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의 강과 영적 깊이
김영대 목사
오늘 본문은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 이스라엘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침공해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많은 물건들을 약탈해 갔고, 1만명 정도의 젊은이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그 포로 가운데는 25세의 젊은이 에스겔도 끼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포로생활 중 그의 나이 30이 되던 해에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습니다. 노예생활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용기와 희망을 선포하는 사명이 그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눈물의 선지자였고, 아모스가 정의의 선지자였다면, 에스겔은 소망의 선지자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비극적인 일이 또다시 벌어졌습니다. 바벨론 군대가 재차 예루살렘을 침공해 들어와 이번에는 성을 완전히 초토화 시켰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시드기야를 잡아서는 그 두 눈을 뽑았습니다. 그리고는 두 손을 묶어 말에 매달아 끌고 다녔습니다. 비참하게 끌려 다니다 죽었습니다. 이제 조국도 없어졌습니다. 돌아가 살집도 없어졌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울고 또 울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 무렵 에스겔의 아내가 세상을 떠납니다. 그러니 소망을 선포하던 에스겔의 꼴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에스겔은 이런 아픔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아니하고 백성들을 위로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용기를 가지고 희망을 버리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야 됩니다." 그랬더니, 그동안 에스겔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내를 잃어버린 상처받은 치유자 에스겔의 말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읽은 본문의 말씀은 에스겔이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상징하는 위로와 격려, 희망의 메시지로서 그가 보았던 환상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루는 에스겔이 하나님의 사자에게 이끌려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성전 문지방에서부터 물이 솟아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물은 개천을 이루어 동쪽의 사막을 통과하여 사해 바다를 향해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천사는 자로 성전으로부터 일 천 척을 잰 후에 에스겔에게 그 물을 한번 건너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물로 들어갔더니 그 물은 발목까지 차 오르는 정도였습니다. 천사는 다시 일 천 척을 잰 후에 에스겔에게 다시 물을 건너보라고 합니다. 이제 물은 무릎까지 차 올랐습니다. 다시 물은 점점 차 올라 허리까지, 그리고 오늘 본문에 생략되어 있습니다만 가슴까지, 마침내 물은 헤엄치지 않고서는 능히 건널 수 없는 강물이 되었습니다.
성전에서 발원한 물은 성전을 한바퀴 휘감아 돌더니 메마른 사막을 통과하여 죽음의 바다 사해, 본문에는 아라바로 표현된 바다에 이르자 어떤 생물도 살 수 없었던 죽음의 바다 사해가 다시 살아나 수많은 고기들이 펄떡거리며 뛰어 노는 생명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강물이 지나는 좌·우편에는 나무가 심히 많아 숲으로 우거지게 되었고 나무들마다 진귀한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렸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는 생명과 축복의 땅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이 보았던 이 환상은 대단히 상징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부터 물이 흘러 강이 되었다고 했는데 실상 예루살렘은 강이 없는 곳입니다. 예루살렘은 지대가 높은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물리적인 강이 있을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발원된 생수의 강이 흘러 흘러 사막을 통과하고 사해 바다까지 이르러 마침내 죽은 사해 바다를 살렸고 강 좌·우편에는 사시사철 열매맺는 나무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환상인 것입니다.
물은 생명과 풍요의 원천이 됩니다. 물은 생물이 존재하기 위하여 없어서는 안 될 생명의 근원이요, 생명 유지의 귀중한 요소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도 물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고 중요한 것입니다. 물을 마시지 않고는 사람이 살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물과 성령으로 너희들이 거듭나야 하리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리라." 이 물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 이 물은 우리가 보통 마시는 '물'(water)이 아니라 '진리'(truth)를 가리키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라는 동네의 한 우물가에서 예수님과 한 여인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을 길러온 여인에게 대화 중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세상의)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나니 나의 주는 그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란 우리가 먹는 보통 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말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지옥의 백성들을 건져내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을 수 있는 은혜의 강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흘려주신 피의 은총, 보혈의 능력, 그것이 바로 인류를 살려내는 생수의 강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는 사람은 버림을 받지 않습니다. 보혈의 은총에 적셔진 영혼들은 죄 사함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보혈은 이 역사 한가운데를 힘차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보혈의 은총이, 성령의 생수가 어디로부터 시작되고 발원되고 있습니까? 예!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곧 오늘날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10:4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사람들은 모두 교회를 또한 어머니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로부터 생수의 강이 시작되고, 구원의 보혈이 흘러 넘치기 때문입니다.
때로 신앙생활 하다보면 교회가 못나 보입니다. 모순되어 보이고, 때론 교회의 허물이 눈에 보이기도 합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을 보면 예수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악하게 보여지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혼동을 가져오고 어지럼증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멀미가 난다고 해서 태평양 한가운데를 여행하다가 배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교회는 구원의 방주입니다. 흠이 있어도, 때로는 어지럼증이 있어도, 교회에서 뛰어내리고 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어떤 길도 없습니다.
문제는 내 신앙의 깊이가 어느 정도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문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없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강력하게 묻고있는 한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네 신앙의 깊이는 어느 정도냐? 너 자신의 신앙을 측량해 봐라"하는 것입니다.
1. 발목을 잠근 사람들
영적으로 볼 때 발목에 물을 잠그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발목에 물을 잠근다는 것은 신앙의 초보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그저 교회에 왔다갔다하는 단계를 말합니다. 아직 체험도 없고 큼 감격도 없지만 그래도 주일이 되면 꼭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는 출석교인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을 일러 발목의 신앙인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제 구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에는 발목신앙도 되지 못한 오늘 본문 11절에서 말하는 진펄과 개펄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의 냄새만 맡았을 뿐 은혜의 강물에 뛰어들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구원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 사람들 말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천국을 향하여, 진리를 향하여, 성경의 복음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은혜의 강가에서 구경만 했지 발을 들여놓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향한 준엄한 하나님의 말씀이 여기에 있습니다. 11절입니다.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 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다." 예수님의 보혈에 그 영혼이 적셔지지 못한 사람, 구원의 강물에 뛰어들지 못한 사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 사람은 버림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주일의 사람들, 성전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가 여러분의 삶에 우선순위가 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사야 58:13-14 약속한 주일 성수자들이 누릴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무릎까지 잠긴 사람들
이제 물이 점점 차 올라 무릎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무릎의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교회를 다니다 어느 날부터 기도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전에도 기도를 안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정말 기도다운 기도를 시작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무릎신앙에 오른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전에는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으면 자기의 재주를 가지고 해결한다고 혼자서 헐떡거리고 뛰어다녔습니다. 아니면 친구들을 만나고 선배들을 만나서 해결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와 기도하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인생의 문제를 하나님과 의논하고자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신통한 것은 내가 해결하려고 할 때는 문제가 더 꼬이더니 하나님이 도와주기 시작하자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것을 경험케 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하여 이제 그의 무릎이 점차 기도로 적셔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의 무릎이 은혜의 강물에 적셔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신앙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 문제의 해결 열쇠는 기도하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 아무쪼록 우리 꿈마을엘림교회의 모든 성도님들 모두다 무릎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허리까지 잠긴 사람들
다음 단계는 물이 허리에 차는 단계입니다. 허리는 몸의 중심부분입니다. 이제 신앙생활의 중심이 잡혀가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성경이 그저 옛날 얘기나 좋은 글이 쓰여진 책인 줄 알았는데 언젠가부터 이 성경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연애편지인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다보면 가슴이 설레이고, 때론 눈물이 핑 돌며 감격이 찾아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허리까지 물이 차 오르는 단계입니다.
말씀으로 진리의 허리띠를 매는 단계가 바로 이 단계입니다. (한복의 불편함) 무슨 일을 할 때 허리띠를 매지 않아 바지가 자꾸 흘러내리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허리를 다치면 힘든 일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6장에 보면 성도의 완전무장이 나오는데 거기에도 바로 진리의 허리띠를 말하고 있습니다. 허리띠를 제대로 매지 않고는 제대로 걸을 수도 없습니다. 창피 당하기 십상입니다. 넘어지기 십상입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매야 힘있게 전진하는 신앙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향상하는 신앙이 가능해 지게 되는 것입니다. 무거운 짐이 맡겨져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역도 선수들을 보면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릴 때 먼저 꼭 다잡아 매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허리벨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것을 통해 여러분의 허리의 힘을 키우십시오. 허리에 힘이 있고 중심이 딱 잡혀있으면 웬만한 것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허리에 힘이 없고 중심이 잡혀있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으로 신앙의 허리띠를 삼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가슴까지 잠긴 사람들
본문에는 이 부분이 생략되어 있지만 당연히 거쳐야 될 다음 단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슴까지 물이 차는 단계입니다. 가슴이 은혜의 물에 잠기지 않고 신앙생활의 연조만 깊어지다 보면 기쁨이 없고 감격이 없어집니다. 자칫 습관적인 신앙생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지만 거기에 기쁨이 없고 감격이 없는 것입니다.
예배 한시간을 드려도, 하나님 앞에 기도 한번을 하더라도, 찬송을 한번을 부르더라도 마음에 감격이 있는 사람은 그 눈에 눈물이 있습니다. 영적인 카타르시스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랜 신앙생활을 했어도 감격이 없고, 아무런 능력도 체험하지 못하고 메마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주님은 우리의 가슴이 물에 잠기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이제 우리의 가슴이 은혜에 적셔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감동을 느끼며 아멘 아멘 하며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찬송을 부를 때에 감격함이 있어야 합니다. 기뻐서 감사하며 기도하는 단계에 이르러야 합니다.
메마른 신앙, 차가운 이성의 신앙에 머물러 있는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 벅참과 감격이 있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깊은 물에서 헤엄치는 사람들
오늘 본문이 말하는 신앙과 은혜의 단계는 가슴의 단계에 머물지 않습니다. 더 깊어져 가고 있습니다.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5절)
여기 교회에 큰 은혜의 강물이 흐른다고 합시다. 그러면 두 종류의 사람이 생겨납니다. 하나는 은혜의 강물에서 헤엄치며 노는 사람이 있게 되고, 다른 하나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즉, 교회에 은혜의 강물, 은혜의 생수가 흘러 넘쳐도 허우적거리며 퍼덕거리다가 물 마시고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그것을 즐기며 헤엄치며 노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하십니까? (일사천리 신앙부흥운동)
수영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에는 얕은 물가에서 발만 적시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땅을 짚고 헤엄치는 단계에 이릅니다. 그러다가 점점 깊은 물로 들어가 헤엄치는 은혜의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깊은 물에 몸을 맡기고 나면 저절로 몸이 뜨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의 생활이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신비의 세계입니다. 믿음이란, 억지로 '믿어야지'하고 애쓰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절로 믿어지는 은혜의 단계가 있습니다. 축복이란, 내가 노력한대로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단계가 있습니다. 넘치는 강물에 가서 내 발이 땅에서 떨어지면 죽을 것 같지만 땅에서부터 발을 떼고 헤엄치며 살 수 있는 은혜의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인생을 철저하게 계획해서 살아가면 그것이 반듯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은혜의 세계가 있습니다. 이 단계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쫓기듯 인생을 살아오셨습니까? 주님 앞에 여러분의 인생을 맡기고 살아가십시오. 세상에서 발이 떨어지면, 그 문제를 내가 놓으면, 내가 망할 것 같지만, 내가 놓으면 주님이 대신 잡아 주시는 은혜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의 강물에 여러분의 문제를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나무들이 숲을 이루게 될 것이고, 죽었던 사해가 살아나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은혜의 강물에 맡겨놓고 살아가십시오. 풍성한 열매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어디에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나도 살고 너도 살고 가정도 살고 직장도 살고 사업도 살고 이웃도 살고 자녀도 살아나는 신비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시간 다시 한번 여러분의 신앙의 단계를 점검해 보십시오. 아직까지도 내 영혼이 주님을 향하여 문을 열지 못하여 진펄과 개펄 소금 땅이 되어서 생명이 자라지 못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계십니까? 이 시간 마음의 문을 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발목이 교회에 적셔지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오는 것이 즐겁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구원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차 올라야 합니다.
여러분의 무릎이 주님 앞에 적셔졌습니까? 더 깊이 담그십시오. 전능하신 주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문제를 주님 앞에 맡기십시오. 가정의 문제를 주님 앞에 내어놓으십시오. 내가 해결하려고 할 때보다 주님이 붙들어 주시면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큰 문제가 여러분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반대로 너무 작고 시시해서 여러분자신이 붙들고 있습니까? 그 모든 문제를 주님 앞에 맡기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의 중심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우리 주님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에서도 살아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중심을 말씀 중심으로 바꾸십시오. 예수 중심으로 바꾸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감격이 없으십니까? 기쁨을 잃어버렸습니까? 행복을 잃어버렸습니까? 주여 제게 감격을 주십시오. 성령이여 찾아오셔서 내게 기쁨을 주십시오. 나도 은혜의 강물에 내 가슴이 적셔지기를 원합니다. 찬송을 부를 때마다 기뻐서 찬송할 수 있고 기도할 때마다 은혜가 되고 말씀을 들을 때마다 가슴에 꽉 차 오르는 기쁨과 행복에 누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최종적으로는 바울과 같이 이제는 내가 살아도 주를 위해서, 죽어도 주를 위해서 살겠습니다 하는 고백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발을 뗍니다. 세상 붙들고 있던 손을 놓습니다. 이제 주님 붙들기를 원합니다. 주여 나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깊은 은혜의 단계에 이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생명의 강물을 흐르게 하자
성흥모 목사 / 영주교회
오늘은 우리 영주교회의 창립 57주년기념주일입니다. 6. 25 한국전쟁이 3년간의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끝나고, 1953년 7월 27일에 휴전협정이 조인되었습니다. 부산 영주교회를 시무하시는 계창주목사님이 서울 용산구 후암동 266의 2호 적산가옥을 마련하였고, 휴전협정이 조인된 다음 주일, 8월2일부터 예배를 드린 것이 오늘 우리 영주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 영주교회는 전쟁의 폐허 위에 십자가를 내어걸고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고, 분열과 갈등을 싸매며 성장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창립50년을 넘어 57주년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 땅에 세워지고 반세기를 넘기고, 이제 창립60주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부산영주교회를 다니던 성도들이 환도하면서 서울에 와서 설립하였는데, 부산의 영주교회(瀛州敎會)라는 이름이 너무나 좋았고 향수를 자아내던 이름이었기에 그 이름을 살리면서, 뜻을 달리하였으니, 영주교회(榮主敎會)-주님께 영광 돌리는 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주님께 영광 돌리는 교회,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교회, 그 담겨진 뜻은 참으로 좋은데, 한참 설명해야 알아듣는 것 같아 당황할 때가 많습니다.
교회는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의 모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말을 그리스어로는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이것은 시민의 집회, 의회를 의미하였습니다. 영어로는 처치(church), 프랑스어로는 에글리즈(église), 독일어로는 키르헤 (Kirche) 이런 말들은 그리스어의 퀴리아케에서 나온 말인데, 그 뜻은 ‘주님에게 속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에게 속한 사람들이요,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영주교회의 5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저는 교인들 가정을 심방하면서 느낀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교육열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과 신앙의 대를 이어주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가정들이 사위를 보고, 며느리를 맞이하는데 있어 다른 여러 조건보다도 예수 믿는 같은 믿음을 보려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도 힘써왔지만, 앞으로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모든 성도들이 신앙의 대를 이어주는 일입니다.
저는 지난 7월 초에 청년들과 함께 필리핀으로 단기선교를 다녀왔는데, 여러 장로님과 집사님들의 아들과 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땀을 흘리며 일을 하였습니다. 그 청년들이 얼마나 일을 잘하고, 건전한 대화를 나누고 서로 협력하면서 일정에 따라 봉사하는지, 저들이 우리 교회의 기둥 같은 일꾼들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어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고등부 수련회에 참석하여 권면하고 위해서 기도해주었고, 양평의 숭실대 청소년수련장을 방문하여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도 여러 집사님들의 자녀들이 많이 참석하여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특별히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시간을 내어 수련회에 참석하여 진지하게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다음세대를 품는 교회로, 청년들과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들 시대도 참으로 의미 있었고, 좋은 교회를 만들려고 최선을 다하였지만, 몇 십 년이 지난 후에도 우리 교회가 교인들로 가득차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좋은 일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마16:18에서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당신의 교회, 내 교회 주님의 교회의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읽어드린 말씀은 에스겔 선지자가 본 환상입니다. 에스겔선지자는 성령에 이끌려 예루살렘 성전, 새롭게 재건될 성전을 둘러봤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포로 시대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유다 왕 여호야긴이 바벨론에 사로잡혀간 지 5년이 되는 때, 에스겔의 나이 서른 살에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가장 암울한 역경의 날, 고국 유다는 다시 바벨론에 의하여 포위되고, 완전한 멸망을 앞두고 있었고, 수많은 유다의 젊은이들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억류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에스겔은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선지자 에스겔을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셨습니다. 성전의 앞면, 성전의 현관이 해가 뜨는 동편을 향하여 있었습니다. 에스겔은 성전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전 현관의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오는데,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 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선지자 에스겔을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게 하셨습니다. 바깥 길로 돌아서 동쪽을 향한 바깥문에 이르게 하셨는데, 성전에 문지방 밑에서 나온 물이 그 오른 쪽에서 스미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스미어 나온다”는 말은 흘러들다, 배어 들다는 말인데, 히브리어로는 ‘파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똑똑 떨어지다”, “졸졸 흐르다”는 말입니다. 성전 현관문의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오는데, 졸졸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측량한 후에 에스겔에게 그 물을 건너가 보라고 하셨습니다. 에스겔이 순종하여 그 물을 건너가는데, 그 물의 깊이가 발목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주의 성령께서 다시 일천 척을 측량하시고는 에스겔에게 건너가보라고 하셨습니다. 에스겔이 순종하여 그 물을 건너가는데, 그 물의 깊이가 무릎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주의 성령께서 다시 일천 척을 측량하시고는 에스겔에게 건너가보라고 하셨습니다. 에스겔이 순종하여 그 물을 건너가는데, 그 물의 깊이가 허리에 오르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다시 일천 척을 측량하시는데, 이제는 물이 깊어서 에스겔이 건너지 못한 강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발로는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 되어 있었습니다.
일천 척을 척량하면서, 강을 따라 내려가는데, 척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암마”인데 규빗을 나타내는 단위였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에 있으면서 큰 규빗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데, 큰 규빗은 52cm이고, 작은 규빗은 46cm입니다. 약50cm로 계산한다면 약 500m를 내려가서 건너게 하였다는 말입니다.
성전 문지방에서 스미어 나오는 물은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물이 가지는 상징성은 생명을 살리는 생수입니다. 우리 사람은 하루라도 물을 마시지 않고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갈한 목을 축이며, 생명을 유지하도록 물을 주셨고, 씻을 수 있는 물을 주셨습니다. 물은 생명을 유지해주고, 물은 곧 생명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성전과 성전의 문지방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전 문지방 밑에서 스며나오는 물은 우리 주님 예수로부터 나오는 말씀과 능력으로, 그 물은 사람을 살리고, 문화를 살리고, 세상을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요7:37절에서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은혜와 능력을 생명의 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물이란 모든 생명을 살리고, 풍성하게 합니다. 물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그대로 살려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렘2:13에서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생수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며, 우리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이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한 참된 평안과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십니다.
이사야58: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축복의 상태를 물댄 동산, 물이 끊어지지 아니는 샘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물을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수가성 여인, 사마리아 여자에게 하신 말씀을 가지고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요4:10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생수를 주시고, 주님은 생수가 되십니다.
다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요4:14에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우리 주님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됩니다.
오늘 성전에서는 스며 나오는 물은 곧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예수님의 보혈,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상징적으로 말씀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말씀과 성령으로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환상에서 성전 문지방에서 생수가 스며 나오고 있지만, 그 물은 점점 불어나고 확산되고, 흘러가면서 개울 곧 도랑을 이루고, 다시 내려가면서 개천이 되고, 이제는 어느 듯 강물이 되고, 마침내 넓고 넓은 바다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그러 하였습니다. 시작할 때에는 아주 작은 것 같지만, 생명의 역사라는 것은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시작은 미미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그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이란 점진적으로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믿자마자 그의 능력과 영향력이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발목에 오르는 단계, 무릎에 오른 단계, 허리에 오르는 단계, 헤엄쳐야 건널 수 있는 강물이 되는 단계, 그 단계를 지나야 은혜의 바다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발목에 오르는 단계는 교회에 열심히 뛰어나오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릎에 오르는 단계는 좀 더 성숙한 신앙으로 기도하고 싶어지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이 점점 성장하여 허리에 오르는 단계는 겸손히 봉사하는 단계로 보아야 합니다. 허리는 겸손을 상징하며, 주님은 수건을 허리에 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닦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강을 이루게 된 것은 말씀이 나를 주장하고 지배하는 말씀 중심으로 신앙, 내 힘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에스겔에게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에스겔을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에스겔이 강 가로 돌아가 보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았습니다.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았다는 말은 단순히 나무가 많다는 말이 아닙니다. 나무와 열매의 풍성함을 말하고, 하나님의 축복은 조금도 모자람이 없고, 넘치고 있었습니다. 나무는 잘 자라고 열매를 내고 그늘을 만들어주고,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 많은 나무로 인하여 사람은 물론이고, 새들과 여러 곤충과 모든 생물들이 풍성한 삶을 누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강물은 동쪽으로 흘러 내려가는데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그 강물이 들어가는 그 물로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고 있었습니다. 그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고 있었고, 모든 생명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은 것이었습니다. 이 생명의 강물이 흘러들어가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고 있었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생명체가 살아나고 있었습니다.
이 강 가에 어부가 모여들어 그물을 치며 고기를 잡는데,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았습니다. 성전에서 나온 물은 강물을 이루어 죽음의 골짜기 아라바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아라바 바다는 염해라고 하는 사해를 말합니다. 아라바 바닷가에는 진펄과 개펄이 있어 소금 땅이 된 곳도 있었지만,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였고, 열매가 끊이지 않는데, 달마다 새 열매를 맺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물도 이런 역사를 일으킬 수 없지만, 그 물은 성소에서 나오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나오는 물, 생명의 물, 곧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구원 역사는 사람을 살리고, 죽은 문화를 살리고 사람들이 살만한 사회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모든 열매는 맛을 내어 먹을 만 하였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생명의 강물로 흘러내리게 해야 합니다. 이 생명의 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 보혈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말씀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전파되었습니다. 다시 로마의 고속도로를 따라 땅 끝까지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풍성하게 해주고 사람을 살리고 새롭게 열매를 맺게 하는 복음으로 무장하고, 이 복음의 능력이 활발하게 역사할 수 있게 하고, 이 복음을 우리 지역사회로 흐르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에스겔을 통하여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을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 요5:17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 주님께서 영혼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에 동참하고 함께 받들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그 생명 안에서 풍성함을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발목에 이르는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무릎에 오르고 허리에 차고 마침내 헤엄쳐야 건널 수 있는 강물을 이루어야 온 땅을 적시며, 각종 나무로 살게 하고, 죽은 바다까지 살려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이 생명의 강으로 흘러내리게 해야 합니다.
에스겔은 포로 시대에 하나님이 주시는 희망을 외쳤습니다. 유대나라가 멸망하여 산지사방 흩어졌고, 바벨론에 포로되어 왔지만, 하나님은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게 하시고, 반드시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회복시켜주신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고 그 곳을 “여호와 삼마”라고 부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삼마”라는 말은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신다는 뜻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은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강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에서 스며나오는 생명의 강물은 온 땅을 적시고 흐르다가 죽은 사해까지 소성시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노래하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내어다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풍성한 계절을 바라보며 노래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들, 예수님을 받아 마신 자마다 생명수를 마시고 다시는 갈하지 아니합니다.
저는 오늘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이 생명을 살리는 강물의 발원지는 성전이요, 성전 현관의 문지방이었습니다. 성전을 나와야 생수를 마실 수 있고, 성전 문지방을 밟고 들어오고 나갈 때에, 성전의 현관 문지방 밑에서 스며나오는 물로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물은 고여 있는 물이 아닙니다. 고여 있으면 썩고 죽은 물이 됩니다. 흐르는 물만이 생명력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 물은 모이고 모이며 불어나는 물입니다. 그리고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물이 이르는 곳마다 나무가 살고, 고기가 살고, 땅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이 물이 흘러지나가는 곳마다 모든 생명들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생명을 살리는 운동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는 이 사회를 살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행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에스겔을 데리고 일천 척을 재어보고는 그 물에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면서 그 말씀 속에 뛰어 들어와야 합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멀찍이 서서 구경하실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성전에 깊이 들어와야 합니다. 교회는 무엇을 감상하고 관망하고 무엇에 관하여 아는 것이 아니라, 뛰어 들어와 잠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침내 헤엄할 물, 수영할 물, 강물이 되었고, 바다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 물이 나를 인도하고, 물의 힘이 나를 물위로 떠오르게 하고, 물의 힘을 이용하여 나로 마침내 건너가야 하는 강 요단강을 건너가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수에 사모하고 목말라 해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목마르지 않으면 어떤 생수도 마시지 않습니다. 목마른 사람만이 생명수를 마시게 됩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계시록 마지막에 주님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생명수의 말씀, 우리 주님 예수님의 구원하시는 복음의 비밀을 널리 전파하고 그 생수가 흘러내리게 하는 일에 열심을 내어야겠습니다. 말씀을 사모하시고 그 말씀을 마셔 풍성한 생명을 누리며, 우리 사회를 사람 살만한 사회로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 하시기를 바랍니다.
생수가 넘치는 교회, 세상을 살리는 교회
조상호 목사
여러분들 가운데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모두 고대 문화가 자랑하는 전설의 유적들입니다. 이집트의 피라밋, 바벨론의 공중정원, 에베소에 있는 다이아나 여신전,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로즈섬의 항구에 있는 거대한 청동상, 그리스 올림피아에 있는 이방신 제우스 상, 그리고 페르시아 왕 할리카르나서스의 무덤 등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물론 이집트의 피라밋을 제외한 다른 여섯 가지는 현재까지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7대 불가사의에 또 하나의 불가사의가 더해져야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리비아의 대수로 공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원래 북아프리카의 리비아 대수로 공사는 리비아의 최고지도자인 가다피 대통령이 내건 <녹색혁명>의 기치아래 사하라사막 북부를 옥토로 바꾸기 위한 대역사입니다. 모두 5단계로 건설되는 대수로 공사는 사하라 사막의 동남부 및 서남부 내륙지역의 땅 밑에 매장돼 있는 지하수를 퍼 올려 북부 지중해 연안에 있는 주요 도시에 공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지난 84년에 한국의 동아건설에서 공사를 시작한 이래 지난 96년까지 1단계와 2단계 공사를 마쳐서 현재 지하 7미터 깊이에 큰 트럭도 지나갈 수 있는 직경 4미터의 관을 묻어 3천5백44㎞의 초대형 수로가 사하라사막과 곳곳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이 직경 4미터 관을 통하여 영국 템스강 유수량의 2배에 해당하는, 하루 250만 톤 이상의 물이 송수되고 있습니다. 지난 96년 2단계 공사를 마치고 물을 통하게 하는 통수식 때에는 대수로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고 너무 신기하고 좋아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흘러나오는 물 앞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어떤 노인들은 우는 모습을 사진을 통해서 본 적이 있습니다. 이제 리비아는 어느 정도까지는 식수와 공업용수, 그리고 농업용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비아는 멈추지 않고 현재 3단계 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단계, 5단계 공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난 96년 9월 리비아 대수로 2단계 공사를 한국의 동아건설이 맡아 완공하고 수로가 개통되었을 때, 리비아의 최고 지도자인 가다피 대통령은 "2단계 공사의 성공적인 마무리로 사막을 옥토로 바꾸려는 우리들의 오랜 꿈이 현실로 다시 한번 나타났습니다"고 말하며 "세계 8대 불가사의가 될 대수로 공사를 차질 없이 시공한 한국 기술진들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크게 기뻐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가다피 대통령 뿐 아니라, 리비아 모든 국민들을 꿈을 꾸고 있습니다. 5단계 공사가 끝나면 우리 한반도면적의 6배에 달하는 <죽어 있는 땅> 3억6천8백만 평이 <숨쉬는 땅>으로 바뀌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막의 황폐한 땅이 녹색의 기름진 땅으로 바뀌어 지게 될 것입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살 수 없는 땅이 각종 실과 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고 실과가 끊이지 아니하는 땅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죽어있는 땅이 숨쉬는 땅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저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보면서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물의 중요성입니다. 죽어있는 땅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물이 들어가면 됩니다. 물이 들어가면 황무지가 옥토로 바뀝니다. 먼지만 풀썩풀썩 날리는 땅도 물이 공급되기만 하면 초원으로 변화되고 생명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는 물이 흔하기 때문에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쏟아져서 물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지만, 리비아나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같은 사막지대에서만큼은 물이 생수가 되고, 물이 생명수가 됩니다. 물이 없으면 공장을 돌릴 수 없고 농사도 질 수 없고, 기본적인 삶조차 영위할 수 없습니다. 물은 개인이 살 수 있는, 가정이 살 수 있는, 나라와 민족이 살 수 있는 생수가 됩니다.
제가 지난 몇 개월 동안 2002년도 사역방향을 놓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바로 이 <생수>에 대한 생각을 제 마음에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2002년도 우리 교회표어를 <생수가 넘치는 교회, 세상을 살리는 교회>라고 정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개인과 우리 가정과 온 교회에 생수가 넘치기를 위해서 기도하려고 합니다. 또한 이 넘치는 생수를 가지고 세상을 살리기 위해 1년 동안 계속해서 달려가려고 합니다. 지난 한해동안 우리가 <말씀과 생기가 넘치는 교회>를 위해서 금식하며 매일 매일, 또 새벽기도회에서, 금요집회에서, 주일예배에서 부르짖어 기도한 결과, 주님께서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 위에 정말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분에 넘치도록 많은 축복과 희열을 맛보게 해주셨습니다. 이제 올해에도 <생수가 넘치는 교회, 세상을 살리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예배 때마다, 모임 때마다 기도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올해의 비전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달려갈 때, 올해에도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생수를 넘치게 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세상을 살리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한번 옆자리에 계신 분들에게 "생수가 넘치는 삶을 사십시오"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인사하실 때, "세상을 살리는 삶을 사십시오"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에스겔서 47장은 생수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으로부터 2,600여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김으로써 계약 조건을 파기하자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에스겔이라는 유명한 하나님의 선지가 있었습니다. 그가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임하여 환상을 보여 주셨는데, 그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생수의 근원과 생수의 분량, 그리고 생수의 능력에 대해서 상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1. 생수의 근원
눈에 보이는 강물과 달리, 생명을 살리는 생수는 아무 곳에서나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여기에서 전이란 문자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합니다. 그 성전으로부터 생수의 강이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생수가 성전 주변을 가득 채울 뿐 아니라 사해 바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막을 채우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해 바다에 들어가서 죽어있는 바다를 살려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예루살렘 지역에는 강이 없습니다.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강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저장해서 그것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예루살렘 도시 자체에는 어떤 강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절에서 언급한 '전'이란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생수가 넘쳐 나오는 '전'이란 어떤 곳을 말할까요? 그 대답을 예수님께서 요한복음7장 38절에서 해주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생수가 흘러나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생수가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까? 본문 1절 하반절의 '제단'이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여러분, 제단이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제사 지내는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물이 되어 주셔서 갈보리 산 위에서 인류를 위해 못 박혀 죽으신 십자가가 바로 제단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생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면 생수는 무엇을 말할까요? 성령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7장 38절에서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고 말씀하신 후에 3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그러니까 생수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우리는 생수가 넘치는, 성령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죄의 값을 지불하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십자가를 의지하고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혼의 갈증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를 보면 세상의 방법으로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례가 점쟁이를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점쟁이가 40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인구 100명당 1명이 점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가장 잘되는 비즈니스 중의 하나는 '점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점쟁이를 찾아가는 이유를 물어보면, 답답해서 찾아간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영혼의 두려움과 답답함을 해소하려고 점집을 가는 것입니다. 또 한국처럼 술장사가 잘 되는 나라도 없다고 합니다. 월 평균 수입의 20퍼센트 가까이를 술값으로 지불하는 나라가 또 어디에 있습니까? 1인당 술 소비량은 세계최대라고 합니다. 그런데 술 마시는 사람에게 "왜 술 마십니까?"라고 술 마시는 이유를 물어보면 대답이 이렇습니다. "제 정신으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견딜 수 없어서 마십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영혼의 갈증을 술로라도 해갈해 보려고 몸부림을 친다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나이트 클럽에서, 락카페에서 밤새도록 몸을 흔들어돼는 이유도 알고 보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도박도 마찬가지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박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는 사람들이 왜 도박을 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생각해보니까 도박의 목적이 돈이 아니더랍니다. 돈이 목적인 사람은 돈을 주면 더 이상 도박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돈이 생기면 여전히 도박장으로 달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내린 결론은 "도박을 왜 하느냐? 그것은 돈 때문이 아니라, 깊은 목마름 때문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주장을 100% 수용하기는 어렵지만, 그 나름대로 맞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점으로, 술로, 춤으로, 도박으로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영혼의 갈증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없습니다. 만약 세상의 방법으로 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면 술집이 점점 줄어야 합니다. 점집이 폐업신고를 내며 문을 닫아야 합니다. 나이트 클럽이, 카지노가 망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업장이 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성업중이 아닙니까?
요한복음 4장에는 영혼의 갈증을 해갈하기 위해, 남편을 다섯이나 바꾸어가며 살았지만, 영혼의 갈증이 해갈되기는커녕, 더 심해져 여섯 번째 또 다른 남자와 같이 사는 한 여자가 등장합니다. 수가성 우물가 여인입니다. 그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타는 목마름은 세상의 그 어떠한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영혼의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요7:37)에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방법으로 여러분들의 갈증을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서 갈증을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생수로 영혼의 갈증을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생수, 어떠한 갈증도 해결할 수 있는 생수, 죽은 생명도 살리는 성령의 생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시작됩니다.
2. 생수의 분량
성전 문지방에서부터 흘러나온 생수는 제단을 한바퀴 돈 다음, 그 제단을 통과해서 남쪽으로 흘러가는데, 물은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천사가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물의 깊이를 재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성전에서부터 흘러나온 생수의 강물이 계속 불어나기 시작합니다. 홍수처럼 불어납니다. 천사가 일천척 오늘날로 말하면 500미터 가량을 동으로 나아간 후에 물을 척량해서 보니 발목까지 찼습니다. 계속해서 4절과 5절을 보겠습니다.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성전 문지방에서부터 흘러나온 물이 발목에 차더니 무릎에 차더니 허리에 차더니 마침내 사람이 건너지 못할 정도로 물이 넘실거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성전에서부터 시작된 생수가 우리의 발목만 살짝 적시는 강이 아니라, 우리가 헤엄쳐야만 건널 수 있을만큼 풍성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수, 성령의 생수는 우리가 겨우 혀에 살짝 찍어 발라 맛만 보는 물이 아닙니다. 헤엄쳐야만 할 물, 우리를 능히 잠기게 하는 물, 넘치는 강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생수는 우리가 충만하게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에도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었지만, 이 땅에서 주님께서 준비하신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생명만 얻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은혜의 강가에서 발목만 담그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더 깊은 성령의 생수를 맛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어떤 글에서 읽은 이야기인데, 한 사람이 조그마한 보트를 타고 남미의 아마존 강을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한참 동안 신이 나서 내려가는데 갑자기 보트 엔진이 고장이 나서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사람은 물이 흘러가는 대로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가 쨍쨍 내려 쬐이는 무더운 날씨에 준비해 간 물로 목을 축였지만, 그것도 잠시뿐 다시 갈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꾸 마시다보니 배에는 더 이상 물이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완전히 절망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목마름 때문에 고통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큰배가 나타났습니다. 이 사람에게 소망이 생겼습니다. 이제 타는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배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살려주세요. 목말라 죽겠어요. 물 좀 주세요." 그러자 큰배에서 이러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보시오. 당신은 지금 아마존 강 한복판에 와 있소. 보트 옆에 있는 강물을 떠먹으시오. 그 물로 당신의 목마름을 해결하시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시 강물이 넘실대는 강 한복판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목말라하는 이 사람처럼,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그리스도인 임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은 것으로만 만족하고 날마다 목말라하고 있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물론 구원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입니다. 영생을 얻었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예비해 놓으신 풍성함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시인함으로(고전12:3)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안에는 성령께서 거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친히 증거 하십니다(롬8:16). 그러나 이러한 은혜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발목에 차는 정도의 은혜에 만족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생수로 가득 채워 풍성한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생수를 발목에 채운 분들은 무릎까지 채우고, 무릎까지 채운 분들은 허리까지 채우고, 허리까지 채운 분들은 머리끝까지 충만하게 채우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아 성령의 생수에 완전히 잠겨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삶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생수의 능력
생수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서두에 소개한 리비아 대수로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물도 사막을 옥토로 바꾸는데, 하물며 하늘의 생수, 성령의 생수에 능력이 없겠습니까? 생수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세 가지로 말씀합니다.
첫째로, 생수는 생명을 살립니다. 죽은 생명을 다시 살립니다. 6절과 7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내가 돌아간즉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여러분 지금 본문의 배경이 어디라고 했습니까? 팔레스타인 지역입니다. 풀 한포기 나지 않는 황폐한 사막지대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나무가 심히 많아졌다고 합니다. 생명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것을 뜻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11절 하반절에서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씀하시면서 구원받은 자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수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줄로 믿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어 가는 심령들을 다시 살리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생수는 치료합니다. 8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 여기에서 말하는 바다는 사해 바다를 가리킵니다. 흘러내리는 생수로 인하여 죽어있는 바다, 아무 생물도 살지 않는 사해 바다가 다시 소성함을 얻는다고 합니다. 영어로 'heal', 치료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생수가 큰 강이 되어 흘러 들어가는 곳마다 모든 물이 치료됩니다. 또 9절을 보겠습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죽었던 강물이 치료되어 정상적인 상태가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사라졌던 생물들이 다시 돌아옵니다. 사라졌던 수많은 물고기들이 다시 돌아와 헤엄치게 됩니다. 다시 10절을 보겠습니다. "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에네글라임이라는 곳은 요단강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사해에 들어오는 처음 지점입니다. 그리고 엔게디는 사해의 가운데 위치에 있지만, 사실상 사해 바다는 엔게디에서 끝납니다. 그러니까 사해바다의 최북단인 에네글라임에서부터 엔게디까지 사해바다의 전지역에 각종 물고기들이 종류를 따라 엄청나게 몰려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물고기들을 잡으려고 많은 어부들이 몰려오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수가 흐르는 곳에 치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가슴속이 병들었습니까? 가정이 병들었습니까? 생활이 병들었습니까? 인간관계가 병들었습니까? 자녀가 병들었습니까? 성령의 생수가 흘러 들어가면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성령의 생수는 치료의 강물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생수는 열매맺게 합니다. 생수가 흘러가는 곳마다 각종 실과나무가 열매를 맺게 됩니다. 11절을 보겠습니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하나님의 성전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생수가 큰 강이 되어 흘러 들어가는 곳마다 생물이 살아나고 고기가 심히 많아지고 식물이 되는 실과나무가 자란다고 했습니다. 나뭇잎이 시들지 아니하고 실과가 끊어지지 아니하고 맺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강물이 흘러 들어가면 치료만 임할 뿐 아니라 번영도 다가오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삶에 성령의 강물이 흘러 넘치면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으며 입사귀가 마르지 아니하는 것과 같은 풍성한 삶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정리하며 여러분들께 묻겠습니다. 이 자리 가운데 물이 흐르지 않는 팔레스타인 사막처럼 바싹 마른 심령으로 앉아있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죽은 사해 바다처럼, 심령이 팔팔하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한 분들에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영혼의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의 생수를 받아들이면 생명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성령의 생수가 흐르는 곳은 생명이 살아났습니다. 치료가 임했습니다. 풍성한 번영이 주어졌습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러한 축복과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와 주인으로 모셔드린 그리스도인이라면, 생수의 강에 발목만 들여놓지 말고 그 강속에 깊이 잠겨 헤엄을 치며, 풍성한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또한 사해바다와 같이, 메마른 사막과 같이 죽어 있는 곳을 살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그곳에 성령의 생수가 흐를 것입니다. 생명이 살아날 것입니다. 치료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사막과 같은 곳에 복음을 전할 때, 그곳에 성령의 생수가 흘러 수많은 나무들이 자라는 옥토와 같은 곳으로 바뀌어 질 것입니다. 죽은 사해바다와 같은 곳에 복음을 증거할 때, 성령의 생수가 흘러 수많은 물고기 떼들이 몰려오는 것처럼 생명이 숨쉬는 곳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강 좌우에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끊이지 않고 실과를 맺는 것처럼 풍성한 삶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가운데 성령의 생수가 넘침으로 죽어 가는 세상을 살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네 신앙의 깊이를 측량하라
박인걸 목사
UAE(아랍에미레이트)의 라스알카이마에 사는 다드 압둘라만이라는 이름의 남성(60세)은 86명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아들 55명, 딸 31명입니다. 그 자신도 27명의 형제자매들과 자랐다고 하는 압둘라만씨는 "앞으로 100명까지 낳을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까지 16번 결혼을 했으며 그 중 7명의 아내와는 이혼했고, 3명과는 사별했으며 또 다른 3명은 도망갔고 현재 그는 각각 45세, 22세, 19세의 아내 셋을 두고 있습니다.
60세의 나이에도 압둘라만씨는 올해 라마단(금식월) 이후 또 다시 20세의 신부와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며 다음달에는 2명의 아이들이 태어날 예정이랍니다.“아내를 많이 거느릴 힘의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40마리의 양과 염소를 키우고 있는데 식구들과 매주 한 마리씩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저는 이 기사를 신문에서 읽으면서 사람이 이렇게 짐승처럼 살다 간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사람에게 시집와서 자식을 낳은 여인들도 불쌍하고 이 사람에게 태어난 86명의 자식들도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돼지 새끼도 아니고 한 아버지 아래서 86명의 배다른 형제들이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겪으며 자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짐승처럼 살기를 원치 않고 사람처럼 살기를 원하고 구원받은 사람은 주님처럼 살기를 기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히브리 제사장 에스겔이 많은 환상을 본 내용 중에 하나입니다. 천사가 에스겔을 데리고 성전으로 갔고 성전 문이 동쪽으로 났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렸고,(겔47:1) 천사가 에스겔을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문에 이르렀더니 물이 오른 쪽에서 스며 나왔습니다.(겔47:2) 천사가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가며 물을 측량하는데 “천척을 측량한 후 물을 건너게 하여 물을 건넜더니 물이 발목에 이르더라.”(겔47:3)다시 천척을 측량한 후 건너라 하여 건넜더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척을 측량한 후 건넜더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천척을 측량하니 헤엄칠 물이 되어 에스겔이 물을 건널 수 없게 되었습니다.(겔47:4-5)천사가 에스겔에게 강가로 돌아가게 하여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수 많은 나무가 있고 그 물을 흘러 아라바로(광야) 내려가 바다(사해)로 흘러내리는데 이 물로 인하여 바다가 살아나고 이 강물이 이르는 곳 마다 번성하여 모든 생물들이 살고 고기가 심히 많게 되고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인데 각 종류대로 많은 고기를 잡게 될 것이지만 갯벌과 진펄은 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강 좌우에 각종 과실나무들은 자라서 잎이 시들지 않고 열매가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오기 때문이며 그 열매는 먹을 만 하고 그 잎은 약재료가 된다고 하였습니다.(겔47:6-12)
이와 같은 에스겔의 환상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강물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즉 복음을 칭합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듯이 그리스도의 보혈은 영혼을 살리는 근원입니다. 성전 동쪽 문지방에서 흘러내린 물이 발목, 무릎, 허리, 헤엄칠 정도의 물이 된 것은(겔47:4)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복음운동이 온 유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전파되어(행1:8) 온 세계가 복음으로 충만해 질 것을 에스겔이 환상으로 본 것입니다. 강물로 인하여 수많은 생물과 어족이 살아나는 것은 복음으로 온 세상이 구원을 얻을 것에 대한 증거이며 수많은 열매들은 먹을 만하고 약재료가 되는 것은 복음은 영혼을 살리고 육신을 살리고 가정들을 살리고 사회와 인간들의 역사를 살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나라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 이 세상을 살릴 것에 대한 계시적 환상이었던 것입니다. 복음이 들어간 곳에는 귀신이 떠나가고(막1:21-26) 질병이 치료되며(막1:34)죄인이 구원을 받고(막2:17)근심에서 벗어나고(요14:1)소외된 삶에서 화합과 하나 되는 삶으로의 회복(눅19:1-9)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환상을 에스겔이 본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복음적 세계의 도래에 대한 에스겔이 본 환상 중에 중요한 대목이 있습니다. 발목, 무릎, 허리, 헤엄칠 정도의 물로 불어나고 마침내“능히 건너지 못할 물”(겔47:3)이 되었습니다. 물의 깊이가 점점 깊어지더니 큰 강을 이룬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 신앙에 적용한다면 구원의 과정을 거쳐 계속 전진하는 신앙, 성숙해 지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전진 하지 않는 신앙은 퇴보합니다. 우리는 오늘 에스겔이 본 물의 환상을 통하여 “네 신앙의 깊이를 축량하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겠습니다.
1. 도랑물 신앙(겔47:3)-(구원 받은 단계)
“그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겔47:3) 빗방울이 산에 떨어지면 땅으로 스며들고 낮은 곳으로 흘러 샘이 되고 샘들이 넘쳐 더 낮은 곳으로 흐르면 도랑물이 됩니다. 산고랑에 흐르는 도랑물은 맑고 찹니다. 1급수로서 가재, 도룡뇽이 개구리가 삽니다. 물이 얕아 발을 담그면 발목까지 밖에 오로지 않습니다. 어린 아기들도 건널 수 있는 얕은 물입니다. 얕은 도랑물은 맑고 깨끗하긴 하지만 물살에 힘이 없습니다. 발전소 터빈을 돌릴 수도 없고 수많은 고기떼가 살 수도 없습니다. 물의 깊이가 더 해져야 합니다. 여러 개의 도랑물이 합해질 때 냇물이 될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 강물도 처음에는 도랑물에서시작 됩니다. 그러므로 도랑물은 큰 강물로 가는 시작입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의 발목에 잠기는 도랑물은 성전에서 발원하여 점점 깊어지는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을 볼 때 계시의 점진성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성, 교회의 부흥과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해석할 수 있지만 개인적 신앙으로 해석하면 갓 구원 받은 초보적 신앙입니다. 어린 아이 신앙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을 “육신에 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고전3:3)이런 사람들은 젖만 먹고 밥을 먹을 수 없는 어린 유아와 같습니다. 바울과 선교 여행에 동행하였던 마가는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서 더 이상 바울의 일행을 따라가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행13:13)마가는 도랑물 신앙이었습니다.
도랑물에 해당하는 어린아이 신앙은 말씀에 대하여 깊은 이해가 부족합니다. 주일을 지킨다거나 정기적인 예배에 참석하는 일 조차 부담스러워합니다. 교회의 각종 봉사활동과 헌금 생활로 인하여 쉽게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작은 말에도 상처를 받고 세상 유혹을 이기기가 어려우며 믿음 생활하기 이전의 문화와 관습을 끊지 못합니다. 이런 신앙은 엄마가 아기를 살피듯 주변 사람들이 잘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격려와 용기를 주어야 하고 잘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발목 신앙도 희망이 있고 소망이 큽니다. 이미 물이 발목에 잠겼기 때문에 주님의 은혜가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는 누구도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엡2:8-9) 아직 도랑물 같은 얕은 신앙의 자리에 있다고 할지라도 성전에서 시작한 구속의 은혜가 발목을 잡고 있으니 주의 성령께서 더 깊은 곳으로 인도할 것을 믿고 지금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2. 냇물 신앙(겔47:4)-(봉사하는 단계)
“다시 일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까지 오르고(겔47:4)라고 하였습니다. 냇물은 일명 개울물이라고 합니다. 개울물에는 각종 고기들이 삽니다. 제법 큰 고기도 삽니다. 족대나 투망으로 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논농사를 짓는 분들은 보를 막아 물을 끌어 들여 논 에 물을 댑니다. 냇물에는 다리를 놓아야 건널 수 있고 홍수가 지는 날이면 물이 범람합니다. 어린 아이는 건널 수 없습니다. 물이 무릎까지 오르기 때문입니다. 냇물 신앙은 개인적 신앙으로 보면 봉사하는 신앙의 단계입니다. 하지만 아직 신앙이 불완전합니다. 마치 청소년기 같습니다. 청소년기는 순수하고, 청순하고. 꿈이 많고 힘이 넘치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성숙한 인격이 아니기 때문에 실수를 많이 하고, 좌충 우돌하고, 쉽게 낙심하거나 포기합니다. 더 깊은 단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한 편 어떤 분은 물이 무릎까지 찼다고 하여 기도하는 신앙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일리가 있는 해석합니다. 초보 신앙일 때는 기도가 무엇인지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무릎신앙은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합니다. 새벽기도에 참석합니다. 금요 기도회에 참석합니다. 기도하다 은혜를 받습니다. 은사를 체험합니다. 성경도 읽습니다. 제자 훈련에도 참석합니다. 전도활동에도 참석합니다. 각 기관에 가입하여 봉사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신앙이 아닙니다. 언제라도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핍박이나 재리의 욕심에 끌려 넘어질 수 있습니다. 조심해야 할 때입니다. 아직 신앙이 불완전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믿고 확신에 거한 것이 중요합니다.
3. 강물 신앙입니다.(겔47:4)-(헌신하는 단계)
“다시 일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강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라고 하였습니다. 물이 허리에 찰 정도면 깊습니다. 댐을 막아 발전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뗏목을 띄울 수 있고 배가 다닐 수 있습니다. 발전소를 만들어 전기를 일으키고 댐을 막아 다목적으로 사용합니다. 수많은 고기가 서식하여 수산업의 보고(寶庫)가 됩니다. 강물이 인간들에게 주는 혜택은 가히 헤아릴 수 없을 지경입니다.
강물은 사람에 비유하면 청년 신앙입니다. 청년은 인생의 허리에 해당합니다. 청년 신앙은 자립 신앙이며 헌신하는 단계입니다.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진리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죽도록 충성합니다. 어떤 시험과 고난도 이깁니다. 강력한 추진력과 결단력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보기에도 아름다고 좋은 신앙입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이끌어 주는 신앙입니다. 젊은 때에는 에너지가 넘칩니다. 축구, 야구, 권투, 육상, 등등의 모든 스포츠를 보세요. 모두 청년들이 합니다. 청년 시기는 인생의 꽃입니다. 이때 남녀청춘들이 결혼을 합니다. 청년기는 무한한 꿈과 도전의 시기입니다. 요셉이 30세에 애급의 총리가 되고 다윗은 30세에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습니다. 청년들은 군대에 갑니다. 전쟁도 청년들이 합니다. 주를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단계입니다. 우리는 모두 강물 신앙, 허리까지 차는 헌신의 단계에 와야 합니다. 이런 단계에 올 때,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 영적 전투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6장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2-17)어떤 시험도 이겨내고 신앙의 승리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30세 청년 시절에 공생애를 시작하였고 40일 금식기도를 마칠 때 마귀가 나와 세 가지 시험을 합니다.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라.”“천하만국을 보여 주며 자신에게 절하라.”(마4:1-11)예수님은 마귀와 첫 번째 영적 전투에서 보기 좋게 마귀를 이겼습니다. 어떤 싸움이든지 첫 번째 싸움에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에 상대방이 얕보지 않습니다. 이후 예수님은 사단과의 싸움에 항상 이겼습니다.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 무엇보다도 강물은 강물같이 흐르는 성령과 같습니다. 우리들의 메마른 심령에 강물 같은 성령의 은혜를 부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강물 같은 성령은 사막이 꽃동산 되게 하고 메마른 광야를 옥토로 만듭니다. 우리는 강물처럼 흘러 넘치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주님께 헌신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 바닷물 신앙(겔47:5)-(감사하는 단계)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겔47:5)라고 하였고 6절 이하에 보면 “그 강물이 아라바로(요단강 아래 유대 광야)흘러 바다에 이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강물이 이르는 곳 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들이 살고, 고기가 심히 많을 것이며 그 강물로 인하여 바닷물이 살고, 여러 종류의 고기들이 살며 강 유역에는 수많은 과실들이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습니다.(겔47:6-12) 에스겔은 이 물은 “헤엄 칠 물이라.”(겔47:5)고 하였습니다. 해수욕을 할 수 있는 깊은 바닷물을 칭합니다. 사람에 비유하며 장성한 사람을 칭하고 계시적 성격으로 해석하면 온 세계에 편만하게 복음이 전파 된 상태, 교회론 적으로 해석하면 크게 부흥한 교회를 칭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고 하였고, 엡4:15절에서는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으며 딤후 2:3절에서는 “예수의 좋은 군사”라고 하였습니다. 열 두 사도들 같은 신앙, 바울 사도 같은 신앙, 궁극적으로 우리 주님 같은 신앙을 갖는 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최종 목표입니다. 발목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허리로 가슴을 넘어 헤엄 칠 정도의 깊은 은혜의 바다를 헤엄쳐 다녀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 그렇습니다. 어린 아이 같은 신앙에 머물면 안 됩니다. 청소년기를 빨리 지나야 합니다. 청년기를 지나 장년의 장성한 상태까지 올라와야 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단계에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모습입니다.
바닷물에는 각종 어족이 풍성합니다. 수많은 수산자원이 있습니다. 염분은 소금이 되어 인간의 조미료에 필수적입니다. 바다는 엄청난 군함과 무역선을 띄웁니다.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와도 바다는 모두 받아드립니다. 넓은 마음을 마다에 표현합니다. 바다는 우리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마음은 하늘보다 더 높습니다. 죄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내려 오셨고, 십자가의 은총공로로 우리를 구원하였습니다. 개인과 가정에 바다보다 깊은 구원의 은총을 부어 주셨고, 오늘도 우리를 은혜의 바다로 들어오라고 손짓 하십니다.
어떤 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한 평생 교회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머리로만 예수를 믿었지 가슴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누구하고 성경과 교리에 대하여 논쟁을 하면 저본 적이 없답니다. 성령에 대한 설교도 수도 없이 듣고, 신론, 기독론, 인간론, 교회론, 구원론, 종말론을 교리적으로는 목사님만큼 아는 사람이랍니다. 교회에서 성경 퀴즈대회 하면 항상 1등을 했답니다. 머릿속에는 말씀과 신앙의 지식이 가득한데 마음에는 기쁨이 하나도 없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단점만 눈에 들어오고 교회에서 불평만 일삼으며 교회를 다녔답니다. 그렇게 생활해 오던 어느 해 영성 훈련에 참석하여 말씀을 배우다 깨달음이 왔습니다. 신앙은 지식이 아니라 깨달음이 중요합니다. 성령의 은혜가 도랑물에서 냇물로, 냇물에서 강물로, 강물에서 바닷물로 파 올라오면서 그동안 자신의 교만과 형식적 신앙들이 철저히 회개가 되면서 가슴 속에서 주체할 수 없는 은혜가 차고 넘치는데 예수님이 자신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사실과 보혈에 은총에 너무나 감사하고 감격한 마음이 들자 통곡하며 나뒹굴게 되었고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자신을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순간 실신할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에 이분은 매사에 하나님께 감사의 삶을 살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바닷물 같은 신앙의 특징은 오직 감사입니다. 감사는 신앙의 최고봉입니다. 감사는 신앙의 가장 깊은 바다입니다. 감사의 신앙보다 더 깊은 신앙은 없습니다. 예배 때에도 감사하고, 기도에도 감사기도가 나오고, 봉사하면서도 감사하고, 찬양하면서도 감사합니다. 헌금을 하면서도 감사하고, 궂은일을 하면서도 감사합니다. 좋은 일을 만나도 감사하고, 나쁜 일을 만나도 감사합니다. 감사는 성령님의 언어요 불평은 마귀의 언어입니다. 일본의 하천풍운이 미국의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서 “와 하나님이 걸작품이다!”라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감사하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바닷물 같은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연을 보면서도 감사합니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결 론
오늘 여러분의 신앙의 깊이를 측량하시기 바랍니다. 도랑물입니까? 안 됩니다.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냇물 신앙입니까? 강물로 들어가야 합니다. 신앙입니까? 저 큰 바다고 들어가야 합니다. 주님은 은혜의 바다 깊은 곳에 들어와 주님과 함께 영적 바다를 휘저으며 풍성한 삶을 살기를 기대합니다. 성전 문에서 나온 작은 샘이 우리를 살리는 구원의 샘입니다. 이 물은 우리 심령에 차고 넘칠 뿐만 아니라 온 세계 구석구석까지 차고 넘쳐야 합니다. 온 세상을 구원의 은혜로 충만한 그날이 오기를 우리 모두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건너야 되는 강
손상률 목사
세상을 사는 성도를 길가는 나그네라고 합니다(벧전2:11). 그렇지만 그 가는 길에는 목표가 있고 도달하는 종착점이 있는 길입니다. 다만 길을 가는 동안 때때로 은혜롭고 좋은 일이 있는가 하면 그와는 달리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나거나 힘들고 어려운 일에 시달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지 성도는 주저앉거나 피하여 가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돌파하며 극복하는 자들입니다.
본문 성경에는 포로시대의 선지자 에스겔이 억류되어 있었던 땅 바벨론에서 환상으로 본 신기한 사건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고난 당하는 비극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가 여호야긴 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붙잡혀 간 후(B.C.597) 그의 아내는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되던 날 죽었습니다(겔24:15-18). 그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계시에 민감하였고 또 선지자로서 자신이 받은 사명에 충실하였습니다. 그는 백성의 목자로서 죄로 인한 민족적 비극을 내다보며 날카롭게 경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의 입을 통하여 포로 생활의 참혹한 현장에서 답답한 나날을 보내는 그 백성에게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장차 그 백성에게 나타나게 될 메시야 시대의 비젼입니다. 더 나아가서 멀리 신약시대에 펼쳐질 영광스러운 교회 운동의 특징을 예언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에스겔은 성령에 이끌리어 성전의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습니다. 그 흘러나온 물이 점점 불어나서 개천이 되고 창일하는 강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그 물을 건너가도록 명하였습니다. 에스겔은 그 지시하시는 말씀에 따라 물을 건너가곤 하였습니다. 물의 깊이에 따라 가볍게 건너갈 수도 있었고 또 힘들게 건너가거나 전혀 자기 힘으로 건널수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성도가 세상을 사는 동안 좋든지 싫든지 자기 앞에 가로놓인 강물을 건너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길에는 여러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건너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있기 때문입니다.
Ⅰ. 시험의 강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은 장차 자기 백성에게 임하게 되는 축복의 계시였습니다. 그것은 이미 저희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예고했던 내용이며(창22:17-18), 모세의 율법을 통하여 수없이 반복되는 교훈을 주신바 있습니다(출19:5-6).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출애굽 사건이나 가나안 땅에서 나라를 세우고 수백년 동안 지속되었던 왕국의 역사나 또는 훗날 바벨론 포로시대를 거쳐 세계 각국을 유랑하는 수난의 역사가 거듭되었지만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에 이르고 맙니다. 다만 그 과정에는 여러 가지 시련과 수난이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1. 통과하여야 되는 과정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라며 중학생 때는 4㎞넘는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 당시 「신작로」라고 불리우는 자동차 길이 있었으나 비포장의 자갈길이었으며 그 중에도 개울을 세 번이나 건너야 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개울 위로 교각이 세워진 다리가 놓였겠지만 그때는 종아리를 걷어 올리고 물 속을 걸어서 건너곤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비가 오고 물이 불어나면 개울을 건너지 못해서 학교를 결석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어려웠던 시절 우리 나라의 시골에서 자라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어온 고달픈 추억들일 것입니다.
성도들이 걸어가는 신앙의 노정에도 건너야 되는 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라고 하였습니다(사43:2). 애굽에서 올라온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힘든 과정을 통과하여야만 하였습니다.
홍해를 건너야 하고 범람하는 요단강도 건너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그 가는 길이 잘못 되었거나 가서는 안될 길을 가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길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라도 이처럼 건너야되는 시험의 강이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2. 감당못할 시험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내어 보내시면서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가운데 보냄과 같도다"고 하셨습니다(마10:16).
양같이 약하고 순한 사람에게 어렵고 힘든 시험이 부딪치게 되면 힘겨워 하다가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시험당하게 될 때 감당할수 있도록 작용하시며 그 수위를 조절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아이를 기르는 유모가 아이의 성장 정도에 따라서 젖을 먹이기도 하고 밥을 먹이기도 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고전3:1-3).
본문 말씀 3-5절에 보면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처음에는 실개천과 같이 적은 량이었으나 점차 불어나서 건널수 없는 강물로 창일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건너가라고 명하신 것은 물이 발목에 잠길 정도에서부터 점차 무릎에 차오를 만큼 되었을 때와 허리에까지 차오를 때와 나중에는 몸이 다 잠기게 되어 건널수 없게 되었을 때까지 단계적으로 건너게 하였습니다.
이는 작은 시험에서 큰 시험으로 그리고 시험을 통하여 연단된 믿음의 정도에 따라 시험의 크기와 그것을 이겨내는 능력이 발휘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끝내 건널수 없게 되었을 때는 헤엄쳐서 건너게 하는 방법도 일러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고전10:13).
3. 건너게 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본문 말씀 3절에 보면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4절과 5절에도 반드시 척량줄로 일천척씩 척량한 다음 물을 건너도록 하였습니다. 물은 그 불어나는 정도에 따라서 발목에서 무릎, 허리까지 차오르고 또는 키가 넘을 만큼 깊어졌으나 거기에 상관없이 척량줄로 깊이를 재어가면서 그곳을 건너게 하였습니다. 여기 말하는 척량줄은 길이나 깊이를 재는 척도입니다.
성도에게 믿음과 생활의 척도인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우리 장로교회 성도들은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임을 신조의 첫머리로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시험의 강을 건널 때는 언제나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척도로 하고 그 길을 열어 나가야만 합니다.
이는 마치 여호수아의 군사가 십계명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을 앞세우고 그 뒤를 따르면서 요단강을 건너간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수3:6).
Ⅱ. 은혜의 강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 내리시는 은혜와 축복을 상징적으로 설명할 때 생수나 강물같은 것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아모스는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고 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생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는데, 요한복음 7:37에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35:6에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고 하여 멀리 신약교회의 비젼과 성도가 받게될 풍성한 은혜를 예언하였습니다.
1. 성전에서 흘러나옵니다.
본문 말씀 1절에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전은 은혜의 발원 장소요 시은소(施恩所)입니다.
구약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디에 있어도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였고 성전을 그리워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시42:1-3).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사모하고 성전을 건축하는 의미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하여야 됩니다. 성전을 짓는 일에 심혈을 쏟고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열심히 참여하는 사람은 그 영혼이 윤택하게 되고 사막에 시내가 흐르는 은혜의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은혜의 점진성을 나타냅니다.
이 계시의 초점이 되는 생수와 강물을 하나님의 말씀, 또는 은혜와 성령으로 상징할 때 사람들은 한사코 이를 많이 받기 원하게 되고 충만해지기를 소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혜와 축복이라면 많이 구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복에 복을 더하여 달라든지(대상4:10), 은혜 위에 은혜(요1:16), 성령의 충만(엡5:18)과 같은 표현들을 사용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욕심대로 당장 큰 것을 내려 주시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하고(욥8:7) 점진적인 은혜의 과정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와같은 원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귀중성을 알게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는 수용할수 있는 그릇과 경륜의 크기에 정비례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도 됩니다.
3. 은혜에 잠겨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강을 건너라고 하였습니다.
물이 많든지 적든지, 개울이 깊든지 얕든지 반드시 물 속에 몸을 잠그고 건너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 물 속에 들어가야 됩니다.
물의 량이 적고 깊지 않을 때는 발목만 적셔도 되겠지만 그것이 불어나서 깊어지면 무릎까지 잠겨야되고 허리까지 차오르면 몸의 절반을 물 속에 넣어야 됩니다. 마침내 창일하는 강물이 되었을 때는 몸 전체가 다 물 속에 감추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나 축복은 멀리서 보고 감상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내 자신이 그 속에 들어가야 되고 잠겨져야만 됩니다. 거기에서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되고 그것이 결국 감사와 감격으로 이어질 때 헌신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은혜받은 정도에 따라서 자기 힘으로 가볍게 건너기도 하고 마음대로 몸놀림을 할수도 있겠지만 은혜의 정도가 깊어지면 자기 몸을 많이 드러 낼수도 없고 자기의 개성이나 취향대로 행동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매우 조심하면서 신중하게 경성된 성도의 자세를 기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창일한 물 속에 들어가는 사람은 자기의 모습을 감추어 버리고 물이 받쳐주는 부력을 의지하여 헤엄치는 모습으로 건너가야 됩니다.
사도 바울처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전15:10)임을 표방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Ⅲ. 생명의 강입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신약적인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요한복음 2:21에는 예수님의 몸을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4:14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1. 살려내는 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근원입니다. 요한복음 10:10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생명의 공급자이며 죽은 것을 살려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요1:4). 본문 말씀 8절에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은지라"고 하였습니다.
9절에는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 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라고 하였습니다.
물은 생명의 상징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는 갈릴리 호수의 물을 지하에 매설한 송수관을 이용하여 팔레스틴 전역으로 공급하고 있는데 그 결과 사막이 옥토로 변하여 온갖 농작물을 풍성케 하여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원천으로써 그리스도의 복음이 접하는 곳에 구원이 있고 영생의 축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2. 임마누엘의 삶입니다.
수원(水源)이 스며드는 곳에는 땅이 기름지게 되고 거기서 각종 생명체들이 활발하게 제 기능을 발휘합니다. 사막같이 메마르고 삭막한 세상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말씀과 성령의 은혜속에서 생명적인 교제를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의 체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에 계실 때 우리와 같이 시험을 당하셨고(마4:1-10), 이를 다 이겨내셨습니다.
히브리서 2:18에는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당하시는 최악의 시험도 다 이기셨기에 부활과 영생의 축복을 우리까지 공유하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임마누엘의 삶을 통하여 시험의 강도 거뜬히 건너게 되고 또한 깊은 은혜의 강도 헤엄쳐 건너면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쾌감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3. 활력이 넘치는 교회 운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생명운동의 산실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교회는 언제나 자체의 생명력을 교회 밖으로 분출시키며 사해에 퍼져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중에는 성전 동쪽의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온 물이 안으로 들어와 전의 우편과 제단 남편으로 한바퀴 돌다가 전 밖으로 스며 나갔습니다. 거기서부터 물이 흘러가는대로 점점 불어나며 큰 강이 되어 그 흐르는 유역의 땅을 적시고 생물을 소생케하였습니다.
그 물이 아라바로 흘러들어 바다를 소생시키므로 각종 어족들이 몰려들었고 그곳에 어장이 형성되었습니다(9-10절).
강줄기를 따라 좌우편의 마른땅에 나무가 무성하며 여러 가지 과일이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땅과 바다는 하늘과 대칭이 되는 개념으로 이를 세상에 비유합니다. 어느 시대에나 신령한 교회는 생명적인 복음의 능력으로 세상을 새롭게 하여 줍니다. 그 복음의 영역이 미치는 곳마다 생명을 공급하며 소망을 갖게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교회와 성도들이 그 앞에 놓인 시험의 강을 건너고, 은혜의 강물에 잠기면서 세상을 향하여 생명의 능력을 행사하도록 요구하십니다.
생명이 디시는 하나님
오늘 아침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인 에스겔 47장 1절-12절까지의 말씀은 자기 동족 유다 백성들과 함께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가서 그발 강가에서 살고 있던 중에 하나님에 의해서 예언자로 부름을 받은 예언자 에스겔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보았던 ‘생명강의 환상’ 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언자 에스겔이 예언 활동을 하던 시기는 북 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앗수르가 멸망하고, 애급이 몰락하던 중이었으며, 신흥 제국인 바벨론이 근동의 패권을 잡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이 무렵 남 왕국 유다백성들의 상황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고백하고 왕으로 섬기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살아가야만 했는데, 왕과 백성들이 하나님을 멀리하면서 점점 더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주변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면서 외교적인 방법을 통해서 자신들의 위치를 지켜나가려고 했습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섬기다가 결국 배반하고 그 후 아들인 여호야긴이 왕이 되어서 3개월 동안을 통치하다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1차 공격을 받고 백성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에스겔도 많은 제사장의 무리에 섞여서 바벨론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험난한 시기에 하나님에 의해서 예언자로 부름을 받은 에스겔은 자기 조국 예루살렘에 아직 남아 있었던 유다 백성들을 향해서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을 전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을 무력으로 공격하여 어느 정도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했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여호야긴 왕 대신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는데 시드기야 왕도 결국은 바벨론을 배반하게 됨으로 예루살렘은 B.C 586년에 완전히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성벽도 무너져 내리고 성전도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회개를 촉구하는 에스겔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하나님을 멀리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징계로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하게 되는 아픔을 겪게 되는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언자 에스겔은 나라가 망하고 포로 생활로 인한 충격으로 인한 절망에 빠져 있는 자기 동족 유대인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자기가 본 생명강의 환상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전하는 예언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서는 전반부인 1장-32장까지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 숭배에 빠져서 점점 기울어져가고 있는 자기 조국과 민족을 바라보면서 회개를 촉구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후반부인 33장-48장까지는 이미 에스겔이 선포했던 대로 회개하지 않음으로 결국은 하나님의 징계로 망국의 아픔과 포로 생활의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고 있는 부분에 속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언자 에스겔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보았던 ‘생명강의 환상’ 을 전하고 있는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의해서 무너져 내린 성전이 회복되고 이스라엘이 회복되게 될 것을 전하는 생명력이 넘치는 소망의 말씀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놀라운 회복과 생명의 역사를 전하고 있는 오늘 이 본문 말씀이 에스겔 40장부터 시작되었던 새 성전의 회복에 관한 환상의 절정 부분으로써 하나님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에 관해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결국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마음에 작정하고 계신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과 생명의 역사가 결국은 다른 것이 아닌 성전의 회복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이 성전의 회복이 이스라엘 전체의 회복만으로 끝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결국은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을 살리며 풍성하게 결실하도록 만들어 주는 ‘살림, 곧 생명의 역사’ 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이 말씀을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생명을 살리며 회복시키고 풍성하게 만들어 가시기 위해서 먼저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의 회복을 이루어 가시는데 그 회복이 바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성전에서부터 시작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신 성전인 교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롭게 깨닫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창세기 2장 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본래부터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 갈 때 만 생명이 있는 존재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창조하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인간은 하나님께서 영으로 함께 하실 때만 살아있는 존재로서 생명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이며, 만약 하나님의 영이 떠나가시게 되면 그 때부터 인간은 그저 흙덩어리에 불과한 존재로 생명 없는 존재가 되고 말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말씀으로 인간이 어떻게 해야 생명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를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의 죽음을 영과 육의 분리로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언제 인간에게 이런 죽음의 불행이 찾아오게 되었습니까? 창세기 3장의 말씀을 보면, 사단이 하와를 찾아와서 그를 유혹하여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범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됨으로 스스로 하나님의 영과 분리되게 됨으로 인간의 고통과 죽음의 불행이 찾아오게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단이 하는 일은 하나님과 우리 인간을 분리시켜서 인간을 자기의 통치권, 곧 죽음의 세력으로 다스려 나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우리를 죽이는 자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는 자이심을 성경은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0장에 나오는 선한목자의 비유를 통해서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7)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기르시며 돌보시는 양된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시기를 원하셔서 이 땅에 친히 찾아오신 예수님은 3년 동안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강도 만난 자와 같이 되어버려서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을 친히 만나주셨으며,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던 모든 고통의 원인을 제거해 주심으로써 살아있으나 산 것처럼 살지 못하던 자들에게 생명을 생명 되게 하셨던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처럼 선한 목자가 되셔서 결국에는 양된 우리들에게 풍성한 생명을 영원토록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당신의 생명을 버리시기까지 하셨던 분이십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영과 분리되는 것이 죽음이라고 한다면 반대로 우리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것, 곧 거하시며 함께 살아가시면서 우리에게 생명의 기운을 끊임없이 불어넣어 주심으로 비로소 가능해 지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그 생명을 생명 되게 유지시켜 나가시는 분이실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을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보존해 가시는 분이십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실 때 비로소 거기에는 번성케 되는 역사도, 참된 행복도, 만족함도, 생명을 누리는 기쁨도 함께 있게 됨을 오늘 본문 말씀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아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의 약속 가운데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나라가 망하고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였던 성전이 무너져 내리게 되는 불행을 겪게 되었습니까? 그 문제의 발단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들 가운데 함께 계시면서 그들을 보호하시며 사랑으로 돌봐주셨으며 여전히 그런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과 진정한 만남을 통해서 온전한 교제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임재 하여 계시면서 그들과 더불어 진정한 만남과 교제를 갖게 되기를 원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물만 드리면서 형식적인 제사를 드렸을 뿐 마음은 우상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세우셔서 그들의 그런 잘못을 끊임없이 지적하고 경고하며 돌아오기를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끝내 돌이키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결국 그들을 포로 생활 중에 오래두지 않으셨고 그들을 회복하심으로써 다시 한 번 그들 가운데 거처를 정하시고 그들과 함께하시면서 그들에게 은혜와 복을 주심으로 그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정한 때가 됨으로 예언자 에스겔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하시면서 가장 먼저 성전의 회복을 말씀하신 것이며, 에스겔 43장을 보면 회복된 새 성전에 하나님께서 다시 돌아오셔서 임재하시는 모습을 환상가운데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관심은 심판이나 징계를 통한 죽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고치시고 회복시켜서 다시 살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생명의 역사를 통해 온 천하에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 되심을 선포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에스겔 47장 1절-2절을 보면,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있으며, 성전 문에서 물이 스미어 나오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점점 더 멀리 흘러가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물의 양이 발목에서 무릎으로, 그리고 다시 허리에서 헤엄할 정도의 물로 불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전 문지방 밑에서부터 흘러나온 물이 결국은 강을 이루고 그 강이 더 멀리 흘러가면서 주변의 모든 생명들을 살리며 풍성하게 만들어 가게 되는 생명강의 환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 생명강의 환상이 보여주는 모습이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야 모습이요 더 나아가서는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할 모습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우선 성전 문지방 밑에서부터 흘러나온 물의 양이 처음에는 ‘발목’을 잠글만하다가 나중에는 ‘무릎’에 오르고 그것이 다시 ‘허리’에 오르고 결국은 ‘헤엄할 정도의 물’이 되어서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 되어가는 모습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주시는 귀한 영적인 교훈을 들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신앙이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을 통해서 시간이 갈수록 더욱 성숙해져서 하나님의 전적인 다스리심을 받는 상태, 곧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의 모습, 다시 말하면 성령 충만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성도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그 신앙의 정도가 처음 하나님 앞에 나와서 구원의 은혜를 받았을 때의 모습, 곧 ‘발목의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 늘 하나님의 성전 문지방만 넘어 다니고 성전 뜰만 밟고 다니는 수준의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찾아서 성전에 드나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상태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 상태에 있는 성도들은 그 다음 단계인 ‘무릎의 상태’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또 어떤 성도들은 여전히 ‘무릎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기도하며 자신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는 수준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상태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이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다음 단계인 ‘허리의 상태’까지 나아갈 수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허리의 상태’에 이르게 된 성도들은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이제는 자신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힘써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상태도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 다음 단계인 ‘헤엄할 물의 상태’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상태의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삶, 성령이 충만하여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지배하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강의 역사는 여기서 중단되지 않고 더 멀리, 계속해서 이어져 가고 있음을 오늘 본문 말씀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가 이런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모인 신앙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여기서 머물지 말고 이제는 오늘 본문 말씀의 후반부 내용처럼, 그 생명강물이 점점 더 멀리 흘러가서 주변의 모든 생명들을 살리며 풍성하게 결실하게 만드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듯이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고 우리 교회가 오늘 이 시대의 생명강의 새로운 역사를 이곳 왜관 땅에서 이루어 감으로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을 힘써 증거 해 나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아침 우리에게 들려주신 말씀을 새롭게 묵상하는 가운데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 하여 계시면서 저와 여러분의 생명을 회복시키심으로 하나님 때문에 정말 사는 것처럼 살아가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시며, 더 나아가서 회복된 저와 여러분들을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을 살려나가는 일에 귀하게 사용하셔서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을 살려나감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축복의 통로, 생명의 통로로 사용하시기를 원하고 계심을 깨달으심으로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 생명강의 환상을 보며 자신의 회복과 교회의 회복, 그리고 이 민족의 회복과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의 회복을 소망하면서 힘차게 전진해 나갈 것을 새롭게 결단하는 축복의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생수의 강
조용기 목사
선지자 에스겔은 환상 중에서 훗날 천년왕국 시절에 일어날 한 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즉 그때 하나님의 보좌 밑에서 생수의 강이 시작되어 큰 강물을 이뤄 넘쳐 흐르게 되고 그 강가에는 푸른 숲과 각종 열매 맺는 나무가 무성하게 되며 그 강이 흐르는 곳에 각종 어족이 번성하며,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놀라운 생수의 강이 먼 천년왕국 시절에 일어날 환상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현실적인 삶 속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7장 37절로 38절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이른다는 말은 바로 에스겔서에 있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난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신령한 생수가 흐르는 곳
우리가 오늘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보좌가 구만리 장천 멀리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훗날에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이 이루어 졌을 때 그곳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사람 속에는 영적으로 하나님 보좌가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우리 속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서 보좌사고 계신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아마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에 우리가 안 믿으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거짓되지 않고 참 되십니다. 우리가 이론적으로 깨달을 수 있든 없든 그것은 하나님께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보좌를 개설하고 계십니다.
시편 22편 3절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찬양하며 생활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하나님의 보좌가 임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라는 말을 원어로 보면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와 보좌를 만들고 앉아 계시는 주’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하나님의 보좌가 계실 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찬미드릴 때 더욱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마음속에 임하시고 하나님의 보좌가 우리 마음속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우리의 마음속에 임하고 계시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천국 새 예루살렘의 하나님의 보좌에 생수가 넘쳐남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절로 2절에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 중 하나님의 보좌에서 넘쳐나오는 생수가 모든 만물을 소성케하여 나무가 무성하고 그 잎사귀는 치료하는 잎사귀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새 예루살렘 하나님 보좌에서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가 흘러 나와서 좌우에는 생명 나무가 열 두 달마다 생명 열매가 맺히고 그 잎사귀는 만국을 소성케 하기 위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어린양 예수를 모신 마음의 보좌에서 성령의 생수가 흘러 넘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눈에는 안 보이지만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미하고 경배하기 위해 살 때 성령의 생명수가 우리의 뱃속에서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님의 보좌를 통하여 넘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우리 속에 있고 그 우편에 예수님이 앉아 계시고 아버지와 아들의 보좌를 통해서 성령의 생명수가 강물같이 넘쳐흘러 나옵니다. 그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곳에는 만물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평범한 성도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죄와 마귀가 쫓겨 나가고 우리 마 음 속에 하나님께서 오셔서 보좌를 개설하시고 우편에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이 뱃속에서 강물처럼 흘러 넘쳐 옵니다. 에스겔이 환상에서 본 천년 왕국의 아버지의 보좌에서 넘쳐 나오는 생수와 요한이 계시에서 본 새 예루살렘 아버지와 아들의 보좌로부터 넘쳐 나온 생명수가 만물을 소성케하는 것과 똑같은 그런 역사가 오늘 미리 우리의 생애 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은 하나님의 보좌를 가슴속에 모시고 있는 사람들로 여러분의 찬미와 기도를 통하여 생수가 넘쳐 나온 다는 것을 알게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마음에서 넘쳐흐르는 생수의 강
우리의 마음에서 넘쳐 흐르는 생수의 강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어떤 것이기에 만물을 소성케 할까요? 우리의 마음에서 넘쳐나는 생수의 강은 의의 강물입니다. 죄를 씻고, 죄책의 상처를 고치고, 의와 영광으로 넘치게 하는 강물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아버지와 함께 보좌를 개설하고 계속해서 넘쳐나오는 생수의 강물은 우리의 생애 속에 모든 죄의 더러움을 다 씻어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죄책을 다 치료하고 의로움과 영광으로 채우는 강물로 넘실거리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로 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값없이 의롭다함을 주시는 생명수의 강물이 우리 속에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로움의 강물인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속에 넘쳐 나오는 이 생명의 강은 성결의 강입니다. 세속의 더러움을 다 씻어내고 거룩하고 맑고 깨끗함을 가져오는 강입니다. 예수님 믿기 전에는 세속과 더러움에 완전히 찌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결의 강이 우리 속에서 넘쳐나니 세속의 더러움이 씻겨 나가고 거룩하고 맑고 깨끗함을 가져와서 우리의 영과 마음과 생활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성결의 강물이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기도하면 더 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서 넘쳐나는 생명의 강물은 기쁨의 강물입니다. 슬픔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는 기쁨의 강물이 넘쳐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 16편 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쁨은 세상의 부귀, 영광, 공명을 통해 오는 기쁨이 아닙니다. 우리 속에서 넘쳐 나오는 성령의 생명의 강물이 기쁨의 열매를 맺게하고 기쁨의 나무를 무성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또 우리 속에 넘쳐 나오는 생명의 강물은 치료의 강물입니다. 병의 아픔과 고통을 씻어내고 상쾌함과 건강을 주는 강물인 것입니다. 보좌와 그 우편에 앉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치료의 강물이 넘치게 흘러나고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감사할 때 치료의 강물이 흘러서 우리 속에 있는 모든 병을 다 치료해 버립니다. 출애굽기 23장 25절에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 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에서 넘쳐 나오는 치료의 강물이 우리의 생활 속에 병을 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으며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를 낫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를 통해서 넘쳐 나오는 생명의 강물은 치료입니다.
우리 속에서 넘쳐 나오는 강물은 형통의 강물입니다. 1백년 이내로 처음 겪는 무시무시한 가뭄으로 산천초목이 다 타고 논과 들이 갈라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비가 내리자 하루만에 그 모든 가뭄이 해갈되었습니다. 산천초목이 푸르고 논과 들의 곡식이 왕성하게 자라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 동안에 메마르고 땅이 갈라지는 듯한 고통으로 절망하지만 하나님의 보좌와 그 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 있을 때 우리 속에 서는 형통의 강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강물이 흐르면 형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들에 가면 들이 복을 받고, 집에 들어오면 집이 복을 받고, 떡반죽 그릇을 만지면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겠다고 한 것은 우리 속에서 형통의 강물이 흘러나기 때문입니다. 시편 128편 2절에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에 형통의 강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패망할 것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있으면 우리의 삶 속에 형통의 강물이 흐르므로 우리의 생의 터전에 푸르고 창성한 열매가 맺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끝으로 생수의 강물은 바로 영생 천국의 강입니다. 죽음은 육신과 이 세상 삶을 끝내지만 이 생수를 마신 사람은 영적인 생명과 천국의 삶으로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은 6장 54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생수가 우리 속에 넘쳐납니다. 육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습니다. 육의 장막집은 무너져도 우리 속에 하나님의 생수를 마신 우리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영원히 천국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3.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셔라
목이 마르지 않은 사람은 생수가 있어도 마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목이 말라도 생수를 마시지 않으면 해갈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보좌가 우리 속에 계시고 우편에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의 생수가 넘쳐나더라도 우리가 마셔야 되는 것입니다. 목마른 자가 물을 마시는 것이지 목마르지 않은 자는 마시지 못합니다. 서양속담에 ‘사람들이 말을 물가로 끓고 올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우게는 못한다’고 했습니다. 목이 말라야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입니다.
목마른 자는 오직 마실 물을 생각합니다. 의에 목마른 자는 의의 생수를 늘 생각하게 됩니다. ‘의롭게 되고 싶다’,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며 의에 목마른 자는 의의 생수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결에 목마른 자는 성결의 생수를 찾습니다.
기쁨에 목마른 자는 기쁨의 생수를 찾습니다. 건강에 목마른 자는 건강의 생수를 찾습니다. 축복에 목마른 자는 축복의 생수를 생각하게 되고, 영생에 목마른 자는 영생의 생수를 생각하고 꿈꿉니다.
우리들은 끊임없이 영혼이 갈급해야 합니다. 영혼의 목이 말라야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꿈꾸게 됩니다. 이사야 44장 3절에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갈한 자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하고 하나님의 복이 내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이 마른 사람이 구하고 찾고 두드립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목이 마른 자가 무릎을 꿇어 엎드려 간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집중적으로 간절히 ‘하나님이여 생수를 주시옵소서. 의의 생수를 마시게 하소서. 성결의 생수를 마시게 하소서. 기쁨의 생수를 주소서. 치료의 생수를 주소서. 형통의 생수를 주소서. 영생의 생수를 주소서’라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42편 1절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이리저리 뛰는 것처럼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찾아 갈급하며 ‘주여 생수를 주옵소서’라고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갈급한 사람은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목마른 자는 하나님께서 생수를 주실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우리 속에 아버지의 보좌가 있고 그 우편에 예수님의 보좌가 있는데 보좌에서 생수가 이미 흐르고 있기 때문에 내가 반드시 생수를 갈급하게 생각하고 찾는다면 그 생수를 주실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6절에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준다고 했습니다.
또 목마른 자는 상쾌한 생수의 기대로 기뻐하고 감사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생수를 마시게 되고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될 것이라는 기대로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기대가 있는 사람은 기쁨이 충만합니다. 시편 95편 2절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느헤미야 8장 10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목마른 자는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수양이나 인간적인 노력이나 종교나 의식의 집행들이 생수를 가져다 주지는 못합니다. 생수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그 옆에 있는 보좌 우편에 있는 예수님께로부터 생수가 흐르기 때문에 주님은 생수를 마시기 위해서는 내게로 오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다른 종교를 찾거나 의식이나 형식을 통해 생수를 얻는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 6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생수를 얻기 위해서 예수님께 나아가지 아니하고 세상의 헛된 신기루를 찾아 나아가는 것입니다. 생수는 세상에 있지 않고 오직 십자가에 못박혀 고난 당하신 예수님께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생수가 없습니다. 모두 다 있는 것 같으나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생명수는 예수님에게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내게로 오라’고 할 때 우리는 회개하고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문화는 회개의 문화입니다. 서양사람들은 무슨 일을 당하면 회개부터 합니다. 그러나 동양사람들은 체면부터 먼저 차립니다. 일본이 왜 교과서 왜곡을 합니까? 체면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2차대전 동안 나쁜 일을 했다고 고백하면 체면이 말이 아니기 때문에 체면을 세우고자 역사 교과서를 왜곡합니다. 동양사람들은 동양적인 종교의 영향 때문에 체면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 회개를 안 하고 타당화 합니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외국인이 저에게 한 말입니다. ‘한국사람은 머리가 너무 좋은지 나쁜지 분명히 잘못했으면서도 잘못을 지적하면 기가 막히게 변명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잘못을 지적하면 곧바고 용서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가 그 사업가에게 ‘그것은 한국 문화가 그렇게 만들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동양문화는 오랜기간 동양의 종교적인 전통을 따라서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체면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과 똑같은 죄를 지은 독일은 온 천하에 회개하고 교과서에 ‘자신들의 조상이 비참한 죄를 지어 유대인 6백만명을 죽였다’고 기록하고 6백만명의 희생자 가족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서 회개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자를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깨어지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내게로 나오라고 말할 때 회개하고 나와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스가랴 13장 1절)는 말씀대로 죄를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자백하면 불쌍히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목이 곧으면 버림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수가 갈급하여 주님께 나올 때 우리는 가슴을 치고 회개하며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와서 마셔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마셔야 할까요? 주일날 예배드리러 오는 것이 마시러 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마시고, 말씀을 읽을 때 마시고 말씀을 묵상할 때 마시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16절에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와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생수를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 때 와서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응답하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와 찬양을 통하여 우리는 생수를 마시게 됩니다. 시편 68편 19절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시편 107편 8절로 9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모하며 찾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생수의 강물을 마시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천년왕국 환상에서 본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이나 새 예루살렘 보좌에서 넘쳐흐르는 생수의 강이 모든 생명과 치료와 번영을 가져온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의 마음의 보좌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보좌 밑에 흐르는 성령의 생수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치료를 주고 번영을 주는 것입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의 근원이 보좌와 그 우편에 계신 아들 예수님께 있으므로 생명의 근원이 우리 생각을 통해서 오늘날도 넘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 생각을 통하여 에스겔의 보좌 새 예루살렘의 보좌가 우리 속에 와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보좌와 아들 보좌를 통해서 생수가 넘쳐나므로 여러분과 나도 이 세상에 살면서 의의 생수, 성결의 생수, 기쁨의 생수, 치료의 생명수, 형통의 생수, 영생의 생수를 배부르게 마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셔라 예수님께로 와서 마셔라 너의 뱃속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나리라 이 생수가 흐르는 곳마다 만물이 소성하고 나무가 푸르고 열매를 맺고 물고기 떼가 놀고 모든 소금물이 치료함을 받을 것이라’ 했으니 놀라운 치료와 번영의 역사가 여러분의 속에서 넘쳐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을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의 은혜에 깊이 잠겨라
겔 47:1-5 / 황광민 목사
힐티의 「행복론」은 유난히 성령의 역할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성령은 복종하는 자들에게 무엇을 주실 것인가?’를 묻고 3가지를 지적하였습니다.
첫째, 성령은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생의 즐거움을 줍니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징표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그리고 지상 행복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결정하는 염려로부터 자유를 줍니다.
둘째, 성령은 우리들이 세상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일종의 열정과 생기를 줍니다.
셋째, 성령은 사람들에게 권위를 줍니다. 세상적인 특별한 지위가 없더라도 범하기 어려운 생기를 발하고, 아무도 쉽게 따르지 않는 사람도 즐겨 따르는 권위 있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십니다.
오늘 봉독한 에스겔 47장은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가 얼마나 귀한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성령이 은혜가 시작하는 근원은 어디이며 또 어느 방향으로 발전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성령의 은혜에 깊이 잠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 하겠습니다. 말씀을 경청하시는 가운데 성령의 은혜에 더욱 깊이 잠기시기 바랍니다.
A. 성령의 은혜의 강은 성전에서 시작합시다.
1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아멘. 성령의 은혜의 샘물이 성전에서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 성전이 은혜가 흘러내리는 근원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과 성령의 은혜가 있는 곳입니다. 출애굽기 40장 34절 이하를 보면 성전의 전신인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 성막을 모시고 있을 때였습니다.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성막에서 떠올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고 보호하였습니다. 성막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이사야 6장에는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과 은혜를 체험한 사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근심 중에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그는 거기서 주께서 보좌에 앉으신 것과 그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데 천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연기가 성전에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열심히 모이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모일 때 은혜를 받습니다. 열심히 모여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충만한 은혜가 임합니다. 웨슬리목사님은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을 태만죄라고 하였습니다. 은혜 받는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엿새 동안 일하고 영육 간에 지친 사람들이 주일에 안식하며 예배를 드림으로 새 힘을 얻습니다. 주일오후예배, 수요기도회, 새벽기도회도 열심히 모이십시오. 새벽에 일어나기 힘드신 분들은 저녁기도회에 나오십시오. 모이면 은혜를 받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성전에 나오십시오. 성전에서 성령의 은혜가 흘러내립니다.
B. 동으로 흐르는 성령의 은혜의 물줄기를 생각하십시오.
1절에 보면 성전의 전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문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2절도 동향한 바깥문에서 생수의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여줍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가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성령의 은혜에 강물이 동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동쪽은 태양이 어두움을 깨치고 솟아오르는 곳입니다. 은혜의 강물이 동쪽을 향하여 흐르면서 점점 깊어지는 것은 태양처럼 빛으로 오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갈수록 은혜의 강물은 깊어진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해바라기가 태양을 바라보며 자라듯이 성도는 주님을 바라보는 주바라기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갈 때, 더 깊은 은혜의 강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눈의 초점을 주님께 맞추십시오. 세상에 대하여는 눈을 감고 오직 주님을 향하여 눈을 뜨십시오. 우리의 눈을 유혹하는 세속의 속된 것을 포기하고 오직 거룩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C. 성령의 은혜에 깊이 잠기십시오.
은혜의 물줄기는 동쪽으로 나아갈수록 점점 깊어졌습니다. 동쪽으로 나아가며 1천척을 척량하니 물이 발목에 이르렀습니다. 또 다시 1천척을 척량하며 앞으로 나아가니 물이 무릎에까지 올랐습니다. 또 1천척을 척량하며 나아가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1천척을 척량하며 나아가니 물이 건너지 못할 만큼 깊어져 헤엄을 쳐야할 물이 되었습니다.
물이 발목에 이르렀다는 것은 아주 얕은 은혜 속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 물에서는 마음대로 걷고 뛸 수 있습니다. 물이 있어도 별로 불편할 것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은혜가 깊지 못하면 성도라 할지라도 육체의 소욕을 따라, 본능을 따라 마음대로 행합니다. 이때는 영적 유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이 무릎까지 올랐다는 것은 은혜의 깊이로 조금 더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그런 물에서는 마음대로 걷고 뛰려면 조금 불편합니다. 물이 거추장스럽습니다. 이것은 서서히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충돌하기 시작하는 단계를 뜻합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육체의 소욕이 강하여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행하는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영적으로는 초등학생 정도의 수준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물이 허리까지 깊어졌다는 것은 은혜의 깊이로 상당히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충돌하는데 막상막하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 단계에서 크게 갈등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2-24).
그리고 물이 헤엄칠 정도가 되었다는 말은 은혜 속에 잠겼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은혜가 충만한 상태를 뜻합니다. 여기서 인간이 소욕은 완전히 통제를 받습니다. 인간의 본능과 마귀의 유혹이 극복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을 성령님께서 능력으로 이루어 주십니다. 갈등의 단계를 넘어 화평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바울은 이 단계를 체험하고 성령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8: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은혜에 깊이 잠기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 하시면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힘과 지혜와 기술을 자랑할 때는 성령님은 구경하시지만 성령님께 완전히 사로잡히면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이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세상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D. 성령의 은혜가 충만한 곳에 회복과 풍요가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회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8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고 하였습니다. 은혜의 물이 흐르는 곳에 물이 살아나고, 생물들이 살아나고 모든 것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성령님은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찌무라 간조는 성령은 도덕적 강화력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주신 최대의 선물로서 용기와 정기를 주시며 도덕적 강화력을 주십니다. 성령은 도덕적 강화력으로 죽은 자아를 살리시고 내적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우리의 외면까지도 정숙하게 하십니다. 이탈리아의 신비사상가인 안젤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이 어떤 사람의 영혼이 부어지면 성령님은 그 사람의 외면도 완전히 정숙하게 한다. 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거짓일 뿐이다.” 즉 성령은 우리를 내적으로, 외적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주십니다.
또한 성령의 은혜가 충만한 곳에 풍성한 열매가 있습니다. 12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음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9절과 10절을 정리하면 강물이 흐르는 곳에 모든 생물이 살고 고기가 많아 어부들이 고기를 잡을 것인데 그 고기가 각기 종류에 따라 큰 바다의 고기같이 심히 많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곳에 충만함이 있다는 상징적인 언어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풍성한 은사가 나타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로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주십니다.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지식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능력행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예언과 영분별의 능력과 방언과 방언을 통역하는 능력을 주십니다.
또한 성령이 임하시면 풍성한 열매가 있습니다. 성령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성령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투기와 술 취함과 이와 같은 모든 것들의 원인인 육체의 소욕을 제어하고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얻게 하십니다.
생수의 근원인 교회
겔 47:1-5 / 황광민 목사
들어가는 이야기
미국의 어느 큰 침례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지금은 아주 크게 부흥 성장한 교회인데 일화가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그 교회에 부임을 했습니다. 몇해동안 열심히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며 애를 썼지만 교회가 좀처럼 부흥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나가서 전도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기 자리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교인이 줄고 교회가 약해져서 도저히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어느 주일 날 이렇게 광고를 했습니다. "도저히 더 이상 교회를 운영할 수 없어서 다음 주일에 고별에배를 드리고 교회 장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지방 신문에다가도 크게 "다음 주일에 교회의 장례식을 거행합니다"라는 광고를 실었습니다. 그 신문기사를 보고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교회 장레식을 치른다는 말은 처음 들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교회 장례식을 치른다는 주일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모였습니다. 교회에 등록만 하고 출석하지 않던 사람들까지 호기심을 갖고 다 모였습니다. 목사임은 짧게 고별사를 하고 장례식을 거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으로 강대상 앞에 놓은 큰 관에 작별인사를 하기 위하여 한 시간씩 줄을 서서 다가갔습니다. 참석했던 사람들도 회심 반, 장난 반으로 앞으로 나가 관속을 들여다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관속에 자신의 얼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관속에는 큰 거울이 놓여 있어서 들여보는 사람의 자신의 얼굴이 관 속에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교회가 부흥되지 않아서 장례식을 치르는 것은 결국 자신이 죽은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되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 탓할 것없이 자신이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교인들이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정말 죽었다. 이제는 새로 태어나야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교회의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는 모두가 자기 자리를 잘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빈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나가서 열심히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지방에서 가장 큰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중요한 곳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살리는데 앞장 서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사는 길입니다. 교회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아끼십시오. 작은 부서라도 택해서 봉사하십시오. 매월 둘째 주간은 금주는 <마음두고 관리할 성소운동> 강조주간입니다. 성전을 아끼고 섬기고 봉사하여 교회가 교회되게 하십시오. 그것이 다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생명을 주는 물
하나님의 사자가 환상중에 에스겔을 이끌고 간 곳은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솟아나와 동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1절을 함께 봉독하십시다.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은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시대의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로서는 갈할 대로 갈할 기간이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목마름이 저들을 괴롭히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에스겔을 불러 환상가운데서 생명수가 흘러 넘치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포로기의 목마른 이스라엘 배성들에게 희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기 목마른 성도가 있습니까? 수가성의 여인처럼 목이 말라 방황하여 살아가는 갈급한 심령이 있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이 주시는 생수로 시원함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물은 생명의 대명사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스스로 "생명의 물"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피의 90%가 물입니다. 뇌의 80%, 살의 75%, 심지어 뼈의 25%는 물입니다. 또한 물은 체온을 조절하고, 비타민 등 영양분을 운반하고 배설물을 처리합니다. 이처럼 물은 인간의 육체에도 생명의 근원입니다. 굶어서는 여러 날 살 수 이씨만 물을 마시지 않으면 일찍 죽습니다. 인간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9개월동안 물속에서 성장합니다. 그러다가 세상에 태어나 약 6천 5백 갤론의 물을 마시다가 죽습니다. 인간은 물에서 태어나 물의 덕분으로 살다가 죽습니다. 이처럼 물은 생명의 대명사입니다.
기원 200년대의 초대 신학자인 터툴리안은 이렇게 신앙생활을 설명하였습니다. "우리는 물고기와 같다. 물고기는 언제나 물 속에 있어야 살 수 있으며 활동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물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물을 떠난 고기는 살 수 없듯이 주님을 떠나서는 인생은 살 수 없습니다.
이사야서 55장 1절에 보면 목마른 자들을 물로 초청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요,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은 다른 것으로는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수로만 시원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봉독한 본문에 성전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보여주신 것은 뜻이 깊습니다. 목마른 사람들이여, 주께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수로 시원함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생수의 근원인 성전
이제 둘째로 생각하려는 것은 생명수의 근원이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성전 문지방 밑에서 생명의 물이 흘러 내리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환상을 보여 주셨을까요? 성전이 생명수 샘물의 근원이 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래서 성전이 귀중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전을 떠나서는 참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성전의 전신인 공야의 회막에 하나님이 임재한 사실을 소개하겠습니다. 출애굽기 40장 34절 이하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슴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 하나님께서 성막에 임재하셔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역대하 3장 15∼17절의 말씀을 소개하겠습니다. "전 앞에 기둥들을 만들었으니 고가 35규빗이요 각 기둥 꼭대기의 머리가 5규빗이라... 그 두 기둥을 외소앞에 세웠으니 좌편에 하나요, 우편에 하나라 우편의 것은 야긴리라 칭하고 좌편의 것은 보아스라 칭하였더라." 성전 앞에 세웠던 두 기둥으로서 성전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야긴일고 한 것은 "그가 세우리라"는 뜻으로 성전이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보아스라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로카이 섬에서 나환자 선교를 하다가 나환자로서 세상을 떠난 성 다미안은 어려서부터 성전을 사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다섯 살 났을 때 그의 부모는 다미안을 데리고 공진회라는 축제에 참여하였습니다. 그곳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만한 진기한 것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그런 것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린 다미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걱정이 되어 여러 곳을 다니며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야 성전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있는 다미안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부모들은 아주 놀라 버렸습니다. 그러나 다미안은 떠들썩한
여호와가 전능의 하나님이시다
이제는 구원의 주 여호와가 전능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여호와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시고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이것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인줄 너희가 알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심하게 고통 당하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귀에는 이러한 말씀이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9절에서 말씀하듯이 "모세가 이와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고 하였습니다. 오죽했으면 그 지경이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그 상황보다 크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아무리 형편이 힘들어도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풍랑속으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도 물위로 걷기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물위로 걸을 수 있었으나 풍랑이 눈에 들어왔을 때는 물에 빠져들어갔습니다. 풍랑보다 크시고 능력있으신 주님을 바라볼 때만 풍랑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풍랑보다 크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환경도 초월하십니다. 하나님은 관상도 초월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크신 하나님을 믿고 찾고 기도하셔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일수록 문제를 크게 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 뜻대로 이루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름대로의 뜻과 계획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그분은 합동하여 유익하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크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을 보지 못하여 쉽게 낙심하고 자포자기하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어떤 환경과 조건도 초월하십니다. 크신 하나님을 찾고 믿고 기도하시면서 삶에서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소성하는 성전
겔 47:3-12 / 고흥식 목사
사람들은 각기 다른 조건과, 환경에서 태어나고 삽니다. 사람들 중에 성공적인 인생은 자신에게 숨겨진 재능과 천부의 권한을 계발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자신의 삶의 목적에 총집결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삶은 하나님의 목적과, 사람의 조건이 만난점입니다. 꿈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꿈이 없는 사람은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꿈이 있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가 가진 꿈에 복을 주십니다. 그 사람이 큰 가 작은가를 보려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꿈의 크기로 결정됩니다. 꿈을 잃어버리면 부패하게 되고 타락의 시초가 됩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싱싱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끝없는 꿈을 붙들고 사는 한 자기 부재를 막을 수 있습니다. 꿈을 가진 열심이 기적의 열쇠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4)”
인생이란, 누가 나를 돕는 것 같고, 누가 나를 계발해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혼자서 성취해야 합니다. 내 사업이 내 인생입니다. 우리 창조주이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붙들고 자신에게서 기대를 가지십시오.
요엘 2:28을 보면 꿈이 있는 사람은 이상을 가지고 환상을 보게 되며 꿈을 꾸게 되고 그의 장래가 창대하게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광야 같은 세상을 승리하며 사시길 축원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물의 얘기입니다. 성전에서 흐르는 물 얘기입니다. 물은 참 신기합니다. 왜냐하면 구멍이 난 채로 운반이 가능한 것이 물이기 때문입니다. 얼은 물은 구멍이 났어도 운반이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창조하실 때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만드셨습니다.(창1:6) 물은 더러운 것을 세탁하는 용도로도 쓰입니다. 또한, 음료수로도 쓰이고, 농사를 지을 때도 쓰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물은 상징적으로 생명을 살리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요 4:14)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우리 눈에는 보이진 않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생기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로 샘물 같은 은혜가 우리 위에 다 임하길 원합니다. 앞으로 전쟁은 석유나 지하자원의 전쟁이 아니라, 물 전쟁이 될 것입니다.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지구 곳곳에서 심각한 물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나일 강은 킬리만자로 산에서부터 시작하는 강으로, 6690Km나 되는 긴 강으로, 여러 나라를 거칩니다. 수단, 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 르완다, 탄자니아, 부룬디를 거칩니다. 그래서 이 강의 유역도 3007평방Km에 달하는 큰 강입니다. 그러나 만약 비가 오지 않아서 물이 점점 줄어들어 나일 강의 상류에 있는 탄자니아, 수단, 케냐에서 물을 막아 버리면 이집트까지 물이 가지도 않고 지중해로 흘러갈 물이 없어서 결국 무서운 물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물은 식량자원, 지하자원보다 더 중요한 생명의 조건입니다. 지구는 오존층 파괴로 인한 온난화 현상으로 인해서 빙하가 녹아서 해수면이 점점 높아져서 바닷물은 많아지고 반면에 지하수는 점점 고갈되어 마실 물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거주하고 물이 없으면 사람이 떠납니다. 그래서 애급의 나일 강, 중국의 황허 강, 양쯔 강, 인도의 갠지스 강, 인더스 강,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에 사람들이 거주합니다. 각 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의 한강이 없으면 서울이 존재가 안 됩니다. 파리의 세느강, 런던의 테임즈 강, 뉴욕의 허드슨 강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어떤 강이 있을까요? 언뜻 보면 “예루살렘은 요단강이 아닙니까?”라고 말하겠지만, 예루살렘에는 강이 없습니다. 그럼 예루살렘은 무슨 강일까요? 그 정답이 12절에 나와 있습니다. 성소에서 물이 나오는 것입니다.(겔47:12) 성소에서 나오는 물로 예루살렘이 산다는 교훈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이 물이 넘쳐흘러서 풍성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말씀을 교훈으로 주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면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2절 말씀을 보면 우편에서 물이 흐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2절에는 성소에서 물이 난다고 했습니다. 결국, 물의 근원이 어디인가를 분명히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물이 성전의 중심부인 성소에서 흐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마른 땅을 적시고, 시들어 죽는 나무를 살리고, 목말라 죽어가는 살릴 물이 나오는 곳, 즉 생명을 살리는 물이 나오는 곳이 왕궁이나, 정치가의 집이 아니라, 성소에서 흐른다는 것이 성경이 주는 교훈입니다. 그러면 이 성소에서 나오는 물은 무엇을 말할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요7:37-38)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생수의 강이 흘러나갈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 모든 심령을 적시고 소생케 하는 은혜가 임할 줄 믿습니다.
석유나 지하수는 바닥이 드러나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는 바닥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지구상에 60억이 넘는 사람이 사는데, 기독교 인구가 17억 정도 됩니다. 이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물이 발목, 무릎, 허리를 지나서 창일하게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정도로 점점 많아집니다.(3-5) 일 천척은 1/4마일인데 일 천척을 들어갈 때마다 물이 계속 불어납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하면 본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성전 문틈에서 나올 때는 미약하고 소리도 들리지 않게 나오지만, 점점 불어나고 요란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초라하고 조용하게 소문 없이 나셨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창일하게 복음으로 덮이고 있는 것입니다.
12명으로 시작한 복음이 120명 문도에게, 그리고 3000명, 5000명, 그리고 더 많은 그리스도인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주의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 점점 증대하고 큰 영향력을 가져서 세상에서 승리케 하는 것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의 모습입니다.(욥8:7)
겨자씨가 작지만 점점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적은 누룩이 반죽 전체를 부풀리게 하는 것처럼 구유에 놓이신 아기 예수님이 작게 보이지만 전 인류를 변화시킨 큰 구주가 되셨습니다. 우리 개인과 가정도 복음으로 말미암아, 생기로 말미암아 창대해질 줄 믿습니다.
1. 살아나는 역사가 있다(겔47:9)
소성이라는 말은 까무러치고, 기절한 상태에서 다시 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소생과 소성은 다릅니다. 기독교는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성소에서 난 생수가 모든 생물을 살리고, 썩을 바다가 고쳐지기 시작하고 각처의 모든 것이 고쳐지기 시작합니다.
어촌에서 물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어부들이 떠납니다. 그리고 탄광촌에 석탄이 생산되지 않으면 광부들이 떠나고 폐광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사람의 힘으로 안 되고 과학의 힘으로 안돼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을 영생의 물(요4:14)이라고 했고, 생수의 반석이 예수님(고전 10:4)이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서는 에스겔 선지자 그발 강가에서 이스라엘을 파멸시킬 것이라는 에언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1:3)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는 오늘 본문 말씀 즉, 성전 문에서 스며 나오는 물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살 것을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파멸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도 소생할 줄 믿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무서운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대로 요단강에 7번 들어가니 그의 살이 어린아이 살처럼 여전해짐으로 그 무서운 질병에서 고침 받았습니다.(왕하5)
앞을 못 보는 장애인이 예수를 만나고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으니 그 눈을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요9:1-7)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지만 주님은 하십니다. 이것이 성전에서 스며 나오는 생수의 힘입니다. 성전에 주님의 눈과 귀가 있습니다.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생수의 축복이 임하게 하옵소서.
사람의 힘의 무력함을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999년 12월 31일 21세기 첫 시작을 알리는 날, 사람들이 전광판을 주목하고 TV중계를 했습니다. 그 마지막 날 파리의 에펠탑에서도 하루시간을 한 시간 간격으로 알리고 한 시가 되자 분으로 알렸고 마지막 1분이 남았을 때는 초로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21세기 시작을 알릴 전광판에 눈길을 모으고 있을 때 그 전광판이 고장 났습니다. 오후 5시에 고장 난 것을 발견하고 급히 손을 썼지만 다시 고장이 났습니다. 고장 난 것을 다 고치고 나자 새벽 3시였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인간의 방법과 인간의 과학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하게 치료시켜 주시고 고쳐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행4:12)
오늘 단계를 보십시오,
첫째 생수의 강으로 발걸음을 옮겨야합니다.(3) 오늘 하나님 성전에 발걸음을 잘 옮기셨습니다. 물에 대는 순간 물은 갈라집니다.(수 3:13) 사실 이 강물은 생명과 번영을 두지만 공포와 죽음을 줍니다. 그 창일한 요단강에 발을 대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고 발을 디디는 것입니다. 참신 앙은 생명을 건 결단과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쫓는 자만 주님께서 참 제자로 불러 주신다고 하셨습니다.(마10:38).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참결단과 죽을 결심으로 주님을 따라 가면 살이 생길 줄 믿습니다.(마10:39) 발걸음이 들어가야 됩니다. 둘째 끝없는 전진 있어야 합니다. 발목까지 잠겼던 물은 무릎, 허리, 창일하게 됩니다.(4) 교회 오실 때에는 발목 신앙이 됩니다. 그러나 점점 무릎이 기도하는 무릎이 되고 힘쓰는 허리 신앙이 되고 창일하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뒤로 물러가지 말고 자꾸 이와 같이 깊은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히10:38-39) 우리는 천상의 천국에 갈 때까지 우리 신앙이 전진하는 신앙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온전히 자신을 맡깁니다.(5) 너무 물이 많아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발목신앙의 신앙이 점점 창일하니까 자기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붕붕 뜨는 것입니다. 다 온전히 자신을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6) 내가 보았느냐? 우리 신앙이 발목 신앙에서 무릎신앙으로 허리 신앙으로 창이하게 해서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신앙까지 올라가는 것을 내가 보았느냐 ? 체험 했느냐? 생명의 성령의 법이우리 모두 이와 같이 이끌어 줄줄 믿습니다.(롬8:2) 그런데 이 물 이끌리어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8) 예루살렘에서 나온 물은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서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까지 전 세계를 다 덮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살리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나오는 물은 다섯 가지를 살립니다. 첫째 질병에서 살립니다.(막1:34) 각색병과 많은 사람들을 고치심의 역사가 주님의 역사입니다. 오늘도 예배를 통해서 주님께서 고쳐 주옵소서. 육신의 질병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질병 영의 질병까지 고쳐지게 하옵소서. 둘째 귀신으로부터 해방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막1:26) 저는 지난주에 청주 부흥회를 갔을 때에 자기 부인이 더러운 귀신이 들렸습니다. 남편은 돈도 많고 사업가였습니다. 그러나 아내일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돈을 써도 안 되고 더러운 귀신은 정신 병원에서도 고칠 수가 없습니다. 예수의 권능으로 쫓아내야 합니다. 셋째 죄에서 구원 받아 사는 역사가 나타납니다.(막2:17)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다 구원받아 천국 백성 되는 길을 잡아야 합니다. 넷째 근심에서 벗어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요14:1) 여러분 예수 믿으면 근심거리가 없어집니다. “Don't let your be troubled . Trust in God . Trust in me also.-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니 근심할 것이 없고 두려워 할 것이 없다. 다 맡기시고 한주간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승리 한다는 믿음으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다섯째 소외된 삶에서 돌이켜 화합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눅19:5) 오늘 예배를 드리다가 하나님이 우리 마음 집에 임하길 축원합니다. 살리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 성전만이 살립니다.
2. 영적 불모지를 경계해야 한다.(11)
진펄과 개벌은 바닷물이 빠져나간 곳은 시커먼 개벌이며 지저분하고 황패합니다. 살아있는 신앙이 되어야 하는데 거룩한 물결이 사라지면 지저분하고 유해성이 있고 황량한 불모지가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물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소금 땅이 되는 것입니다. 농사도 질수 없고 소금물로 구성된 사해 바다는 물고기가 살지를 못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똑같이 임하지만 다 똑같이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을 받으면 살아나는 역사가 있고 은혜를 헛되이 받으면 황폐한 심령이 되는 것입니다.(사5:4) 여러분의 복음이 지식으로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확신으로 되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살1:5) 오늘 예배를 드릴 때마다 내 속에 확신이 들게 하옵소서.
신앙의 A, B, C가 있습니다. A-accept 말씀을 받아 드려 아멘 해야 합니다. B- believe의심하지 말고 확신해야 합니다. C- courage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은혜를 헛되이 받으면 안 됩니다. 확실히 받아야 합니다.(살 2:11) 거짓 것을 좋아하고 불의를 좋아 하면 심판 받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심판을 받지 않도록 다음 상을 경계해야할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 성소에서 나오는 은혜의 물을 게으름, 부주의함 으로 인한 경시 태도를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주신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잘 받는 성도는 반드시 살아나는 역사가 있습니다. 둘째 영혼의 병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그 치유를 계속 지연 시키는 것입니다. 진펄과 개펄은 비가 오면 더 질퍽거립니다. 마른 땅에 비가 오면 죽어 가는 나무가 살지만 진펄과 개펄은 비가와도 소용이 없습니다. 영혼의 병을 인식하면 병을 빨리 고쳐야지 지연 시키면 안 됩니다. 셋째 이생의 삶과 육체적인 것에 너무 집착하면 하나님 말씀에 귀머거리가 됩니다. 핸드폰도 밖에 소리가 너무 크면 소리가 안 들립니다. 공중전화도 문을 닫고 전화를 해야 잘 들리지 문이 열리면 잘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려면 세상의 소리들에 귀를 막아야 합니다.
진펄과 개펄은 영적 불모 상태이며 말씀을 받아 드려 영양분이 되지 못하고 불모지가 되는 것입니다. 은혜의 강줄기가 흘러와도, 그것을 눈으로 목격하면서도 소성하지 못하는 것은 진펄과 개펄입니다. 외형적으론 종교인입니다. 늘 영적으로 충만히 입고, 깨어 있어 풍성한 수확을 기다려야 할 텐데 진펄과 개펄처럼 무익한 땅이 되면 안 됩니다.
전 세계에서 제일 맛이 있는 배는 우리나라 배입니다. 맛있는 우리나라 배를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한국 교포가 배를 얻으려고 심었는데 우리나라 배 같은 배가 안 열리고 돌배가 열렸습니다. 왜일까요? 배씨를 그곳에 심어도 토양이 다르기 때문에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의 토양이 옥토가 되어야 합니다. 길가 밭처럼, 가시밭처럼, 자갈밭처럼, 딱딱하고 굳어지면 안 됩니다. 말씀을 잘 받아 옥토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여 내 마음은 옥토입니다”
3. 열매를 얻어야 한다.(12)
하나님의 성전에서 스며 나오는 물은 열매를 맺혀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잎이 시들지 않고 하나님 성전 곁에 심겨진 우리 인생은 시들지 않습니다.(시1:3) 나무가 자라고 열매를 맺으려면 물이 있어야 하는데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물을 받아야 우리의 인생과 가정이 시들지 않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4가지요소는 공기, 물, 음식, 수면입니다. 공기값 , 물값 , 밥값 중에서 제일 비싼 것은 밥값이지만 생수보다도 밥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공기입니다. 생수도 중요합니다. 물도 생수가 있고 폐수가 있습니다. 생수가 되어야 합니다. 패수는 농사도 질수 없고 공업용수로 사용할 수 없고, 물고기도 살수 없고, 나무도 죽습니다. 폐수를 마시면 사람도 썩게 하고 폐수가 들어가면 문화도와 사회가 썩습니다. 영적으로 패수는 유물론, 향락주의, 세속주의입니다.
미국의 신경과학회에 앤드리어스 바텔스는 남녀 수십 명을 자기공명영상을 촬영할 때 사랑하는 사람을 본 사람은 뇌의 20여 곳에서 혈류량이 증가 하였다고 합니다. 뇌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데 뇌는 사람의 활동 지휘의 총 본부입니다. 만약 뇌 속에 썩은 정신이 들어가거나 썩은 문화가 들어가면 그 사람의 행동이 파괴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시대의 청소년과 모든 사람들이 다 보기 좋은 것 귀한 것 듣기 좋은 것을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나쁜 것 세속적인 것 향락적인 것을 집어넣으면 썩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가가 들어가면 회복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 운동이 일어나야 하고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이 세계 모두다 예수를 믿어야 사는 것입니다.
하프는 현악기로서 숙련된 연주자가 손으로 연주할 때 줄이 진동하면서 하프 전체가 울립니다. 내 영혼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연주하면 심령이 진동을 일으키고 내 생애가 아름다운 열매가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서 아름다운 열매가 맺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흘러오는 복음의 생수는 사람의 영혼으로 하여금 놀라운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열매가 맺힐까요? 성령께서 마음속에 9가지 열매를 맺게 합니다.(갈5:22-23) 마음속의 성령의 열매가 밖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전도의 열매가 맺혀지게 되는 것입니다.(요15:5)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제자답게 살기 위해서 전도의 열매를 맺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과 우리나라를 전도 합시다. 전 세계를 전도하는 역사가 있어지길 축원합니다.(행2:41)
주여! 내 인생에 열매를 더 많이 맺게 하소서! 성령의 열매!영혼 구원의 열매 ! 전도의 열매 맺고 생수의 믿음을 자랑하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진펄과 개펄
겔47:6~12 / 홍문수 목사
오늘은 교회 절기로 성령강림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가 죽으신 날(유월절) 후 50일째가 되는 날이 오순절인데, 바로 그 날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강림절을 가리켜 오순절(五旬節 Pentecost)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제3위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오늘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그런 점에서 신앙생활은 성령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성령과 함께 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반대로 성령과 함께 하지 않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하면 아무런 역사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시간 성령강림절을 맞이하여 각자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과연 성령과 함께 하고 있는가? 부디 성령과 동행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역사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성령의 생수가 미치는 곳 : 고기가 가득한 바다, 나무가 가득한 강가
본문은 구약 에스겔 선지자가 본 환상의 기록입니다. 천사가 에스겔을 이끌고 성전으로 갑니다. 겔47:1 “그(=천사)가 나(=에스겔 선지자)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오는데, 이 물은 과연 무엇일까요? 예루살렘에는 강이 없습니다. 물이 그렇게 흘러나올 수 없습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영적인 현상입니다. 신령한 생수입니다. 그러니까 뭡니까? ‘성령’을 가리킵니다. 강물의 발원지가 성전이라는 것은 성령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옴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영입니다. 성령은 생명의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물이 닿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성령의 생수가 흘러가면서 강물을 이루고, 바다를 이룹니다.
바다에는 고기가 가득하고, 강가에는 나무가 가득합니다. 7절~8절. “7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여기서 바다는 죽음의 바다로 불리는 ‘사해’를 가리킵니다.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아라바를 거쳐 사해로 이어지는 땅은 유다 광야로 거친 황무지입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로 말미암아 옥토가 됩니다. 그래서 강 좌우편에 푸른 나무들이 심히 많아집니다. 그리고 사해가 살아나 생명의 바다가 됩니다. 9절.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생명의 바다에는 고기기 심히 많아집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대단하죠? 생명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12절을 보면, 강가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묘사합니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각종 나무가 가득한데 잎이 시들지 않고 사시사철 열매가 열립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네바다 주의 라스베가스를 아실 겁니다. 도박장이 있어서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지만, 그 도시 자체는 대단합니다. 사막 한 가운데 있는 도시인데 전원도시입니다. 그 이름도 ‘초원’이란 뜻입니다. 사막에 있는데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요? 깊은 골짜기에서 물을 끌어들이고, 수십 km 떨어진 후버 댐에서 물이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물은 생명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생 가운데 성령의 생수가 흘러들어오면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2] 성령의 생수가 미치지 않는 곳 : 진펄과 개펄
생수가 흘러들어가는 곳에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는 데 반해 너무나 안타까운 모습이 있습니다. 11절.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진펄과 개펄은 생수가 미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겁니다. 아주 대조적이죠. 한쪽에는 생명의 놀라운 역사가 풍성하게 나타나고, 다른 한쪽에는 비참한 죽음의 광경이 펼쳐집니다.
에스겔의 환상은 우리 인생에 성령의 생수가 흘러들어오느냐, 아니면 흘러들어오지 않느냐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리얼하게 보여줍니다. 이런 걸 가리켜 ‘그림 언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림을 그리듯이 환상을 통해 강력한 메시지를 주시는 겁니다.
여러분, 그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 믿고 성령을 받으면 생명이 약동하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를 거부하면 성령의 생명력을 받지 못합니다. 안타깝게도 예수 믿으면서도 이런 생명의 풍성함을 체험하지 못하고 진펄과 개펄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 시간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성령의 생수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생수로 인해 우리 안에 생수의 강이 흐르고, 생명의 바다가 펼쳐져 풍성한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 성령의 생수가 흐르게 : 영혼, 생활, 인격, 그리고 세상으로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령의 생수가 우리 인생 가운데 흐르게 할까요?
우리 영혼으로부터 생활과 인격 등 인생 전반에 흘러넘치게 해야 됩니다. 더 나아가 그 생수가 우리를 통해 온 세상에 흘러넘치게 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주신 목적이 바로 이겁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에덴동산의 모습을 보십시오. 창2:9~10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 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에덴동산이 풍요로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생수의 강이 네 갈래로 흘러 동산 전체를 적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장차가 들어갈 천국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계22:1~2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어떤가요? 에덴 동산의 모습과 비슷하죠. 그리고 오늘 본문 에스겔이 본 환상과 비슷하죠. 그러니까 예수 믿고 우리 가운데 성령이 임하면 그 생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에덴이 회복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구원의 축복입니다.
① 영혼 :
먼저 성령의 생수가 우리 영혼에 흘러넘치면 행복해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7:37~39 “37 명절 끝날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 예수 믿고 성령을 받으면 그 영혼 깊은 곳에 생수의 강이 흐르게 됩니다. 그러면 영혼 가운데 천국의 기쁨이 가득 찹니다. 롬14:17에서 사도 바울이 증거합니다.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예수님이 평안에 관해 주신 말씀입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세상에 살다 보면 얼마나 걱정과 근심이 많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시면 우리 마음에 천국에서 내려오는 평안으로 충만해집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환경으로 주어지는 조건부 평안과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천국제 평안(Peace made in Heaven)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장차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천국의 동일한 평안이 오늘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내 영혼에 충만히 누릴 수 있습니다. 아니, 구원받은 성도라면 당연히 누려야 합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게 바로 구원 받은 증거일 수 있습니다. 내 영혼 가운데 천국이 없는데 어떻게 내세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님의 구원 간증입니다. 청년 시절 영어를 배우려고 선교사님을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성경 구절을 암송하면서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성령이 임하니까 예수님이 믿어졌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에 큰 감동이 생기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저절로 찬송이 흥얼거리게 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면 자신을 보고 춤추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너무 기뻐서 동생에게 자랑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났어! 너무 너무 좋다!” 이게 바로 성령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찬송합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 ...”
저도 부족하지만 대학생 시절 예수님을 영접할 때 그런 체험을 했습니다. 그때는 시대적으로 암울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어 무척 힘들었습니다. 밤에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제대로 잠들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마음에 성령이 임하니까 모든 문제가 말끔히 해결됐습니다. 환경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인데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겁니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환경적으로 어려운 일이 없지 않았지만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성령으로 인한 이 행복이 있습니까? 부디 영혼 깊숙이 생수이 강이 흘러넘쳐 기쁨과 평안이 가득한 행복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② 생활 :
성령이 임하면 영혼뿐 아니라 육신의 생활도 변화됩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괴로워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악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해 주신 본래 모습은 좋은 상태였는데, 타락 이후 고통이 임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성령을 받으면 영혼에서 시작된 변화가 생활에서도 나타납니다. 요삼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육신도 강건해지고, 가정도 범사도 변화됩니다. 지옥 같던 모습들이 천국 같은 모습으로 달라집니다.
우리 육신만 해도 너무 분명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잠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성령의 생수가 흐르면 마음이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그러면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마음이 복잡해서 육신의 병이 생기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생활 속의 복잡한 일도 마음에서 오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도 편해지고, 육신도 건강해지고, 생활 전반이 형통케 되는 축복으로 넘치시기 바랍니다.
③ 인격 :
성령이 임하면 정말 중요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인격의 변화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생수가 지속적으로 흘러야 가능합니다. 나무도 보세요. 물이 한두 번 뿌려진다고 열매를 맺는 게 아니죠. 지속적으로 물이 공급될 때 가능합니다. 마찬가지, 우리가 계속해서 성령 충만할 때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가 맺어집니다. 이게 인격의 변화입니다. 갈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열매는 예수님의 인격입니다. 성령은 예수의 영이기 때문에 성령과 지속적으로 동행하다 보며 우리의 인격이 저절로 예수님의 모습을 닮게 됩니다. 나중에는 얼굴이 변화됩니다. 얼굴이란 단어가 ‘얼+꼴’에서 왔다는 말이 있죠. 얼은 영혼입니다. 그러니까 영혼이 어떠한가, 인격이 어떠하나 그 모양이 겉으로 드러나는 게 얼굴이라는 겁니다. 겉볼안이란 말도 있잖아요. 우리 영혼이 달라지고 인격이 달라지면 얼굴도 달라집니다.
요즘 얼짱이란 말이 유행하는데, 성령 충만한 사람이 진짜 얼짱입니다. 그렇다고 배우나 탤런트 같이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생김새는 바뀌지 않아도 풍기는 인상이 달라집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예수님의 형상이 드러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되지 않고 찡그리거나 무표정하면 얼짱이 아니라 얼음짱이 됩니다.
성령으로 인격이 변하면 주위 사람들이 얼른 알아봅니다. 입술로 복음을 전하기도 하지만, 설사 직접 전도하지 않아도 우리의 얼굴을 통해 주위 사람들이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을 보니까 하나님이 계신 것 같다. 예수 믿는 게 좋은가 봅니다. 나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 가보고 싶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 얼굴이 전도지입니다.
④ 세상 :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성령이 온 세상에 흘러가는 게 바로 전도와 선교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실 때 남기신 유언적 명령의 내용이 바로 이겁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은 전도의 영이며 선교의 영입니다. 성령 충만해지면 당연히 전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선교에 열심을 냅니다. 복음만이 서령만이 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정치, 경제, 군사적인 힘으로 이루는 변화는 얼마나 부작용이 많은지 모릅니다. 오직 복음 운동만이 부작용 없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2007년 신문에서 본 기사입니다. 파푸아뉴기니의 폴리아 마테인 총독이 129년 저의 일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한 일입니다. 1878년 영국인 목사 선교사, 피지인 선교사와 교사 등이 5명 톨라이 종족에게 살해를 당했는데, 그 식인 사건에 대해 사과한 겁니다. 추모 행사에는 수천 명의 톨라이 사람들이 모여 이렇게 사과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여러분의 선교사를 잡아먹어 정말 죄송합니다.” 총독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당시 선교사들 때문에 파푸아뉴기니가 지금과 같이 기독교가 융성한 국가가 되었습니다.”(파푸아뉴기니는 복음화율이 90% 이상) 이러한 광경을 지켜본 영국 대사는 큰 감동을 받고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감동적인 사과를 진심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로써 양국의 역사적 악연이 완전히 청산됐습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성령의 생수가 흘러 들어가면 이런 놀라운 변화가 생깁니다.
여러분, 오늘 성령강림절을 보내면서 각자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인가? 생수의 강이 흘러 강가에 나무가 가득하고 바다에 고기가 가득한 모습인가요? 아니면 진펄과 개펄처럼 척박한 모습인가? 다시 한 번 성령의 생수를 충만히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영혼에 성령의 생수가 흐르고, 그것이 생활로 인격으로, 그리고 온 세상으로 흘러 나아가는 놀라운 축복이 넘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