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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과와 설교

20220328 / 수 10:16-27 / 다섯 왕들의 처형

작성자이윤형원로목사|작성시간22.03.29|조회수310 목록 댓글 0

다섯 왕들의 처형

수 10:16-27

16 그 다섯 왕들이 도망하여 막게다의 굴에 숨었더니

17 어떤 사람이 여호수아에게 고하여 이르되 막게다의 굴에 그 다섯 왕들이 숨은 것을 발견하였나이다 하니

18 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에 큰 돌을 굴려 막고 사람을 그 곁에 두어 그들을 지키게 하고

19 너희는 지체하지 말고 너희 대적의 뒤를 따라가 그 후군을 쳐서 그들이 자기들의 성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20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크게 살륙하여 거의 멸하였고 그 남은 몇 사람은 견고한 성들로 들어간 고로

21 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영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더니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22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를 열고 그 굴에서 그 다섯 왕들을 내게로 끌어내라 하매

23 그들이 그대로 하여 그 다섯 왕들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을 굴에서 그에게로 끌어내니라

24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하매 그들이 가까이 가서 그들의 목을 밟으매

2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

26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죽여 다섯 나무에 매달고 저녁까지 나무에 달린 채로 두었다가

27 해 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령하매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들이 숨었던 굴 안에 던지고 굴 어귀를 큰 돌로 막았더니 오늘까지 그대로 있더라

수 10:16-27 / [아모리 왕들을 사로잡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 때 아모리의 다섯 왕은 도망 쳐 막게다에 있는 동굴로 몸을 숨겼다. 17) 그러자 어떤 사람들이 여호수아에게 다섯 왕이 막게다 동굴에 숨어 있는 것을 보았다고 보고하였다. 18) 이 말을 듣고 여호수아가 말하였다. `굴 입구를 큰 돌로 막고 보초를 세워 그 굴을 지키게 하여라. 19) 그런 다음 너희는 서둘러 원수들의 뒤를 쫓아라. 패잔병들이 남아있을게 아니냐? 정면에서 그들을 공격하지 말고 배후에서 쳐들어가라. 한 놈도 저들이 살던 성읍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저들을 우리 손에 붙이시지 않았더냐? 이미 우리 손아귀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하지 않으셨느냔 말이다.' 20)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원수들을 엄청나게 쓰러뜨렸다. 남아 있던 패잔병들을 거의 다 쓰러뜨렸다. 이런 와중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패잔병들은 고작 천신만고 끝에 자기들이 살고 있던 성읍 안으로 피해 들어간 자들 뿐이었다. 21) 이렇듯 싸움을 마치고서야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군은 막게다에 쳐놓았던 진영으로 무사히 되돌아갔다.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 중에 어느 누구도 혀를 함부로 놀려 이스라엘 사람들을 비방하거나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 없었다. 22) 그때 여호수아가 말하였다 `막아 놓았던 동굴 입구를 열고 그 동굴에 숨어 있는 다섯 왕을 끌어내어 내게로 끌고오너라. 23) 사람들이 여호수아의 지시대로 하였다. 동굴에 숨어 있는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 등 다섯 명의 왕들이 여호수아에게 끌려왔다. 24) 사람들이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 끌어 오자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자기를 늘 따라다니며 싸움에 출전하였던 지휘관들에게 말하였다. `가까이 다가와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아라' 그들이 다가와 왕들의 목을 발로 밟자 25) 여호수아가 그 지휘관들을 향해 다시 입을 떼었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놀라지도 말아라. 마음을 단단히 먹어라. 용기를 내어라. 너희가 원수들과 싸울 때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원수들을 이처럼 해치우실 것이라는 말이다.' 26) 여호수아는 이렇게 말을 하고는 아모리의 다섯 왕을 죽이고 각각 한 사람씩 다섯 나무에 매달았다. 해질 무렵까지 그렇게 나무 위에 그들의 시체를 그대로 매달아 두었다. 27) 해가 질 때에 여호수아가 사람들에게 명하여 그 왕들의 시체를 나무에서 끌어내리게 하였다. 그런 다음 그들이 숨어 왔던 동굴에 다시 그 시체들을 던져 넣었다. 그러고는 그 동굴 입구를 큰 돌로 막아 놓았다. 오늘날까지 그 동굴은 큰 돌을 막아 놓은 채로 그대로 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연합군 다섯 왕들을 막게다 굴에 가둡니다. 전쟁을 승리로 마친 후 그들을 끌어내어 죽입니다.

 

다섯 왕들이 막게다 굴에 숨다(16-21) 가나안 연합 국가의 다섯 왕들은 패전했습니다. 그들은 함께 막게다 굴에 숨었습니다. 보통의 경우는 패전하여 도망가는 상황에서 한 굴에 다섯 왕이 함께 숨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전쟁으로 인해 그들이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여호수아에게 이 사실을 알려 줍니다. 어쩌면 여호수아가 전쟁에는 이겼으나 가나안 연합군의 왕들은 놓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전해 준 내용은 참 소중한 정보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막게다 굴에 이르러 그들을 죽이지 않고 굴의 문을 큰 돌로 막았습니다. 대신 그 후군을 추격하여 그들은 성에 들어가 숨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그 군대는 후군을 거의 멸할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잔병들 소수만 그 견고한 성에 들어가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막게다 굴에 숨은 다섯 왕들을 찾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어떤 사람’은 칭찬 받아 마땅합니다. 하나님은 직접 일하기도 하시지만 이처럼 사람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강하고 담대하라(22-27) 후군을 거의 멸하고 여호수아의 군대는 다시 막게다 굴로 와 다섯 왕들을 끌어냈습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지휘관들에게 다섯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사 승리하게 하신다는 것을 체험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싸움을 하는 군인에게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겁니다. 여호수아는 다섯 왕들을 쳐 죽이고 저녁 때까지 나무에 매달아 놓습니다. 해 질 때 즈음 되어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막게다 굴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쟁에서 승기를 잡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칫 승기를 잡았다는 기분 때문에 자만하여 우선순위를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최후 승리를 얻을 때까지 긴장해야 합니다. 가나안 연합군의 왕들을 동굴에 가둬 놓고 후군을 친 여호수아의 선택은 탁월했습니다. 만약 왕들을 죽이느라고 시간을 허비했다면 후군이 견고한 성에 들어감으로써 전쟁이 길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적용: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정해 봅시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능력이나 세상적인 수단으로 삶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시며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과 세속적인 조건에 근거한 자신감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에 승리의 기쁨 속에 살아갈 것입니다.

 

< 설 교 >

아모리 다섯 왕의 최후

수 10:16-27 / 우인택 목사

오늘 본문은 기브온 사람들의 구원 요청을 받고 출전한 이스라엘군대가 하나님의 극적인 도움으로 아모리 동맹군을 격파한 후, 아모리 다섯 왕을 처형한 것에 대한 기록입니다.

 

1. 먼저 16절에 “그 다섯 왕들이 도망하여 막게다의 굴에 숨었더니”라고 말씀합니다.

막게다는 예루살렘 남서쪽에 있는 성읍으로 석회암 동굴이 많이 있었는데, 전쟁에서 패한 다섯 왕이 그곳에 있는 석회암 동굴에 숨은 것입니다.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들은 기브온을 치기 위해 군사동맹을 하여 기세 좋게 쳐들어왔습니다.

그들에게는 ‘배신자를 처단한다’는 나름대로의 명분이 있었고, 수많은 연합군들과 함께 승리를 확신하며 사기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러나 정작 싸움이 시작되자 그들은 상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이적과 용감하게 싸우는 이스라엘 군대로 인해 완전한 패배를 당하고 비참하게 석회굴에 숨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우리의 대적을 ‘붉은 용’과 ‘사나운 짐승’에 비유합니다(계 12:3, 13:1-2).

그러나 성경은 그들에 대하여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패잔병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계 12:9), 장차 영원히 타오르는 불 못에 던져져 멸망당할 존재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계 20:10).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들을 힘겹게 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들이 아무리 강해 보여도 주눅 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그들을 물리칠 능력을 주셨고, 만일 그들을 이기기에 벅찰 때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적을 일으켜서라도 그들을 물리쳐 주실 것임을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지체하지 않고 기브온을 도왔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연약한 사람들을 도울 때, 그리고 담대하게 기도하며 고난의 문제들을 풀어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의 길로 인도하실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걱정할 이유가 없는 것은 우리 예수님께서 이미 그들을 정복하시고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요 16:33).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의 아모리 다섯 왕의 위협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싸운 이스라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거인 용사 골리앗 앞에서 기죽지 않고 담대하게 외쳤던 소년 다윗의 음성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5-47)

그러므로 여러분, 눈앞에 보이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고 우리의 등 뒤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마귀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불 못에 던지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이어서 17절 함께 읽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호수아에게 고하여 이르되 막게다의 굴에 그 다섯 왕들이 숨은 것을 발견하였나이다 하니”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 보고를 듣고도 그들을 잡는 것을 뒤로하고 남은 적군들을 섬멸하도록 지시했습니다(18-19절). 그리고 27절에 보시면 모든 싸움이 완전히 마무리되자 비로소 그 왕들을 굴에서 끌어내어 처형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여호수아의 침착한 지도력을 보게 됩니다.

그는 지휘관으로서 '일의 우선 순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아모리 다섯 왕들을 먼저 잡는 일에 집중했다면 그 사이에 남은 적군들이 성 안에 들어가 전열을 다시 정비하고 대적함으로써 전쟁을 쉽게 끝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19절).

그러므로 여호수아의 이러한 판단능력은 우리들도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매우 복잡하고 모든 것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갑니다.

이러한 세상에 살면서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산다면 일의 선후가 뒤바뀌게 되고 그로인해 우리의 삶은 매우 고단한 삶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그 외의 모든 일을 하기 전에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중요한 일부터 처리함으로써 일의 능률을 높이고 지혜롭게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는 만물의 마지막 때를 살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세월을 아끼라’고 가르칩니다(엡 5:16).

그러므로 오늘, “나의 삶에 있어서의 우선순위는 무엇을 기준으로 정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를 깊이 묵상하고 여호수아처럼 지혜로운 결정을 함으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승리하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이어지는 21절 함께 읽습니다.

“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영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더니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이 표현은 이전에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조롱하고 비방하던 가나안 사람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과 이스라엘의 승리를 보고난 후에는 감히 또다시 비난과 조롱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이 세상 사람들의 속성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상대가 자기보다 약할 때는 무시하고 조롱하고 비방하지만, 강할 때는 굽실거리고 아첨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성도들은 이 땅 위에서 살아가지만 이 땅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요 15:19), 틈만 나면 우리 성도들의 비방거리를 찾아 조롱하고 비판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교회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사람들의 비방을 막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항상 말과 행동에 주의하며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만이 세상과 사탄의 세력에게 틈과 비방거리를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24-27절에 여호수아는 막게다 동굴 속에 숨었던 아모리의 다섯 왕을 끌어내어 즉시 처형하지 않고 전쟁에 참가했던 지휘관들을 불러 그들에게 왕들의 목을 밟게 하고 "하나님께서 앞으로 싸울 모든 적들을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처형하고 나무에 매달았다가 굴속에 버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악인에 대한 정당한 심판이긴 하지만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호수아의 이러한 행동은 율법에 의해 행해진 것이었습니다.

악한 일을 한 자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벌을 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죄에 대하여 경각심을 준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이러한 정죄의 율법은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만큼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율법의 시대는 끝이 나고 복음의 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로인해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을 믿는 우리 성도들에게는 더 이상 율법의 정죄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죄인들에 대한 심판보다는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희생하심으로써 죄인들을 살리신 예수님의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들에게 새 계명으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롬 8:1-2).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악에 대한 심판을 바라보면서 더욱 깊이 예수님의 구원의 사랑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됩니다.

아모리 다섯 왕과 다를 바 없는 죄인인 나를 조건없이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까지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가슴에 새기게 됩니다.

오늘, 이러하신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다시 한 번 가슴깊이 묵상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악을 상징하는 아모리 다섯 왕이 연합하여 기세등등하게 수많은 군사들을 이끌고 쳐들어왔지만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승리 위에는 침착하고도 지혜로운 여호수아의 기도와 지도력이 있었습니다. 저희들도 여호수아의 기도와 지도력을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도와주옵소서. 또한 악한 자들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을 더욱 가슴 깊이 새깁니다. 이 은혜로 살아가고 전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승리로 이끄시는 하나님

여호수아 10:16-27

묵상:

우리에게 우연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안배하심 속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해 가심을 본다. 우리가 할 일은 온전한 순종뿐이다.

막게다 굴에 숨은 왕들을 어떤 사람이 여호수아에게 알려준다. 성경에서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통해서라도 하나님께서는 다섯 왕과 그 나라를 진멸하시고자 어떤 사람을 들어 쓰심을 본다. 그 어떤 사람이 공교롭게도 여호수아에게 이 사실을 알려준다. 성경을 보다보면 이런식으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의 활용을 자주 보게 된다. 창세기 14장에서 엘람 왕과 고임 왕, 시날 왕과 엘라살 왕에게 끌여가는 롯의 소식을 알려준 사람이 그러했고, 사무엘상 30장에서도 아말렉에게 끌려가는 이스라엘 민족과 다윗의 가족들에 대한 소식과 정보를 준 것도 그러하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연같은 필연으로 사람을 통해 알게 하시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되찾아 오기 위해, 사단의 세력을 진멸하는데 우리에게 정보를 주시고,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신다.

왕들을 굴을 찾아 숨어보지만, 당장은 사람(여호수아)앞에 숨을 수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앞에 숨을 수 없다. 숨겨지는 것이 없음을 보게하신다. 늘 주님 앞에 정직함으로 숨김없이 주님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함을 본다.

주님은 우리를 통해 끝까지 대적의 우두머리와 그 졸개들을 진멸하길 원하신다. 사실, 여호수아가 힘이 들어서 혹은 귀찮아서 혹은 안일한 생각으로 이 정도면 됐지 라고 하고 우두머리들만 잡았다면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안을 누리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진멸하길 원하시는 주님의 갈망을 따라 순종으로 행했기에 평안을 누릴 수 있음을 본다. 나에게도 이런 영적 전쟁은 무엇인지, 나는 끝까지 따라가 잡고, 진멸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주님... 제가 끝까지 싸워야 할 영역은 무엇일까요... 끊임없이 올라오는 내 자아와 안일한 생각들이 많이 올라옵니다. 그 부분을 철저히 십자가에 넘기고, 목을 밟아 숨통을 조이고, 박살내는 강함이 있게 하소서.

 

1장에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셨던 말씀,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는 말씀을 이젠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당당히 말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여호수아에게 전가되었고, 여호수아를 통해 백성들에게 전수되는 것을 본다. 생명의 전이다. 능력의 전이가 일어난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신다. 그것을 본 여호수아는 어느새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놀라지 않게 되었고, 강하고 담대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심을 목도하고 체험했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삶의 매순간이 크고 작은 영적 전쟁임에 깨어 있어야 한다.

계속 주님을 부르고, 이 순간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내가 선택해야 할 영역과 순종해야 할 영역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 오늘도 이러한 분별과 순종으로 삶의 매 순간 승리로 이끄시는 주님과 함께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그렇게 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찬양합니다. 아멘.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진정한 평화입니다

수 10:16-21 찬송 405장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평화를 원합니다. 평화는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전쟁이 없는 상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분단된 조국에서 살고 있는데가, 주변 강대국 틈에 끼어 있는 우리에게는 이 평화라는 단어가 소중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우리는 아직도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휴전 중인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과 북을 갈라놓은 철책선을 휴전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민족의 허리를 두 동강 내어버린 이 휴전선은 6.25 전쟁 시기, 즉 1953년 7월 27일에 확정된 군사 경계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평소에 이 점을 망각할 때가 많죠. 비록 온전히 평화가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일단 평화의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남북 간의 군사적인 교전이 있을 때에나 전쟁이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되새기게 됩니다.

 

실제로 신약시대에 주류를 이뤘던 그리스 사상에서도 평화(Eirene)라는 개념은 전쟁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 중에 잠시 쉼을 얻는 순간을 뜻했습니다. 아직 전쟁이 온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여기저기서 피비린내가 아직 가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잠시 막간을 이용해서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평화의 상태였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스라엘과 가나안 족속과 전쟁 중에서 바로 이런 평화의 상태를 만날 수 있습니다.

 

기브온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과 조약을 체결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예루살렘의 왕 아도니세덱이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 가리스 왕 야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 등과 함께 연합군을 조직해서 자신들이 배신한 기브온 족속을 치려고 했습니다. 이때 기브온은 재빨리 여호수아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입장에서 기브온과 맺은 조약은 한마디로 그들에게 속아서 맺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그들을 돕기로 결심합니다. 왜냐하면 비록 자신들이 속아서 맺은 조약이기는 하지만, 그 조약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은 것이었고, 따라서 그 조약은 함부로 파기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조약을 맺은 기브온을 돕기 위해 길갈에서 기브온으로 올라갔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브온과 맺은 언약의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이스라엘이 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였습니다. 성경은 이 전투상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방 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수 10:11).”

 

이 기록은 무엇을 증거하고 있나요? 하나님께서 이 전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전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는 것을 직접 보여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자들에게 우박을 내리셨다는 말씀을 통해서 과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가로막는 애굽 사람들에게 우박을 내리신 사건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바로왕이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허락하지 않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애굽 땅에 무서운 우박을 내리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머물고 있었던 고센 땅만은 예외였습니다. 그러자 바로왕이 모세와 아론을 불러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출 9:27).” 그리고는 제발 이 끔찍한 우렛소리와 우박 좀 그치게 해달라고 사정합니다. 이 때 모세가 바로왕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성에서 나가서 곧 내 손을 여호와를 향하여 펴리니, 그리하면 우렛소리가 그치고 우박이 다시 있지 아니할지라.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왕이 알리이다(수 9:29).” 바로 이것입니다. 모세는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즉 이런 기적을 통해 하나님은 그분 자신이 이 세상의 진정한 통치자시라는 진리를 애굽 뿐만 아니라, 앞으로 애굽에서 일어난 사건을 듣고 간담이 녹게 될 이방족속들에게도 증거 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과 가나안 동맹군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은 태양과 달도 주관하시는 하나님, 즉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선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수아가 계속해서 이기고 있는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해와 달을 멈추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때,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에 힘입어 이스라엘은 파죽지세로 가나안 족속들을 점령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에게 대적했던 왕들은 모두 도망하게 되었고 막게다의 굴에 숨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섯 왕들은 여호수아 앞에 무릎을 꿇고야 말았습니다. 이 전쟁은 완전한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전투의 과정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평안, 즉 ‘샬롬’을 허락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은 계속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평안은 그리스인들이 추구한 일시적인 평화의 상태와 같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평화와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평화의 근본적인 차이를 보게 됩니다. 우리의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평화라는 사실입니다. 여호수아 10장 20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크게 살육하여 거의 멸하였고 그 남은 몇 사람은 견고한 성들로 들어간 고로 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영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더니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세상의 전쟁은 그 끝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길지 질지는 전쟁을 해봐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평화는 말 그대로 일시적인 평화, 즉 불안한 평화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불안한 평화 가운데서 불안을 잊기 위해서 갖은 향락을 즐기곤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전쟁이 수행 중일 때 병사들이 자신을 시시때때로 엄습해 오는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오히려 악의 화신으로 돌변해서 잔인한 범죄행위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전쟁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전쟁은 이미 그 끝이 분명한 전쟁, 다시 말해서 승리할 수밖에 없는 전쟁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전쟁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자녀는 비록 전쟁 중에 갖게 되는 일시적인 평화라 해도 앞으로 치르게 될 전쟁을 두려워하거나, 불안해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일시적이고 불안한 것이지만, 하나님이 주는 평화는 승리의 확신에 찬 자만이 당당하게 얻는 쉼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보십시오. 이제 전쟁은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자들은 거의 섬멸 되었고, 극히 일부만 목숨을 부지한 채 견고한 성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대적한 연합군의 다섯 왕들 역시 굴속에 숨어들었습니다. 그들은 잠시 전쟁에서 벗어나 평화를 얻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은신처는 곧 발각되었고 이스라엘이 큰 돌로 입구를 막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캄캄한 암흑 속에서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여호수아 앞에 끌려 나와 최후를 맞이하고야 말았습니다.

 

과거 하나님께 대적했던 애굽의 바로왕도 어떠했습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전쟁에 치를 떨어야 했습니다. 엄청난 우박이 애굽 땅에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머물렀던 고센 땅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평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분명 이러한 역사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은 의롭고 자신들이 악하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평화의 상태입니까? 아니면 전쟁 중십니까? 분명 우리는 전쟁 중입니다. 우리는 아직 분단된 조국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우리의 전쟁은 세상에서 치러지는 혈과 육의 전쟁이 아니라 영적 전쟁입니다. 사탄이 어떻게든 우리를 선멸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죽느냐, 사느냐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전쟁의 상태를 깨닫지 못하고 자칭 자신들은 평화의 시기를 살고 있다고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평화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은 악한 존재에 의해서 어려움에 처해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지 불분명하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 살면서도 진정한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불안과 염려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지금 우리가 전쟁 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사탄의 공격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화를 누릴 수 있고, 불안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분명 전쟁 중에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파멸시키고자 하는 사탄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물리쳐 주시며, 우리에게 평안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할 일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법을 따르며, 그분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평안의 삶을 구할 수 있기 바랍니다. 비록 우리가 영적인 전쟁의 시기를 살고 있지만, 그 속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평안이 있기에 더욱 힘을 얻고, 더욱 더 담대히 사탄의 권세에 맞서서 승리하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

 

 

 

 

철저한 승리를 얻기까지

수 10:16-27 / 여호수아

성도는 무엇보다 먼저 믿음을 지켜야 하며,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 우리는 그 기회를 굳게 붙잡아 승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기회를 주셨는데 끝까지 승리하지 못하면 또 다시 기회를 잡기 어렵게 됩니다.

가나안 남부 지역의 다섯 왕들이 연합하여 기브온을 공격해왔습니다. 기브온이 이스라엘에게 항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이스라엘 때문에 공포에 질려 있던 가나안 족속들은 기브온이 이스라엘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스라엘에게 항복하는 족속이 나오지 않도록 이스라엘과 싸우기 전에 먼저 기브온을 공격하기로 한 것입니다.

연합군의 공격을 받은 기브온은 급히 여호수아에게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비록 속아서 조약을 맺었지만, 여호수아는 기브온을 구하기 위해 즉시 온 군대를 출동시켰습니다. 그리고 대규모의 남부 연합군과 일전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기브온과 화친한 이스라엘은 이렇게 큰 부담을 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남부 연합군과의 전쟁을 위해 출동하는 여호수아를 격려해 주시고 승리를 약속해주셨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밤새도록 행군하여 나무 연합군을 기습적으로 공격했습니다. 기습공격을 받은 가나안 남부 연합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주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망치는 적들에게 큰 우박 덩어리를 내리셨습니다. 그날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칼에 죽은 자들보다 우박에 맞아 죽은 자들이 더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이스라엘과 함께 싸워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적을 아직 완전히 무찌르지 못했는데 해가 지려고 했던 것입니다. 밤이 되면 적들은 자기들의 성에 들어가 문을 굳게 닫고 피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지형에 익숙하지 못한 이스라엘로서는 매우 불리하게 될 것이 뻔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시 적들을 정복하는 일은 더 어려워지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해가 지려고 하는 것을 보던 여호수아는 긴급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기도를 즉시 응답하셔서 해와 달이 하루 종일 멈추어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그날 적을 완전히 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적을 추격하여 섬멸해가던 중 여호수아에게 남부 연합군의 다섯 왕을 잡았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다섯 왕이 도망치다가 막게다의 동굴 속에 숨은 것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이제 다섯 왕을 한꺼번에 잡았으니 전쟁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밤새도록 행군을 했고, 종일 적과 싸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섯 왕을 잡은 것으로 전쟁을 끝내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남은 적들이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이스라엘과 싸우게 될 것이 뻔했습니다. 그러므로 다섯 왕을 잡았다고 해서 전쟁을 끝낼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다섯 왕들이 피해 들어간 동굴을 돌로 막고 지키게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군대가 계속해서 적을 추격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은 그날 적들을 모두 멸하고 평안히 막게다 진영으로 돌아왔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완전한 승리를 거두고 전쟁을 마무리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날의 승리로 이스라엘은 가나안 남부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끝까지 붙잡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 참사랑교회를 위해서도 좋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합병을 순조롭게 마무리 지은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계속해서 이 기회를 굳게 붙잡아 하나님의 교회를 굳건하게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기회를 주셨습니까? 대충 한숨 돌린 것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그 기회를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능력 있는 기도

 

이 전쟁 기사를 보면서 우리는 여호수아의 기도와 그가 받은 응답에 큰 도전을 받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기도를 했습니다. 해와 달이 그 자리에 멈추어 서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정말 해와 달을 하루 종일 멈추어 서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여호수아는 그런 기도까지 응답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그런 기도를 응답해주셨을까요?

스코틀랜드의 종교 개혁자 존 낙스도 능력 있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놀랍게 응답해주셨습니다. 낙스의 대적이었던 메리 여왕은 신교도들을 무섭게 탄압했습니다. 그런데 메리 여왕이 가장 무서워했던 사람은 존 낙스였습니다. 여왕은 군대보다 낙스가 더 두렵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놀랍게 들어주시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 어떻게 이런 기도 응답이 가능했을까요? 아무나 기도하면 다 응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나 구하는 것은 즉시 응답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셨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여호수아 역시 구하는 것은 이처럼 무엇이나, 심지어는 해와 달이 멈추어 서는 것까지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해주셨던 것입니다.

당신도 이렇게 응답 받기를 원합니까?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기도하십시오. 야고보 사도는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약5:16-18) 그리고 야고보 사도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한 가지를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4:2하-3) 하나님 뜻과 다른 것은 구해도 받을 수 없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되, 먼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기를 힘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기도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기도가 풍성하고 놀랍게 응답될 것입니다.

 

완전한 승리를 얻기까지

 

이스라엘은 가나안 남부 연합군과 싸던 중 다섯 왕을 사로잡게 되었습니다. 적들은 도망치기에 급급했고, 마침내 다섯 왕이 막게다 굴로 들어가 스스로 잡히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다섯 왕을 한꺼번에 잡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다섯 왕을 한꺼번에 잡게 되었으니 전쟁은 이제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모든 군대가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모두가 전쟁이 어서 끝나기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다섯 왕을 끌어내어 처단하면 전쟁이 멋지게 끝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적들을 완전히 멸하지 않고 전쟁을 끝내면 곧 후회할 일이 생기게 될 것이었습니다. 남은 적들이 견고한 성으로 도망쳐 들어가 후일을 기약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여호수아는 냉정하고 단호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호수아에게 고하여 이르되 막게다의 굴에 그 다섯 왕들이 숨은 것을 발견하였나이다 하니 여호수아가 이르되 굴 어귀에 돌을 굴려 막고 사람을 그 곁에 두어 그들을 지키게 하고 너희는 지체하지 말고 너희 대적의 뒤를 따라가 그 후군을 쳐서 그들이 자기들의 성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하고”(17-19절)

이스라엘 군대는 밤새도록 행군하여 적을 공격했으며 온 종일, 해와 달이 종일 멈춘 것을 생각한다면 이틀 동안이나 쉬지 않고 싸웠습니다. 얼마나 지치고 피곤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적을 추격하여 완전한 승리를 얻었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크게 살육하여 거의 멸하고 그 남은 몇 사람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간 고로 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영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더니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20-21절) 만일 피곤하고 지쳤다고 해서 적들 추격하는 것을 중단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또 다시 큰 전쟁을 치러야 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조금 더 고생하여 전쟁을 완전히 마무리 지었기 때문에 다시 더 큰 희생을 치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끝까지 붙잡 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기회를 충분히 끝까지 붙잡지 못합니다. 조금 나아지면 해이해지고 더 이상 힘들게 고생하려 하질 않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절제하고 좀 더 고생하면 끝장을 볼 수 있을 텐데, 조금 나아진 것에 만족하고 그만 둔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다시는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기회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에 큰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셔서 더 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런 기회는 일생에 한 번 잡기도 어려운 기회입니다. 그런데 두 교회가 하나를 이룬 것만으로 만족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제대로 붙잡지 못한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우신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를 보게 될 때까지 쉬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하여 모든 성도들이 더욱 믿음에 굳게 서게 된 줄로 압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말씀을 붙들고 더욱 힘써 기도하십시오. 당신의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달라져야 합니다. 이제 베스트 전도하는 일을 모든 성도가 힘을 다해 감당해야 합니다. 다가오는 임직식도 참사랑교회 부흥을 위한 좋은 징검다리가 될 것입니다. 연말에는 앞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 입주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입니다. 추수감사절 이후로는 아파트 전도를 준비하는 일에 전념해야 하겠습니다.

이 모든 일에 모든 성도가 동참하여 끝까지 감당해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회를 끝까지 붙잡아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에 모든 성도가 동참하고, 벅찬 감격과 기쁨 가운데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부흥의 물결 속에서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체험하며 복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까지 오느라고 모두 고생이 많았습니다. 저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만 둘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끝까지 감당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회를 끝까지 붙잡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로 더 강해지는 교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하면서 더욱 강한 군대로 변화되어갔습니다. 처음 여리고 성 전투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 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 다음 아이 성 전투에서는 뜻밖에도 참패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죄를 제거하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다시 싸워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번에는 가나안 남부 연합군과의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이 전쟁에서 비로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본격적으로 전투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밤을 새워 행군하는 수고를 했습니다. 기습적으로 적을 공격하여 승기를 잡았고,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끝까지 섬멸했습니다. 가나안 다섯 왕을 잡아다가 처단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최정예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이스라엘을 향하여 말 한 마디도 함부로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영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더니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21절) 소문만 듣고 겁을 내던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 군대의 실체를 확인하고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두려움에 떨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이 모든 승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승리하는 동안에 이스라엘 군대는 최정예 군대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백성이 강해지는 과정입니다. 한 번 기도 응답을 받게 되면 더 능력 있게 기도하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에 강하게 붙잡힌 경험을 맛보게 된 성도는 말씀에 더욱 굳게 설 수 있게 됩니다. 한 영혼을 전도하여 열매를 맺은 성도는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하는 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한 번 믿음으로 승리한 성도는 하나님 백성의 거룩하고 능력 있는 모습을 계속해서 나타낼 수 있게 됩니다. 한 번 큰 어려움을 믿음으로 이겨낸 성도는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는 능력 있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한 번 부흥을 맛본 교회는 더 힘차게 부흥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피곤하고 바쁘더라도 더욱 힘써 기도하십시오. 주저하는 마음이 들더라도 더욱 담대하게 전도하십시오.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믿음을 지키도록 하십시오. 특히 직장에서 그리스도인의 거룩하고 구별된 모습 지키기를 힘쓰십시오. 손해와 욕을 당하더라도 믿음을 지키십시오.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실 것이며, 그 승리를 통해 더욱 강하고 성숙되며 풍성한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정도에서 끝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굳게 붙잡아 끝까지 승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더욱 강해지고 복을 받는 성도들과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수 10:16-27

신앙은 집중력의 싸움이라는 것을 이번 집회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평상시에 2박 3일 하던 집회를 하루 더 했는데도 집회가 더 빨리 끝나 아쉬워하는 모습들, 시간 시간마다 집중력 있게 말씀을 듣고 은혜 받는 모습들, 이번 기회에 끝장을 보겠다고 하는 집중력을 가지고 하나님께 매달려 하늘의 은혜와 능력을 크게 체험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역시 신앙은 집중력의 싸움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 이번 집회를 통해 깨달은 것은 기회를 잘 붙잡는 사람이 은혜와 복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금번 집회는 분명히 은혜의 때요, 구원의 때였습니다. 그리고 축복의 기회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금번 집회를 통해 축복을 받는 기회가 된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몇몇 사람은 축복의 기회를 빼앗기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세상의 분주함과 인간적인 욕심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축복의 기회를 마귀에게 빼앗긴 사람들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 때, 놓치지 않고 붙잡을 수 있는 분별력 있는 사람이 하늘의 신령한 복, 땅의 기름진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또 하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2000년을 시작하면서 "주께서 내게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소서"라는 말씀으로 꿈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금번 집회는 바로 그 꿈을 구체화시키는 방법을 깨닫게 해 준 축복의 성회였던 것입니다. 이제 확신하기는, 금년을 원년으로 하여 여러분들의 삶의 지경이 넓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계속해서 일어나게 되리라 믿습니다.

여호수아 10장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의 남부 지역을 점령하는 이야기입니다. 가나안 남부지역의 다섯 나라 연합군과의 싸움에도 역시 하나님은 이스라엘 편에서 돕고 계셨습니다. 우박을 내려 적들을 치시고 태양을 멈추고, 달을 그치게 하심으로 여호수아에게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고 집중력 있게 싸워 적군들을 지리멸렬하게 만들었습니다. 가나안 남부의 다섯 왕(헤브론 왕 호암, 야르뭇 왕 비람, 라기스 왕 야비아, 에글론 왕 드빌)들은 전세가 여의치 않게 되자 모두 도망하여 막게다 굴에 숨었습니다. 가나안 산악지대의 여러 곳에는 석회암으로 된 동굴들이 많았는데,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이 아둘람 굴에 숨었던 것과 같이 가나안 남부의 다섯 왕은 막게다 굴에 숨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숨은 것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 없고, 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과 같이 드러나는 법, 그들이 숨은 곳은 곧 여호수아의 군대에게 발견되어, 처형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몇 가지의 주제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20절과 21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수아와 모든 자손이 그들을 크게 도륙하여 거의 진멸시켰고 그 남은 몇 사람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간 고로 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으나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과 함께 한 여호수아 군대에게 가나안 남부 지역의 연합군은 적수가 될 수 없었습니다. 가나안 남부의 다섯 왕은 막게다 굴에 숨어들었고, 지리멸렬한 나머지 군사들은 여호수아의 군대에게 섬멸을 당했고, 몇몇 사람만 자신들의 성으로 피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격렬한 싸움 중에서도 이스라엘 자손은 한 사람도 희생을 당하지 않고 모두 안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땅에서는 어느 누구도 감히 혀를 놀려서 이스라엘 자손을 헐뜯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개도 짓지 못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얼마나 멋진 장면입니까? 얼마나 흥분되는 말씀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하던 형편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비참하고 별 볼 것 없는 사람들을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백성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①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름 없는 노예들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 성도들의 주변에서 향유 냄새가 나지 않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그 능력을 받은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역사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고 산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너무 감격하여 생명을 걸고 헌신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이 어쩔 수 없는 능력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②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19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지체 말고 너희 대적을 뒤를 따라가 그 후군을 쳐서 그들로 자기들의 성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손에 붙였느니라".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시며, 또 그 전쟁을 반드시 승리할 수 있게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했습니다.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도 희생당하지 않고 완벽한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감히 입을 놀려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③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증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싸워서 이겼습니다. 그것도 완벽하게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믿음의 증거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340장). 이것이 예수 믿는 증거라고 내 놓을 만한 자랑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축복이든, 건강의 축복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축복하셨다고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증거라고 당당하게 내어놓을 만한 믿음의 증거들을 다 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습니다. 바디메오의 믿음은 눈을 뜨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그의 종을 중풍병에서 해방시켰습니다. 그 외에 수많은 믿음의 증거가 성경에 있습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금번 집회를 통해 받은 약속들을 믿음을 통해 반드시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을 향해 "예수 믿는 것은 이런 증거가 있다"고 자신 있게 선포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갑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으로 충만하여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하나님 앞에 굴복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여러분들의 삶에 나타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어주며 사는 복의 근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다섯 왕을 굴에서 끌어내라

 

혼비백산한 가나안 연합군의 왕들은 막게다 굴에 피신하여 다시 저항 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숨은 것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 없는 법입니다. 가나안 왕들이 숨은 곳은 곧 이스라엘 군대에게 발견이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굴 입구를 막고 군사들을 동원하여 보초를 세우고, 나머지 도망치는 가나안 군인들을 추격하여 거의 모든 적군을 섬멸한 후, 그들을 끌어내어 처형하였습니다.

막게다 동굴에 숨어 있는 가나안 남부의 왕들은 우리의 삶 속 깊이 숨어서 저항하는 죄악을 상징합니다.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습관적인 나쁜 버릇, 교만, 정욕, 이기심 등이 교묘하게 끝까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이러한 죄악들을 끝까지 찾아서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매일같이 해야 할 작업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속에 숨어 있는 죄의 뿌리를 찾아내 제거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민들레가 여러모로 쓸모도 있고, 민들레의 끈질긴 생명력이 우리 나라의 민족성과 닮아서 그런지 민들레에 대해서 아주 관대한 편입니다. 그러나 미국 같은 서양에서는 집안 정원에 민들레가 하나 발견되면 기겁을 하고 달려가 뿌리째 뽑아낸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민들레가 피기 시작하면 그 잔디밭은 민들레 밭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민들레를 경계합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누룩을 찾아 없애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누룩을 넣지 않은 딱딱하고 맛없는 빵을 먹었던 것을 기억하여 유월절 이튿날부터 일주일 동안 무교절을 지킵니다. 그때, 그들은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서 누룩을 찾아 없앱니다. 누룩은 물과 썩여서 밀가루를 변형시킵니다. 부풀게 만듭니다. 아주 작은 양이 들어가도 그 많은 밀가루를 부풀게 하는 힘을 그들은 죄악의 근원으로 여겨,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악의 근원을 잘라버리고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는 사상으로 누룩을 찾아 없애는 것입니다.

민들레의 끈질긴 생명력만큼이나, 그리고 누룩의 힘만큼이나 죄는 그 힘이 큽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죄가 우리 속에 들어오면 타락하게 만들고, 시험에 들게 하고, 패역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민들레를 뿌리째 뽑아내듯, 누룩을 하나도 남김없이 찾아 없애듯 죄악의 요소는 완벽하게 근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수아를 공부하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 중에 하나가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들을 전멸시키라는 것입니다.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의 동정심을 유발하게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타락시킬 수 있는 요소를 미리 차단하여 없애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단호한 태도가 없다면 죄를 용인하거나 죄와 적당하게 타협하여 사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삶에 흐르고 있는 죄악 적인 요소가 있습니까? 철저히 뽑아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생활 속에서 뽑아내야 할 여러 가지 죄악 적인 요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습니다. 음란 또는 폭력 비디오, 술, 담배, 화투놀이, 여러분 절대로 속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에게 속지 말라는 말입니다. "나는 그래도 이길 수 있어" "나는 절제할 수 있어" 장담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자기 자신을 과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악이 그렇게 만만한지 아십니까? 죄는 힘이 있습니다. 절대로 적당히 타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익숙한 것이 겉으로 나타나는 법입니다. 무엇을 보느냐, 어떤 것을 듣고 배우느냐에 따라 그의 삶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현직 미국 대통령이 섹스 스켄들에 휘말려 온 세계의 언론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자라난 환경입니다. 클린턴이 청소년 시절을 보낸 핫 스프링은 유명한 온천 유원지라고 합니다. 거리는 온통 여관과 도박장의 현란한 네온사인에 휘청거렸는데, 클린턴은 약 2km의 퇴폐의 거리를 보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청소년기에 그의 가슴에 심어진 음란이라는 죄의 뿌리가 자라난 후에 섹스 스켄들에 휘말리는 부끄러운 열매로 나타난 것입니다.

어린이 복음성가에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네 눈이 보는 것을 조심해, 네 눈이 보는 것을 조심해" 어려서 부모가 화투하는 것을 보고자란 아이는 도박꾼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즘 동네에 마실 다니면서 그런 짓 하는 사람이 있으면 당장 회개하고 다시는 그런 짓(단 10원 짜리 라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려서부터 술 먹는 것과 담배 피우는 것을 익숙하게 보고자란 아이는 반드시 술과 담배에 빠지게 됩니다(부모의 흡연은 곧 청소년의 흡연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혹시 여러분의 가정에, 죄의 뿌리가 자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녀들을 타락시킬 수 있는 요소가 숨어 있지는 않습니까? 누룩을 찾듯, 잡초를 뿌리째 뽑아버리듯 완전히 제거하심으로 죄악이 발을 붙일 수 없는 구별된 가정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그들의 목을 밟으라

 

여호수아가 굴속에 숨어 있던 가나안의 왕들을 끌어내서 이스라엘의 군장들에게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을 목을 발로 밟으라"고 명령했습니다(24절).

목을 밟는 것은 원수에게 수치를 주고 승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대적할 수 없도록 완전히 짓밟고 서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수 마귀로 발등상을 삼으신 것처럼, 죄를 찾아 없애는 정도로 끝낼 일이 아니라, 다시는 그 죄와 상관이 없는 삶을 살겠다고 죄에 대해서 승리를 선언하고, 죄악을 밟고 일어서는 능력 있는 종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승리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와 교회에 엄청난 은혜와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이 세상에서 상처받고, 절망하고 실패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직도 승리와 축복과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늘 어린아이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항상 밤낮 반창고 붙여주고, 붕대 싸매 주는 일만 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는 그런 일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십자가 군병을 만드는 교회입니다. 믿음 가지고 세상 가운데 나가서 승리하는 사람을 만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밤낮 남의 간증만 듣는 교회가 아니라, 적은 것이라도 간증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남의 교회에 은혜 나타나고, 능력 나타나고, 부흥하고, 영광 나타나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는 교회가 아니라 우리 교회에 나타난 은혜, 능력, 부흥, 영광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간증하며 사는 성도, 승리를 선포하며 능력 있게 살아가는 성도, 이런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 안에 숨어있던 수치, 저주, 죄악을 다 발로 밟고 일어나 하나님의 승리를 선포하고, 이제부터는 세상 가운데서 승리를 누리고, 축복을 누리고 은혜를 누리며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충만하여 어떤 세력도 대적할 수 없도록 능력 있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삶에 숨어서 자라나고 있는 죄악을 뿌리를 완전히 제거함으로 받은 은혜 받았기고 시험에 드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 속에 숨어있던 수치, 저주, 죄악을 다 발로 밟고 일어나 하나님의 승리를 선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와 축복과 은혜를 누리며 사는 거룩하고 복된 종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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