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가 너를 지키게 하라
잠 2:10-22
10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을 즐겁게 할 것이요
11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12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 내리라
13 이 무리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며
14 행악하기를 기뻐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하나니
15 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행위는 패역하니라
16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17 그는 젊은 시절의 짝을 버리며 그의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18. 그의 집은 사망으로, 그의 길은 스올로 기울어졌나니
19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 길을 얻지 못하느니라
20 지혜가 너를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21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22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간사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
잠 2:10-22 / 네가 세상 사는 이치를 깨닫고 또 슬기로워진다면 그것 또한 즐거움이 아니겠느냐? 인생을 사는 기쁨이 아니겠느냐? 11) 세상 사는 이치를 깨닫고 통찰력까지 지닌다면 무엇이 걱정스럽겠느냐? 무엇이 두렵겠느냐? 12) 잘못된 길로 빠지겠느냐? 입으로 사기나 치려고 하는 자들에게 속아 넘어가겠느냐? 13) 사기나 치는 자들은 어두컴컴한 길을 올곧은 길인 양 살아간다. 14) 못된 짓만 골라 하며 남 등쳐 먹기를 밥 먹듯 하고 남의 뒤에서 음모나 꾸며 어떻게든 잡아먹으려 들고 15) 그 누구도 믿지 못해 마음속에 의심만 가득 차 있는 가련한 인생들이다. 16) 깨달음과 통찰력을 지닌다면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넘어가겠느냐? 색정을 풍기며 요염하게 차려 입고 온갖 아양을 떨며 달려드는 여인네가 있다고 해서 거기에 빠지겠느냐? 17) 자기 남편을 버리고 하나님과 일찍이 맺었던 약속을 저버린 아낙들에게 말이다. 18) 그런 아낙들에게 찾아가는 것은 무덤으로 내달리는 것과 같다. 그런 여자들을 따라가는 것이 저승으로 내려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19) 그런 여자에게 찾아갔다가 온전히 되돌아온 사람은 일찍이 없었지. 살아온 사람은 아무도 찾아볼 수 없었어. 20) 곧, 깨달음과 통찰력을 지닌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되리라. 모름지기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하며,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리라. 21) 무릇 이 세상은 올바른 사람들만 살아야 하는 세상! 떳떳한 사람만이 남아 있어야 하는 세상! 22) 빌어먹을 짓만 골라 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리라. 남을 등치고 짓누르며 착취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 뿌리째 뽑히리라.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들어가면 마음이 즐겁게 되고, 악인으로부터 보호될 뿐만 아니라 성적 타락도 예방하게 되고, 선하고 의로운 길에 가게 되는 복이 반드시 따라오게 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혜가 주는 유익(10-12) 지혜가 마음에 들어갈 때 지식이 영혼을 즐겁게 하며, 근신이 지켜주며 명철이 보호하여 준다고 말합니다. 또한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진다고 교훈합니다. 지혜를 통해 얻는 지식은 단순한 인식의 차원이 아니라 실제적인 지식이며 속사람을 각성시켜 새로운 힘과 기쁨을 주며 사려 깊게 생각하는 능력인 근신과 모든 문제를 합리적인 방법으로 풀어갈 수 있는 명철을 얻게 하는 지식입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들어갈 때 참된 진리와 선한 것을 의도적으로 왜곡시키는 패역한 무리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힘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악한 자들의 속성(13-19) 성경에서 악은 어두움을 상징하고, 선은 빛을 상징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반면(시 1:2) 악한 사람은 악행과 패역을 즐깁니다. 지혜를 얻은 자는 정직한 길과 어두운 길을 분별하게 합니다. 반면에 지혜를 얻지 못한 자는 어두운 길로 행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하며 그 길은 구부러져 있으며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로 음녀의 유혹하는 말에 속아 젊은 시절의 짝을 버립니다. 그 결과 그 집은 사망으로, 그 길은 스올로 기울어져서 생명 길을 얻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의인과 악인의 결론(20-22) 지혜를 얻을 때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되며 의인의 길을 지키게 됩니다. 정직한 자가 되어 땅에 거하게 되며, 완전한 자가 되어 땅에 남아 있게 됩니다. 즉 지혜를 얻을 때 선하고 정직하며 완전한 자 곧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의인의 길을 걷게 된다고 교훈합니다.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간사한 자는 땅에서 뽑히게 될 것입니다
적용: 하나님이 주신 지혜의 말씀으로 복을 받거나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난 적이 있습니까? 사례가 있으면 서로 나누어 봅시다.
지나친 좌절과 어려움은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들지만, 좌절경험과 어려움의 결핍은 우리를 취약하게 만듭니다. 실제 상담에서 보면 좌절이나 어려운 경험이 많은 사람들만큼이나 그러한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좌절이나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을 견뎌내는 힘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문요한<문요한의 마음 청진기>중에서. 성공과 명예가 중요한 세상에서 내 의지로 세상을 이겨낼 수는 없습니다. 지혜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에 의지할 때 흔들리고 힘겨운 세상을 분별하여 깨닫고 돌이키어 일어설 힘과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 설 교 >
지혜가 주는 유익들
잠언 2:10-22 / 찬송 430장 / 서울산정현교회
솔로몬은 지혜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지혜를 사모하고 간절히 구하라고 권했습니다.
솔로몬 자신이 누구보다도 지혜를 간절히 사모하고 구했던 사람으로서 일천번제를 통해 하나님께 받은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무엇 때문에 지혜를 열심히 찾고 구해야 하는지, 좀 더 구체적인 이유 5가지를 알려줍니다.
1. 우리를 즐겁게 하기 때문입니다(10절)
인간은 하나님이 정하신 이치를 따를 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따르면 선한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복을 받아 참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 즐거움은 은이나 금을 얻게 되어 느끼는 즐거움과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즐거움입니다. 사람은 돈이 많다고 꼭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늘 상대적이어서 나보다 좀 더 많이 가진 사람 앞에서는 또 다시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2. 우리를 보호해주기 때문입니다(11절)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이 구절을 새번역 성경으로 살펴보면, 분별력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우리에게 분별력을 주어 우리가 어그러진 길로 가지 않도록 바른길로 갈 수 있는 길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킬 힘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혜의 도움, 인도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혜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악의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줍니다.
3. 악한 자에게서 건져줍니다(12절)
악은 하나님이 정말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끝은 반드시 파멸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또한 마지막 날에 심판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악을 일삼는 자를 반드시 벌하시고 심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지혜를 구하고 지혜를 얻으면 악한 자의 길을 따르지 않는 분별력과 힘을 얻게 됩니다. 이같은 분별은 세상의 지식이나 학문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늘의 신령한 지혜로 얻습니다. 그러므로 이 지혜를 소유한 사람은 악한 자의 꾀임과 유혹에서 벗어나고 구원과 생명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지혜를 사모하고 구해야 합니다.
4. 음녀의 유혹에서 건져줍니다(16-19절)
음녀는 그 뒤에 나오는 이방 계집과 동의어입니다. 육신의 욕망을 따라 성적인 타락을 일삼고 다른 사람까지 같은 죄악에 빠지게 만드는 악한 여자를 가리킵니다. 본문에는 그냥 이방 계집이라고 하지 않고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이라고 표현합니다. 자신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많은 다른 사람을 죄악에 빠지게 현혹하는 여자를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음녀의 유혹에 걸려듭니다. 특히 젊은 시절에 이런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본문 18-19절입니다. “그의 집은 사망으로, 그의 길은 스올로 기울어졌나니,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 길을 얻지 못하느니라”
스올은 사망과 같은 의미로 땅속 깊은 곳, 지옥을 의미합니다. 곧 멸망이라는 뜻인데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에서 보듯이 그만큼 치명적이라는 뜻입니다. 성적인 타락은 창세기에서도 등장할 만큼 인류 역사와 맥을 같이한 강력한 유혹이요 죄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나 가나안의 이방 민족들을 비롯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느 시대에나 성적인 타락과 방탕은 한 번도 멈추거나 사라진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4세기에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음욕에 빠진 자를 순결의 길로 돌이키는 일은 죽은 자를 살리는 일만큼이나 어렵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너무나 달콤하고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디발의 아내를 뿌리친 요셉에게서 보듯이 하나님을 아는 참 지혜가 우리를 이런 음녀의 정욕적이고도 강렬한 유혹을 이기도록 해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지혜를 힘써 구해야 합니다. 나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5. 선과 의의 길로 인도해줍니다(20-22절)
타락한 인간이 선의 길, 의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사람을 악과 죄의 길로 강하게 이끌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혜가 없는 자들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죄의 길과 악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들에게는 무엇이 죄인지 분별할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둠과 혼돈 속을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지혜를 소유한 자는 마치 빛을 소유한 자와 같습니다. 빛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캄캄한 밤중일지라도 전혀 딴 길로 빠지지 않고, 헤매지 않고 선과 의의 길을 따라 바르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는 등불과 나침반과 같습니다.
따라서 지혜는 얻으면 좋고, 못 얻으면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지혜는 생명과 직결될 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입니다. 지혜가 없으면 죄와 유혹을 분간하지 못해 넘어지고, 끌려가고, 결국은 파멸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혜를 가지면 생명 길로 걸어가서 참 행복을 영원토록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는 세상에 그 무엇보다도 이 지혜를 항상 사모하고 힘써 구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그것의 중요성을 알고 체험했기에 이토록 입이 아프도록 강하게 권면하고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지혜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지 말고 사모할 수 있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간절하게 구하는 기도가 끊이지 않기 바랍니다. 야고보서 1:5의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은 사모하며 구하는 자에게 기뻐하시며 반드시 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잠언강해
잠 2:10-22
머리는 타고납니다.
태어날 때부터 머리 좋은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혜는 다릅니다.
지혜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게 지식과 지혜의 차입니다.
지식은 공부해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머리가 좋으면 지식이 많아집니다. 지식을 얻는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지혜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혜는 머리가 좋다고 얻어지는게 아닙니다. 두뇌명석하다고 지혜롭다.....그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지혜는 지식처럼 배워서 얻어지는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지식보다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식만 가진다고 성공한 인생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식이 있고, 미련한 사람 있습니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똑똑해도 인간관계가 나쁜 사람이 있습니다.
이기적이고, 자기만 아는 사람, 그런 얄미운 짓을 하는 사람은
아무리 지식이 넘치고 똑똑해도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비록 지식은 없지만,
남을 배려하고, 위아래를 알고, 앞뒤 분간을 할 줄 아는 사람
나서야 될 때, 안나서야 될 때를 아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사랑 받고 환영받습니다.
그런데, 얌체짓만 하는 사람,
자기 머리만 믿고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은
자기 똑똑한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안 알아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혜는 배워서 되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지혜는 지식처럼 배워서 얻는게 아니라 구해서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주에 지혜를 얻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지혜는 어떻게 얻는다고 했습니까?
첫째, 지혜는 하나님께 구할 때, 얻을 수 있다.....그랬습니다.
그것도 그냥 구하는 것이 아니라, 끈기 있게 구해야 된다.....그랬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을 때,
그것도 잘 새겨들어야 지혜를 얻을 수 있다......그랬습니다.
그리고 이런 지혜로운 사람이 받을 복이 있다 그랬습니다.
무슨 복입니까?
첫째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되며, 하나님을 알게 되는 복을 받는다 그랬습니다.
둘째는 지혜를 얻은 사람은 지식을 말하고 명철을 말하게 되고
다시말해서 분별력이 생기고, 지혜를 얻으면, 지식도 같이 얻는다고 그랬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지혜가 주는 유익에 대한 말씀입니다.
첫째로 지혜가 주는 유익은, 모든 악에서 건져주고, 지켜줍니다.
10-12절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지혜로움은 우리를 악에서 건져주고 지켜줍니다.
우매한 자는 선악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악한데 잘 빠집니다.
악은 우리를 멸망과 사망으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지혜를 가져야 하고, 지혜가 주는 분별력으로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 불행하게 됩니까?
지혜의 말씀인 하나님 말씀에서 떠나면 불행하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에 즐거움도 평안도 다 사라집니다.
반대로 악에 빠지게 되면,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평안이 없습니다.
결국, 우리의 영혼을 파괴시키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셔야 우리가 잠을 자도
평안하게 두다리 뻗고 잠잘 수 있습니다.
저는 시편23편 다윗의 유명한 시를 좋아하는데
거기에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누구와 함께 하기 때문이라고요?......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운 말씀이 우리를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하고
어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 주신다는 겁니다.
두 번째 지혜가 주는 유익은
시험과 유혹에서 우리를 건져준다는 겁니다.(16절)
16)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호린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나눈다....분리한다.....그런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교회 열심히 다니고 신앙생활을 잘 하던 사람이
시험에 들어 교회도 안다니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이 가끔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혜가 없으면, 분별력이 없으면 이단이나 사단들이 꾀어서
하나님에게서, 또는 교회로부터, 사람들로부터 분리시킨다는 의밉니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혼탁한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지혜가 없고 분별력이 없으면 속이는 자들에 의해
교회와 분리시키고, 하나님과 분리시켜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차려서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뭐가 옳고 그런지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사단이 주는 유혹이나 시험에 빠지게 된다는 겁니다.
지혜가 없으면 뭐가 옳고 그른가를 모르게 됩니다.
신앙의 열정이 가득한 사람들이 여기에 잘 빠집니다.
불붙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게 시험과 유혹 때문에
건전한 신앙과 믿음으로부터 분리시켜버립니다.
왜냐,
열정만 있으면 한가지 밖에 못 보거든요.
좋은 점도 있는데, 위험점도 있어요.
뭐가 위험해요?
분별력이 없고, 그래서 잘못된 신앙으로 빠지기 쉽거든요.
그래서 은혜를 받으면 시험도 함께 받고요. 잘못되는 수가 많아요.
문선명이나 박태선 같은 사람은 은혜를 못받아서 그런줄 아세요?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어요.
근데, 지도를 잘못 받았어요. 아니 못받았어요.
그러다보니까, 교만해져서,
자기 신앙이 최고라는 자만에 빠져서 저렇게 된거 아닙니까?
은혜가 클수록 그만큼 위험도 커요.
저는 그때만일, 문선명이나 박태선이 신학을 잘 배웠더라면
아마, 저렇게 이단으로......잘못된 길을 갔었겠는가?......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은혜를 받을 때, 신앙의 지도자를 잘 만나서 잘 교육받아야
건강한 믿음과 신앙에서 분리가 안돼요.
저도 그랬습니다.
저도 아마 신학교에서 신앙교육과 교리를 잘 교육받지 못했더라면
저도 지금쯤 한쪽으로 치우친 편협적인 신앙인이 됐을지도 모르겠어요.
근데, 다행히 저는 하나님께서 신앙의 균형을 잡도록 해 주셨어요.
제가 늘 강조하지만, 신앙은 균형이다......
균형잡힌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그랬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신앙만큼 위험한건 없습니다.
그건 극단을 의미하거든요.
극단을 달리기는 쉬워요.
한쪽으로 치우치는건 참 쉽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으로 안쏠리고 균형을 잡는다는게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외줄 타는 사람보세요.
균형을 잡아야 안떨어지잖아요.
모든 게 그래요. 균형이 중요해요. 신앙은 더더욱 그래요.
여러면, 좌익도 무섭지만, 우익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는 좌파 어쩌고 저쩌고 그러는데, 우파도 만만치 않아요.
그래서 중도가 가장 좋은거예요.
얼핏 말하기는 회색지대, 혹은 회색분자다.....그러는데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중도로 가는게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좌파도 욕하고 우파도 욕하잖아요.
양쪽에서 다 욕먹을 수 있는데가 중도예요.
한쪽에 있으면 다른 한쪽에서만 욕하잖아요.
근데 중도는 안그렇거든요. 양쪽에서 다 욕먹거든요.
신앙도 똑 같아요.
너무 신비주의로 흘러도 위험하고, 그렇다고 너무 보수적인 신앙도 위험해요.
신비주의는 열정은 있는데, 앞뒤 분간을 못하고
보수주의자들은 반대로 신앙의 열정이 없어요.
이 둘을 우리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근데, 그게 쉽지 않아요.
그래서 뭐가 필요하다?..........지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지혜를 얻으면 균형을 잡을 수 있거든요.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사단이 아주 좋아합니다.
근데,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사람은
그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아주 열심히 믿는 것처럼, 느끼거든요.
근데, 이렇게 떨어져서 보면, 참 위험하거든요.
건전하고 건강한 신앙에서 벗어나게 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에게서 갈라놓기 좋거든요.,
우리가 숲 속에 있으면, 나무만 보이잖아요. 왜요? 앞만 보이거든요.
근데, 높은 데 올라갈수록 어때요?
올라간 만큼 넓게 볼 수 있거든요.
신앙도 그래요. 성숙한 신앙인이 되야 됩니다.
신앙이 성숙하면 성숙해 질수록 지혜가 쌓이고
신앙을 넓게 멀리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많은 지혜를 가져야 하는 겁니다.
이 지혜가 시험과 유혹에서 이길 수 있게 해 주는 겁니다.
[잠 2:20-22]을 한번 보세요.
(잠 2:20) 지혜가 너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잠 2:21)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잠 2:22)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궤휼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
지혜는 우리의 신앙을 성숙하게 해 줍니다.
신앙의 조화, 균형을 잡아줘요.
이런 균형과 조화를 이룰 줄 아는 사람은
쉽게 악에 빠지지 않고, 유혹에 넘어지지 않게 되는 겁니다.
어느 한쪽으로든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고
바르게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하고, 지혜를 구해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이 잠언을 묵상하면서 솔로몬처럼
하나님께 부지런히 지혜를 달라고 구하시고
지혜로운 사람이 돼서, 어디에서라도 환영받고, 필요로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지혜의 유익함
잠 2:10-22 / 매튜 헨리 성서주석
이 성귀의 목적은 다음 사실을 나타내는 데에 있다.
짞 참 지혜는 우리에게 어떤 큰 이득을 주는가? 참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멸망에 이르게 하는 죄악의 길에 들어서지 않도록 해 줄 것이며, 이것은 이 세상 모든 재물로 부유하게 하는 것보다 더 큰 친절을 우리에게 베푸는 것이 된다.
짟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를 어떻게 선용해야 할 것인가?
짡 우리가 이 지혜를 소유하는지의 여부는 어떤 규칙을 따라 시험해 볼 수 있을까?
이 나무는 그 열매로 알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참으로 지혜롭다면 그 지혜는 모든 악한 친구와 악한 행위를 피하려는 우리의 근신함으로써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지혜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용도로 쓰일 것이다.
Ⅰ. 악으로부터, 죄의 폐해로부터 우리를 보존하는 데에. 결과적으로 이 지혜는 죄악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환란의 재앙에서 우리를 보전하는 데에 유용하다.
1. 전체적으로(10,11절). "지혜가 너를 완전히 소유하게 되면 그것은 너를 지켜 줄 것이다." 그러면 언제 그 지혜는 우리를 완전히 소유하는가?
(1) 지혜가 우리에게 대해 지배권을 행사할 때. 지혜가 우리 머리를 지혜로운 관념들로 가득 채울 뿐만 아니라, "마음에 들어가서" 명령권을 가지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때, 즉 지혜가 우리 마음 속에서 왕노릇하며 애정과 열정을 규제하게 될 때, 누룩(효모)이 밀가루 반죽 속으로 들어가듯이 지혜가 "마음에 들어가서" 거기에 제맛을 확산시키며 전체를 자기 자신의 형상으로 바꾸어 버릴 때, 이러한 때에라야 그 지혜는 우리에게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2) 우리가 그 지혜를 기뻐하게 되는 때. "지식이 네 영혼을 즐겁게 할 때." 네가 그것을 극히 유쾌한 위안물로서 즐기기 시작하고 즐거이 흡족하게 여기면서 그 규칙에 복종하게 될 때, 즉 다시 말하자면 네가 미덕의 행위를 노예들이나 하는 고역으로서 하는 수 없이 억지로 해야 하는 임무라 하지 않고 "자유"요, "즐거움으로 하는 일"이라고 부르며 신령하고 경건하게 사는 삶을 인간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안락한 삶이라 말하게 될 때, 너는 그 지혜의 혜택을 보게 될 것이다. 설사 어떤 점으로는 그 지혜가 주는 제한이 몸에게는 다소 즐겁지 아니하더라도 그런 것조차도 영혼에게는 즐거울 것임에 틀림 없다.
지혜가 우리에게 있어 이 정도에 이르게 될 때에는 "근신"이 우리를 지켜며 "보호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도들에게 해로운 길에서 피할 수 있고 악인의 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분별력을 주심으로써 "그 성도의 길을 보전"하신다(8절)
심령을 지배하는 은혜의 원리들은 내부의 타락과 외부의 유혹에 대해서 공히 강력한 보신책이 될 것이다(전 9:16, 18)
2. 보다 세부적으로 지혜는 우리를 보전해 준다.
(1) 타락된 원리의 사람들과 무신론적 이교도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데, 그들은 젊은이들의 판단을 타락시키며 그들의 마음에 신앙에 대한 편견과 악을 위한 논증 따위를 주입시키는 것을 자신의 본분으로 삼는 자들이다.
"지혜는 너를 악한 자의 길에서 건져 내리라. 그 구출은 마치 죽음의 입에서 건져내는 것같이 복된 구원이 될 것이다. 그것은 악한자가 걷고 있는 길로부터, 악한 자가 네게 걷도록 유인하는 그 길로부터의 구출이다." 원수는 악한 자(12절)라고 단 한 사람으로 표현되다가 나중에서는(13절) 다수로 표현되고 있다. 즉 한 무리이며 일당이다. 그들은 신앙에 대항하여 연합을 이루고 악마의 왕국과 그 세력을 옹호하기 위해 손을 잡고 동맹을 맺고 있는 것이다.
1) 그들은 선한 것에 반대하는 심령을 갖고 있다. 그들은 "패역을 말하느니라."
그들은 종교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면 그것이 신앙에 의한 그들 자신의 적의를 나타내기 위함이건 타인들을 신안의 길에서 도중하차 시키기 위한 것이건 무엇이든지 다 말한다. 그들은 사탄의 대변자요, 바알을 위해 변호하는 자들이어서 "여호와의 올바른 길을 그르치게 하느나라" 신성을 모독하는 독신적(瀆神的) 재주는 죄악을 위한 찬성론을 얼마나 심술궂게 펼 것이며 패역함으로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헐뜯을 것인가! 지혜는 그런 자들과의 교제를 막아 줄 것이며 최소한 그런 자들의 꾐에 빠지지는 않도록 해 줄 것이다.
2) 그들은 바로 그 선한 것에서 탈퇴한 자들이다. 흔히 그런 자들이야말로 경건한 신앙세계의 원수 중 가장 악의에 차고 위험한 원수들이다. 배교자 율리안이 그 증거가 아닌가!(13절). "이 무리는 정직한 자의 길을 떠나느니라." 그 정직한 길 안에서 그들은 훈련을 쌓아 왔으며 출발을 했었는데 이제 자기들이 받은 교육의 영향력을 훌훌 떨쳐버리고 희망어린 첫출발의 인연도 끊어 버렸다. 이것은 "어두운 길로 행하기 위해서"였다. 빛을 싫어하는 그 사악한 길에서 사람들은 무지와 실수로 눈을 가리우며 완전한 어두움으로 끌려 가게 된다. 죄악의 길은 암흑의 길이요, 편안하지 못하고 안전하지 못한 길이다. 평탄하고 즐거우며 밝은 길, 정직한 길을 버리고 그런 암흑의 길로 행하다니 그들은 얼마나 어리석은 자들인가!(시 82:5; 요일 2:11).
3) 그들은 죄악을 즐거워하며 스스로 죄를 범하는 것과 타인의 범죄 행위를 보는 것을 다 기뻐한다(14절). 그들은 "행악"할 수 있는 기회를 "즐거워하며" 악한 계획의 성취와 성사를 기뻐한다. 나쁜 짓거리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유희이다. 그들에게는 "악인의 패역을 보는 것"보다 더 즐거운광경은 없다. 소망있는 자들이 죄악의 길로 끌려가는 것을 보는 일, 그래서 그들이 그 악한 길에서 강팍케 되고 굳어지게 됨을 보는 것보다더 기분좋은 일은 없다. 그들은 악마의 왕국이 기반을 공고히 하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즐거워하는 것이다(롬 1:32 참조). 그들의 불경건은 이렇게까지 높이 도달해 있다.
4) 그들은 죄악에 확고부동하다(15절). 저희 "길은 구부려져 있느니라." 그 길은 아주 굉장히 꼬불꼬불하고 이리 돌며 저리 돌아 저희의 회오가 추적해 오지 못하도록 도피하고 있으며 회오의 힘을 봉쇄하려 하고 있다. 그들의 기만적인 마음은 저희 악행속에 있는 손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어떤 때는 간교한 변명을, 또 어떤 때는 이런 저런 교묘한 구실을 갖다 댄다. 그들은 저 미궁(迷宮)의 미로(迷路)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그들 자신의 양심의 붙잡음으로부터 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행위가 패역한 자"들인 때문이다. 즉 그들은 voi역한 길에서 계속 매진하려고 결심하고 있다. 그것을 말라는 말이 무엇이든지 마이동풍격으로 흘려버리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다. 모든 지혜로운 자는 이러한 자들과의 교제를 회피해야 할 것이다.
(2) 지혜는 타락한 행위의 여인들로부터 우리를 보전해 줄 것이다.
전자는 영적 악함, 즉 성화되지 않은 마음으로의 욕망으로 이끌어 간다. 반면에 이 후자는 "육체적 욕정"으로 인도한다. 이것은 산 성전인 육체를 더럽히며 게다가 "영혼에게 전쟁을 건다." 음녀는 여기에서 "이방 계집"으로 불리우고 있는데 이는 자기 안에 지혜나 선함이 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그런 여인과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스라엘인은 음녀가 마치 이교도인양, 그리고 저 신성한 공동체에 대해 이방인인양 회피할 것이다. 이방 계집이란 사실상 이성과 미덕과 명예의 제반 원리로부터 완전히 소원(疏遠)한 여인이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찰해 보면 음녀의 유혹에서 구제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비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1) 이 여인은 얼마나 거짓된 자인가!
온통 위선 덩어리로 이루어진 자와 거래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여인은 이방의 여인이여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녀는 자기가 유혹하는 자에게 부실하다. 그녀는 정중하게 말한다. 즉 그에게 다른 누구보다 그를 얼마나 흠모하는가, 또한 그녀가 그를 위해 얼마나 친절한가를 말한다. 그러나 이 여인은 말로 호리고 있느니라. 이 여인은 데리라가 삼손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그 사람에 대한 진정한 애정도 품고 있지 않으며 그의 행복 따위는 원하고 있지도 않다. 그녀가 의도하는 전부는 그의 호주머니를 터는 일과 자신의 천한 욕정을 충족시키는 것뿐이다.
둘째, 이 여인은 자기 남편에게 부실하며 그에게 매여 있는 자기의 신성한 의무를 깨뜨리고 있다. 그는 자기 "소시의 짝(혹은 "길잡이")이었다." 결혼함으로써 그녀는 그를 그렇게 선택하였고 그만을 섬기며 그 외 모든 것은 버리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의 인도에 자신을 내맡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 여인는 그를 "버렸다." 그러므로 이런 여인이 그 외 딴 어떤 자라고 해서 절개를 지키리라고는 생각 할 수 없다. 그 여인을 향유하려는 자는 누구든지 그녀의 허위성을 같이 분담하려는 자이다.
셋째, 이 여인은 하나님께 부실하다. 그녀는 "자기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니라"(17절). 즉 혼약을 망각하였다. 하나님은 결혼 언약에 증인이 되실 뿐만 아니라 혼약 당사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바로 남편과 아내 쌍방이 서로에게 진실하겠노라고 서약하는 의식의 창시자인 까닭이다. 따라서 이 여인이 죄를 짓는 것은 그 남편에게 뿐만 아니라 그녀의 하나님께도 죄를 짓는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서약을 무시하며 언약을 깨뜨리는 때문에 "간음자와 행음자를 심판하실 것이다"(겔 17:18; 말 2:14).
2) 이 여인과 연합하게 되는 자들에게는 얼마나 치명적결과가 발생한 것인가!(18,19절)
타인들의 고생을 보거든 그것을 우리의 경고로삼자. 우리는 음행의 죄를 조심하자.
첫째, 음행하는 자들이 만약 회개치 않는다면 그들의 파멸은 확실하며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음행의 죄는 영혼을 곧 바로 살해하는 경향성을 지닐 뿐만, 아니라 모든 선한 애정과 영혼 속의 선한 기질을 질식시켜 버리고 그 영혼을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저주, 그리고 그의 공의로우신 칼날 앞에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금지된 쾌락 속에서 사는 자들은 살아 있으면서도 실상은 죽은 자들이다. 근신은 모든 사람을 악한 여인으로부터 보전해 줄 뿐만 아니라 악한 집으로부터도 지켜 준다. "그 집은 사망으로 기울어지는" 집이다. 즉 그 집은 영원한 죽음으로 직통하는 길 위헤 있다. "그리고 그녀의 길은 르바임(Rephaim)으로," 즉 옛 세계의 죄인들인 "거인들"(어떤 이는 그렇게 읽는다)에게로 기울어져 있다. 그런데 그 거인들은 사치와 과도한 난동의 삶을 살다가 늦게야제거되고 그들이 설립한 것은 홍수로 뒤집혀 버렸던 것이다. 주 예수께서는 죄 많은 쾌락 뒤에 따를 영원한 고통을 상기시키시면서 우리를 제지시키신다(마 5:28, 29 참조).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아니하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둘째, 그들의 회개와 회복은 지극히 모험적이다. "그녀에게로 가는 자는 누구든지," 거의 아무도 "다시 돌아오지 못하느니라." 마귀의 이 올무에 걸린 자 치고 회복에 나오는 이는 극히 드물다. 이 죄의 기만성에 빠지면 그만큼 심령이 강퍅해지고 그 마음이 눈뜬 장님처럼 어두워진다. "생명의 길을 잡았다"가("얻었다는" 뜻은 원래 잡는다"이다), 일단 놓치면 그들은 다시 잡을 줄은 모르고 그 천한 욕망에 완전히 도취되며 매료되고 만다. 많은 박식한 해석가들은 "이방 여인"에 대한 경고를, 문자적인 의미 이외에 상징적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영적 매음인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로서. 지혜는 네가 모든 우상 경배자들과친하지 못하게 지켜 줄 것이며 그들에게 가담라도 싶어하는 네 모든 성향으로부터도 너를 지켜 줄 것이다. 우상 숭패는 수 십 세기 동안 이스라엘에게 그토록 해로운 결과를 끼쳤고, 솔로몬도 예외는 아니었다.
2. 신체의 욕망과 육정으로 인해 영혼의 지적 능력과 기능이 타라되는 데 대한 경고로써, 지혜는 네가 육육의 마음에게 포로당하지 않게 지켜 줄 것이며, 네 영이 이 악명 높은 음녀, 곧 육의 지배에 복종하지 않도록 보호해 줄 것이다. 이 악명 높은 음녀인 육은 "그 길잡이(혹은 "짝")를 버리며 우리 하나님의 언약"을 범하여 "죽음에로 기울어진" 자이다. 그리고 그것이 일사불란한 지배를 하기시작할 때는 그 영혼의 사정이란 가망이 없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Ⅱ. 이 지혜는 우리를 선한 것에로 안내하고 지시하는 데에 쓸모가 있을 것이다(20절). "너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리라."
우리는 선한 길로다니기 위해서는 "악인과 이방 여인"의 길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선한 행하기를 배우기" 위해서는 "악을 행하는 일을 그쳐야"만 한다.
여기서 다음 사실에 유의하도록 하자.
1. 선한 자들의 전용 도로가 있다. 그 길은 선한 자들이 선한자의 자격으로서 다니는 길이며 그들이 진정으로 선한 동아넹는 언제나 다닐 수 있는 길이다.
2. 그 길로 행하며 그 선한 옛 5길을 구하고 그 안에서 다니는 것이 곧 우리의 지혜이다(렘 6:16; 히 12:1). 우리는 잠시동안 그 길로 행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길을 지키고 계속 그 길 안에서걸으며, 그 길에서 곁길로 나가서는 아니 된다. "의인의 길"은 생명의 길이어서 지혜로운 모든 사람은 그것을 한 번 붙잡은 이상 그 길을 절대로 놓지 않을 것이다. "너로 저 훌륭한 분들, 곧 족장들과 선지자들을 본받게 하며(패트릭 감독은 그렇게 의역한다), 그들을 따라간 의로운 자들의 길을 지키게 하리라."
우리는 성도들의 선한 귀감에 의해 전반적인 우리 길을 선택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세부적 소로의 선택에 있어서도 옛 성도들의 모범으로부터 지시를 받아야 한다. 즉 흔적을 살피고 무리의 발자국을 따라 나아가야 한다. 왜 우리가 이같은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되고 있다.
(1) 인간의 순전성은 그들은 확고히 세워 주는 것이 될 것이므로(21절).
1) 그것은 그들 개인을 확립해 주는 것이 될 것이다. "대저 정직한 자는" 그들이 사는 날동안 평화롭고 조용하게 "땅에 거하리라." 그들의 정직성은 그런 삶에 이바지할 것이고 그리하여 그것은 저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그들의 계획에 길잡이가 되며 그들의 이웃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할 것이다.
2) 저희 권속들을 확립시켜 주는 게 될 것이다. "완전한 자는"그들의 후손으로 "땅에 남아 있으이라." 그들은 천국의 가나안에 영원히 거하며 남아 있게 될 것이니, 땅의 가나안은 그 천국 가나안의 모형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2) 인간의 불의는 그들의 파멸이 될 것이므로(22절). "악인"은 어떻게 되며 누가 "궤휼한"자의 길을 택하는지 살펴 보라. 그들은 이 뒤에 올 천국과 그에 대한 모든 소망으로부터 "끊어질" 뿐만 아니라 그들이 애착을 두고 있는 저희의 보화를 쌓아둔 바로 이 현재의 "땅에서 끊어지리라." 그들은 이 땅에 뿌리를 박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그들에 대한 심판으로 "이 땅에서" 뽑혀질 것이다. 이러한 심판은 땅에게는 자비가 될 것이다. "그들에게 뿌리와 가지도 남기지 아니할" 날이 올 것이다(말 4:1). 그러므로 그 지혜로 "우리 마음에 들어오게"하며 "우리 영혼에 즐겁게" 되도록 하자. 그 지혜는 이와 같은 종말의 길에서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다.