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태생을 여호와께 돌리라
출 13:11-16
11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12 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과 네게 있는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13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니라
14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찌 됨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15 그 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셨으므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수컷들은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내 아들 중에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하리니
16 이것이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가 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
출 13:11-16 / [맏아들과 맏배] 여호와께서 너희와 너희의 선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희를 이끌고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으로 데려가시어 그 땅이 너희의 차지가 되거든 12) 너희는 어미의 태를 열고 처음 나온 맏아들을 여호와께 바쳐라. 너희가 기르고 있는 가축의 맏배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려라. 무릇 처음 태어난 수컷은 모두 여호와의 차지이다. 13) 나귀의 첫 새끼는 양 새끼나 염소 새끼로 대신 바쳐라. 만약 대신 무르지 않으려거든 그 목을 꺾어야 한다. 너희 자식들 가운데에서 맏아들은 모두 대신 물러야 한다. 14) 훗날 너희 자녀들이 너희에게 이러한 예식이 무슨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냐고 묻거든 너희는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주어라. `여호와께서 당신의 강한 손을 휘두르셔서 우리가 노예생활을 하며 말할 수 없이 고생하던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이끌어 내셨다. 15) 그때 바로가 우리를 내보내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고집을 부렸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 있는 것 가운데에서 처음 태어난 것은 모조리 죽이셨다. 사람의 맏아들이건 짐승의 맏배이건 간에 가리지 않고 모조리 죽이셨다. 그래서 어미의 태를 열고 처음 태어난 수컷은 모두 여호와께 희생제물로 드려야 하고 우리 자식들 가운데에서 맏아들은 대신 물러야 한다.' 16) 이러한 이야기를 너희는 너희 손에 새건 표나 미간에 붙이고 다니는 표지처럼 잊어서는 안 된다. 여호와께서 강한 손을 휘두르셔서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지 않으셨느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처음 난 모든 사람과 가축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부연하는 모세(11-13) 모세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해서 지켜야 할 사람이나 가축의 처음 난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규례를 더 자세하게 설명합니다(2). 아들 중에 첫 아들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데 짐승과 같이 죽여서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짐승 중에서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고 하셨는데 처음 난 수컷으로 여호와께 바치는 이유는, 애굽에서 처음 태어난 것이 죽임이 되는 환난 중에서도, 이스라엘의 처음 낳은 것은 구원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라고 하신 것은, 나귀는 불결한 동물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그 대신으로 흠 없는 어린 양 한 마리를 바치도록 하신 것입니다.
자손에게 알려줄 것을 다짐함(14-16) 이스라엘 민족은 처음 난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문제에 대해 자손들에게 알려줄 것을 다짐하며, 처음 난 것에 대한 하나님의 권리를 출애굽 사건과 관련하여 설명합니다. 마지막 재앙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의 처음 난 것들을 구원하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애굽에서 처음 낳은 자들이 죽임 당하는 재앙에서 그들만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을 처지에 있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의 생명은 이제부터 그들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또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가 되리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우둔함을 아시기 때문에 자주 새겨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드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방법으로 날마다 말씀을 묵상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되새겨야 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삶의 기준도 제시하십니다.
적용: 당신은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신앙의 어떤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우리는 아무것이나 되는 대로 하나님께 드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구별하는 것은 거룩한 삶의 기본입니다. 나를 주님께 드린다는 것 역시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고 이 모든 것을 주셔서 이 땅에 살게 하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시며 나는 그분의 소유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 설 교 >
장자죽음 재앙에서 살아남은 이스라엘의 장자 대신에 하나님은 누구를 헌신하게 명했는가?
출 13:11-16
1. 믿는 성도들은 오늘도 상을 받기 위해 경주하는 경주자와 같습니다(고전9:24). 그렇다면, 믿는 성도들은 장차 어떤 상을 받게 됩니까?
2. 믿는 성도들이라고 해서 누구나 상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믿는 성도들 중에서 다음과 같은 두 종류의 사람만이 상을 받게 됩니다. 첫째는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는 자가 상(브라베이온=prize)을 받게 됩니다(고전9:24~27, 빌3:13~14). 둘째로,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주와 복음을 위해 일한 자가 일한만큼 또한 보상(미스도스=reward)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부지런히 상(목표)을 향하여 달리지 않는 자나 부지런히 일하지 않는 자에게 상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도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열심히 달려야 하며,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충성봉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오늘도 충성봉사해야 하는지 그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출13:12~15)
3. 믿는 성도들이 오늘도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충성봉사해야 하는 이유는 오로지 상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핏값을 주고 우리들을 사신 바 된 되었기에,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주님의 소유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소유가 되어있는 우리는 나의 주인되신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구약시대에 장자 대신에 바쳐진 레위인(제사장포함)이 주님께 충성봉사했던 것처럼 우리 믿는 이들도 죄악 가운데 빠져있는 저 불신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충성봉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자신의 죄 때문에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지만 주님께서 대신 죽어주심으로 우리를 사망권세로부터 살려주셨고, 우리를 구약시대 레위인처럼 주님께 속한 자로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이스라엘의 장자 대신에 바쳐진 레위인과 같은 존재라는 말은 대체 무슨 뜻입니까?
4. 오늘날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레위인(제사장)과 같은 존재들입니다(벧전2:9).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구약시대에 출애굽하던 이스라엘 백성 중에 장자와 짐승의 초태생은 다 애굽에 내린 장자죽음재앙에 의해 마땅히 죽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어린양을 대신 죽여서 그것의 피를 좌우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게 함으로 죽지 않게 했습니다. 다시 말해, 어린양이 대신 죽어 사람을 살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사용된 유월절 어린양은 인류의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던 우리 주 예수님을 예표합니다(고전5:7, 요1:29). 고로 예수님께서 유월절양으로 오시어 대신 죽었기에 모든 죄인들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이 끝난 이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기의 장자와 초태생을 대속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출13:12~15). 그런데 여기서 "대속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와 초태생을 죽이라는 뜻일까요? 아니면 그들을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라는 뜻일까요? 그것은 후자에 해당합니다(출14:12).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장자와 초태생을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였습니까?(민3:12~13, 41.45)
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 중 장자 대신에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하나님께 바쳐 일하게 하셨는데, 그들은 바로 레위인들이었습니다(민3:12~13,41,45). 레위인들은 회막과 제사장을 돕는 일을 하는 존재들이었고, 그 중에서 아론과 그의 후손들은 제사장으로서의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장자 대신에 레위인들을 하나님께서 바치게 명하셨고, 초태생 대신에 레위인들의 초태생을 바치도록 했습니다. 그리하여 레위인들(제사장 포함)은 그때부터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되어 쓰임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레위인들이 하나님께 바쳐져서 일해야 할 시간은 영원무궁한 기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진짜 유월절양이 오시어 대신 죽을 때까지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골고다언덕에서 십자가형으로 죽으시던 날에,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의 역할은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예수께서는 자신의 피값으로 모든 인류를 사셨기에, 오늘날의 모든 믿는 성도들은 레위인들 대신에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고전6:19~20).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b~20)" 그러므로 오늘날 믿는 성도들은 구약시대로 치자면 이스라엘의 장자같은 자요, 그 후에는 레위인과 같은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베드로는 우리 믿는 성도들을 일컬어서,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그의 소유된 백성(벧전2:9)"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소유가 된 성도들은 어떤 일을 감당해야 합니까?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 대신 어린양으로 죽으셨다는 사실을 전달하여 다른 사람들도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힘쓰는 일입니다(벧전2:9b). 그렇다면 나는 과연 구약시대 레위인이자 신약의 제사장으로서 죄인들로 하여금 죄사함을 받아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데 그 일을 돕고 있습니까?
벌써 한 해의 반이 지났습니다. 남은 기간을 어떻게 선용할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내가 감당해야 할 레위인이자 제사장의 직무도 생각해보아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열명의 나병환자를 치유한 뒤 돌아와 사례한 사마리아 나병환자 외에 다른 아홉 명은 어디 있으며 왜 사례하지 않느냐고 지금도 물어보시고 있습니다(눅17:11~19).
무엇이 대물림되고 있습니까?
출 13:11-16 / 송상철 목사
생명 있는 것은 갈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우리 신앙의 맥도 끊어지지 않고 갈수록 커지고 강해지고 풍성해져야한다. 신앙이 대물림되어야 한다. 죄악이 대물림되지 않고, 저주가 대물림되지 않고, 하나님 은헤와 복이 대물림되기 바란다. 바나 리서치가 미국의 자녀들 중에 교회 다니다가 교회를 떠난 20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44%가 고등학생 때 교회를 떠나고, 40%가 중학생 때 떠나고, 11%가 대학 시절에 교회를 떠났다고 한다. 이유는 성경에 대한 믿음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가정의 신앙교육과 주일학교의 말씀교육이 자녀들에게 성경적인 믿음과 세계관을 확실하게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녀들은 자기 주변과 가족과 교회에서 정말 구원받고 변화되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 못했다고 한다. 영국은 수 백년 동안 위대한 설교가와 전도자와 선교사들을 수 없이 배출한 나라지만 1969년 이후 1,500개 이상의 교회가 문을 닫고 박물관, 체육관, 옷 가계, 음악 감상실, 술집, 나이트 클럽, 문신가계, 이슬람사원, 힌두교 사원이 되었다. 미국도 점점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한국도 그렇게 변질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유월절을 기억하여 지키라! 자녀들에게 유월절 구원과 그 내용을 가르치라고 하셨다.
1. 구원을 누리면서 즐거워하자!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했다. 영적인 능력은 기쁨에서 나온다. 기뻐하는 것이 능력이다. 복음은 죄와 사단의 권세를 깨뜨린 십자가의 능력이요 승리다. 복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이다. 복음은 승리요 능력이다. 그런데 왜 복음을 믿으면서 능력이 없나? 복음의 기쁨, 복음의 행복이 없기 때문이다.
1). 과거의 구원을 회상하여 오늘의 축복으로 누려라! 유월절을 절기와 축제로 만들어서 지키라고 하셨다. 구원이 과거사건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구원은 과거에 완성되었지만 오늘 헌재에 그 능력으로 사는 것이다. 이미 영생을 얻었지만 그것이 과거로 지나간 것이 아니라 지금도 효력을 나타내서 현재 영생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다.
2). 얼굴과 손에 구원 받은 표적이 있게 하라! 손에 기호를 만들고 미간에 표를 만들라고 했다. 미간은 얼굴의 중심이다. 거기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표시가 있게 하라는 것이다. 무슨 표시일까? 구약에는 어떤 색을 칠했다. 그러나 진정한 표시가 무엇일까? 얼굴에 나타나는 웃음과 인자함과 하나님을 닮아감이 구원 받은 표시이다.
손은 일하는 지체를 대표한다. 손으로 하는 일에도 구원 받은 사람의 표시, 복음의 표시기 나타나게 하라는 것이다. 힘들고 어려워도 복음신앙으로 일하면서 웃어보라! 감사하라! 칭찬하고 격려해보라! 그러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난다.
2. 확실한 믿음의 대물림 방법을 찾자!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열두 아들을 낳았다. 하나님의 약속은 430년이 지난 후에도 그 후손들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수 있는 믿음의 자리에 서 있는가? 켄햄의 책을 보면 최근 22,000명의 성인과 2,000명의 십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는데, 19%는 한 번도 교회를 가지 못했고, 61%는 20대가 되면서 교회와 멀어졌고, 20%만 영적인 삶을 유지한다고 대답했다. 사람에게 돈이 중요하고, 학교공부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우리 자녀들이 믿음을 떠나고 하나님을 떠난다면 과연 무엇이 남겠는가?
1. 더 열심히 복음의 말씀을 가르쳐야한다. 5가지 핵심신앙을 확실하게 가르쳐야 한다. 1).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를 가르쳐야한다. 이 세상과 인간은 진화론자가 말하듯 진화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2). 인간의 타락과 죄악상을 가르쳐야한다. 모든 인간의 문제와 불행은 죄에서 온다. 3).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가르쳐야한다. 4). 은혜로 믿음을 통해 얻는 영생을 전해야한다. 5). 재림과 심판과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야한다. 우리 집 자녀들이 나를 통해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고백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주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2. 복음을 누리며 그 능력을 보여주어야한다. 복음은 이론이 아니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율법은 정죄하고 비판한다. 율법적으로 살면 다 상처만 받는다. 복음은 용서와 축복과 격려다. 복음으로 용서하고 격려하고 품어주면 능력이 나타난다. 우리가 교회에서 복음을 말하지만 집에 가면 아이들을 율법적으로 대하기가 쉽다. 은혜로 감동주기 보다는 책망하고, 기도해주기 보다 소리를 지르며 닦달하기가 쉽다. 이들은 부모를 통해서 복음으로 살면서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감동받기를 원한다. 부부간에도 열심히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고 축복하기를 힘써야 한다.
3. 가정에서 열린 전도 모임을 시작해야한다. 열린 모임은 가정에서 모이는 소그룹 전도 모임이다. 믿지 않는 이웃을 초청해서 섬기며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우리 가정이 복음의 진원지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온갖 축복을 복음 전하는 사람과 그 가정에 부어주신다. 열린 모임을 시작하는 가정은 엄청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복음을 위해 집을 개방하고 사람들이 와서 예수 영접하고 변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자녀들이 부모가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 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분명히 복음신앙을 대물림받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 돌리라
출 13:11-16 / 배진기 목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통의 애굽 땅에서 기적의 손길로 인도하여 내신 후 하나님이 약속하여 주시기로 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면서 “처음 난 것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출애굽의 기적에 있습니다.
출애굽기12:29-30에 “(29)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30)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 라고 기록한 것처럼 하나님은 애굽의 장자와 처음 난 것을 치셔서 바로를 굴복 시키고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오도록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장자와 처음 난 것들을 치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대속물로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므로 죽음의 사자가 이스라엘 집을 지나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유월절 어린양을 잡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것”으로 “제일 처음의 것”을 요구 하신 것은 소유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한 요구였습니다. 그래서 본문13절에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니라”고 말씀하심과 같이 하나님의 요구 조건에 대해 대속을 허락하셨습니다.
대속에 대해 출애굽기30:12-16에 “(12)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것을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하려 함이라 (13)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14) 계수 중에 드는 모든 자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15)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16)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리라”고 구체적인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유대인들은 은 반 세겔의 속전을 해마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와 드렸습니다. 그래서 로마시대에는 성전세를 통해서 로마제국 전 지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출애굽의 은혜는 오늘 우리 구원의 예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 죄를 대속하는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누는 성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대속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드리게 하는 성례전인 것입니다.
영적인 가나안에 들어온 우리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셨던 것처럼 “제일 처음의 것을 구별하여 돌리라”고 요구 하십니다. 이는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맺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아무런 관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우리가 아무리 부르짖고 구하여도 벽을 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분명하게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온갖 복을 나의 것으로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성찬을 나누면서 처음의 것을 여호와께 구별하여 돌려드림으로 우리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명하게 갖도록 합시다. 그렇다면 오늘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는 처음의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로, 차례차례 질서 있게 삽시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질서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질서 있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는 질서와 조화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트리면 재앙이 일어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 오묘하신 섭리로 다시 만물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어 가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질서를 따라 완벽한 구원을 이루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지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분에 따라 즉흥적이거나 충동적으로 일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구약의 예언에 따라 차례차례 질서 있게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질서를 따라 차례차례 일을 이루신 것을 기념하라고 고린도전서11:23-34에서 성찬의 규례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요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고백하심으로 완벽하게 지불되었습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은 우리는 이제 우리가 차례차례 질서 있게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최우선 순위를 여호와께 돌리며 살도록 합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셔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제일 소중한 것이 시간이며 이 시간은 하루하루 새롭게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루 중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바로 우리의 초태생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루의 시작이 되는 잠에서 깨어나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일어나서 하루를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는 삶의 습관을 갖도록 하십시요. 즉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새롭게 확인하고 하루를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꼭 성전에 올라와서 새벽기도를 드리는 것만이 첫 시간을 드리는 일은 아닙니다.
각자의 환경과 여건에 따라 하나님께 첫 시간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루의 첫시간을 드림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시간에 우리와 동행하시며 도우시므로 모든 시간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토록 해주실 것입니다.
당연히 한 주일의 첫 시간이 되는 주일을 성수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일성수은 우리가 어김이 없이 지켜야 할 “여호와께 돌려 드리는 것” 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일을 결코 소홀하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율법적으로 주일을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의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하여 주일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주일을 범하거나 어쩔 수 없는 형편을 들어 주일을 범하지 말고 시간의 최우선순위를 주일성수에 두고 삽시다.
주일성수를 율법적인 구속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어기고 한 주간을 시작하면 마치 복을 부어주실 그릇을 엎어 놓는 것과 같습니다. 삶의 최우선순위를 하나님을 섬기는데 두는 사람은 ‘주일성수’에 장애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처음 시간을 드리는 일 뿐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시간 드리는 것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시간 중에서 더욱 많은 시간들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후서3:8에 보니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말씀 하셨는데 세상에 드린 시간은 하루의 가치로도 인정받지 못하나 하나님께 드린 하루는 천년의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삽시다.
① 급하고 중요한 것 (Urgent and Important)
② 급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 (Urgent but Not Important)
③ 급하지는 않으나 중요한 것 (Not Urgent But Important)
④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것 (Not Urgent & Not Important)
삶의 우선순위는 행하는 데 있지 않고 그 삶의 질에 있습니다. 세상에 드리는 것은 버리는 것이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버는 것입니다.
성찬을 나누며 차례차례 질서를 지키며 지혜로운 삶을 살기를 결단합시다.
둘째로, 차근차근 여유있게 삽시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명하게 하고서 매사를 행하므로 조급하게 좇기는 삶을 살지 말고 차근차근히 모든 것을 살피며 준비하는 여유 있는 삶을 삽시다.
환경이 우리를 여유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질서와 조화가 이루어져야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유 있는 삶을 위해 무슨 일을 계획하든지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차근차근히 계획하십시오. 아무리 지혜로운 생각도 하나님 앞에 올려놓지 아니하면 미련한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1:25에서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라고 강조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매사에 차근차근하게 하나님께 묻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 먼저 물어보고 계획을 세우므로 하나님의 일을 크게 이룰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16:6-10에 바울이 하나님께 물어보고 모든 일을 계획하고 진행한 좋은 예가기록되어 있습니다.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차근차근하게 무슨 일을 시작하든지 하나님께 먼저 예배를 드리고 시작하십시오. 계획을 세우는 일에 하나님께 먼저 기도할 뿐 아니라 무슨 일이든지 그 일을 시작하고자 할 때에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생활자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바로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1:8에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고 하나님이 친히 자신을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을 알파가 되시는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면 오메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지시고 함께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계획하거나 실시할 때에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제일 먼저 계산하고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차근차근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 이것이 바로 우리의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아름다운 성도의 생활자세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0:31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매사에 자신의 손익을 계산하거나 어떤 이해득실을 따지게 될 때에 그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계산하는 습관을 갖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차근차근하게 조급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께 물어보고,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최우선으로 살아갑시다.
오늘 성찬을 나누면서 차근차근하게 질서있는 성도의 삶을 결단하도록 합시다.
셋째로, 차곡차곡 준비하며 삽시다.
풍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차곡차곡 준비하고 절약하여 모으는 사람에게 진정한 풍요가 찾아옵니다. 일확천금의 풍요는 오히려 우리 삶을 병들게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요구하심에 대해 차곡차곡 드리며 삽시다. 하나님의 요구하심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우리의 소산 곧 우리의 물질 가운데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물질을 드리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물질은 우리의 마음을 달아보는 저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6:21에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물질의 처음 것을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물질을 계산함에 있어 항상 하나님께 드릴 것을 먼저 떼어놓고 그 다음의 것을 계산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물질의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다쓰고 남아야만 드린다면 그것은 드리는 것이 아니라 던져주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먼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계산해놓고 차곡차곡 하나님께 드리고 우리의 쓸 것을 나눌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복을 넘치도록 부어 주실 것입니다. 최우선으로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십일조를 잊지 말고 차곡차곡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성경에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분명하게 못박아서 말씀 하셨으므로 우리는 물질을 계산함에 있어 하나님의 것을 제일 먼저 계산하고 나서 다음의 것을 계산하여야 할 것입니다. 십일조와 헌물에 대해 말라기3:8-12에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약속과 명령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지켜 주심의 은혜 속에서 우리는 차곡차곡 물질 관리를 잘 하며 지혜롭게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처음 것을 차곡차곡 하늘 창고에 쌓아놓으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차곡차곡 채워주십니다.
갑자기 큰 물질이 생기기를 바라는 허망한 마음을 버리고 차곡차곡 작은 것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근검절약하며 삽시다.
성찬을 나누며 차곡차곡 준비하며 살기를 결단합시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는 “제일 처음의 것”을 분명하게 구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는 하나님의 요구를 하나님과 우리와의 분명한 관계를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배려임을 알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신 우리의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념하면서 처음 것을 여호와께 돌려 드리므로 모든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고 차례차례 질서있게 삽시다. 차근차근 여유있게 삽시다. 차곡차곡 준비하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