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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과와 설교

20210722 / 출 9:27-35 / 더욱 완악해진 바로의 마음

작성자이윤형원로목사|작성시간21.07.20|조회수290 목록 댓글 0

더욱 완악해진 바로의 마음

출 9:27-35

27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28 여호와께 구하여 이 우렛소리와 우박을 그만 그치게 하라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다시는 머물지 아니하리라

29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성에서 나가서 곧 내 손을 여호와를 향하여 펴리니 그리하면 우렛소리가 그치고 우박이 다시 있지 아니할지라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왕이 알리이다

30 그러나 왕과 왕의 신하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아직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줄을 내가 아나이다

31 그 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32 그러나 밀과 쌀보리는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

33 모세가 바로를 떠나 성에서 나가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펴매 우렛소리와 우박이 그치고 비가 땅에 내리지 아니하니라

34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

35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출 9:27-35 /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번에는 내가 정말 잘못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여호와가 옳으시고 나와 내 백성이 나빴다. 28) 그러니 이제 여호와께 빌어 이 천둥과 우박을 그만 그치게 해 다오. 내가 너희를 내보내겠다. 너희를 다시는 이곳에 남겨 두지 않겠다.' 29) 모세가 바로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성을 나가는 대로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겠습니다. 그러면 천둥소리가 멎고 우박이 그칠 것입니다. 그제서야 이 세상이 여호와의 것인 줄을 임금님이 아시게 될 것입니다. 30) 하지만 아직도 임금님과 임금님을 섬기는 신하들이 여호와 하나님 무서운 줄을 모른다는 사실을 내가 잘 알고 있습니다.' 31) 이렇게 우박이 쏟아질 때 보리는 이삭이 나오고 아마는 꽃이 피어 그것들은 많이 망가졌으나 32) 밀과 쌀보리만은 아직 이삭팰 때가 되지 않아서 별 피해가 없었다. 33) 모세가 바로의 곁을 떠나 성밖으로 나와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뻗치자 으르렁거리던 천둥이 그치고 우박과 비도 땅에 내리지 않았다. 34) 바로가 비와 우박과 천둥이 그친 것을 보고는 다시 속이 뒤틀려 고집을 부렸다. 바로뿐만 아니라 그를 섬기는 신하들도 마찬가지였다. 35) 그래서 바로는 또다시 마음을 굳게 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을 내보내지 않았다.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였다.

 

극렬한 우렛소리와 함께 우박이 쏟아지자 그제서야 바로는 모세를 불러들여 회개합니다. 그러나 그의 회개는 진정성이 없었습니다. 문제를 넘기고자 하는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신하들도 동일했습니다.

 

진정성 없는 회개(27-30) 우렛소리는 원어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음성으로 상징됩니다. 이제는 바로도 우박의 재앙이 하나님이 내리신 재앙인 것을 인식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자기와 자신의 백성들이 악하다고 시인합니다. 그러나 이 회개는 진정성이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도 바로에게 진성성이 없는 회개라고 지적합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을 놓아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그 때만 넘기면 또다시 붙잡아 둡니다. 이것이 필요하고 급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우리의 모습과 같습니다. 바로의 행동은 그의 회개가 진정성이 없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우리 회개의 진정성도 하나님이 가장 잘 아십니다. 우리도 진정성이 결여된 회개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시 마음이 완악하여지다(31-35) 하나님이 재앙을 거두시는 순간 바로는 다시 완악해집니다. 다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자기 백성들의 악함을 고백했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고 오만했던 이전의 모습으로 거침없이 돌아갑니다. 이것은 그의 신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진실한 신앙의 고백은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분을 두려워하며 순종하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일곱 번째 재앙을 맞이하는 바로의 문제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고백하고 잘못한 것을 고치는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을 넘긴 그에게 하나님은 또다시 대적할 대상으로 여겨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자세는 순간순간 다르지 않습니까?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는 당신의 자세는 변함이 없습니까?

 

적용: 하나님께 드리는 당신의 고백은 진실합니까? 진실한 고백을 드리는 진정한 신앙인이 되길 갈망합시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어린 시절 일화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는 평소 소중히 여기는 벼루 하나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 몰래 그 벼루를 꺼내 쓰다가 그만 떨어뜨렸고 와장창 깨져버렸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이실직고하였고, 무척이나 엄했던 아버지는 벼루를 깨뜨린 벌로 종아리에 피 멍이 들 정도로 회초리를 맞았습니다. 어린 안중근 의사가 다리를 절뚝이며 방을 나오자 하인이 부축하며 물었습니다. "도련님, 제가 깨뜨렸다고 하면 이렇게 매 맞지 않으셨을 텐데... 제 말대로 하지 않고 왜 사실대로 말씀드렸어요?" 어린 안중근 의사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종아리가 아프기는 하지만 마음은 편합니다. 아프고 괴롭지만, 마음이 편한 것, 이것이 정직 아니겠습니까?“

 

< 설 교 >

우박을 멈추게 하신 하나님

출애굽기 9:27-35

본문요약 / 불덩어리가 섞인 우박이 애굽 전역에 심히 맹렬하게 쏟아져 수많은 사람들과 생축들이 죽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되 다시는 애굽 땅에 머물게 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이에 모세가 성에서 나가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펴자 우박이 그칩니다. 그러나 바로는 우박이 그치자 다시 마음을 강퍅케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습니다. 그 때는 밀과 나맥(쌀보리)의 싹이 아직 나오지 않은 때였습니다.

 

본문해설 / 1. 바로가 모세 앞에서 죄를 인정함(27~30절)

 

 

불덩어리가 섞인 우박이 애굽 전역에 심히 맹렬하게 쏟아져서 수많은 애굽 백성들과 생축들이 죽자 겁에 질린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자신이 죄를 범하였고, 자신과 자신의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악을 행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내가 다시는 애굽 땅에 머물게 하지 않을테니 이 우박이 그치도록 하나님께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에 모세는 자신이 성에서 나간 후 곧바로 하나님께 기도하겠다고 말하고는, 그러나 모세가 보기에 왕과 왕의 신하들이 아직도 하나님 두려운 줄을 모르고 있다고 말하면서 성을 나옵니다.

- 악하도다(27절) : 바로 자신과 자기 백성이 처벌받아 마땅하다고 그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한 회개가 아닙니다. 그저 현재의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한 얄팍은 수단에 불과합니다.

- 삼(31절) : 세마포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아마’를 뜻합니다.

- 보리(31절) : 가난한 사람들의 곡식이자 짐승의 사료로 사용됨.

 

2. 아직 밀과 나맥이 자라지 않은 때(31~32절)

이 우박의 재앙이 내려진 때는 보리와 삼(아마)은 이미 싹이 나와서 피해를 입었으나, 아직 밀과 나맥(쌀보리, 혹은 귀리)은 그 싹이 나지 않은 때였으므로 밀과 나맥은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 나맥(32절) : ‘쌀보리’, 혹은 ‘귀리’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밀의 일종으로 밀보다는 품질이 조금 떨어지고 건조한 땅에서 잘 자랍니다. 밀과 나맥은 보리와 삼보다 두 달 정도 늦게 싹이 나옵니다.

 

3. 모세가 우박을 그치도록 하나님께 기도함(33~35절)

모세가 성 밖에 나와 여호와께 손을 펴서 기도하니 곧 뇌성과 우박이 그치고 비도 더 이상 내리지 않았습니다. 바로가 우박이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마음을 완강케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습니다.

 

묵상 point

1. 죄를 고백하는 바로 왕

불덩어리가 섞인 우박이 애굽 전역에 심히 맹렬하게 쏟아져서 수많은 애굽 사람들과 생축들이 죽자 바로 왕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굴복합니다.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자신이 죄를 범하였다고 고백합니다. 바로는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자신과 애굽 백성들은 악하다고 고백했습니다. 적어도 이때의 바로의 고백은 형식적으로는 완벽한 회개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때의 바로의 회개의 고백이 진정한 것이었다면 더 이상 그들에게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뿐만 아니라 바로와 애굽 사람들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10가지의 재앙은 이스라엘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10가지의 재앙을 통해서 애굽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리려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바로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았다고 자기의 입으로 고백했습니다. 바로는 지금 구원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입니다.

● 적용 : 이처럼 어느 날 말씀이 내 마음을 찔러 아프게 할 때 내가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입니다. 그런 때를 만날 때마다 그 말씀에 반응하십시오. 회개를 명하시면 회개를 하고, 순종을 명하시면 순종을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복이 임합니다.

 

2. 우박을 그치게 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바로가 참으로 어렵게 회개할 마음을 가졌음을 보시고 그가 확실한 회개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세에게 우박이 그칠 시점을 말하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제 성 밖으로 나가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곧 우박이 그칠 것이라고 그 시점까지 밝혔습니다. 그리고 과연 모세의 말대로 그가 손을 하늘을 향하여 펴고 기도하니 곧 우박이 그쳤습니다. 이로써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음을 바로와 그 신하들에게 더욱 확실하게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재앙이 시작되는 시점과 그 재앙이 끝나는 시점을 일일이 모세로 하여금 알리게 하신 것은 바로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하나님의 치밀하신 계획과 주권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기억합시다.

● 적용 : 그러므로 내가 지금 어려운 환경에 처하였다면 그 역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십시오. 어려움을 주신 하나님께서 복도 내려주십니다.

 

3. 더 큰 재앙을 불러오는 바로의 탐욕과 교만 ➟ 밀과 나맥을 믿고

그러나 불행히도 바로는 그가 구원 받을 수 있는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날려버렸습니다. 그것은 보리와 삼(아마)는 이미 싹이 난 상태에서 우박을 맞아 다 없어졌으나, 아직 싹이 나지 않은 밀과 나맥(쌀보리, 귀리)는 아직 싹이 나지 않아 피해를 면했기 때문입니다. 보리는 가난한 자들이 먹는 음식이고, 바로를 비롯한 부자들이 먹는 밀은 화를 면했으니 이것을 의지하여 탐욕과 고집이 그 마음에서 다시 일어난 것입니다.

마음을 세상에 빼앗긴 사람, 욕심과 탐욕이 그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은 이렇게 회개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사람은 쥐구멍만한 아주 작은 기회만 있어도 그것을 의지하느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합니다. 이렇게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순종하기를 거부할만한 것들만 계속해서 찾다가 끝내 마지막 기회마저 잃어버리고 결국 심판을 받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 적용 : 그러므로 내 마음에 욕심과 탐욕이 자리 잡지 못하도록 날마다 말씀으로 내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나를 파멸로 이끄는 이런 못된 마음은 사라지고,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는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에 채워지도록 기도합시다.

 

* 기도제목 / 1. 주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실 때 회개를 미루지 말고 회개하게 하옵소서.

2. 주께서 순종할 기회를 주실 때 순종하기를 미루지 말고 즉시 순종하게 하옵소서.

3. 내 마음에 욕심과 탐욕이 생기지 않게 하시고, 늘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채우며 살게 하옵소서.

 

 

 

 

바로의 회개

출 9:27-35

애굽왕 바로는 7번째 재앙인 불섞인 우박재앙을 당하고 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다.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출9:27)

이번은( הפעם a stroke, now, this time) 이란 말은 무슨 뜻일까?

그럼 전에는 바로가 잘못하게 없다는 뜻인가?

그렇다.

바로는 여호와를 대적하고 이스라엘백성들을 착취하고 압제한 일에 대해서는 추호도 죄라고 여기지 않는다.

왜냐면 바로는 애굽의 신이며 대대로 애굽을 지탱하는 신화를 믿고 그 신화의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바로는 이제와서 내가 범죄하였노라고 했을까?

"이번은" 이란 단어 하파암( הפעם )은 한 방( a stroke 일격 충격)이란 뜻이 있다.

이번에는 즉 처음으로 애굽왕 바로는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말했다.

비록 이번에는 처음으로 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그 단어속에는 충격 타격이라는 의미가 들어있어서 바로는 앞에서 여호와께서 내리신 재앙인 불섞인 우박으로 인해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고 보여진다.

 

바로의 어설픈 회개

 

실제 죄를 지은 인간들의 회개는 강한 충격과 외부의 타격에 의해 공포와 두려움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는 것이다.

타격이 없이 그저 마음의 깨달음으로 스스로 온전한 회개를 하는 죄인은 없다.

죽음의 공포에서 깊은 질병의 고통속에서 실패의 좌절과 절망가운데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앞에 회개와 은혜를 구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바로의 회개는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가고 있다.

단지 점점 더 강해지고 맹렬해지는 여호와의 재앙에 두려움과 공포로 죄를 지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하여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내 백성은 악하도다라고 한다.

​바로의 회개의 정당성은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는 악하다고 하는 고백이다.

​처음에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바로에게 전했을 때 여호와가 누구냐 하면서 비꼬았다.

그런데 점점 강해지는 여호와의 재앙에 바로는 입을 열어 여호와는 의로우시다고 말한다.

의로우시다( צַדִּיק righteous )는 뜻은 틀림이 없고 올바르다는 의미이다.

그 당시 애굽왕 바로가 어떻게 여호와의 의로움에 대해 알았겠는가?

여호와의 능력이 자신이 숭배하는 태양신라 나 애굽의 모든 신들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알고 더 강한 신이 옳다 의롭다고 말한 것이다.

세속세상에서는 강한 자가 의로운 자이고 승자가 정의가 된다.

약자나 패한자는 아무리 착하고 성실하고 정직해도 승자앞에서는 죄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는 자기가 섬기는 신이 이스라엘의 신인 여호와를 당해내지 못하므로 여호와가 의롭고 자신이 악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강한 자가 의롭고 강한 자가 만든 법이 정의이고 약자 패배한자는 무조건 죄인이고 악하다.

이것이 옛부터 내려온 죄의 문화속에서 자리잡은 마귀의 정의이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서 보면 아벨이 죽었어도 믿음을 남겼으므로 승리자이고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 패권을 쥐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실패자요 악인이다.

그러나 세상의 마귀편에서 보면 아벨은 패배자요 가인이 승리자요 하나님을 떠난 악인들은 가인의 쾌락문명과 힘의 신앙을 그대로 답습해온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불신의 세상에서는 강자가 세상을 지배하고 강자의 원리대로 세상이 돌아가는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의로움을 조롱하는 악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가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자신은 악하고 그래서 죄를 지었다고 하면 바로가 회개하고 변화되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는 진리앞에서 자신이 죄인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패권다툼의 결과로 자신이 패함으로 죄인이 되었다고 모세와 아론에게 말한 것이다.

결국 바로는 보리와 삼은 망했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밀과 나맥이 남았단다( 출9:32 ) 하면서 대놓고 여호와와의 약속을 버렸다.

 

진실한 회개는 무엇인가?

 

한때 회개하고 예수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간증하고 자랑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에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서 예수믿기 전과 똑같은 죄된 생활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간증할 때는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변화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나중에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회개는 진짜회개가 아니라 패권주의에 의해 하나님 앞에 잘못했다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총과 도움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실패를 하나님 앞에 인정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얻어 다시 재기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거짓된 회개라는 점이다.

그래서 실패했을 때 고난과 환란이 왔을 때 콧물눈물 흘리면서 회개하고 앞으로 하나님 잘 믿겠다고 다짐했던 사람들이 재기하여 다시 과거의 영화를 되찾았을 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지 않고 과거와 같이 부나방처럼 세상영욕을 좇아가게 되는 것이다.

 

바로의 회개와 같은 것이다.

 

일단 지금은 잘못했고 여호와가 옳으시고 내가 죄인이니 은혜를 베풀어서 이 고통과 재앙에서 면피하게 헤달라고 하는 것이다.

진실한 회개는 무엇인가?

물론 고난과 역경속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앞에 나와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산 후에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일이 잘되고 풀려서 과거의 부와 명예를 회복한다고 해도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그런데 정말 회개하고 진실한 믿음으로 죄와 탐욕을 버리고 진리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과거의 영화와 즐거움을 구하지 않는다.

실제로 예수 믿기 전에 하나님의 진리안에 거하기 전에는 세상의 방법대로 죄와 불법과 거짓과 속임수로 쾌락의 방법으로 돈과 명예를 얻었기 때문이다.

정말 참 그리스도인이 되어 진리안에서 사는 성도는 결코 과거의 죄된 방법으로 얻은 재물과 명성을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고 그것을 좇아가지도 않는다.

진실한 회개는 죄와 불의함과 재물의 욕심과 세상의 쾌락을 거부하는 것이다.

오직 진리안에서 그리스도를 좇아 성령의 거룩하므로 살아가고 돈이나 명예 권세와 상관없이 오직 믿음으로 살다가 천국을 소망하는 것이다.

 

거짓회개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바로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덩어리 우박을 피해보려는 심산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 것이다.

바로는 만일 불덩어리 우박을 그치게 해주면 이스라엘백성들을 잡아두지 않고 내보내겠다고 말한다.

모세는 바로의 요청대로 여호와께 우박을 그치도록 기도하겠다고 말했지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그러나 왕과 왕의 신하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아직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출9:30 ) 모세는 바로와 그 신하들이 말로만 회개한다고 말했지 여호와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대놓고 말했다.

바로의 속셈을 모세가 알고 있다는 뜻이다.

모세가 바로를 떠나서 여호와를 향해 손을 펴고 기도하니 우뢰와 우박과 비가 그쳤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바로의 거짓 회개를 받아주었을까?

 

첫째 하나님은 바로앞에서 모세의 권위를 높여주시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하면 모세가 하나님에게 재앙을 내려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행하시고 재앙을 그치게 해달라고 하면 그치게 되면 바로는 모세를 마치 하나님처럼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는 모세를 여호와께서 보내신 진정한 선지자임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일점일획도 빠짐없이 듣고 순종하는 자에게 하늘의 권능을 입혀주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신실한 종들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참 신인 것을 이교도들과 불신의 세상사람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하고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한다.

 

둘째로 여호와께서 바로를 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바로가 회개를 했지만 다시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범죄를 행하면 그 마음이 매우 강퍅해지고 나중에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화인을 맞은 무감각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롬9: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여호와는 바로를 진노의 그릇으로 예비하셨기 때문이다.

회개하는 척하면서 다시 범죄하고 다시 회개하는 척하면서 또 범죄하고 이것을 반복하는 자는 결국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악하게 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는 것이다.

신구약안에서 거짓회개한 자들은 누구든지 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도 거짓회개를 함으로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았고 아합도 거짓회개를 함으로 결국 가장 악한 왕으로 남게 되었고 거짓회개를 한 가롯유다도 자살로 마감을 했다.

거짓회개의 본심은 탐욕에서 나온 것이다.

일회성으로 이번만 하나님의 징계를 피해보려는 얄팍한 마음에서 회개하는 척하지만 결국 다시 배도의 길 불순종과 악의 길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진실성없는 회개와 일시적 면피용 회개의 결과가 얼마나 악한지 하나님의 진노의 그릇으로 떨어지는 파멸인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거룩한 바보를 쓰신다

출 9:27-35

지난 월요일에는 태풍이 오는 가운데서도 우리 제천에서 ‘전국 감리교 목회자 장로 탁구대회’가 있었습니다. 장로님들은 우리 연회가 우승을 했는데, 목회자들이 문제였습니다. 대회 며칠 전, 목회자 선수가 없다고 참여해 달라고 해서 선수로 참가를 했습니다. 그래도 왕년에 탁구 좀 쳐 보았다고 자부해서 출전했는데 결과는 3전 전패...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첫 게임에서 저를 이긴 사람들은 모두 결승, 준결승까지 갔다는 점... 실력이 월등한 분들이라는 점... 대회를 마치고 오신 분들 중에 아는 분들을 접대까지 하고는 이번 주에 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때 탁구도 좀 쳐 보았고, 신학생 시절에 혼란기를 겪을 때는 당구도 쳐 보았고, 목회를 하면서는 테니스도 쳐 보았고, 전도사 시절과 부목사 시절에 교회학교 교사들, 청장년들과 클럽을 만들어서 볼링도 쳐 보았습니다. 한때는 축구도 했었습니다. 작년에는 모 권사님과 장로님의 권유로 골프채도 잡아보았습니다. 또 최근에는 또 모 권사님의 권유로 배드민턴도 몇 번 나가서 쳤는데 재미있어서 새벽에 가족들 다 데리고 나가서 칩니다. 몇 년 후에는 게이트볼도 하게 되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취미도 다양합니다. 등산도 즐깁니다. 낚시도 좋아해서 일 년에 한번 휴가 때는 해봅니다. 산에 나물 캐러 가는 것도 좋아합니다. 냇가에서 물고기 잡는 것도 좋아합니다. 물에서 다슬기 줍는 것도 좋아합니다. 요즘 같은 가을에는 산에 가서 밤을 줍는 것도 좋아합니다. 발로 밤 가시를 비벼서 토실한 밤을 꺼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모릅니다. 얼마 전에는 몇몇 분들이 밤 주우러 간다고 하는데, 저한테는 함께 가자고 하는 분이 한분도 없더라고요... 그리고 주운 밤만 가져왔습니다. 사실은 밤을 줍는 그 자체가 즐거운 것인데...

여러분 중에 목회는 언제 하냐고 하는 표정도 있으십니다. 염려 마세요. 저의 문제는 그 중에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뭐든지 좋아하는데, 푹 빠지는 것이 없습니다. 열중해서 그것만 하는 종목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탁구나 테니스도 전국 대회에 나가보았는데, 모두 예선 탈락입니다. 이번 주 중에 나에 대해서 묵상을 해 보았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거의 다 끼일 수 있는데, 특별히 그중에 잘하는 것이 없더라고요.

제가 고등학생 때, 누가 질문을 했습니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이냐고... 한참 생각 끝에 제가 대답을 했습니다. ‘저의 장점은 특별한 단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단점은? ‘제 단점은 특별한 장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특징을 갖게 하셨을까? 어떤 종목이든지 그 무리에 낄 수 있고, 참여하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취미든지 다 좋아하고, 그렇지만 절대로 푹 빠지지 않고, 제대로 한 종목을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없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관계를 폭넓게 가져서 그 속에서 평화를 만들고, 행복을 이루어 내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나라를 평화롭게 하고,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면, 목사가 해야 할 일은 주 안에서 교회를 평안하게 하고, 성도들을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기질들을 활용해서 교회와 성도들을 평안하게 하고 기쁨과 행복이 넘치게 하는 것이 내 할 일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와 기질, 특징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입니까? 그러한 자원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 보았던 출9:13~26의 말씀은 애굽에 내린 일곱 번째 재앙인 우박재앙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바로에게 ‘내 백성을 보내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로가 듣지 않아서 (14절)‘내가 이번에는 모든 재앙을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에게 내려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네가 알게 하리라’고 말씀하시고 경고하신대로 우렛소리와 우박을 내리시고 번갯불을 내리셨습니다.

행복의 지상낙원 같은 애굽이 순식간에 생지옥이 되었습니다. 아비규환과 같은 현장이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 말씀을 믿고 행동한 사람들은 피해를 덜 받았지만, 바로처럼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한 사람’, ‘아직도 교만한 마음을 버리지 못한 사람’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주인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계속되는 우박재앙으로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 멈추지 않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사람, 짐승, 그리고 모든 초목이 죽어갑니다.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습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다 잃게 됩니다.

바로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두려움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긴급히 사람을 보내 모세와 아론을 불렀습니다.

(27절)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왜 모세와 아론을 불렀습니까? 지금도 우박이 내리고, 난리가 났습니다. 다급합니다. 빨리 불러서 말합니다.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이 말의 진위를 논하기 전에, 바로도 이 상황에서는 회개를 합니다. 그런데 ‘이번은’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14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번에는’하나님이 모든 재앙을 바로와 그 나라에 내리시면서 ‘정말 이번에는’제대로 심판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가 ‘이번은’자신이 범죄하였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말의 뜻에는 또한 ‘이번만 넘긴다면’, 너무 어려워서 일단 위기만 넘기겠다는 뜻도 있습니다. 계속해서 바로가 말합니다.

(28절) “여호와께 구하여 이 우렛소리와 우박을 그만 그치게 하라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다시는 머물지 아니하리라”,

바로가 다급히 말하는 것은 그만큼 최악의 재앙이었고,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가 말합니다. ‘내 손을 여호와를 향해 펴면 우박 재앙이 멈출 것이지만, 왕과 왕의 신하들이 하나님을 아직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줄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박 재앙이 멈추니까 바로가 완악해져서 이스라엘을 내보내지 않습니다. 신하들도 똑같습니다.

(34절)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

(35절)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1. 왜 바로가 다시 완악해졌을까요?

 

물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처음에 모세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전부 말씀하셨습니다.

(7:3~4절)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바로가 완악하게 된 것은 물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바로의 입장에서 쉽게 허락할 수 없는 이유는 그동안 누려왔던 안락과 평안을 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와 변화가 생각까지는 갔으나 마음에는 안 갔습니다. 생각은 그렇게 해야겠다고 해도 마음으로는 내키지 않으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결국 복선이 깔려 있는 두 마음이었던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그런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떤 길이 옳은 길이고, 의로운 길인지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그 길을 가게 되지 않는 것입니다.

(눅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임을 압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해요.

찬송 445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태산을 넘어 험곡에라도 가는 거에요. 주님의 빛 가운데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태산을 넘고 험곡에 가는 것이 쉽지 않아요. 안 되는 것입니다. 찬송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성도 대답하였다”,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질 수 있겠니? 하고 물어보실 때 ‘예, 죽는 데까지라도 따르겠습니다’라고 말은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쉽게 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거룩한 바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거룩한 바보를 쓰십니다”,

 

2. 거룩한 바보가 무엇입니까?

1) 거룩한 바보는 주님께 맡기고 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의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8복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마5:5)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을 받은 자, 모두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 생활은 흥정이 아니라 절대의존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 의존이란 무엇입니까? 절대 의존은 종이배와 같습니다. 종이배는 자체 동력이 없습니다. 그냥 물결이 흐르는 곳으로 갑니다. 하나님의 이끌림이 있는 곳을 따라 그냥 갑니다. - 또 절대 의존은 수영과 같습니다.

제가 수영을 배우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사실, 어려서부터 물가에 갈 기회가 있으면, 아이들과 물장난하면서 수영을 조금 배웠습니다. 교회 중고등부 시절, 여름 수련회를 가면 물에 가서 놀았는데, 그때마다 잠수를 한다든지, 첨벙대며 하니까 ‘개수영’정도는 하게 되더라고요. 여기서 개수영이란 개헤엄을 말합니다.

그런데 십 수 년 전,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사분들과 함께 스리랑카 단기선교를 갔을 때입니다. 10여일을 다녀왔는데, 마지막 날에는 근사한 호텔에서 하루를 쉬었습니다. 그 호텔에 수영장이 있는데, 함께 간 분들이 다 수영을 잘 하는 것입니다. 그분들이 수영장에서 ‘안 목사님, 빨리 들어오세요’하는데 들어가기가 싫더라고요. 하도 권하길래 들어갔습니다. ‘수영 해보세요’, 아차, 그런데 그것이 실수였어요. 그때 수영을 하면 안 되는데, 그만 ‘개수영’을 ... 함께 갔던 분들은 제가 뭐든지 잘 하는 줄로 아셨습니다. 그래서 멋진 폼으로 수영을 할 줄로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볼품없이 ‘개헤엄’을... 그때의 그분들의 표정을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 돌아와서 그 바쁜 가운데서도 새벽기도 끝나고, 수영 강습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겨울에 수영장 찬 물에 정말 들어가기 싫은데... 그 이후, 저희 가족 모두를 차례로 수영을 가르쳤습니다. 지금 저희 가족은 물개 가족이고... 저도 정폼으로 시범 한 번 보여도 흉하지 않을 정도는 됩니다. - 그런데 수영을 처음 배울 때, 지독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처음인데 깊은 물로 그냥 걸어들어가래요... 억지로... 얼마나 무섭든지... 마구 허우적댔습니다.

그런데 호흡법을 가르쳐주고 들어가래요.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호흡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 그 이후에는 내가 물에 뜨려고 안 해도 됩니다. 그냥 물에 몸을 맡기면 됩니다. 그리고 숨만 쉬면 됩니다. 수영은 물에 몸을 맡기는 것입니다. - 여러분, 거룩한 바보의 삶은 수영과 같습니다. 그냥 맡기면 됩니다. 결국 거룩한 바보의 삶은 주님께 나를 맡기는 순전한 삶입니다.

 

2) 거룩한 바보는 내려놓는 삶입니다.

이제 가을이 깊어지면 나무에 단풍이 들고, 결국에는 그 잎들이 낙엽이 되어 떨어집니다. 이 낙엽을 생각해 봅니다. 나무가 잎이 무성해야 건강한 것입니다. 그 잎들이 햇볕을 받고 광합성 작용을 잘 해야 양분을 저장해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을이 깊어지면 그 잎들을 놓아야 합니다. 그 잎을 갖고 있으면 안 됩니다. 잎을 놓아야 다시 봄이 왔을 때, 깨어나서 새로운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하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고, 세상에서 약삭빠르게 실리를 좆는 것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장기려 박사’를 아십니까? 외과 의사셨고, 신실한 신앙인이셨고 장로님이셨던 분입니다. 춘원 이광수 선생이 ‘사랑’이라는 소설을 썼는데,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이 장기려 박사를 모델로 쓴 것입니다. 장기려 박사는 그 이야기만 하면 자신은 그런 인물이 못된다면서 극구 아니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장기려 박사는 의사로서도 놀라운 업적을 남기셨기에 국민훈장도 받으시고, 막사이사이상, 등 많은 상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1995년 12월 25일 성탄절에 별세하였는데, 자신은 집 한 칸 없이 협소한 사택에서 지내면서 마지막까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박애와 봉사정신으로 인술을 펼쳐 한국의 성자로 칭송 받고 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있지만, 사실 자신은 거룩한 바보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거룩한 바보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바보를 쓰십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정말 ‘거룩한 바보’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바보로 100% 손해 보고, 희생하고, 인내하셨기에 우리의 구주가 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로는 진정한 돌이킴이 없이 두 마음을 품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복선이 깔려있는 두 마음을 가지면 안 됩니다.

금주에 김소엽 시인의 ‘오늘을 위한 기도’라는 시를 보았습니다. “잃어버린 것들에 애달파하지 아니하며 / 살아있는 것들에 연연해하지 아니하며 / 살아있는 일에 탐욕하지 아니하며 / 나의 나됨을 버리고 / 오직 주님만 / 내 안에 살아있는 / 오늘이 되게 하소서 / 가난해도 비굴하지 아니하며 / 부유해도 오만하지 아니하며 / 모두가 나를 떠나도 외로워하지 아니하며 / 소중한 것을 상실해도 절망하지 아니하며 / 오늘 살아있음에 / 감사하고 격려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 누더기를 걸쳐도 디오게네스처럼 당당하며 / 가진 것 다 잃고도 욥처럼 하나님을 찬양하며 / 천하를 얻고도 다윗처럼 엎드려 회개하는 / 넓고 큰 폭의 인간으로 / 넉넉히 사랑 나누며 / 오늘 하루 살게 하소서”, 내용을 보면 거룩한 바보의 삶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너무 똑똑한 사람은 아닙니까? 손해볼 줄도, 인내할 줄도, 희생할 줄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은 아닙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거룩한 바보를 쓰십니다”,

찬송 450장,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바로와 같은 두 마음이 아니라 순전하게 거룩한 바보의 삶을 살아서 하나님께 쓰임받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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