들어 올려 먼 곳으로 데리고 가셨다. 내 뒤에서는 땅이 흔들릴 만큼 큰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늘의 처소에 계시는 여호와의 영광을 찬양하여라!' 그 소리에 뒤따라 생물들의 장엄한 날개 소리와 지축을 흔들며 굴러가는 바퀴 소리가 들렸다. 나는 주님의 손이 나를 꼭 붙잡아 데리고 가시는 것을 깨닫게 되자 더없이 마음이 떨리고 한편으로는 막막해졌다. 15) 나는 그발 강가의 성읍 델아빕에 사는 포로민들에게 이르렀다. 나는 그곳에서 7일 동안 온몸이 굳어져서 꼼짝 않고 앉아만 있었다.

 

전장의 내용에 이어 계속해서 부르심을 받은 에스겔이 말씀 전파의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몇 가지 준비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1-3) 먼저 에스겔은 하나님을 배워야하고 그의 두루마리 말씀을 먹고, 배에 넣고 창자에 채워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의 명령은 이미 28절에 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에스겔은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합니다(1:9).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거룩한 두루마리 말씀을 발견합니다. 이제 에스겔은 입을 크게 벌려 그 분이 먹여주시는 그 두루마리 말씀을 배에 가득 넣어 채웠습니다.(15:16; 20:9; 4:20) 에스겔은 하나님이 먹여 주시는 그 두루마리 말씀의 맛은 달기가 꿀 같더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 표현은 시편과 요한계시록에도 등장합니다(19:10; 119:103; 10:9, 10).

 

네 이마를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4-11) 에스겔이 보냄 받은 민족은 언어가 다르거나 말을 알아듣지 못할 열국에 보내는 것이 아닌 동일 언어를 사용하는 동족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듣고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얼굴에 쇠가죽을 쓴 고집 센 자들처럼 너 에스겔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네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을 무시하고 찔레와 가시처럼 둘러싸 찌를 것이며 떼를 지은 독벌레들처럼 몰려와 물고 집어 뜯으리라는 것입니다. 만일 요나처럼 동족이 아닌 다른 민족에게 보냈더라면, 그 다른 민족은 네 말을 들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아가는 에스겔을 네 이마를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고 듣든지 안 듣든지 경고의 하나님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올려 데리고 가시는데(12-15)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라는 백성들의 반응을 예고하셨습니다. 이는 에스겔의 마음속에 회의와 주저의 마음을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고자 함을 가로막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변할 수 없는 확신과 힘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경험으로 힘을 주십니다. 여전히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의 절망적이며 부정적인 반응을 바라보며 괴로움과 거룩한 분노를 동시에 느낍니다. 바벨론 그발 강가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포로들에게 갔으나 그들의 참담한 현실과 부정적인 반응 앞에 얼빠진 사람이 되어 꼼짝 않고 칠일을 지냅니다.

 

적용: 인간은 본질적으로 무엇을 먹고 채워야 합니까? 당신이 소명인의 삶을 살려 할 때 내면이 굳은 금강석 같이견고해 지려면 누구로부터 힘을 덧입어야 합니까?

 

믿음이 없다면 사람은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 그것이 있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윌리엄 오슬러. 지금 충분히 잘해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곤 합니다. ‘얼마만큼 왔지?’,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되돌아가면 안 될까?’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미래로 향하는 발걸음은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강하게 하십니다.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 설 교 >

받아 먹으라

3:1-3, 22:18~19 / 이성희 목사 / 20050108

매일 아침 아프리카의 가젤은 눈을 뜹니다. 그는 사자보다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죽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매일 아침 사자 또한 눈을 뜹니다. 사자는 가장 느리게 달리는 가젤보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굶어죽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사자이건 가젤이건 상관없이 아침에 눈을 뜨면 우리는 질주해야 합니다.

사자가 달리는 이유는 먹이를 위해서입니다. 아프리카 초원의 동물들은 먹히던지, 먹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정글의 법칙에 삽니다. 먹히지 않게 하는 것은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8에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합니다. 마귀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삼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삼키우지 않기 위하여 열심히 달려야 합니다. 매일 아침 우리는 달려야 합니다. 먹히지 않기 위해서 달려야 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먹어야 합니다. 열심히 먹는 것도 먹히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귀에게 먹히지 않기 위하여 말씀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오늘은 성서주일입니다. 성경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성경의 가치를 다시 음미하는 날입니다.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으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흙으로 빚은 몸에 숨을 불어넣으셔서 살아있는 영이 되게 하셨습니다. 보통 문자게 숨을 불어넣으셔서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되게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4:13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혼과 영도 쪼갭니다. 생각도 판단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장로교신조 제1조에는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유일의 법칙이다고 합니다. 성경 외에 우리 신앙과 행위의 법칙은 없습니다. 카톨릭에서 성경은 믿음의 첫째 법칙이라고 합니다. 개신교에서는 성경은 믿음의 유일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전 지식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도구입니다. 우리의 삶의 기준입니다. 청교도는 한 가지 책만 읽는다고 합니다. 이 책은 곧 성경입니다. 이 성경을 우리의 책으로 삼기를 바랍니다.

 

첫째, 발견한 말씀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1절에는 인자여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라고 합니다. 계시록 10:9에는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 한즉 천사가 이르되 갖다 먹어 버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두루마리를 먹으라는 것입니다. 먹는다는 것은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먹은 것은 빼앗아가지 못합니다. 빼앗기지 않으려면 먹어버리면 됩니다. 먹으면 내 것이 됩니다.

마태복은 13장에는 씨뿌리는 비유가 있습니다. 첫째가 길가에 떨어진 씨입니다. 이 씨는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다고 합니다. 새들이 먹은 것은 씨앗이 땅에 깊이 박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마음에 깊이 박히고 받아 먹으면 빼앗기지 않습니다. 왜 말씀을 들을 때는 감동을 받다가 금방 사라져버립니까?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깊이 뿌리를 내리면 사라지지 않습니다. 누가 훔쳐가지 못합니다.

말씀은 먹는 것입니다. 먹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맛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밥을 먹을 때는 밥맛이든 입맛이든 있어야 합니다. 밥맛이 없다는 것은 병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건강해보세요. 왜 밥맛이 없겠어요? 건강은 먹는데서 나옵니다. 옛날 어른들은 밥보신이 제일이다고 그랬습니다. 먹어야 건강합니다. 편식은 건강치 못하게 만듭니다. 어느 한 구절만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것은 오류이고 독선입니다. 이단이 별겁니까? 이단이 다 몇몇 구절만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다가 잘못 가는 것입니다.

지혜란 라틴어로 사페레’(sapere)란 단어입니다. 음미하다또는 맛보다라는 뜻입니다. 지혜는 맛보는 것입니다. 성경을 맛보는 것이 가장 큰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마음판에 새기고, 미간에 붙이고,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라고 하십니다. 꼭꼭 간직하고 항상 가지고 있으라는 말입니다.

6살 된 주일학교 학생이 성경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친교실에서 어른들이 축하해주었습니다. 어떤 분이 얘야, 그 성경책을 구경할 수 있겠니?”라고 합니다. 그 때 어린이는 좋아요, 하지만 펼쳐보진 마세요라고 합니다. “펼치지는 말라고 왜 그렇지?” 어른이 묻자 아이는 대답합니다. “그러시면 하나님이 나오게 될 거예요”. 성경을 펼치면 하나님이 나오십니다. 성경은 읽으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요한복음 6:48에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6:53에는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그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말씀은 로고스입니다. 로고스는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먹어야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이 있어야 생명이 있습니다.

에스겔 3:2에는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을 입을 벌리는 것입니다. 참새 새끼가 어미가 주는 먹이를 먹기 위하여 입을 벌리는 것을 보세요. 입이 찢어지라 벌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먹지 못합니다. 입을 벌리는 것은생존을 위한 싸움입니다. 입을 벌려야 성경은 먹을 수 있습니다. 입을 벌리고 성경을 먹는 것은 우리의 생존입니다.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먹어야 삽니다.

성경을 완독하기 위해서는 약 56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매일 40장을 읽는다면 30일안에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서너장을 읽으면 일년에 신구약을 다 읽을 수 있습니다. 밥은 꼬박꼬박 세끼를 다 먹으면서 거르면 큰일 나는 줄 알지요.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먹지요? “빼먹어요”. 성경도 빼먹지 말고 꼭꼭 씹어 드세요.

 

둘째, 말씀을 먹어야 가서 말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 3:1받아 먹으라 먹고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하라고 합니다. 내가 먹어야 다른 사람을 먹일 수 있습니다. 전하기 위하여 우선 필요한 것은 내가 먹는 것입니다. “고하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다바르입니다. 이 말의 뜻은 정복하라’, ‘파괴하라는 말입니다. 말씀을 먹어야 정복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먹어야 파괴할 수 있습니다.

먹지 않고는 먹일 수 없습니다. 먹이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먹어야 압니다. 내가 먹으면 먹일 수 있습니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는 우선 어머니가 잘 먹어야 합니다. 잘 먹다 보니 살도 찌고, 몸매도 망가진다고 요즘에는 젖을 안 먹이는 젊은 어머니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몸매 관리하려고 아예 아기에게 소젖을 먹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기억하세요. 어머니 젖을 먹는 아기가 건강하고 머리도 좋답니다. 내 몸매 관리하느라고 아기의 건강을 망치고 머리 나쁘게 만드는 것은 참다운 모정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잘 먹어야 아기를 잘 먹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모압평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모압왕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하여 미디안의 선지자 발람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시킵니다. 발락은 고관들을 보냈지만 발람은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신다고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발락왕은 더 높은 고관을 보냅니다. 나귀를 타고 가다가 나귀가 천사를 보았습니다. 나귀는 앞으로 가지 않고 벽에 부딪치고 맙니다. 발람은 발락왕에게 나아갔습니다. 그 때 왕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하였지만 발람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내 입에 주신 말씀만 해야 합니다라고 그는 왕에게 말했습니다. 발람은 충실한 하나님의 대변자였습니다.

민수기 23:12에는 발람이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으리이까라고 합니다. 바르게 먹으면 바르게 전합니다. 말씀을 먹여야 가서 바르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이 입에 주신 말씀만 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말씀을 전하다가 유대관원들에게 잡혀갑니다.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고 가르치지 말라고 압박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잘 먹으면 용기있게 전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전하지 않을 수 없어서 매를 맞고 갇히기까지 했습니다.

어느 공사장 밑을 지나가던 사람이 위의 인부가 실수로 떨어뜨린 망치를 어깨에 맞았습니다. 얼마나 아픈지 위를 향해서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그때 위에 있던 인부는 앗따, 그 사람 말도 많네라고 합니다. 망치를 맞은 사람은 아니! 내가 말 안하게 생겼냐고 소리 지릅니다. 그때 위의 인부가 말합니다. “아까 어떤 사람은 머리에 맞아 죽었는데도 아무 말도 않던데 뭘 그걸 가지고 그렇냐라고 하더랍니다. 살아 있으면 말해야 합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유일한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유일한 삶의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꾸 가르쳐야 합니다. 많이 전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의 감정의 표현이 성경이 기초입니다. 예술도 성경이 기초입니다.

바하의 마태수난곡’, 헨델의 메시아’, 모차르트의 위령곡’, 베토벤의 장엄미사’, 멘델스존의 엘리야등이 모두 성경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화가인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렘브란트 등 이 모두가 성경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위클리프 본부는 516일을 성경없이 예배드리는 날로 정했습니다. 성경의 귀중함을 깨우치고, 성경 없는 종족의 고통을 하루라도 체험하는 의미 있는 날입니다. 성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그리고 성경을 마음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요.

여러분 나이키라는 상표를 아세요. 아주 공격적인 경영과 마케팅을 하는 스포츠용품 회사입니다. 나이키튼 “Do it” 그것을 하라는 광고로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무엇이나 하라고 하는 도취적 슬로건이 아니라 할 것을 반드시 하라고 하는 격려입니다 먹으면 먹일 수 있습니다. 먹으십시오. 그리고 먹이십시오. 성경은 “Do it” 이라고 명령합니다. 이 명령은 잘 먹는 자가 할 수 있습니다.

 

셋째, 말씀은 입에서 달기가 꿀과 같습니다.

 

에스겔 3:3에는 내가 그것을 먹으니 내 입에 달기가 꿀 같더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말합니다. 요한도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계시록 10:9에는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고 합니다. 시편의 기자도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시편 119:103에는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고 합니다.

냉면을 먹을 때 계란을 먼저 먹는 이유를 아십니까? 입에 냄새를 제거하여 냉면의 맛을 돋구어 준다고 합니다. 저하고 함께 그 말을 들은 어느 목사님은 나는 원래 그렇게 먹었는데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알고 그랬지요?”라고 하니까 그 목사님의 대답이 다른 사람이 집어 먹을까봐 먼저 먹었지그랬습니다. 입안에 냄새를 먼저 제거해야 냉면의 맛이 제대로 납니다. 세상의 맛을 제거해야 하나님의 맛이 납니다. 세상과 하나님이 섞여 있으면 맛이 없어집니다. 먼저 세상을 제거하고 말씀을 보면 말씀의 맛이 꿀보다 더 달게 됩니다.

디모데후서 3:17에는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성경을 평합니다. 성경은 유익한 책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맛입니다.

시편 88절은 성경의 가장 한 가운데 있는 구절입니다. 에스라 7:21J만 빼고 영어의 모든 알파뱃 문자가 나옵니다. 에스더 8:9은 성경에서 가장 긴 절이며, 6음절 이상인 단어나 이름은 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식으로 아는 성경이 아니라 말씀의 맛으로 아는 성경이 될 수 있습니다.

 

결 론

 

남아프리카 목회자 존 그루치가 영국 런던의 히드로 공항에서 보안 검색을 받을 때에 경고음이 났습니다. 무기를 가졌는가 하여 알고 보니 성경의 금속 지퍼가 소리를 낸 것입니다. 그는 단지 성경일 뿐이오라고 했을 때에 무장 경관이 그렇지만 성경은 매우 위험한 책이 될 수도 있죠라고 하더랍니다. 성경은 아주 위험한 책일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성경은 혁명을 일으킵니다. 성경은 사람을 완전히 바꿉니다. 성경 때문에 변화된 사람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영성가 포시스는 사도들의 참된 계승자는 감독이 아니라 신약성경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교회를 이어나갑니다. 성경을 잘 먹읍시다. 성경을 잘 씹어 소화 시킵시다. 밥은 못먹어도 성경은 먹읍시다. 성경으로 사람이 바뀌고, 세상을 바꾸는 놀라운 역사가 성경을 읽는 우리 모두에게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 동안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는 나날이기를 바랍니다.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곽노아 목사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이 무엇입니까?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믿고 가장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혹시 교회 건물이었습니까? 아니면 목사님 얼굴이었습니까? 아니면 건강이나 돈이나 명예와 권력이었습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잘못 발견한 것입니다. 그 발견은 육적인 눈으로 발견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제라도 다시 새로운 영적인 것을 발견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람이 무엇을 발견한다는 것은 곧 그 무엇을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사명자를 택하실 때 그 무엇을 보시게 하십니다. 즉 어떤 영적인 체험을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모세도 광야의 떨기나무에 불이 나는 것을 발견하였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고, 이사야도 영적으로 하나님 보좌를 본 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예레미야도 살구나무 가지와 끓는 가마를 본 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사명을 받았습니다.

에스겔에게도 먼저 영적인 것을 발견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셨고 사명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무엇을 먼저 본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있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을 발견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영적인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영적인 눈이 열려져서 영적인 세계를 발견하여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3:1-3)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2)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에스겔이 영적 체험에서 깨어나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안팎으로 기록된 두루마리 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3가지를 명령하셨는데 발견한 그 책을 먼저 먹고, 그 다음에 가서,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명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습니다. “말씀을 먹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했죠?

하나님 마음을 말씀 속에서 온전히 깨닫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많이 본다고 먹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를 잘한다고 해서 말씀을 잘 먹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먹는다면 말씀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맛을 모르고 먹는다면 그 사람은 건강적으로 무엇이 잘못된 사람이듯이 하나님 말씀도 하나님 마음을 모르고 먹으면 맛을 모르고 먹는 음식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설교자들이 진실로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면 올바른 설교라고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대한 말씀은 지난 시간에 아주 강하게 강조했으므로 더 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전하는 사명자나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이나 동일하게 하나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먹지 아니하면 모두 다 영적으로 죽습니다.

(4:4)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자는 모두 다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전하는 자도 듣는 자도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고 깨달아서 소화를 시켜야 만이 힘이 되고 능력이 되는 말씀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도 제대로 소화를 해야 힘이 되는 것이지 아무리 좋은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어도 소화하지 못하고 체하거나 그냥 배설해 버린다면 좋은 음식 먹어도 소용없는 것처럼 말씀도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명자가 어떤 말씀을 먹고 전하느냐는 것입니다. 사명자부터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아닌 다른 것을 먹고 전한다면 사명자를 통해 받아먹는 성도들의 상태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명자도 듣는 성도도 하나님의 마음이 아닌 다른 말씀을 전하고 들었는데 어떻게 하나님 마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그러한 모습들이 봇물처럼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것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긍정적 사고방식” “목적을 이끄는 삶” “하나님 안에서 모든 종교는 하나가 되자” “행복은 다른 종교에도 있다” “구원은 다른 종교에도 있다

하나님 마음을 결코 아는 자들이라면 이러한 헛소리를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또한 환난 전에 휴거가 있다” “예수님 재림은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이 있다라고 떠드는 자들도 결코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먹고 하나님 마음을 아는 자들이라면 이런 헛소리로 사람들을 미혹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다음 주에 살펴보겠지만 하나님은 에스겔을 필요한 말만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 벙어리가 되도록 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깨닫고 하나님 말씀만을 먹어야 합니다.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개역 성경에 보면 너는 받는 것을 먹으라로 기록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습니까?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들은 받은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까?

에스겔을 벙어리가 되도록 하고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만 입을 열게 하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설교할 바에는 차라리 벙어리로 있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헛된 소리로, 사람의 소리로 하나님의 양들을 미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가서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사람 얼굴 보지 말고, 환경 바라보지 말고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2절을 주목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말씀을 먹기로 작정하니까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말씀을 먹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먹는다고 내가 스스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을 깨닫는 것 내 지혜로 지식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깨달아서 전하는 설교는 인간의 설교를 될지언정 하나님의 설교는 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시고 이해하게 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3절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씀을 먹여주시면서 네 배에 넣고 창자에 채우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곧 말씀의 중요성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 깊이 하나님 말씀을 새기고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얼마나 달았는지 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씀이 어떤 말씀이었습니까? 210절에서 말씀하셨죠. 그 말씀은 심판과 재앙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달았다는 것입니다. 재앙의 말씀이 어떻게 달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말씀의 내용이 단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말씀이기 때문에 달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달아야 합니다. 말씀의 내용은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일지라도 말씀 자체는 달아야만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부담되거나 쓰면 안됩니다.

물론 사도 요한은 하나님 말씀이 입에서는 달았지만 배에서는 쓰다고 하였는데(10:10) 입에서는 달았지만 배에서 쓰다는 것은 곧 마지막 때에 인간들이 당할 재앙을 생각하니깐 가슴이 아팠다는 의미입니다.

계시록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전할 때는 참 꿀처럼 달고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장차 다가올 무서운 재앙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무튼 하나님 말씀은 달아야 합니다. 말씀이 달지 아니하면 나의 영적인 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받아서 달게 먹는 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말씀을 전할 대상

 

(3:4-11)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5)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6)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워 네가 그들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할 나라들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으리라 (7)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8) 보라 내가 그들의 얼굴을 마주보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마주보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9) 네 이마를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두려워하지 말며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라 하시니라 (10)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11)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2장에서도 이미 말씀을 전할 대상자들이 누구인지 밝혔습니다. 그들은 패역하고 뻔뻔하고 강퍅한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2장과 3장에서도 이런 의미의 말씀이 8번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에스겔이 감당해야 할 사명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일인지 의미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렇게 패역한 자들을 향해 사명을 감당해야 할 자로서 사명자는 어떤 자세를 취하고 전해야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3가지로 말씀해주셨습니다.

 

3.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5-6).

 

에스겔이 말씀을 전할 상대는 언어와 같고 피부가 다른 이방인이 아니라 같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에스겔이 전하는 메시지를 잘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6절의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면 그 이방 민족은 하나님 말씀을 들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에스겔에게 사명을 너무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에스겔 자신이 제사장 집안의 아들이고 하나님께 선지자로 택함 받았다고 해서 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민족에게 전하는 것이니깐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할 때나 복음을 전할 때는 곧 사탄과 영적 전쟁을 하는 것과 같은 자세로 전해야 합니다.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70명의 제자들을 각처로 보내어 전도하게 하셨는데 70명이 돌아와 보고할 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0:18)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하는 자나 복음을 전하는 자는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서 전해야만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없이 전하면 오히려 악한 귀신들 세력에게 놀림만 당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말씀을 전하며 귀신을 쫓아내니깐 어떤 유대인들이 바울처럼 귀신을 쫓아내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귀신이 말하기를 (19:15-16)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예수님도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자나 전도를 하는 자들은 성령의 충만한 가운데 내 느낌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과 다스리심 속에 전해야 할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에스겔의 얼굴과 이마를 굳게 하여 주었습니다(7-9).

 

에스겔이 상대해야 할 자들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은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2장에서 언급했던 말씀처럼 백성들은 패역하고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에스겔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에스겔도 말씀을 듣기를 거부하는 그들 속에 뻔뻔함을 가지고 들어가서 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스겔의 이마를 화석보다 강한 금강석같이 되게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야만이 패역한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말씀을 전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에스겔의 얼굴과 마음을 강하게 하여주신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서울역에서 메가폰으로 전도하고 지하철에서 전도할 때 매일 전도를 하면서도 시작할 때는 두렵고 떨리고 주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강하게 하고 시작하면 성령께서 내 얼굴을 뻔뻔하게 하고 내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해주시는 것을 수 없이 느꼈습니다.

에스겔도 성격이 강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30살의 어린 나이에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패역한 자들과 상대하기 위해서 에스겔을 강하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나 같은 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그런 생각은 속히 버리시기 바랍니다.

(고전 1:27-29)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5.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받고 귀로 들어서 전하라는 것입니다(10-11).

 

지난 주부터 계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실로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듣고 영적인 귀로 들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들은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을 전하기를 원하시는지 엎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말씀을 받은 자는 담대하게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선포해야 합니다.

깨닫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지 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설득하려고 하는 것은 나의 설교는 될지 몰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설교는 아닙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자가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6.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라(12-15)

 

(3:12-15) “때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리시는데 내가 내 뒤에서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니 찬송할지어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의 처소로부터 나오는도다 하니 (13) 이는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와 생물 곁의 바퀴 소리라 크게 울리는 소리더라 (14)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가니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시키시더라 (15) 이에 내가 델아빕에 이르러 그 사로잡힌 백성 곧 그발 강 가에 거주하는 자들에게 나아가 그 중에서 두려워 떨며 칠 일을 지내니라

12절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올리시는데”, 14절에도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올려 데리고 가시는데라고 주의 영에 대해 2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주의 영은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영광의 소리를 듣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에스겔이 앞으로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인도하십니다. 절대로 성령께서는 사람이 영광 받고 사람이 존경받도록 인도하시지 아니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어떤 자리에 사람이 영광을 받는 자리라면 그 자리는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자리가 아님을 깨닫고 속히 그 자리를 떠나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그러는데 이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영광은 곧 빛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빛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은 오직 예수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성령께서는 오직 예수 신앙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누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산다고 하면서 오직 예수 신앙으로 살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에스겔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처럼 오늘날 사명자들이나 믿는 자들은 오직 예수를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세상의 빛이 되라”(5:14)고 하였습니다. 즉 이 말씀은 오직 예수 신앙으로 살아가야 만이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를 자랑하고, 나를 드러내기 좋아하는 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처럼 나를 자랑하는 자는 결코 오직 예수의 빛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 신앙은 성령의 온전하신 인도하심을 받는 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오직 예수 신앙으로 살아가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4절에서 두 번째 주의 영은 에스겔을 어디로 인도했습니까? 델아빕으로 인도했습니다. 델아빕은 그발 강가에 있는 포로들의 집단 거주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도 근심하며 분한 마음으로갔다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의 인간적인 내면의 모습이었습니다.

에스겔이 왜 근심하고 분한 마음을 가졌습니까?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이 심히 두려웠을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들의 죄를 회개할 줄 모르는 백성들을 보고 분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14절 끝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 시키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도 때로는 인간의 걱정과 근심이 앞설 수도 있고, 분도 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다고 해서 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다 할지라도 날마다 시간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감동을 받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시간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오직 예수 신앙을 외치며 반드시 예수께서 오직예수훈련원을 세워주실 것을 믿지만 걱정과 근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제 안에서도 분노가 올라올 때도 있습니다. 너무나도 말 같지 않는 말들로 설교를 하고, 거짓된 교리로 미혹하는 것을 볼 때 분노가 치밀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에 그 근심과 분노에 오래 시간을 뺏기고 있으면 안됩니다. 근심과 분노의 자리에 오래 머무르면 머물수록 나의 영혼 속에 있는 성령의 기름은 소멸되어 간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속히 근심과 분노를 떨쳐버려야 합니다. 떨쳐버리는 비결은 성령 충만을 받는 길 뿐입니다. 내가 떨쳐버리려고 하면 할수록 더 근심과 분노를 커집니다. 그러므로 오직 성령 충만 받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또 한 가지를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에스겔을 인도하는 곳이 편하고 좋은 곳이었습니까?

그곳은 패역한 자들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포로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그들은 불만과 악의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의 인도하심은 좋은 곳으로만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도 인도하십니다. 시편 23편을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3:1-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성령님은 푸른 초장으로도 인도하시지만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도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사는 자는 성령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순종하고 가야합니다.

그 길이 사망의 길이라 할지라도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면 그 길을 담대히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알 수 있느냐고요? 말로서 표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강권적인 다스리심을 받으면 알게 됩니다. 성령의 강력한 권능 앞에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때에 순종하면 됩니다. “바로 이것이구나하는 것을 느낄 때 순종하면 됩니다.

제가 신학교 1학년 때 40일 산 기도를 추운 겨울에 밤 10시에 올라가서 새벽 4시에 내려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산 기도를 하라는 음성을 마음으로 2번 듣고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3번째 들을 때는 이번에 거부하면 죽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날 밤부터 태어나서 생전처음 해보는 산 기도를 혼자 삼각산에 올라가 했습니다.

그 때 산 기도 안했으면 음성도 이렇게 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말 제 음성이 약했습니다. 주위에서 말하기를 어떻게 그런 음성으로 설교를 할 수 있겠느냐 까지 말할 정도로 목소리 톤 자체가 약했습니다. 그 때 산 기도가 없었다면 담대함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면 성령의 강권적인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강권적으로 우리를 그 길로 가도록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 이끄심을 느낀다면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15절도 한번 주목해서 보셔야 합니다.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놀라운 영적 체험을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강권적인 인도함을 받아서 포로 수용지에 왔는데 하나님은 에스겔을 7일 동안 침묵만 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도 동네방네 다니면서 자신이 체험한 것을 간증하러 다니고 난리 법석을 떨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그런 자들 많죠?

자신의 꿈에서 본 천국과 지옥을 마치 자신이 영계 속에 들어가서 보고 온 것처럼 간증하러 다니기도 하고, 어떤 자는 책을 출판해서 재미를 보기도 하고, 기도하다가 받은 하나님의 계시다고 떠들고 다니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께서는 때로는 침묵케 하실 때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말씀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에스겔은 이 때에 하나님의 전할 말씀도 없었습니다. 에스겔의 사역의 시작이 침묵과 묵상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에스겔은 이 기간 동안에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각오를 가졌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명자나 성도들은 반드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이 시대 사람들이 자아를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시대라고 합니다.

내가 나를 모르고 어떻게 누구를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습니다. 여러분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육적으로 아름답습니까? 영적인 모습은 어떻습니까?

성도 여러분! 나를 가장 잘 아는 자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나를 돌아본 후에 하나님의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이 있다면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죄사함 받아야 할 것이고, 두려움이 있다면 그 두려움 떨쳐 버려야 할 것이며, 근심과 분한 마음도 있다면 버려야 할 것이고, 담대함이 없다면 담대함도 가지도록 해야 할 것이고, 말씀에 대한 부족함이 있다면 열심히 말씀을 먹어야 할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것이 부족하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 엎드려야 할 것입니다.

15절 끝 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중에서 두려워 떨며 칠 일을 지내니라에스겔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왔지만 두려워 떨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해도 하나님이 사명을 감당하는데 두려워 떨 수 있고 주저하고 망설일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명자는 더욱 더 성령을 의지하고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고백하고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에스겔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은 신앙 생활하는데 무엇을 발견하였습니까? 아직도 오직 예수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 믿음 아직도 어린 아이 신앙입니다.

성경 66118931173구절 속에 오직 예수를 증거하고 있는데도 아직도 예수를 발견하지 못하고 오직 예수 신앙을 가지지 못하고 신앙생활하고 있다면 이 시간 회개하셔야 합니다.

조사에 의하면 기독교인 85%5분 이상 기도하지 않고 있고, 70%가 예수 믿는 것에 확신이 없는 가운데 그냥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비기독교인들 33.1%가 기독교인들을 비호감으로 생각하고 있고 어린 학생들은 기독교에 대해 46.5%가 비호감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 이 시대를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지 않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패역하고, 뻔뻔하고, 강퍅한 자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 답을 하나님은 오늘 말씀에서 해주고 계십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받아먹어서 그 말씀을 전해야만 합니다.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합니다. 아무리 듣기 좋은 말이라도 내 말은 안됩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살리는 역사가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선포해야만 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설교라고 해서 다 하나님 설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설교가 아니면 그것은 인간의 설교이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설교는 아닙니다.

둘째로 담대함을 가지고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해야 합니다. 패역한 자들을 내가 설득하려고 애를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성령께 사로 잡혀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패역한 시대 속에서 성령께 사로잡히지 않고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에스겔 같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오직 예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보고, 듣고, 신앙 생활하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은혜를 주시는 까닭

3:2-6 / 이규왕 목사

생명이 있는 것들은 처음에는 작고 연약한 상태지만 잘 키우면 점점 자라서 마침내 풍성한 결실을 맺음으로 종자가 되어 더 많은 생명을 번식시킬 수 있게 됩니다.

높은 산꼭대기 바위 틈새에 떨어진 솔 씨는 모진 겨울과 삭풍 속에서도 기기묘묘한 모습으로 자라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몰래 뽑아다가 분재를 만들고 싶은 욕심에 탐을 내게 합니다.

겨울에 추위를 피해 거실에 들여 놓은 화초는 그 가지와 잎이 한결 같이 빛이 들어오는 창 쪽으로 향하여 건강하게 자라는 반면 그늘 쪽에 있는 가지와 잎은 자라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가장 강한 수컷이 암컷을 차지하여 종족을 번식하며, 식물이 살기 어려운 사막에서도 선인장은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고 동물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자기를 지키며 꽃을 피우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 세계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시고 제일 처음 주신 복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생존을 위한 인간의 노력은 처절하다 못해 전쟁과 다름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으나 젖을 빨 줄 압니다.

배가 고프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으나 젖을 달라고 울면 엄마는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우는 아이를 내 버려두지 않고 달려가서 젖꼭지를 물립니다.

그 아이가 점차 자라서 제 손으로 밥을 떠먹고 제 손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때가 되면 시집을 가고 장가가서 자기를 닮은 아들딸을 낳아 자손을 번성시켜 나가는 것이 창조의 원리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을 동물처럼 육신만 가진 존재가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혼을 가진 존재로 지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부모는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고 자식은 그 부모의 기대를 이루어 드리는 삶이 효도라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 기대를 이루어 드려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과연 어떻게 해야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기대를 이루어 드릴 수 있는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그 답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부르심-영적인 파수꾼

 

세상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기대가 가장 컸던 민족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신 후 아브라함과 그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알 같이 번성하게 될 것이며, 세상 만민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되는 축복의 통로요 또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26:4]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그러나 세월이 점차 흘러가면서 이스라엘의 현실은 정 반대였습니다. 강대국의 침략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고,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가서 오랜 기간 동안 노예 생활을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민족의 처지는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되기를 기대하셨던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시켜 본래 기대하셨던 생육하고 번성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계획을 갖고 계시며, 그 일을 성사하기 위해 각 시대마다 일꾼들을 부르시고, 훈련하시고, 세우셔서 세상에 보내어 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일꾼들이 바로 구약 시대는 믿음의 족장들이요, 사사요, 왕이요, 선지자요, 제사장들이라면 오늘 말씀의 주인공 에스겔도 그 중에 한 사람입니다.

에스겔은 바벨론 제국이 유다 나라를 2차 침공할 때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가 그발 강가에 거주한지 5년 째 되는 해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1: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물론 당시 선지자가 없어서 에스겔을 부르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대에 예레미야나 다니엘과 같이 위대한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선지자로 부르신 것은 하나님이 일찍이 세우신 파수꾼인 예레미야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서도 회개하지 않고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일깨우는 파수꾼으로 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6:17] 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수꾼을 세웠으니 나팔 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3: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그러나 파수꾼이 나팔을 불지라도 아무렇게나 부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소리로 불어야만 깨든지 지키든지 공격을 하든지 후퇴를 하든지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에스겔은 어린아이와 같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파수꾼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은혜주심-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은 그와 같이 미성숙한 에스겔에게 무조건 가서 나팔을 임의대로 불라고 명하시지 않고 먼저 에스겔에게 무슨 나팔을 불어야 하는지 알게 하시기 위해 여러 가지 환상을 통해 하나님 뜻을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1)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

1: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2) 네 생물의 형상과 사람의 형상과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

1:13 또 생물들의 모양은 타는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에서는 번개가 나며 28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

3) 안팎에 글이 있는 두루마리 책

2:9 내가 보니 보라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보라 그 안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 10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미성숙한 어린아이는 혼자 힘으로 일어나거나 걷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먹는 것조차도 입에 넣어 주어야만 합니다.

누구나 그렇게 인생을 시작하여 매일 엄마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 점차 자라면서 혼자 힘으로 걷고, 뛰기도 하며, 자신의 필요를 혼자서 챙길 수 있게 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로 유아기적인 신앙과 성장기의 신앙과 성숙한 신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유아기 신앙은 자력으로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면 성장기의 신앙은 말씀을 사모하며 은혜 가운데 믿음이 점차 자라는 것이라면, 성숙한 신앙은 과연 어떤 믿음일까요?

1) 내게 먹이시며-유아기 신앙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유다 백성들이 배은망덕한 죄로 인해 징계를 받아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오랜 고난을 겪어야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유다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변함없이 사랑하셔서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지자들을 통해 회복의 메시지를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도 그 중에 하나로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신비한 계시를 보여주시면서 가서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증거 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계시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밥을 먹여주고 글을 깨우치는 것처럼 에스겔 선지자가 스스로 깨달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계시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3:2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의 입에 두루마리의 말씀을 먹이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주 앞에 이끌어 나오게 하시고, 시간마다 비밀의 복음을 들려주시고,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시는 은혜로만 만족하는 신앙이 바로 유아기 신앙입니다.

2) 내가 먹으니-유년기 신앙

하나님께서 아무리 부르시고 이끄실지라도 만일 에스겔이 패역한 유다 백성들처럼 하나님 앞에 나와 말씀을 듣기를 거부하거나 듣고서도 깨닫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두루 마리인 말씀을 먹여주실 때 거부하지 않고 입을 열고 먹었으며 배에 넣어 창자에 채웠다고 하였습니다.

3: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여기서 내가 먹으니라는 말씀은 와우 계속법 미완료 동사로 에스겔이 계속해서 두루마리를 먹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믿음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말씀을 읽고 들어야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먹여주는 단계이지만 점차 신앙이 자라게 되면 마치 유아기를 벗어난 아이가 식욕을 가지고 자꾸만 먹으려고 하는 것처럼 능동적인 자세로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게 되는데 그러한 신앙이 바로 성장기 신앙인 것입니다.

성장기 신앙은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고 듣고 묵상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가 요구되는 신앙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믿음이 건강하게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3) 가서 고하라-장성한 신앙

우리가 육신적으로 건강할 때 삶의 의욕이 넘치게 됩니다. 만일 육체가 미숙아처럼 자라지 못하거나 병에 걸리게 되면 남을 돕기는커녕 스스로의 생존도 위협을 받게 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한 믿음을 가져야만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고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두루마리 말씀을 먹여 주시고, 또한 먹으라고 하신 궁극적인 이유는 에스겔 선지자 한 사람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에스겔이 맛본 두루마리 말씀을 가서 유다 백성들이 전파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3:4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물론 그 일은 멀리 이방 사람들이 아니라 매일 자고 깨면 만날 있는 동족들에게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먹여주신 말씀을 가서 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살려 두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에스겔에게 두루마리를 먹이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3:5 너를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는 것이라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이 오죽하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을까요? 그 한 가지만으로도 유다 백성들이 얼마나 마음이 돌처럼 굳어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에스겔이 그러한 동족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촉구하는 나팔을 불 때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가히 짐작이 갈 것입니다. 에스겔을 파수꾼으로 부르신 하나님께서도 그 사실을 다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3: 7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이스라엘을 돌이키기 위해 파수꾼으로 세우시고 그들에게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의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이키는 일이 아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듣든지 아니 듣든지 다만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계시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3:9 네 이마를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두려워하지 말며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그발 강가에 부르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고, 갖가지 환상을 보여주시고 계시의 말씀을 들려주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먹여주시는 것만을 받던 영적 유아기를 벗어나 이스라엘 민족을 돌이키시고자 그렇게 애쓰시는 하나님의 중심을 헤아리고 말씀대로 순종하고 유다 민족에게서 가서 듣든지 듣지 않든지 전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3:11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에스겔을 부르시고 남다른 은혜를 부어주신 궁극적인 목적이요 그 일이 바로 영적 파수꾼의 사명이요 성숙한 신앙인이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인 것입니다.

3: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3. 하나님이 보내심-성숙한 신앙

 

오늘 성경에서 에스겔 선지자가 그렇게 할 때에 여호와 하나님이 크게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3:11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12 때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올리시는데 내가 내 뒤에서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니 찬송할지어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의 처소로부터 나오는도다 하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을 택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이 자녀가 되었고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속죄함을 받기 전에는,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전에는 본래 우리는 죄의 종이었고, 거슬러 올라가면 유다 백성들처럼 죄의 포로가 되어 내 마음대로 죄에 대해서는 자유하였으나 의에 대해서는 부자유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우리를 사단의 권세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에스겔이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여 영원한 자유와 해방을 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죄인이지만 정죄함을 받지 않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가 되었으며 설령 육신적으로 죽는다고 할지라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의 축복과 다시 사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우리가 어떻게 그 같은 축복을 받았습니까? 누가 그같은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 같은 축복을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오직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그와 같은 자유와 해방과 영생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그 같은 구원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일까요? 만일 그것이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전부라면 기독교나 다른 종교나 하나도 차이가 없는 이기적인 종교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와 같은 구원의 축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언행심사가 선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를 믿기 전만이 아니라 믿고 교회를 다니면서도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선하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축복을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본보이신 것처럼 세상에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과 달리 죄가 없으시며 또한 죽음과 상관없이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이 세상에 오실 이유가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허물과 죄로 이미 죽은 인생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오신 이유는 그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으며. 예수님은 삼십 삼년 동안 오로지 인간을 구원하시는 일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구원을 받지 못한 죄인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이미 구원을 받은 우리를 훈련시키셔서 그 죄인들에게 보내어 예수님이 다 이루신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러 모으신 곳이 바로 오늘의 교회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택하시고 가르치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하시고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되게 하기 위해 세상으로 보내신 일입니다.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만일 그 일이 아니라면 예수님만 믿으면 되지 구태여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성령의 능력을 받고 신령한 은혜를 받아야 할 이유나 구해야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다 피곤한 일이며 돈이나 명예나 지위와 무관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천군이나 천사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만 그 같은 일꾼으로 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을 불러 모아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곳이며,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그들을 가르치고 훈련하여 다시 세상으로 보내시는 전진기지입니다.

그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이 세상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도록 돕고 교회로 인도하여 그들에게 말씀과 기도를 통해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돕고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체험하여 하나님께서 그 같은 은혜를 부어주시는 이유가 어디에 무엇을 위함인지를 깨닫고 사명자가 되어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가서 과거 자기와 같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확산시켜 나가는 가운데 마침내 온 세상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게 되는 날이 오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보이는 육신과 더불어 보이지 않는 영혼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보이는 육신과 보이지 않는 영혼이 둘 다 건강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교회 안에는 세 종류의 신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하나는 영혼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오로지 보이는 육신의 소원을 채우기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그것도 하나님이 주셔야만 하는 은혜입니다.

하나는 육신에 문제는 소홀히 하고 오로지 영혼을 살리는 신령한 은혜만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보다 더 깊은 영적 세계를 추구하고 신령한 은혜를 받은 일에 전념을 하지만 받은 은혜를 혼자서만 간직하는 사람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영 육간에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알고 하나님께 구하고, 받은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고, 하나님 내게 은혜를 주신 까닭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그 책임을 감당하려는 사명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그 중에 몇 번째에 속하는 그리스도인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비단 에스겔 선지자만이 아니라 오늘 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저와 여러분도 이 시대의 파수꾼으로 쓰시기를 원하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 얻기에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금번에 특별 새벽 기도회와 부흥회를 통해 성경의 진리를 깨우쳐 주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하시고, 하나님을 체험하는 깊은 기도를 가르쳐 주신 까닭은 우리의 신앙을 유아기에서 벗어나 점진적으로 장성한 믿음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1) 금번에 하나님이 나에게 그와 같은 깨우침과 은혜를 받게 하셨다면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 같은 은혜와 영적 체험만을 추구하는 신앙으로 평생 머문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먹여주는 은혜로만 만족하는 미성숙한 영적 유아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만일 내가 보다 더 신령한 은혜를 받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을 묵상하고 연구하는 일에만 평생 머물러 있다면 그로 인해 내 믿음은 어느 정도 자라겠지만 나는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이 아니라 이제 커가고 있는 영적 유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3) 내가 구원받은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내가 성령을 받고 신령한 세계를 체험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그 같은 은혜를 내게 주시는 까닭은 나를 에스겔처럼 이 시대의 파수꾼으로 삼고 전도자로 삼아 그 받은 은혜와 영적 체험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나팔 부는 파수꾼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소아시아와 유럽과 로마와 영국과 미국을 거쳐 이 한국 땅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땅위에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더 많습니다. 복음을 전해야 할 미전도종족들이 많습니다.

만일 금번에 내가 그와 같은 은혜를 받았다면 하나님께서 내게 그 같은 은혜를 주시는 까닭은 나를 파수꾼으로 쓰시기 위함인 줄 깨닫고 교회에서만 머물러 있지 말고 성숙한 열매가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종자가 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혼자서만 잘 믿는 믿음이 아니라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남은 생애를 온전히 살겠노라고 다짐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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