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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과와 설교

20220419 / 수 18:11-28 / 베냐민 지파가 분배받은 땅

작성자이윤형원로목사|작성시간22.04.28|조회수383 목록 댓글 0

베냐민 지파가 분배받은 땅

수 18:11-28

11 베냐민 자손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제비 뽑은 땅의 경계는 유다 자손과 요셉 자손의 중간이라

12 그들의 북방 경계는 요단에서부터 여리고 북쪽으로 올라가서 서쪽 산지를 넘어서 또 올라가서 벧아웬 황무지에 이르며

13 또 그 경계가 거기서부터 루스로 나아가서 루스 남쪽에 이르나니 루스는 곧 벧엘이며 또 그 경계가 아다롯 앗달로 내려가서 아래 벧호론 남쪽 산 곁으로 지나고

14 벧호론 앞 남쪽 산에서부터 서쪽으로 돌아 남쪽으로 향하여 유다 자손의 성읍 기럇 바알 곧 기럇 여아림에 이르러 끝이 되나니 이는 서쪽 경계며

15 남쪽 경계는 기럇 여아림 끝에서부터 서쪽으로 나아가 넵도아 물 근원에 이르고

16 르바임 골짜기 북쪽 힌놈의 아들 골짜기 앞에 있는 산 끝으로 내려가고 또 힌놈의 골짜기로 내려가서 여부스 남쪽에 이르러 엔 로겔로 내려가고

17 또 북쪽으로 접어들어 엔 세메스로 나아가서 아둠밈 비탈 맞은편 글릴롯으로 나아가서 르우벤 자손 보한의 돌까지 내려가고

18 북으로 아라바 맞은편을 지나 아라바로 내려가고

19 또 북으로 벧 호글라 곁을 지나서 요단 남쪽 끝에 있는 염해의 북쪽 해만이 그 경계의 끝이 되나니 이는 남쪽 경계며

20 동쪽 경계는 요단이니 이는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의 사방 경계였더라

21 베냐민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성읍들은 여리고와 벧 호글라와 에멕 그시스와

22 벧 아라바와 스마라임과 벧엘과

23 아윔과 바라와 오브라와

24 그발 암모니와 오브니와 게바이니 열두 성읍과 또 그 마을들이며

25 기브온과 라마와 브에롯과

26 미스베와 그비라와 모사와

27 레겜과 이르브엘과 다랄라와

28 셀라와 엘렙과 여부스 곧 예루살렘과 기부앗과 기럇이니 열네 성읍이요 또 그 마을들이라 이는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이었더라

수 18:11-28 / [베냐민 지파가 차지한 땅]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제비를 뽑아 각 씨족에 따라 몫으로 차지한 땅은 유다 지파 사람들이 차지한 땅과 요셉에게서 퍼져 나간 사람들이 차지한 땅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12) 베냐민 지파가 차지한 땅의 북쪽 경계선은 요단강에서 시작하여 여리고 북쪽 언덕빼기 쪽으로 올라간다. 여리고에서 서쪽으로 산악지대를 거쳐 경계선은 벧아웬 광야로 들어선다. 13) 경계선은 다시 이곳에서 뻗어 나가 루스에 이르고 그곳의 남쪽으로 이어진다. 이 루스의 언덕빼기 남쪽이 바로 벧엘이다. 경계선은 여기서 아다롯 앗달로 내려가다가 아래 벧호론의 남쪽에 있는 산악지대 곁으로 뻗어 간다. 14) 그러다가 경계선은 방향을 바꾼다. 곧 벧호론 앞에 있는 산악지대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유다 사람들에게 배당된 기럇바알이라고도 부르는 기럇여아림에 다다른다. 여기가 바로 서쪽의 끝이다. 15) 남쪽 가장자리 곧 남쪽 경계선은 기럇여아림 끝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계속해서 빠져 나가다가 넵도아 샘 수원지에 다다른다. 16) 경계선은 여기에서 힌놈 골짜기를 마주 바라다보고 있는 산악지대의 가장자리로 내려 간다. 힌놈 골짜기는 르바임 계곡 북쪽에 위치해 있다. 거기에서 힌놈 골짜기로 내려가다가 여부스 산마루 남쪽으로 계속해서 내려가고 거기서 엔로겔까지 내려간다. 17) 엔로겔에서 방향을 바꾸어 북쪽으로 나아가다가 엔세메스에 다다르고 또 아둠밉 오르막길 맞은편에 있는 글릴롯에 이른다. 거기서 `보한의 돌'이라는 뜻의 땅 이름을 지닌 에벤 보한까지 내려간다. 보한이란 사람은 르우벤의 아들이었다. 18) 에벤 보한에서 북쪽으로 뻗어 아라바 어귀로 죽 이어지다가 아라바로 내려간다. 19) 경계선은 계속해서 북쪽으로 뻗어가 벧호글라의 가장자리를 지나 요단강 남쪽 끝으로 이어지는 소금바다의 북쪽 바닷가로 경계선이 빠져 나간다. 바로 지금까지 말한 경로가 남쪽의 경계선이다. 20) 마지막으로 동쪽 경계선은 요단강이다. 지금까지 말한 대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각 씨족에 따라 사방 경계선 안에 있는 땅을 그들 몫으로 차지하고 살았다. 21) [베냐민 지파가 차지한 성읍]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각 씨족에 따라 차지한 성읍은 다음과 같다. 여리고와 벧호글라와 에멕 그시스와 22) 벧아라바와 스마라임과 벧엘과 23) 아윔과 바라와 오브라와 24) 그발 암모니와 오브니와 게바 이렇게 모두 열두 성읍이 있고 각 성읍에 딸려 있는 마을들이 더 있다. 25) 또한 기브온과 라마와 브에롯과 26) 미스베와 그비라와 모사와 27) 레겜과 이르브엘과 다랄라와 28) 셀라와 엘렙과 여부스라고도 불렀던 예루살렘과 기부앗과 기럇 이렇게 열네 성읍이 더 있고 각 성읍에 딸린 마을들이 있다. 이상이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각 씨족에 따라 몫으로 차지하고 살아갈 땅이다.

 

하나님 앞에서 첫 번째로 베냐민 지파의 제비를 뽑습니다. 그들이 차지한 땅은 북쪽으로 에브라임과 남쪽으로 유다를 경계로 두고 있습니다. 그들이 차지한 땅에서 동쪽 열두 성읍은 척박한 땅이고 북서쪽 열네 성읍은 기후 조건이 좋은 곳이었습니다.

 

유다와 요셉 자손의 중간(11) 베냐민 지파는 유다와 요셉 지파 사이의 땅을 분배 받습니다. 이것은 신명기서에 나오는 모세의 예언대로 복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긴 시간이 지나도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베냐민 지파가 제비 뽑은 곳은 세월이 흘러 솔로몬이 죽고 이스라엘이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로 갈라질 때에 베냐민 지파가 유다 지파와 연대를 이루어 남 왕국 유다를 구성하게 됩니다. 베냐민 지파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업의 사방 경계(12-20)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된 지역은 가나안의 남북을 잇는 전략상의 주요 도로상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분쟁의 발생 빈도가 심했던 곳입니다. 분배된 땅은 일부는 산악 지대였고, 또 일부는 여리고와 예루살렘 근방의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그곳은 이스라엘의 영적 토대가 생성된 곳이라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야곱이 그곳에서 제단을 쌓았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곧 벧엘로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최초로 하나님의 단을 쌓았고, 야곱도 밧단아람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바로 그곳에서 제단을 쌓았던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야곱에게 주어, ‘이스라엘’ 이라는 나라가 그 시점부터 태동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특별히 주목해 볼 것은 바로 그곳에 여부스 곧 예루살렘이 있다는 것입니다. 약 430년 후 그곳에 이스라엘 최초의 성전이 세워졌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성읍(21-28) 베냐민 자손이 가족대로 받은 성읍은 모두 스물여섯 개입니다. 그중에는 유명한 성읍과 잘 알려지지 않은 성읍도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다른 지파에 비하여 작고 열세였지만, 그곳에 아름다운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졌고 그들은 그것을 지켜갔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경계선 안에서 항상 감사하고 지켜가야 할 것들을 반드시 지켜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주어진 장소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보내며 믿음의 뿌리를 내려가야 합니다. 그렇게 지켜가고 믿음의 뿌리를 내려갔던 베냐민 지파를 통해 먼 훗날 베냐민 지파의 한 가족으로부터 사도 바울이 태어납니다.

 

적용: 지금 이 순간 나의 삶의 경계를 분별하고 그 경계 안에서 믿음을 따라 뿌리를 깊이 내려가야 할 때입니다.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것도 없는 게 청춘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무엇을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망설이는 사이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갑니다. 오늘의 젊음이 평생 유지되지도 않습니다. 잠시 쉬어가도 인생에 큰 지장이 없으니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인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에게 시간이라는 자원을 똑같이 나누어 주셨습니다. “겨울이 묻는 날이 있을 것이다. 여름에 무엇을 했느냐고” 슬로바키아 속담입니다.

 

< 설 교 >

베냐민 자손의 기업

수 18:11-28 / 우인택 목사

오늘 본문은 베냐민 지파의 땅과 성읍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 사이의 26개의 성읍과 인근 촌락들을 분배받았습니다.

 

1. 먼저, 오늘 본문에는 베냐민 지파에게 주어진 땅을 세밀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남쪽으로는 유다 지파와 그리고 북쪽으로는 에브라임 지파와의 사이에 자리 잡았는데, 그곳은 가나안의 한가운데에 해당되는 지역으로서 이스라엘의 남과 북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그리고 베냐민 지파가 분배받은 성읍 중에는 훗날 솔로몬 성전이 세워질 예루살렘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28절).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모세가 베냐민에 대하여 예언한 것의 성취였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33:12 말씀입니다.

“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살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마치도록 보호하시고 그를 자기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시리로다”

순서에 따라서 제비를 뽑았는데, 좀 더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만 했는데 모세의 예언대로 베냐민 지파는 에브라임과 유다 지파의 중간에 기업을 얻음으로써 하나님의 회막이 실로에 있을 때나 성전이 예루살렘에 건축되었을 때나 항상 하나님의 성전 사이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순종하면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베냐민 지파의 기업은 다른 지파에 비해 그 면적은 작지만 북방 메소포타미아에서 시리아를 거쳐 애굽으로 이어지는 매우 중요한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가 소유한 땅에는 전략적인 요충지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이후에 베냐민 지파의 땅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격돌하는 격전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리적인 배경 때문에 베냐민 지파는 자연스럽게 호전적인 지파가 되고 말았습니다(삿 5:14, 삼하 2:15).

그런데 이것 또한 그들의 조상인 야곱이 예언한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창세기 49:27에 야곱이 베냐민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여러분, 참 놀랍지 않습니까?

마치 미래를 보고 말하듯이 모세와 야곱이 베냐민에 대하여 예언을 했고, 베냐민에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므로 그 예언이 성취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모세의 예언이나 야곱의 이 예언은 그들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것은 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든 것을 볼 때, 베냐민 지파를 포함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의 땅 분배의 주체는 하나님이심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의 땅 분배는 제비뽑기라는 방법에 의해 제사장 엘르아살과 여호수아, 그리고 각 지파의 대표자들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강력한 섭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가 단지 이스라엘의 땅 분배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우연이 없고 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일어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29-31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여러분,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이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고 그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알기에 힘써야 합니다.

지나간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서 지금 이 시대에 주시는 하나님의 뜻과 약속을 찾고 발견함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을 더욱 굳게 세워야 합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분명하게 찾으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그리고 땅을 분배하고 그 경계를 각 지파마다 계속하여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만족하게 여기라’는 교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0절과 28절에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는 “이는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의 사방 경계였더라”라는 말씀도 같은 의미입니다.

이처럼 세세하게 지명을 언급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 이렇게 많다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너희 기업의 경계는 너희에게 가장 합당한 것이니 그 이상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각 지파마다 그들의 삶의 경계를 하나님께서 정해 주셨듯이 우리 성도의 삶에도 넘어서는 안 될 경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경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다가 그곳에서 쫓겨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경계를 넘어섰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약의 율법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는 경계를 말씀하신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경계를 넘어섬으로 그들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시작된 신약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의 경계를 넘는 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주일에 상고하는 갈라디아 교회의 거짓교사들, 그리고 그들의 뒤를 이은 이 시대의 수많은 이단들, 그리고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수많은 삯꾼목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세상의 썩어 없어질 것들의 복을 구하는 저급한 말씀으로 변질시키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마치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큰 음녀가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들고서 하나님의 영광을 흉내 내듯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을 함부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지금 내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살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기업의 경계를 정해 주셨듯이 우리들에게도 복의 경계를 정해 주셨습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하나님께서 정하신 복의 경계에 대하여 깊이 기도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했을 때 그들에게 주어진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 진 것 처럼 저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언약도 저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때 이루어 지게 됨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기업의 경계를 주셨듯이 저희들에게도 말씀의 경계를 주셨음도 배웠습니다. 저희들 모두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이 가장 좋은 길임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베냐민 지파 기업들

수 18:11-28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의 말째 아들이요, 라헬의 소생입니다. 라헬은 베냐민을 출산하고 사망하였습니다. 열 한 지파는 모두 외지에서 출생하였으나 베냐민만은 가나안 본토생이니 천년 왕국에 들어가서 출생할 신자의 모형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요셉 지파 곁에 자리하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셨습니다. 그것은 베냐민이 요셉의 유일한 친 형제이며, 또 작은 요셉이기(시 68:27) 때문에 큰 요셉의 보호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 좋은 보호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유다 열에 자리했는데 그것은 이 지파가 후에 유다와 연합해서 다윗의 보좌와 예루살렘 성전을 고수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베냐민은 요셉과 유다와의 중간에 있는 기업을 차지했습니다. 베냐민은 이스라엘 중에 가장 적은 지파이지만 이스라엘 건국 왕 사울이 이 지파에서 난고로 베냐민 지파인 사도 바울은 자신이 베냐민 지파인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베냐민 사람들은 남으로는 유다 지파가 있으니만큼 조상 야곱의 축복을 상기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창 49:10에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또 북으로 요셉 지파라, 창 49:22에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곁의 무성한 가지라”고 이렇게 상기했습니다. 창 49:27에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 라”고 했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정확한 경계는 남으로 유다, 북으로 요셉 지파를 인접하고 있으며, 동으로는 요단강과 서쪽으로 단 지파에 접경하고 있습니다. 이 지파 기업의 어떤 부분도 바다의 끝을 가까이 못하고 있는데 반하여, 서쪽 경계는 “남쪽으로 바다의 끝을 에워싸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14절). 이것은 바다와는 비록 먼거리에 있지만, 이 기업인 대해와 평행선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봅니다. 즉 동의 경계는 요단강의 표시가 분명하나 북, 서, 남의 경계는 들로 산으로 골짜기로 금이 그어졌는데 북으로부터 요단강에 여리고 북쪽으로 해서 서편 산지를 넘어 벧아웬 황무지라 했으니 역사서에도 전쟁의 기록이 많이 있는 곳(삼상 13:5, 14:24)입니다. 전쟁으로 황폐한 곳인듯한 요새로 해서 서쪽으로 벧엘, 남쪽으로 법궤를 모셨던 곳이 기록되었고, 또 샘 근원이 있는 넵도아 힌놈의 아들 골짜기로 해서 글릴롯으로도 이름한 길갈, 이 길갈이 할례를 받은 곳, 즉 죄를 청산하는 곳입니다. 거기서 보한의 돌로 해서 벧 호글라을 지나 요단의 남단이라 하였습니다. 그 나타난 지명들은 다 기념될 곳들입니다. 그리고 여기 나타난 지명 벧아웬(공허한 집), 벧엘(하나님의 집), 벧호 론(굴집), 벧 호글라(까치의 집) 등 “벧” (집)으로 되어진 지명이 많이 있습니다. 굴이 있는 곳이어서 굴집, 전쟁으로 황폐하여 벧아웬이라고 지은 듯하고, 하나님을 만나서 벧엘이라고 지은 그 지명은 더욱 주의할만 합니다. 베냐민 자신들이 있는 성읍들은 동쪽으로 열 두 성읍, 서쪽으로 열 네 성읍, 또 열 여섯 성읍이 있는데 그 중에 여리고가 그들의 기업에 들어 있습니다. 여리고는 가나안 진주에 제일 첫 번째 있는 성이었습니다. 여리고 하면 신앙으로 구원받은 죄인인 기생 라합이 기억되는 곳입니다. 여호와가 말씀하신대로 그 견고한 성을 나팔 불면서 돌아서 함락시킨 곳입니다. 그 리고 거기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전멸시키라고 명령하셨는데, 그만 아간같은 범죄자가 생겨서 큰 실패를 당한 일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여리고의 역사는 찬란하고 또 처참한 것입니다. 여리고는 비록 그 성읍이 파괴되어 성문과 성벽이 재건되어지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는 하지만 첫째로 꼽혔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베냐민 지파에 전혀 쓸모 없는 곳이 아니었기에 시골 마을로 건설되고 주민이 거하였을 것입니다.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삼상 11:15) 처음으로 이스라엘이 진을 쳤던 곳인 길갈도 이 지파 내에 위치했습니다. 이곳은 후에 굉장히 더러운 곳이 되었습니다. 호 9:15에 “저희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도다” 했으며, 벧엘도 이 지파 내에 위치했으므로 유명한 곳입니다. 베냐민이 다윗의 집안에 결합되어 있었지만 벧엘은 요셉 집의 소유였던 것처럼 보입니다(삿 1:23-25). 거기서 여로보암은 자기 송아지들 중의 하나를 태웠습니다. 베냐민 지파 내에 기브온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솔로몬의 치세 초기에 제단이 있었습니다(대하 1:3). 기브아도 마찬가지로 치욕적인 곳이며, 레위 지파 사람의 첩이 모욕을 당한 곳입니다. 미스바와 그 가까이에 사무엘의 에벤에셀과 또한 예레미야의 성읍 아나돗이 역시 이 지파 내에 있었고 예루살렘의 북쪽 부분이 포함됩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가 얻은 성읍은 유다 지파에 비하여 8분의 1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중심이 되는 예루살렘 성전의 소재가 이 베냐민 지파의 영 내에 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물질 분배는 극소했지만 영적 분배에서는 큰 축복이라 하겠습니다. 이 베냐민 지파의 영 내에 있는 성읍과 촌락의 명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img src='6_7.jpg'> 벧엘이 이 지파의 기업으로 그려진 것이 베냐민 지파의 자랑인 것입니다. 그러나 벧엘이 이 지파의 기업으로 그려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게으른 탓에 에브라임 자손이 점령하게 된 것입니다(삿 1:22-26). 이 역사적인 지방을 못 가진 것은 베냐민 지방의 수치인 것입니다. 후에 남북으로 갈릴 때에도 베냐민 지파는 남국에 속했지만, 벧엘은 북극에 속하여 여로보암의 범죄의 근거지가 되었는데, 이것은 큰 불행이었습니다(왕상 12:28-33). 내게 맡겨진 기업은 깨끗이 정리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벧엘을 잃어버려서 북극의 죄악의 근거지가 되게 된 것은 베냐민 지파의 책임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또 이 지파의 소유로 예루살렘이 들어 있는 것도 큰 자랑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성전이 건축된 곳이요 다윗 왕도의 수도였습니다. 이런 저명한 역사적 지방을 야곱의 막내 아들 베냐민의 지파가 기업으로 맡은 것은 크게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내게 허락해 주신 기업을 잘 보관하며, 또 잘 정리하고, 잘 이용하여야 합니다. 내 마음이 예루살렘이 되게 하고, 내 생각이 벧엘이 되게 잘 보관하며, 잘 정리해야 합니다.

 

 

 

 

베냐민 지파의 기업

수 18:11-28

오늘 본문은 베냐민 지파가 기업을 분배받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분배받지 못한 7지파 중에 가장먼저 땅을 분배를 받았습니다.

 

 

 

11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11. 베냐민 자손 지파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제비 뽑은 땅의 경계는 유다 자손과 요셉 자손의 중간이라

베냐민지파 역시 다른 지파와 같이 가족 수대로 분배를 받습니다. 그들이 분배받은 땅은 유다와 요셉지파 사이에 있는 작은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땅은 가나안의 중심부 지역에 있었습니다. 베냐민지파의 기업이 유다와 에브라임지파 사이에 있게 된 것과 작지만 중심부에 위치한 것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다른 지파에 비해 작고 연약한 지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받은 기업도 적었습니다. 그러나 후일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베냐민 지파는 유다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와 함께 이스라엘의 중추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이 베냐민 지파에서 나온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 안에 일어나는 일에는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이 이해되지 않아서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보이지 않아서 고민하고 갈등하고 어려워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일까? 라는 의심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리 우리의 삶 가운데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아도 내가 생각했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생각, 나의 계획, 나의 뜻과 다를지라도 “내 생각보다 크신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이 숨어 있다”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2절에서 20절까지는 베냐민 지파의 경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베냐민지파의 경계가 동서남북으로 잘 소개되고 있습니다. 북쪽 경계는 요셉의 남쪽과 일치, 남쪽 경계는 유다의 북쪽 경계와 일치합니다.

이처럼 지파와의 경계를 세세하게 기록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서로 협력하기를 원하시기도 하시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기업” 그 기업은 다른 지파가 침범할 수 없다는 것과 또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소중하게 지키고 간직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중에서도 가장 작고 연약한 막내 지파였습니다. 그렇지만 창세기 49장에서 나오는 야곱의 축복을 보면, 베냐민을 “물어뜯는 이리”라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베냐민은 작고 어리지만 위기가 오면 그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저력있는 용맹스러운 지파였습니다. 약하지만 약할 때 강함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21절과 27절에는 베냐민 지파가 받은 성읍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동쪽에 12개 서쪽에 14개 총 26개의 성을 분배 받습니다. 그런데 이 성들은 아주 험준한 중앙고지 고원에 위치하였습니다. 경작지도 적었을 것이고, 강수량도 부족했을 것입니다. 좋은 땅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곳이 다 통하는 땅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가 있었습니다.

베냐민 지파에게 주신 성읍들의 이름을 눈여겨 볼 때 여러성읍의 이름 중에 제법 눈에 익은 지명들이 나옵니다. 22절에 벧엘, 25절에 기브온, 28절에 예루살렘이 나옵니다. 벧엘은 야곱이 에서에게서 도망쳤을 때 제단을 쌓았던 곳이었습니다. 훗날 야곱의 아들들이 범법행위를 행하고 어디로 도망가야할지 알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야곱의 모든 가족들을 벧엘로 올라오라 라고 말씀하시며 예배하게 했던 그런 장소였습니다. 또한 기브온은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 전까지만 해도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예배하던 장소였습니다. 예루살렘은 말할 것도 없이 이스라엘의 중앙 성소였습니다.

이처럼 베냐민의 땅은 작고 빈약한 곳이었지만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신명기 33장 1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2. 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살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마치도록 보호하시고 그를 자기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시리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베냐민지파는 작은 지파였습니다. 그리고 작은 땅을 분배 받았습니다. 어쩌면 그들에게 불만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작을까?” 그리고 “왜 우리는 이만큼의 땅 밖에 받지 못한 것일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따르는 지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소에 가까이 머물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유지했을 것입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지파였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베냐민 지파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되고, 그 지파에서 왕도 세워지게 되는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습이 때로는 보잘 것 없어 보이거나 “하나님께서 정말 나와 함께하시는 것일까?” 의문이 드는 일들이 있습니까? 이 것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선하신 계획임을 믿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간다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베냐민 지파와 같이 사랑을 더하여 주시고 우리의 삶을 안전히 인도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주님 앞에 오늘도 순종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평화를 향한 부르심

여호수아 18장 11~28절 / 목사 정대진

어제 읽은 여호수아 18장 1~10절 말씀은 새롭게 펼쳐지는 가나안 토지분배의 서론입니다. 이스라엘의 양대 지파인 유다와 요셉 지파와 이미 요단강 동쪽 땅을 받기로 한 세 지파, 그리고 다른 지파와는 달리 하나님의 일을 전업으로 하여 땅을 받지 않은 레위 지파를 제외한 일곱 지파가 어떤 원칙과 방법에 의해서 토지분배를 시행했는지를 서론 격으로 보여준 기록이 어제 읽은 말씀입니다.

 

11절부터는 그 시행 결과를 보여주고 있고, 특별히 그 중에서도 오늘 본문은 베냐민 지파가 제비 뽑아 얻은 땅의 범위와 그 안에 있는 마을의 이름들을 알려줍니다. 창세기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베냐민은 야곱이 라헬에게서 얻은 막내로서 요셉이 팔려 간 후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아들입니다. 또한 요셉의 동생이었던 만큼 베냐민 지파는 다른 남은 지파 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먼저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본문을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1절 말씀을 보면 베냐민 지파를 위한 제비를 누가 뽑았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들은 지파보다 더 작은 단위인 “가족”을 기준으로 땅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베냐민 지파의 땅이 가진 가장 중요한 의미를 처음부터 밝힙니다. “그 제비 뽑은 땅의 경계는 유다 자손과 요셉 자손의 중간이라”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대표하는 양대 지파 사이에 위치하여 두 세력의 갈등을 막는 일입니다.

 

이후 설명드릴 내용을 지도로 보시면 더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말로 설명 드리는 것을 양해 바랍니다. 댁에 들어가셔서 각자 가지신 성경책에 붙어있거나 아니면 인터넷에 있는 성경 지도를 펼치고 오늘 본문 다시 읽어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12~13절에 따르면, 베냐민 지파의 북방 경계는 16장 1~4절에 기록된 요셉 지파의 남쪽 경계와 16장 5절에 기록된 에브라임의 경계와 같습니다. 황무지를 제외하고 이곳에 언급된 모든 곳은 이미 16장 1~5절에 쓰여 있습니다. 베냐민의 경계는 요단에서부터 시작하여 여리고 북편으로 올라가서 서편 산지를 넘어 벤아웬 황무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14절을 보면 베냐민 지파의 서쪽 경계는 벧호론 남쪽 산에서부터 서방으로 돌아 남쪽으로 향하여 기럇 여아림까지 이릅니다.

 

이어서 15~19절을 보면 베냐민 지파의 남쪽 경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경계는 15장 5~11절에 기록된 유다의 북쪽 경계와 일치합니다. 베냐민의 남쪽 경계에 대한 기록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지만 유다의 북쪽 경계에 대한 기록은 동에서 서쪽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리고 베냐민의 남쪽 경계는 기럇 여아림 끝에서 서편으로 나아가 넵도아 물(15:9) 근처에 이릅니다.

 

그리고 21~24절을 보면, 베냐민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냐민의 성읍은 두 지역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번째로 동쪽 지역으로 열두 성읍을 21~24절에 기록하고, 두 번째는 서쪽 지역으로 열네 성읍을 25~28절에 기록합니다. 이러한 목록은 유다와 레위가 차지한 성읍을 제외하고 지파 중에서 가장 많습니다.

 

이 중에서 26절의 ‘미스베’는 아마도 ‘미스바’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28절의 ‘셀라’는 사울이 장사된 곳입니다. 즉,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도시들이 베냐민 지파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잡하시죠? 고대의 낯선 마을 이름들을 읽어가는 것이 상당히 지루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베냐민 지파가 차지한 땅의 지리적 특성을 오늘 분명히 알고 가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바로 남쪽으로 유다, 서쪽으로 단, 북쪽으로 에브라임과 므낫세, 동쪽으로는 갓과 르우벤, 이렇게 이스라엘의 주요 지파에 온통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나 베냐민 고원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에브라임 산지와 유다 산지 사이에 있어서 이 거대한 두 지파간의 완충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들이 차지한 땅은 중앙 산지의 중앙부를 지나가는 남북 방향의 산지 길과 동서 간을 연결하는 도로가 만나는 교통의 요지입니다. 그리고 베냐민 산지의 서쪽에는 해안 지방으로 통하고, 동쪽으로는 여리고로 내려갈 수가 있습니다. 또한 여리고에서는 요단강을 건너 강 건너편 오른쪽에 자리 잡은 지파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베냐민은 이스라엘 거의 모든 지파의 교차로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교통의 편리함 때문에 베냐민은 동서남북으로 교역과 문화의 통로가 되어 멤엘, 라마, 미스바, 기브온 등과 같은 성읍에서는 역사적으로 전국적인 종교 행사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동시에 이 지역을 중심으로 전쟁도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사사 시대에 베냐민 지파의 불량배들이 레위 사람의 첩을 욕보이고 죽인 일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베냐민 지파에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키어 베냐민 지파가 멸절될 위기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 49장 27절에서 야곱이 그의 막내아들에 대하여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라고 예고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대로 베냐민 지파는 이리와 같은 호전성과 용맹성을 보였습니다. 모압 왕 에글론을 살해한 에훗이 바로 베냐민 사람이고, 잘 알려진 바대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도 베냐민 사람이었다. 이렇듯 베냐민 지파의 특성은 한 마디로 싸우기를 좋아하고 전쟁에 능숙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그들의 기질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의 지형적인 영향이 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바꿔 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의 지리적인 환경이 그들을 싸움꾼으로만 만들기에 적합했을까요? 더욱 정확히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온 이스라엘의 가운데에서 힘 있는 지파들의 경계에 살게 하신 까닭이 전쟁에 능숙한 사람들로 만들기 위함이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그들이 민족의 화해자가 되길 기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비뽑기를 통해 베냐민 지파에게 한 가운데 땅을 주신 이유입니다. 이스라엘은 12개의 개성 강한 지파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언제든지 내분이 일어날 위기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여러 내전이 일어났고 그 결과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베냐민이 유다와 요셉, 이 거대하고 힘 있는 두 지파 사이에 위치하며 화해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명을 주셨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도리어 분쟁의 주역이 되어 많은 다툼과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스스로를 돌이켜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과연 하루의 삶 속에서 평화를 일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갈등을 부추기는 사람입니까? 우리가 속한 공동체 가운데 화해를 이루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차별과 분노를 일으키는 사람입니까?

 

평화를 이루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분명한 사명입니다. 그것은 곧 우리의 영적인 주거 환경이 베냐민과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는 수없이 많은 다툼과 분열이 일어나는 세상 한 복판에서 주님의 마음을 품고 평화와 화평을 이루기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이 소중한 사명을 마음에 새기며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보여주신 본을 따라 평화를 이루고 전하는 하루가 되시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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