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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과와 설교

20210208 / 요 8-15 /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

작성자이윤형원로목사|작성시간21.02.17|조회수596 목록 댓글 0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

요 6:8-15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요 6:8-15 / 그러자 시몬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가 나서서 예수께 말하였다. `여기 이 아이가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을 다 먹일 수 있겠습니까?' 10)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사람을 그 자리에 앉게 하라.' 그들이 모두 풀밭 위에 앉았다. 남자의 수만 해도 약 5천 명이나 되었다. 11) 그러자 예수께서는 떡을 들어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신 다음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리고 물고기도 그와 같이 하여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사람들은 모두 배가 부르도록 먹었다. 12) 그들이 다 먹은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제 남은 것을 다 주워 모아 버려지는 것이 없게 하라' 하고 이르셨다. 13) 그래서 남은 부스러기를 모았더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14) 이 큰 표적을 보고 사람들은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기다리던 그 예언자이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그들은 예수를 어떻게든 모시고 가서 왕으로 세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를 아신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피하여 혼자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다.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기적에는 언제나 가장 좋지 않은 여건 속에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을 통해 드러나는 극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8-9) 현실적으로 보면 한 아이로부터 가져온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는 현재의 상황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자신의 도시락으로 추측되는 소년의 물고기와 보리떡도 제대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문의 물고기를 옵사리온이라 합니다. 옵사리온은 상품가치가 없어서 어부들이 항구에 쌓아두는 물고기를 옵사리온이라 합니다. 그러면 지나가던 개가 먹거나 가난한 사람들이 주워가서 먹는 물고기입니다. 상품성이 있는 물고기는 익투스라고 합니다. 그리고 소년의 떡도 당시에 주식인 밀 빵이 아닙니다. 민족적 배경은 조금 다르지만 로마제국이 다스리던 당시의 문화를 알만한 이야기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나옵니다. 당시 로마군이 말에게 먹이기 위해서 쓰던 사료가 보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쟁 중에 도망치다가 붙잡힌 탈영병에게 주던 체벌 중의 하나가 식사 때에 보리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전쟁 중에 동료를 버리고 도망가는 자는 말이나 소 같은 짐승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만큼 보리는 당시에 천대받던 곡물입니다. 그런데 소년이 들고 온 것이 옵사리온 2마리와 보리떡 5개였습니다. 보잘 것 없는 음식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마치 제자들이 “우리의 처지가 이런데 어떻게 이 사람을 모두를 먹일 수 있습니까?”라고 항변하는 것 같습니다.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10-13) 제자들의 자조 어린 항변과 악조건에도 예수님은 차곡차곡 다음 일을 진행시켜 가십니다. 가진 것은 말 그대로 어린 아이의 도시락 오병이어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푸른 잔디 위에 사람들을 50명씩 100명씩 떼로 앉게 하십니다(막 6:39). 그리고 보잘 것 없는 도시락이 예수님의 손에 들려지고 감사와 축복이 더해집니다. 성도들의 모든 것이 이럴 것입니다. 큰 문제 앞에서 가진 것은 보잘 것 없지만 그것이 주님의 손에 들려지면 다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를 채우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14-15) 주객이 전도되는 일은 사람의 욕심이 원인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는 기적을 요한이 표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기적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기적을 통해서 진짜를 알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오병이어를 경험한 사람들은 이를 표적으로 삼지 못하고 기적 자체에 열광하여 예수님을 자신들의 욕망을 달래는 도구로 보고 열광합니다. 이에 주님은 무리를 떠나시는 것으로 진의가 왜곡되지 않게 하십니다.

 

적용: 어린 아이의 영성을 묵상해 봅니다. 보잘 것 없는 오병이어가 주님의 손에 옮겨졌을 때 일어난 기적을 묵상해 봅니다. 부스러기 열두 바구니는 스로보나게 여인의 믿음을 자극하시 않았을까 여겨집니다. 지금 내가 주님께 드릴 오병이어는 무엇일까 살펴보십시오.

 

감나무에 감이 안 달리면 감나무에 개나 소를 매어 놓았답니다. 개나 소를 나무에 매어 놓으면 나무의 껍질이 까지는데, 껍질이 까지라고 일부러 짐승을 매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껍질이 벗겨진 나무는 위기를 느끼게 되고, 그러면 열매를 잘 맺게 됩니다. 친구 목사로부터 듣는 감나무 이야기입니다. 고난이 삶을 성숙시킨다는 이야기를 그는 어릴 적 듣고 본 감나무 이야기를 통해 하고 있었습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 설 교 >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요 6:1-5 / 조용기 목사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이 제목을 가지고 오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광야에는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마실 물도 부족하고 먹을 양식도 부족하며 갖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 된 우리가 부족함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며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히 누리는 삶을 살아가길 원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4차원의 영성을 삶에 적용해야 됩니다.

지난 달 OECD가 펴낸 보고서를 보니까 한국 사회는 실업과 취업 불안이 매우 높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 수치는 OECD국가 중 두 번째인데, 우리나라 사람의 약 80%가 일자리 때문에 걱정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건강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했습니다. 자신이 건강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약 33%로,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순위로 따지자면 최하위입니다. 이처럼 대다수의 사람이 불안과 염려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가 많은 사람에게 그 질문을 당합니다. 여러분, 아주 교육을 많이 받고 지적인 사회가 이루어졌다는 구라파의 독일에 가서도

어느 면적(얼마든지) 군중들 모아놓을, 불러 모을 수 있습니다. 왜 그러냐? 이 세상에 병 안 든 사람이 없어요. 아주 공부를 많이 하고 사람들이 현명하게 산다고 하더라도 독일이나 불란서 같은데 가서 병자를 위한 기도를 하고 병 낫게 한다고 그러면 주민의 30%는 집회에 참석해 나온다고요. 제가 독일에 처음 가서 복음을 증거 할 때, 그 베를린에 저만치 사람 안 모일 테니까 헛된 짓 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독일 사람들이 얼마나 교육이 높고 지혜가 탁월한데 미개인처럼 취급당하는 한국 사람이 와서 우리에게 복음을 증거 한다고 사람이 모이겠냐고? 제가 하는 말은 “두고 보라고. 아픈 사람은 안 아픈 사람과 생각이 다르다고, 독일 사람도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는지 보라고.” 그러니까 일주일 집회를 하는데 한 며칠 동안에 병자들이 와서 나으니까 그냥 줄줄이 사람들이 집회에 참석해서 그 때 은혜 받은 사람들이 목사도 되고 주의 종이 되어서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자기 존재를 위해서 굉장히 관심이 깊습니다. 몸이 건강해야 되고, 직장이 있어야 되고, 직업이 있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복음을 증거 하러 나갔을 때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다. 희망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회개하면 천국이 가까워오는데 거기에 들어가지 원치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돌봐주시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1. 먹이기를 원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잘 먹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도 잘 되고 강건한 전인구원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성경말씀을 보면 유대광야에 모인 사람들이 굶고 고난당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지역에 내려가서 복음을 증거하니 병자를 많이 고쳤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역의 2/3는 병 고치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병을 많이 고치니까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자기도 병 낫거니와 병 고친 사람이 누군지도 보기 위해서 인산인해로 모였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에 예수님이 나왔는데 유대광야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찾아보려고 온 무리들이 남자만 오천 명, 여자를 다 합치면 어린아이까지 적어도 만 오천 명 내지 이만명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우리 어디에서 떡을 사서 이 많은 사람을 먹이겠느냐?”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한복음 6장 7절)’ 엄청난 돈이 있어야 이 사람들 조금씩 먹게 할 수 있다고. 계산을 하면 안 됩니다. 우리 오중복음, 삼박자 축복, 4차원의 영적 생활에는 계산을 하면 안 됩니다. 그냥 신앙을 가진 사람만 그냥 3차원의 영적인 생활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제가 오중복음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을 하나님께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때 4차원의 영성을 깨닫게 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예수님께서 이것을 가르치시면서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기적적인 신앙생활은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대화를 하는데 예수님이 아무 말을 해도 못 알아들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 육으로 나있는 사람은 하늘의 신령한 일을 알 수가 없다. 신령한 세계를 알려면 거듭나야 된다. 죽은 영혼이 살아나야 된다. 예수님이 그 영혼은 바람과 같다. 분명히 바람과 같이 있지만 만져볼 수도 없고, 서로 느낄 수도 없는 형편인 것입니다. 4차원의 영성을 가진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거듭나서 속사람이 살아나면 하늘나라와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기적의 동반하는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는 사람은 기적을 믿지 않아요. 영은 죽었고 없고, 육신은 물리학적 계산법이 들어가기 때문에 보고, 듣고, 말하고, 이것에 맞아 떨어져야 대화가 되고, 보고, 듣고, 만지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할 수 있는 그 범위를 뛰어넘으면 그건 영적세계에 들어갑니다. 영적세계는 우리 인간으로서는 대화가 안 되는 것입니다. 영적세계는 생각의 세계요, 꿈의 세계요, 믿음의 세계요. 인간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정의를 내는 말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오니까 주님께서 빌립에게 이 사람들에게 어디에서 떡을 사서 먹일 수 있냐고 말하니까 당장 빌립은 계산을 합니다. 계산을 해가지고서는 어림도 없습니다. 돈이 너무 들어가니까. 그런데 안드레라는 제자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와서 먹이는 시늉을 할 수 있으되 절대로 그 군중들을 먹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3차원의 세계 속에 있지 않습니까? 3차원이라는 것은 감각적인 세계, 이성적인 세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성적인 세계, 감각적인 세계에서 계산을 해보니까 빌립은 어림도 없습니다. 먹일 수 있는 돈이 없습니다. 안드레는 오병이어를 가지고 있긴 있어도 너무 수가 적어서 어림도 없이 먹일 수가 없습니다. 기적을 기대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 예수님은 기적을 기대하는 분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4차원의 영성을 통해서 이들을 먹이시는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분들에게 자리에 다 앉게 하시고 그 다음, 주님께서 축복하시고 축사를 하시고 나누어주라고 먹이는 명령을 내리시니까 아 이 떡이 물고기와 함께 주니 또 생기고 주니 생기고, 주니 생기고. 기적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도 3차원의 세계에 속한 사람은 보고 듣고 말하고 하는 한정된 인간적인 계산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해결이 안 됩니다. 4차원의 영성을 가진 사람은 믿습니다. 그것이 끝입니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해서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믿어질 때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겨자씨만한 믿음이 태산을 옮기고 문제가 해결이 엄청나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을 이해하도록 하려고 했는데 안돼요. 3차원의 세계에서 3차원의 물자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니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4차원의 영성을 동원해서 4차원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8절로 9절에 보면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야훼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세상 사람들의 길보다 다르고 생각보다 높아서 인간으로서는 못할 것을 하나님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기적적인 4차원의 삶을 살려면 절대로 생각이 부정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립보서 4장 19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와서 채우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7장 9절로 11절에 보면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부정적인 생각은 우리의 삶을 파멸로 이끄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4차원적 해결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되어 오셔서 가는 곳마다 4차원의 영성을 통해서 문제해결을 했습니다. 창조적인 축사를 했는데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를 가지고서 축사를 할 때 그 축사 속에 예수님의 바라봄의 법칙이 들어있고, 믿음이 들어있고, 창조적인 선언이 들어있어 우리가 그것을 몰라볼 때 가 많습니다. 창세기 1장 1절로 5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3차원의 세계에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은 위에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3차원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그 위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시더라. 그 하나님의 신은 4차원의 세계인 것입니다. 차원을 말로 할 수 없는 바람과 같은 4차원의 영이 3차원의 세계에 운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여러분 자체 육체는 3차원입니다. 여러분 제가 말하고 여러분이 말을 듣고 계시고 수족을 움직이는 것 모두 3차원입니다. 그럼 성경에 있는 말씀은 그 3차원이 아니고 성령은 4차원 위에 운행을 하시거든요. 공허하고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복잡한 이후에 성령이 운행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이 명령한 대로 창조를 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은 데모 때문에 정신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에요. 이 3차원 세계가 흔들리고, 흔들리고 정신 차릴 수가 없습니다. 국가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이런데 이 혼돈 속에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 한국이 하나님의 성령이 이 요란스러운 3차원의 소용돌이 위에 임하고 계시기 때문에 기도가 응답되고, 성령이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고 돌보고 우리나라가 위험이 처하지 않도록 돌봐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차게 기도해야 될 것은 우리가 살아남을 것은 하나님의 신이 우리에게 운행하는데 하나님의 신은 4차원이기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것입니다. 바람처럼 성령이 이 요란스러운 3차원 세계 위에 운행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기도를 통해서 무질서가 질서가 되고, 죽음이 삶이 되고, 무가 유가 되고,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믿음이 있는 분에게 가서 기도 좀 해달라고. 그 사람은 기도하는게 눈에 안 보이지만 기도하면 그 곳에 있는 성령이 운행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4차원은 안 보이는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안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 엄청난 하나님의 나라가 모두 다 4차원에 소속한 것입니다. 4차원은 성령이 역사하는 것은 4차원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사람들을 다 먹이고 열두 바구니 남게 한 것은 3차원이 아니라 4차원인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그냥 생선과 떡을 떼서 먹이면 또 생기고, 먹이면 또 생기고 하는 그것은 4차원의 세계에 기적적인 역사가 그것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요한복음 6장 10절 - 11절)’ 이 3차원의 세계는 오십 명, 백 명씩 질서 있게 앉혀놓아야 먹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사람들을 질서 있게 앉혀 놓는 것을 보면 먹이겠다는 의지가 서신 분인 것입니다. 그래놓고 난 다음에 축복을 내려줘요. 축복의 기도를 하는데 축복의 기도 속에 믿음이 들어있고 창조적인 말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4차원의 영성이 그 속에 들어가서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땅이 공허하고 낭패가 난 3차원 위에 성령께서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1절로 2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한 차원 높다는 말입니다. 물질적인 차원보다 한 차원 높은 데에 성령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물질적인 차원의 한 차원 높은 성령이 운행하시면서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이 기도를 통해서 낮은 차원에 있는 세계를 변화시키기도 하고 창조하기도 하고 기적을 베푸는 것입니다. 앉아계신 여러분 모두가 다 여러분 속에 바람이 들어 있습니다. 성령바람. 성령바람 차원이 높은 바람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기도면 그 성령의 역사가 우리 영의 역사와 합쳐서 놀란 응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고 거듭나서 성령을 모시게 되었기 때문에 성령하고 이 땅에서 살게 됩니다.

육체로만 가지고 사는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성령을 모시고 있으니 4차원의 세계는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지만 물질세계 위에 운행하고 계신데 여러분이 믿음으로 기도하면 이 성령이 여러분과 같이 생각을 합치고 꿈을 합치고 믿음을 합치고 선언을 말의 선언과 합치면 야 놀라운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두 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기도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많이 힘차게 기도해야 될 때가 이때인 것입니다. 그러면 3차원 세계 속에서 소용돌이 치고 위험이 다가와도 성령이 그 위에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기도를 듣고 성령이 이 3차원의 세계 위에 운행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우리 민족을 도와주시옵소서. 나라에 질서를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옵소서. 성령이 우리 기도를 통해서 그 수하에 있는 3차원의 세계에 변화를 가져오고 질서를 가져오고 기적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두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아담과 하와 때문에 영이 죽어버린 육체로 3차원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 대개 사람들인데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죄를 다 갚아 주시고 영을 살려 주시니, 영이 4차원인데 영이 살아나고 나니까 이 성령이 와서 거하실 수 있거든. 성령은 4차원이니까. 성령이 여러분 생각 속에 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꿈 속에 같이 꿈을 꾸고 믿음 속에 같이 성령과 같이 믿음을 갖고, 창조적인 선언을 할 때 성령과 함께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이 거하시는 생각하는 집이요. 성령이 거하시는 꿈이요 환상이요 성령이 거하시는 믿음이요 성령이 받아서 역사하는 선언인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이 3차원 위에 4차원의 영이 운행하시기 때문에 여러분 기도가 여러분의 개인 가정, 생활, 사업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통하니까. 변화나 창조의 명령인 창조적 선언을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들어보세요. 이사야 55장 10절로 11절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이게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육체는 본을 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믿음을 받아서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말하면 그 말한 것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4차원적 교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늘 가르치길 원하시는 것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 백부장이 딸이 죽어서 예수님을 청하니까 예수님이 그와 같이 하는데 자기 부하가 뛰어와서 “당신 딸이 죽었으니 예수님을 괴롭히지 말라.” 그래요. 그러니 예수님이 너희들 죽었다고 울고 통곡하는 사람 모두 다 ㅤㅉㅗㅈ아내 버리고 그 어린 딸을 붙잡아서 일으키니 살아 일어났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요란스럽게 하는 것은 문제가 보통 악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4차원의 영성을 여러분께 알려 주기를 원하시는 것인데, 첫째로 긍정적인 생각을 주위에 충만케 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시편 103편 2절로 5절에 보면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가장 자주 보게 되는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간호원이나 청소부인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어느 암 병동에서는 의사보다 간호원이나 청소부를 더 많이 교육시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환자를 치료하는데 있어서 긍정적인 말 한마디가 굉장히 좋은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환자를 가장 자주 접하는 간호원이나 청소부에게 긍정적인 말을 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간호원이나 청소부가 환자 병실에 들어와서 소제를 하고 주사를 놓고 하면서 “아 오늘은 얼굴색이 달라졌네요. 말소리에 힘이 있네요. 전에 있던 분도 그렇게 변화가 오더니만 살아서 나갔어요. 병 고침을 받고 나갔어요.” 그 긍정적인 말을 들려주면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데 크게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말이 우리에게 굉장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침 잘 먹고, 일하러 나갔다가 얼마 안 있어 복통을 일으키고 집에 돌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무실에 가니까 “아이고, 오늘 당신 얼굴이 왜 이래? 완전히 환자야. 요사이 유행병이 돌아다니는데 그거 걸린 것이 아닌가? 병원에 가봤나?” 그러니까 처음에는 “까딱없어. 괜찮아.” 그러다가 여러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까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뭐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아이고 오늘 머리가 아프고 몸에 잔열도 있고 하니 오늘 일을 못하고 집에 가서 누워야 되겠다. 그냥 집에 가서 드러눕게 되는 것입니다. 입의 말.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고래에게 칭찬을 하면 고래가 춤춘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하면 그 말이 나가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세계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려면 긍정적인 생각을 주위에 가득하게 채워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도 긍정적인 생각을 채워야 되는 것입니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자신의 성공비결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사람을 멀리하고 긍정적인 사람을 가까이 두었기 때문에 자기가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인생의 위기가 다가와도 긍정적인 마음의 마을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갖고 나아가면, 어려움을 딛고 다시 당당하게 일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생각을 긍정적으로 만들려고 애를 쓰십니다. 우리가 설교를 듣고, 말씀을 읽고 그렇게 하면 우리 생각이 긍정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구체적인 꿈을 마음에 잉태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애기를 잉태하지 않는 사람이 어린 애기를 낳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 넥타이도 안 맸으면 바로 이렇게 되는데... 구체적인 꿈을 마음속에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꿈이 있지요? 그것을 마음속에 어머니가 어린 아기를 잉태하는 것처럼 잉태해야 되는 것입니다. 꿈을 잉태하면 그 꿈을 낳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마가복음 10장 51절-52절)’ 우리가 긍정적인 사회에서 구체적인 꿈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소원하는 것이 꿈으로 마음속에 간직해 있으면 주님께서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축복해주시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는데 우리 한(국)국민은 굉장히 꿈이 많은 민족입니다. 요번에도 이 환난이 지나고 난 다음에 새로운 꿈을 안고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마음에 또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사랑해서 종종 그 집에 들르고 했는데, 그 오라버니가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니까 무덤에 이미 파묻어 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 문을 옮겨 놓아라.” “아이고 오라버니 썩은 냄새가 나는데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땅을 굴리면서 “야, 내가 말하기를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 네 오라버니가 살 것이라 말하지 않았느냐?” 믿음이 우리 인생을 크게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한복음 11장 39절-40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통해서 사차원의 영성이 개발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선언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짖는 믿음인 것입니다. 아멘.

 

 

 

광야의 축복

요 6:1-13 / 엄기호 목사

예수님은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길이요, 양식이요, 생수요, 안식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몸소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에서 40일 금식을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 12절에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광야에서 사단의 시험을 받으신 후 천사의 수중을 받으셨습니다.

오늘도 인생 광야를 지나는 우리들에게 만나 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어는 누구도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누구든지 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인생 광야에서 우리를 통하여 축복을 주시고 기적을 행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유대 광야에서 수많은 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했고 하나님의 실존을 보여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릴 바닷가에 나타나셨을 때 수많은 무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광야에 해는 저물고 무리들은 굶주렸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에게 이 무리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할 것 아니냐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빌립은 환경과 현재 형편과 처지를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이곳은 광야요, 빈들이요, 사가지고 올 상점도 없고, 있다고 해도 이백 데나리온이 부족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한 아이가 가지고 있는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예수님 앞에 내어 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을 편안하게 앉게 하시고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무리들에게 나누어 주시니 먹은 사람이 어른만 5천 명이 넘었고, 남은 부스러기가 12광주리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광야에 축복이요, 빈들에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인생 광야에서 이런 기적을 베풀고 계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베푸시는 이런 기적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광야의 축복을 받고 광야의 기적을 이루는 원리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현재 있는 것으로 역사하신다

 

성경에서 나타난 모든 기적과 축복은 적은 것일지라도 현재 가지고 있는 전부를 내어놓을 때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흔히 기적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축복도 하늘에서 돈 뭉치가 이곳저곳 떨어져야만 되는 것으로 알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 우리의 손에서 이루어집니다. 과거나 미래의 것이 아니라 현재의 것으로만 이루어집니다.

한 아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보잘 것 없는 보리떡이요, 물고기였습니다. 어른 양을 채우지도 못핟는 어린아이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어른만 5천 명을 먹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서 떡을 사다 주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너희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막 8:5)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현재 네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십니다.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가진 것이 없으니 장차 벌어가지고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주님, 많이 벌게 하여 주시면 십일조를 많이 내겠습니다.’ ‘주님, 내 소원이 만족할 만큼 이루어졌을 때 갖고 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내일 무엇을 가지고 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장차 성공해서 가지고 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 앞에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꾸밀 것도 없고 잘되어서 무엇을 갖고 오려는 어리석음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기적을 이루시고자 하실 때 현재 네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십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시돈 땅 사르밧 과부에게 엘리야는 물었습니다. “네 집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러자 그 여인은 “나는 떡도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지금 우리 손에 있는 것이 보리떡이든 밀가루든, 많든지 적든지 예수님의 손에 옮겨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면 타산을 초월하여 주님 앞에 온전히 드릴 때 축복은 쏟아지고 기적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광야의 축복은 내 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더허여질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 것이 0이면 1만을 곱해도 0입니다. 그러나 내 손에 1이 있으면 하나님의 능력 1만을 곱해 1만이 됩니다.

한 어린아이에게 교회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는 “더하기를 보았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십자가의 진리는 ‘더하기’입니다. 적은 것이라도 내 손에 있는 것을 예수님께 드리면 주님께서는 더해 주시든지 곱해 주시든지 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2천 년 전 광야에서 행하시던 주님은 지금도 권능으로 역사하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에게 현재 있는 것을 주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여러분의 물질, 시간, 재능, 미모, 건강, 권세, 어떤 것이든 내놓으십시오. 그러면 광야의 축복과 기적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광야의 축복은 감사함으로 된다

 

예수님은 본문 11절 말씀과 같이 떡을 들어 축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벳세다 광야의 수많은 무리 앞에서 지극히 적은 것,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들고 하나님 앞에 극진한 감사를 올렸습니다. 광야의 축복과 기적은 감사로 시작되었습니다.

인생의 광야를 지나는 성도 여러분! 되는 것이 하나도 없고, 앞길이 칠흑같이 어둡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생활고에 시달려 몸부림치고 눈물짓고 있습니까?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을 때도 감사했습니다. 찬송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그럴 때 옥문이 열리고 자유의 몸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십시오. 거기에 기적이 일어나고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감사와 불평은 여러분의 ‘선택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감사할 조건이 수두룩해도 감사하지 않고 불평하기로 작정하면 얼마든지 불평할 조건이 생깁니다. 그러나 원망스럽고 괴로워도 감사하겠다고 결심만 하면 감사할 조건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감사하든지 불평하든지 자유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마태복음 25장 29절에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적은 것이라도 감사하는 믿음이 있다면 그 감사 위에 기적적인 축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광야의 축복은 나누어 줄 때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은 나누어주는 자에게 임합니다. 예수님은 일생 동안 나누어 주셨습니다. 복음을 주셨습니다. 육신의 질병을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물질의 축복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내 손에 있는 것이 내 것이 아닙니다. 모두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고 하였습니다.

광야 40년 만나도 모아두면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납니다.

세상 사람은 무엇이든지 쌓아 두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때 물질도 썩고 심령도 썩게 됩니다. ‘내 것’이라는 집착이 강할 때 물욕, 탐욕, 명예욕이 생깁니다.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할 때 용서, 이해, 사랑, 나눔이 생깁니다.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냉장고에 묵어 있는 빵은 굶주린 사람의 것이요, 장롱에 있는 묵은 옷은 헐벗은 사람의 것이요, 땅 속에 감추인 금은 보화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다.”

아름다운 미모를 지니고 있을 때 전도합시다. 건강이 있을 때 봉사하고 충성합시다. 물질이 있을 때 헌신합시다. 재산이 있을 때 구제합시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기도를 주고, 물질을 주고, 사랑을 줍시다. 잠언 11장 24절에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인생 광야에도 축복은 있습니다.

 

 

기적의 6가지 조건

요 6:1-13 / 이동아 목사

성경에 보면 초자연적인 기적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기적들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그 아들을 믿음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특히 오늘 기록된 오병이어의 기적은 어린이 주일학교로부터 시작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씀일 것입니다. 노병이어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어린아이와 여자를 제외하고 5000명이 배불리 먹고 12광주리가 남았으니 이 표적을 보이신 것은 구약성경에서 민11장에서 출16장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하나님의 기적은 예수님을 통하여 재현됨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하나님의 아들 됨을 증거 하는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병이어의 기적의 조건을 묵상하면서 우리 삶가운데 어떻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면서 살 수 있겠습니까?

 

1. 동기의 조건-동기가 기적의 출발입니다.

 

예수님 디베랴 바다를 건너 벳세다로 가신 이유는 잠깐 쉬기 위하여 한적한 곳을 찾아 간 것인데 수많은 유월절 인파들이 병자를 고친 기적을 보고 인산 인해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군중들을 피하여 벳세다에 오신 예수님보다 더 지름길로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휴식을 가져야할 피곤한 시간에 주님은 회중들을 탓하거나 물리치기 않고 불쌍히 여기시게 된 것입니다. (마14:13-14)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 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주님은 피곤하고 쉬고 기도하기를 원했지만 "나' 중심의 삶이 아니라 육로로 먼저 달려온 백성들을 향하여 갈급한 심령의 목을 축여 주고 있습니다. (막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 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영화「브레이킹 더 웨이브」의 영화의 내용 중에 기독교 교리를 엄격하게 지키며 살아가는 스코틀랜드의 작은 마을. 순진무구한 처녀 베스(에닐리 왓슨)는 주변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석유탐사선에서 일하는 타향 남자 얀(스텔란 스카스가스)과 결혼합니다. 짧은 신혼은 꿈결처럼 흘러가고, 얀은 일터가 있는 바다로 떠나갑니다. 얀을 너무나 사랑하는 베스는 남편을 빨리 돌아오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에 응답한 듯 얀은 갑자기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는 사고로 머리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전신마비에 빠진 상태입니다. 남편이 죽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기도하는 베스에게 얀은 자신을 위해서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누라고 부탁합니다. 『당신이 다른 남자를 사랑하면 나는 살고 싶은 의욕이 생길 것 같아.』 아내를 자유롭게 해 주려는 얀의 의도는 오로지 남편만을 사랑하는 착한 여자 베스에게 전달되지 않고 빗나갑니다. 그녀는 자신의 타락으로 남편을 살릴 수 있다고 굳게 믿고, 눈물을 흘리면서 매춘을 합니다. 결국 그녀는 남편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칩니다. 희생은 기적을 일으키고, 얀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납니다. 베스의 장례식날, 하늘의 종소리가 지상 가득 울려 퍼지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이 남편을 살리는 감동적인 드라마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긍휼한 마음으로 베푼 구제 기도는 기적일 일으키는 것입니다.

 

2. 환경의 조건-기적을 일으키는 환경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킬 때 준비된 환경을 사용하십니다. 말씀을 가르치다 보니 시간이 흘러서 무리들이 지치고 배고픈 시간이 된 것입니다. 궁중들에 지쳐서 쓰러질 것을 걱정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 군중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병고치는 일을 위하여 모여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백성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신 자신을 계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이 환경을 바라보고 계신 것입니다. 벳세다 광야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연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나 혼인자치에서 물로 포도주 만든 표적, 왕의 신하의 아들의 병을 고친 사건,베데스다 못가의 38년된 병자를 고친 사건, 모두가 표적을 일으킬 만한 극적인 환경이 준비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환경은 빌립을 통하여 주님이 확인하여 주십니다.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게 하겠느냐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질문을 던집니다. 이때 빌립은 극히 계산적인 답변을 합니다. 각사람에게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200데나리온의 떡이라도 부족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한 사람의 일일 품삯입니다. 먹지 않고 쓰지도 않고 6개월 간 벌어도 될까 말까한 돈입니다. 이것은 지금 실정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힘으로는 1만 명이 넘는 숫자에게 먹을 것을 제공한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는 것을 빌립을 통하여 밝혀주고 있습니다.

기적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상황 표적을 보여줄 상황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이 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그 순간이 하나님의 기회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은 빌립을 시험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시험은 아브라함도 통과하였고 예수님도 통과하였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시험할 때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낙심하여 기도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상황을 표적을 일으킬 절호의 기회로 보신 것입니다. 6절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계신 주님이십니다.

 

3. 헌신의 조건-기적은 헌신을 요청합니다.

 

오늘 본분에서 두사람의 헌신자를 보게 됩니다. 한사람은 안드레입니다. 빌립과 같은 동네에 사는 벳세다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안드레는 생각이 다릅니다. 오병이어의 도시락을 가진 한 어린아이를 데리고 주님께 나옵니다. 안드레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오늘도 안드레와 같은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이름 모를 한 아이의 오병이어 별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적을 일으킬 만한 그릇은 이만한 수고 이만한 희생 이만한 믿음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건강 우리의 지혜 우리의 작은 봉사가 주님의 손에 드려지면 엄청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기 어린 소년은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으로 자기가 가진 전부를 내놓았습니다. 비록 적지만 전체를 다드렸습니다. 비록 내손에 있을 때는 적은 것이지만 주님의 손에 들리면 큰 것임을 알 수 잇습니다.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기적을 체험할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사람들의 헌신과 봉사를 통하여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입니다. 우리의 헌신과 봉사를 심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를 사용하실 때에도 네가 가진 것이 무엇이냐? 그의 손 떼 묻은 지팡이를 통하여 일평생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십니다.

(행21: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니"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야고보 사도와 장로들에게 고백하기를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를 통하여 하신 일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려면 우리에게 오병이어에 해당하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엘리야 시대에 사르밧 과부 집에서 기적은 먼저 엘리야를 위하여 떡을 구워오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주님 앞에 우리의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달란트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물질을 드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교회가 주님의 교회의 장막터를 위하여 오병이어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드린 모든 것은 하찮은 오병이어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기적의 불씨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안드레는 그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그렇지요 인간의 계산으로는 턱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별볼일 없는 것이라고 우리 주님께 드리는 자신의 봉사와 헌신을 통하여 바울사도를 사용하여 일하신 주님을 생각합니다.

 

4. 믿음의 조건-기적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요6: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예수님은 50명씩 사람들을 계수 하여 잔디에 앉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은 오병이어를 바라보면서 기적을 바라보며 모든 청중이 배부르게 먹게된 것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믿음의 비젼이 기적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월드컵 경기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만 그 중에 마음에 16강을 그리고 8강을 그리고 4강을 그리는 것입니다. 히딩크 감독은 4강을 마음으로 그렸다잖아요... 될 것을 믿는 신념도 기적을 낳는데 믿음으로 약속을 바라보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십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에 증거라고 말씀하십니다.

 

5. 감사의 조건-기적은 선불감사를 통하여 이루십니다

 

(요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주님은 이것을 들어 축사하셨다고 했습니다. 축사란 감사라는 뜻입니다. 오병이어를 들고 오천 명을 앉혀놓고 어떻게 감사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 음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식사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이 감사는 풍성하게 주실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고 선불 감사 드린 것입니다. 지난날을 감사하거나 현재 손에 잇는 것을 감사하며 앞으로 주실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 엘리야의 기도가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손에 오병이어의 작은 것을 들고 오천 명을 먹이고 12광주리가 남을 것을 보시며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여집사님이 선불감사라는 내용의 설교를 듣고 매일 술에 만취되어 들어온 인사불성 남편을 끌어다가 겨우 눕혀 세상 모르게 잠을 자고 있는 남편 옆에서 훌쩍 훌쩍 울면 팔자 타령을 하면서 절반은 신세차타령 절반은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감사기도를 하라는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감사할 일을 곰곰 생각하니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옆에서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을 생각하니 그래도 과부보다는 낫고 앞으로 언젠가는 좋은 남편이 될 가능서이 있어서 감사하고 저토록 취했어도 집을 찾아 올 수 있음에 감사하고 토요일은 더욱 술을 많이 먹어 주일날은 집을 잘 봐주어서 교회 나오는 데 불편하지 않아 좋은 감사의 일들이 많았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남편이 갈증이 나서 잠을 깨어 보니 부인이 웃으며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무엇이 그리 좋아서 웃느냐고 물었더니 당신하고 사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그렇다고 감사를 구체적으로 나열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들은 남편을 "나도 오늘부터 예수 믿어줄께"하며 선뜻 교회에 나갔다는 것입니다. 후에 이 분이 간증하기를 10년 동안 그렇게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던 소원이 단 한번의 감사기도로 이루어졌다고 감사했습니다. 오천 명을 앞에 두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놓고 감사하는 이런 기도에 기적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6. 분여의 조건-기적은 나눌 때 일어납니다.

 

"나눠주시고" 제자들이 모두 분배했습니다. 여기에 교회의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자신을 나누어주시는 성만찬을 연상해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여기에 주님의 손에 있는 떡과 고기를 분배하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이 되고 내가 예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루어 놓으신 피묻은 복음을 성도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바로 나누는 데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독교 신앙은 모든 것은 공유하며 나누는 것입니다. 베푸는 삶인 것입니다.

이적은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있는 떡이지만 버린 것이 없도록 아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함부로 기도하지 말고 주신 기도의 능력은 조심스럽게 소중히 여겨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절제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신령한 복을 헤프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남은 조각을 버리지 말라"(v.20) 하심은 무슨 특별한 뜻이 있습니다. 받은 은혜를 소중히 간직하고 소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소멸하지 않도록 바구니를 준비하여야 하겠습니다. 바구니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은혜 받은 자의 모든 삶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말씀 묵상입니다. 봉사입니다. 순종입니다. 예배입니다. 주님 사랑하는 심령입니다. 형제 사랑입니다. 성결입니다. 찬미의 제사입니다. 성령 충만 입니다. 믿음 충만 입니다. 소망의 충만 입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우리는 받은 은혜를 늘 간수할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의 열 두 광주리는 구멍나지는 않았는지 은혜 생활에 허점은 없는지 다시 신중하게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예수님 다시 오실 날도 멀지 않았는데 과연 그 날을 위하여 나는 온전히 준비되어 있는지 은혜 생활에 빈틈은 없는지 세밀히 살펴서 그 날을 위하여 온전히 준비된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6:1에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하셨습니다. 산전 5:19 "성령을 소멸치 말고 예언을 멸시치 말라" 했습니다. 계시록 2:5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하셨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원대로 먹었다는 자체가 기적입니다. 배부르게 먹고 남은 조각이 12광주리가 남았다는 요한 복음의 저자는 바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 영생하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주리지 아니하고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근원이 되심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가나 혼인 잔칫집 하인도 물을 변화시키시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수가성 여인도 영원한 생수를 얻었습니다. 왕의 신하도 아들의 질병을 통하여 주님을 믿고 영접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는 38년된 병자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만나 기적을 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만났습니다. 오늘 우리 삶 가운데 기적의 조건을 갖추어 오병이어 기적이 날마다 순간순간마다 경험되기를 축원합니다.

 

 

생명의 양식

요 6:1-13 / 반태효 목사

성경에 수많은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주제를 나타내고있는 이야기가 ‘탕자의 비유’와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이 이야기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서 성경 전체의 주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중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이 일으키신 기적 중에 유일하게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을만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복음서의 기자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과 함께 그 안에 담고 있는 교훈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자 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시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후에’라는 표현이 기적이 일어난 시점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그 후에’가 가르키고 있는 사건은 요한복음 5장에 기록된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 동안 중풍병으로 누워있던 사람이 치유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배경은 예루살렘입니다. 그런데 6장을 보면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 건너편에 계십니다. 즉 두 사건이 일어난 장소인 예루살렘과 갈릴리 바다 사이에 거리차이가 시간이 어느정도 경과했음을 보여줍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록한 다른 복음서를 보면 기적을 행하셨을 때가 예수님 공생애의 절정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해서 세상에 내보냅니다. 그래서 그들이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고 돌아와서 예수님께 칭찬을 들은후에 ‘오병이어의 기적’이 벌어집니다. 이미 예수님은 놀라운 기적과 가르침을 통해서 온 유대 땅에 널리 알려져 있어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님은 혼자 계실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말씀을 듣고 상담을 하고 병낫기를 원해서 그분께 모여들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데리고 사역의 현장을 떠나서 휴식을 취하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예수님의 사역지는 주로 가버나움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버나움 건너편에 벳세다라는 동네로 배를 타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산에 올라가서 휴식을 취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휴식을 취하려는 그 자리조차도 휴식을 취할 수 없이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4, 5절을 보십시오.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1만5천여 명 정도의 사람이 모여들었는데 이것은 갈릴리 호수 근방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도 채울 수 없는 숫자입니다. 왜냐하면 나사렛만 보아도 1백여 명의 사람들이 살던 작은 동네였고, 근방의 마을들은 보통 2∼3백여 명의 사람들이 사는 작은 동네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일시에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유월절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민족대이동’을 해서 외국에 살던 사람까지도 예루살렘에 모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북쪽에 있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 도중에 마침 예수님이 그곳에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러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잠깐 쉬기 위해서 찾아간 장소에까지 사람들이 찾아왔으니 부담스럽고 짜증스러우셨을 것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가끔 절박한 문제를 가진 분들이 한밤중에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합니다. 얼마나 절박하면 이 시간에 연락을 할까 싶으면서도 힘이 듭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이유 중 하나는 예수님의 병을 고치는 능력 때문이였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병원이 많고 의료제도가 잘 되어 있어도 아픈 사람이 많은데 의료시설이 제대로 없던 2천년 전은 오죽했겠습니까. 우리도 처음에 주님을 찾았을 때는 이런 비슷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진리가 무엇인가? 영생이 무엇인가? 거듭남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들은 후에 하게 된 것이고 처음에는 외롭고 곤고하고 다급해서 주님 앞에 나옵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 아시는 하나님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렇게 찾아오는 사람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내가 시간을 좀 내줄테니 그럴듯한 문제를 가지고 오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문제로 와도 짜증내지 않으십니다. 새벽에 와서 부르짖는다고 ‘넌 잠도 없냐’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우리를 거절한다고 해도 주님은 우리를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쉬려는 것을 그만두시고 무리를 영접하신 이유는 마가복음 6장 34절을 보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그분은 큰 무리가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며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긍휼이 여기셨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많은 기적들이 일어난 배경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날만한 자격과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기적의 가장 큰 동기는 하나님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입니다. 받을만한 자격이 있어서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긍휼이 기적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들었을 때는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9장과 마태복음 14장을 보면 ‘날이 저물고 이미 저녁때가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주님은 그들이 주리고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을 미리 헤아리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 나올 때는 고상한 모습으로 떳떳하게 나오고 싶어합니다. 기도를 해도 좀 괜찮은 기도제목으로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무엇이든지 구하십시오. 주님은 여러분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의 건강에도 관심이 있으십니다. 우리 육신의 병을 고치기를 원하시는 주님은 우리의 굶주림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배불리 먹기를 원하시고, 건강하기를 원하시고, 우리의 영혼이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필요에 민감하십니다. 우리가 구하지 않은 것도 아십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구한 것만 응답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미리미리 필요한 것을 기도해야만 한다면 우리가 구하지 못할 것이 많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나갈 때 이런 기도를 합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주소서’. 그러면 주님은 내 모든 필요에 응답해 주십니다. 지치고 낙심한 사람들과 정말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온 사람에게는 기도해주고 말씀을 주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절박한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올 때 먹지도 자지도 못한 상태로 나옵니다. 문제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먹을 생각도 않고 쉴 생각도 없습니다. 절박함으로 인해 금식도 하고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문제를 해결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실망하고 지친 영혼들에게 기도해 주고 말씀으로 위로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불리 먹이고 자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종종 실수하는 것은 너무 영적인 것만 생각하다가 정말 필요한 것을 놓치는 것입니다.

남편들이 실망하고 지쳐서 돌아왔을 때 ‘우리 금식하고 기도합시다’라고 하지 말고,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서 맛있게 먹게 해주고 ‘오늘은 푹 쉬세요’라고 말하십시오. 그것이 훨씬 유익합니다. 엘리야의 예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8백명의 거짓선지자들과 대결을 할 때 금식하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가 실망해서 로뎀나무 아래에 갔을 때 주님께서 ‘엘리야야 일어나서 기도해라, 금식해라, 불받아라’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먹고 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육신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선교사님들을 대접할 때도 그렇습니다. ‘매우 힘드실테니 기도원 좀 다녀오십시오’라고 하지 말고 ‘푹 쉬십시오’라고 하는 것이 최고의 약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주님은 사람들의 배고픔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제자들에게 질문하십니다. 사실 이미 주님은 해결책을 가지고 계실 뿐만 아니라 이 문제는 제자들이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십니다. 그를 야단치려는 뜻이 아니라 제자들의 믿음을 점검해 주시고 확고하게 해주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떠나고나면 제자들은 수도 없이 이런 문제를 만나게 될텐데 그럴 때 어떻게 해야할지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동역 관계

 

그런데 왜 여러 제자들 중에서 빌립에게 먼저 물으셨을까요? 빌립은 벳세다 사람이기에 어디가서 무엇을 살 수 있는지 알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빌립은 그 많은 떡을 구입하기는 힘들다고 대답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그 당시에 노동자 한 사람의 평균 하루 임금이라고 합니다. 그 임금을 6개월치 이상 모아야 살 수 있는 양의 떡이 필요합니다. 더구나 이 많은 양의 떡은 작은 동네에서 살 수 있을 만한 분량도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빌립을 ‘믿음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사역축제’ 등을 통해 빌립의 대답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행사를 하다보면 식사문제가 제일 어렵습니다. 3천명이 한꺼번에 식사를 해야하는데 우리 교회 식당은 한번에 3백명을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몇 시간에 걸쳐서 식사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무척이나 힘이 듭니다. 그래서 스탭들이 별 생각을 다 해냅니다. ‘이번에는 금식집회를 하면 어떨까?’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행사를 하면서 얻은 지혜 하나는 강의가 은혜로와도 식사가 은혜롭지 못하면 사람들이 실망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빌립은 전형적으로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질문을 받자마자 즉각 대답을 합니다. 이런 빌립과 같이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도 예산을 세우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생각없이 일만 벌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따질 것은 따져야 합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은 돈으로 하나님의 일을 결정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지만 돈이 많이 듭니다’라고 말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우리가 해야하는 일이라면 지금은 준비된 것이 없지만 믿음으로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주머니에 있는 것을 가지고 일 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돈이 벌리는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해서는 안됩니다. 8, 9절을 보십시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빌립과 예수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안드레가 나섭니다. 한 아이가 도시락을 가져 왔습니다. 아마도 이 아이는 예수님이나 제자들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드레는 겨우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이것이 있기는 하지만 이 많은 사람을 먹이기에는 말도 안되게 부족한 양이다’라는 식의 상황에 맞지 않아 보이는 어찌보면 말도 안되는 황당한 소리를 합니다. ‘주님의 일에 참여하고 싶지만 이것가지고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준비하고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우리도 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순간 ‘그것으로 충분하다’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가지지 않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도저히 해결책이 없을 것 같은 상황이지만 이미 여러분 손에 해결책이 쥐어져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이 상황에서 주님이 해결할 방법이 여러분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산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한이시기 때문에 무한에 모든 것을 곱하면 다 무한입니다. 일을 곱해도 무한이고, 천을 곱해도 무한입니다. 그런데 0곱하기 무한은 0입니다. 그래서 하나 드린 것 하고 전혀 안 드린 것은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뭔가를 요구하실 때 우리 것을 빼앗아 가기 위해서 그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보리떡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떡입니다. 그리고 여기 나온 물고는 ‘옵싸리온’이라는 물고기인데 ‘익수스’라는 물고기와는 다릅니다. 이것은 어부들이 버린 고기를 가난한 사람들이 주워다가 소금에 절여서 떡을 먹을 때 양념으로 먹는 물고기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드리는 것을 가려서 쓰지 않으십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예수님이 가든파티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앉아서 음식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제자들은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예수님이 기도를 마치자마자 주변에 산더미 같은 떡이 쌓여지면 제자들의 마음이 편할 텐데 주님 손에서 가져 가야 했습니다. 추측컨대 베드로는 처음에는 황당한 마음으로 떡을 가져 갔다가 줄지 않는 떡을 보고는 그 다음부터는 신바람이 나서 날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기적을 일으킬 때 제자들을 사용해서 일하신 것을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은 믿음없는 그들과 동역하십니다. 제자들이 한 일은 떡을 만든 것이 아니라 배달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내것을 가지고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또는 어디론가 주의 사랑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준비하고 능력을 갖춰서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우리 드림으로 일어나게 될 기적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능력을 빌어 쓰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순종을 쓰시고, 우리들 그대로를 쓰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실 때 우리의 것을 드리면 하나님은 그것을 풍성하게 만드셔서 다른 이들과 나누라고 하십니다. 12, 13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어떤 신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을 때 가지고 있는 떡과 물고기를 아주 조금씩 나누어 주었는데 사람들은 믿음으로 배가 불렀을 것이라고 합니다. 마치 성찬식 때 떡과 포도주를 조금 떼어 먹고 마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남은 것을 하나도 버리지 말고 다 담으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행할 때 바구니를 가지고 다닙니다.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음식을 싸가지고 다니는 것입니다. 남은 것이 열두바구니에 가득찼습니다. 한 사람이 먹기에도 부족한 양이었는데 말입니다. 만일 안드레가 그냥 먹어버렸다면 여전히 자신도 배고프고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누었더니 다른 사람을 다 먹이고 남았습니다. 주는 것은 어리석지 않습니다.

사역축제를 하면 우리에게 있어서 절대로 손해가 아닙니다. 오시는 많은 분들도 큰 유익을 얻어가지만 우리교회가 더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오늘도 동일하신 분입니다. 부끄러워서 내 놓기 어려운 평범하고 보잘것 없는 떡과 물고기를 가지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자기 혼자를 위해서 살면 만족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 자신의 삶을 드리면 보잘 것 없는 삶을 통해서 큰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베드로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그는 위대하지도 않고 굉장히 훌륭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갈릴리라는 조그만 호수에 모든 인생을 걸고 살았던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어부가 주님 손에 붙잡히자 위대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오병이어의 기적’보다 더 놀라운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그가 주님의 손에 들리니까 5천명, 때론 3천명의 사람이 그의 설교를 듣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기적은 제자들과 특별한 사람을 위해서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를 위한 기록입니다. 성찬식의 떡은 평범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서 축사하면 거룩한 주님의 몸이 되고 거룩한 주님의 피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을 드릴 때 우리가 드렸던 헌신을 주님 앞에 자랑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선택해서 쓰신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세상에서는 선택받기가 무척 힘듭니다. 계속해서 선택을 받아도 결국은 언젠가는 버림을 당합니다. 언젠가는 자신의 자리를 누군가에게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생이 다하는 날까지 우리를 선택한 것을 취소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고생하는 인생입니다. 조금 편하게 사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고생과 고통까지도 주님 앞에 가져다 내려 놓으면 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드리기만 하면 오병이어의 기적은 오늘도 일어날 것입니다.

 

 

 

감사생활은 기적을 가져옵니다

요 6:1-13 / 임현수 목사

 

감사 속에 축복의 비결이 담겨있습니다.

감사는 행복의 비결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자족 할 줄 압니다. 행복은 자족에 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충분한 것도 모자라는 사람에게는 충분한 것이란 없다"고 말했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사람입니다. 감사라는 책을 쓴 라이언 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복이란 손을 내밀면 얼마든지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 하지만 행복은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 왜냐하면 감사하는 순간 만큼은 모든 것이 충만하고 온전해 지며 부족한게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복은 관계에 있는데 감사하는 사람은 좋은 관계를 맺을 줄 아는 사람이며, 항상 긍정적으로 사람과 사물을 보는 눈이 있기에 관계에 성공합니다.

감사는 건강의 비결입니다. 감사는 인생을 역전 시키는 비결입니다.

불행 할 때 감사하면 불행이 끝이나고 형통할 때 감사하면 형통이 연장된다.

 

요즘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이라는 책에 보면 자기 어머니의 암을 고친 기적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981년 조엘의 어머니가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습니다. 감기인줄로만 알았는데 간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모두가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의사들이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은 몇 주 정도밖에 살지 못 할 거라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현대의학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했지만 그들은 자연법칙을 뛰어 넘는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기도드리기 시작 했습니다.

조엘의 어머니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불평과 패배의 말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하였습니다. “나는 죽지 않고 살 거야. 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선포할거야.”그리고 성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치유에 대한 말씀 30-40개를 찾아서 종이에 적고 매일 읽고 큰소리로 선포했습니다. 조금씩 상황이 변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점차 황달이 사라지고 몸무게가 늘고 건강이 돌아왔습니다. 며칠 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은 지 20년이 지났지만 어머니는 말씀의 능력으로 암에 완전히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유산은 아들인 조엘 오스틴에게 이어져 레이크우드 교회를 3만여 명이 모이는 미국의 영향력있는 교회로 성장시키는 열매로 나타납니다.

 

감사 할 때 건강이 옵니다. 믿습니까? 한 분만 더 이야기 하겠습니다.

세브란스 병원 암센터 소장이신 이희대 박사가 암에서 치유된 간증을 어떤 책에서 읽었습니다. 그 분의 간증은 이렇게 시작 됩니다. “2003년 1월 청천 벽력과 같은 일이 나에게 벌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병마와의 긴 싸움이 시작 되었다. 사형언도와 같은 대장암 3기, 암세포 발견 후 시작된 수술은 어느새 다섯 번이 지나갔고 간과 골반으로 전이된 암세포를 위한 네 번의 방사선 치료와 세 번의 항암 치료는 나의 몸을 너무 비참한 존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무너지게 만든 것은 몇 번의 수술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 졌을까? 꼭 나여야만 했을까? 내 손을 거쳐 암세포를 치료 받은 환자가 몇 명인데…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수없이 많은 이유를 대가며 내게 닥친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나를 찾아온 병마를 거부 할 수는 없었다……”이 분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 됩니다.

그러나 그 투병 과정에서 그 분은 어느 교회를 나가게 되었고 거기서 은혜 받고 구원 받고 난 후 그 분은 이전에는 원망스러웠던 일들이 오히려 감사의 제목으로 바뀌는 마음의 변화를 경험 하게 되었다고 간증합니다. 이렇게 4년 동안을 투병 하면서 유방암 전문의 였던 이 분은 어느 날 부터 유방암 환자들을 모아 놓고 성경 공부를 인도 하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 하며 감사의 생활을 계속 했다고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최근에 들어 CT촬영을 한 결과 자기 몸속에 남아있던 암세포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감격과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는 간증입니다. 세브란스 병원 암센터 소장이신 이희대 박사의 간증입니다.

 

감사 할 때 축복이 오고 기적이 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세요.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감당한 사람은 모두 감사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기적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의 기적의 이야기 가운데 사자 굴에서 건짐 받은 이야기는 다니엘의 감사의 기도에서 시작 됩니다. 그는 누구도 감사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 하므로 기적의 주인공이 됩니다.

(단 2:23 6:10)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그러나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고 불평하면서 다시스로 도망치자 풍랑을 만났고 바다에 던져져 큰 고기뱃속에 들어갔읍니다.

불평하면 요나처럼 풍랑을 만납니다. 다행히 요나는 큰 고기뱃속에서 회개하고 감사기도를 드리므로 다시 크게 쓰임을 받게 됩니다…..

 

97세의 최고령의 목사님으로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 방지일 목사님을 보십시오.

그 분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으십니다. 항상 긍정적이십니다. 정말 영원한 소년 같은 꿈의 사람이고, 교파를 초월해 모든 목회자와 성도들의 존경을 받으시는 분 이십니다. 그 분은 지금도 얼마나 건강 하신지 모릅니다. 늘 감사 하시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이기 때문 입니다.

 

다윗의 시편이 아름다운 것은 그가 감사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시 9:1)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사를 전하리이다

바울이 위대하게 쓰임 받은 것도 그가 끝없는 감사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롬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감사는 표현해야 감사가 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라고 한 것 같이 표현이 없는 감사는 감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타락한 인간의 현저한 특징이 감사 할 줄 모르는 것이라 했습니다. 감사를 하나님께도 표현할 줄 알아야 하고 사람에게도 표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말로 표현하고, 글로 표현하고, 기도로 표현하고, 찬송으로 표현하고, 물질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는 감사드려야 할 때 신속히 해야 합니다. 만사에 때가 있는것 입니다.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열문둥이 가운데 사마리아 문둥이는 즉시 달려와 신속히 감사를 드렸습니다. 아마 다른 아홉명도 나중에 예수님 만나면 감사하지 뭐…했을 것 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자기는 굶으면서도 하나님께 먼저 감사 할 줄 알았습니다.

우리들이 십일조를 먼저 떼어 놓고 감사헌금을 드리는 것도 바로 이런 훈련입니다. 사람은 감사 할 줄 모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 질 수 있는 것 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감사 할 줄 모릅니다.

신 8:12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13 또 네 우양이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17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은혜를 잊어 버리고 감사함으로 깨어 있지 못하면 교만의 죄를 범하게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 하게 됩니다.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과 은혜가 중단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 하는 자에게 끊임없이 은헤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보리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감사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오병이어를 가지고 감사하시는 대목에서 언제나 은혜를 받습니다.

이 작은 사건 속에 일어난 기적의 원리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예수님은 작은 일에 감사하셨습니다.

 

7절에, 빌립은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200 데니리온의 떡도 부족하겠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 여기에 모인 자가 남자만 오천명이라고 했으니까 실은 만 명도 넘는 엄청난 사람들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떡을 나누어 주려면 약 2-3만 불어치의 떡을 사도 부족할 것 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지금 어린 아이의 오병이어라는 것은 있으나 마나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작은 것 가지고도 하늘을 우러러 축복하며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감사입니다. 부족하지만 감사했습니다. 그 작은 것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부족하다고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그대로 하나님앞에 나아가 감사했습니다.

부족했지만 감사할 때 어떠한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조금씩 나누어 준다해도 200 데나리온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11절에 원대로 나누어 주고

12절에 배불리 먹고

13절에 남은 것이 열 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이것이 감사의 기적입니다. 감사의 표적입니다. 감사할 때 부족한 것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지혜의 사람은 있는 것 가운데서 감사하지만 미련한 사람은 없는 것 가지고 불평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부족하다고 해도 있는 것 가지고 감사하세요. 거기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작은 것이라도 감사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기적은 언제나 작은 것에서 시작 되는 것 입니다.

룻이 그의 시어머니 나오미를 봉양하기 위하여 밭에 나아가 이삭을 주워 효도한 사실은 그다지 큰 일이 아닙니다(룻 2:3). 그러나 결국 그녀는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사람들의 모임의 규모가 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기도 모임이 초대 교회를 세웠고, 놀라운 부흥을 가져 온 것 입니다. (행 2:1-4). 주인의 칭찬은 언제나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들어와 나의 즐거움에 참예하라"는 것 입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큰 결과가 나옵니다.

선악간의 모든 일들이 다 작은 일에서부터 연유하여 큰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것은 극히 작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은 전 인류에게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는 크나큰 결과를 초래케 하였으며(롬 5:7).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향하여 진군하였을 때 아간 한 사람의 범죄는 전 이스라엘의 패전이라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였으며(수 7장) 요나 한 사람이 여호와를 거역한 범죄는 배 안의 모든 사람 들에게 무서운 풍랑을 안겨주기도 하였습니다(요나 1:12).

 

내가 충성하는 작은 일은 결코 헛되지 않고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는데 귀하게 공헌하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다. 밀알 하나도 땅에 떨어져 썩을 때 많은 결실을 맺게 되며(요 12:24) 하나의 씨앗이라도 옥토에 떨어지면 30배,60배,100배의 결실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마 13:9). 겨자씨는 씨 중에 가장 작은 것이지만 심겨져 자란 후에는 큰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깃들이게 된다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마 13:32). 작은 일에 감사하십시오.

 

2. 예수님은 보잘 것 없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9절에 안드레가 예수님께 나와 보고합니다. 여기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보잘 것 없는 것에도 감격해 하시는 분 이심을 아십니까? 그래서 주님은 어린아이의 오병이어도 기뻐하셨고, 과부의 렙톤 두푼도 칭찬 하셨고, 사렙다 과부의 기름 한 방울 밀가루 한 웅큼의 헌신도 크게 축복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작은 일과 큰 일의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과 믿음과 정성이 중요 할 뿐 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은 동기를 보시는 분 이시며, 하나님은 작은 것이라도 실천 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작은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 많습니다. 작은 혀가 온몸을 어거 합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도 있고,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밝은 미소, 정다운 눈, 따뜻한 말 한마디가 지친 인간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것 입니다.

주님도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 이 곧 내게 한 것 이라고 하셨고, 소자에게 건네 준 냉수 한잔의 대접도 마지막 날에 상을 잃지 않을 것 이라고 하셨고, 병들고 외로운 이를 찾았던 작은 발걸음도, 굶주린 자에게 건네 주었던 빵 한 조각의 사랑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것 이라고 하셨습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파수군 한 사람의 태만이 한 부대의 전멸을 가져 올 수도 있고, 작은 담뱃불 하나에 대한 부주의가 산불을 가져 올 수도 있고, 전화 한 통화의 불친절이 상대방을 하루 종일 기분 나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인류에게 충격을 주었던 첼린지 호의 폭발사건도 지극히 작은 결함 하나가 문제의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의 교통사고 원인의 90%가 운전자의 작은 부주의라고 합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너무나 보잘 것이 없는 것 입니다. 너무나 작은 것입니다. 떡도 보리떡입니다. 물고기라 그랬지만 스멜치 같은 작은 생선입니다. 그것 가지고 어찌 10,000여명의 많은 사람을 먹일수가 있겠습니까?

꼬마가 먹어도 모자라는 조그만한 그것 가지고 무엇을 할 수가 있습니까? 200데니리온의 떡이 있어도 시원찮은데 겨우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니 너무나 낙심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보잘 것 없는 가지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손에 올려 놓고 하늘을 우러러 축복하고 감사했습니다. 보잘 것 없는 가지고도 감사할 때 어떠한 기적이 일어났습니까? 남자만 5,000명이 배불리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는 큰 일에도 충성할 수있으며, "또 " 이 작은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길 바랍니다. 제가 최근에 있었던 몇 가지 간증을 하겠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작은 교회의 청년 모임에서 30분간 말씀을 전했습니다.

 

1. 30명의 작은 청년 그룹에서 30분 이야기 / 20만 불을 헌금하는 기적

2. 우리 교회에 방문했던 한 사람에게 친절 / 시카고에 돌아가서 14만 불 헌금

3. 태국에서 모임 끝나고 늦은 밤 한 사람 만남 이야기 들어줌 /3 0 만불 기적

4. 아프리카 선교를 시작 하면서 사역을 소개 했더니 생각지 않는 분이 매달 2,000불 씩

헌금을 해주셔서 맛사이족 200명 사립 학교 사역이 시작 되었습니다. / 어제 밤에 강준민 목사님 전화 2만 불 내년에 6만 불 정도로 탁아소

5. 카나다에 오신 한 부부에게 2-3일 간 친절하게 대했더니 중국 가나안 농군학교 양돈센터를 2,000만원 드려 지어 주셨습니다.

6. 북한에 지은 병원도 양노원도 그렇게 시작한 것 입니다. 칼가리, 필라 집회

7. 이번에 시작 하는 평양영어 학원의 필요도 하나님이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아들로서 8째 말째였습니다.

시골에서 양치는 목동 보잘 것 없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골리앗을 무찌르고 마침 내 왕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과부 두 렙돈의 보잘 것 없는 헌금이었지만 전부를 드릴 때 많은 것을 드렸다고 주님이 칭찬해주셨습니다. 바울은 작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주님께 드렸을 때 그는 기독교 역사에 가장 큰 별처럼 쓰임을 받았습니다.

 

(사 60:22)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능력이 없고 보잘것없는 나의 모습이라고 꿈과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힘은 작은 힘처럼 보여도 결코 작은 힘이 아닙니다.

엘리자베스 노벨이란 사람이 쓴 '조금'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설탕을 조금 써도 음식의 맛을 낼 수 있습니다.

비누를 조금 써도 몸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햇볕이 조금 비춰도 새싹이 힘차게 자라날 수 있습니다.

연필이 조금 남아도 아름다운 글 한편을 쓸 수 있습니다.

양초가 조금 남아도 주위에 환한 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은 불가능의 순간에 감사했습니다.

 

(눅 9:12) 날이 저물어 가매 열 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 있는 여기가 빈 들이니이다

(눅 9: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는 할 수 없삽나이다 하였으니 (눅 9:14) 이는 남자가 한 오천명 됨이러라

13절에 보니 열 두 제자 모두는 오병이어밖에 없으니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오병이어 가지고는 도저히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기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당연합니다. 인간의 계산방법으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12제자들을 나무랄 수가 없습니다. 보십시오. 때는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장소는 황량한 빈 들입니다. 사람은 수만의 사람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가지고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습니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어쩌면 저들은 무모한 사람들이 아니라 정말 현실을 잘 파악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불가능의 생각에 묶여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눅 9:16에 하늘을 우러러 축복하고 감사하였습니다. 그리고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누어 주게 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이 원하는대로 배불리 먹고도 12 바구니에 넘치도록 남았습니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뀐것입니다. 감사할 때 할수 없었던 상황이 100% 변하여 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뀐 것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일을 맡기실때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능력 범위안에서가 아닙니다. 능력 밖입니다.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삭을 얻을 때, 모세가 홍해를 건널 때,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널 때, 여리고성이 무너질 때 , 기드온이 300명 용사로 십이만의 미디안 군대와 싸워 승리할 때 ,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를 때,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850명과 대결하여 하늘에서 불을 내릴 때... 모두가 인간의 능력한계 밖의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수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10:27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수가 있느니라

욥기 42:2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이사야 14: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불가능한 상황가운데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려면 감사해야 되는 데 감사하기 위해서는 먼저 믿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9:2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골로새서 2:7 어린아이 같이 흔들리지 말고 믿음에 굳게 서서 넘치는 감사만 하면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빌립과 같은 사람과 안드레와 같은 사람 입니다. 빌립은 계산이 밝은 사람이고, 안드레는 계산에 어두운 사람 입니다.

주님께서는 기적을 베풀기 전에 제자들의 신앙을 알아보기 위하여 질문을 던지십니다.

요 6: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그런데 주님은 빌립이 어떻게 할 것을 아시고 시험 문제를 내신 것 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을 위해서도 종종 이런 시험을 내십니다. 6절에 보시면,

요 6: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이제 주님이 내신 시험문제에 대해 빌립의 반응은 어떻게 나왔습니까? 빌립은 순간적으로 머리를 굴려서 컴퓨터 만큼이나 정확하게 계산을 해냈습니다.

요 6: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질문에 계산적으로 대답한 빌립의 대답은 결국은 된다는 소리입니까?

안 된다는 소리 입니까? 안 된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 입니다. 더군다나 여기는 빈들이고 때는 저물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어디서 무슨 떡을 구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사명을 주셨을 때 인간적으로 계산 하면 대부분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법칙 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불행히도 빌립과 같이 계산에만 밝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이런 계산을 할 줄 몰라서 질문 한 것 입니까?

그러나 기억 하십시오. 인간의 계산은 언제나 안 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가 믿음보다 계산을 앞세우므로 항상 제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 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를 축소시키는 불신앙의 죄를 짓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어떻습니까? 안드레는 소년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이런 사람을 일컬어 대책이 없는 사람 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답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 앞에 나오는 것 입니다. 주님 앞에 나오면 주님이 해결해 주실 것을 믿는 것 입니다. 지금 안드레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나온 것 입니다.

요 2장에 보시면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 포주가 떨어졌을 때 마리아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대책 없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시키시는 대로 했습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나고 문제는 해결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왕의 명령을 어겼을 때에 무슨 대책이 있었습니까? 아무 대책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본 것 이었습니다.그랬더니 천사가 도왔습니다.

이사야서를 보면 히스기야도 똑 같은 일을 당하게 됩니다. 산헤립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 했습니다.그리고 최후 통첩을 보냅니다.

"지금 투항하지 않으면 멸망시켜 버리겠다"

그럴 때 히스기야는 머리를 굴리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인 작전을 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산헤립의 편지를 들고 성전에 올라가서 성전에 엎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방법으로 산헤립의 18만 5천 이라는 엄청난 대군을 하루 아침에 송장으로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6절에 예수님이 시험하십니다. 부족한데도, 보잘 것 없는데도, 불가능한데도 믿음으로 감사하는가 아닌가 시험하십니다. 이 테스트에 합격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기적은 빌립, 안드레, 열두 제자들 때문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한 무명의 어린아이 소년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빌립같이 부족하다고 계산 만 하고, 안드레같이 보잘 것 없다고 절망만 하고, 열 두제자같이 불가능하다고 불평하면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소년은 부족하지만, 보잘 것 없지만, 불가능 하다고 판단되었지만 자기의 가진 것 오병이어를 믿음의 제물로, 감사의 제물로 내어 놓았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이 축사하셨습니다. 여기에 감사의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5병2어의 기적은 믿음으로 일으킨 기적 입니다.

5병2어의 기적은 적은 것을 소중히 여길 때 일어 났습니다.

5병2어의 기적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하나님의 역사가 더하여 질 때 일어납니다.

5병2어의 기적은 보잘것없는 적은 것이라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5병2어의 기적은 적은 것이라도 감사하며 나누어줄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5병2어의 기적은 낭비하지 않을 때 기적은 계속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보잘것없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5천명을 먹이셨습니다.

드릴 것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적은 것 이라고 부끄러워 마세요.

이 다음에 큰 것을 드리겠다고 미루지 마세요.

지금 있는 내 모습 그대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을 드리세요.

감사를 드리세요.

믿음을 드리세요.

정성을 드리고, 최선을 드리세요.

그러면 오병이어의 기적과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임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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