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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과와 설교

20210608 / 롬 10:16-21 /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작성자이윤형원로목사|작성시간21.06.19|조회수2,734 목록 댓글 0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롬 10:16-21

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20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21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롬 10:16-21 /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복음을 듣고 순종하지는 않습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ㅂ) `주님, 내가 그들에게 전해 준 말을 믿은 자가 과연 있었습니까?'하고 탄식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ㅂ. 70인역 사53:1) 17) 믿음은 이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에 귀를 기울이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18) 그런데 유대인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던가요? 아닙니다. ㅅ)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다 이르렀으며 복음은 땅 끝까지 전해졌습니다. (ㅅ. 시19:4) 19) 그러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하면 그 구원이 다른 사람들에게 간다는 것을 몰랐던가요? 아닙니다. 그 옛날 모세 시대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ㅇ) `나도 내 백성이 아닌 흉한 족속을 사랑하여 그들의 질투심을 일으켜 놓고 그들의 속을 썩여 주겠다.' (ㅇ. 70인역 신32:21) 20) 그후에 이사야도 대담하게 이렇게 일러주었습니다. ㅈ) `나는 너희를 도와주려고 항상 기다리고 있었으나 나에게 도와 달라고 호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ㅈ. 70인역 사65:1) 21) ㅊ)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계속 자신의 팔을 벌리고 계셨지만 그들은 계속 이유를 늘어놓으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거부하였습니다. (ㅊ. 70인역 사65:2)

 

이스라엘에게도 그리스도의 말씀이 분명히 알려졌고, 들었음에도 순종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심판을 소개합니다.

 

순종하지 않음(16-17)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에서 순종은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복음의 윤리대로 살아가는 순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순종을 말하는데, 복음을 받아들이는 순종을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듣지 못했다는 말은 변명(18-21) 믿지 않는 이들은 단순히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기를 명백히 거절하였던 것입니다. 이 불순종을 미리 보고, 선지자 이사야는 “주여 우리가 전하는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라고 말했습니다(16; 사 53:1). 하지만 마음을 열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깁니다(17). 그러나 이스라엘은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복음을 들었습니다(18).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라는 말씀처럼 복음이 지중해 세계에 널리 퍼졌기 때문에, 듣지 못하였다는 변명은 할 수 없습니다(시 19:4). 듣기는 들었으나 깨달을 수 없었다면 할 말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고 하였고(19; 신 32:21), 이사야는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고 담대히 말했기 때문입니다(20; 사 65:1). 이스라엘은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복음을 믿지 않는 것은 복음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복음을 믿지 않는 것은 복음을 듣지 않아서도 아니고 알지 못해서도 아니라 순종하지 않아서임을 결론적으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종일 손을 펼쳐도 이스라엘은 완고하게 순종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종일 손을 펴서 의의 선물을 주시는데, 이스라엘은 그것을 거절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어길 때 모습은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주십니다.

 

적용: 아무 말이나 들어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 즉 복음을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막막한 어둡고 긴 터널을 걷고 있다고 생각이 드신다면 오래전 덮어 두었던 성경을 꺼내 펼쳐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열어 성경을 통하여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 설 교 >

복음을 순종하지 않은 죄

로마서 10:16-18, 렘 26:4-5 / 이성희 목사

‘대구 사과’는 한 때 이름을 날릴 만큼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온난화로 대구에서는 사과 생산이 안 됩니다. 좀 더 북쪽으로 가야 사과가 생산된다고 합니다. 대구 사과의 유래를 보면 1895년 대구지역에서 활동하던 애덤스 선교사(안의와)가 고향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돌아오면서 사과 씨를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그는 와서 씨를 심고 물주고 보살펴서 처음에는 선교사의 집에서 재배하던 사과나무였지만 대구지역에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씨를 심고, 물을 주고, 가꾸는 것은 맛있는 사과를 먹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열매를 얻으려면 이런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으로 나무는 번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씨를 심지 않고, 씨가 땅에 떨어지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씨가 발아해도 가꾸지 않으면 사과는 먹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는 길가에 떨어진 씨, 돌밭에 떨어진 씨,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 그리고 옥토에 떨어진 씨가 있습니다. 똑 같은 씨지만 어디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열매를 맺기도 하고 맺지 못하기도 합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유혹 때문에 결실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듣는 대로 실천만 한다면 세상은 엄청나게 훌륭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살면서 필요한 것은 초등학교만 나와도 다 배웁니다. 신호등 빨간불에는 지나가지 말고, 서로 싸우지 말라는 것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이미 다 아는 것들입니다. 듣는 대로 실천만 한다면 좋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초신자들이 배우는 기본만 알아도 멋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의롭게 살라’, ‘거짓말 하지 말라.’ 이런 말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산상보훈의 결론을 보면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 사람과 같고,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세우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듣기는 다 듣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순종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사야 42:20에는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아니하며 귀가 열려 있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합니다. 듣는 것은 의지가 필요합니다. 귀가 열려 있다고 다 듣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눈과는 달리 귀에는 꺼풀이 없습니다. 늘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의지가 없이는 안 들리는 것입니다.

순종한다(obedient)는 말은 ‘듣다’라는 라틴어 ‘audire’라는 말에서 나온 ‘귀 기울이다’라는 ‘옵 아우디레’(ob audire)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의지 없이는 들리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고는 순종할 수 없습니다. 순종이란 오랜 의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흔히 그리스도인들이 의무감이나 죄의식 또는 형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우리는 용서받았고 형벌에서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사랑으로 순종합니다.

부모님에게 의무감으로 순종합니까? 무서워서 순종합니까? 이런 순종은 참 순종이 아닙니다. 존경과 사랑과 은혜 때문에 순종해야 참 순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무감이나 무서움 때문에 순종한다면 그것은 순종이 아니라 굴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수없이 외쳤지만 복음을 듣지 않고 믿지 아니한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데 듣지 않으므로 믿음이 자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스펀지같이 말씀을 잘 빨아들이는, 마음 밭이 옥토인 말씀의 사람들이 되어 복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복음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로마서 10:16에는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선택을 받은 유대인들이 가장 잘 믿어야 할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복음을 믿지 않고 있음을 바울은 안타까워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일에 탄식하셨습니다. 가장 하나님을 잘 믿어야 할 유대인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은 두 아들의 비유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버지가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라고 하였을 때에 큰 아들은 “가겠소이다”라고 했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둘째 아들은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뉘우치고 갔습니다. 큰 아들이란 바리새인들을 말합니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은 탕자의 비유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큰 아들은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이라고 하면서 문자적으로는 율법을 잘 지켰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이 없었습니다. 큰 아들은 바리새인을 말합니다.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은 자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사야 53:1을 인용하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고 합니다. 고난의 종인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가 거부될 것을 예견한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유대인의 불신앙을 예언하는 구절입니다.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특별’이란 말이 부족할 정도로 유난했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을 받은 유대인들이 사랑을 베푼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섭섭하심과 진노하심은 더 컸던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세상은 술 취한 농부를 닮았다. 그를 말안장 한쪽으로 올려놓으면 곧 다른 한쪽으로 넘어가 버리고 만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율법주의와 도덕폐기론 중 한쪽에 치우쳐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탕자와 같은 명백한 불순종이 아니면 큰 아들과 같은 위선적 순종 둘 중의 한쪽에 치우쳐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밥은 먹어야 삽니다. 먹되 좋은 식품을 잘 골라서 먹고 잘 씹어 먹어야 합니다. 좋지 못한 음식을 먹거나 잘 못 먹으면 소화불량이 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지만 소화불량이 된 대표적 인물이 요나입니다. 불순종한 사람들이 어리석은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영적 자살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입니다. 불순종은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운 것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미래는 하나님의 것이며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주의자이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잘 알고 지키는 것 같지만 말씀의 뜻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씀을 잘 지키는 듯이 보이지만 끊임없이 불순종하였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뱀의 말을 들어 불순종하였습니다. 사사기를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없이 불순종과 하나님의 채찍을 반복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도 겉으로는 가장 말씀을 잘 지키는 듯이 보였지만 불순종한 아들들이었습니다.

예레미야 26:5에는 “내가 너희에게 나의 종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 그들의 말을 순종하라고 하였으나 너희는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에도 이런 그들의 불순종이 나타나 있습니다. 포도원의 주인이 포도원의 소출을 가지러 종을 보냈지만 포도원 일꾼들은 종을 죽였습니다. 마지막에는 아들의 말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아들을 보냈는데 일꾼들은 아들은 상속자이니 죽이고 포도원을 차지하자고 하여 죽였습니다. 이 비유는 유대인들의 불순종의 극치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호렙산에 올라온 모세를 만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손에 들려진 지팡이를 보시고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십니다. 모세는 “지팡이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 지팡이를 “던져보아라”고 하십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던지는 순간 지팡이의 소유권이 바뀌었습니다. 모세의 손에 들려진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출애급기 4:20에는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고 합니다. 나의 판단, 나의 고집을 내려놓고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예상치 못한 놀라운 상급이 있습니다.

수도사들은 수도원에 들어갈 때 세 가지 서원을 하고 평생을 헌신하게 됩니다. 가난, 순결, 순종입니다. 중세의 대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수도서원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것은 순종이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순종을 위해서는 인간의 의지, 의향, 생각 등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도사들에게 순종이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수도원장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수도원장은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나이가 많고 경륜이 깊은 수도사가 되는 것인데 수도사들은 철저하게 수도원장에게 순종하며 삽니다. 순종은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순종이야 말로 강함이며, 겸손이며, 평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만큼 그리스도인은 자유합니다.

영성가 토머스 머튼은 우리가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고, 자신을 희생할 때 도리어 아무 것도 잃지 않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이 좋은 복음이 들려도 ‘우이독경’이고, ‘마이동풍’인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모두가 말씀을 잘 듣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복음은 온 땅 끝까지 들리도록 전해졌습니다.

 

로마서 10:18에는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고 합니다. 복음의 말씀은 모든 사람이 다 들리도록 이미 전해졌고 앞으로도 계속 전해집니다.

바울은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라고 질문하면서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라고 대답합니다. 불신앙에 대한 이스라엘의 변명의 소지를 차단하는 것입니다. 들을 기회가 없어 믿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의 소리는 이미 온 땅에 들려졌고 땅끝까지 이르렀습니다.

“온 땅에” 그리고 “땅 끝까지”라는 말은 복음전파의 편만성을 말합니다. 시편 19:4에는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종말론적인 표현으로 복음전파가 궁극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질 것을 말합니다.

복음의 소리는 누구도 듣지 못했다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이미 수많은 선지자들이 파수꾼의 소리를 크게 외쳤습니다. 이미 복음의 나팔수들이 나팔 소리를 크게 냈습니다. 그 소리는 누구도 듣지 못한 사람이 없을 만큼 컸고, 온 땅에 다 퍼진 것입니다.

‘귀 기울이다’(listening)는 말은 단순한 ‘듣기’(hearing) 이상의 활동을 말합니다. 복음전파는 귀를 기울이는 일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복음전파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임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내가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잘 들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들의 외침을 듣지 않았습니다. 첫 순교자 스데반이 설교할 때에 양심의 가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갈고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았습니다. 바울이 자신이 그리스도를 만난 간증을 할 때에 총독 베스도는 바울에게 “네가 미쳤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말씀이 귀에 들려도 마음의 문이 닫혀 있으면 그 말씀이 마음에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듣는 것, 복음을 듣는 것은 의지적으로 듣는 것(listen)을 의미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들으려고 하는 의지가 있다는 뜻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나자 하나님의 소리를 바르게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듣지 못하면 바른 응답도 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러 차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여러 차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합니다. 귀가 있지만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들음은 중요한 신앙의 조건이며, 신앙의 기본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든든한 신앙은 들음에서 나옵니다. 로마서 10:17에는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합니다.

사무엘상 15:22에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합니다. 전도서 5:1에는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합니다. 성경은 한 결 같이 제사의 제물보다 듣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5:24에는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합니다. 들음은 구원의 도리입니다. 그래서 많이 들어야 합니다. 듣고 잊어버려도 또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을 이루고, 신앙이 성숙하게 되고, 모든 면에서 자랍니다.

테레사 수녀는 그녀의 책에서 ‘기도는 듣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기도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저의 경험으로는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듣는 것이다.’ 설교는 설교자도 청중도 다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잘 듣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말을 잘 듣지 못하면 자기 말만 하게 되고, 자기 말만 하게 되면 설교가 아닙니다.

우리 노회에 ‘영농교회’라는 청각장애인 교회가 있습니다. 원래 ‘영락농아인교회’인데 줄여서 그렇게 부릅니다. 그 교회의 목사님이 한 번은 저에게 “우린 농인이지 농아인이 아닙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청각장애인들은 듣지 못해서 그렇지 말을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들도 말을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그 말을 알아듣기가 힘듭니다. 결국 말을 못 들으니 말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을 잘 하기 위해서는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 전도도 잘하게 되는 법입니다. 영적 사람의 표시는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을 잘 전하는 것입니다.

 

결 론

 

여러분은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FC)이란 체인점을 잘 아실 것입니다. KFC는 50년 전 커넬 샌더스라는 분에 의해 설립된 체인점입니다. 그는 벌이는 사업마다 망해서 낙심과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아들마저 죽어 큰 충격에 빠져 65세에 정신병을 얻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죽으려고 밤늦게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찬송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늙은 부인이 부르는 찬송소리였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꿇어앉아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이곳에도 계시는군요. 평생 예수님 없이 돈을 벌려다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 주님을 멀리 떠난 이 죄인을 용서해 주소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갑자기 자신의 정신이 맑아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를 진단한 병원에 가서 검진하였습니다. 의사는 그의 정신병이 완치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진실한 크리스천의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 가운데 “닭고기를 튀겨서 팔아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는 KFC라는 이름으로 포장마차에서 닭고기를 판매하기 시작하였는데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그의 나이 74세였던 1964년에는 미국과 캐나다에 600개의 체인점을 가진 유명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회개는 복음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에 순종한 그는 영육의 삶에 성공하였습니다.

아모스 3:3에는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동행이란 뜻이 일치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동행이란 하나님과 일치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동행이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은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복음의 소리를 민감하게 듣고, 그 복음의 소리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복음에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충만한 삶을 사는 복음의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말씀과 믿음

로마서 10:17 / 이영훈 목사

여러분 우리 주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사랑의 예수님께서 이 시간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옆에 계신 분과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내 삶의 첫째도 예수님, 둘째도 예수님, 마지막도 예수님입니다. 올 한 해 예수님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게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모습을 통하여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고 여러분이 하시는 모든 일 가운데 주님의 일이 이루어지고 여러분의 속사람이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길 바랍니다. 함께 찬양합니다.

 

(복음성가 ‘주 품에’)

주 품에 품으소서 능력의 팔로 덮으소서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주님 안에 나 거하리 주 능력 나 잠잠히 믿네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하나님 아버지 올해는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만 전지해 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게 하여주시고 우리 교회가 그러한 교회 되게 하시고 우리 대한민국이 주님을 바라보는 복 받은 나라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로 새해가 밝았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축복의 한 해가 되길 원합니다. 뒤를 돌아보고 과거의 상처 속에 고통하며 괴로워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주님이 예비하신 축복의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전진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올해 그 어느 해보다도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히 우리 모두에게 임하는 복된 한 해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니다. 아멘.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할렐루야.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10장 17절 말씀을 가지고 “말씀과 믿음”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말씀과 믿음”, “말씀과 믿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새해는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가나안입니다. 하루하루를 우리가 믿음으로 정복해 나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올 한 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복된 한 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무엇을 하던지 주님을 통하여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여 주시옵시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한 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1.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이와 같은 복된 한 해를 살기 위해서는 첫째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들음.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많은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요, 세상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소리는 세상의 음성은 대부분 우리를 절망케 합니다. 낙심케 합니다. 우리 마음을 어둡게 합니다. 세상의 소리, 사람의 소리는 대부분 우리를 낙심케 하고, 상처를 입히고, 고통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음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에게 언제나 기쁨을 줍니다. 평안함을 줍니다. 치료를 줍니다. 용서를 줍니다. 자유함을 주는 것입니다. “주여, 축복의 한 해를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날마다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여 주옵소서. 희망의 음성을 듣게 하여 주옵소서. 치료의 음성을 듣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마음 가운데 자유함을 주는 음성을 듣게 하여 주시옵소서.” 할렐루야.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 영혼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 27절로 28절에 말씀하시기를,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주님의 양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 내게 말씀하여 주옵소서. 내가 그 음성을 듣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원하오니 주님 내 삶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런데요, 우리 예수님 말씀하시기를요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주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여 주셔서 그 누구도 우리를 주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게 되는 은혜를, 축복을 우리에게 넘치게 선물로 주십니다. 사람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면 실패하고 낙심하고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면 영생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은혜가 있습니다. 사랑이 있습니다. 용서가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주님 올 한 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올 한 해 무엇보다도 예배드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예배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 하십니다. 기도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찬양을 통해 말씀 하시고,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주여, 내가 예배 시간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변화되기 원합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 24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이 누구를 찾으십니까? 예배드리는 자를 찾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생,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 앞에 예배드릴 때 우리에게 은혜가 임합니다. 치료가 임하는 것입니다. 모든 결박이 풀어지고 자유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내 삶에 그 어느 해 보다도 예배에 최선을 다하는 그러한 한 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예배에 승부를 거시기를 바랍니다. 큰 복이 임할 것입니다.

제가 80년대에 미국에서 공부 하면서, 목회도 했는데요. 그때 교회 창립기념예배에 ‘미국의 소리’를 처음 가서 방송하신 황재경 목사님이 오셔 가지고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황재경 목사님은 미국 초기 이민사회에 아주 많은 영향을 끼친 아주 훌륭하신 목사님이신데, 나이 많으신 목사님이 오셔서 창립기념예배 축사를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지금까지 평생 살아오면서 가장 예수 잘 믿고,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을 살펴보니까 이 같은 사람들입니다.” ‘무슨 말씀하시나.’ “첫째가 예배 잘 드리는 사람입니다.” “예배 잘 드리는 사람치고 하나님이 복 안 주신 사람이 없어요. 일생동안 내가 많은 사람을 대해 봤는데, 예배 잘 드리는 사람을 하나님이 복 주시고 그 자손이 복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둘째로는 십일조 잘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을 다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 하나님께서 차고 넘치게 채워 주십니다.” 무슨 특별한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가장 평범하면서도 귀한 진리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어요. “주님 올해 예배드리는데 최선을 다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참 희한해요. 시험에 들면 제일 먼저 다가오는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예배드리기 싫어요. 구역 식구들끼리 아무것도 아닌 걸로 다투었는데요. 싸움은 자기들끼리 하고서는 주일날 교회오기가 싫어요. 우리 주님이 얼마나 섭섭하시겠어요. “야, 싸움은 너희들끼리 해놓고 왜 교회는 안 오냐?” 교회에 왜 안 옵니까? 시험에 들었어요. 시험에 들고 문제가 생겼을수록 더 나와야 됩니다. 왜, 주님이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에, 주님을 만나야 되기 때문에, 주님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되기 때문에, “주여 올해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예배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시고 예배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할렐루야. 새해에는 모두가 결심을 해갔고요, 1부 때도 사람이 굉장히 많이 오고 2부 때도 너무 많이 와서 돗자리를 다 깔고 앉았는데 3부는 또 돗자리를 깔지 않고 저 뒤에 서기도 하시고.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이 마음 갖고 한 해 내내 똑같이 예배에 최선을 다하는 그러한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첫 주에는 그랬는데 일주일 지나고 나서 마음에 그러한 열정이 사라진다면 안 됩니다. 언제까지 하늘나라 갈 때까지 예배에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예배드리는 장면이 느헤미야 8장에 나오는데요. 에스라 선지자가 성경을 펴고 말씀을 선포할 때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요. 그리고 그 말씀에 아멘 아멘하고 엎드려 통곡하며 감격의 눈물을,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느헤미야 8장 6절에,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야훼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야훼께 경배하니라

그리고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우리가 포로 생활로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 가운데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회복시켜주셔서 예루살렘에 돌아와 이렇게 예배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처음 은혜 받을 때 그렇게 은혜 받았거든요. 교회만 나오면 너무 좋아서 찬송을 불러도 눈물이 나고 기도를 해도 눈물이 나고 말씀을 들어도 눈물이 나고 그저 그냥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했는데, 이상하게 오 년 지나고 십 년 지나고 나니까 맹숭맹숭 해져가지고 옆에 사람이 막 울고 그러면 “나도 옛날에 다 그랬어.”

여러분 날마다 예배를 통하여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어린애 같은 심정, 어린애 같은 심정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예배 시간이 너무 좋고 찬양하는 게 너무 좋고 기도하는 게 너무 좋고 말씀 듣는 게 너무 좋아서 늘 가슴이 설레고 감격하는 그러한 모습으로 한평생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시편 119편 103절에요,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해야 돼요. 시편 1편 1절로 2절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야훼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아멘.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에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전 참 마음이 아픈 일은 세상이 들려주는 음성이 너무나 부정적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밤에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아주 한국에서 유명한 작가가 쓴 드라마인데 동성연애를 갖다가 아름답게 만들어 놓은 것을 봤어요. 깜짝 놀았어요. ‘아니 저것을 우리 청소년들이 보면 어떻게 되겠나.’

이것은 하나님 앞에 큰 범죄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것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 되어 가정을 이루라고 한 것이지 남자끼리 가정을 이루고 여자끼리 가정을 이루라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사위를 얻었는데 여자 사위가 들어오면 어떻게 할 거예요? 며느리를 얻었는데 남자 며느리가 들어오면 어떻게 할 거예요?

그런데 드라마에서 아름답게 만들어 놓으니까 애들이 ‘오’하고 거기에 잘못 빠지는 거예요. “하나님 아버지 세상이 들려주는 소리는 세상이 보여주는 그러한 모든 이러한 영상들은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우리를 타락케 하는데, 주여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서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말씀 붙잡고 기도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레미야 33장 3절은 말씀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기적이 일어나요.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맹인 바디매오. 그는 거지로서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동냥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 기쁜 소식이 들려왔어요. ‘예수님께로만 가면 모든 병이 다 고침 받는다. 죽은 자가 살아나고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니 그의 마음에 간절한 소원이 일었습니다. ‘내가 그 예수님 꼭 한번만 만나게 해주세요. 내가 예수님 만나서 내 눈을 뜨기 원합니다. 눈을 뜨기 원합니다.’ 마음속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더니, 어느 날 사람들이 막 왁자지껄 떠드는데 들어보니까 “예수님 오신다.” “예수님 오신다.” 그래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니까 성경을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꾸짖었다 그랬어요. “야, 조용히 해라. 앞도 보지 못하는 주제에 왜 시끄럽게 난리냐.” 그러니까 떠 크게 소리 질렀어요. 있는 힘을 다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떠밀려가시던 예수님이 발걸음을 멈추셨습니다. “저자를 내게로 오게 하라.” 사람들이 말합니다. “예수님이 너를 부르신다.” 그러니까 소리 나는 쪽을 향해서 겉옷을 집어던지고 주님을 향해 달려갑니다. 주님이 물으십니다. “네게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예, 보기를 원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오늘 그 음성을 들어야 해요. “네게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네, 올해 우리 사업이 하나님 영광을 위한 사업으로 크게 번창하기를 원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네게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우리 자녀가 예수 잘 믿는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합니다.” “네게 무엇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내가 지금 몸이 아프고 병들었는데 건강한 몸으로 주님 잘 섬기기를 원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축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우리의 인간의 힘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요.

베트남에서 마약 중독자들을 선교하는 그 교회의 간증을 들었는데요. 호치민 시티에 엠마누엘 순복음교회인데 약 30명의 마약 중독자 환자로서 이곳에 와서 예수 믿고 변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헝딘 목사님에 따르면 마약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 말씀의 능력, 하나님의 은혜랍니다.

“마약 중독자들은 사회에서 낙오자로 간주하곤 하지요 가족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포기합니다. 대부분은 재활센터에서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통해 구원을 기적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07년에 수년에 걸친 마약 남용으로 폐결핵과 심각한 위통을 앓은 호엉레 씨는 지금 교회에서 찬양팀을 인도합니다. 이런 고백을 합니다.

“더 살고 싶지 않았어요. 죽고 싶었지요. 의사들도 포기하고 저를 집으로 돌려보냈어요. 그때 이곳에 머물며 중독을 치료한 사람을 만났지요. 그들은 저에게 예수님을 전했고 전 희망을 느꼈어요. 그들이 날 위해 기도할 때 전 놀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통하여 치유 받고 지금은 통증을 느끼지 않으며 마약에서도 벗어나게 되었어요.”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마약 중독도 알코올 중독도 도박 중독도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세상의 음성으로는 고칠 수 없지만 주님의 음성으로 우리가 믿음으로 결단하고 그 음성을 듣고 나아가면 치료함을 받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으로 치료함을 받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놀라운 기적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말씀을 듣고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말씀 위에 서라

 

우리가 날마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힘쓰고, 둘째로 그리스도의 말씀에 굳건히 서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여러분, 이 하나님의 말씀은 신구약 전체가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우리에게 오실 예수 그리스도, 신약 성경은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할렐루야.

인류의 유일한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습니다. 다른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시오, 생명이시오, 구원의 빛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1절로 4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복음 5장 24절에 주님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할렐루야. 우리가 예수를 믿는 그 순간, 우리의 삶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가는 길이 지옥을 향해 가는 길에서 천국으로 향해 가는 길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길이 죄인의 길에서 의인의 길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날마다 말씀을 묵상해야 되는 이유는 이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1장 1절부터 계시록 22장 끝 절까지 예수님의 흘리신 피가 방울방울 적셔져 있습니다. 말씀을 읽을 때에 예수 피가 우리 마음 가운데 뿌린바 되어서 우리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육신의 연약함을 강건케 하고 질병을 치료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기적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주여, 내가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기 원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뵙기 원합니다. 예수의 보혈이 내게 뿌린바 되어서 나를 변화시켜 주시고 치료하여 주시고 새롭게 만들어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내가 머물러 있게 하여 주옵소서.”

히브리서 4장 16절에, 우리에게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십자가 앞에, 말씀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예수님의 보혈에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할 죄 사함의 근거가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시고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죄 때문에 억울한 짐승이 죄 없는 짐승이 피를 흘려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부터 구약의 제사는 피의 제사였습니다. 누가 죄를 지으면 대신하여 그의 사랑하는 가축이 짐승이 가서 피를 흘려 죽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죄 없는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이고, 실제로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오셔서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서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기만 하면 우리에게 구원이 임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임합니다. 우리에게 치료가 임합니다. 우리에게 부요가 임합니다. 우리에게 천국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맥스웰 화이트 목사님의 ‘보혈의 능력을 취하라’는 책에서 목사님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주님의 보혈에 있다. 그러니 보혈 아래 거하라! 믿음으로 보혈의 능력을 주장하고 사용하고 선포하라! 무기고에 쌓아둔 탄약은 무용지물이다. 무기고에서 꺼내 적을 섬멸하는 데 사용할 때 비로소 가치를 발휘한다. 하나님 군대의 주력 무기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과 보혈’이다. 우리는 쉬지 않고 흐르는 보혈의 강에 날마다 뛰어 들어가, 우리의 죄와 질병과 슬픔을 씻을 수 있다. 우리가 이 강을 높이고 노래하며 간구할 때, 예수님의 보혈이 자비와 용서와 치유와 보호와 해방과 넘치는 기쁨과 평안을 호소할 것이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가 치유를 받습니다. 로마서 5장 9절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예수의 보혈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은 것입니다. 죄인이 의인된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허물이 사함을 받게 되고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 많고 어려움 많은 세상, 죄악으로 만연한 세상에 우리가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예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여 악한 원수 마귀와 싸워 승리해야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1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말씀 위에 굳건히 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양규 장로님. 모태교인이고 독실한 크리스천이신데 대학에 입학하면서 폐결핵을 앓고 대학 졸업 후에 심장 수술을 받으며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하고 그 다음 신 구약성경을 60번 이상 읽으면서 성경과 한의학의 연결고리를 찾았습니다. 우리 장로님이 말씀하십니다. “한의약으로는 몸을 치료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매일매일 신구약 말씀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영혼을 다스리는 의사입니다. 신구약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우리의 영을 다스리면 마음 다스리기는 저절로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신구약 말씀으로 마음을 다스려서 사랑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키워 가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에 굳게 서서 마음을 다스릴 때 우리들 마음속의 불안함이나 염려, 걱정, 근심, 두려움 등 부정적인 생각들은 저절로 사라지고 영혼이 치료 됩니다.”

할렐루야! 주여, 우리가 늘 주님의 음성을 듣고 생명이신 우리 예수님을 의지하고 말씀에 굳건히 서게 하여 주옵소서.

 

3. 믿음으로 전진하라

 

그리고 우리는 이와 같은 말씀과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무장해서 셋째로 믿음의 전진을 해나가야 됩니다. 믿음으로 전진할 때 복을 내려주십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믿음이 어디서 납니까?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나는데, 이 우리가 듣는 음성이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주인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변화 받을 때 우리 일생이 복된 일생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평생을 삽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말씀의 은혜를 체험하고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성령충만 받아서 세상에 나가 죄와 싸워 이기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주님의 귀한 일군으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여, 올 한 해 주님 앞에서 큰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를 큰 믿음의 사람으로, 믿음의 일군으로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가 믿음의 사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원하오니 주님,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날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의 놀라운 역사에 대해서 주님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세계 역사는 꿈꾸고 믿고 바라보는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여왔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세계 역사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큰 꿈의 사람,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나아가면 기적은 다가옵니다. 축복은 다가옵니다. 은혜는 우리에게 축복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불가능한 것처럼 보여도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갖고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고 나가면 불가능이 변하여 가능이 됩니다. 문제가 변하여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여리고 같은 문제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 마음의 눌린 것이 자유함을 받게 되고 육신의 병에서 치료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깨어졌던 가정이 회복되고 무너졌던 사업이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E. M. 바운즈 목사님께서『기도의 심장』이라는 책에서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믿음은 불가능한 것을 이룬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일하시도록 하는 것이고, 그분은 전능하시기 때문이다. 믿음의 능력에는 한계와 제한이 없다. 우리의 마음에서 의심을 몰아내고 불신앙을 추방한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믿음이 있는 자에게 허락 하신다”

아멘. “주여, 우리가 이와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앞에 다가오는 환난이 축복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로마서 5장 3절에서 4절은 말씀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주여,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히브리서 11장 6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긍정의 믿음을 갖고 나아가야 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절대 긍정의 믿음의 근거가 있습니다. 다 같이 고백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슬펐던 일, 기뻤던 일, 괴로웠던 일, 즐거웠던 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고백합니다. 시편 18편 1절, 2절에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야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할렐루야.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으로 29살에 최연소의 나이로 현대 실용음악의 요람인 버클리 음대 교수로 전격 임용된 김치국 교수님이 계십니다. 원래 음악의 달란트를 줘서 영화 대본만 봐도 그 테마를 떠올려서 음악을 작곡하는 분인데, 날 때부터 앞을 못 보는 분이 아니었어요. 세 살 때 심장수술을 받고 난 후에 장기 투병의 후유증으로 다섯 살 때 시력을 잃고 열일곱 살 이후에는 빛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완전한 그러한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하나님이 음악적인 재능을 주었어요. 네 살 때부터 귀로 듣는 것으로 그가 피아노를 치고 드럼, 바이올린, 기타, 색소폰. 만지는 악기마다 얼마나 잘 다루는지. 뛰어난 음악적인 재능을 보였습니다. 맹아 학교를 다니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영어 공부를 위해 유학을 하기 위해서 미국에 일반 공립학교로 갑니다. 비장애인들, 정상인들과 함께 공부하는데도 그는 앞을 보지 못하지만 기도하고 매달리고 매달려서 공부를 잘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실용음악 작곡 및 편곡이 다 컴퓨터로 진행되기 때문에 남보다 몇 배의 노력을 더 기울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버클리 음대와 뉴욕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그의 열정과 끈기를 지켜본 버클리 음대 교수가 그를 붙잡았습니다. 현재 버클리 음대 뮤직 테라피(Music Therapy) 전임교수로서 1년에 2억 5천만 원의 펀드를 받아가지고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음악 테크놀로지를 개발하고 가르치는 그러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귀한 교수님이 되셨어요. 또 그의 옆을 지키는 간호학 박사이자 교수인 믿음 좋은 아내도 허락해주셨고요. 그를 인터뷰한 기자들이 말하기를 “참 긍정적인 분이다.” 그랬어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미국의 속담 중에 ‘삶이 레몬을 주면(레몬이 매우 시죠?) 레몬에이드를 만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레몬을 그냥 먹으면 마냥 신맛이 나지만 거기에 설탕과 시럽을 섞으면 맛있는 레몬에이드가 되듯, 힘든 일이 있다면 믿음으로 그 사건을 새콤달콤한 레몬에이드로 만드세요. 저에게는 시각장애를 가진 삶은 남들보다 좀 불편할 뿐입니다. 저는 늘 problem(문제)에 초점을 두지 않고 solution(해답)에 초점을 둡니다. 그럼 그 문제는 제 삶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그 문제를 쉽게 헤쳐 나갈 수 있게 하나님은 늘 주위에 도와줄 사람을 붙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둠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제 꿈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꿈은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믿음의 역사는 절대 긍정의 역사요, 절대 감사의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 삶에 환란과 괴롬과 고통이 다가와도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무장해서 오직 하나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고 주의 말씀을 붙잡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하고 나아가면 기적은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임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해결되는 것입니다.

“주여, 우리 모두가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올해 오직 믿음으로, 오직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 나가는 주님의 귀한 일군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소원이 다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듣고, 믿고, 받고

로마서 10:17 / 김우영 목사

로마서 10장은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고, 삶속에서 복을 받기까지는 3단계 과정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즉,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김에 기도하고, 기도함에 구원은 물론, 축복을 받는 단계입니다. 허나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할 사실은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게 되면 기도하고, 기도함으로 구원과 복을 받는다 할지라도 이에 앞서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선행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14,15절)"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고자 칼을 들이댐이 하나님께서 수양을 준비하심보다 먼저라고 흔히들 생각합니다만,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는 순종의 행동보다 수양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사랑 행동이 먼저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 되리라 하더라(창22:13,14)"

 

단계Ⅰ: 듣고, 믿고

 

제 체험입니다. 처음 교회에 나가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믿어지지 않아 거부감이 생겼고, 그래도 계속 말씀을 듣다 보니 '글쎄 그럴 수가 있을까?' 라는 회의가 생겼으며, 좀더 지나니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라는 반신반의가 일었고, 더 지나니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조금 기울어 졌으며, 계속 듣고 또 들으니 '그럴 수 있다'라는 불확실한 믿음이 생겼고, 마침내 '그렇다 믿는다'라는 확신 있는 신앙인이 되었으며, 결국 목사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예외 없이 처음 교회에 나올 때는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예배시간에 빠짐없이 참석, 말씀을 많이 듣게 되면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헌데 어떤 분은 듣고 있고, 어떤 분은 안 듣거나 못 듣고 있습니다. 전파되고 있는 말씀이 귀를 통하여 가슴으로 가 마음을 움직이는 이는 듣는 사람이요, 전파되는 말씀이 고막을 울리는 소리로 끝나는 사람은 듣지 않는 사람입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말씀이 전해지고 있는 데 왜 듣는 자와 안 듣는 자로 구별되어지는 것일까요? 까닭은 자아, 교만, 선입감, 편견, 의심, 자기경험, 염려, 불안, 세상생각... 잡다한 것들이 말씀이 마음에 이르는 길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소리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드는 것입니다. 까닭에 말씀을 들으면서도 믿음이 생기지 않음은 자기책임입니다. 믿음을 얻기 위해선 말씀을 듣기 전에 말씀을 듣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작업, 곧 기도를 해야 합니다. 또한 예배 드리러 교회에 오기 위해 시간계획과 관리를 미리미리 잘 해야함은 물론, 심령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일상생활의 많은 일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며, 이것저것 중에 선택하는 사항도 아닙니다. 말씀을 들음은 나의 생과사, 현재와 미래, 축복, 구원이 달린 삶입니다. 눈과 귀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감성기관입니다. 감성기능을 최대로 잘 활용, 최고의 복을 받는 통로가 되게 해야 합니다. 누가복음10장 38 42절에 보면 마리아가 예수님을 대접하고자 음식 준비에 바쁜 언니 마르다를 도와주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말씀만 듣습니다. 그러자 마르다가 예수님께 동생에 대한 불평을 합니다. 이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너희 소자들아 와서 내게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함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시34:11)"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하소서...(시143:8,10)" 수업태도 나쁜 학생이 우등생 되는 것 보셨습니까? 말씀을 들음은 믿음의 수업입니다. 예배시간에 개근하고, 말씀 듣는 시간에 영적 품행이 방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자는 복된 생을 실기함이며, 말씀을 듣고 있으면서도 듣지 못하는 자는 불행한 인생을 자청함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2∼3장)." 주님께서 7교회에 7차례 하신 말씀이십니다. '말씀을 들으라'는 단순히 귀로 들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자리까지 이르는 상태를 뜻합니다. 자녀들에게 부모가 "제발 말 좀들어라"함은 '말'이라는 단어를 들으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하라는 대로 순종,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단계Ⅱ : 믿고, 부르고

 

말씀을 들으면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면 주를 믿기 때문에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듣고 믿음이 생겼다면 타인이 가져갈 수 없는 금은 보화가 가득찬 금고를 소유함입니다. '믿음'이라는 보물은 도적질 할 수도, 빼앗을 수도, 빼앗길 수도 없는 나만의 재산입니다. 헌데 질 그릇이라도 이 보화가 담겨져 있으면 그 속의 보배 때문에 귀하게 취급되어 집니다(고후4:7). 인간의 육체가 미천하고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 같을지라도 참 보배인 믿음만 간직하고 있으면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고후4:8.9).' 믿음이 내 속에 있다 함은 내가 나를 사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내 속에서 나를 주장하시며 살고 계심을 의미함입니다. 믿음이 생겨 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함은 성공의 인생 시작입니다. 일생 주를 부르면 평생 성공의 삶입니다. 믿음이 있어야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 없이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외우고 있다면, 이는 이교도들의 주문에 불과합니다. 믿음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야 기도가 기도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눅11:28)" 기독교인이 주님께 부르짖고 기도하지 못함은 믿음을 공급하는 말씀을 듣지 않고 있음이요, 기도 할 수 있게 하는 미듬의 결핍입니다. 세상에서는 '듣기 좋은 말도 세 번이면 듣기 싫다' 라고들 합니다. 허나 하나님께선 밤새도록 부르짖고, 날마다 부르짖고, 평생 부르짖어도 "듣기 싫다, 그만해라 귀찮다"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면 부를수록 더욱 좋아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께선 운명하시는 최후의 순간에서도 사형수의 간구를 들으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어떤 가족이 모두 함께 찜질방엘 갔더랍니다. 얼마간 지났는데 화재 경보가 울렸습니다. 모두들 놀라 아우성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 아버지가 처자도 버린 채 혼자 뛰쳐나갔답니다. 화재 경보는 오보-. 부부가 엄청나게 싸웠음은 물론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인간은 인간'인 것 입니다. 인간의 참재산은 사람도, 재물도 아닌, 믿음입니다. 믿음은 내가 원하는 것의 현재요 미래이며, 갖고자 하는 것을 소유케하는 힘입니다. 기도는 웅변도 설득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진실한 믿음 행동입니다.

 

단계Ⅲ : 부르고, 받고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11절)'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12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3절)'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듣고, 믿고,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과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과 복을 받음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사랑하심의 증거입니다. 내 믿음이 크면 부름도 크고, 받는 것도 크며, 받는 것이 크면 내가 높아지고 커집니다. 믿음으로 주 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이생과 내생의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게됩니다. 해서 부르고 받는 삶이 됨은 참으로 복된 인생이 됨입니다. 세상에서 필요한 것들은 돈만 있으면 시장이나 백화점에 가서 얼마든지 살수가 있습니다. 허나 구원은 돈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주의 이름을 불러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부르고, 받음은 믿음 안에서 순종하며 사는 자에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20)"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고 듣지 아니하는 사람에게서 은혜를 철수하십니다.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 자의 생이 비극일 수밖에 없습니다. 독일에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신앙을 인정할 것인가 아닌가의 여부를 놓고 뉘른베르크(N웦nberg) 국회가 열리고 있을때 루터(M, Luther)는 자신의 기도방에서 개신교가 인정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답니다. 헌데 '프로테스탄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다'라는 칙령이 발표되었고, 루터는 기도 방에서 뛰어나와 외쳤답니다. "우리는 승리를 얻었다 당신들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셨음을 아는가?"라고-.

 

승리하고 싶으면 싸우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십시오. 기도의 응답을 받음은 하나님을 만났음이요, 하나님의 뜻을 따랐음이며,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음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듣고 믿고, 믿고 부르고, 부르고 받음입니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할 이스라엘

로마서 10:18-21 / 민병석 목사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은 버림받음은, 바울이 설명하기 어려운 난제 중에 하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복음의 뿌리는 바로 유대인들에게 박고 있습니다. 복음의 주체가 되시는 예수님도 유대인의 혈통에서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이 복음은 또한 하나님께서 모세 시대로부터 여러 세기에 걸쳐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해 오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 이스라엘 백성인 유대인들은 그 메시야를 십자가에 달았고 복음을 배척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0장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증거 했습니다(롬10:17). 그러면 유대인들은 분명히 이 복음을 들었을 터인데 어찌하여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기는 고사하고 버림을 받는 자라에 이르게 되었는가하는 것입니다.

 

1.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이라면 그들이 믿지 아니함은 듣지 못했기 때문이냐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은 성경의 증거를 인용하여 명쾌하게 대답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시19:4절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고 증거 했습니다.

 

(1) 복음은 은밀한 곳에서 남몰래 전파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다는 말씀은 장차 전파될 복음의 범위가 어는 한곳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범세계적인 것임을 의미해 주는 예언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이방인들에게만 전파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2) 이 복음은 먼저 유대인에게 전해졌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신 활동무대는 유대 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 동안에 온 유대 땅을 두루 다니시면서 이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바울도 이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첫째 번으로 전해졌다고 이처럼 말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 게요 또한 헬라인에 게로다”고 했습니다(롬1:16).

 

(3) 이 복음은 유대인의 본거지인 예루살렘으로부터 발단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예루살렘이 복음전파의 근원지를 이루었고 복음전도의 총사령부 격인 예루살렘교회가 형성되었습니다(행1:8, 2:1-4). 그리고 이 복음은 땅 끝까지 이르러 증거 되었습니다.

 

2. 그러면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바울은 여기서 이론을 발전시키면서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고 묻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그러면 이스라엘이 이 복음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없었느냐? 는 말이 됩니다. 그들이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아니했다면 그 복음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 아니겠느냐? 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곳에서 신명기에 나타난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그런 것이 아니라고 이처럼 그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 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고 증거 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왜 이 같은 신명기에 예언된 말씀을 이곳에서 인용한 것입니까?

 

(1) 유대인들이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아니한 것은 그들이 깨달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배신한 그들의 죄 값으로 인한 것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신명기 32장은 모세의 마지막 노래로 장차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들의 생활이 부요하고 윤택할 때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길 것을 예언하시고 이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게 돌아갈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이방인들에게 돌아 갈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울이 이곳에 인용한 신명기 32:21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하나님으로 섬겨 나의 질투를 일으키고 그들이 허무한 우상으로 나로 진노케 하였으니 나도 그들에게 갚으리니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들로 나의 백성이 되게 하고 어리석은 민족으로 내 백성으로 삼아 유대인들로 시기가 나게 하며 이스라엘로 그 분노를 격발시킬 것이라”고 하는 내용의 예언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모세의 이 예언대로, 돌아 올 것이 그들의 머리 위에 돌아온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은 예수가 메시야이신 사실을 알 수도 있었지만 그들이 고의적으로 애써 거역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왕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줄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 메시야가 태어난 소식을 듣고서도 찾아가지 아니했습니다(마2:2-6).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도 들었고 그의 놀라운 이적도 수 없이 보았습니다(요10:37,38). 빌라도 마저도 유대인들이 송사 하는 예수님의 고소내용올 무혐의로 단정하고 무죄 석방하려 했음에도 그들은 없는 죄명을 무고하여 십자가에 달리게 했습니다. 그들이 이처럼 하나님 앞에 완악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마땅히 그들이 믿고 구원받아야 할 복음을 이방인들로 믿게 하심으로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하신 것이라고 바울은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3)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이사야의 담대한 예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고 하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이사야65:1에서 인용한 예언입니다. 내가 구하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바 되었다고 한 말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아니한 이방인들에게 찾은바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께 기도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푸셔서 복음으로 부르셨고 그리스도안에서 그들을 그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에게 내가 여기 있다고 그의 임재 하심을 알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일을 복음을 통해서 하셨습니다.

 

(4) 그렇다고 이스라엘에게 가만히 계셨던 것은 아닙니다.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자기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순종치 아니하고 배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루종일 그의 손을 벌리셨노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두 손을 벌려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품안에 돌아 올 것을 기다리셨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의 인내를 멸시하여 끝까지 거역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므로 결국은 복음의 은총에서 낙오자가 되게 된 것입니다.

 

결 론 : 지금도 복음은 온 땅에 퍼져가고 있으며 땅 끝까지 전파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지 못함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했다고 핑계치 못합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온 세계에 울려 퍼지게 하라는 명령을 받아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로 영광스러운 복음의 사자인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의 특권은 대단합니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복음에는 죄 사함의 은총이 있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전도자의 대열에 설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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