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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과와 설교

20220205 / 단 10:1-9 / 힛데겔 강 가의 환상

작성자이윤형원로목사|작성시간22.02.02|조회수847 목록 댓글 0

힛데겔 강 가의 환상

단 10:1-9

1 바사 왕 고레스 제삼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환상을 깨달으니라

2 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3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4 첫째 달 이십사일에 내가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 가에 있었는데

5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6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7 이 환상을 나 다니엘이 홀로 보았고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은 이 환상은 보지 못하였어도 그들이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느니라

8 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환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9 내가 그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의 음성을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느니라

단 10:1-9 / [다니엘이 본 마지막 환상] 바사 왕 고레스가 나라를 다스린 지 3년째가 되던 해에 다니엘에게 묵시가 내렸다. 이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그 묵시는 참된 것이었으며 큰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다니엘은 이 묵시를 보고 그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달았다. 2) 그 즈음 나 다니엘은 시름에 젖어 세 이레동안 슬퍼하며 지내야만 하였다. 3)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고 맛있는 음식조차도 입에 대지 않았다. 고기뿐 아니라 포도주도 먹지 않았고 머리에 기름 한 번, 빗질 한 번 하지 않은 채 세 이레를 보냈다. 4) 그해 1월 24일에 나는 힛데겔이라고도 부르는 티그리스 강가에 있었다. 5) 눈을 들어 보니 가는 세마포옷을 입고 허리에는 순금으로 된 허리띠를 두른 사람이 서 있는 게 아닌가! 6) 그의 몸은 노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고 그의 얼굴은 번갯불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또한 눈은 불처럼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의 팔과 다리는 번쩍번쩍 은이 나는 놋쇠처럼 광택이 나 있었고 그의 목소리는 수많은 군중들이 함성을 지르는 것처럼 들렸다. 7) 이러한 광경은 나 다니엘 혼자만 보았다. 나하고 같이 있던 사람들은 이러한 광경을 쳐다보지는 못하였어도 혼비백산하여 그저 어디든지 숨을 곳을 찾기에 바빴다. 8) 그래서 나 혼자만 남아 그 놀라운 광경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온몸에 힘이 빠져 나가고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정말 몸에 맥이 빠져 어찌할 줄 몰랐다. 9) 그때 어떤 목소리가 들려 와 그만 의식을 잃고 얼굴을 땅에 댄 채로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고레스 왕 제 3년에 다니엘이 큰 전쟁에 대한 환상을 본 후 3주 동안 슬퍼하며 음식을 먹지 않고 기름을 바르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의 경건(1-3) 고레스 왕 3년에 다니엘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이때는 유다 백성 일부가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귀환한 때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벨론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비록 연약해진 몸의 한계 때문에 고향으로 갈 수 없었지만 그는 죽음을 앞둔 노년에 이르러서도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힛데겔 강가에서 다니엘은 큰 전쟁의 환상을 본 후 3주 동안 슬퍼합니다. 이미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했지만, 앞으로도 큰 환난이나 고통이 있을 것에 대해 다니엘은 슬퍼하며 음식을 절제하고 기름을 바르지 않았습니다(3). 좋은 떡과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육신을 즐겁게하는 행위인데, 이를 절제함으로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은 강한 태양 빛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기름을 발랐는데, 다니엘은 기름을 바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는 다니엘이 밖에 나가거나 사람을 만나지 않고 하나님과 기도하면서 3주 동안 지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금식하며 기도할 때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행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보좌 환상(4-9) 다니엘이 계시를 받은 날짜는 정월 24일이며, 장소는 힛데겔이라는 큰 강가로, 힛데겔은 지역적으로 티그리스를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에도 종종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을 보여 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본문 5-6절에 묘사된 부분은 요한계시록에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유사합니다(계 1:13-16). 다니엘이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을 접하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떨며 도망갔습니다. 오직 다니엘만 환상을 목격합니다. 다니엘은 젊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언제나 기도하기에 힘썼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지정한 곳으로 경외와 겸손함으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같은 마음으로 나아오는 자에게는 그의 중심을 보시고 깨달음과 계획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적용: 누구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미래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일에 우리의 열정을 낭비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미래를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만을 붙잡는 것입니다.

 

< 설 교 >

말씀이 찾아와 임하다

단 10:1-9

혼돈의 역사, 하나님의 관심

 

1. 다니엘은 큰 전쟁에 관한 환상을 보게 됩니다. 이 큰 전쟁은 장차 페르시아와 헬라 제국간의 전쟁입니다(단11:2). 그런데 장차 일어날 그 전쟁 자체가 성경의 주된 관심이 아닙니다. 성경의 관심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일어날 일(단10:14)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항상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님 백성의 삶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전에 우리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내일을 전혀 예측할 수도 없는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때에 힘겨운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경건한 어른이 그립습니다

 

2. 오늘 다니엘의 환상은 바사 왕 고레스 제 삼년의 일입니다. 그런데 단 1:21을 보면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이방의 궁중에서 일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환상은 다니엘이 90세 전후의 기력이 쇠한 나이가 되어 이미 은퇴한지 2년 후에 받은 환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90세 전후의 어르신, 더 이상 현역에 머무를 수 없어 은퇴하신 다니엘 어르신인데 이 환상을 본 후 다니엘은 세이레(21일)동안 최소한의 음식물만 섭취하시면서 장차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통 받을 자기 백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다니엘의 이러한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경건한 어른에 대한 큰 그리움을 안겨줍니다. 다니엘은 비록 현역에서 더 이상 뛸 수 없을 정도로 육체의 기력이 쇠한 노인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자기 백성을 위해 생명을 걸고 기도합니다.

 

기도에 은퇴란 없습니다

 

3. 그리스도인은 기도에 있어서는 결코 은퇴란 없음을 배우게 됩니다. 현역에서의 은퇴가 마치 믿음의 경주를 다 마친 것처럼 인식되어서는 안됩니다. 환상을 통해 알게 된 앞으로의 역사는 어쩌면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는 다니엘에게는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일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것이 경건한 어른의 모습입니다. 어른의 모델이 없다고 아우성치는 이 시대 우리에겐 다니엘과 같은 경건한 어른들이 너무 필요합니다.

 

정체성: 다니엘로 살아가기

 

4. 큰 전쟁의 환상을 목격하는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로 불리고 있습니다(1절). 어린 나이에 포로로 끌려왔던 다니엘은 바벨론의 궁중에서 70여년을 벨드사살이란 이름으로 불리워졌습니다. 이름이란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벨드사살은 ‘벨(바벨론의 신)이 보호자다’라는 뜻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심판주시다’라는 뜻입니다. 벨의 보호 아래 살 것인가? 심판주 되신 하나님의 그늘 아래 살 것인가? 다니엘은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정체성에 있어서는 회색지대란 없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항상 자신을 ‘나 다니엘’로 불렀습니다(2절, 7절).

 

오늘 우리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까? 물질의 보호 아래 사는 벨드사살의 이름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심판주 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다니엘의 이름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벨드사살과 다니엘 두 이름 모두를 갖고 살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처럼 하나님과 물질은 결코 겸하여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물질의 보호 아래 거하길 원하는 이 시대에 다니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가 갖는 특별한 은혜

단 10:1-9 / 박 상희

바사 왕 고레스 삼년에 다니엘이 큰 전쟁에 관한 환상을 보고 깨달고 장차 이스라엘 과 백성들이 당할 고난과 어려움에 대해 슬퍼하며 3주 동안 금식기도 하는중에 환상으로 다니엘 에게만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환상으로 보게 하셨다.

다니엘은 10대의 나이에 바벨론 포로로 끌려와 지금 90 가까운 나이에 이르도록 평생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던 기도의 사람이었다. 10대 때는 왕의 음식을 거절하며 자기의 몸을 부정한 음식으로 부터 지키기 위해 그 영적도전에 지지않고 기도로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거룩을 지켜왔었고 다리오왕 시절에는 왕 외에는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놓겠다는 다니엘을 향한 엄청난 계략 앞에서도 그것을 알면서도 하루 세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기도를 했던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런 다니엘이 지금 영적인 부담감을 가지고 금식기도를 한다. 누구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를 하는가?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기도를 드린다. 다니엘은 그 시대의 영적인 지도자이다.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아닐진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가진 지금으로 말하면 평신도 지도자이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의 기준은 어떤 직분이나 역할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며 사랑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사람을 직분에 관계없이 쓰시는 것 같다. 직분을 가졌다 해서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영적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런 다니엘처럼 살기 위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도 교회에서 평신도 지도자라고 일컬음을 받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 속사람이 영적인 능력을 갖고 살아가는 평신도 지도자 인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나무는 열매로 그 나무를 알게 되는데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해 준비하며 뿌려야할 것들을 뿌리며 좋은 나무로 매일 준비되고 성장하는 나무로 자라가길 기도드린다. 나라와 민족을 기도 하는 다니엘은 괴로와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나도 그런 다니엘의 모습을 담고 싶다.

 

지금의 미국이나 한국의 영적모습과 교회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가? 거의 마음의 부담감이나 영적으로 슬퍼하며 내 기도 시간에 깊은 곳에부터 이런 부도덕하고 하나님 나라를 져 버리는 그런 모습 앞에서도 거의 울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 의식도 없이 살면서 그런 영적인 부담감도 없으면서 지도자라는 타이틀이 붙혀진 나의 모습에 화가 난다. 왜 나는 그런 영적인 부담감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갈까? 하나님나라를 꿈꾸며 이 땅에 복음이 땅끝까지 전달되고 구원 받는 민족과 족속에 대한 비젼과 꿈을 가지고 기도하며 말씀 공부하지만 나의 속사람은 그런 부담감이 없고 마음 깊히 담고서 눈물로 기도하는 내 모습은 솔직히 아니다. 주님께서 은혜 주셔서 그런 마음을 주셨으면 좋겠다. 기도제목이 하나 늘어간다.

 

다니엘이 다른 사람들과 있으면서 혼자만의 환상으로 영광스런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신다. 사도행전 9장에 나오는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만난 주님을 다니엘이 본다. 다른 사람은 있어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지만 다니엘은 그 영광스런 주님의 모습에 자기 자신의 육체적인 반응까지도 다른 모습으로 보게 하신다. 지금의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며 마치 그것을 가지면 다 가진 것처럼 여기며 눈에 보이는 것들을 남들보다 더 많이 가져보려는 싸움판에서 믿는 자들도 믿음의 정체성을 다 버리고 그 싸움판에 끼여 정신없이 살아간다. 그런 가운데서도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예수님을 나는 알아보고 매일 그 분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멋있는 인생이 기도하는 자의 특권이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이 내 믿음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다른 것이 없어도 예수님으로 충분한 인생이 복된 인생이다. 이런 영적인 안목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라도 기도하지 않는 인생앞에서 하나님은 매일 기도하는 내가 ‘갑’으로 살아가고 기도 하지 않는 인생은 ‘을’로 살아가도록 이끄실 것이다. 평생 기도 하는 다니엘의 인생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믿음을 타협하거나 져버리지 않는 다니엘을 하나님은 ‘갑’으로 살게 하신 귀한 축복이 오늘 내 앞에서 내 눈으로 경험되는 하루가 되길 기도드린다.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계획

다니엘 10:1~9

이제까지 다니엘서를 통해 알아본 다니엘의 환상은 바벨론-메대/바사 제국의 왕의 시대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오늘 다니엘이 본 환상은 바사의 고레스왕 제 3년에 보았던 환상입니다. 바벨론-메대/바사제국-바사제국으로 나라가 바뀌는 동안 다니엘에게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환상이 있었고 오늘은 바사 제국의 시대에 보여주었던 환상을 기록한 것이 다니엘 10장에 나오는 내용인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 환상을 보고 크게 충격을 받고 슬퍼하며 음식을 먹지 않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기도하였다고 나옵니다. 환상을 볼 때 너무 두려워 죽게 된 듯 하였다고 합니다(단 10:8). 왜냐하면 이 환상이 바로 곧 있을 큰 전쟁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단 10:1).

 

그런데 이렇게 환상을 보고 두려움에 빠져있던 다니엘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 그를 위로 합니다. 그 묘사한 모습이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이 묘사한 모습과 흡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10:5~6/계1:13~16)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고 하십니다.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와 하나님께 그의 삶을 거룩히 구별하여 드리던 그 첫날부터 (단1:8)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의 중심을 보고 기뻐하시며 그를 택하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그를 통해 알리시기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들을 때에 위로를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환상을 볼 당시 살고 있던 시대는 바사제국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곧 헬라의 군주가 일어나 바사의 군주와 싸울 것이라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단10:20) 당시 바사는 아주 강력한 제국이었으며 헬라 제국 또한 강한 제국이었습니다. 알렉산더가 이끄는 헬라 제국과 바사 제국의 전쟁은 그만큼 대전이 될 것이며 충격이 큰 전쟁이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라 전쟁이라고 하면 막연히 사람이 많이 죽고 폐허가 된 건물과 슬픔의 모호한 감정을 떠올리며 일어나지 않아야 할 사건이라고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직접 전쟁을 겪었습니다.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하여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많은 이들이 죽고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바벨론이 메대/바사 제국에 멸망당할 때에도 그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몇차례의 전쟁을 겪어 그 참혹함을 아는 다니엘에게 큰 전쟁이 또 일어날 것이라는 환상은 아주 두렵고 무서운 것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니엘의 두려움을 아시지만 장차 다니엘에게 일어날 큰 일을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두려움에 빠져 있도록 놔두지 않으시고 위로하시고 그 마음에 힘을 주셔서 이것을 능히 감당케 하시고 이것을 기록하여 글로 남기고 하나님의 예언과 약속이 성취된 것을 많은 이들이 알게 하고 그것을 안 사람들이 하나님의 전능하심, 역사의 주관자이며 통치자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그분께 돌아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주님의 주권 아래 있으니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서를 통해, 그리고 다른 구약의 예언서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과 계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고 행하심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구약과 신약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동일한 하나님이시며 앞으로 있을 일들 또한 그 하나님께 주권이 있음을 알고 그것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시대가 녹록치 않고 종말을 향해 가는 험한 세대가 온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능히 감당해나갈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일의 주권자이시며 그것을 허락하시는 이도 하나님, 그것을 이끌어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일과 계획이 때로 우리에게 두려움을 줄 때도 있고 부담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두려움이나 부담을 가질 이유가 없는 것은 우리의 그런 마음을 하나님께서 어루만지시고 이겨낼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시기 때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이루신 구원의 은혜 아래 우리가 값없이 그것을 받아 영생을 얻었듯이, 우리 앞에 놓여진 모든 상황과 문제들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끌어 나가실 것이기에, 우리는 단지 그것에 순종하여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이루는 것, 우리 교회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용해서, 우리의 교회를 사용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결국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을 받아 하나님께로 나오는 것,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제 계시록을 살펴보면서 나누었듯이 장차 될 일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시대는 환란과 고난의 시대입니다. 수많은 순교자가 나올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러한 것들에 미리 겁먹거나 염려할 이유가 없는 것은 바로 그 역사의 주관자와 그 모든 상황을 허락하신 이가 하나님이시며 그 일의 끝에는 결국 하나님의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끝까지 우리를 지키실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믿기에 우리는 오히려 그러한 가운데 마지막을 준비하며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며 참 소망을 가지고 그 모든 일을 담대히 싸워 이겨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서를 통해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보여주신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보여주시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1600년 동안의 긴 역사를 통해 말씀하시는 그것, 복음,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이 주시는 참소망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앞에 놓여진 현실의 상황이 힘들지라도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위로하시고 힘을 주셨듯이 동일하게 우리에게도 우리 마음을 살피시고 그것을 감당케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하루하루 깨어서 기도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새벽에 깨어 기도하는 것은, 바로 그때를 위한 시간이기도 한 것입니다. 마지막 때를 준비하며 미리 깨어 기도하고 주님의 뜻을 구하며 그것을 알고 하나님께 더 나아갈 때, 우리의 믿음이 그 안에서 더욱더 깊어질 때, 우리는 어떠한 순간이 와도, 마지막 때의 환란이 우리를 덮쳐도 우리 안의 참 소망,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위로와 참된 소망을 잡으며 굳게 서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도 하나님께 더욱 더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뜻과 지혜를 입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마지막 때를 위해 준비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인생에 중요한 것 2가지

단 10:1-9

 

1. 주님과의 만남

 

다니엘이 3주 동안 슬퍼하며 절식하며 간절히 기도할 때(2-3절), 무슨 기도를 했을까요?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대략 유추할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에서 다니엘이 큰 전쟁에 관한 환상을 보고 바로 이어서 간절한 기도를 한 것을 보면 그의 기도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중보기도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애국하는 여러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다니엘은 힛데겔 강가에서 세마포 옷을 입고 우바스 정금 띠를 띤 한 사람의 환상을 봅니다(5절). 그의 몸은 황옥 같고, 얼굴은 번갯빛 같고, 눈은 횃불 같고,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았습니다(6절). 그가 누구일까요? 천사라는 주장도 하지만 보통 성육신하기 전의 그리스도라고 봅니다. 다니엘이 이상 중에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환상은 다니엘의 영적 체험의 정점입니다.

간절히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하면 그 기도제목이 응답되는 축복 이전에 주님 만나는 축복을 얻습니다. 욥이 고난의 긴 터널을 지나고 어떤 축복을 얻습니까? 욥기 42장 10절에는 전보다 갑절을 소유한 욥의 축복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 전에 욥기 42장 5절에 나오는 욥의 다음과 같은 고백이 더욱 큰 축복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다른 어떤 축복보다 주님과의 만남 자체가 더욱 큰 축복임을 아는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2. 은혜와 비전

 

다니엘이 환상을 볼 때, 주변 사람들은 환상을 보지 못했지만 어떤 초자연적인 사건이 일어남을 감지하고 떨며 도망쳤습니다(7절). 그리고 다니엘은 극도의 충격을 받아 혼절했습니다(8절). 다니엘처럼 위대한 환상가가 환상을 감당치 못하고 쓰러지는 것을 보면 인간의 연약성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결국 다니엘이 위대한 환상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상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위대한 환상가가 된 것입니다.

사람은 한 시간의 예배와 기도로 위대한 환경의 변화가 일어나는 기적은 대체로 있지 않습니다. 모세가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엎드려 기도해도 바로의 마음은 변치 않았습니다. 다만 진실한 예배와 기도를 드리면 성령님의 은혜로 내 영혼이 감동을 받게 되고, 그때 내 지친 입술이 소망을 말하고, 내 눈이 환상을 보게 되는 신비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결국 신앙의 축복은 환경의 놀라운 변화로 인한 축복이 아니라 거룩한 환상을 가지게 되는 축복입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한결같이 비전을 가졌습니다. 비전에는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비전은 역사를 바꾸고, 역사를 창조합니다. 특히 그 비전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천사에게 말할 것입니다. “얘들아! 저 영혼을 봐라. 내 마음이 저 영혼의 심장에 있구나! 내가 그렇게도 원했던 하늘의 뜻이 저 영혼의 비전에 있구나! 저 영혼을 보니 내 마음이 정말 기쁘구나! 저 영혼을 통해 세계 선교가 멋지게 이뤄지겠구나! 이제 저 영혼과 가정과 사업은 특별관리에 들어간다.”

‘과거의 상처’보다 ‘미래의 비전’에 붙잡혀 사십시오. “그때 그렇게 할 걸!”하며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기보다는 다시 물을 길어 오겠다는 자세를 가지십시오. 눈이 뒤에 달리지 않음은 뒤를 보고 한을 품지 말라는 뜻이고, 귀 옆에 달리지 않음은 옆을 보고 한눈팔지 말라는 뜻이고, 눈이 앞에 달려 있음은 앞을 보고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복은 뒤가 아닌 앞에서 주어집니다. “괜히 그 일을 했다! 괜히 결혼했다!”고 뒤를 보지 말고 비전과 사명을 따라 앞을 보고 나갈 때, 준비된 복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다니엘의 정월 초하루

단 10:1-9

구정을 음력(a lunar calendar)라고 하는데 영어로는'Chinese New Year'라고 부릅니다. 아마도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지 않나 생각됩니다. 동양문화에서 초하루를 대단히 중요하게 취급하여 초하루에는 부정한 것을 보지 않고, 남을 욕하거나 험담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정월 초하루에는 “복 받으라고”서로 서로가 빌고 다녔습니다.

 

우리 성경에서도 정월 초하루는 상당히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모세가 하나님께 예배할 회막을 세우기 시작한 날도 정월 초하루 였고(출40:2).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 동안의 포로생활을 끝내고 바벨론에서 해방 받은날이 정월 초하루 였습니다(라7:9).그리고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날도 정월 초하루 였고(겔29:17). 에스겔이 흠없는 수송아지를 잡아 성소를 정결케 한 제사 날이 정월 초하루 였습니다(겔45:18).그리고(창8:)에 보면 노아의 홍수가 그친날이 노아의 601세 되던 정월 초하루날 이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도 보면 다니엘이 정월 초하루를 지난 다음날부터 21일간을 기도했는데 천사장 미가엘이 나타나서 기도를 방해하는 사단의 세력과 싸워서 이겼다 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2002년 정월 초하루를 이틀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주간을 기도하는 주간으로 삼았습니다. 성공적이며 승리하는 삶을 위해서는 기도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특히 사단의 역사를 물리치고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일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다니엘의 기도를 도우시던 것처럼 우리의 기도를 도우실줄 믿습니다.

 

(1)다니엘은 세이레 동안 슬퍼하며 기도했습니다(2절).

 

다니엘은 주전 600년전의 바벨론 왕국에 의하여 이스라엘이 정복당했을 때 바벨론으로 끌려온 노예중 한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어릴때부터 너무나도 총명하여 바벨로니아의 일곱 왕조를 섬겼고,바벨론이 망하고 메데왕 다리오와, 파사왕 고래스에게도 사랑을 받으며 지냈습니다. 어릴 때 포로되어 끌려왔는데 이젠 나이 90이 다 된 노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포로된지 70년만에 메데왕 다리오와,파사왕 고래스의 도움을 얻어 포로에서 해방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인들은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살발랏과 여러 많은 사람들이 성전 짓는 것을 방해하고 괴롭힌다는 소식을 듣게 된 다니엘은 너무나도 괴롭고 슬퍼서 3주 동안 금식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90노인이 분열되고 찢겨진 민족을 위하여 20일을 금식한다는 것은 보통 정신가지고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하는 것이 금식기도입니다. 에스더도 3일동안 금식기도 한 후에 민족을 죽음에서 건짐 받게 했고,니느웨성 사람들도 3일간 금식기도하고 회개하여 구원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절박한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58:6)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합니다. 여러분,지금 우리는 기도할 때입니다.

 

세계 강국 미국이 이란과 이라크 북한을 악의 3대 축이라고 하면서 압박을 가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인들은 많은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더욱 안절부절입니다. 북한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 국내 정치와 경제는 혼란에 빠져 있는데다가 미국 국방성에서는 한국에서 국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세계질서라는 것이 워낙 냉엄합니다. 그래서 어제의 적이 오늘 동맹국이 되고 어제의 동맹국이 오늘 원수가 되는 판국이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뭉치고 하나되지 않으면 의지할 데가 없는 불쌍한 국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렘5:1)하나님께서는 의인 한사람만 있어도 예루살렘을 망하지 않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니엘처럼 에스더처럼 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해야만 하겠습니다.

 

(2)기도는 영적 싸움입니다.

 

다니엘은 정월 초하루가 지난날부터 시작해서 21일동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도해도 확신도 없고 응답이 없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21일째 되던 날에 응답이 왔습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기도를 방해하던 악마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온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 기도하시다가 속히 응답이 없다고 뒤로 물러가면 안됩니다. 기도는 영적 싸움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상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 영계에서는 하나님의 응답을 가지고 오는 천사들과 악마와의 영적 싸움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악마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에게 상달되지 못하도록 결사적으로 방해합니다. 그래서 기도의 응답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끝까지 기도하면 천사가 나타나서 악마의 진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가지고 내려옵니다. 다니엘은 무려 21일만에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 끝마치고 집으로 가다가 기도의 응답을 받고 감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기도할 때 절대 날짜 계산도 하지말고 속단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기도는 낙심하지 않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단6:)에 보면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기도하는 길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예수님께서도 말씀 하셨습니다(마26:41).예수님께서도 습관에 따라 항상 기도하셨습니다(눅22:39). 그러므로 여러분,기도는 습관이 들어야 합니다. 다니엘처럼 기도 안하고는 못베기는 사람이 되어야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미국의 6대 대통령 에덤스도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도했고, 조지 워싱턴도 6시에 일어나 기도했으며, 링컨은 기도의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불퇴진의 기도를 하십시오. 영적 싸움에서 이겨야 하겠습니다.

 

(3)하나님은 정성을 원하십니다.

 

언젠가 미켈란젤로가 꽃 상자 하나를 만드는데 온 정성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귀족이 그를 지켜보다가 그에게 물었습니다.“그런 일에 그렇게까지 오랫동안 노력을 쏟아 부을 필요가 있습니까?”그러자 미켈란젤로가 말했습니다.“그것이 내 정신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대충 해치운 일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 대충 대충하신 일이 없으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일로부터 인간을 창조하신 일까지 어느것 하나 대충 해치운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무엇을 하던지 못해도 좋으니까, 정성을 다하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신6:5)“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어느 신학자는 말하기를 정성은 기적을 만드는 요소라고 말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덩이를 가지고 오천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를 남긴 기적도 어린 소년이 바친 정성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정성이 곧 기적의 시작입니다. 두렙돈을 바친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자랑스러운 것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의 정성 때문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헷셀포드)“하나님은 인간을 보실 때 완전함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보신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신다 하셨으며, 눈가림으로 대충 대충 하지말고 진심으로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정월 초하루,그리고 매달 초하루만 되면 우리 어머니를 따라 산신령을 섬긴다고 자주 따라간 적이 있습니다. 꽁고리 밥도 없어서 못 먹던 시절에 어디서 구해 오셨는지 쌀밥하고 떡하고 과일,대추,밤도 제일 좋은 것 골라 가지고 10리 길을 걸어서 절을 하고 왔는데 정성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복은 하나도 못 받았어요.정성은 좋은데 제사의 대상이 잘 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자들은 제사의 대상은 정확한데 정성이 부족해서 복을 누리지 못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섣달 그믐이고 내일 모래면 정월 초하루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달 보러간다,해맞이 간다,빌러 간다 정성을 다하는데, 우리 성도들은 너무 태연한 것 아닙니까?. 내일 새벽기도부터 의로우신 태양 되신 예수님을 보러 나오시기 바랍니다.(말4:2)에 보면 의로우신 태양(예수님)이 떠올라서 치료의 광선을 보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첫 열매입니다. 짐승의 첫 새끼,수입의 첫것,하루의 첫 시간,매달 초하루,정월 초하루,일주일의 첫날입니다. 정성껏 예물들고 지키시기 바랍니다.

 

(히11:4)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 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다니엘에게서 믿음의 어른의 길을 보다

단 10:1-9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환상을 깨달으니라”(1절)

“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2절)

 

1. 다니엘은 큰 전쟁에 관한 소식 듣고 세 이레동안 매우 슬퍼했다.

떡, 고기,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고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였다.

공직에 있는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는게 쉽지 않다.

노인이 되면 밥의 힘으로 산다. 나이들면 꼭 밥을 먹어야 산다.

다니엘은 큰 전쟁 이야기를 듣고 세 이레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다.

그가 젊었고 계속 기도한 사람이라서 쉬운 것은 아니다.

언제이든지 금식하며 드리는 기도는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그렇게 기도하니 건강도 지켜주시는 것 아닐까 싶다.

연세가 많은 분들일수록 아픈곳이 많으니 건강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다니엘은 자기 몸, 자기 건강에 관한 염려보다

나라와 민족일이 더 걱정이 된 사람이었다.

나이들어가면 누구든지 나는 이제 늙었다고 뒷전으로 물러나려 하고

젊은 사람들보고 일하라고 한다.

그런데 다니엘은 죽는 날까지 책임 다하는 사람이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반응하는 존재이다.

생명을 가진 순간 순간에 주어진 모든 것에 반응해야 한다.

그것이 책임감이고 어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끊임없이 책임감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신앙의 길, 어른이 되는 길일수록 작은 것도 책임지는 일이다.

다니엘 그 나이 되도록 나라와 민족의 아픔을 알고 슬퍼하고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2. 다니엘에게 이 일이 가능했던 것은 기도습관때문이었다.

다니엘은 처음 포로로 붙들려 왔을 때 왕의 음식을 먹어야 할때부터 나는 그 음식 먹지 않고

하나님이 어떻게 세우시는지 보게 하겠다고 금식하며 기도한 사람이었다.

사자굴에 들어갈 것 알고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기도했다.

젊은 때에 기도했고 나이 80이 다 된후에도 여전히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오늘날에도 필요한 사람은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다.

 

이제 때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꿈에 부풀 사람들을 보며

그들에게 또 큰 전쟁의 아픔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혼자서 고독하고 외로운 기도자리에 엎드려 있다.

냉랭해질 수 밖에 없는 나이에도 나라와 민족의 아픔을 슬퍼한 사람.

나이 들어 죽는 게 아니라 냉랭해서 죽는 것이다.

다니엘은 여전히 가슴 뜨거운 사람이었다.

나라와 민족의 아픔을 보고 그 아픔을 안고서 기도했다.

 

3. 앞으로 예배가 어떻게 계속 지속될지 모른다.

내가 어디에 앉아 있든지 그곳이 에스겔에 환상을 보았던 그발강가요,

다니엘이 환상을 보았던 힛데겔이 되게 해야 한다.

내 집의 골방이, 근무하는 사무실이 성결한 기도의 강가가 되게 하시고

시므온과 안나가 일생동안 기도했던 기도의 자리가 되게 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기를 소망한다.

내 안에 일평생 기도하는 거룩한 습관이 사라지지 않도록,

나이 들어갈수록 마음이 냉랭해지지 않고 더욱 뜨거워도록,

내 건강과 안위 보다 나라와 민족, 교회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되어야 한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할 때 여전히 기도의 자리에 앉아야 하고,

나이들수록 더 많은 시간을 내 안위만 생각하고

어디 다닐 때 없나를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기에 기도의 자리에 앉기가 쉽지 않는 때

다음 세대 위해, 자녀, 이 민족 위해 기도하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는 어른들이 곳곳에 세워지고

시므온처럼 기도하고 안나처럼 기도하여

때가 되어 주님을 안아보는 영광 맛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 시대에 다니엘과 같은 어른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나이 들수록 정말 어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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