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이 말 못하는 자가 되다
22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거기서 내게 임하시고 또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 내가 거기서 너와 말하리라 하시기로
23 내가 일어나 들로 나아가니 여호와의 영광이 거기에 머물렀는데 내가 전에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영광과 같은지라 내가 곧 엎드리니
24 주의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고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
25 너 인자야 보라 무리가 네 위에 줄을 놓아 너를 동여매리니 네가 그들 가운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
26 내가 네 혀를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그들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27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니라
겔 3:22-27 / [벙어리가 된 에스겔] 나는 주님의 손에 붙잡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에 주께서 내게 명령하셨다. `너는 일어나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거라! 거기서 내가 너와 이야기를 하겠다.' 23) 내가 말씀대로 일어나 골짜기 속으로 들어가 보니 그곳에 주님의 영광이 머물러 계시는데 내가 그발 강가에서 맨 처음에 보았던 영광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땅에 엎드려 얼굴을 감추었다. 24) 그때에 하나님의 영이 권능으로 내게 임하여 나를 일으켜 세우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사람아, 어서 네 집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가라! 25) 내가 네 몸을 마비시켜 다시는 집에서 나올 수 없게 하겠다. 26) 또 네 혀를 입천장에 붙여 벙어리가 되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는 책망하지 못하게 하겠다. 그들은 반역하는 백성이기 때문이다. 27) 그러나 내가 너와 이야기를 할 때에는 언제든지 네 혀를 풀어 놓아 네가 그들에게 내 말을 전할 수 있게 하겠다. 그 말을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그들이 져야 한다. 그들은 반역하는 백성이기 때문이다!
본문은 여호와께서 에스겔을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신 후 빈들로 나가도록 명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좌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패역한 백성들 앞에 파수꾼이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지 지시하십니다.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22-23)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임하시어 에스겔에게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라고 하십니다. 그 빈 들은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자 자신의 한계와 죄성을 깨닫고 진솔하게 고백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에스겔은 그 빈 들에서 영광으로 임하신 현존의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그 영광의 광경은 전에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것과 동일했습니다. 에스겔은 그 신비롭고 찬란한 영광에 저절로 엎드려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홀로 밤이나 새벽에 한적한 빈 들이나 산으로 가셔서 묵상과 간절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것은 소음이나 인적을 피해 홀로 아버지 하나님을 뵙기 위한 매일의 시간과 공간의 준비로써 우리가 따라야할 본입니다.
네 위에 줄을 놓아 너를 동여매리니(24-26) 하나님은 미래의 일어날 일들을 상징적인 행동으로 계시하십니다. 먼저 집에 들어가서 문을 닫으라고 합니다. 계시의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에스겔이 문을 닫아 차단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에스겔이 밧줄에 묶여 있는 상태로 그의 혀까지 입천장에 붙어 있는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이런 장면은 한동안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을 더 이상 꾸짖지도 못하게 하고 교훈하지도 못하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에스겔의 모습은 그 자체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의미입니다(렘 29:1-32). 스승이나 현자가 침묵하게 만드는 시대는 가장 어둠의 때입니다. 파수꾼이 옥에 갇혀 밧줄에 묶여 있고 입술의 혀마저 봉쇄되어 있다면 그 파수꾼에 속한 백성은 망하게 됩니다.
들을 자는 듣고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라(27) 이제 때가되면 다시 에스겔이 자유롭게 되어 밖으로 나가 파수꾼의 역할을 할 때가 올 것을 말씀하십니다. 에스겔이 이미 받아먹어 배를 채운 말씀의 경고 내용은 애가와 애곡과 재앙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에스겔의 메시지를 들은 백성들의 반응은 회개로 응답하는 긍정적인 소수와 다수 듣기 싫어하는 자들로 나뉠 것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사 6:9). 그럼에도 파수꾼의 사명은 듣기를 원하던 원치 않던,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하나님의 경고의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영적인 파수꾼은 사명에 충실해야다는 것을 교훈합니다.
적용: 영적인 파수꾼의 책망과 장차 임할 심판의 경고를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이로 인해 파수꾼이 겪을 고통과 심정은 어떠할까요? 당신은 파수꾼인가요? 삯꾼인가요?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가지는 생각이, 그리고 이 세상을 보는 시각이 하나님과 같아져야 합니다. 인생을 보고, 세상을 보고, 현실을 보는 시각이 하나님과 같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죄악에 취하고, 우상에 취하고, 돈에 취하여도 하나님을 대신하는 파수꾼 만은 세상에 취해서는 안 됩니다.
< 설 교 >
파수꾼
에스겔 3장 16-27절 / 곽노아 목사
옛날이나 지금이나 파수꾼의 사명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파수꾼의 책임은 영적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바로 이러한 파수꾼의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의 종들이 이러한 파수꾼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습니까?
(사56:10)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영적 세계를 바로보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 맹인들이었고, 무지한 자들이었고, 또한 회개를 외치지 못한 벙어리 개들이었고, 영적 게으름에 빠져서 잠자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파수꾼들 때문에 이스라엘을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비참하게 멸망받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진실로 이 땅에 하나님의 종들이 영적 세계를 바라보고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까? 교회를 다니는 자들의 죄악을 바라보고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까? 진실로 이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실 예수를 선포하고 있는가 말입니다.
에스겔서에는 파수꾼에 대한 무서운 말씀이 오늘 본문과 33장에서 두 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어떤 무서운 말씀입니까? 제대로 알리지 아니하면 피 값을 파수꾼에게서 찾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파수꾼은 생명을 바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선포해야만 합니다.
파수꾼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종들만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하늘의 비밀을 알았다면 그 비밀을 알게 해주신 것은 나만 알고 있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그 비밀을 알게 해주신 것은 그 비밀을 모르는 자들에게 전해야 하는 파수꾼의 사명이 있음을 깨닫고 반드시 전해야만 합니다. 왜 반드시 전해야만 됩니까?
피 값을 내 머리에서 찾는다는 말씀을 잊지 마시고 반드시 하늘의 비밀을 전하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 번째. 내가 너를 파수꾼으로 세웠노라(겔 3:16-21)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칠 일 동안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할 수 시간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에게 사명을 주었는데 그것은 파수꾼의 사명이었습니다.
파수꾼의 책임은 사람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적 파수꾼도 영혼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파수꾼의 사명은 영적이든 육적이든 막중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파수꾼이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면 수많은 사람이 살 수도 있고 감당하지 못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막중한 파수꾼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2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 전하라는 말씀만 전해야 합니다. (17절)
2장부터 계속해서 강조되고 있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계속해서 매주 마다 강하게 전하고 있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모든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지 다른 말씀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또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씀이 아닌 것을 설교하면 그것은 사람의 설교이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설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설교로는 인간의 혼은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할지 몰라도 영혼의 치료는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강퍅한 그들을 깨우치기 위해서는 하나님 자신이 주시는 말씀을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진실로 파수꾼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신 영적인 말씀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에스겔이 하나님의 영적인 말씀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를 볼 때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나는 날 그들 속에 믿음의 사람들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룹바벨, 느헤미야, 에스라 같은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와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고 회개 운동을 일으켰는데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에스겔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명자들은 그들이 듣던지 아니 듣던지 믿던지 아니 믿던지 전하라는 말씀만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거두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고전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저 또한 오직예수 신앙 운동을 전하고 있지만 저를 통해서 거두실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위해 거두실지는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나를 통해서 오직예수 신앙 운동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만 하나님의 뜻은 또 다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그대로 전하면 지금은 어떤 결실이 없을지라도 반드시 놀라운 역사를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모두 다 도망치고 사도 요한만이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목격했습니다.
그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고향에 내려가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실패로 끝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마가 다락방에 모였고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뿔뿔히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예수님 제자들 또한 그들의 순교가 당시 사람들에게 헛된 죽음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피를 뿌리고 죽은 그 곳에서 복음의 싹은 나기 시작하였고 제자들을 통해 예수를 믿는 자들이 전 세계 약 10억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도 최초의 선교사로 이 땅에 온 토마스 선교사는 1866년 9월 2일 대동강변에서 27세의 젊은 나이로 죽을 때 헛된 죽음 같았지만 토마스 선교사의 죽음은 평양에 성령의 강한 역사를 불게 하는 초석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파수꾼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거두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로 반드시 전해야 합니다. (18-21)
파수꾼은 어떤 환경에서라도 어떤 경우에서라도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 길이 예수님처럼 제자들처럼 토마스 선교사처럼 죽음의 길일지라도 전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파수꾼이 반드시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사실입니다. 전해도 되고 안전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전해야 하는 목적은 말씀을 듣는 자들도 위한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위해 전해야만 합니다.
18-19절은 악인에게 전해야 할 이유이고 20-21절은 의인에게 전해야할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8-19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악인은 자신의 죄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악인일지라도 파수꾼이 하나님의 말씀을 악인에게 전하지 아니하면 악인의 피 값을 파수꾼에게서 찾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저 사람은 악한 자니깐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아니할 것이야” 라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방탕한 자식이라고 자식을 버리는 부모님이 있습니까? 사도 바울 이후 가장 위대한 성자 어거스틴은 청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방탕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아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방탕한 삶을 살던 어느 날 어거스틴은 로마서 13장 13-14절을 읽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13:13-14)
어거스틴의 끝없는 방황이 이 말씀으로 끝났습니다. 2천년 기독교 역사상 사도 바울 이후에 가장 위대한 성자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끈기를 가진 한 여자의 믿음으로 탄생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악한 자 일지라도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전하고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악인이 믿지 아니하면 악인은 그 죄 값으로 죽을 것이지만 전하는 자는 생명을 보존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이 믿던지 아니 믿던지 우리는 반드시 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복음의 놀라운 비밀을 알고 있으면서 전하지 아니하면 화가 있겠다는 말씀을 명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0-21절도 주목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파수꾼의 사명은 악인에게만 전하라고 주어진 사명이 아닙니다. 파수꾼은 의인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강하게 전해야만 합니다.
의인이 어떤 자들입니까? 본문에서 의인들은 율법에 순종하며 사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으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인들에게도 하나님 말씀으로 깨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말씀으로 깨우쳐야 한다는 것입니까? 언제든지 타락할 수 있기 때문에 말씀으로 깨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20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죄를 지은 순간에 그의 믿음의 의는 기억되지 아니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이 믿음으로 큰 일을 했다 할지라도 죄악을 범하면 그 공적은 하나님이 기억하시지 아니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파수꾼은 이 놀라운 사실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하지 아니하면 이 또한 피 값을 파수꾼에게서 찾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렵고 떨림으로 이 말씀을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혹시라도 죄악을 행했다 할지라도 진실로 회개하면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이 시대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가 사라진지 오래되었습니다. 강단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죄악이 난무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종들이 파수꾼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져가고 있는 중입니다. 얄퍅한 내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믿고 신앙 생활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마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빌2:12)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날마다 내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할 것이 있다면 지체하지 말고 즉시 즉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사함 받고 믿음의 의를 잊어버리지 아니해야 할 것입니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의인이 “믿습니다” 한다고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의인은 날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신앙을 살아가야 만이 진정한 의인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랍니다.
21절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깨우쳐 범죄하지 아니하게 하면 그들도 살고 파수꾼도 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파수꾼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을 깨우쳐야 합니다. 무엇으로 깨우쳐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말씀으로 그들을 깨우쳐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씀으로만이 그들을 깨우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3주째 계속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자가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때에 맞는 말씀만이 강퍅한 그들을 깨우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 가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씀으로 성도들을 깨우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젖 같은 말씀으로는 죄악이 난무한 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을 깨우칠 수 없습니다.
(히5:12-14)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히6:1-2)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어리아이 신앙은 유혹받기가 쉽습니다.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라고 하였는데 “버리고” 라는 하는 말은 헬라어로 “아펜테스” 라고 하는데 “아주 없애 버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위치에서 다음을 향해 떠나라” 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2절 끝에서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라는 말씀이 그 답을 하여주고 있습니다.
“단단한 음식” “장성한 자” “완전한 데로 나아가는 것”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초림 예수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장성한 자가 될 수 없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단단한 음식” 즉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먹고 장성한 자가 되어 신랑 예수를 영접할 수 있는 신부의 모습을 갖추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 가장 급한 문제는 영혼들의 구원 문제도 중요하지만 더 급한 문제는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고 있는 자들의 신앙을 하루 속히 깨우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젖만 먹는 어린 아이 신앙으로는 장성한 자가 될 수도 없고 재림 예수 신앙을 가지는 완전한데로 나아가는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 교회 안에 구원받을 자가 많이 있다는 말이 피부에 와 닿는 시대입니다. (눅18:8)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믿음의 사람들을 깨우쳐야 합니다.
만약에 파수꾼들이 이 믿음의 사람들을 깨우치지 못하면 화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신랑이로다” 하니까 졸던 모든 자들이 깨어났습니다. 마지막 때에 신랑으로 오시는 재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믿음의 사람들이 모두 깨어날 것입니다.
왜 정통 교회들이 이단들에게 이 복음을 빼앗기고 있습니까? 다른 말씀으로는 타락한 이 시대에 성도들을 깨우칠 수 있는 말씀이 없습니다. “신랑이로다” 외칠 수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 파수꾼의 수칙(겔 3:22-27)
군대에서 보초병의 5계 금지 수칙이 있는데 “위치이탈” “음주오락” “나태수면” “보고불실” “조치불실” 이 있습니다. 영적 파수꾼에게도 절대적인 수칙이 있는데 하나님은 3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2.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22절)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 내가 거기서 너와 말하리라”
들은 광야를 말합니다. 광야는 한적하고 외딴 곳이므로 사람들이 없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들로 나아가라” 는 것은 하나님이 조용히 만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조용한 시간에 말씀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파수꾼이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조용한 일대 일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어린아이에서 부터 어른들까지 안 바쁜 사람들이 없습니다. 특히 목회자들이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파수꾼은 너무 바쁘면 좋지 않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과의 일대일 시간이 소홀하면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왜 이 시간이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세례 요한도 첫 시작이 광야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천사의 초청을 받은 최초의 사람들은 광야에 있는 목자들이었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과의 일대일로 만나는 시간을 가지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과 성령님과의 만남이 적은데 어떻게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 수 있느냐 말입니다. 예수님과 만남을 가볍게 여기는데 어떻게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음성은 커녕 예수님의 옷자락도 만지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신앙이 자기 멋대로 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과의 만남이 소홀하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종들이 자기들 멋대로 설교하고 있는 것도 예수님과의 깊은 교제가 없기 때문에 인간적인 설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들로 나아간다는 것 바쁜 세상 속에서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나아가면 그곳에 놀라운 기쁨이 있습니다.
23절을 주목해 보세요. “내가 일어나 들로 나아가니 여호와의 영광이 거기에 머물렀는데”
들로 나아가니까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 만나 떠들고 하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쁘고 즐거워도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것보다 즐겁지는 못합니다.
저에게 누가 “가장 즐거운 일이 무엇이냐?” 고 물어본다면 저는 서슴없이 말 할 수 있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하나님 말씀을 준비할 때라고” 말 할 것입니다. 물론 말씀 준비하는 것 힘듭니다. 그러나 힘드면서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깐 하루 종일 앉아있어도 피곤할 줄도 모르고 시간 간 줄도 모릅니다. 아마 제가 냄비 태워먹는 것만 해도 10개는 넘을 것입니다.
들로 나아간다는 것 외롭고 힘들지라도 나아가야 합니다. 그곳에 나아가면 이 세상에서 느끼지 못한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는 이 마지막 시대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 (24절)
25절에 보면 에스겔이 집에 들어가 문을 닫고 나오지 않는 것은 이스라엘 무리들이 에스겔을 못나오게 막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집에서도 예루살렘 멸망을 선포했습니다.
(겔8:1) “여섯째 해 여섯째 달 초닷새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의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아 있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에서 내게 내리기로”
그러므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 는 의미는 어떤 행동의 제한 속에서 있을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유다의 장로들이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면 에스겔 또한 그들과 단절된 가운데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 는 것은 악한 자들과 논쟁하지 말고 하나님이 전하라는 말씀만 전하라는 것입니다.
카페에 글을 올리다 보면 논쟁하려고 하는 자들이 무척 많습니다. 그런 자들과 논쟁하다보면 1-2시간 훌쩍 지나갑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그들과 논쟁도 많이 했지만 이제는 그들의 속셈을 알기 때문에 논쟁으로 아까운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지막 때는 어떤 제한된 속에서만 복음을 전해야 할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인터넷 시대에 인터넷으로 맘대로 복음을 전하지 못할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제한된 속에서도 하나님은 말씀을 전할 기회를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악한 자들과 논쟁은 피하면서 전할 말씀만 전해야 할 것입니다. 악한 자들이 듣고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면 복이지만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이고 파수꾼은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설교는 일방적인 선포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인간들이 논쟁거리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큰 죄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혼들을 바라보고 말씀을 선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만 향한 마음의 문을 열고 전하는 사명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벙어리가 되도록 하였습니다(26-27절).
하나님은 에스겔의 혀를 입천장에 붙게 하여 말을 못하게 하였습니다. 26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하나님이 에스겔을 세우신 목적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꾸짖기 위함인데 꾸짖지 못하도록 벙어리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화가 날 때 오히려 분노를 터뜨려 말하기 보다는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할 때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하는 효과를 가져 옵니다. 지금 에스겔이 입을 다물고 말을 안하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패역한 유다의 장로들이 에스겔의 집까지 찾아와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을 때 하나님은 에스겔의 입을 벙어리로 만드셨습니다. 그들과 입씨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말로 그들을 설득하려고 애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스겔의 입을 언제까지 벙어리로 있게 하시지 아니하셨습니다. 27절의 말씀을 주목해 보세요.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 말씀이 주어질 때 에스겔의 입이 열려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때만이 에스겔에게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시 27절을 보세요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니라”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방적인 선포입니다. 타협이 아닙니다.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다시 말해서 듣기 원하면 듣고 듣기 싫으면 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다시 말하면 살고 싶으면 귀를 기울여 듣고, 지옥에 가고 싶으면 듣지 아니해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듣던지 아니 듣던지 하나님이 입을 열어 전하라고 하시면 전하는 것이 파수꾼의 사명입니다.
계시록 일곱 교회에 동일하게 마지막에 말씀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실로 영적인 귀를 기울여 세미한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때로는 내 입에 재갈을 먹일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말로 인해 가장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속담에도 “말 한마디에 천냥 빛을 갚는다” 했습니다. (약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그러므로 파수꾼은 때로는 벙어리가 되어야 하고 때로는 나팔수가 되어야 합니다. 파수꾼이라고 해서 주의 종들만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믿는 모든 자들은 파수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들 말합니다. 예수 믿는 자들은 모두 말들을 잘한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실속 없는 말은 하지 않는 편이 더 좋습니다. 이사야가 부정적인 말을 하자 천사가 제단의 숯불로 이사야의 입을 태워버렸습니다. 복음을 전해야 할 파수꾼들이여 하나님이 전하라고 하신 말씀만 전하는 귀하고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직무유기” 라는 말이 있습니다. 파수꾼이 보초를 제대로 서지 아니하면 직무유기입니다. 적군들이 오는데도 졸고 있거나, 나팔을 불지 아니하면 직무유기입니다. 전쟁 때 보초를 잘못서서 적군이 쳐들어왔다면 그 보초는 총살형이듯이 영적 세계에도 똑같다고 오늘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파수꾼의 중요한 것을 종합적으로 5가지로 말씀드린다면 첫째는 깨어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귀가 밝아야 합니다. 셋째는 눈이 밝아야 합니다. 넷째는 충성해야 합니다. 다섯째는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결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결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얼마나 충성했느냐로 평가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결과가 좋아도 불법을 행하고 이루었다면 하나님 앞에 서는 날 “내 앞에서 떠나가라”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마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잘했다 충성된 종아” 소리를 듣는 귀하고 복된 파수꾼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